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山僧의 詩에 화답하다

지역

山僧의 詩에 화답하다

익명 (미확인) | 토, 2018/07/07- 08:31

和山僧韻(화산승운)

 

不德無才器(부덕무재기)

浮遊獨醉吟(부유독취음)

前宵巖下宿(전소암하숙)

此夜覓松林(차야멱송림)

 

山僧의 詩에 화답하다

 

덕이 부족한 데다가 才器도 없어

이리저리 떠돌며 홀로 취해 읊소

간밤엔 바위 밑에서 잠을 잤는데

이 밤에는 솔숲을 찾아볼까 하오.

 

<時調로 改譯>

 

부덕하고 才器 없어 떠돌며 홀로 醉吟

간밤엔 바위 밑에서 잠을 청해 봤는데

이 밤엔 소나무 숲을 찾아볼까 한다오.

 

*和韻: 남이 지은 詩의 韻字를 써서 화답하는 詩를 지음 *不德: 덕이 없거나 부족

*才器: 사람이 지닌 재주와 기량. 재주가 있어 人才 만한 인품. 또는 그런

사람 *浮遊: 물 위나 물속, 또는 공기 중에 떠다님. 행선지를 안 정하고 이리저리

떠돎 *醉吟: 술에 취해 詩나 노래를 읊음 *前宵: 어젯밤 *此夜: *松林: 솔숲.

 

<2018.7.7, 이우식 지음>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0829-5

▲ 경술국치 108주년인 29일 서울 용산구에 개관한 국내 최초의 일제강점기 전문박물관인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한 어린이가 전시를 둘러보고 있다. / 권도현 기자 [email protected]

국내에서 처음으로 일제강점기 역사에만 초점을 맞춘 식민지역사박물관이 경술국치 108주년인 29일 서울 용산에서 문을 열었다. 2011년 2월 박물관 건립위원회가 출범한 지 약 8년 만의 개관으로,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기부와 시민들의 모금으로 건립된 민간 박물관이다.

박물관은 민족문제연구소와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등 시민단체와 학계 등이 중심이 돼 민간 차원에서 추진돼 왔다.

송기인 초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장이 재직 2년간 받은 급여 2억원을 전액 기탁한 것을 계기로 본격적인 건립이 추진됐다. 이후 초등학생들부터 학계, 시민사회 인사들까지 1만여명의 시민이 건립운동에 참여해 16억5000만원의 건립 기금을 조성했다. 독립운동가 후손과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들도 자료와 기금을 보내는 등 건립운동에 동참했다. 일본의 과거사 관련 시민단체들과 학계 인사들 역시 1억원이 넘는 기금을 보냈다.

박물관에 전시된 상당수 자료들은 독립운동가 후손 등 시민들이 기증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낸 조경한 선생의 외손 심정섭 선생이 68차례에 걸쳐 6000점이 넘는 자료를 보내 왔고,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들도 희생자들의 한이 서려있는 유품을 박물관에 보냈다.

박물관에는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 편찬 과정에서 축적한 자료 등을 포함해 총 7만여점의 자료와 5만여권의 도서가 수집됐다. 이 중 엄선한 일부가 박물관에 전시되고 나머지는 보관해 관리한다.

박물관의 상설 전시관은 일제의 한반도 침략부터 식민 통치와 수탈, 친일파와 항일 운동, 해방에 이르기까지 일제강점기 역사를 담은 총 4부의 전시로 구성됐다. 강제병합 당시 순종의 칙유와 데라우치 통감의 유고, 3·1독립선언서 초판본, 을사오적 등 친일파의 훈장과 유품 등 희귀한 자료가 전시됐다. 박물관은 향후 소장자료를 활용해 전시는 물론 교육교재와 역사문화 강좌, 답사 프로그램도 마련할 계획이다.

박물관은 서울 용산구 청파동 효창원 인근에 세워졌다. 박물관 관계자는 “남산과 용산 일대는 일제의 침략전쟁과 식민통치의 본산이 자리 잡고 있었고, 해방 이후에는 독립운동 선열의 묘역이 효창원에 들어섰다”면서 “식민지역사박물관이 독립정신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고 가꿔나가는 역사문화벨트의 중심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이화 박물관 건립위원회 집행위원장은 이날 개관식에서 “1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건립운동에 참여하는 등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자발적인 역사문화운동을 통해 박물관이 개관했다”며 “단순한 자료 전시에만 집착하지 않고 시민과 청소년들이 대화하고 소통하는 열린 공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0829-6

▲ 경술국치 108주년인 29일 서울 용산구에 개관한 국내 최초의 일제강점기 전문박물관인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시민들이 전시를 둘러보고 있다. / 권도현 기자 [email protected]

0829-7

▲ 경술국치 108주년인 29일 서울 용산구에 개관한 국내 최초의 일제강점기 전문박물관인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시민들이 전시를 둘러보고 있다. / 권도현 기자 [email protected]

선명수 기자 [email protected]

<2018-08-29> 경향신문

☞기사원문: 시민과 독립운동가 후손이 만든 ‘아픈 역사를 배우는 박물관’ 식민지역사박물관 용산에 개관

※관련기사

☞연합뉴스: ‘아픈 역사 한눈에’ 식민지역사박물관, 경술국치일 맞춰 개관


[포토] 경술국치일에 돌아보는 일제 만행의 증거들

29일 서울 용산구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문 열어

국내 최초의 일제강점기 전문박물관인 ‘식민지역사박물관’이 경술국치 108주년인 8월 29일 서울 용산구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문을 열었다. 박물관에는 1875년 운요호 사건에서부터 해방에 이르기까지 70년에 걸친 일제 침탈과 그에 부역한 친일파의 죄상을 정확히 기록한 사료와 전시물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서울시 용산구 청파동 효창원 인근에 자리잡은 박물관의 규모는 지하 1층부터 지상 5층까지 연면적 1500여㎡에 이른다. 박물관에는 기획전시실과 상설전시실, 서고와 수장고, 연구실 등을 갖췄다.

전시실에 보관된 일제강점기 일본의 만행을 증언하는 사료들 중 일부를 모아본다.

1. 순종황제의 칙유와 데라우치 통감의 유고

0829-8

▲ 순종이 국권을 넘긴다고 밝힌 칙유로 석판 인쇄된 원본이다. “국권을 내가 믿고 의지하는 이웃 나라 일본 황제 폐하에게 넘긴다”는 내용이 쓰여있다. 조선 1대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부임하면서 시정방침을 밝힌 포고문에는 “전 한국원수의 희망에 응하여 그 통치권 양여를 수락한다”고 쓰여 있어 조약 체결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김정효 기자

2. 을사오적 권중현이 받은 메달

0829-9

▲ 을사오적 중 1인인 권중현이 한국 병합을 기념해 받은 메달과 증서이다. 권중현은 1907년 1월 을사늑약이 무효임을 밝힌 고종황제의 친서가 <대한매일신보>에 발표된 직후 ‘을사오적’의 암살을 기도한 나인영 오기호 등에게 저격당했으나 목숨은 잃지 않았다. 강제병합 뒤 조선총독의 자문기구인 중추원의 고문에 임명되어 1920년까지 10년간 매년 1600원의 수당을 받았다. 김정효 기자

3 조선총독부 폐검

0829-10

▲ 조선총독부 문관들이 착용하는 칼. 직급과 상관없이 모두 제복에 칼을 착용하도록 하여 조선인들에게 총독부 관리의 권위를 과시하고자 했다. 칼자루와 칼집에 ‘오동 문양’이 한 개씩 새겨진 것으로 보아 ‘주임관’이 사용한 폐검이다. 손잡이는 상어 가죽을 입혔다. 김정효 기자

4. 천인침과 군 위문품 속조끼

0829-11

▲ 천인침은 참전한 사람이 무사하기를 빌며 1미터 정도 길이의 흰 천에 붉은 실로 여성 천 명이 한 땀씩 꿰매어 만든 일종의 부적이다. 천인침은 부적과 같이 배에 두르거나 모자에 꿰메어 다녔다. 아래 속조끼는 부산공립고등여학교 2학년생 야마구치 사치코가 ‘무운장구’라고 쓴 미나미 조선총덕의 글씨와 일종의 호신부로 조선신궁의 도장을 찍은 천을 덧대어 만든 속조끼이다. 조선군사후원연맹이 학생들이 만든 것을 모아 군인에게 위문품으로 보냈다. 김정효 기자

5. 궁성요배

0829-12

▲ 아침마다 ‘천황’ 있는 동쪽을 향해 의무적으로 절(궁성요배)을 해야 했던 당시 모습을 촬영한 사진들이다. 김정효 기자

6. 중일전쟁 전투일지를 기록한 일장기

0829-13

▲ 이나바 부대보병 제6사단 등이 1937년 7월에서 1938년 11월까지의 중일전쟁 전투일지를 기록한 일장기이다. 히노마루 안에 난징과 한커우를 점령한 날짜가 정확히 적혀 있다. 남경대학살에 가담한 것으로 추정되는 일정이 눈에 띈다. 김정효 기자

7. 특별지원병 이은휘의 장행기

0829-14

▲ 장행기는 청년들이 죽으러 나갈 때 앞세운 깃발이라고 해서 ‘청춘만장’이라고 불렸다. 이 깃발에는 “축 육군병지원자훈련소입소 궁분은휘 군, 국민총력 김제군 월초면 제남부락 연맹”이라고 쓰여있다. 이은휘는 1941년 지방공무원 시험을 보기 위해 면사무소에 갔다가 사실상 강제로 지원병으로 끌려갔다. 당시 임신 8개월이었던 아내를 두고 그는 결국 1944년 7월 11일 남태평양 파푸아뉴기니 라바울에서 전사했다. 아래는 당시 일본군 육군 병사가 사용한 군복과 철모 수통 등 군장이다. 김정효 기자

김정효 기자 [email protected]

<2018-08-29> 한겨레

☞기사원문: [포토] 경술국치일에 돌아보는 일제 만행의 증거들

수, 2018/08/29- 19:25
85
0

[인터뷰]

동네책방 아저씨, 풀벌레 일꾼, 은종복 회원 면담기

김진영 선임연구원

05

 

지난 5월 2일 책방 ‘풀무질’ 대표 은종복 회원을 만났다. 처음에는 연구소에서 만나기로 했지만 전날 밤 은회원의 새 책(????책방풀무질:동네서점아저씨은종복의25년 분투기????,한티재,2018)을읽고약속장소를서점으로 옮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약속 장소를 조정하기 위해 전화했더니 반갑게 맞아주었다. 시간을 조정하다 결국 서점에서 만나 은회원의 어머님께서 싸주신 저녁 도시락을 함께 먹기로 했다.
은회원은 서울 명륜동에서 25년째 ‘인문사회과학 책방-풀무질’을 운영하고 있다. 지금은 ‘풀무질 책놀이터 협동조합’이라는 마을공동체 운동을 함께 하고 있다. “동네책방이 살아야 마을이 살 맛 나는 곳이 되고 마을이 살아야 마을사람들도 서로 웃고 떠드는 정이 생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서점에 갔을 때도 달님, 토끼님과 주민 한분이 계셔, 서점 한 쪽에서 함께 도시락을 먹었다(공동체 사람들은 ‘덧이름’을 쓴다). 책에 둘러싸여 처음 만난 사람들과 도시락을 먹고 있으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면담은 책방 계단 아래에 움푹 들어간 작은 공간에 마주앉아서 진행했다.
은회원이 책방을 지킨 긴 세월만큼 이야깃거리가 많았지만 우선 어린 시절 모습이 궁금했다. 부모님에 대한 질문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은종복 회원은 1965년 서울 휘경동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은 경북 군위군 출신이다. 두 분은 1958년 무작정 서울로 오셨는데 “서울에 가면 머슴처럼 살지 않아도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서울에 왔다고 해서 쉽게 삶이 달라졌을까, 당시 고향을 떠나 도시로 몰려든 많은 농민들과 마찬가지로 부모님은 도시 빈민의 삶을 시작했다. 부모님이 처음 정착한 곳이 서울시 동대문구 휘경동이었다. 중랑천 뚝방길 판잣집에 살며 두 분 모두 평생 쉼 없는 노동으로 삶을 꾸려오셨다.

 

문 : 선생님 책을 읽어보면 심성이 곱다고 할까요. 사람뿐만 아니라 자신 바깥에 있는 모든 대상들에 대해 배려가 느껴집니다. 부모님의 영향이 크다고 봐야 할까요?

답 : 사실 어머니는 저를 딸처럼 키우셨어요. 저희가 아들 사형제인데 셋째는 딸이기를 바라셨거든요. 막내가 몸이 안 좋아서 제가 어머니와 대청마루 앉아 타래실을 감기도 하고 감자 껍질을 벗기기도 했어요. 집안일은 제가 맡아서 했습니다. 감자껍질을 깎는 게 아니라 벗기는 거라 손이 빨개졌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도 저는 아침잠이 많지 않은데 새벽부터 일어나 중랑천 가에 키우던 호박을 따오기도 하고 닭장서 달걀을 꺼내오기도 했습니다.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 혼자 움직이며 생명을 대하던 경험이 “풀잎 하나, 벌레 하나 살아있는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 한 것 같다”고 한다. 다만 아주 어릴 때부터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끊이질 않았는데 그 질문이 “세상을 밝게 하는 데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졌고, 자연히 어릴 때부터 그런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고 한다.
은회원이 처음 서점 일을 시작한 것이 1993년 4월 1일 만우절이었다. 날짜가 만우절이기도 했지만 평소 술과 투쟁, 글쓰기만 하던 사람이 갑자기 책방 일을 한다니 주변 사람 중에 믿어주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부모님은 ‘남을 괴롭게 하는 일이 아니라면 어떤 일이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어릴 때부터 ‘세상을 맑고 밝게 만드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만약 풀무질이 인문사회과학 서점이 아니고 그냥 책을 팔고 이윤을 남기는 곳이었다면 시작하지 않았을 거예요. 시작했더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포기했겠죠. 이 책방이 그런 가치가 있는 곳이었고 하면 할수록 ‘내가 이걸 지켜야겠다’는 소명의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책방에서는 정부에 반대하는 유인물도 구할 수 있었고, 교보, 영풍에서 쉽게 찾을 수 없는 인문사회과학 서적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이 사회와 공동체의 성장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25년 동안 대학가 책방을 운영하면서 은회원은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 판매’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고, 책방은 몇 차례 폐점의 위기를 넘기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현재 책방 ‘풀무질’의 이름으로 달마다 돈을 내는 곳은 서른 군데, 50만 원이 넘는다.

아껴쓰고, 나눠쓰며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은 정말 우리 어머니, 아버지 말씀이 맞아요. 하지만 자기가 만족한 후에 누군가에게 베푼다는 것은 베풀지 않겠다는 것과 같은 말이에요.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을 안다고… 연구소도 그렇죠? 저야 잘 모르지만 넉넉하지 않은 사람들이 조금씩 후원하는 힘으로 운영하고 있을 거라고 봅니다.

 

문 : 살다보면 골목이나 놀이터 같은 생활환경이 달라지는 것을 보고 누구에게도 설명하기 어려운 이상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은회원은 대학가의 변화를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답 : 돌이켜 보면 제가 학교를 다닐 때 학생들을 세 가지 부류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열심히 학교를 다니고 공부를 하는 학생, 세상을 바꾸려는 ‘척’ 했던 학생, 신념을 갖고 투쟁에 전념하는 학생. 그 중에 저는 두 번째 부류에 가까웠습니다. 학교는 빠지지 않았지만 매일 데모하고 글을 쓰느라 수업을 제대로 듣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다고 투쟁에 전념하고 앞에 나서는 유형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그때는 기본적으로 많은 학생들이 사회 변혁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있었어요. 예를 들어 4·3, 4·19, 5·18이 되면 미리 말하지 않아도 학생들은 일단 운동화를 신고 학교에 왔습니다. 여학생들도요. 예비역들은 군복을 입고 왔구요. 이런 날은 보통 재학생 중 반 가까운 학생들이 모여서 도로로 나가기 시작했으니까요. 지금과는 시대의 분위기가 많이 달랐죠.

06

공동체 회원들과 함께 식사하는 모습. 오른쪽 첫 번째가 은종복 회원

 

지금은 사회가 다변화되고 ‘문화식민지’가 되면서 전선이 혼재되어 있지만 당시에는 ‘제국주의’와 ‘다국적기업’이라는 극복해야 할 분명한 상대가 있었다고 한다. 싸움의 대상도, 명분도 뚜렷했다는 점이 지금과 근본적으로 달랐다는 것이다.

 

문 : 지금 학생들은 어떻게 다른지 물었다.

답 : 10여 년 전에 <화려한 휴가>라는 영화가 있었어요. 상업영화로는 처음으로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것이었습니다. 대학로 CGV가 바로 옆이니까 학생들이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추천했어요. 그런데 영화를 보고 온 학생 중에 그 영화가 만들어진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 영화는 1980년 광주의 모습 중 일부를 압축한 것인데도 학생들은 군인이 시민들을 학살하는 상황 자체를 이해하기 어려워했어요. 지금 학생들은 1980년 이후에 태어났습니다. 학교에서도 말해주지 않기 때문에 대학에 와서야 광주이야기를 처음 들어보는 아이들이 많아요. 그만큼 학생들도 스스로 관심을 갖고 찾아보지 않으면 불과 얼마 전의 민주화운동을 모르는 시대가 된 것이죠.
또 한 가지, 지금은 일자리를 구하기가 너무 힘들어서 1학년 때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제대로 취직하기가 어려워요. 이름난 회사에 들어가려면 자기 소개서를 100번은 써야 해요. 참담하죠. 우리 때는 데모도 하고 술도 마시고 연애도 했지만 취직하는 게 크게 어렵지는 않았어요. 주어진 환경이 달라요. 큰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아이들은 맺고 끊는 게 확실해요. 자기 책임이라고 할까요. 자신의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것만이 확실하기 때문에 더욱 현실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아이들의 좋은 점인지 나쁜 점인지 단정하기 어렵지만 예전처럼 책을 외상으로 사거나 돈을 빌리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어요.

 

문 : 최근 급격히 한반도 정세가 변화하고 있는 데 대한 소감을 물었다.

답 : 제 첫 번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돈에 눈먼 세상을 없애야 합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전쟁을 일으키거나, 탐욕에 젖어서 세상을 더럽히지 않습니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질서를 파괴하지 않고서는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 한 가지, 남북이 평화롭게 하나 되는 세상을 바랍니다. 저도 남북의 정상들이 만나 평화정착을 위해 애쓰는 것을 보고 크게 감격했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경제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 같아 걱정되는 면도 있습니다. 차츰 다른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확대되겠지만, 경제이야기만 하다보면 한반도 북녘을 또 다른 식민지로 만들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긴 시간 많은 노력이 필요할 텐데, 남쪽도 북쪽도 민의가 반영된 정당성 있는 국가권력이 힘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래야 앞으로 일어날 급격한 변화에도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지 않을까요. 대화가 진전되고 평화체제가 자리 잡게 된다면 국가보안법 문제나 주한미군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되리라 생각합니다.
또 한 가지, 남북문제가 미국의 입김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는 것은 참 아픈 부분입니다. 역사적인 맥락이 있는 것이지만 우리 스스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갈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고 서로 의지하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북쪽이 핵무기를 갖고 있는 것을 반대하고, 남쪽이든 북쪽이든 군대가 없는 꿈같은 세상을 바라는 사람입니다만 한 쪽이 다른 쪽을 일방적으로 겁박하지 않고 서로 신뢰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면서, 평등한 입장에서 논의가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07

문 : 책을 읽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그나마 인터넷으로 주문하는 세상에서 동네 작은 책방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또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답 : 지금 상태라면 풀무질뿐만 아니라 한국에 있는 작은 책방들은 모두 버텨내기 힘들다고 봅니다. 저는 한국에서 작은 책방이 살아나려면 일등주의, 학력중심주의, 경제지상주의 이 세 가지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세상은 기회균등이라고 하며 힘이 있건, 돈이 많건, 약하건, 장애가 있건 구분하지 않고 모두를 경쟁하게 합니다. 하지만 사람은 각자 다른 것을 갖고 태어나죠. 그래서 사람은 신 앞에서 그 자체로 소중하고 모두가 평등합니다. 지금 한국사회는 모조리 일등주의에 매몰되어 사람을 하나의 기준으로 줄 세우고, 서로 경쟁하며 미워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 일등주의 때문에 어떤 부모들은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영어학원을 등록하고 순번을 기다리고 있어요. 아이에게 ‘좋은 교육’을 받게 하고 남보다 이름난 학교에 들어가게 하겠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렇게 교육받은 아이들이 정말 ‘좋은 교육’을 받는 것일까. 우리 아이들이 병들고 있다는 것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겁니다.
이 두 가지는 사람 욕심을 부추기는 경제지상주의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고 권정생 선생님은 “사람들이 밥하나 국 하나 반찬 두, 세 개면 맛있게 밥을 먹을 수 있는데 어느 날부터 더 맛있게, 더 많이 먹으려 하다 보니 다른 나라 아이들의 목숨 줄을 조이게 되는 세상으로 변해가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더 맛있고, 더 좋은 게 아니면 만족하지 못하겠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고르게 가난하게 살려고 하면 다 함께 웃음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이제는 조금 생각을 다르게 해야 할 시점이 아닐까요, 경제성장을 멈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은회원은 “자본주의 체제가 지구를 망가트리고 결국 인류가 생존할 수 없는 곳으로 만들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다르게 살아야 하고 경제성장은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날 때부터 자본주의 속에서 살아온 나에게는 꿈같은 이야기였다. 그래서 다시 질문했다.

 

문 : 사람들이 그렇게 살기로 한다면 저는 따라서 살 수 있을 지도 모르겠지만… 그런데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요?

답 : 그래서 마을책방의 역할, 지역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지금 자본주의 시스템은 대량생산, 대량소비를 기본으로 합니다. 그렇게 최근 몇 백년간 인류는 전례 없는 엄청난 양의 자원을 소비하며 지구를 망가트리고 있어요. 그 전까지 수십만 년 동안 인류는 필요한 만큼만 생산해서 소비하며 살았습니다. 오래전부터 서로 돌보고 필요한 것을 나누며 함께 사는 방식으로 산 것이죠.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부딪치고 있는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저는 우리가 처한 현실을 절박하게 받아들이고 다시 공동체적인 생활방식을 복원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봅니다. 책방 풀무질이 단순히 책을 사는 곳이 아니라 일등주의, 학력주의, 경제지상주의를 극복하고 지역주민과 학생들이 공동체를 이루고 서로 돌보며 살아가는 터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책방 풀무질에서 책읽기 모임, 밥상공동체, 돈 없이 사는 세상, ‘풀무질 책놀이터 협동조합’을 꾸려가고 있고 이런 활동이 결국은 우리 공동체와 책방을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현실적으로 수익이 있어야 책방을 운영할 수 있을 텐데 실제 어떤 상황인지 궁금했다. 은회원은 손전화로 통장 잔액을 보여주며, “내일은 풀무질 문을 닫을지도 몰라요. 하하하하~” 크게 웃었다. 전화기에는 조금 전까지 얼마 남아 있던 통장 잔액이 ‘0’원으로 바뀌어 있었다.

 

사실 함께 밥을 먹고 조합을 운영하고 활동하는 것은 책방 매출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아요. 여기 오는 사람들이 도와주고 책을 많이 구입하기도 하지만 결국 이 책방의 주 매출은 성균관대학교 학생들과 수험생들입니다. 그런데 이 학생들 중 열에 아홉은 가까운 곳에서 싸고 빠르게 살 수 있기 때문에 이 책방에 오지, 풀무질의 생각에 공감해서 오는 것은 아니에요. 최근에 거대 기업들이 인터넷 서점을 운영하면서 재정상황이 훨씬 더 어려졌구요.
따지고 보면 제가 책방 풀무질을 25년이나 한 것은 기적에 가까워요. 지금도 빚이 많고 한 달 이자도 많이 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책방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공동체의 힘이 큽니다. 공동체 사람들은 서점에 들어서면서 ‘풀벌레 아저씨 오늘 할 일 없어요?’라고 먼저 묻고 함께 일을 합니다. 서로 돌봐주는 이런 마음은 돈으로 헤아릴 수 없죠. 이런 마음이 이 책방을 유지하고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사장이나 대표라고 하지 않고 ‘일꾼’이라고 합니다. 오히려 내가 풀무질의 소중한 정신을 망가트리지 않고 운영할 수 있는 사람인가를 고민해요. 언젠가 우리사회에 큰 변화가 필요할 때 ‘이렇게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하나의 사례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은회원이 1993년 처음 책방을 시작하고 3, 4년 정도는 한 달에 50만원씩 적금을 넣기도 했다. 하지만 1997년 4월에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면서 700~800만원의 빚을 졌다. 그 후에는 점점 인터넷 책방이 들어서면서 제대로 수익이 난 적이 없었다. 최근 4~5년 동안은 ‘하루 살았네’라고 하면서 산다고 한다. 하루씩 살아가니 오히려 더 얼굴이 환해지고 삶에 힘을 느낀다고 한다.
하루살이 이야기를 하며 함께 웃었다. 은회원이 재정적인 어려움 속에도 책방 풀무질을 계속하는 것은 ‘세상을 맑고 밝게 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스스로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기도 하다.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을 살고 있는 셈이다.
책 읽는 법을 배우지 못하는 세대가 태어나고 있다. 사람들은 알고 싶은 것을 검색해서 바로바로 확인하고 정보는 빛의 속도로 사람들 사이를 오가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종이책이 어떤 의미를 가질까. 은회원은 니체의 말을 인용해서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책을 읽어야 한다고 답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산다고 생각하지만 대부분은 살던 대로 살고, 남들이 사는 것을 따라 살아요. 타고난 자신의 모양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이 상상하지 못하게 되면 약자, 소수자,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사회는 병들게 됩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정보와 사람들 속에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살고 있습니다. 책을 읽는 것은 사람이 상상하고, 자신을 찾는 좋은 방법입니다. 사실 이런 면에서 보면 현대인들은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것보다 많이 걸어야 합니다. 요즘 사람들이 하늘과 바람과 땅, 풀과 들에서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볼 수 있도록 더 많이 걸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회원들과 청춘들에게 2권씩 책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다. ‘100권을 고르라면 쉬울 텐데 두 권만 고르라니 더 어렵다’고 하면서도 바로 네 권을 추천했다. 우리 회원들에게는 권정생의 산문집 ????우리들의하느님????(녹색평론사)과존 로크의????통치론????(까치글방)을,청춘들에게는 리영희, 임헌영의 ????대화-한지식인의삶과사상????(한길사)과님 웨일스,김산의????아리랑????(동녘)을 추천했다.
책을 읽는 것은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서 세상을 보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책방을 하는 사람과 만나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학교에 다니는 동안 헌책방에 자주 드나들었지만 일하는 사람과 살가운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 없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숨길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었다. 거꾸로였다. 은종복 회원과 공동체 사람들에게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하며 생각을 나누면 좋은 사람이었다.
새로 사람을 사귀면 그만큼 마음을 내어주어야 한다. 제 혼자 살기도 바쁜 세상, 사람들은 마음이 편하고 싶어 점점 사람들을 사귀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행복해지고 있는가? 은회원은 원래 사람들은 서로 사귀고 돌봐주며 살아야 행복하다고 한다.
내가 이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책방 문을 나서면서 행복을 위해 끝까지 간직해야 할 다짐들이 다시 떠올랐다.

월, 2018/05/28- 11:38
84
0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1]

팟캐스트 ‘역적(역사적폐 청산)’

13화 1부 – “뉴라이트 역사 쿠데타 7편 – 박정희 신화의 허구 ④”

팟빵 링크 http://www.podbbang.com/ch/14024

화, 2017/09/12- 13:40
84
0

금성정치인들(일부)

이사진을  봄시로

나의 칠팔년과

나의 중딩년…

ㄴㅏ의 초딩…칠공70

홍지팡이와박목탁에게!

가리느까?

가로노까?

퐁로사실을

동시다발적으로

ㅇㅣ바구하는 일부 자매들의

의도성 의문이 간다.

남한전국적으로  파문이 되는것과,    미혼여성미혼남성”””            홀로여성홀로남성”””

물론, 박목탁홍지팡!             …………………………….니도 그런생각이  들더나?

일부여성 즉+ 성폭력을  당했다고 하는  겨레여동생은

ㅇㅕ태마리엄따!

나의성고백은 초딩에게.”””

ㅊㅜㄹ산과  남성

출산과 여성

아이와남성

아이와 여성 …….                      $%# 세계여성의날도  이서야 된다면  세계남성의날도 이서야

성사회학  입장에서본  전반적  일부성남성의 위기와 일부 성여성의  인과관계를  우째볼건지,?

“”””분단재벌성장남성여성피해노동자본종속미국일본중국남한북한비정규정규””””””저출산과성문제?

…..거둘절미해서….   (참고사진은 경남민언련)

스타인들과 관계된,

오늘여성들의 일부들도  당시에  왜?   원치않는 성침핼 당했다고,  박목탁들과  홍지팡들에게  이바구  안핸는지…… 필잔또…. 어느곳에 이력서를  넣고,  봄비  오훈…..실장님국장님도    ….엄꼬!

목, 2018/03/08- 06:10
84
0

자유게시판에 댓글 달기 기능은

일부러 뺀 것입니까?

일부러 뺐을 리는 없겠지요?

연구소를 응원하고 지지하며 후원하는 회원이나 시민들에게 부끄럽거나 두렵지 않을테니까요

저는 민족문제연구소는 우리 1만여 회원들만의 연구소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이미 훌쩍 커버렸고 또 정말 어려울 때 3000원 5000원 후원했으며, 혹 금전적 후원을 못해도 마음으로 성원하고 사랑하며 지지한 많은 국민 또는 시민들의 연구소라고 저는 생각합니다만.

홈페이지에 회원들을 위한 열린게시판에서 게시된 사안과 의견에 대하여 당연히 읽은 이의 의견을 달거나 의문점을 물을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 홈페이지는 댓글 다는 기능이 없습니다.

아니면 실수로 빠뜨린 것입니까?

자칭? 완벽에 가깝다는 연구소가

어느 연구소보다 능력이 뛰어난

그리고 헌신적인 전문 상근 담당자들이 홈페이지를 새로 개편하면서

실수로 빠뜨렸다고 하면 삼척동자도 웃겠지요?

이 글을 읽는 즉시 빼야만 했던 합당한 이유를 제시하던지 아니면 기능을 추가해 주세요

그리고

1만여명이 넘는 회원들이 찾아와서

전 국민이 찾아와서

각자 연구소에 대한 칭찬도 격려도 비판도 생각도 말하고 공유하는 연구소가 되고 회원들이 되기를 바란다면 한시바삐 댓글달기 기능을 살려 주세요

수, 2018/04/25- 00:58
84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