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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묘지 묻힌 친일파 63명…독립운동가는 공원에 냉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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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묘지 묻힌 친일파 63명…독립운동가는 공원에 냉대

익명 (미확인) | 목, 2018/06/28- 16:18

항일운동가 짓밟던 김백일에 
김구 암살 배후범 김창룡까지
‘친일인명사전’ 인물들 현충원에

항일운동가 짓밟던 김백일에
임정 요인·독립운동가 묘역은
근린공원·북한산 등에 뿔뿔이

현충원 선열들 친일파 ‘발 밑’에
“친일파 국립묘지 안장 막고
효창공원 성역화 서둘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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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서울현충원에 마련된 김백일의 묘./김경욱 기자

무더운 날이었다. 묘역 사이로 난 아스팔트 길은 뜨거운 열기를 뿜어냈고, 잔디가 깔린 묘소 위로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비석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지난 16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는 6월의 뙤약볕이 가득 내려앉았다.

‘육군 중장 김백일’(본명 김찬규)은 그 정돈된 땅에 묻혀 있었다. 그가 묻힌 ‘장군 제1묘역’은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 다음으로 서울현충원에서 높은 곳이다. 김백일의 묘비에는 “6·25 사변이 돌발하자 제1군단을 지휘하고 북진의 선봉이 되어 그 용맹을 국내외에 과시하였다. 함흥 지구에서는 십만의 피난민을 보살펴 남하케 하는 등 실로 지, 인, 용을 겸비한 장군이었다”고 쓰여 있었다.

묘비에는 ‘전쟁 영웅’으로 적혀 있지만, 김백일은 대한민국과 한민족을 배반한 자다. 2005년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 설립된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에서 2009년 공식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그가 포함돼 있다. 그는 민족문제연구소가 2009년 펴낸 <친일인명사전>에도 올라 있다.

친일인명사전을 보면, 김백일은 1938년부터 7년 동안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했다. 그는 간특대에서의 활동 공로로 1943년 일제로부터 만주국 훈장인 훈5위 경운장까지 받았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간도특설대는 1930년대 후반 간도협조회, 신선대 등과 함께 가장 악랄하게 조선인 항일 운동가들을 탄압한 3대 악질 조직 중의 하나”라며 “김백일은 최후까지 간도특설대에 근무하다가 일제가 패망하자 간도특설대의 해산 업무까지 맡았다”고 말했다.

친일반민족행위자인 김백일이 국립묘지에 묻힌 것은 해방된 조국에서 장성으로 복무했기 때문이다. 그는 해방 뒤 1946년 오늘날 국군의 모태가 된 국방경비대 창설에 참여했고, 제3사단장 등을 지냈다.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나자, 육군 제1군단장으로 전쟁에 참여했다. 1951년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 뒤에는 육군 중장으로 추서되고, ‘대한민국 최고 무공훈장인 태극무공훈장까지 받았다. 국립묘지 안장 대상자 등을 규정하고 있는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는 ‘장성급 장교로 전역·퇴역한 뒤 사망한 이와 무공훈장을 받은 사람은 국립묘지에 안장될 자격을 갖는다’고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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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백일처럼 국립묘지인 현충원에 안장된 친일파는 모두 63명에 이른다. <한겨레>가 국가보훈처에 요청해 받은 ‘친일반민족행위자 국립묘지 안장자 현황’을 보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친일파 가운데 63명이 서울현충원과 대전현충원에 묻혀 있다. 이 가운데 김백일, 김홍준, 신응균, 신태영, 이응준, 이종찬, 백낙준, 김석범, 백홍석, 송석하, 신현준 등 11명은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공식 결정한 친일파다.

이들 대부분은 일제강점기 일본군 간부로 복무하면서 항일 운동가들을 탄압하거나 일본 제국주의에 헌신한 인물들이다. 김홍준과 김석범, 송석하, 신현준은 김백일처럼 항일세력을 탄압한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했고, 해방 뒤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이종찬은 일제강점기 일본군 소좌 출신이다. 특히 이종찬은 일제로부터 무공훈장인 금치훈장을 받았는데, 조선인 출신 일본군 장교 가운데 금치훈장을 받은 이는 일제강점기를 통틀어 그가 유일하다. 해방 조국에서 국방부장관을 지낸 신태영은 일본육군사관학교를 나와 일본군 중좌로 복무했고, 그의 아들 신응균도 일본 육사를 졸업한 뒤 일본군 소좌로 활동한 친일 인사다. 백홍석과 이응준은 각각 일본군 중좌와 대좌로 복무했다. 이들 10명의 친일인사들은 대체로 광복 뒤, 장성급 장교로 대한민국 육군 또는 해병에서 근무한 공로로 국립묘지에 묻혔다. 연세대 초대 총장을 지낸 백낙준도 일제의 대동아 구상을 찬양하고 교회 신도들을 대상으로 전쟁에 쓰일 전투기인 ‘애국기 헌납 운동’을 벌인 대표적 친일 일사지만, 제2대 문교부 장관을 지내는 등 국가사회공헌을 인정받아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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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서울현충원의 이종찬 묘. 조선인 출신 일본군 장교 가운데 금치훈장을 받은 이는 일제강점기를 통틀어 이종찬이 유일하다./김경욱 기자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는 들어 있지 않지만,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대표적 인물인 김창룡도 대전현충원에 묻혀 있다. 그는 일본 관동군 헌병 오장(하사)으로 항일 운동 조직을 색출하고 독립운동가들을 악랄하게 고문했다. 김창룡은 항일 운동 지도자인 백범 김구를 암살한 배후 인물로도 지목됐다. 백범을 암살한 안두희는 범행 43년 만인 1992년 4월 “(이승만 정부의) 특무대장 김창룡의 지시로 백범을 암살했다”고 고백했다. 김창룡은 2005년 여야가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박정희와 함께 ‘적극적이고 악질적으로 우리 민족을 괴롭힌 현저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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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 지도자인 백범 김구 선생을 암살한 배우 인물로 지목된 김창룡의 묘가 국립대전현충원에 자리해 있다. 김창룡은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올라있다./ 이종근 기자 [email protected]

이렇게 친일파들이 국립현충원에 묻힌 것은 물구나무선 대한민국의 현재 모습을 잘 보여준다. 김창룡이 암살을 지시한 백범 김구를 비롯해 윤봉길·이봉창·백정기 의사, 이동녕·조성환·차리석 선생 등은 근린(동네)공원으로 관리되는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에 묻혀 있다.(<한겨레> 5월31일치 1·4·5면) 이준 열사와 손병희, 신익희, 김창숙, 이시영, 여운형 선생 등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들의 묘소도 강북구 북한산 자락에 흩어져 있다.(6월8일치 2면)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이 국립묘지에 누워 있고, 조국 독립을 위해 목숨 바친 이들은 근린공원 등에 방치된 것이다.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독립운동가들의 상황도 나을 게 없다. 박은식, 양기탁, 이상룡 등이 안장된 서울현충원의 ‘임정 묘역’과 권동진, 권병덕을 비롯해 영화 <암살>에서 배우 전지현이 연기한 안옥윤의 모델이었던 남자현 등 독립운동가들이 묻힌 ‘애국지사 묘역’은 이응준, 신태영 등 친일파가 묻힌 ‘장군 제2묘역’ 아래에 조성돼 있다. 항일 운동가들이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발아래 잠든 것이다.

국립현충원에 조성된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묘를 강제로 이장할 수 있는 방법은 현재로서는 없다.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현행법상 이미 국립묘지에 안장된 사람을 재심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은 6·25전쟁 등에 기여했기 때문에 이들의 안장 자격이 취소되지 않는 한 강제로 이장할 수 없다”고 말했다. 친일파라고 해도 장성급 장교로 이미 안장자격을 얻어 묻혔다면 이장이 어렵다는 설명이다. 박성행, 이동락, 김응순, 박영희, 유재기, 윤익선, 이종욱, 임용길, 김홍량 등 군 장성 출신이 아닌 친일파 9명이 2014~2015년 국립묘지 밖으로 이장된 사례가 있다. 하지만 이들의 경우, 독립유공자 서훈이 국무회의에서 취소됐기 때문에 이장이 가능했다.

이 때문에 현재 국회에는 더불어민주당의 권칠승, 김해영 의원 등이 각각 대표 발의한 국립묘지법 개정안이 제출돼 있다. 친일파의 국립묘지 안장을 막고, 이미 안장된 자의 묘를 강제로 이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국가보훈처장 또는 국방부 장관에게 ‘이장 요구’ 등의 권한을 주는 내용이다. 권칠승 의원은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은 일제에 협력해 민족에게 해악을 끼친 사람들로 국립묘지에서 배제하는 것이 당연한데, 현행법에 근거 규정이 없다”고 개정 이유를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군인묘지 성격이 강한 국립현충원과 별도로, 역사가 외면해 온 독립운동가의 위상을 재정립하기 위해 백범 등 대한민국 독립과 건국의 아버지들이 묻힌 효창공원을 국가 차원의 민족·독립 공원으로 격상시키는 일에도 속도를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홍소연 심산 김창숙 선생 기념사업회 전문위원(전 백범김구기념관 자료실장)은 “국립서울현충원은 6·25전쟁 뒤 국군 묘지로 만든 곳이다. 효창공원이야말로 오로지 독립운동가들을 위해 마련한 대한민국의 첫 국립묘지다. 하루 빨리 효창공원을 성역화하는 것이 애국자들의 영예를 높이는 길”이라고 말했다.

김경욱 기자 [email protected]

<2018-06-28> 한겨레

☞기사원문: 국립묘지 묻힌 친일파 63명…독립운동가는 공원에 냉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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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반민족행위자 유진오의 생가터와 추모비가 하남시 향토유적 제10호입니다.
이를 철회하려고 하남시청에 민원을 제기했으나 거절을 당했습니다.
친일부역자의 생가터와 추모비를 철회시키려고 하는데 힘이 되어주실 수 있는
분들은 힘이 되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010-6201-8234 심윤석

 

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39667&cid=46625&categoryId=46625

 

월, 2019/04/01-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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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김정육 구술/서혜원 기록, 「한국예술종합학교신문」 제308호, 2019.3.25

[헌법 13조 3항]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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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덕 반민특위 위원장의 자제인 김정육 선생

연좌제는 1981년 3월 25일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연좌제는 개인의 범죄를 가족·친지에게까지 책임을 묻는 형벌이다. 조선시대 삼족을 멸하던 악독한 형벌은 한차례 폐지된 적 있으나 그것이 가진 성격만치 끈질겼던 터라 사라지지 않고 생명을 연장해나갔다. 그리고 1950년대 무렵, 처음으로 내가 연좌제에 걸려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고등고시를 치기 위해 고향에 내려가 신원증명서를 발급받을 때였다. 담당자는 한참이 지나도 발급을 못하고 갸웃거렸다. ‘신원조회 불가능.’ 고시를 치기도 전에 자격을 박탈당했다.

왜 시험을 치지 않느냐는 친구들에게 속사정을 말하지 못했다. 연좌제에 걸려 아무것도 못하는 줄 알면 혹여 다 떠나버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였다. 연좌제에 걸린 이는 호적부에 빨간 줄이 그어졌다. 빨간 줄을 가진 채로는 여행은커녕 취직도 할 수 없었다. 국내를 돌아다닐 때는 승인을 받아야 했다. 친일 경찰들이 빨갱이를 소탕하러 활개치던 시대였다. 그들은 마음대로 남의 가정집을 들쑤시며 시찰을 돌았다. 나라 팔아먹은 자들이 나라 지키던 분의 후손을 검문했다. 수상한 시절이었다.

아, 되짚을 말이 생겼다. 내게도 꼬리표가 있었구나. 시찰 대상이라는 꼬리표. 아버지에게도 비슷한 게 달려있었는데 좀 더 무시무시한 이름이었다. 살생 대상이라는 꼬리표. 남한 정부가 수립된 뒤 아버지는 친일 척결을 위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승만 대통령이 갑작스레 집에 방문했다. “친일 군경들을 건들지 말아라.” “장관 자리를 줄 테니 하지 말아라.” “왜 이러십니까?” 아버지는 이 대통령의 말을 끝내 듣지 않았다. 이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반민특위 사무실이 습격당했다. 수많은 부상자가 생겼고 전국에서 온 친일행위 고발문은 불태워졌다. 아버지는 테러리스트의 살생부에 올랐다. 아버지는 결국 위원장 자리에 사표를 냈다. 아버지의 살생 딱지는 그 자취를 감추기에는 억울해 나에게까지도 미약하게 이어졌나 보다.

한때 대학에 입학한 적이 있다. 어릴 적 나는 김구, 신익희 등 알만한 독립운동가들 사이에서 자랐다. 한문이든 법이든 정치든 대단한 분들을 보고 터득했다. 그분들의 가르침을 물려받아 법학도를 꿈꿨다. 대학에 합격했지만 대학 등록금은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언제나 밥걱정에 시달려온 내가 등록금을 마련한다는 게 가당한 일인가. 다섯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막내가 영양실조로 굶어죽은 뒤 근사한 밥을 먹었던 기억은 한 번뿐이다. 아버지가 중국에서 우리 남매를 고아원에 위탁하기 전, 누나와 나는 생전 처음 보는 음식을 맛있게도 먹었던 기억이 난다. 독립운동가가 자식을 삼시세끼 먹일 수 있는 선택은 그뿐이었다. 따뜻한 밥이라니 얼마나 생소한 말인지. 결국 대학을 관둬야 했다. 밥벌이가 시급했다. 나를 받아주는 곳은 공사판이었다. 신원증명서 없이 일을 하고 돈을 받을 수 있는 곳이었다. 고마운 직장이었다.

“중동에 가면 떼부자로 돌아온다.” 말단으로 들어가 현장소장으로 오른 내게 중동 공사 참가 제의가 들어왔다. “글쎄요. 저는 가지 않겠습니다. 딴 사람을 보내시죠.” 여권이 발급되지 않는다는 말은 굳이 할 필요 없는 것이었다. 욕심이 없는 척 묵묵히 일했다. 겉으론 태연했지만 어떻게 속상하지 않았을까. 결혼했고 안정된 가정을 원하던 처지였다. 하지만 중동에 갈 방법이 없었다. 그래도 다행인 일은 조금 지나 건설현장의 예산제도가 바뀌면서 일한 만큼 돈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으로 나는 돈을 모을 수 있었고 성내동에 13평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약 40년 동안 꿈에만 그리던 내 집이었다. 뒤늦게 자식도 보았다.

88올림픽이 열리던 해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아내가 쓰러졌다. 급성 신부전증이었다. 아내를 간호하기 위해서는 계속 공사판 일을 할 수 없었다. 멀리 떠나지 않고 오후에 아내 곁에 머물 수 있어야 했다. 그래서 신문지 돌리는 일을 했다. 그러다 돈을 더 벌고 싶어 신문 속지를 끼우는 작업을 추가로 맡았다. 이 작업을 하면 70만 원 정도가 들어왔다. 대신 속지작업이 끝나는 대로 새벽 배달을 나가야 하니 쉬는 시간이 없었다. 그래도 힘든 티를 낼 수 없었다. 어느 날은 아들이 새벽에 내 뒤를 몰래 따라와 일을 훔쳐보고 있었다. 결국에는 아버지를 돕는다고 시간이 날 때마다 속지작업을 도왔다. 돈을 그렇게 어찌어찌 벌었다. 아내에게 신장을 이식해 줄 은인도 나타났다. 무명의 천사는 나중에 알고 보니 민주당 총재의 부인이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어려움에 처했으니 구제하라.” 처음으로 그런 말을 들었다. 아내의 신장 이식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행복은 역시 길지 않았다. 아내는 2005년 10월 18일 13시 32분 세상을 떠났다. 이따금 아내가 눈을 감은 날짜를 소리내서 읊어본다. “이천오년 시월 십팔일 십삼시 삼십이분.”

그전에 아버지 얘기를 빠뜨렸다. 아버지는 1990년 국가로부터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아 훈장을 받았다. ‘받았다’는 말은 어쩐지 순순하게 들리니 ‘받아냈다’고 쓰겠다. 아버지가 임시정부에 있던 자료를 전부 보훈처로 보냈다. 얼마 기다리자 보훈처에서 심의중이라는 우편이 날라왔다. 그리고 그해 4월, 드디어 아버지의 국민장 서훈이 결정 났다. 국민장은 3급짜리 훈장이다. 뭐 이런 급수에 연연하고 싶지는 않지만 최근 별세한 5·16 쿠데타의 중심인물인 김종필 국무총리는 최고 등급인 무궁화장을 받았다. 김 총리가 가담한 일과 아버지가 해온 일 사이에는 무슨 차이가 있는가.

여하튼 나는 살아왔다. 올해 85세가 되었다. 사실 내 호적은 몇 번이나 장난질 쳐져 실제와는 다르지만 호적상 여든 다섯이다. 이 나이를 먹어서야 몇몇 사람들이 찾아온다. 내가 살아온 시절을 듣고 싶다고 한다. 구전동화 읊듯이 이야기를 한다. 으레 사람들은 마지막 질문으로 이런 말을 한다. “정부에게 원하는 것은 없습니까.” “아버지가 납북되시고 연좌제에 묶여 산 세월을 보상받으셔야죠.” “명예회복이 필요하지 않나요.” 고래를 가로젓는다. “내 평생 요즘처럼 정부에서 오는 공문이 친절한 적이 없어요.” 이전 세월 내가 정부에 탄원을 낼 때마다 답변을 받고는 화가 치밀지 않은 적이 없다. 아버지와 나를 짐짝처럼 처리하던 이들이 그래도 요즘은 같은 말일지언정 돌려가며 이야기한다. 더 바랄 것도 없다. 나이 여든을 넘겼다. 그저 고민은 내년 만기되는 아내의 무료 묘자리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관한 것이다. 한 푼 두 푼 모으면 아내를 편안한 안식처로 모실 수 있을까. 그러다 문득 나를 남겨두고 먼저 떠난 아들을 떠올린다. 배급소에서 아비를 돕던 착한 아들. 그가 남긴 어여쁜 손녀 손자. 김예일리와 김선리. 녀석들에게 할아버지와 증조부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을까. 아직 어린아이들이다. 아이들이 모를 이야기를 내 손으로 모두 적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고 나는 지금을 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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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덕 반민특위 위원장

김정육 선생의 아버지는 김상덕 지사(1891~1956. 경북 고령 출신)이다. 김 지사는 1919년 도쿄 ‘2·8독립선언’을 주도한 유학생 대표 11인 중 한 명이었다. 2·8독립선언으로 1년 동안 옥고를 치른 뒤에는 만주로 건너가 독립운동단체 ‘정의부’의 최고집행위원으로 활동했다. 윤봉길 의사의 폭파 의거 후 한중 연합군을 창설하는 임무를 맡기도 했다. 또한 상해 임시의정원 의원, 대한민국임시정부 문화부장을 지냈다. 해방 후 고향에서 제헌국회 의원으로 활동했고, 친일 척결을 위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에 당선됐다. 그러다 6·25 한국전쟁 때 납북되었다. 평양 교외 재북인사묘역에 안장되어 있고,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되었다.(<한국예술종합학교신문> 제308호, 2019.3.25.)

월, 2019/04/01-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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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友人(기우인)

 

草屋梅花發(초옥매화발)

南窓寄友人(남창기우인)

君吾爲李杜(군오위이두)

共醉詠芳春(공취영방춘)

 

벗님에게 띄우는 글

 

草屋에도 고운 매화 활짝 피니

남쪽 窓에서 벗님께 글 띄우네

그대와 나 李白과 杜甫가 되어

함께 취해 아름다운 봄을 읊세.

 

<時調로 改譯>

 

草屋에도 매화 피니 南窓에서 글 띄우네

그대는 李白이 되고 나는야 杜甫가 되어

둘이서 함께 취하여 아름다운 봄을 읊세.

 

*友人: 벗 *南窓: 남쪽으로 난 窓 *李杜: 李白과 杜甫 *芳春: 꽃 피는 아름다운 봄.

 

<2019.4.1, 이우식 지음>

월, 2019/04/01-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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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용덕
전국2팀 선임기자

인천공항에서 중국으로 비행기를 타고 1시간이면 산둥반도의 웨이하이에 닿을 수 있다. 125년 전 한반도에 큰 영향을 끼친 청일전쟁(1894~1895·중국은 갑오전쟁, 일본은 일청전쟁으로 부름)의 승패가 결정된 곳이다. 일본군이 랴오둥반도에 이어 청나라 해군의 주력기지인 이곳 웨이하이의 류궁다오(유공도)를 점령하자, 청은 실권자인 리훙장(이홍장)을 일본에 보내 강화에 나선다.

류궁다오는 웨이하이에서 배로 15분 거리다. 중국은 1985년 이 섬에 청일전쟁을 기억하는 ‘중국갑오전쟁박물관’을 지었다.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크기로 청일전쟁 관련 유물 1천여점을 전시하는데, 패전기념관치고는 규모가 상당하다.

박물관에 들어서면 “잠자는 중국의 천년 꿈을 깨운 것은 갑오전쟁”이라는 문구가 들어온다. 청의 사상가 량치차오(양계초)의 글이다. 병자호란 때 조선을 침입해 인조를 무릎 꿇게 한 청의 기세등등함이 이 박물관에는 없다. 일본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돼 평양과 황해에서의 패전, 뤼순(여순)대학살, 청일전쟁 패배 이후 열강의 반식민지가 된 늙은 제국의 고통만이 손에 닿을 듯 펼쳐진다.

21세기 미-중 패권경쟁에 나선 중국이 왜 부끄러운 과거 역사를 드러내는 데 주저함이 없을까. 궁금함이 풀린 것은 기념관 출구에 적힌 ‘물망국치 원몽중화’란 글을 보면서다. ‘국가의 치욕을 기억해 중국의 꿈을 이루자’는 그 말은 애국주의를 선동하는 이른바 ‘국뽕’ 냄새가 다분하지만, 국가의 수치를 미래의 동력으로 삼겠다는 간절함만은 전해진다.

일본으로 건너간 리훙장이 도착한 곳은 부산 맞은쪽의 시모노세키다. 이곳에서 육순의 노인은 랴오둥반도와 대만을 일본에 내주는 시모노세키조약을 맺었고, 일본은 당시 협상장이던 산기슭에 ‘일청강화기념관’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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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갑오전쟁박물관.

무심코 지나쳤다 찾은 단층 건물의 전시실에는 1895년 조약 협상이 이뤄진 협상장이 복원돼 있다. 패자의 웅대한 박물관에 견줘, 승자의 기념관은 내용이나 규모에서 초라하다. 일본이 시모노세키조약을 맺고 15년 뒤 한반도를 강제병합하며 군국주의 국가로 나아가 아시아를 피로 물들인 출발점이 청일전쟁이었음을 감추고 싶은 속내가 보이는 듯도 하다.

부끄러운 역사를 치열하게 되새김하는 중국, 이를 축소하고 숨기는 일본 사이에 낀 우리는 어떤가. 서울 청파동 숙명여대 앞 골목에는 ‘식민지역사박물관’이 있다. 지난해 8월 문을 연 국내 유일의 일제 침략과 독립운동사를 보여주는 전문 박물관이다. 5층 건물 중 2층 상설전시장에는 400여점의 자료가 전시 중인데 ‘친일과 항일’의 흔적을 담기에는 그 공간(240㎡)이 비좁아 보인다. 수장고에는 10만여점의 자료가 묻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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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일인명사전. 한겨레

이 작은 공간 하나를 여는 데도 긴 시간과 노력이 들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2011년 시민 모금에 나섰고 박물관 건립에 7년이 걸렸다. 시민의 힘으로 세운 이 박물관은 방문객을 위한 주차 공간은 고사하고 건물을 사느라 빌린 20억여원의 이자를 다달이 내는 일도 버겁다. 부끄러운 역사를 청산하려는 시민들만의 노력은 여전히 힘겹다. 국가의 친일청산 노력은 또 어떤가.

노무현 정부 때 대통령 직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꾸려졌지만, 이명박·박근혜 보수정권이 출범하며 사라졌다. 정부가 처음으로 반민족행위자 1007명을 선정했으나, 추가조사는 물론 당시 확인된 반민족행위조차 국민에게 교육하고 알리는 일도 흐지부지됐다. 반민족적 행위로 얻은 재산을 조사할 친일재산조사위원회도 사라졌다. 국가의 친일청산 시계는 10년 전에 멈춰 서 있다.

오는 11일이면 상하이(상해) 임시정부 수립 100돌이다. 중국 대륙 수만리 피난길에서도 독립된 나라, 정의로운 나라를 꿈꾼 선열들의 바람과 달리, 우리는 지금도 제1야당 원내대표가 “(친일청산을 위한) 반민특위로 국론이 분열됐다”고 버젓이 말하는 ‘망언의 시대’를 살고 있다. 멈춰 선 시계를 다시 돌려야 할 때다. [email protected]

<2019-03-31> 한겨레 

☞기사원문: [한겨레 프리즘] 멈춰선 시계를 돌리자 / 홍용덕

월, 2019/04/01-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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懇請北韓諸人民軍隊總蹶起

 

正恩家運盡(정은가운진)

不可逆天心(불가역천심)

極限人民苦(극한인민고)

哀哉淚滿襟(애재루만금)

 

북한의 모든 인민 군대에게 총궐기할 것을 간청함

 

김정은의 집안 運 이제 다했으니

하늘의 마음은 거스를 수 없다네

인민의 괴롬 궁극 한계에 이르러

슬프다! 눈물이 옷깃에 가득하네.

 

<時調로 改譯>

 

김정은 運 다했으니 저 하늘 뜻이라네

인민들의 그 괴롬 궁극 한계에 이르러

슬프다! 눈물이 흘러 옷깃에 가득하네.

 

*懇請: 간절히  청함. 또는  그런 청(請) *總蹶起: 모두 참여해 힘차게 일어남. 또는

그런  행위  *家運: 집안  운수  *不可逆: 변화를  일으킨 물질이 본디 상태로 돌아

수 없는  일.  비가역(非可逆)  *天心: 하늘의  뜻.  천의(天意). 눈에 뵈는 하늘 한가운

  *極限: 궁극의 한계. 사물이 진행해 도달할 수 있는 최후의 단계나 지점을 이름.

 

<2019.4.1, 이우식 지음>

월, 2019/04/01-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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告朝家(고조가)

 

自派無高傑(자파무고걸)

非人作長官(비인작장관)

民心離叛甚(민심이반심)

未久味辛酸(미구미신산)

 

朝廷에 告함

 

자기 쪽의 系派에는 인물 없으니

사람답지 못한 者도 長官이 되네

백성들 마음 떠나 배반함 심하니

未久에 괴로움, 쓰라림 맛보리라.

 

<時調로 改譯>

 

自派엔 無高傑이니 폐인도 長官 되네

백성들의 마음 떠나 배반함이 심하니

未久에 괴롬과 쓰림 맛보게끔 되리라.

 

*朝家: 조정(朝廷). 조당(朝堂). 임금이 나라의 정치를 신하들과 의논하거나 집행하

곳.  또는  그런  기구 *自派:  자기  쪽의 계파(系派)나  유파(流派)  *高傑: 고상하고

걸출 인물 *非人: 사람답지 못한 사람. 폐인(廢人) *民心: 백성의 마음. 민정(民情)

*離叛:  人心  떠나서  배반함  *辛酸: 맵고  심.  괴로움과  쓰라림.  고생. 고초(苦楚).

 

<2019.4.2, 이우식 지음>

화, 2019/04/02-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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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9/04/02-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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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반민족행위자 유진오의 생가터와 추모비가 하남시 향토유적 제10호입니다. 이를 철회하려고 하남시청에 민원을 제기했으나 거절을 당했습니다. 친일부역자의 생가터와 추모비를 철회시키려고 하는데 힘이 되어주실 수 있는 분들은 힘이 되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화, 2019/04/02-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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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의 한사람으로 궁금해서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촉망받을 만한 인물이던데

왜 여기에서 미꾸라지 행태를 하는데 시간을 허비하는지요

시민운동에 한계를 느끼고 정치에 입문

잘 안되니 다시 시민운동가로 변신

이제 촛불시민의 대표자로 둔갑하여 새로운 정치를 모색하고 있더군요

촛불혁명 때 무엇을 했는지요 ㅎㅎ

정치나 하시고 이제  회원직도 내려 놓으심이 좋을 듯 합니다

여인철씨

 

화, 2019/04/02-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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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하남시 향토유적 제10호가
친일반민족행위자 유진오의 생가터와 추모비입니다.
이를 철회하기 위해서 도와달라도 민족문제 연구서
자유게시판에 올렸더니 연락이 오셔서
근시일내에 만나뵙고 조언을 듣고 도움도 받기로 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남시SNS시민기자단장  심윤석

수, 2019/04/03-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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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問(답문)

 

問難吾豈答(문난오기답)

未免白頭童(미면백두동)

半識無爲道(반식무위도)

時時或可通(시시혹가통)

 

물음에 답하다

 

어려운 걸 물으니 내 어찌 답하랴

머리 허연 어린애 아직 못 면했소

저 無爲의 道에 대해 반쯤 아는데

때때로 혹 가히 통할 수도 있다오.

 

<時調로 改譯>

 

難問題 어찌 답하랴 白頭童 못 면했소

無爲의 道에 대하여 내 반쯤은 아는데

때때로 어쩌면 가히 통할 수도 있다오.

 

*答問: 물음에 대답함 *問難: 어려운 것을 물음 *白頭: 백수(白首). 허옇게 센 머리.

 

<2019.4.3, 이우식 지음>

수, 2019/04/03-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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贈大富牧師

 

惡者蒙仁化(악자몽인화)

焉無欲報恩(언무욕보은)

餘錢方喜捨(여전방희사)

亦救我靈魂(역구아영혼)

 

큰 富者 목사에게 지어 주다

 

악인이 어진 德의 감화를 입었는데

어찌 은혜 갚고자 함이 없겠습니까

남은 돈 바야흐로 기꺼이 내놓으

또한 저의 영혼도 구하여 주옵소서.

 

<時調로 改譯>

 

仁化를 입었는데 왜 報恩 없겠습니까

남은 돈 바야흐로 기꺼이 내놓사오니

원컨대 저의 영혼도 구하여 주옵소서.

 

*大富: 큰 富者 *惡者: 악한 사람 *仁化: 인덕(仁德)의 감화 *報恩: 은혜를 갚음. 수은

(酬恩) *餘錢: 쓰고 남은 *喜捨: 어떤 목적을 위하여 기꺼이 돈이나 물건을 내놓음.

 

<2019.4.3, 이우식 지음>

수, 2019/04/03-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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