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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비핵화합의를 거스르는 폼페이오-헤일리 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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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비핵화합의를 거스르는 폼페이오-헤일리 라인

익명 (미확인) | 수, 2018/08/01- 23:00

편집자 주: 많은 사람들은, 북한이 센토사 북미정상회담 전후하여 핵실험장을 폭파시키고 미사일 발사대를 해체하고 있으며 미군 유해를 송환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미국이 북한에 취하고 있는 더욱 강경한 제재조치에 의아하고 있다. 캐나다에 소재한 글로벌 리서치는 이러한 배경에 대해 아래의 글처럼 매우 소중한 시각을 우리에게 제공하고 있다. 트럼프 뒤에 숨어 있는 네오콘들, 특히 폼페이오와 헤일리 등은 강화된 봉쇄정책을 장기간 지속하면서 북한의 일방적 양보(굴복)와 중국으로부터 격리를 기획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들 강경파는 북한 핵무장 해체라는 과정을 악용하여 동아시아에 미국의 패권을 강화하고 연장하려는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한 가능한 옵션으로 북한 정권이 붕괴되기(regime change)를 기대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트럼프 자신은 김정은에게 여전히 호의를 갖고 있으면서도 오로지 11월 중간선거와 2년 뒤에 있을 차기 재선에 북한 이슈를 자신에게 유리한 카드로 최대한 활용하는데 골몰할 것이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한반도 평화체제에는 관심이 없다. 문재인 정부가 담대히 나서야 하는 이유이다.  


미국 전 대통령 지미 카터(Jimmy Carter): “북한이 얼마나 미국의 공격을 두려워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1994년 북한과의 평화협정 협상을 성공리에 마친 후)

 “비핵화”라는 단어의 의미를 혼동할 사람이 있을 리 없다. 그런데 서구 언론의 여러 보도에 따르면 북한과 미국은 각자 그 뜻을 완전히 다르게 해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서명한 싱가포르 회담 합의문은 다음을 명시하고 있다.

“3. 북한은 2018년 4월 27일의 판문점 선언을 재확인하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안전 보장을 제공하기로 약속했고, 김정은 위원장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확고하고 흔들림 없는 의지를 재확인했다.”

칼럼_180801
사진: 한국일보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싱가포르 회담 후 공동 서명한 합의문을 통해 한반도 전체의 비핵화를 천명했다. 그런데 해당 합의문의 어느 구절에도 북한의 일방적인 비핵화는 명시되지 않았다. 그리고 7월 20일 성사된 폼페이오 장관과 헤일리 (Nikki Haley) 유엔 주재 미국 대사, 유엔 안보리의 만남을 통해 미국은 한반도의 비핵화를 성사시킬 뜻이 없으며, 싱가포르 회담의 두번째 약속인 다음의 항목을 지킬 것이라는 근거도 없음이 명백히 드러났다.

“2. 미국과 북한은 한반도에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평화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힘을 모을 것이다.”

확실히 미국은 북한과 협상을 할 의지가 없다. 북한에 명령을 내리고, 유엔 안보리를 압박해 추가적인 대북 석유공급을 중단, 북한의 숨통을 더욱 조일 작정이다. 다행스럽게도 중국과 러시아가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며 미국의 공격적 행보에 제동을 걸었다. 헤일리는 대북제재에 반하여 89차례나 배에서 배로 석유를 옮기는 “사진증거”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사진증거”는 과거 콜린 파월(Colin Powell)이 유엔 안보리에 제시했다가, 이후 허위임이 밝혀진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사진을 떠올리게 한다.

다음은 헤일리 대사의 주장이다.

“더 많은 정보는 필요 없습니다.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우리의 친구들 중 규칙을 피해가려는 무리들이 있다는 겁니다.”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지 않다는” 헤일리 대사는 계속해서 북한을 향해 “일단 쏘고 보고하라 (shoot first, ask questions later)” 식 접근법을 들이대고 있다. 북한은 이를 일컬어 “깡패 같고 암적이다”고 묘사하기도 했다.  

그는 “우리의 친구들 중 규칙을 피해가려는 무리가 있다”고 했다. 그 “규칙”을 도입하고, 이런 악성 제재를 지지하도록 안보리를 협박, 위협, 매수한 것은 미국인 바, 헤일리 대사는 러시아와 중국이 의연하게 대처하며 미국이 강요하는 “규칙”에 얽매이기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그들을 질책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 러시아와 중국이 이런 야만적인 제재조치를 수년간 지지했다는 것이 비극이다. 이제라도 스스로의 위엄과 자존심을 찾고 북한의 굴복을 받아 내기 위한 협박에 굴하지 않는다면 이는 존경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헤일리 대사는 마치 유치원 교사가 반항하는 학생들을 타이르듯 다음의 주장을 이어 나갔다.

“현재 우리는 중국과 러시아가 제재를 준수하고, 현 상황의 훌륭한 조력자로서 비핵화를 돕도록 이들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헤일리 대사의 황당한 주장과는 반대로 유엔 안보리 제재는 지난 12개월간 전 세계를 핵전쟁의 구렁텅이에 내던진 심각한 갈등을 악화시킬 뿐이었다. 북한으로서는 북미 간 평화협정 체결로 내내 북한을 위협해 온 휴전이 끝나기 전까지 비핵화를 실행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비록 북한은 1년 가까이 미사일 실험을 강행하지 않았고, 미국은 최근 도발적 한미 군사훈련을 연기했지만, “북한정부 참수작전”이라 불리는 오싹한 군사훈련이나 북한을 두렵게 할 수 있는 지시 등은 언제든 재개될 수 있다.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Jimmy Carter)는 1994년 북한과 평화협정 협상을 성공리에 마친 후 채널13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를 포함, 북한이 미국의 공격을 받을까 얼마나 두려워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미국은 이해타산을 따지느라 평화협정에 합의하지 못하고 있고, 이는 최근의 위기상황을 지속시켜왔다. 왜 미국이 평화조약 서명을 거부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미국의 평화조약 거부는 결국 언젠가, 가깝거나 먼 장래에 1950년에서 1953년까지 북한과 중국을 상대로 벌어진 거대 전쟁을 재개하겠다는 의도를 암시한다. 1950년 미국은 북한이 촉발한 침략에 대한 공격을 승인하는 유엔 결의안이 통과되기도 전에 북한을 공격한 바 있다.

그런데 지금 안보리를 압박해 북한에 대한 다양한 제재 결의안을 지지하도록 하기 위해 과거와 다를 바 없는 전략이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이 제재들은 명백한 반 인도적 범죄들로 구성된다. 과거 소련의 안드레이 그로미코 (Andrei Gromyko) 외무장관이 마키아벨리 스타일의 현실주의를 시현하고, 미국이 이를 이용해 북한에 전쟁범죄를 자행할 “명분”을 얻은 이후 68년이 흐르는 동안 그 무엇도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핵무기 전문가 시그프리드 헤커 (Siegfried Hecker) 박사는 안전을 위해 비핵화는10년 또는 그보다 긴 기간에 걸쳐 단계적으로 실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폼페이오와 헤일리, 거기에 트럼프까지 나서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할 때까지 유엔 안보리 제재는 계속될 것”임을 강조하는 것은 모르는 척 인명을 해하는 위선적인 제재정책에서 기인하는 기아와 질병 및 기타 잔혹한 제재의 영향 등으로 북한 주민들을 서서히 고통스럽게 죽이는 정신나간 요구라고 말한다. 폼페이오는 “북한은 완전하고 충분한 비핵화를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김 위원장이 약속한 조치이고,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통해 세계가 요구하는 조치입니다.”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현실을 왜곡한 것이었다. 김 위원장은 “한반도에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평화 체제”가 구축된다는 조건 하에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하겠다고 약속했을 뿐이다. 그런데 폼페이오와 헤일리, 트럼프가 그의 입장을 곡해하는 것은 싱가포르 회담에 대한 배반이며, 북한이 묘사한 “암적인” 태세가 아닐 수 없다. 

최근 워싱턴 포스트(Washington Post)는 짧은 기사 하나를 조용히 실어 다음을 시인했다.

“지난 8월 발표된 유엔 제재조치는 인도주의적 피해는 피하려 했던 기존 제재의 일부 조항을 삭제함으로써 대북 압박을 강화했다.”

7월 23일 CNN 보도에 따르면 “북한은 미국이 비핵화 전 평화를 위한 ‘과감한 행동’에 나서고, (중략) 북한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기를 원한다. (중략) 이 문제에 대한 북한 내부 입장에 정통한 한 관료는 미국이 한국전 휴전협정을 북한의 김정은 정권의 생존을 보장하는 영구적 평화로 대체할 의지가 없다면, 북한도 더 이상의 비핵화 논의를 진행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칼라 스티(Carla Stea) 글로벌리서치의 뉴욕 유엔본부 담당 특파원이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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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연합뉴스에서 오후 4시 시각으로 크리스틴 안에 대한 입국 금지가 해제되었다는 기사를 올렸습니다. 다행입니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7/18/0200000000AKR2017071813… 아래는 입국 금지 해제되기 전 크리스틴 안과 뉴스타파 인터뷰입니다. http://newstapa.org/40640


[7월 17일 (미 현지 시각)] 으로 크리스틴 안의 촤근 입국 거부를 알리는 뉴욕 타임즈 기사를 바탕으로 쓰여진 기사입니다. 크리스틴 안은 2015년 위민 크로스 DMZ 를 이끈 평화활동가입니다. 법무부가 '공공안정을 헤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입국금지 조치' 했다고 이야기한느데 촛불이후 선출된 문재인 정부에서 그런 말이 나온다는 것이 정말 말도 안됩니다. 문재인 정부는 그에 대한 입국 금지를 즉시 해제해야 합니다. 크리스틴 안 뿐 만 아니라 모든 환경, 평화, 인권 활동가들에 대한 입국 금지 조처를 해제해야 합니다.
화, 2017/07/18-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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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단고정게시물확인 #역사다시보기 《발트의 길》 발트의 길을 알고나면 정말 쪽팔리는 대한미국.!!! 3년전에 페북에 쓴 글이다.!! "발트의 길"을 아시나요? 25년 전 1989.8.23 발트의 길!! 1939.8.23 독러 비밀협약으로 발트3국이 러시아 식민지가 된 50년 되는 날에 발트 3국의 200만명이 687km를 인간띠를 이어서 러시아로부터 독립을 이룬 계기가 된 것이 발트의 길 입니다!! 독러비밀협약 보다 34년 전인 1905.7.29에 대한제국은 미국과 일본에 의해 맺어진 가쓰라-태프트밀약으로 인해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109년이나 지난 이날까지 무엇을 하고 있는가요? 발트의 길 25주년을 맞이하여, 우리도 '한반도의 길'로 민족자주독립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발트의 길 20주년 된 2009년에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기록되었다.> 너무 늦은감이 있는 관계로 인간독립이 아닌 자연생태계의 독립을 위한 "백두대간의 길"로 생태통일과 생태평화를 이뤄야 하지 않을까요? 오랜만에 화창한 광화문 단식장의 뜨거운 열기속에서 발트의 길을 되새기며, 우리민족의 미래를 위해 처절한 반성의 시간을 가져 봅니다. "DMZ 생태띠잇기"가 '발트의 길'과 뜻을 같이 했다.!! "발트의 길"을 알고나면 정말 쪽팔리는 대한미국 출처 : 지구살리기.. | 블로그


#역사다시보기 《발트의 길》 발트의 길을 알고나면 정말 쪽팔리는 대한미국.!!! 3년전에 페북에 쓴 글이다...
금, 2017/08/25-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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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더스 열풍? 제국의 장벽은 높다!

제국의 정치를 바라보는 모순된 시선

 

장석준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 참여사회연구소 기획위원

 

버니 샌더스 열풍이 뜨겁다.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미국 정치의 별종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 예비 경선에 뛰어든 뒤에 세계인의 눈이 온통 그에게 쏠려 있다(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와 도널드 트럼프에게).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누르고 나서는 더욱 그렇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평소 진보 정당들을 무시하기 일쑤이던 언론이 돌연 "이 땅의 샌더스는 어디 있느냐"며 절규하기 시작했다. 고개를 조금만 돌려보라고 쏴주고 싶은 마음이지만, 그래도 한 '사회주의자' 정치인에 열광하는 걸 타박할 일은 아니다. 한국에서는 아무래도 정권 교체가 쉽지 않을 성싶은 불길함을 미국 대선 정국의 열기로 떨쳐버리려는 안타까운 마음들도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샌더스 열풍을 바라보는 이런 시선에는 중대한 모순이 있다. 많은 이들이 샌더스의 약진에 환호하는 것은 이게 미국 정치에서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영국이나 프랑스에서 이런 일이 있다면, 반응이 이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이 세계 제국이기 때문이다. 제국의 정치 혁명은 결코 남의 일일 수 없다. 그것은 곧바로 제국의 우산 아래 있는 모든 국가들을 요동시킬 것이다. 다들 이를 감지하고 있기에 샌더스 현상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그런데 제국의 일이기에 주시하면서도 이것이 제국의 일임을 쉽게 잊는다. 미국 양대 정당의 대통령 후보 선출은 제국의 후사를 결정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그 어떤 국민 국가의 정치 과정과도 같을 수 없다. 이것은 샌더스가 뚫고 나가야 할 도전이 다른 나라에서 비슷한 성향의 정치 세력이 각오해야 할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중함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 예비 경선이 여느 국민 국가의 정치 과정과 다를 바 없는 듯 바라보며 샌더스의 승리를 기대한다. 제국의 선거여서 관심을 보내면서도 제국의 선거임을 망각하는 모순된 시선이다. 

 

제국의 정치는 다르다 

 

제국은 그에 맞는 정치 체제를 갖춰야 한다. 미국의 경우 이는 공화당과 민주당의 정치 독점이고, 이를 뒷받침하는 중요한 제도적 장치가 개방형 예비 경선 제도(오픈 프라이머리)다. 미국식 예비 경선 제도는 대중의 참여 문턱이 유럽식 대중 정당보다 낮아서 얼핏 더 민주적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후보 입장에서는 대중 정당의 내부 경선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막대한 자원이 필요하다. 

 

기업들로부터 거액의 정치 헌금을 받아낸 정치인만이 이 관문을 통과할 수 있다. 또한 당 내 경선에 비해 대중 매체가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 언론이 유력 후보를 낙점하고 훈육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광범한 대중의 참여라는 외양에도 불구하고 늘 제국의 세계 통치에 부합하는 인물들이 양당 후보로 선택받게 된다.

 

샌더스가 놀라운 것은 바로 이러한 장벽들을 무력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샌더스는 대기업 후원 없이도 대중 모금만으로 클린턴 후보에 대적할 재정을 마련하고 있다. 또한 친민주당으로 분류되는, 이를테면 <뉴욕타임스> 같은 언론의 집중 공격에도 불구하고 소셜 미디어를 통해 여론을 형성하는 청년층의 지지에 힘입어 여론전에서 결코 밀리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의 이런 성과만으로도 샌더스 선거 운동은 미국 정치사에서 '혁명'이라 할 만한 한 획을 그었다고 평가받을 만하다. 

 

민주당 엘리트들로서는 분명 당혹스러운 상황이다. 그러나 이미 여러 해설 기사들을 통해 알려진 것처럼, 이들에게는 마지막 안전판이 있다. 총 4760여 명의 대의원 중 15% 가까이 차지하는 710여 명의 슈퍼 대의원이 그들이다. 슈퍼 대의원은 우리에게 익숙한 용어로 옮기면 '당연직' 대의원이라 할 수 있다. 대개 민주당 소속 주지사나 상‧하원 의원, 민주당 전국위원회(DNC)의 위원들이다. 

 

이들 중 현재 샌더스 지지를 표명한 이는 15명밖에 안 된다. 반면 클린턴 지지자는 400명이 훨씬 넘는다. 지지자를 공표하지 않은 나머지 슈퍼 대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은 샌더스가 클린턴을 간발의 차로 앞서는 상황에서 샌더스에게 표를 몰아줄 사람들은 절대 아니다. 그런 상황이라면 오히려 십중팔구 클린턴에게 투표해서 샌더스의 당선을 막으려 할 사람들이다. 따라서 샌더스는 선출직 대의원의 60% 선을 장악하는 압승을 거둬야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될 수 있다. 클린턴도 종이호랑이가 아니기에 샌더스가 이 정도 승리를 거두기는 참으로 어렵다. 

 

즉, 지금 가장 가능성이 큰 것은 샌더스가 계속 바람을 일으키지만 결국은 클린턴이 전당 대회에서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는 경우다. 아마도 샌더스를 통해 시대의 풍향을 바꿔보려 한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가장 힘겨운 상황이 될 것이다. 샌더스 선거 운동 초기에는 그를 지지하는 논리 중에 그가 표를 받은 만큼 클린턴 후보의 정책이 왼쪽으로 기운다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샌더스를 둘러싼 대중의 비전과 열망은 클린턴이 받아 안을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그런데도 클린턴이 후보로 지명되는 결과가 나오면 샌더스 운동은 어떻게 될 것인가? 1988년 대통령 선거를 앞둔 민주당 예비 경선에서도 제시 잭슨 목사가 샌더스와 비슷한 진보 정책을 내걸고 샌더스 열풍 못지않은 바람을 일으킨 적이 있다. 그러나 일단 잭슨이 낙마하자 잭슨 바람은 그것으로 끝나버렸다. 미국 민주당은 유럽 대중 정당처럼 당 내 분파를 만들어서 일상 활동을 펼칠 구조 자체가 없다. 예비 경선의 바람은 그냥 바람으로 끝이다. 샌더스가 사실상 50% 넘는 지지를 받고도 후보로 지명되지 못한다면, 이 50% 넘는 지지 열기 역시 그렇게 형해화될 가능성이 크다. 

 

경선 패배 이후에도 샌더스 운동이 지속될 수 있을까 

 

이 대목에서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노동조합 진영이다. 2015년 영국 노동당 대표 경선에서 급진 좌파인 제러미 코빈 하원의원이 후보로 나서서 돌풍을 일으키고 마침내 당선될 수 있었던 데는 노동조합의 적극적인 역할이 있었다. 코빈은 후보 등록 요건인 35인 이상의 의원 추천(복수 추천 불가능)도 받기 힘든 형편이었는데, 영국 최대 노동조합인 유나이트(Unite)가 나서서 서명을 받아준 덕분에 등록할 수 있었다. 이후 선거 운동 과정에서도 주요 노동조합들이 코빈 지지 선언을 하며 당 내 반란의 든든한 기반이 돼주었다.

 

반면 샌더스에게는 이러한 노동조합의 지원이 없다. 미국 노총(AFL-CIO)의 주요 조직 중 하나인 통신노동조합(CWA, 조합원 70만 명)이 샌더스 지지를 선언하기는 했다. 노총도 샌더스 바람을 염두에 두며 지지 후보 지명을 유보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누구보다 샌더스 반란의 선두에 서야 할 노동조합 진영이 대체로 뒷짐을 진 채 관전만 하고 있다.

 

미국에서 진보 정당이 성장하지 못한 결정적 원인이었던 노동조합의 실리주의적 정치 관행이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만약 샌더스가 민주당 후보로 최종 지명되는 이변이 일어난다면 이 경우에는 노동조합이 샌더스의 가장 강력한 방파제로 나설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샌더스가 전당 대회에서 패배할 경우에는 샌더스 운동의 불씨를 살리려는 노력에 미국 노동조합이 함께 하길 기대하기는 힘들다. 이렇게 되면 샌더스 운동이 경선 패배 이후 새로운 모색을 계속한다 하더라도 과거 미국의 실패한 진보 정당 건설 운동들보다 더 나은 상태에서 출발한다고 할 수는 없다. 사실상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게 제국의 정치의 진실이다. 샌더스가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받기 힘들다는 것 이전에 이토록 뜨겁게 타오른 샌더스 운동이 아무런 정치적 거점도 확보하지 못한 채 무(無)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 말이다. 가령 스페인의 포데모스가 정당 명부 비례 대표제를 발판으로 '분노한 자들' 운동의 민심을 현실 정치의 힘으로 만들어내고 있는 것과는 뚜렷이 대비되는 모습이다. 

 

그렇기에 만약 이토록 엄청난 함정과 장벽들을 뚫고 샌더스가 기어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다면 이는 그야말로 우리 세대 최대의 정치적 격변의 시작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 경우에도 제국의 정치 체제는 샌더스의 본선 당선을 막을 풍부한 수단들, 가령 노골적으로 자본 진영이 합의 추대하는 무소속 제3 후보의 등장 등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이 수단들이 동원되는 광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70억 인류의 삶은 전과 같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실은 나 자신 제국의 정치를 바라보는 모순된 시선을 거둘 수가 없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목록 바로가기(클릭)
 
* 본 내용은 참여연대나 참여사회연구소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목, 2016/02/25-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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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정상회담을 즈음한 '한반도 평화 4가지 해법' 제시하는

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 개최

“한반도 평화의 역사적 전환을 이루는 한미정상회담을 기대한다”

 

일시 : 06. 28. (수) 오전 10:00

장소 :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 앞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첫 정상회담이 오는 6월 29-30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립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사드에서부터 한반도 비핵화 해법에 이르기까지 여러 중차대한 문제들이 논의될 예정입니다. 

 

이번 정상회담이 악순환을 거듭해온 한반도 문제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뜻을 담아 시민평화포럼, 참여연대, 평화네트워크, 흥사단 등 시민사회 단체들은 내일(6/28) 한반도 평화를 위한 4가지 해법을 제시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합니다. 
 

화, 2017/06/27-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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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만 밝히는 한국 불교 떠나겠다.”

하버드대 출신의 푸른 눈의 수행자 현각 스님이 지난달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한국 불교를 비판하는 글을 올린 데 따른 파장이 잦아들지 않고 있다. 본인은 “형편없는 한국어 실력 때문에 생긴 오해”라며 조계종을 떠날 뜻을 밝힌 게 아니라고 선을 그었지만 파문은 더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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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각 스님은 숭산 스님을 통해 부처를 만났고, 먹물 옷을 입고 한국에 왔다. 그런 그가 최근 “한국 불교는 너무 돈만 밝힌다”며 한국을 떠날 의사를 밝혔다. (사진 출처: http://news.joins.com/article/20392068)

불행히도 현각 스님을 향한 조계종 주류의 비판은 “한국 불교에서 상위 1% 대접을 받아놓고 25년이 지난 이제서야 왜 비판에 나선 것이냐”로 모아지는 모양새다. 소모적 논쟁 속에 과도한 기복문화와 수행정신의 퇴락, 완고한 민족주의라는 현각 스님이 던진 화두는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조계종 종권 다툼 한창이던 1998년 ‘푸른 눈 수행자’로 주목

현각 스님이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소개된 건 지난 1998년 부처님오신날을 즈음해 방영된 KBS 특집 다큐멘터리를 통해서다. 연이어 그 해 11월 KBS 일요스페셜 만행(卍行) 2부작이 방영되자 대중의 관심이 폭발했다.

미국 예일대학에서 철학과 문학을,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과 미 하버드 대학원에서 종교철학을 공부한 ‘스펙’부터가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하버드대를 나온 34세 푸른 눈의 수행자가 오직 깨달음을 위해 진리를 찾아 명산고찰을 돌며 용맹정진 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도 신선했지만, 총무원장 선출을 앞두고 조계사 점거 사태가 재발하는 등 종권(宗權)을 차지하기 위한 이전투구가 벌어지던 당시 조계종 종단의 실상과 대비되며 더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킨 측면도 있다.

경호 용역 회사 직원, 물대포까지 동원한 몸싸움을 마다하지 않았던 조계종 승려들의 모습이 연일 뉴스를 장식하던 그 때, 한국불교는 “따뜻한 할머니의 품 같다”는 현각 스님의 말씀은 우리사회에 큰 울림을 전했다.

종단 사태 폭력-
1998년 11월, 조계종 총무원장 3선공방 다툼과 종단내부 갈등은 스님들 간의 물리적 폭력으로 비화됐다. 사진은 당시 폭력 사태 모습. (사진 출처: http://cluster1.cafe.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1GzOU&fldid=L…)

이듬해 출간한 책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가 단숨에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현각 스님도 스타덤에 오른다. 책이 인기를 끌면서 대표적 TV 아침 프로그램인 ‘아침마당’에도 나가고, 라디오도 나가고 특강도 해야 했다.

외모가 출중하다는 점은 인기를 더하는 요인이었다. 현각 스님은 2010년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그래서 창피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수행자는 사람들이 자신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 되어야 하는데, 자신의 겉모습은 사람들에게 유혹만 주었다는 것이다.

그는 “일본에 아름다운 비구니 스님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보면 사랑에 빠지고 고통스러워했다. 그러자 비구니 스님이 칼로 자신의 얼굴을 난도질했다. 내가 그 비구니처럼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다는 말은 아니니 오해 말라. 비슷한 심정이었다는 얘기다”라고 설명했다.

여자친구 청혼 뒤로 하고 입산… “죽을 때까지 한국서 수행 정진”

현각 스님(속명 폴 뮌젠)은 1964년 미국 뉴저지주 라이웨이에서 아홉 형제 중 일곱째로 태어났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부모는 자녀 모두를 카톨릭 중ㆍ고교에 진학시켰고, 현각 스님은 형제들 중에서도 유독 가톨릭 신부가 되리라는 부모의 큰 기대를 받고 자랐다.

하지만 1983년 예일대에 진학한 현각 스님은 베트남 전쟁과 워터게이트 사건을 함께 지켜보며 자란 동시대 대학생들과 다르지 않았다. 중남미에 무기를 수출하고 뒷돈을 대주며 전쟁을 부추기는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반대를 외쳤고, 인종차별정책으로 비난을 받던 남아프리카공화국 기업에 투자해 높은 수익을 얻던 예일대 총장을 향해 투자 중단을 요구하며 퇴진 시위를 주도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파티와 여흥이 넘쳐나는 자유로운 미국 젊은이의 전형적 생활도 즐겼다. 현각 스님은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었지만,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를 또 찾아 헤매야 했다”며 “전도 양양한 미래도 있었지만, 마음 한 구석은 늘 허전했다”고 20대 시절을 설명했다.

현각 스님은 1987년 대학을 졸업한 뒤 철학의 본고장인 독일의 프라이부르크 대학교 철학과로 진학했고, 이후 프랑스 아일랜드 영국 등 14개국을 유랑하며 방황의 세월을 보내기도 했다.

1989년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월스트리트의 한 법률사무소에서 일했지만, 맞지 않는 옷이었다.

25세의 현각 스님은 물질주의의 최전선인 월스트리트의 삶에 절망을 느껴 자살을 결심했다. 미 뉴욕의 브루클린 다리에서 투신 직전까지 갔던 그를 돌려세운 건 한 흑인 노숙자였다. 남은 돈을 모두 털어 건네자 그 노숙자는 “오늘이 며칠인지 알아? 오늘은 네 생일이야. 나중에 내가 한 말을 떠올리면 이해하게 될 거야”라며 축가를 불러줬다고 한다.

현각 스님은 “어쩌면 관음보살의 현신이 아니었을까라고 생각한다”고 자신의 저서를 통해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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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출간된 현각 스님의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미국 최고 엘리트였던 그가 번뇌의 고리를 끊는 진리를 찾아 모든 것을 버리고 한국 불교에 귀의했다는 사실이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다. (사진 출처: http://koridol.tistory.com/4379)

현각 스님은 가톨릭 신부가 될 생각에 그 해 하버드 대학 신학대학원 비교종교학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강연을 위해 하버드대를 방문한 숭산 스님을 만나 한국 불교와 인연을 맺으면서 인생의 항로도 달라진다.

1992년 대학원 졸업 후 여자친구의 청혼까지 뒤로 한 채 입산한다. 선종(禪宗)의 개창자인 육조 혜능 대사가 모셔진 중국 조계산 남화사에서 계를 받고 출가했다. 1996년 경남 양산 통도사 금강계단에서 비구계를 받았고, 2001년 8월 화계사에서 숭산 스님에게 공식 인가를 받았다.

현각 스님은 1999년 문화일보와 인터뷰에서 “혜능 스님 선 수행의 전통이 가장 잘 이어져 훌륭한 고승이 많은 것은 한국불교의 자랑”이라며 “나는 죽을 때까지 한국에서 수행에 정진할 작정”이라고 말했다.

한국 불교의 배타성ㆍ상업화가 ‘깨달음’ 방해

한국 불교에 대한 애정을 감추지 않았던 현각 스님이 돌연 한국을 떠난 건 지난 2008년의 일이다. 유럽에서의 ‘만행’이 명분이었지만, 스승인 숭산 스님이 입적(2004년)한 날부터 떠날 준비를 시작했다고 한다. “수행이 아니라 그야말로 ‘쇼’를 한 게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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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산 스님은 평생 ‘세계일화(세상은 한송이 꽃)’을 강조하며 한국불교를 세계에 널리 알렸다. 그래서 2004년 충남 수덕사에서 열린 그의 다비식에는 그를 따라 한국불교에 귀의했던 푸른눈의 스님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오른쪽, 사진출처: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917295)

유럽으로 떠난 그는 2009년 독일 레겐스부르크에 ‘불이(不二)선원’이라는 선방을 개원하며 독일에 정착했다. 물론 한국에서의 ‘동안거’(冬安居) 만큼은 거르지 않는 등 한국 불교와의 인연은 이어왔다.

숭산 스님의 가르침이 좋아 출가했고, 그 때문에 한국도 좋아하게 됐다던 그는 지난 3월 언론 인터뷰에서“한국 불교는 나 같은 외국인이 보기엔 아직 너무 배타적이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한국 불교가 지나친 상업화의 길로 가는 현실도 번뇌를 불러왔다. 현각 스님은 특히 ‘한국 불교 세계화’를 표방하며 사찰음식 박람회와 같은 이벤트성 행사에 주력하는 조계종 종단을 향해 죽비를 세게 내리쳤다.

2014년 미주 한국일보와의 영문 인터뷰에서 “조계종 지도부는 문화상품을 ‘수출’하려 애쓰고 있다”며 “진정한 영적 진리를 알고자 하는 마음의 허기를 충족시킬 수 없는 순전히 문화상품에 불과한 이것에 너무 많은 돈이 쓰여지는 게 나를 슬프게 한다”고 밝혔다.

그는 “박람회에서 홍보하는 사찰음식 메뉴를 보면 거개가 사찰에서 비구나 비구니가 먹는 음식도 아니다. 일년에 한번쯤 어떤 대사 때가 아니면 결코 구경도 할 수 없는 진수성찬 채식요리”라며 “부처님은 승려들에게 거리에서 걸식을 하라고 가르치셨다”고 일침을 가했다.

현각 스님은 지난 2013년 현대불교 창간기념 인터뷰에서는 한국 불교가 주목하던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에 대해 “불교를 ‘깨달음’에서 단순한 문화차원에서의 ‘관광 상품’으로 변화 시켰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템플스테이는 중요한 경제적 기회와 대중 매체 속에서의 기회를 가져다 줄 수 있어 긍정적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매우 위험하다”며 “모든 것을 돈 중심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상업화의 부작용을 경계했다.

현각 스님이 최근 논란이 된 페이스북 글에서 “누구나 자기 본성을 볼 수 있는 열린 그 자리는 그냥 기복 종교로 귀복시켰다. 왜냐하면 기복= $”라고 썼던 고민의 뿌리를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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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발’ 좋기로 소문난 대구 동화사 갓바위 앞에서 기도하는 신도들의 모습(왼쪽). 그리고 그곳에 적힌 문구. 종교가 사바대중의 근심을 덜어주고, 작은 소원을 들어줄 수 있다면 좋은 것이지만, 현각은 그것이 부처가 말한 진리는 아니라고 생각했던 듯하다. (사진 출처: http://blog.daum.net/511-33/12369745)

조계종은 최근의 논란과 관련해 공식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중앙승가대 교수인 자현 스님은 페이스북 글과 불교신문 기고문 등을 통해 “현각 스님이 주목 받은 것은 깨달음이 있어서가 아니다. 출가하자마자 무슨 깨달음이 있었겠는가? 그것은 단지 하버드를 졸업한 미국의 백인이라는 측면이 작용한 결과였을 뿐”이라고 현각 스님을 향한 비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자현 스님은 특히 “2015년 총 수입이 가장 많은 사찰은 서울 강남 봉은사인데 총 수입이 210억8,700만원에 불과하다”며 “봉은사는 수 조원의 자산 가치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바른불교재가모임 상임대표인 우희종 서울대 교수는 현각 스님이 한국 불교 비판 소식이 전해진 뒤 자신의 페이스북에 “현각 스님이 느낀 여러 모습에 대해 (재가모임도) 같은 문제점을 지적해왔다”며 “그가 굴종의 신앙을 유지하는 신도들과 욕심을 채우려는 종단 승려들에게 많은 실망을 느낀 것 같다”고 섰다.

목, 2016/08/11-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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