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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인천항 부두에 세운 대륙침략의 ‘거룩한 자취’ 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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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인천항 부두에 세운 대륙침략의 ‘거룩한 자취’ 기념비

익명 (미확인) | 목, 2018/07/12- 13:59

일제가 인천항 부두에 세운 대륙침략의 ‘거룩한 자취’ 기념비
경성보도연맹 기관지에 수록된 ‘성적기념지주(聖蹟記念之柱)’의 건립과정

 

한국전쟁의 와중에 벌어진 민간인 집단학살사건에 관한 얘기를 할 때마다 빠짐없이 등장하는 국민보도연맹(國民保導聯盟)은 1949년에 이른바 ‘반공검사(反共檢事)’ 오제도(吳制道)와 선우종원(鮮于宗源) 등이 주도해 결성한 ‘사상전향자’ 포섭기관이다. ‘보도’라는 말은 좌익사상에 물든 이들에 대해 전향과 자수를 통해 반공정신이 깃들도록 보호하고 이끌어낸다는 뜻을 담은 표현이다.
그런데 보도연맹의 발상은 이때가 처음이 아니라 일제강점기의 것이 고스란히 재현한 결과물이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제패망기에 존재했던 대화숙(大和孰)과 같은 전향자 사상교화단체도 그러하고, 세월을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33년 7월에 결성한 — 그 이름까지도 그대로 닮은 — 경성보도연맹(京城保導聯盟)과 같은 존재를 어렵잖게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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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 제94호(1941년 7월호)에 수록된 ‘성적기념비(聖蹟記念碑)’의 모습

경성보도연맹은 원래 경기도 학무과에서 주도하여 결성한 교외감독기관(校外監督機關)이자 학생선도기관(學生善導機關)으로, 여기에는 경성시내의 모든 중등학교와 초등학교, 그리고 인천 지역의 중등학교들이 망라하여 가맹되어 있었다. 겉으로는 각 학교의 생도들이 ‘유약한 음탕에 빠지지 않도록 보호선도하고 교외의 교육환경을 정화 향상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지만, 실제로는 1930년대의 비상시국 하에서 학생들이 ‘불순한 사상’에 노출되거나 물들지 않도록 감시하고 통제하는 것에 상당한 주안점이 있었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1933년 12월 이후 매달 <보도월보(保導月報)>라는 이름의 기관지(1939년 3월부터는 <보도(保導)>로 명칭변경)를펴내자신들의활동성과와 기타 선전내용을 확산하는 매체로 활용하였다. 우리 연구소가 소장한 <보도>가운데 제94호(1941년 7월호, 8쪽 분량)에 수록된 내용을 골라 이달의 전시자료로 소개한다. 먼저 경성보도연맹의 소재지가 ‘경기도 학무과 내’로 표기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연맹의 정체가 글자 그대로 ‘관변기구’임을 잘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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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방한 당시 일본황태자 요시히토가 타고 온 군함 카토리(香取)

이 기관지의 제1면을 살펴보면, 제법 큼직한 규모의 낯선 기념탑 하나가 사진 속에 등장한다. 그 장소는 인천부두(仁川埠頭)라고 표기되어 있고, 일본황태자 요시히토(嘉仁)가 이곳에 발을 디딘 ‘거룩한 공간’ 인 탓에 설립된 것이라는 설명이 언뜻 보인다. 그가 우리나라를 찾은 때는 대한제국 시절 헤이그특사파견과 고종퇴위사건의 여파가 한창이던 1907년 가을의 일이다.
그런데 무슨 연유로 무려 30년도 훨씬 더 지난 시점에서 이러한 기념물이 느닷없이 만들어진 것일까? 이에 관해서는 인천교육회(仁川敎育會) 측에서 이 탑을 세우는 취지를 적은 글이 함께 수록되어 있는데, 먼저 그 내용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대정천황 성적기념(大正天皇 聖蹟記念)의 어주건설(御柱建設)의 사(辭)

명치(明治) 40년(1907년) 10월 16일 당시 황태자로 계시던 대정천황께서 황공하옵게도 이 땅에 어상륙(御上陸)하시었도다. 이 존귀한 황저(皇儲, 황태자)의 어신(御身)으로서 대륙(大陸)에 제일보(第一步)를 디뎌 주시니 실로 우리나라 개벽(開闢)이래 공전(空前)의 성의(盛儀:성대한 의식)일지어다. 또한 전(全) 반도서민(半島庶民) 절대의 광영으로 영원히 후곤(後昆, 후세사람)에게 전해야할 창경(昌慶 : 빛나는 경사)이도다.
이래(爾來) 33 성상(星霜), 바야흐로 안으로는 황화(皇化:천황의 교화)가 십삼도(十三道)에 골고루 미쳐 내선일체(內鮮一體)의 결실을 드디어 거두고, 밖으로는 황은(皇恩)이 멀리 만주(滿洲)에 이르렀으며, 더 나아가 동양평화확보(東洋平和確保)의 성전(聖戰)이 이에 4년, 팔굉일우(八紘一宇:전 세계가 하나의 집)의 황모(皇謨, 통치의 계책) 아래 대륙 몇 억(億)의 생민(生民)이 모두 황택(皇澤:천황의 은택)에 젖으리로다. 생각건대 여기에 이르면, 성덕(聖德)이 더욱 광대(廣大)해지고 어릉위(御稜威, 천황의 위세)가 두루 높아짐에 공구감격(恐懼感激:삼가 두려워하며 감격함)하지 않을 수 없는 바로다. 이에 인천부교육회원(仁川府敎育會員)은 상의(相議)하여 이 성적(聖蹟)에 기념의 어주(御柱, 기둥)를 세우고, 한없는 성덕을 영원히 우러러 받드노라. 때는 기원(紀元) 2600년 소화(昭和) 15년(1940년) 10월 16일이도다. 명(銘)하여 가로되,

황풍(皇風)이 육합(六合, 천지사방)에 끼치고,
만민(萬民)은 성택(聖澤)을 우러르네.
건덕(乾德:하늘의 덕 곧 천황의 덕)이 팔굉(八紘, 온 세상)을 엄호하니,
사해(四海)는 창평(昌平)을 노래하네.

 

요약하자면 1907년의 방한 때 황태자의 신분으로 요시히토(뒤의 대정 大正)가 몸소 인천항 부두에 발을 디딘 것은 일본제국이 아시아 대륙으로 세력을 뻗어가는 첫걸음이 되며, 이를 계기로 결국 조선과 만주는 물론이고 중국 땅에 이르는 수 억의 사람들이 천황의 치세에 들어 황은을 입게 되었으니, 그러한 성스러운 곳에 기념탑을 세운다는 얘기이다. 이 과정에서 그들 스스로가 벌인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을 일컬어 ‘동양평화를 위한 성전’으로 묘사하는 대목은 참으로 적반하장식의 표현이 아닐 수 없다. <보도> 제94호의 제3면에 수록된 인천항 부두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때 이른바 ‘황군(皇軍, 일본군대)’이 상륙했던 유서 깊은 지점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내용도 눈에 띈다.

 

016<매일신보> 1930년 6월 12일자에 수록된 경성신사 구내 ‘황태자어주가지처’ 기념비 설계도

한편, <매일신보> 1941년 6월 17일자에 수록된 성적기념비(聖蹟記念碑) 제막식 관련기사를 보면, 이 탑을 세운 1940년이 바로 ‘황기(皇紀; 초대 천황이 즉위한 기원전 660년을 기점으로 계산) 2600년’이 되는 해 이므로 이를 기념하는 사업의 하나로 추진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 결과 가로폭 106척(약 32.1미터)의 화강석 기단 위에 9척(약 5.9미터) 규모의 돌기둥을 포함하여 전체 높이 32척(약 9.7미터)에 달하는 기념탑이 그 자리에 들어섰으며, 공사 도중 땅 속에서 옛 부두의 잔교초석(棧橋礎石)이 발견되어 그것을 수습하여 기단 위에 보존토록 하였던 사실도 확인된다.
석주(石柱)의 전면에 보이는 ‘성적(聖蹟)’ 두 글자는 이른바 ‘창덕궁 이왕 은(昌德宮 李王垠)’이라는 신분으로 격하되어 있던 영친왕(英親王)의 글씨를 받아 새겼다고 알려진다. 요시히토의 방한 당시 한국 ‘황태자’로서 몸소 인천항 부두까지 나와 마중을 한 당사자였다는 것이 그 이유인데, 이제는 격하된 망국의 보잘 것 없는 왕자(王者)로 글씨를 헌상한 꼴이다.
여기에 1907년 일본황태자의 방한과 관련해 한 가지를 덧붙이면, 서울 남산 기슭에 있던 경성신사(京城神社) 구내에도 또 다른 종류의 기념비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 당시 통감관저(統監官邸, 지금의 서울 예장동 2-1번지 구역)에 숙소를 정한 일본황태자는 방한 3일째에 남산 왜성대공원에 있는 갑오기념비(甲午記念碑) 부근을 둘러보고 이곳에서 서울 시내의 전망을 감상한 일이 있었다. 일본인들의 입장에서는 이것조차 크게 기릴만한 행적이라고 하여 1930년 9월 그 자리에 ‘황태자전하어주가지처(皇太子殿下御駐駕之處)’라고 새긴 기념비를 만들어 세웠던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기념물들은 그다지 오래가지 못했다. 천년만년 갈 거라는 그네들의 염원과 달리 곧 일제는 자멸의 길을 걸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인천항 부두에 세운 ‘성적기념탑’은 불과 4년 남짓에 식민통치가 끝나다 보니 이러한 시설물이 있었는지조차 기억하는 이들이 거의 없을 만큼 졸지에 사라져 버렸다. 대륙을 향한 ‘거룩한 첫 자취’는 실상 그들 스스로 침략과 패망의 길을 걷게 되는 첫 걸음이었다고 고쳐야 옳을 것이다.

∷ 이순우 책임연구원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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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7/06/05-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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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손해배상 청구 대응 모임

 

 

수 신 각 언론사 사회부, 법조부 담당
발 신 국가 손해배상 청구 대응 모임

 

(손잡고 윤지선 활동가 010-7244-5116/ 02-725-4777 [email protected] 참여연대공익법센터 이지은 간사 02-723-0666 [email protected])

제 목 [토론회 보도자료] 국가/기업의 괴롭히기 소송 남발, 어떻게 할 것인가
날 짜 2017. 11. 23.

 

기본권 가로막는 괴롭히기 소송’, 멈출 수 있을까

 

국회, 법조계, 시민사회 공동토론으로 대안마련 나서

1128()오후2시 국회의원회관 개최

 

국가와 기업이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행사한 국민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입법으로 막을 수 있을까?

 

11월 28일(화) 오후2시 국회의원회관 제1간담회실에서 ‘국가/기업의 괴롭히기 소송 남발,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토론회가 열린다. 본 토론회는 강병원, 금태섭, 노회찬, 박주민, 이정미 국회의원이 공동주최하고, 쟁의와 집회・시위에 참여한 이유로 국가와 기업으로부터 손해배상청구소송이 제기된 시민사회단체의 공동주관으로 개최된다.

 

본 토론회에서 말하는 ‘괴롭히기 소송’은 국가와 기업이 집회・시위, 쟁의에 참여한 국민에게 청구하는 소송을 말한다. 주관 측은 소송을 통해 ‘집회를 하고 노동3권을 행사하면 어마어마한 액수의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공포심을 조장함으로써 더 이상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에 ‘괴롭히기 소송’으로 명칭했다고 밝혔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동안, 쌍용차, 세월호, 밀양, 강정, 민중총궐기 등에 참여한 당사자와 관련 단체에게 국가와 기업이 손해배상・가압류 등의 소송을 남용한 사례가 계속되어 왔다. 각 사건의 당사자와 관련 단체, 대리인들은 올 초 ‘국가손배대응모임’을 구성해 소송현황과 소송으로 인한 당사자의 고통을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다. 국가손배대응모임의 집계에 따르면 집회・시위와 쟁의 참여로 국가로부터 제기된 손배소송은 8건, 청구금액은 약 70억원에 달한다(2017년 6월 기준). 기업으로부터 제기된 손배소송은 60건, 청구금액 금액은 약1,800억원에 달한다(2017년 6월 기준). 이 천문학적인 금액이 당사자 개인과 관련 단체에 부과되며, 소송에 따른 국민의 고통도 이어지고 있다.

 

국가와 기업의 손해배상청구는 헌법에 보장된 국민 기본권을 가로막는다는 점에서 국내 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도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유엔사회권규약위원회가 손해배상가압류를 ‘쟁의에 참여한 노동자에 대한 보복조치’로 명시하고, 한국정부에 ‘자제’와 ‘전면조사’를 권고했다. 과거에도 ILO, 유엔 평화적 집회 및 결사의 자유특별보고관 의견 등을 통해서 국민 기본권 후퇴에 대한 지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껏 정부차원의 유력한 해결책은 물론 제대로 된 실태파악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본 토론회는 입법을 담당하는 국회와 학계, 법조계, 시민사회, 법무부가 한 데 모여 각각의 입장과 대안을 검토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주최와 주관에 참여한 단체들은 본 토론회를 통해 괴롭히기 소송에 대한 입법적 해결과 입법 전이라도 별도의 사법적, 행정적 해결을 시급하게 마련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1부에서는 “괴롭히기 소송 실태”를 주제로 박래군 손잡고 운영위원과 김득중 쌍용자동차지부장이 발제한다. 2부에서는 “괴롭히기 소송,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송상교 변호사(민변공익인권변론센터 소장), 서선영 변호사(공인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장석우변호사(금속노조법률원), 윤지영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가 지금까지 제기된 각 대안들을 분석한다. 3부에서는 민법 전문가인 김제완 교수(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 헌법 전문가인 박경신 교
수(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시민사회에서 안진걸 참여연대 사무처장, 법무부에서 송길대 국가송무과장이 종합토론에 참여해 각계 입장과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사회는 이상희 변호사(법무법인 지향)가 맡았다.

 

토론회는 누구나 방청이 가능하다.(문의 손잡고 [email protected] / 참여연대 [email protected] )

 

*첨부 토론회 웹자보

국가기업의 괴롭히기 소송 남발_토론회

목, 2017/11/23-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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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7/05/11-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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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기 자원활동가 인터뷰]

노동자의 목소리를 듣는 사회를 꿈꾸다 : 조현주 변호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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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한 점 없이 맑던 6월의 어느 날, 공공운수노조 법률원에서 조현주 변호사를 만났다. 변호사가 된 후 대부분의 시간을 노동자의 곁에서 보낸 그는 만도지부 투쟁, 쌍용자동차 대한문분향소 투쟁, 콘티넨탈지회 노조 간 차별 소송 등 굵직한 노동 사건들을 맡아왔다.

최근 열린 민변 31차 정기총회에서 모범회원상을 수상한 그는 ‘세상에 이로운 변호사’가 되어야겠다는 꿈에 한발 더 가까워진 것 같다는 소감을 밝혔다.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 노동자의 목소리를 듣는 사회를 꿈꾼다는 조현주 변호사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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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변호사가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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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조현주 변호사님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조현주 변호사입니다. 2009년에 변호사가 된 후 2011년에 민주노총 법률원을 시작으로 금속노조 볍률원을 거쳐 작년 5월부터 공공운수노조 법률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Q. ‘조현주 변호사‘라고 하면 ’노동‘이라는 키워드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같아요. 대학시절부터 노동 변호사를 꿈꾸신 건가요?
사실 대학교에 들어갈 땐 변호사가 되어야겠다는 명확한 목표를 갖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노동 분야에 관심이 있던 것도 아니었어요.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만 해도 마냥 낭만적인 캠퍼스 라이프를 꿈꿨죠. 그러던 중 정말 우연한 계기로 학내문제 관련 집회에 참가하게 됐어요. 그런데 거기서 연세대학교 학생 한 명이 죽는 일이 발생한 거예요. 그 학생은 풍물패 단원이었는데, 집회가 진행되기 전 준비 작업을 했을 뿐인데 토끼몰이식의 시위 진압으로 인해 맨 앞에서 맞아 죽은 거죠. 그 학생이 위협적인 무기를 가지고 폭력적인 행동을 한 것도 아닌데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는 걸 보면서 왜 민주주의 사회에서 집회의 자유가 지켜지지 않는 건지 그 이유를 알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충격적인 사건을 목격한 후 자연스럽게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키웠고, 이 문제들을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졌어요.

이후 졸업할 시기가 되어 ‘내가 뭘 해야 행복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고, 제 대답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할 때 행복하다’는 거였어요.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 즉 세상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사법시험에 합격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그 길로 시험 준비를 하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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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원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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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럼 사법고시 합격 후 처음부터 법률원에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으셨던 건가요?
네. 연수원 수료할 때 법률원에 지원을 했는데 그 때는 지원이 늦기도 했고 채용이 안 되었어요. 그래서 우선 일반 법률사무소에서 2년 정도 근무를 한 후에 다시 지원을 해서 운 좋게 민주노총법률원에서 일을 하게 됐습니다.

Q. 현재는 공공운수노조 법률원에서 일하신다고 하셨는데 어떤 업무를 하고 계신지 구체적으로 설명 부탁드려요.
우선 공공운수노조 법률원은 공공운수노조의 부설기관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노조 관련한 일을 하는데요, 구체적으로는 상담 및 자문, 의견서 작성, 법률 교육, 다른 단체와의 연대활동, 기본적인 송무 등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현재 사무실에는 변호사 9분, 노무사님 4분, 차장님 3분이 함께 일을 하고 있습니다.

Q. 업무의 강도는 어떤지 궁금해요.
법률원에 들어오기 전에 바쁘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저도 체력이 좋은 편은 아니라 걱정을 했어요. 지금은 법률원 규모도 어느 정도 커지고 인원 충당이 많이 돼서 예전 선배들만큼 고생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기본적인 업무는 상당한 편에 속해요.

특히 노동자들이 투쟁하는 시기에는 처리해야 할 일이 상당히 많아지죠. 또 단순히 투쟁은 끝나더라도 법률적인 싸움은 지속되는 부분이 있으니까 기본적으로 업무량은 있는 편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네요. 주말에는 최대한 쉬려고 노력하는데, 이때는 가족끼리 시간을 보내거나 미술관도 가거나 다른 취미생활을 해요.

Q. 체력이 좋은 편이 아니라고 하셨는데, 높은 업무강도를 버티기 위한 나름의 비법이라도 있나요?
정말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네요, 저 스스로도 아직 비법을 찾지 못했거든요.(웃음)
다만, 예전에는 최대한 일을 빨리 끝내려고 식사도 자리에서 대충 해치웠는데, 이제는 점심시간에 바깥공기도 쐬고 많이 걸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있는 것만큼 척추에 무리가 가는 것도 없다고 하더라고요. 식사시간에는 조금 여유를 가지고 산책도하고, 혈액을 순환시켜주려고 노력을 하는 편이에요.

Q. 그동안 다양한 법률원에서 활동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나요?
제가 금속노조법률원에 있었던 2016년 초에 노조가 처음으로 압수수색을 당한 사건이 있었어요. 그 때 금속노조 사무처 분이 “그래도 변호사님이 있어서 참 다행이었어요.”라고 문자를 보내주셨어요. 그때 내가 도움이 됐구나, 잘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문자를 보내주셨던 게 아직까지 기억에 많이 남아요.

이 외에도 기억에 남는 순간들은 여럿 있어요. 일을 하다가 자신감이 떨어지거나 하는 때가 있는데 그 때마다 떠올리는 분들, 노조들이 있어요. 절 잊지 않으시고 “보고 싶다”고 연락 주시는 분, “고맙다. 잘했다”고 말해주셨던 분들이요.

한번은 제가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수련회에 참석해서 노래를 부른 적이 있었는데, 최근에 지회장님이 농담으로 ‘변호사님이 불러준 그 노래 때문에 우리가 투쟁할 수 있었어요’라고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그런 가벼운 농담일지라도 기억에 남죠. 이런 순간순간들이 모여서 저한테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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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갑질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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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직장갑질 119에서 활동을 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는데 정확히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직장갑질 119>는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 네이버 밴드, 메일 등을 통해서 노동자분들이 직장에서 받으신 부당한 대우에 대해 말해주시면 스태프들이 법률 자문을 해주는 시스템인데요, 저도 스태프로 직장 내 부당한 대우나 차별적 관행에 대한 법률 자문을 해드리고 있습니다.

Q. 직장갑질 119에 자문을 의뢰하는 분들은 대부분 어떤 피해를 입으신 분들인가요?
피해자 분들이 얘기해주시는 사건들은 대부분 근로기준법 위반과 관련된 것들이에요. 임금체불이나 근로시간 산정, 연차 수당과 관련된 문제들이 상당히 많고요, 이 외에도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는 비율도 꽤 높은 편입니다. 이런 고민들을 들으면 저는 항상 노조에 가입하거나, 노조를 직접 만드시라고 제안을 하는 편이에요. 문제를 실질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혼자보단 여럿이 힘을 합쳐 해결하는 게 훨씬 수월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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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직장갑질 119에서 진행되는 상담과 법률원 측에서 진행하는 노동 상담 사이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
민주노총 법률원에서도 유선 상으로 노동 상담을 하긴 해요. 다만, 이쪽으로 전화를 주시는 분들은 대부분 노동조합에 대해 거부감이 없으신 분들이고, 상담이 진행되기 전에 저희가 거의 이름, 전화번호 등을 확인하기 때문에 상대방이 누군지 저희가 좀 더 정확히 파악할 수 있죠.

이에 반해 직장갑질 119를 통해 문의해주시는 분들은 모두 익명이기 때문에 저희가 정확한 신원을 파악할 수 없어요. 익명이기 때문에 상담을 신청해주시는 분들 입장에서는 덜 부담스러우실 수도 있고, 접근성이 좋아지는 측면은 있어요. 한편으로 저희가 상담을 해드려도 실질적으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 활동이 정말 중요한데 이분들이 상담 후에 노동조합 활동에 실질적으로 참여하실지는 미지수죠. 이 부분은 민주노총 법률원 유선 상담도 마찬가지이긴 합니다. 갑질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법률상담을 넘어서 ‘직접 힘을 모아 부당한 것을 바꾸자’는 것이 필요한데 그런 측면에서 상담을 넘어선 집단적 변화를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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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목소리를 듣는 사회를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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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변호사로서 노동 현장에 함께 하시면서 노동권 보장에 가장 걸림돌이 되는 법적 장치, 사법 환경이 있나요?
문제들이 한 둘이 아니라 단정하기 어렵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자’를 규정하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특히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되는 분들이 있는데, 이 분들은 지금 법원의 해석으로 ‘노동자’의 범위에 포섭되고 있거든요. 이분들이 더 이상 법원의 해석을 기다리지 않고 권리를 보장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이 부분은 문재인 대통령이 약속한 사항이기도 하고요. 유엔 사회권위원회에서도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라는 권고가 내려왔는데 이행기간이 내년 상반기로 알고 있어요.

이 외에도 지금 창구단일화 구조는 사용자의 입맛에 맞춰 교섭을 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변경되어야 하고,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법정형이 낮은 것도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또 지금 현행법에서는 강요된 근로를 금지하기는 하는데 ‘감금’과 같은 수단을 요구해요. 즉, 아무리 강요된 근로가 발생했더라도 그것이 ‘감금’과 같은 수단에 의한 것이 아니면 형사적 처벌을 할 수 없는 거죠. 그런데 현실적으로 요새 누가 감금해놓고 강제로 일을 시키나요? 법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상황인거죠. 뿐만 아니라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을 때 그게 실질적으로는 폭행을 하거나 협박에 이르는 정도는 아니어서 법적 처벌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지속되는 경우가 있고요. 이렇게 법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부분들은 시급히 개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Q. 2013년 변호사님께서 쓰신 “노동자의 목소리를 듣는 사회”라는 칼럼을 읽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노동자의 목소리를 듣는 사회가 되기 위한 선결과제는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노동자의 개념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게 먼저인 것 같아요. 우리사회는 ‘노동자’라고 하면 아직까지도 ’막노동‘의 이미지만 떠올리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저들은 노동자야’, ‘나는 커서 노동자가 되지 않을 거야’, ‘나는 노사관계와 관련이 없어’라고 생각하는 학생들도 많은 것 같아요. 왜 이런 편견들이 생겨나는 걸까요? 우리가 학교에서 이 부분에 대해 교육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죠. 우리 모두가 노동자가 될 수 있고, 노동자가 되었을 때 어떠한 권리들을 요구할 수 있는 지에 대해 학교에서 어릴 때부터 교육이 이루어져야한다고 생각해요.

또, 노동조합에 대해서도 막연하게 ‘투쟁을 하는 단체’, ‘공격적인 단체’라고 편견을 갖는 부분도 개선되어야겠죠. 노동조합을 활동할 권리가 헌법에 명시된 이유는 이 활동을 통해 우리가 기본권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만큼 노동조합이 중요한 데 그 중요성이 과소평가되는 것 같아요. 이 외에도, 노동조합의 투쟁방식도 천차만별일 수 있는 데 노조에 대해 공격적 이미지만 갖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해요. 이런 편견들이 해소될 때 노동자의 목소리를 듣는 사회가 만들어 질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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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한 인터뷰에서 “정의는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것”이라고 말씀해주셨는데,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변호사님께 어떤 의미인가요?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추상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이윤보다 사람의 가치가 소중한 것’이구요, 구체적으로는 ‘구성원들의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되는 사회’라고 생각해요. 음식과 식당이 차고 넘치는 데 굶어 죽는 분들이 있고, 길거리에 집이 이렇게나 많은데 내 한 몸 뉘일 곳이 없는 분들이 있다는 게 이해가 안가요. 아픈데 돈이 없어서 죽어야 하는 것도 이해가 안 가고, 노후를 위해서 일평생을 바치는 그것도 이해가 안 가요. 이런 기본적인 것들이 해결되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것, 실질적인 평등이 보장되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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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마지막으로, 인간 조현주의 앞으로의 계획, 꿈은 무엇인가요?
법률원에 처음 들어올 때 술자리에서 꿈 얘기를 했는데, 나중에 묘비에 ‘인권변호사‘ 라는 글자가 새겨질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어요. 살다 보면 현실적 여건 때문에 지금 이야기 하는 꿈이 바뀔 수는 있겠죠.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인권변호사’로 오래 기억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금, 2018/06/29-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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