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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묘지 묻힌 친일파 63명…독립운동가는 공원에 냉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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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묘지 묻힌 친일파 63명…독립운동가는 공원에 냉대

익명 (미확인) | 목, 2018/06/28- 16:18

항일운동가 짓밟던 김백일에 
김구 암살 배후범 김창룡까지
‘친일인명사전’ 인물들 현충원에

항일운동가 짓밟던 김백일에
임정 요인·독립운동가 묘역은
근린공원·북한산 등에 뿔뿔이

현충원 선열들 친일파 ‘발 밑’에
“친일파 국립묘지 안장 막고
효창공원 성역화 서둘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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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서울현충원에 마련된 김백일의 묘./김경욱 기자

무더운 날이었다. 묘역 사이로 난 아스팔트 길은 뜨거운 열기를 뿜어냈고, 잔디가 깔린 묘소 위로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비석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지난 16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는 6월의 뙤약볕이 가득 내려앉았다.

‘육군 중장 김백일’(본명 김찬규)은 그 정돈된 땅에 묻혀 있었다. 그가 묻힌 ‘장군 제1묘역’은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 다음으로 서울현충원에서 높은 곳이다. 김백일의 묘비에는 “6·25 사변이 돌발하자 제1군단을 지휘하고 북진의 선봉이 되어 그 용맹을 국내외에 과시하였다. 함흥 지구에서는 십만의 피난민을 보살펴 남하케 하는 등 실로 지, 인, 용을 겸비한 장군이었다”고 쓰여 있었다.

묘비에는 ‘전쟁 영웅’으로 적혀 있지만, 김백일은 대한민국과 한민족을 배반한 자다. 2005년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 설립된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에서 2009년 공식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그가 포함돼 있다. 그는 민족문제연구소가 2009년 펴낸 <친일인명사전>에도 올라 있다.

친일인명사전을 보면, 김백일은 1938년부터 7년 동안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했다. 그는 간특대에서의 활동 공로로 1943년 일제로부터 만주국 훈장인 훈5위 경운장까지 받았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간도특설대는 1930년대 후반 간도협조회, 신선대 등과 함께 가장 악랄하게 조선인 항일 운동가들을 탄압한 3대 악질 조직 중의 하나”라며 “김백일은 최후까지 간도특설대에 근무하다가 일제가 패망하자 간도특설대의 해산 업무까지 맡았다”고 말했다.

친일반민족행위자인 김백일이 국립묘지에 묻힌 것은 해방된 조국에서 장성으로 복무했기 때문이다. 그는 해방 뒤 1946년 오늘날 국군의 모태가 된 국방경비대 창설에 참여했고, 제3사단장 등을 지냈다.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나자, 육군 제1군단장으로 전쟁에 참여했다. 1951년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 뒤에는 육군 중장으로 추서되고, ‘대한민국 최고 무공훈장인 태극무공훈장까지 받았다. 국립묘지 안장 대상자 등을 규정하고 있는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는 ‘장성급 장교로 전역·퇴역한 뒤 사망한 이와 무공훈장을 받은 사람은 국립묘지에 안장될 자격을 갖는다’고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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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백일처럼 국립묘지인 현충원에 안장된 친일파는 모두 63명에 이른다. <한겨레>가 국가보훈처에 요청해 받은 ‘친일반민족행위자 국립묘지 안장자 현황’을 보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친일파 가운데 63명이 서울현충원과 대전현충원에 묻혀 있다. 이 가운데 김백일, 김홍준, 신응균, 신태영, 이응준, 이종찬, 백낙준, 김석범, 백홍석, 송석하, 신현준 등 11명은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공식 결정한 친일파다.

이들 대부분은 일제강점기 일본군 간부로 복무하면서 항일 운동가들을 탄압하거나 일본 제국주의에 헌신한 인물들이다. 김홍준과 김석범, 송석하, 신현준은 김백일처럼 항일세력을 탄압한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했고, 해방 뒤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이종찬은 일제강점기 일본군 소좌 출신이다. 특히 이종찬은 일제로부터 무공훈장인 금치훈장을 받았는데, 조선인 출신 일본군 장교 가운데 금치훈장을 받은 이는 일제강점기를 통틀어 그가 유일하다. 해방 조국에서 국방부장관을 지낸 신태영은 일본육군사관학교를 나와 일본군 중좌로 복무했고, 그의 아들 신응균도 일본 육사를 졸업한 뒤 일본군 소좌로 활동한 친일 인사다. 백홍석과 이응준은 각각 일본군 중좌와 대좌로 복무했다. 이들 10명의 친일인사들은 대체로 광복 뒤, 장성급 장교로 대한민국 육군 또는 해병에서 근무한 공로로 국립묘지에 묻혔다. 연세대 초대 총장을 지낸 백낙준도 일제의 대동아 구상을 찬양하고 교회 신도들을 대상으로 전쟁에 쓰일 전투기인 ‘애국기 헌납 운동’을 벌인 대표적 친일 일사지만, 제2대 문교부 장관을 지내는 등 국가사회공헌을 인정받아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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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서울현충원의 이종찬 묘. 조선인 출신 일본군 장교 가운데 금치훈장을 받은 이는 일제강점기를 통틀어 이종찬이 유일하다./김경욱 기자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는 들어 있지 않지만,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대표적 인물인 김창룡도 대전현충원에 묻혀 있다. 그는 일본 관동군 헌병 오장(하사)으로 항일 운동 조직을 색출하고 독립운동가들을 악랄하게 고문했다. 김창룡은 항일 운동 지도자인 백범 김구를 암살한 배후 인물로도 지목됐다. 백범을 암살한 안두희는 범행 43년 만인 1992년 4월 “(이승만 정부의) 특무대장 김창룡의 지시로 백범을 암살했다”고 고백했다. 김창룡은 2005년 여야가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박정희와 함께 ‘적극적이고 악질적으로 우리 민족을 괴롭힌 현저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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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 지도자인 백범 김구 선생을 암살한 배우 인물로 지목된 김창룡의 묘가 국립대전현충원에 자리해 있다. 김창룡은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올라있다./ 이종근 기자 [email protected]

이렇게 친일파들이 국립현충원에 묻힌 것은 물구나무선 대한민국의 현재 모습을 잘 보여준다. 김창룡이 암살을 지시한 백범 김구를 비롯해 윤봉길·이봉창·백정기 의사, 이동녕·조성환·차리석 선생 등은 근린(동네)공원으로 관리되는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에 묻혀 있다.(<한겨레> 5월31일치 1·4·5면) 이준 열사와 손병희, 신익희, 김창숙, 이시영, 여운형 선생 등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들의 묘소도 강북구 북한산 자락에 흩어져 있다.(6월8일치 2면)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이 국립묘지에 누워 있고, 조국 독립을 위해 목숨 바친 이들은 근린공원 등에 방치된 것이다.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독립운동가들의 상황도 나을 게 없다. 박은식, 양기탁, 이상룡 등이 안장된 서울현충원의 ‘임정 묘역’과 권동진, 권병덕을 비롯해 영화 <암살>에서 배우 전지현이 연기한 안옥윤의 모델이었던 남자현 등 독립운동가들이 묻힌 ‘애국지사 묘역’은 이응준, 신태영 등 친일파가 묻힌 ‘장군 제2묘역’ 아래에 조성돼 있다. 항일 운동가들이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발아래 잠든 것이다.

국립현충원에 조성된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묘를 강제로 이장할 수 있는 방법은 현재로서는 없다.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현행법상 이미 국립묘지에 안장된 사람을 재심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은 6·25전쟁 등에 기여했기 때문에 이들의 안장 자격이 취소되지 않는 한 강제로 이장할 수 없다”고 말했다. 친일파라고 해도 장성급 장교로 이미 안장자격을 얻어 묻혔다면 이장이 어렵다는 설명이다. 박성행, 이동락, 김응순, 박영희, 유재기, 윤익선, 이종욱, 임용길, 김홍량 등 군 장성 출신이 아닌 친일파 9명이 2014~2015년 국립묘지 밖으로 이장된 사례가 있다. 하지만 이들의 경우, 독립유공자 서훈이 국무회의에서 취소됐기 때문에 이장이 가능했다.

이 때문에 현재 국회에는 더불어민주당의 권칠승, 김해영 의원 등이 각각 대표 발의한 국립묘지법 개정안이 제출돼 있다. 친일파의 국립묘지 안장을 막고, 이미 안장된 자의 묘를 강제로 이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국가보훈처장 또는 국방부 장관에게 ‘이장 요구’ 등의 권한을 주는 내용이다. 권칠승 의원은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은 일제에 협력해 민족에게 해악을 끼친 사람들로 국립묘지에서 배제하는 것이 당연한데, 현행법에 근거 규정이 없다”고 개정 이유를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군인묘지 성격이 강한 국립현충원과 별도로, 역사가 외면해 온 독립운동가의 위상을 재정립하기 위해 백범 등 대한민국 독립과 건국의 아버지들이 묻힌 효창공원을 국가 차원의 민족·독립 공원으로 격상시키는 일에도 속도를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홍소연 심산 김창숙 선생 기념사업회 전문위원(전 백범김구기념관 자료실장)은 “국립서울현충원은 6·25전쟁 뒤 국군 묘지로 만든 곳이다. 효창공원이야말로 오로지 독립운동가들을 위해 마련한 대한민국의 첫 국립묘지다. 하루 빨리 효창공원을 성역화하는 것이 애국자들의 영예를 높이는 길”이라고 말했다.

김경욱 기자 [email protected]

<2018-06-28> 한겨레

☞기사원문: 국립묘지 묻힌 친일파 63명…독립운동가는 공원에 냉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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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말 징병 찬양 글 쓰고 징병제 감사대회에 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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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촌 김성수. [사진 위키피디아]

대법원에서 친일행위가 인정된 인촌 김성수(1891∼1955)의 서훈이 박탈됐다.

정부는 이날 국무회의를 열어 인촌이 1962년 받은 건국공로훈장 복장(複章·지금의 대통령장)의 취소를 의결했다. 1962년 서훈을 받은지 56년만이다.

이는 대법원이 작년 4월 인촌의 친일행위를 인정한 데 따른 것으로, 당시 대법원 1부(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김재호 동아일보 사장과 재단법인 인촌기념회가 행정자치부장관을 상대로 낸 친일반민족행위결정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같은 대법원 판결로 친일행위가 인정되면서, 정부는 허위 공적으로 받은 서훈은 취소해야 하는 상훈법에 따라 국가보훈처 요청으로 서훈 취소 절차를 밟아 이날 서훈을 박탈하기에 이르렀다.

인촌의 서훈이 취소되면서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지정한 20명의 서훈 박탈은 모두 마무리됐다.

당시 진상규명위는 인촌이 전국 일간지에 징병, 학병을 찬양하며 선전·선동하는 글을 여러 편 기고하고 징병제 실시 감사축하대회에 참석하는 등 친일 반민족 행위를 했다고 판단한 바 있다.

이에 김재호 사장과 인촌기념회 등은 2010년 “인촌의 활동에 관한 당시 신문기사를 믿을 수 없고, 일제가 조직한 단체에 이름을 올리거나 행사에 참석한 것은 강제 동원된 것일 뿐”이라며 소송을 냈으나, 1, 2심은 “오로지 일제의 강요에 의해 이뤄졌다고 볼 수는 없다”며 친일 행위가 맞다고 판단했고 대법원은 원심을 확정했다.

<2018-02-13> 뷰스앤뉴스

기사원문: ‘친일’ 인촌 김성수, 56년만에 서훈 박탈

※관련기사

☞한겨레: ‘친일행위’ 동아일보 김성수, 건국공로훈장 서훈 박탈

☞뉴스1: ‘친일행위’ 인촌 김성수 56년만에 건국훈장 박탈

☞경향신문: 인촌 김성수, 서훈 56년 만에 박탈

☞한국일보: 인촌 김성수 훈장 56년 만에 박탈

☞서울경제: ‘친일 행위 인정’ 인촌 김성수, 56년 만에 서훈 박탈

※참고기사

한겨레21: 김성수 서훈은 치탈될 것인가 (2005.07.01)

화, 2018/02/13-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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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로 6번째 난민캠프 활동 떠나는 정우성 인터뷰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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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정우성이 15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정우성은 난민캠프를 방문할 때 마다 각각의 사연들을 들으며 편해질 수 없다고 말했다. 백소아 기자 [email protected]

‘난민법 개악 반대 100만인 서명운동.’

지난달 말 배우 정우성(45)은 <한겨레> 인터뷰 약속을 잡고 며칠 뒤 조심스레 서명지 하나를 기자에게 보내왔다. “난민에 대한 가짜 뉴스가 일파만파 퍼진 가운데 난민법이 개악되는 것을 막고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난민 심사제도를 운용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달라”는 호소가 담긴 서명지였다.

“개념 배우”에서 “배부른 위선자”로…. 배우 정우성을 향한 대중의 여론이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데는 반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의 소신에는 달라진 것이 전혀 없는데 말이다. 지난 2017년 12월, 방송에 출연해 “미얀마 로힝야족 등 난민 문제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했을 때, 대중은 그를 칭송했다. 2018년 6월 난민의 날, 그가 인스타그램에 “#난민과 함께 해주세요”라는 글과 함께 ‘제주 예멘 난민신청자 관련 유엔난민기구의 입장’을 올렸을 때, 대중은 그를 비난했다.

[정우성 인터뷰 동영상]

똑같은 ‘난민 문제’를 두고 롤러코스터를 탄 듯한 여론에 몸을 싣게 된 배우 정우성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 6번째 난민캠프 활동을 위해 아프리카행을 앞둔 그를 지난 15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 사옥에서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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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정우성이 15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백소아 기자 [email protected]

인터뷰 시작 전, 커피를 권하자 그는 챙겨 온 텀블러를 꺼내 놓았다. ‘노(NO) 플라스틱 챌린지’(환경을 위해 플라스틱을 쓰지 말자)에 참여 중이라며 “도움이 필요한 작은 활동들에 동참하다 보니 개인의 삶도 조금씩 바뀌더라”고 말했다.

온 나라를 들끓게 한 제주 예멘 난민 문제는 지난 10월 정부가 339명에 대한 ‘인도적 체류허가’ 결정을 내리면서 잠깐의 ‘시간 벌기’에 들어갔다. “환영”과 “반대”의 틈새로 “난민지위 인정이라는 전향적 태도를 기대했는데 아쉽다”는 의견도 흘러나왔다. “정부가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 결정이었다고 생각해요. 난민은 아직 먼 이야기고, 우리 국민이 먼저라는 의견도 많은데…. 그나마 최소한의 보호조치는 내려진 거니까요. 정부가 비겁한 것 아니냐고 따질 문제는 아니라고 봐요.”

예멘 난민 문제는 우리 사회의 이중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유니세프 등 국제 구호단체에는 흔쾌히 기부하면서도 난민이 우리 안으로 들어오는 것에 대해서는 극도의 거부감을 나타냈으니 말이다. 정우성은 이에 대해 “두 가지를 살펴봐야 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놨다. “난민 문제를 정치적 이슈로 이용하려는 가짜뉴스는 비판하되, 난민에 대해 잘 모르는 일반인의 순수한 걱정마저 매도하면 안 되겠죠. ‘누군가를 돕는 건 괜찮은데, 내 생활 터전까지 내주라는 거냐’는 게 일반인들 시각이거든요. 관점을 바로잡는 데는 시간이 걸려요. 서로의 관점을 설득하는 데 격앙될 필요도 없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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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정우성이 15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email protected]

그는 얼마전 김어준의 <다스뵈이더>에 출연해서도 <한겨레>가 보도한 ‘가짜뉴스’에 대한 우려와 경계를 드러내며 “가짜뉴스를 만드는 ‘작전세력’의 존재를 감지한 적이 있다”고 했다. “예멘 난민 문제가 터지면서 댓글을 열심히 읽었어요. 친선대사 활동을 하니 왜 반대하는지, 밖에 나가 어떤 온도로 대응해야 하는지 알기 위해서죠. 그런데 댓글이 패턴화돼 있더라고요. 악플 다는 사람들 계정을 추적해보면 다른 게시물은 전혀 없고 이 문제에 대해서만 비슷한 악플을 단다거나, 계정은 다른데 댓글은 찍어낸 듯 유사하다던가…. 일반 사람이 가진 우려의 목소리를 자극하고 선동하는 거죠.”

그 비난과 악플의 과녁 정중앙에는 정우성이 있었다. 데뷔 25년 동안 ‘깨끗한 이미지’를 지켜온 그이기에 상처를 받거나 화가 나는 일도 많지 않았을까. “전혀요. 제 생각에 대한 확신이 있으니까요. 욕보다는 칭찬이 더 무서운 법이죠. 칭찬은 기대치를 높이니 무서운데, 욕은 그냥 지나가는 거예요.” 그가 유명 연예인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부자 동네에서 시시티브이에 둘러싸인 당신이 난민 문제를 운운하는 것은 위선 아니냐”는 논리도 등장했다. “제가 여유가 있기 때문에 이야기할 수 있는 거죠. 없는 사람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마음이나 물질에 여유 있는 사람이 함께 공존하는 사회를 만들자는 이야기를 해야죠.”

“난민 향한 ‘우리 안의 이중성’
가짜뉴스는 비판하되

일반인의 걱정 매도하면 안돼

정부 ‘예멘 난민 결정’ 가장 현실적

난민 가짜뉴스 ‘작전세력’ 느껴
댓글 악플만 반복 패턴화

보통사람의 우려 목소리 선동

자꾸 불합리한 게 보이는데…
소방관 챌린지, 4·3동백꽃 배지…
사회적 목소리를 내며

나이 잘 먹어가고 잘 살면

후배들에게 좋은 선례 아닐까요?”

그는 “인권에는 차별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유엔난민기구 특사 자격으로 방한한 할리우드 배우 앤젤리나 졸리를 만났을 때도 이런 공감대를 나눴다고 전했다. “졸리도 저도 인생에서 중요한 가치로 인권을 선택한 거고, 그게 난민 문제와 직결된 거죠. 인간의 존엄성을 말하며 여러 가지 이유로 여지와 차별을 두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나눴어요. 내 인권이 우선돼야 한다는 말에는 언젠가 상황에 따라 내 인권도 차별받을 수 있다는 의미까지 담겨있는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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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정우성이 15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email protected]

제주도에서 예멘 난민을 만났을 때도, 앞서 네팔·남수단·레바논·이라크·방글라데시의 난민 캠프를 방문했을 때도 “(난민은) 나와 다르거나 특별할 것이라는 생각 자체가 편견”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그들은 전쟁 같이 특수한 환경이나 사정 때문에 난민이 됐어요. 자꾸 예멘 난민 대다수가 남성이라는 점을 문제 삼는데, 아랍 쪽 정서로는 집안의 가장인 남성이 밖으로 나가 위험에 처한 가족이 머물 곳을 알아보는 것이 중요한 임무예요.”

안온한 ‘스타의 길’을 두고 고생을 자처한 데는 특별한 계기가 있을 듯 싶다. “2014년 유엔난민기구쪽 제안을 받고 같이 해보면 좋겠다는 가벼운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그런데, 캠프를 방문할 때마다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내가 얻어오는 것이 더 많다는 걸 느끼면서 더 큰 관심이 생겼어요. 특별한 계기를 찾으려 하면 행동으로 옮기기가 힘들어요. 사소한 생각이나 감정이 들 때, 그 느슨한 고리를 잡고라도 실천해야죠.”

사실, 그가 사회적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이미 한참 전의 일이다. 촛불 정국이었던 2016년 11월 영화 <아수라> 행사에 참석해 “박근혜 나와”를 외쳤고, 2017년 12월 파업 중이던 <한국방송>(KBS) 노조원들에게 “여러분은 혼자가 아닙니다”라며 지지를 보냈다. “10대 때부터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제도권 밖에 있다 보니 자꾸 불합리함이 보였어요. 그런데 배우가 되고 삶이 안정되니 개인적인 삶에 빠지게 되더라고요. 내 안의 불씨가 사라진 느낌이었죠. 그러다 40대로 넘어오며 기성세대로서 내가 할 일이 무엇인가 고민하게 됐죠. 다음 세대를 위해 나는 어떤 어른이 돼야 할까에 관한 개인적 고민이 돌출된 것 아닐까 해요.”

난민 문제로 여론이 악화하면서 일부 대중은 “촛불을 이용해 이미지 메이킹을 한다”거나 “배우면 배우답게 영화나 찍으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정권 바뀌면 어쩔거냐”며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촛불을) 이용했다고 바라보면 어쩔 수 없죠. 다만, 그때라도 한 게 다행이고 중요한 것 아닌가요? 다음 정권이 다른 의견을 가진 자들을 탄압하면 정당하지 않은 사회로 되돌아가는 건데, 그럼 더욱 저항해야죠. 정치는 정치인이 하는 것이라며 내버려두는 순간, 나라가 사달이 나는 거, 우리 모두 직접 경험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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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정우성이 15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email protected]

사회적 역할과 책임’에 적극적인 정우성이기에 활동 반경도 점점 넓어지고 있다. 아이스버킷챌린지, 소방관 GO챌린지, 제주 4·3 동백꽃 배지 캠페인, 노플라스틱 챌린지, 입양문화 개선 캠페인까지…. “들어오는 부탁을 잘 거절 못 해요. 하하하. 제가 나이를 잘 먹어가고 잘 살면 (후배들에게) 좋은 선례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사방으로 뻗어가는 그의 관심사의 끝에는 결국 ‘역사’가 자리한다. 최근 친일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가장 만나고 싶은 사람으로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을 꼽았다. “지금 일어나는 현상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다 연결되잖아요. 친일세력이 친독재세력이 되고, 그들이 보수세력인 척 물타기 해서 정치권에 들어오고…. 역사교육이 정말 중요해요. 정치는 물론이고 사법부까지 망가지는 걸 보면서 심리적 충격을 받았을 거예요. 이렇게 가다보면 ‘결국 나 혼자 살아남아야 한다’는 각자도생만 고민하게 되겠죠. 역사를 공부하면 정치가 왜 중요한지 그리고 개인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공감대가 생기지 않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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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정우성이 15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여섯번째 난민캠프행을 앞둔 정우성을 ”난민에 대한 관점을 바로 잡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면서 난민문제 해결을 위한 목소리를 꾸준히 내겠다고 소신을 밝혔다. 사진 백소아 기자 [email protected]

<2018-11-19> 한겨레 

☞기사원문: 정우성 “‘배부른 위선자’라 욕 먹어도…‘난민 차별 반대’ 계속해야죠”

월, 2018/11/19-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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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사기는 남의 일인줄 알고 살았던 IDS 피해자 입니다.

16년 9월 IDS 대표 김성훈이 구속되고

IDS 가 불법 다단계 조직임이 밝혀진 상황에서, 단 한번도 변제가 행동으로

이루어 진적이 없는 상황에서 수많은 감언이설로 피해자를 속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파산이라뇨~

피해자가 1만명이 넘는데, 고작 29명이 파산을 신청해서 김성훈에게

1조가까운 피해금의 면죄부를 준다는게 말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죄를 지었으면 죄를 받고, 반성한다면 피해회복을 위해

행동을 해야 하는게 사람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제발 김성훈의 파산을 막아주세요

 

 

수, 2017/12/06-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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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s홀딩스로 인해 고통받는 피해자입니다.

제2의 조희팔 사건..

제가 그 사건의 피해자가 될 거라 생각도 못했었답니다.

저의 욕심이 이렇게 힘든 생활의 연속이 될 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저처럼 이렇게 고통받고 있는 피해자들이 넘쳐나고 있는 상황에서 29명이 12000명을 대표하여 파산신청을 진행한다는 말에 더 놀랐습니다.

어렵게 모으고 모은 돈을 기다리면 준다하여 1년반을 넘게 기다렸는데 단 한푼의 변제도 받지 못한 상태인데

이제는 파산을 하여 면책을 받겠다니요…

제발 간혹히 부탁드립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인권, 평화, 미래를 생각하는 훌륭한 곳이고 이런 곳의 고문변호사이신 분께서 피해자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헤아려주시길 간곡히 바랍니다.

 

목, 2017/12/07-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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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會議員輩特別活動費

 

外面民生苦(외면민생고)

錢與野同(탐전여야동)

如何多歲費(여하다세비)

私慾每無窮(사욕매무궁)

 

국회 의원들의 특별 활동비

 

백성들 삶의 고통은 외면하면서

돈을 탐냄에는 與野가 똑같다네

많이 받는 그 歲費 어찌 된 건가

사사로운 욕심은 늘 무궁하구나.

 

<時調로 改譯>

 

민생고 외면하면서 貪錢엔 與野가 같네

많이 받는 그 歲費는 대체 어찌 된 건가

당신들 私的인 욕심 언제나 무궁하구나.

 

*歲費: 국가 기관에서 한 해 동안 쓰는 경비. ≒세용(歲用). 국가 기관에서 官僚

등에게 지급하는 돈.법률국회 의원이 매월 지급받는 수당 및 활동비 *私慾:

자기 한 개인의 이익만을 꾀하는 욕심 *無窮: 공간이나 시간 따위가 끝이 없음.

 

<2018.8.9, 이우식 지음>

목, 2018/08/09-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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