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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백년, 제3섹터 경제학을 선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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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백년, 제3섹터 경제학을 선언하다

익명 (미확인) | 화, 2018/07/10- 10:37

현재 나타나고 있는 주요한 사회경제적 수치들, 일자리 창출능력 미진, 신생아 출산율 저하, 악화조짐을 보이는 양극화의 지표 등은 한국사회 시스템이 지속 가능하지 못함을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다. 뒤집어 이야기하면 혁명적인 개혁 조치가 없으면 미래의 희망이 없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세계은행, OECD 그리고 IMF 등 국제협력기구들 조차 한국경제의 추이를 염려하면서 여성의 사회참여율을 높이고 소득주도성장 정책 등을 통하여 노동소득분배율을 획기적으로 높여 내수 기반을 강화하라는 조언을 수 년째 반복하고 있다.

이는 자타 공인하는 소득주도성장 이론의 대가인 홍장표 교수가 경제수석으로 임명된 배경이기도 하다. 최저임금제 도입 등 소득주도성장의 효과는 적정한 정책과 결합하여 최소한 2-3년의 잠복기 이후에야 누운 S 자형태로 서서히 나타날 것이며 그 때까지는 상당한 고통과 후유증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분한 정책적 준비는 뒤로 하고 일년도 넘기지 못한 채 경제수석을 관례처럼 수구적 행정관료로 교체하고, 미진하여 부족하지만 시민전문가들이 중심이 되어 준비한 재정개혁위원회 제안조차 기획재정부 책임관리들이 일방적으로 깔아 뭉개고, 기대를 모아 공정거래 위원장으로 취임한 인사는 자신의 무력과 무능함을 지적하는 시민사회에 신경질적으로 대응하는 오만함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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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이재용과 현대차의 정의선 등 후계자를 자처하는 인사들이 자신들이 다점주주로 있는 회사들을 급조하여 그룹 내 계열 기업으로 편입하면서 자본수익율을 지난 20여 년간 평균 50-60% 수준으로 유지하는 등 현대 산업사에 다시 없는 초유의 기록을 보유하자, 국제사회로부터 공개적인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당연히 파렴치한 내부거래와 정경유착, 사법적 과잉보호 그리고 공정거래위 무능과 야합의 결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법투성이인 이들은 여전히 한국 산업계의 중심인물로 되어 있다. 국민경제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굴지 재벌의 총수가 별세하자 경영능력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40세 아들이 별다른 저항과 견제도 없이 회장직을 이어받고, 온갖 추한 행실로 사회 비난의 표적인 된 대한항공의 총수일가가 여전히 뻔뻔하게 경영일선을 책임지고 있는 2018년 7월 현재, 적폐 중 적폐인 재벌들 지배구조의 개선을 위하여 문재인 정부와 공정거래위는 지난 일년간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되묻고 싶다( ‘대한항공을 국민의 기업으로’ 참조).

현안의 문제는 깊은 역사적인 뿌리를 갖는다. 그런데 이에 대응하는 문재인 정부는 지난 시절 관료들의 간교함과 재벌들의 이해에 갇혀 절대적 개혁의 기회를 놓친 채 국민의 정부 그리고 참여 정부의 실수를 되풀이하고 있다. 지금처럼 땜질하듯 대증적인 처방으로 정치공학적 접근을 할수록 더욱 심각한 수렁에 빠져 들 것이다. 기왕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치밀하게 강화하고 서민생활을 최우선적으로 지원하며 내수시장의 규모를 확장하는 데 가능한 정책적 역량을 집중하여야 한다. 여건이 어려울수록 길게 보면서 핵심을 본질적으로 파악하고,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다른백년’은 긴 호흡으로 제3섹터 경제론을 한국사회의 미래적 대안의 하나로 제시하고자 한다.

우선, 이해를 돕기 위해 자동차의 원동력(prime-over)으로 비유를 들어보자. 현재 일반적인 자동차는 내연기관에 화석연료를 태우면서 발생하는 폭발력을 회전 에너지로 활용하고 제어하는 것으로 동력 시스템을 구성하고 있다. 지난 백여 년간 자동차를 구동시켜온 내연기관은 인류의 지혜가 집중된 기계공업의 정수이기도 하다.

그런데 자동차가 생활 필수품이 되면서 편익성과 이동성은 크게 향상된 반면, 교통체증과 온갖 매연으로 대기오염과 기후변화 그리고 화석에너지의 고갈이라는 심각한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일부 미래학자들은 산업화 이후 인류의 최대 실수가 내연기관의 발명이라고 지적하면서 인류 멸망의 주요인은 내연기관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에 대응하여 테슬라 등 혁신기업들이 출현하면서 전기구동형 자동차를 시장에 출시하기 시작하였다. 전기 자동차는 배기매연이 없어서 대기오염이 없고, 내연기관에 비해 정비해야 할 요소가 적으며, 전기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하기에 급속히 시장에 보급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값싼 전기료는 화석에너지에 비해 세금이 낮다는 불공정한 조건에서 형성된 것이고 정비가 용이한 대신 차량가의 3-40% 를 차지하는 배터리 성능 문제로 5년이 지나면 교체를 해야 하며, 근본적으로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서 새로이 발전소를 세워야 하는 문제가 있다. 또한 전기 충전 시설을 새롭게 보급해야 하는 현실적 어려움에 봉착한다. 결국 전기차는 일시적이며 착시적인 해결책이다.

이에 대한 현실적 절충으로 내연기관과 전기모터를 함께 내장한 하이브리드 차량을 출시하기도 했다. 하이브리드 차량은 대용량의 배터리와 별도의 충전시설 없이 차량의 효율을 상당한 수준으로 높여 연료 소모를 줄이는 등 두 가지 방식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취하는 동시에 약점들은 보완하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이것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최근에는 수소에너지를 이용한 연료전지(Fuel Cell)동력이 개발되었다. 연료전지는 압축장입된 수소와 공기중의 산소를 촉매로 반응시켜 전기와 물을 만들면서 자동차를 구동시킨다. 수소를 포집하고 압축시키는 과정이 필요하지만 화석에너지 또는 발전의 오염 요인에 비하면 매우 청정한 에너지라고 할 수 있다. 다만 현재의 기술과 시장수요로는 가격이 매우 높은 편이며 역시 수소를 충전시킬 인프라를 대거 도입해야 상용이 가능한 어려움을 지니고 있다. 일반시민들이 손쉽게 선택할 만큼 인프라를 갖추고 보급이 일반화되면 연료전지의 가격도 저렴해진다는 가정에서 공기오염 등 기후변화의 요인이 없고 화석에너지에 의존하지 않는 미래형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인류의 미래를 생각하면 개별적인 자가용 수요를 줄여가며 공유적 이동 수단을 개발하고 쓸데없는 사회적인 이동의 필요를 억제하고 연료전지의 적용을 유도하여 매연 등 오염의 원인을 줄이면서 기후변화를 막고 지속 가능한 조건을 만들어 가야 한다.

 

국가, 시장, 그리고 시민사회

순수한 제1섹터인 국가중심의 계획경제는 소련의 붕괴로 실패작임이 판명되었다. 반면에 내연기관에 비유할 수 있는 제2섹타인 자본중심의 시장경제는 지난 2-300여 년간 상품과 서비스의 공급량을 획기적으로 확대하면서 인류의 물질 생활을 급격히 향상시키는 데 크게 기여한다. 칼 폴라니가 악마의 맷돌이라고 부른 자본의 탐욕이 이제 정부의 규제라는 굴레를 벗어나 인간의 모든 영역을 대체하고 지배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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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섹터만의 경제운용은 과거 공황과 전쟁을 되풀이하는 재난의 역사를 만들어 왔고 무제한적 자원의 낭비와 환경 파괴를 가져오고 있으며, 현재도 극소수 독점으로 인한 지구적 규모의 빈곤과 양극화를 양산하고 있다. 시장기제의 적정한 분배기능과 효율의 제고라는 긍정적 역할은 자동차의 뛰어난 이동성에 비견할 수 있으나, 이와 결합된 자본의 탐욕은 내연기관의 매연처럼 인간의 삶을 파괴하고 결국은 인류 멸망의 주 원인이 되리라고 전망하게 된다.

가공할 공황과 광범한 빈곤을 경험하면서 서구사회는 제2섹터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 대략 두 가지의 정책적 대안을 취했다. 케인즈 이론에 따라 정부개입을 통해 유효수요를 확대시키는 방식과 시장경제 성과의 일부를 복지정책에 투입하여 인간의 존엄을 유지하게 하는 사회안전망의 도입이 그것이다. 대륙형 사회적 시장경제는 두 가지 방식의 변형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마치 자동차의 내연기관과 전기모터를 결합시킨 하이브리드 방식을 연상하게 한다. 시장경제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되 문제점을 보완하여 자본제적 시장경제의 지속기간을 연장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그러나 내연기관과 전기모터 결합방식이 근본적으로 화석에너지가 야기하는 환경적 오염을 해결하지 못하고 장기적인 지속 조건을 형성할 수 없듯이, 토니 블레어의 제3의 길도 슈뢰더의 2010 아젠다와 하르츠 방식의 노동개혁도 프랑스의 인간적인 시장경제론도 전일적으로 작동하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맞서 빈곤과 양극화를 양산하는 기본적인 방향을 전환시키기에는 너무나 역부족이었고 개인과 공동체라는 인간사회의 자유와 해방을 위한 대안으로 인정하기에는 매우 제한적이다.

다만 또 하나의 하이브리드 경제로 평가할 수 있는 중국의 사회주의적 시장경제 또는 인민집중적 국가자본주의는 아직 실험적 순항을 지속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높은 경제성장률은 초기 산업화의 진입 과정에서 흔한 일이지만 최근 국제기구가 발표한 중국의 빈곤율 1-2%의 수준은 소강(小康)사회로 진입하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할 것이다. 비핵화와 개방을 선언한 북한사회도 기본 방향으로 중국의 경험을 따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연료전지로 비유할 수 있는 제3섹터의 경제 영역은 시장기제와 자본의 탐욕이 일방적으로 작동되지 않으며 정부의 개입 역시 가능한 제한되는 시민사회의 자발적 참여 공간의 총합이다. 일반적으로 협동 조합과 마을 향토기업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으며 사회적 기업은 제2섹터와 중첩되는 지점이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작동할 수 있는 영역으로 작동의 기본 원리는 인간의 자유와 해방을 기본으로 참여를 통한 협업, 자발적 혁신과 기여를 통한 성과의 배분, 지속 가능한 조건에서 공유와 순환의 기제 등을 열거할 수 있다. 성패 여부는 기존의 주류적 흐름인 제2섹터 시장기제의 흡인력을 버티어 낼 수 있는 자발적 다수의 조직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데 달려있다.

스페인의 몬드라곤, 이탈리아의 볼로냐 지역의 협동경제, 뱅쿠버와 오사카의 주민조합 등을 예로 들 수 있으며, 유럽에서는 경제의 10% 수준을 상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은 아직 도입 수준에 머물면서 2012년 도입된 협동조합기본법 등에 힘입어 활성화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상기의 세가지 영역은 일방적으로 서로 무시되거나 제거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상호보완적으로 각자의 영역에서 제대로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핵심은 상호결합에 대한 방식의 문제이다.

기존방식의 맹점은 시장경제를 선두에 세우고 종속(직렬)적인 방식으로 정부가 조정적으로 개입하면서 사회적 경제영역을 장식품처럼 포장해 온 점에 있다.

지난 200여 년간 인류에게 풍요를 선사한 자본제적 시장경제는 이제 긍정적 역할의 정점을 지나 지구적 규모의 빈곤과 실업과 환경재난 등 엄청난 폐해를 발생시키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흐름이 도처에 강력하게 형성되기 시작했다.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것이다 !

 

정보사회의 도래

자본 수익률의 저하를 상쇄하기 위하여 부가가치를 추구하는 혁신의 과정에서 과학 기술을 중심으로 하는 지식기반이 점차적으로 자본을 압도하면서 경제의 중심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하였다. 지식기반 경제는 사적 소유의 자본과는 달리 역사라는 누적적 요소와 공존하는 사회라는 공간적 확장 그리고 모든 사람들의 협력과 참여라는 규범적 행위를 요구한다.

이에 더하여 금융자본의 초과이익 실현을 위하여 전 지구적 운용에 필요한 디지털 통신기술이 발전되면서 스스로 보편화되어 SNS 등으로 전세계인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어내고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로봇 그리고 빅데이타 기술이 하나로 뭉쳐지는 초연결사회의 실현을 눈앞에 두고 있다.

여기서 기존의 인류사에 없는 엄청난 질적 전환이 이루어지게 된다. 기존 경제학에서는 상품과 서비스의 성격은 제로 섬(zero Sum)과 한계효용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하면 한 사람이 제공된 상품과 서비스를 소유하면 다른 사람이 소유할 수 없고, 상품과 서비스의 효용은 한계적으로 작동하면서 양이 증가하면 비례적으로 시장가치가 떨어진다.

그런데 새로이 형성되는 지식과 정보의 사회는 나누어 함께 하면 더욱 힘이 세어지고, 사용자가 많아질수록 가치가 올라가는 현상이 발생하고, 독점과 사적 소유보다는 협력적 경쟁과 공유를 통해야 비로소 더욱 강력해지는 흐름과 경향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자본과 노동이라는 양적 요소를 투입하는 것보다는 기술과 정보와 네트워크라는 요소들이 시스템적으로 규범적으로 결합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사안이 되어가고 있다. 다만 시스템적 네트워크와 기술의 독점이 강화되면 가공할 만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한국사회의 대부분 현안 문제는 이러한 미래적 지향의 흐름에 부적응하고 거부하며 역류하면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협력적 경쟁과 공유적 순환과 규범적 네트워크의 결합을 통한 혁신을 추구하기 보다는, 극심한 양극화와 소수로의 집중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독과점을 방어하고 주어진 기득권과 특혜에 안주하며 행정관료들과 사법체계는 이들에 기생하고 공공적 기제보다는 방어적 면책과 구차한 변명에 급급한 것이 한국사회의 현재 모습이 아닌가?

 

참여와 협력, 혁신과 순환의 제3섹터 경제

다가올 미래의 경제는 지난 200여년 시장을 지배해온 자본의 역할과 기반에 있는 것도 아니고, 자본에 종속되어 수탈당하여 왔던 근육질 또는 반복적 관리 노동에 의존하는 것도 아니다. 위에 언급하였듯이 다양한 참여와 협력과 혁신과 순환이라는 새로운 흐름을 형성하고 있는 산업기술적 기반을 더욱 확장시키고 가속시키면서, 변혁적 관점을 지닌 정치적 대표체제를 형성하고 이를 기반으로 시민적 합의를 통하여 나날이 눈부시게 누적되어 발전하는 제4차 산업혁명적 시스템을 여하히 합리적으로 운용하여 성과를 골고루 공유하는 데 달려 있다.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면 생산이 문제가 아니라 적절하게 소비해 줄 수 있는 수요가 핵심적 주제로 떠오르게 된다. 성장이 아니라 배분과 순환이 더욱 중요하게 부상한다.

이제 우리가 마주한 수많은 현안적 문제 해결의 핵심은 제2섹터인 시장을 중심으로 제1섹터인 공공영역과 제3섹터 부문을 종속(직렬)적으로 연결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제각기 역할로 분리시키고 하이브리드 방식처럼 상호보완적이며 병렬적으로 연결하는 데 있다.

한걸음 더 나가면, 정부의 역할은 축적된 과학기술과 지식에 기반하여 효율적으로 운용하여 시장경제의 성과를 이제 막 새로이 시작되는 제3섹터의 영역으로 적정하게 옮겨 나르는 양수(pumping)의 몫을 담당해야 한다. 한마디로 무한한 일자리의 보고인 제3섹터 영역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다. 실제가격 기준으로 1-2 % 수준의 재산세를 누진적으로 강력히 추진하고, 일정액 이상의 상속증여세를 80-90%로 인상하며, 그래도 부족하면 부가가치세율을 올려서 필요한 인프라 구축의 재정을 해결해야 한다.

공공적 역할로서 양수의 내용은 1) 기본적인 인간의 존엄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사회 안전망의 구축에서 시작하여, 2) 혁신적 협력기제가 작동할 수 있는 다양한 법과 제도를 도입하고 교육과 연구활동에 충분한 재원을 투입하면서 3) 중장기적으로는 기본소득, 기본재산(청년지분 할당) 그리고 복지청구권 등을 복합적으로 도입하는 것이다.

되풀이하여 언급하지만 제2섹터인 시장경제와 제3섹터인 자율적 시민영역을 종속적으로 연계하여서는 안된다. 올곧게 인류의 미래를 향해서 새로이 배양하고 육성되어야 할 제3섹터는 이익만을 위한 경쟁과 효율 중심의 시장경제의 논리가 아니라, 개인과 공동체간 연대 위에서 자기실현이라는 인간의 열린 가능성을 위한 규범적 논리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제3섹터의 영역을 운영하는 공적 강제의 방식에 대하여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오스트롬 교수는 ‘공유지의 비극을 넘어서’ 라는 저서를 통해 공동체 사회가 합의된 규칙을 만들고 평가와 감독의 체계를 형성하여 성과를 모두가 함께 공유하면서도 기여도에 따른 보상제를 도입하고 규칙을 어긴 경우에는 성찰과 반성을 계기를 부여하되 시정이 되지 못할 경우 적정한 제재를 가하는 동시에 재기의 기회를 부여하고 규칙 위반이 자주 발생하고 문제점이 빈번히 야기되면 다시 합의라는 과정을 통해 기존의 규칙을 수정하는 방식으로 진행할 것을 권하고 있다. 참여와 협력과 혁신이 작동하는 시스템 형성이 키워드인 셈이다.

대부분 인간은 시장경제에서 규정하는 것처럼 탐욕과 이기심의 존재가 아니라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가변적 실천적 존재이며, 이러한 가능성을 유도하고 실현해 낼 수 있는 것이 바로 합의된 정치적 체제와 제도적 지향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문재인 정부가 추구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회경제 정책은 높은 정치적 지지와 명분을 기반으로 공공적 역할을 넘어서서 제3섹터가 확장될 수 있는 제도를 법적으로 제정하고 실천적으로 강력하게 금융 등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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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살고 있는 곳은 가난한 소시민 중심으로 만 여명이 수 백동의 아파트 주거형태로 군집하여 있는데, 해당 구청이 주도하여 아파트 사이로 흐르는 개울을 활용하여 십 수년간 ‘발바닥’이라는 이름으로 공원을 조성하여 왔다. 개인이 투자하여 개발하려면 수백억도 부족할 만한 수천 평의 대지 위에 갖가지 수목으로 천변에는 계절마다 온갖 꽃과 각양의 잎새와 들풀이 자랑하고 있다. 겨울은 겨울대로 눈과 어름으로 즐거움을 제공하면서 만여 명의 시민이 함께 즐기는 공원은 놀랄 만큼 자율적 질서와 청결을 유지하고 있다.

거의 매일 한 시간 가량 공원산책을 즐기고 있는 필자는 스스로에게 “이 정원은 온전히 내 것임과 동시에 수 만의 지역 주민들과 함께 공유하고 있다”고 속삭인다. 개방된 소유, 함께하는 공유로 필자인 나는 한국의 최고 부자들보다 더 부유함과 넉넉함을 즐기고 있는 셈이다. 이것이 협력과 공유를 기본으로 하는 제3섹터 경제 영역의 놀라운 성과이자 기본적 성격이다.

시장경제의 순기능인 자원의 적정한 배분 역할과 효율적으로 성과를 제고하는 능력을 향상시키되 인간은 이기적이라는 가설에 기초한 자본의 탐욕을 억제하고, 케인지안 경제론과 북유럽 복지정책의 실천적 경험을 기초하여 인간의 존엄과 사회적 정의를 실천하면서, 이제부터는 자기실현을 향한 개인과 공동체간 참여와 협력과 공유의 새로운 시스템적 가능성을 실험하고 개척하는 제3섹터 영역으로 이동 전진하는 것이 온갖 문제로 신음하는 현존 인류의 미래적 과제이자, 양극화 및 빈곤과 청년실업 및 저출산 이라는 절체절명의 현안과제를 안고 있는 한국사회의 유일한 출구이다.

이제 제3섹터 경제의 시대를 활짝 열어야 한다. 일자리와 행복과 희망을 만드는 작업이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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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인정하든 안하든 백인에게는 뿌리 깊은 선민의식이 있다. 흑인에 대한 ‘태생적’차별이다. 일본도 조선에 대한 선민의식이 있다. 36년간을 지배했다는 자만감이 그것이다. 그럼 대한민국은 조선(북)에 대해 그런 ‘쓸데없는’ 선민의식이 없을까? 있다고 본다. ‘우리보다 못 산다’는 우월감 같은 것들이 우리의식을 강력하게 지배한다. 민주당 당 대표 이해찬의 표현을 빌려 이를 표현하자면 정말 ‘천박한’ 우월감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표현을 빌리면 먹고사는 문제로 ‘체제경쟁은 끝났다’는 말도 되지도 않는 소리이다. 유치원생들이나 초등학생들이 싸울 때면 툭하면 나오는 ‘너그 집은 우리 집보다 못살잖아’와 같은 유치한 말싸움이다.

이 모두를 총칭하면 대한민국 안의 오래된 ‘북(한)판’ 오리엔탈리즘이다. 북한이 무조건적으로 대한민국보다 못해야하고, 사회주의는 무조건 자유민주주의보다 못해야 한다는 지독한 반공이념의 잔재이다. 하지만, 그 편협한 인식을 거둬들이고 나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오히려 성립한다.

과연 대한민국은 정상국가인가?

한 국가의 정상성 기준을 ‘먹고 사는’ 경제지표로만 평가할 수는 없을 텐데, 그런 측면에서 대한민국이 북에 대해 배워야 할 것들은 없는지 겸허하게 따져봐야 한다. 왜냐하면 남과 북은 통일로 반드시 다시 만나야 할 민족이고, 미래이기 때문이다. 백년대계가 그렇게 우리 앞을 기다린다.

①하나, 뭐니 뭐니 해도 국가와 국가 간 비교에서 정상이냐 비정상이냐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잣대중의 하나는 ‘자주국가’냐, 아니면 ‘예속(종속)국가’이냐 하는 그것일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같은 민족으로써 동일한 식민지 경험이 있지만, 그것을 극복해가는 과정은 정 반대였다. 대한민국은 외세에 대해 좀 자유롭지 못한 반면, 반대로 북은 국가의 생명과도 같은 ‘자주’를 나름 잘 지켜내었다. 세계 최강 유일강대국과 상대하며 극강제재와 압박을 잘 견뎌내었다. 아니, 견뎌오고 있었다고 봐야한다.

이는 제아무리 대한민국이 선거제도라는 민주성과 세계 10위 내외의 경제력, OECD가입국이라 하더라도 미국식 민주주의체제에 포섭되어 ‘미국이 기침만 해도 감기 걸리는 체질’의 대한민국이 좀 본받아야만 하는 북의 국체와 같다.

②둘, 국난을 극복하는 방식의 차이 문제이다.

남과 북은 공히 1990년대 그 성격과 내용은 좀 달랐지만, 똑같이 어려움을 겪었다.

대한민국은 극단적 시장자본체제인 신자유주의정책 수용과 모라토리엄(국가부도)으로 나타났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기간 그나마 부족하게 시행되어왔던 국민복지, 노동복지, 인권과 경제권마저도 상당히 후퇴시켰다. 촛불정부라는 문재인 정부도 이 후유증을 제대로 극복해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반면, 북은 그러한 상황-에너지난, 식량난, 외화난 속에서도 아주 높은 수준에서 국가가 시행해왔던 인민복지정책을 포기하지 않았다. 비록 이러저러한 우여곡절을 겪기는 했지만 말이다. 전반적 무상 11년 의무교육제도(지금은 12년)와 무상 의료치료제도, 무세금제도, 무상 주택분배제도 등은 그대로 지켜져 국가의 무한책임을 다했다.

누가 더 국가적 의무를 다했다고 볼 수 있는가?

체제와 이념의 프레임을 벗어던지면 국가를 부도내고, 하루아침에 그 평범한 수많은 노동자와 국민 일상의 삶을 파탄으로 몰고 간 그런 대한민국, 그 극복이후에는 권력과 돈으로 갑질‘gapjil’이 일상화되고, 결과 1: 99사회가 되고, 전직 대통령들이 줄줄이 감옥가는 그런 대한민국이 더 정상적인가?

아니면 모든 인민들을 ‘배고픈 소크라테스’의 인내를 요구하며 어려운 국가살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신들의 전략과 노선을 지켜내려고 했던, 더 나아가 국가의 생명선과도 같은 자주의 문제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서 당당한 국가의 모습을 보여주려 했던 그런 국가가 더 정상적인가? 쉽지 않는 판단의 문제이다. 하지만, 또한 분명한 것은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없듯이 자주 또한 구걸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③셋, 자기언어(국어)에 대한 태도문제이다.

자기 나랏말로 국어를 정해놓고도 세계적 추세라는 미명하에 국어인지 외국어인지 구분이 안 갈만큼 혼용되어진 일상 언어가 판치는 그런 국가와, 자기 민족의 전통과 자기 민족의 언어 순수성을 잘 지켜나가고자 노력하는 그런 국가 중에 어느 국가가 더 정상적이며 어느 국가가 더 비정상적인가?

분명한 것은 우리말, 우리글 장려정책 일환으로 꼭 필요한 외래어가 아니면 모두 우리말로 표현해야 된다는 법률이 대한민국에게는 있다. 그러함에도 대한민국은 자기 국어에 대한 철학과 태도정립이 모순되게도 ‘영어화’된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좀 폼 나 보이려고, 또는 영어·국어, 심지어 신조어까지 혼용해야만 하는 분위기라서 .. 등등, 그렇게 우리 모두는 육체적 몸통만 한민족이고, 정신적 영역의 세계는 미국화에 함몰된다.

또 다른 한 예도 그 민낯이 적나라하다.

법으로 한글 이외의 옥외간판은 법률적으로 처벌대상이지만, 이미 외래어 간판의 천국이 되어 버린 대한민국이다. ‘웃고픈’ 한 현실은 시부모님이 찾아오지 못하게 아파트이름도 외래어로 어렵게 짓는다는 그런 국가가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이다. 과연 정상적인가? 국어사용 우선 법률이 있음에도 그 법률은 이미 사문화되어 외래어가 도시 전체를 집어삼켜 무국적의 도시화가 엄청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④넷, 이 외에도 수많은 비교로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할 수 있다.

자살률, 실업률, 교통 사고율, 노인 빈곤율, 산재 사망률, 입시지옥(1등주의) …. 등등 10여 가지 지표 이 모든 것들이 OECD기준에 대입되면 꼴지 이거나 꼴지 그 다음 순위이다. 수 십 년째 그렇게 일상화된 대한민국이다.

반면, 북은 유엔인권규약 A로 볼 때 국가가 가장 높은 높이에서 모든 인민들에 전반적 무상 11년 의무교육제도(지금은 12년)와 무상 의료치료제도, 무세금제도, 무상 주택분배제도가 보장되고, 국가 구성원 들 중 당원이나 당 간부들의 과로사가 제일 많다. 이와는 달리 대한민국 관료사회는 자기 국민에 대해 ‘개, 돼지’ 취급하는 사회이다.

무얼 함의하고 있는가? 그런데도 우리가 북보다 났다고 할 수 있는가? 전형적인 외눈박이 북(한)인식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철저하게 북을 리바이어던(Leviathan)된 괴물로 제조해(manufactured) 그 허상으로 권력유지와 통치기반의 정당성을 확보해야만 하는, 즉 미증유의 반공이념에다 이것도 모자라 더 반북(反北)화된 종북이데올로기를 탄생케 해 한국판 매카시즘(마녀사냥)을 불러들인 대한민국이다.

그래서 다시 묻는다. 과연 대한민국은 정상적인 자유민주주의체제인가?

촛불정부(를 자임한) 대통령께서는 북을 향해 ‘체제경쟁이 끝났다’했지만, 헌정사상 임기 중 대통령이 파면될 만큼 대의민주주의체제는 허약했고, 그와는 또 다른 의미로 현대 정당정치에서 국민적 지지여부로도 충분히 해결될 수 있는 정당문제마저도 법(국가보안법)적 잣대가 개입돼 진보정당이 해산되는 너무나도 허약한 체질의 자유민주주의체제가 대한민국이다.

낯설지 않는 대한민국 풍경이다. 대한민국은 그렇게 ‘내 안의 티끌은 진작 보지 못하고, 남의 티끌만 크게 보는’ 그런 못난 국가와 똑 닮아있다.

미국에 대해서는 미국을 너무나 닮아싶어 했고, 그 모든 것을 신봉하려했던 우리 대한민국이었지만, 진작 우리안의 또 다른 반쪽, 북에 대해서만은 너무나도 민망한 인식의 소유자들이었다.

이제는 벗어나자. 이 모든 것들에 대해 우리가 북을 찬양할 이유도 없겠지만, 적어도 제대로 된 북 들여다보기는 해야 한다. 불필요한 구시대적 적대의식과 분열구도를 넘어서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북 바로알기 및 배우기가 시작되어야 한다. 그렇게 성큼 통일의 기운이 다가올 수 있게 해야 한다. 충분히 이미 대한민국 국민이지만, 북으로부터도 배울 수 있는 것은 배울 수 있는 그런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국민이 되고 싶다.

토, 2020/08/08-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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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언론을 보면 매일매일 코로나19 확진자 및 사망자 수 관련 기사와 마스크 대란 기사가 도배된다. 대부분의 언론들은 늘어나는 코로나19 확진자 및 사망자 수를 농구경기 스코어 중계하듯 보도한다.

더 한심한 건 마스크 관련 기사다. 거의 모든 언론이 ‘마스크 대란’, ‘마스크 품절’, ‘마스크 구입 위한 장사진’ 따위의 기사를 쏟아낸다. 이런 기사들은 마스크 수급을 위한 대안은 없이 마스크 공급을 제대로 못하는 정부 성토로 가득하다.

 

시장경제원리가 정확히 작동하는 마스크 시장

마음을 가라앉히고 곰곰히 생각해보자. 마스크를 생산하는 국내 민간기업들의 공급 한계량은 하루 1000만장 남짓이다. 그럼 국내 마스크 생산 업체들이 지금처럼 생산능력의 한계까지 기계를 돌려 마스크를 생산한 때가 또 있었을까? 단언컨대 없었을 것이다.

마스크 소비가 과거에 비해 크게 증가한 것도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린 근년부터인데, 소비가 크게 늘었다고 해봐야 마스크 제조업체들의 생산능력 한계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을 것이 자명하다.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전의 일 평균 마스크 생산량은 최대 생산가능량의 몇분의 1 수준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신천지 교인들의 집단 감염 등으로 코로나19가 전국으로 번지면서 너나 할 것 없이 공포에 질린 채 마스크 구입에 혈안이다. 쉽게 말해 가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부당이득을 노린 생산업체·유통업체의 사재기도 마스크 가수요 증가에 일조했음은 물론이다)했고, 이 가수요는 국내 마스크 제조업체들의 생산능력한계를 가볍게 넘어선다.

전 국민이 매일 마스크 한 개씩만 구입하려해도 매일 5000만개의 마스크가 필요하다. 현재 마스크 생산능력의 5배에 달하는 수요를 당장 해결할 길은 전혀 없다.

그리고 감염병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생긴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민간업체들이 생산 시설과 인력을 대거 늘릴 리도 만무하다. 감염병이 잦아들고, 해 뜨면 사라지는 아침안개처럼 가수요가 소멸되면, 생산 시설을 확장한 기업들을 기다리는 건 파산이기 때문이다. 설사 일부 기업들이 그런 무모한 선택을 한다해도 시차효과 때문에 지금의 공급부족 현상을 타개하는 데는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게 대한민국 경제가 채택하고 있는 시장경제원리의 작동 방식이다. 감염병으로 인해 가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마스크 가격이 폭등하고, 마스크가 품귀 현상을 빚는 건 시장경제원리상 지극히 당연하다. 시장원리를 조금만 알아도 지금의 마스크 부족을 정부 탓만으로 돌릴 수 없다.

 

정부가 마스크 공급? 엄청난 낭비와 비효율도 감수해야

그러거나 말거나 언론과 야당, 일부 시민들이 문재인 정부에 요구하는 건 이런 것 같다.

‘코로나 사태 이전과 같이 KF80, KF94마스크를 1000원 남짓의 저렴한 가격에 맘 편하게 구입하고 싶다. 정부가 무능해서 혹은 사태 초기에 중국에 퍼줘서 마스크가 모자라니 정부는 책임져라.’

이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매일 5000만장의 저렴한 마스크를 전 국민에게 신원을 확인해 배급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 보다 다섯 배 이상의 마스크 생산능력을 확보해야 하고, 매일 전 국민에게 1인 1장의 마스크를 제공하는 배급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정부가 마스크 생산업체를 전부 국영으로 만들든, 아니면 지금의 마스크 생산업체들이 매일 5000만장의 생산능력을 확보하고 유지하는 데 드는 천문학적 비용(공장증설, 기계구입, 인력확충 비용 및 그 유지비용)에 대해 정부 보조금을 지급하든 어마어마한 비용이 발생하는 건 불문가지다.

생산능력만 확보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다. 사재기 등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매일 1인 1장의 마스크 배급이 정확히 이뤄져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신원 확인 시스템과 배급 장소 및 배급 담당 인력의 확보가 선행되어야 하는데 모두 엄청난 비용이 발생할 게 자명하다. 마스크 5000만장 생산능력 확보 및 유지, 마스크 배급체계의 구축 및 유지 등에 들어가는 천문학적 비용은 모두 세금이다.

그런데 이게 지금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어쩌다 발생하는 전염력 강한 역병에 대처하기 위해 정부가 천문학적 낭비와 비효율을 감수하는 게 말이다. ‘모든 시민들에게 매일 저렴한 마스크를!’을 외치며 정부를 성토하는 자들은 적어도 그에 따르는 천문학적 낭비와 비효율을 감수할 각오는 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시장경제와 작은 정부를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자들이 그럴 리 없다.

 

지금은 마스크 가수요를 억제하는 방법뿐

거듭 말하지만 지금의 마스크 품귀와 가격 상승은 감염증 공포로 인한 가수요 때문이다. 이로 인한 일시적 마스크 부족 해결 방법은 가수요를 통제하는 길 뿐이다. 사재기에 대한 단속은 물론이거니와 개인이 특정 기간 동안 구입할 수 있는 마스크의 수를 제한해야 한다. 정부도 그렇게 가닥을 잡은 것 같아 다행이다.

코로나19 공포 마케팅을 통해 마스크 가수요를 폭발시킨 언론은 이제 마스크 타령 좀 그만하기 바란다. 이 마당에도 배급제 운운하며 정부를 공격하는 언론도 있다. 공격하더라도 대안을 내놓고 하기 바란다.

토, 2020/03/21-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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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표충비의 눈물은?

지난 11월 18일 등을 포함한 많은 언론매체들에서 ‘밀양 표충비가 18일 오전 5시간 동안 1L 가량 땀을 흘렸다’는 보도를 내보냈다. 비록 과학적 근거는 없지만, 국가중대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땀을 흘리는 것으로 유명한 비석이기에 언론도 주목하지 않았나, 그렇게 추측할 수 있다.

<출처: 민플러스>

실제 1894년 동학농민 운동, 1919년 3·1독립만세운동, 1945년 8·15 해방, 1950년 한국전쟁, 1985년 남북고향 방문 등에 땀을 흘렸다고 한다.

그럼 이번 눈물의 의미는? 아무래도 지소미아 연장결정(11월 22일)때문인 것 같다.

이유는 지소미아 연장결정이 국난(國難)에 해당되고, 이는 일본의 강점으로부터 지리학적 해방은 분명하나, 여전히 우리 대한민국이 이번 결정을 통해 정신사적·정치적 해방이 아직 요원함을 반증해줘서 그렇다.

달리는, 일본의 아베정부는 이번 문재인 정부의 결정을 통해 도저히 불가능해보였던(강조, 필자) 군사안보적인 지소미아문제를 역사와 경제문제로 연결시킨 것에 대한 정당성 획득과, 기간 식민지배에 대한 부정과 한일기본조약 인정 등 역사왜곡 문제도 용인 받을 수 있는 그런 양득을 취했다.

 

2. 지소미아 연장결정에 대한 진실

아시다시피 지소미아 ‘조건부 연장’결정은 문재인 정부가 ‘일본이 하는 걸 보고 최종적으로 지소미아 종료 여부를 결정 하겠다’면서 내놓은 근거이다. 이것만 보면 마치 칼자루를 우리(우리 정부)가 쥔 것처럼 보이는 논리포장도 가능하다.

하지만, 발효·개정·기간 및 종료를 담은 지소미아 협정문 제21조의 3항 그 어디에도 ‘조건부 종료’나 ‘조건부 연장’ 조항은 없다.

그렇다면 이 결정은 ‘사실상’ 일본정부에 대한 굴복이고, 포장만 그렇게 되고 있을 뿐이다.

백번양보해 정부의 논리를 수용한다 하더라도-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아무 때나 지소미아를 중지시킬 수 있다고 한다면, 그렇다면 왜 이제까지 박근혜 정부의 적폐 중의 적폐였던 지소미아 종료결정을 이제까지 하지 못했던가? 그 물음에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이번 결정은 철저하게 미국의 전 방위적인 압박과 현 정부에 포진되어있는 친미관료들과 참모들의 숭미의식, 적폐세력의 본산이라 할 수 있는 한나라당 등 보수우파의 집중공격에 대한 굴복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해서 이번 결정은 ‘사실상의’ 일본정부에 대한 굴복과 함께, 누가 뭐래도 촛불민심과는 거리가 먼 세력들에 대한 항복일 뿐이 되는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다음의 정부 태도에서 금방 알 수 있다.

모욕적인 ‘진실게임’대신, 정부의 연장결정 논리대로라면 연장결정 파기를 하면 되는데도 그렇게 하지는 못하고 ‘진실게임’만 하고 있다? 연장결정 된 순간, 이제는 미국의 승인 없이는 연장철회 결정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논리적 진실과 그렇게 맞닿는다.(강조, 필자)

 

3. 이제는 물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 과연 촛불정부인가?

이렇게 결과를 놓고 보면 진작 물었어야 했지만, 그래도 일말의 기대가 남아있어 미적미적하기만 했다. 하지만, 이번만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어 묻는다.

일본을 주인공으로 하여 미국이 총 연출한 정치·군사적 막장드라마이고, 수출규제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제거되어야 할 박근혜 정부의 적폐 중의 적폐이고, 또 내용적으로도 지소미아문제는 그 본질이 한일군사정보교류를 넘어 군수지원, 한반도 자위대 파견으로 이어지는 출발점이며, 일본에 군사기술과 정보의 종속을 불러와 일본의 한반도 재침략의 길을 열어주는 전쟁동맹에 불과한데도 이를 촛불정부임을 자임하는 문재인 정부가 해결하지 못한다?

역사에 ‘큰 과오가 있는’ 그런 정부로의 전락이다.

아마도 정상적이었다면 문재인 정부는 이번 일본 아베정부의 패착을 잘 활용해 지소미아 종료선언과 함께, ‘불평등한’ 한미동맹체제에서 탈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삼았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하질 못했고, 그 원인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이미 곳곳에서 그러하지 못한 이유가 착착 포착되었다. 단지, 우리는 그걸 보지 않으려고 했을 뿐이다.

이름하여 재임임기 반을 돈 지금 양극화 해소, 소득주도 경제를 비롯한 일자리창출, 청년실업해소정책, 52시간 근무제, 최저임금제 완전도입 등 곳곳에서 공약후퇴와 기층민중 중심의 정책은 파탄되고 있었다. 대신, 경기활성화라는 미명아래 삼성 등 재벌 총수들에게는 면죄부를, 재벌해체는 요원해져버렸다.

남북관계가 기대이하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정치적 문제와는 전혀 상관없는 인도주의 문제이자 박근혜 정부 하에서도 추진되었던(강조, 발제자) 이산가족 상봉 및 식량지원 문제(의료품 포함) 등도 기대만큼 추진되지 못하고, 공약사항을 이미 넘어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합의된 개성공단 및 금강산관광 등도 재가동, 혹은 재개되지 못하였다.

명백히 우리 (민족내부)문제이고, 나름 주권국가 두 정상이 합의한 사항인데도 미국에 승인받아 진행하겠다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는 태도가 그렇게 발목을 움켜잡고 있다 보니, 그러다 보니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민족자주와 자결의 원칙’에 합의해놓고도 미국의 내정간섭 기제인 한미 워킹그룹을 생성시켜 그 합의를 무색케 한다.

일련의 이런 후퇴들이 결국 지소미아 연장결정까지 오게 한 것이다.

 

4. 무엇이 문제이던가?

이를 원인 없는 결과가 없다했을 때 그 이유를 곰곰이 따져보면 대략 3가지의 분명한 이유가 읽혀진다.

첫째는, 대통령 자신의 문제이다.

▲대통령으로써 가져야 할 철학이 분명한가? ▲촛불시대정신에 대한 이해가 명확한가? ▲촛불민심을 제대로 읽으려는 공감능력을 갖고 계신가? ▲결국 용인술(마키아벨리적 사고)의 부족과 인사정책에 대한 실패가 도드라진다.

둘째는, 내각과 참모의 무능, 혹은 사대의존 문제이다.

▲미국에 대한 新재조지은(再造之恩)이 보수정권을 충분히 능가한다. ▲민족적 시각은 거의 제로이고, 반면 동맹시각은 거의 100%이다. ▲촛불로 탄생된 정권에 대한 사명은 온데간데없고, ‘누구의’ 청와대이며 ‘누구를’ 위한 내각이던가? 그 물음만 남긴다.

셋째는, 집권여당 민주당의 사상누각 망상문제이다.

▲진보능력은 하나도 없으면서도 진보이미지는 절대 빼앗기려 하지 않는 과잉진보이득집착이다. ▲촛불민심 수용은 내뱉어 치면서 장기집권 20년 플랜만 몰두한다. ▲정책에 내 탓은 없고, 오로지 남 탓(전임정권과 적폐·보수야당)만 있다. ▲정당의 본령인 정치 대신, 대통령 뒤에만 꽁꽁 숨어있다.

이 모든 결과가 맞아떨어져 트럼프가 한 발언, “그들(한국 정부)은 우리의 승인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20181010, 현지시간)”가 쏙 귀에 박힌다.

 

5. 결론을 대신하며

참으로 안타까운 상황이 그렇게 발생한다.

많은 분들이 현 문재인 정부에 대한 지지가 민주당만의 정권이어서가 아니라 촛불정부이기 때문이었는데, 그 정치적 지지가 #3에 의해 흔들리고, #2에 의해 심리적 지지마저도 할 수 없게 만드니 그 어찌 안타깝다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촛불민심과는 그렇게 멀어지고 마, 민주당 정권만으로 전락되니 (정권으로서의) 그 역사성은 분명 사라진다. 떠받치고 있던 두 기둥 중 한 기둥이 그렇게 무너져 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또다시 성립시켜 물어본다.

지금, 문재인 정부는 과연 촛불정부라 할 수 있겠는가?(강조, 필자)

물을 수밖에 없고, 판단은 이제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진다.

그렇지만, 아쉬움이 남는 것도 솔직한 심정이기에 필자로써 마지막 한 순간까지 부연설명하며 대통령께 당부 드리고 싶은 것은, 당신께서는 왜 대통령이 되고자 했던가? (스스로를) 되묻고, 그 끝에 임기 5년만을 무난히 채우고자 한 것이 아니라면 ‘과연 나는 참모들과 관료들을 제대로 잘 쓰고 있는가?’를 그 시작으로 ‘과연 나는 지금 촛불시민들의 열망과 염원을 제대로 받아 안고 있는가?’, ‘과연 나는 지금 촛불시대정신을 제대로 구현하고자 하는 의지는 있는가?’, ‘과연 나는 지금 소명 받은 그 역사의 길에서 떳떳하게 잘 가고는 있는가?’

묻고, 최종적으로는 그 결론에 민주당만의 정권에서 촛불정부로 다시 귀환하는 그런 정부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민플러스, 2019년 11월 29일에 게재된 글입니다 (필자와 협의하여 수정 후 본지에 실린 것임).

목, 2019/12/05-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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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요청] 제4회 신진연구자 지원사업
개최

일시, 장소 : 12. 10. (목) 15:30, 참여연대 2층 아름드리홀
오프라인 참여신청: https://forms.gle/YPUyNHREHBj5GMdK7
생중계 –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채널: https://bit.ly/pensionforall

취지와 목적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은 연금 공공성에 대한 전문연구인력 형성에 기여하고 신진연구자들의 연금정책 관련 연구활동을 지원하고자 2017년부터 공적연금 학술제를 개최해왔습니다. 올해도 제4회 신진연구자 지원사업으로 를 개최하여 노후소득보장 및 공적연금 분야에 뜻있는 연구자를 지원하고자 합니다.
이번 신진연구자 공적연금 학술제에서는 프랑스, 러시아 등 해외 연금개혁 사례를 살펴보는 기회를 가질 예정입니다. 이번 학술제가 공적연금 연구를 풍성하게 하는 장으로 자리매김 하기를 기대하며 귀 언론사의 취재와 보도를 요청합니다.

개요
행사제목: 2020년 신진연구자 공적연금 학술제
일시 및 장소: 2020년 12월 10일 목요일. 오후 3시 30분, 참여연대 2층 아름드리홀
프로그램
좌장: 이찬진 공동집행위원장
발제1. 2018년 러시아 연금개혁 정책네트워크 구조변화 실증분석 : 사회연결망 분석기법 적용, 이정민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러시아CIS전공 박사수료
발제2. 프랑스 마크롱 정부의 연금개혁안이 공적 연금 체계에 미칠 영향에 관한 논의 및 시사점, 온명근 파리13대학 경제학 박사수료
토론자
정해식(한국보건사회연구원 공적연금연구센터 센터장)
한신실(국민연금연구원 부연구위원)
김윤영(경기연구원 연구위원)
윤세영(국민연금지부 정책위원)
주최 :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비판과 대안을 위한 사회복지학회, 한국산업노동학회, 사회공공연구원
후원 : 민주노총 국민연금지부
오프라인 참여신청 : https://forms.gle/YPUyNHREHBj5GMdK7
온라인 생중계 :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유튜브 채널(https://bit.ly/pensionfor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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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20/12/03-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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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행동은 21대 국회 회기가 시작된 2020년 5월 30일부터 2021년 6월 30일까지 발의된 기초연금법, 국민연금법,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3개 법안을 중심으로 현황을 제시하고 내용을 평가한 이슈페이퍼를 발행하였습니다.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 주요 내용 요약 >

첫째, 점점 더 많은 연금법안이 발의되고 있다. 국민연금법 발의건수만 보더라도 지난 20대 국회는 16대 국회보다 10배 가까이 증가했다. 21대 국회 역시 불과 1년이 지났지만 총 56개 법안이 발의됐다. 이런 증가는 그만큼 노인 빈곤과 노후 불안의 심각성과 사회적 관심이 증가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둘째, 그러나 실제 법안 처리률은 다른 법안 평균보다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21대 국회 역시 국민연금법 6.7%, 기초연금법 6.3%, 퇴직연금법 12.5%로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셋째, 국민 노후를 위해 중요한 여러 개정안이 ‘발의와 임기만료 폐기’를 반복하고 있다. ▷국가 지급보장 명문화, ▷출산(양육) 및 군복무 크레딧 개선, ▷장애·유족 연금, 분할연금 개선, ▷국민연금 관리운영비 국고지원 확대, ▷국민연금기금 공공투자 확대, ▷기초연금 국고 부담 확대, ▷1년 미만 단기간 노동자 및 초단시간 노동자에 대한 퇴직급여 대상 확대 등은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되는 중요한 과제다.

넷째, 국민연금 지역가입자 보험료 지원은 이미 지난 20대 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돼 2020년 7월 1일 시행될 예정이었으나, 1년이 넘도록 시행되지 않고 있다. 기재부가 예비타당성 검토 등을 구실로 예산을 배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더욱 절실한 지역가입자 보험료 지원이 하반기부터라도 반드시 시행돼야 한다.

다섯째, 문재인 정부는 국민연금 강화를 위한 정부안을 발의하지 않았다. 기초연금 급여 인상에 대해서는 정부안을 발의했던 것과 대조적이며, 국민연금 강화에 대한 개혁 의지가 낮았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 이슈페이퍼 첨부파일 참조
2021_이슈페이퍼_21대_연금법안_현황과_평가.pdf
2021_이슈페이퍼_21대_연금법안_현황과_평가.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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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21/07/08-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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