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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주년을 바라보다] 박경서 대한적십자사 회장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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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주년을 바라보다] 박경서 대한적십자사 회장 인터뷰

익명 (미확인) | 금, 2018/06/01- 09:58
[30주년을 바라보다] 박경서 대한적십자사 회장(통일협회 고문, 前이사장)

정리: 윤은주 회원팀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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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실련 30주년을 준비하며 그동안 경실련에서 활동하시며 시민운동을 빛내주신 분들, 또는 우리사회에서 존경받는 사회적 명사들을 찾아뵙고 삶의 혜안과 시대정신을 담은 소중한 이야기들을 듣고 있습니다. 김성훈 前공동대표님에 이어 두 번째로 경실련이 만난 분은 2006년부터 2009년까지 경실련 통일협회 이사장으로 활동하셨고, 현재는 고문으로 활동중이신 박경서 대한적십자사 회장님입니다.

박 회장님은 WCC 아시아 국장, 초대 UN 인권대사를 지내시며 평화, 통일, 인권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셨습니다. 작년 8월에는 마지막 종착역이라고 여기신다는 대한적십자사 회장으로 취임하셨는데요, 적십자 활동 소개와 판문점 선언에 대한 평가 및 전망 등을 진솔하게 나눠주셨습니다. 

 

 

1. 지난 4월 판문점에서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졌습니다. 4.27 정상회담의 성과와 이번 회담이 동북아와 한반도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11년 만에 이뤄졌던 4.27 남북정상회담은 지금까지 72년 7.4 공동선언, 노태우 대통령의 91년 12월 13일 고위급 합의문서, 김대중 대통령의 2000년 6월 15일 남북공동선언, 2007년 10월 4일 노무현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의 연속성에 있습니다.

첫째는 완전한 비핵화가 있고, 둘째는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라는 준전시상태를 완전히 평화협정으로 되돌릴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선언이었다는 점입니다. 셋째는 지금까지 73년 동안 대치를 극대화 했었던 군사대치 국면을 해소시키고 남북이 서로 협력하는 시대를 열었다는 것이죠. 이 세 가지의 큰 틀에서 선언의 전문과 3항 13개조 원칙들이 발현된 거라고 봅니다. 과거의 선언들보다 남과 북의 양 정상이 세계를 향해서 한 선언이기 때문에 진정성 면에서 세계의 큰 반응을 일으킬 것입니다.

지난 73년 동안 우리 민족에게 큰 고통과 아픔을 주었던 이산가족 문제를 포함해 민족 분단으로 발생된 남과 북의 인도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본격적인 계기를 마련해주었다는 점에서 대한적십자사 회장으로서 감사하고 기쁜 마음을 감출 수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역사를 써보게 되었습니다. 6자 회담의 시대를 마감하고 남북이 평화 번영 통일을 위한 운전대를 잡았습니다. 남북이 협의해서 세계평화에 주도권을 잡았다는 점에서 이 회담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2. 남북이 종전선언을 하고, 정전협정에서 평화협정으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종전선언의 의미와 평화체제에 대해 조금 자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전환된다는 얘기는 73년 동안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있었던 상황을 완전히 180도로 바꾸는 거예요. 군사적 대치라는 것은 이제 없을 거고, 다만 평화체제를 지키는 평화 파수꾼의 역할을 하는 군대는 있겠지요. 내가 살았던 스위스마저도 중립국가지만 군대를 가지고 있었어요. 군대라는 게 원래 남을 공격하려는 게 아니고 자기의 안보를 지키려고 있는 거니까 자기의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군대를 향한 대치국면이 완전히 해소가 될 것이고, 이제 그런 분위기 속에서 비자를 받고 서로 왕래하되 두 개의 체제가 평화스럽게 공존하기 때문에 서로 상호 존경을 하고 상호 인정을 하며 지낼 것입니다.

 

3. 대한적십자사 회장으로 취임하셨습니다. 대한적십자사는 구호활동부터 시작해 헌혈, 병원복지사업, 남북교류활동 등 정말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는데 회장으로 취임하시면서 가장 중점을 두시는 부분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대한적십자사 소개와 현재 활동도 간단히 설명해주세요.)

대한적십자사 회장으로 취임한 지 약 9개월이 지났습니다. 세월이 참 빨라요. 대단한 조직입니다. 적십자정신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봉사원 12만 명, 청소년적십자 단원 19만 명, 직원 3,700명 큰 예산을 가지고 움직이는 113년의 역사를 가진 기관입니다. 1905년 고종황제 칙령으로 설립되었어요.

지난해 터키 안탈리아에서 개최된 국제적십자사연맹 총회에서 191개국의 대표격인 관리이사회 이사국을 뽑는데 대한적십자사가 당선이 됐습니다. 취임사에서 언급했지만 대한적십자사를 `선진국형 적십자사`로 만들고 싶어요. 스위스나 독일에서는 적십자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참 좋습니다. 스위스와 독일에서 각각 18년과 7년씩 아이들을 키우며 느낀 건 그 나라들은 어린아이 때부터 적십자를 누구도 침범하지 않는, 인도주의 정신을 실천하는 기관으로 교육시키고 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대한적십자사는 그렇지 않습니다. 단순히 기타 공공기구 정도로 인식돼 있다 보니 각종 감사의 대상이 되고, 봉사정신과 관련이 없는 외부인들이 적십자 활동에 이의를 제기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어요.

지난해 8월 취임 후 ‘동북아시아/한반도 인도주의 공동체 건설’이라는 새 비전과 목표를 가지고 대한적십자사가 움직이고 있습니다. 남과 북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시대를 열 수 있도록 포괄적인 접근법으로 제 3의 길을 모색하고 있어요. IFRC, ICRC, UN 등 국제기구와의 협력을 통해 지금의 한반도 평화 분위기를 계속 이어나갈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입니다.

기관 운영에 있어서도 비효율적이고 관행적인 운영 방식을 지속적으로 개선하여 대내외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적십자사를 구현하는 데 주력하려고 해요. 이를 위해, 대한적십자사는 국내 비영리단체 최초로 국제회계기준(IFRS)을 도입했고, 기부금의 모금, 집행 과정은 물론 기관 운영과 관련한 재무 프로세스를 대폭 개선함으로써 조직 전반의 투명성을 강화해 나갈 것입니다.

남북교류 활동에 대한 계획은 판문점 선언 이후 8.15 전후해서 이산가족 상봉이 있을 거예요. 이와 관련하여 6월에는 남북적십자회담이 개최되리라 보고 있습니다. 6월 북미회담 끝나면 평양에 가서 북한 적십자사하고 가서 이산가족 상봉 준비와 인도주의 원조 등에 대해 논의하고 싶습니다. 특히 인도주의적 지원에 있어 보건 지원에 관심이 많습니다. 북의 건강이 남의 건강이라고 생각합니다. 북의 기초건강상태를 획기적으로 개선시키는 것 등에 중점을 두려고 합니다.

어떻게 튼튼하게 평화 공존을 통한 핵과 전쟁이 없는 한반도 인도주의 공동체 건설을 할 수 있을지 북과 마주 앉아 프로그램을 논의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다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상호 인정과 존중으로 남이 50%, 북이 50% 서로 양보해서 만들어 가야해요.

 

 

4. 경실련도 1994년부터 통일협회를 창립하고, 실사구시(實事求是)적 통일운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습니다. 회장님께서도 2006년~2009년까지 이사장도 역임하시고 같이 활동하셨는데, 경실련 활동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고, 통일협회 활동하시던 때 이야기도 좀 들려주세요.

경실련 통일협회가 참 일찍부터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위해서 프로그램을 많이 했어요. 지금도 내가 고문으로 있지요. 특히 이번 적폐청산 촛불 운동의 한 가운데 있었고 큰일을 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어요. 유엔은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평화, 지속가능한 발전, 여성, 아동, 청소년 NGO 단체를 먼저 불러서 의견을 청취합니다. 그런 건전한 NGO 중 하나가 경실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경실련에 대한 굉장한 경의를 가지고 있어요.

경실련 활동은 내가 2001년부터 2007년까지 인권대사 할 때 ‘한반도 평화’라는 주제로 경실련통일협회에서 특강을 했던 게 계기가 됐어요. 인권대사를 그만두려고 하니까 경실련에서 이사장을 해주십시오 해서 함께 하게 됐습니다. 그때 이사장할 때 나를 도왔던 게 김근식 교수, 전 통일부 장관 홍영표 등 젊은 석학들이 나를 많이 도와서 참 좋은 추억도 많습니다. 저도 경실련의 한 식구에요.

30주년이 내년이라고 해서 기념행사에는 가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모금도 쉽지 않은데 어렵게 일하는 경실련 직원들에게 찬사를 보냅니다. 경실련이 지금까지 해왔던 큰일은 우리 민족의 선진화를 이뤄냈어요. 특히 판문점 4.27 선언 이후 국민의 계몽문제라든지 아직도 진영논리에 사로잡혀 냉전 논리에서 있는 국민들을 잘 설득하는 일들도 경실련 통일협회가 잘 해가면 멋있게 될 거라는 희망을 갖습니다.

 

5. 경실련이 내년이면 30주년을 맞습니다. 경실련에 바라는 점, 혹은 한국 시민사회에 바라는 점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내가 관여하는 한국의 시민사회 전부가 정부의 보조금을 안 받아요. 촛불 정부 시대에는 경실련 등 시민사회가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아 재원을 확보하는 방안도 고려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게 다 여러분의 세금이기 때문이에요. 한국 시민사회가 그동안은 ‘권위주의적 정부와 대치하면서 시민운동을 한다‘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정부의 돈을 받을 수 없었지만, 지금 촛불 대통령은 다시 독재로 갈 일이 없으니 고려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부보조금을 받는다고 정부에게 싫은 소리 안 하는 거 아니잖아요. 서양에서는 전부 정부 돈으로 움직이는데 더 소리치고 다녀요. 왜냐하면 “너희들이 준 돈이 우리 세금이다”라는 생각가지고 하는 거라서 그래요.

지금까지도 잘했지만 이제 정말 역사를 다시 쓰는 데 있어 끝까지 순수하게 국민의 편에 서서 건전한 NGO로 큰일을 해주길 기대합니다.

 

6.  ‘통일, 평화, 인권’하면 박경서 회장님이 떠오르는데, 이런 주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언제입니까?

늘 이야기하는데 분단이라는 것이 모든 우리나라의 부조리의 원천입니다. 분단을 극복하지 않고는 절름발이식 발전일 뿐입니다. 분단이라는 것이 우리 5천만, 북의 2,300만 7,300만의 목을 조이고 있는 한 모든 부조리가 분단이라는 이름으로 용납이 돼버리는 시대를 산거에요. 우리를 옥죄고 모든 우리의 악의 세력들이 분단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죄를 다 저지른 것을 이제는 과감하게 털어버린다는 그 가능성을 판문점 선언이 해줬기 때문에 판문점 선언의 의의가 크다고 보는 겁니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여수순천 사건이 터졌어요. 사흘 동안 무릎 끓고 아스팔트에 나가있었습니다. 무고하고 순수한 민간인 4만 5천여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우리나라 전쟁이 터져서 외할머니 집에 피난 갔는데 외할머니, 외삼촌, 외숙모, 조카 셋이 내 눈 앞에서 빨치산에게 대창으로 죽는 것을 봤어요. 그런 것을 보고 어렸을 때부터 전쟁이나 폭력은 안 된다. 평화, 인권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머리와 가슴에 깊이 새겼습니다. 제네바 18년 세월 동안에 르완다, 미얀마 학살, 북한의 굶주림 현장을 내 눈으로 보면서 인권, 평화, 지속가능한 발전, 개인의 안전 등의 이슈에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대한적십자사가 마지막 종착역이라고 생각합니다.

 

7. 마지막으로, 초대 UN인권대사, 세계교회협의회(WCC) 아시아 국장, 대한적십자사 회장까지 다양한 이력과 경험을 쌓아오시며 이제 우리시대의 어른이기도 하시고, 사회적 명사가 되셨는데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나는 이런 날이 올 줄 몰랐어요. 내가 조금 오래 살면 내가 그렸던 한반도의 평화정착이 실현이 되는 구나. 시베리아를 거쳐 북한을 가는 날을 머릿속으로 그려봤는데 조금만 더 오래 살면 정말 그게 가능할 것 같습니다. 1986년 제네바 세계교회협의회(WCC) 아시아국장을 할 때 그리온 남북교회 모임을 통해 남한과 북한 목사님들의 대화를 추진했었습니다. 88년 그리온 2차, 90년 그리온 3차, 4차는 92년 남북교회지도자 모임을 했어요. 89년 모스크바 남북 평화선언 그런 인연으로 인권대사를 하게 된 거죠. 그런 인연으로 7년 동안 국가인권위원회를 여러 사람과 같이 만들고, 지금 대한적십자사 회장까지 왔습니다. 내 꿈은 결국 분단을 극복해서 어깨동무하는 정직하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공동체를 남과 북이 만드는 것입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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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지내몰림 시리즈] – 윤경자 서촌 궁중족발 사장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해서 제2의, 제3의 궁중족발 사태 막아야죠”

 

정리: 윤은주 회원팀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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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호에서 둥지내몰림 시리즈 첫 인터뷰로 궁중족발을 인터뷰를 했었는데, 5개월 만에 윤경자 사장님 인터뷰를 다시 하게 됐습니다. 지난 6월 7일 건물주 집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던 김우식 사장님이 건물주를 폭행하는 사건이 있었고, 이로 인해 김우식 사장님은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사건 자체만 보면 문제가 명확한 사건 같지만 이면에는 우리 사회의 시대적 과제가 숨어있다는 것을 모두 느끼고 있습니다.

12차 강제집행으로 가게에서 쫓겨난 윤경자 사장님은 6월 15일부터 매일 청와대와 국회 앞에서 김우식 사장님 탄원과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청와대와 국회로 찾아가 윤경자 사장님을 만났습니다.

 

▲ 매일 오전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윤경자 사장

 

  • 사건이 있던 6월 7일의 상황과 김우식 사장님은 지금 검찰에서 기소된 상태로 서울구치소에 수감중이라고 들었는데 자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그 날(6월 7일)도 평소처럼 1인 시위하던 중이었어요. 4월부터 1인 시위를 했었어요. 6월 4일 지게차로 집행 들어오고 6일날 대치하다가 연대인들 물건만 빼고 저희 물건은 있는 채 가게를 못 들어가게 한 상태였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7일 아침 1인 시위하러 나간거예요. 나가면서 그 전전날도 건물주와 문자와 통화로 많이 싸웠어요. 이런 싸움 자체가 7개월 넘게 지속해서 있었던 거예요. 그 날도 평소처럼 협박성 문자와 전화가 계속 왔던 거예요. 다 구속시키겠다, 연대인들도 다 구속시키고 감옥에 가서 죗값을 받아야 한다, 실랑이하고 있으면서 아침에 1인 시위를 하러 갔는데 이 분하고 마주친 거예요.

지금은 검찰에 기소가 된 상태고,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는데 이번 달 27일에 검찰, 검사, 판사, 변호사랑 재판을 어떻게 진행할건지 심리하고, 아직 날짜는 확정 안 됐지만 8월 중순쯤에 재판이 진행이 될 거래요. 저희는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에서 공동 변호인단 꾸려서 하고 있는데, 국민참여재판 신청할 예정이라고 하더라고요.

 

  • 지난 2월 인터뷰할 때 3차 강제집행까지 한 상황이었고, 그 과정에서 김우식 사장님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도 있었기 때문에 설마 더 하지는 않겠다 싶었는데 12차까지 집행을 했습니다. 12차까지 집행하는 경우는 본 적이 없는데, 이례적인 상황 같습니다. 지금 시정이 어떠신가요?

네 12차까지 하는 경우는 없어요. 전무후무한 사례에요. 3차 이후에도 크고 작게 여러 번 강제집행이 있었어요. 저희는 분쟁이 오래 돼서 가게 안에 저희가 지키고 있는 걸 건물주도 집행관도 다 안단 말이에요. 그런데도 12차 때 새벽 3시 넘어서 지게차로 세 번이나 문을 부쉈어요. 증거자료 없애려고 CCTV도 미리 다 가려놓고요. 안에 있던 사람 핸드폰으로 동영상 촬영한 게 그나마 있기 때문에 그 장면이 촬영이 됐지, 그거마저도 없었으면 밀고 들어왔던 상황이 알려지지도 않았을 거예요.

6월 4일 강제집행 들어오기 전에 박원순 시장이 기자회견을 했어요. 그때 분명히 중장비를 동원한 폭력적인 집회 허용치 않겠다고 했는데, 일주일 만에 실제로는 그런 게 다 허용이 돼서 이루어지는 거잖아요. 말뿐인 행정처리라고 느껴져요.

개인적으로는 안 좋아진 상황이고, 돌파구가 있는 것도 아니에요. 건물주하고 대화해볼 여지가 남아있는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일단 여론에 많이 알려졌고, 건물주가 하신 일이 합당하다고 느끼는 분보다 오히려 법의 미비한 점이나 불합리한 제도가 바뀌어야 된다고 느끼는 분들이 많아요. 그렇기 때문에 저희한테 개인적으로 도움이 되는 건 없지만 상가임대차보호법 바꾸자는 의견에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더 신경쓰고, 더 많이 의견도 내주시고 힘을 실어줄 수 있는 분들이 많아진 거는 나름 이점일 수 있죠.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저희한테 개인적으로는 도움이 되는 건 없지만 임대차보호법을 바꾸자는 의견에는 본인이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저거는 미비한 법이다, 저건 법개정 해야 된다 있으나 마나한 쓸데없는 법 왜 존재하느냐 거기에 더 신경쓰고 더 많이 의견도 내주시고 그리고 힘을 실어줄 수 있는 분이 더 많아진 거는 나름 이점일 수 있죠.

 

  • 지난 번 인터뷰 때도 호소하셨던 부분인데,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라지만 이것은 사람의 삶을 파괴시키는 것이라고 하셨었어요. 궁중족발 건물주와 또 건물주와 같은 입장을 가진 분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으신지 궁금합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우리나라가 자본주의 사회잖아요. 자본주의 사회는 진짜 자기가 열심히 노력하면 그만큼 잘 사는 나라가 되는 게 기본이잖아요. 물론 건물주들 중에도 자기가 진짜 노력해서 돈 많이 벌어서 건물을 하나 사고 그 건물 하나만 갖고 착하게 사는 분들도 있어요. 근데 그 외에 더 많은 사람들은 그런 건물을 밑바탕으로 해서 시세차익 노리고 투기를 하잖아요. 그런 사람들은 땀 흘려서 노력해서 돈을 버는 건 아니잖아요.

비교하자면 자영업자 같은 저희 임차상인들은 내 노력과 내 땀으로 손을 버는 거잖아요. 하 열두 시간 이상씩 가게에서 일하면서 그 돈으로 먹고살고 거기서 월세도 내고 거기서 조금 더 노력해서 돈 벌면 적금도 부을 수 있고 나름대로 자기 가게를 가질 수 있는 꿈을 꿀 수 있고 집 살 수 있는 꿈도 꾸고 되게 소박한 꿈이잖아요. 그 밑바탕이 내가 땀을 흘리는 게 밑바탕이에요. 그렇지만 일부 건물주들, 특히 임대업으로 돈 버는 사람들은 남의 노력과 땀의 결실 위에 생겨난 불로소득 갖고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거잖아요.

건물주의 재산권도 중요해요. 그렇지만 그 사람들이 그런 결과물을 얻기 까지는 그 밑바탕에서 그 상권을 살리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 그분들이 시세차익을 더 받게 하기 위해 상권을 활성화시킨 그런 사람들의 노고가 있는 걸 인정했으면 좋겠어요. 그 밑에서 일하는 눈에 안 보이는 무형의 재산이 더 가치가 있을 수도 있는 거거든요. 내 재산권이 소중한 만큼 그 사람들의 재산권일 수 있는 권리금 부분 인정해줘야죠. 서로 잘 살고 서로 상생하려면 내 것이 소중한 만큼 상대방 것도 소중하다는 걸 인정해주는 부분이 있어야지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사회구조가 많이 가진 사람은 더 많이 벌수 밖에 없는 구조잖아요. 조금이라도 더 노력해서 살려는 사람들한테 배려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 상가임대차보호법이 개정돼 임대차 계약기간이 최소 10년 보호된다면 궁중족발 사태를 막을 수 있었다는 여론이 많은데 그렇게 법이 개정되면 문제가 조금은 해결될까요?

한시적으로는 그게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문제가 기본적으로 법 자체를 기간만 늘린다고 해서 될 수가 있는 문제는 아니에요. 그 기간이 5년에서 10년으로 늘어나면 10년 뒤면 이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까요? 또 있는 거거든요. 그 밑에 탄탄한 세부조항들이 있어서 만약에 10년을 장사했으면 그만큼 내가 더 노력한 게 될 수도 있는 거잖아요. 건물주 입장에서는 내가 10년이나 봐줬는데 이 사람 쫓아내지도 못하냐? 그러면서 분쟁이 생길 수 있는 거거든요.

상가임대차보호법은 돈에 관련된 거기 때문에 돈에 근거해서 서로 손해를 안 보는 조항들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만약에 건물주가 퇴거를 요구할 경우에는 이 사람들이 매매를 할 수 있게 권리금을 확실하게 받을 수 있도록 보장을 해주던지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건물주가 자체가 퇴거보상금을 해주던지 하는 거죠.

또, 10년 이상 늘려서 장사를 하게 되면 건물주 선에서도 손해를 안 볼 수 있게 10년 이상 계약했다는 계약서라든가 증빙서류 같은 것을 세무서에 신고할 때 소득감면을 해준다든지 하는 제도를 나라에서 만들어줘야죠.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손해를 보면 안 되잖아요. 한시적으로 기간만 늘려서 되는 게 아니고 조금 세세하게 따져서 내가 그 사람, 당사자가 됐을 때 임차상인이 됐을 때도 손해를 안 보고 건물주가 됐을 때도 손해를 안 보는 방안을 마련을 해야지 무조건 이슈화 됐다고 기간만 늘린다고 해결되진 않는다고 봐요.

 

▲ 청와대 앞 시위 마치고 국회 앞에서 1인 시위중인 윤경자 사장

 

  • 법 개정돼도 궁중족발 다시 찾을 수 없는데 여러 가지 어려움에도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운동 동참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일단 저희는 법 개정이 된다고 해도 혜택을 못 받지만 많이 알려졌을 때, 관심도가 높을 때, 정부도 시민들도 관심을 가지고 있고 이렇게 부각이 됐을 때 해야죠. 법을 지금 막 만들어야 되는 게 아니라 개정안이 발의가 돼 있는 거잖아요. 보완 과정을 거쳐 제정해서 시행만 하면 되는 거거든요.

이렇게 해야지 그 법의 사각지대 놓여 있는 가게들, 저희만 있는 게 아니에요. 저희는 알려졌으니까 알지만 모르는 다른 가게들이 더 많이 있을 거고 이게 또 묻혀 진다면 저희처럼 저는 희생자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그런 희생자가 안 나온다는 보장이 없거든요. 그럼 또 제2의, 제3의 궁중족발 사태가 벌어지는 거고 그렇게 때문에 여기에서 끝내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힘들어도 하고 있는 거죠.

 

  • 청와대와 국회에서 매일 1인 시위를 하고 계시는데요, 시위하면서 느끼시는 점과 어떤 마음으로 시위에 참여하고 계신지 듣고 싶습니다.

남편도 제가 1인 시위 못 할 줄 알았대요. 되게 유약하게 본 거죠. 일단 몸이 고달픈 거야 안 해보던 걸 하니까 힘든 것이고요. 그래도 주위에 계신 분들이 고생한다면서 ‘궁중족발 때문에 법도 바뀔 거 같다’며 힘내라고 해주시고, 위로와 격려를 많이 해주세요.

청와대 같은 경우는 다니면서 보시는 분들이 없어서 특별히 기대하는 건 없어요. 그래도 국회 앞에서 하는 건 효과가 있다고 느끼는 게 정문에서 하고 있으면 드나드는 사람이 보좌관들, 사무처 직원들, 출입 기자들이 그냥 허투루 지나가진 않더라고요. 저희가 국회에서는 전단도 배포하거든요. 어떤 분은 지나가면서 이건 꼭 해결돼야 할 문제라고 해주시고, 이런 분들 때문에 힘을 얻고 웬만하면 법이 개정된다고 선포될 때까지는 이어가려고요.

 

  • 김우식 사장님 탄원서에 많은 분들이 서명했고, 이 문제가 잘 해결되길 바라며 사장님들 응원하는 분들이 많으신데 그 분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저희를 도와주시는 분들에게 정말 고마우면서 죄스러운 게 그거에요. 저희랑 똑같은 상황에 처한 사장님들도 그렇고 연대인들도 마찬가지고 다른 투쟁현장, 다른 분쟁지역에 가서 똑같이 하셨으면 덜 힘들었을 텐데 하필이면 우리를 만나서 더 힘든 과정을 겪었거든요. 다른 분쟁 같은 경우는 건물주가 연대인들까지 40명 넘게 다 고소고발 하는 경우가 없어요. 저희 건물주는 이름하고 전화번호만 알아도 주소를 몰라도 다 고소고발 했거든요.

살면서 경찰서 가서 조사받고 하는 일 드물잖아요. 근데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하셨어요. 다른 데 가서 연대했으면 안 겪을 일을 우리가게 와서 겪게 해서 그런 부분이 너무 미안하다 했더니 연대인들이 “사장님 그렇게 생각하시면 안 돼요. 저희가 그런 게 두려웠으면 이런 일 자체를 안 해요. 저희한테 미안해하시지 마시고 그거는 저희가 알아서 할 문제고, 사장님이 잘못해서 벌어진 문제 아니니까 사장님이 죄송해하실 필요 없어요”라고 힘내라고 해주는 게 도움 많이 됐어요. 투쟁 7개월 넘게 하면서 돈이나 현실적으로 사는데 있어서는 잃은 게 많아요. 그렇지만 돈 주고 살수 없는 걸 얻은 게 훨씬 더 많아요. 그래서 그렇게 슬프지 않아요.

 

  • 지금 가장 바라고 기대하시는 것은?

남편이 형을 안 살고 집행유예로 나오는 게 가장 큰 바람이에요. 그렇게 할 수 있다면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지요. 가장이잖아요. 가장이 없는 상태에서 사는 것과 있는 상태에서 사는 것은 크게 차이가 있으니까 나머지 차후 문제는 재판 끝나고 그 결과에 따라서 판단해야 할 거 같고, 우선은 그거 한 가지만 신경 쓰려고 해요.

 

▲ 지난 7월 11일 국회에서 개최한 임꺽정(임대료 걱정없이 장사하는 그날까지) 국민운동본부 출범식에서 결의문 낭독중인 윤경자 사장

 

  •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에 반대하는 국회의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 개정안이 2년 전에 만들어진 법이거든요. 법사위원회에서 통과도 안 시키고 유보되고 있었었는데 왜 그랬을까 생각해보니 국회의원들이 건물주가 많고, 공무원 포함해서 나라에서 세금받고 일하는 사람들이 본인은 장사할 일이 별로 없을 거 같아요. 주변에서도 드물 테고요. 그러니까 내 일이라는 생각이 안 들 거 같아요.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계속 밀리고 밀리고 그런 거 같아요.

얼마 전에도 국회에서 발언 한 적 있는데, 국회의원이 왜 되셨는지 한번 생각을 해보셨으면 좋겠다는 말씀 다시 한 번 해드리고 싶어요. 국회의원이 되고자 꿈을 꿨을 때 어떤 생각을 가지고 국민들한테 어떤 걸 해줘야겠다 그런 꿈들이 나름대로 다 있었을 거잖아요.

 

  • 지금도 제2의 궁중족발 사례가 수두룩한데,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계시는 임차상인 분들에게 해주실 말씀이 있으시다면 부탁드립니다.

대부분 권리금 주고 들어왔고 시설비 인테리어 이런 거 다 투자했고 중간에 뭘 바꾸게 되면 투자가 또 들어가는 거잖아요. 내가 들어간 비용을 회수하고 돈을 버는 게 남는 거예요. 그걸 아예 못했을 경우 자기가 돈 들어간 거 회수할 방법이 매매를 통해 권리금 받는 방법밖에 없거든요. 근데 그거마저 못하게 되면 진짜 돈 한 푼 없이 쫓겨나는 거예요. 그것도 합법적으로요. 이건 자기의 권리에요. 누가 챙겨주지 않아요. 내가 내 권리를 찾아야 해요. 내가 찾고자 하는 의지가 있을 때 남도 도와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내가 그런 의지가 없으면 도와줄 사람도 없어요. 지금은 상가임대차보호법에 대한 모순도 많이 알려졌고 분명히 바뀌어야 하고 빠른 시일 안에 바뀔 거니까 지금 분쟁 중에 있는 분들도 조금 더 많이 알아보시고 좌절하지 말고 내 권리를 스스로 찾으셨으면 좋겠어요.

 

  • 마지막으로 일반 시민들에게 바라는 점 있으시면 한 말씀 해주세요.

사건 보도되고 인터넷에 댓글 다는 거 얘기하고 싶어요. 그 댓글 자체가 힘이 될 수도 있고 악이 될 수도 있어요. 잘 알아보고 달면 좋겠어요. 댓글 달고 의견을 제시하고 싶으면 기사 하나만 볼 게 아니라 여러 개를 찾아보고 정황을 판단한 다음에 달면 좋겠어요. 상대방이 상처받더라도 자기 의견 내는 건 자유지만 내 의견이 잘못된 의견이라면 책임감도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함부로 장난스럽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본인은 그냥 바라보는 시각이지만 당사자는 삶이 오고 가는 거에요. 자기 목숨이 오고 가는 건데 신중하게 달면 좋겠어요.

 

소식 듣고 무거운 마음으로 찾아갔는데, 처음 인터뷰 때와 마찬가지로 씩씩하게 헤쳐 나가는 윤경자 사장님으로 인해 용기와 희망을 얻고 돌아왔습니다. 경실련 창립 모토가 “일한만큼 대접받는 사회”인데 궁중족발 사태는 아직도 우리 사회가 일한만큼 대접받는 사회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듯 했습니다. 정직하게 땀 흘려 일하기보다 투기로 불로소득을 얻는 게 더 쉬운 사회는 재앙입니다. 뿌리가 깊지만 언젠가는 뽑고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궁중족발과 같은 비극을 멈추기 위해 상가임대차보호법이 꼭 개정되길 기대합니다.

수, 2018/08/0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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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인터뷰 – 10년 회원을 만나다] 정병오 오디세이학교 교사(前 좋은교사운동 대표)

 

“아이들이 가진 고민이 우리 시대 모순의 핵심과 연결돼있어요”

윤은주 회원팀 간사

[email protected]

 

10년!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지요. 이번 호에서는 10년 가까이 묵묵히 경실련을 지지해주신 정병오 회원을 만났습니다. 정병오 회원은 현재 서울시교육청에서 실시하고 있는 오디세이학교 교사이고,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상임공동대표도 맡고 있습니다. 몇 해 전까지 좋은교사운동 대표를 역임하시며 교사운동으로 교육을 바꾸는데 기여하는 활동을 해오셨습니다.

종로구에 있는 오디세이학교에서 정병오 회원을 만나 이야기 나눴습니다.

 

 

  • 오디세이학교 교사는 언제부터 하신 건가요? 오디세이학교를 잘 모르시는 분들도 많으신데 오디세이학교에 대한 자세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오디세이학교가 2015년 설립됐는데 저는 설립 때부터 참여했으니까 이제 4년차입니다. 오디세이학교는 고교자유학년제라는 제도로 설립된 학교인데요, 입시에 매진해야 될 고등학교 1학년 시기에 국영수 같은 과목은 조금만 하고 나머지는 대부분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자유로운 탐색과정을 거치는 학교에요. 일반 고등학교에 똑같이 진학한 뒤에 그 학교에 적을 두고 1년 간 오디세이학교를 다니는 겁니다. 그 후에는 다시 그 학교로 돌아가지요. 2학년으로 돌아가는데 원하는 경우 1학년부터 다니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저희 학교에는 특정한 유형과 성향의 학생에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학생들이 옵니다. 성적을 보더라도 스펙트럼이 넓습니다. 일부러 그런 걸 지향하기도 해요. 특정 형태의 아이들만 오는 교육은 좋지 않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 선발 기준은 어떻게 되나요?

성적은 안 보니까 주로 자기소개서와 면접에서 당락이 결정됩니다. 학부모 면담도 해요. 혹시 이런 교육이 대학갈 때 스펙이 되지 않을까? 이런 분들은 저희가 받을 수 없고, 계속 입시를 시키면서 이것도 하겠다는 분들도 저희랑 맞지 않거든요. 저희는 학원도 다 중단하고 여기에 집중해달라고 하고 뜻을 물어요.

부모님들은 불안감을 떨쳐내기가 쉽지 않잖아요. 고1이면 입시에 매진해야 할 시기인데 이 시기에 일종의 입시로부터 벗어난 교육을 시킨다는 건 결단이 필요한 거죠. 저희의 장점이면서 한계이기도 한 게 1년 후에는 다시 입시교육으로 돌아가야 되기 때문에 학생들도 불안감을 계속 가지고 있거든요. 자기는 여기 와 있는데 친구들은 열심히 입시공부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인가? 라며 느끼는 불안감이 부모님들은 더 많거든요.

이런 것들에 대해 소통을 하면서 그렇지 않습니다 이렇게 하는 게 떨어지는 거 같지만 훨씬 더 주체성을 형성하기 때문에 잘 할 수 있다고 소통하면서 하는 거죠.

 

  • 1년 동안 어떤 교육을 받나요?

1년에 90명의 학생을 모집하는데, 이 학생들은 모두 4개의 기관으로 흩어져 교육을 받습니다. 은평구의 <혁신파크>, 영등포의 <하자>센터, 정독도서관 1층에 위치한 <민들레>와 오디세이 본부가 있는 종로에 <꿈틀>까지 4개가 있습니다. 그렇게 4곳으로 흩어져 25명 정도의 학생들과 교사 3명이 1년 동안 공동체를 이루어 생활하는 거예요. 기숙은 아닙니다.

교육 내용은 기관별로 조금씩 다르긴 한데요. 주로 글쓰기나 인문학 수업이 많고, 자치회의와 여행 기획활동, 예체능, 실용기술 등을 배웁니다. 국어, 영어, 수학, 한국사, 사회, 과학 등 보통교과 과정도 있구요.

계속 묻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 너 생각은 뭐냐? 묻고 학생들이 결정하게 합니다. 폭력이나 교내에서의 술, 담배는 규제하지만 나머지는 다 스스로 하게 합니다. 여행을 많이 가는데, 어디로 갈지 왜 가는지 숙소, 예산 짜는 것 등 모두 학생들 스스로 합니다.

수업이 학교에서만 이뤄지는 게 아니라 외부랑 많이 하니까 어른들을 많이 만납니다. 전태일 기념관도 가고 시민단체들도 만나고 계기마다 많은 분들을 만나니까 어른들이 우리를 억압하는 사람이 아니라 도와주는 사람들이구나 어른들에 대한 신뢰도 생기고 다양한 사람들이 많구나 꼭 입시 경쟁해서 이렇게만 살 게 아니구나 라는 걸 배우게 됩니다.

 

  • 2015년에 개교했으니 그 당시 고1이었던 학생들은 지금 고등학교를 졸업했을텐데 졸업생들이 오디세이학교의 교육 목표에 맞게 진로를 찾아 가는지 궁금합니다.

네 1기 학생들은 올해 대학을 가거나 재수를 하거나 대학을 안가고 다른 길을 가거나 하고 있습니다. 각자 자기 길을 가는데 1년의 기간들이 주체적으로 사는 데 도움이 많이 됐다고 합니다.

한 학생은 중 3때까지 공부를 잘 해서 자사고에 갔는데 너무 학교에서 불안감을 많이 조성하는 거에요. 몇 등안에 못 들면 인 서울 못 간다 이러니까 쉬는 시간마다 엄마한테 전화해서 힘들다고 하다가 오디세이에 왔어요. 여기 와서 많이 자유로워진거죠. 대학 안가고 여행 해보겠다고 해서 오디세이 마치고 1년 동안 여행도 다니고 검정고시 보고 논술 준비해서 철학과에 입학했어요. 얼마나 좋은 대학을 갔느냐보다 자기 삶에 대해 만족하며 살고 있어요.

어떤 학생은 일반학교로 돌아가서 반장선거를 하는데 자기도 나갔는데 선생님이 유도해서 공부 잘 하는 애가 반장이 된 거죠. 학교에 건의했는데 안 들어주니까 교육청에 민원을 넣어서 결국 재선거를 했어요. 불의한 것에 대해 목소리를 낼 줄 알게 된 거죠.

 

 

  • 좋은교사운동으로 더 많이 알려지셨는데, 교사운동을 통해 교육을 바꾸시겠다고 생각하신 이유와 운동의 성과와 한계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좋은교사운동이 95년에 창립했는데 창립하기 전에 92년부터 소모임을 했었어요. 그때부터 같이 했었고 2012년에 대표를 맡았다가 학교로 복직을 했습니다. 대표할 때는 휴직하고 상근해서 일하고, 끝나면 복직 하거든요. 좋은교사운동은 원래 여러 개의 기독교사모임이 연합한 모임이에요. 전신이 될 수 있는 모임이 아까 말씀드린 92년부터 시작된 기윤실 교사모임이에요.

군대 다녀와서 91년부터 본격적으로 교사를 했는데 고민이 많았었어요. 그때 만해도 촌지가 많았어요. 채택료도 있었고요. 기본적으로 학교 내에 불법적인 관행들이 많았는데 초임 교사가 그런 것을 거부하다보니 고민이 많았던 거죠.

예를 들면, 촌지 같은 경우는 개인이 결단하면 거부가 되는 거잖아요. 근데 학교 내에 육성회나 임원들이 있었는데 일종의 불법찬조금처럼 한 학급에서 5~10여명의 임원들한테 10만원, 20만원씩 돈을 걷어서 발전기금을 학교에 내는 겁니다. 발전기금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을 때니까 회계에 잡히지 않는 돈이죠. 초기에 제가 담임을 맡았는데 우리 반 애가 반장선거에 안 나가겠다는 거예요. 똘똘한 아이였는데 자기는 집이 가난해서 엄마가 학교에 기여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너가 반장이지 엄마가 반장이냐”며 나가라고 해서 그 아이가 됐어요. 근데 조금 있으니까 학급의 임원단을 구성해서 1인당 10만원씩 내라는 겁니다. 저는 못 하겠더라고요. 가난한 집 아이가 반장이 됐는데 어떻게 돈을 내라고 하냐, 이걸 걷는다는 게 말이 되냐며 안 걷었어요.

30학급이었는데 29학급에서 100만원씩 다 들어왔는데 우리반만 안 들어온 거에요. 교감선생님이 화가 난거죠. 뭐라고 하시고 저는 못하겠다고 했는데 결국 교감선생님이 직접 저희반 임원들한테 걷어가더라고요. 좌절했죠. 불법이고 불의인데 해서는 안 되는 일인데 내 한계도 느끼고 선배 교사들과의 관계에서의 한계도 있었고, 초임교사니까 아이들 지도하는데 있어도 미숙함이 많았고 고민이 정말 많았어요.

기윤실에서 당시에 촌지추방운동을 했었는데, 촌지추방도 하지만 촌지 외에도 학교 내에 많은 문제가 있고 각자 가지고 있는 고민들이 많은데 풀어보자고 소모임을 시작한 거죠. 모임하면서 교육의 문제도 결국 교사가 풀어야 되는 구나 내부에서 풀어야 될 문제가 너무 많고 우리가 스스로 결단만 해도 풀 수 있는 문제도 꽤 있고 스스로가 공부하거나 노력을 통해서 풀 수 있는 문제가 많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우리 스스로 풀 수 없는 문제들은 힘을 합쳐서 이슈도 제기하고 하자 그렇게 모임을 하다가 우리 힘만으로 힘드니까 같은 크리스찬 성격의 소모임들이 더 있었으니까 같이 서로 묶어서 좋은교사운동이 만들어진 거죠.

좋은교사운동 하면서 그동안 기독교사 모임이 서로를 돌보는 건 좋은데 교육계에 기여한 바가 없구나. 전교조 같은 경우는 만 명 이상의 교사들이 피를 흘리고 희생당하면서 민주화를 위해 싸워왔고 기여한 바가 있는데 우리 기독교사들 그룹은 서로 돌보고 이런 건 했지만 사회에 기여한 바가 없으니 교육계에도 기여를 하자 그러면서 조직을 만들고 했어요.

처음에 준비된 게 없으니까 잘 할 수 있는 거부터 하자해서 한 게 실천운동들이었어요. 촌지를 안 받는다든가, 아이들 가정방문을 통해서 아이들을 더 깊이 이해한다든가, 학급에서 제일 어려운 아이들을 돌본다든가, 수업평가를 자발적으로 받자든지 그런 기본적인 실천운동들을 먼저 쭉 했고, 하면서 교육계 내에서는 조금 인정을 받기 시작했어요. 이 단체는 기존의 전교조나 여타 단체들처럼 선명하게 제도개선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 나름 진정성을 가지고 하는 단체구나. 실력이 쌓이고 인지도도 쌓이고 하면서는 정책적인 대학입시 문제나 제도개혁 부분에서도 목소리를 냈구요.

 

  • 어떻게 교육자의 길을 걷게 되셨는지 궁금하고, 선생님의 교육철학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제가 80년대 학번인데 그때는 민주화운동이 많이 일어나던 시기잖아요. 저는 그런 운동권의 핵심이 있진 않았지만 그 시대를 살았기 때문에 아픔이 많이 있어요. 그때 했던 생각이 저는 신앙인이니까 우리 시대 모순의 핵심에 보내달라고 기도하고 고백도 했었는데

시대 모순의 핵심이 어딘지, 어떻게 하면 풀 수 있는 건지 20대 초중반 나이로 알기 어려웠는데 학교에 가서 아이들을 만나기 시작한 거에요. 아이들을 만나면서 느낀 게 아이들이 현재 가지고 있는 고민들이 있는데, 이 고민이 우리 시대의 문제를 다 안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우리시대가 양극화 문제가 있으면 애들은 그 나이에 맞게 빈부차를 느끼고 있고, 우리시대가 대학입시 문제가 크면 그 나이에 맞게끔 공부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이고 아이들도 우리시대가 안고 있는 문제를 다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아 이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이 우리 시대 모순의 핵심과 연결되는 거다! 여기에 헌신해서 이 아이들의 문제에 응답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살자 라고 생각했죠. 그때부터 교사라는 것은 아이들의 고통에 응답함으로서 우리 시대의 모순에 응답하는 것이라 생각했고 교사운동하고도 연결됐다고 볼 수 있죠.

일단 기본적으로 아이들에 대한 시각 자체가 한명 한명이 다 귀하다는 겁니다. 집에서는 다 귀하죠. 학교에 들어가는 순간 성적으로 한 줄로 세워야 되는 구조기 때문에 성적 외의 변수들은 가치가 없어져 버리는 게 문제에요. 아이들이 공부를 하는데 잘 알고 싶어서 공부하는 게 아니라 남들보다 앞서야 되기 때문에 공부해야 되는 게 문제죠. 어떻게 하면 한명 한명이 각자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 은사와 재능과 소명을 발견해주고 키워줄 수 있을까? 그게 교사인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 현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해서는 어떤 견해를 갖고 계신가요?

문재인 정부가 소위 말하는 적폐청산은 잘하고 있다고 봅니다. 국정교과서도 폐기한다든가 그 외 교육계 내 비리나 사립학교 비리 이런 걸 엄하게 하는 건 잘 하는데, 본질적인 개혁 있잖아요. 아이들을 입시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기 위해서 상대평가 체계를 절대평가 체계로 한다든가 이런 입시개혁이 사실 쉬운 건 아니죠. 그렇지만 이 정부는 그거에 대해서 전혀 안하려는 거 같아요.

이해는 돼요. 왜냐하면 남북관계 문제라든가 큰 문제를 풀어가다 보니까 국민의 지지를 얻고 그 문제를 풀어가야 하는데, 교육은 표 까먹는 정책이라는 생각을 하는 거 같아요. 수능 절대평가라든가 했을 때 국민 절반은 반대를 할 것이고 이게 굉장히 논쟁이 많은 주제거든요. 지금 공론화위원회에 올라가 있는데 그거 하나만 봐도 공론화위원회까지 맡긴다는 게 정부가 실제로는 의지가 없다고 보이는 거죠. 그냥 욕먹을까봐 아무 결정도 안하고 공론화위원회 맡겨 놓고 그것도 되게 축소해서 디테일한 걸 맡겨놓은 거거든요.

 

 

수능 절대평가는 아직도 논쟁이 많아요. 국민들 중에서도 절대평가하면 학생들이 자유로워지지만 대학입시에 교사들이나 대학의 정성평가가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불공정 요소가 생기는 게 아니냐고 해요.

수능 점수로 한 줄 세우기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교육적으로 절대평가가 맞다고 생각하면서도 개인의 주관이 많이 개입되는 점에 우려를 갖는 거죠. 그래서 기득권층이나 언론이 차라리 점수로 한 줄 세우는 게 공정하다는 논리를 많이 펴기도 해요.

이런 분들은 절대평가를 하면 이전처럼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없다’고 이야기를 해요. 보통 개천에서 용이 되신 분들이 이런 주장을 많이 하시죠. 그런데 사실 수능 점수 위주로 가게 되면 사교육 많이 하는 아이들이 유리해요. 냉정하게 데이터를 가지고 보게 되면 수능은 강남이나 특목고 아이들이 유리하다고 나와요. 결국 사교육 많이 하는 강남 아이들이 점수가 올라가거든요.

반면에 학종(학생부종합전형)으로 대표되는 수시제도는 다양한 요소로 학생을 평가하는 거에요. 다양한 요소의 역량을 키우려면 더 사교육비가 많이 든다고도 하지만 이 제도 때문에 시골에서도 서울대 가고, 학교 내에 동아리 활동 많이 하거나 내신이 좋은 학생들이 혜택을 받는 거예요. 학교교육이 다양화되는 면이 있습니다. 시험성적만이 아니라 학생회 활동이라든지 다양한 활동으로 학생을 보는 거죠. 이전에는 반장도 동아리도 공부한다고 다 안 하려고 했는데 지금은 하려고 하거든요. 이런 게 학종의 힘이죠. 물론 한계가 있고 완벽하진 않지만 큰 방향은 그쪽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의지가 청와대 쪽은 방향도 못 잡고 전문성도 없고 한 거 같아 아쉽습니다. 청와대에 교육 담당 비서관이 없잖아요. 사회문화수석이 다 하고 있는데 현재 김수현 사회문화수석은 부동산, 경제 전문가이시지 교육쪽 전문가는 아니시거든요.

진보교육감이 상당히 많이 됐지만 교육감이 할 수 있는 거는 초•중•고등학교 교육이지 대학입시부터는 교육감이 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이 사람들이 혁신학교를 하거나 초등학교 평가 제도를 바꾼다 이런 거는 할 수 있죠. 이 부분은 교육부가 해야 하는데 청와대의 의지가 없으니 교육부도 한계를 많이 느끼는 것 같더라고요.

 

  •  2007년에 가입해주셔서 10년 동안 꾸준히 경실련에 큰 힘이 돼주셔서 고맙습니다. 경실련 회원정보에 보면 추천인이 서포터즈라고 나오시는데, 어떤 인연으로 경실련 회원이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대학 시절 시대의 불의에 대한 아픔은 있었지만 학생 운동권의 운동 방식에는 다 동의를 할 수 없었어요. 물론 당시 군부독재의 억압적인 상황에서 그럴 수밖에 없었던 점은 이해를 하지요. 그런데 대학 졸업 후 군 복무를 하고 있던 중 1989년 본격적인 시민운동단체인 경실련 창립 소식을 들었어요. 제가 정말 원하던 방식의 사회개혁운동이었기에 1990년 제대하자마자 바로 가입을 했습니다. 경실련 주최 모임에도 함께 하고 경실련 내 교사모임을 만들려고 시도를 하는 등 10년 정도 꽤 적극적으로 활동했습니다. 그런데 경실련 임원들이 정치권에 많이 진출하면서 정치권과의 경계가 흐려지고 내부 노선 갈등이 심해지면서 탈퇴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경실련이 아파트 원가 공개 문제 등 경제적인 정의를 위해 꾸준히 목소리를 내는 것을 보면서 그래도 여기에 힘을 싣는 것이 맞다는 생각에서 2007년에 다시 가입을 해서 지금까지 오고 있습니다.

 

  • 경실련이 내년이면 30주년을 맞습니다. 경실련에 한 말씀 해주세요.

경실련이 원래 창립정신인 ‘경제정의’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봅니다. 사실 30년과 비교하면 정치적 민주화는 많이 진전되었지만 경제적인 민주화는 더 퇴보를 했잖아요. 지금 양극화 문제는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모순이라고 봐요. 그래서 경실련이 경제정의 혹은 경제민주화 관련해서 지금보다 훨씬 더 적극적이고 급진적으로 싸워야 한다고 봐요. 그렇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을 수도 있을 거라고 봐요.

 

교사로서의 소명으로 시대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교육 현장에서 작은 것부터 실천하는 행동이 귀감이 됩니다. 대학입시 교육정책에 대해서도 명쾌하게 이야기해주셔서 그동안 헷갈렸던 수능개편안에 대한 주장들에 대해서도 선명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학생들이 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안고 살아가는 존재라는 말씀이 마음에 남습니다. 다음 세대들이 입시라는 고통에서 벗어나 배움과 삶의 주체로 당당히 서 가는 움직임들이 곳곳에서 꿈틀꿈틀 일어나길 기대합니다.

 

화, 2018/07/31-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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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실련 본부에 지역팀이 생겼어요!!!

 

노건형 지역지원팀장

[email protected]

 

나는 누구인가?

저는 1996년 10월 경실련에 채용되어 2달간의 연수를 거친 후 수원경실련 간사로 경실련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당시, 수원경실련이 사무국을 맡았던 ‘수원 로컬아젠다21’ 간사를 시작으로 부설 연구소인 사)경기지역사회경제연구소 연구원 활동을 했습니다. 이후로는 경실련 사무국에서 활동하여 부장, 사무국장, 경실련 경기도협의회 사무처장을 거쳐 2018년 중앙에 새로이 만들어진 부서인 지역팀장으로 4월부터 상근하고 있습니다. 담당하고 있는 일은 조직위원회와 지역경실련협의회 운영위원회 활동 및 지역 지원 활동입니다.

 

지역 경실련, 왜 만들어 졌나?

경실련 가족분들이면 많이 아시다시피, 경실련은 ‘땀흘려 일하는 사람이 대접받는 사회’를 지향하여 경제정의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경실련은 부동산투기 및 불로소득 문제를 해소하기 위하여 경제정의운동을 시작하였으며, 지금도 많이 알려진 ‘금융실명제’와 ‘토지공개념’이란 대안을 한국사회에 제시하였습니다. 경제파트와 부동산파트가 여전히 경실련의 핵심운동파트로 진행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지역경실련을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역사회에서의 경제정의를 이루기 위해서일까요? 현재 약 25개 지역에 지역경실련이 있으며, 많은 지역경실련의 창립이 90년대 중, 후반에 이루어 졌습니다. 이는 당시 지방자치의 부활에 맞춰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지방자치의 확대와 발전을 위해 지역운동이 필요하다는 판단과 내부적으로는 경실련운동의 확장을 도모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경실련이 우리사회에 최초의 본격적인 시민운동을 제시했다면, 지역경실련 창립과 활동은 지역운동의 시초였다고 생각됩니다.

 

지역 경실련의 역할, 지역협의회의 탄생

초기 지역경실련은 주로, 지방정부와 지방의회 감시 및 견제, 환경운동, 지방선거 및 해당 지역 현안의 대응, 공명선거협의회 활동 등을 활발히 진행해 왔습니다. 지방정부를 감시하는 지역운동의 모델을 제시하였다고 생각합니다.

한때 군(軍)보다 우리사회의 영향력이 컸던 경실련은 96년 하반기에 ‘현철이 테이프 사건’을 시작으로 ‘간장 파동’, ‘대필사건’ 및 ‘백화점식 시민운동’ 등 언론과 여론의 많은 질타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잊을 만하면 계속적으로 터져 나오는 문제로 인해 환경개발센터 등 부문조직의 독립, 많은 활동가 이탈, 청년회 및 대학생회 해체 등 조직적으로 힘든 시기를 겪게 됩니다.

조직 내부에서는 이러한 사태의 가장 큰 원인을 조직민주화 및 의사결정구조라고 판단하였으나, 발런티어나 부장, 간사들의 의견은 실, 국장들의 의견을 넘기 힘들었습니다. 이후 지역경실련들이 한목소리를 내기 시작하게 됩니다. 1년 동안 중앙과 지역 간의 갈등 속에서 지역경실련 협의회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중앙경실련을 바로 세우기 위한 지역경실련의 활동과정에서 지역경실련협의회가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역경실련의 성과

중앙경실련이 우리사회에 합법준수, 대안제시, 정책제안, 제도개선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운동을 가져왔다면, 지역경실련은 지방자치 정착 및 확대, 지역현안 대응 및 주민과 함께하는, 피부에 와 닿는, 현장에서의 지역사회 운동을 펼치게 됩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으로는 지방선거 대응 ‘우리사회, 이렇게 바꾸자’ 정책자료집 발간과 대한민국 최초의 예산운동인 ‘예산감시네트워크’ 활동과 IMF 시기 전국 경실련이 함께 한 ‘실업극복 국민운동본부’ 활동 등이 기억에 남습니다.

 

현재, 지역경실련은 소임을 다하고 있는가?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다만, 어렵다는 것은 압니다. 지역경실련 뿐만 아니라 한국사회 전체 시민운동의 어려운 상황과 궤를 같이한다고 생각됩니다. 오히려 어려운 여건에서도 꿋꿋이 버티고 계신 분들께 고맙다는 마음도 갖고 있습니다. 규약 상 지역경실련의 목적은 ‘지역사회의 경제정의, 사회정의를 이루기 위한 평화적 시민운동을 한다’라고 모호하게 정의되어 있습니다. 각 지역경실련의 활동이 해당 지역사회의 경제정의, 사회정의를 이루기 위한 활동인지 자체적으로 판단하여야 할 시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다만, 지역경실련의 존재 이유가 상근자들을 먹여 살리기 위한 조직은 아닐 것입니다. 또한, 특정 개인(공동대표 또는 집행위원장, 사무처장 등)을 지원하기 위한 조직도 아닙니다. 지역에서 각자 자기지역의 활동을 되돌아 봐야할 시점이 아닌 가 생각됩니다.

 

지역에 경실련 운동을 지속적으로 뿌리를 내리기 위한 과제

건강한 시민운동을 펼쳐야 할 것이며, 안정적으로 시민운동을 펼칠 수 있는 구조를 갖춰야 할 것입니다. 객관적 지표라 할 수 있는 회원수와 월 회비액수를 볼 때 대부분의 지역경실련, 특히 기초 지역경실련의 경우 매우 상황이 어려움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는 타 지역 경실련 사례들을 공유하여 함께 극복해야 할 과제라고 봅니다.

둘째로 경실련에 맞는 운동을 펼쳐야 할 것입니다. 평균적으로 20여년의 활동을 하면서 각 지역마다 많은 인적 교체가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나 인적 자원의 교체이후 경실련 운동 및 정체성에 대한 이해가 전달되지 못해 힘들어 하는 지역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꾸준한 정체성 교육과 더불어 조직 구성원 각자의 역할을 명확히 이해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마지막으로 지역운동과제의 재정립과 향후 운동과제 발굴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급격히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추어 현재의 활동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운동 컨텐츠를 끊임없이 발굴하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일들을 대부분 1인 상근자 구조를 갖춘 지역경실련 혼자서 하기 힘들기에 지역팀이 만들어 졌다고 생각합니다. 저 혼자 무슨 잘난 능력이 있어서 이런 과제들을 다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우선은 함께 고민하는 장들을 마련하는데 주안을 두도록 하겠습니다. 차근차근 진행하되 꾸준이 하도록 하겠습니다.

 

금, 2018/06/01-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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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동 이야기] 고양이 책방 슈뢰딩거

 

정리: 윤은주 회원팀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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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이음, 학림다방에 이어 혜화동 이야기 세 번째 이야기는 낙산공원 올라가는 길에 있는 예쁜 고양이책방 ‘슈뢰딩거’입니다. 요즘 어딜 가나 길고양이들을 많이 만나실 텐데, 경실련 주변에도 길고양이들이 참 많습니다. 귀엽기도 하고, 때로는 안쓰럽기도 한데, 우리 주변의 고양이들과 어떻게 평화롭게 공존하며 살 수 있을까? 고민하며 김미정 책방지기를 만나 책방과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 나눴습니다.

 

 

어떻게 이런 고양이 책방을 열게 되셨나요?

책 관련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어렸을 때부터 했었어요. 엄마가 시인이시고, 초등학교 1학년때 담임선생님이 동화작가셨어요.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막연하게 있었는데 엄마 따라서 도서관 다니다 보니까 사서가 되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문헌정보학과에 진학을 했는데, 사서가 되지는 못했어요.

어쨌든 책과 관련된 일은 계속 하고는 싶은데 그건 잘 안 됐고, 그러면 제가 저를 고용하는 수밖에 없겠더라구요. 고양이 도서관을 만들까 했는데, 그건 지속가능하지 않을 것 같았어요. 그걸로 수익모델을 찾기는 힘들 거 같더라구요.

책방 열 당시는 직장 다니다 그만둔 지 2년 정도 됐을 때였어요. 사서를 꿈꾸며 법학전문사서, 의학전문사서처럼 주제전문 사서가 되고 싶었어요. 어떤 특정주제에서 지식서비스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제일 좋아하는 주제가 고양이였기 때문에 그때 고양이 두 마리 키우고 있었어요. 지금은 4마리가 됐어요. 주제전문 서점이라고 하면서 제가 모르는 분야를 할 수 없잖아요. 제가 고양이 전문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제가 실제로 경험해 본 것 중 하나 고양이고, 좋아하기도 해서 고양이를 주제로 열게 됐어요.

 

책방이름 슈뢰딩거는 어떻게 지으신 건가요?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시작은 물리학에서 나왔지만 문화 전반에 전유돼서 쓰이고 있어요. 모순된 것이 중첩된 상태(죽은 것도 아니고 산 것도 아니다!?)가 재미있기도 하더라고요. 강아지서점 이름이 파블로프인 것과 비슷한 거죠.

사실 슈뢰딩거의 사고실험 자체가 고양이 친화적이진 않잖아요. 고양이 서점의 이름이 슈뢰딩거라 함은 약간 좀 아이러니 하면서도 재미있을 수 있겠다 싶었어요.

이 책방 안에 당신이 원하는 게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당신이 찾던 것의 존재 이유는 문을 여는 순간 정해지는데, 여기에 당신이 원하는 게 여기 원래 있었는지 없었는지 알 수 없다는 식이죠. 당신이 찾는 게 여기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지만 나가실 때 당신의 고양이 한 마리는 마음속에 품고 가기 바란다는 마음으로 지었어요.

 

책방 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하고 계신 거 같아요. 소개 부탁드립니다.

처음 시작은 신설동에서 했는데, 대학로로 옮기고 나서는 작게 카페운영도 시작했어요. 매니저가 대학동기인데 커피를 잘 내려요. 그밖에 고양이를 소재로 온갖 활동들을 하고 있어요. 그림그리기 클래스도 있고, 고양이 사진 잘 찍기, 글쓰기 수업도 있고, 펠트공예 수업도 있어요. 보통은 SNS 홍보 보시고 신청하고 오세요. 동물단체들에는 프로그램을 같이 진행할 여력은 없어서 정기후원을 하거나 비정기적인 활동으로 여기 수익금을 기부한다든지 하고 있어요.

 

 

고양이라는 주제가 색다르기는 하지만, 어쨌든 이것도 창업인데, 창업이야기도 해주세요. 요즘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나 경험담 들려주시면 좋을 거 같아요.

일단은 서점일은 추천할 만한 업종은 아닌 것 같아요. ^^; 서점은 일반 자영업자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어려움을 다 가지고 있고 거기다 플러스 서점만의 힘듦이 또 있어요. 그래서 제가 이야기하기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창업으로 서점은 권하지 않아요. 저희 서점은 비교적 나은 편이지만 최저임금도 못 버는 경우가 많거든요. 사람들이 책의 가치를 많이 알아주지 않는 것도 아쉬워요. 책 한권에는 저자가 몇 달 혹은 몇 년에 걸쳐 공부하고 고민한 정수가 있죠. 내가 책을 구매한다면 그 사람의 몇 년에 걸친 공부를 시행착오 없이 가져오는 건데, 그것도 영구소장 한다고 생각하면 책이라는 것은 돈을 지불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책방창업이 이렇게 어려운데 슈뢰딩거는 어떻게 운영하고 계시나요?

여기가 살아남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오시는 분들이 여기서 구매해주시고, 공간에 대한 애정으로 여기 나오셔서 책도 보고 가시고 구매해주셔서 운영되고 있다고 봐요. 여기의 강점은 다른 인터넷 서점과 달리 오프공간이 있는 거잖아요. 단순히 책을 구매하는 곳이 아니고 고양이로 가득찬 공간에서 책을 본다는 경험 자체가 저희 컨텐츠에요. 여기에서 책을 보시는 거 자체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카페도 식음료서비스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 이상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잖아요. 책방도 책을 유통하는 소매업이라고 등록은 되어 있지만 컨텐츠사업, 지식서비스 제공자라는 마인드가 있어야 지속할 수 있는 거 같아요. 작은 책방을 창업으로 염두하고 계신 분들은 서점은 돈이 되지 않는다는 거랑 서적유통업 그 이상의 것으로 생각을 하셔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일본원서 고양이책 찾는 분들이 계셔서 일본책들도 판매하고 있어요. 일본은 우리나라에 비해서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고 컨텐츠 강국이잖아요. 컨텐츠에 돈을 많이 쓰기도 하고, 고양이를 진짜 좋아하는 나라다 보니 고양이책이 쏟아져 나와요. 기획력도 좋구요. 사진책은 화질과 재질이 되게 중요한데 일본책들은 퀄리티가 괜찮은 책들이 많아요.

처음에 인터넷 서점만 보고 원서 구입하다가 실패를 많이 해서 그 다음부터는 아예 3-4달에 한번 정도 일본에 가서 직접 실물보고 체크해서 캐리어에 담아 직접 가지고 들어오고 있어요.

 

왜 대학로에 열게 되셨나요?

대학로로 계속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게 공연을 보러 오시는 분들은 컨텐츠에 소비를 하겠다는 분들이시잖아요. 공연을 보러 오는 사람이라면 여기 컨텐츠 가치를 알아줄 거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리고도 원래 이 동네를 좋아해서 항상 대학로 쪽에 하고 싶었어요. 처음 오픈한 건 2016년이었는데, 이걸 하겠다고 마음먹은 건 2015년 9월이었어요. 그 해 10월에 혜화로터리 쪽에 계약을 했었는데, 물이 새고 역류하는 바람에 돈도 좀 까먹고 시간도 날리고 했었지요. 한번 좌절을 겪고 집 근처 가까운 데서 빨리 열어보자고 해서 신설동에서 열었던 거예요. 근데, 손님들한테도 너무 미안하더라고요. 이태원이나 홍대에 있는 서점 같은 경우에는 온 김에 다른 데도 둘러보고 가는데 그때 그 동네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진짜 시장통 한가운데 오로지 저희 서점 하나만 보고 오시는 거거든요. 손님들한테도 미안하고 접근성도 너무 떨어졌었죠.

 

 

언제부터 고양이를 좋아하게 되셨나요?

저도 원래는 고양이 무서워했었어요. 밤에 고양이 마주치면 도망가고 그랬어요. 개, 고양이, 소, 닭, 비둘기 다 무서워했어요. 근데 성인되고 귀여운 짤(사진, 동영상)들 보면서 친근감이 생겼던 거 같고, 친구가 고양이 키우는 거 보면서 관심을 갖게 됐어요. 그러다 제가 키우게 됐는데 제 고양이가 예쁘니까 밖에 고양이들이 불쌍해지더라구요.

동물원도 많이 갔었어요. 데이트 하거나 해외여행가도 꼭 동물원 가고 그랬는데, 고양이 키우면서는 못 가겠는 거예요.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가족과 주변 사람을 아끼는 마음에서 계속 밖으로 나가는 거잖아요. 동물한테도 적용되는 거 같아요.

 

주변에서 많이 만나는 길고양이들을 어떻게 대하면 좋을까요?

고양이는 먼저 건드리지 않으면 공격하지 않죠. 고양이는 기본적으로 겁이 굉장히 많은 동물이거든요. 영역동물이고 밖에 안 나가려고 해요.

캣맘, 캣대디들이 밥을 주시는데, 밥 주고 TNR(중성화 사업)까지 해야 제일 좋아요. 발정기 오면 영역싸움하느라 소리를 많이 내거든요. 그리고 쓰레기 찢는다고 싫어하는 분들도 많은데 배가 고파서 그래요. 걔네도 밥이 있고 배가 부르면 쓰레기 봉지 찢을 일이 없거든요. 한 켠에 오히려 밥 내주시면 쓰레기봉투 뒤지거나 찢지 않아요.

2000년 초반인가 종로구에서 길고양이를 살처분한 적이 있었어요. 그리고 나서 종로구에 쥐가 들끓은 거에요. 나중에 다시 길고양이 생겨나면서 쥐가 없어졌다고 들었어요. 도시가 사람만의 것도 아니고요. 작은 공간하나와 밥 한끼 내줄 여유가 있으면 좋겠고, 예뻐해주실 건 없지만 괴롭히지는 말자는 그런 말씀 드리고 싶어요

길고양이 관련해서는 제가 여러 이야기 하는 것보다 책을 하나 추천해 드릴게요. 한국고양이보호협회와 이용한 작가님이 쓰신 <길고양이 안내서>라는 책이에요. 길고양이에 대해 참고할 만한 모든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책방 운영하시면서 제일 보람을 느끼실 때와 제일 힘들 때는 언제입니까?

좋을 때는 사람들이 오셔서 좋아할 때, ‘예쁘다 귀엽다 여기서 살고 싶다’ 하시면 보람을 느껴요. 고양이 키우며 이러 이러한 상황인데, 책 좀 추천해줄 수 있냐고 조언을 구해오시면 거기에 맞는 책을 추천해줄 때 가장 보람을 느껴요. 저는 고양이를 잘 모르고 키워서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지만 그분들은 여기 와서 저한테 물어보고 제대로 된 정보를 가져가서 저 같은 시행착오를 안 겪으실 거 아니에요. 그게 반려인 뿐 아니라 반려동물에게도 좋은 거잖아요.

조금 힘들거나 맥 빠질 때는 오셔가지고 이것저것 다 물어보시고 책 목록 추천 잔뜩 받고서 그냥 가버리시는 경우에요. 예의상 1권은 사줄 것이라 기대했는데 제 노동력이라든지 제가 가지고 있던 여기에 대한 지식이라든지 그런 가치는 조금도 생각 안하는 것 같아서 힘이 빠져요.

 

새 정부가 유기견 토리를 입양해 화제가 되기도 했었고, 동물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고 보이는데, 앞으로 제도적으로 개선돼야 할 부분들은 어떤 게 있을까요?

저도 법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제일 근본적인 것은 법에서 지금 동물을 사물로 취급하는데, 동물에게 제3의 지위를 주는 게 제일 중요할 거 같아요.

지난번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개헌안에 아직 조금 미흡하긴 하지만 그래도 굉장히 발전된 안이 있었어요. 조금 아쉬운 면도 있지만 동물의 법적 지위를 보장하는 게 있었거든요. 그래서 꼭 통과됐으면 좋겠다 했는데 국회에서 저러고 있는 거죠. 국회에 화가 많이 났어요. 100%는 아니지만 동물에게 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안이 있다는 거 자체가 굉장히 고무적이었어요. 개헌이 빨리 됐으면 좋겠습니다.

 

저희 주변에 이런 재밌고 의미 있는 곳들이 있다는 게 새삼 신기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합니다. 한 번에 많은 것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날씨 좋은 날, 대학로로 봄나들이 오셔서 고양이 책방 ‘슈뢰딩거’에서 동물감수성을 키워보세요!

금, 2018/06/01-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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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주년을 바라보다] 김성훈 공동대표

 

정리: 윤은주 회원팀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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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실련이 내년이면 30주년을 맞이합니다. 올해부터 30주년을 준비하며 그간의 경실련 활동을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아가려고 합니다. 30주년을 바라보며 경실련이 만나야 할 분들을 한분씩 찾아뵙고 인터뷰를 통해 그 내용을 담아보려 합니다. 첫 번째 인터뷰로 1989년 창립 당시 함께 하셨고 토지공개념, 재벌개혁, 농업개혁, 통일운동을 활발히 하시고 최근에는 소비자정의센터에서 반GMO운동을 열심히 하고 계시는 김성훈 前공동대표를 만났습니다.

 

 

1. 경실련 창립 당시 이야기를 조금 해주신다면?

89년 당시 사람들이 지금은 경실련에 하나도 안 남아있는 거 같아요.

7월에 발족해서 11월에 정식으로 사회적으로 선포하고 선언하고 시작했어요. 저도 7월에는 없었고, 11월부터 함께 했어요. 종로5가 다락방 시절 그때 생각하니 교수였어도 참 순진했었어요. 활동가들하고도 완전히 동지애, 아버지와 아들같은 사이로 지냈지요.

경실련은 크게 토지공개념과 금융실명제라는 두 뼈로 시작했어요. 많은 성과도 있었지만 지금 사회를 보면 후퇴하거나 모자란 부분도 많이 보입니다.

 

2. 말씀 꺼내주신 김에 경실련의 30년을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토지공개념이 안 되는 바람에 농지가 다시 부동산 투기의 대상이 됐어요. 부재의 지주, 도시자본 투기자본의 먹이가 됐어요. 경실련 30년 동안에 금융실명제, 한국은행 독립이 이뤄졌지만 재벌개혁은 이제는 삼성공화국, 현대공화국으로 발전했어요. 더 나빠졌어요. 전형적인 예가 이재용 부회장을 무죄 석방한 부장판사에요. 다 삼성장학생이에요. 삼성장학생이 아닌 정부관리, 삼성장학생이 아닌 사법부 판검사, 삼성장학생이 아닌 교수, 학자들이 없을 정도에요.

그 당시 내세웠던 주택임대차보호법 계약기간 2년으로 늘린 것과 한국은행이 나름대로 그래도 독립성 한 것은 잘했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 외에는 아직 많이 부족해요. 경실련 모토가 일한만큼 대접받자인데 노동자, 농민들은 대접을 못 받고 재벌들 돈 있는 기득권층만 이익을 다 가져가고 있어요.

토지공개념은 오히려 1949년 농지개혁 당시처럼 소작화가 만연해졌어요. 헌법에도 경자유전 원칙으로 하고 소작은 금지했는데 위장된 소작이 지금 지배하고 있고, 농지의 반 이상은 소작이고, 이름이야 임차농, 위탁경영 바뀌어있지만 눈감고 아웅하는 거죠. 경실련이 더 치밀하지 못했다고 봐요.

지금의 대한민국은 민주주의(Democracy)가 아니라, 코포라토크라시(Corporatocracy) 대기업 자본주의 세상이에요. 경실련도 자유롭지 못해요. 코포라토크라시에서 경실련이 살아남은 데는 성공했어도 경실련의 출발인 소위 시대정신을 실현시키는데는 조족지혈(鳥足之血)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요.

 

3. 어떻게 시민운동을 시작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태어나서 앞으로 죽을 때까지 농(農)하고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사람이에요. 중학교 3학년때부터 농촌을 살리고 농민을 살리는 것에 관심을 가졌어요. 농촌을 살린다, 농민을 살린다는 것은 약한 사람을, 취약한 산업을 살리자는 것이에요. 항상 약한 생명이 있는 곳, 농(農)은 바로 생(生)이에요. 생명이 있는 곳, 취약한 곳, 취약한 지역, 취약한 산업, 취약한 사람들을 돕고 그분들에게 새 빛과 새 얼(정신)을 심어주고 하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경실련 참여하기 전에는 우리농업지키기운동을 했었어요.

그 당시 우리나라 농업지키기운동에서 우루과이라운드에 위기감을 느끼고 농촌, 농민운동 살리자고 전국단위로 시작할 때 경실련이 생긴 거예요. 그래서 경실련에서 농업개혁위원회라는 걸 만들어서 반 우루과이라운드 투쟁, 우리농업지키기 운동을 시작했어요.

그리고 남북한 통일은 서로 자주 만나고 서로 주고받아야 한다 해서 경실련에 통일협회가 생겼죠. 통일협회에서 창립을 도와줬던 우리민족서로돕기 차원에서 북한을 12번 갔었어요. 북한에서 농사 실험도 했죠. 그렇게 열정적으로 하다 보니 대표 하라고 해서 공동대표도 했었어요.

 

 

4. 김대중 정부 때 농림부 장관을 26개월 하셨었는데, 시민운동할 때와 어떤 점이 다르셨나요?

시민운동하면서 언론에 매일 나오니까 김대중 대통령이 유심히 봤던 모양이에요. 그때 중앙대학교 안성캠퍼스 총장 할 때인데, 장관으로 임명됐다는 전화 받고 서울로 올라갔어요. 무슨 장관인줄도 모르고 올라가서 임명장 받고 농림부장관인 줄 알았어요.

가서 저는 시민운동을 그대로 했어요. 한 건 똑같지만 훨씬 편해요. 예산 있지, 직원들 무조건 명령 따르지… 경실련에서 할 때는 일일이 설득해야 하고 반대하는 집단들 만나서 설득하고, 돈도 이곳 저곳 얻으러 다녀야 하는데, 악만 제대로 쓰면 기재부에서 예산 따다 하니까 경실련 대표보다 몇 배 쉽더라고요.

가서 협동조합 개혁, 농조개혁(수세폐지), 유기농 원년 선포, 농촌 정보화 등 네 가지 일을 끝내고 나서는 사직서 내고 나왔어요. 벼슬자리에 나아갈 때는 그만둘 때를 대비해야 한다고 하잖아요. 저는 제 할 일 하고 끝났다 생각해서 물러나고 바로 캐나다로 갔었지요. 2년 6개월간 경실련에서 파견한 장관이라고 생각하고 일했어요.

 

5. 북한 다녀오신 이야기와 통일운동 이야기 조금 더 듣고 싶습니다.

북한도 우리랑 똑같은 사람이에요. 같은 역사, 같은 문화, 같은 언어를 가지고 있어요. 나라마다 자기나라 체제가 있고, 다름은 인정해야죠. 왜 꼭 대한민국같은 신자유주의 자본가가 지배하는 이런 자본주의가 돼야 한다는 법이 없거든요. 자본주의도 결함투성인데, 체제의 다름만 인정해주자는 거예요.

체제의 다름만 인정하고, 서로 교류와 협력을 하면 우리에게 이익이 되고, 북에도 이익이 되는 일부터 하자는 거예요. 예컨대, 북한의 바닷가들이 우리보다 덜 오염 됐거든요. 거기에 우리 자본과 기술로 양식장 만들어서 해외나가서 팔건 우리 시장에 팔건 해서 이익금을 반반 나눠 갖는 거죠. 우리나라 메밀 부족해서 수입해 먹거든요, 북한에 메밀 심어주고 수확해서 이익 나눠갖자는 거예요. 우리나라 돼지새끼들 가져가서 거기서 키워서 나눈다든지 먼저 서로 이익이 되는 일부터 하자는 것이고, 두 번째는 북에 이익이 되고 우리는 손해가 없는 것을 해서 신뢰를 쌓아야 해요. 우리는 남아도는 식량과 비료, 부족한 북한에 나눠주면 됩니다.

금강산에 내가 심은 나무, 개성공단에 심은 나무들, 지금쯤 많이 자랐을텐데 죽기 전에 그거 보는 게 소원이에요. 금강산 열리기만 하면 첫 번째로 갈려고 해요.

 

6. 최근 근황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책을 쓰고 있어요. ‘밥이 민주주의다’ 우리가 삼시세끼 먹는 밥이 완전히 다국적 상업자본의 먹이가 돼가지고 안전한 먹거리가 아니라 유전자를 조작한 GMO라든가 유해색소나 유해첨가물이 들어간 입에 달콤한 눈에 보기 좋은 음식이 우리의 신체를 좀 먹고 있어가지고 병들어가게 하고 있어요.

우리나라 기업이 식품산업협회라는 데가 식약처가 GMO보급의 선봉에 서서 GMO보급의 앞잡이가 되어 있어요. 생산자가 ‘내 것은 GMO가 아닙니다’ 하는 표시하면 잡아가도록 하고 있어요. 제품이 GMO가 들어있다고 하는 완전표시제를 못하게 하는 것까지 좋은데 ‘내 것은 GMO가 아닙니다’는 표시도 못하게 하는 법이 어디있냐고요. 내가 생산한 콩, 두부, GMO가 안 들어갔습니다 해서 잡혀간 사례가 있어요.

일찍이 세종대왕도 “식위민천(食爲民天)” 밥은 백성의 하늘이라고 했어요. 지금은 먹거리에 뭐가 들어있는가도 모르고 있는데, 이것만 제대로 고쳐도 우리나라가 민주주의다. 따라서 밥이 민주주의라는 거예요.

 

7. 마지막으로 경실련이 앞으로 꼭 해야 할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그리고 경실련 30주년을 바라보며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토지공개념 확립하는 일과, 재벌개혁, 경제민주화를 실천하는 일은 영원히 경실련이 풀어야할 과제라고 생각해요. 경실련이 출범했던 당위성, 이유가 지금도 계속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누가할 것이냐? 점점 돈과 권력의 장학생이 되어가는 전문가들에게 의존하지 말고, 상근활동가들이 전문가가 돼서 이제는 전문가들을 이끌고 나갔으면 좋겠어요.

경실련은 재창립선언을 해야 한다고 봐요. 경실련이 출발했을 때 시대상황이 결코 더 나아지지 않았거든요. 경실련이 초심을 다시 살려서 재창립 선언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어요. 30주년을 맞아 경실련이 재창립한다는 정신으로 재창립 선언이 나오는 그런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월, 2018/04/09-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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