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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충무공의 고장 아산에 ‘인권기념관’이 필요한 이유-홍남화 아산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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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충무공의 고장 아산에 ‘인권기념관’이 필요한 이유-홍남화 아산지회장

익명 (미확인) | 수, 2018/08/01- 17:25

• 방학진 기획실장 인터뷰 • 이홍관 정리

현재 국제운송회사 로드 원(ROAD 1) 로지스틱스를 운영하고 있는 홍남화 아산지회장은 2000년 9월부터 연구소 회원에 가입했다. 2016년 5월에는 아산 둔포면에 있는 친일파 윤웅렬, 윤치호 공덕비를 제보하였고, 아산지역 민간인학살 유해발굴사업(2017년 1월~5월)을 제안하고 이끌었다. 우리에게 ‘톨레랑스’라는 화두를 각인시킨 <나는빠리의 택시운전사>의 저자 홍세화선생과사촌지간이다. 찾아간 날, 마침 홍남화 회원은 업무상 무언가 바쁜 일이 터진 모양이었다. 이곳저곳으로부터 쉴 새 없이 전화를 받고 처리하면서도, 성의 있고 진지하게 인터뷰에 응해 주었다. 인터뷰는 아산의 신정호수 인근에서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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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 아산지회의 회원은 몇 명이나 되나요?

답 : 저희가 80명 정도 되요. 3년 전까지만 해도 천안아산지회였는데 분리하고 보니까 좀 아쉽게 느껴집니다. 열성적이고 왕성하게 활동하시는 분들이 지회의 발전을 전망하면서 힘들더라도 각자 독자적으로 가보자는 취지였습니다.

 

문 : 천안아산지회로 활동하셨을 때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신지요?

답 : 그때나 지금이나 주로 임종국 선생님 추모사업을 했었죠. 오랫동안 노력이 쌓이니 2016년에는 천안 신부공원에 임종국선생의 조형물을 세웠고 앞으로 지역의 명소로 가꿔 나갈 계획입니다.

 

문 : 아산에 내려오시기 전에 이미 연구소와 인연을 맺으셨지요?

답 : 제가 수원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였는데요. 1997년 또는 1998년 무렵 수원 북문 부근에서 북한동포돕기 캠페인을 보고 그 단체가 어디인가 하고 찾아갔더니 연구소 경기남부지부와 관련되어 있더라구요. 그것이 연구소와의 인연의 시작이었습니다. 당시 북한동포돕기 성금으로 5만원을 송금했습니다.
그 무렵 수원지역에서 열린 강연들을 많이 찾아다녔습니다. 수원역전의 경기서적에서 리영희 선생님 강연에도 참가해 제가 “DJ와 YS는 둘 다 민주화운동을 했는데 왜 차이가 납니까” 하고 질문했더니 리영희 선생님께서 “한 사람은 철학이 있고, 다른 사람은 철학이 없다”고 말씀하신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얼마 후 수원청소년문화센터에서 노동은 교수님의 친일음악 강연도 참석했습니다. 노동은 교수님 강연은 화성시가 홍난파기념관 건립을 계획하자 반대운동 차원에서 연구소 경기남부지부가 마련한 것이었습니다. 그 강연에서 방학진 사무국장을 처음 만났는데 현재 방학진 기획실장은 기억을 못하시네요. 그 후 오산으로 이사해서 2001년 대선 때 노무현 후보 선거운동에 열심히 참여했습니다.

 

문 : 수원에서 오산으로 다시 천안에서 고향인 아산으로 계속 내려오셨네요?

답 : 제 회사 이름이 로드 원(ROAD 1)입니다. 1번 국도를 타고 대륙까지 오가자는 뜻입니다. 우리 가족사를 살펴보니 큰 집은 북한 진남포에서 해방을 맞고 소련군에 쫓겨 인천으로 내려옵니다. 우리 집안을 보면 수백 년간 한 곳에서 살다가 개화기를 거치면서 할아버지는 천안, 아버지는 홍성, 저는 아산에서 태어납니다.
지난 100여 년의 격동과 전쟁의 틈바구니 속에서 우리 집안이 이리저리 내몰렸던 거죠. 그렇게 집안 어른들의 기억 조각들을 하나하나 연결하다보니 다시 고향인 아산으로 오게 되었고 그동안 잘 몰랐던 가족사를 80% 정도는 복원했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이 그렇게 길지 않고, 이름을 남기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오명으로 남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그렇게 가족사를 복원했던 것 같습니다.

 

문 : 아직 복원하지 못한 가족사의 20%는 무엇입니까?

답 : 6·25전쟁 전후로 자행된 민간인 학살에 의한 망각이 그 20%입니다. 그래서 민간인 학살 유해 발굴에 더욱 관심이 많습니다. 저희 아버지도 그 당시 희생될 뻔 하셨습니다. 아산 현충사 부근의 황골이라는 마을은 대대로 남양 홍씨(홍남화 지회장은 조선 후기 실학자인 홍대용 집안이다) 집성촌이었습니다.
인천상륙작전 와중에 황골에서 우익에 의한 학살이 벌어진 것은 1950년 추석 무렵입니다. 새벽에 아버지가 화장실을 가던 중 요란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돌아와 보니 아버지의 사촌이며 큰어머니가 모두 끌려간 후였습니다. 우익 청년들이 동네 사람들을 공회당에 가두어놓고, 좌익 혐의자에 대해 인민재판을 거꾸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아버지는 운좋게도 친척 되시는 할머니가 두둔해주어 살아남았지만 아버지의 큰어머니를 비롯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일가족이 모두 죽임을 당했습니다. 홍세화 선생도 그때 죽을 뻔했습니다. ????나는빠리의택시운전사????에그 내용이 실려 있구요. 그 후 아버지는 그 마을에서 가해자들과 한평생 사셨습니다. 학살당한 사람들의 집과 살림살이는 풍비박산 났습니다. 그렇게 저는 어릴 적부터 6·25 이야기를 알음알음 알아 오면서 자랐고, 숙명처럼 민간인 학살의 수수께끼를 푸는 데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왜 우리는 이 마을에 정착하게 됐을까, 시골마을에 두레패가 왜 둘이나 있는지 의문을 품었지요. 난리가 끝나고 마을 한켠을 지키던 왜가리떼도 사라지고 맙니다.

 

문 : 그래서 이번에 설화산 민간인 학살 유해 발굴에 열심히 참여하셨군요?

답 : 네. 6·25전쟁기에 민간인 학살은 학살의 주체나 피해 유형이 다양합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하기 위해 만든 요시찰대상처럼 해방 후 이승만 정권은 좌익사상자들을 전향시켜 보호한다는 구실로 보도연맹을 만들고, 이들을 살해합니다. 그런데 저는 아산지역에서 보도연맹건으로 희생된 사례를 접하지 못했습니다. 아산의 경우 UN군이 들어오면서 북한군 지배가 끝나가는 2~3일 전후 치안 공백기에 우익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무차별 학살을 벌였고 이후 치안이 확보된 상황에서 경찰이 좌익 혐의자들을 검거하고, 이들을 대상으로 한 학살이 있었습니다. 이번에 발굴한 설화산 민간인 희생자 유골은 1951년 1월 평택까지 중공군이 내려오자 후퇴 직전의 경찰이 학살한 좌익 혐의자들의 유골인 거죠. 진실과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화위) 기록에는 아산지역 민간인 희생자를 800명 정도로 추산했지만, 일부에서는 피난민들의 희생이 컸던 점을 들어서 1,300명으로 추정하기도 합니다. 천안의 경우 당시 천안경찰서 김종대 서장이 희생을 줄이려고 노력했다는 미담이 전해지고 있는데. 아산에서는 그렇지 못했기에 엄청난 희생자가 나왔다는 점에서 참으로 안타까울 뿐입니다.

 

문 : 내년에 제2기 진화위가 출범할 것 같기도 한데요. 그러면 현재 직업을 잠시 접어두고 조사관 활동하면서 민간인 학살 진상을 조사하고 싶은 마음도 있으실 것 같습니다.

답 : 이번 설화산 유해 발굴 현장에 진화위 당시 아산지역 조사관으로 활동하신 경찰관이 휴가를 내고 조용히 찾아주었는데 본인도 당시 조사가 미흡했다고 말하더군요. 여하튼 2기 진화위에서는 1기와 달리 위원회뿐 아니라 아산시 등 지자체의 적극적인 협조가 예상되는 만큼 더 이상의 논란이 없도록 명확한 조사가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또한 이번에 당선된 아산시장이 후보 때 공약으로 내건 민간인 학살 실태 파악과 공청회 개최, 인권기념관 건립이 반드시 이뤄지길 고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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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 아산지회는 이밖에도 친일파 장우성이 그린 이순신 장군 표준영정 교체운동도 열심히 벌이고 계시지요?

답 : 우선 새로 출범한 아산시의회와 충남도의회 차원의 결의안이 채택되도록 노력하고 표준영정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계속하고 싶습니다. 다행히 표준영정 퇴출 서명운동에 함께 했던 아산지회 회원들 중에 각각 아산시의원(홍성표 회원)과 충남도의원(안장헌 회원)에 당선되어 아주 든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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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 끝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답 : 이문구의 「관촌수필」에는 바다에 마을사람을 수장시키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산 구성리에서도 마을사람들을 좌우로 길게 세워서 바닷가로 나가게 하고, 물이 차서 더 이상 못가겠다고 하자 총을 쏴 살해해서 그대로 수장된 일이 있었는데, 당시 현장을 목격한 희생되신 분의 딸이 노인이 되어 증언합니다. 엄마한테 동네 청년들이 남편이 어디 있냐고 묻자, 마당에서 놀던 어린 아이가 자기 아버지가 있는 곳을 가리킵니다. 그 길로 아버지는 불귀의 객이 됩니다.
현재 이 같은 증언을 할 분들은 찾기 어렵고, 생존해 계신 분들이라 하더라도 후손들에게 당시 상황을 여간해서는 얘기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 6·25전쟁 때 학살된 유가족이 아닌 사람이 거의 없고, 반대로 한 사람을 통하면 가해자와 연결되지 않을 사람도 별로 없을 겁니다.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하다며 어설프게 덮기보다는 민족사의 상혼을 드러내 근원부터 차근차근 치유하면서 서로에게 응어리진 아픔을 보듬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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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은평구에 거주하는 결혼7년차 평범함 주부입니다

 

결혼할때도 최대한 돈을 최대한 아껴야 한다는마음에 결혼전 쓰던 저의 대부분의 물건을

 

가져와서 신혼살림을 차렸을만큼 아끼고 아껴서 돈을 모아놓았고, 결혼후에, 저없이 혼자살게될 어머님도

곰팡이 나는 집에서 이사시켜드리고 싶어서 최선을 다해서 절약해서 돈을 모았습니다..

 

 IDS홀딩스에 투자한 돈은 결혼 전 밤낮을 일하며 어렵게 모은돈과 친청어머니에게 생활비의 도움을

드리고자 친정어머님집에 대출을 받아서 ids에 투자하여, 어머님께 용돈 및 대출 이자를 갚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20169ids사태가 벌어지고 어머님께 드리는 용돈은 물론이거니와 그 집을 담보로

 

대출받은 돈의 이자까지 너무 힘겹게 매달 갚아내고 있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들을 남편에게 말하지 못하고 속앓이를 해서 저는 건강도 많이 안좋아지고, 결국 몇 달몇 버티다

남편에게 이실직고후엔 부부사이는  많이 악화되었습니다.

 

 당시 모집책은 김성훈대표의 계좌동결만 풀리면 원금 회수를 할 수 있다하였고,

 

저는 그 말만 믿고 몇 달을 기다리다가 이렇게 시간이 지나버렸습니다

 

 모든것이 거짓임이 밝혀진 지금에도, 이들은 아직도 피해자들에게 ids가 변제를 해줄것이라며 합의서와

함께 지점장 처벌불원서를 받고 있으며 본인들도 피해자라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태를 늦게 파악한 저는 원금 손실이라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고, 결혼한지 7년이 되었지만 아이를 가질생각은

엄두도 못내고 있는 상황입니다..저는 그동안 돈을 아끼느라 제대로 써보지도 못한 돈 때문에  밤잠을 설쳤을 때

피해자들의 돈으로 수당을 받아 호의호식한 이들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저를 포함한 많은 피해자들이 대형 보험사의 FC나 재무설계사, 자산운용가를 통해 IDS홀딩스에 가입하였습니다.

이들 모집책은 금융전문가들로써 IDS홀딩스가 불법 유사수신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본인들의 이득을 위하여 원금 손실이 없는 월이자식 금융상품인양 안내하여 많은 피해자를 양산하였습니다.

이에 ids홀딩스를 신고합니다.

 

 

 

 

금, 2017/12/08-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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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8/01/24-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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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재은 기자]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동상 건립에 대해 국민 10명중 7명은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정희 대통령 기념재단은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있는 서울시 소유의 박정희 대통령 기념·도서관 부지에 ‘박정희 동상’ 건립을 추진하며 논란을 빚고 있다.

16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대표 이택수)가 tbs의뢰로 박 전 대통령의 동상건립에 대한 국민여론을 조사한 결과 ‘반대한다’(매우 반대 50.7%, 반대하는 편 15.8%)는 응답이 66.5%로, ‘찬성한다’(매우 찬성 16.3%, 찬성하는 편 13.8%)는 응답(30.1%)보다 2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잘 모름’은 3.4%.

지지정당별로는 정의당 지지층(찬성 1.7% vs 반대 94.5%)과 민주당 지지층(2.5% vs 93.8%)에서는 반대 응답이 90%를 넘어 압도적으로 높았다. 국민의당 지지층(40.6% vs 59.4%)과 바른정당 지지층(41.3% vs 48.7%)에서도 반대가 대다수이거나 우세한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자유한국당 지지층(찬성 91.3% vs 반대 7.4%)과 무당층(52.2% vs 43.9%)에서는 찬성 응답이 압도적으로 높거나 절반을 넘었다.

이념성향별로는 진보층(찬성 4.0% vs 반대 94.2%)과 중도층(33.1% vs 62.6%)에서는 반대가 압도적으로 높거나 대다수인 반면, 보수층(68.0% vs 28.7%)은 찬성이 대다수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별로는 대구·경북 등 영남권을 포함한 모든 지역에서 반대가 우세했는데, 광주·전라(찬성 13.2% vs 반대 81.4%), 경기·인천(21.9% vs 73.4%), 서울(26.4% vs 68.2%), 부산·경남·울산(37.5% vs 59.6%), 대전·충청·세종(42.5% vs 57.5%), 대구·경북(45.8% vs 54.2%) 순으로 반대가 높았다.

연령별로는 30대(찬성 11.1% vs 반대 86.3%)와 20대(14.7% vs 80.2%)에서는 반대 응답이 10명 중 8명 이상으로 압도적으로 높았고, 40대(21.4% vs 77.2%)와 50대(36.1% vs 60.5%)에서도 반대가 대다수로 조사됐다. 반면, 60대 이상(찬성 56.7% vs 반대 38.7%)은 찬성이 대다수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는 2017년 11월 15일(수)에 전국 19세 이상 성인 9069명에게 접촉해 최종 511명이 응답을 완료, 5.6%의 응답률을 나타냈다. 무선(10%) 전화면접 및 무선(70%)·유선(20%) 자동응답 혼용, 무선전화(80%)와 유선전화(20%) 병행 무작위생성 표집틀을 통한 임의 전화걸기 방법으로 실시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4.3%p이다.

김재은기자

<2017-11-17> 이데일리

☞기사원문: [리얼미터]박정희 동상건립 66.5% `반대`..한국당지지층 찬성 91.3%

※관련기사

☞뉴스1: 박정희 前대통령 동상 건립…찬성 30.1% vs 반대 66.5%

☞국제뉴스: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 건립 반대 67% vs 찬성 30%

☞아시아경제: 박정희 동상 건립…반대 67% 찬성 30%<리얼미터>

☞서울신문: 박정희 동상 건립 10명중 7명 “반대”

☞서울경제: ‘박정희 동상’ 건립, 국민 대다수가 ‘NO!’…압도적 반대

☞뷰스앤뉴스: [리얼미터] “박정희 동상 건립 반대” 66.5% vs “찬성” 30.1%

금, 2017/11/17-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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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최근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활란 전 이화여대 총장의 동상을 둘러싼 친일 비판이 있었는데요.

내년 3월에는 서울에 일제 식민지 시기를 다룬 박물관이 문을 열 예정입니다.

‘적폐청산’을 넘어 ‘친일청산’ 움직임이 확산할지 주목됩니다.

차병섭 기자입니다.

[기자]

<현장음> “친일파를 청산하자. 친일파를 청산하자.”

이번 주 서울 마포구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에서 열린 박 전 대통령 동상 기증 행사장에는 박 전 대통령을 친일파라 부르는 반대 목소리가 울려퍼졌고,

<현장음> “친일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김활란의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잡는 것부터 시작…”

이화여대에 있는 김활란 초대총장의 동상 앞에는 김 전 총장의 친일행적을 알리는 팻말이 세워졌습니다.

박 전 대통령 동상 반대집회를 주도하고, 김활란 친일팻말을 세운 학생들에게 자문을 해준 곳은 민족문제연구소였습니다.

이 단체는 내년 3월 서울 용산구의 5층건물에 일제시기 친일파의 행적을 다룬 박물관을 열 예정입니다.

<방학진 /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 “식민지시절 일제 친일파 행적에 대해 구체적이고 지속적으로 알릴 수 있는 교육공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식민지역사박물관 개관을 위해 모금운동을 하고 있고요. 내년 3월 개관 예정입니다.”

어두운 역사도 기억해 반면교사의 장으로 만들겠다는 의도로, 친일 역사를 공개적으로 알리는 국내 첫 박물관이라는 게 연구소 측 설명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추진해 친일청산 논쟁에 불을 당긴 바 있습니다.

적폐청산’을 진행하는 현 정부가 일제와 친일의 잔재가 제대로 청산되지 않았다고 인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박물관 개관이 새로운 논란의 불씨를 지필 수도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연합뉴스TV 차병섭입니다.

<2017-11-16> 연합뉴스TV

☞기사원문: 내년 3월 식민지역사박물관 개관..’친일청산’ 바람

화, 2017/11/21-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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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2일, 서울북부지방법원에서 박정희 합성사진 조작 관련 2심 판결이 있었다. “피고의 항소를 기각한다. 항소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주문 내용은 간결했고 연구소는 승소했다. 1심에 이어 2심까지 재판부는 연구소의 손을 들어주었다. 현재 문퇴본(문재인정권 퇴진촉구 애국의병혁명본부)의 집행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방모씨가 2014년 8월경부터 인터넷에 널린 유포된 박정희 합성사진을 연구소가 조작했다며 4년간에 걸쳐 다양한 방식으로 연구소를 음해해왔다.

 

이에 연구소는 2016년 3월 방모씨를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재판이 시작되자 방모씨는 소송대리인으로 서석구 변호사(박근혜 변호인)를 선임했다. 그들은 재판과정에서 연구소를 종북단체라고 부르며 “방모씨의 행동은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한 애국적 결단”이라는 억지 주장을 펼쳤다. 1심에서 패소한 그들은 2심에서도 여전히 색깔론을 펼쳤지만 2심 재판부는 1심의 판결을 유지하며 방모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이로써 방모씨는 500만원을 연구소에 배상해야 하는데 방모씨 측이 다시 대법원에 상고하여 앞으로의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청량리 사무실에 침입해 출입문과 현판에 붉은색 스프레이를 뿌리고 달아난 60대 김모씨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어린 반성의 뜻을 담은 사과문을 12월 20일 연구소로 보내왔다.

08작년 4월 새벽 1시쯤 연구소가 위치한 동대문구 사무실을 찾아온 김모씨는 연구소 현판에 붉은색 스프레이를 뿌리고 출입문에 엑스(X)자 모양의 낙서를 한 후 도주했다. 스프레이 테러 장면이 고스란히 찍힌 CCTV를 토대로 수사에 들어간 동대문경찰서는 11월에 김모씨를 붙잡아 재물손괴 혐의로 불구속 입건하고 기소 의견을 달아 검찰에 송치했다. 서울북부지방검찰청에서 열린 형사조정에 참석한 김모씨는 모든 것이 가짜뉴스로 인한 오해에서 비롯되었으며 진심으로 반성한다고 말하면서 수차례 고개 숙여 사과했다. 연구소도 김모씨가 진심으로 뉘우치고 재발방지를 약속한 만큼 사과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래의 사과문은 김모씨가 형사조정의 결정에 따라 작성하여 연구소로 보내온 것이다.

 

사 과 문

상기 본인은 사건 당일 집회를 마치고 저녁식사 겸 회식자리에서 탄핵 반대 등 시국에 관해 토론을 나누는 중 잘못된 교육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는 분위기로 흘러 전교조와 민족문제연구소 등이 문제라는 잘못된 소신과 판단으로 만취상태에서 민족문제연구소를 찾아가 붉은색 스프레이로 낙서를 하는 황당한 행동을 저질렀습니다.이 문제로 인해 민족문제연구소 측에 물심양면으로 피해를 끼친데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리며 차후 두 번 다시 이런 사태를 재발하는 우를 범하지 않을 것을 약속드립니다. 죄송합니다.

2017. 12. 20

• 임선화 기록정보팀장

목, 2018/01/25-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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