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 법관들은 왜 ‘재판거래’ 수사에 반대하나
대법관, 법원장 등 전, 현직 고위 법관 171명 인사 분석
사상 초유의 ‘재판거래’ 의혹에 대해 법원의 고위 법관들이 검찰 수사를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뉴스타파는 서울고등법원의 부장판사와 전국 법원의 법원장, 그리고 대법관 등 현직 고위 법관 113명의 인사기록을 분석했다. 이들은 대법원이 재판거래 의혹에 대해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는 것을 공개적으로 반대한 법관들이다. 전국 법원 32곳에서 열린 판사회의 가운데 25곳이 의혹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추궁 의견을 낸 것과는 대조적이다. 아울러 재판거래 의혹의 진원지로 지목되고 있는 양승태 대법원장 시설 법원행정처를 거쳐간 판사들도 분석했다. 모두 171명의 전, 현직 고위법관들이다.
전, 현직 고위법관 171명 인사기록 분석
지난 21일 검찰이 법원행정처의 재판거래 의혹에 대한 수사에 돌입했다. 법원행정처의 문건이 공개된 지 28일, 수사에 협조하겠다는 김명수 대법원장의 입장 발표 6일 만이다. 그러나 대법원장의 입장 발표가 있기 전 일부 고위법관들이 사법부를 상대로 한 검찰 수사에 공개적으로 반대의견을 내놓았다.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와 전국 법원장, 그리고 대법관들이다. 법관 독립성이 침해될 수 있고 재판거래 의혹의 근거가 없다는 것이 주요 이유였다. 과연 이런 이유 뿐일까? 고위 법관의 이력을 보면 다른 해석이 가능해진다.
“강민구 판사, 서울고법 부장판사 회의에서 수사 의뢰 반대 부추겨”
최근 서울고법 부장판사들이 수사 의뢰를 반대한다는 입장을 내게 된 것은 강민구 부장판사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증언이 나왔다. 법원 내부 관계자 A씨에 의하면 지난 5일 열린 부장판사 회의에서 “강 판사가 여러 가지 부정적인 입장을 비추면서 그 회의를 주도했다고 들었고, 회의 의결사항이 그 분으로 의해 많이 좌지우지됐다는 이야기를 아는 판사로부터 들었다"고 증언했다. 당시 서울고법 부장판사들 중 최고참은 사법연수원 13기인데 강민구 판사는 14기로 동료 판사들 사이에서 영향력이 높은 위치에 있었다.
강민구 판사의 이력을 보면 수사 의뢰를 반대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강 부장판사는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인 2014년 창원지방법원장을 시작으로, 2015년 부산지방법원장, 그리고 2017년 법원도서관장까지 4년 가까이 법원장급 요직을 역임했다. 현직 부장판사나 법원장 그리고 대법관 가운데 이렇게 세 번 연속으로 법원장급 자리를 이어간 경우는 강 판사가 유일했다.
강 판사가 양승태 대법원장으로부터 많은 신임을 받았다는 증언도 있었다. 조석제 전국공무원노조 법원본부장은 “강민구 판사가 부산지방법원장으로 있던 지난 2015년 당시 법원 직원들에게 양승태 대법원장이 자신이 추진하고 있는 예술 법정이나 IT 기술에 대한 강연 활동에 대해 적극적으로 지지해주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전했다.
강 부장판사는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대법관 후보로 추천됐지만 탈락한 바 있으며, 최근에는 탈락 당시 삼성 장충기 전 사장과 주고 받은 문자가 뉴스타파 보도로 공개돼 파문이 일자 장기 휴가를 간 상태였다. 강 판사는 서울고법 부장판사 회의에 휴가 중에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뉴스타파는 강민구 판사에게 서울고법 판사회의에서 상황을 묻기 위해 연락했지만 접촉을 거부했다.
김시철 판사,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재판개입 의혹 문건에 등장
재판거래 의혹으로 공개된 문서 가운데 ‘원세훈 사건 환송 후 당심 심리 방향'이라는 문서에는 김시철 서울고법 부장판사의 이름이 등장한다. 이 문서는 지난 2015년 원세훈 전 국정원장 대선개입 사건 재판 당시 재판개입이 있었다는 의혹의 근거가 되는 문건이다.
2015년 10월에 작성된 이 문건을 보면 당시 원세훈 사건의 파기환송심 재판장이던 김시철 판사와 최 모 주심판사가 원세훈 재판 진행 상황을 전화로 공유한 내용이 제 3자에 의해 법원행정처에 보고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서기호 변호사는 “고등법원의 다른 판사가 통화 내용을 알게 해줬다는 건데 재판장 본인이 스스로 하지 않고선 불가능한 이야기이다. 그렇지 않다면 다른 판사가 전화통화를 엿들었다는 건데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김시철 판사는 원세훈 재판에 재판개입이 이뤄졌다는 의혹에 굉장히 중요한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 일부 판사들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해
법원행정처 실국장급 이상 보직은 법원 내 요직으로 분류되는데 대법관들 중 다수가 행정처를 거쳐 승진했기 때문이다. 뉴스타파가 분석한 현직 고위법관 중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에서 일했던 판사는 대법관 3명과 서울고법 부장판사 6명이다.
고영한 대법관은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 차장과 처장을 지냈고 이번 재판거래 의혹의 중심에 있다. 특히 고 대법관이 법원행정처장으로 있던 지난 2016년에 특정 판사들을 사찰했다는 문건도 다수 공개됐다. 또 고 대법관은 현재 재판거래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KTX 승무원 해고 판결과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 판결의 주심이기도 했다.
지난 2017년 7월에 임명된 김소영 대법관은 양승태 대법원장 당시 마지막 행정처장이다. 김 대법관은 판사 블랙리스트 논란으로 뜨겁던 지난 1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사용하던 컴퓨터를 제출해달라는 특별조사단의 요구를 거절했다. 임종헌 전 차장의 PC에서는 사법행정권 남용 관련 보고서가 무더기로 발견됐다.
퇴임 대법관 역시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현재 모 대학 교수로 있는 박병대 전 대법관의 경우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함께 재판거래 의혹에 많은 책임이 있는 사람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박 전 대법관은 2014년부터 2년 동안 법원행정처장을 지냈는데 이 시기에 작성된 사법 행정권 남용 관련 문건이 무더기로 나왔다. 특히 당시는 대법원이 상고법원 추진에 노력할 때였고 이와 관련한 재판거래 의혹 문건이 작성된 시기이기도 하다.
이 같은 결과를 보면 대법관을 포함해 전, 현직 고위 법관들은 이번 재판거래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상황에서 법원의 최고위 법관들이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힌 것은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오지원 변호사는 이번 고위법관들의 입장 발표에 대해 “이 사건이 결국은 형사절차를 밟아서 대법원까지 올라올 수 있고 현 고위법관들이 사건을 맡게 될 수도 있는데 그에 대해서 문제 없으니 믿어달라는 취지로 입장을 발표한 건 상당히 부적절했다"고 지적했다.
취재 : 신동윤
촬영 : 정형민 신영철
편집 : 박서영
CG : 정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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