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통치의 화려한 선전장, 조선물산공진회 – 공진회회장 경복궁 그림
미리보는 ‘식민지역사박물관’


공진회회장 경복궁 그림 共進會會場景福宮之圖, 54.2×79, 1915. 조선을 강점한 후 5년 동안 조선을 통치한 실적을 대내외에 선전하기 위해 개최된 조선물산공진회. 경복궁을 헐어내고 물산공진회장으로 개조한 전경이 그대로 드러난다.
무력으로 조선을 강점한 일제는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몽매한 조선을 근대화시켰다는 선전활동을 벌였다. 홍보영화나 가요, 라디오방송, 어용신문인 매일신보를 통해 조선총독부의 시정施政을 앞 다투어 홍보했는데, 박람회도 마찬가지로 조선의 발전상을 보여준다는 명목 아래 개최한 전시성 이벤트였다. 이러한 전시행사는 품평회, 물산회, 공진회, 박람회 등 다양한 명칭으로 수시로 개최되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시정5년기념 조선물산공진회(1915), 조선부업품공진회(1923), 조선박람회(1929), 신흥만몽박람회(1932), 조선대박람회(1940) 등을 꼽을 수 있다.
‘조선물산공진회’는 최초의 공식 박람회로서 일제가 조선을 강제병합한 지 5년째 되는 해인 1915년 9월 1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약 50일간 개최되었고, 전시장소는 조선왕조 통치의 핵심공간인 ‘경복궁’이었다. 조선총독부는 조선물산공진회를 빌미로 근정전을 비롯한 주요 전각 몇 군데만 남기고 무수한 건물들을 헐어냈다. 바로 그 자리에 1926년 조선총독부 신청사가 들어서게 되니 공진회장을 경복궁으로 선정한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조선물산공진회는 각도의 물산품을 전시하여 시정 이래 발전한 조선의 모습을 대내외에 널리 알리는 목적과 아울러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조선을 일본에 홍보하여 일본 기업과 일본인들을 조선으로 유치하고자 하는 이른바 ‘식민植民’의 선전장이었다. 주요 전시관은 제1진열관, 제2진열관, 미술관, 기계관, 근정전 회곽廻廓, 철도국 별관 등이며 전시물로는 각종 산업에 관한 물품을 망라하고 외국품도 조선의 산업상 필요하다 인정하는 물품을 출품하는데 각 부류를 통틀어 4,665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공진회장으로 사용하는 건물이 무려 5,226평이며 경회루에 매점과 음식점을 만들고 야간에도 개장하여 관람객의 입장을 자유롭게 하여 ‘경복궁’을 유흥 장소로 사용하였다. 더구나 경복궁 내에 가건물 축사를 지어 소, 닭, 돼지까지 전시하였으니 한 나라의 지엄한 공간이었던 경복궁이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일제는 의도적으로 경복궁을 전시장으로 선택하여 훼손함으로써 조선의 정통성과 존엄성을 부정하는 효과를 거두었다. 조선총독부는 심지어 공진회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철거된 기존의 전각들을 민간에 불하해버려 왕궁의 건축물들이 돈 많은 부호들에게 넘겨지거나 혹은 일본으로 건너가 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이밖에 총독부의 통제 아래 있던 여러 신문사와 관변단체를 동원하여 조선부업품공진회(1923, 조선농회), 조선가금공진회(1925, 조선축산협회), 조선박람회(1926, 조선신문사), 조선산업박람회(1927, 경성일일신문사), 조선산업박람회(1935, 조선신문사)를 잇달아 열었다. 만주사변 도발 이후 만주개척의 꿈을 조장한 신흥만몽박람회(1932, 경성일보사)와 중일전쟁 이후 ‘대동아공영권’이라는 허상을 심어주기 위한 조선대박람회(1940, 경성일보사)는 박람회의 목적이 점차 산업·경제적인 측면에서 정치·군사적인 곳을 향해 나아갔음을 보여준다.
박람회는 일정한 배치방법에 따라 진열하고 그것들을 상호 비교하여 관람객들로 하여금 그 우열을 가르게 하고, 시정의 성과를 각종 도표와 지도와 사진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이렇듯 각종 박람회는 조선총독부 시정의 무단성과 억압성을 배제한 채, 단지 성과만을 수치화·통계화하여 그들의 업적을 미화하는 선전장이자 조선 민중을 현혹하는 근대적 이벤트로서 기능하였던 것이다.
• 강동민 자료팀장

피해자들의 목소리로 일본의 산업유산 시설이 지워버린 강제동원·강제노동의 역사를 ‘증언’하는 기획전 <피해자의 목소리를 기억하라! 강제동원의 역사를 전시하라>가 7월 16일(금)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개막했다. 이번 전시는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과 공동으로 주최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특히 하시마 강제동원 피해자인 서정우 씨, 이경운·이지창 씨의 증언영상과 연합군 포로수용소의 강제노동실태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공개되는 자료들이다. 수십 년간 이 문제에 천착해온 일본 시민단체 POW연구회와 오카 마사하루 기념 나가사키평화자료관의 협력으로 공개가 가능했다. 제2부 ‘강제동원의 역사를 전시하라’에서는 유네스코 일본 산업유산의 등재 논란과 현재 강제동원·강제노동의 역사를 부정하는 산업유산정보센터의 문제점을 다루었다. 특히, 제2부는 2015년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가 열린 독일 본에서 일본 산업유산 전시(戰時) 강제노동의 어두운 역사를 세계유산위원들에게 알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부정적 세계유산과 미래가치> 특별전(민족문제연구소 주최·주관)의 확장판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에 폴란드 아우슈비츠수용소, 독일 푈클링겐 제철소 등과 같은 ‘부정적 세계유산Negative Heritage)’이 어떤 방식으로 후대에 교훈을 전하고 있는지를 소개하면서 일본 산업유산의 역사부정 실태를 꼬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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