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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톡] 적막의 시대에 만나는 인권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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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톡] 적막의 시대에 만나는 인권영화

익명 (미확인) | 금, 2018/06/01- 16:20

적막의 시대에 만나는 인권영화

다희 |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

레고 |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

 

인터뷰 및 정리 | 조준희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간사

 

 

정부가 지난 4월 공개한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초안에서 ‘성적 소수자’는 지워졌다. 차별금지 조항을 담은 인권조례가 폐기되는 것은 너무나도 순식간이었다. 팔레스타인에서, 성주에서, 그리고 수많은 이들의 집과 가게에서, 삶터를 지키려는 싸움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오는 6월 6일 서울 마로니에공원에서 열릴 스물세 번째 영화제를 준비 중인 두 명의 서울인권영화제 활동가를 만나 지금의 인권현실과 인권영화의 의미를 물었다. 지금의 상황을 ‘적막’이라 말하는 두 활동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자기소개 부탁한다

레고 |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 레고라고 한다. 서울인권영화제에서는 2012년 10월부터 상임활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다희 |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 다희라고 한다. 2015년 영화제까지는 자원활동가로 활동하다가, 2016년부터 상임활동가가 되었다.

 

각자 서울인권영화제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하고 있나?

레고 | 상임활동가가 두 명밖에 없다. 거의 모든 일을 다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다희 | 영화제 프로그래밍부터, 영상에 수어통역이나 자막을 넣는 기술적인 일, 대외 홍보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모든 일을 한다. 또, 영화제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것 외에도 인권운동과 관련한 연대활동도 중요한 활동 중 하나다.

레고 | 상임활동가 외에도 스무 명 정도의 자원활동가들이 함께하고 있다. 자원활동가들은 영화제를 그 시작단계부터 같이 고민하고 만들어가는 역할을 한다. 6월에 진행될 영화제를 위해, 1월부터 2~3개월간 성소수자, 노동, 환경, 평화, 여성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세미나를 함께 진행하고, 상영작도 함께 선정한다. 이 과정 자체가 우리에게는 아주 중요한 인권운동의 하나이다.

 

서울인권영화제라는 이름을 듣고, 1년에 한 번 열리는 영화제의 이름으로만 생각했다

레고 |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다. 서울인권영화제는 영화를 통해 인권운동을 하는 인권운동단체다. 1년에 한 차례 영화제를 치루는 것이 가장 큰 활동이지만, 표현의 자유와 누구나 인권영화를 볼 수 있는 환경을 위한 다양한 인권운동을 벌이고 있다.

 

벌써 23번째 영화제를 앞두고 있다. 서울인권영화제가 걸어온 길을 간략하게 소개해준다면?

레고 | 1996년 시작한 서울인권영화제는 원래 인권운동사랑방에 속해있던 영화제팀이었다. 당시에는 영화제라는 것조차 드물던 시절이었고, 특히 독립 다큐멘터리를 상영하기도 어려웠던 시절이다. 1997년 열린 2회 영화제에서는 제주 4ㆍ3항쟁을 다룬 <레드헌트>라는 작품을 상영하고자 했는데, 이 작품이 ‘이적표현물’이라며 상영장이 폐쇄 당했고 집행위원장이 구속, 인권운동사랑방은 압수수색을 당하는 등 탄압을 받았다. 기본적으로 우리 영화제에게는 표현의 자유를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운동이다. <레드헌트>에 대한 탄압에서 보듯이, 인권영화 상영과 표현의 자유는 뗄 수 없는 관계다. 그 기조는 지금까지도 인권영화에 대한 등급분류를 거부하고 정부와 기업의 후원을 받지 않는다는 원칙으로 이어가고 있다.

다희 | 2008년도 우리 영화제에겐 중요한 시기였다. 2008년부터 상영관이 아닌 거리에서 영화제를 열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영비법’)」을 개정해서 등급분류를 받지 않은 영상물을 상영관에서 상영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등급분류를 받지 않은 영화를 상영하면 그 상영관주가 처벌을 받게 법을 바꾼 것이다. 2008년 이전에는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등급분류를 거부하더라도 상영관에서 상영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 결국 2008년 영비법의 처벌규정이 신설되고 난 뒤, 표현의 자유를 지키고, 누구나 인권영화를 접할 수 있어야 한다는 영화제의 원칙에 부합하는 공간이 어디일까 고민하다 거리로 나오게 되었다.

 

원칙을 지키기 위해 정부나 기업의 지원을 받지 않는다는 점이 재정적으로는 어려운 상황을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다. 재정운영은 어떻게 하고 있나?

레고 | 아주 가끔 소액의 비영리 목적 기금을 활용하기도 하지만, 거의 100% 개인 후원활동가의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현재 320여 분의 후원활동가분들이 후원을 해주시고, 매월 270만 원 정도의 후원금이 들어오고 있다. 이 재정으로 사무실 월세와 최저임금의 50% 가량 밖에 안 되는 상임활동가 상근비를 충당하고, 남는 돈으로는 빚을 갚는다. 영화제를 한 번 치루고 나면 음향, LED스크린 대여, 기념품 제작 등에 들어간 빚이 생기는데 매월 후원금을 모아 아주 조금씩 갚아나가는 식이다.

 

영화제 상영작을 선정하는 기준과 과정도 중요할 것 같다.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가?

레고 | 기획전에 포함되는 영화나 해외작품의 경우 따로 섭외를 하기도 하지만, 국내작의 경우 대부분 공모를 받아 결정한다.  상영할 작품은 상임활동가와 자원활동가가 수개월간 함께 고민하는 과정을 통해 결정된다.

다희 | 상영작을 선정할 때는, 영화가 갖고 있는 형식에는 전혀 구애받지 않는다. 그보다는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가 중요하다. 그리고 간혹, 영화의 내용과 전혀 무관하게 상영 여부를 판단할 때도 있다. 그 영화를 둘러싼 사회적인 지형도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가령 우리 단체는 이스라엘에 대한 BDS운동에 동참하고 있는데, BDS운동의 취지에 따라 영화 내용과 무관하게 상영을 취소한 적도 있다.

 

이스라엘에 대한 BDS운동을 보다 구체적으로 소개해준다면?

다희 | 이스라엘에 대한 BDS운동은 이스라엘 제품이나 기업, 문화생산물에 대한 “Boycott(불매), Divestment(투자철회), Santion(제재)”운동을 뜻하는데,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해 팔레스타인 민중이 세계에 호소하고 있는 운동이다. 영화제와 관련지어 설명하자면, 현재의 점령 상황을 희석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거나, 이스라엘 정부 또는 정부가 관여하는 기관의 지원을 받은 영상물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동참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재정적, 정책적으로 성소수자에 관한 영화나 행사를 많이 지원한다. 성소수자 영화 지원을 통해 중동에서 유일한 인권친화적 국가라는 이미지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영화가 현재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상황을 ‘공존’으로 해석하는 등 점령 상황을 미화한다면 역시 상영 거부의 대상이다. 우리가 그런 영화를 상영하게 되면, 이스라엘 정부가 대외적으로 보이고 싶어 하는 메시지가 세계 어딘가에서 한 번 더 상영된다는 것이고, 결국 이스라엘의 반인권적 행태에 공모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서울인권영화제의 영화 선정기준은 영화의 내용과 함께, 그 영화를 둘러싼 사회적 지형을 함께 고려한다.

 

오는 6월 6일 마로니에 공원에서 제23회 서울인권영화제가 열린다. 이번 영화제 슬로건이 “적막을 부수는 소란의 파동”인데,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

레고 | 올해는 슬로건을 정하는 데까지 참 오래 걸렸다. 슬로건은 보통 상영작 선정이 끝난 후 상임활동가와 자원활동가가 모여 상영작들의 분위기와 현재 한국사회를 나타낼 수 있는 것으로 고르곤 한다. 작년까지만 해도 슬로건을 결정할 때 아주 선명한 문제의식이 있었다. 가령 정부가 동성애에 반대한다면 뚜렷하게 그에 저항하는 슬로건이 나오는 식이다. 그런데 올해는  다들 무엇이 문제인지 선명하게 이야기하기 어려웠다. 인권과 관련한 문제는 여전하고, 오히려 더 후퇴하고 있는데도 사회적으로는 마치 모든 것이 평화롭고 행복하다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분명 문제가 존재함에도 그것을 이야기하기 어렵게 만드는 현실을 ‘적막’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또, 그 적막을 부수어야 한다는 것에 활동가들의 공감이 있었고,  그것을 부수는 행동의 양상을 ‘파동’으로 표현했다. 파동이라는 것은 그 속성상 서로 만나면 더 커지기도 하고, 다른 모양으로 번져 나가기도 하지 않나. 파동과 같은 소란이 모여 지금의 적막을 부수어 보자는 취지다.

다희| 적막은 현재 정부의 태도에 대한 것이기도 하고, 혐오를 ‘장난’이나 관행으로 치부하는 사회적인 분위기를 의미하기도 한다. 적막이라는 상태는 누군가 소란을 일으키기 전에는 매끈하고 평상적인 상태인 것처럼 보이는데, 한 예로 미투운동은 이런 적막을 깨는 큰 소란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소란들이 개별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파동이 서로 만나 커지는 것처럼 서로 연결되는 것을 우리는 확인하고 있다. 그래서 이번 슬로건에는 개별적인 것처럼 보이는 소란들이 서로 만나 연대해 이 사회의 적막을 부순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고 싶었다.

 

<사진=서울인권영화제>

 

개막작은 용산참사 그 이후를 다룬 <공동정범>이다. 개막작으로 선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레고 | <공동정범>은 이번 영화제에서 개막작인 동시에, ‘투쟁의 파동’이라는 섹션에 포함되어 있다. ‘투쟁의 파동’ 섹션은 투쟁의 과정에서 생기는 관계의 변화에 주목한 섹션이다. 사람들은 흔히 투쟁 과정에서 갈등이 생기면 너무나도 쉽게 그 투쟁을 ‘망했다’고 표현하는 것 같다. 하지만 용산참사 이후 철거민들의 감정과 갈등을 다룬 <공동정범>을 통해 투쟁이 만든 관계의 변화가 결국 다시금 그 투쟁으로 매개된다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같은 섹션의 <바위처럼> 역시 남아프리카공화국 마리카나 지역의 투쟁과 그 속에서 일어나는 관계의 변화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다희 | 이런 관점은 이번 영화제의 슬로건과도 연결된다.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끄집어 내어 이야기해보자는 것이다. 투쟁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 다뤄져 왔지만, 투쟁 안에 있는 갈등을 드러내고 이야기하는 기회는 흔치 않았다.

 

개막작 외에 더 소개해주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레고 | 폐막작인 <잇다, 팔레스타인>이란 영화를 소개하고 싶다. 올해가 나크바 70주년이다. 나크바는 1948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침공하면서, 수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추방당한 사건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마침 오늘이 ‘나크바의 날’이다(인터뷰 날짜는 5월 15일이었다). <잇다, 팔레스타인>은 팔레스타인에 살지는 않지만 팔레스타인 민족 정체성을 가진 12명의  여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잇다, 팔레스타인>에 등장하는 팔레스타인 여성들은 팔레스타인 전통 자수를 통해 자기 정체성을 지키고 증명한다. 자수를 하는 행위가 곧 그들이 팔레스타인 정체성으로 존재하는 방식이고 일종의 저항이기도 하다.

다희 | 모든 영화가 중요하지만, 꼭 한 두 작품을 소개한다면, ‘제주 4ㆍ3 70주년 특별전’ 섹션에서 상영되는 영화들을 소개하고 싶다. 어떤 사건이 이야기될 때, 그 현장의 많은 사람들은 주로 남성으로 대표된다. 제주 4ㆍ3의 경우에도 당시를 증언했던 화자는 주로 남성이었다. 4ㆍ3 특별전을 준비할 때, ‘피해는 여성에게 굉장히 다른 양상으로, 크게 작용했는데 이야기하는 사람은 왜 항상 남성일까’라는 고민이 있었다. 그래서 4ㆍ3에서의 여성은 어땠는지 그리고 그 당시를 여성이 이야기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살펴보고 싶었다. 이 섹션에서는 영화가 끝나고 ‘광장에서 말하다’라는 한 시간 가량의 프로그램도 진행해, 함께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장이 마련될 예정이다.

 

영화제가 끝나면 하반기에는 주로 어떤 활동을 하나?

레고 | 하반기에는 월 1회 주기로 진행하는 정기 상영회에 집중하고 있다. 정기 상영회는 주로 실내 공간을 대관해서 진행하는데, 가끔은 투쟁의 현장에서 직접 상영하기도 한다. 작년에는 젠트리피케이션을 다룬 영화를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고 있는 해방촌에서 상영했다.

다희 | 정기 상영회 외에는 상영지원 활동을 한다. 영화제를 통해서는 1~2회 상영으로 끝나기 때문에, 그 때를 놓쳐 영화를 보지 못하는 분들이 많다. 그래서 모임이나 단체 등으로부터 상영지원 신청을 받아 영화제에서 상영했던 작품을 제공한다. 각 지역 인권영화제나 인권교육을 하는 모임 등에서 신청이 많은 편이다. 작년에는 여성인권과 관련한 작품을 많이 상영했다.

 

활동하면서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가?

레고 | 돈이 없다는 것 아닐까. 재정적으로 조금만 더 여유가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것 같다. 특히 상영지원이 가능한 작품을 늘리기 위해서는 아카이빙 비용이 필요하다. 1~2회 상영하는 상영 비용에 비해 작품을 보관하고 재상영할 수 있는 아카이빙은 그 비용이 더 많이 든다. 감사하게도 아카이빙 비용을 받지 않으시고 작품을 맡겨주시는 감독님들도 계시지만, 해외작의 경우 대부분 배급사에 아카이빙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서울인권영화제에서 상영했던 작품은 한글자막, 수어통역, 화면해설 등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아카이브가 커질수록 더 많은 사람이 더 쉽게 인권영화를 접할 수 있을 것이다.

다희 | 덧붙여서,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다면 장애인 접근권에 대한 활동을 더 벌이고 싶다. 서울인권영화제는 한글자막, 수어통역, 화면해설을 영상에 포함시키고 있다. 그 외에도 영화제 현장에 활동 보조를 지원하고, 점자 리플렛을 만들거나, 휠체어 이동경로를 약도에 넣는 등 영화제를 거듭할 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더 개선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영화제가 끝나면 장애인 접근권 보장을 위한 가이드북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한다. 영화에 대한 접근권은 물론이고, 어떤 행사에서든 장애인 접근권을 위해 참고할 수 있는 가이드북 말이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여력이 없어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활동계획은 무엇인가?

레고 | 앞서 이스라엘에 대한 BDS운동에 동참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렸다. 더 많은 문화운동 단체가 이 운동에 동참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래서 문화운동에서 참고할 수 있는 이스라엘에 대한 BDS운동 가이드북을 만들고 싶다.

다희 | 인권영화제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을 다른 단체들과 공유하고 싶다. 서울인권영화제의 자원활동가 모임이나 장애인 접근권을 위한 활동에 관심을 주시는 분들이 많다. 우리 또한 영화제를 할 때 마다 부족한 점을 채우기 위해 늘 고민한다. 인권운동을 하는 단체가 서로의 운동 과정을 공유하다 보면 보다 민주적이고, 장애인 접근권이 보장되는 활동을 해나가는 데 서로 도움이 되지 않을까.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레고 |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결국 영화제에 많은 분들이 와주시고, 영화를 함께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꼭 와주시길!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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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의 글

 

김아래미 복지동향 편집위원, 서울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지난 8월 26일 아프가니스탄에서 ‘특별기여자’ 378명이 한국에 입국하였다. 선진국에 걸맞은 책임 있는 대응이라며, 대체적으로 환영하고 있고 감격해 하는 분위기까지 있다. 그러나 바로 며칠 전의 국내 미군기지에 ‘난민’ 수용 가능성 기사에는 많은 사람들이 엄청난 우려와 반대를 나타냈다. 혐오표현과 차별언어가 난무했다. 같은 아프가니스탄인인데도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이주민에게는 성과주의적 관점을 적용하는 경향이 있다 보니 기여도나 생산성이 기대되는 이주민에게는 너그러워지는 편이나, 인도주의적 조치에 대해서는 매우 냉정하고 불관용적인 모습을 많이 보인다. 이주민을 대상으로 역설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례는 이 외에도 매우 쉽게 찾아볼 수 있다. 2015년 아일란이라는 시리아 난민아동이 해변에서 사망한 사진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지만,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 시각은 거의 바뀌지 않았다.

 

이러한 인간의 패러독스는 이주민의 사회권 보장 이슈에서도 드러난다. 사회보장협정을 통해 내가 외국에서 사회보험을 이용하는 것에는 찬성하지만, 이주민이 우리나라에서 사회보험을 이용하는 것은 껄끄러워 한다. 한국 국적자와 이주민 모두 코로나19를 겪고 있고, 차별과 배제 위험으로 이주민의 재난피해 가능성이 더 높지만, 이주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주는 것에는 인색하다. 1~4차 재난지원금 지급 과정에서 재난지원금 대상을 국민으로 경계 짓는 것에 대해 많은 비판이 있었음에도 5차 재난지원금의 대상에서 200만 외국인 중 170만 명은 여전히 배제되었다. 재외국민이 외국에서 이러한 대우를 받는다면, 재난에 국적이 어디 있냐며 모든 인간을 동등하게 대우하는 것이 공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한국 사회는 이주민이 약 4~5%로 소위 ‘단일민족사회’에서 벗어난 지 꽤 되었고, 앞으로도 초연결사회구조에서 이주민은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권은 인간의 패러독스와 경계 짓기 속에서 ‘국민’이라는 경계 내에서 논의되어 온 편이다. 그러나 누구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권리는 있다는 점에서 한국사회 복지체제에서 사회권은 국민이라는 경계를 넘어서서 논의될 필요가 있다. 기존의 이주민 권리에 대한 논의가 주로 결혼이주여성, 이주노동자, 이주아동, 북한이탈주민 등 이주민의 세부집단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을 고려하여, 이번 호에서는 이주민의 사회권을 복지국가 및 사회보장체계의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먼저, 김규찬 교수는 복지국가에서 이주민의 사회권이 보장되기 위해 필요한 논리와 구조를 살펴보고, 포용적 복지국가를 위한 사회권의 발전 과제를 원론적 차원에서 논의하였다. 다음으로는 김기태 박사와 곽윤경 박사가 노동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사회보험이 이주민의 사회권을 어떻게 보장하고 있고, 사회보험의 차별적ㆍ배제적 요소와 정책과제는 무엇인지를 제시하였다. 마지막으로 김옥녀 교수는 이주민의 사회서비스 이용권 현황을 종합적으로 정리하고, 이주민의 세부집단에 편중된 사회서비스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해결과제를 제안하였다. 

 

모든 사람에게 부여된 인권을 강조하는 사회복지계에서 관련 논의에 이주민을 배제해 왔다는 점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필요하다. 그리고 앞으로는 복지국가 및 사회권 논의와 사회보장정책 및 서비스 대상에 이주민을 당연히 포함시켜야 한다. 이주민이 시민으로서 생산, 소비, 납세 등을 이행하고 있는데 사회권 보장체계에서 배제되어 있는 현실의 부당함을 직시하고 해결해야 한다. 또한, 이주민도 한국사회구조가 야기하는 사회적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사회는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이주민도 증명할 필요 없는 사회권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패러독스와 경계 짓기를 멈추고 이들에게도 사회권을 동등하게 보장해야 한다. 더 미뤄서는 안 된다.

목, 2021/09/02-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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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의글

https://www.peoplepower21.org/index.php?mid=Welfare&listStyle=list&docum... rel="nofollow">[편집인의글] 복지동향 제275호 | 김아래미 서울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복지동향 편집위원

 

기획주제 : 인간의 패러독스와 경계 짓기로 배제되고 있는 이주민의 사회권

https://www.peoplepower21.org/index.php?mid=Welfare&listStyle=list&docum... rel="nofollow">[기획1] 복지국가와 이주민의 사회권│김규찬 강릉원주대학교 다문화학과 교수

https://www.peoplepower21.org/index.php?mid=Welfare&listStyle=list&docum... rel="nofollow">[기획2] 이주노동자의 건강보험 현황과 문제점│곽윤경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

https://www.peoplepower21.org/index.php?mid=Welfare&listStyle=list&docum... rel="nofollow">[기획3] 이주노동자의 3대 사회보험 현황 및 정책 제언│김기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

https://www.peoplepower21.org/index.php?mid=Welfare&listStyle=list&docum... rel="nofollow">[기획4] 이주민의 사회서비스 이용권│김옥녀 숙명여자대학교 정책대학원 사회복지학과 다문화정책전공

 

동향

https://www.peoplepower21.org/index.php?mid=Welfare&listStyle=list&docum... rel="nofollow">[동향1] 모두에게 평등한 돌봄을 위하여│조희흔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간사

https://www.peoplepower21.org/index.php?mid=Welfare&document_srl=1821956" rel="nofollow">[동향2] 저소득 한계채무자의 안정적인 사회 복귀를 위해 기준 중위소득 대폭 인상 필요하다 | 신동화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간사

 

복지톡

https://www.peoplepower21.org/index.php?mid=Welfare&document_srl=1821930" rel="nofollow">[복지톡] 실업급여 갑질? 고용보험 실업급여 수급은 사장님이 정하는 게 아니에요!│최혜인 민주노총 법률원 노무사

 

복지칼럼

https://www.peoplepower21.org/index.php?mid=Welfare&document_srl=1821918" rel="nofollow">[복지칼럼] 불평등사회에 갇힌 청년을 먼저 구하라│김승연 서울연구원 도시사회연구실장

 

목, 2021/09/02-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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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욱 호서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

지난해 6월 필자는 본지에 윤석열 정부 소득보장제도의 전망과 과제에 대한 짧은 글을 쓴 바 있다. 한편으로는 문재인 정부 소득보장 부문의 성과와 한계를 평가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윤석열 대통령의 선거공약과 정부 출범 후 제시한 국정과제를 비교하였다. 굳이 요약하자면 지난 정부에 비해 새로울 것 없이, 팬데믹 시기 소득 위기를 타개할 청사진조차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현 정부 소득보장제도에 대한 우려였다. 어느덧 1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최근까지 국민연금이나 실업급여 등 일부 제도조정을 위한 시도가 있었으나 윤석열 정부의 성과라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은 아직 없는 상태이다. 정부는 국정과제 발표한 지 1년 넘게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행계획도 발표하지 않고 있다. 이번 정부 들어 정부 씽크탱크라고 할 수 있는 정책기획위원회가 폐지된 상태에서 정부의 공식 자료로 확인할 수 있는 정책의 구체적인 진행 과정과 성과는 제한적이다. 이 가운데 올해 초 보건복지부의 대통령 업무보고가 있었다. 윤석열 정부가 2022년 5월에 출범했으니 이번 복지부 업무보고는 사실상 국정과제 이행을 위한, 윤석열 정부만의 고유한 세부 플랜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 글에서는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 내 소득보장 분야의 진행 상황을 복지부 업무보고를 통해 점검하고 평가하고자 한다. 

본격적으로 논의에 앞서 개념을 짚을 필요가 있다. 많은 사회과학 연구와 칼럼, 정부보고서에서 소득보장 혹은 소득보장제도라는 개념을 활용하지만, 소득을 보장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소득보장제도에 포괄되는 정책에는 무엇이 있는지 등에 대해 합의는 없다. 통상 소득보장은 통상 질병, 실업, 사고 등으로 인한 소득의 중단 혹은 상실이 발생할 경우 시장에서의 일차분배를 재분배하는 사회보장제도의 일부 혹은 그 기능을 일컫는다. 따라서 소득을 보장하는 정형화된 제도나 정책프로그램으로 명확히 구분할 수 있다기보다 다양한 노동-경제사회정책들이 소득을 정책적으로 재분배하기 위해 수행하는 활동과 성과를 의미한다. 그럼에도 혹자는 소득보장‘제도’를 사회보장(통상 개념적으로 사회보험과 공공부조, 사회복지서비스의 총체)과 혼용하여 쓰기도 하고, 연금과 각종 수당 및 현금성 급여(대표적으로 생계급여)만을 소득보장‘제도’로 간주하기도 한다. 시중의 사회보장 관련 교과서에서도 김태성 서울대 교수의 기여와 소득/자산조사 여부를 활용한 소득보장제도 분류법 정도가 소개되는 데 그치고 있지만 이 또한 개념적 엄밀성이나 역사성, 학계의 통상적 인용 등을 가진 설명은 아니다(이에 따르면 다양한 보편적 수당제도, 사회보험, 공공부조가 이에 해당된다). 필자도 작년 윤석열 정부 소득보장제도를 전망하면서 개념적 엄밀성을 고려하지 않고 국민연금, 기초연금, 기초생활보장, 근로장려금 정도를 소득보장으로 ‘퉁’쳤음을 고백한다. 향후 소득보장 혹은 소득보장제도의 이론적 개념화, 세부 구성, 범위, 타 제도와의 관계 등이 학술적으로 충분히 검토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논의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우리는 ‘소득보장’을 어떤 제도로 구현할 수 있다고 보는지 정부의 입장(?)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많은 문서들이 있지만 그나마 가장 확실한 기준으로 삼을만한 것은 정부가 법률에 근거하여 작성한 ‘사회보장기본계획’이 아닐까 한다. 2014년 발표한 1차 기본계획에 따르면 소득보장은 국민연금, 사적연금, 그리고 기초연금(구 기초노령연금)으로 달성되는 것으로 보았고 주로 연금과 같은 노후소득보장 관계정책과 일부 농어촌 주민들 대상 소득보조 사업이 언급되는 수준에서 논의되었다. 2019년 2차 기본계획에서는 소득보장을 노후소득보장과 근로연령층 소득보장으로 더 세분화하였다. 이에 따르면 노후소득보장은 공적연금, 퇴직연금, 기초연금, 생계급여를, 근로연령층 소득보장은 고용보험, EITC, 기초생활보장제도 내 자활급여 등으로 구성된다. 다만 국회예산정책처는 2020년 편찬한 보고서에서 소득보장분야를 ‘취약계층대상 소득보장’(생계급여, 자활급여, 장애인연금 및 장애(아동)수당)과 ‘노후소득보장체계’(기초연금, 국민연금, 특수직역연금, 퇴직연금, 농지연금)로 소득보장의 범위를 재조정하였다(근로연령층 소득보장은 고용 분야 분석으로 이관). 다만 여기서 일부 재정사업들(출산크레딧, 실업크레딧, 농어업인 보험료 지원, 공무원 및 군인연금의 국가보전금 등)도 소득보장에 포함하였다. 확고하다고 볼 수 없고 다소 불명료한 점은 있지만 필자는 최대한 정부의 이러한 분류법에 기초하여 출범 2년을 맞은 윤석열 정부의 소득보장제도의 성과와 과제를 검토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소득보장 관련 국정과제의 성과는 고사하고 그간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문제점은 없었는지, 향후 어떤 구체적 실행계획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턱없이 부족했다. 2023년 복지부 주요 업무 추진계획을 살펴보자.

일단 그간의 추진 성과가 지나치게 부족하다. 작년 보건복지부는 업무보고를 통해 문재인 정부 기간 새로운 소득보장제도(아동수당 도입, 생계급여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노인 및 사회서비스 일자리 확대 등)를 도입하고 대상 및 보장 수준을 대폭 강화함으로써 시장불평등에도 불구하고 불평등을 개선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올해 복지부는 소득보장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그리고 주요 정책성과로 약자 복지 기반 마련과 생애주기별 취약 대상맞춤 돌봄을 확대하였고, 건보료 부과 체계 개편, 코로나19 대응, 바이오헬스 글로벌 도약 가능성 확인을 제시하였다. 다른 많은 성과가 있어도 굳이 넣지 않았던 건지 모르겠지만 복지부가 밝힌 윤석열 정부 보건복지 주요 성과는 이게 전부다. 그나마 작년 9월 안상훈 사회수석이 발표하여 아직까지 논란이 되고 있는 ‘약자복지’도 긴급복지 및 자립수당 확대, 국공립어린이집 확대 및 시간제보육개편, 노인재택의료센터 도입, 발달장애인돌봄대책 마련, 부모급여 도입 정도다. 이 가운데 소득보장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기존 양육수당을 확대하여 만 2세 미만 보호자에 매월 최대 70만원을 추가로 지급(단 보육료 바우처만큼 감액)하는 부모급여 도입 정도인데, 이마저도 아동수당법이 법사위에 계류되어 있어 실제 집행이 될지, 언제 어느 정도 될지는 미지수다. 역대 최대 인상폭(5.47%)이라고 홍보한 기준중위소득도 사실상 그간 기재부 반대로 매번 무산됐던 것을 이번 정부 들어 ‘21년 합의한 로드맵대로 이행하는 수준에 그친 것이다. 상병수당 도입논의는 ‘시범사업 중’(25년 6월까지 예정)이라는 말 하나로 거의 모든 걸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특이사항이 없다. 생계급여 선정기준도 현행 기준중위소득 30%를 35%로 상향할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언급하는 수준에 그쳤고, 재산기준 완화나 의료급여 부양의무자기준개선도 올해 8월에 나올 예정인 ‘기초생활보장종합계획(’24~‘26)’에 반영하겠다는 정도의 계획을 제시한 정도다. 실업급여와 육아휴직 급여확대에 대해서는 일부 논의가 진행되었을 뿐 검토단계에 들어가지도 않은 것으로 보인다. 국민들, 특히 저소득계층의 소득 위기를 어떻게 보호했는지 매년 비슷하게 반복되는 성과조차 내세우지 않고 오로지 계획과 검토만이 있을 뿐이다. 그나마 기초연금을 최대 40만원으로 인상하겠다는 국정과제는 매년 물가상승률만 반영해도 몇 년 안에 달성될 것이기에 아이러니하게도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더라도 임기 말까지는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윤석열 정부의 가장 왕성한(?) 소득보장 개선 노력은 국민연금개혁 논의로 모아질 것으로 보이나 개혁이 아니라 개악이라는 논의가 지배적이다. 현 정부의 연금개혁에는 기금(돈) 운영만 있을 뿐 정작 국민의 안정적 노후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에 대한 고려는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공약으로 대통령 직속 공적연금개혁위원회를 설치하여 자신의 연금개혁의지를 공론화하겠다고 밝혔으나, 국정과제에서는 국회 설치로 선회하여 논란의 중심에서 피해가는 전략을 선택하였다. 이에 현재 4월 종료 예정인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가 운영되고 있지만, 언론을 통해 일부 조정안이 확대 보도되는 등 논란만 확산되었을 뿐 정작 연금개혁 당사자를 대상으로 하는 공론화위 활동은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 와중에 국민연금 기금운용위는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최근 기업범죄 전문 검사 출신을 연기금 상근전문위원으로 임명하는가 하면 노동계 기금위원을 특별한 사유 없이 해촉하였고, 찬반토론을 무시하고 안건을 상정하여 수탁자책임전문위원을 줄이고 이를 복지부 장관이 임명하겠다며 표결처리를 강행하였다. 박근혜 정부 당시 삼성물산 합병사건을 계기로 2020년 이후 기금의 거버넌스와 민주주의를 공고히 하기 위한 제도적 노력을 단 3년만에 와해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프랑스가 엄청난 대중적 공분에도 불구하고 연금개혁을 강행한 바를 배워 우리도 소득대체율을 낮추고 보험료를 올리는 연금개혁을 달성하자는 주장을 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이건 비교 대상이 아니다. 프랑스는 정년을 연장하여 수급개시연령을 늦추자는 것으로, 사실은 수급개시연령이 아니라 정년연장, 즉 보다 오래 일하라는 정부의 개혁안을 대중들이 거부하는 것이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실질은퇴연령은 OECD 국가 중 가장 길지만, 근속연수는 가장 짧은 국가이다. 젊을 때부터 다닌 안정적 직장에서 빨리 퇴직하면서 부득이 노인이 되어서 저임금 일이나마 놓지 못하는 나라라는 것이다. 당해연도에 걷은 보험료와 세금으로 당해에 연금을 지급하기 위해 연금보험료 28%를 걷어 소득대체율 60%(우리는 각각 9%, 42%)의 제도를 운영하는 프랑스의 연금개혁을 보고 우리도 개혁하자는 것은 마치 다이어트를 위해 운동을 더 하라는 걸 보고는 영양상태가 좋지 않은 사람의 음식을 빼앗는 것과 다름없다. 기만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국민연금기금의 기본 목적은 가입자의 안정적인 노후연금 지급에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제도의 지속을 진정으로 바란다면 적정한 노후소득을 보장하기 위해 어떠한 재정운용 전략을 가져야 하는가와 같은 인식의 흐름이 당연하다. 그러나 정부는 적정 노후에 대한 고려 없이 연기금 고갈과 재정안정화만을 반복적으로 강조할 뿐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국민연금의 제도적 기반이 훼손되거나 불안하다고 인식될수록 기금운용의 실질적인 지배권을 가지려고 욕망하는 기재부 등 재정권력과 민간 금융권은 반사이익을 얻는다. 실제 민간 금융회사들의 재정적 지원을 받는 일부 연구집단들은 지속적으로 연기금의 고갈을 강조하고 국민연금이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제도로 완전히 탈바꿈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런 것을 보면, 정부와 재정안정화론자들은 국민연금기금을 쌓아두기만 하고 활용 가치가 낮아 소위 경제 전체에 사중손실을 유발하는 수괴 정도로 여기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본다. 연기금의 지속가능성을 지속적으로 공격하는 논의는 국민연금이 노후소득보장이 아니라 재정안정이 목적이라고 대중들을 현혹시키는 데 매우 유용한 도구로 기능한다. 하지만 연기금 및 연금제도의 지속가능성은 단순히 기금투자수익률이나 보험료의 문제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인구구조와 노동시장의 문제라는 점은 명확하다. 전세계 가장 낮은 출생율과 그에 따른 빠른 속도의 고령화라는 제약조건 속에서 기금의 적극적인 사회적 보호의 역할을 방관한 채 기금을 보호해야 한다는 재정 관료들과 재정안정화론자들의 주장은 사실상 국민연금제도를 포기해야 한다는 주장에 다름 아니다. 기금고갈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고, 연금논의가 세대갈등으로 번져가는 지금의 상황은 제도에 대한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 들어 올해도 어김없이 기금재정재계산이 발표되었고 상당한 사회적 논란만 가중된 채 뚜렷한 해법이나 논의의 진전은 나오지 않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연금과 노동시장에 대한 청년들의 불만을 일부 양분삼아 집권에 성공한 현 정부는 정작 논의를 국회로 넘긴 채 위원회의 민주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자기 사람 심기에 바쁜 무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글은 2년 차를 맞는 윤석열 정부가 국민의 불안한 삶을 어떻게 얼마나 보호했는가를 살펴보기 위해 쓴 글이다. 대체로 이런 종류의 글은 성과의 과오를 판단하고 더 나은 개선을 도모해야 한다는 정도의 내용으로 구성한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소득보장 성과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평가할 내용이 부족하다. 무엇인가를 했다면 그걸 평가하면 될 일이지만, 뭔가를 별로 하지 않은 상태라면 평가도 궁색할 수밖에 없다. 정부 초기부터 윤석열 정부에 대한 최대의 우려는 무능이었다. 초기에는 주로 대통령 개인의 정치 및 국정운영 경험 부족이 집중적으로 거론되었다면, 지금 시점에서는 정권 자체의 무관심이 문제가 아닐까라는 우려를 하게 된다. 약자복지라는 이상한 용어를 내세웠지만 정작 긴급복지, 자립수당, 기준중위소득에서 소폭 인상하고 기존 양육수당을 일부 확대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데 그쳤다. 의료급여 부양의무자기준도 개선을 추진하겠다는 막연한 계획만 있을 뿐이다. 

어느 정부 때나 그랬지만 정권이 바뀌면 취약계층들은 일말의 희망을 갖는다. 특히 소득과 건강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위기가구라면 그러한 희망만이 거의 유력한 탈출구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아직 그러한 희망은 구체적으로 실현되지 못한 것으로 보이며 그나마 미약한 계획만이 있을 뿐이다. 남은 집권 기간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계획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그러는 사이 박스를 주워 생계를 유지하는 노인과 밥을 굶는 아이, 단칸방에서 맞는 고독사, 병원에 가지 못하는 장애인, 경제적 이유로 극단적 선택을 하는 뼈아픈 사례들을 목격하게 될 것이라는 걸 부정할 수 있을까. 팬데믹이 휩쓴 가계의 불안은 과거 가족 동반자살이라는 말로 포장되었던 자녀살해, 가족살해, 자살이라는 극단적으로 파괴적인 모습으로 여전히 언론에 등장하고 있다. 모든 정권이 동일한 정책목표를 가지고 유사한 성과를 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백번 양보하여, 정부가 국민의 소득을 안정적으로 보호하는 데 능력이 부족할 수는 있다. 이는 다른 많은 정책자원들을 활용하면 대체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무관심은 다른 문제다. 부디 이러한 우려가 기우이기를, 그리하여 남은 집권기간 동안 말잔치로 끝나지 않고 위험에 처한 국민들을 따뜻하게 보호하기 위해 무언가라도 하는 국정을 펼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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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23/04/03-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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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용 동국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들어가며

참여연대가 발간하는 『복지동향』 지난 2022년 6월호는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에 대한 진단과 평가를 다루었다. 여기서 남기철 교수는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경우, 통상 과거 정부의 정책은 폐기되거나 새로운 브랜드로 덮여지는 일이 많지만 사회서비스 정책에 있어서 새 정부의 국정과제는 사실상 큰 변화가 없음을 지적하였다(남기철, 2022). 급증하는 돌봄·복지 수요에 대응하고, 양질의 일자리 창출하고, 사회서비스 산업 발전을 통해 복지와 고용성장의 선순환을 구현한다는 정책방향은 2000년대 중반 사회서비스 정책이 도입된 이후 큰 변화 없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정치적 시각으로 보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차별화된 철학과 비전이 있다. 공공성 강화와 좋은 공공일자리 확충을 추진하였던 문재인 정부의 사회서비스를 현금급여의 대체재 그리고 민간시장 활성화를 목적으로 하는 윤석열 정부의 사회서비스와 동일하다 볼 수 없다. 그러나 아무리 문재인 정부의 예외적 노력이 있었다 하더라도 지난 20년간 사회서비스 정책의 산업화 방향은 흔들림 없이 견고한 것도 사실이다. 오히려 새 정부 출범 1년의 시점에서 우리는 사회서비스 정책의 솔직한 속내를 보게 되었다. 사회서비스 혁신이란 절실한 수요의 변방에서 산업적 진흥을 위한 것이고, 공공의 규제는 최소화되어야 자율적 시장이 형성되며, 노인·아동·장애인의 ‘돌봄을 받을 권리’에는 관심이 없다. 

이 글에서는 폭증하는 돌봄 수요에도 불구하고 서비스 보장이 아니라 신규 일자리 창출이라는 경로적 왜곡이 점철된 사회서비스 정책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새 정부의 사회서비스 국정과제는 민간 주도 사회서비스 혁신으로 지속가능한 한국형 복지국가를 이루는 것이다. 여기서 혁신이란 산업화를 통한 ‘복지·돌봄 서비스 고도화’이며, 지속가능이란 ‘개인의 부담 능력에 따른 소비’를 의미한다. 국정과제로는 규모화와 다변화를 통한 수요·공급의 확대, 혁신 기반 구축, 종사자 처우 개선의 세 가지 주요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추진 방향과 동일하다. 문재인 정부 사회서비스원으로 대표되는 공공성 강화는 열악한 서비스 질로 수요가 낮고, 고용안정으로 혁신이 저해되며, 다수를 차지하는 민간 일자리의 상대적 박탈감을 야기할 뿐이라는 기존 비판에 따른 것이다. 물론 지난 정부 사회서비스 공공성 강화 모델의 실패가 뼈아프다. 그러나 새 정부의 사회서비스 전략은 문제를 제기한 영역에 대한 해법이 아니다. 사회서비스의 범주와 목적이 달라졌다. 문재인 정부의 공공성 강화는 한국형 돌봄국가를 어떻게 형성할 것인지 보편적 돌봄의 보장성 강화와 돌봄종사자의 처우 개선을 주로 다루었던 반면, 새 정부의 혁신과 고도화 방향은 사회서비스 산업 육성을 염두에 두고 상품성이 있는 서비스 창출에 몰두하고 있다. 이미 막대한 재정투입에도 미충족 수요가 광범위한 노인요양과 장애인돌봄 등 보편적 사회서비스 몸통은 보지 않고, 보건복지부 사회서비스정책과의 주무사업인 전자바우처 사회서비스 사업이 혁신을 대표하고 있다.

사회서비스 정책에 대한 동상이몽 : 보편적 공공서비스 vs 수요자 중심 민간서비스

사회서비스 정책은 노무현 정부에서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그 이전까지 사회서비스는 취약계층 대상 생활시설과 이용시설 복지서비스에 한정되었으나, 복지국가 패러다임이 개인의 역량을 지원하는 이른바 사회투자국가로 선회하면서 보편적 사회정책이 되었다. 2006년 정부는 국가의 장기종합전략으로 『비전 2030』을 선포하면서 5대 전략 중 성장동력확충 전략으로 사회서비스 일자리 확대를, 그리고 사회복지선진화 전략으로 보육, 요양, 방과후 돌봄, 주거복지 확충을 선언하였다. 후속 조치로 91만 개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하여 사회서비스향상기획단을 발족시켰으며, 사회적기업, 노인장기요양, 사회서비스 전자바우처 사업이 제도화되었다. 

이명박 정부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면서 사회서비스 분야의 재정지출 확대를 원하지 않았다. 반면 복지의 체감도와 효율성에 주목하였고, 주요 개선과제로 찾아가는 서비스, 통합전산망 운영, 시장 중심 서비스 창출을 제시하였다. 사회서비스는 시장기능을 강화하여 민간기관이 경쟁을 통해 소비자의 선택권을 확보하는 방향에서 추진되었으며 이러한 성격에 부합한 제도인 사회서비스 전자바우처 사업에 주목하였다. 이 시기 대표적 정책은 10대 유망사회서비스 발굴 및 지원이다. 아동정서발달서비스, 노인맞춤형 운동처방서비스, 정신장애인 토탈케어서비스 등 사회서비스 모델을 발굴하고 바우처 방식으로 구매력을 보전하는 방식으로 사업이 확대되었다. 이 사업은 사회서비스 비활성화 이유가 사회서비스 미개발, 영세한 공급기관, 인지도 있는 브랜드 부족 문제로 인식하였고, 따라서 2011년 예산 253억 원을 시작으로 1,353억 원을 10대 유망사회서비스 기관에 집중 지원하는 것이었다. 

박근혜 정부의 사회서비스도 산업 육성에 초점이 주어졌다. 생애주기별 맞춤형 고용·복지는 보육에 대한 국가책임,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 전달체계 효율성과 민간자원 활성화를 주요 국정과제로 선정하였으나, 사회서비스는 일자리 중심의 창조경제와 연결되어 고용률 70%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간주되었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고부가가치 사회서비스일자리 창출방안’을 발표하였고, 구체적으로 중소기업에 적용되는 R&D, 세제혜택, 정책자금 지원을 사회서비스 부문에 적용하여 시장형 일자리를 확충하고 민간진출 사업으로 육성하고자 하였다. 사회서비스 전자바우처 제공기관의 규모화·전문화 추진, 사회적기업과 소셜벤처의 창업·육성, 고객관리시스템 개발, 유망 사회서비스 R&D 투자 등이다. 무엇보다 사회서비스 제공기관 진입규제 완화를 위해 바우처 사업을 지정제에서 등록제로 전환하고, 소득에 따라 본인부담률을 달리하여 가격규제를 완화하고, 사회서비스 이용자 인정기준 완화로 유망 사회서비스 수요를 개발하는 전략을 추진하였다. 

문재인 정부의 사회서비스는 양적 확충보다는 수요자 측면에서의 보장성 강화와 공급자 측면에서의 공적 책임성 강화를 제시하였다. 재정만 국가가 부담하고 민간에 맡긴 사회서비스 전달체계의 개선 없이는 아무리 보장성을 높인다 해도 국민 체감도가 높아지지 않는다는 판단이었다. 이에 ‘범부처 사회서비스 발전 방향’하에 6대 추진 과제로 생애주기별·분야별 사회서비스 확충, 지역 사회서비스 균형 발전, 사회서비스 일자리 확충 및 내실화, 사회서비스 공공성 강화, 통합적 사회서비스 제공 체계 구축, 서비스 이용 과정에서의 사회권 실현을 제시하였다(관계부처합동, 2018). 더 나아가 지역사회 통합 돌봄, 아동 온종일 돌봄 체계 구축, 노인 맞춤돌봄 서비스, 발달장애인 생애주기별 종합 대책 등 포괄적 서비스 제공을 통해 서비스 사각지대를 해소하고자 하였다. 

이와 같이 노무현 정부와 이를 계승한 문재인 정부는 사회서비스의 보장성 강화로 보편적 돌봄을 제도화한 방향은 동일하였으나 방식에서는 시장형 일자리 창출과 전달체계의 국가책임 강화라는 측면에서 다른 경로를 형성하였다. 반면 이명박 정부는 보장성 확대를 통해 수요를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수요자가 직접 부담하는 방식으로, 일명 미국식 사회서비스 상품 개발에만 관심을 가졌다. 정작 돌봄에 대한 국가 책임은 외면하는 방식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무상보육을 통해 돌봄제도 확충에 기여하였으나 여전히 사회서비스는 고부가가치 상품시장이라는 전략에서 이명박 정부의 경로를 이어갔다. 

윤석열 정부의 사회서비스 – 보건복지부의 산업부화

윤석열 정부는 국정과제 44번 ‘사회서비스 혁신을 통한 복지·돌봄서비스 고도화’를 제시하였고, 목표는 ‘다양한 주체’가 ‘질 높은 서비스’를 ‘누구에게나’ 이용하게 하는 보편적 복지·돌봄 체계이다. 새 정부의 사회서비스 방향은 2022년 8월과 2023년 1월 보건복지부의 업무계획에 다음과 같이 구체화되었다. 이른바 사회서비스 고도화란 이제껏 없던 소비시장을 개발하고, 산업 육성을 위해 R&D 투자를 확대하고, 정부는 사회서비스원을 사회서비스진흥기관으로 바꾸어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전부처의 산업부화’가 충실히 반영된 모습이다. 

윤석열 정부의 사회서비스 산업화는 박근혜 정부의 사회서비스 전략과 동일하다. 용어도 그대로이다. 업무계획은 사회서비스 일자리 확충으로 “복지-고용-성장” 선순환을 이루고, 그 근거로 사회서비스 산업의 높은 고용유발계수를 제시하고 있다. 과거 반복된 사회서비스 시장창출 실패에 대한 분석이나 새로운 정책 수단도 없다. 첫째, 정부는 사회서비스 수요창출을 위해 사회서비스 신상품을 개발·공급하고, 이용가격은 제공기관이 탄력적으로 조정함과 동시에 본인부담도 차등화하고, 제공기관의 수익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서비스를 통합하여 제공하겠다는 계획이다. 구체적 예시로는 가사서비스, 병원동행서비스, 심리상담 등을 추가하고, 융합으로 보육·아이돌봄+놀이교육·예체능+청년사회서비스사업단 등 개별사업을 함께 제공할 수 있게 하여 보편적 사회서비스 시장 형성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둘째, 양질의 공급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영세한 민간 기관을 규모화·조직화 지원하는 내용이다. 이를 위해 소셜프랜차이즈나 사회적협동조합 전환, 기업·종교계의 사회공헌, 사회적기업과의 파트너십 등이 제시되었다. 혁신펀드(140억 원)를 조성하여 영세한 기관의 규모화를 지원하고, 시장진입의 규제를 완화하여 사회서비스 기술개발(스마트 R&D)과 고령친화산업, 돌봄로봇, 보조기기, 스마트서비스 등 첨단기술이 사회서비스 상품에 연계되도록 하였다. 셋째, 지원·육성을 위한 제도로 「사회서비스지원및진흥법안」 을 제정하고 사회서비스원을 공공서비스 제공기관이 아닌 산업진흥기관으로 역할을 바꾼다. 이 밖에 사회서비스 보장성 강화로는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대상 확대, 보호종료아동 자립준비, 영케어러 가족돌봄, 고립은둔청년 고독사 대응도 포함되었으나, 이는 기존 종합계획의 극히 일부 실행 또는 사회서비스 예산으로 보면 매우 미미한 주변적 사업이다. 세부 내용은 박근혜 정부 당시 사회서비스 발전포럼에서 다룬 바 있고, 또한 고부가가치 사회서비스 육성 방안에서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 수년간 인구고령화로 인한 돌봄 환경은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고, 사회서비스 제공체계에서 개인화, 통합화, 특히 코로나19 이후 긴급한 공공돌봄 대응 요구가 가중되어 왔는데, 처방은 과거로 회귀하였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사회서비스 

지난 동안 사회서비스가 일자리 창출을 위한 서비스 발굴 및 확충, 사회서비스 시장 형성 및 산업화, 사회서비스 품질 제고를 목표로 추진되어 왔다면, 이는 사회서비스에 대한 개념 오류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그동안 사회서비스 개념은 광범위하고 모호하여 어떤 사무가 있고 누가 책임을 져야하는지 보장기관도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정책의 효율성이 매우 떨어졌다. 사회서비스는 [사회보장기본법] 제3조에 명시된 사회보장급여이지만, 노인·영유아·아동·장애인·저소득층 등 다양한 대상을 중심으로 개별 정책 사업을 아우르고 있어, 각 사업부처가 사회서비스의 전반적 구조와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문제가 정책 방향의 혼선을 가져왔다.

윤석열 정부의 사회서비스 전략에 있어서 산업화가 주요 의제가 되는 이유는 돌봄국가의 서비스보장 체계에 총체적인 접근을 하지 못하고, 유망사회서비스를 발굴하는 전자바우처 사업이 과대 대표되기 때문이다. 2022년 예산기준 사회서비스 정책의 주요 세부사업은 노인, 아동, 장애인 돌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노인장기요양보험 그리고 영유아보육, 그리고 장애인활동지원의 제도화가 이루어지면서 이 사업이 사회서비스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2022년 기준 노인장기요양보험 예산은 13조 3,467억 원(보험료 수입 8조 8,010억 원, 정부지원금 4조 4,967억 원) 규모로 성장하였고(국민건강보험공단, 2022), 영유아 무상보육은 저출산의 영향으로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지만, 여전히 4조 8,908억 원(영유아보육료 지원 3조 2,028억 원, 보육교직원 인건비 운영 지원 1조 6,880억 원) 규모를 차지하며, 장애인활동지원은 1조 7406억 원을 차지한다(보건복지부, 2022). 이용자 수는 2021년 기준 노인장기요양 급여이용 수급자수는 90만 명, 영유아보육 이용자 수는 118만 명, 그리고 장애인활동지원이 10만 명이다. 반면 8대 사회서비스 전자바우처 사업의 예산 규모는 2009년 3,228억 원에서 2018년 1조 986억 원, 그리고 2021년에는 2조 7,744억원으로 증가하였으나, 이 사업의 절대 부분을 차지하는 장애인활동지원을 제외하면 전자바우처 사업의 예산은 6천억 원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유망사회서비스 개발을 추진하는 지역자율형사회서비스투자사업은 2022년 예산 2,100억 원과 1,770억 원(균특)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사회서비스 고도화가 신규 수요 창출이고 상품시장을 창출한다는 영역에서 정부예산 규모는 아주 미미하다. 정부의 수요지원 없이 이용자가 부담하는 민간 시장의 자율적 창출을 기대할 뿐이다. 정작 사회서비스 몸통의 혁신은 고려되지 않았다. 그러나 사회서비스 분야의 수요는 공공시장의 규모, 즉 사회서비스 보장성에 종속되어 있다. 노인·영유아·장애인 돌봄의 사회서비스는 정부가 이용자 지원 방식으로 급여를 지출하는 공공시장의 사회서비스다. 따라서 수요 창출의 중심은 주요 사회서비스 제도의 보장성과 전달체계다. 주요 사회서비스는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급여자격 및 급여수준을 정하는 제도로서 시장이 형성되며, 전달체계는 주로 지자체 관리하에 민간 개인 시설들에 의해 제공된다. 따라서 사회서비스 보장성에 대한 확대 없이 그리고 공급기관의 구조변화 노력 없이 사회서비스 시장의 고도화는 달성하기가 매우 어렵다. 물론 사회서비스는 소득수준과 관계없이 보편적 욕구를 가지고 있어, 본인부담의 시장이 창출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정부보조금 없이 창출되지 않았던 수요가 갑자기 형성될 리 만무하다, 정부의 지불보조 없이도 산업적 수익성이 있었다면 영리 기업이 이미 진출하였을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 현재와 같이 요양과 보육을 중심으로 사회서비스 산업이 형성된 것은 각각 장기요양보험과 무상보육 정책의 결과이지, 산업화 추진의 결과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산업화는 일자리 창출의 방법이기는 하나, 사회서비스 전달체계상 하나의 선택지일 뿐이며, 스스로 사회서비스 수요와 공급을 창출하는 추진 동력이 아니다. 오히려 산업화라는 공급 방법론은 사회서비스 제도 노동자의 처우문제, 수가 중심의 과도한 수익 규제, 서비스 품질의 저하, 그리고 사회보장 수급권 훼손 등의 문제를 야기해 왔다. 

제공기관 규모화를 통한 사회서비스 고도화에 대한 오해

사회서비스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공급체계를 고도화하는 방향은 윤리적으로 합당하고, 민간 시장의 활성화도 반드시 필요한 과제이다. 다만 정부는 목표 달성을 위한 가장 합리적인 수단을 찾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사회서비스는 복지혼합으로 이루어져 있고, 서비스 제공에 민간이 참여해야 효율적인 전달체계가 마련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복지혼합은 재원조달, 의사결정권, 이용권한과 규제라는 다차원으로 구성된다. 우리나라 사회서비스의 혁신과제는 공급 주체의 다원화, 이용권한에 있어 수요자 중심주의, 그리고 정부의 규제역할 모두 산적한 과제들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회서비스의 고질적 문제는 영세한 영리 제공기관이 과도하게 시장을 차지하고 있고, 수요자가 원하는 고품질의 사회서비스가 없다는 질 저하 문제가 지적된다. 이에 영세사업체의 성장지원을 통한 규모화와 비영리 사회적경제의 시장진입 활성화 방향은 타당하다. 문제는 정책수단이다. 규제를 철폐하는 정책이 시장 실패가 발생하는 사회서비스의 해결책이기 어렵다. 신뢰할 수 있는 조직의 성장을 장려해야 하고, 이를 위한 국가의 규제와 책임이 더욱 강화되어야 하고, 그에 맞는 정책 수단을 모색해야 한다. 

규모화와 관련하여, 주의 깊게 참고할 만한 연구 결과가 있다(Harrington, C. et al., 2017). 영국과 미국의 요양서비스 경우 규모화된 프랜차이즈 기업의 비중이 전체 공급의 50%를 넘게 차지하고 있다. 사회서비스가 영리기업을 중심으로 발달하는 과정에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위해 프랜차이즈로 활성화되었다. 미국의 요양원의 경우, 5개 프랜차이즈 기업이 전체 시장의 10%를 차지한다. 그런데 이 5개 기업은 모두 미국 내 조세 피난처로 알려진 델라웨어 주에 본사를 두고 있고, 모두 최근 미국 법무부(USDOJ)에 의해 사기행위로 기소되어 소송이 진행된 바 있다. 이유는 계약된 서비스 미제공, 부당청구, 사기, 서비스 남용, 적정인원 미배치 및 품질 위반, 부당청구이다. 정부의 서비스 모니터링 결과 서비스 질도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의 요양원도 5개 프랜차이즈 기업이 전체 시장의 35%를 차지한다. 한 곳은 다국적 민영보험회사이고, 네 곳은 민간 유한회사로 조세 피난처에 등록된 개인투자 그리고 사모펀드 그룹 소유다. 영국의 규모화된 프랜차이즈 요양기관은 국가보건의료서비스(NHS)의 재정안정화 조치로 지방정부 돌봄서비스 시설들을 인수 합병하면서 성장하게 되었는데, 서비스 질은 오히려 저하되었다.

캐나다의 요양원도 5개 프랜차이즈 기업이 전체 시장의 23.8%를 차지한다. 그러나 두 번째로 큰 규모로 76개의 요양원을 운영하는 Revera Inc는 공적연금기금(Canadian Public Sector Pension Investment Board)이 100% 소유한 회사다.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경우도 돌봄시설이 다수 공공기관 운영이나, 영리와 비영리 민간 소유의 경우 프랜차이즈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스웨덴과 노르웨이는 지방정부가 돌봄을 제공하고 있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구매자와 공급자를 분리시키고, 소비자 선택권 강화 차원에서 일부 지방정부가 요양시설을 아웃소싱하고 있다. 즉 지방정부가 조직과 민간 공급자와 구매계약을 체결하는 형태로 민간의 서비스 질을 관리하고 있다. 이들 국가들의 규모화된 프랜차이즈의 서비스 질은 당연히 미국 그리고 영국과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규모화된 영리목적 사회서비스 제공기관들은 낮은 서비스 품질, 부족한 인력배치, 품질 위반 등의 사례가 자주 보고된다. 특히 고수익을 올리는 대형 프랜차이즈는 비용절감을 통해 조직 생존율을 높이는 데에는 성공하였으나, 대형 민간회사와 사모펀드에 의해 소유되면서 전반적으로 서비스 양, 종류, 질을 통제하는 방향으로 운영되고 있다(김형용 외, 2021).

따라서 한국적 상황에서, 개인이 운영하는 소규모 시설은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사회적경제 프랜차이즈 방식으로 규모화하거나 법인화하는 노력이 바람직하지만, 단순히 규모의 경제를 위한 비즈니스 모델을 벤치마킹하는 위험성은 경계해야 한다. 제공기관의 규모화가 정책 목표가 될 수는 없다. 규모화는 사회서비스 공급 주체의 다원화와 함께 설정될 필요가 있다. 유럽의 경우, 사민주의 북유럽국가(노르웨이, 덴마크)의 장기요양 제공기관의 90%에 가까운 시설이 공공부문에 속하며, 일부 동유럽과 발칸반도 국가들(라트비아, 폴란드, 체코)도 공공부문이 70%가 넘는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자유주의 유럽국가들(영국, 아일랜드)만 뚜렷한 차이점을 보이고 있는데, 영리비중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공공이 20% 내외, 그리고 비영리민간이 10% 내외를 차지하고 있다. 캐나다의 경우, 2021년 기준 총 2,076개의 장기요양시설이 있으며, 공공 46%, 민간이 54%(영리 29%, 비영리 23%)이며, 미국의 경우도 공공은 1.3% 정도에 불과하지만 비영리부문이 14.8~50.8% 사이에 머물고 있다. 즉 우리나라와 같은 극단적인 영리민간 비중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김형용 외, 2021). 따라서 규모화는 신규 수요를 개발해서 형성되는 시장이 아니다. 돌봄에 막대한 재정이 이미 투입되고 있다면 이 부문에 신뢰할 수 있는 기관을 형성하는 것이어야 하며, 다변화된 공급주체로서 비영리나 공공의 규모화를 논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장기요양, 영유아보육, 장애인활동지원의 공급체계 혁신이 중요하다. 단순히 140억 원으로 펀드를 구성한다고 해서 새로운 제공기관의 진입구조가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이미 폐기된 아이디어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국민연금기금 연계투자 정도의 규모화가 필요하다.


참고문헌

관계부처합동. (2018). 범부처 사회서비스 발전 방향. 사회보장위원회

국민건강보험공단. (2022). 장기요양 수입/지출예산

김형용 외. (2021). 사회서비스분야 사회적경제 육성지원사업 성과분석. 보건복지부

남기철. (2022).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 진단과 평가. 월간복지동향 2022년 6월호

보건복지부. (2022). 새 정부 업무계획

보건복지부. (2022). 2022년도 보건복지부 소관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 개요

보건복지부. (2023). 주요 업무 추진계획

정부민간합동작업단. (2006). 함께 가는 희망한국 VISION 2030

Harrington, C. et al. (2017). Marketization in Long-Term Care: A Cross-Country Comparison of Large For-Profit Nursing Home Cha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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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23/04/03-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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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원표 공공운수노조 공공기관사업국장

한국 노동시장 진단 – 불안정 고용, 임금 격차, 장시간 노동, 중대 재해 모두 심각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이제 1년이 지났다. 출범 초기 ‘취임덕’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례적인 낮은 지지율로 인해 가장 왕성해야 할 집권 1년 차에 정책 추진력이 미약해 객관적인 지표를 통해 평가할 만한 정책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따라서 윤석열 정부 1년 노동정책에 대한 평가는 정책 성과가 아닌 정책 지향과 추진 동기를 우리 노동시장의 현실을 토대로 평가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우선 우리 노동시장의 현실을 간략히 살펴볼 것이다.

먼저 고용현황이다. 19년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경제와 노동시장 모두 침체기를 겪다가, 22년 초반부터 코로나 감염확산이 정체 또는 감소하고 각국이 팬데믹 상황에 어느 정도 적응하면서 침체기에서 벗어나는 양태를 보여줬다. 특히 급격히 침체되었던 노동시장의 경우 침체로 인한 기저효과와 포스트코로나에 따른 노동수요 증가로 일부 국가 또는 산업의 경우 노동력 공급 부족 현상이 나타날 정도로 수요가 증가해 고용량이 늘었다.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23년 2월 고용보험 가입자 기준 고용 규모가 전년 대비 35.7만 명 증가했다. 이 같은 증가 추세는 1여 년간 지속돼 왔고, 증가 추세만 따지면 노동시장의 상황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증가 규모가 코로나 이전 수준의 회복에 그치고 있으며, 여전히 OECD 평균에 못 미치는 고용률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만 평가하기는 어렵다. 21년 기준(OECD 통계, 통계청 제공) 한국의 고용률은 66.5%로 OECD 평균 69.7%에 비해 3%p 이상 낮다. 고용 규모로 따지면 대략 85만 명 정도가 추가 취업되어야 OECD 평균과 유사해진다. 

다음으로는 한국 노동시장의 오랜 문제인 비정규직 문제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22년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를 분석해 추계한 바에 따르면 한국의 비정규직 규모는 900만 명으로 전체 노동자의 41.4%에 해당한다. 간접고용 일부를 정규직으로 간주하는 정부 추계로는 37.5%에 달한다. 비정규직 고용형태는 나라마다 편차가 심해서 국제비교를 위해서는 대표적 지표인 임시직(Tempo-rary workers, 쉽게 말하자면 계약직) 규모를 비교하는데, 한국의 경우 2021년 임시직 비중은 28.3%(정부 공식 통계)로 비교국 중 2번째로 많고, 일본(15.0%), 독일(11.4%), 영국(5.6%) 등과 비교할 때 심각히 높은 수준이다.

노동시간 역시 여전히 장시간 노동의 오명을 못 벗어나고 있다. 2021년 한국의 의존적 취업자(노동자+특고+무급가족종사자) 연간 노동시간은 1,928시간으로 OECD 평균인 1,617시간에 비해 300시간 이상 더 일하고 있다. 1,300시간대에서 1,500시간대에 분포한 유럽 주요국에 비하면 최대 600시간까지 더 일하는 셈이다. 이를 주 40시간으로 환산해 계산하면 OECD 국가 평균에 비해 1년에 7.5주(1.5개월) 이상을, 유럽 주요국에 비해 10~15주(최대 3개월) 정도 더 일한다. 

노동안전 역시 마찬가지다. 2021년 한국의 산재 치명률(산재 발생 후 1년 내 사망자 비율)은 10만 명 당 4.3명이다. 이는 흔히 알려진 것처럼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은 아니지만, OECD 가입국 중 멕시코, 튀르키예, 라트비아 다음으로 높다(2021년 ILO 통계). 산재 통계는 각국마다 산출 방식이 달라 ILO 통계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1)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중대 산업재해가 여전히 심각한 것은 사실이다. 주요국의 10만 명당 산재 치명률은 프랑스 2.5명, 스페인 2.1명, 일본 1.5명, 스웨덴 0.8명, 독일 0.7명 등이다(프랑스, 스페인, 독일은 2020년 자료).

노동시장 소득 격차도 심각하다. OECD에 따르면 한국 노동자의 임금격차는 미국 다음으로 크다. 임금 10분위 배율(하위 10% 대비 상위 10% 임금수준)로 보면, 미국과 한국은 각각 4.84배와 3.60배에 달한다(2020년 기준). 비교대상 국가들 가운데 이 배율이 가장 낮은 국가는 스웨덴으로 2.14배에 불과하다. 성별 임금격차는 34% 수준으로 OECD 평균 13%의 2.5배 수준으로 가장 심각하고, 다른 불평등 지표인 지니계수로 측정한 소득 불평등은 OECD 국가 중 7번째로 크다(「OECD 한국경제보고서, 2020」).

거꾸로 가는 노동정책, 현실이 아닌 이념과 이해관계에 기반한 정책 추진 탓

요약하자면 세계 10위권의 경제 수준을 달성한 한국 노동시장의 고용안정, 노동시간, 산업안전, 임금 불평등 등 주요 노동시장 지표가 모두 매우 처참한 수준이다. 윤석열 정부는 연금, 교육과 더불어 노동개혁을 3대 개혁의 하나로 지목했다. 앞서 살펴본 노동시장 상황을 고려한다면 노동개혁을 주요 개혁 과제로 선정한 것은 매우 적절하다. 그렇다면 윤석열 정부가 주요 노동정책으로 제시한 근로시간제도 개편, 직무성과급 도입 그리고 노조회계 투명성 제고가 이러한 문제 해결에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지를 살펴봐야 한다. 

근로시간 제도개편의 핵심은 주당 12시간으로 제한한 연장노동 상한제의 단위 기준을 주 단위에서 월이나 분기, 반기, 연간으로 다양화한다는 것이다. 주 단위 연장노동 상한을 월 단위(=약 4.3주)로 환산하면 총 52시간이 된다. 그런데 단위 기준을 변경한다는 것은 그 기간 내에서 연장 노동시간 배분을 임의로 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월간 총 연장 노동을 한 주에 몰아서 하게 한다면 현행 52시간(40+12)이던 주간 노동 상한이 최대 92시간(40+52)까지 늘어날 수 있다. 여기에 연속 휴게시간 11시간 보장, 4시간마다 30분 휴게시간 부여 등을 가정하여 계산한 것이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주간 69시간 노동이다. 이 69시간을 두고 극단적인 가정이다, 아니다 논란을 하고 있고, 대통령은 갑자기 60시간 이상은 너무하다, 아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어떤 계산이 맞는지, 더 현실적인지 아닌지를 따지기 전에 왜 이런 정책을 추진하는지를 먼저 따져야 한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한국은 이미 OECD 국가 중 가장 많이 일하는 나라 중 하나다. 세계보건기구는 야간노동을 2군 발암물질로 분류하고 있고(DDT 살충제가 야간노동과 같은 2군 발암물질로 분류된다), 한국정부는 과로사 인정 기준을 12주 평균 주당 60시간으로 설정하고 있다(이는 당연인정기준으로 이보다 적게 일하다 사망한 경우에도 관련성에 따라 과로사가 인정된다). 따라서 필요한 정책은 노동자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보호하고 국제적 추세에 맞춰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이다. 그런데, 근로시간제도 개편은 오히려 반대다. 도대체 왜?

직무성과급제 역시 마찬가지다. 직무급제의 장점은 같은 일에 대해 같은 보상이 주어진다는 점이다. 이같은 임금체계가 장점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산별로 적용되어야 한다. 특히 한국과 같이 기업규모, 고용형태, 성별에 따른 임금격차가 심각한 사회에서는 특히 그렇다. 

하지만 현재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직무급제는 기업 내 직무에 따른 별도 임금체계 적용을 의미한다. 이 경우 노동시장 내 임금격차 축소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아래 그림과 같이 기업 내 직무 간 임금격차가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근속에 따른 보상(즉, 호봉제적 성격)이 줄어들고 성과급 요소가 강화되면, 그 격차는 더욱 확대될 것이다. 유일한 격차 해소 효과는 근속에 따른 격차 축소다. 하지만 이 역시 착시 현상일 수 있는데, 당장은 연령에 따른 격차가 축소되는 것처럼 보여도, 거꾸로 보면 신규 입사자의 향후 임금 인상 폭이 크게 제한되는 것이기도 하다. 윤석열판 조삼모사다. 

무엇보다 최저임금을 위반하지 않는 한에서 임금체계에 대한 결정은 노사 자율에 맡겨 온 것이 근대적 노동법의 기본 정신이다.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3권 역시 이러한 노사 자율주의에 기반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가 나서서 임금체계 변경을 강요하고 있다. 도대체 왜? 

현실 진단과 상관없이 노동시간과 임금체계 변경을 추진하는 배경에는 이미 이론적으로나 경험적으로 파산한 신자유주의에 대한 맹신과 자본의 이해관계를 충실히 대변하고자 하는 지향이 담겨 있다. 자본은 언제나 시장 상황에 따라 노동을 유연화하고 싶어한다. 노동 유연화를 극단적 정책으로 추구한 이념이 바로 신자유주의고, 그 대표적 방법이 비정규직 양산이었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미 매우 높은 비정규직 비율을 보이고 있고, 20년째 그 비율이 정체돼 있다. 고용 유연화가 이뤄질 만큼 이뤄졌기 때문이다. 남은 것은 노동시간과 임금 유연화다. 

자본의 입장에서 극단적 고용 유연화는 경기 하강기 인력 조정에는 유리하지만 시장 수요가 증가하는 경기 상승기에 숙련 노동자를 구하기 어렵다는 문제를 남긴다. 그런데 노동시간을 탄력적으로 조정할 여지가 커진다면, 정규직 숙련노동자를 지속 채용하면서도 비정규직 사용과 같은 비용 절감 효과를 낼 수 있다. 직무별 별도 임금체계 적용과 근속에 따른 임금상승 효과 억제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별 직무성과급 역시 마찬가지다. 요컨대,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은 우리 노동시장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철 지난 신자유주의 실험을 지속하고, 자본의 오랜 숙원을 풀어주고자 하는 것이다. 그 결과가 어떤 것인지를 예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이미 지난 40년간 전세계가 목격한 불평등 확대와 사회적 분열의 심화가 바로 그것이다. 

분열을 정치 자양분으로 삼는 노조 적대화 노동정책

윤석열 정부가 주요 노동정책으로 제시하는 세 번째 과제는 노조 회계 투명성 제고다.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하는 정부가 자주적 결사체인 노동조합의 회계를 강제로 공개시키겠다는 전체주의적 발상도 이해가 안 되지만, 노동조합 회계를 공개해서 해결할 수 있는 노동시장의 문제가 무엇인지도 도통 알 수가 없다. 그 어떤 노동정책 교과서에도 이와 같은 해법은 나오지 않는다. 

이 듣도 보도 못한 정책 추진의 배경에는 취임 초 각종 인사 실패, 잦은 말실수로 인해 취임 후 불과 몇 개월 만에 국정 지지율이 20%대로 하락한 윤석열 정부의 이례적인 리더십이 놓여 있다. 정부에 대한 주요 비판 세력인 노동조합을 적대시하고 사회적 분열을 조장하는 방식으로 진영논리를 강화해서 지지율 반등의 자양분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결국 이 정부가 3대 개혁 중 하나로 선정한 노동 개혁은 한국 사회가 당면한 노동시장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정책 의지의 표명이 아니라 자본의 이해를 일방적으로 관철하고 노동조합을 희생양으로 삼아 정권의 안위를 모색하겠다는 정치 공학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얄팍한 정치 공학으로 한순간의 위기를 모면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정작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민생을 챙기고 사회적 격차와 불평등을 해소할 정치적 의지와 정책적 역량을 확보하지 못한 정권에 대해 우리 국민들이 어떤 판단과 행동을 보여 왔는지를 잊었다면, 그리 멀지 않은 시간에 다시 그 행동과 결단에 마주하게 될 것이다. 행동에 각인된 역사는 결코 쉽게 잊혀지거나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1) 산재통계는 10만 명당 산재발생 수를 비교하는데, 국가마다 산재발생을 ‘보고’된 재해건수로 보는 경우와 ‘보상’된 재해건수로 보는 경우가 있고, 비교 대상을 전체 취업자, 전체 노동자, 전체 보험가입자, 준상용노동자 등으로 보는 경우가 달라 10만 명당 발생건수로 정확한 비교를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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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23/04/03-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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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한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

윤석열 정부는 지난 1년 긴축과 민영화로 공공의료를 공격하는 철저한 신자유주의 의료정책을 폈다. 대통령 자신이 “보건복지부는 보건복지 관련 사회 서비스 산업부로 봐야”한다고 했고, “복지는 돈 쓰는 문제가 아니고 민간과 기업을 참여시켜 준시장화 해야”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팬데믹이 한창인 5월에 집권했다. 한국 당시 오미크론 대유행으로 2~4월 초과사망자가 주요 선진국 중 가장 많이 발생한 직후였다1)긴축과 맞물린 방역 완화 때문이었지만 열악한 공공의료가 낳은 재앙이기도 했다. 향후 심각한 팬데믹이 더 빈번하게 닥쳐올 수 있다는 전망 속에 새 정부는 의료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절박한 과제가 있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반대였다. 인수위 국정과제에서부터 공공병원 설립이나 인력확충이 아니라 ‘민간병원 육성’을, 국민건강보험은 보장성 강화가 아닌 ‘지출효율화’와 ‘재정관리 강화’를 내세웠다. 반면에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개인의료정보 상업화, 의약품·의료기기 규제완화, 원격의료 등 의료민영화 정책들을 제시했다.2) 이런 기조가 지난 1년 서민들의 삶을 더 팍팍하게 했고 생태와 경제 등 다중위기에 시민들의 생명을 근본에서 위협했다.

코로나19, 각자도생 강요하며 국가책임 방기

코로나19 대응에 있어서 윤석열 정부는 혹독한 각자도생 정책을 추구했다. 집권하자마자 ‘긴축재정’을 표방하더니3) 생활지원비와 유급휴가비 지원범위를 축소하고 재택치료비 지원을 중단했다. 돈을 아껴 감염병 고통을 서민에게 전가한 것이었다. 이는 ‘숨은 감염자’를 더 많이 늘렸다. 격리의무는 유지하면서 생계지원이 줄어 진단검사를 회피하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컨대 공식 확인된 확진자는 크게 늘지 않는데도 위중증 환자가 크게 늘어 응급실이 코로나19 의심환자들로 적체되는 등 의료가 마비되었다.

정부는 의료대응역량도 축소했다. 6월부터 전국의 모든 생활치료센터 문을 닫아 고시원이나 장애인시설에서 거주하는 확진자는 격리를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이들은 보건소에 연락해도 “알아서 민간 숙소를 찾으라”는 답을 듣게 되었다. 또 정부는 ‘자율입원’을 확대했다. 국가의 병상배정 책임을 스스로 면제했다. 이로 인해 환자와 가족들이 알아서 병상을 찾아야 했고 민간병원들이 코로나19 환자 입원거부를 해도 막기가 더욱 어렵게 되었다. 정부는 그간 전담병원에 보상했던 지원을 아꼈다. 행정과 재정을 축소한 긴축대응이었다.

윤석열 정부하에서 7월부터 6차 유행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백경란 질병청장은 “국가 주도 방역은 지속가능하지 않다”면서 책임있는 정책을 내놓지 않았다. 유행을 억제하기 위한 대책을 내놓지 않았고 개인의 자발적 방역 참여만을 강조했다. 시민들은 ‘질병구경청’, ‘국가 도주 방역’이라는 조롱을 퍼부었다. 그 결과 8월에는 하루 사망자가 83명으로 급증해 100여 일 만에 최대를 기록했는데, 정부는 “독감처럼 받아들이라”면서 “입원해도 할 게 없다”는 식의 대응을 했다. 코로나19를 독감과 비교하는 것도, 입원치료가 의미 없다는 주장도 모두 사실이 아니었다. 정부는 국민과 제대로 위험소통을 하지 않으며 방역을 포기했다. 사망자 증가에도 “일희일비 않겠다”고 하는 등 국민들의 삶과 죽음에 무감각했다.

공공의료 공격하며 민간병원 배불리기

후보시절부터였다. 2021년 12월 코로나19 확진자가 증가하자 윤석열 선대위는 “국립중앙의료원의 모든 병상을 투입해야 한다”고 했다. 보수언론과 함께 “정부가 민간병원만 쥐어짜고 공공병원은 제 역할을 하지 않는다”고 마타도어에 나선 것이다. 실상은 10%의 공공병원이 코로나19 환자의 70∼80%를 치료하고 있었다. 국립중앙의료원도 취약계층에 대한 최소한의 진료를 제외하면 모든 병상이 코로나19 치료에 전념하고 있었다. 반면 민간병원들은 돈벌이 진료를 멈추지 않으려고 고작 1.5~ 3% 정도의 병상만 내놓고 있는 상황이었다. 보수언론과 윤석열 후보는 이런 민간병원 돈벌이를 비호하면서, 공공병원에 입원해 있는 가난하고 취약한 사람들 마지막 한 사람까지 내쫓으라고 주장한 것이다. 결국 이 주장이 관철돼 이듬해 1월 초까지 80여 명의 저소득층, 행려·노숙인, 이주노동자가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전부 쫓겨나게 되었다.

윤 대통령이 당선 후 국립중앙의료원을 공격한 것은 자연스런 수순이었다. 정부는 국립중앙의료원 신축이전 사업규모를 대폭 축소하고 사업비를 삭감했다. 국립중앙의료원이 요구한 1,050병상을 760병상으로 규모를 축소했다. 국립중앙의료원은 서민들의 생명과 건강의 보루이자 공공의료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이다. 국립중앙의료원에 내원하는 환자 중 의료급여 환자 비율은 2019년 25.9%에 달하고 응급, 중증외상, 감염병, 심뇌혈관 등 필수 중증 의료 중앙센터 역할도 한다. 이런 병원이 제 기능을 하려면 적어도 1,000병상은 있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은 묵살되었다. 기재부는 615억 원을 더 쓰지 않아 상징적 국가 병원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는데, 부자와 기업들에게는 향후 5년 간 수십~수백조 원을 감세하기로 했다.

정부여당은 지방의료원 민간위탁 민영화도 추진했다. 공공병원이 민간에 위탁되면 수익성 중심 의료행위를 강요받을 것이라는 점은 역사적 경험이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 공약사항이었고 국민의힘 지자체장들이 앞장섰다. 경북 포항·김천·안동의료원, 대구의료원, 서산의료원 등이 그 대상으로 언급되었고, 가장 우선 공격 대상이 된 것은 성남시의료원이었다. 경영이 어렵고 시 재정이 많이 든다는 이유였다. 그런데 성남시의료원 경영 문제는 지난 3년 코로나19 치료에 모든 역량을 쏟아부었기 때문이었다. 성남시의료원 뿐 아니다. 많은 공공병원들은 코로나19를 거치며 의사 인력, 진료건수, 수술건수, 필수진료과 개설률, 의료수익 등이 크게 감소했다.4) 윤석열 정부는 공익을 위해 나섰다가 위기에 처한 공공병원 재정을 책임지고 지원하기는커녕 이를 핑계로 민간위탁하려 한다. 성남시의료원은 그나마 노동조합들과 시민운동의 만만치 않은 저항 때문에 민간위탁이 잠시 멈춰지게 되었지만 불씨가 여전하다.

새로 설립하기로 약속되거나 예정되었던 공공병원들에도 적신호가 켜지게 되었다. 제2대구의료원은 코로나19 첫 유행지인 대구에 짓기로 전 시장이 약속도 했지만, 윤석열 정권 등장과 홍준표 새 시장 당선 직후 무산되었다. 광주와 울산에 지어질 지방의료원도 기재부가 타당성 재조사에 들어갔는데 ‘경제성’ 평가에 발목을 잡힐 것이 우려되고 있다. 지방의료원이 하나도 없는 몇 안 되는 대도시들에도 이토록 공공병원 설립이 불투명한 것은 경제논리에 생명과 건강을 종속시키는 정부 기조 때문이다. 

한편 정부가 내놓은 ‘공공기관 혁신가이드라인’ 내용은 공공기관 예산절감, 인력감축, 민간과 경합하는 기능축소, 자산매각을 포함하는 민영화 종합세트였다. 이 가이드라인을 바탕으로 윤석열 정부는 국립대병원 정원을 감축하려 했다. 공공병원 간호사를 비롯한 인력은 평소에도 늘 부족해 허덕이고 과로하다 사직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많았다. 코로나19 상황에도 그런 부족한 인력으로 감당하며 피눈물을 쏟았는데도, 정부는 인력을 늘리기는커녕 오히려 냉혹하게 줄이려 했다. 이에 서울대병원을 비롯한 국립대병원 노동자들은 공동파업으로 맞섰다. 투쟁의 성과로 국립대병원은 공공기관들 중 정원 감축 대상에서 예외가 된 두 기관 중 하나가 되었다. 지난 1년 윤석열 정부의 시장주의 공격을 대중운동으로 막아낸 사실상 유일한 사례였다.

오랜 시장주의 의료정책이 누적된 결과, 한국의 필수의료는 지난 한 해 심각한 붕괴를 보였다. 서울아산병원에서 근무 중이던 간호사가 뇌출혈이 발생했는데도 긴급수술을 할 수 있는 신경외과 전문의가 없어서 사망했다. 2023년도 소아과 전공의 지원율은 10%대였다. 길병원은 전공의가 없다며 소아청소년과 병동을 폐쇄해 충격을 줬는데, 연달아 여러 병원들에서 같은 일이 일어났다. 의료계가 요구하는 대로 정부는 수가 인상책을 꺼내들었다. 그러나 이는 환자 의료비와 건강보험료를 올려 95%가 민간인 병원수익만 올려줄 정책이다. 병원이 돈을 더 번다고 전문의 고용을 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은 지난 십수 년간의 경험이 증명하고 있다. 필요한 것은 공공의료의 강화이지만, 정부는 불평등과 시장주의를 강화할 오답만 내놓고 있다.

국민건강보험 보장성 축소

윤석열 정부는 ‘건강보험 지속가능성 제고’ 대책을 내놓는데,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이 과잉진료를 유발하여 재정 건전성을 위협한다고 주장하면서, 재정 건전화를 위해 기존 보장 항목을 재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MRI와 초음파를 재검토 사항의 예로 들었고, 본인부담 상한제 기준을 상향하겠다고 했으며, 산정특례제도 혜택을 줄이겠다고 발표했다.5)

그러나 정부의 주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치에 맞지 않다. 우선 한국의 건강보험 지출은 다른 OECD 국가들에 비해 매우 적어 보장성이 낮은 것이 문제이지 ‘재정 건전성’을 운운하며 긴축할 상황이 아니다. 한국은 국가가 지출하거나 건강보험으로 보장하는 의료비의 GDP 대비 비율이 OECD 평균의 약 1.5배 적고, 민간의료보험에 의존하거나 본인부담 의료비로 지출하는 의료비의 GDP 대비 비율은 거꾸로 약 1.5배 많은 나라다. 공적 지출이 적어 개인 부담이 높은 것이다. 입원비 건강보험 보장성이 67%로 OECD 평균 87%보다 매우 부족한 것으로도 나타난다. 또 과잉진료의 원인은 정부가 주장하듯 ‘환자의 도덕적 해이’ 때문이 아니라 민간 의료공급자들의 과잉진료 때문이다. 한국은 일인당 의사 진찰 건수가 OECD 국가들 중 압도적 1위인데 이는 OECD가 행위별수가제 때문이라고 해설한 바 있다. 높은 보장성이 과잉진료를 낳는다면 무상의료를 실시하는 유럽 국가들은 그 문제가 심각해야 할테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한국은 민간병원들이 무분별하게 병상을 늘리고 CT, MRI도 OECD 평균의 1.7배를 보유하면서 갑상선, 무릎, 척추 수술을 외국의 몇 배나 하기 때문에 과잉진료가 많은 것이다.6) 또 실손보험이 비급여 확대와 과잉진료를 유발하는 주범이 되고 있다. 정부가 민간병원과 보험을 통제하지 않고 불필요한 의약품·의료기기를 규제완화로 무분별하게 시장진입시켜 비급여를 양산하면서 과잉진료 책임을 환자들에게 돌리는 것은 적반하장의 태도이다. 이는 철저히 기업주들의 주문에 따른 정책으로, 건강보험을 약화시켜 공공부문의 기업 지출을 줄이고 민간의료시장을 확대하려는 것이다.7)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개인의료정보 상품화

이렇게 건강보험 보장성을 축소하면서 정부가 애쓰는 것은 민간의료보험 시장을 넓혀주고 나아가 직접 치료까지 허용하는 것이다. ‘비의료 건강관리서비스’라는 이름의 정책은 영리회사의 의료행위를 금지한 한국 의료체계의 공적 안전망을 허물고 보험사에 의료행위를 허용하는 것이다. 민간보험사가 건강관리로부터 시작해 의료서비스 자체를 좌지우지하는 미국식 의료민영화(HMO)로 나아가는 정책이다. 윤석열 정부는 12개 업체에 ‘비의료 건강관리서비스’ 시범 인증을 부여했다. 여기에는 삼성생명 가입자 대상 서비스, KB손해보험 자회사가 운영하는 서비스 등이 포함됐다. ‘비의료’라는 건 말 뿐이고 사실상 민간보험을 중심으로 영리기업의 의료행위를 허용한다. 건강증진, 예방, 재활은 WHO가 규정한 일차보건의료의 일부이며 만성질환은 관리가 다름 아닌 치료다. 정부는 아예 노골적으로 민영보험사에게 만성질환은 ‘직접치료’ 목적으로도 허용하겠다고 했고, 사업범위는 ‘포괄적’으로 확대해주었다. 그리고 민간의료보험사가 만성질환 관리와 치료를 담당하면서 병원을 알선까지 할 수 있도록 했다.8)

민간보험사에 환자 의료정보를 전자전송하는 정책도 적극 추진되고 있다. 이는 ‘실손보험 청구간소화법’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보험사들이 환자 보험금 지급을 편하게 해 더 많이 지급하려고 이 정책에 혈안일 리 없다. 실제로는 실손보험에 가입한 국민 80%의 모든 진료자료를 실시간으로 보유하기 위한 것이다. 소액진료 뿐 아니라 공보험 진료를 포함한 모든 의료정보를 전산화·표준화된 형태로 축적하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법이 통과되면 환자들은 보험금 지급을 더 많이 받는 게 아니라 결과적으로 더 적게 받게 될 것이다. 보험사들은 지금도 어떻게든 환자 개인 건강정보, 의료정보를 수집해서 환자를 선별하고 등급을 매겨서 보험료에 차등을 두거나 보장범위를 줄이려 한다. 정부가 정말 실손보험 가입자의 보험금 지급을 늘리고 싶다면 보건당국이 나서서 보험사들의 최저 지급률을 법제화하면 된다. 카지노와 로또에도 최저 지급기준이 있는데 민간보험은 그런 하한도 없이 완전히 무규제 시장에서 돈벌이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근본적으로는 비급여를 양산하고 그 비용을 천정부지로 올리며, 과잉진료를 일으키는 실손보험 없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건강보험 보장성을 충분히 올리면 애초 국민들이 실손보험에 가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또 개인의 건강정보·의료정보를 민간보험사 등 영리기업에 제공하려는 규제완화도 계속하고 있다. 최근 심평원의 가명정보가 민간 보험사들에게 팔려나간 일도 폭로된 바 있다. 가명정보는 다른 정보와 결합되면 개인 식별이 충분히 가능한 정보이다. 윤석열 정부는 이 가명정보의 기업활용을 더 용이하게 하도록 법도 만들려 하고 있다. 소위 ‘디지털헬스케어법’을 통해서다. 이 법에는 개인의 실명 의료정보를 기업에게 넘기는 ‘고속도로’를 뚫겠다는 내용도 있다. 각자에게 자신의 정보 통제력을 높여주는 것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클릭 한 번에 민감한 의료·건강정보를 기업에 통째로 넘길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정부는 이를 ‘의료 마이데이터’라고도 부른다. 온갖 군데 흩어진 정보를 한 번에 기업에 넘길 수 있도록 정부가 직접 나서 질병청, 건강보험공단, 심평원, 의료기관, 웨어러블기기 등에 있는 정보를 한데 모으는 작업도 이미 해두었다. 현행 의료법은 아무리 개인이 동의하더라도 제3자에게 함부로 전자정보를 전송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이는 기업과 개인 간 권력격차가 있는 사회에서 민감한 의료정보를 보호하려는 취지일 것이다. 정부는 개인 정보인권에 대한 이런 안전장치를 허물어 기업 돈벌이를 장려하려 한다.

플랫폼 민영화 원격의료 추진, ‘혁신’이라는 신기루로 규제 완화

올해 상반기 정부가 가장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의료민영화 하나를 꼽자면 원격의료일 것이다. 원격의료는 단순히 의료를 대면으로 하는지 비대면으로 하는지에 관련한 사안이 아니다. 비대면 의료라는 새로운 기술을 적용한다는 명목으로 영리기업에 의료시장을 열어주는 것이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영리기업에 원격의료 시장을 열어주는 것은 세계적 추세이며, 나오미 클라인이 말한 ‘재난자본주의’의 보편적 재현이다. 예를 들어 캐나다 정부는 팬데믹을 맞아 영리기업에 원격의료를 허용했다. 그 결과 캐나다는 원래 의료를 공공에서 무상으로 제공한다는 원칙의 붕괴를 경험했다. 의료서비스가 유료화되어 환자 부담이 늘었고 민간의료보험 적용대상이 되었다. 또 원격의료 제도는 공공 보건의료자금이 영리기업으로 흐르는 통로가 되었다. 과다청구도 늘었다. 공공적 무상의료하에서는 불필요했던 돈벌이 과다청구가 자행되었다. 기업이 민감한 개인의료정보를 다루니 유출 사건도 더 쉽게 발생했다.9)

원격의료가 도입되면 이와 비슷한 일이 한국에서 반복될 것이다. 지난 3년 동안에도 이미 ‘닥터나우’같은 플랫폼 업체들은 의약품 오남용과 과잉처방을 부추겼다. 전문의약품이 버젓이 광고되었고, 의약품 선택서비스가 제공됐으며, 탈모약·여드름약 ‘성지’ 병원들이 생겨났다. 95%가 민간의료기관이라 안 그래도 과잉진료와 과잉처방은 더 늘어날 것이다. 또 복지부 2차관은 플랫폼 돈벌이는 수가 인상으로 해결하겠다는 발언을 했는데, 이는 원격의료가 도입되면 환자 부담과 건강보험료가 인상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간에는 의료로 돈벌이를 할 수 없었던 자본들은 ‘배달의 민족’이나 ‘카카오 택시’와 마찬가지로 의료로 영리를 추구할 것이고 그러면서 의료 생태계 자체를 상업적으로 왜곡시킬 것이다.

새로운 기술 도입을 명목으로 규제를 우회하는 다른 예는 의료기기·의약품 규제완화다. 정부는 새로운 의료기술에는 기존 규제를 적용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면서 제대로 된 안전·효과 평가를 생략하거나 유예하는 방식을 채택하려 한다. 이런 디지털 예외주의(digital exceptionalism)는 세계적 추세이나, 한국은 결코 다른 나라들에 못지않다. 윤석열 정부는 인공지능, 빅데이터, 디지털기술 같은 ‘혁신 의료기술’은 기존에 잠재성 같은 별도 기준을 도입하는 것을 넘어서 아예 선진입-후평가를 하겠다고 발표했다.10) ‘혁신’이란 안전과 효과가 명확히 입증돼 시민들과 환자들에게 분명한 효용을 제공하는 것이어야 하는데, 정부는 단지 ‘새로운 것’이면 다 ‘혁신’이라는 엉터리 논리를 앞세우고 있다. 

최근 과방위를 통과한 ‘인공지능산업육성법안’에서는 인공지능 관련 의료기술에 대해 선진입-후평가를 허용했고, 복지위 법안심사소위에 논의될 ‘규제과학혁신법’은 식품·의료기기·의약품·건강기능식품 등을 총망라해 ‘예외주의’를 실현하려는 내용이다. 이런 규제완화는 공통적으로 기업 돈벌이를 위해 환자를 마루타 삼는 것이나 다름없다.

마치며

윤석열 정부는 겨우 집권한 지 만 1년이 됐을 뿐인데도 이처럼 공공의료를 공격하고 의료민영화를 추진하는 데 전방위적이었다. 긴축과 민영화가 고통과 죽음을 낳는다는 연구와 저서들은 이미 차고 넘치지만, 이 정부의 보건의료 정책들이야말로 그 구체적인 현실의 표본들이라 할 만하다. 문제는 강력한 사회운동의 부재다. 이 정부 4년이 그대로 이어지는 것은 반복될 팬데믹·기후 재난과 경제위기 시대에 수많은 사람들이 겪을 재앙과 죽음을 방치하는 것이다. 연대와 저항이 실로 절실한 이유다. 


1) Our World in Data – Statistics and Research. Coronavirus(COVID-19)

2)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 2022.5

3) 기획재정부, 2022년 국가재정전략회의, 2022.7

4) 이흥훈, 감염병 전담 공공병원의 현황과 회복을 위한 과제, 공공보건의료 회복과 필수의료 국가책임 강화를 위한 토론회, 2022.9.26

5) 보건복지부, 건강보험 지속가능성 제고 및 필수의료 지원 대책(안), 2022.12.8

6) OECD health at a Glance 2019

7) 한국경영자총협회, 사회보험 국민부담 현황과 새정부 정책 혁신과제, 2022.4

8) 보건복지부, 비의료 건강관리서비스 가이드라인 및 사례집 2차, 2022.9

9) Canadian Health Coalition, NUPGE report warns against privatization through virtual health care, 2022.1.26

10) 관계부처 합동, 바이오헬스 신산업 규제혁신 방안, 20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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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23/04/03-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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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상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연구위원

들어가며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total fertility rate)이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여성이 평생동안 아이를 낳는 수를 의미하는 합계출산율은 2022년에 0.78명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결과는 사회적으로 상당한 충격을 주고 있고 이에 대응하여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사회정책이 제안되고 있다. 하지만 한 개인의 결혼과 출산 결정은 한 개인의 생애과정의 맥락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에 반해, 현재 주요하게 나타나는 관련 정책들은 출산 시기나 그 이후에 주로 초점이 맞추어진 경향이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 

이 글은 출산에 맞추어진 초점을 그 이전의 단계, 즉 성인 이행기(the transition period to adulthood)에맞추어 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에서 성인 이행기가 길어지고 있고, 여기에 가중된 자립의 어려움으로 인해 결혼과 출산이 늦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 글의 접근이 실제 결혼과 출산 결정 유보 상황을 적절하게 설명하는 것이라면, 합계출산율을 높이고자 하는 정책은 비단 출산과 그 전후 시점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개인들의 성인 이행기에도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즉, 성인 이행기 청년의 자립을 지원하여 결혼과 출산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여기서는 오늘날 아동·청소년기에서 성인기로 나아가는 과정, 즉 ‘성인 이행기’가 길어지고 있는 현상에 대해 설명하고,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인식 변화에 대해서도 간단히 살펴볼 것이다. 이를 통해 향후 저출산 정책과 청년 정책의 방향에 대해 제언하고자 한다. 

길어진 성인 이행기: 교육기간, 혼인연령, 출산연령의 예

성인이 되는 것은 한 순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만19세가 넘으면 법적으로 성인이 되지만, 이 연령이 지났다고 해서 그 사람이 당장 성인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자신이 성인이 되었다고 느끼는 것은 아니다. 일례로, 한 조사에서 우리나라 청년들의 성인 자각을 조사하였을 때 20대 초반의 성인 자각은 매우 낮은 편이었고, 20대 후반에 들어서야 절반 이상이 자신을 ‘가끔’ 혹은 ‘항상’성인이라고 느낀다고 하였다(유민상 외, 2022). 이는 이 시기가 아동·청소년기에서 성인기로 전환되는 과도기적 시기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아동·청소년기에서 성인기로의 전환기 혹은 이행기(transition period)가 나타나고, 길어지는 현상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경제 선진국들에서 유사하게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아네뜨(Arnett, 2000)는 이러한 시기를 새로운 성인기 혹은 발현 성인기(emerging adulthood)라고 불렀는데, 아동·청소년기에서 성인기 사이에 새롭게 등장한 시기라고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아동·청소년기에서 성인기로 급격하게 전환되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 훈련을 받으며 안정된 직업을 탐색하는 시기가 등장한 것이다. 예를 들어, 과거 법적으로 성인 연령이 되면 바로 노동시장에 나가거나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고 가족을 부양해야 했던 시기가 근래에 들어 대학교육이나 훈련을 받고 직업생활을 하고 조금 늦게 결혼과 출산을 하는 시기로 변화하게 된 것이다. 

성인 이행기가 길어지는 현상은 우리나라의 저출산 현상을 이해하는 데 있어, 그리고 성인 이행기의 자립을 지원하는 국가 수준의 청년 정책의 출현을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 다음은 길어진 성인 이행기를 보여주는 지표와 이를 어렵게 만드는 지표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1) 길어진 교육 기간

현대 산업사회는 과거에 비해 긴 교육이나 훈련을 요구하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해서 오랜 교육을 필요로 하는 직종이 많아지고 있고, 최근에는 대학원 학위를 추가적으로 필요로 하는 직업들도 생겨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는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경쟁적으로 대학 입학 경쟁에 뛰어들고 있고 높은 고등교육 진학률로 나타나고 있다. 1980년대 10% 남짓하던 대학진학률(고등교육 진학률)은 2020년대 70%를 넘어서고 있다. 그 이상의 역량을 쌓기 위해 방학이나 휴학 기간 중 추가적인 경쟁도 늘어나는 추세이며, 휴학과 졸업 유예 등으로 이러한 시기를 더 늘리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2) 늦어진 혼인 시기

혼인 시기도 점차적으로 늦어지고 있다. 1990년에 여성의 평균 혼인 연령은 24.78세였으나 2021년에는 31.08세로 높아졌고, 2022년에는 31.3세로 계속 증가 추세에 있다. 연령별 혼인율을 보면 이러한 변화가 더 잘 눈에 띈다. 1990년대 여성의 혼인은 20대 후반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었으나 2022년에는 30대 초반의 혼인율이 가장 높아졌다. 여전히 여성들은 사회가 주는 결혼과 출산에 대한 연령 규범의 부담을 안고 있겠지만 실제로는 이전보다 늦게 혼인을 하거나 아예 혼인을 하지 않는 방식을 통해서 탈표준화되고 있다. 이러한 탈표준화의 방향에 결혼이나 출산을 빨리 하려는 움직임은 잘 보이지 않고 있고, 반대로 결혼과 출산의 시기를 늦추거나, 아예 하지 않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특징적이라 할 수 있다. 

3) 늦어진 출산 시기

혼인 시기가 늦어지면서 출산 시기도 함께 늦어지고 있다. 2000년에만 하더라도 여성은 평균적으로 20대에 결혼하고 출산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여성들은 30대 초반에 결혼하고 첫 아이를 낳는 경우가 가장 많아지고 있다. 다만 이 시기의 다른 청년들은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는 상태로 인생 경로의 탈표준화를 경험하고 있기도 하다. 모두가 같은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선택적으로 결혼을 하지 않거나,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4) 성인 이행기 지연 요인으로서의 높은 니트 비율

이상에서 살펴본 것은 우리나라의 청년들은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까지 시간이 더 필요해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음 단계로의 시간이 연장된 이유는 인생을 즐기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까지가 더 험난해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만약,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 힘들어졌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타당하다면, 우리나라 청년들이 자주 경험하게 된 니트 상태(NEET: not in employment, education or training)의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탈표준화되는 인생 경로

지금까지 길어진 성인 이행기를 보여주는 지표와 이를 어렵게 만드는 지표에 대해 살펴보았다. 과거에는 결혼과 출산이 인생의 중요한 단계이며 개인이 따라야 하는 사회 규범으로 작용하였다. 이는 많은 이들이 결혼이 적합하다는 사회적 시기에 따라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는 동기 혹은 추동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일반적 단계 혹은 표준화된 단계는 점차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결혼과 출산이 필수적인 생애 과업으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의 인생 과업으로서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인식은 변화하고 있다. 

여성가족부에서 2020년에 시행한 「청소년종합실태조사」 자료를 보면, 13-24세의 청소년들은 ‘결혼은 반드시 해야 한다’에 대해 39.1%만이 ‘그렇다’고 응답하였다. 이는 2017년 51.0%에 비해 12%p 가량 하락한 수치이다. 특히 남자는 42.9%, 여자는 34.8%를 기록하였는데 이는 결혼에 대한 인식 변화가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도 나타나는 변화라는 걸 보여준다. ‘결혼을 하더라도 반드시 아이를 가질 필요는 없다’에 대해서는 60.3%가 동의하였다. 이는 2017년 조사 결과인 46.1%에 비해 증가한 수치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청소년들이 ‘반드시’ 결혼이나 출산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생각을 점차 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청소년들에게는 점차적으로 결혼과 출산이 필수가 아닌 ‘선택’의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청년들의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인식 역시 ‘선택’의 영역으로 옮겨가고 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2016년~2021년까지 시행한 「청년사회·경제실태조사」 자료를 보면, 2016년 결혼과 출산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청년들은 전체의 50%가 넘었으나, 2021년 조사에서는 30%대로 줄어들었다. 대신 결혼과 출산을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는’ 청년들의 비율이 가장 많아졌다. ‘결혼할 필요 없음’과 ‘자녀를 가질 필요 없음’은 각각 6.6%와 7.3%로 아직은 소수에 불과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결혼과 출산은 반드시 해야 할 인생 과업은 아니지만, 기회가 되면 선택할 수 있는 여전히 선호되는 선택지라는 것이다. 

요컨대 모든 사람이 결혼과 출산을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수가 원하고 있으므로 여전히 결혼과 출산에 대한 지원은 필요하다. 다만 이를 선택하지 않는 사람들까지 변화시키려고 하기보다는 결혼과 출산을 선호하지만 이를 충족시킬 수 있는 조건과 환경에 있지 않은 사람들을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표준화된 인생경로를 강요하지 않고, 다양한 인생경로를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삶의 질 지원 정책으로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이다.

저출산 정책과 청년 정책의 방향

이 글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저출산 정책은 더 생애주기적 관점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고, 생애주기적 관점에서 성인 이행기 동안의 자립 지원을 통해 결혼과 출산을 선택할 수 있도록 보완해야 한다. 성인 이행기에 있는 청년들이 자립을 하고, 그 이후 새로운 사회적 결속과 재생산을 위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관련 정책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그동안 이는 청년 정책의 영역도 아니었고 저출산 정책의 영역도 아니었으나, 이제는 함께 고민하고 실행해야 할 정책 영역이 된 것이다. 청년 정책에서 성인 이행기 자립을 지원하고, 저출산 정책에서 그 이후의 재생산과 관련된 지원을 담당하되 서로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청년 정책에서 모호하고 상징적으로만 다루어졌던 성인 이행기 자립에 대한 개념적 명확화와 실행 방안 정책화가 필요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다양한 정책 방향을 검토해볼 수 있다. 첫째, 성인 이행기 니트 청년의 지원이 필요하다. 성인 이행기가 지연되는데 일조하고 있는 니트 상태와 관련하여, 청년들이 니트 상태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사업이 더 확대되고 전문화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니트 상태에서 벗어나는 정책은 개인이 가진 권리 차원에서 제공될 수 있도록 구성되어야 하며, 권리적 차원의 정책지원은 유럽의 청년 보장(youth guarantee)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둘째, 성인 이행기 자립 시기를 앞당겨주는 지원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대학 학자금 대출을 갚느라, 그리고 결혼자금을 마련하느라 길어지는 시간을 줄여주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 대학 졸업 후 학자금 상환을 위해 긴 시간을 쓰는 청년들을 위해 보편적인 무료 대학 교육을 상상해볼 수 있고, 교육 시기의 장학금과 생활비와 같은 지원금(stipend), 주거비 지원도 함께 고려해볼 수 있다. 이는 고등교육으로 인해 소요되는 비용을 상환하기 위해 쓰는 시간을 앞당겨줄 것이다. 셋째, 성인 이행기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 이는 기존에 개인과 가족의 지원에 의해 지원되고 투자되었던 교육, 결혼, 출산에 대한 부담을 사회적 부담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는 불균등하게 가족의 투자와 지원에 의해 큰 영향을 받았던 성인 이행기의 자립이 사회적 지원을 통해 보편적으로 균형 있게 이루어지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현 청년세대의 자립을 지원하여 결혼과 출산을 선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아이를 갖기 위해 고려해야 할 장기적 부담(자녀에 대한 교육/취업/결혼 지원)을 줄여주는데 기여할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과 같이 길어지는 성인 이행기는 단순히 개인적 변화가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거대한 변화이다. 이는 특정 세대를 탓하고 출산을 강요하는 것으로 해소되기 어렵다. 힘든 성인 이행기를 경험한 청년들, 그리고 그 이후 단계를 위해 노력하지만 힘겨움을 느끼고 있는 청년들에게 국가를 위해 아이를 낳으라는 캠페인은 의미 없게 들릴지도 모른다. 이에 대한 사회정책적 함의는 “사회정책이 국가적 이익과 사회적 효용을 위하여 개인에게 결혼과 출산에 대한 선택을 강요하는 메시지를 던질 것이 아니라, 국가가 개인이 원하는 삶의 형태로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그러한 환경 속에서 자신이 선택한 인생에서 보다 나은 삶의 질을 누리도록 지원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이 자신의 인생에서 원하는 방향을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선택한 경로에 대해 지원해주는 방향으로 정책이 발전되길 기대한다.의 문제가 아니라, 장애인을 포함한 우리 모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1) 이 글은 2023년 2월 22일 보건복지부 ‘제1차 미래와 인구전략 포럼’에서 발표된 ‘성인 이행기 청년의 결혼, 출산 인식과 함의’를 토대로 작성되었다. 해당 발표는 ‘유민상, 신동훈, 신영규, 박미희(2022). 청년 사회 첫 출발 실태 및 대응 방안 연구II: 성인 이행기 청년의 자립. 세종: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보고서를 요약한 것임을 밝힌다

참고문헌

김기헌, 유민상, 배정희, 신동훈, 정지운(2021). 니트 등 비경제활동 청년층의 노동시장 유입을 위한 정책방안 연구. 세종: 고용노동부

여성가족부(2020). 2020 청소년종합실태조사. 서울: 여성가족부

유민상, 신동훈, 신영규, 박미희(2022). 청년 사회 첫 출발 실태 및 정책방안 연구II: 성인 이행기 청년의 자립. 세종: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Arnett, J. J. (2000). Emerging adulthood: A theory of development from the late teens through the twenties. American psychologist, 55(5), 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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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23/04/03-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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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현, 무모, 영인 새벽이생추어리 활동가

이 글에서는 비인간 동물과 인간 동물을 가르지 않고, 모두 생명을 가진 존재라는 의미를 나타내고자 비인간 동물의 수를 셀 때 ‘마리’가 아닌 ‘명(命)’을 사용합니다.

현 사회에서 비인간 동물의 위치

인간이 비인간 동물을 바라보는 관점과 그들과 맺는 관계는 각 시대에 따라 변화해왔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동물권에 대한 논의가 점차 확장되고 있으며, 최근 몇 년 사이 젊은 층을 중심으로 비건1)이란 개념도 낯설지 않게 되었다.

비인간 동물의 법적 지위를 개선해나가려는 시도도 이뤄지고 있는데 놀랍게도 지금까지 법적으로 동물은 생명이 아닌 물건에 준하는 존재로 다뤄졌다. 그렇기에 학대 사건이 벌어져도 가해자를 형사 처벌할 수 있는 죄목은 타인의 물건을 망가뜨리는 범죄인 재물손괴죄였으며, 동물 학대에 징역형을 선고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동물권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향상과 시민 사회의 노력으로 한국 법무부는 지난 2021년 동물을 물건으로 보지 않는 민법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으며 국회에 계류 중이다.

종차별주의

동물 학대를 강력히 처벌하고, 다른 종에게로 공감을 확대해나가고자 하는 흐름은 반길만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동물을 종에 따라 다르게 대우하는 종차별주의(speciesism)2) 가 만연하다. 특정 종의 동물들, 구체적으로는 산업적으로 이용되는 소위 ‘가축’으로 분류되는 동물들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다. 이들은 동물보호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며 미약한 법규가 있어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다. 이들 동물들이 번식되고 사육되며 죽임당하는 모든 과정에서 겪게 되는 폭력은 관행이자 합법으로 널리 인정된다. 인간이 비인간 동물을 이용하는 산업의 규모는 지난 어느 시대보다도 거대해졌고, 그만큼 산업에 이용되는 동물들에 대한 처사도 잔혹해졌다. 비인간 동물들은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고통과 감정을 느끼는 생명이 아닌 이윤을 위한 도구로 대해진다.

우리 인간은 필요와 상황에 따라 비인간 동물들을 크게 ‘반려동물’, ‘농장동물’, ‘실험동물’, ‘야생동물’로 분류하여 극도로 다르게 대우해왔다. 종차별주의는 인간과 비인간 동물을 구분하고, 비인간 동물 중에서도 특정 종의 동물만을 보호할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여기서 말하는 보호할 가치는 오로지 인간의 기준이며, 인간의 이익을 침범한다고 여겨지면 ‘보호할 대상’에서 ‘유해조수’로 전락하기도 한다.

새벽이생추어리의 탄생

2020년 5월 국내 최초로 설립된 생추어리인 새벽이생추어리는 뿌리 깊은 종차별주의에 의문을 제기하는 동물권 단체이다. 생추어리(sanctuary)란 사전적 의미로 ‘안식처’, ‘피난처’를 뜻하는데, 1980년대 미국에서 처음으로 공장식 축산업에서 병들고 버림받은 동물들을 구조하여 돌보는 시설이 생겨나면서 지금과 같은 의미의 동물 생추어리가 확산되었다. 인간이 만든 시설 중 가장 동물권에 입각한 공간인 생추어리는 다른 어떤 목적보다도 그곳에 거주하는 동물의 안온한 삶을 가장 우선시하며, 야생에서 살아갈 수 없는 동물들의 자연 수명이 다할 때까지 그들의 돌봄을 책임진다. 동물보호소나 동물원과 다르게 동물을 사거나 입양 보내지 않고, 더 이상 동물을 수용할 수 없다는 이유로 안락사시키지 않으며, 동물을 전시하거나 체험에 동원하는 등 인간을 위해 이용하지 않는다. 동물 한 명 한 명의 개별성과 고유성을 존중하고, 그들의 습성과 욕구에 맞춘 환경을 제공하며, 아플 땐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한다. 현재 새벽이생추어리에는 종돈장에서 공개 구조(open rescue)3)된 돼지 새벽이와 실험동물로 태어나 쓸모를 잃자 안락사 위기에 처했다 구조된 돼지 잔디가 산다.

우리 사회에서 ‘가축’으로 불리는 종인 돼지는 고기를 생산하는 것과 동물실험을 목적으로 주로 이용되며 각각 공장식 축산과 동물실험 산업4)에서 막대한 규모로 희생된다.

돼지도 반려동물로 불리는 강아지, 고양이는 물론 인간과도 다를 바 없이 고통을 느끼고 감정을 지닌 존재이지만 우리 사회는 이 사실을 철저하게 외면한다. 그렇게 해야만 거대한 자본이 계속 이윤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벽이생추어리는 그렇게 외면당하여 잊혀지고 가려져 온 동물들의 삶을 드러내는 활동을 한다.

돼지다움 그 너머 새벽이답게, 잔디답게 사는 삶

새벽이생추어리는 새벽이와 잔디가 살아가는 ‘돼지다운’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가치 있고 아름다운지를 알리며 우리 사회가 비인간 동물들로부터 어떤 삶을 빼앗아 왔는지를 보여준다. 새벽이와 잔디는 돼지 본연의 습성대로 부드러운 땅을 코로 파며 탐색하는 것을 즐기고, 자신들의 방식으로 다채로운 감정표현을 한다. 

축산 농가에 사는 돼지들은 좁고 열악한 환경에서 지내기에 한 공간에서 먹고, 자며 배변 활동을 한다. 땀샘이 없는 돼지는 본래 진흙을 몸에 묻혀 체온조절을 하는데, 축산 농가의 돼지들은 자신의 오물을 몸에 묻혀 체온조절을 할 수밖에 없다. 이와 달리 새벽이와 잔디는 스스로 자는 곳과 배변 활동을 하는 공간을 분리하여 생활하며, 더운 여름에는 진흙목욕을 하며 살아간다.

같은 돼지 종이지만 새벽이와 잔디는 서로 체격뿐 아니라 취향과 성격이 달라 단순히 ‘돼지’라는 하나의 분류로 묶일 수 없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인간들 사이에도 ‘너’와 ‘나’가 분명히 구분되듯이, 새벽이에게는 새벽이다움이 있고 잔디에게는 잔디다움이 있다. 그들은 각자 개별성과 고유성을 지닌 존재들이다. 새벽이생추어리는 새벽이와 잔디가 살아가는 생생한 이야기를 알림으로써, 어떤 인간 동물권 활동가보다도 강력한 목소리를 지닌 새벽이와 잔디를 대변해왔다.

폭력의 흔적을 지니고 살아가는 새벽이와 잔디

생후 2주차에 구조되었음에도 새벽이의 몸엔 종돈장에서 겪은 여러 폭력의 흔적이 남아있다. 열악한 종돈장 환경 탓에 새벽이는 피부병을 앓고 있었고 치료가 필요했다. 새벽이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꼬리가 잘리고 송곳니를 뽑혔다. 이는 새끼 돼지들이 변변한 환경적 자극이 없는 상황에서 스트레스를 받아 서로의 귀와 꼬리를 무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다. 또한 남성으로 태어난 새벽이는 고기에서 나는 웅취를 없앤다는 이유로 거세당했다. 이 모든 일들은 축산업 현장에서 이뤄지는 관행으로 마취 없이 진행된다.

잔디는 실험동물로 쓰이기 위해 인위적으로 체구를 작게 만들고 피부색을 희게 만든 종의 돼지이다. 잔디가 밥을 먹거나 물을 마실 때 고개를 허우적거리는 행동을 자주 하는데, 수의사에 따르면 잔디 코의 모양이 선천적으로 기형이고 이는 근친 교배로 인한 것일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인간은 원하는 특질을 만들어내기 위해 비인간 동물을 선택적으로 교배하고, 유전자 조작으로 개변했다. 이 과정에서 비인간 동물이 살아가야 하는 삶이나 해당 종의 복지는 고려되지 않았다. 젖소의 유방은 몸이 버티지 못할 정도로 많은 젖을 생산하도록 개변되었고, 닭과 칠면조는 거대한 가슴 무게를 지탱하지 못해 주저앉는다. 고기로 키워지는 돼지들은 평균 6개월령에 도살되는데, 단기간 빠르게 살찌우기 위해 성장촉진제가 사용된다. 인위적으로 비대하게 커진 몸을 버티기에 돼지의 관절은 너무 약하다. 새벽이 또한 관절 건강을 위해 평생 식단 조절을 해서 적정 체중을 유지해야 한다. 새벽이와 잔디는 이미 인간에 의해 장애를 입고 기형으로 태어났다. ‘고기’와 ‘실험동물’이라는 목적만을 위해 강제로 몸을 개변시킨 결과, 다양한 건강상의 어려움을 겪는 이들의 삶은 인간이 행한 폭력을 가감 없이 증언하며 성찰하게 만든다.

축산업의 가려진 비용

축산업에서는 막대한 양의 온실가스, 메탄, 이산화질소가 배출되며, 가축을 키울 공간 및 가축 사료를 재배하기 위한 공간 마련을 위해 대규모 벌목이 이루어진다. 전 세계 곡물 생산량의 1/3은 가축의 먹이로 이용된다. 누군가는 고기를 그 어느 시대보다 쉽고 값싸게 소비하고 함부로 버리기까지 하는 현실이지만, 이 세계에는 여전히 굶주리고 식수 부족에 시달리는 수많은 사람이 있다.

비좁고 스트레스를 주는 환경에서 살아가기에 발생하는 필연적인 건강 문제를 예방하고자 더 많은 항생제와 살균제가 사용된다. 그리고 항생제 남용은 내성 있는 병원균을 만들어낸다.5) 현재 미국, 유럽, 일본 등에는 사상 최악의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유행하고 있다. 밍크, 수달, 여우 등의 포유류가 감염되어 집단으로 죽은 것이 확인되면서 ‘조류발 팬데믹’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6)

공장식 축산은 바이러스의 변이와 확산을 용이하게 만드는 밀집된 환경으로, 인수공통감염병의 위험을 높인다. 매년 발생하는 전염병으로 수많은 비인간 동물이 살처분7)되었다. 2022년 10월 기준으로 2019년 이후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발생 농가에서는 총 6만 5,404명의 돼지가 살처분되었는데, 확산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감염 여부에 대한 확인 없이 예방적으로 살처분된 인근 농가의 돼지는 그 5배가 넘는 34만 3,136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8) 동물들이 산 채로 매장된 땅에선 침출수가 흐르고, 이는 토양과 하천을 오염시킨다.

동물권은 비인간 동물만을 위한 것일까

2017년 경북의 한 돼지 농장에서는 이주 노동자 두 명이 돼지 분뇨로 막힌 구멍을 뚫기 위해 집수조에 들어갔다 유독가스에 질식해 죽었다. 사장의 지시로 어떤 보호 장비도 없이 맨몸으로 일을 진행하다 발생한 인재였다.9) 살처분 현장에 투입된 후 과로사, 자살 등으로 공무원들의 죽음이 잇따르자 정부는 살처분 인력을 외주화하여 용역을 주고 일용직 노동자로 대체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불안정한 신분에, 산재 처리를 해주지 않아도 되는 이주 노동자들이 들어왔다.10)

축사 인근 주민들은 축사 악취와 소음 피해를 지속적으로 호소한다. 혐오 시설인 축사는 땅값이 싸고 사람이 적은 지방에 위치하며, 도시의 사람들은 돼지, 소, 닭을 평생 마주치지 않고도 깨끗하게 손질된 고기를 마트에서 언제든 구입할 수 있는 소비자로만 남는다. 지금과 같은 지나친 육식 소비를 가능하게 만드는 공장식 축산 시스템이 유지되기 위해 누가 희생을 감내하고 있는지는 가려진다. 공장식 축산은 종차별주의뿐 아니라 도시와 지방 간 불평등과 빈부격차로 지속된다.

축산업으로 인한 환경 오염 피해를 가장 먼저 받는 자들은 비인간 동물과 인간 구분 없이 가난하고 힘없는 사회적 약자들일 것이다. 동물권의 문제는 비인간 동물들을 불쌍히 여기거나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동물권은 인간 사회의 빈곤, 생태, 공공 보건, 노동자들의 권리 등 인권을 포괄하는 개념일 수밖에 없다.

인간과 비인간 동물이 맺는 대안적 관계를 제시

새벽이생추어리에서는 정기적으로 소수의 돌봄 활동가(‘보듬이’)를 모집하여 일정 기간 매주 새벽이와 잔디를 만나 돌봄하며 관계를 쌓을 기회를 제공한다. 살아있는 돼지를 좀처럼 만날 수 없는 사회에서 새벽이와 잔디를 직접 만나 그들의 고유함을 알아가는 경험은 특별하다. 

우리는 인간을 위해서라면 비인간 동물을 착취하는 것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느끼는 사회에서 평생 살아왔다. 새벽이와 잔디가 봄을 맞아 푹신하게 녹은 땅을 밟으며 신나게 뛰는 모습, 햇볕 아래 따사로움을 느끼며 평온하게 잠든 모습은 그들이 고기로 당연하게 태어난 것이 아님을, 그들 또한 그 자체로 존중받아 마땅한 주체적인 생명으로 태어났음을 깨닫게 한다. 이러한 경험은 단절되었던 비인간 동물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대안적인 관계를 만들어가는 시작점이 된다.

새벽이생추어리에서 새벽이와 잔디는 생추어리의 주인이고, 방문하는 인간은 손님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우리가 경험해본 적 없는 새로운 것이기에 생각과 달리 실패하기도 하고, 자신 안의 뿌리 깊은 종차별을 마주하는 날도 많지만, 더 나은 태도와 관계맺음을 위해 우리는 계속해서 노력하고 있다. 이곳에 오는 인간은 비인간 동물을 불쌍한 존재로 여기는 시혜적인 태도를 지양하고, 새벽이와 잔디를 동물해방운동을 함께 하는 동료로 여기며 돌봄이란 방식으로 연대하고자 한다.

돌봄 활동은 직접 몸을 움직여 생추어리의 거주 동물을 보듬는 활동이기 때문에, 글이나 말, 교육으로는 다 전달할 수 없는 가치를 체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돌봄 활동에서 얻은 여운은 도시로 돌아온 일상에서도 지속되어, 당연하게 여겨온 관념들에 더 많은 균열을 내고 사회의 변화를 일으키는 동력이 된다.

모든 동물의 해방을 꿈꾸는, 새벽이생추어리

새벽이생추어리는 모든 사람이 비건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인간 동물이 다른 종의 동물, 자연과 맺고 있는 착취적인 관계에 대한 성찰 없는 비거니즘은 또 다른 누군가의 희생을 만들어낼 것이다. 새벽이생추어리가 말하고자 하는 동물권은 인간과 비인간을 가르지 않고 그 누구도 고통 속에서 생식 능력을 착취당하며 번식 당하지 않을 권리, 죽임당하기 위해 살아가지 않을 권리, 평생의 자유를 억압당하며 구속당하지 않을 당연한 권리를 말한다.

새벽이와 잔디의 삶을 통해 단절되었던 존재들과 연결되는 충만함을 더 많은 사람이 경험하고, 지속가능한 세상을 위한 변화에 함께하기를 소망한다. 


1) 비거니즘(Veganism)을 실천하는 사람. 비거니즘을 완전 채식주의라고 번역하기도 하지만, 식(食)에만 한정된 개념은 아니다. 동물을 착취하지 않으며 지속 가능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가치관이자 철학으로, 의식주를 아우르는 전반적인 삶의 태도를 말한다

2) 특정 종에 속한 개체가 다른 종에 속한 개체보다 더 우위에 있거나 열등하다고 판단하고 그에 기반하여 차별을 가하는 일체의 행위

3) 활동가들이 신원을 감추지 않고 농장에 들어가 동물들이 겪는 폭력적인 상황을 기록으로 남기고 죽어가는 동물들을 구조하는 직접행동을 말하며, 폭력으로 고통받는 동물의 ‘구조할 권리’를 확립하려는 활동이다. 새벽이는 2019년 7월 디엑스이코리아(DxE Korea) 활동가들에 의해 종돈장에서 공개 구조되었다. DxE(디엑스이)는 전지구적 동물해방 풀뿌리 네트워크로 알려진 동물권 운동 단체이다. 디엑스이 미국 활동가들은 미국 내 이뤄진 초국적 거대 축산 기업을 상대로 한 공개구조에 대해 ‘절도’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2022년 10월과 2023년 3월 각각 소송에서 배심원 만장일치 무죄가 선고되었다(※출처①: ‘학대’ 새끼돼지 구조해 절도죄로 기소… 배심원단이 내린 결론, 오마이뉴스, 손가영, 2022-10-10, ※출처②: dxekorea 인스타그램)

4) 잔디가 태어난 2020년 한 해 동안 국내에서 희생된 실험 동물의 수는 4,141,433명이다. ‘운 좋게 살아남은’ 잔디만이 생추어리에서 세 번째 생일을 맞았다(출처: 2020년도 동물실험윤리위원회 운영실적 및 실험 동물 사용실태)

5) 【공장식 축산을 고발한다②】 가축이 병들 때 사람만 건강할 수는 없다, 뉴스퀘스트, 박민수, 2022-09-20

6) [기후환경 리포트] 코로나19 다음은 H5N1? 조류발 팬데믹 인간 위협, MBC, 현인아, 2023-02-27

7) 가축 살처분은 바이러스의 숙주가 될 가능성이 있는 모든 동물을 죽여 없앰으로써 전염병의 전파를 막는 일종의 예방법이다. 한국의 무차별적인 예방적 살처분 기준에 대해서는 축산 농가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높다. 예방적 살처분은 막대한 세금이 투입되는 비효율적인 과정이며, 살처분 현장에 참여하는 노동자들에게 강도 높은 트라우마를 유발한다.

8) 아프리카돼지열병 살처분 중 84% 예방 차원 시행, 한국영농신문, 이병로, 2022-10-12

9) 돼지똥통에 빠진 그들의 절박한 목소리가 들리는가, 연합뉴스, 성도현, 2022-12-20

10) “한해 50억만 벌었으면”…AI 살처분을 기다리는 사람들, 한겨레, 황춘화, 2019-02-16

참고문헌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조너선 사프란 포어, 송은주(옮긴이), 민음사, 2011

<안녕하세요 비인간동물님들!>, 남종영, 북트리터, 2022

<짐을 끄는 짐승들>, 수나우라 테일러, 이마즈 유리·장한길(옮긴이), 오월의 봄, 2020

<훔친 돼지만이 살아남았다>, 향기,은영,섬나리, 호밀밭,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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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23/04/03-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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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참여팀] 참여연대의 자원활동가는 상근 활동가들과 손발을 맞춰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입니다. 10대 청소년부터 일흔이 넘으신 어르신까지 다양한 연령대와 학생, 주부, 직장인, 은퇴자 등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자원활동가들의 숨은 활약을 자원활동가 인터뷰를 통해 알려드립니다.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기 위해 참여연대의 문을 두드렸어요."

 

참여사회연구소 자원활동가 김고운님

 

 

참여연대 자원활동가 김고운
참여사회연구소 자원활동가 김고운님 ⓒ참여연대

 

 

햇빛이 쨍쨍하던 연휴의 마지막 날, 자원활동가 김고운님을 만났다. 지하철역 출구 앞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 속에서 알아보지 못하면 어쩌나 잠시 걱정했었다. 하지만 이름처럼 고운 모습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열심히 필자를 찾던 김고운님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바로 서로를 알아볼 수 있었다.

 

대학교 졸업 막바지에 다른 고운님은 참여연대 참여사회연구소에서 자원 활동을 하고 있다. ‘참여사회연구소’라는 이름이 너무 좋았다는 고운님은 그곳에서 기사 브리핑이나 매달 열리는 포럼 준비를 위해 의미 있는 기사를 선별하고 요약·정리하는 활동을 한다. 포럼이 열릴 때는 포럼내용을 속기로 기록하는 일을 맡는다. 최근에는 참여사회연구소의 계간지 『시민과 세계』개편 과정에서 대학생의 취향을 반영하기 위해 고민 중이다. 고운님은 이전에 『시민과 세계』와 같은 학술잡지를 읽은 적이 많지 않았다. 그런데 같이 활동하는 참여사회연구소의 간사님께서는 대학생 때 다양한 학술잡지를 통해 사회 문제나 관련 이론들을 많이 배우셨다고 한다. 그래서 더 많은 대학생들이 좋은 콘텐츠로 가득한 『시민과 세계』를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간사님과 함께 『대학 내일』같은 잡지도 보면서 신선하다 싶은 내용이 있으면 참고 중이다.

 

처음 참여연대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은 고운님에게 꽤 큰 용기를 필요로 했다. 머릿속에서는 항상 여러 생각들이 존재했지만,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조금 무서운 일이었다. 어떤 사안에 대한 관심이나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을 때 그것만으로 ‘어떤 사람’으로 규정되거나, 자기만의 주장이 강한 사람으로 비춰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특히, 고운님이 대학에 입학하던 때는 대선이 있어서 정치적으로도 민감한 해였기에 보다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늘 한 발 뒤에 물러서 있었지만, 그렇게 계속 물러서 있는 것이 옳은 일 같지는 않았다. 자신의 생각을 만들며 다듬어가야 할 필요성을 느꼈고, 생각을 실천으로 옮겨야겠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어 참여연대의 문을 두드렸고, 지금까지 자원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참여연대에는 각종 사회 문제들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많은 분들이 있다. 고운님은 그분들이 그저 자기주장만 센 사람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사회의 여러 사안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알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참여연대에서 함께 활동하는 사람들의 의견은 다양했고, 그 다양함이 불편한 게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것들을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고 한다. 또한, 참여연대 간사님에게서도 많이 배웠는데, 참여사회연구소에서 신문 기사를 선별하고 정리할 때 간사님들이 기사주제와 관련한 내용을 조목조목 알려주시고, 스스로도 자연스레 어떤 사안에 대해 정리할 시간이 주어져서 특히 좋았다고 한다.

 

고운님은 현재 로스쿨 입시를 준비 중이다. ‘법조인’하면 흔히 생각되는 재판 관련 업무가 아니라, 좋은 법에 대한 개정 혹은 입법 운동에 관한 공부를 하고 싶어서 로스쿨 진학을 희망하고 있다고 한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에 대한 틀을 잡아가는 과정에 참여연대에서의 자원 활동이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언젠가 또 한 번 고운님을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바쁜 틈에도 인터뷰에 응해주신 고운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작성 자원활동가 이성민 (계속해서 자라고 싶은 대학생)

목, 2015/05/28-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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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오늘 인터뷰는 모범회원 인터뷰 제1탄입니다. 이번 총회에서 모범회원상과 신인모범회원상을 받으신 고윤덕, 박삼성 변호사님이세요. 일단 회원 분들에게 본인 소개부터 간략하게 해주세요.

 

고윤덕 저는 76년생이고요, 연수원 38기로 지금 7년차 변호사가 됐습니다. 법무법인 시민에서 근무하고 있고 노동위원회 소속입니다.

 

박삼성 저는 변시 3회로 올해 2년차고 지금 수원에서 개업해서 노동사건 중심으로 한 번 배워볼까 하고 있습니다. 미군위에서 활동하고 있고, 국제통상위 쪽에 관심도 있어요, 그리고 한-중FTA TF팀에서도 활동 하고 있습니다.

 

김지미 이번 총회에서 고윤덕 변호사님이 모범회원, 그리고 박삼성 변호사님이 신인모범회원상을 받으셨어요. 총회에서 간략하게 수상소감 얘기를 하셨지만 총회에 참석 안하신 회원들을 위해 상을 받으신 소감 좀 부탁드릴게요.

 

고윤덕 총회에서는 수상소감을 ‘열심히했고, 상을 주시니 좋다, 감사하다’ 이런 취지로 말씀을 드렸어요. 그런데 사실 그때 제 머릿속에 있던 생각은 내가 받기에는 너무 과분한데 괜찮을까 하는 거였어요. 민변 모범회원상이 되게 의미가 크잖아요. 그 전 해를 통틀어 제일 열심히 활동하고 그리고 의미 있는 활동을 하신 분들이 받아왔던 건데,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까 저는 별로 인상적인 활동 한 것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좀 부담스럽기도 했어요. 다만 다 함께 축제분위기인데 지나치게 겸손한 소감은 적합하지 않은 것 같아서 기쁘고 감사한 마음만 전했는데, 스스로 굉장히 과분하게 생각하고 있다는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김지미 박삼성 변호사님이 받은 신인모범회원상은 일생에 1번이기 때문에 더 받기 어려운 상이다 이런 이야길 하잖아요. 그런 점에서 더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박삼성 기본적으로 그때 말씀드리긴 했는데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처음 받아보는 상이 아닌가.

 

김지미 고등학교 때는 상을 받으셨구나(웃음).

 

박삼성 저는 정말 좋았어요. 추천한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이 상이 되게 치열한 상이라고 들어왔었고 저보다 활동을 많이 하신 분들이 많았기 때문에 받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을 못했었는데, 제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아, 정말 좋았어요.

 

김지미 올 것이 왔구나 이런 생각?

 

박삼성 그럴 줄 알았으면 등산복을 입고 가지는 않았을 텐데. 의상에 신경을 못 썼던 것이 조금 아쉽고요. 그런데 늦게 변호사가 되었는데 이런 큰 상을 받아서 기분 좋았고요. 민변이라는 조직이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여러 선배님들이 닦아놓은 터전 안에서 활동을 했었기 때문에 받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지미 고윤덕 변호사님에 대한 추천서를 보면 수상의 이유가 ‘노동위원회 총무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노동위원회 신입위원들을 늘 따뜻하게 챙기고 이끌어주고 위원회 활동에 큰 활력을 불어 넣어주었다. 산업재해팀의 팀장역할을 수행 하면서 활동성 강화에 기여했다.’ 라는 것 하나, 또 다른 하나는 작년 1년을 끌었었던 통합진보당 정당해산심판청구사건의 대리인으로 활동을 하셨던 것 하나인 것 같아요. 아시다시피 노동위가 민변에서 가장 큰 단위의 위원회고, 또 회원 수도 가장 많고 모임도 매주 가지고 그 외에도 팀별로 팀회의까지, 시민에서 근무하면서 추가로 하는 활동이라고 하기엔 시간적으로도 그렇고 부담이 되실 텐데 노동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어려운 점이라든지 그런 게 있을까요?

 

고윤덕 우리 노동위원회에는 훌륭한 분들이 많습니다. 저 혼자 하는 것도 아니고요. 저는 꾸준하게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일들 위주로 해왔기 때문에 특별히 과외활동으로 과부화가 된다 이런 생각은 안 들어요. 어떻게 생각하면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만 활동하고 있는 건데, 열심히 하시는 분들을 보면 존경스럽기도 하고 자극도 되고 그렇습니다. 저는 또 저 나름대로 주어진 역할을 하고 있고, 총무변호사로서 이런저런 자잘한 일들을 부지런히 하고 있습니다.

 

김지미 그럼 이 부분은 어때요? 노동위 신입위원들을 따뜻하게..(웃음) 이 부분에 대한 자평을 좀 해주시죠.

 

고윤덕 사실은 노동위가 전통적으로 후배를 잘 챙겨주고 그런 곳은 아닙니다(웃음). 알아서 혼자 살아남는..(웃음) 그렇지만 소통이라고 하죠. 좋은 생각을 가지고 가입하신 분들, 같이 활동한다고 결심을 하시고 오신 분들이 잘 할 수 있게 최소한 도와주는 역할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정도입니다. 그리고 노동위에 정말로 사람들을 잘 챙겨주는 사람들은 따로 있고요 저는 틈틈이 그 옆에서 도와주는 것으로 소임을 다하고 있습니다.

 

김지미 누가 잘 챙기나요?

 

고윤덕 위원장님이 위원들 간의 소통과 유대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계시고, 2-3년차 변호사들 중에아주 인재들이 많습니다. 아, 그리고 우리 정병욱 변호사님을 빼 놓을 수는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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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인재들이 많이 들어오는 것도 복이자 위원회 자체의 능력일 수도 있죠. 박삼성 변호사님의 추천서는 되게 감동적이었어요. ‘이렇게 조용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사람이 있을까요?’로 시작하는 한편의 시 같았어요. 박변호사님은 정회원이 되기 전부터 위원회 활동에 적극적이었다라고 하는데 민변에 가입하신 게 언제인가요?

 

박삼성 벌써 재작년이네요. 2013년도 겨울에 실무수습을 정평에서 했었거든요. 하면서 마침 위원회 날짜가 맞아서 sofa 공부모임에 참여하게 되면서 시간 날 때마다 몇 번씩 미군위와 인연을 맺게 되었어요. 그러다가 2013년도 1월에 특별회원으로 가입을 했었습니다,

 

김지미 부산대 로스쿨을 다니셨는데, 한 달에 1번 있었던 공부모임에 참여를 하러 부산에서 서울까지 오셨던 거에요?

 

고윤덕 집에 가는 길에 들렀을 테지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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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정회원보다 출석률이 좋았다 라고 추천서에 되어 있는데. 이게 3학년 때이잖아요. 변시를 앞두고 있어서 바쁘고 힘들었을 땐데 먼 거리를 와서까지 내가 공부모임에 참여를 하는 동력은 뭐였을까요?

 

박삼성 제가 서울에 있다가 부산으로 내려가게 됐는데, 로스쿨 생활이 3년이다 보니까 1년 동안 거의 교류가 없었죠. 교류가 없다보니까 이런 관심에서 멀어진다는 느낌, 거리가 멀고 사람을 안 만나니까,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나 열심히 하신 분들을 안 만나니까 점점 자기 일에만 메이는 느낌이 있었어요. 어차피 졸업하면 서울도 와야 하고 진로를 고민하면서 보니까 계속 사람을 만나야겠다라는 생각을 했었죠. 그런 면에서 워낙 좋으신 분들이 많았기 때문에 열심히 나오려고 했습니다.

 

김지미 미군위 활동 하신다고 했는데 미군위하고 여성위가 같이하는 기지촌할머니국가배상소도 관여를 하고 계시죠? 작년에는 세월호특위에도 참여를 하셨고. 추천서에 청운동 파출소장이라고 되어 있어서 이거를 보고 시상위원회에서 실제로 박삼성 변호사 경찰출신이야? 그랬었어요(웃음). 청운동 파출소장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이유가 뭔가요?

 

박삼성 그때 다른 단체들과 함께 인권침해감시단 활동을 했었는데, 이동의 편리성을 위해서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했었어요. 이동파출소장 이런 개념으로 해서 이름을 붙여주시더라고요.

 

김지미 사실 변시 출신들은 실무수습 기간이 있기 때문에 합격을 했다하더라도 1년차에는 변호사로서의 활동을 잘 못하고 본격적으로 변호사로서의 일은 2년차가 돼서야 시작을 하잖아요. 그런데 작년에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이 계속 되고 있던 중에 통합진보당 상근변호사로 변호사로서의 첫 발을 떼셨어요. 사실 나의 직장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있는 상황에서 거기를 가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결심하는 데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박삼성 저는 걱정을 안했는데 주변 친구들이 걱정을 많이 했었어요(웃음). 그런데 저는 큰 걱정이라기보다는 새로운 것을 경험해 볼 것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거든요. 특히나 정당의 자문변호사면 정당이 할 수 있는 일이 되게 많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해산될 줄은 생각도 못했었죠.

 

김지미 해산이 안 될 것이라고 확신을 하셨군요.

 

고윤덕 언제 상근변호사로 가셨어요?

 

박삼성 2014년 10월이요. 다들 정세판단을 잘못했다고 하면서(웃음). 저는 전혀 그것에 대한 어려움을 생각 못했는데 주변에서 걱정을 많이 하셨죠.

 

김지미 정당해산선고가 난 이후에 박삼성 변호사를 아는 사람들은 그 충격의 여파가 가시고 나서 박삼성 어떡해?(웃음) 그런 이야기가 나왔어요. 어찌됐건 취직을 하자마자 실직이 된 상태였었잖아요. 그런데 정당이 해산되고 나니까 그 뒤처리는 또 상근변호사로서 다 하셨어야 했었던 거죠. 되게 힘들었을 것 같고 내가 앞으로 뭘 해야 하는지에 대한 전망이라든지 그런 것에 대해서 1년차 신입변호사로서도 상당히 고민이 많았을 것 같은데, 그 이후에 지금의 전망을, 개업까지의 과정에 대해서 본인의 이야길 해주시면?

 

박삼성 작년 연말에 해산되고 나서 해가 바뀌었다는 생각이 전혀 안 들더라고요. 그런데 저의 그런 심정보다는 그렇게 열심히 활동하셨던 분들의 분노가 너무 큰 것을 보니까 제가 그렇게 직장이 없어졌다는 것은 새발의 피다. 어쨌든 2개월 안에 업무를 마쳐야 하니까 회계 관련 자문이나 잡무처리에 대해서 자문 같은 것을 하고 보냈었죠. 해산은 해야 하니까. 2월 말에 어떻게 할까 하다가 의정부 쪽에 고양으로 면접 기회가 있었는데 수원에서 활동하시는 박치현 변호사님께서 혹시 개업 생각이 있느냐, 노동 쪽 사건을 같이 해보면 어떻겠냐라는 제안을 하셨죠. 개업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고민을 했는데, 정당해산 3개월 하다보니까 법률적인 일은 어쨌든 제가 알아서 스스로 해야 하니까. 자문을 하면 제가 답변을 해야 하고. 그래서 그런 것들이 개업을 할 수 있었던 기반이 아니었나. 제 이름으로 모든 것을 처리해야 하니까. 오히려 경험했던 것이 개업을 바로 할 수 있었던 힘이 됐었고, 기본적으로 고용으로 들어가면 하고 싶은 활동을 많이 못한다는 우려를 많이 했었고요. 그래서 개업을 하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맞지 않느냐 그런 생각을 많이 했었죠.

 

김지미 고윤덕 변호사님은 38기시잖아요. 저도 늦게 시험이 된 케이스긴 한데, 변호사님하고 저하고 거의 비슷한 것 같거든요. 그래서 그 사이에 뭐가 있었을까 사실 좀 궁금해요.

 

고윤덕 안타깝게도별 것이 없답니다. 그냥 고시공부를좀 늦게 시작했고, 오래했어요. 그래서 요즘 변호사가 되기 전에 다양한 경험을 가진 분들을 보면 참 대단하다고 멋지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지미 민변은 변호사가 되면서부터 바로 가입을 하신 거죠? 공부를 하면서 변호사가 되면 민변에 당연히 가입을 할 거라고 생각하셨나요?

 

고윤덕 네. 특별한 계기는 없어요. 전부터 변호사가 되면 민변 같은 데 가입해서 활동을 하면 참 보람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었어요. 제가 예전에도 그랬지만 관심분야는 적극적으로 찾아다니는 편이에요. 연수원에서 노동법학회 활동도 하고 1학년 때 법률 봉사활동을 금속 법률원으로 갔었어요. 관심분야가 그러다 보니까 민변에서 노동위원회가 있다더라 또 각종의 신문, 언론보도를 보면 어떤 사안에 대해서 항상 자기입장을 표명하고, 그게 공감이 되고. 특히 소수자들의 목소리에 대해서 항상 적극적으로 입장을 표명하는 그런 부분이 마음에 들어서 나도 변호사가 된다면 같이 하면 좋을 것 같다 이런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취업이 시민 사무실로 되었는데, 저희 사무실 변호사님들은 다 민변 소속이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민변에 가입하게 됐어요. 민변에서는 거의 노동위 활동만 해왔는데, 작년에 비상특위 활동을 계기로 또 훌륭한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되어 좋았습니다.

 

김지미 최근의 관심사는 뭐에요?

 

고윤덕 요즘엔… 노동‘인권’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웃음).

 

김지미 그거는 기본적으로 바탕에 깔려 있는 거 아닌가요?

 

고윤덕 제가 의외로 인권감수성이 약하다는 콤플렉스가 좀 있어요. 서울변호사회 인권위원으로 노동인권 소위원회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어떤 사업을 하면 좋을까 그 생각을 하고 있는 참입니다.

 

김지미 민변에 계신 분들은 기본적으로는 감수성이 있는 분들이니까요. 저번에 인터뷰 하신 거 보니까 장애인운동 하는 동아리, 법대 철학회, 신문도 만들고 검도하고 사진, 등산까지 정말 관심 분야가 다양하던데 최근에 특별히 관심 가는 분야는 없으세요?

 

고윤덕 작년에 통합진보당해산 사건 때문에 등산도 그만두고 거의 1년간은 거기에 올인하다시피 하다가 결론이 그렇게 났습니다.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은 해산결정으로 인해서 많은 고통을 받았고 또 그 여파가 상당기간 계속될 테지만, 저는 대리인이니까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사건은 끝났기 때문에 추스르고 또 일상으로 돌아가야지그렇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패소하고 난 다음에도할 일이 많았어요. 언론에서 기사 쓰는 데 자료 좀 달라고 하면, 이게 기록이 방대하다보니까 사실은 찾는데 시간이 걸립니다. 그리고 관련한 당사자들이 많다보니까 조금이라도 오류가 있으면 굉장히 부담스럽고. 언론 인터뷰도도 주요한 매체는 연차 있으신 변호사님들이 하시는데, 그밖에도 보충적인 설명이 필요한 부분도 있었고. 그러다가 좀 정리가 돼서 이제 기운을 차리고 열심히 해보자 라고 마음을 먹었을 때 갑자기 또 재심한다고(웃음). 그거 지나니까 이제 또 변론기 쓰라고 하고(웃음).

 

김지미 변론기로 딱 마침표를 찍었나요?

 

고윤덕 모르겠어요. 글쎄요 한 10년 후에.

 

박삼성 영화찍자고 하는 거 아닐까요?(웃음).

 

고윤덕 상당기간이 흐른 후에 이 사건에 대해서 재조명 할 때 그때 자료제공이라도 할 수 있을까요?

 

김지미 분명히 언젠가는 이게 재조명이 돼야 될 일이기 때문에 마음의 준비를 하고 계셔야 되겠네요(웃음). 고변호사님이 시민에 뽑힌 게 산 때문에 뽑힌 것 같다(웃음). 그런 얘기도 있고, 원래 등산을 좋아했는데 작년 정당해산 때문에 등산을 거의 끊었다고 하셨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호인단의 단장님이신 김선수 변호사님은 주말마다 가셨단 말이죠.

 

고윤덕 그게 이런 게 있어요. 2-3주 간격으로 화요일날 기일이 잡혔었고, 다른 사건들도 있으니까 보통은 금, 토요일까지 서면을 쓰고 주말에 편집하거나 해서 월요일에 최종적으로 김선수 변호사님 검토하시고 제출하는 그런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김선수 변호사님은 주말에 등산을 갈 수 있는데 저 같은 경우는 토요일에는 일을 하고 있어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김지미 등산을 하던 사람이 안하면 굉장히 몸이 근질근질하고 안하는 게 더 힘들다고 하던데요.

 

고윤덕 살쪘잖아요(웃음). 등산이 체중감소에 도움이 되지는 않더라도 체중증가를 억지하는 효과는 분명한 것 같습니다.

 

김지미 변호사님이 다시 날씬해지면, 산을 타고 있구나라고 알고 있으면 되는 거지요? 기대하겠습니다. (웃음)

 

박삼성 커밍순.(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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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박변호사님이야말로 늦게 변호사가 되셨어요. 변시 합격했을 때가 38살. 그러면 대학을 졸업하고 근 10년을 뭘 하셨어요?

 

박삼성 그 질문을 항상 면접 때마다 받아서(웃음). 사시공부를 좀 오래 했었고요, 사시를 접고 취직 준비를 했었죠. 하다가 때마침 로스쿨이 생기는 바람에,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을 하고 우여곡절 끝에 로스쿨에 들어가게 됐었죠.

 

김지미 박변호사님은 법대진학을 한 이유가 법조인이 꿈이었기 때문인가요?

 

박삼성 고등학교 때는 담임선생님이 진로를 정하셔서 법대에 들어가게 되고, 법대에서 그 당시에는 집회 나가는 것도 많고 했으니까. 그러다보니까 그때 법을 통해서 뭔가 할 수 있는 게 많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어려웠던 시절에 변론하시는 선배 변호사님들의 책 같은 거 보다보니까, 대학교 때 열심히 운동한 건 아니지만 법을 통해서도 많은 일을 할 수가 있겠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죠. 대학교 때 학생운동을 열심히 못한 데 대한 약간의 부채감이라고 해야 하나?

 

김지미 지금 열심히 하면 돼요. 학교 다닐 때 열심히 안했던 사람들은 뒤늦게 열심히 하고 학교 다닐 때 열심히 했던 사람들이 전혀 관심 없이 지내는 사람들도 있고. 총량을 따지면 같다. 그래서 ‘운동총량의 법칙’ 이라는 명언을 현 회장님께서 하신 적이 있어요.(웃음) 이번에 모범회원도 마찬가지였지만 신인모범회원은 특히나 경쟁률이 엄청 셌었어요. 그래서 시상위에서 선정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거든요. 역대 최초로 이번에 신인모범회원상을 2명을 선정을 했었어요. 그런데 그 2명 선정하고 나서도 추가로 더 줘야한다 이런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치열했던, 그래서 아마 의미가 더 크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모범회원상 나 같이만 하면 된다 이런 게 있을까요?(웃음)

 

박삼성 일단 주변에 좋은 분들이 많아야 되는 것 같아요. 일단 세월호 그것도 오세범 변호사님이 권유를 하셨을 때 그냥 다른 생각 안하고 한 번 해보자,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는 않더라도 가서 유가족분들 옆에 있는 것. 한발 내딛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정당에 들어가게 된 것도. 주변에서 걱정 많이 했지만 가도 아무 일도 없었잖아요. 그렇게 추천을 해주시고 새로운 것에 제안이 들어왔을 때 선배변호사님들을 믿고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용기라고 해야 하나, 그냥 한 걸음 내딛으면 되는 것 같아요. 보니까 생각보다 할 수 있는 것이 많더라고요. 작년을 돌이켜보니까 그랬던 것 같아요.

 

김지미 기회가 왔을 때 물러서지 않고 적극적으로 참여를 하면 된다.

 

박삼성 그냥 한 걸음 내딛으면 그 다음부터는 그냥 가게 되더라고요.

 

김지미 추천서를 보면 ‘사무처 상근자들 사이에서 박삼성 변호사님 이름은 자동 출석체크를 할 만큼 민변의 모든 활동에서 성실함이 빛나는 회원이다’. 월례회라든지, 전체 행사에 빠지지 않고 참석을 하셨잖아요. 신입변호사들이 생각보다 적극적으로 회무에 참여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일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같은 일을 하더라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 그래서 다른 활동을 할 시간을 내지 못할 만큼 바쁘기 때문인데 자동 출석체크가 될 만큼 성실하게 민변 행사에 참여하신 것이 수상을 하신 주요 이유가 아닌가 싶어요.

 

박삼성 그런 자리에 가면 항상 선배 변호사님들이나 다른 분들이 오시잖아요. 그런 분들이 해주는 이야기가 너무 좋더라고요. 약간의 팁이라고 해야 하나. 이럴 때는 이런 식으로 해봐라, 이렇게 할 필요가 있다. 그런 식의 조언을 듣는 것도 저는 되게 좋았거든요. 그래서 좋으신 분들 만난다는 것 그것 자체가 하나의 기쁨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참여를 하려고 했습니다.

 

김지미 고윤덕 변호사님도 나만의 노하우가 있다면?

 

고윤덕 시운을 잘 타고나야(웃음). 처음에는 열심히 하다가 여러 가지 사정상 그것을 지속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잖아요. 그래서 5년 이상만 꾸준히 하면 인정을 받을 수 있을 듯하다. 잠시 쉬어가더라도 꾸준히 함께 하시라.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김지미 고윤덕 변호사에게 이것만은 꼭 물어봐달라는 요청이 있었어요. 모씨의 제보에 의하면 노동위 전체모임을 가면 항상 다음 날 아침에 소리 없이 사라진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이번에 제주도에 갔을 때도 오후에 와서 다음 날 아침에 말도 없이 사라졌다.

 

고윤덕 먼저, 열일을 제쳐두고 노동위 전체모임과 총회에 빠짐없이 참석하는 점을 높이 평가해 주시기 바라고요. 특히 이번 제주도 모임 때는 정당해산 변론기 땜에도 그랬고. 바쁜 것도 있고, 올라가서 할 일이 있으니까 그런 것도 있는데 사실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다른 사람들이 일어날 때까지 할 일이 없기 때문에 그냥 집에 갈까 그런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김지미 일찍 일어나시나 봐요. 그러면 노동위에 전달해줄게요. 다음 번 전체모임이 있으면 시체가 될 때까지 먹여라. 그것만이 붙잡는 방법이다.(웃음) 박변호사님은 수원에 개업을 하고 최근에는 내란음모 관련 후속 사건들 변론을 하시는 걸로 알고 있어요. 어떻게 생계유지할 정도의 사건 수임은 되나요?

 

박삼성 수임은 조금씩 되고 있는데 입금을 안 해주시는 분도 있고 해서(웃음)

 

고윤덕 그러면 일을 안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김지미 선배님들한테 이런 걸 배워야 해요. 입금되면 일을 한다 이런 원칙을.(웃음) 박변호사님은 신입인 만큼 상을 받은 게 좋지만은 않을 것 같아요. 앞으로 민변 활동을 이렇게 하겠다라는 포부나 다짐을 말씀해 주신다면?

 

박삼성 올해는 제가 공공비정규직이나 학교비정규직쪽 노조 분들을 많이 만나고 있거든요. 만나는 분들이 민변에서 하는 일들과 다 겹치는 것 같더라구요, 저는 작년과 같이 올해도 한걸음 나아가서 만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없애고 계속 새로운 분들 만나가는 한 해가 되고 싶어요.

 

김지미 개인적으로 올해 목표는 역시 결혼인가요? 열심히 선을 보고 다닌다는 첩보가 있던데요.

 

박삼성 첩보가 입수가 됐나요?(웃음) 회장님께서 아직 안 해주시네요. 회장님을 푸시를 해야겠네. 올해 개인적인 가장 큰 목표는 결혼이죠.

 

김지미 아직 여자친구는 없는 거죠?

 

박삼성 지금은 없는 걸로 해주세요.

 

김지미 지금은 없는 걸로 해주세요는 뭐죠?(웃음) 아, 이거 뉘앙스가 오묘한데. 고변호사님도 개인적으로 올해 꼭 이루고 싶은 것이 있나요?

 

고윤덕 큰 목표는 안 세우는 걸 원칙으로(웃음).

 

박삼성 아, 정말 재치가 있으세요.

 

고윤덕 아니, 나도 날 아는데 너무 컨텐츠가 없어.

 

박삼성 아니예요. 빵빵 터지는데요.(웃음)

 

고윤덕 저도 하고 싶은 말이 하나 있는데요, 수많은 훌륭하신 선배변호사님들 생각할 때 저는 너무 미미하고 그래서 모범회원상도 과분하고 부끄럽고 그렇습니다.노동위원회에 저처럼 5-10년차 사이인 분들이 별로 없어서 앞으로 활동 열심히 하라는 의미인 것도 같고요. 희망적인 것은 노동위원회 활동 열심히 하는 저년차 변호사들이 많이 있는데, 변호사가 되기 전부터 인권단체나 여러 사회단체에서 활동했던 경험이 있는 분들도 있고 인적네트워크도 풍부한 것 같더라고요. 선배들의 활동방식과는 다르지만 나름대로 의지와 신념을 가지고 잘 하고 있다. 그래서 굉장히 기대가 된다는 말을 꼭 하고 싶었어요. 개인적인 목표는, 스스로 아쉽다고 생각한 부분, 생각만 있었는데 실천하지 못한 것들 그런 것을 시작해보고 싶어요. 책도 좀 읽고. 제가 세무 이런 것만 나오면 너무 위축되는 것 같다. 그래서 공부도 좀 해보고 어떤 형식으로든지 무식을 탈출하자. 스스로에 대해 자신감을 갖자. 그런 작은 목표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 이상 정당해산의 마수에 다시 걸리지만 않으면(웃음). 아 진짜 변론기 그거 오래 걸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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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고생 많으셨어요. 그게 줄여서 쓰기가 굉장히 어려웠을 것 같기는 했어요.

 

고윤덕 관련된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기록을 찾아서 맞는지 하나하나 확인해야 하고. 게다가 기록을 볼 때마다 화가 나고 기분이 나빠지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힘들었어요.

 

김지미 그런 노고가 있어서 수상을 하신 거잖아요.(웃음) 모범회원상에 부상(문화상품권)이 있잖아요. 그거 어디에 쓰셨어요?

 

박삼성 고등학교 동기가 대구에서 학교 선생님을 하고 있는데.

 

고윤덕 팔았어요?(웃음)

 

박삼성 팔면 대박인데, 내란음모 후속 사건을 제가 하고 있는데 그게 기사가 났었나 봐요. 친구가 우연히 봤더라고요. 그래서 자기가 학생들하고 토론회 준비를 하고 있는데 인권과 관련한 강의를 잠깐 해 달라 그래서 거기 가서 학생들 선물을 주는 데 유용하게 썼죠.

 

일동 오오~~

 

김지미 훌륭하십니다. 고변호사님은요?

 

고윤덕 그냥 가지고 있어요, 아직까지.

 

김지미 올해 목표를 이루는 데 유용하게 쓰시면 되겠네요. 저도 회원의 한 사람으로 상을 받으신 두 분이 정말 부럽습니다. 앞으로도 두 분의 활약을 기대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수, 2015/06/10-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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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참여팀] 참여연대의 자원활동가는 상근 활동가들과 손발을 맞춰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입니다. 10대 청소년부터 일흔이 넘으신 어르신까지 다양한 연령대와 학생, 주부, 직장인, 은퇴자 등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자원활동가들의 숨은 활약을 자원활동가 인터뷰를 통해 알려드립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더는 가만히 있지 않기 위해 자원활동을 시작했어요."

 

미디어홍보팀 자원활동가 조김재훈님

 

 

참여연대 미디어홍보팀 자원활동가 조김재훈

미디어홍보팀 자원활동가 조김재훈님 ⓒ참여연대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는 한낮의 여름, 조김재훈님을 만났다.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이며 들어선 그는, 내성적이고 말주변이 없는 성격 탓에 인터뷰 걱정으로 지난밤 잠을 설쳤다며 수줍게 고백했다. 앞선 고백처럼, 재훈님은 분명 말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나긋하고 차분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재훈님은 참여연대에서 발간하는 월간지인 『참여사회』의 교정을 맡고 있다. 조용한 성격의 재훈님이 참여연대에서 자원 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은 작년 4월 무렵이었다. 정확하게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이후였다. 그전에는 언론 등에 보이는 참여연대의 활동을 그저 지켜보는 게 다였다. 그러다 세월호 참사 이후, 더는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결심을 하고, 작은 일이라도 직접 하고 싶어서 참여연대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자원활동을 시작하게 된 만큼, 재훈님은 참여연대에서 진행하는 세월호 관련 활동이나 인양촉구 서명운동 등에도 참여하며 처음의 마음가짐을 이어나갔다.


자원 활동을 시작하면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생각의 폭이 넓어졌다는 점이다. 전에는 어떤 사회 현상에 대해 그 현상 자체에 대해서만 주목했다면, 이제는 그러한 현상을 작동하게 하는 원리 등까지에 대해서도 생각하는 힘이 길러졌다. 『참여사회』의 교정을 돕다 보니 자연스레 많은 글을 접하게 되었고, 그 글들을 읽고 생각했던 시간이 모여 지금의 변화를 끌어냈을 것이다.


재훈님은 앞으로 사회복지사로서 활동하고 싶다고 한다. 사회 복지에 있어 중요한 것은 정말 많지만, 재훈님은 그중에서 특히 빼놓을 수 없는 것으로 ‘연대’를 꼽았다. 그리곤 참여연대에 처음 들어설 때의 마음가짐을 잊지 않고서 사회복지사로서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그들을 대변하는 것은 물론, 그들을 억누르는 환경을 바꾸는 데 미미하더라도 일조하고 싶다고 수줍은 듯 힘을 실어 말했다.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재훈님은 머릿속에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은 가득한데 입 밖으로 꺼내는 것이 어렵다며 아쉬워했다. 하지만 그렇게 꺼낸 만큼, 그 말들은 재훈님의 선한 눈매에 새겨진 웃음 자국만큼이나 깊고 진심이 담긴 이야기들이었다. 

 

 

작성 자원활동가 이성민 (계속해서 자라고 싶은 대학생)

 
화, 2015/06/30-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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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회원 인터뷰, 그 마지막은 전주전북지부 박재홍 변호사입니다. 시간과 거리의 한계상 수차례의 전화와 메일이 오고 간 서면+전화 인터뷰가 되었는데요. 몇 번의 전화통화만으로도 어찌나 즐겁던지 한 번 꼭 시간을 내어 전주에 가서 막걸리를 마시며 수다를 떨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처럼 멋진 회원이 많은 민변, 역시 사람만이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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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먼저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박재홍 안녕하세요, 민변 전북지부에서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는 박재홍 변호사라고 합니다. 변시1회이구요, 5살 1살 두 아들의 아빠이자 남편으로 육아에 힘쓰고 있습니다.

 

김지미 이번 총회에서 모범회원상을 수상하셨는데 소감을 다시 한번 들어볼까요?

 

박재홍 아직 제가 받기에는 너무나도 큰 상인데, 이렇게 큰 상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사실 지부 회원들은 총회에 참석하면 소수이기도 하고 대다수 활동은 본부와 서울에서 이루어지기에, 총회는 우리의 축제라는 인식이 약했거든요. 그런데 지부 회원에게 상을 주시니까 지부 회원들에게 많은 격려가 될 것 같습니다. 훌륭하신 선배님들이 받던 상을 막상 제가 받고 나니,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고, 매일 출근하면서 책장에 모셔둔 상패를 보면서 ‘내가 이 상을 받은 거 맞지?’라고 되묻곤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내아이 둘을 양육하느라(아내는 저 포함 아들 셋이라고 가끔 농담을 하지만) 고생하는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김지미 매일 출근길에 되새길 만큼 민변 모범회원상이 변호사님께 큰 의미인가요?

 

박재홍 변호사가 되기 전에 바라 본 민변은 저에게 굉장히 큰 존재였거든요. 그리고 해마다 모범회원상 수상하시는 선배님들을 보면서, 와 정말 존경스럽다란 생각이 절로 들었는데, 그런 상을 제가 받게 되니 실감이 나질 않지요. 그래서 그런 큰 상을 일단 받기는 받았으니, 이제부터라도 그에 걸맞는 변호사가 되어야겠다라고 다짐하고 있어요(웃음).

 

김지미 이번 모범회원상은 어느 때보다 경쟁이 치열했는데 박변호사님이 수상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시나요?

 

박재홍 얼굴 때문이 아닐까요?(웃음) 농담이구요, 사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제가 상을 주신 분께 여쭙고 싶은데요, 아무래도 지부에서 고생하고 있는 사무국장들의 어려움을 헤아려, 그 대표 격으로 저에게 상을 주신 것 맞죠? 석명을 구하고 싶은 마음입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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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작년 가을에 전주지부를 방문했을 때만 해도 전주 지부는 회원 수도 적고 솔직히 말씀드려 그다지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인상은 못 받았는데 그 이후에 회원 수도 많이 늘고 뉴스레터 지부 활동 소식을 보면 활동도 적극적으로 하고 계신 것 같아요. 이러한 동력이 어디서 나왔다고 보시나요?

 

박재홍 작년에 가시적으로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지 못하다고 느끼셨다면 사무국장으로서 소임을 다 하지 못한 제 불찰입니다(긁적 긁적). 저희 지부는 2000년 초경 전봉호, 안호영, 박민수, 황규표 변호사님을 주축으로 지부에서 자생적으로 창립되었습니다. 회원 수가 많지는 않지만, 선배 변호사님들 한 분 한 분이 전라북도 곳곳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계시거든요.

작년 봄부터 지부장이신 장석재 변호사님과 한 뜻으로 회원 확대 사업을 우선으로 우리 지역 로스쿨 학생들과의 교류를 확대하자는데 마음을 모았습니다.

이후에 후배 변호사님들이 대거 회원으로 가입하셨고, 전북대 원광대 법학전문대학원생들과 간담회, 봄산행 등을 진행하면서 학생들의 요구사항을 받아들여, 얼마 전에는 ‘민변전북지부 회원들과 법학전문대학원생들의 인권감수성 향상을 위한 워크숍’이란 거창한(?) 표제로 선후배님들과 함께 1박 2일간 동고동락했습니다. 참, 제가 워크숍 간 동안 시커먼 두 아들 덕에 고생한 아내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합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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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극적인 활동에 대한 동력은 아무래도 지부장님의 강한 의지 때문인 것 같습니다. 지부장님께서 저희 젊은 변호사들에게 자주 하시는 말씀이 “우리 장년층 변호사들은 이미 자리를 잡고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저는 민변과 소통하고 있거나 요청이 들어오는 단체에 젊은 변호사님들을 적극적으로 연결해 줄 것입니다. 그 동안 우리 지역 민변 변호사 수가 적어서 지역에 있는 각종 시민단체나 노동조합의 일들이 일부 변호사들에게 집중되면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기에 버거웠지만, 이제 후배 변호사님들이 많이 들어오셔서 시민 단체들과 적극적으로 호흡하면서 우리 지부 변호사님들의 역할이 더욱 커질 수 있기를 바라면서, 그와 동시에 젊은 변호사님들이 이 지역에서 자리를 잘 잡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라는 말이었습니다.

이런 지부장님의 의지 덕분에 지역 사회에서 저희 지부에 거는 기대가 더 커지고 있고, 저희 지부도 이에 적극적으로 호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작년 세월호 사건 이후에 있었던 범시민단체 릴레이 단식농성에 참여했었는데, 한 활동가 한 분이 ‘이제는 민변이 선봉에 서시네요!’라는 하셨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향후 지부장님과 함께 현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저희 지부가 되길 희망하고 있습니다.

 

김지미 신용비어천가인데요~(웃음) 솔직히 지부장님보다는 실무를 하는 나의 역할이 지대했다..속으로 그렇게 생각하시지는 않는지요?

 

박재홍 그건 아닌 것 같구요(웃음), 이미 선배들이 형성해 놓은 토대 위에 지부장님이 방향을 잘 잡으셨고, 무엇보다 회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가장 중요한 동력이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지미 그렇게 말씀하시면 민변이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분께 상을 드린 것처럼 되잖아요(웃음). 이 참에 자랑을 좀 해 주세요. 제가 이만큼 했습니다. 지난 1년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이런 거요

 

박재홍 전주지역에는 버스파업이 큰 문제인데요, 2012년도에 전주지역 시내버스 회사들이 약 3개월 정도 직장폐쇄를 하였는데 이 직장폐쇄가 위법하다는 이유로 저희 법인 선배이자 민변 선배이신 안호영 변호사님과 임금 청구 소송을 수행하였고, 얼마 전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하여, 버스 노동자분들의 생계와 전주지역 버스 문제 해결에 보탬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보람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2012년도에 우리 지역 진보 교육감이신 김승환 교육감님이 직무 유기로 형사재판을 받으셨는데, 민변 회원들이 힘을 모아 대법원까지 무죄 판결을 이끌어 내었고, 우리 힘으로 진보교육감을 지켜냈다는 것에 큰 보람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작년에는 통일교사로 알려진 김형근 선생님이 인터넷 게시판에 북한 관련 기사를 스크랩하고, 하드디스크에 북한 신년사 등을 소지, 거주지에 이적표현물을 소지하고 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된 사건에서 김희수 변호사님, 안호영 변호사님, 이민호 변호사님, 김현승 변호사님과 함께 변론을 준비했었는데, 디지털증거에 대해 공부도 하고, 공동변론을 위해 중간에서 여러 가지로 바빴었거든요, 수사기록이 2박스 정도 되었던 걸로 기억나는데, 최종 정리는 제 몫이라…그런데 결론이 만족스럽지 못하여 아쉬웠습니다. 지금 항소심 재판 중인데, 선생께서 그 사이에 과도한 스트레스 등으로 중병에 걸리셔서 죄스러운 마음이 큽니다. 선생께서 비슷한 사건으로 집행유예 기간이셨고, 유사 사건 경험을 토대로 나름 최대한 조심하신 것으로 보이는데, 과연 이분께서 스크랩하여 올리신 글이나 하드디스크나 주거지에 보관하고 있었던 자료가 우리 사회의 근간을 위협할 정도인지 납득이 가지 않았고, 국가보안법이 여전히 살아 숨 쉬고 남용되고 있는 것을 보면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해당 사건의 변호인의 한 사람으로서 개탄스럽습니다.

아, 제가 잠시 흥분을 했네요.

생각해 보니 바쁘게 산 것 같긴 한데 사무국장 일은 티가 잘 나지 않는 것 같아요. 지부 사무국장으로서 매월 간담회를 준비하는데, 모임 일정을 팩스로 보내고, 단체문자 보내고, 미회신 회원들에게 전화 돌리고 그러지요. 일정 끝나면 장부에 영수증 정리하고, 회의 내용 정리 하구요. 한 가지 제가 총무를 맡으면서 잘 한 것은 지부 통장을 다시 개설하면서 전용 카드를 만들었는데 회계의 투명성을 높이고 있습니다(웃음).

 

김지미 전주 지부가 최근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활동은 어떤 것인가요?

 

박재홍 작년 한 해 동안 지부 회원들을 모집하고 로스쿨 학생들과 교류하는데 중점을 두었다면 올해는 시민사회 단체들과의 소통에 중점을 두고 ‘1시민단체 1변호사’라는 구호 아래 젊은 변호사들이 전라북도 곳곳의 시민 사회단체들과 호흡하고 교류하고 있습니다.

 

김지미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을 해 주세요

 

박재홍 민주노총 전북본부에 저와 저희 지부 이동현 변호사님이 매주 상담을 나가고 있고, 작년 초부터 전주 여성의 전화 부설 가정폭력상담소에 저희 지부 회원 4명이 출장 상담을 나가고 있습니다. 현장에 가서 상담을 하다 보니 만족도가 높고, 청년 변호사들의 활동 반경도 넓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하여, 올해 초부터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에 2명, 전북환경운동연합에 2명, 전주 공무원노조에 2명, 남원․순창․장수 공무원노조에 각 1명, 전북 교원노조에 1명을 각 고문 내지 전담 변호사로 활동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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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박변호사님은 이 중에 어떤 활동을 하시나요?

 

박재홍 요즘 ‘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위한 시민 추진위원’ 집행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평화의 소녀상’이라고 들어보셨죠? 일본군 위안부 대사관 앞에 세웠던.. 그 소녀상을 전국적으로 설립하는 운동이 지역별로 있는 걸로 알고 있고, 전주에서도 이 운동이 전개되어 다음 달이면 시민들의 이름으로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하게 됩니다.

학부 시절 모의재판위원회라는 학회에서 활동을 하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소재로 하여 모의법정을 열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할머니들을 초청해서 모의법정을 열었었는데, 그 때 저랑 동기 한 명이 일본군 측 변호사단 역할을 했었는데, 할머님들이 저희 연기를 보시고 방청석에서 고성으로 화를 내시며 울부짖으셨던 것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때만 해도 할머님들 6-70대로 정정하셨는데, 많이 돌아가시고 남은 분들도 건강이 좋지 않으셔서, 조속히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길 바랍니다.

제가 집행위로 활동하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시민 법정을 제안하기도 했는데, 우선은 제막식을 하고 예산이 남을 경우 추진해 보기로 했습니다. 학부시절 모의 법정을 끌어주셨던 김창록 교수님으로부터 여러 가지 자료도 받았고, 예산도 많이 남을 것 같은데, 내년 즈음으로 하여 전북 지역 시민 단체, 학생들과 함께 고민해서 시민 법정을 한 번 세워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법학전문대학원 2학년 때, 동기들은 검찰이나 법원에 실무교육 받으러 바빴었는데, 저는 성당에서 중고등부 교리교사 회장을 하면서 학생들 캠프를 준비했었습니다. 교회나 성당 다니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여름에는 학생들을 위한 캠프를 준비하는데 여간 바쁜 것이 아닙니다. 제가 사회로부터 받은 혜택을 여건이 좋지 않은 학생들에게 돌려주고 싶은 마음이 커서 시작했었는데, 그런 활동을 하다보니 자연스레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커졌지요.

 ‘전라북도 학생인권 조례’는 서울, 광주, 경기에 비해 나름 진일보한 조례로 제정되었는데, 이 조례에 근거한 ‘학생인권심의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교육 문제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김지미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방송 출연도 활발히 하신다던데요?

 

박재홍 아… 올해 초부터 KBS1(전주)에서 ‘경제가마솥’이라는 프로그램에 격주로 패널 활동을 하고 있어요. 올해가 양의 해잖아요? 1월 2일에 전북KBS ‘아침마당’에 양띠 특집으로 출연한 것을 계기로 나가게 되었고, 저는 주로 이슈와 관련된 법률적 조언을 하고 있습니다. 딱딱한 법률 이야기나 경제 이야기를 일반 시민들이 지루하지 않게 전달하려고 제 나름대로는 개그도 하면서 노력하고 있는데 쉽지 않네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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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해 보니 전북아침마당 5월 가정의 달 특집으로 저희 회사 여직원들과 노래자랑에 나간 적이 있는데, 시청자들을 웃기고픈 마음에 대머리 가발을 쓰고 유치한 춤을 추기도 했네요. 부끄럽습니다(웃음). 혹시 찾아서 사진으로 올리진 말아 주세요(두손 모으고 불쌍한 표정으로).

 

김지미 박변호사님은 어떤 계기로 변호사가 되셨나요?

 

박재홍 제가 처음 대학에 입학했을 때는 전자공학을 전공했었어요. 노래를 좋아해서 민중가요 노래패 동아리에서 활동했고,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해서 자연스레 학생회 활동도 열심히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의 부조리가 많다는 것을 하나씩 알게 되었고, 지금 생각해 보면 지극히 1차원적인 생각이지만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막연히 학교를 그만두고 법대에 다시 입학을 했습니다.

법대 들어갈 당시부터 변호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고, 사람을 쫓아 학회 활동하고 집회 참여도 하다 보니 당시에는 사법시험을 볼 엄두는 내지 못했던 것 같아요.

제가 지금 전주에 살게 된 계기이기도 한데, 대학 때 지금 있는 곳에 교류학생으로 와서 2년 동안 음주, 가무, 사람 ‘3독’(불가에서는 탐, 진, 치라던데…)에 빠져 잘 놀았습니다. 그렇다고 음주가무만 한 것은 아니고요, 교환학생은 듣고 싶은 과목을 우선적으로 수강신청할 수 있는 특권이 부여되는데, 그 때 단과대 별로 제가 듣고 싶었던 다양한 과목을 들으면서 지적 호기심을 충족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대학을 졸업하고 20대 후반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나는 왜 태어났나?’‘뭐하고 살아야 되나?’라는 화두를 안고 유럽으로 한 6개월 정도 어학 연수 겸 방랑 생활을 했습니다. 6개월 간 먹고, 자고, 걸어 다니면서, 살아 있다는 존재 자체로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고, 복잡한 고민들을 떨쳐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법학전문대학원이 생긴다는 발표가 있었고, ‘아 이건 내가 변호사가 되라는 계시다’라고 생각하면서 변호사가 되기 위해 2009년도에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요약하자면 투철한 사명감을 가지고 변호사가 된 것은 아닌 것 같고요, 지금생각해 보면 1차원적인 생각이지만 막연히 사람을 도와 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법대에 진학하게 되었고 운이 좋게도 서른 즈음에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을 해서 변호사가 된 것 같습니다.

 

김지미 변호사가 되고 나서 민변에 가입하게 된 계기는요?

 

박재홍 민변에 가입하게 된 것은 법학전문대학원 2학년 시절에 민변에서 실무 수습을 한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 같아요. 당시 김선수 변호사님이 담당 변호사님이셨는데, 복잡하고 다양한 사건을 처리하시면서도 늘 평정심을 잃지 않고 주변 사람들을 배려해 주시는 모습을 보고 그 모습이 멋져 보여, 수습이 끝날 즈음 김선수 변호사님께 추천사를 써 달라고 부탁을 드렸지요.

학부 시절 학생회 활동을 열심히 하던 한 선배가 술자리에서‘나중에 변호사가 되거든 꼭 민변에 가입해라, 만약 가입 안하면 나한테 주먹으로 맞을 각오해라.’라고 말했고, 저는 꼭 그러리라 다짐을 했었는데, 지금 민변 변호사로 나름 열심히 활동하고 있으니, 그 선배와의 약속은 지킨 것 같습니다.

변호사 합격여부가 발표되기 전 2달 정도 지역에 있는 비정규직센터에서 근무를 하다가, 우리 지역에 민변 선배이신 안호영 변호사님과 함께 지금 근무하고 있는 법무법인 백제에서 수습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었구요, 자연스레 민변 사건도 많이 접하게 되었습니다. 한 때는 시민단체에서 상근으로 일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는데, 물론 받아 주실지는 여쭤봐야겠지만요, 지부 민변 사무국장으로 시민 사회 단체의 다양한 사건을 직․간접적으로 접하면서 변호사로서의 역량이 일천하다는 것을 깨닫고 아직은 촛불을 켤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열심히 배우면서 일하고 있습니다.

저는 사실 부산 출신인데, 사무실 이름은 ‘백제’라서 가끔 “신라 사람이 백제에 와서 일도 하고 백제 처녀 만나서 아들 둘 낳아 잘 키우고 있으니, 우리 사무실과 제 가정이야 말로 동서 화합의 모범이다”라고 농담을 하기도 합니다.

 

김지미 부산 출신이신데 어떻게 해서 전주에 터를 잡게 되셨나요?

 

박재홍 대학시절 교환학생 프로그램으로 전주에 왔다가, 성당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나(성당오빠나 교회오빠가 무섭다지요?) 처음엔 와이프가 프로포즈를 받아줄 때까지 전주에 있겠노라고 다짐했다가 결혼하고 아이들도 낳고 지금까지 살고 있어요, 지금은 전주가 제2의 고향이 되었고 아이들은 백제 사람이 되었네요(웃음).

 

김지미 민변 활동을 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꼈을 때는 언제인가요?

 

박재홍 2012년도 말에 전주교도소에 수감 중이신 이병진 씨 관련 사건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이병진 씨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복역 중이신데, ‘작은책’이라는 잡지에 방북 경험 및 자신의 살아온 이야기를 수필 형식으로 기고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 중 북한에 도착한 이후 북한의 실상을 묘사한 내용이 있어 전주교도소가 기고문을 발송 불허했고, 이에 대해 취소소송을 제기하여 1년 6개월에 걸쳐 대법원의 최종적인 승소 판결이 확정되고 난 후 전주교도소가 기고문이 담긴 편지들을 발송한 사건입니다.

그 기간 동안 이병진 씨로부터 편지를 많이 받았는데, 마지막 대법원 판결문을 보내드리고 나서 받은 편지에 ‘…형사재판에서 억눌리고 답답했던 마음을 풀어버리게 되어 홀가분하고,…제가 가장 어렵고 힘들었을 때 도움의 손을 내어 준 변호사님은 제 인생에서 소중한 분입니다. 변호사님을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라고 써 주셨습니다. 제가 민변 변호사로 역할을 다하고 있을지 의문이 날 때마다 이 편지를 읽으면서 위안을 받곤 합니다.

 

김지미 그럼 지부 회원의 입장에서 이런 점은 개선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 점도 있을까요?

 

박재홍 특별한 것은 없고요, 지금처럼 지부와 소통하면서 관심을 갖고 지켜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김지미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박재홍 개인적으로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육아에 좀 더 신경쓰고 싶어요. 지금 5살 1살인데, 정서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시기라고 하더라구요. 요즘 첫째가 투정부리는 것이 늘어서 걱정이되기도 해서 다니던 운동도 포기하고 특별한 일이 없으면 회사 끝나면 일찍 들어가 아이들과 놀아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최고의 노후 준비는 ‘아내’라는 말이 있던데, 요즘 노후 준비 확실히 하고 있네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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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부 차원에서는 올해 대구지부가 대구 송전탑 TF팀으로 모범 지부상을 수상하셨는데 전북지역도 군산 송전탑 문제가 현재 이슈가 되고 있거든요, 저희도 ‘군산 송전탑 TF팀’을 꾸려 내년에는 모범 지부 수상에 욕심을 내 보려고요(웃음).

더불어, 지부에서도 자체적으로 성명도 발표하고 현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계획입니다. 회원 수도 늘어났고, 워크숍도 하고 시민단체 연계 사업을 하면서 현장의 다양한 이야기도 듣고 있으니, 이제 앞으로 나아가야할 때라고나 할까요? 전북 지부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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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5/07/28-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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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더위가 시작되던 지난 7월 7일 강의를 위해 서울에 방문하신 박진희 씨를 만났습니다. 박진희 씨는 사회적 기업인 푸드앤 저스티스 지니스 테이블을 운영 중이시며 유기 농산물 재배 농부이시기도 합니다. 박진희 씨의 먹거리 정의 이야기와 냉장고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성사된 인터뷰, 소개해드릴게요.

 

환경정의(이하 환경):의식주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박진희(이하 박): 먹거리가 제일 중요합니다. 집은 주거복지라는 개념이 있어 정책도 있지요. 옷은 몇 벌 가지고 있느냐가 생존을 좌우하지는 않습니다. 문화적 코드의 개념이 강하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러나 먹거리 복지라는 개념은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먹을거리는 생존에 관한 문제입니다. 주택은 공유할 수 있고 옷은 재활용하거나 공유할 수 있지만 먹을 것은 그렇게 되지 않죠. 그래서 의식주가 한 데 묶이는 것은 어렵고 ‘식의주’라고 이야기되어야 하는 게 맞는다고 봅니다. 먹을거리가 기본적으로 보장된 다음에 주거의 문제를 논하고 문화적인 것(의복)을 충족하는 게 맞는다고 봐요.

어렸을 때, 길거리에 서있는 장애인 형제를 본 적이 있어요. 그때 그분들이 새우깡 같은 과자를 먹고 있었는데 초등학교 다니는 제 눈에 보기에, 즐기려고 먹는 것이 아니라 배고파서 과자를 먹는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때 제가 ‘아 우리가 간식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누군가에겐 주식일 수 있구나.’라는 경험을 처음 해보았던 거 같아요. 그때부터 먹거리에 대한 중요성을 어렴풋이 했던 거 같습니다.

환경: 냉장고 용량은 어떻게 되나요?

박: 양문형 하나, 김치냉장고 하나가 있고 마을용 저온저장고가 있어서 이것도 이용하고 있어요. 김치냉장고는 배추를 팔고 남은 것을 다 담아야 하고 또 어머님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여차여차 마련하게 되었어요. 냉장고는 오래전부터 썼던 냉장고가 고장 나서 냉동실이 큰 양문형을 마련했고요. 음식을 바로바로 해 먹기 때문에 봄-가을엔 냉장실이 거의 비어있습니다. 냉장실의 가치는 다진 마늘, 장류, 오이소박이 보관하는 정도에요. 냉동실에는 다져놓은 마늘과 씨앗 그리고 농번기 필수 아이템인 얼음이 있어요.

냉장고는 소비를 부추기는 최적화된 시스템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이걸 사서 냉장고에 넣어놓으면 보관이 언제나 가능하다는 무언의 압력이 있잖아요. 용량을 늘리는 것이 부를 상징하기도 하고요. 대형 냉장고를 가져야 하고 양문형 냉장고를 사야 하는 문화적 코드와 맞물리는 거죠. 냉장고는 산업화와 소비지향의 트렌드를 극렬하게 반영하는 것이라는 생각해요.

 

환경: 먹거리를 살 때 가장 중점적으로 보는 것은 어떤 건가요?

박: 1순위 원산지, 2순위 화학첨가물입니다. 화학첨가물을 염두에 두면 살 수 있는 게 많이 없어요. 아이들과 같이 장을 보러 가서 성분 표시표 보면서 최소한으로 들어간 것을 구매해요. 아이들이 음식을 먹더라도 무엇을 먹는지 인지하면서 먹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특히 아이들과 먹거리 교육을 할 때 미각 수업을 진행하거든요. 그때 어떤 것을 사는 것이 가장 현명한 것인지를 봐야 해요. 먹거리의 대안으로 생협 식품을 이야기하지만 시골에서는 생협 조합원을 부모로 둔 아이들은 아마 거의 없을 거예요. 아이들이 현장에서 생활에서 선택할 수 있는 길, 방법을 알려주지 않으면 취약계층 아이들은 미각 수업이 아무 소용이 없어요. 요리 수업도 사용할 수 없는 기구와 식재료 가져와서 만들면 집에 가선 요리가 안 되잖아요. 식생활 지도 나 요리수업들이 내 삶으로 연결되는 것인가가 굉장히 중요해요.

 

환경: 소비의 양극화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있다면 일어난 이유는 무엇일까요?

박: 소비 양극화는 경제적 양극화가 원인이에요. 경제 양극화는 구조적으로 부를 분배하는 시스템 문제이고요. 소비 양극화 현상을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은 그 위에 문화적 코드를 입히는 것입니다. 누구는 스마트 폰을 갖고 있어, 라든가 뭘 입고 있어 라든가 문화적으로 무언가를 공유하고 있으면 양극화가 없는 것처럼 가려지는 현상인 거죠. 이것이 소비 양극화나 빈부격차를 은폐시키는 결정적 요인이라는 생각합니다. 상품 소비를 통해 얻어지는 동질감은 문화적인 것이어서 가난한 학생에게 “스마트 폰 살 돈으로 밥을 사먹어.”라는 말은 할 수 없어요. 그 아이가 지금 누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으로 규정되었기 때문이죠. 비슷한 예로 미국에서 푸드 스탬프 이용자들이 가장 하고 싶어 하는 활동이 스타벅스 가서 커피 마시기에요. 그 자체가 문화적으로 이해되기 때문이죠. “왜 다른 먹을 것을 사지 않아?”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문화를 느끼고 싶은 사람의 욕구는 당연하잖아요. 상업적으로 잘 포장된 상술이 문화적인 것들을 향유한다고 믿어서 소비 양극화를 은폐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먹거리 정의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소비할 것인가를 공유하고 확산해야만 합니다.

 

환경: 시스템을 변화하는 것은 어려운 일인데, 한국에서 소비 양극화 해결의 방향은 어떤 게 있을까요?

박: 먹거리와 관련된 다양한 시민 소모임 양성이 필요합니다. 토종종자가 관심인 시민, 내 아이 먹일 간식에 관심 갖는 시민, 시민 텃밭에 관심 갖는 시민, 음식 만드는 것이 관심인 시민 등 다양한 시민들이요. 보통은 활동을 정하고 시민들을 그 활동에 맞추는데, 그 프로그램에 맞는 사람은 소수고 그 활동이 안 맞으면 오지 않게 되기 때문에 모두를 아우를 수 없는 문제가 생겨요. 시민활동으로서의 자기 활동을 정한다면 확산될 거란 생각이 있습니다. 그런 시민활동 플랫폼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 역할을 시민 단체가 해주었으면 좋겠고 또, ‘당신의 냉장고 프로젝트’가 그런 일을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자체에서도 다양한 먹거리 시민활동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중요해요. 저는 정말 풀뿌리가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법이 먼저 만들어지는 게 아니고 필요에 의해 건의가 되는 거잖아요? 이런 풀뿌리들이 모여 활동들을 서포트 해줄 수 있는 법까지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환경: 먹거리 정의와 먹거리에 대한 철학에 대해 말해주세요.

박: 먹거리 정의는 생산, 유통, 가공, 소비되는 모든 영역이 공정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 정의입니다. 그러나 저는 나아가 소득에 관계없이 누구나 기본적인 먹거리를 조달 받을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까지 포함해요. 즉 이것은 인간에 대한 사랑, 휴머니즘이죠. 먹거리 이야기를 하면 미식가를 생각하는 분들이 많고 먹거리 정의라 하면 공정무역 떠올리시는 분들이 많아요. 공정무역은 생산자의 문제, 윤리적 소비에 관한 것이라고 한다면 먹거리 정의는 씨앗부터 밥상에 올라가는 그 전체 과정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농사의 완성은 무엇이죠? 바로 섭취에요. 농업에도 이로우려면 먹는 과정도 지속 가능한 시스템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먹거리 정의는 휴머니즘이라 생각해요.

저도 이렇게 확고한 생각을 가질 줄은 몰랐어요. 유기농 농사를 하려고 귀농을 했는데 유기농은 왜 특정 계층에게만 공급되는 시스템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어요. ‘모두가 먹거리를 먹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생각이 들었고 검색을 하다가 먹거리 정의 개념을 알게 되어 먹거리 정의 활동까지 하고 있어요. 농부가 안 됐으면 이런 일은 안 했을 거예요.

 

 

박진희 씨와의 인터뷰 재밌게 보셨나요? 이 인터뷰를 통해 먹거리 정의의 개념과 여러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앞으로도 먹거리 정의와 관련된 분들의 인터뷰는 계속될 예정이니 관심가져주세요!

 

 

수, 2015/07/29-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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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인터뷰]‘겨울에 자란 나무처럼소라미 변호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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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겨우내 뿌리를 보존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합니다. 그 힘으로 나무는 움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선선한 바람마저 서운한 여름의 끝자락. 13기 자원활동가들이 종로구 창덕궁길 공감사무실에서 소라미 변호사님을 마주했습니다. 12년 동안 공익변호사로 길을 걸어온 소라미 변호사님의 이야기는 겨울나무처럼 단단했습니다. 그리고 그 단단함은. 법의 테두리에서 밀려난 이주민. 여성 등 수많은 이들에게 움을 틔워낼 공간이 되었을 것입니다. ‘사람의 귀함’을 법의 언어에 담아내기 위해 쉼 없이 걸어왔던 소라미 변호사님. 그 단단하고, 따뜻한 발걸음 만나보시죠.

 

이우균 : 일단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소라미 변호사 : 저는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서 올해로 12년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소라미라고 합니다. 공감에서 잔소리를 맡고 있고요, (웃음) 황필규 변호사님은 저를 마님이라고 하시죠. (웃음)

 

우 : 간단하지만 간단하지 않은 질문부터 드려볼게요. 왜 법조인의 길을 가기로 결심하셨나요?

 

소 : 어렸을 때 막연하게 법조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이유는 대단한 건 아니었고, 아버지가 주입시켜준 꿈이기도 했어요. (웃음) 제가 공부를 곧잘 하니까, 여자가 차별받지 않고 사회생활을 하는 데 좋은 직업이 법조인인 것 같다, 이런 이야기를 중학교 때부터 해주셨어요. 이태영 변호사님 이야기를 들려주시기도 했고요. 사실 대학에 들어갈 때 법대를 가진 않았어요. 다른 과를 선택했고, 공부보다는 동아리나 학생회 활동을 했죠.

 그렇게 졸업할 때가 되어서 다시 진로고민을 했을 때, 막연하게 생각했던 건,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 그리고 ‘그 일을 하면서 내가 보람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딱 두 가지밖에 없었어요. 공부를 너무 안 해서 전공을 살려서 뭘 하기는 어렵겠다는 현실적인 판단도 있었고요. (웃음) 아무튼 의미 있는 일, 보람 있는 일, 그리고 ‘내가 어렸을 때 법조인이 되고 싶었지!’ 이런 막연한 생각들이 일치되면서, ‘아 그래 지금부터라도 내가 고등학교 때처럼 공부를 하면 사시에 합격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굉장히 무모한 생각으로 뒤늦게 학사편입을 해 다시 법대 3학년으로 돌아가서 사시 공부를 하기 시작했어요. 그렇죠, 간단하지 않아요. (웃음)

 

우 : 더 간단하지 않은 질문을 드려야 할 것 같은데요, (웃음) 졸업하시고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활동을 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그게 지금 하고 계신 공익변호사라는 직업과 연관이 될 것 같아요.

 

소 : 제가 연수원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만 해도 공감 같은 단체가 없었어요. 그래서 당장 공익활동을 전담하는 변호사가 되겠다는 구체적인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고, 다만 좀 보람 있는 일도 할 수 있는, 좋은 선배님들이 많이 계시는, 예를 들면 민변 활동도 많이 하시는 변호사님들이 계신 사무실에서 일을 하면서, 나중에 공감과 같은 단체를 만들면 좋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마침 제가 수료한 2003년 12월, 연수원 2년차 마지막 겨울에 ‘낮은 곳에 임하는 용기로 소외된 희망을 되살린다’라는 엄청난 문구로 공채 공지가 뜬 거예요.

 당시 아름다운재단 안에 공익변호사 팀을 만들겠다는 취지로 변호사를 공채한다는 공지였는데, 그 문구가 너무 멋있는 거예요. 그런데 아무리 읽어봐도 뭘 하는 곳인지는 잘 모르더라구요. (웃음) 어떻게 할지 고민을 많이 하다가 그곳에 지원하게 됐습니다. 사실 연수원 수료하고 바로 공익활동을 전담하는 변호사로 일을 하는 게 좋을지 아니면 내가 일정 기간 변호사로서 실무 경험도 쌓고 트레이닝을 받고 그 다음에 돌아와서 하는 게 좋을지 고민을 많이 했죠. 몇 분 선배님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봤는데, 의견이 반반인 거예요. “하고 싶은 일이면 바로 시작하는 게 좋다, 나중에 돈맛을 알면 돌아오기 되게 힘들다” 조언해주시는 선배 변호사님도 계셨고, “지금 당장 가서 네가 과연 뭘 얼마나 할 수 있겠느냐, 일정 정도 실무를 쌓고 가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조언해 주시는 분도 계셨어요.

 그런데 당시 제가 아름다운재단에는 선발이 되었고, 다른 데는 다 선발이 안 되었어요. (웃음) 그래서 뭐 필연적으로, 공감 창립 멤버로 일을 시작하게 된 거죠. 저로서는 당시에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고, 어떻게 해야 할지 확신이 있는 상황에서 공감 활동을 시작한 건 아니었지만, 일을 하면서 느낀 것은, 우리 조상님이 3대 덕을 쌓았나 보다, (웃음) 제가 공감을 창립하는 멤버로 같이 일할 수 있었던 게 매우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해요.

 

우 : 왜 행운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소 : 왜냐하면 우리가 많이 자랑하듯이 (웃음), 공감이 한국사회에서 최초로 설립된, 공익활동을 전담해 비영리로 운영하는 변호사 단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받은 장점이 많죠. 저희 실력이나 능력에 비해 과분하게 인정도 받고, 주목도 많이 받고. 그래서 공감이 빠른 기간 안에 안착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게다가 지금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공익활동 전담으로 일하고 싶다는 후배들이 굉장히 많이 생겼죠. 후배들 만나서 공감 이야기를 해줄 때마다 막중한 책임감을 느껴요. 그리고 이런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게 다 창립 멤버로서 일을 해왔기 때문이라는 걸 아니까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우 : 공감이 국내 최초의 공익인권법단체라서 유리한 점이 많았다고 하셨지만, 저는 민변에 와서, 공익변호사 활동이 참 쉽지 않다는 점을 많이 느꼈습니다. 민변 소수자위원회에서 진행하는 일들이 계획대로 잘 안 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민변처럼 규모가 큰 변호사단체도 잘 안 되는 일이 많은 것을 보면, 공익변호사로서 현실적인 어려움들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활동하면서 겪게 되는 어려움이 어떤 게 있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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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 제가 최근에, 곧 다음 주 월요일에 국회에서 있을 정책세미나 발표 준비를 하는데.. 갑자기 너무 맥이 빠지는 거에요. 인신매매 피해자 식별을 위한 제도개선 관련 세미나인데, 사실 그 이슈에 대해서 제가 공감 활동 시작하면서 거의 한 10년 동안 이야기를 해왔거든요. 그런데 하나도 바뀐 게 없어요. 실태도 바뀐 게 없고, 법제도개선하자고 이야기하는 것도 계속 똑같아요. 그런데 그 이야기를 또 해달라고 요청이 온 거에요. 해야죠. 해야 하는데, 너무 이야기하기가 싫은 거야. (웃음) 지난 10년 사이 어쩜 이렇게 하나도 바뀔 수가 없을까 싶은 거죠.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해서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늘어난 것도 아니에요. 여전히 소수의 사람들, 소수의 단체, 소수의 변호사들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거죠. 그런 게 힘들어요.

 공감에서 일하는 다른 변호사님들도 마찬가지지만, 하나의 제도를 바꾸고, 실태를 바꾼다는 게 변호사 한 명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국회에서 그런 제도를 개선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외부 시민단체와 함께 해야 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왜 이런 걸 국회에서 안할까 의구심을 갖고 제도 개선에 대해 지지를 해주어야 국회도 관심을 가질까말까 하는데.. 그렇지 못한 이슈가 굉장히 많거든요. 그런 현실의 벽을 느낄 때가 많죠. 내가 열심히 법안 만들고, 내가 열심히 기자들에게 이야기하고, 발표문 쓰고, 국회 가서 토론하는 것만으로 되지 않는 구나를 느낄 때가 많아요. 그럴 때 많이 힘들죠.

 

우 : 그런 허탈함을 극복하시는 방법이?

 

소 :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많지만, 개중에 한 두 개씩 바뀔 때가 있어요. (웃음) 그 힘으로 하는 거죠. (웃음) 예를 들면, 제가 입양인들과 함께 입양법 바꾸는 활동을 한 적이 있어요. 한국사회에서는 입양을 막연하게 좋은 것, 부모에게서 버림받은 아이들 혹은 부모가 양육할 수 없는 아이들에게 새 가정을 찾아주는 아름다운 것, 사회적으로 선한 것으로 바라보는 인식이 있었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였고요. 그런데 저희 사무실로, 20~30년 전에 해외로 입양되었다가 돌아오신 분들로 구성된 입양인 당사자 운동 단체 분들이 찾아오셨어요. 그 분들이 한국의 입양제도가 얼마나 입양인의 인권, 아동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인지, 본인들이 30년 전에 입양될 때 얼마나 불법적인 방식으로 입양되었는지, 그리고 현재 입양인들이 한국으로 돌아와서 친부모를 찾는 데 얼마나 어려움이 많은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셨어요. 그 분들은 “한국에서 입양은 사라져야 할 것이다”고 말씀하셨죠.

 저는 굉장히 충격이었어요. 제가 가졌던 입양에 대한 생각과 그 분들이 들려주시는 입양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다른 거예요. 그래서 입양에 대한 법을 다시 보게 되었고, 애초에 아이들이 한국에서 살 수 있게, 출생한 가정에서 살 수 있게 돌보지 않았던 우리 한국사회의 현실, 그동안 아동복지정책의 잘못된 점을 알게 되어서 같이 활동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 결과 2011년도에 법이 통과되었어요. 이게 그나마 제가 했던 여러 가지 활동 중 변화를 이끌어냈던 점이고

 재미있었던 건 당시가 이명박 정부였는데, 이명박 정부가 저희와 같은 입장을 취하기가 되게 어렵잖아요, (웃음) 그런데 입양 이슈에 대해서는 의외로 정부가 약간 비슷한 입장을 취한 거예요. 당시 정부가 입양 문제에 대해 굉장히 수치스러워했어요. 한국이 여전히 해외에, 미국으로 입양 보내는 아이가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는 등 이런 수치에 대해서 정부가 부끄러워했고, 국제사회로부터 지적도 많이 받았던 거예요. 그래서 ‘아 이건 좀 바꿔야 한다’는 정부 입장이 있었던 데다가 다행히 당사자 분들이 목소리를 많이 높여주셨고, 거기에 저희가 같이 끼어서 법적인 언어로 바꾸어서 일하니까 빠른 시간 내에 급속도로 제도 개선이 일어났던 거죠. 굉장히 재미있게 일을 했어요. 그런 한 두 가지 사례들이 힘이 되는 거죠. 당장은 아니어도 여러 가지 상황 변화에 따라서 언젠간 또 바꿀 수 있겠구나 희망을 가지는 거죠.

 

이하나 : 현재 주력하고 계시는 여성인권과 아동인권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나요?

 

소 : 공감에서 2004년에 활동을 시작할 때 멤버가 변호사 4명이었는데, 남성변호사님 세 분과 저였어요. 그래서 ‘여성인권은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선점을 했어요. 제가 여성인권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특별한 게 있는 것 같진 않고, 그냥 자연스럽게.. 제가 스스로 여성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고, 여대 다니면서 학교에서 여성주의 운동의 영향을 받은 것도 있고, 다른 이슈보다 조금 더 ‘이건 내 문제다’라고 생각이 든 부분이 있었죠.

 공감 활동을 시작할 당시에 사무실로 이주여성단체와 성매매 피해 여성 지원 단체들의 요청이 많이 들어왔어요. 저희가 맨 처음에 변호사를 파견하는 활동을 했는데, 제가 거의 첫 해에 성매매 피해여성 지원하는 단체로 일주일에 이틀 출근을 하고, 이주여성단체는 일주일에 하루 출근하는 방식으로 단체들과 같이 활동을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굉장히 자연스럽게 공감에서 여성인권이슈를 제가 계속 맡아서 활동해 오게 되었죠.

 아동인권 관련해서는.. 저희가 처음부터 아동인권이슈를 한 건 아니었고, 조금 전에 말씀드린 입양 이슈 관련 활동을 한 것이 계기가 되었어요. 입양이 결국에는 한국의 아동복지체계 안에 그 위치가 있거든요. 부모가 돌볼 수 없는 아이들을 어떻게 공적으로 돌볼 것인가의 문제를 다루는 법이 아동복지법이고, 입양과 관련된 특별법이 있는 건데, 아동복지법을 보니까 제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공백이 많은 거예요.

 그래서 입양의 문제를 통해 아동복지법 체계의 문제점을 알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아동이슈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지금도 저희가 아동인권을 다 하는 건 아니에요. 입양 문제, 그 다음에 이주 아동의 문제. 제가 공감에서 이주 이슈나 이주 여성 쪽을 다루니까 이주 아동과 관련된 사례도 지원 요청이 들어오면서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미혼모 이슈와도 연결이 되고, 아동학대 문제 등과도 관련해서 활동을 조금씩 넓혀 온 게 있죠. 게다가 최근에는 제가 4살 아이의 엄마가 되고 보니 아이들의 문제가 더 남다르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하 : 다양한 이슈와 분야들에서 활동해오셨는데,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의뢰인이나 사건은 무엇이었나요?

소 : 아동인권에 관해서는 앞에서 말씀 드린 입양 문제였고요, 여성과 관련해서는.. 많이 있을 수 있겠는데, 최근에 지원했던 사례로 말씀드릴게요. 잘 안 된 사건이에요. 캄보디아 여성 두 분이 비닐하우스 농장에서 일하다가 농장주로부터 거의 1년간 지속적으로 성폭행 당했던 사건이에요. 저희 사무실로 지원 요청이 왔을 때에는 이미 검찰 불기소 결정이 난 다음에 항고하는 과정이었어요. 너무 억울한 사건이었어요. 제가 봤을 때에는, 당사자들과의 면담, 신고 경위나 여러 가지 상황을 보면 농장주가 잘못한 게 맞는데, 처벌해야 되는데, 우리가 항고심부터 결합해서 결국에는 항고 기각, 재정 신청마저 기각되어서 결국 잘 안 됐어요. 그 분들이 너무나 많이 우셨고..

성폭력 사건은 초기 사건 대응이 중요하거든요. 피해자 진술의 일관성, 신빙성 하나로 가해자를 처벌해야 하는데, 이 분들이 초기 대응을 잘 못하셨어요. 갑작스럽게 농장에서 구출되어 바로 2~3일 동안 경찰에서 수사를 받았는데, 수사 과정에서 대략적으로 특정했던 사건 발생 시점이 나중에 검찰로 가면서 다 뒤집힌 거예요. 결국 진술이 일관적이지 못해 이 분들은 완전히 못 믿을 사람들로 결론이 난 거죠. 당시 검찰 기록을 보면, 제가 조서만 읽어봤는데도 검사가 막 화를 내는 게 느껴질 정도였어요. 피해 여성분들은 자기들이 피해를 인정받고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을 거란 생각으로 쭉 조사를 받았던 건데, 검사가 엄청 다그치니까, 마지막 검찰 조사 받을 때에는 통역해주었던 분이랑 같이 울어버렸대요.

그렇게 꼬인 사건을 항고부터 하려니까 쉽지는 않더라고요.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이분들이 쓰신 진술서 중에, 자기는 한국에 와서 돈 벌어서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고 싶었는데 왜 자기한테 이런 일이 생기는지 모르겠고, 자기는 여기 와서 완전히 다 망가졌다고 표현하신 내용이 있었어요. 그 진술서도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그래서 이 사건이 최근에 기억에 남아요.

농업 이주 여성들 사건을 할 기회가 많지는 않아요. 이런 사건들이 드러나기가 쉽지 않거든요. 보통 이주 여성이 고소고발을 하면 계속 일할 수 없을 가능성이 크고, 다른 농장으로 사업장을 변경해줄 가능성도 보장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잘못하면 한국에서 일할 기회만 없어진다고 생각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고용허가제 구조 하에서는 농장주, 사장 등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한 이주 여성노동자들이 자신의 피해 사실을 말하기가 어려워요.

비록 많진 않지만, 들어온 사례들을 보면 피해 여성의 입지가 굉장히 취약해요. 일단 비닐하우스 농장은 밀폐되어 있고 외부로부터 차단된 공간이죠. 게다가 피해 여성분들한테 농장주는 하느님 같은 존재였대요. 농장주가 자기들을 고용하겠다고 해서 한국에 들어올 수 있었다는 거죠. 한국에서 버는 한 달 100만 원 정도의 월급이 캄보디아에서는 1년 치 임금보다 높아요. 그러니까 이 분들한테는 한국에서 일하는 게 엄청난 일이고, 또 처음 한두 달은 농장주가 친절하게 대해주니까, 농장주 이름을 무슨 아버지라고 핸드폰에 입력해놓을 정도로 믿고 신뢰했던 사람인거죠. 그런 구조적인 취약함, 경제적인 취약함, 고용허가제 하에서 사업장 변경이 어려운 점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거죠.

이 분들이 한 일을 보니까, 성적 착취뿐만 아니라 농장주 집에 가서 설거지하고 빨래하는 게 일상적인 일인 거예요. 그런 식으로 1년 넘게 지속적으로 피해를 당해 오신 거죠. 이런 피해가 사실은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한 두 사람의 문제는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놀랐어요.

2

하 : 한국 사회에서 이주민들에 대한 혐오가 점점 심해지고 조직화되어가고 있어서, 이주민 관련 활동을 하시는데 어려운 점이 많을 것 같아요. 이런 혐오 문제를 해결하고 인식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소 : 이주민에 대한 혐오라.. 법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일까요? 저는 이자스민 의원실과 ‘이주아동권리보장법’을 제정하는 활동을 몇 년 동안 해왔어요. 그리고 작년 2014년 12월에는 의원실에서 법안 발의를 했고요. 그런데 그 후에 이 법안에 반대하시는 분들이 조직적으로 이자스민 의원실에 전화로 항의하고, 팩스를 보내고, 홈페이지에 댓글 다는 등의 반대운동을 했어요. 이로 인해서 이자스민 의원실의 업무가 마비될 정도였죠.

사실 저는 반대운동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구체적으로 보지는 않았어요. 맘 상할까봐. (웃음) 주위에서 하시는 이야기를 듣고 놀랐던 건, 예전에는 이런 반대운동을 하는 분들이 소규모였거든요. 예를 들면 국제결혼 피해자 모임에 속한 남성분들 정도요. 이분들의 모임이 있어서 결혼이주여성의 인권을 보장하자는 국회의원들 활동이 있으면 조직적으로 오셔서 피켓팅도 하고, 공적으로 발언도 많이 하시고 그랬어요.

그런데 이게 굉장히 확산되었다고 하더라고요. 일반 주부들이 모여 있는 엄마들 카페에서도 이 법안 이야기를 하면서, ‘아니 우리 아이들에게 지원할 것을 어떻게 세금도 안 내는 이주 아동들에게 지원할 수 있느냐’는 식의 논리로 반대하신다고 하더라고요.

이게 뭘까. 좀 고민이 되더라고요. 제가 보기에 이 논리는 결국 일베의 논리와 같거든요. 일베들이 무임승차한다는 취지로 소수자 인권, 여성 인권 이야기하는 데마다 반대하는 논리거든요. ‘왜 우리가 낸 세금으로 그들에게.’ 이런 논리가 의외로 확장력을 가지면서 그냥 일반 사람들도 가만히 듣고 보면 뭔가 억울한 느낌을 받는 거죠. 거기에 삶이 경제적으로 각박해지고 박탈감이 전반적으로 팽배한 현실에서, 내 것을 뺏긴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저는 또 이게 사회 전반적 분위기와 맞물리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신은미·황선 통일토크콘서트에 한 고등학생이 사제폭탄을 던진 사건 같은 경우에 나왔던 반응들이요. 그 사건은 사실 굉장히 무서운 것이잖아요. 그런데 사회적으로 그 행동을 잘했다고 영웅시하는 분위기가 있었고, 이에 대한 정부의 코멘트도 이상하게 나왔어요. 이 현상을 문제적으로 바라보고 이것을 사회적 문제로 인지해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애초의 종북 콘서트가 문제였다는 방식으로 말이죠. 마치 이런 관점을 허용하고 묵인하고 방조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혐오는 법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기보다, 전체적인 인식의 문제, 그런 논리를 확산시키고 조장하는 정권과 언론의 태도가 바뀌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하 : ‘왜 내 세금으로 저 사람들을 지원해주어야 해?’라는 논리는, 이 나라의 ‘시민’에 이주민들을 포함하지 않는 논리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저희가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생각했던 것은 ‘시민’ 개념이 좀 더 확장되어야 하지 않을까. 변호사님께서는 시민 개념이 어떤 식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소 : 그런 인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아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데요. 이주민들이 정말 세금을 안낼까요? 직장을 다니게 되면, 일단 근로소득세를 내죠. 그리고 우리나라의 세금 부담 비율이 직접세보다 간접세가 더 높아요. 간접세가 한 70% 정도를 차지하거든요. 이주민들이 마트에 가서 장을 본다든지, 생필품을 산다든지 하면 거기에 다 부가가치세가 붙는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한국에서 사는 이주민은 직접, 간접의 세금을 부담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 공동체 개념을 확장할 필요가 있는 거죠. 예전의 국적·민족 중심의 공동체 개념에서 벗어나, 어쨌든 한국에서 같이 주민으로 살아가고 있고 세금 부담도 같이 하고 있는 사람들을 국적과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배타적으로 대해야 할 것인가 재고할 필요가 있어요. 이러한 배타적인 시각은 이주민에 대한 편견과 오해에서 비롯되는 것이거든요. 이 부분은 사실 국회나 정부도 크게 입장이 다르지 않아요. 예를 들어, 저희가 이주아동 권리보장 기본법을 제정할 때의 일이었어요. 사실 이 법은 너무 당연한 것이거든요. 아이들은 자신들의 부모나 태어날 곳을 선택한 게 아니잖아요. 한국에서 태어나고 보니까 부모가 미등록 이주노동자인 것이죠. 그런데 그 이유로 아이들은 신분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공교육이나 의료보험 등에서 계속해서 배제되죠. 결국 이주아동 권리보장 기본법은 아이들만이라도 우리가 비준한 유엔 아동권리협약에 따라서 건강하게 발달·성장하고, 교육받을 수 있고, 병원에 갈 수 있게 보호해주자는 취지의 법이거든요. 너무나 당연한데, 이게 왜 통과가 안 되는지 모르겠어요.

 이 법의 제정에 대한 반대 논리가 법무부에서 나왔어요. 법무부는 아이들을 보호하면, 그들의 부모까지 보호해야 하고, 그렇게 되면 모든 불법체류자들이 다 아이를 낳고 한국에 정착하려하지 않겠는지 우려해요. 이런 악용 가능성을 이유로 이 법의 제정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을 계속하죠.

 법무부는 이 법의 제정이 ‘공익’과 충돌한다고 말해요. 여기서 법무부가 말하는 공익은 출입국관리를 말하는 것이거든요. 공익과 사익이 충돌한다는 말인데, 저는 이게 너무 충격적이에요. 아동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사익이고, 출입국관리를 제대로 하는 것은 공익이기 때문에 공익이 앞선다는 논리가 저는 너무 무서운 논리라고 생각해요. 출입국관리법을 준수하는 것이 이주아동의 권리를 보장해야하는 것보다 앞설 수 있을까? 이런 법무부의 인식이 외국인 혐오를 조장하고, 또 묵인한다고 생각해요. 초과 체류나 미등록 체류이기 때문에 인권보장도 안 된다는 법무부의 입장은 외국인 혐오 세력의 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거든요. 저는 법무부가, 정부가 이런 입장을 견지하는 한 외국인 혐오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3

 

하 : 변호사님께서 ‘법적인 관점의 해결이 어려워도 인권적 관점의 해결을 도모한다.’라는 말씀을 하신 인터뷰를 봤어요. 법적인 관점과 인권적 관점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또 양자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어떤 것일까요?

 

소 : 제가 그런 말을 했다고요? (웃음) 저는 공익 변호사, 인권 변호사, 공감이나 민변에서 활동하는 변호사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인권의 문제를 법의 언어로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양자의 균형을 맞춘다기보다는, 기존의 법에 담겨있지 않은, 혹은 기존의 법에 충분히 담겨있지 않은 목소리, 예컨대 소수자의 인권이나 입양인의 인권 등과 같은 관점을 법에 새롭게 담아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존의 법은 현재의 소수자들의 인권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거나 침해할 수 있어요. 그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보면 법과 인권이 충돌한다고 말할 수 있죠.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가 일을 시작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궁극적으로 법과 인권이 충돌하는 것은 아니에요. 인권의 문제가 법에 반영될 수 있도록 더 열심히 활동해야 하는 거죠.

 

하 : 공감의 10년 기록이 담긴 ‘우리는 희망을 변론한다.’가 출간되었는데요. 그동안 공감이 이뤄낸 성과와 가장 큰 보람은 무엇일까요.

 

소 : 공감이 계속 존재해왔다는 것?(웃음) 사실 저희가 맨 처음 시작을 했을 때, ‘몇 년이나 가겠어?’하고 반신반의했거든요. 왜냐하면 후원금으로 운영비와 사업비를 충당한다는 것이 굉장히 생소했고, 거기다 일반적으로는 ‘돈을 잘 버는’ 변호사가 후원을 받는다는 것도 낯설었거든요. 다른 가난한 인권시민단체처럼 후원금으로 보수를 받으면서 활동한다는 것이 가능할지 의심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공감의 성과는 문 안 닫고 12년 동안 잘 해오고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웃음)

 그리고 최근 2, 3년 사이에 저희가 제일 보람을 느끼는 것은 공익법 활동을 하는 후배들이 많아졌다는 것이에요. 희망법도 생겼고, 어필도 생겼고, 또 공익활동을 전담해서 일하겠다는 변호사들이 굉장히 다양한 방식으로 등장했거든요. 시민단체의 상근 변호사가 된다든지, 홀로 단체를 꾸리는 변호사님도 생기고. 예전에는 ‘민변 방식’의 공익법 활동밖에 없었다고 하면, 공감이 생기면서 새로운 방식의 공익법 활동이 등장했고, 지금은 더 다양해진 것이죠. 또 공익법 활동이 사회적으로 점점 확산되는 상황에서 공감이 선배 역할을 하고 있구나, 우리가 후배들의 울타리가 되어 주고 있구나 하는 것에서 굉장히 큰 보람을 느끼고 있죠.

 

하 : 한국 사회에서, 특히 젊은이들이 ‘공감력’이 부족한 것 같아요. 한국 사회의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소 : 저는 공감하는 일이 굉장히 어려운 일 같아요. ‘공감’이라는 이름을 가진 단체에서 일하고 있는데, 일을 하면 할수록 이 공감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깨달아 가는 것 같아요. 우리가 정말로 누군가의 입장이 되어볼 수 있겠어요?

4

 실제로 제가 일하면서 마주하는 사람들, 관계 맺는 사람들에게 제가 정말로 공감하고 있는가 되물었을 때 한계를 많이 느끼거든요. 변호사라는 직업은 의뢰인의 사건을 법적으로 검토해야 하기에 의뢰인에게 공감하면서도 동시에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변호사라는 직업의 특성상 100%의 공감은 어려운 것 같아요. 그래도 계속해서 확인하는 거죠. 저 분이 정말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구나, 내가 쉽게 접근하거나 생각할 문제가 아니구나 하는 점을 깨닫는 것이죠.

 저는 젊은이들이, 자신의 문제가 자신만의 책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할 일, 해야 하는 일을 열심히 하시되, 내 문제가 어디로 연결되어 있는지는 보는 정도의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사회적 이슈에 관심을 가지시고, 학교에서 그런 활동을 하거나, 신문을 보시거나 하면서요. 이런 것들을 보면서 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덜 지치게 되지 않을까, 좀 더 길게 힘을 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하 : 마지막 질문입니다. 민변 회원 분들께 한마디만 해주세요!

 

소 : 제가 돌아보니까 연차가 낮았을 때에는 선배들이 저를 도와주고 챙겨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많이 했는데, 어느새 제가 선배 변호사가 되었더라고요.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후배 변호사님들과 많이 친해지고 싶어요. 제가 공감에서 하는 일에 대해 궁금하거나 같이 하고 싶으시면 언제든 연락을 주시고, 찾아도 주십시오!

화, 2015/08/25-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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