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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을 통한 해방과 살림, 노들장애인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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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을 통한 해방과 살림, 노들장애인야학

익명 (미확인) | 화, 2018/07/31- 12:29

서울시 종로구 동숭동, 마로니에 공원 끝자락에 자리한 건물 4층에서 작은 잔치가 열렸다. 50여 명 남짓한 사람이 자그마한 교실에 모여 한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왁자지껄 떠드는 모습.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 다소 이색적으로 느껴졌던 것은 함께한 이들의 면면 때문이었다. 언뜻 셈해도 스무 명 가까이 될 법한 중증장애인이 저마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있었고, 그들과 함께 온 활동보조인과 학부모, 그리고 선생님들이 어우러져 너나들이하고 있었다. 노들장애인야학(이하 ‘노들야학’)의 방학식 날이었다.

“(보통 장애인들은) 집이나 시설에 격리되어 있죠. 자립한 분 중 일부가 어울려 공부하고, 놀기도 하려고 야학에 나왔고요.” 평소 접하기 어려운 이들을 보며 표정이 굳었던 것일까. 노들야학의 사무국장으로 일하는 한명희 님이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스스로 몸을 가누기 쉽지 않은 중증장애인 대부분이 어렸을 때부터 집이나 수용시설에 격리된 채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도 오늘 같을’ 생활을 반복하며 평생을 보낸다. 탈시설 논쟁이 본격화된 2000년대 중반 이후 자기 삶의 결정권을 확보하기 위해 시설을 나와 지역사회와 어울려 살아가는 장애인이 많은데, 노들야학 학생 대부분이 탈시설과 자립을 선택한 이들이다. “시설 밖으로 나오면 일반인과 부대낄 걱정, 먹고 살 걱정 등이 생기죠. 하지만 자기 스스로 고민하고, 무언가를 실제로 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만족도가 높아요.”

교육이 곧 생존권입니다
이동권, 노동권 등 인간의 존엄성을 위한 기본적인 권리조차 무엇 하나 풍성하게 주어지지 않았던 장애인들에게 교육권은 가장 누리기 힘든 기본권에 속한다. 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는 열 명 중 세 명이 다닐 정도밖에 없고, 일반학교에서는 장애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교사의 방치와 동급생의 차별 등으로 버티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마저도 성인 장애인은 입학조차 꿈꾸기 어렵다. “특수학교를 나오더라도 구구단조차 외우지 못하는 분이 많아요. 제대로 앉아 있지도 못하는데 수업을 어떻게 따라가겠어요.”
노들야학은 장애인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주체적인 자립을 돕기 위해 1993년 개교했다. 야학의 학(學)자는 학교를 뜻하지만, 보통 학교와는 교육과정이 많이 다르다. 국어, 영어, 수학 등 교과목이 있지만 학생마다 배움의 편차가 크기에 학년제로 수업을 진행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공동체로 함께 연대하며 살아가는 법을 주로 배우고, 이따금 다른 장애인들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현장학습에 함께한다. 노란들판을 의미하는 이름처럼 교육을 통해 장애인들의 삶이라는 땅에서 권리라는 이름의 결실을 맺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한살림 쌀로 함께합니다
한살림도 작지만 노들야학에 힘을 보태고 있다. 노들야학에서는 학생을 대상으로 무상급식을 한다. “개교 초기에는 먹고 오라고 했어요. 하지만 매일 컵라면과 콜라만 드시는 분도 있고 아예 먹지 않고 괜찮다고 하는 분도 많았죠. 다들 제대로 드시지 못하니 ‘식사하셨어요?’라는 인사말도 건네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런 불편함이 쌓여 가다 야학에서 직접 해 먹기 시작했죠.”
노들야학은 학생들로부터 따로 교육비를 받지 않는다. 서울시 교육청과 종로구에서 받는 지원금은 상근 근로자 인건비와 건물 임대료로 이용된다. 무상급식을 위해서는 개인·단체후원에 기댈 수밖에 없다. 한살림수도권실무자협의회 연합지회와 한살림 생산지인 홍천연합회 뫼내뜰영농조합은 2016년부터 각각 30kg씩, 총 60kg의 한살림 쌀을 매달 노들야학에 보내고 있다. 노들야학에서 매달 쓰이는 200kg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개인·단체후원으로서는 적지 않는 양이다. “좋은 쌀을 꾸준히 지원해주시니 감사하죠. 다들 맛있게 먹고 있습니다.” 한살림의 지원에 노들야학도 마음을 보였다.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까페인 ‘들다방’에서는 한살림 유자차와 모과차 등을 만날 수 있다.



‘ 만약 당신이 나를 도우러 여기에 오셨다면 당신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여기에 온 이유가 당신의 해방이 나의 해방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라면, 그렇다면 함께 일해 봅시다.’

멕시코 사파티스타 농민투쟁에 참여한 치아파스 원주민 여성의 이 외침은, 노들야학이 외부인에게 자신을 설명할 때 자주 언급되는 문장이다. 문득, 여기서의 ‘해방’을 한살림의 핵심 가치인 ‘살림’으로 대체해도 큰 무리 없이 읽힌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다면 밥상과 농업, 생명의 해방을 지난 30년간 이야기해온 한살림은 오랫동안 편견과 차별, 격리와 소외를 경험했던 노들야학 식구들의 살림에 어떻게 긴밀하게 동참할 수 있을까.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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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호(637호) 소식지 내용입니다

 

비대면 시대에도

따로 또 함께

30일 한살림 온라인 모임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장기화됨에 따라 새로운 방식으로 조합원들을 만나보고자 9월 한 달 동안 한살림 온라인 모임을 진행했습니다. 같은 주제를 가지고 모인 사람들이 밴드나 카톡을 통해 매일 인증샷을 올리며 생각과 마음을 나눴습니다. 전국 58개의 온라인 모임에서 1,023명이 나눈 이야기 중 일부를 소개합니다.

 

30일 채식 모임

비록 온라인이지만 같은 지향을 가지고 한 공간에서 일상을 꾸려가는 기분이 은근 달달했어요. 코로나와 긴 비내림으로 답답하고 습하지만 나와 동물, 자연에 도움이 되는 실천적인 밴드를 통해 얻는 행복이 우울함을 떨치는 데는 도움이 됐어요.

– 김희정님

 

감사일기 쓰기 모임

퇴근길에 청포도를 샀는데 포도 상자에 생산자님 편지가 있었어요. 편지를 읽으며 정성과 수고하심에 가슴 뭉클, 감사히 잘 먹었습니다.

– 황미영님

 

녹색평론 읽기 모임

장병윤님 글 <기후위기 시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중 함께 읽고 싶은 문장을 공유하고 싶네요.

“절약은 스스로를 위한 일이기도 했지만 이웃, 공동체를 위한 이타적 행위였다.”

– 봄꽃의 노래님

 

신영복 <담론> 읽기 모임

책을 구입해서 반 년간 곱게 책장에만 꽃혀 있었어요. 이번 기회에 함께 읽으니 행복했습니다. 함께한다는 힘은 정말 강력하네요.

– 강주희님

 

1만 원으로 한 끼 뚝딱 차림 모임

느타리버섯을 넣은 청경채된장국과 유정란으로 만든 계란말이, 엄마표 오징어젓갈, 아이들이 좋아하는 명엽채볶음, 껍질을 까기 귀찮지만 둘째 공주님이 좋아하는 메추리알장조림으로 차린 아침밥상입니다.

– 송유진님

 

아파트 계단오르기 모임

– 정수아님

 

하늘 보기 모임

– 이현주님

 

하루 10분 걷기 모임

– 서미영님

 

하루 10분 걷기 모임

– 강혜진님

 

 

 

월, 2020/10/0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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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희망제작소입니다.

<2019 온갖문제연구-궁금한 김에 연구> 면접 대상자를 발표합니다.

다양한 연구 주제와 배경을 가진 많은 시민 여러분이 지원해주셔서 면접 대상자 선정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짧은 서류 접수 기간에도 총 68팀(개인/팀)이 지원해주셨고, 총 10팀(개인/팀)을 선정했습니다.

더 많은 분들과 함께 하지 못하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다시 한 번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우리 곁 일상 속에 묻어있는 사회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하는 시민 여러분의 도전을 응원하겠습니다.

면접 대상자 명단

시민연구자(팀명 or 대표자명)  전화번호 뒷자리 
woman do IT팀 2007
이유 9723
만점 8899
김O은 8714
책과 지역문화콘텐츠 0665
김O애 7726
임O지 2228
양O광 2027
원O이 6579
변O리 4460

※ 면접 대상자가 면접을 포기할 경우 차순위 예비 면접자에게 연락 드립니다.

면접 안내

일시 : 2019년 10월 22일 (화)
장소 : 희망제작소 2층 누구나학교 (오시는 길)
※ 면접 대상자 분들에게 세부 시간, 면접 방식, 심사 기준 등을 개별 안내드립니다.

최종 시민연구자 발표 : 2019년 10월 23일 (수) 오후 중으로 홈페이지 게재 및 개별 연락

문의

희망제작소 정책기획실 [email protected] | 02-6395-1435/02-6395-1429

목, 2019/10/17-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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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살림연구소] 2기 지방의원 재정전문가 과정〚합동연수〛

 

○ 개 요
   ▫ 일자 : 2020년 5월 26일(화) ~ 5월 27일(수) 1박 2일
   ▫ 내용 : 지방재정, 행정사무감사, 조례 제⋅개정, 예‧결산 심의기법, 재정진단
   ▫ 시간 : 총 8시간 강의 

○ 비 용 : 1인당 40만원
○ 혜 택 : 정창수 저서 『실전! 지방예산결산』 제공
○ 장 소 : 연구소 교육장 (마포구 동교로 209 용평빌딩, 4층)
○ 접 수 : ~5월 22일까지 선착순 20명까지, 메일 접수 ([email protected]) 이름, 연락처, 소속 등 기재

○ 참가신청 : www.forms.gle/AkraXTNttucjgHvu8

○ 문 의 : 02-336-0619 

 3~5기 접수는 추후 공지 예정이며, 사전 접수는 연구소로 문의 바랍니다.

 신청자가 10인 미만일 경우 폐강될 수 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 프로그램 안내

 

○ 강사진 안내

수, 2020/05/13- 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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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코로나19 이후를 이야기하다’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을 대응하고 있는 지방정부의 소식을 비롯해 전문가와 현장 활동가의 이야기를 시리즈로 전하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해 피해가 컸던 대구 지역에서 주거취약계층인 쪽방 거주민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사단법인 자원봉사능력개발원의 오현주 간사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인터뷰는 지난 5월 13일 화상회의를 통해 진행됐습니다.

▲ 쪽방촌 방역을 위해 나서는 오현주 간사의 모습.(사진 오른쪽) ⓒ오현주

집단감염 발발 당시, 불안이 가중되는 나날

Q. 코로나19로 인해 시민의 일상이 많이 변했습니다. 간사 님은 어떤 변화를 겪고 있나요.
평소 사무실을 버스로 출퇴근했는데요. 대구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늘면서 불특정 다수가 타는 버스를 타지 못하겠더라고요. 남편은 평소 아이를 유치원에 등원시키고 출근하는데, 유치원도 휴교령이 내리자 시댁에 아이를 맡기고 출퇴근 카풀을 시작했어요. 저뿐만 아니라 대구시민들 모두 일상이 뒤흔들리는 경험을 했을 거예요. 워킹맘인 저는 두 달여간 어머니께 돌봄을 부탁 드릴 수밖에 없었고, 관절 질환이 있는 시어머니는 병원 치료가 어려우셨을 거예요.

Q. 코로나19 초기 신천지 대구교회 집단감염 발발 당시 지역사회 분위기는 어땠나요.
신천지교회가 코로나19 확산지로 밝혀지면서 현장도 바빠졌어요. 저희끼리 얘기로 대구 사람들은 세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이라고 할 정도인데, 대규모 확진자들이 발생했으니 불안했죠. 비슷한 시기에 대구에서 2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청도 대남병원에서도 확진자들이 발생했고요. 무엇보다 이때 특정 종교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로 인해 서로서로 불신과 불안이 계속되는 나날을 보냈던 거 같아요.

Q. 사회복지사로서 업무나 역할에도 변화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원래 쪽방생활인에 관한 연구조사나 상담, 행정지원, 후원물품 관리 관련 일을 해왔어요. 사무실에서는 팀장으로서 쪽방 생활하는 어르신 대상으로 하는 자조모임(공통적인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경험을 나누는 모임) 사업 진행을 맡았는데 코로나19 이후로는 사무실과 모임 모두 폐쇄됐죠.


▲ 후원물품 배분 및 포장 작업을 벌이는 모습 ⓒ오현주

Q.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신다면요.
의료동행을 했던 쪽방생활인이 다니는 대구의료원이 코로나 거점병원으로 지정되자 의료동행을 하지 못하게 됐고, 저희 진료소와 중구 사무실도 폐쇄됐어요. 직원들도 사무실에서 전화상담을 하거나 찾아오는 주민에게는 건물 밖에서 응대할 수밖에 없었죠. 당장 시중에서 KF 마스크와 체온계를 구할 수도 없었고, 재고로 갖고 있던 마스크와 덴탈마스크로 코로나 키트를 만들어 보냈어요. 상황 결정이나 판단이 빨리 이뤄져서 저희 사회복지사들은 모두 눈코뜰 새 없이 바쁘게 두 달을 보냈어요. 한 명도 재택근무를 하지 않았고 오히려 돌아가면서 돌봄 휴가를 쓰거나 특별휴가를 쓰면서 버티고 버텼어요.

Q. 코로나19 확진자가 빠른 속도로 늘어났지만, 그만큼 대구 지역을 향한 관심도 높았습니다.
기존엔 폭염이나 혹한처럼 특정 시기가 아닐 경우 물품 후원 위주가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코로나19 이후 대전, 영주, 제주도, 서울 등 각지에서 대구로 보낸 후원물품이 폭풍처럼 밀려들었어요. 그중에서 주거 취약계층 지원을 하는 저희 상담소에도 하루가 다르게 많은 물량이 들어왔어요. 임시로 물류팀을 꾸릴 정도로요. 이 물품을 대구 전지역 쪽방 생활인에게 골고루 배분하려면 각 후원물품의 개수와 품목을 고려해 세트를 다시 만들어야 해서 마치 물류창고에서 일하듯이 매일 박스를 만들고, 물품 배분해 넣고, 포장하는 걸 반복하는 나날을 보냈습니다.


▲ 쪽방주거민에게 배분하는 후원물품이 한가득 쌓여있는 모습. ⓒ오현주

연구조사 및 상담 업무에서 쪽방촌 긴급 물품 지원으로

Q. 현재 대구시 쪽방 거주민의 분포는 어떻게 되나요.
쪽방은 주택은 아니지만, 주택 이하 수준의 거처 형태로 비주택거주지입니다. 현재 대구 지역에는 약 1,200개 쪽방이 있습니다. 동대구역이나 시외버스터미널, 시내 중심가 쪽에 쪽방촌이 밀집돼 있고, 거주민은 재개발로 인해 강제퇴거를 당했거나 여러 사정으로 인해 쪽방에 살고 계십니다. 지난 4월 말 기준으로 쪽방 거주민은 765명으로 나타났는데 이 중 남성 90%, 여성 1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연령대는 50~60대이고, 절반 정도의 거주민이 국민기초생활수급을 받고 있고요.

Q. 코로나19 이후 쪽방촌에는 어떤 지원이 이뤄졌나요.
보건소에 쪽방촌 방역이 취약한데 해줄 수 있냐고 알아보니까 당장 확진 검사에도 인력이 부족해서 쪽방촌까지 신경쓰기 어렵다면서 확진자가 나오면 방역해주겠다는 답변을 듣고는 저희 기관에서 방역전문가를 데려와 직접 아저씨들과 방역복을 입고 쪽방촌을 누비며 소독을 했어요. 더불어 주1회 생계물품지원, 주3회 방역, 격주마다 도시락 및 밑반찬 지원이 계속 이뤄졌어요. 비대면 물품 지원을 위해 쪽방촌 건물 앞에 물품을 두고서 똑똑 노크하고서 바로 자리를 옮겼죠.

Q. 각지 지역사회의 물품 지원도 많았죠.
기존에는 폭염과 동절기 두 차례 후원물품을 요청했는데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새로운 후원처들이 연락을 많이 주셨어요. 연예인부터 지역 마을기업이나 시민단체, 협동조합, 4·16연대, 주한모로코대사관 등 다양했죠. 대개 2~4월은 상담소 보릿고개였거든요. 평소라면 겨우내 후원 물품도 다 떨어지고 비누 하나 칫솔 하나 밖에 드릴 수 있는 게 없었을 텐데, 코로나19에 따른 후원 물품이 계속 들어왔어요. 현재까지 쌀이나 라면 6만개, 쌀 6천kg, 마스크 2만 개, 손소독제 8천 개 등을 비롯해 김치, 영양제, 빵, 도시락, 노니 등 다양한 물품의 배분이 이번 주면 끝날 것 같습니다. 물품 지원뿐 아니라 코로나19사태를 계기로 대구시민센터를 통한 후원, 독립영화협회, 사회적경제지원센터 등 전국각지 NGO단체를 알게 되었습니다.

Q. 후원 물품이 몰리면서 현장에서 체감한 지점이 있다면요.
후원 물품이 천 마스크처럼 한 종류로 쏠릴 땐 타 기관이나 지역의 작은 도서관에 나눔을 했어요. 즉석조리밥을 물품으로 많이 보내주셨는데, 쪽방의 특성상 대개 전자레인지가 없어서 먹기가 어렵거든요. 그래서 대구에 온 공중 보건의에게 컵밥과 컵라면 등을 나눴어요. 또 발달장애인분들이랑 같이 물품을 포장하면서 ‘사람들이 이렇게 연결되어 있구나’라고 많이 느꼈습니다. 혼자 사는 사회가 아니라 ‘우리가 누군가를 돌보면 남도 우리를 돌본다’라는 문구를 체감했어요. 몸으로 체감하는 부분은 육체노동의 고단함이었지만요.

코로나19, 사회적 돌봄의 민낯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어

Q. 쪽방촌 거주민들은 코로나19 관련한 정보를 얻기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대부분 2G폰을 쓰시고, 데이터도 거의 쓰지 않으시거든요. 주변 지인으로부터 ‘카터라’ 소식을 접하거나 텔레비전을 통해 얻는 정보가 전부죠. 어떤 정보를 들어도 어렵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재난 긴급생계자금이 발표됐을 때, ‘중위소득 몇 퍼센트’라는 기준도 복잡했잖아요. 비수급자 쪽방촌 거주민인데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건지, 온누리상품권을 받는다면 어디에서 쓸 수 있는 건지 등을 묻는 분들이 많았는데 물품 지원할 때 여러 차례 안내하고 설명하는 과정을 거쳤어요.

Q. 쪽방상담소 활동으로 취약계층 사각지대 모니터링을 꾸준히 해오셨는데, 이번 코로나19로 인해 발견한 점이 있나요.
노숙인이나 쪽방촌에 관한 혐오감이 높다는 걸 다시 체감했어요. 대구에 쪽방 거주하는 분들은 정말 뉴스를 잘 듣고 외출을 자제했거든요. 쪽방 거주민 250여 명을 대상으로 코로나19와 긴급재난 관련해 전수조사했을 때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쪽으로 나타났습니다.(코로나19 빈곤층 생존권 보장 마련을 위한 토론회 자료집▶내려받기)

그런데 서울에서 노숙인일시보호시설에서 노숙인 입소를 거부하는 사태가 있었잖아요? 실제 시민으로서 지켜야 할 수칙은 더더욱 잘 지키는 모습을 봤는데 오히려 이런 기사가 노숙인에 대한 편견과 혐오를 조장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Q. 코로나19 사태가 현재 진행형이지만, 무엇을 남긴 것 같나요.
코로나19는 사회적 돌봄의 현실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 같아요. 쪽방 거주민이 감염됐다가 퇴원했을 땐 자가격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쪽방에서 지내는 게 정말 자가격리인지 등 돌봄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문제를 비롯해 사회 곳곳에서는 택배노동자의 사망과 같은 비정규직 문제들이 터져 나왔잖아요. 큰일이 생기면 약자가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다는 걸 다시금 보게 됐어요.

Q. 그럼에도 여전히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활동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맞아요. 사회복지사보다 현장에서 드러나지 않으신 분들은 당사자(쪽방 거주민) 조합원분들의 힘이 컸어요. 열심히 물품을 포장해 놓으면 배달이랑 방역은 조합원분들이 도맡아 하셨거든요. 비대면으로 진행되었다고 해도 정말 힘든 하루하루였을 거예요. 어려운 상황은 인생에서 반드시 나쁘게만 작용하지 않잖아요. 가족들이랑 오랜만에 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사람들도 있고, 집에서 할 수 있는 놀이를 개발하기도 했잖아요. 활동가 분들도 세상이 암울하니까 자기 비하가 생길법한데, 코로나19로 인해 작은 변화도 생긴다는 걸 발견하는 것 같아요. 세상의 변화를 기대하며 오늘을 잘 살아내는 것이 지금 저희의 몫이 아닐까 싶습니다.

– 인터뷰 진행: 안영삼 미디어센터 센터장 [email protected]
– 인터뷰 정리: 방연주 미디어센터 연구원 [email protected]
– 사진: 오현주 간사

화, 2020/05/19-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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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제작소는 기획연재 ‘코로나19 이후를 이야기하다’ 시리즈와 함께 시민의 목소리를 담은 에세이 공모전 ‘코로나 19,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이 공동체, 일상, 회복, 희망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편지, 칼럼, 수기 등 자유로운 형태로 일상을 전합니다.  에세이 공모전은 5월 31일까지 상시 진행 중이니 많은 참여 부탁 드립니다. (▶에세이 공모전 참여하기) 네 번째 시민 에세이는 김진배 님의 에세이입니다.

추운 겨울을 보내고 따뜻한 봄날을 기대했던 우리에게 이번 계절은 유독 가혹하다. 취업을 준비하는 친구는 면접 연기 소식에 절망했고 다른 친구는 버스운전대를 놓아야만 했다. 소망했던 봄이 왔음에도 가슴은 시리고 손은 여전히 건조하다.

만남과 애정표현은 사회의 분위기를 거스르는 손가락질의 대상이 되었고 외롭던 사람들은 더욱더 외롭게 되었다. 차갑고 건조한 손을 누군가의 온기로 바꿔보려는 시도조차 불가능한 계절이다. 스스로 이겨내야 하는 삶은 고립을 유도하고 불안감을 강화한다.

따뜻한 빛과 사람들의 옷차림은 봄을 표현하려 애쓰지만, 눈으로 마주한 장면이 마음에 잘 전달되지 않는다. 꽃은 피고 지고 분명한 봄인데도 말이다. 위안거리를 찾아 노래를 듣기도 하고 혼자 뛰어보기도 했지만, 사랑으로 아픈 것이 아니기에 노래는 큰 효용이 없었고 바람은 걱정거리를 날리지 못했다. 내 마음은 그렇게 정지된 채로 서 있었다.


마음은 굳었지만, 일상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일하고 가끔 장을 보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안부 전화를 했다. 메시지로 대신하던 인사를 목소리로 하게 된 것은 이 시절이 바꾼 행복한 변화였다.

뉴스는 불안과 공포에서 나쁘지 않다는 것들로 바뀌었다. 확진자 수는 줄었고 정부의 지침도 조금 바뀌게 되었다. 우리가 잘 이겨내고 있다는 뜻이다. 미소를 조금 잃었고 친구들을 위로해 줘야 하는 일이 늘었지만 하루는 계속되고 있다.

면접을 기다렸던 친구는 다른 회사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운전대를 놓은 친구는 더 이상 일을 지속할 수 없게 되었지만 새로운 도전을 위한 공부를 시작했다. 계획과는 다른 삶이 되었지만 실패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내일을 바꾸려 노력했고 인내했다.

봄에 누릴 수 있는 몇 개의 행복이 사라지긴 했지만 디지털 언어 대신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 시간이 늘어 행복했다. 위기에서는 도전이라는 꽃이 피었다. 버스운전을 하던 친구처럼 10년째 같은 일을 반복하던 내 삶에도 그 꽃이 피었다.

눈을 감으면 우리가 포기했던 봄의 꽃놀이가 눈 앞에 펼쳐진다. 감을수록 선명해지는 꽃은 우리가 잃은 봄과는 교환할 수 없는 것이다. 내일을 살아가게 하고 기대하게 하는 것 우리는 새로운 봄을 얻었다.

– 김진배 님

목, 2020/05/21-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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