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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바닷속으로 들어가 직접 따 낸 생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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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바닷속으로 들어가 직접 따 낸 생명력

익명 (미확인) | 화, 2018/07/03- 19:24
한살림 짓는 사람들

거제 한울타리공동체 장성택·유대순 생산자

 

장성택·유대순 생산자는 경남 거제시 남부면 앞바다에서 채취한 자연산돌미역을 공급합니다.
돌미역은 3월 중순부터 6월 중순까지만 채취할 수 있는 귀한 자연의 선물입니다.


 

거제도의 최남단, 남부면 여차해변. 매물도가 보이는 탁 트인 남해바다의 절경은 오지처럼 구불구불한 길 뒤에 숨겨 놓은 또 다른 세상 같았다.

“지금은 마이 발전했지요. 전에는 2시간 걸어가야 버스를 탈 수 있어서 하루에 6시간을 통학했어.
아부지가 가라 하니 가지, 고마 바다에서 수영하고 노는 게 더 좋았지. 여기는 논도 없고, 거의 보리밥 먹고 컸어요. 우리가 미역 갖고 요마이 큰기라 보면 돼요.”

학교보다 바다가 좋았던 유년의 경험은 장성택 생산자를 다시 바다로 이끌었다.
잠깐 도시로 나갔지만 얼마 되지 않아 고향에 돌아와 부모님이 하시던 돌미역 생산을 함께 한 지 벌써 15년이 넘었다.

 

바다에 들어가는 일
돌미역은 해변에서 배로 10분 거리에 있는 돌섬들을 돌며 딴다.
산소통을 매고 바닷속으로 사라진 지 얼마나 지났을까. 들어간 데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그가 얼굴을 내밀었다.

7년째 손발을 맞춰 일하고 있는 동네 형님이 배에서 대기하다 크레인으로 그가 가져 온 미역 망태기를 건져 올렸다. 수확물을 건넨 그는 이내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돌미역 수확철이면 그는 매일 아침 이렇게 바다에 들어가 수심 4m의 바위에 붙어 있는 돌미역을 낫으로 잘라 담는다.

허리춤에 찬 망태기에 미역을 가득 채우면 그 무게가 60kg에 달한다.
산소통 무게까지 감안하면 수영과 잠수에 능한 장성택 생산자도 나이가 들수록 힘에 부치다.
파도가 심할 때는 물속에서 몸이 자꾸 떠내려간다. 그래서 배 위에서 뱃머리를 조작하는 사람과 호흡도 중요하다.

“아부지랑 일할 때는 예부터 쓰던 나무배를 가지고 노 저어 나갔어요. 지금은 크레인도 있고 하는데 그때는 억수로 힘들게 했제. 아부지랑 싸우기도 많이 싸웠어. 바다 가면 전쟁이라 전쟁.”
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20년 전부터 아버지가 한살림에 냈던 돌미역과 그것을 품은 바다는 여전히 그의 삶터다.

수온이 높아지면 미역은 퍼져서 사라진다.
돌미역을 딸 수 있는 시간은 3월 중순부터 6월 중순까지 고작 3개월 뿐. 그가 부지런히 바닷속을 오르내리는 까닭이다.

기후변화로 갈수록 적어지는 돌미역의 양도 문제지만 일이 워낙 고되다 보니 선뜻 바다에 들어가려는 사람도 없다. 여차마을에서도 5가구만이 돌미역을 생산한다.
“자식한테 물려주는 건 나가 생각이 없지. 우리 같은 사람은 잠수병이 있어요.
사실 쉰일곱까지 했으면 그만 해야 맞지. 내 나이를 보면 몇 년 안 남았어요. 결국 한살림에 돌미역을 못 내는 날이 올기라. 그게 아마 몇 년 안 걸릴지도 몰라요.”

 

 

깊은 바다의 생명력을 담아
대기업에서 대량 생산하는 미역은 이런 위험을 감내하지 않는다. 얕은 바다에서 양식으로 키운 뒤 이물질을 떼기 위해 끓는 물에 삶아 염장한다.
센 조류 덕분에 양식은 어렵지만 대신 깨끗하고 탱탱한 식감을 자랑하는 거제 앞바다의 자연산 미역과는 외형부터 다르다.

“우리가 봤을 때는 미역이라기 보단 파래 같아요. 얇고 종잇장 같은 것이 씹으면 오돌오돌한 맛도 없고. 어차피 먹는 거 한살림처럼 자연 그대로 먹는 게 좋지요. 솔직히 끓는 물에 넣어 영양이 파괴되는지 어쩐지 검사는 안 해봤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포자에서 나고 100일쯤 된 생명을 끓는 물에 넣어버리는 게 맞지 않는 것 같아.”

시중 미역과 한살림 돌미역의 다른 점은 또 있다.
바로 자연의 햇볕과 해풍으로 건조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역을 채취할 때는 항상 그 날 날씨를 고려한다.
“조합원들이 왜 이렇게 미역이 누런지 문의하는데, 태양건조의 특징이라고 설명하면 다 이해를 하지. 햇빛조차 안 보고 기계로만 건조된 거랑은 확실히 달라요.”
짧은 미역철이 끝나면 부부는 조합원을 만나는 행사에도 적극 참여한다.

 

“ 새벽에 버스 타고 일산 가서 매장 판매를 해봤는데 우에 난 놀랬어요.
한살림 한 번 빠져들었다 하면 우찌 알고 개미만치 줄지어 오시는지 신기해.
문 열기도 전에 줄 서 있는 조합원 보면 우리가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어.”

 
아버지 때부터 지금까지 늘 고마운 한살림이기에, 그는 작은 것 한 개라도 한살림 것을 쓰기 위해 나가는 길엔 꼭 40분 거리의 거제매장에 들러 장을 봐 온다.

소고기를 넣지 않고 돌미역만으로 국을 끓여도 뽀얀 국물이 우러나고 감칠맛이 돈다.
이 한 줌의 미역을 따기 위해 바닷속을 마다 않고 들어갔던 장성택 생산자의 얼굴이 떠올라 내가 먹은 것이 맑고 푸른 거제 바다였음을 깨닫는다.
미역의 깊은 맛은 그 미역이 자란 수심에 비례하는 것 아닐까.
어쩌면 언젠가 못 만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애틋함이 배가 된다.

 

윤연진 사진 김현준 편집부

 


 

자연산돌미역 생산과정

 

 

1. 바위를 깨끗하게, 갯닦기


 
장성택 생산자는 바다에 들어가 미역을 따는 것은 오히려 재밌다 말한다.
갯닦기의 시간이 워낙 고되기 때문이다.
갯닦기란 긴 장대 같은 것으로 바위에 붙어 있는 해조류를 제거하는 일이다.
추운 겨울 바다에 반쯤 몸을 담그고 바위를 닦는 일은 체력 소모가 너무 크지만 위험하기 때문에 인부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다.
“깨끗하게 닦아 놓으믄 미역 포자가 어디에 있다 붙는 건지, 하 참 신기하다.
갯닦기 시기는 어르신들 경험이지. 저 바위는 11월 20일에 닦아야 한다고 하면 그 때 닦아야지 12월 넘어 하면 미역이 안 와요. 그런데 요즘은 열심히 해놔도 예전만큼 미역이 오지 않아.
갯닦기만 했다하면 다 붙었는데 요즘은 힘들게 작업해 둬도 안 온 자리가 많아 아쉽지요.”

 

2. 햇볕과 바람으로 건조


 
아침에 바다에서 따 온 미역을 여차해변에 쫙 펼쳐 말린다.
길이가 1m에 가까운 돌미역을 가지런히 발에 붙이는 것은 아내 유대순 생산자와 어머니의 몫이다.
서울에서 시집 온 유대순 생산자에게 어머니가 ‘서울내기가 이제야 잘 붙인다’며 칭찬한다.

“어머니는 65년 동안 계속 미역을 붙이신 베테랑이세요.
제가 15년이 넘으니 드디어 어머니께 인정을 받네요. 미역을 발에 잘 붙여야 곪는 곳 없이 고루 마르고 눅눅하지 않아요 . 잘 못 말리면 국이 금방 퍼져 버려요.”

날씨에 따라 다르지만 오전 9시에 널었다면 오후 5시쯤 걷는다.
말릴 때 바람이 적당하고 해가 좋아야 한다.
나머지 수분은 수산물 전용 건조기에서 날린 뒤 5분 거리의 한울타리공동체 공동작업장으로 옮겨 포장한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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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채소랑 맛있게 놀자~!”

제철채소를 이용해 아이들이 식재료를 보고 만지고 맛보며

다양하게 느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1강: 8월 10일(수) 토마토달걀볶음 

2강: 8월 17일(수) 옥수수가지피자 

장소 : 광주 장지동 한살림매장 2층 활동실

모집대상 : 저학년 선착순 12명, 고학년 선착순 12명

접수 : 010-8562-7543(한민지)로 문자접수 해주세요.  (문자예시 : 홍길동, 1학년 어린이요리 신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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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살림경기동부 홈페이지

화, 2016/07/26-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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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살림 그 사람 이 물품]

 

겨울에 더욱 맛있는 어묵

 

자연이준식품 김봉순 생산자

 

14면_그사람이물품_단체

김봉순 생산자(오른쪽에서 두번째)와 동료들이 자연이준식품 물품을 자랑하고 있다

 

 

가공식품에도 제철이 있다. 겨울에 어묵을 먹으면 더 맛있는 것처럼 말이다. 한겨울을 맞이한 자연이준식품에서는 생산자들이 이른 아침부터 신선한 현미유를 달구며 작업장을 고소한 어묵 냄새로 가득 채운다. 덕분에 둘러보는 내내 코끝이 즐거웠지만 어디에서도 기름때 자국 하나 찾아볼 수 없다.

 

“청소도 생산입니다.” 김봉순 생산자는 가공생산에 있어 위생 관리의 중요성을 짧은 한마디로 정리했다. 동시에 철저한 위생 수준에 대한 자부심도 내비친다. 자연이준식품은 매일 한살림 종이행주와 한살림주방세제로 생산 설비를 닦으며 작업을 마무리하는 것은 물론, 매주 목요일에는 아예 생산을 멈추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청소만 한다. “집에서 아들에게 엄마가 만든 것보다 더 깨끗한 음식이라고 하며 어묵 반찬을 내놓아요. 살림을 열심히 할 때도 이렇게까지 깔끔하지는 못 했어요.”

 

내 집 부엌에 견줄 수 없이 철저히 작업장을 살피는 것은 김봉순 생산자도 조합원으로 한살림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는 1990년대 후반 아이의 건강 때문에 안전한 물품이 필요해서 한살림을 찾았다. “물품을 꼼꼼히 살피다 보니 자연스레 한살림이 자연과 생산자를 대하는 태도를 알게 되었고 저도 보탬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라며 새내기 조합원에서 열혈 조합원으로, 생산자로 한살림 안에서 다양한 영역을 두루 거치며 성장해 온 지난 20년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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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여러 활동을 거들며 한살림강원영동 이사를 맡기도 하였다. 2009년 들살림 총무부장을 맡으며 생산 실무자로서 새로운 영역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해 한살림강원영동은 지역순환경제를 꿈꾸며 지역 생산자들과 손잡고 들살림을 설립했다. 일반 제조회사에서 10년 가까이 총무회계 업무를 담당해 실무에 밝고 한살림에 대한 이해 또한 남다르던 그는 막 시작되는 한살림 조직의 행정을 꾸려가기에 적임자였다. “2014년 들살림이 체계가 잡히고 안정되어 갈 즈음 자연이준식품으로 자리를 옮겨 왔어요.”

 

자연이준식품은 조합원의 열망으로 세워진 생산지다. 원산지와 유통기한을 확인할 수 없는 원부재료, 재사용 기름, 첨가물 남용, 비위생적인 설비 관리 등 시중 어묵에 대한 문제의식이 커지며 한살림다운 어묵을 원하는 이가 늘어났다. 조합원의 요구에 응하기 위해 2005년 동트는세상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창립 구성원 중 어묵을 만들 줄 알고 일을 시작한 사람은 없었어요.” 김봉순 생산자는 조합원이 믿고 먹을 만한 물품을 만들겠다는 뜻 하나로 더듬더듬 배워가며 물품을 개발하고 생산하던 당시를 회상했다. 맛은 어설펐지만 재료는 처음부터 최상이었다. 꾸준한 연구개발 끝에 오늘날과 같은 쫄깃함과 고소함이 살아 있는 어묵으로 거듭났지만 재료에 대한 원칙은 그대로다.

 

재료를 달리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식감과 풍미를 돋울 수 있었을까? 비결은 반죽과 튀김 온도에 있었다. 해답을 찾기까지 지역의 대학과 산학협력을 맺어 연구를 진행하는 등 적잖은 품이 들었다.

 

캡처

 

개발과 사업 기초를 다지는 동안 자연이준식품을 받쳐 준 것은 지역의 한살림 가공 생산지들이었다. “특히 한살림 수산가공 생산지인 아침바다는 설립 당시부터 지금까지 낮은 임대료로 공간을 빌려 주고 있어요.” 자연이준식품뿐 아니라 밀가공품과 소스 생산지인 다자연도 같은 곳에 터를 잡고 이웃해 생활하고 있다. “더불어 천향, 선유, 행복한빵가게까지 여섯 생산지가 작업장 앞마당을 공동 물류 집하장으로 쓰고 있다”며 지역 한살림 생산지들 사이의 끈끈한 연대를 한 번 더 확인시켜준다. 나중에 자연이준식품에 합류한 김봉순 생산자가 설립 초기 사정까지 꿰고 있는 것이 이해가 되는 대목이었다.

 

“저를 비롯해 그동안 자연이준식품을 이끌어 온 생산자들 모두 한살림 안에서 성장한 사람들이에요. 우리의 성장이 조합원들과 지역사회에 새로운 그림을 보여줬다고 생각해요. 원칙을 지키면서도 품질을 향상시키는 데 성공했고, 경쟁이 아닌 상생으로 사업을 키워 왔기 때문이죠.”

 

2017년 자연이준식품은 다시 한 번 새로운 도약을 준비 중이다. 쌀과 깻잎 등 좀 더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고 새로운 어묵 모양도 개발하고 있다. 지난해 설비도 새로이 정비하였다.

 

꼬치어묵탕

 

“맛보다는 애정으로 조합원들이 우리 물품을 이용해주던 시절을 기억합니다. 12년 동안 자연이준식품이 축적한 경험과 기술은 조합원들의 공이기도 해요. 많은 사람의 실천이 헛되지 않도록 조합원들에게 다가가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이어갈 것입니다.”

 

글ㆍ사진 정연선 편집부

 

 

알면 알수록 안심되는

자연이준식품 원부재료

 

명태연육

 

알래스카산 고급 명태연육

 

어획과 동시에 살만 발라낸 후 배에서 급랭시켜 육질이 단단하고 쫄깃합니다. 과거에는 우리나라 연안에서도 많이 어획되었으나 해수 온도 상승으로 근래에는 알래스카에서 어획하여 들여옵니다. 입고 시마다방사성물질검사를 거쳐 안정성을 확인합니다.

 

14면_그사람이물품_대파

 14면_그사람이물품_양파

 

우리밀, 유기농 감자 전분, 친환경 채소

 

우리밀 밀가루, 제주 생드르영농조합 당근, 마하탑 볶은소금 등 부재료는 한살림 생산지 물품을 위주로 사용합니다. 생산량이나 계절이 맞지 않아 한살림에서 공급받기 어려운 때에는 친환경 식재료를 이용하여 생산합니다.

 

현미유

 

미유
어묵 생산에서 튀김유는 중요한 부재료입니다. 자연이준식품은 발연점이 높고 쌀겨의 영양이 잘 살아 있으며 튀겼을 때 고소하고 담백한 풍미를 돋우는 현미유를 사용합니다.
월, 2017/02/20-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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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_14일_주간홍보물_농지살림_포스터

“얘들아! 10년 후, 100년 후까지 유기농 땅을 지켜줄게!”

농지살림 이미지2

유기농지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한살림 생산자의 40%가 임대농입니다.

수 년 동안 농약과 제초제 없이 땀으로 일궈 놓은 땅도 땅 주인이 내놓고 나가라고 하면 그만입니다.

한살림 농부가 사라진 땅은 당장 그 다음날부터 유기농지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농촌고령화로 유기농지가 팔리면 관행농으로 전락하거나 심지어 골프장으로 용도 변경되는 일까지 발생하고 있습니다.

 

농지살림 이미지3

우리 아이들에게 유기농 땅을 남겨줄 수 있습니다

  • 한살림 농지살림운동으로 10년, 100년 뒤까지 우리 아이들이 유기농 땅에서 키운 한살림 친환경 농산물을 먹을 수 있습니다.
  • 소농,귀농자들이 친환경 농사를 지을 땅을 확보합니다.
  • 농업을 살리고 우리나라 식량자급 기반을 지킵니다.

 

농지살림 이미지4

우리 힘으로!

유기농지를 공동 자산으로!

나이 드시거나 사정이 생긴 생산자들의 유기농지를 기증 또는 구입하여 공공 관리하는 공동 자산화 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조합원들의 출자를 요청합니다.

그 결실을 누리게 될 우리 아이를 위해 농지살림에 참여하세요.

10년 상환, 1구좌 5만원, 여러 구좌 참여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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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자로 10년간 농지살림기금을 빌려주세요

참여 방식 : 농지살림운동에 출자 (출자 약정서 작성 후 입금)

출자 금액 : 1구좌 5만원, 여러 구좌 참여 가능

상환 시기 : 2026년 이후 (최소 10년 기준), 탈퇴나 이관 시 중간 상환 가능

운동 기간 : ~2017년 1월 31일까지

입금 계좌 : 농협 242-17-003333 (예금주 한살림성남용인)

출자금 확인 : 한살림 출자 내역에서 확인(온라인 한살림 장보기 > 나의 장보기 정보 > 출자금 내역 조회)

문의 : ☎ 070-8228-4684 기획실

 

 

한살림성남용인 홈페이지

 

금, 2016/12/02-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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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교역 물품 ‘마스코바도’ 설탕

물품에 담긴 사탕수수 생산자 자립의 꿈

ATPI 힐다 카두야 대표 강연회

 

2016년, 한살림의 마스코바도 설탕 첫 취급과 함께 필리핀의 사탕수수 생산자와 한살림의 소비자 조합원을 잇는 민중교류 관계 역시 시작되었습니다.

마스코바도 민중교역을 담당하고 있는 필리핀 무역단체 ATPI(대안무역 필리핀)의 힐다 카두야Gilda Caduya 대표가 ‘경기도 국제 공정무역 컨퍼런스’의 소그룹 강연자로 초청돼 올해 9월 한국을 방문한 가운데, 지난 9월 28일에는 한살림을 방문하여 마스코바도에 담긴 사탕수수 생산자의 ‘투쟁과 희망’을 나누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마스코바도 생산지인 필리핀 네그로스 섬은 예전부터 필리핀 전체 설탕 생산의 약 60%가 생산되던 지역입니다. 하지만 수출주도의 사탕수수 단작생산과 사회 양극화라는 기존의 사회문제에 1980년대 국제설탕가 폭락까지 더해지면서 사탕수수 생산노동자들은 극심한 빈곤과 굶주림에 처하게 됩니다. 이에 네그로스 지역을 돕기 위한 전세계적 구호운동이 벌어졌고 그 중 일본의 구호단체는 단순한 원조가 아닌 사탕수수 생산노동자들을 도울 수 있는 새로운 방안을 고민합니다. 이로부터 민중교역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민중교역은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도 전해졌습니다.

특히 한살림이 취급하고 있는 마스코바도 설탕은 민중을 의미하는 단어인 mass로부터 파생한 것으로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네그로스 사탕수수 생산노동자의 투쟁과 희망을 상징화한 것입니다.

 

힐다 대표는 민중교역 외에도 필리핀 네그로스 생산공동체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다양한 활동들도 소개하였습니다. 식량주권 확보를 위한 진정한 먹거리 운동, 사탕수수 단작으로 황폐화된 네그로스의 농업 생태계를 회복하기 위한 농생태마을, 필리핀 내 소비자와 생산자를 연결하는 꾸러미사업 등이 그것입니다. 또 힐다대표는 올해 초 필리핀 어머니들로 구성된 소비자조직을 만들기 시작했다며 한살림의 조합원활동의 경험을 묻기도 하며 강연을 마무리하였습니다.

 

 

 

 

목, 2017/11/16-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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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겨울, 유학을 위한 재정 마련을 위해 나는 부모님을 열심히 설득하고 있었다. MBA를 다녀왔을 때 얻을 많은 기회와 보상에 대해 강조하며(예컨대 MBA 후 받을 수 있는 연봉), 부모님께 용돈도 많이 드릴 수 있다는 약간의 사기성(?) 발언을 가미해 딸에게 투자해달라 말씀드렸다. 그리고 1년 후, 나는 부모님의 투자금(?)과 그간 모아둔 자산을 탈탈 털어 유학길에 올랐다. 어렵게 온 만큼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열심히 경험하고 배우자는 생각이었다. 후회 없이 3년의 유학 생활을 보내고 작년 여름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희망제작소 연구원이 되었다.

투자금 상환 실패로, 엄마는 나에게 ‘사기꾼’이라는 타이틀을 붙여주셨다. 나는 5년 전과 비슷한 수법으로 엄마에게 말했다. 희망제작소는 돈 이상의 사회적 가치를 만드는 곳이고 나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곳이기에 동반 성장할 수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입사 초기였기에 확신은 없었다. 확신을 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1년 동안 나는 엄마를, 아니 나 자신을 설득할 수 있는 희망제작소의 특별한 무언가를 찾고자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하기를 반복했다.

나는 왜 희망제작소에서 일하는가?

한 사람의 연구원으로, 시민으로, 후원회원으로 나는 희망제작소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곳인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희망제작소의 캐치프레이즈인 ‘시민과 함께 사회혁신을 실천하는 민간 독립 싱크앤두탱크(Think&Do Tank)’. 이 말을 일곱 가지로 쪼개서 생각해보기로 했다. 희망제작소가 함께 하고자 하는 ‘시민’은 누구이며, 희망제작소가 시민과 어떤 방식으로 ‘함께’ 사회혁신을 실천한다는 것인지, 희망제작소가 말하는 ‘사회혁신’의 상은 무엇인지, ‘실천’ ‘민간’ ‘독립’ 그리고 ‘싱크앤두탱크’가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지 하나씩 떼어놓고 바라봤다.

우선 10년 동안 발간된 활동보고서와 홈페이지의 글, 관련 기사를 살폈다. 그리고 희망제작소와 인연이 스친 사람이라면 누구든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연구원들과 이사회뿐만 아니라 후원회원인 사람, 과거 후원회원이었던 사람, 희망제작소에서 일했던 사람,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사람까지…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그들의 입을 통해 희망제작소가 어떤 곳인지 느꼈다. 지나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 그 ‘확신’은 절실했다. ‘희망제작소를 후원해주세요’라는 말 뒤에 한 치의 부끄러움과 불안이 없어야 했기에. 저 말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나는 온 힘을 다해 희망제작소의 가치에 대해 고민했다.

경계에 서 있다는 것, 불확실성과 모호함은 옵션

하나의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넘어가기 위해 꼭 지나야 하는 것, 바로 경계(Frontier)다. 경계에 서 있을 때 우리는 이도 저도 아닌 불확실함과 모호함에 힘들어한다. 이쪽을 바라보면 이게 옳은 것 같고, 저쪽을 바라보면 저게 옳은 것 같다. 인도해주는 사람도, 이정표도 없기에 감당해야 할 불확실성은 더욱 커진다.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 하는 희망제작소의 미션 상, 희망제작소 연구원들은 항상 사회의 경계에 서서 한 영역과 다른 영역을 연결해야 한다. 이런 특성 때문에 연구원들은 항상 불확실성 속에서 자신을 믿고 방향을 잡아야 한다. 그래서 확신이 중요하다. 완벽할 수는 없지만 자기 생각과 경험에 기초하여 방향을 잡고 뚜벅뚜벅 걸어나가야 한다.

희망제작소 연구원들은 자신의 연구와 사업에 관한 확신을 위해 작게 자신의 생각을 실험하고 시민을 만나 피드백을 구한다. 그렇게 자신이 만드는 희망에 관한 확신을 쌓아간다. 지난 1년간 후원사업팀의 연구원인 나는 이 사람들에 대한 확신을 쌓아왔고 그것이 충분하다고 느끼고 있다. 마음속 가득한 뜨거운 확신을 고이고이 포장해 시민에게 전달하면 된다.

희망제작소 3층 주방에는 ‘희망제작소스러움’이라는 게시판이 마련돼 있다. 연구원들은 각자 생각하거나 원하는 희망제작소에 대해 자유롭게 적을 수 있다. 몇 개의 문구를 뽑아봤다.

– 경계 없이 무엇이든 연결하고 연대하는 희망제작소
– 불확실성도 수용하는 희망제작소
– 우리 사회의 침묵을 깨는 희망제작소
– 가슴 설레는 재미가 있는 희망제작소
– 나를 믿고 너를 믿고 우리를 믿는 희망제작소
– 다양한 기회를 만드는 것에 두려움이 없는 희망제작소.
– 치고 나가는 희망제작소
– 오지라퍼 집합소, 희망제작소

내가 이런 곳에 다니고 있다니! 가슴이 설렌다. 후원회원과 연구원의 경계에 서서 두 영역을 이어야 하는, 그리고 이어줄 수 있는 후원사업팀의 일원으로 하고 싶은 일이 참 많다. 후원회원을 비롯한 시민의 피드백이 우리의 연구로 흘러들어 가고, 이 연구에 시민의 관심이 커져 삶에 적용되고, 더 나은 연구를 위한 자원이 우리 주변으로 모이고, 그 자원을 가지고 우리는 더 많은 대안을 제시하고… 희망제작소의 에너지가 우리 사회에 넓게 확산하는 선순환 구조! 이것이 후원사업팀 연구원인 나의 꿈이고 희망이다.

글 : 박다겸 | 후원사업팀 연구원 · [email protected]

화, 2016/12/20-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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