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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바닷속으로 들어가 직접 따 낸 생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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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바닷속으로 들어가 직접 따 낸 생명력

익명 (미확인) | 화, 2018/07/03- 19:24
한살림 짓는 사람들

거제 한울타리공동체 장성택·유대순 생산자

 

장성택·유대순 생산자는 경남 거제시 남부면 앞바다에서 채취한 자연산돌미역을 공급합니다.
돌미역은 3월 중순부터 6월 중순까지만 채취할 수 있는 귀한 자연의 선물입니다.


 

거제도의 최남단, 남부면 여차해변. 매물도가 보이는 탁 트인 남해바다의 절경은 오지처럼 구불구불한 길 뒤에 숨겨 놓은 또 다른 세상 같았다.

“지금은 마이 발전했지요. 전에는 2시간 걸어가야 버스를 탈 수 있어서 하루에 6시간을 통학했어.
아부지가 가라 하니 가지, 고마 바다에서 수영하고 노는 게 더 좋았지. 여기는 논도 없고, 거의 보리밥 먹고 컸어요. 우리가 미역 갖고 요마이 큰기라 보면 돼요.”

학교보다 바다가 좋았던 유년의 경험은 장성택 생산자를 다시 바다로 이끌었다.
잠깐 도시로 나갔지만 얼마 되지 않아 고향에 돌아와 부모님이 하시던 돌미역 생산을 함께 한 지 벌써 15년이 넘었다.

 

바다에 들어가는 일
돌미역은 해변에서 배로 10분 거리에 있는 돌섬들을 돌며 딴다.
산소통을 매고 바닷속으로 사라진 지 얼마나 지났을까. 들어간 데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그가 얼굴을 내밀었다.

7년째 손발을 맞춰 일하고 있는 동네 형님이 배에서 대기하다 크레인으로 그가 가져 온 미역 망태기를 건져 올렸다. 수확물을 건넨 그는 이내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돌미역 수확철이면 그는 매일 아침 이렇게 바다에 들어가 수심 4m의 바위에 붙어 있는 돌미역을 낫으로 잘라 담는다.

허리춤에 찬 망태기에 미역을 가득 채우면 그 무게가 60kg에 달한다.
산소통 무게까지 감안하면 수영과 잠수에 능한 장성택 생산자도 나이가 들수록 힘에 부치다.
파도가 심할 때는 물속에서 몸이 자꾸 떠내려간다. 그래서 배 위에서 뱃머리를 조작하는 사람과 호흡도 중요하다.

“아부지랑 일할 때는 예부터 쓰던 나무배를 가지고 노 저어 나갔어요. 지금은 크레인도 있고 하는데 그때는 억수로 힘들게 했제. 아부지랑 싸우기도 많이 싸웠어. 바다 가면 전쟁이라 전쟁.”
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20년 전부터 아버지가 한살림에 냈던 돌미역과 그것을 품은 바다는 여전히 그의 삶터다.

수온이 높아지면 미역은 퍼져서 사라진다.
돌미역을 딸 수 있는 시간은 3월 중순부터 6월 중순까지 고작 3개월 뿐. 그가 부지런히 바닷속을 오르내리는 까닭이다.

기후변화로 갈수록 적어지는 돌미역의 양도 문제지만 일이 워낙 고되다 보니 선뜻 바다에 들어가려는 사람도 없다. 여차마을에서도 5가구만이 돌미역을 생산한다.
“자식한테 물려주는 건 나가 생각이 없지. 우리 같은 사람은 잠수병이 있어요.
사실 쉰일곱까지 했으면 그만 해야 맞지. 내 나이를 보면 몇 년 안 남았어요. 결국 한살림에 돌미역을 못 내는 날이 올기라. 그게 아마 몇 년 안 걸릴지도 몰라요.”

 

 

깊은 바다의 생명력을 담아
대기업에서 대량 생산하는 미역은 이런 위험을 감내하지 않는다. 얕은 바다에서 양식으로 키운 뒤 이물질을 떼기 위해 끓는 물에 삶아 염장한다.
센 조류 덕분에 양식은 어렵지만 대신 깨끗하고 탱탱한 식감을 자랑하는 거제 앞바다의 자연산 미역과는 외형부터 다르다.

“우리가 봤을 때는 미역이라기 보단 파래 같아요. 얇고 종잇장 같은 것이 씹으면 오돌오돌한 맛도 없고. 어차피 먹는 거 한살림처럼 자연 그대로 먹는 게 좋지요. 솔직히 끓는 물에 넣어 영양이 파괴되는지 어쩐지 검사는 안 해봤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포자에서 나고 100일쯤 된 생명을 끓는 물에 넣어버리는 게 맞지 않는 것 같아.”

시중 미역과 한살림 돌미역의 다른 점은 또 있다.
바로 자연의 햇볕과 해풍으로 건조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역을 채취할 때는 항상 그 날 날씨를 고려한다.
“조합원들이 왜 이렇게 미역이 누런지 문의하는데, 태양건조의 특징이라고 설명하면 다 이해를 하지. 햇빛조차 안 보고 기계로만 건조된 거랑은 확실히 달라요.”
짧은 미역철이 끝나면 부부는 조합원을 만나는 행사에도 적극 참여한다.

 

“ 새벽에 버스 타고 일산 가서 매장 판매를 해봤는데 우에 난 놀랬어요.
한살림 한 번 빠져들었다 하면 우찌 알고 개미만치 줄지어 오시는지 신기해.
문 열기도 전에 줄 서 있는 조합원 보면 우리가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어.”

 
아버지 때부터 지금까지 늘 고마운 한살림이기에, 그는 작은 것 한 개라도 한살림 것을 쓰기 위해 나가는 길엔 꼭 40분 거리의 거제매장에 들러 장을 봐 온다.

소고기를 넣지 않고 돌미역만으로 국을 끓여도 뽀얀 국물이 우러나고 감칠맛이 돈다.
이 한 줌의 미역을 따기 위해 바닷속을 마다 않고 들어갔던 장성택 생산자의 얼굴이 떠올라 내가 먹은 것이 맑고 푸른 거제 바다였음을 깨닫는다.
미역의 깊은 맛은 그 미역이 자란 수심에 비례하는 것 아닐까.
어쩌면 언젠가 못 만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애틋함이 배가 된다.

 

윤연진 사진 김현준 편집부

 


 

자연산돌미역 생산과정

 

 

1. 바위를 깨끗하게, 갯닦기


 
장성택 생산자는 바다에 들어가 미역을 따는 것은 오히려 재밌다 말한다.
갯닦기의 시간이 워낙 고되기 때문이다.
갯닦기란 긴 장대 같은 것으로 바위에 붙어 있는 해조류를 제거하는 일이다.
추운 겨울 바다에 반쯤 몸을 담그고 바위를 닦는 일은 체력 소모가 너무 크지만 위험하기 때문에 인부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다.
“깨끗하게 닦아 놓으믄 미역 포자가 어디에 있다 붙는 건지, 하 참 신기하다.
갯닦기 시기는 어르신들 경험이지. 저 바위는 11월 20일에 닦아야 한다고 하면 그 때 닦아야지 12월 넘어 하면 미역이 안 와요. 그런데 요즘은 열심히 해놔도 예전만큼 미역이 오지 않아.
갯닦기만 했다하면 다 붙었는데 요즘은 힘들게 작업해 둬도 안 온 자리가 많아 아쉽지요.”

 

2. 햇볕과 바람으로 건조


 
아침에 바다에서 따 온 미역을 여차해변에 쫙 펼쳐 말린다.
길이가 1m에 가까운 돌미역을 가지런히 발에 붙이는 것은 아내 유대순 생산자와 어머니의 몫이다.
서울에서 시집 온 유대순 생산자에게 어머니가 ‘서울내기가 이제야 잘 붙인다’며 칭찬한다.

“어머니는 65년 동안 계속 미역을 붙이신 베테랑이세요.
제가 15년이 넘으니 드디어 어머니께 인정을 받네요. 미역을 발에 잘 붙여야 곪는 곳 없이 고루 마르고 눅눅하지 않아요 . 잘 못 말리면 국이 금방 퍼져 버려요.”

날씨에 따라 다르지만 오전 9시에 널었다면 오후 5시쯤 걷는다.
말릴 때 바람이 적당하고 해가 좋아야 한다.
나머지 수분은 수산물 전용 건조기에서 날린 뒤 5분 거리의 한울타리공동체 공동작업장으로 옮겨 포장한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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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O의 문제점과 심각성을 다룬 영화 ‘유전자 룰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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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청방법 : 한살림서울 페이스북에 신청댓글 달기

문의 : 02-3498-3707 전략지원팀

 

유전자룰렛

한살림서울 홈페이지

화, 2016/07/12-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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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의원 역할

조합원중 선출된 대표로서 조합원 총회를 대신하여 열리는 대의원총회의 구성원

한살림광주의 조합원 대표로 대의원총회에 참석하여 감사보고 및 결산 승인

사업계획 및 예산 승인. 정관 및 규약의 제정과 변경등의 주요의사 결정에 참여

 

2. 대의원 요건

조합가입후 1년을 경과한 조합원

조합 사업을 성실히 이용하는 조합원

조합운영에 적극적으로 첨여하는 조합원

 

3.대의원 임기

2016년2월25일(총회) 부터 1년간

 

4.대의원 정수

대의원 100명

 

5. 대의원 선출기간

2015년 12월 18일 ~30일 수요일까지

 

6. 한살림광주 사무국 및 각매장

 

한살림광주 홈페이지
월, 2015/12/21-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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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살림 매일밥상 – 오늘의 국 · 탕

 

깊어지는 가을의 맛을 듬뿍 담은 건강 밥상

 

들깨토란탕

 

오늘의 국 · 탕 – 들깨토란탕

 

들깨토란탕

이렇게 만들어요

 

오늘의 국 · 탕 – 들깨토란탕 재료

 

재료

알토란 300g, 무 1/4개, 애호박 1/4개, 말린표고버섯 4~5개, 다시마 1조각, 들깨가루 10큰술, 찹쌀가루 1큰술, 어간장 1큰술, 쌀뜨물 3컵

 

방법

1. 껍질을 벗긴 토란을 쌀뜨물에 5분 정도 데친 뒤 먹기 좋은 크기로 깍둑 썬다.
※ 쌀뜨물에 데치면 토란의 아린 맛을 제거할 수 있다. 토란의 껍질은 쌀뜨물에 데친 후 벗겨도 상관없다.

2. 말린표고버섯은 반나절 정도 물에 불린 뒤 납작하게 썬다. 무, 애호박도 납작하게 썬다.

3. 현미유를 두른 팬에 채소를 볶다가 재료가 노릇하게 익으면 어간장을 넣고 더 볶는다.
※ 먼저 간을 하고 볶으면 채소가 질겨질 수 있으니 간은 채소를 충분히 볶은 뒤에 한다.

4. ③의 채소에 간이 배면 ①의 토란을 넣고 함께 볶다가 재료가 잠길 정도의 물을 붓고, 다시마를 넣어 끓인다.

5. 분량의 들깨가루와 찹쌀가루를 ④에 넣고 걸쭉해질 때까지 끓인다.

 

 

요리지도_경봉스님

20년 동안 한국 전통음식과 사찰음식을 만든 경험을 토대로 양평친환경농업박물관 내 자연요리연구소에서 건강한 식재료 및 조리법에 대해 연구하고 강의하고 있습니다. 음식을 통한 건강하고 조화로운 삶을 추구하며, 체질과 증상에 맞는 건강식과 발효음식 등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10년 전, 한살림 식재료를 이용해 요리하는 용문사부설 어린이집의 식단을 책임지게 되면서 한살림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수, 2017/11/29-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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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신숙 희망제작소 일본 주재 객원연구위원이 전하는 일본, 일본 시민사회, 일본 지역의 이야기. 대중매체를 통해서는 접하기 힘든, 일본 사회를 움직이는 또 다른 힘에 대해 일본 현지에서 생생하게 전해드립니다.


안신숙의 일본통신 43

마을 일에 침묵하던 주민들이 입을 열게 된 까닭

도쿄 도 신주쿠에서 중앙선을 타고 20여 분을 달리면 미타카 역이 나온다. 쾌속선을 타면 바로 다음 정거장으로 10여 분 만에 도착할 수도 있다. 일본 방문 계획을 세우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미타카 역을 들어봤을 것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지브리 미술관’이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관장으로 있는 지브리 미술관의 정식 명칭이 ‘미타카시립 애니메이션 미술관’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즉, 지브리 미술관은 (주)스튜디오 지브리(이하 ‘지브리’)가 아닌 미타카 시민의 재산인 것이다. 어떤 경위로 지브리 미술관이 미타카 시민의 공공재산으로 탄생하게 된 것일까?

▲ 미타카의 숲 지브리 미술관

▲ 미타카의 숲 지브리 미술관

미타카 시는 시내의 도립 이노카시라 공원에 문화시설을 만들고자 소유자인 도쿄 도와 1992년부터 논의하고 있었다. 마침 1997년부터 지브리 미술관 건립을 계획해 온 지브리는 미타카 시에 공동으로 미술관을 건립할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도립공원 내에 민간시설을 건립할 수는 없었다. 이때부터 미타카 시와 주민들은 미술관을 유치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지브리가 건축물을 미타카 시에 기부하고 시의 공공시설로 미술관을 건립한 후 지브리와 미타카 시 그리고 니혼TV가 함께 설립한 ‘공익재단법인 도쿠마 기념 애니메이션 문화재단’을 관리 운영자로 지정하기로 했다. 이른바 PFI(Private Finance Initiative)방식을 도입한 도시재생사업의 선구적인 실험 사례가 된 것이다.

미타카시의회는 ‘미술관 특별위원회’를 설치해 미술관 건립에 관한 안건들을 공개적으로 검토한 뒤 ‘미타카시립 애니메이션 미술관 조례’를 제정했다. 또한 주민들과 지역 관계자들은 ‘미타카 시립 애니메이션 미술관 마을 만들기 추진 협의회’를 조직해 교통대책과 지역활성화 대책을 협의했다. 이렇게 해서 인구 19만의 미타카 시는 세계적인 관광지인 지브리 미술관을 주민의 재산으로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 ‘주민참여와 파트너십의 인텔리전트 도시’로 불리고 있는 미타카식 민관 협동 사업의 모델이 탄생한 것이다.

50년을 이어온 주민참여와 협동의 시정

미타카 시의 주민참여와 파트너십에 의한 시정은 약 50여 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미타카 시는 1950년부터 시정이 시작되어 1955년 사회당 출신의 스즈키 헤이사브로가 3대 시장에 당선됐다. 5기에 걸친 20여 년간의 재임 동안 그는 혁신 시정을 펼치면서 현재의 미타카 시정의 기초를 다졌다. 그중 하나가 시를 7개의 지구로 나누고 각 지구별로 커뮤니티센터를 건립하여 주민협의회가 이를 운영하게 하는 ‘커뮤니티 시정’이다. 커뮤니티센터를 중심으로 주민자치의 마을만들기를 실시하고 이를 통해 행동하는 주민들을 육성한다는 구상이었다. 1971년 커뮤니티센터 조례가 제정돼, 1973년에 오사와에 제1호 커뮤니티센터가 개관됐다. 1972년에는 ‘미타카 시 기본구상’에 시민들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마을만들기 시민의 모임’이 구성됐다. 여기에서 나온 의견을 바탕으로 1975년 ‘미타카 시 기본 구상’이 책정되었고 시의회에서 가결돼 미타카 시정의 기초가 됐다.

노동조합 출신의 사카모토 마사오 시장 또한 4기에 걸쳐 16년간 스즈키 시장의 커뮤니티 시정을 이어갔다. 이에 따라서 1984년 렌자크 커뮤니티센터를 마지막으로 7개 지구의 커뮤니티센터가 완성되어 주민협의회가 운영하게 되었다. ‘건설비와 운영비는 시가 부담하지만 운영에는 일체 관여하지 않는다’라는 방침이었다. 다양한 시민 및 단체가 자발적으로 운영에 참여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각종 시민회의가 개최되기 시작했다.

▲ 지역주민들은 이노카시라 커뮤니티센터를 거점으로 다양한 지역활동을 펼치고 있다.

▲ 지역주민들은 이노카시라 커뮤니티센터를 거점으로 다양한 지역활동을 펼치고 있다.

1981년에는 7개 지구 주민협의회가 각 지역별로 ‘커뮤니티 카르테’를 작성해 시에 제출하기에 이르렀다. 커뮤니티 카르테란 주민 스스로 지역적 과제를 진단하고 ‘마을만들기 계획’을 작성한 것이다. 시가 이를 미타카 시 기본계획과 실시계획에 반영하면서 커뮤니티 시정은 한층 발전했다. 커뮤니티 카르테는 주민협의회가 선출한 ‘카르테 작성 위원회’에 의해, 1981년, 1984년, 그리고 1989년 모두 3회에 걸쳐서 작성됐다. 카르테 작성에 참가했던 주민들은 ‘새로운 만남의 기회가 됐다’, ‘주민자치란 관용과 조정, 결단이 필요함을 알게 됐으며, 정치란 현실의 통찰로 이뤄진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참가소감을 밝혔다.

1990년대에 이르러 미타카 시의 시정은 ‘참여에서 협동(파트너십)으로’ 한층 발전하게 된다. 제 5대 야스다 요지로 시장은 미타카 시 공무원 출신으로 스즈키 시장과 사카모토 시장의 시정을 보좌해 왔었다. 그 덕분에 주민의 의견을 시정에 반영하려는 ‘시민회의 방식’은 그대로 이어져 다양한 분야에서 전개됐다. 그리고 여기에 한발 더 나아가 ‘워크숍 방식’을 도입해, 마을만들기 계획뿐만 아니라 그것을 구체화하는 과정에도 주민들의 참여가 활발하게 이뤄지기 시작했다. 주민협의회 멤버뿐만 아니라 아이들에서 어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민들이 지역에 공원을 만들고 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하는 일에 직접 참여하게 됐다. 워크숍에 의한 마을만들기 사업의 대표적인 예로 ‘꿈의 공원 만들기(이노카시라 테노히라 어린이 놀이터) 워크숍’과 ‘마루이케 부활 플랜 만들기 워크숍’이 유명하다.

▲ 1997년 100여 명의 주민들이 총 11회의 워크숍을 개최하여 살린 마루이케 공원

▲ 1997년 100여 명의 주민들이 총 11회의 워크숍을 개최하여 살린 마루이케 공원

시작부터 주민참여로 이뤄진 미타카 시 기본계획

1999년 10월 미타키 시 주민들로 구성된 NPO조직 ‘미타카 시민 플랜 21 회의’가 발족했다. 미타카 시의 기본 구상・제3차 기본계획을 책정하기에 앞서, 주민들이 직접 그 기본계획을 수립해 시에 제언하기 위해 구성된 조직이다. 이는 시가 계획을 수립할 때 시민 의견을 수렴하는 기존의 시민회의 방식과는 크게 다른 새로운 형태의 시민 참여 방식이었다. 즉, 시가 원안을 작성하기 전에 백지상태에서 시민회의가 구성됐다. 시민회의의 구성원 또한 공모에 의해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졌다.

이러한 새로운 시도는 1995년 결성된 ‘미타카 시 마을 만들기 연구소’의 제안으로 이뤄졌다. 연구소는 기존의 공원 만들기나 학교의 재건축 등에서 이뤄졌던 워크숍 방식의 시민참여가 시의 종합계획을 수립할 때도 적용될 수 있다고 판단해 시작부터 시민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내서 토론하고 이를 계획에 반영하는 ‘시민참여의 새로운 모델’을 시에 제안한 것이다. 시는 이 제안을 수용해 먼저 준비위원회를 공모했다. 준비위원회는 새로운 시민참여 조직의 형식과 회의 운영의 기본 규칙 등을 정하고 시민 참가자를 공모했다. 인원의 제한을 두지 않는 완전 자유 참가 형식이었다. 이 공모로 모인 375명의 시민들로 1999년 10월 미타카 시민 플랜 21회의가 출범했다.

시민 플랜 21회의는 미타카 시와 파트너십 협정을 체결하고 10개의 분과 위원회로 나뉘어 계획을 수립하기 했다. 1년간의 토론에 토론을 거듭한 결과 ‘미타카 시민 플랜 21’을 완성하여 이를 시에 제출하게 된다. 미타카 시민 플랜 21은 지구・협동・순환・ 공생이라는 4개의 키워드로 정리돼 있으며 시민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자치기본조례’를 제정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시는 이 제안서를 바탕으로 신기본구상과 제3차 기본계획 초안을 작성했고, 시민 플랜 21회의는 시의 초안에 대한 의견서를 다시 제출했다.

그 결과, 2001년 5월에 최종안이 책정돼 그해 9월에 의회에서 의결됐으며, 이를 수용해 제3차 기본계획이 2001년 11월에 확정됐다. 임무를 마친 시민 플랜 21회의는 3년에 걸친 활동을 종료하고 해산했다. 그리고 시민 플랜 21회의는 이듬해 마크하리멧세에서 열린 일본 행정학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행정의 시작부터 주민들이 참여한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궁극적인 시민참여 행정 모델로 평가받은 것이다. 기요하라 케이코 현미타카 시장이 바로 시민 플랜 21회의 3명의 의장 중 한 명이었다.

▲ 2003년 시 조례에 의해 설립된 NPO법인 미타카 시민 협동 네트워크가 운영하고 있는 시민협동센터는 시민들의 행정 참여를 돕고 있다.

▲ 2003년 시 조례에 의해 설립된 NPO법인 미타카 시민 협동 네트워크가 운영하고 있는 시민협동센터는 지역주민들의 행정 참여를 돕고 있다.

침묵하던 주민들 시정운영에 입을 열다

2006년 8월 26일~27일, 미타카 시 시민협동센터에서 ‘미타카 마을만들기 공개 토론회’가 개최됐다. 이날 토론회 개최를 위해 미타카 상공회의소와 미타카 시는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청년회의소 회원 12명, 미타카 시 공무원 4명, 시민단체 회원 6명으로 구성된 총 22명의 실행위원회를 조직했다. 실행위원회는 6개월 동안 총 30회가 넘는 회의를 통해 토론회를 준비했다. 우선 18세 이상 시민 1,000명을 무작위로 선발하여 토론회 참가 의뢰서를 발송했다. 그중 87명의 시민이 참가 승낙서를 보냈다. 예상을 넘는 숫자였다. 87명 중에서 공개추첨을 통해 참가자 60명을 선발했다. ‘무작위 선발’이란 방식으로 참가자를 결정한 것은 ‘침묵하는 다수의 주민’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서다. 무작위로 선발된 시민들에게 관련 현황 등의 정보를 사전에 제공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토론회는 ‘안전・안심 마을 만들기-어린이 안전’을 주제로 1시간씩 총 4회에 걸쳐 진행됐다. 먼저 5명씩 10개의 그룹으로 나눠 동시에 토론을 진행하고, 다양한 의견을 듣기 위해 과제별로 그룹의 토론 멤버를 교체했다. 각 그룹은 제출된 다수의 의견 중에서 3개의 의견을 정한 뒤, 그룹 대표가 전체 회의에서 이를 발표하고 참가자들은 찬성하는 의견에 투표를 했다. ‘경찰과 시청, 학교가 어린이 안전을 위한 협의회를 만든다(총득표 14), 퇴직한 시니어들로 유급 어린이 보호관을 양성한다(총득표27)’ 등의 의견이 제안되었다.

토론회 참가자들은 ‘진짜 시민이 된 것 같다’, ‘재미있었다’ 등의 소감을 밝혔다. 물론 토론회의 효과는 참가자들의 높은 만족도에 그치지 않았다. ‘제출된 제안들이 시민과 지역에서 해야 할 과제와 행정에서 해야 할 과제가 각각 구별돼 있고 매우 현실성이 높다’며 ‘제안의 질’ 또한 높이 평가됐다. 이런 평가에 힘입어 미타카 시는 ‘무작위 선발에 의한 마을만들기 공개 토론회’를 매년 정례화시켰다. ‘미타카 마을만들기 공개 토론회’는 시의 종합기본계획 책정, 외곽순환도로 주변의 마을만들기, 방재 마을만들기 등등 해마다 주제를 바꿔 개최되고 있다. 매년 각 연령층에서 무작위로 선발된 침묵하던 다수의 주민들이 모여 진지하고 활발하게 토론을 벌이고 질 높은 제안을 하고 있다. 그동안 행정 참여의 경험이 없었던 주민들이 시정에 참여하여 지역 문제를 공유하고 해결책을 찾아보는 미타카 시의 ‘마을만들기 공개 토론회’는 매우 획기적인 사례로 평가되고 있으며, 미타카 시는 앞으로도 시민참여와 협동을 기반으로 한 시정 운영 모델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글 : 안신숙 | 희망제작소 일본 주재 객원연구위원 · [email protected]

금, 2016/07/29-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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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지방수령들은 행정ㆍ군사ㆍ사법권을 모두 갖고 고을 백성들의 삶을 어루만지는 책무를 갖고 있었다. 그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때는 ‘목민관’이라 불리고, 그렇지 못하고 그 권한을 자신의 사익을 위해 행사할 경우에는 ‘탐관오리’라고 불렸다. 조선 명종시대 단양 군수로 부임한 황준량은 고을의 참상을 보고 조정에 상소문을 올렸다.

“아, 영동의 조그마한 고을이 이 지경에 이르러 한 가지 부역도 대비하기 어려운데 까다로운 법령과 번거로운 조항을 들어 남아 있는 백성에게 책임을 나누어 기필코 그 숫자를 채우려 하니 어떻게 배를 채우고 몸을 감쌀 수 있겠습니까. 이는 물고기를 끓는 솥에다 기르고 새를 불타는 숲에 깃들이게 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권에서)

황준량의 상소문을 보면,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는 당시 수령들의 한계 역시 너무나 분명해 보인다. 황준량은 ‘곤궁’과 ‘가혹한 세금’의 고통에 빠진 백성들을 위해 상책ㆍ중책ㆍ하책의 세 가지 계책을 갖고 있었지만, 상소문을 통해 중앙 조정의 혜량과 통촉에 호소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그렇다면 2016년 지방정부ㆍ지방자치단체의 상황은 어떠할까?

제헌헌법에 지방자치를 명시한 대한민국은, 1952년 지방의회를 대상으로 한 선거가 1952년에 실시되면서 지방자치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4․19 혁명 이후에 지방선거 대상이 지방자치 단체장까지 확대되었다가, 5․16 쿠테타 이후 ‘지방자치에 관한 임시조치법’에 의해 지방자치제도가 폐지되고 말았다. 1987년 6월 항쟁의 결과물인 개정 헌법에 따라 지방자치법이 부활하면서, 1991년부터 지방의회 선거가, 1995년부터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가 실시되어 오늘날에 이르렀다. 이후 20~25년간 대한민국 지방자치는 많은 성과를 보여주었으면서도 질곡에 빠져있다.

이런 측면에서, 현재 대한민국의 지방자치 현실은 ‘87년 체제’의 성과이자 한계라는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다. 여기서는 현 지방자치의 어려움을 법과 제도의 차원보다는 현장과 지역의 눈으로 몇 가지 살펴보려고 한다.

먼저, 무상급식에서 시작된 복지논쟁은, 기초노령연금과 무상보육 누리과정 정책에 이르러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사이의 갈등을 화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게 하고 있다. 지방정부 사업에서 복지가 늘어나는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대부분이 국고보조사업으로 진행되는 데도 국고보조금 비율은 오히려 줄어들면서 지방정부의 재정압박이 커지고 있다. 오죽하면 전국 시장ㆍ군수ㆍ구청장협의회의 ‘복지 디폴트’ 불사 선언에 이어 전국 시ㆍ도 교육감들마저 예산 편성을 거부하고 나서겠는가?

그럼에도 중앙정부는 2015년 8월 ‘지방자치단체 유사ㆍ중복 사회보장사업 정비 추진방안’을 발표하면서, 지방정부의 재량권을 제한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지방정부가 지역의 상황에 맞춰 추진하는 복지정책과 사업을 모두 금지하겠다는 것이다. 중앙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한 정책 집행에 따른 사무ㆍ예산 부담은 지방정부에 전가하면서, 지방정부의 맞춤형 정책에 대해서는 불이익을 주는 방법으로 대처하는 모습이다. 이렇게 될 경우 지역의 현실에 맞는 노인복지 정책이나 저출산 대응 정책들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은 기우일까?

기우가 아니라는 사실은 ‘청년정책’을 둘러싼 최근 논쟁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역대 최고 수준이라는 2015년 9.2% 청년 실업률마저 2016년 들어 갱신되는 현실에서 길을 잃고 있는 청년들, 3포 세대를 넘어서 N포 세대라고 스스로를 자조하는 청년들, 헬조선을 이겨내는 방법은 탈조선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청년들에게 중앙정부는 효과적인 대안과 정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시는 2015년 11월 ‘2020 청년 기본정책’을 발표했다. 정책은 활동(설자리), 노동(일자리), 주거(살자리), 공간(놀자리) 등 4개 분야에 걸쳐 20개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중 청년수당(청년활동지원사업)을 둘러싸고 서울시와 중앙정부의 대립이 심각하게 나타났다. 서울시는 이른바 NEET청년(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 등 정기소득이 없는 미취업자 중 활동의지를 가진 청년들이 사회참여활동을 하고 관계망을 형성할 수 있도록, 심사를 거쳐 2개월(최소)~6개월(최대) 월 평균 50만 원을 지원한다는 입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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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청년정책 기본계획’ 내용이 올라와 있는 서울시 블로그 출처 : 서울시 블로그(http://blog.seoul.go.kr)

보건복지부는 서울시가 자신들과 사전협의를 거치지 않았다고 반대하고 나섰다. ‘사회보장기본법’에 따르면 ‘지자체가 사회보장제도를 신설ㆍ변경하는 경우’에 소관 부서와 협의를 거치도록 되어 있는데, 서울시가 이를 어겼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관련 법령을 고쳐서 이런 경우 지방교부세를 삭감할 수 있도록 하고, 서울시에 적용하겠다는 입장을 제시했다. 서울시는 청년수당이 복지사업이 아닌 일자리 사업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중앙정부와 끝장토론이라도 할 수 있다는 유연대응과 헌법재판소를 통한 권한쟁의심판 청구라는 강경대응을 함께 내놓고 있다.

경기도 성남시도 2015년 3대 복지사업으로 청년배당, 무상교복, 공공산후조리원 사업을 포함한 2016년 예산안을 의결했다. 확보된 113억 원의 예산으로, 성남시에 3년 이상 거주한 만 24세 시민 약 11,300명에게 분기별로 12만5천 원씩 연 50만 원을 우선 지급한다는 게 청년배당 정책의 핵심이다. 지원금 56억5천만 원은 성남시에서만 사용 가능한 지역화폐로 지급함으로써 지역경제에 선순환을 가져올 수 있다고 봤다. 그런데, 보건복지부는 서울시와 같은 입장으로 반대하고 나섰고, 경기도는 성남시 의회를 대법원에 제소하고 예산안 집행정지 결정도 신청하고 나섰다. 성남시는 해당 정책 관련해서 보건복지부와 사전 협의를 거쳤으나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하지 못했고, 헌법재판소 청구 등 법적 투쟁에 나선다는 방침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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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시는 2016년 1월 20일 청년배당 지급을 시작했다. 사진출처 : 성남시청(http://www.seongnam.go.kr)

그런데 같은 시기 경기도는 ‘일하는 청년통장’ 정책을 보건복지부와 협의해서 진행한다고 밝혔다. 참여 청년들이 매월 10만 원을 저축하고 3년간 일자리를 유지하는 경우, 도와 민간모금액 10만 원, 5만 원을 각각 매칭 지원해 1,000만 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골자이다. 지원액은 주택 구매나 임대, 교육, 창업 자금 등 자립에 필요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 지원 대상은 도내 거주하는 중위소득 80% 이하(1인 가구 기준 125만 원)인 만 18세부터 만 34세까지의 저소득 근로청년 500명이 된다. 여기에 서울시와 성남시의 청년수당(배당) 정책을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던 정부조차 청년에 대한 직접적인 보조금 지급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3월 9일 기획재정부와 고용노동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이르면 오는 21일 그동안의 청년취업 지원 정책 등을 재개편하는 방안을 담은 ‘청년고용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여기에 정부의 취업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청년에게 구직수당을 지급하는 방안도 논의 대상에 오르면서 다시금 청년수당을 둘러싼 논쟁이 재연되고 있다.

서울시와 성남시 그리고 경기도와 정부의 정책들을 둘러싼 논쟁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성남시를 대법원에 제소한 경기도의 정책은 성남시의 정책과 정말 다른 것일까? 정책의 대상인 청년의 처지에서 말이다. 정부가 구상 중인 구직수당 지급 등은 정부가 소송을 제기하면서까지 반대한 서울시, 성남시의 ‘청년수당’과 크게 다를까? 이 논쟁들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고유사무를 어떻게 볼 것인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사무를 둘러싼 ‘협의’라는 법적 규정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정치와 행정을 둘러싸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역할과 권한ㆍ책임은 어떻게 조정되어야 하는가를 둘러싸고 벌어진다.

행정의 중앙집중성은 정치의 중앙집중성과 맞닿아 있다. 제도정치의 모든 역할과 권한이 여의도 정치에 독점되면서, 지역과 지방의 정치와 행정은 철저하게 그에 종속되어 있는 모습이다. 기초의원부터 광역단체장까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상황은 비슷하다. 수만 명에서 수십만 나아가 1천만 명의 시민들의 민생을 책임지는 선출직 의원들과 단체장들의 권한이 여의도 정치권력과 행정권력에 의해 과도하게 규제되고 있다.

민형배 광주 광산구청장은 “지역구는 있되 ‘지역’이 없다. 민생 민주 구호는 있되 ‘현장’이 없다. 여의도 정치는 있되 지역자치는 없으며, 기초지자체가 발굴한 숱한 미래 가치들은 여의도로 흘러들어 가지 못하고 있다”고 탄식한다. (지역)단체 자치와 주민자치 모두가 중앙정치에 의해서 억압되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광역 및 기초단체장과 의원들의 역할에 대해 다시 이야기해야 하며, 주민들의 자치역량을 강화하려는 방안에 지혜를 모아야 한다.

차성수 서울 금천구청장은 “분명한 건 지난 20년간 지방자치는 진정한 자치가 아니었고, 지방은 중앙의 식민지가 되어가고 있다. 지방분권을 제약하는 장애물을 넘어서야 하는 시점이다. 지방분권 그리고 지방자치는 대한민국의 경쟁력이고, 이를 통해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의 과제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는 희망제작소가 ‘지속가능한 지방자치 실현을 위한 20대 총선제안 지방분권 7대 과제’를 도출하고, 총선 후보자들과 실천약속 운동을 펼치는 이유와도 같다. 지방의 소멸은 인구감소ㆍ인구절벽 때문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87년 헌법체제에서 만들어진 지방자치제도에 대한 수술을 통해 지방분권 2.0을 만들지 못한다면, 풀뿌리 민주주의의 소멸 역시 불가피하다.

글 : 정창기 | 목민관클럽팀 팀장 · [email protected]

월, 2016/03/14-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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