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혁명 100주년 기념 특별강좌와 답사가 연구소 교육장 5층에서 3월 2일(토) 오후 3시에 시작되었다. 이번 강좌와 답사는 매주 토요일 4회(3강좌+1답사)에 걸쳐 진행되었다.
1회차 강좌 〈만세열전 – 그들이 만세를 부른 이유〉는 조한성 선임연구원이, 2회차 강좌 〈“가만히 있으라”– 삼일혁명과 친일세력〉은 박수현 사무처장이, 3회차 강좌 〈3·1혁명100년, 다시 혁명을 이야기하
다〉는 이준식 독립기념관장이 각각 담당하였다. 4회차 답사는 〈100년 전 그날, 만세의 현장 – 종로, 북촌 일대〉로 권시용 선임연구원이 진행하였다. 강좌참가자에게는 조한성 선임연구원의 역저 ????만세열전????이 저자의 사인을 담아 증정되었다.
이번 강좌에서는 무명의 평범한 사람들이었던 3·1혁명의 숨은 주인공들의 이야기, 일제와 손잡고 만세시위를 막고 독립불능론, 내선일체론 등을 내세웠던 친일파의 망동, ‘제국에서 민국으로’ 가는 길을 만든 3·1혁명의 의미 등을 살펴보았다. 답사는 3·1혁명 만세시위의 현장이었던 보신각, 경성재판소터, 보성사터, 천도교 중앙총부터, 승동교회 등을 탐방하였다.
연구소 이전 후 소내 교육장에선 처음 갖는 시민역사강좌(유료)임에도 회원과 일반참가자 20여 명이 참여하였다. 특히 가족 단위로 강좌를 수강한 경우가 눈에 띠었는데, 어느 회원은 부인과 두 아들 등 가족 모두가 참여하여 주말을 뜻깊게 보내는 단란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연구소·박물관 회원뿐 아니라 일반 참가자들도 이번 강좌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연구소 활동에 격려를 보냈다.
민족문제연구소와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차후 시민역사강좌와 답사를 정례화하여 시민들의 역사의식 함양에 기여하고 아울러 연구소와 박물관 홍보에도 활용하고자 한다.
3월 23일자 이른바 회원대회, 이메일, 민족사랑을 통해 진행하고 있는 <정관 개정의 경위와 방향>에 대한 의견수렴
거짓말로 진실을 호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대안으로 총회 의결권을 대의원으로 한정하는 대의원제를 고려해 볼 수도 있지만 대표성 있는 대의원을 선 출할 현실적 방안이 없는 데다 약 240명(통상 회원 50인당 1인)으로 구성된 대의원제를 운용할 때 여전히 연 3~4회의 총회(3월 결산, 4~6월 임원 선임, 11월 예산) 소집에 어려움이 있고 1만2천 여 회원에게 기부 금영수증을 발행해줄 수 없다는 제약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일본제철·후지코시·미쓰비시·코크스 4곳 피해자 “인간에 자유 있어도 한계 있어” 민변 “더 이상 늦출 수 없어 소송 제기”
▲ 【서울=뉴시스】옥성구 기자 = 일제강점기 시절 강제징용 피해자 김한수 할아버지(가운데)와 김용화 할아버지(오른쪽) 등은 일본 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기 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일제강제동원 사건 추가소송 제기’ 기자회견을 열었다. 2019.04.04.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옥성구 기자 = 일본강점기 시절 강제징용 피해자들과 유족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추가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을 제기하기 전 기자들 앞에 선 김한수(101) 할아버지는 “짐승과 같은 대우를 받았던 시절을 생각하면 너무 가슴이 아프다”고 토로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과 민족문제연구소는 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일제 강제동원 사건 추가소송 제기’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후 피해 당사자인 김 할아버지 등 생존 피해자 4명과 사망 피해자 6명의 유족 27명은 일본 기업 일본제철(신일철주금)·후지코시·미쓰비시중공업·코크스공업 4곳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 소장을 접수했다. 손해배상 금액은 개인당 1억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할아버지는 “일본에 강제로 끌려가서 사람이 아닌 짐승과 같은 대우를 받으며 살았던 그 시절을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가슴이 아프다”며 “당시 같은 식당에서 일본 사람은 하얀 쌀밥을 먹고, 한국 사람은 기름짜고 남은 것에 쌀을 넣어 먹는데 그것도 배불리 먹을 수 없었다. 그런 세월이 흘러갔다”고 말했다.
이어 “이것이 과연 참고 살아야 하는지, 아니면 사과를 받고 손을 싹싹 비는 모습을 봐야 하는지 대단히 어려운 문제다”면서 “그들이 생각할 때 한국 사람은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을 거다. 아무리 인간에 자유가 있다고 해도 자유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할아버지는 지난 1944년 8월께 목재를 실어 나른다는 설명을 듣고 회사 트럭을 타고 갔다가 집에 연락도 하지 못하고 청년 200여명과 함께 미쓰비시조선소에서 강제징용을 당했다. 김 할아버지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강압적인 규율을 받으며 생활했고, 작업 중에 사고를 당했지만 병가를 받지 못해 다음날에도 출근해 일했다.
이후 1945년 8월9일에 공장에서 작업 중에 나가사키 원폭투하로 피폭을 당했지만 목숨을 건지고, 같은해 10월20일께 동료들과 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서울=뉴시스】옥성구 기자 = 일본강점기 시절 강제징용 피해자 김한수 할아버지가 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일제강제동원 사건 추가소송 제기’ 관련 발언을 하고 있다. 김 할아버지 등은 이날 일본 기업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2019.04.04. [email protected]
이날 함께 소송을 제기한 김용화(90) 할아버지도 “힘 있는 자는 힘 없는 자를 보호해줘야 하는데 일본은 악용해서 노예화했다”며 “일본은 마땅히 보상해야 하고, 보상 이전에 사과해야 한다”고 말하며 울먹였다. 김용화 할아버지도 일본제철 야하타제철소에서 강제징용을 당했다.
민변 측은 “대법원 판결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의 정당성을 다시금 확인했다”면서 “일제강점기 시대 이 땅에서 자행됐던 강제동원은 인권의 관점에서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러나 강제동원에 책임 있는 어떤 주체도 사과나 배상에 나서지 않는 현실은 여전하고, 가해 기업들은 대법원 판결 후에도 손해배상채무의 임의 변제에 나서지 않고 있다”며 “피해자 다수는 피해 회복을 받지 못한 채 눈감고, 기록되지 못한 역사도 사라지고 있어 더 늦출 수 없다고 판단해 소 제기에 나서게 됐다”고 설명했다.
앞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해 10월30일 이춘식씨 등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신일철주금(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재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각 1억원의 위자료 청구권을 인정하며 강제징용은 반인도적 불법행위이므로 1965년 한·일 정부 간 청구권협정이 있었더라도 개인별 위자료를 요구할 수 있다고 봤다.
한편 서울고법 민사8부(부장판사 설범식)는 이날 고(故) 홍모씨 등 강제징용 피해자 14명과 그 가족들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 2차 변론을 열었다.
홍씨 등의 대리인은 “대법원 판결도 나오고 해서 가급적 포괄적 화해를 하려고 한다”며 조정 의사를 밝혔다. 이에 대해 미쓰비시 측 대리인은 “일본에서 부정적 답변이 왔다”고 조정을 원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전했다.
재판부는 “더 이상 사실관계나 법리 문제에 주장할 것이 없으면 사건을 종결하겠다”며 “미쓰비시 측이 조정 의사가 있으면 중간에 조정기일을 잡겠다”고 밝혔다. 이 사건의 선고는 오는 6월27일 진행될 예정이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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