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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본제국 훈장과 기장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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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본제국 훈장과 기장 (1)

익명 (미확인) | 목, 2018/07/12- 15:20

대일본제국 훈장과 기장 (1)
대일본제국과 천황에 대한 충성 확인서

박한용 교육홍보실장

 

근대 일본의 훈장(勳章)·포장(襃章)·기장(記章) 등 각종 서훈(敍勳)과 영전(榮典) 제도는 1871년부터 시작되었다. 서훈과 영전 제도는 ‘천황대권’의 하나로 근대 일본 국민국가 형성 과정의 산물이며 근대 천황제의 근간을 이루어 온 장치이다. 또한 일제가 대외침략전쟁을 수행하면서 남발한 각종 서훈과 영전은 ‘신민’의 충성심을 동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 민족 지배의 통합장치로서 매우 큰 역할을 하였다.
일제강점기 조선인 관리나 친일파들이 주로 받은 훈장은 욱일장(旭日章)과 서보장(瑞寶章) 이었다. 일제의 대외침략과 관련해서는 러일전쟁·만주사변·중일전쟁 관련 종군기장(從軍記章)을 받은 친일파들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일제가 가장 대량으로 수여한 훈장은 이른바 ‘병합의 공로’로 수여한 한국병합기념장(韓國倂合記念章)이었다. 한편 만주국에서 활동한 친일파들의 경우 주국장(柱國章) 또는 경운장(景雲章)을 많이 받았다.
특급 친일파들의 경우 대한제국 황족이 아님에도 최고위의 훈장인 대훈위국화대수장(大勳位菊花大綬章)을 받은 경우도 있으며(이완용), 십 수개 이상의 훈장을 줄줄이 받은 인물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인물을 들자면 다음과 같다.

 

 

고희경 : 서보장, 욱일중광장, 한국병합기념장, 대례기념장, 욱일대수장 등 15개
민병석 : 한국병합기념장, 유공장(有功章), 대례기념장(大禮記念章) 등 18개
이범익 : 한국병합기념장, 훈4등서보장, 대례기념장, 훈2등서보장, 만주국황제방일기념장, 만주국 국경사변 종군기장 등 14개

 

일제의 서훈과 영전 제도는 일제가 태평양전쟁에서 패전한 후 잠시 폐지되었다가 천황의 이름으로 부활해 다시 시행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일제 강점기의 다양한 종류의 훈장·기장·포장과 단체 휘장 그리고 각종 관련 증서 등을 소장하고 있다. ‘제국에 충성하라! 그려면 보답해 줄 것이다!’ 라는 충성 확인증인 훈장과 기장 등을 2회에 걸쳐 그 일부를 공개한다.

 

훈장- 제국에 충성을 다하고 공로를 세워라!
일제의 훈장은 크게 국화장, 금치훈장, 욱일장, 보관장, 서보장, 문화훈장 등으로 나뉜다.

 

032

상) 훈장일람표. 하좌)  대훈위국화장경식과 대훈위국화대수장. 하우) 금치훈장

 

국화장(菊花章)은 일본 훈장 가운데 가장 높은 등급으로서 대훈위국화장경식(大勳位菊花章頸飾, 1888년 제정)과 대훈위국화대수장(大勳位菊花大綬章, 1876년 제정)이 있다. 대훈위국화장경식은 황족 또는 공적이 있는 총리대신, 그리고 1945년 이전에는 군인에게도 수여되었다. 대훈위국화대수장은 경식 다음의 고위 훈장으로 황족, 총리대신 가운데 수상자가 많으나 친왕(親王)에게는 무조건 수여되었다.

 

033

1 욱일장. 2 욱일장-훈7등청색동엽장과 훈장첩. 3 욱일장-훈8등 백색동엽장과 훈장첩. 4 보관장

금치훈장(金鴙勳章, 1890년 제정, 1947년 폐지)은 전공이 있는 군인·군속에게 지급되었다. 현재는 폐지되었고 패전 전에 수상한 사람도 지금은 군대가 없으므로 장착할 수 없다.
공일급(功一給)부터 공7급으로 나뉘며 장관(將官, 장성)은 공1급부터 공3급, 좌관(佐官,영관)은 공2급부터 공4급, 위관과 견습사관, 해군소위후보생 등은 공3급부터 공5급, 준사관과 하사관은 공5급부터 공7급, 병졸은 공6급부터 공7급을 받았다.
욱일장(旭日章)에는 최고위인 훈일등 동화대수장(勳一等旭日桐花大綬章, 1888년 제정)이 있다. 그 아래 훈일등 욱일대수장, 훈2등 욱일중광장(旭日重光章), 훈3등 욱일중수장(旭日中綬章), 훈4등 욱일소수장(旭日小綬章), 훈5등 쌍광욱일장(雙光旭日章), 훈6등 단광욱일장(單光旭日章), 훈7등 청색동엽장(靑色桐葉章), 훈8등 백색동엽장(白色桐葉章)이 있다. 국가에 공적이 있는 남자에게 수여되며, 보관장과 동격이다.
보관장(寶冠章)은 공적이 있는 여자, 특히 황족 여성이나 황실 며느리 등에게 수여되었다. 욱일장과 동격으로 천연진주를 많이 사용해 만들었다. 훈1등부터 훈8등(훈1등부터 훈5등은 1888년, 훈6등부터 훈8등은 1896년 제정)까지 있다.
서보장(瑞寶章)은 1888년 제정에 제정되었다. 연공에 따라 처음에는 남자만을 대상으로 했으나 1919년부터 여자에게도 수여되었다. 훈1등부터 훈8등까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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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서보장. 우) 서보장-훈8등 서보장과 훈장첩

문화훈장(1937년 제정)은 ‘문화발전에 훈적이 탁월한 자’에게 수여되었다. 서열로는 훈1 등 서보장의 다음에 위치한다. 예술분야에는 서훈된 예가 없고, 과학과 학술 부문에서 발견·발명에 대한 서훈이 있었다.

대외침략을 기념하는 종군기장들
기장(旗章)에는 종군기장(從軍旗章), 기념장(記念章), 포장(襃章), 그 외 기장 등이 있다. 종군기장은 1875년 ‘대만출병(臺灣出兵)’을 계기로 만들어진 ‘명치7년 종군기장’이 시초이다. 그 뒤 일본의 대외 전쟁이 늘어나면서 많은 종군기장이 제정되었다. 종군기장을 받은 이들은 명예로 생각하고 패용했지만, 뒤집어서보면 일본의 대외침략의 역사를 가슴에 달고 다니는 셈이었다. 종군기장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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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종군기장. 명치7년종군기장, 명치28년종군기장, 명치33년종군기장, 명치37~8년종군기장, 대정3년내지9년종군기장, 소화6년 내지9년종군기장(오른쪽부터)

 

명치7년 종군기장(종군패從軍牌) : 1874년 표류한 류큐(오키나와) 주민을 살해했다는 명분으로 일으킨 대만 출병 종군기장. 최초의 종군기장. 1875년 수여.
명치27,8년 종군기장 : 1894년 일어난 청일전쟁 종군기장. 1895년 수여.
명치33년 종군기장 : 1900년 북청사변(청국사변, 의화단사건) 당시 중국 출병 종군기장. 1902년 수여.
명치37, 8년 종군기장 : 러일전쟁 종군기장. 1906년 수여.
대정(大正)3,4년(전역戰役)종군기장 : 제1차 세계대전 종군기장. 1915년 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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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명치38년 종군기장(러일전쟁)과 기장첩. 2 소화6년내지9년 종군기장. 3 지나사변 종군기장과 기장첩

 

대정(大正) 3년내지9년 종군기장 : 1차 세계대전 때 산동반도의 독일조차지 및 청도(靑島) 공략과 시베리아 출병 종군기장. 1920년 수여.
전첩기장(戰捷記章) : 제1차 세계대전 동맹 및 연합군 승리 기념 기장(自大正三年 至大正九年 文明擁護之大戰 日米英佛伊 其他 同盟及聯合國), 1920년 수여
소화6년내지9년 사변종군기장 : 만주사변과 제1차 상해사변 종군기장. 1934년 수여.
지나사변 종군기장 : 중일전쟁에 종군했던 자 중 중요임무에 관계된 자에게 수여. 1939년 수여
(다음 호에서 계속됩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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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에게 서울은 어떤 곳입니까? 고층의 빌딩과 이동하는 차량으로 가득 채워진 도로 그리고 또 어떤 이미지들이 떠오르나요?   가장...
토, 2017/06/10-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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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환경연합 정기산행을 내장산으로 다녀왔습니다

연한 초록잎들의 향연이라 어느 곳에 가든 맘 편히 산행을 즐길수 있었습니다

지난해까지는 비지땀을 흘리며 오르는게 목적이고 즐거움이었다면

지난 삼월부터의 산행은 그동안 산에 가도 그냥 지나치던 많은 생명들을 유심히 보고

그곳에 있는 이유를 들으며 가는 산행이어서 또 다른 즐거움이 있는 산행입니다

자~~아 이제 4월의 초록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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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장산 주차장까지 차는 들어가지만 우리는 국립공원관리사무소 옆에 차를 세우고 이런 초록의 터널 속으로 걸어가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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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산행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었던 자주괴불주머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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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내장산은 산벚나무와 연초록나무들이 어우러져 파스텔톤으로 수채화를 그려놓은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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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보아야 잘보이는 쇠별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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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나무하면 붉은 빛만 떠올릴텐데 4월의 단풍나무는 아주 작은 붉은꽃을 피우며 잎은 초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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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 옆에서 본 미나리냉이입니다 잎은 미나리같고 꽃은 냉이꽃을 닮아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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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전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제비꽃입니다 보라색말고도 흰색, 노란색등 많은 종류의 제비꽃을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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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고개들어 하늘 보면, 이렇게 초록별들이 눈부시게 살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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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으며 그 동안 열지 않았던 시각과 청각을 최대한 열고

눈으로 초록잎과 꽃을 관찰하고, 귀로 새소리, 물소리를 들으며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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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목 꽃이 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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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진 자리에 꽃받침이 마치 또 하나의 꽃인양 붉은빛으로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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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장산은 굴거리나무 군락지가 천연기념물91호로 지정된곳입니다

군락지는 좀 더 위쪽이지만 입구에도 심겨져있습니다

굴거리나무는 아랫녁에서 많이 자라는 나무로 내장산 굴거리나무 군락지는 북방한계선이어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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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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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골사이를 비집고 또 다른 생명이 자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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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똥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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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장사 입구는 벌써 부처님오신날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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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함께 한 산악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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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장사의 연못에서 동전 던저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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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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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꽃마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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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산행에 같이 한 자매입니다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가 좋아 잠시 자연을 즐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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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장금창초입니다 털복숭이 봉우리가 터져 이런 보라색꽃이 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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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극꽃입니다 꽃이 초록색이라 잎인지 꽃인지 잘 구분을 못합니다 초록색꽃도 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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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에 핀 백작약입니다 길에서  조금 들어간 곳에 피어있어 천천히 걸으며 둘러보아야 보이는 꽃이었습니다

꿀이 많아서인지 향기가 좋아서인지 작은 벌레들이 아닥다닥 붙어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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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보고 수줍게 피어있는 윤판나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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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발톱입니다. 너무 작은 꽃이어서 사진으로 담기 쉽지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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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산행은 내장산 생태탐방로 3.8km를 걷는 길입니다

그중 비자나무숲은 오는 사람들에게 쉬어가라고 아주 넓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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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년 이상되었다는 비자나무에서 오늘의 기념사진 한장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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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쭉입니다

우리가 아는 붉은빛이 감도는 철쭉은 산철쭉이라 부르고 진짜 철쭉은 이런 연한 분홍빛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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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구슬붕이 꽃이 참 멋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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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둘러둘러 도착한 백련암은 불출산이란 병풍으로 둘러진 멋진 사찰이었습니다

이곳 스님께서 백련암의 다른 모습을 알려주셔서 누워서 불출산과 백련암의 또 다른 멋진 모습을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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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좋은 말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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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오는 길 호수 속 나무와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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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초등학생 딸은 이렇게 산행을 하며 한뻠더 가까워 보입니다

인생으로 치자면 4월은 이런 어린아이의 파릇함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 무엇에도 물들지 않아 순수해서 그냥 빠져들게 만드는 그 무엇 말입니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요 그냥 4월의 초록에 푸~~욱 빠져들 보세요^^

월, 2015/04/20- 14:54
557
0

[논 평]

이주노조 합법화 판결을 환영하고 대법원의 8년 직무유기를 규탄한다.

 

대법원은 오늘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에 따른 노동조합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고용노동부의 상고를 기각하는 판결을 하였다. 노동3권을 보장하고 있는 헌법 제33조, 외국인의 지위를 보장한 헌법 제6조, 국적에 따른 근로조건의 차별대우를 금지한 근로기준법 제5조, 인종차별금지를 금지한 노조법 제9조 등에 비춰볼 때, 위 판결은 지극히 타당하고 상식적인 판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위 판결이 나오기까지 대법원에서만 무려 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시간을 10년 전으로 돌려보자. 2005년 4월 24일 서울·경기·인천지역에서 취업해 일하고 있던 이주노동자 99명은 지역별 노동조합인 서울경기인천이주노동자노동조합(이하 ‘이주노조’)를 설립하고, 같은 달 5월 설립신고서를 고용노동부에 제출했다. 같은 해 6월 서울지방고용노동청장은 노조 임원 및 조합원 일부가 출입국관리법상 취업 및 체류자격이 없는 외국인이므로 노조법상 노동조합으로 볼 수 없다며 설립신고서를 반려했다.

 

이주노조는 고용노동부의 노조설립신고 반려처분이 법적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노동하는 노동자라면 누구나 보장받아야 할 헌법상 권리인 노동3권을 출입국관리법상 체류자격이 없다는 임의적 상황에 따라 차별하는 처분은 위법 · 무효이므로 취소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행정소송을 제기하였다. 2006년 2월 7일 서울행정법원 제13행정부(재판장 김태종 판사)는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하여 원고 청구를 기각했으나, 2007년 2월 1일 항소심인 서울고등법원 제11특별부(재판장 김수형 판사)는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설립신고서 반려처분이 법적근거가 없는 것으로 위법하므로 취소한다고 판결했다. 2007년 2월 23일 고용노동부가 상고하여 대법원에서 심리가 시작된 이 사건은 대법원의 최장기 미제사건 기록을 갱신하며 무려 8년 동안이나 계류되어 왔다. 김황식 전 대법관, 후임 양창수 전 대법관을 거쳐 권순일 현 대법관에 이르기 까지 주심 대법관만 3명을 거쳤다.

 

이번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결과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내국인 노동자들이 형사처벌을 받았다고 하여 노동조합 가입자격이 제한되거나, 이미 가입된 노동조합의 실체가 부정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이주노동자들이 출입국관리법에 따른 체류자격이 없더라도 자신의 노동을 제공하여 생계를 유지하는 한, 헌법상 노동3권이 제한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올해 제323차 국제노동기구(ILO) 이사회에서 채택된 제374차 결사의자유위원회 보고서에서는 8년째 계류된 이주노조 설립신고 상고심을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이주노동자들이 자신의 체류자격에 상관없이 결사의 자유에 대한 권리와 단체교섭권을 전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할 것을 한국 대법원과 정부에 촉구하기도 했다.

 

대법원의 8년에 걸친 심리 지연으로, 이주노조는 모진 수난을 겪었다. 아노아르 후세인(방글라데시) 초대 위원장을 비롯해 미셀 카투이라(필리핀) 4대 위원장에 이르기까지 이주노조 주요 임원들은 법무부 출입국관리소에 표적단속 되어 강제추방 당하거나, 입국이 거부되었다. 그럼에도 이주노조는 노동조합임을 포기하지 않았다. 노동자의 자주적인 단결을 통해, 이주노동자의 문제를 이주노동자 스스로 바꿔보겠다는 창립정신으로 끈질기게 싸워왔다. 우리 모임은 이주노조의 지난 10년 동안의 헌신적인 투쟁에 경의를 표하며 깊은 연대의 마음을 표한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이 사건 판결 어디에도, 대법원이 지난 8년 동안 고심한 흔적은 도저히 찾아볼 수 없다. 대법원은 오히려 사회적 약자인 이주노동자들이 자신의 정당한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에 눈 감았다. 한국경제의 가장 밑바닥을 책임지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폭력과 비인간적인 처우를 개선해 달라는 목소리를 8년 동안 외면했다. 이는 인권의 보장과 정의의 구현이라는 사법부의 존재목적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다. 최고법원의 권위와 존엄은 법원에 출입하려는 이주노조 조합원들의 투쟁조끼를 억지로 벗겨내려는 것이 아니라, 인권보장을 위한 최후의 보루라는 스스로의 목적에 충실할 때 비로소 인정될 수 있음을 대법원이 지금이라도 깨닫길 바란다.

 

2015. 6. 25.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한 택 근

목, 2015/06/25-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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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 평]

이주노조 합법화 판결을 환영하고 대법원의 8년 직무유기를 규탄한다.

 

대법원은 오늘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에 따른 노동조합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고용노동부의 상고를 기각하는 판결을 하였다. 노동3권을 보장하고 있는 헌법 제33조, 외국인의 지위를 보장한 헌법 제6조, 국적에 따른 근로조건의 차별대우를 금지한 근로기준법 제5조, 인종차별금지를 금지한 노조법 제9조 등에 비춰볼 때, 위 판결은 지극히 타당하고 상식적인 판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위 판결이 나오기까지 대법원에서만 무려 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시간을 10년 전으로 돌려보자. 2005년 4월 24일 서울·경기·인천지역에서 취업해 일하고 있던 이주노동자 99명은 지역별 노동조합인 서울경기인천이주노동자노동조합(이하 ‘이주노조’)를 설립하고, 같은 달 5월 설립신고서를 고용노동부에 제출했다. 같은 해 6월 서울지방고용노동청장은 노조 임원 및 조합원 일부가 출입국관리법상 취업 및 체류자격이 없는 외국인이므로 노조법상 노동조합으로 볼 수 없다며 설립신고서를 반려했다.

 

이주노조는 고용노동부의 노조설립신고 반려처분이 법적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노동하는 노동자라면 누구나 보장받아야 할 헌법상 권리인 노동3권을 출입국관리법상 체류자격이 없다는 임의적 상황에 따라 차별하는 처분은 위법 · 무효이므로 취소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행정소송을 제기하였다. 2006년 2월 7일 서울행정법원 제13행정부(재판장 김태종 판사)는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하여 원고 청구를 기각했으나, 2007년 2월 1일 항소심인 서울고등법원 제11특별부(재판장 김수형 판사)는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설립신고서 반려처분이 법적근거가 없는 것으로 위법하므로 취소한다고 판결했다. 2007년 2월 23일 고용노동부가 상고하여 대법원에서 심리가 시작된 이 사건은 대법원의 최장기 미제사건 기록을 갱신하며 무려 8년 동안이나 계류되어 왔다. 김황식 전 대법관, 후임 양창수 전 대법관을 거쳐 권순일 현 대법관에 이르기 까지 주심 대법관만 3명을 거쳤다.

 

이번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결과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내국인 노동자들이 형사처벌을 받았다고 하여 노동조합 가입자격이 제한되거나, 이미 가입된 노동조합의 실체가 부정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이주노동자들이 출입국관리법에 따른 체류자격이 없더라도 자신의 노동을 제공하여 생계를 유지하는 한, 헌법상 노동3권이 제한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올해 제323차 국제노동기구(ILO) 이사회에서 채택된 제374차 결사의자유위원회 보고서에서는 8년째 계류된 이주노조 설립신고 상고심을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이주노동자들이 자신의 체류자격에 상관없이 결사의 자유에 대한 권리와 단체교섭권을 전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할 것을 한국 대법원과 정부에 촉구하기도 했다.

 

대법원의 8년에 걸친 심리 지연으로, 이주노조는 모진 수난을 겪었다. 아노아르 후세인(방글라데시) 초대 위원장을 비롯해 미셀 카투이라(필리핀) 4대 위원장에 이르기까지 이주노조 주요 임원들은 법무부 출입국관리소에 표적단속 되어 강제추방 당하거나, 입국이 거부되었다. 그럼에도 이주노조는 노동조합임을 포기하지 않았다. 노동자의 자주적인 단결을 통해, 이주노동자의 문제를 이주노동자 스스로 바꿔보겠다는 창립정신으로 끈질기게 싸워왔다. 우리 모임은 이주노조의 지난 10년 동안의 헌신적인 투쟁에 경의를 표하며 깊은 연대의 마음을 표한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이 사건 판결 어디에도, 대법원이 지난 8년 동안 고심한 흔적은 도저히 찾아볼 수 없다. 대법원은 오히려 사회적 약자인 이주노동자들이 자신의 정당한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에 눈 감았다. 한국경제의 가장 밑바닥을 책임지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폭력과 비인간적인 처우를 개선해 달라는 목소리를 8년 동안 외면했다. 이는 인권의 보장과 정의의 구현이라는 사법부의 존재목적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다. 최고법원의 권위와 존엄은 법원에 출입하려는 이주노조 조합원들의 투쟁조끼를 억지로 벗겨내려는 것이 아니라, 인권보장을 위한 최후의 보루라는 스스로의 목적에 충실할 때 비로소 인정될 수 있음을 대법원이 지금이라도 깨닫길 바란다.

 

2015. 6. 25.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한 택 근

목, 2015/06/25- 16:11
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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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자님,

핸폰 번호변경으로 친일인명사전을 재 다운로드 하려는데

방법을 알려주세요.

멜주소: [email protected]

목, 2017/08/10- 18:16
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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