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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책방 아저씨, 풀벌레 일꾼 은종복 회원 면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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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책방 아저씨, 풀벌레 일꾼 은종복 회원 면담기

익명 (미확인) | 월, 2018/05/28- 11:38

[인터뷰]

동네책방 아저씨, 풀벌레 일꾼, 은종복 회원 면담기

김진영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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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일 책방 ‘풀무질’ 대표 은종복 회원을 만났다. 처음에는 연구소에서 만나기로 했지만 전날 밤 은회원의 새 책(????책방풀무질:동네서점아저씨은종복의25년 분투기????,한티재,2018)을읽고약속장소를서점으로 옮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약속 장소를 조정하기 위해 전화했더니 반갑게 맞아주었다. 시간을 조정하다 결국 서점에서 만나 은회원의 어머님께서 싸주신 저녁 도시락을 함께 먹기로 했다.
은회원은 서울 명륜동에서 25년째 ‘인문사회과학 책방-풀무질’을 운영하고 있다. 지금은 ‘풀무질 책놀이터 협동조합’이라는 마을공동체 운동을 함께 하고 있다. “동네책방이 살아야 마을이 살 맛 나는 곳이 되고 마을이 살아야 마을사람들도 서로 웃고 떠드는 정이 생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서점에 갔을 때도 달님, 토끼님과 주민 한분이 계셔, 서점 한 쪽에서 함께 도시락을 먹었다(공동체 사람들은 ‘덧이름’을 쓴다). 책에 둘러싸여 처음 만난 사람들과 도시락을 먹고 있으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면담은 책방 계단 아래에 움푹 들어간 작은 공간에 마주앉아서 진행했다.
은회원이 책방을 지킨 긴 세월만큼 이야깃거리가 많았지만 우선 어린 시절 모습이 궁금했다. 부모님에 대한 질문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은종복 회원은 1965년 서울 휘경동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은 경북 군위군 출신이다. 두 분은 1958년 무작정 서울로 오셨는데 “서울에 가면 머슴처럼 살지 않아도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서울에 왔다고 해서 쉽게 삶이 달라졌을까, 당시 고향을 떠나 도시로 몰려든 많은 농민들과 마찬가지로 부모님은 도시 빈민의 삶을 시작했다. 부모님이 처음 정착한 곳이 서울시 동대문구 휘경동이었다. 중랑천 뚝방길 판잣집에 살며 두 분 모두 평생 쉼 없는 노동으로 삶을 꾸려오셨다.

 

문 : 선생님 책을 읽어보면 심성이 곱다고 할까요. 사람뿐만 아니라 자신 바깥에 있는 모든 대상들에 대해 배려가 느껴집니다. 부모님의 영향이 크다고 봐야 할까요?

답 : 사실 어머니는 저를 딸처럼 키우셨어요. 저희가 아들 사형제인데 셋째는 딸이기를 바라셨거든요. 막내가 몸이 안 좋아서 제가 어머니와 대청마루 앉아 타래실을 감기도 하고 감자 껍질을 벗기기도 했어요. 집안일은 제가 맡아서 했습니다. 감자껍질을 깎는 게 아니라 벗기는 거라 손이 빨개졌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도 저는 아침잠이 많지 않은데 새벽부터 일어나 중랑천 가에 키우던 호박을 따오기도 하고 닭장서 달걀을 꺼내오기도 했습니다.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 혼자 움직이며 생명을 대하던 경험이 “풀잎 하나, 벌레 하나 살아있는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 한 것 같다”고 한다. 다만 아주 어릴 때부터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끊이질 않았는데 그 질문이 “세상을 밝게 하는 데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졌고, 자연히 어릴 때부터 그런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고 한다.
은회원이 처음 서점 일을 시작한 것이 1993년 4월 1일 만우절이었다. 날짜가 만우절이기도 했지만 평소 술과 투쟁, 글쓰기만 하던 사람이 갑자기 책방 일을 한다니 주변 사람 중에 믿어주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부모님은 ‘남을 괴롭게 하는 일이 아니라면 어떤 일이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어릴 때부터 ‘세상을 맑고 밝게 만드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만약 풀무질이 인문사회과학 서점이 아니고 그냥 책을 팔고 이윤을 남기는 곳이었다면 시작하지 않았을 거예요. 시작했더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포기했겠죠. 이 책방이 그런 가치가 있는 곳이었고 하면 할수록 ‘내가 이걸 지켜야겠다’는 소명의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책방에서는 정부에 반대하는 유인물도 구할 수 있었고, 교보, 영풍에서 쉽게 찾을 수 없는 인문사회과학 서적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이 사회와 공동체의 성장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25년 동안 대학가 책방을 운영하면서 은회원은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 판매’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고, 책방은 몇 차례 폐점의 위기를 넘기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현재 책방 ‘풀무질’의 이름으로 달마다 돈을 내는 곳은 서른 군데, 50만 원이 넘는다.

아껴쓰고, 나눠쓰며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은 정말 우리 어머니, 아버지 말씀이 맞아요. 하지만 자기가 만족한 후에 누군가에게 베푼다는 것은 베풀지 않겠다는 것과 같은 말이에요.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을 안다고… 연구소도 그렇죠? 저야 잘 모르지만 넉넉하지 않은 사람들이 조금씩 후원하는 힘으로 운영하고 있을 거라고 봅니다.

 

문 : 살다보면 골목이나 놀이터 같은 생활환경이 달라지는 것을 보고 누구에게도 설명하기 어려운 이상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은회원은 대학가의 변화를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답 : 돌이켜 보면 제가 학교를 다닐 때 학생들을 세 가지 부류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열심히 학교를 다니고 공부를 하는 학생, 세상을 바꾸려는 ‘척’ 했던 학생, 신념을 갖고 투쟁에 전념하는 학생. 그 중에 저는 두 번째 부류에 가까웠습니다. 학교는 빠지지 않았지만 매일 데모하고 글을 쓰느라 수업을 제대로 듣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다고 투쟁에 전념하고 앞에 나서는 유형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그때는 기본적으로 많은 학생들이 사회 변혁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있었어요. 예를 들어 4·3, 4·19, 5·18이 되면 미리 말하지 않아도 학생들은 일단 운동화를 신고 학교에 왔습니다. 여학생들도요. 예비역들은 군복을 입고 왔구요. 이런 날은 보통 재학생 중 반 가까운 학생들이 모여서 도로로 나가기 시작했으니까요. 지금과는 시대의 분위기가 많이 달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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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회원들과 함께 식사하는 모습. 오른쪽 첫 번째가 은종복 회원

 

지금은 사회가 다변화되고 ‘문화식민지’가 되면서 전선이 혼재되어 있지만 당시에는 ‘제국주의’와 ‘다국적기업’이라는 극복해야 할 분명한 상대가 있었다고 한다. 싸움의 대상도, 명분도 뚜렷했다는 점이 지금과 근본적으로 달랐다는 것이다.

 

문 : 지금 학생들은 어떻게 다른지 물었다.

답 : 10여 년 전에 <화려한 휴가>라는 영화가 있었어요. 상업영화로는 처음으로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것이었습니다. 대학로 CGV가 바로 옆이니까 학생들이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추천했어요. 그런데 영화를 보고 온 학생 중에 그 영화가 만들어진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 영화는 1980년 광주의 모습 중 일부를 압축한 것인데도 학생들은 군인이 시민들을 학살하는 상황 자체를 이해하기 어려워했어요. 지금 학생들은 1980년 이후에 태어났습니다. 학교에서도 말해주지 않기 때문에 대학에 와서야 광주이야기를 처음 들어보는 아이들이 많아요. 그만큼 학생들도 스스로 관심을 갖고 찾아보지 않으면 불과 얼마 전의 민주화운동을 모르는 시대가 된 것이죠.
또 한 가지, 지금은 일자리를 구하기가 너무 힘들어서 1학년 때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제대로 취직하기가 어려워요. 이름난 회사에 들어가려면 자기 소개서를 100번은 써야 해요. 참담하죠. 우리 때는 데모도 하고 술도 마시고 연애도 했지만 취직하는 게 크게 어렵지는 않았어요. 주어진 환경이 달라요. 큰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아이들은 맺고 끊는 게 확실해요. 자기 책임이라고 할까요. 자신의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것만이 확실하기 때문에 더욱 현실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아이들의 좋은 점인지 나쁜 점인지 단정하기 어렵지만 예전처럼 책을 외상으로 사거나 돈을 빌리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어요.

 

문 : 최근 급격히 한반도 정세가 변화하고 있는 데 대한 소감을 물었다.

답 : 제 첫 번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돈에 눈먼 세상을 없애야 합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전쟁을 일으키거나, 탐욕에 젖어서 세상을 더럽히지 않습니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질서를 파괴하지 않고서는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 한 가지, 남북이 평화롭게 하나 되는 세상을 바랍니다. 저도 남북의 정상들이 만나 평화정착을 위해 애쓰는 것을 보고 크게 감격했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경제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 같아 걱정되는 면도 있습니다. 차츰 다른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확대되겠지만, 경제이야기만 하다보면 한반도 북녘을 또 다른 식민지로 만들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긴 시간 많은 노력이 필요할 텐데, 남쪽도 북쪽도 민의가 반영된 정당성 있는 국가권력이 힘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래야 앞으로 일어날 급격한 변화에도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지 않을까요. 대화가 진전되고 평화체제가 자리 잡게 된다면 국가보안법 문제나 주한미군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되리라 생각합니다.
또 한 가지, 남북문제가 미국의 입김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는 것은 참 아픈 부분입니다. 역사적인 맥락이 있는 것이지만 우리 스스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갈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고 서로 의지하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북쪽이 핵무기를 갖고 있는 것을 반대하고, 남쪽이든 북쪽이든 군대가 없는 꿈같은 세상을 바라는 사람입니다만 한 쪽이 다른 쪽을 일방적으로 겁박하지 않고 서로 신뢰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면서, 평등한 입장에서 논의가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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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 책을 읽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그나마 인터넷으로 주문하는 세상에서 동네 작은 책방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또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답 : 지금 상태라면 풀무질뿐만 아니라 한국에 있는 작은 책방들은 모두 버텨내기 힘들다고 봅니다. 저는 한국에서 작은 책방이 살아나려면 일등주의, 학력중심주의, 경제지상주의 이 세 가지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세상은 기회균등이라고 하며 힘이 있건, 돈이 많건, 약하건, 장애가 있건 구분하지 않고 모두를 경쟁하게 합니다. 하지만 사람은 각자 다른 것을 갖고 태어나죠. 그래서 사람은 신 앞에서 그 자체로 소중하고 모두가 평등합니다. 지금 한국사회는 모조리 일등주의에 매몰되어 사람을 하나의 기준으로 줄 세우고, 서로 경쟁하며 미워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 일등주의 때문에 어떤 부모들은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영어학원을 등록하고 순번을 기다리고 있어요. 아이에게 ‘좋은 교육’을 받게 하고 남보다 이름난 학교에 들어가게 하겠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렇게 교육받은 아이들이 정말 ‘좋은 교육’을 받는 것일까. 우리 아이들이 병들고 있다는 것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겁니다.
이 두 가지는 사람 욕심을 부추기는 경제지상주의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고 권정생 선생님은 “사람들이 밥하나 국 하나 반찬 두, 세 개면 맛있게 밥을 먹을 수 있는데 어느 날부터 더 맛있게, 더 많이 먹으려 하다 보니 다른 나라 아이들의 목숨 줄을 조이게 되는 세상으로 변해가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더 맛있고, 더 좋은 게 아니면 만족하지 못하겠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고르게 가난하게 살려고 하면 다 함께 웃음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이제는 조금 생각을 다르게 해야 할 시점이 아닐까요, 경제성장을 멈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은회원은 “자본주의 체제가 지구를 망가트리고 결국 인류가 생존할 수 없는 곳으로 만들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다르게 살아야 하고 경제성장은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날 때부터 자본주의 속에서 살아온 나에게는 꿈같은 이야기였다. 그래서 다시 질문했다.

 

문 : 사람들이 그렇게 살기로 한다면 저는 따라서 살 수 있을 지도 모르겠지만… 그런데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요?

답 : 그래서 마을책방의 역할, 지역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지금 자본주의 시스템은 대량생산, 대량소비를 기본으로 합니다. 그렇게 최근 몇 백년간 인류는 전례 없는 엄청난 양의 자원을 소비하며 지구를 망가트리고 있어요. 그 전까지 수십만 년 동안 인류는 필요한 만큼만 생산해서 소비하며 살았습니다. 오래전부터 서로 돌보고 필요한 것을 나누며 함께 사는 방식으로 산 것이죠.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부딪치고 있는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저는 우리가 처한 현실을 절박하게 받아들이고 다시 공동체적인 생활방식을 복원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봅니다. 책방 풀무질이 단순히 책을 사는 곳이 아니라 일등주의, 학력주의, 경제지상주의를 극복하고 지역주민과 학생들이 공동체를 이루고 서로 돌보며 살아가는 터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책방 풀무질에서 책읽기 모임, 밥상공동체, 돈 없이 사는 세상, ‘풀무질 책놀이터 협동조합’을 꾸려가고 있고 이런 활동이 결국은 우리 공동체와 책방을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현실적으로 수익이 있어야 책방을 운영할 수 있을 텐데 실제 어떤 상황인지 궁금했다. 은회원은 손전화로 통장 잔액을 보여주며, “내일은 풀무질 문을 닫을지도 몰라요. 하하하하~” 크게 웃었다. 전화기에는 조금 전까지 얼마 남아 있던 통장 잔액이 ‘0’원으로 바뀌어 있었다.

 

사실 함께 밥을 먹고 조합을 운영하고 활동하는 것은 책방 매출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아요. 여기 오는 사람들이 도와주고 책을 많이 구입하기도 하지만 결국 이 책방의 주 매출은 성균관대학교 학생들과 수험생들입니다. 그런데 이 학생들 중 열에 아홉은 가까운 곳에서 싸고 빠르게 살 수 있기 때문에 이 책방에 오지, 풀무질의 생각에 공감해서 오는 것은 아니에요. 최근에 거대 기업들이 인터넷 서점을 운영하면서 재정상황이 훨씬 더 어려졌구요.
따지고 보면 제가 책방 풀무질을 25년이나 한 것은 기적에 가까워요. 지금도 빚이 많고 한 달 이자도 많이 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책방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공동체의 힘이 큽니다. 공동체 사람들은 서점에 들어서면서 ‘풀벌레 아저씨 오늘 할 일 없어요?’라고 먼저 묻고 함께 일을 합니다. 서로 돌봐주는 이런 마음은 돈으로 헤아릴 수 없죠. 이런 마음이 이 책방을 유지하고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사장이나 대표라고 하지 않고 ‘일꾼’이라고 합니다. 오히려 내가 풀무질의 소중한 정신을 망가트리지 않고 운영할 수 있는 사람인가를 고민해요. 언젠가 우리사회에 큰 변화가 필요할 때 ‘이렇게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하나의 사례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은회원이 1993년 처음 책방을 시작하고 3, 4년 정도는 한 달에 50만원씩 적금을 넣기도 했다. 하지만 1997년 4월에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면서 700~800만원의 빚을 졌다. 그 후에는 점점 인터넷 책방이 들어서면서 제대로 수익이 난 적이 없었다. 최근 4~5년 동안은 ‘하루 살았네’라고 하면서 산다고 한다. 하루씩 살아가니 오히려 더 얼굴이 환해지고 삶에 힘을 느낀다고 한다.
하루살이 이야기를 하며 함께 웃었다. 은회원이 재정적인 어려움 속에도 책방 풀무질을 계속하는 것은 ‘세상을 맑고 밝게 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스스로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기도 하다.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을 살고 있는 셈이다.
책 읽는 법을 배우지 못하는 세대가 태어나고 있다. 사람들은 알고 싶은 것을 검색해서 바로바로 확인하고 정보는 빛의 속도로 사람들 사이를 오가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종이책이 어떤 의미를 가질까. 은회원은 니체의 말을 인용해서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책을 읽어야 한다고 답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산다고 생각하지만 대부분은 살던 대로 살고, 남들이 사는 것을 따라 살아요. 타고난 자신의 모양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이 상상하지 못하게 되면 약자, 소수자,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사회는 병들게 됩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정보와 사람들 속에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살고 있습니다. 책을 읽는 것은 사람이 상상하고, 자신을 찾는 좋은 방법입니다. 사실 이런 면에서 보면 현대인들은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것보다 많이 걸어야 합니다. 요즘 사람들이 하늘과 바람과 땅, 풀과 들에서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볼 수 있도록 더 많이 걸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회원들과 청춘들에게 2권씩 책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다. ‘100권을 고르라면 쉬울 텐데 두 권만 고르라니 더 어렵다’고 하면서도 바로 네 권을 추천했다. 우리 회원들에게는 권정생의 산문집 ????우리들의하느님????(녹색평론사)과존 로크의????통치론????(까치글방)을,청춘들에게는 리영희, 임헌영의 ????대화-한지식인의삶과사상????(한길사)과님 웨일스,김산의????아리랑????(동녘)을 추천했다.
책을 읽는 것은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서 세상을 보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책방을 하는 사람과 만나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학교에 다니는 동안 헌책방에 자주 드나들었지만 일하는 사람과 살가운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 없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숨길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었다. 거꾸로였다. 은종복 회원과 공동체 사람들에게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하며 생각을 나누면 좋은 사람이었다.
새로 사람을 사귀면 그만큼 마음을 내어주어야 한다. 제 혼자 살기도 바쁜 세상, 사람들은 마음이 편하고 싶어 점점 사람들을 사귀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행복해지고 있는가? 은회원은 원래 사람들은 서로 사귀고 돌봐주며 살아야 행복하다고 한다.
내가 이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책방 문을 나서면서 행복을 위해 끝까지 간직해야 할 다짐들이 다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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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7일 오후 6시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이하 ‘역사재단’) 주최로 식민지역사박물관 1층 돌모루에서 강만길저작집 출간기념회를 열었다. 강만길 고려대명예교수의 의사에 따라 직접 논문 지도를 받은 제자들만 참여하는 소박한 자리를 마련하였다. 신용옥 역사재단 상임이사의 사회로 진행된 기념식에서 저작집 간행위원회 대표인 윤경로 전 한성대 총장의 인사말이 있었고, 이어 신용옥 이사가 저작집 출간 경위
를 상세히 설명하였다.

 

 

제자인 조광 국사편찬위원장의 감사인사, 저작집을 펴낸 창비 기획편집위원장인 백영서 교수 및 임헌영 소장의 축사가 이어졌다. 강교수는 답사에서 “이번 저작집 역시 학자로서 치열하게 살고자 한 삶의 흔적이 아닌가 싶다”며 “앞으로 후학들이 나를 넘어서는 뛰어난 연구업적을 남기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다”고 소회를 밝혔다.

 

강만길저작집은, 역사재단이 2010년부터 기획한 것으로 역사재단과 창비사의 2년간의 노력 끝에 〈분단시대의 역사인식〉 출간 40주년을 기념해 올 12월에 간행된 것이다. 강교수의 첫 저작인 〈조선후기 상업자본의 발달〉을 시작으로 초판 출간 연도에 맞춰 19권의 저서를 순서대로 배치하고 2010년에 나온 〈역사가의 시간〉은 자서전이라는 성격을 고려해 저작집의 마지막 권으로 했으며 미출간 원고도 한 권의 단행본으로 엮었다. 특히 제자 20명이 각 저서에 대한 사학사적 의미를 조명하는 해제를 실어 그 의의를 더했다.
• 편집부

수, 2019/01/02-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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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9/01/03-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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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2018/12/30-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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再寄金正恩

 

壓制連三代(압제연삼대)

衆言未久亡(중언미구망)

民飢君飽喫(민기군포끽)

共産若豺狼(공산약시랑)

 

김정은에게 거듭 띄우는 글

 

압제하는 정치가 三代를 이으니

뭇사람 未久에 망한다고 말하네

백성은 굶는데 임금은 배부르니

공산주의란 승냥이와 이리 같네.

 

<時調로 改譯>

 

壓制三代 이으니 未久에 망한다 하네

백성은 굶고 있는데 임금은 배부르니

오호라! 공산주의란 豺狼과도 같다네.

 

*壓制: 권력이나 폭력으로  남을  꼼짝 못 하게  강제로  누름 *三代: 아버지, 아들,

손자의  대. ≒삼세(三世)  *衆言: 많은  사람의  말 *未久: 얼마 오래지 아니함

*飽喫: 배부르게 먹음. 포식(飽食). 포복(飽腹) *共産: 공산주의(共産主義).

을 공동(共同)으로  관리하고  소유함  *豺狼: 승냥이와 이리를 아울러 이르는 말.

 

<2019.1.4, 이우식 지음>

금, 2019/01/04-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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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급식이 아닌 학교 다닐쩍에 도시락 처먹던 세대들은 잘 알게야. 

점심시간에 애들끼리 도시락 먹으면 당연 서로 같이 싸온 반찬 나눠먹고 하는게 올바른 것이며 국가간 외교로 따지면 주는게 있으면 받는게 있는 국제적 참다운 교류인게다. 

그런데 꼭 도시락은 안 싸오고 거지새끼 처럼 염치도 없이 애들한테 밥이나 얻어 처먹고 반찬이나 축내면서 왔다갔다하는 얄미운 새끼들 있지? 

바로 이런 새끼들이 지금 북괴 빨갱이같은 새끼인게다. 

남한한테 얻어먹고 퍼가고 바라는건 졸라리 많으면서 정작 남한한테는 아무런 도움도 안되고 오히려 해만되고 말썽이나 부리는 애물딴지 개버러지 새끼들 

바로 북괴 빨갱이거지10새끼들인게다.

금, 2019/01/04-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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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오는 시빌

팔용동

목장원

주소는

창원 의창구  팔용로 494-20

박상규윤항기의 경상5회 갑짱들아!

진영당감 일세

ㅍㅏ이브

손소리통  목장원:256-6205

합천봉산똥대지가

생각나는  오마고  창원 경상고 다섯기  정기총회에서

ㅂㅗ고픈 칠팔칠구팔공의  경상고5기

황금도야지해  에는 희비 제대로 내고

경조사 스님에게  찾아 배야 대는데,

기해와기회

올겐 진짜  너거 한테 비찐거 가파야 대는데,

0110모교일  19:00에 봄세

금, 2019/01/04-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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笑筆强於刀諺

 

日本霜刀國(일본상도국)

朝鮮久筆邦(조선구필방)

如何其結果(여하기결과)

誤信正無雙(오신정무쌍)

 

‘붓은 칼보다 강하다’는 속담을 비웃다

 

일본은 시퍼런 칼의 나라였고

조선은 오래 붓의 나라였지만

그 결과는 마침내 어떠했던가

잘못된 믿음 참으로 무쌍했네.

 

<時調로 改譯>

 

일본은 서슬도 푸른 칼의 나라였었고

조선은 오랜 세월 붓의 나라였었지만

그 결과 어떠했던가 誤信 무쌍하였네.

 

*霜刀: 서릿발같이  푸르고  날카롭게  서슬이      *如何:   형편이나 정도가

어떤가의  뜻을  나타내는 *結果: 어떠한 원인으로 결말생김. 그런 결말의

상태 *誤信: 잘못 믿음 *無雙: 서로 견줄 만한 게 없을 정도로 뛰어나거나 심함.

 

<2019.1.5, 이우식 지음>

토, 2019/01/05-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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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임종국 선생의 엄정함과 양심이 지배하는 사회를 소망하며

새해 우리 사회를 향한 나의 소망 두 개.

하나는 우리 사회가 엄정함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소망이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엄정함이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라, 패거리 짓기, 같은편 편들기와 봐주기가 지배하는 사회다.

친일연구를 하다가 알게 된 아버지의 친일행적까지도, 대학 은사 유진오 등 많은 인연 닿는 인사들까지도 “그런 저런 사정은 일체 눈을 감기로 작정하”여 기록으로 남기고, “벼락이 떨어져도 나는 내 서재를 뜰 수가 없다. 자료와, 그것을 정리한 카드 속에 묻혀서 생사를 함께 할 뿐인 것이다”라고 쓴 임종국 선생의 엄정함이 오늘날 우리 시대가 다시 불러와 기려야 할 시대정신이다.

동문이니까, 동향 사람이니까, 같은 편이니까…등등의 부족사회 수준의 감성으로 잘못된 것에 눈감고 침묵하고 봐주는 사회 분위기, 2019년에는 사라졌으면 좋겠다.

다른 하나는 사람들의 양심회복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썩지 않은 구석이 없다.” 이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내가 유학에서 돌아와 인사차 찾아뵌 교수님이 1991년에 하신 말씀이다.  그 후 한 세대 가량의 세월이 흘렀다.  우리 사회는 그때보다 나아졌을까?  아니다.  세상 곳곳이 온갖 비리와 부정부패로 얼룩져있다.

아예 ‘양심’이라는 단어 자체가 사라진 사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은 무감각하거나 무관심하다.  처벌도 죄질에 비하면 솜방망이다.  앞에서 말한 엄정함이 부족한 때문이다.  그러니 어물쩍 넘어가고, 비리와 부정부패는 계속된다.  저지르는 사람들이나 그냥 넘기는 사람들이나, 양심과 엄정함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런 수준 낮은 사회 분위기가 2019년에는 사라졌으면 하는 소망이다.

 

2019. 1. 4
민족문제연구소 제명자, 회원
여인철

토, 2019/01/05-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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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변호인단 “강제징용 기업 한국 자산 압류해달라” 강제집행 신청
아베 주장하는 ‘국제법‘ 뭐냐 질문에… 법조계 “나도 물어보고 싶다”
법조계 “‘국제법 위반했다’ 국내외 향한 ‘여론전’… 그 이상 이하도 아냐”

[법률방송뉴스=유재광 앵커] 우리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을 두고 일본이 범정부 차원에서 반발하고 있습니다. ‘LAW 인사이드’ 신새아 기자 나와 있습니다.

어제(6일) 아베 신조 총리가 뭐라고 입장을 밝힌 모양인데 어떤 내용인가요.

[기자] 네. 아베 총리가 어제 NHK ‘일요토론’ 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받은 전범기업 신일본철주금의 한국 내 자산 압류 신청에 대해 “매우 유감이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반도 출신 노동자’와 관련해서 압류를 향한 움직임은 매우 유감이다”

“국제법에 근거해 의연한 대응을 취하기 위해 구체적 조치에 대한 검토를 관계부처에 지시했다”는 것이 아베 총리의 워딩입니다.

아베 총리는 그러면서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이 끝났다. 한국 대법원의 판결은 국제법에 비춰 있을 수 없는 판결”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앵커] 아베 총리가 “매우 유감이다”고 한 전범기업에 대한 자산 압류 신청, 어떤 내용인지 간략하게 설명해 주시죠.

[기자] 네, 지난 연말 우리 강제징용 피해자들 변호인단이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에 일본 전범기업인 신일철주금이 포스코와 함께 설립한 합작회사 ‘PNR’의 한국 자산을 압류해달라며 강제집행을 신청했는데요.

관련해서 변호인단은 지난해 두 차례 신일철주금 본사를 직접 방문해 협의를 요청했지만 신일철주금 측이 면담조차 거부하며 모르쇠로 일관하자 이에 대한 대응 조치로 한국 내 자산 압류를 신청한 것입니다.

여기다가 배상 판결을 받은 또 다른 전범기업 미쓰비시 중공업에 대해서도 비슷한 압류 절차를 진행할 계획인데요. 이에 일본 정부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앵커] 아베 총리 워딩을 보니 “국제법에 비춰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등 ‘국제법’을 많이 언급하고 있던데 국제법이 어떻게 돼 있다는 건가요.

[기자] 네, 안 그래도 궁금해서 강제징용 손배소송을 수행한 김세은 변호사에게 “국제법이 어떻게 돼 있어서 아베 총리가 그러는 거냐” 라고 물어봤는데요. 돌아온 답변이 걸작이었습니다.

“그 국제법이 도대체 뭔지 나도 물어보고 싶다”는 답변이었는데요. 직접 들어 보시죠.

[김세은 변호사 / 법무법인 해마루]

“아, 저희도 사실 그게 궁금한데요. 일본 측에 좀 물어봐 주셔야 될 거 같은데. 어느 국제법, 계속 아베 총리나 고노 외무상 워딩이 그래요. 국제법 위반이다, 국제법에 근거해서 조치를 취하겠다고 얘기를 하는데 어느 국제법인지 사실 국제법이라는 건 없어요.”

[앵커] “국제법이 없다”라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기자] 네, 통상 ‘국제법을 어겼다’고 할 때는 김세은 변호사의 말에 따르면 구체적으로 ”어떤 국제 조약, 또는 어떤 국제 협약, 몇 조 몇 조, 이걸 위반한 거다“ 이렇게 얘기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베 총리의 워딩은 이런 게 없이 그냥 거두절미하고 “국제법 위반이다”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는 건데요. 국내외를 향한 ‘여론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게 김세은 변호사의 말입니다. 직접 들어보시죠.

[김세은 변호사 / 법무법인 해마루]

“사실은 그렇게 말하는 것은 모호하게 그냥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엄청 ‘국제법 위반이다’ 라고 이야기 하면 우리가 되게 큰 잘못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적으로는 어떤 걸 위반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주장이고요”

일본 정부 일부 각료가 ‘한국에 대한 트럼프식 관세 보복’ 등을 언급하는 것도 다 이런 여론전, 보수우익 결집 등 정치적 목적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앵커] 일본 정부가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면 어떻게 되나요.

[기자] 네,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 재판을 받는 건 통상 우리가 알고 있는 재판처럼 어느 일방이 제소를 한다고 해서 바로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재판을 받을 수 있는 건 아니고요. 양 국 정부가 모두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재판을 받기로 동의를 해야 재판 관할권이 국제사법재판소에 발생합니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이미 대법원 판결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새삼 국제 분쟁화 할 이유도 필요도 없습니다. 따라서 국제사법재판소 재판은 옵션이 못 된다는 게 법조계의 설명입니다.

[앵커] 일본 정부는 저렇게 강경하게 나오는데 우리 정부는 어떻게 대처해야 될까요, 그러면.

[기자] 네, 한일청구권협정 3조 1항엔 ‘본 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한 양 체약국 간의 분쟁은 우선 외교상의 경로를 통하여 해결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청구권협정으로 모든 배상업무가 종료됐다는 일본과 그건 정부 차원의 일이고 민간 차원은 다른 문제라는 게 우리 정부 입장인데요.

일단 외교 경로를 통해 풀어보고 안 되면 별도의 중재위원회를 구성한다든다 하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조시현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의 말을 한 번 들어보시죠.

[조시현 /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

“한국 외교부가 지금 오늘 반응이 나왔잖아요. ‘비우호적이고, 적절하지 않은 행동이다’고 했는데 저는 지금 단계에서 한국정부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을 말한 것은 아닌가. 아베 정부가 제일 먼저 취할 것은 뭐냐면 협의를 해야죠. 언론 선전전을 할 것이 아니고…”

[앵커] 일본은 총리까지 나서 여론전을 펼치는데 우리 정부도 기민하게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될 것 같네요. 오늘 잘 들었습니다.

<2019-01-07>법률방송뉴스 

☞기사원문: 아베 “국제법에 비춰 있을 수 없는 판결”… 강제징용 변호사 “아베가 말하는 ‘국제법’은 없다”

화, 2019/01/08-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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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8일 충북지부전체회원모임에서 임헌영 소장님은 필요한 자료가 있으면 사무국에 요청을 하라고 하셨고, 지난 3월 24일 정기총회에서도 의문이 있으면 언제든지 사무국에 연락을하여 문의하라고 했습니다.

2018. 12. 14. 서울시교육청은 민족문제연구소에 대하여 행정처분을 했습니다.
행정처분은 민족문제연구소가 운영에 있어서 법률 또는 행정처분 기준을 위반했기 때문이고, 이러한 사실은 우리 회원들이 공유하여야 할 중차대한 사안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영업상 경영상 비밀에 관한 사항’이라며 비공개했던 총회 의사록을 교육청을 통해 입수해 확인해 본 결과
2002년 1월에도 동부교육청이 법인실태 조사후 고발 및 시정시시를 한 사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회원은 민문연 집행부에서 어떻게 연구소를 운영했으면 고발을 당해야 했는지 그 이유을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작년에 또 서울시교육청이 현장 실사를 하고, 행정처분을 했습니다.

서울시교육청이 행정처분한 공문을 제공해주시고, 회원에게 공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화, 2019/01/08-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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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그날의 조서 기록 – 그대는 어째서 독립만세를 불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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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받는 사람의 실루엣
테이블
서류뭉텅이들

전등

1919년 3월 1일

100년 전 그 날은 몇몇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다.

학교 기숙사에서, 총독부 순사로 보초를 서던 곳에서, 농촌의 민가에서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뛰쳐 나왔던 모든 사람들의 걸음이다.

일제는 3·1운동 참여자들을 취조한 신문조서를 2000여건이나 남겼다.

참여자 200만명, 사망 7500여명, 피검자 4만7000여명이라는 규모에는 못 미치지만

당시 참여했던 민중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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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신문조서 기록을 열람합니다…

3.1운동 당시 신문조서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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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 다함께 만들어온 세상 100년
그대는 어째서 독립만세를 불렀는가
100년전 3.1 운동 그날의 신문기록







화, 2019/01/08-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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