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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묘지 묻힌 친일파 63명…독립운동가는 공원에 냉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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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묘지 묻힌 친일파 63명…독립운동가는 공원에 냉대

익명 (미확인) | 목, 2018/06/28- 16:18

항일운동가 짓밟던 김백일에 
김구 암살 배후범 김창룡까지
‘친일인명사전’ 인물들 현충원에

항일운동가 짓밟던 김백일에
임정 요인·독립운동가 묘역은
근린공원·북한산 등에 뿔뿔이

현충원 선열들 친일파 ‘발 밑’에
“친일파 국립묘지 안장 막고
효창공원 성역화 서둘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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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서울현충원에 마련된 김백일의 묘./김경욱 기자

무더운 날이었다. 묘역 사이로 난 아스팔트 길은 뜨거운 열기를 뿜어냈고, 잔디가 깔린 묘소 위로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비석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지난 16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는 6월의 뙤약볕이 가득 내려앉았다.

‘육군 중장 김백일’(본명 김찬규)은 그 정돈된 땅에 묻혀 있었다. 그가 묻힌 ‘장군 제1묘역’은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 다음으로 서울현충원에서 높은 곳이다. 김백일의 묘비에는 “6·25 사변이 돌발하자 제1군단을 지휘하고 북진의 선봉이 되어 그 용맹을 국내외에 과시하였다. 함흥 지구에서는 십만의 피난민을 보살펴 남하케 하는 등 실로 지, 인, 용을 겸비한 장군이었다”고 쓰여 있었다.

묘비에는 ‘전쟁 영웅’으로 적혀 있지만, 김백일은 대한민국과 한민족을 배반한 자다. 2005년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 설립된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에서 2009년 공식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그가 포함돼 있다. 그는 민족문제연구소가 2009년 펴낸 <친일인명사전>에도 올라 있다.

친일인명사전을 보면, 김백일은 1938년부터 7년 동안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했다. 그는 간특대에서의 활동 공로로 1943년 일제로부터 만주국 훈장인 훈5위 경운장까지 받았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간도특설대는 1930년대 후반 간도협조회, 신선대 등과 함께 가장 악랄하게 조선인 항일 운동가들을 탄압한 3대 악질 조직 중의 하나”라며 “김백일은 최후까지 간도특설대에 근무하다가 일제가 패망하자 간도특설대의 해산 업무까지 맡았다”고 말했다.

친일반민족행위자인 김백일이 국립묘지에 묻힌 것은 해방된 조국에서 장성으로 복무했기 때문이다. 그는 해방 뒤 1946년 오늘날 국군의 모태가 된 국방경비대 창설에 참여했고, 제3사단장 등을 지냈다.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나자, 육군 제1군단장으로 전쟁에 참여했다. 1951년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 뒤에는 육군 중장으로 추서되고, ‘대한민국 최고 무공훈장인 태극무공훈장까지 받았다. 국립묘지 안장 대상자 등을 규정하고 있는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는 ‘장성급 장교로 전역·퇴역한 뒤 사망한 이와 무공훈장을 받은 사람은 국립묘지에 안장될 자격을 갖는다’고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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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백일처럼 국립묘지인 현충원에 안장된 친일파는 모두 63명에 이른다. <한겨레>가 국가보훈처에 요청해 받은 ‘친일반민족행위자 국립묘지 안장자 현황’을 보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친일파 가운데 63명이 서울현충원과 대전현충원에 묻혀 있다. 이 가운데 김백일, 김홍준, 신응균, 신태영, 이응준, 이종찬, 백낙준, 김석범, 백홍석, 송석하, 신현준 등 11명은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공식 결정한 친일파다.

이들 대부분은 일제강점기 일본군 간부로 복무하면서 항일 운동가들을 탄압하거나 일본 제국주의에 헌신한 인물들이다. 김홍준과 김석범, 송석하, 신현준은 김백일처럼 항일세력을 탄압한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했고, 해방 뒤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이종찬은 일제강점기 일본군 소좌 출신이다. 특히 이종찬은 일제로부터 무공훈장인 금치훈장을 받았는데, 조선인 출신 일본군 장교 가운데 금치훈장을 받은 이는 일제강점기를 통틀어 그가 유일하다. 해방 조국에서 국방부장관을 지낸 신태영은 일본육군사관학교를 나와 일본군 중좌로 복무했고, 그의 아들 신응균도 일본 육사를 졸업한 뒤 일본군 소좌로 활동한 친일 인사다. 백홍석과 이응준은 각각 일본군 중좌와 대좌로 복무했다. 이들 10명의 친일인사들은 대체로 광복 뒤, 장성급 장교로 대한민국 육군 또는 해병에서 근무한 공로로 국립묘지에 묻혔다. 연세대 초대 총장을 지낸 백낙준도 일제의 대동아 구상을 찬양하고 교회 신도들을 대상으로 전쟁에 쓰일 전투기인 ‘애국기 헌납 운동’을 벌인 대표적 친일 일사지만, 제2대 문교부 장관을 지내는 등 국가사회공헌을 인정받아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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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서울현충원의 이종찬 묘. 조선인 출신 일본군 장교 가운데 금치훈장을 받은 이는 일제강점기를 통틀어 이종찬이 유일하다./김경욱 기자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는 들어 있지 않지만,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대표적 인물인 김창룡도 대전현충원에 묻혀 있다. 그는 일본 관동군 헌병 오장(하사)으로 항일 운동 조직을 색출하고 독립운동가들을 악랄하게 고문했다. 김창룡은 항일 운동 지도자인 백범 김구를 암살한 배후 인물로도 지목됐다. 백범을 암살한 안두희는 범행 43년 만인 1992년 4월 “(이승만 정부의) 특무대장 김창룡의 지시로 백범을 암살했다”고 고백했다. 김창룡은 2005년 여야가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박정희와 함께 ‘적극적이고 악질적으로 우리 민족을 괴롭힌 현저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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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 지도자인 백범 김구 선생을 암살한 배우 인물로 지목된 김창룡의 묘가 국립대전현충원에 자리해 있다. 김창룡은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올라있다./ 이종근 기자 [email protected]

이렇게 친일파들이 국립현충원에 묻힌 것은 물구나무선 대한민국의 현재 모습을 잘 보여준다. 김창룡이 암살을 지시한 백범 김구를 비롯해 윤봉길·이봉창·백정기 의사, 이동녕·조성환·차리석 선생 등은 근린(동네)공원으로 관리되는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에 묻혀 있다.(<한겨레> 5월31일치 1·4·5면) 이준 열사와 손병희, 신익희, 김창숙, 이시영, 여운형 선생 등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들의 묘소도 강북구 북한산 자락에 흩어져 있다.(6월8일치 2면)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이 국립묘지에 누워 있고, 조국 독립을 위해 목숨 바친 이들은 근린공원 등에 방치된 것이다.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독립운동가들의 상황도 나을 게 없다. 박은식, 양기탁, 이상룡 등이 안장된 서울현충원의 ‘임정 묘역’과 권동진, 권병덕을 비롯해 영화 <암살>에서 배우 전지현이 연기한 안옥윤의 모델이었던 남자현 등 독립운동가들이 묻힌 ‘애국지사 묘역’은 이응준, 신태영 등 친일파가 묻힌 ‘장군 제2묘역’ 아래에 조성돼 있다. 항일 운동가들이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발아래 잠든 것이다.

국립현충원에 조성된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묘를 강제로 이장할 수 있는 방법은 현재로서는 없다.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현행법상 이미 국립묘지에 안장된 사람을 재심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은 6·25전쟁 등에 기여했기 때문에 이들의 안장 자격이 취소되지 않는 한 강제로 이장할 수 없다”고 말했다. 친일파라고 해도 장성급 장교로 이미 안장자격을 얻어 묻혔다면 이장이 어렵다는 설명이다. 박성행, 이동락, 김응순, 박영희, 유재기, 윤익선, 이종욱, 임용길, 김홍량 등 군 장성 출신이 아닌 친일파 9명이 2014~2015년 국립묘지 밖으로 이장된 사례가 있다. 하지만 이들의 경우, 독립유공자 서훈이 국무회의에서 취소됐기 때문에 이장이 가능했다.

이 때문에 현재 국회에는 더불어민주당의 권칠승, 김해영 의원 등이 각각 대표 발의한 국립묘지법 개정안이 제출돼 있다. 친일파의 국립묘지 안장을 막고, 이미 안장된 자의 묘를 강제로 이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국가보훈처장 또는 국방부 장관에게 ‘이장 요구’ 등의 권한을 주는 내용이다. 권칠승 의원은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은 일제에 협력해 민족에게 해악을 끼친 사람들로 국립묘지에서 배제하는 것이 당연한데, 현행법에 근거 규정이 없다”고 개정 이유를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군인묘지 성격이 강한 국립현충원과 별도로, 역사가 외면해 온 독립운동가의 위상을 재정립하기 위해 백범 등 대한민국 독립과 건국의 아버지들이 묻힌 효창공원을 국가 차원의 민족·독립 공원으로 격상시키는 일에도 속도를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홍소연 심산 김창숙 선생 기념사업회 전문위원(전 백범김구기념관 자료실장)은 “국립서울현충원은 6·25전쟁 뒤 국군 묘지로 만든 곳이다. 효창공원이야말로 오로지 독립운동가들을 위해 마련한 대한민국의 첫 국립묘지다. 하루 빨리 효창공원을 성역화하는 것이 애국자들의 영예를 높이는 길”이라고 말했다.

김경욱 기자 [email protected]

<2018-06-28> 한겨레

☞기사원문: 국립묘지 묻힌 친일파 63명…독립운동가는 공원에 냉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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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시민노래] [다운로드]

안양시민의 노래/ⓒ안양시

[경기=뉴스프리존] 김현무 기자=경기 안양시가 신곡 ‘안양시민의 노래’ 음원을 시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고 10일 밝혔다.

개정된‘안양시민의 노래’는 안양출신 고 김대규 시인의 노랫말은 그대로 사용하고, 공모전을 통해 선정된 안예림 작곡가의 멜로디와 안양시립합창단의 합창이 곁들여지면서 새 음원으로 재탄생했다.

안양시청 홈페이지‘안양소개’메뉴에서 개정된 안양시민의 노래를 감상할 수 있다. 시민의 노래 – 안양시청 (anyang.go.kr)(클릭)

재탄생한‘안양시민의 노래’는 잔잔하면서도 우렁차고 희망에 찬 선율로 와 닿는 느낌이다. 다소 진군가적 분위기가 느껴졌던 기존 곡과 차이를 보인다.

예전‘안양시민의 노래’를 작곡한‘김동진’은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편찬한 친일인명사전 음악 부문에 수록돼 친일작가임이 드러났다.

시는 이에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되는 해였던 2019년부터 역사 바로 세우기의 일환으로 사용을 중지하고, 지난해 작곡을 공모해 안예림 작곡가의 멜로디를 선정한 바 있다.

최대호 안양시장은 새롭게 만들어진 안양시민의 노래를 각종 행사 시 선보여 안양시민의 자긍심과 위상을 드높이겠다고 전했다.

<2021-06-10> 뉴스 프리존

☞기사원문: 안양시, 신곡 ‘안양시민의 노래’ 시 홈페이지 음원 공개

※관련기사 

☞여성종합뉴스: 안양시, 새롭게 작곡한 ‘안양시민의 노래’ 음원 공개

☞아투시티뉴스: 안양시, 새롭게 만들어진 ‘안양시민의 노래’홈페이지에 공개

금, 2021/06/11-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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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다운로드]

[강제동원 소송 각하 판결 규탄 기자회견]

강제동원 피해자 외면한
반역사적, 반헌법적 법원 판결 규탄한다!

– 일시 : 2021년 6월 10일(목) 10시
– 장소 : 서울중앙지법 앞(교대역 법원 삼거리)
– 주최 :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대일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한국노동조합총연맹

◎ 취지

  1.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재판장 김양호)가 지난 7일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 등 85명이 일본 전범기업 16곳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각하하였습니다. 재판부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손해 배상 문제가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완전히 해결되었기 때문에 일본 기업을 상대로 청구권을 행사 할 수 없으며, 피해자들의 배상 청구권을 인정하면 일본과의 관계가 훼손되고 한미동맹으로 안보와 직결된 미국과의 관계 훼손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근거를 들어 판결하였습니다.

  2. 이번 판결은 2018년 대법원전원합의체가 내린 강제동원 배상 판결과 전면 배치되며, 침략국의 불법성을 부정하는 가해자(일본) 중심 국제정치 논리와 외교 편향의 자의적 잣대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원통한 세월을 두 번 짓밟는 것으로 매우 충격적인 판결입니다.

  3. 한일협정에 따라 개인청구권이 소멸되었다는 입장은 가해가 일본의 입장이며, 외교관계를 문제로 강제징용피해자들의 인권을 희생하는 사법부가 도대체 어느 나라 사법부인지 의심마저 들고 있습니다.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부정하고 피해자들의 인권과 원통함을 해결하지 않는 한일관계는 정의로울 수도 없으며, 미래지향적이지 않다는 것은 지난 100년 한일관계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4. 이에 이번 강제동원 소송 판결의 문제점을 강력히 규탄하며, 판결의 원천 무효를 주장하기 위해 공동 기자회견을 개최하고자 합니다. 귀사의 적극적인 취재와 보도를 바랍니다.

◎ 개요
사회자 : 정은주 겨레하나 국제평화부장
– 소개 및 취지 (사회자)
– 발언1 (김영환 강제동원 공동행동 정책위원장)
– 발언2 (김은형 민주노총 통일위원장)
– 발언3 (허권 한국노총 통일위원장)
– 기자회견문 낭독(장애린 흥사단 정책기획국 차장)

◎ 기자회견문

지난 7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제34민사부(재판장 김양호)는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 85명이 일본기업 16곳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원고들의 청구를 각하했다. 우리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인권회복을 철저히 외면하고, 반역사적이며 반헌법적인 판결을 선고한 재판부를 강력히 규탄한다.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식민지배의 불법성과 강제동원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한 2018년 대법원의 판결을 의도적으로 폄훼한 재판부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인권을 짓밟았으며 기나긴 소송투쟁 끝에 대법원 판결을 쟁취한 피해자들의 투쟁의 역사를 유린했다. 피해자들의 고통은 외면한 채 일본 극우세력의 논리만을 그대로 답습한 재판부는 인권최후의 보루라는 사법부의 사명을 내팽개쳤다.

재판부는 일제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명확히 선언하고,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의 장벽을 뛰어 넘어 피해자 개인의 인권 보호에 대해 새로운 지평을 열어젖힌 2018년 대법원 판결을 ‘국내법적 해석에 불과하다’고 폄훼했다. 재판부는 ‘국제사회에서 식민지배의 불법성이 인정되지 않았다.’고 강변하지만, ‘더반선언’ 20주년을 맞이하는 지금 국제사회는 지난 세기에 강대국들이 저지른 식민지배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역사청산을 요구하며 식민지주의의 극복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2018년 대법원 판결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인권회복을 위해 한일 시민사회가 수십 년 동안 끈질긴 투쟁으로 일궈낸 소중한 성과이다. 법관은 헌법정신을 지키며 오로지 법과 양심에 따라 공정하고 정의로운 판결을 내려야만 한다. 그러나 재판부는 법의 정신이 아니라 법관 개인의 왜곡되고 퇴행적인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판결하여 주권자인 피해자들의 권리를 침해하고 모욕했다. 이 판결은 사법농단의 가해자들이 단죄되지 않고 있는 오늘의 참담한 현실과 지금 왜 사법개혁이 필요한가 그 이유를 스스로 입증했다.

우리는 식민지배와 전쟁범죄를 부정하는 일본 정부와 극우의 논리를 따르는 역사부정론의 그림자가 법원에까지 드리운 것은 아닌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다. 그러나 피해자의 인권회복과 역사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시민들이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와 가해기업의 사죄와 배상을 통해 인간의 존엄과 명예를 회복하는 그날까지 연대하여 투쟁할 것이다.

2021년 6월 10일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대일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한국노동조합총연맹


※관련기사

☞ KBS NEWS : 시민단체 “강제동원 피해자 외면한 법원 판결 규탄”

☞ 뉴스1 : “대법원 판결 폄훼·피해자 인권 짓밟아”…’강제징용 패소’ 비판 이어져

목, 2021/06/10-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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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는 2017년 『항일음악 330곡집』을 발간한 이후 <항일음악회> 개최 등 항일음악 보급을 통한 독립정신 선양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YTN 라디오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자문을 받아 2020년 11월 ‘국치추념가’를 시작으로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를 방송 중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

☞ 21편 : 독립군행진곡 _ 김완태(전 육군사관학교장)

☞ 20편 : 영웅추도가 _ 김성태(오석 김혁 장군 증손자)

☞ 19편 : 선봉대가 _ 권현(권기옥 선생 후손)

☞ 18편 : 대한혼가 _ 김재홍 함경북도지사(규암 김약연 선생 증손자)

☞ 17편 : 희망가 _ 김수옥(우사 김규식 선생 손녀)

☞ 16편 : 목동가 _ 김정륙(독립운동가 김상덕 반민특위 위원장 아들)

☞ 15편 : 고려인 홀로아리랑 _ 안톤 강(독립운동가 유상돈 선생 증손자)

☞ 14편 : 여옥사_8호감방의노래 _ 김정애(유관순 열사 조카 며느리)

☞ 3·1절특집: 끝나지않은 노래’독립운동歌’

☞ 13편 : 기전사가 _ 정철승(독립운동가 규운 윤기섭 장손)

☞ 12편 : 최후의결전 _ 우원식 국회의원(임시정부 법무국 비서국장 김한 외손자)

☞ 11편 : 올드랭사인애국가 _ 김주(심산 김창숙 손녀)

☞ 10편 : 광복군아리랑 _ 장병화(광복군 장이호 지사 장남)

☞ 9편 : 앞으로행진곡 _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장(김의한, 정정화 외아들)

☞ 8편 : 독립군가(임청각이 복원되던 날)

☞ 7편 : 신흥학우단가 _ 이종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의장(우당 이회영 손자)

☞ 6편 : 새야새야파랑새야 _ 정남기(동학농민군 비서 정백현 손자)

☞ 5편 : 격검가 _ 차영조(동암 차리석 아들)

☞ 4편 : 압록강행진곡 _ 광복군 김영관 지사

☞ 3편 : 신흥무관학교교가 _ 이항증(석주 이상룡 증손자)

☞ 2편 : 안중근옥중가 _ 함세웅 신부

☞ 1편 : 국치추념가 _ 이준식 독립기념관장(한국독립군 총사령관 지청천 장군 외손)

☞[출처] YTN Radio: 독립운동歌 복원 프로젝트, 100년의 소리

금, 2021/06/11-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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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대종교를 중광해 독립운동가들의 스승으로 불렸던 홍암 나철의 일대기인 <나철평전>을 낸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조현 기자

청산리전투의 김좌진, 봉오동전투의 홍범도, 신흥무관학교 설립자 이회영, 역사가 신채호, 임시정부 대통령 박은식과 국무령 이상룡, 작사가 이은상, 최초 비행사 안창남, 마라토너 손기정, 이동휘, 정인보, 안희제, 지청천, 이범석, 지석영, 이동녕, 김규식, 신익희…. 독립운동사의 주역인 이들의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모두 대종교인으로, 대종교를 부활시킨 스승 홍암 나철(1863~1916)의 대의를 따랐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종교사상가이자 독립운동가인 나철의 삶을 조명한 <나철평전>(꽃자리 펴냄)을 낸 김삼웅(78) 전 독립기념관장을 지난 4일 만났다.

그는 “민족문제연구소가 꼽은 친일부역자 5천명 가운데 종교인이 200여명인데, 대종교인은 한 명도 없었다”며 “그런데도 나철과 2대 교주 김교헌, 청산리전투를 이끈 북로군정서 총재 서일종사 등 대종교 지도자 3인의 묘소가 아직도 간도 들판에 방치돼 있으니 한민족으로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통탄했다.

대종교 부활시킨 스승 ‘나철평전’ 펴내
김좌진·홍범도·이회영·신채호 등등
수많은 항일지사들 대부분 ‘대종교인’
“친일부역자 종교인 중엔 한명도 없어”

박정희때 고문 후유증으로 집필 힘들어
“알수록 ‘놀라운 인물’ 전율 느끼며 써”

대종교를 중광한 독립운동 지도자 홍암 나철. <한겨레> 자료사진

“2·8독립선언과 3·1혁명을 촉발한 대한(무오)독립선언은 대종교가 주도했다. 또 3·1혁명 이후 중국 상하이에 세운 임시정부의 의정원 35인 중 28인이 대종교인이다. 청산리전투, 봉오동전투 등 항일투쟁의 주력도 대종교인들이었고, 국학·역사·한글운동도 대종교가 주도했다. 그 뿌리가 나철 대종사다. 독립운동사에서 기억해야 할 첫번째 인물로 꼽힐 만한 나철의 이름만이라도 들어본 사람이 몇명이나 될지….”

김 전 관장은 말문을 잇지 못했다. 온몸을 민족의 재단에 바쳐 신자 10여만명이 일제에 의해 목숨을 잃고 종단 자체가 산산이 부서져 버린 대종교와 나철을 언급할 때마다 그 목소리가 떨렸다.

그는 지금까지 최제우, 황현, 전봉준, 김개남, 손병희, 안창호, 김성숙, 한용운, 안중근, 김창숙, 여운형, 함석헌, 장준하, 장일순, 송건호, 김대중, 노무현, 신영복 등 줄잡아 40여명의 평전을 썼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타자를 칠 줄 모른다. 오직 손글씨로만 써왔다. 근래 들어서는 손이 많이 떨려 원고 작업이 더욱 어렵다. 박정희 독재 시절 <민주전선>을 발간하면서 끌려가 고문 당한 후유증 때문이다. 떨린 것은 손만이 아니었다. <나철평전>에는 ‘한 놀라운 인간’에 대한 필자의 전율이 스며있다.

나철은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당대 최고 석학 왕석보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29살에 과거 급제해 고종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는 사관을 맡았다. 33살 때 징세국장에 임명됐으나 사양하고 낙향했다고 한다. 이후 10년간 민족의 뿌리인 단군사상을 기초로 입산수도한 나철은 1905년 을사늑약이 맺어지자 비밀결사 ‘자신회’를 조직해 을사오적 처단을 주도했다가 1907년 10년 유배형을 받았다. 외딴섬인 전남 신안 지도로 유배를 갔다가 민심을 두려워한 고종의 특사로 석방됐다.

“나철은 일제 침략에 맞서기 위해서는 국조 단군을 구심점으로 삼아야 한다며 단군교를 ‘중광’했다. 중광이란 우리 민족이 믿었던 옛 종교를 되살린다는 것이다. 그러자 기라성 같은 지식인과 우국지사들이 몰려들었다. 일제는 국권침탈 뒤 제일 먼저 단군 관련 책 20여만권을 압수해 불태우거나 일본으로 밀반출하며 1918년까지 민족말살책을 대대적으로 단행했다. 나철은 이런 일제의 탄압을 피해 ‘대종교’로 이름을 바꾸고 1914년 망명해 백두산 인근 청파호로 본부를 옮겼다. 대종교 신자가 수십만명으로 늘자 일제총독부는 기독교, 불교, 유교만 공인 종교로 인정하고 대종교는 ‘유사종교단체’로 분리해 악명 높은 경무국에서 감시하게 했다. 더 이상 포교가 어렵게 되자 나철은 1916년 일왕과 총독, 신자들에게 글을 남기고 구월산 단군사당에서 순명을 택했다. 그의 죽음 뒤 대종교인들의 항일투쟁이 활화산처럼 타올랐다.”

김 전 관장은 “일제 때 수많은 사이비 교주들과 달리 나철은 종교적 위세를 보이지 않았고 대단히 검소하고 서민적이었다. 주검도 상여가 아닌 지게로 옮겨 화장하고, 부고도 돌리지 말고, 제사에도 밥 한그릇 찬 하나만 놓으라고 유언했다”며 “박은식은 추도사에서 그를 ‘민족사에서 가장 빼어난 인물’이란 뜻으로 ‘만세의 종사’라고 했다”고 전했다.

그런데도 최근 여당 국회의원들이 교육이념에서 단군사상의 핵심인 ‘홍익인간’을 빼려는 시도를 했던 것에 대해 “역사 공부를 안한 것인지, 역사의식이 없는 것인지”라며 혀를 찼다. 그는 “목사인 규암 김약연의 용정 명동학교는 기독교학교임에도 교가에 ‘한배검 단군의 자손의 긍지’를 담았고, 교실 뒤엔 예수 사진과 함께 단군 영정을 걸었다. 기독교인 도산 안창호는 평생 단군상을 몸에 지니고,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대규모 단군 집회를 개최했다. 이승만도 1921년 <독립신문>에 ‘한배검은 인류의 스승이셨다’고 썼고, 기독교인 백범 김구도 조선인 치고 대종교인 아닌 사람이 없다고 했다”며 “해방 후 미군정의 반대를 무릅쓰고 홍인인간을 ‘인간에 대한 최대한의 봉사’로 번역해 교육기본이념으로 삼게 한 것도 기독교인 백낙준 박사였다”고 설명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email protected]

<2021-06-08> 한겨레

☞기사원문: “독립운동 정신적 지주 ‘대종교의 혼’ 아직도 간도 떠도니 통탄스럽죠”

화, 2021/06/15-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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