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ㆍ8 세계여성의날을 기념해 9일 오후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평화나비네트워크 소속 회원들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이용수할머니 사진손피켓을 들고 있다. 이들은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사죄할 것과 한일 합의를 파기할 것을 촉구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박근혜 정부 시절 ‘한‧일 위안부 합의’와 관련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패소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0부(부장판사 문혜정)는 강일출 할머니 등 12명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기한 12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 선고기일에서 기각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위안부 합의에 대한 법적 책임 인정이나 10억엔의 성격이 불분명한 점 등 부족한 게 많은 건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그러나 그런 합의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내용, 합의로 인해 원고들 개인의 일본 손해배상 청구권이 소멸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외교적 행위는 국가 간 관계에서 폭넓은 재량권이 허용되는 영역인 점을 고려해 피고가 원고들 주장처럼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고 볼 수 없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라고 덧붙였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12월28일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은 서울 세종로 외교부 청사에서 한일 외교장관회담을 열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타결한 바 있다.
당시 정부는 일본 측의 피해자 지원금 10억엔(한화 약 111억원) 출연을 골자로 하는 합의에 대해 “이 문제(위안부)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한다”고 밝혀 논란이 된 바 있다.
강 할머니 등은 2016년 8월 “일본 정부가 법적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상태에서 국가가 피해자들 의견도 묻지 않은 채 위안부 합의를 해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당했다”며 국가의 책임을 묻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일본과 더 이상 법적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해 합의해 배상청구권 및 재산권도 침해당했다”고 주장했다.
피해 할머니 12명, 정부 상대 12억원 손해배상 청구 소송
“정부가 불법 행위 저질렀다고 볼 수 없다”
▲ 한-일 외무장관 회담을 하루 앞둔 2015년 12월 27일 오후 경기 광주 퇴촌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쉼터 ‘나눔의 집’에서 강일출(맨 오른쪽) 할머니가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배상을 촉구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광주/김태형 기자 [email protected]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2015년 한일 합의를 체결한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지만 법원에서 기각됐다.
15일 서울중앙지법 민사20부(재판장 문혜정)는 “원고의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한다. 소송 비용은 원고쪽이 부담한다”고 선고했다. 재판부는 “일본군 ‘위안부’ 합의에 ‘법적 책임’ 인정 부분, 일본 정부가 건넨 10억엔의 성격 등 불분명하고 부족한 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사건 합의에 이르기까지 과정과 내용을 살펴봤을 때 원고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소멸한다고 볼 수 없다. 외교적 행위는 국가 간 폭넓은 재량이 허용되는 영역인 점을 고려했을 때도 정부가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박근혜 정부 시절 ‘한일 위안부 합의’와 관련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이 기각된 15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이상희 변호사(가운데)가 법정에서 나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email protected]
박근혜 정부는 2015년 12월 28일 일본과 ‘한일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한일합의)’를 맺으면서 “이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한다”는 문구를 합의에 포함시켰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강일출 할머니를 포함해 12명의 피해 할머니들은 2016년 8월 “정부가 피해자의 의견도 묻지 않은 채 ‘더는 법적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취지로 합의를 맺어 일본에 대한 피해자 개인의 배상청구권을 무력화시켰다”며 정부를 상대로 12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피해 할머니들은 2015년 한일합의는 “정부는 일본에 의해 자행된 불법행위로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훼손당한 국민이 일본에 대한 배상청구권을 실현할 수 있도록 협력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2011년 헌법재판소 판단에도 반한다고 밝혔다.
이날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건강상의 이유로 재판에 참석하지 못했다. 2016년 당시 소송에 참여했던 12명의 피해 할머니 중 3명은 세상을 떠났다. 피해 할머니를 대리하는 이상희 변호사는 선고가 끝난 뒤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변호사는 취재진에 “법원 판단은 2015년 한일합의의 적법성을 결국 인정한 것 아닌가” 반문하며 “한일합의에 대해 위법성이 인정돼야만 한국정부가 이를 전제로 계속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려 할 텐데 이 판결이 외교부에 어떤 메시지를 줄지 우려된다”고 밝혔다. 이어 이 변호사는 “이번 판결이 할머니들에게는 한국 정부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 표명이 될 수 있었을 텐데 이런 결과가 나와 할머니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고한솔 기자 [email protected]
대법원, 일본기업에 강제동원 배상판결 4일 0시 일본 강제징용 기업 국내 자산 압류 절차 개시 日정부 관세인상·송금중단·비자제한 등 검토 시민단체 “강제동원 근본적 책임있는 가해자 일본정부가 피해자 행세”
사진=연합뉴스
[아시아경제 김수완 기자] 일본 강제징용 기업의 국내 자산 압류를 위한 우리 법원의 절차가 내일(4일)부터 시작되는 가운데, 일본 정부가 이번 매각으로 자국 기업에 피해가 발생할 경우 추가 보복에 나설 것을 시사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일본 정부는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에 대해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모두 해결됐다고 주장하는 만큼 이를 둘러싼 갈등은 격화하고 있다. 특히 이같은 일본 정부의 대응에 시민들은 보복 조치는 말도 안 된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한국 대법원은 지난 2018년 10월 이춘식 씨 등 강제동원 피해자 4명이 일본 신일본제철(신일철주금)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에서 일본 기업이 피해자에게 1인당 1억 원씩 배상하라고 명령했다.
이들은 1941~1943년 신일본제철 전신인 일본제철에 강제 징용돼 노역에 시달리고 임금을 받지 못했다.
이에 대해 신일본제철 측은 청구권이 남아있다고 하더라고 이미 소멸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원고 측은 같은 해 12월 손해배상 채권 확보를 위해 일본제철과 포스코의 한국 내 합작법인인 PNR 주식 압류를 법원에 신청했다.
관할 대구지법 포항지원은 지난해 1월 손해배상 채권액에 해당하는 8만1천75주(액면가 5천 원 환산으로 약 4억 원)의 압류를 결정했고, 원고 측은 작년 5월 해당 자산의 매각도 신청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한국 법원의 자산 압류 결정문을 피고인 일본제철에 송달하는 것을 거부했다. 결국, 포항지원은 지난 6월1일 관련 서류의 공시송달 절차를 개시해 그 효력이 오는 4일 발생한다.
이에 따라 4일 오전 0시로 이 기간이 지나면 서류가 보내진 것으로 간주돼 압류돼있는 신일철주금의 국내 자산에 현금화 명령을 내릴 수 있게 됐다.
지난해 8월15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광복74주년 강제동원 문제 해결 위한 시민대회’에 참가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및 유가족들이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사진=강진형 기자 aymsdream@
이런 가운데 현재 일본 정부는 자국 기업의 한국 내 자산이 현금화될 가능성에 대비한 보복 조치를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요미우리신문 등 외신은 전날(2일) “신일철주금(현 일본제철)의 자산 현금화가 이뤄지면 일본 정부는 대항 조치를 취한다는 방침”이며 “다양한 내용이 논의되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지난 1일(현지시간) 요미우리TV에 출연해 일본제철의 자산이 강제 매각됐을 경우에 대해 “정부는 모든 대응책을 검토하고 있다. 방향성은 확실히 나와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관련해 교도통신은 “비자 발급 요건을 엄격하게 하거나, 주한 일본대사의 일시 소환 등이 선택지로 부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현재 일본에서는 △비자 발급 제한 △금융제재 △수출규제 등 다양한 대응책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도 일본 정부는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수출규제 조치로 보복에 나선 바 있어 논란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당시 일본정부의 조치에 74주년 광복절을 맞은 지난해 8월15일 서울 도심에서는 ‘일본 강제동원 문제해결을 위한 시민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시위에 집결한 시민들을 “강제동원 사과하라”, “아베는 사죄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일본 정부의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조치를 촉구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시민들은 “도무지 반성이라는 게 없다”, “보복 조치가 말이 되냐. 언제까지 일본 눈치를 봐야 하냐”,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진정한 사과도 없었으면서 자산 압류에 보복이라니 이제 참을 수 없다. 불매운동도 끝까지 할 예정이다” 등 일본 정부의 조치에 반발하고 나섰다. 사과나 반성 없는 일본 정부의 태도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또다시 고통을 주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직장인 A(27) 씨는 “일본 정부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것은 이제 말도 안 된다고 본다”며 “오랜 시간 고통받았을 피해자들을 생각하면 하루라도 빨리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보상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정작 일본 정부는 보복할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게 너무 화가 난다. 우리 정부에서도 강력한 조치를 취했으면 좋겠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직장인 B(31) 씨도 “일본 정부에서 보복 카드를 들었는데 이 때문에 타협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이번에 굽히면 피해자들만 고통받는 일이 될 것”이라면서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끝까지 압류해서 (피해자들에) 보상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불매운동을 앞으로도 계속해서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덧붙였다.
사진=아시아경제DB
한편 시민단체는 일제 강제동원에 근본적 책임이 있는 일본 정부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대일과거 청산 등을 조사·연구하는 민족문제연구소는 아시아경제와 통화에서 “4일 0시에 공시송달절차에서 효력이 발생하는 것일 뿐 지금 당장 매각을 해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등 강제하는 것이 아니다. 일본 정부가 보복 조치를 검토하는 것은 국제법상으로도 위법이고 명분상으로도 말이 안 된다. 비상식적인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한국 법원의 판결을 이행하지 않을 것이면 일본제철은 왜 한국에 와서 긴 시간 재판을 받는 것이냐”라면서 “우리 단체가 일본에 직접 방문했을 당시에도 재판 중이기 때문에 판결 결과에 따르겠다고 답변을 했었다. (그런데) 막상 판결이 나오니 배상을 안 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역시 성명서를 통해 “지난 2018년 대법원 판결 이후 해방 70여 년이 지나도록 실현되지 못한 인권회복과 정의 실현을 고대해 온 피해자들의 기대는 처참히 짓밟히고 있다”며 “우리는 강제동원의 근본적 책임이 있는 가해자 일본 정부가 피해자 행세를 하는 것에 대해 분노를 금할 수가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피고 일본 기업 일본제철, 미쓰비시, 후지코시는 판결에 따라 가해 책임을 인정하고 배상을 위해 먼저 나서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대화마저 거부한 채 정부 뒤에 숨어 어떠한 노력도 하고 있지 않다”라면서 “글로벌 기업을 자처하는 기업들의 비겁한 행태를 강력히 규탄하며 가해 기업의 책임을 끝까지 물을 것임을 밝힌다”고 강조했다.
일제 강점기에 세워진 송정신사 건물을 활용해 건립된 광주 광산구 금선사 대웅전. 광주시는 13일 친일 잔재물임을 알리는 안내판을 설치할 예정이다. 김용희 기자 [email protected]
광주시가 광복 75주년을 맞아 일제 잔재 청산에 나선다.
광주시는 오는 13일 오전 10시30분 광산구 송정공원 내 금선사 입구에서 ‘광주 친일잔재청산 단죄문 제막식’을 연다고 4일 밝혔다.
금선사 대웅전은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목조 신사 건물이다. 일제는 1922년 일본 태양신에게 제사를 올리기 위해 신명신사를 세웠고 1941년 격을 높여 같은 자리에 송정신사를 창건했다. 해방 후인 1948년 한국 스님들이 세운 정광학원은 송정신사 배전(참배객들이 손뼉을 치며 기원하는 건물)을 활용해 대웅전을 만들었고 신주사무소는 종무소로 사용하고 있다. 또 인근에 있는 ‘나무아미타불’ 탑에는 원래 ‘황국신민서사’가 새겨져 있는 등 일제 잔존물 8개가 확인됐다.
광주시는 금선사 입구에 옛 일제 신사임을 알리는 안내판을 설치할 예정이다. 제막식에는 일제 강제노역 피해자와 유족, 민족문제연구소, 광복회 회원 등이 참석해 친일 논란이 있는 안익태 애국가가 아닌 독립군 애국가를 부르며 일제 잔재 청산 의지를 다진다.
광주시는 또 일제 군용비행기 연료 저장소인 화정동 지하동굴에도 친일잔재 안내판을 설치한다. 친일인사 4명(정봉현, 여규형, 남기윤, 정윤수)이 쓴 현판과 시문이 있는 양파정(남구 사동), 친일인사 송화식의 공적비가 있는 원효사(북구 금곡동), 신철균 남계룡이 쓴 시문이 있는 습향각(남구 세하동), 서정주의 ‘무등을 보며’ 시비(동구 선교동)에는 ‘친일 반민족행위자’라고 적힌 단죄문을 배치할 계획이다.
앞서 광주시는 지난해 1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자치단체로는 처음으로 ‘친일잔재 조사보고서’를 만들었다. 같은 해 8월 철거 민원이 있었던 광주공원 내 윤웅렬, 이근호, 홍난유 선정비를 뽑아 눕혀놓은 후 단죄문을 설치하는 등 단죄·안내문 설치를 친일잔재 청산 방향으로 정하고 추진하고 있다. 김순흥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장은 “친일 잔재물을 철거해버리면 후대에 잊힐 수 있기 때문에 단죄문을 통해 기억해야 한다. 남아 있는 잔재물도 조만간 처리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올해 창간 100돌을 맞이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일제 부역 행위를 고발하는 기획 전시가 열린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일제 부역 언론의 민낯’ 기획 전시를 오는 11일~10월25일 서울 용산구 청파동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연다고 9일 밝혔다. 식민지역사박물관이 주관하는 이번 전시는 일제가 신문 발행을 허가한 1920년부터 1940년 폐간되기까지 20여년 사이 두 신문의 부일 협력 행위를 집중적으로 추적한다.
전시는 ‘조선의 ‘입’을 열다’ ‘황군의 나팔수가 된 조선·동아’ ‘가자, 전선으로! 천황을 위해’ ‘조선·동사 사주의 진면목’ 4부로 구성돼 있다. 특히 프랑스의 친나치 언론부역자 숙정과 비교해 해방 뒤 단죄를 피한 한국언론의 실상이 에필로그로 소개된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이번 전시를 통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설립이 일제에 의해 허용된 배경 등 두 신문의 뿌리를 파헤치고 1937년 중일전쟁 개전을 계기로 침략 전쟁 미화에 나선 두 신문의 보도 실태를 조명한다”며 “두 신문이 1938년 시행된 일제의 육군특별지원병제도 등을 어떻게 선전했는지와, 두 신문 사주의 친일 행적도 다룰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전시와 연계해 ‘지금, 언론개혁을 말한다’는 제목의 특강도 진행된다. 전시 개막일인 11일 김종철 <뉴스타파> 자문위원회 위원장이 ‘조선·동아 거짓과 배신의 100년을 청산하자’는 이름으로 강의를 진행하는 것을 시작으로 언론, 시민사회 전문가들이 두 신문을 분석하고 언론개혁의 방향을 진단한다.
“시민들이 그의 친일행적을 제대로 알도록 김해강 시비(詩碑) 옆에 옳고 그름을 따지는 ‘시비’를 거는 것입니다.”
국치일인 오는 29일 전북 전주 덕진공원에 있는 시인 김해강의 시비 바로 옆에 시인의 친일행적을 담은 단죄비를 세우는 김재호(55)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장의 다짐이다.
김 지부장은 내년 3·1절 즈음에 김해강 시비를 철거하는 방향으로 전주시 등과 협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시비를 세운 사람들 쪽에서는 소극적이어서 상황에 따라 1993년 세워진 이 시비의 철거가 늦춰질 수도 있다고 전했다. 철거 여부를 따지기 위한 여론조사를 하려면 일제를 칭송한 사실을 제대로 알려야 하기에 그는 단죄비 설치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2011년에 지부장을 맡은 그는 2012년과 2016년에도 단죄비를 세웠다. 단죄비는 친일 행적을 알리는 안내 현판 모습이다. 8년 전에는 전북 진안군 부귀면에 있는 반민족행위자 윤치호 시혜불망비 옆에 그의 친일행적을 알리기 위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안내현판을 세웠다. 윤치호가 한때 지식인으로 독립협회 등 애국계몽활동을 지도하고 투옥되기도 했지만 1915년 친일 전향을 조건으로 특사로 석방돼 변절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는 내용 등이 새겨있다. 4년 전인 2016년에는 항일의병을 초토화하고 명성황후 시해를 도운 이두황의 단죄비를 세웠다. 그의 묘지가 있는 전주시 중노송동 기린봉 초입 주변에 설치했다. 2016년은 이두황이 숨진 지 100년이 되는 해다. ‘백년만의 단죄, 친일반민족행위자 이두황’이라는 제목으로 친일행적을 낱낱이 기록했다.
“덕진공원은 전주시민의 허파와 같은 곳입니다. 공공재인 이 공원에 공동체를 파괴한 사람은 있을 자격이 없습니다. 특히 여기에는 ‘척양척왜’를 외친 동학농민혁명 3대 지도자인 전봉준·김개남·손화중 장군의 동상 또는 추모비가 주변 100m 안에 있습니다. 바로 옆에는 신석정 시인의 시비가 있는데 그가 친일시를 썼다는 기억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역설적으로 신석정 시비가 김해강 시비보다도 크기가 많이 작습니다.”
국치일 29일에 김해강 시인 단죄비
전주 덕진공원 시비 옆 세우기로
윤치호 이두황 이어 세번째 설치
“자살특공대 칭송 등 친일시 여럿
시비 철거도 전주시와 협의 중”
월 10만원 컨테이너가 지부 사무실
김재호 지부장. 박임근 기자
김해강 시인은 1942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명 ‘가미카제’로 불렸던 자살특공대를 칭송한 시 ‘돌아오지 않는 아홉 장사’를 남겼다. 진주만에서 전사한 일본군 9명의 죽음을 칭송해 1942년 <매일신보>에 실렸다. ‘특별공격대원의 위훈을 추모하며’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그가 쓴 ‘아름다운 태양’, ‘호주여’, ‘인도 민중에게’ 등도 일제의 황국신민화와 대동아공영권을 찬양하고 있다. 1962년에 만들어진 ‘전북도민의 노래’도 작사했다. 김 시인은 2002년 발표된 친일문학인 42인 명단에 선정됐지만, 민족문제연구소가 2009년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는 수록되지 않았다.
“그의 제자 등은 친일인명사전에 들어가지 않은 점을 내세우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전 발간 때 우여곡절이 많았고 사전 편찬위에서 개정증보판을 준비 중입니다. 사전에 없다고 친일행위가 지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의 시를 보면 일제를 노골적으로 찬양한 표현이 많습니다. 일제가 중일전쟁 등에서 계속 승리하니까 돌이킬 수 없는 대세라고 판단하고 돌아선 것이죠.”
그는 단죄비뿐만 아니라 우리 생활 속에 파고든 일제잔재 청산에도 주력했다. 전주시는 지난해 덕진구 ‘동산동’ 이름을 105년 만에 ‘여의동’으로 바꿨다. 동산동은 1907년 전범기업인 미쓰비시 기업 창업자의 장남이 자신의 아버지 호인 ‘동산’(東山)을 따 창설한 동산농사주식회사 전주지점이 위치했던 데서 유래했다. 김 지부장의 이런 문제 제기에 시가 화답한 것이다.
그가 사명감으로 맡았다는 지부의 사무실은 월세 10만원인 컨테이너다. 회원이 500~600명이지만 급여를 줘야 하는 상근자가 없다. 지부장인 그가 무보수로 일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과거에는 강연 요청 등도 있었지만, 요즘은 코로나19 때문에 그마저도 없단다. 그러나 역사 정의를 위해 이 시대의 제2독립군이라는 결기로 임하는 그는 “친일청산의 끝은 민족의 통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시인 김해강을 아낀다면 그의 시비를 더는 여기에 놔두면 안 됩니다. 오히려 그를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역사의 진실은 누군가에 의해 드러납니다. 친일파 대부분이 그렇지만 그가 자신의 행적에 대해 통렬한 반성을 한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 미래를 위해서라도 그의 시비를 반드시 철거해야 합니다.”
의정부시 항일독립운동 기념사업회 준비위원회는 8월8일 오전 10시 의정부시 녹양동 엄복동 동상 앞에서 ‘방씨일가 불법행위 범시민 규탄대회’를 열고 “의정부시는 그린벨트에 호화 가족묘를 조성한 조선일보 방씨일가에 대해 즉각 법적 조치하라”고 촉구했다.
항일독립운동 기념사업회는 이날 광복 75주년과 봉오동 전투 승리 100주년을 맞아 “일제강점기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고 조선의 젊은이들을 태평양 전쟁에 동원하는데 앞장서며 해방 후에는 친일 독재정권에 아부를 일삼아온 조선일보 9대 사장 친일파 방응모의 가묘가 의정부시 가능동 산32-13번지에 버젓이 조성되어 있는 것이 개탄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2016년에도 방우영 회장이 사망하자 장사법상 가족묘지 설치 허가 신청도 없이 호화묘지를 조성했고, 개발구역제한법을 여전히 위반하고 있는 상황임에도 의정부시는 소정의 이행강제금만을 부과하는 등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항일독립운동 기념사업회는 “방씨일가는 호화묘지를 원상 복구하고 의정부시민과 국민 앞에 사죄하라”면서 “불이행시 모든 법적 수단을 동원하여 조치할 것이며 나아가 깨어있는 국민들과 함께 절독운동을 넘어 폐간운동까지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규탄대회에는 광복회 김정륙 사무총장, 광복회 의정부시지회 남주우 회장,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 실장, 조선동아 폐간을 위한 무기한 단식농성단 김병관 단장 등 150여명이 참석했다.
7일, 언론노조, 한국PD연합회, 한국방송기자연합회, 한국인터넷기자협회 등 언론단체 및 ‘민언련’ 등 시민단체는 조선일보 사옥 앞에서 조선일보사 방상훈 사장 아들인 방정오 (주)하이그라운드 전 대표 고발사건과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조선일보 방상훈·방정오 사주 일가를 철저히 수사하라”고 요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미디어기독연대, 민주언론시민연합, 새언론포럼, 언론소비자주권행동, 자유언론실천재단, 전국언론노동조합, 조선동아폐간을위한무기한시민 실천단, 표현의자유와언론탄압공동대책위원회, 한국PD연합회, 한국방송기자연합회, 한국인터넷기자협회 등 언론단체 및 언론관련 시민단체와 민생경제연구소, 민족문제연구소, 사월혁명회, 세금도둑잡아라, 시민연대함께, 아웃사이트,한국진보연대(이상 모두 가나다순) 등이 함께 했다.
이날 이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조선일보와 TV조선을 포함한 조선미디어그룹의 부당거래, 일감몰아주기, 횡령, 배임, 불공정행위 강요 등의 의혹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면서 최근 세금도둑잡아라, 민생경제연구소, 시민연대함께 등이 고발한 방정오 씨 관련 하이그라운드 배임사건 수사를 촉구했다.
이들은 또 “민주언론시민연합은 7월 28일 조선일보가 방상훈 대표이사를 비롯한 사주 일가의 이익을 위해 관계사인 조선IS에 부당거래를 강요하고 이에 불응하는 임·직원에 인사이동, 경질시도, 퇴사강요 등 ‘갑질’을 해왔다며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고 밝히고 공정위도 이에 대한 신속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민언련은 내부 고발자인 조선IS 전직 임원이 “조선일보는 특수관계사인 조광프린팅이 또 다른 특수관계사 조광출판인쇄에 지급하는 임차료 등으로 방상훈 대표이사가 얻는 개인수입이 월 4,000만 원임을 내세워 조선IS가 조광프린팅 과 현저히 부당한 거래를 하도록 강요했다”고 주장했다는 점을 밝혔다.
또한 앞서 8월 3일 민생경제연구소, 시민연대함께, 세금도둑잡아라 등은 “방정오 전 TV조선 대표이사가 회사자금 19억을 회수 가능성이 의심스럽고 업무 연관성도 없는 영어유치원 ‘컵스빌리지’에 대여했다며 업무상 배임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윤석열 검찰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과 독대로 만났다는 보도가 나왔다. 따라서 이날 집회에서 이들의 만남이 혹여 검언유착이 아닌가 하는 의혹도 지적했다.
즉 “윤 총장과 방 사장이 만났을 때는 방 사장과 관련된 여러 건의 고소, 고발이 서울중앙지검에 접수돼 수사가 진행 중이어서 수사무마 의혹도 불거지고 있다”면서 “언론사의 불법경영은 미디어 시장을 어지럽히고 언론 신뢰를 떨어뜨리며, 이는 고스란히 우리 사회와 국민의 피해로 이어짐에도 수사당국은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고 비판한 것이다.
조선일보, TV조선을 포함한 조선미디어그룹의 부당거래, 일감몰아주기, 횡령, 배임, 불공정행위 강요 등의 의혹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시민단체 세금도둑잡아라는 7월 10일 방정오 전 TV조선 대표이사가 최대 주주로 있는 ‘하이그라운드’에 TV조선이 300억 원 가량의 일감몰아주기를 했다며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TV조선이 2018년부터 드라마 외주제작을 주면서 ‘하이그라운드’를 공동제작사로 끼워 넣는 방식으로 일감몰아주기를 했다는 것이다.
하이그라운드 매출액의 98%가 TV조선과 거래에서 발생하고 있다. 방상훈 조선일보 대표이사의 차남인 방정오 전 대표이사는 현 TV조선 및 디지틀조선일보 사내이사를 각각 맡고 있기도 하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7월 28일 조선일보가 방상훈 대표이사를 비롯한 사주 일가의 이익을 위해 관계사인 조선IS에 부당거래를 강요하고 이에 불응하는 임·직원에 인사이동, 경질시도, 퇴사강요 등 ‘갑질’을 해왔다며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내부 고발자인 조선IS 전직 임원은 “조선일보는 특수관계사인 조광프린팅이 또 다른 특수관계사 조광출판인쇄에 지급하는 임차료 등으로 방상훈 대표이사가 얻는 개인수입이 월 4,000만 원임을 내세워 조선IS가 조광프린팅 과 현저히 부당한 거래를 하도록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8월 3일 민생경제연구소, 시민연대함께, 세금도둑잡아라 등은 방정오 전 TV조선 대표이사가 회사자금 19억 원을 회수 가능성이 의심스럽고 업무 연관성도 없는 영어유치원 ‘컵스빌리지’에 대여했다며 업무상 배임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방상훈·방정오 사주 일가와 조선미디어그룹의 불법 행위는 이뿐만이 아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언론개혁연대, 민주언론시민연합, 민생경제연구소 등 언론·시민단체는 2018년부터 최근까지 조선미디어그룹과 관련하여 최소 여덟 차례에 걸쳐 불법·비리 혐의를 고발해왔다.
앞서 언급한 세 건 이외에도 2018년 9월 TV조선 간부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수석의 국정농단 사태 무마를 위한 불법거래 의혹 등 언론농단 사건, 2019년 2월 방정오 전 TV조선 대표이사와 그 가족들에 의한 운전기사 갑질 및 업무상 배임·횡령 의혹, 2019년 3월 로비스트 박수환 씨와 조선일보의 기사거래 의혹, 2019년 6월 조선미디어그룹과 방상훈 사장 사돈인 수원대 이인수 전 총장의 불법적 주식거래 의혹, 2020년 6월 조선일보의 정의기억연대 관련 가짜뉴스 불법행위 등에 대한 고발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러나 고발인 조사만 하고 이후 제대로 된 수사도, 기소도 진행되지 않고 있다. 불법과 비리를 철저히 조사하고 그 책임을 물어야 할 수사기관이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윤석열 검찰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과 비밀회동을 했다는 사실이 뉴스타파를 통해 드러나 파장이 일었다. 윤 총장이 방 사장과 만났을 때는 방 사장과 관련된 여러 건의 고소, 고발이 서울중앙지검에 접수돼 수사가 진행 중이어서 수사무마 의혹도 불거지고 있다.
조선미디어그룹이 이렇게 법 위에서 군림하는 동안 조선일보는 2019년 한해 2,999억 원의 매출을 올렸고, 2011년 이명박 정권의 위헌적인 ‘미디어법 날치기’로 탄생한 TV조선은 지난해 1,881억의 매출을 기록하며 호황을 누리고 있다.
올해로 창간 100년을 맞은 조선일보는 일제강점기에는 친일로, 군사정권 시절엔 독재에 굴복하며 그 불의한 권력에 기생해 사세와 영향력을 키워왔다. 2020년 한국 사회에서 조선일보의 대중적 영향력은 나날이 하락하고 있으나, 사회 기득권층과 긴밀히 연결되어 여전히 특혜를 누리고 있다. 언론은 공익과 정의의 편에 서서 진실을 추구해야 하지만 조선일보는 공익을 사익에 종속시키며, 자신의 기득권과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언론을 악용하고 있다.
더 이상 방상훈·방정오 사주 일가와 조선미디어그룹의 불법 행위를 좌시할 수 없는 지경에 이 르렀다. 언론사의 불법경영은 미디어 시장을 어지럽히고 언론 신뢰를 떨어뜨리며, 이는 고스란히 우리 사회와 국민의 피해로 이어진다.
그럼에도 정부와 수사당국은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와 검·경찰은 지금이라도 총체적인 조사 및 수사를 진행하여 다시는 거대 족벌언론사가 우리 사회에 심대한 해악을 끼치고 직접적으로 중대한 범죄행위의 가해자·가담 자가 되는 일이 없도록 엄벌에 처해야 한다. 특히, TV조선의 일감몰아주기가 사실로 드러나거나 수원대 법인과의 불법적 주식거래 의혹이 사실로 판명될 경우 방송통신위원회는 TV조선의 재승인을 당장 취소해야 한다.
조선미디어그룹의 다양한 불법 행위가 오랜 시간 횡행할 수 있는 배경에는 정기적인 세무조사 등을 받는 일반기업과 달리 언론의 자유라는 미명 아래 기본적인 법·제도의 관리 감독조차 받지 않는 특혜를 누리고 있다는 데 있다. 2001년 이후 언론사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세무 조사가 시행되지 않았다. ‘신문대란’으로 불리며 과다경품 제공 등 불법 신문판촉 경쟁으로 신문시장 질서를 혼탁하게 했던 시절조차 언론사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전면조사를 받지 않았다.
언론이 남의 잘못은 추상 같이 지적하면서 자신의 비리는 감추고, 불법 행위를 계속한다면 우리 사회에 정의가 제대로 실현될 수 있겠는가. 언론도 잘못을 했으면 조사받고 처벌받아야 한다. 공정거래위원회와 검찰, 경찰은 이제라도 조선미디어그룹과 사주 일가의 불법 행위에 대하여 전면적인 조사 및 철저한 수사를 해야 할 것이다. 우리 언론·시민단체들은 공정거래위 원회와 검찰, 경찰이 제 역할을 다하는지 엄중히 지켜볼 것이다.
▲ 이광수가 쓴 “민족적 경륜” 제하의 사설을 게재한 <동아일보>를 규탄하는 재일 조선인 유학생 단체들의 성토문 전단(1924년). . ⓒ 민족문제연구소
<조선일보> <동아일보> 창간 100년을 맞아 두 언론사의 친일 행적을 비판하는 기획전시회가 11일부터 진행된다.
민족문제연구소(아래 민문연)는 “일제가 발행을 허가한 1920년부터 1940년 폐간되기까지 20여 년간에 걸친 두 신문의 부일협력 행위를 추적한다”며 8월 11일부터 10월 25일까지 식민지역사박물관 1층 돌모루홀에서 진행되는 ‘일제 부역언론의 민낯’ 기획전을 소개했다.
민문연이 주최하고 식민지역사박물관이 주관하는 전시회는 총 4부(▲ 조선의 입을 열다 ▲ 황군의 나팔수가 된 조선·동아 ▲ 가자, 전선으로! 천황을 위해 ▲ 조선·동아 사주의 진면목)로 구성돼 있다.
민문연은 “1부에선 일제가 민간신문의 설립을 허용한 배경과 두 신문을 창간한 주도세력의 성격, 발행 초기의 논조 등을 다룬다. 2부에선 1937년 중일전쟁 개전을 계기로 경쟁적으로 침략전쟁 미화에 나선 두 신문의 보도 실태를 조명한다”라며 “3부는 두 신문이 1938년 시행된 일제의 육군특별지원병제도와 전쟁동원을 어떻게 선전·선동했는지를 고발한다. 4부에선 방응모가 고사기관총을 국방헌납하고 김성수가 ‘탄환으로 만들어 나라를 지켜달라’며 철대문을 뜯어다 바친 엽기적인 반민족범죄도 소개한다”라고 밝혔다.
이어 “<동아일보>가 정간 해제를 목적으로 총독부에 복종을 서약한 ‘발행정지 처분의 해제에 이른 경과’와 <조선일보> 폐간 당시 사주 방응모와 조선총독부 경무국장의 밀약을 담은 ‘언문신문 통제에 관한 건’ 등 조선총독부의 극비문서와 보고서, 사진화보 실물자료는 전시를 한층 알차게 한다”라며 “특히 민문연이 최근입수한 재일 조선인 유학생 단체들의 <동아일보> 성토문 원본도 처음 일반에 공개된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에필로그에선 프랑스의 신나치 언론 숙정과 우리의 반복되고 있는 부역의 역사를 비교한다”라며 “드골이 ‘언론인은 도덕의 상징이기 때문에 첫 심판에 올려 가차 없이 처단했다’고 말했듯 프랑스는 부역언론 청산에 단호한 입장을 취한 반면 단죄를 피한 한국의 부역언론은 현대사의 질곡이 되어 또 다른 형태의 부역을 자행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전시회와 함께 ‘지금, 언론개혁을 말한다’를 주제로 한 연속 특강도 진행된다. 식민지역사박물관 5층 교육장에서 진행되는 특강에는 김종철 <뉴스타파> 자문위원장(1강, 8월 11일)을 시작으로 장신 교원대 교수(2강, 8월 13일), 박용규 상지대 교수(3강, 8월 18일), 정준희 한양대 교수(4강, 8월 20일), 신미희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5강, 8월 25일),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6강, 8월 27일)이 강사로 나설 예정이다.
▲ 민족문제연구소가 <조선일보>·<동아일보> 창간 100년을 맞아 두 신문의 친일 행적을 비판하는 기획전시회 “일제 부역언론의 민낯”을 11일 식민지역사박물관 1층 돌모루홀에서 시작했다. 일본군 육군특별지원병의 첫 전사자(이인석)가 나오자 “영웅만들기”에 나선 두 언론사의 기사. ⓒ 소중한
1939년 6월, 일본군 육군특별지원병(1938~1944년 시행) 이인석이 전사했다. 첫 조선인 지원병 전사자였다. 민족정론지를 자처하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앞다퉈 ‘이인석 영웅만들기’에 나섰다. 아래는 이들이 쓴 기사다.
적진에 돌입, 역습 적을 분쇄 – 1939년 9월 6일 <조선일보> 영예의 전사한 이인석 가정방문기 – 1939년 7월 9일 <동아일보> 신질서의 ‘초석’ – 1939년 10월 1일 <조선일보> 고마운 주검 – 1939년 10월 3일 <동아일보> 제일선에 세운 무훈 – 1940년 1월 3일 <조선일보> 성전에 참가하여 용감히 싸우는 지원병 – 1939년 7월 23일 <소년 조선일보> 고 이인석 상등병에 금치훈장을 하사 – 1940년 7월 16일 <동아일보> 은막(영화)에 나타날 지원병 생활 – 1939년 12월 16일 <동아일보>
두 언론은 이들 기사를 통해 “현지로부터의 보고에 따르면 이(인석) 일등병은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와중에도 ‘천황폐하 만세’를 삼창하고 동료들에게 성전의 완수를 부탁했다”라며 “각지에서는 이인석 군의 명예로운 죽음을 본받아 ‘나도 일본 군인으로 전장에 나가겠다’는 지원의 열기가 더해지고 있다. 이처럼 전사의 드높은 명예를 지킨 죽음에 조선 사람들은 고마움과 경의를 표하고 있다”라고 썼다.
또 “고 이인석 일등병은 전사 보도 직후 상등병으로 승급했고 군인으로서의 최고 영예인 금치 훈장을 받았다”라며 “이처럼 지원병 제도는 내선일체의 구현, 황국신민에의 출발이 되고 있으며 그 성과는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나가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그뿐만 아니라 “조선인 지원병의 성장과 멜로 등을 테마로 한 영화 ‘지원병’이 제작된다”라며 “이 밖에 나니와부시(일본 정통음악)로 각색되는 ‘오호 이인석 상등병’은 그의 행적과 황국신민다운 일화를 주요 내용으로 다루고 있다. 이 같은 시도와 성과에 거는 기대가 크다”라고 소개했다.
▲ 민족문제연구소가 <조선일보>·<동아일보> 창간 100년을 맞아 두 신문의 친일 행적을 비판하는 기획전시회 “일제 부역언론의 민낯”을 11일 식민지역사박물관 1층 돌모루홀에서 시작했다. 이날 오전 현장을 찾은 시민들과 민족문제연구소 직원들이 전시회를 관람하고 있다. ⓒ 소중한
총독부가 언론을 “굴뚝”이라 칭한 이유
<조선일보>·<동아일보> 창간 100년을 맞아 두 신문의 친일 행적을 비판하는 기획전시회가 11일 시작됐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일제가 발행을 허가한 1920년부터 1940년 폐간되기까지 20여 년간에 걸친 두 신문의 부일 협력 행위를 추적한다”라며 10월 25일까지 식민지역사박물관 1층 돌모루홀에서 ‘일제 부역언론의 민낯’ 기획전을 진행한다. 전시회가 시작된 8월 11일은 80년 전 두 언론사가 폐간된 날이기도 하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주최하고 식민지역사박물관이 주관하는 전시회는 총 4부(▲ 조선의 입을 열다 ▲ 황군의 나팔수가 된 조선·동아 ▲ 가자, 전선으로! 천황을 위해 ▲ 조선·동아 사주의 진면목)로 구성돼 있다.
‘1부 조선의 입을 열다’에선 <조선독립신문> 등 항일 지하신문과 이에 맞서 일본의 ‘문화통치’ 하에서 만들어진 <조선일보>·<동아일보> 등의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굴뚝이 있어 연기가 잘 배출되면 그 파열을 막을 수 있는 겁니다. 총독부가 조선어신문을 허용했던 것은 바로 굴뚝을 만들어준 것과 같은 격이고, 조선의 긴장된 공기를 완화하는 데 아주 좋은 분출구를 마련해 준 것입니다.” – 조선총독부 미즈노 렌타로 정무총감, <조선통치비화>(1937)
이러한 기조에 따라 1924년 이광수는 동아일보에 논설 ‘민족적 경륜’을 썼다. 당시 재일 조선일 유학생 단체들은 이광수와 동아일보를 비판하는 성토문을 내는데, 민족문제연구소는 전시회를 통해 최초로 이 성토문을 일반에 공개했다. 성토문에는 “동아일보사를 중심하여 조직된 일본의 제국주의적 자본벌의 전위대는 조선 독립운동의 본질을 거세하고 있다. (중략) 조선의 민중으로 하여금 영원히 일본의 제국주의 자본벌의 굴레 밑에서 굴종하게 만들려고 한다”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 이광수가 쓴 “민족적 경륜” 제하의 사설을 게재한 <동아일보>를 규탄하는 재일 조선인 유학생 단체들의 성토문 전단(1924년). . ⓒ 민족문제연구소
‘2부 황군의 나팔수가 된 조선·동아’에선 손기정 마라톤 선수(1936년 베를린올림픽 금메달) 사진에서 일장기를 없앤 사건 이후 <동아일보>의 입장을 담은 여러 글이 전시돼 있다.
“동아일보가 일장기 말소 사건을 일으킨 것은 참으로 공구함을 금할 수 없던 차에 새 사장을 발행인으로 허가받고 발행정지 처분 해제의 은혜로운 명을 받았으므로 (중략) 황실국가에 충근을 다하여 성의로써 조선통치에 익찬할 것을 방침으로 별지 항목에 따라 서약합니다.” – 1937년 6월 1일 주식회사 동아일보 대표 백관수
“금후부터 한층 더 근신하여 다시는 이러한 불상사를 일으키지 않도록 주의할 것은 물론이거니와 지면을 쇄신하고 대일본제국의 언론기관으로서 공정한 사명을 다하여 조선통치의 익찬을 기하려 하옵니다.” – 동아일보사 사고
‘3부 가자, 전선으로! 천황을 위해’에선 기사 초반에 소개한 ‘이인석 영웅만들기’와 같은 일제 침략전쟁 미화 행위를 담고 있다. ‘4부 조선·동아 사주의 진면목’에선 방응모·김성수의 친일 행위를 보여주고 있다.
▲ 민족문제연구소가 <조선일보>·<동아일보> 창간 100년을 맞아 두 신문의 친일 행적을 비판하는 기획전시회 “일제 부역언론의 민낯”을 11일 식민지역사박물관 1층 돌모루홀에서 시작했다. 방응모 전 조선일보 사장이 1933년 기관총을 일제에 헌납했다는 내용이 담긴 문서. ⓒ 소중한
서로 친일신문이라 비방한 조선·동아
1985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서로를 친일 신문이라고 비방했던 내용도 전시회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동아일보>는 민족혼을 일깨운 탄생, <조선일보>는 실업신문임을 위장한 친일신문.” – 1985년 4월 1일 <동아일보> 조용만 칼럼 (동아일보, 민족혼 일깨운 탄생)
“김(성열) 사장, 제정신으로 하시는 일입니까. 반일, 친일 논쟁에 에스컬레이트 하면 어디까지 갈 것인지 상상도 안 하십니까. 논쟁이 격화되면 궁극적으로 인촌(김성수) 선생까지도 욕보이는 결과가 된다고 생각지 않으십니까. 그래서 두 신문사가 서로 상처를 입을 때, 이 사회에 이로운 것이 무엇일까요.” – 1985년 4월 14일 <조선일보> 선우휘 논설 (동아일보 사장에게 드린다)
“<조선일보>가 친일 신문으로 창간된 것은 사실 기록에서 착오가 없는 것.” – 1985년 4월 17일 <동아일보> 보도 (애독자 제현에게 알려드립니다)
“한일합방의 공로로 일본 후작의 작위를 받은 박영효가 <동아일보> 초대 사장. 친일 계보가 속속들이 파헤쳐져야 한다.” – 1985년 4월 19일 <조선일보> 보도 (우리의 입장 : 동아일보의 본보 비방에 붙여)
전시 첫날임에도 11일 오전 찾은 현장에선 여러 관람객을 만날 수 있었다. 김상일(62, 서울 중구)씨는 “어제 이러한 전시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지 궁금해 첫날 오전부터 찾았다”라며 “국민들 마음속에 언론인은 그대로 지식인이 아닌가. 이 사회를 잘 이끌어야 할 사람들이 불의에 야합하고 놀아나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가슴이 아프다”라고 말했다.
이어 “힘이 없는 약소국가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라며 “예나 지금이나 일부 언론의 모습은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이런 전시를 통해 국민들이 자각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라고 덧붙였다.
▲ 민족문제연구소가 <조선일보>·<동아일보> 창간 100년을 맞아 두 신문의 친일 행적을 비판하는 기획전시회 “일제 부역언론의 민낯”을 11일 식민지역사박물관 1층 돌모루홀에서 시작했다. 이날 오후 2시 김종철 뉴스타파 자문위원회 위원장이 “조선·동아 거짓과 배신의 100년을 청산하자”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 소중한
함세웅 신부는 “민족을 배반한 불의한 무리가 많이 있는데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이를 대표하는, 100년 전 태어나면 안 됐을 언론이었다”이라며 “민중의 혼을 썩게 만든 두 언론은 지금도 건재하다. 당사자들의 각성과 회개를 촉구하며 전시회에 왔다”라고 말했다.
김승은 민족문제연구소 학예실장은 “두 언론사가 민족지의 이름으로 존재할만한 신문인지 그들이 써놓은 기사로 그 민낯을 드러내는 전시회”라며 “전시회를 통해 부역 언론을 청산하지 못한 후과를 뼈저리게 되새겼으면 한다”라고 설명했다.
전시회와 함께 ‘지금, 언론개혁을 말한다’를 주제로 한 연속 특강도 진행된다. 이날 김종철 <뉴스타파> 자문위원장(1강, 8월 11일)을 시작으로 장신 교원대 교수(2강, 8월 13일), 박용규 상지대 교수(3강, 8월 18일), 정준희 한양대 교수(4강, 8월 20일), 신미희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5강, 8월 25일),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6강, 8월 27일)이 강사로 나설 예정이다.
“이 곳은 일제 강점기 동안 식민통치에 활용된 시설물이다.(중략) 올바른 역사를 알리고 역사 정의를 바로세우기 위한 친일잔재 청산 활동의 결과로 이 송정신사가 일제 식민지 잔재물임을 밝힌다”
광주시는 13일 일제 신사인 광산구 송정공원 금선사에서 일제 식민통치 잔재물에 대한 단죄문 제막식을 개최했다. 친일 잔재 청산을 위한 이번 단죄문 제막식은 지난해 8월 광주공원 사적비군에 이어 두 번째다.
이번 제막식이 열린 송정공원 금선사는 일제 식민지 시대 당시 내선일체 강조 등 조선인의 정신개조를 위해 일본이 1941년 조성한 신사로 현재 전국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목조건물이다.
이번에 설치된 단죄문에는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한 친일인명사전 등 객관적 자료를 토대로 친일 인사의 행적 등이 기록됐다.
시는 올해 △원효사 송화식 부도비ㆍ부도탑 △너릿재 유아숲 공원 서정주의 ‘무등을 보며’ 시비 △사직공원 인근 양파정에 걸린 정봉현ㆍ여규형ㆍ남기윤ㆍ정윤수 현판 △세하동 습향각에 설치된 신철균ㆍ남계룡 현판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회관 지하동굴 △송정공원 내에 잔존하고 있는 참계 신목 참도 석등룡기단, 대옹전 앞 계단, 신주사무소, 배전, 나무아미타불 등 6곳 21개 잔재물에 단죄문을 설치했다.
시는 단죄문 설치를 계기로 과거 대한민국 100년을 돌이켜 보고, 미래 대한민국 100년을 준비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용섭 광주시장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신사 건물인 송정공원 금선사 등의 잔재물에 단죄문을 설치한 데 이어 내년부터는 사유지에 남아 있는 친일 잔재물에 대해 소유주와 협의를 거쳐 청산작업을 이어가겠다”며 “역사를 바로 세우고 정의롭고 풍요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위대한 여정에 150만 광주시민이 함께 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수원=연합뉴스) 이영주 기자 = 욱일기가 연상되는 교표(학교를 상징하는 그림)를 개교 90년 만에 바꾸는 등 광복절을 앞두고 경기도 내 학교들의 일제 잔재 청산 작업이 눈길을 끈다.
경기도교육청은 13일 도내 89개 학교가 ‘학교생활 속 일제 잔재 청산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일제 잔재 청산 프로젝트는 학생, 교직원, 학부모가 함께 학교 안 일제 잔재를 찾아보고 개선 방법 등을 논의해 새로운 학교 문화를 만들어가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주로 친일인명사전에 등록된 작곡가, 작사가가 만든 교가나, 교표, 교목 등이 청산 대상이 된다.
구령대나 조회대와 같은 구조물, 반장·부반장, 명찰, 선도부, 수학여행과 같은 일본식 용어들도 변경이나 순화 대상이다.
프로젝트 첫해인 작년엔 20여개의 학교생활 속 일제 잔재가 바로 잡혔다.
올해엔 89개 학교가 참여해 청산 대상을 검토 중이다.
특히, 1930년 개교한 화성 정남초등학교는 지난 1년간의 내부 논의 과정을 거쳐 올 3월 1일 자로 교표를 새롭게 바꿨다.
정남초의 과거 교표는 욱일기(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범기로 사용한 깃발)가 연상되는 그림이 그려진 부채모양이었는데, 한 학부모의 문제 제기로 논의가 시작됐다.
학생과 교직원, 학부모, 동문은 교표 변경 필요성에 공감했고, 교표에 담을 가치와 디자인 등을 다 함께 고민했다.
화성 정남초의 과거 교표(좌)와 새롭게 바뀐 교표(우)[경기도교육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 결과 새롭게 탄생한 교표는 푸른 지구본 모양을 배경으로 우정과 사랑, 열정과 협력을 흰색과 붉은색이 합쳐진 하트 모양으로 형상화했다.
개교 90년 만의 변화였다.
정남초 우자영 교무부장은 “교표는 학교 홈페이지, 안내장 등 곳곳에서 사용하는 학교의 상징 중 하나인데, 전범기가 연상되는 그림이어서 교육적으로나 정서적으로 학생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판단했다”며 “스스로 교표를 바꿨다는 점에서 학교 구성원 모두가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 김포대명초등학교도 벚꽃 안에 욱일기가 연상되는 그림이 그려진 교표를 교화인 개나리꽃으로 새롭게 단장했다.
김포대명초의 과거 교포(좌)와 새롭게 바뀐 교포(우) [경기도교육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안성 공도중과 수원 삼일공업고는 친일 작곡가가 만든 교가를 바꾸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공도중은 학생과 학부모, 교직원, 동문 및 지역 주민들에게 가사 공모를 내 학교 공동체가 참여하는 교가를 만들 계획이다.
도교육청 민주시민교육과 박태준 사무관은 “일제 잔재를 없애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학생들이 잔재를 찾아내고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지 숙의하는 과정 자체가 역사교육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일제 강점기 시대의 독립운동사 이해를 통해 학생들의 올바른 역사관을 정립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도교육청은 도내 7개 교육지원청의 독립운동사교육지원협의회를 중심으로 일제 잔재 청산 프로젝트 지원, 지역에 특화한 교육자료 개발 등 생활 속 역사교육을 강화할 계획이다.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던 2019년 자주독립과 민주공화주의의 새 장을 연 역사적 사변을 기념하는 열기가 한 해 내내 지속되었다. 학계는 물론 문화예술계와 언론계에서도 다방면에 걸쳐 새로운 관점의 수많은 성과를 내놓았다.
이 중에서도 특히 주목을 받았던 노작이 KBS 탐사보도부가 제작 방영한 〈밀정〉 2부작 다큐멘터리였다.
제작팀은 1년 여간 ‘독립운동의 보이지 않는 적’ 밀정을 추적했다. 8개월간 일본 외무성과 방위성의 기밀문서, 헌정자료실에 보관된 각종 서신, 중국 당국이 생산한 공문서 등 5만 장을 입수해 분석했다. 그 결과 일제강점기 밀정 혐의자 895명을 특정했다. 여기에는 우리 모두가 깜짝 놀랄 수밖에 없는 상상조차 힘든 인물들이 다수 포함되었다.
〈밀정〉 2부작은 새롭게 찾아낸 밀정 혐의자 가운데 현재 독립유공자로 분류되어 있는 사람들을 집중 추적해 그들의 이상행적을 고발했다. 안중근 의사의 동지 중 한 명이었던 우덕순, 김좌진 장군의 최측근 참모 이정, 상해임시정부에 참여했던 김규흥, 의열단원으로 활동했던 김재영 등이 그들이었다. 제작팀은 새롭게 찾아낸 밀정 관계 자료들을 학계 전문가들을 통해 검증하여 공신력을 확보했다. 이와 함께 역사 다큐멘터리의 전형성을 탈피해 감각적인 영상과 음악으로 완성도를 높여, 이른바 2040 젊은 시청자들에게도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밀정이라는 생소하고도 무거운 소재를 대중적으로 이해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학계에서도 그동안 연구자들의 심층 탐구가 부족했던 밀정이라는 주제를 공영방송이 본격적으로 문제 제기한 데 대해 높이 평가하였다.
전문가를 방불케 하는 방대한 사료조사와 치밀한 검증, 여기에 추적보도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보겠다는 열정이 결합해 근래 보기 힘들었던 수작을 탄생시켰다. 탐사저널리즘의 전범을 개척한 제작진에 각계는 ‘임종국상’을 비롯한 무려 10여개가 넘는 상을 수여함으로써 이들의 노고에 응답하였다.
충격적인 내용으로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던 다큐멘터리 〈밀정〉이 1년간의 준비를 거쳐 책으로 거듭났다. 다큐멘터리와 마찬가지로 이 책은 대중적인 역사 읽기를 지향하고 있다. 취재 이면의 비화가 흥미로우면서도 정교한 추적과정이 끝까지 긴장감을 놓지 않게 한다.
밀정! 이들은 단순한 매국노나 부역자가 아니었다. 항일 대오 속에 잠입해 독립운동을 내부로부터 파탄시키려 한 가장 악질적인 민족반역자였다.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최일선에서 보위하고 있던 경무국에까지 밀정이 침투하고 있었으며, 구성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실시간으로 일제에 보고되는 형편이었다. 책을 읽노라면 독립투사들의 ‘동가숙 서가식’하는 신산한 삶이 저절로 떠오를 수밖에 없게 된다.
책에는 〈밀정〉 2부작뿐만 아니라, 제작진이 발굴하여 ‘KBS 뉴스9’ 톱뉴스로 보도해 3·1운동의 숨은 주역들을 집중 조명한 〈조선총독부가 작성한 3·1운동 계보도〉 취재기와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경주 최부잣집’에서 발굴된 사료를 분석하여 경주 지역 국채보상운동과 백산무역주식회사의 대한민국임시정부 독립운동 자금 지원을 심층 보도한 사례 등 지난 한 해 KBS 탐사보도부의 빛나는 활약상도 소개하고 있다.
무릇 역사에는 빛과 그늘이 있기 마련이다. 감추고 싶은 치부일수도 있지만 밀정이라는 ‘어둠의 자식’들이 있었기에 독립투사들의 헌신은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 이 책이 그동안 은폐되어 왔던 오욕의 역사를 백일하에 드러내는 한편으로, 일제의 간교한 분열 책동 속에서도 끝까지 신념을 굽히지 않았던 대다수 독립투사들을 다시 기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더불어 밀정들이 해방 이후 어떻게 변신해 갔는지 밝히는 후속작업도 기대해 본다.
[책소개]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한 2019년, 한 편의 탐사보도가 언론과 학계를 술렁이게 만들었다. 바로 KBS 탐사보도부의 다큐멘터리 〈밀정〉이다. 2부작으로 구성된 이 프로그램은 그간 학계에서조차 제대로 다루지 못했던 항일운동의 가장 어두운 지점, ‘밀정(密偵)’의 실체를 규명했고, 같은 해 친일청산과 관련해 가장 권위 있는 상이라고 할 〈임종국상〉을 비롯해 〈한국기자상〉 〈방송기자대상〉 등 10여 개의 관련 상을 수상하며 탐사보도의 한 획을 그었다.
하지만 이러한 환호의 저변에는 ‘밀정’이란 단어가 가진 어두운 무게가 자리한다. 밀정은 단순히 동족을 배신한 ‘괘씸한 사람들’이 아니다. 일제의 피라미드식 지휘체계 맨 아랫단에서 실핏줄처럼 곳곳에 뻗어나가 작동하며 일제국주의에 생명을 불어넣었던 존재들이다. 이들의 암약 속에 거사는 실패하고 독립운동가들은 체포되었으며 독립군은 절명의 위기에 처했다. ‘일본군 100명보다 밀정 하나가 더 무섭다.’ 독립운동 진영 내부에서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던 이 말은 그들이 얼마나 치명적일 수 있는지 짧고 명쾌하게 설명해준다.
일본외무성과 방위성의 자료실에 보관된 기밀보고서와 각종 서신, 중국 당국이 생산한 공문서 등 〈밀정〉 취재진이 입수한 5만 장의 문서들에 남겨진 밀고의 기록들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100주년을 넘긴 지금도 우리가 미처 다 헤아리지 못한 임시정부 초창기 멤버들의 사진, 3ㆍ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들의 계보도(밀정에 의해 작성되어 일제의 수배명단으로 쓰였을 이 체계적이고 상세한 명단에는 각계의 항일운동 핵심인물과 그 관계도는 물론 아직도 우리가 찾지 못한 숨은 영웅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다)도 이번 밀정 추적을 통해 발견되었다. 또, 안중근의 동지, 김좌진의 측근, 김구의 부하 등 그 손길이 미치는 범위 또한 실로 두려울 정도다.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밀정은 20여 명, 취재를 통해 밝혀진 밀정 혐의자는 895명
기억해야 할 역사에 대한 기록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밀정은 친일파와 다르다. 대외적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활동했으며 지금까지 어느 정도 역사적 평가가 이루어진 친일파들과 달리 암약했던 밀정들은 그들이 항일운동에 미친 그 치명적인 여파에도 불구하고 해방과 더불어 거의 아무런 청산의 과정 없이 역사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친일인명사전》에 기록된 밀정은 20여 명. 하지만 KBS 탐사보도부가 취재를 통해 추적한 밀정 혐의자는 895에 달한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얼마나 많은 독립을 향한 염원이 동지의 얼굴을 한, 혹은 자신이 지켜야 할 민족의 얼굴을 한 밀정들의 손으로 일제에 넘겨졌는가.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들이 남긴 배신의 기록을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는 독립운동의 숨은 주역들이다.
다큐멘터리 〈밀정〉이 그 역사의 아이러니 속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들을 발굴해내는 작업이었다고 한다면 이 책은 그 발굴의 기록이다. 제한된 방송시간에 미처 담지 못했던 자세한 자료 분석, 역사적 사건의 전후 맥락, 생생한 취재 과정과 적들의 기록으로부터 우리 내부의 적을 추적해야 했던 기자들의 소회가 더해져 있어 단순한 문자화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책의 차례
1장 축제의 시간에 돌아본 우리의 그늘
2장 임시정부의 얼굴 누가 빼돌렸나
3장 항일운동의 또 다른 서술자 밀정
4장 안중근의 동지, 그가 걸어간 다른 길
5장 김좌진 최측근이 밀고한 배신의 기록
6장 얼굴 없는 밀정이 기록한 만주벌 호랑이
7장 김원봉을 밀고한 부하, 그에게 수여된 건국훈장
8장 임시정부의 비자금줄 경주 최부잣집
9장 식민지 권력자가 내린 지령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파괴하라
10장 김구를 잡아라, 특종공작에 동원된 밀정들
11장 3·1운동 계보도, 휘발된 사람들을 찾아서
12장 해방과 동시에 사라진 이름 밀정
이 책의 저자
이재석 197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5년 KBS 보도본부에 입사, <군 댓글공작 최초 실명 폭로>, <국정원 4대강 반대 민간인 불법 사찰> 등 다양한 주제의 탐사보도를 해왔다. 다수의 특종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박정희, 독도를 덮다》(2016)가 있다.
이세중 2014년 KBS 보도본부에 입사해 주로 사회부와 탐사보도부에서 취재했다. <삼성물산 국가 상대 100억 사기 의혹>, <교도소 독방 거래> 등 다수의 고발 보도를 선보였다. <밀정 2부작>으로 <한국기자상> 등을 수상했다.
강민아 1990년생. 2014년 KBS <시사기획 창> 취재작가로 방송계에 발을 들였다. EBS 다큐프라임 <대학입시의 진실 6부작>(삼성언론상)에 참여했다.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 를 제작했다. TBS 제작본부 PD로 재직 중이다.
1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송영길,안민석,이상민 의원실 등 공동주최로 열린 ‘상훈법·국립묘지법 개정을 위한 국회 공청회’에 고 백선엽 장군 등 친일파 묘비 모형들이 전시돼 있다.|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이 친일 인사를 국립묘지에서 강제 이장할 수 있도록 관련법 개정을 준비하는 한편, 오는 15일 75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여론 띄우기에도 돌입했다. 송영길 의원 등 민주당 의원들이 주최해 13일 국회에서 열린 ‘상훈법·국립묘지법 개정을 위한 공청회’에서 참석자들은 프랑스의 ‘나치 협력자’ 페탱 장군, 스페인 독재자 프랑코 등 국립묘지 안장 자격을 박탈당한 해외 인사들의 사례를 들며 친일파 ‘파묘(강제이장)’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지난달 김홍걸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국립묘지법)’ 일부개정안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결정한 친일 행위자 등을 국립현충원 등 국립묘지 밖으로 이장하도록 하는 조항을 담고 있다. 이에 더해 지난달 타계한 고 백선엽 장군이 대전현충원에 안장되면서 여당 일각에서 ‘친일파 파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일제강점기 만주군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했던 백 장군은 2009년 발간된 친일인명사전에도 등재돼 있다. 반면 미래통합당 등 보수 야당은 “백 장군은 6·25 전쟁의 영웅”이라며 “여권에서 국론 분열에 앞장선다”라며 파묘에 반대한다.
이날 공청회를 주최한 송영길 민주당 의원은 “(친일 인사 강제이장을 위한)국립묘지법 개정은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 과정”이라며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아닌, 대한민국의 정신적 가치를 재확립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발제자로 나선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은 국립묘지 안장을 엄격히 심사하고 사후에도 재평가를 통해 안장 자격을 박탈하는 해외 사례들을 소개했다. 스페인의 독재자 프랑코 전 총통이 대표적이다. 1975년 사망한 프랑코는 마드리드의 국립묘지인 ‘전몰자의 계곡’에 묻혔다. 34년이 지난 지난해 스페인 정부는 프랑코의 시신을 파내 가족묘지로 옮겨 묻었다. 시신 이장을 주도한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이번 결정으로 국가의 공적인 장소에 독재자를 찬양하는 도덕적 모욕에 종말을 고했다”라고 자평했다.
프랑스는 사회 유명 인사를 국립묘지인 ‘팡테온’에 안장하기 전 엄격한 검증을 거친다. 최소 10년 이상 유예기간을 두고 사망자의 정치적 공과를 검증한다. 프랑스 혁명가 미라보가 ‘배신 행위’가 드러나 안장 자격을 박탈당한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1789년 프랑스 혁명에 기여한 공로로 프랑스 정부는 미라보가 사망한 뒤 그를 팡테온에 안장했다. 하지만 훗날 공개된 자료에서 미라보가 혁명 중에 루이 16세 측과 밀통한 사실이 드러났고 프랑스 정부는 그의 유해를 팡테온에서 끌어낸 바 있다.
한때 프랑스의 ‘국부’로 칭송받았던 앙리 필리프 페텡 원수는 안장 자격조차 얻지 못했다. 페텡 원수는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공로로 국민들의 존경을 받았지만, 1940년 프랑스를 침공한 독일군에 항복하고 이후 괴뢰정부인 ‘비시 내각’ 수반으로 나치 독일에 협력했다. 레지스탕스 명단을 나치에 제공하기도 했다. 결국 그는 2차대전이 끝난 뒤 부역 혐의로 사형을 언도받고 대서양의 외딴 섬에서 복역하다가 사망한다. 프랑스군 최고 계급인 원수까지 지냈으나 팡테온은 물론이고 유명 장군들이 묻히는 ‘앵발리드 묘역’에도 안장되지 못한다.
김 전 관장은 “더 이상 독립운동가와 일본군 출신들이 같은 장소에 잠들게 해서는 안 된다”라며 “국가의 상징적인 추모 위령시설에 부역 인사들을 안치하는 비정의가 지속되지 않도록 국회가 국립묘지법 개정을 서둘러야 한다”라고 말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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