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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노동당 서울 종로중구당협 당원 윤자형입니다. 저는 2009년부터 성노동자권리모임 지지(GG, 持志)에서 활동해왔으며, 성노동자의 시민권‧건강권‧노동권 등 삶의 기본 권리를 증진시키기 위해 투쟁하는 전 세계의 성노동자운동을 지지합니다. 저는 다른 생산직 혹은 서비스업 노동자들을 지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산업에 종사하는 (성)노동자들을 지지하며, 성노동자가 일터 안에서든 밖에서든 노동자이자 시민으로서 정당한 대우를 받으며 안전하게 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공장에서 일하건, 백화점이나 마트에서 일하건, 집창촌 혹은 안마방에서 일하건 간에 한 인간으로서 정당한 대우를 받고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대학생 시절 총여학생회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습니다. 2000년대 초반이었던 당시에 제가 다니던 대학의 총여학생회는 학내 성폭력과 ‘양성평등’ 문제에 집중했었고, 총여학생회 선거의 최대 이슈는 여학생 휴게실 확충과 생리 공결제도 도입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학내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던 저 역시 성폭력 문제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학내의 성소수자 커뮤니티나 비싼 등록금 및 취업난과도 상당한 관련이 있을 성매매 문제 등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양성평등’보다 여러 성정체성을 포함할 수 있는 ‘성평등’이라는 용어를 써야겠다는 반성, 이웃 대학의 단과대학 학생회장들이 모두 양성쓰기와 ‘포르노 안 보기 운동’을 하고 있으니 우리 대학에도 이 운동을 제안하자는 의견, 성매매와 성산업은 성폭력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니 여성주의자로서 이에 반대해야 한다는 주장 등이 학내 활동을 통해 접할 수 있는 논의의 전부였습니다.
성매매가 여성의 성을 상품화하기 때문에 남성이 여성을 더욱 쉽게 비하하고 대상화하게 만들뿐만 아니라, 성매매 여성 스스로가 알든 모르든 성매매 여성은 성차별적 구조의 ‘피해자’라고 믿었던 저에게, 2004년 성매매특별법 시행에 반대 목소리를 내는 성매매 여성들의 존재는 다소 낯선 것이었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 중에는 성매매 여성들이 “포주가 시켜서 거리에 나온 것이다”라고 단정 짓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제정신인 피해자들이라면 업주에게 강요받지 않은 이상, 성매매를 계속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데모까지 할 리 없다는 것이었지요. 저도 한동안은 성매매 여성들의 시위가 포주의 강요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한 친구로부터 “손가락을 사용해서 안마를 해주고 돈을 버는 것과 성기를 사용해서 섹스를 해주고 돈을 버는 것의 차이점이 뭐야?”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명쾌한 답을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이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여러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왜 성행위는 돈을 받고 하면 안 되는 것이지? 성이 나쁜가, 돈이 나쁜가?’ ‘다른 노동과 성매매가 다른 점은 무엇이지?’ ‘도덕주의자와 여성주의자의 반성매매는 어떻게 다르지?’ ‘성매매 여성의 존재는 정말로 여성의 지위를 악화시킬까? 그럼 남창(男娼)의 존재는?’ ‘성매매 여성이 자신의 일을 부끄러워하고 숨기는 이유는 무엇이지?’ ‘생계를 유지하려고 자발적인 성매매를 하는 것은 왜 범죄지? 더 나쁜 일들 중에도 합법인 것이 얼마든지 있는데?’ ‘명품가방을 사려고 술집에서 일하는 건 왜 나쁜 것이지?’
이런 질문들을 간직한 채 대학을 졸업해 대학원에 입학했고, 아는 선생님을 통해 한 통의 이메일을 전달받은 저는 ‘성노동’이라는 말도 ‘성노동자운동’의 존재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성노동자를 지원하는 단체를 준비하는 모임이 있다는 내용의 이메일이었고, 이곳에 참석하면 그 동안의 의문점을 풀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갔던 곳이 성노동자권리모임 지지의 ‘준비모임’이었지요. 지지는 6년의 활동기간 내내 무엇보다도 매춘에 대한 낙인을 가장 크게 문제 삼았고, 저 역시 여기에 동의합니다. 성노동이 불법인 것, 이로 인해 성노동자가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고, 성노동자가 자신의 일을 숨겨야만 하고 이로 인해 정당한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이 매춘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기 때문입니다.
성노동자운동과 연을 맺고 지내는 동안 제가 단순히 성노동을 하는 당사자 활동가들 뒤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성노동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모든 이에게 필요한 이유는, 이 문제가 여성 및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기득권의 도덕 및 성적 억압, 계급, 장애인, 대학교육 등 온갖 주제를 포함하는 복잡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지지에서 활동하면서 누구보다도 저 스스로가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성노동자운동이 이야기하는 것이 저의 이야기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성이며, 성적인 억압을 느끼며 살아왔고, 돈 없는 계급에 속해 있으며, 달마다 학자금 대출 이자를 갚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또 다른 각자만의 이유로 성노동자운동에 관련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지지의 《똑바로 나를 보라 2》는 예전에 저도 했었던 질문들을 무대와 객석에 올리고, 관객과 배우가 함께 이야기할 수 있도록 준비한 토론 연극입니다. 대본을 쓰신 노동당원 사미숙 씨는 “제가 지어낸 대사는 하나도 없어요. 전부 성매매를 반대하는 사람들 글이나 발언에서 나왔던 건데 그대로 정리만 한 거예요”라고 합니다. 어떤 대사들인지는 공연에 오셔서 들어보시면 좋겠습니다. 성매매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읽어보신 적이 있다면, 공연 날 데자뷰를 체험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끝으로, 함께 연극을 준비하고 있는 성노동자권리모임 지지 활동가 도균의 글을 소개하며 제 글을 마칩니다.
<성노동자 활동가 도균의 글>
《똑바로 나를 보라 2》 제작이 결정될 때만 해도 나는 굉장히 자신감에 차있었다. 작년에 연극 제작에 처음 참여해본 초짜 중의 초짜지만 나는 자신만만했다. 어쩌면 연극 제작 경험도, 연극 관람 경험도 거의 없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자신감이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2014년 인권연극제 참여작 《똑바로 나를 보라 1》과는 달리 《똑바로 나를 보라 2》가 토론극 형식으로 바뀌고, 본격적으로 연습에 들어가면서 나는 말 그대로 ‘멘붕’에 빠졌다.
나를 가장 멘붕하게 만든 것은 즉흥연기를 해야 한다는 점이 아니었다.* 과거에 성노동을 했었고, 지지에 가입해서 1년 넘게 활동해온 당사자 활동가인 나는 나름대로 성노동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에 대해 얼마든지 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토론 파트 연습을 할 때마다 아무 문장도 떠오르지 않거나 같은 문장만 반복하곤 했다. 토론 연극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 부분이 가장 힘들고 어려웠다.
사실 생각해보면 우습기도 하다. 다른 활동을 할 때 당사자‧활동가라는 정체성이 그 이슈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담보하지도 않고 내가 그 운동, 그 집단 전체를 대변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지겹도록 듣고 말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성노동에 대해서는 내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환상을 여전히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성노동자니까, 지지의 활동가니까 섹스와 성노동에 대해 잘 알고, 금기나 혐오로부터도 자유로울 거라는 막연한 환상. 그리고 이 연극이 성노동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는 내가 이것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을 계몽하는 수단이라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성노동자라고 커밍아웃하고 활동을 하는 것은, 결코 내가 성노동에 대한 혐오로부터 자유로워서가 아니다. 내가 커밍아웃을 하고 활동하는 것은 성노동에 대한 이 세상과 나 자신의 혐오를 똑바로 보고 그에 맞서기 위함이다. 성적 엄숙주의와 매춘에 대한 혐오로 가득한 세상에서 20여 년을 살아왔고, 이곳에서 훈육된 것들을** 내가 성노동을 한다고 해서, 활동을 한다고 해서 바로 털어낼 수는 없다.
이번 공연에 관객으로 참석하는 분들과 서로 치열하게 질문을 던지는 과정에서 나도, 지지의 다른 활동가들도, 관객들도, 단지 언급하는 것조차 금기시되는 이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할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또 그 과정을 통해 이 연극을 연습하기 위해 들였던 시간과 노력 이상으로 많은 것들을 얻어갈 수 있겠다는 확신도 생겼다.
나는 《똑바로 나를 보라》라는 연극의 제목을 오로지 주인공 나용자(성노동자)가 사람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로만 해석했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똑바로 나용자를 보는 것 외에도 똑바로 마주봐야할 “나”가 있을 것이다. 나는 당신의 질문이 궁금하다. 그리고 당신에게 질문하고 싶다. 똑바로 “나”를 볼 수 있나요?
* 물론 내가 디테일하게 연기를 잘하거나 즉흥적으로 연기를 잘하는 건 아니지만 이건 할 수 있는 만큼 해보다 정 안되면 포기하면 편하다.
** 굳이 낙태 비디오를 틀어주던 고등학교 때의 성교육뿐만 아니라 내가 접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들에는 성노동에 대한 혐오가 당연하고 그건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모욕이라는 전제가 깔여있었다. 심지어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까지 너희 엄마 창녀는 가장 심한 욕이었고 내가 거짓말을 한다면 우리 엄마를 창녀다(a.k.a 엄창)가 또래들 사이에서는 신뢰의 상징이었다.

지난 6월 공식 출범 이후 (사)다른백년은 논평 활동을 통해 △사회적 이슈에 대한 정론 정립 △전문가 네트워크 구축 △정론의 유통과 확산 등을 목표로 많은 글을 공개해왔습니다.
지난 6개월 동안 공개된 글은 주간논평 15개, 금주의인물 25개, 그리고 백년칼럼 4명(이래경, 김동춘, 김상준, 이대근)이었습니다.

<주간논평>은 다음과 같이 해당 시기에 가장 핫한 이슈를 선정해 그 분야의 최고 전문가의 글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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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억 대구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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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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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언 전 KBS이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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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정 일본 국제기독교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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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상희 변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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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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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경희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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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호 서원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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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환 미국 캔자스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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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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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선 연세대 연구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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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원 국민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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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준호 프리랜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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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일표 더미래연구소 사무처장 |
<금주의 인물>은 매주 국내 인물과 해외 인물을 번갈아 가면서 소개했고, 화제의 인물을 통해 시대변화의 흐름을 읽고자 했습니다. 황경상 경향신문 기자, 이동현 한국일보 기자, 이승준 한겨레신문기자가 한 주도 거르지 않고, 돌아가며 매주 화제의 인물을 소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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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인물 |
해외 인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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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칼럼>은 이래경 칼럼, 김동춘 칼럼, 김상준 칼럼, 이대근 칼럼 등 (사)다른백년의 이사들이 정기적으로 기고했습니다.
2017년 새해가 시작됩니다. 새해에도 정론의 정립과 확산, 전문가 네트워크의 구축 등을 위해 더욱 분발하겠습니다.
이소선 어머니 5주기 기림 이소선합창단 정기공연
종이 담쟁이
작은 몸집으로 산보다 큰 그림자를 드리워 천만 노동자와 민중에게 생기와 희망을 불어넣으셨던 이소선 어머니께서 우리 곁을 떠난 지 5년이 되었습니다. 어머니를 기리고, 행복한 노동과 인간다운 삶을 바라는 모든 이의 마음을 모으고자 2016년 10월 23일(일) 오후 5시에 마포아트센터에서 “종이 담쟁이”라는 제목으로 이소선합창단 정기공연을 펼칩니다. 이소선합창단은 모든 노동자 단결하여 싸우라는 어머니의 뜻을 노래로 새기고 퍼뜨리고자 2011년에 걸음을 내디뎠고, 그동안 수많은 노동자 투쟁 현장에서 함께 싸우며 힘을 북돋웠습니다.
노래로 연대하는 이소선 합창단
꽃 같은 아이들이 영문도 모른 채 우리 곁을 떠나야 했던 세월호 사고 뒤 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진상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지난 5월, 그 아이들과 같은 나이인 비정규직 청년이 지하철 안전문을 수리하다 사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가장 위험한 일에 가장 어리고 미래가 불안한 비정규직 노동자를 밀어 넣는 게 우리 사회의 자연스러운 질서처럼 자리를 잡아 갑니다. 하지만 어둡지만은 않습니다. 이 젊은이의 비극에 슬픔과 부끄러움을 고백하는 노동자와 시민들의 쪽지가 구의역 전체에 종이 담쟁이를 드리웠습니다.
슬픔과 부끄러움에 드리워진 종이 담쟁이
그 종이 담쟁이 잎에 새겨진 마음이 바로 이소선 어머니의 삶이고 바람이고 어머니께서 우리에게 남기신 뜻이기에 우리는 “종이 담쟁이”라는 노래를 만들었고, 올 정기공연의 제목으로 세웠습니다. 그리고 혼자 힘으로는 도무지 어찌할 수 없는 비정규직의 굴레 앞에서 그저 자신을 탓하고 살 수만은 없는 작은 숨소리를 모아 “바람보다 드세게”라는 노래로 부릅니다. 하늘 덮는 숲을 이끌었던 작은 나무 이소선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문득 떠나가신 님”, 지치지 않고 강물보다 더 길게, 바다보다 더 넓게 거침없이 퍼진 어머니의 사랑을 기리는 “사랑은 길게 흐른다” 두 곡이 공연의 시작과 끝을 울립니다. 세월호의 아픔을 그린 “어느 별이 되었을까”, “너의 졸업식”은 유가족과 어린 넋들에 바치는 우리의 다짐입니다.
작은 숨소리 모아 바람보다 드세게 부르는 노래
이소선 어머니 5주기 기림 정기공연에서는 이소선합창단에서 창작한 8곡과 “연대의 광장으로 모이자”, “단결한 민중은 패배하지 않는다” 등 외국의 노동자와 민중들이 투쟁하며 부른 노래 2곡, 그리고 갖가지 비열한 노동 탄압에 맞서 싸우고 있는 투쟁 현장 노동자들과 함께 무대에 서서 부르는 떼창 등 모두 14곡을 선보입니다.
강물보다 더 길게, 바다보다 더 넓게
2014년 창단 공연에는 34명이 무대에 섰고 창작곡은 1곡이었습니다. 2015년 정기공연에는 43명이 무대에 섰고 창작곡은 3곡이었습니다. 2016년에는 52명이 무대에 서며 창작곡은 8곡입니다.
돈의 힘 앞에 주눅 들지 않는 노동자 문화,
돈의 힘으로 만들어낸 어떠한 것보다 더 아름답고 빛나는 노동자 예술,
그것이 사람으로 사는 까닭을 노래하려는 이소선합창단에서 작고 거친 소리를 모아 열어젖히는 새 세상입니다.
펑펑 울고, 끊어져 나가라 손뼉 치고, 함께 목청 돋워 우리의 사랑을 키우는 공연으로 만들겠습니다. 마음과 힘을 모아 주십시오.
티켓예매 : 인터파크 예정(전석 2만원) / 문의 : 매니저 이영희(010-9141-2021)
○ 공연개요
- 때 : 2016년 10월 23일, 일요일 오후 5~7시
- 곳 : 마포아트센터 1층 아트홀 맥
- 출연 : 이소선합창단 52명(지휘 임정현)
- 공식후원 : 전태일재단, 한국노총, 민주노총
○ 공연짜임
1부
- 문득 떠나가신 님 *창작곡 (이건범 작사/이현관 작곡)
- 손 내밀어 *창작곡 (이건범 작사/이현관 작곡)
- 바람보다 드세게 *창작곡 (이건범 작사/이현관 작곡)
- 연대의 광장으로 모이자 *독일 노동 운동 노래(베르톨트 브레히트 작사/한스 아이슬러 작곡)
- 다시 또 다시(떼창) (새벽 작사/작곡)
- 해방을 향한 진군(떼창) (류형수 작사/작곡)
- 하늘 가장 가까운 곳 *창작곡 (이건범 작사/황난주 작곡/이경아 편곡)
(휴식)
2부
- 바람씽씽 (한동헌 작사/작곡)
- 봄소식 (류형수 작사/작곡)
- 종이 담쟁이 *창작곡 (이건범 작사/황난주 작곡)
- 어느 별이 되었을까 *창작곡 (이건범 작사/이현관 작곡)
- 너의 졸업식 *창작곡 (이건범 작사/황난주 작곡/이경아 편곡)
- 사랑은 길게 흐른다 *창작곡 (이건범 작사/이경아 작곡)
- 단결한 민중은 패배하지 않는다 * 칠레 민중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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