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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추중의 말장난을 꾸짖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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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추중의 말장난을 꾸짖다

익명 (미확인) | 금, 2018/07/13- 07:42

叱假僧語戱

 

無悲無喜境(무비무희경)

死後始完成(사후시완성)

未免當然事(미면당연사)

欺人罪不輕(기인죄불경)

 

땡추중의 말장난을 꾸짖다

 

슬픔도 없으며 기쁨도 없는 경지

死後에야 비로서 다 이뤄지는 바

아직 면치 못함 마땅한 일이거늘

사람을 속이니 죄가 가볍지 않다.

 

<時調로 改譯>

 

無悲無喜의 경지 死後에 이뤄지는 바

아직 면하지 못함이 마땅한 일이거늘

사람을 속이는 죄가 가볍지 아니하다.

 

*假僧: 가짜 승려. 땡추. 땡추중 *語戱: 말을 재미 삼아 하는 일 *未免: 아직 면치

못함 *當然: 일의 앞뒤 사정을 놓고 볼 때 마땅히 그러함 *不輕: 가볍지 아니함.

 

<2018.7.13, 이우식 지음>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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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장학금 조례 폐지운동’ 착수


▲ 박근혜퇴진 광주시민운동본부 회원들이 19일 오후 광주 서구 치평동 시청 앞에서 새마을회관 건립 추진 폐기를 촉구하면서 청사 앞 게양된 새마을기를 철거하고 있다. 2017.1.19/뉴스1

광주지역 시민단체가 광주시와 광주 지역 5개 자치구를 상대로 ‘새마을장학금 지원 조례 폐기’를 촉구하고 나선다.

또, 새마을회에 매년 관행적으로 수억원씩 지원되는 ‘혈세 특혜’도 철회할 것을 촉구 할 예정이다.

26일 근로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광주전남지부 등 9개 시민단체는 “새마을장학금은 매년 막대한 시민혈세를 단지 새마을지도자 자녀들이라는 이유로 특정 단체에 지급되고 있다”고 말했다.

광주시와 5개 자치구, 전남도 22개 시·군은 매년 30억원 이상의 예산을 1986년 제정된 ‘광주시 새마을장학금 지급 조례’에 근거해 지역새마을회에 지급해 오고 있다.

새마을회 측은 이 중 70% 가량을 회원 자녀 장학금, 조직 운영비, 자체 행사비로 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시민단체는 “광주시와 5개 자치구, 전남도 22개 시·군이 새마을회에 운영비와 사업비를 지원하는 것도 모자라 매년 장학금까지 지급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라며 “‘새마을 특혜 장학금 시민회의’를 구성해 대표적인 특권 반칙 조례인 새마을장학금 조례 폐지 운동에 나서기로 했다”고 밝혔다.

‘새마을 특혜 장학금 시민회의’는 오는 27일 오후 2시 광주시의회 브리핑룸에서 지난 2014~2017년까지 4년간 지급된 새마을장학금 내역과 지급 실태를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다.


nam@

<2018-02-26> 뉴스1

☞기사원문: 광주시민단체 “새마을장학금 지급 납득하기 어려워” 

화, 2018/02/27-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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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연구소 홈페이지 자유게시판 기능에 문제가 생겨 글쓰기 버튼이 사라진 상태입니다. 조속히 원상 회복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연구소에 적대적인 일부 인사가 일시적인 기술적 사고를 왜곡하여 연구소를 비방하는 데 악용하고 있습니다. 회원 여러분께서는 이에 현혹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무국.

금, 2018/04/20-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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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보기] * 각 목차를 클릭하시면 해당페이지로 이동합니다.

201706-1

수, 2017/08/02-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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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회원) 알고 있었던 민문연》

( 임소장은 응답하라)

내가(회원) 낸 회비는 모두 민문연으로 내었고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기금도 민문연으로 내었으며그 돈으로 친일인명사전도 발간했고 식민지역사박물관도 세우고 빌딩도 우리가(민문연)이 매입 한 줄 알았으며 총회에서 임소장이 23억 빚을 회원들이 갚아 달라고 말한 것에도 이의 없이 들었다 그래서 민족문제연구소가 모든 것을 다 잘해 이렇게 컸구나 뿌듯했다그런데 지금 제기되고 았는 내용을 보면 (사실이라면) 우리가 알고 있었던 것은 거의 허상이었다

민문연(사단법인) 하나인 줄 알았는데 관계도 애매한 단체가 몇개나 되고 역사관 기금도, 빌딩구입도 민문연과는 별개요 권리도 전무하다 우리가 낸 회비는 민문연 인건비 경비 등으로도 빠듯하여 통일시대민족문화재단에 돈을 보태주고 자시고 할 능력도 없다 만일 민문연 돈이 그 재단법인에 넘어 갔다면 큰 회계적 범법이다 식민지박물관도 기금을 기부한 것이라 면 회원(민문연)과는 별개다(조승현 교수)

여기서 생기는 의문

1.구입한 빌딩은 우리 것도 아니고 우리 돈으로 산 것도 아니라는데(권리등기에는 민문연 이름 없음) 왜 소장은 총회에서 빌딩구입시 빚 낸 23억원을 우리 회원이 갚아주셔야 한다고 했을까 (조승현교수 말이 맞다면 소장은 당연히 옳지 않다)

2.우리와 전혀 별개라는 통일시대민족문화재단의 통합 경과보고와 사업계획을 왜 민문연 총회보고서에 버젓이 올려 놓았나(p46, p67)(이것 역시 조교수 말이 옳다면 소장은 월권행위요 회원을 기만한 처사 아닌가 )

3. 총회보고서에 있는 정관은 사단법인법 정관에 배치되는 내용이 많다면서 왜 지금까지 그 잘못된 정관을 민문연의 당연 정관으로 인식하도록 그대로 올려 놓아 회원들이 오해하도록 했는가?이 정도애서만 보아도 둘 중 하나는 분명히 틀렸다

 ●이제 임소장은 응답하라

(어느 것이 옳은지 회원들이 충분히 이해 할 수 있도록)

 

2018년 6월 22일

이기자(동부지부)(통일염원시민회의 대표)

 

금, 2018/06/22-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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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소장을 지낸 한상범 교수님이 지난 10월 15일 81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교수님은 2001년 2월부터 2003년 9월까지 연구소 2대 소장을 지내셨으며 2002년 4월부터 2004년 12월까지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을 끝으로 공식적인 대외활동은 거의 못하셨다. 그 이유는 갑자기 찾아온 병마 때문이었다.
선과 악의 문제에 있어서는 조금의 주저함이 없으셨고 다양한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는 명쾌하게 본질을 꿰뚫어 설명하셨던 교수님, 실천하지 않고 현학적인 수사만 늘어놓는 지식 장사꾼들을 날카롭게 비판하시던 교수님을 더 이상 뵙지 못함이 안타깝다. 연구소 소장님으로 2년 남짓 모셨던 인연으로 몇 가지 교수님과의 일화를 소개하는 것으로나마 고인의 명복을 빌고자 한다.
1991년 창립부터 10년 동안 봉사해온 김봉우 초대 소장이 피치 못할 사정으로 갑자기 소장 직을 그만둔 후 후임 소장 물색은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니었다. 그때 조문기 이사장님께서 신의 한 수처럼 모셔 온 분이 바로 한상범 동국대 법대 교수님이었다. 연구소로서는 천군만마요 야구로 치면 믿을만한 구원투수의 등판이었다. 왜냐하면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법학계에서 한교수님만큼 친일청산의 중요성을 역설한 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1991년 <한국법학계를지배한일본법학의유산>을 발표해 법학계의 일제잔재청산을 공개적으로 문제화한 것을 시작으로 <한국의 법문화와 일본제국주의의 잔재><일제잔재 무엇이 문제인가>등 제목만보면연구소가 펴낸책 이라고해도 믿을정도로 한교수님은 친일청산문제에 남다른 관심과 대안을 가지고 있는 분이었다. 게다가 <박정희, 역사법정에세우다><전두환체제의 나팔수들>에서 볼수 있듯이 독재와 불의에 대해서는 타협을 모르는 강직한 분이었다. 그야말로 준비된 구원투수의 등장이 아닐 수 없었다.

연구소 소장 재임 시절 술을 전혀 안 하시는 이유를 여쭤보니 1980년대 초 평생 마실 술을 다 드셨다고 한다. 이유인즉 신군부 시절 불법으로 연행당해 며칠 동안 고초를 겪고 난 뒤 울화가 치밀어 매일 밤 독주가 없으면 잠을 잘 수 없었다고 한다. 법을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에게 무법이 횡행하는 시절을 살아내기란 너무나도 힘든 일이었을 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복기, 김기춘, 우병우 등 시대를 막론하고 늘 ‘법꾸라지’들이 난무했기에 교수님은 ????화있을진저 너희들 법률가여????라는책을펴내서법기술자들을질타했다.
또한 법 문구를 어렵게 만들고 난해하게 표현하여 특권층의 도구로 삼아선 안 된다며 <한글헌법 노트><한자숭배 나라망친다>는책을 펴내기도했다.법학자로서보기 드문 한글 사랑으로 한교수님은 ‘외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번은 재일교포 단체 초청으로 일본을 함께 방문한 적이 있었다. 독재시절 민주화운동을 했던 재일교포들과 양심적인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한교수님은 원고 없이 유창한 일본어로 잠시 강연하시더니 곧바로 “나는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자격으로 왔으므로 이제부터 한국말로 연설하겠으니 이해해 달라”고 하신다. 실용에 앞서 자존을 중시하는 태도였다.
민족적 자존 나아가 인간의 존엄은 개성 출신으로서 6·25의 참화를 처절하게 겪어낸 한교수님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가치였다. 따라서 인간 존엄을 해치는 체제에 대한 본능적 저항은 한교수님에게는 당연한 귀결이었는지도 모른다.
한교수님은 멀리 지방 출장길은 물론이거니와 가까운 외출 때도 늘 작은 책을 가지고 다닌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시집일 때가 많다. 한번은 나에게 “시인 중에 누굴 좋아하시나?”라고 물으시며 “사회운동하는 사람들은 시와 문학작품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하셨다. 사회적 모순과 싸운답시고 자칫 거칠고 메마를 수 있는 감정을 다독이며 사회운동의 초심을 지키라는 조언이셨을 것이다.
지방 출장 중에 부득이 한방에서 묵어야 할 때도 전혀 개의치 않으시면서 늦은 시간까지 당대 인물들에 대한 평을 하시던 모습이 생생하다. 그 당시 평판에 올랐던 인물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명박근혜 정권 때 중용되어 지금까지도 몇몇은 여전히 악명을 떨치고 있다.(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라 그 인물평들을 녹음해 두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이 밖에 서울 문래동 박정희 흉상 철거로 나를 포함해 여러 명이 재판을 받을 당시, 법정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법적, 역사적으로 박정희의 악행을 거론하며 흉상 철거는 정당하다고 저항권의 입장에서 무죄를 주장하던 한교수님은 피고인석에 선 우리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셨다.
이제 연구소는 1991년 창립 이래 터 잡고 활동하던 동대문시대를 접고 용산시대를 연다. 동대문시대에 〈친일인명사전〉 발간이라는 역사적 과업을 성취했다면 용산시대에는 〈식민지역사박물관〉 개관과 대중화라는 또 다른 과제를 안고 있다. 동대문을 떠나며 가장 어려운 시절 연구소 2대 소장으로서 큰 역할을 해주셨던 한상범 교수님이 더욱 그리워진다.
“국가보안법? 허~ 참나. 머릿속의 생각을 벌주는 나라가 어딨어?”

방학진 기획실장

화, 2018/01/09-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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