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무관학교는 지난 10일 설립 107년을 맞았다. 올 기념식은 예년과 달랐다. 육군사관학교에서 열린 것이다. 지난 8일 서울 태릉 육사 화랑연병장에서 생도 1100여 명이 107돌을 기념하기 위한 분열 의식을 했다. 신흥무관학교 기념사업회(상임대표 윤경로) 참석자들을 향해 충성 구호도 외쳤다. 육사 강당에선 항일 음악 발표회도 있었다.
1911년 6월 10일 만주 서간도에 세워진 신흥무관학교는 1920년 폐교까지 2천여 명의 항일 투사를 길러냈다. 이 학교 출신들은 청산리와 봉오동 전투의 중심이었다. 지청천 이범석 김경천 장군은 교관을 지냈다. 우당 이회영과 석주 이상룡 일가의 가산이 학교 설립에 쓰인 것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예로 잘 알려져 있다. 2011년 꾸려진 사업회를 이끄는 윤경로 대표를 18일 서울 소공동 한 식당에서 만났다.
▲ 지난 8일 육사에서 열린 기념식 뒤 사업회 쪽 참석자와 생도 대표 등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업회를 만들고 가장 먼저 추진한 게 육사의 뿌리 찾기였죠. 육사 연혁을 보면 미군정이 만든 군사영어학교가 전신입니다. 친일파가 많은 학교였어요.” 사업회는 애초 신흥무관학교 100돌 기념사업을 치르기 위해 만들었다. “2011년 육사에 공문을 보내 숱한 독립군을 배출한 신흥무관학교가 육사의 뿌리란 걸 조명하는 세미나를 열고 기념식도 육사에서 하자고 제안했죠. 답이 없더군요.”
6년이 흐른 뒤 기류가 바뀌었다. “지난해 8·15 행사 뒤 육사 쪽에서 만나자고 했죠. 김완태 당시 육사 교장과 두 번 만났어요. (정진경 현 교장은 지난 5월 부임) 김 교장이 그래요. ‘난 육사 교장을 끝으로 군복을 벗는다. 소신껏 하겠다’고요.” 김 전 교장은 사업회 제안을 받아들여 지난해 12월 육사에서 ‘독립군·광복군의 독립전쟁과 육군의 역사’ 학술대회를 열었다. 올 3월 1일엔 학교 안에 홍범도 지청천 김좌진 이범석 장군과 이회영 선생의 흉상을 세웠다. 생도들이 군사훈련 때 쓴 탄피를 녹여 만들었다. 그리고 기념식이 육사 교정에서 열렸다.
윤 대표는 작년 8월 14일 애국지사·유족들과 함께 청와대에서 대통령과 점심을 먹었다. 광복절을 하루 앞둔 초청 행사였다. “문 대통령이 사업회 활동에 관심을 보이더군요. 그래서 제가 세 가지를 이야기했어요. 육사 모체를 친일파가 우글거렸던 군사영어학교로 하는 건 잘못이다, 자존심의 문제라고요. 국군의 날은 유엔군이 38선을 넘은 10월 1일이 아니라 광복군 설립일인 4월 27일이어야 한다고도 했죠. 탑골공원 정화사업의 필요성도 말했죠.” 대통령은 2주 뒤 국방부 업무보고에서 “광복군과 신흥무관학교 등 독립군 전통도 육사 교과과정에 포함하고 광복군을 군 역사에 편입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화답했다.
지난 8일 육사서 107돌 기념식
작년엔 신흥 조명 학술대회도
육사 새정부 들어 사업회안 수용
“친일파 학교가 육사 전신은 잘못 신흥무관학교가 육사 뿌리 돼야 독립운동 전공자 교수 채용을”
한성대 총장을 지낸 윤 대표는 경실련 창립 멤버이다. 2003년부터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장도 맡고 있다. 고려대에서 강만길 교수 지도로 ‘105인 사건’을 주제로 박사 학위를 땄다. 2012년 한성대에서 정년 퇴임했다.
“사업회 설립 때 우당 손자인 이종찬 전 국정원장은 군 장성 중심으로 하자고 했죠. 하지만 내부 토론을 거쳐 유족과 학계 중심으로 하는 게 맞다고 의견을 모았어요. 첫해 중국 답사 때는 예비역 장성 13명이 참가했어요.”
그는 신흥무관학교가 제대로 조명을 받지 못한 데는 ‘분단 현실에 갇힌 독립운동 연구’ 탓이 크다고 했다. “(신흥 출신) 변영태는 남한 초대 외무장관을 했지만 김원봉 등은 북으로 갔어요. 이런 사정으로 연구가 제대로 안 되었죠. (분단의 제약으로) 남에서 한국 독립운동 연구는 상하이 임시정부 위주로만 했어요. 극복이 필요합니다.” 학교 터에 표지석을 세우려 했지만 중국 당국의 허락을 받지 못했단다. “터를 가보니 다 옥수수밭이고 유적지를 찾기 어려웠어요.”
그는 “사업회의 문제 제기가 이제 공론화된 것”이라며 앞으로 학교를 한국군의 뿌리로 정립하려는 노력을 차근차근해나가겠다고 했다. “육사에 연혁 수정을 요구해야죠. 제 생각으로는 대한제국의 장교 양성기관인 군사무관학교에서 출발해 신흥무관학교와 독립군·광복군 양성 학교로 내려오는 게 바람직합니다. 공사와 해사도 함께해야죠.” 덧붙였다. “육사 교수진에 한국독립운동사 전공 교수가 없어요. 독립운동사를 체계적으로 가르치려면 전임 교수가 필요하죠.”
육사 생도들 반응? “학술대회 때 생도들과 함께 식사했어요. 대부분 신흥무관학교가 있는 줄 몰랐다고 해요. 100년 전 나라가 어려울 때 선배들이 이런 일을 했다는 게 감동적이다, 자긍심이 생긴다고 했죠.” 그는 학교를 알리는데 영화나 연극 같은 문화 콘텐츠를 적극 활용하겠단 얘기도 했다. “신흥무관학교 출신이 주인공인 영화 <암살>로 학교가 많이 알려졌어요. 배우 조진웅씨는 사업회 홍보 대사이죠. 우당기념사업회에서 뮤지컬도 만들어 몇 번 공연했어요.”
그는 15년째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2009년 사전이 나온 뒤 사자 명예 훼손 등을 이유로 8번 소송이 있었지만 다 우리가 이겼어요. 있는 사실 만을 썼기 때문이죠. 서훈 심사 때 사전을 참고한다고 해요.” 개정 작업? “보완이 필요해요. 빠진 사람이 있는지 면밀히 보고 있어요. 지방이나 해외 친일파는 책 출간 때 충분히 조사하지 않았거든요.” 편찬위원장 자리에 자긍심 못지 않게 책임감도 크단다. “공인 아닌 공인이죠. 이런저런 공직 제안도 있었지만 가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죠.”
나라 잃은 백성들에게 징용·징병에 동참하라며 일제에 적극 ‘부역’한 세력이 ‘강제징용 배상’ 판결한 대법원과 우리 정부를 헐뜯고 아베를 편들고 있다.
민족과 국민 앞에 한번도 사죄한 적 없이 ‘숨은 권력’으로 군림하며 이제는 ‘반개혁’에 앞장서는 그들과의 백년전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판결은 때로 한 사건을 통해 시대의 진면목을 들춰낸다. 최근 대법원이 ‘문제 없다’고 판단한 <백년전쟁>은 2012년 11월 유튜브로 처음 공개된 이래 400만뷰 이상 기록한 화제작이다.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미 중앙정보국(CIA) 기밀문서 등 국내외 자료까지 찾아내 이승만·박정희 두 전직 대통령을 비판적으로 조명했다.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한 ‘저항세력’과 부역했던 ‘협력세력’ 사이엔 아직도 전쟁이 진행 중이라며 ‘백년전쟁’이라 이름 붙였다. 좀 거칠긴 해도 굴곡진 100년사를 쉽게 이해하는 데는 그런대로 유용한 잣대를 제공한다.
‘백년전쟁’이 법적 심판대에 오르는 과정 자체가 ‘전쟁’이 현재 진행형임을 보여준다. 방송 4개월 만에 친일 협력세력 후손인 한국방송 이사장(이인호)이 사회 원로 자격으로 역시 협력세력의 딸인 대통령(박근혜)과 만난 자리에서 “역사 왜곡”이라며 “국가안보 차원에서 주의 깊게 봐야 한다”고 부추겼다. 이틀 뒤부터는 또 다른 친일 협력세력 후손들이 소유한 언론들이 달려들었다. 미국 영화감독 마이클 무어처럼 패러디 기법을 활용했다는 작품에 현미경을 들이대며 지엽적인 표현 하나하나를 따지고 들었다.
결국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징계하고 검찰이 기소까지 했지만 소송전은 협력세력의 참패로 끝났다. 서울중앙지법은 검찰이 유일하게 허위라며 기소한 사자 명예훼손 혐의조차 인정하지 않고 지난해 8월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 역시 방송통신심의위 제재에 대해 “외국 정부의 공식 문서와 신문기사 등 자료에 근거해 중요 부분이 객관적 사실과 합치된다”며 취소하는 게 맞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이 정권 정치기구가 됐다’는 등 억지 주장에도 작은 전쟁은 ‘사필귀정’으로 막을 내렸다.
지난해 10월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역시 의도치 않게 친일 협력세력의 민낯을 까발렸다. 아무 근거 없이 ‘전략물자가 북한 등으로 흘러갔다’고 보도해 한-일 갈등 초기 일본에 수출규제의 핑곗거리를 제공한 것도 이들이었다. 그래놓고 아베 정부 대신 우리 정부를 겨냥해 ‘경제 보복을 자초했다’고 비난했다. 지소미아 종료의 조건부 유예로 두 나라가 파국을 피한 뒤에도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일본의 유력 언론(아사히)마저 일본 정부에 ‘이성적 사고로 돌아가 수출규제를 철회하라’고 요구하는 판에 우리 정부의 ‘외교적 완패’ 운운하며 사실상 아베 편을 들었다.
따지고 보면 80년 전 나라 잃은 백성들에게 강제징용·징병에 동참하라고 꼬드겨 일본 제국주의에 적극 ‘부역’한 것도 이들이다. 민족 앞에 석고대죄해도 모자랄 판에 거꾸로 ‘배상’하라고 판결한 대법원과 뒤늦게나마 우리 국민 지키겠다는 정부를 헐뜯었다. ‘일본은 한번 각오하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나라’라며 ‘힘이 부족하면 굴욕을 감수할 수 있는 용기라도 있어야 한다’고 조롱했다. 숨어 있던 ‘친일 부역’ 유전자가 되살아난 게 아니라면 이해하기 힘든 망동, 망언이다.
최근에 나온 ‘장자연 사건’ 수사 외압 관련 판결은 이들이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권력’으로 군림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우울한 증거다. ‘조선일보를 대표해서 말한다’는 사회부장 한마디에 경찰의 수사 책임자는 수사기밀도 다 건네줬다. 판결문은 ‘(사회부장의) 협박은 허위가 아니’라며 사실로 인정했다. 한 젊은 여배우를 죽음으로 몰아간 성착취 사건이 왜 묻힐 수밖에 없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장면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적반하장으로 진실을 파헤치는 언론들을 고발했다. 판결에 따르면 알면서도 거짓 고소를 한 것이니 똑떨어지는 무고죄에 해당한다. 피고소인 조사까지 마쳤다니 사건이 곧 검찰로 넘어갈 것이다. 사법농단 사건에서 보듯이 전직 대통령 둘과 직전 대법원장까지 줄줄이 구속한 ‘윤석열 검찰’도 언론 권력 앞에선 꼬리를 감췄다. 이번에야말로 그런 일은 없어야 한다.
친일 협력 언론은 민족과 국민 앞에 한번도 제대로 과오를 인정하거나 사죄한 적이 없다. 오히려 정치·경제·사법 분야까지 아우르는 기득권 동맹을 이끄는 ‘숨은 권력’으로 군림하며 이제는 ‘반개혁’에 앞장서고 있다. 내년이면 100년을 맞는 이들의 반민족·반민주 과거사를 국민들에게 다시 알리고 청산하기 위해 지난 9월 ‘조선 동아 거짓과 배신의 100년 청산 시민행동’이 출범했다. 깨어 있는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절실하다.
“문희상안 반대” 강제동원공동행동, 정의기억연대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27일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일제 강제동원 문제 해결을 위한 문희상 국회의장안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또 피해자 배제 합의 안돼” 항의 서한 전달 뒤 면담
문 의장 “정해진 것 없어”“논평 삼가” 일본은 관망
한·일 갈등의 핵심적 요소인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의 해법으로 문희상 국회의장이 내놓은 제안이 국내 시민단체와 피해자들의 강력한 반발에 직면해 실제로 성사될 가능성이 불투명해졌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강제동원공동행동, 정의기억연대 등 강제징용·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측 시민단체들은 27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문 의장이 제시한 ‘일본군 위안부·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입법안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문 의장이 연내 대표발의를 추진하고 있는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은 한·일 양국 기업과 국민이 자발적으로 기부금을 내고 현재 활동이 종료된 화해·치유재단의 기금 잔액 60억원 등을 포함해 기억인권재단을 설립, 강제징용 및 일본군 위안부 등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강제동원 피해자 소송대리인 임재성 변호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한국 정부가 재단을 만들어 한·일 국민과 기업이 자발적으로 성금을 모으는 방안은 일본의 법적 책임을 인정하는 게 아니다”라며 “전혀 연관 없는 쪽을 끌어들이면서 일본 책임이 모호해지고 여러 과거사 피해자가 청산되는 게 이 안의 핵심”이라고 비판했다. 임 변호사는 이어 “유족들은 가해자가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요구하지만 문 의장 안에는 이런 내용이 없다”고 지적했다.
2015년 말 피해자들이 배제된 채 이뤄진 ‘한·일 위안부 합의’와 유사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중앙대 교수)는 “피해자 의사를 배제한 채 이뤄진 한·일 합의가 또다시 반복되려 한다”며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한 문재인 정부가 재단에 남은 60억원에 의미를 부여하며 일본 책임을 면탈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들 단체는 “피해자 모욕하는 문희상안 폐기하라” “일본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강제동원 문제 법적 책임 이행하라” “반인권 반역사적인 입법 추진 중단하라”는 요구사항을 외쳤다.
이들은 기자회견 직후 문 의장에게 항의 서한을 전달하고 국회의장실에서 5분간 면담을 가졌다. 이 이사는 면담 직후 “문 의장이 12월 안에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했다”며 “다른 의원들과 회의한 결과 의원들이 문 의장 안으로 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고 들었다”고 밝혔다.
문 의장은 일본이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내용이 법안에 포함돼 있지 않다는 지적에 대해 “얼마든지 안에 포함할 수 있다. 아직 정해진 내용은 아무것도 없다. 문은 열려 있다”고 말했다고 임 변호사는 전했다.
일본 측은 관망하는 분위기다. 니시무라 아키히로(西村明宏) 일본 관방부(副)장관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문 의장의 구상을 일본 측이 받아들일 여지가 있느냐는 물음에 “타국 입법부에서의 논의이므로 (일본) 정부로서 논평하는 것은 삼가고 싶다”고 답변했다.
강제동원공동행동, 정의기억연대 등 피해자 시민사회단체 관계자가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를 방문, 문희상 국회의장에게 문 의장이 제시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해법에 대한 항의서한을 전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 기업의 강제동원 배상 책임을 한·일 기업과 국민의 자발적 기부금, ‘화해·치유재단’에 일본이 냈던 기금의 잔액 60억원으로 대신 부담하자는 문희상 국회의장의 제안, 이른바 ‘문희상안’에 강제동원 및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피해자 단체가 연일 반발하고 있다. 가해의 역사를 청산하는 게 아니라 외교적 갈등을 만들 여지가 있는 피해자를 청산하고 일본 정부의 책임을 지우는 발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문 의장은 지난 4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국회의장 회의에서 한·일 양국 국민과 기업을 대상으로 모금해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돈을 지급하는 법안인 이른바 ‘1+1+알파(@)’ 안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문 의장이 제안한 안은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한·일 기업과 국민의 자발적 성금, 2015년 한·일 정부 간 합의로 만들어졌다 해산된 ‘화해·치유재단’에 일본이 낸 기금 잔액 60억원으로 대신 부담하자는 방안이다. 이 재원으로 피해자들에게 ‘위자료’가 지급되면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이 ‘대위변제’되는 것으로 간주해 ‘재판상 화해’가 성립되는 방식으로 문제를 푼다는 것이다. 문 의장은 ‘1+1+알파’ 안을 한·일기업과 양국 정부, 국민의 자발적 기부금과 화해치유재단 기금 잔액을 통해 ‘기억인권재단’을 설립하자는 ‘2+2+알파’ 안으로 수정해, 이를 기초로 한 특별법 입법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강제동원 및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은 “일본 정부와 아베 총리의 사죄를 받아내겠다는 피해자들의 핵심 요구가 빠진 방안”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근로정신대 피해자인 양금덕(90) 할머니는 27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우리의 목적은 아베로부터 당당히 사죄를 받아내는 것이다. 사죄가 없는 기부금은 필요도 없으니 이야기도 꺼내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거지인 줄 아느냐”고 잘라 말했다. 양 할머니는 이어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본에 끌려가 동물 취급을 받으면서 일하고 돌아왔다. 사과를 받는 것이 가장 먼저”라고 강조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옥선 할머니도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대일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 쪽에 문자 메시지를 보내 “사죄가 먼저다. 그리고 배상은 일본 정부가 할 일인데 왜 한국 정부와 국회가 이래라저래라 하나. 또 박근혜가 한 돈은 일절 못 받으니 돌려주라”라고 전했다.
피해자 단체들도 이번 ‘2+2+알파’ 안에 대해 “일본 정부에 면죄부를 주고 지난해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판결이 인정한 피해자들의 배상 청구 권리를 소멸시키는 법안”이라고 입을 모은다. 일본제철·미쓰비시·후지코시 강제동원 피해자 소송 대리인인 임재성 변호사는 이날 오후 2시 국회 정문 앞에서 열린 ‘문희상 안에 대한 피해자·시민사회단체 공동 기자회견’에서 “문 의장의 제안에 따르면 일본 기업은 법적·역사적 책임이 아닌 자발적인 방식으로 돈을 모으고, 심지어 그 돈에 한-일 기업과 국민의 돈까지 교묘히 섞이게 된다”며 “이는 대법원 판결을 무효화하고 한국 정부가 이 문제를 책임지라는 일본 정부의 요구에서 조금 진전된 수준의 안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이런 방식은 결코 대법원 판결의 이행이 아니며 가해의 역사를 청산하는 게 아니라 외교적 갈등을 만들 여지가 있는 피해자를 청산하기 위한 방안”이라고 꼬집었다.
기억인권재단 설립에 화해치유재단 기금 잔액을 사용하는 건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되살리려는 발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의기억연대 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이나영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문 의장은) 기억인권재단 설립 기금에 화해치유재단 기금 잔여금 60억을 포함시켜 피해자의 의사를 무시하고 안보와 경제라는 현실 논리를 내세우는 커다란 잘못을 반복하고 있다”며 “배상금도 아닌 위로금으로 10억엔으로 만든 화해치유재단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야기했느냐”고 반문했다. 이 교수는 그러면서 “피해자 중심주의를 내세우며 화해치유재단을 해체한 문재인 정부가 다시 잔액을 들고 와 이 재단에 의미를 부여하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최근 한-일 관계가 경색된 가운데 지소미아 연장 문제와 함께 일제하 강제동원 문제의 해결 방법을 놓고 청와대, 외교부, 국회의장 등의 행보가 두드러졌다. 지난해 10월 대법원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정신적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 달리 말해 위자료청구권을 인정했다. 하지만 일본 기업은 판결에 따르지 않고 협의 요청마저 거부해 판결에 대한 강제집행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피해자들은 오랜 법정 투쟁 끝에 권리를 인정받았음에도 한·일 사이의 분주한 움직임을 마음 졸이며 불편하게 지켜봐야 하는 처지다.
이런 상황을 만든 직접적 계기는 대법원 판결이지만 그 판결을 가져온 근본적 원인은 일제의 강제동원이라는 역사적 사실이다. 80년이 다 되도록 상처는 남아 있고 문제는 풀기 어려운 매듭처럼 보인다. 해법은 진실, 정의, 피해 회복(배상), 재발 방지로 정리해볼 수 있다. 그런데 요즘 나오는 해법들에는 이 모두를 아우른 ‘사죄’라는 단어가 들리지 않고 돈 이야기만 무성하다. 그것도 누가 내느냐를 놓고 1+1, 2+1, 2+2에 알파까지 공식도 다양하다. 현실적으로 일본이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할 것을 기대할 수 없다는 인식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벌써부터 많은 우려가 제기되고 있지만 먼저 말하기 껄끄러운 돈 문제부터 따져보고 싶다.
1991년 고 김학순 여사가 ‘위안부’ 피해자로 증언을 한 이래 일본에서 여러 건의 재판이 있었다. 피해자들은 법이 알아듣는 언어는 돈일 것도 같고 하여 사죄 요구와 함께 피해액으로 얼마를 산정해야 할지 고통스러운 선택을 해야만 했다. 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게 생활안정지원자금이 제공될 때도,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위로금이 지급될 때도 마음이 무겁기는 마찬가지였다.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들이 속한 국가가 내는 돈이었기에 배상도 보상도 아닌 위로금이었고 인도적 명분의 지원금이었다. 한편 1995년 일본 정부의 관여 속에 일본 시민들이 내놓은 국민기금은 배상도 보상도 아닌 애매한 이름(償い金)을 가진 또 다른 위로금이었고, 2015년 한·일 정부 간 ‘위안부’ 합의가 내건 일본 정부의 10억엔이라는 출연금 역시 성격이 불투명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가해자인 일본 쪽에서 나온 돈이라면 배상금이나 보상금이어야 할 것인데 역시 법적 책임은 인정하지 않는 가운데 피해자에게 주는 돈이었기에 위로금 차원을 넘지 않는다. 문제를 국제사회나 법정에 제기하지 말라는 속내도 엿보이므로 이들을 무마하기 위한 돈이라고 할 만도 하다. 그런데 2019년인 현재 다시 일본이 책임을 인정하는 것도 아닌데 위자료를 일본 기업만이 아니라 한국 기업과 뜻있는 한국 국민들도 돈을 내어 기금을 만드는 것이 어떠냐는 안이 나오고 있다.
피해자들을 괴롭히는 것 중 하나는 얼마를 받아야 하는 지와, 주면 받아도 괜찮은 지의 문제가 있다. 한국 민법은 불법행위에는 손해배상이 따른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독일 민법은 불법행위가 있으면 원상회복부터 하라고 한다. 국제인권법은 손해배상이 아닌 배상 또는 피해회복을 말하며, 여기에는 원상회복, 금전배상, 사죄,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조치 등이 포함된다.
위자료는 권리로서 당연히 받아내야 할 돈이란 의미를 가지며 금전배상에 속한다. 그런데 판결이 정한 위자료를 판결을 받은 일본 기업 대신 내줄 테니 권리를 포기하라는 식의 논의도 들린다. 개인청구권을 아예 소멸시키면 한·일 문제가 해결되지 않겠냐는 것이다. 논리적으로는 배상의 권리가 먼저 인정돼야 포기할 것도 생긴다. 피해자가 권리를 인정받기 위해 재판을 제기하는 것이라는 사정을 생각해보면 재판할 가능성을 포기하는 것이 되고 위자료와 재판할 권리 사이에는 이제 대가관계가 성립한다. 이렇게 되면 일본이 사죄를 하건 말건 재판을 제기할 일이 없게 되고, 일본이 괴로울 일도 없게 되며, 한-일 관계가 위협받는 일도 없게 된다. 자칫 인권피해의 실상과 역사는 실종되고 마치 피해문제를 제기하는 것 자체가 ‘문제’인 것처럼 뒤집혀 버린다.
일본이 줄지도 모를 돈이 위로금이라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책임 문제는 영원히 괄호 안에 들어가 버린다. 과거 국민기금이나 화해·치유재단의 돈을 거부한 분들도 있었다. 왜 안 받느냐는 압박과 함께 성의를 무시하는 반일민족주의라는 비난마저 있었다. 이쯤되면 타협의 강요라고 할 만하다. 게다가 위로금을 받을 경우 배상을 요구하는 입장에서 거꾸로 돈 준 사람에게 고맙다며 머리를 숙여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만다. 주객이 전도되고 상하관계 또는 위계질서마저 생긴다.
어떤 이름의 돈이 오간다 해도 돈으로 피해자의 상처를 다 치유할 수는 없다. 돈을 아무리 받아도 달래지지 않는 마음이 남아있다. 거북이와 아킬레스의 경주처럼 이 남은 부분은 배상금이라고 해도 따라잡을 수 없다. 가해 책임의 인정과 사과가 피해자들에게는 자기 삶에 대한 의미가 된다. 가해자로선 돈을 주더라도 양보하고 싶지 않은 것이, 자기반성의 전제가 되는 자기부정이다. 과거 잘못을 저지른 자기를 부정하고 그러지 않겠다는 다짐이 드러날 때 상대는 용서와 화해를 생각해보게 된다. 역사와 정의를 부정하면서 흥정하듯 내놓는 사과에는 진정성이 없다. 강제동원 해법 마련을 위해서는 먼저 피해자들의 얼굴을 마주하고, 그들의 어릴 적 삶을 뒤튼 것이 개인이 견뎌야 할 운명이 아니라 국가범죄의 역사였다는 성찰이 전제돼야 할 것이다.
[YTN 라디오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 ■ 방송 : FM 94.5 (18:10~20:00) ■ 방송일 : 2019년 12월 4일 (수요일) ■ 대담 :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친일파 4389인의 기록 “깜짝 놀랄 의외의 인물, 왜?”
◇ 앵커 이동형(이하 이동형)> 박정희 전 대통령, 장면 전 국무총리, 언론인 방응모, 김성수, 장지연. 음악가 안익태, 홍난파.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린 인물들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4000여 명의 친일 행적 인사들을 찾아 인명사전을 만들었습니다. 벌써 10년 전 일이죠. 친일 인사는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 인사를 비롯해 판·검사, 경찰, 언론인, 예술가 등 분야도 다양합니다. 개탄스러운 현실은 이 사전에 이름을 올린 친일 인사 가운데 68명은 여전히 국립묘지에 묻혀 있다는 것입니다. 갈 길이 먼 친일 청산과 친일인명사전 발간 10년의 성과,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 기획실장, 나오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이하 방학진)> 네, 반갑습니다. 방학진입니다.
◇ 이동형> 친일인명사전, 10년 됐다고 하는데요. 시작은 꽤 오래 전부터 기획됐죠?
◆ 방학진> 그렇습니다. 시작은 1991년도 민족문제연구소가 출범하면서부터 저희의 일성이 친일인명사전을 만들겠다고 하는 것이었으니까 그것으로 따지면 18년 만에 인명사전이 발간된 거죠.
◇ 이동형> 지금 보이는 라디오에 오신 분들은 친일인명사전을 볼 수 있는데, 총 세 권으로 구성됐습니다. 총 세 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정희님께서 “친일인명사전, 가나다순입니까? 아니면 제일 나쁜 사람순입니까?” 이렇게 물으셨는데요.
◆ 방학진> 가나다순입니다. 아직 사전을 안 보셨군요.
◇ 이동형> 가나다순으로 세 권이 이렇게, 굉장히 방대한 양입니다. 이게 결국은 친일 행적이 어떤 것이냐, 그리고 그 자료는, 증거자료가 있어야 하니까요. 그런 것들을 나열한 것이죠?
◆ 방학진> 네, 보시면 인명 가장 아래 출전이 나오거든요. 이것은 평전이 아니라 사전이기 때문에 개인의 주관이 배제된, 아주 드라이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출전히 핵심이고, 그 출전이 없었다고 하면 저희가 줄소송을 당했겠죠.
◇ 이동형> 마곡주님께서 “지금 구입 가능합니까?”
◆ 방학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 이동형> 지금도 구입이 당연히 가능하고요. 이 책, 판매는 많이 됐습니까?
◆ 방학진> 영업비밀인데요. 공공도서관이나 대학도서관에는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요. 그다음에 뜻 있는 교육감님들이 학교 예산으로, 교육청 예산으로 보급한 곳은 있고. 또 보급 안 된 교육청도 꽤 있습니다.
◇ 이동형> 처음에는 이거 만든다고 했을 때 일반 대중들이 다 박수를 쳤는데, 발간 과정에 우여곡절이 많았다? 왜 그랬을까요?
◆ 방학진> 저희 민족문제연구소가 예나 지금이나 학술단체인데, 그래서 학술면에 언론에서 많이 나와야 하는데, 주로 정치면, 사회면에 많이 나옵니다. 연구영역을 자꾸 정치화 만들려고 하는 세력 때문에 민족연구문제소의 활동들을 정치 편향적이라고 하는 그런 덧씌우기가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죠.
◇ 이동형> 소위 말하는 좌파 세력들이 우파를 공격하려고 만든 거 아니냐, 이런 논란이죠?
◆ 방학진> 그렇습니다.
◇ 이동형> 이거 처음에 국회 예산으로 만들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 방학진> 처음에는 시민들 모금으로 하려고 하다가 그다음에 저희가 할 수 없는 영역들이 있었습니다. 인명사전을 만들기 위한 기초 예산들, 과거 신문, 잡지들을 사야 하고, 그런 것들을 데이터베이스를 만드는 그런 것들은 저희만이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대한민국의 근현대 연구자들에게 활용될 수 있는 거거든요. 그런 기초 조사사업으로 저희가 예산을 신청했는데, 그게 전액 삭감된 경우가 있었죠.5억 원 정도 예산을 상정했는데, 전액 삭감해서 한 푼도 못 받았는데요. 그것을 안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금을 해주셨죠. 그것보다 더 많은 예산을 모금해주셨죠.
◇ 이동형> 예산 삭감해서 0원으로 만들어서 그것에 대해 분노한 시민들이 그러면 우리가 직접 모금을 해주겠다.
◆ 방학진> 국민이 만들자.
◇ 이동형>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등재된 인물이 4000여 명.
◆ 방학진> 4389명.
◇ 이동형> 가장 논란이 된 인물은 역시 박정희 전 대통령입니까?
◆ 방학진> 그렇습니다. 저희야 박정희 전 대통령은 4389명 중 한 명이고, 굳이 등급을 따지자면 특 A급은 아니라고 보는데, 오히려 박정희 대통령을 빼려고 하는 정치인들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중요한 인물로 만들어버린 거죠.
◇ 이동형> 박 전 대통령은 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겁니까?
◆ 방학진> 친일인명사전은 각 분야별로 기준이 다르지만, 가장 관통하는 기준은 뭐냐면 친일의 적극성, 자발성, 다목성이 되겠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23살 문경초등학교 교사 시절에 일본 만주육군사관학교를 지원하죠. 혈서 지원. 이미 교사이기 때문에 군대를 안 가도 되는 면제사유이고, 이미 19이 넘었기 때문에 군대를 갈 수가 없는데, 혈서를 두 번이나 써서 일본의 사관학교에 입대한 그런 자발성, 적극성이 있기 때문에 등재되었습니다.
◇ 이동형> 기준 계급이 있지 않습니까?
◆ 방학진> 기본적으로 소위, 소위라고 하는 것은 적극적으로 본인이 군대에 입대하려고 하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계급이기 때문에. 지금 대한민국 소위와 비교하면 안 됩니다만, 엄청나게 높은 직위라고 할 수 있고요. 박정희 대통령이 혈서를 써서 군대 가겠다고 하는 시기는 1939년이기 때문에 중일전쟁 이후에 조선뿐만 아니라 중국 전 영토가 전쟁통에 있는 상황에서 굳이 군대를 가겠다고 하는 그런 자발성, 적극성이 반영돼서 인명사전에 등재된 것이죠.
◇ 이동형> 그 혈서 논란이 있지 않았습니까? 민족문제연구소에서 혈서를 주장했는데 가짜다, 이렇게.
◆ 방학진> 조작이다, 라고 해서 많은 보수적인, 수구적인 인사들이 말씀을 하셨지만, 결국은 판결을 통해서 가짜 논란은 이미 종식됐죠.
◇ 이동형> 가짜가 아니고 진짜로 있었다. 관련 기사도 나왔고요.
◆ 방학진> 네, 그렇습니다.
◇ 이동형> 또 논란이 된 사람은 백선엽 장군인 것 같아요.
◆ 방학진> 지금 가장 핫한 인물이고, 최근에 주한미군 사령관이 백선엽 전 장군을 찾아가서 생일 축하, 셀카도 찍고 한 모양입니다. 그것에 대해서 현재 광복회장님이 분개하셨는데, 살아있는 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 중에 가장 고령이면서 가장 유명한 분이 백선엽이죠.
◇ 이동형> 백선엽 장군 같은 경우에는 만주군 중위. 거기다가 간도 특설대 복무했기 때문에.
◆ 방학진> 간도 특설대는 쉽게 말하면 이이제이죠. 조선인을 통해서 조선인 독립군을 때려잡아야 한다고 하는 특수부대이고요. 아주 잔악하고, 행위가 악질적이기 때문에 그 당시 조선인들뿐만 아니라 중국인들도 대단히 두려움에 떨었던 부대죠.
◇ 이동형> 이 간도 특설대가 일제가 패망하기 전까지 108차례 작전을 벌여서 항일 무장세력과 민간인을 172명 이상 살해했으며 많은 사람을 체포하거나 강간, 약탈, 고문했다. 그리고 백선엽 장군 본인도 자신의 자서전에서 이와 같은 과거에 대해서 스스로 쓴 글이 있지 않습니까?
◆ 방학진> 있었고요. 어쩔 수 없다고 표현했습니다.
◇ 이동형> 이 부분도 논란이 될 수 없다고 보시는 거고. 의외의 친일파도 있습니까?
◆ 방학진> 개인적으로는 그런 게 있었을 것 같아요. 친일파는 DNA 자체가 친일파의 DNA가 있을 것이다, 라고 많은 분들이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고요. 어떤 인물은 독립운동가의 동생이 친일파인 경우, 또는 그 반대인 경우. 또 아버지는 독립운동가인데, 아들이 친일파인 경우, 또 그 반대인 경우. 보니까 역시 친일의 문제는 개인의 판단의 문제이고, 개인의 사회적 책임이 가장 중요하지 않은가 생각이 듭니다.
◇ 이동형> 장지연 같은 경우에는 우리 학교 다닐 때 시일야방성대곡, 독립운동가로 배웠는데요.
◆ 방학진> 그렇습니다. 장지연 같은 경우에는 많은 분들이 충격을 받았죠. 독립운동가로 알려져 있고, 장지연 이름을 딴 언론상도 오랫동안 있었는데요. 그분이 시일야방성대곡을 발표한 이후에 변절하게 되고, 그 변절의 증거가 너무 명확하기 때문에 인명사전에 등재되어 있고요. 그 후손들이 가처분 신청을 했어요, 법원에. 그렇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수록이 되어 있는 인물입니다.
◇ 이동형> 성훈님께서 “혹시 사전에 후손이 누군지도 나오나요?”
◆ 방학진> 그런 것은 저희가 가장 경계해야 할, 아까 말씀드렸듯이 어떤 인물이 독립운동가이지만, 그 독립운동가의 동생은 또 친일파인 경우도 있고요. 그 반대의 경우도 있기 때문에 친일의 문제, 역사의 문제를 가족의 문제, 혈통의 문제로 연관시키는 것은 오히려 피해야 할, 연좌제를 범할 수 있는 우려가 있습니다.
◇ 이동형> 과거에 소위 말하는 빨갱이 활동을 했다. 그러면 그 자식도 연좌제로.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이죠.
◆ 방학진> 그것을 피하자고 하는 것이 저희의 목적이니까요.
◇ 이동형>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는 후손이 누구인지 나오지 않는다. 아까 말한 것처럼 굉장히 드라이하게 적혀 있는 것이죠.
◆ 방학진> 그렇습니다.
◇ 이동형> 친일활동을 어떻게 했고, 나중에 해방 후에 활동은 어떻게 했고, 이 정도로 나와 있는 겁니다. 정치인, 언론인, 예술인. 법조인도 상당 부분 들어갔습니다.
◆ 방학진> 네. 전체 법조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많지 않지만 그 인명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대단히 한국 사회에서 많은 족적을, 어떻게 보면 악명을 남긴 분들인데요. 대표적으로 민복기 대법관하고, 홍진기 장관을 꼽을 수 있는데. 민복기는 아시겠지만 일제 때 판사였고, 해방 이후에 인혁당 사건의 장본인 아니겠습니까? 대법원 판결을 내릴 때 대법원장이었고요. 홍진기 씨는 4.19 당시에 내무부 장관으로서 3.15 부정선거에 앞장 선 분이고, 그로 인해서 혁명 재판소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분인데, 복권이 돼서 나중에 중앙방송, 지금 JTBC, 중앙일보, 이것을 설립하고, 그 공로인지 모르겠지만 죽기 전에 국가에서 금관문화훈장까지 받았습니다.
◇ 이동형>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친일파 가운데 국립묘지에 안장된 인물들도, 아까 제가 68명이라고 이야기했는데요. 맞습니까?
◆ 방학진> 그동안 저희가 63명설, 65명설이 있었는데요. 이번에 저희가 인명사전 발간 10주년을 맞아서 다시 한 번 정밀하게 조사를 해봤더니 68명이었습니다. 서울에 35명, 대전에 33명인데요. 그중에서 특이한 것이 서울에 장군 제2묘역에 가면 6명의 장군들이 안장되어 있는데, 그 6명 중에서 3명이, 신태영, 이응준, 임충식, 3명이 친일인명사전에 임명된 분입니다. 이 문제에 관심이 있는 국민들에게 동작동 국립묘지, 특히 장군 묘지에 이 묘역을 꼭 가보시라고 전해주고 싶어요. 저도 가보고 깜짝 놀랐는데, 가장 좋은 명당자리이고, 다른 장군 묘역은 수백 명의 장군이 안장되어 있는데, 여기는 딱 여섯 분만 안장되어 있습니다. 그분들 위해서 내려다 본 위치가 바로 임정요인 묘역이에요. 바로 임정요인 묘역을 발 아래로 내려 보고 있는 그곳에 있는 것이죠.
◇ 이동형> 지금 장군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김창룡, 김백일 같은 경우에는 친일 행적은 당연한 것이고, 훗날에는 독재에 부역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이거 어떻게 우리 아이들에게 역사를 가르쳐야 합니까?
◆ 방학진> 이런 현실을 빨리 우리가 개선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는 법 개정을 할 수밖에 없는데요. 현재 이 68명의 친일파들을 국립묘지에서 이장하려면 유가족의 동의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이제 법 개정을 통해서 유가족 동의 없이 직권으로, 정부가 스스로 직권으로 이장하는 그런 법이 매 국회 때마다 발의는 됩니다만, 항상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그다음에 특정 정치 세력의 반대 때문에 이 법 개정이 여전히 안 되고 있습니다.
◇ 이동형> 우리가 지난번에 간첩조작사건의 피해자 분들을 모시고 방송도 했었는데, 그분들에게 간첩이 아닌 사람을 간첩으로 몰아넣고 고문을 자행하고, 죄 없는 사람을 사형시키고, 또 감옥에 보내고, 그 사람들이 나중에 훈장 받았거든요, 다들?
◆ 방학진> 제가 조금 전에 홍진기 씨에 대해서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홍진기는 일제 때 판사로서 인명사전에 등재되어 있고, 3.15 부정선거 당시에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는데, 언론문화창달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아마 중앙일보를 만들고, TBC를 만들었다고 하는 그런 명분으로 국가로부터 금관문화훈장을 받습니다. 그런 훈장을 취소하는 문제도 많은 국민들이, 저희가 이번에 여론조사를 했거든요. 10주년을 맞아서 많은 국민들이 그 지점에서 많이 분노하고 계셨습니다.
◇ 이동형> 일제에 부역하고, 나라를 팔아먹은 사람들에게 훈장을 줄 수 있느냐.
◆ 방학진> 그렇습니다.
◇ 이동형> 또 민주주의를 반대하고, 독재에 부역한 사람에게 훈장을 줄 수가 있느냐. 그런데 훈장은 추서가 되어 있고, 그것을 박탈하는 것은 힘들고, 이런 차원이네요?
◆ 방학진> 훈장을 준다는 것은 그 사람의 생애를 국민들에게 모범으로 삼아서 배우라고 하는 것인데, 정말 그분들이, 친일파들이 정말 배울 점이 있는 것인지. 정말 모순적인 행태라고 할 수 있는 거죠.
◇ 이동형> 우리가 사과하지 않은 일본을 상대로 해서 계속해서 주장하는 게 독일한테 배워라,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도 독일한테 배울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반나치법, 혹은 독일 같은 경우는 나치를 옹호하거나 이러면 정말 큰일 나잖아요?
◆ 방학진> 네, 과거에는 김완섭이라든지, ‘친일파를 위한 변명,’ 그다음에 세종대학교 박유하 교수, 이런 분들이 친일을 옹호하고, 위안부 문제에 대해 폄훼했을 때는 그냥 학계의 논쟁으로 이길 수 있다고 했는데, 지금은 그 단계를 넘어섰거든요. 우리가 ‘반종족주의’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분들이 더 이상은 학계 토론회에서 하는 문제가 아니고, 형법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고. 이번에 저희가 진행한 여론조사에서도 국민의 70%가 이분들은 형사처벌을 해야 한다, 라는 것이고. 독일의 경우에는 독일 형법 86조와 86조 A항이 바로 그런 해당 조항이 되거든요. 나치를 찬양한다든지, 옹호한다든지 하는 것은 가차 없이.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고 바로 형사처벌의 대상이 됩니다. 이런 법을 만들자고 하는 것을 광복회가 열심히 추진하고 있는데요. 지금 김원웅 광복회장께서 친일 미화 금지법을 내년 총선 때 주요한 화두로 만들어야겠다, 이런 입장을 강하게 가지고 계십니다.
◇ 이동형> 친일 잔재도 여전히 여러 곳에 남아 있습니다.
◆ 방학진> 친일 잔재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보이는 친일 잔재와 보이지 않는 친일 잔재가 있을 텐데요. 일단 보이는 친일 잔재부터 우리가 솎아낼 필요가 있는데, 그러려면 전수조사가 필요하거든요. 전국적으로 민족문제연구소가 다 조사할 수 없기 때문에 해당 지자체, 특히 광주광역시가 가장 모범이고요. 그다음에 경기도, 충남, 이런 곳이 선도적으로 그 지역 내에 있는 보이는 친일 잔재를 조사하려고 하고 있고, 거기에 민족문제연구소가 열심히 돕고 있습니다.
◇ 이동형> 안익태 작곡가의 애국가는 계속 불러야 하느냐, 이런 논란도 있습니다만, 보수 진영에서 이거는 강력 반발하고 있는 부분인 것 같긴 합니다.
◆ 방학진> 이건 민감한 부분이기는 한데요. 그렇지만 안익태의 애국가 문제는 오랫동안 표절 시비, 또는 작곡가 안익태의 친나치 시비가 오랫동안 돼왔기 때문에 이것을 부른다, 부르지 말자고 하는 결론부터 내지 말고, 안익태의 친일 행적에 대해서, 친나치 행적에 대해서 공론회장을 만들어서 계속 토론하는 게 중요하겠다. 여기서 멀지 않은 숭실대학교에 가면 음악대학교 이름이 안익태 기념관이거든요. 그러면 안익태 기념관이라고 하는 음악대학이 있는 숭실대학교 그 기념관 내에서 안익태의 이런 문제, 애국가, 논란이 되는 문제를 공동으로 연구하고, 토론하고, 우리가 정치 영역이 아닌 순수한 학술의 영역에서 토론이 지속적으로 됐으면 좋겠습니다.
◇ 이동형> 네, 학술 영역에서의 토론이 중요한 것이죠. 아까 훈장 이야기도 했습니다만, 이종찬. 일본군 공병소자로 근무했는데, 일본군 최고 영예 금치훈장을 받았습니다. 이종찬이 유일하게 조선인으로서 받은 일본군 최고 훈장인데요. 이 사람도 지금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있단 말이죠.
◆ 방학진> 네, 국립묘지에 되어 있고요. 지금 아까 말씀드렸던 장군 2묘역, 6명 중 3명은 제가 설명을 드리면 이응준, 그다음에 신태영, 임충식인데요. 임충식은 간도 특설 때 멤버이고, 그다음에 해방 이후에 국방부 장관을 역임했고요. 이응준의 경우에는 초대 육군 참모총장으로서 육군을 세팅한 사람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분이 무슨 말을 하냐면 이런 말을 합니다. 조선 청년에게 가장 큰 꿈이 있다면 천황폐화를 위해 죽는 것이다, 이런 발언을 하고요. 그다음에 신태영의 경우에는 군인으로 첫 번째 목표는 바로 야스쿠니 신사에 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일본 군인으로서 죽는다고 하는 것은 죽는 것이 아니라 야스쿠니 신사의 신으로 부활하는 것이다, 라고 하기 때문에 그런 죽음을 선동했던 그런 분들이 장군 2묘역에 3명이나 안장되어 있는데, 가서 비문을 보면 더군다나 기가 차는데요. 애국 일념으로 일평생을 사셨다, 이런 식의 그런 비문이 여전히 쓰여 있죠.
◇ 이동형> 간도 특설대, 또 만주군에 복무했던, 일본 육사에 복무했던, 이런 사람들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5.16 쿠데타에 가담하면서 나중에는 다 국회의원도 하고, 국가재건최고회의, 또 장군도 하고요. 천수를 누리면서 훈장도 타고, 이러면서 살았단 말이죠.
◆ 방학진> 그렇습니다. 내년이 한국광복군 창설 80주년입니다. 광복군 총사령관인 지청천 장군이 바로 장군 2묘역에 있는 이응준, 임충식, 신태영의 발아래 묻혀 계세요.
◇ 이동형> 그래요. 그런 게 참 안타깝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텐데요. 그런데 이게 해방 후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우리가 문제제기를 했고, 논쟁이 됐고, 논란이 됐습니다만, 여전히 바로 잡아지지 않는다는 게 안타깝습니다.
◆ 방학진> 그렇지만 사실 저희가 이번에 여론조사를 하면서 많이 느꼈던 것은 많은 국민들이 여전히 친일 문제가 청산되지 않았다고 하는 것, 그다음에 친일 문제가 단순히 사회적 논란을 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통합의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라고 하는 것이 70% 가까이 답이 나왔기 때문에요. 많은 국민들은 그 해답을 이미 알고 있다. 이렇게 기대해보고 있습니다.
◇ 이동형> 그리고 친일 논란이 있었던 인물들은 어쨌든 대부분 지금 사망했기 때문에 우리가 그 사람들을 다시 잡아다가 처벌을 하자, 이런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런 것을 기록으로라도 남겨야 하지 않겠느냐. 그래야 후대에 떳떳한 선대가 될 수 있으니까요. 그 문제이기 때문에 이것은 이념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보입니다. 알겠습니다. 오늘 방학진 실장하고 이야기는 여기까지 들을게요. 수고하셨습니다.
◆ 방학진> 네, 고맙습니다.
* 인터뷰 중 언급된 여론조사는 민족문제연구소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11월 1일~4일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1천 명을 대상으로 무작위 추출 웹조사를 통해 설문조사한 결과입니다. 응답률은 12.8%, 95% 신뢰수준 표본오차 ±3.1%p였습니다.
일 사과 없이 위로금만…소 취하 조건 ‘승소 예상 피해지’ 지급 기준도 모호 피해자들 “졸속 입법 말라” 반발
대전 지역 시민단체가 9일 오전 대전시 서구 둔산동 강제노역 노동자상 앞에서 ‘문희상 안’ 즉각 철회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희상 국회의장이 한·일 기업 기부금과 국민들의 자발적 성금으로 재단을 만들어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위자료(위로금)를 지급하는 이른바 ‘문희상안’을 이번주 발의할 예정이다. 법원에서 승소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관련 시민사회단체들의 반발에도, 23~24일 한·중·일 정상회의 기간 개최를 조율 중인 한-일 정상회담에 맞춰 밀어붙이는 모양새다. ‘문희상안’은 일본의 사과와 책임이 빠진 가운데 피해자들이 소송을 포기해야 위자료(위로금)를 받을 수 있는 구조여서, 20년의 법적 투쟁의 결실인 한국 대법원 판결을 무력화할 것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피해자 22만여명 중 ‘소송 관련’ 일부만 지원을 받을 수 있어 형평성 논란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문 의장이 법안 발의를 서두르는 것은 한-일 정상회담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일본이 대한국 수출규제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에 나서는 것을 조건으로 지난달 22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가 연기되었지만, 양국 갈등의 핵심 쟁점인 ‘강제동원’이 해결돼야 한-일 관계가 전환점을 맞을 수 있다는 판단에 근거한 것이다. 국회의장실 관계자는 “한·일 정상이 논의할 때 ‘문희상안’이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며 “일본의 사죄를 명문화한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재확인하면서 양국이 화해의 계기를 만드는 ‘문재인-아베’ 선언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일 관계가 개선되면 양국 기업 기부금, 국민 성금도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 의장은 강제동원과 관련해 두개의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 핵심적으로 추진하는 ‘기억·화해·미래재단법’(재단법) 제정안과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강제동원 특별법) 개정안이다. 애초 강제동원 특별법 개정안 하나로 ‘문희상안’을 추진하려고 했으나 ‘소송 피해자’에 맞춰 아예 새로운 법을 만들기로 했다.
지원 대상은 대법원 판결에 따라 이미 집행력이 생긴 국외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재판에서 승소가 예상되는 피해자와 유족들이다. 현재 소송에 나선 피해자들은 1천여명 정도인데 이 가운데 700~800여명의 소송은 시작조차 되지 않았다. 의장실 관계자는 “소송 중이거나 앞으로 소송을 준비하는 피해자 모두 대상이다. 소송에 들어간 피해자는 소송을 포기하고 신청하면 된다”며 “재단에서 심사를 거쳐 위자료를 지급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재판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비용 문제도 있어 ‘소송 포기’를 놓고 피해자들 사이에서 혼란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또 ‘문희상안’에 동의하지 않는 피해자들이 소송을 유지할 경우 일본 기업 현금화 문제 등은 여전히 남게 돼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위자료 심사와 지급을 놓고도 형평성 논란이 예상된다. 미쓰비시중공업 소송 등을 대리하고 있는 이상갑 변호사는 “이미 법에 따라 정부로부터 피해자로 인정받았는데, 또다시 심사를 하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특히 일부 소송 관련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지원하겠다는 것은 평등권 침해”라고 비판했다. 우리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강제동원 피해자만 21만8639명이다. 노무자가 14만8961명, 군인 3만2857명, 군무원 3만6702명, 위안부 등 기타가 119명이다. ‘승소가 예상되는 피해자’ 등 지급 기준도 애매하다. 정혜경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연구위원은 “그동안 지원이 미비해 피해자들 사이에서 위자료는 굉장히 예민한 문제다. 모호한 기준으로 선별해 지원할 경우 새로운 법적 분쟁이 생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재단을 놓고 ‘세금 낭비’란 비판도 피해 가기 힘들다. 현재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지원재단’이 있는데, ‘문희상안’이 통과되면 별도로 ‘기억·화해·미래재단’이 생긴다. 강제동원 관련 재단이 두 개가 되는 셈이다. 의장실 관계자는 “위자료 지급 등이 있어 당분간 별도로 운영할 수밖에 없다. 나중엔 어떻게 해야할지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 의장은 재단법과 함께 강제동원 특별법 개정안도 준비 중이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강제동원 법안을 병합해 개정안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군인·군무원 지원과 2015년 없어진 강제동원 조사위원회를 다시 만드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 조직을 새롭게 만들어야 하고, 군인·군속 지원에 상당한 재정이 들어가야 하는 만큼, 국회 통과 가능성이 불투명해 사실상 ‘구색맞추기’라는 지적이다.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은 “강제동원 문제는 졸속으로 처리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라며 “지금이라도 입법을 중단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을 거쳐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지난달 21일, 시민단체가 제작한 역사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에 2013년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가 내렸던 법정제재는 위법하다고 최종 판결했습니다. 이번 판결은 현행 방송 공정성 심의제도를 개혁할 필요성과 더불어 ‘표현의 자유’라는 가치를 재정립할 계기가 마련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대법원은 현행 심의제도가 정치 권력으로부터 독립성을 확보하지 못했으며 급변한 미디어 환경을 반영하지 못한 공정성 조항으로 방송의 실질적인 균형성을 판단하지 못할 것이라 우려했습니다. 그러한 제도 때문에 2013년, <백년전쟁>에 부당한 제재가 결정됐다는 겁니다. 대법관 단 1명 차이로 판결이 결정됐다는 점에서 그러한 쟁점이 현재도 치열한 토론의 대상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언론 자유의 또 다른 당사자인 조선일본는 그러한 의미와 가치에 관심이 없습니다. 여전히 반공 군사독재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반응을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선일보는 ‘백년전쟁’이 이승만‧박정희를 뭐라고 욕했는지에 분노하며 비난을 퍼붓기에 바쁜 모양새입니다.
조선일보는 판결 직후인 22일부터 29일까지 7건의 보도를 냈는데(지면 기준) 모두 대법원 판결을 ‘좌파 사관’이라고 비난하는 내용입니다. <이승만·박정희 비방다큐 ‘백년전쟁’…김명수 사법부의 면죄부, 1·2심의 제재 판결 대법원이 뒤집었다>, <정권 정치 기구 된 대법원과 교육청>, <이승만은 악질 친일파, 박정희는 스네이크박 친일인명사전 만든 민족문제연구소 제작>, <백년전쟁 문제없다 대법관 7명 중 6명 문정부서 임명>(11월22일), <만물상-백년전쟁과 대법원>(11월23일), <백년전쟁 판결, 독이 든 사관을 대법원이 인정해준 것>(11월26일), <고 김일영 교수, 한국 현대사를 건국과 부국의 역사로 규명해 좌파 사관 극복>(11월28일) 등 제목만 봐도 대법원이 문재인 정권의 기구로 전략했다거나 잘못된 좌파 사관을 인정했다는 적나라한 공세가 나타납니다.
이승만‧박정희에 대한 조선일보의 순애보가 두 눈을 가렸다.
재판의 발단이 된 2013년 방통심의위 심의 당시 새누리당 측 위원들은 이승만‧박정희 두 역사적 인물에 대한 다양한 평가, <백년전쟁>이 제시한 여러 사료 등 근거와 관련 없이 정치적 비난을 퍼부은 바 있습니다. 조선일보는 거기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조선일보 <‘백년전쟁’ 판결, 독이 든 史觀을 대법원이 인정해준 것>(11월26일)은 박근혜 정부 당시 이른바 ‘뉴라이트 학자’로서 KBS 이사장까지 역임했던 이인호 씨를 인터뷰했는데 이 씨의 주장을 제목으로 인용하면서 따옴표 처리도 하지 않았습니다. 대법원 판결이 “독이 든 사관”이라는 한 개인의 판단을 마치 사실처럼 적시한 셈입니다. <만물상-백년전쟁과 대법원>(11월23일)은 “좌파 단체가 만든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은 오로지 이승만과 박정희 전 대통령을 욕보이고 조롱하려고 제작한 영상물”, “‘백년전쟁’이 대한민국 역사를 능멸하는 것은 대한민국이 그들의 조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백년전쟁’은 대한민국에 대한 선전포고” 등 원색적인 비난, 케케묵은 색깔론으로 일관했습니다. <‘백년전쟁 판결’ 뒤집은 대법관 7명 중 6명, 文정부서 임명>(11월21일)의 경우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진보로 기운 대법원의 성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판결이라는 평가”를 내세워 대법원 역시 이념으로 재단했는데, 어째서 ‘진보 문재인 정부’가 임명한 안철상‧이동원 대법관은 ‘백년전쟁’ 제재가 정당하다며 소수의견으로 갔는지, 어째서 ‘보수 박근혜 정부’가 임명한 김재형 대법관은 제재가 부당하다고 강하게 비판했는지는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 지난 11월23일 조선일보 오피니언면에 실린 ‘만물상-백년전쟁과 대법원’
대통령 바뀌어서 나라가 흔들린다? 부실한 심의로 TV조선만 구제됐다
가장 황당한 보도는 인터넷판 보도인 조선일보 <김광일의 입-박근혜·문재인, 둘은 전쟁 중이다>(11월22일)입니다. 얼마 전까지 TV조선의 <신통방통>을 진행했던 김광일 논설위원은 “대통령이 바뀌면서 소득주도성장, 최저임금 급격 인상, 주52시간제 강행, 탈원전 정책, 굴욕적 친북 안보정책, 이런 것들 때문에 고통 받고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더 중대하게, 대한민국과 국민들의 정체성을 뿌리부터 뒤흔들 수 있는 전·현직 대통령의 전쟁이 대법원을 무대로 벌어지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다양한 평가와 표현의 자유를 논한 대법 판결에 경제정책들을 언급하는 대목부터 이미 합리성을 잃었습니다. 전현직 대통령이 대법원에서 전쟁을 벌인다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대한민국 정체성을 뿌리부터 뒤흔든다’는 것으로 묘사한 일장연설은 실소를 머금게 합니다. 삼권분립이 확립된 민주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법원이 대통령들의 전쟁터가 될 수 있는지, 아무런 설명도 없습니다.
조선일보가 은근슬쩍 누락한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좌파 사관’을 용인하도록 만들어 전직 대통령과 법원에서 싸우고 있는 바로 그 대통령의 정부 하에서도 방송 심의제도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언론이 조선일보의 종편 TV조선이라는 점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이번 대법 판결이 명백히 확인한 현행 심의제도의 불공정성을 반증합니다. 김광일 씨가 진행했던 TV조선 <신통방통>은 지난해 11월 “오산 미군기지 앞 아파트에 고정간첩이 있다. 근거는 없다”는 초유의 시사 대담을 내놓고도 방통심의위로부터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습니다. 근거를 제시했던 <백년전쟁>에 ‘관계자 징계 및 경고’라는 중징계를 내렸던 방통심의위가 TV조선의 근거도 없는 거짓말에는 면죄부를 준 셈입니다. 3차 남북정상회담이 있었던 지난해 9월 TV조선 <보도본부 핫라인>은 “힘이 없고 돈이 없어서 미국의 도움, 친일파 청산을 못 하고 대한민국을 세웠던 이승만 대통령”, “김정은을 두고는 후한 평가를 하면서 이승만·박정희에 대해서는 왜 이렇게 박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문재인 대통령을 비난했는데, 바로 그 문재인 정부의 방통심의위는 아무런 강제력이 없는 ‘행정지도’(권고)만 의결했습니다. 대통령이 바뀌어서 대한민국 정체성이 흔들린다는 조선일보 주장대로라면 TV조선은 <백년전쟁>이 받았던 중징계보다 훨씬 큰 대가를 치렀어야 합니다.
독재 시절이 그리운 조선일보, 현실로 돌아와야
사안의 핵심, 사태의 본질을 은폐하고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관계와 반공주의 이념에 매몰되면 이렇게 설득력이 없고 구호만 남는 기사가 나오는 겁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을 ‘대통령이 바뀌어서 좌파 사관이 법적으로 인정됐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조선일보가 꿈에서나 그리는 이승만‧박정희 시대로 돌아가고 싶다는 고백에 가깝습니다. 여전히 그러한 이념적 이분법, 색깔론, 반공주의에 머물러있기 때문에 늘 조선일보가 언론개혁 대상으로 지목되는 건 아닐까요? 대법 판결로 우리가 논의를 시작해야하는 대상은 시민 누구나 만들 수 있는 미디어 콘텐츠의 합리성‧객관성을 누가 판단할 것인가, 그 심의기관의 정치적 독립성은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근거 없는 날조와 특정집단에 대한 혐오는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 등 미디어 영역 전반에 걸친 규제체계에 대한 고민입니다. 대법관 딱 1명 차이로 대법원이 확정한 것은 합리성을 갖춘 시민의 콘텐츠를 정치적으로 오염된 국가기관이 자의적인 공정성 기준으로 심의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입니다. 이 근소한 차이로 하여금 우리 사회 공론장의 민주성을 확장하는 일이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방송통신위원회 등 유관기관과 시민사회, 언론계가 모두 나서서 공식적 논의기구 출범 등 실질적 행동에 나서야 할 때입니다. 조선일보도 그 일원으로서 함께 하고 싶다면 늦지 않게 반공주의의 그늘에서 벗어나야 할 것입니다.
시즌4는 기존처럼 친일파를 소환하여 그들이 식민지 시기에 무엇을 했는지 이야기합니다. 여기에 이번시즌부터 인물을 확장하여 친일파 뿐 아니라 식민지를 살아간 다양한 사람들을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좀 더 입체적으로 식민지 시기를 다룰 예정이니 많은 관심과 지속적인 청취 부탁드립니다.
전북 전주시가 16일 역대 전주시장 가운데 초대 시장 임병억과 3대 시장 임춘성의 홈페이지 사진을 삭제하고 회의실 액자를 치웠다.
친일반민족행위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됐다는 이유에서다.
초대 전주시장 임병억초대 시장 임병억은 정읍군속과 무주군수로 재직 중이던 1937년 7월부터 1940년 4월까지 △중일전쟁과 관련한 영화회, 강연회, 좌담회를 통한 국방사상 보급 △군마(軍馬) 징발 △국방헌금과 애국헌납자금 모금 △출정군인 환송연 △징수품 공출 △국채소화와 저축 장려 등 전시 업무를 적극 수행한 공로가 인정돼 지나사변(중일전쟁) 공로자 공적조서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해방 후 1945년 12월부터 1948년 12월까지 전주부윤을 지냈다.
3대 시장 임춘성은 1940년 장수군수 재임 시절 중일전쟁에 참전한 일본군을 위해 △국방헌금 모금 △출정군인 환송연 △귀환군인 위안회 개최 등 전시 업무를 도맡은 공로로 역시 지나사변(중일전쟁) 공로자 공적조서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해방 후에는 진안군수, 남원군수, 전주시장 등을 거쳐 1960년 6월부터 10월까지 전북도지사(11대)를 지냈다.
전주시는 홈페이지 사진과 회의실 액자를 제거한 후 그 자리에 ‘친일반민족행위자'(친일인명사전 등재)라는 글을 적었다.
이에 앞서 전북도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잔재 청산 취지에 공감한다며 11대 도지사 임춘성과 12대 도지사 이용택 등 2명에 대해 같은 조치를 취했다.
시즌4는 기존처럼 친일파를 소환하여 그들이 식민지 시기에 무엇을 했는지 이야기합니다. 여기에 이번시즌부터 인물을 확장하여 친일파 뿐 아니라 식민지를 살아간 다양한 사람들을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좀 더 입체적으로 식민지 시기를 다룰 예정이니 많은 관심과 지속적인 청취 부탁드립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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