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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가 “망국의 굴욕, 헌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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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가 “망국의 굴욕, 헌상품”

익명 (미확인) | 월, 2018/05/21- 15:06

* 신문, 사진 등 주요 자료가 화면에 표시됩니다.

‘미식가(미리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가다)’
일제에 의해 나라를 빼앗긴 식민지시기, 민초들의 삶의 모습을 중심으로 일제 식민통치의 실상, 당시의 제도와 문화를 생동감있게 풀어내고 오늘 우리의 모습과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지 추적합니다.

미식가 4회 “망국의 굴욕, 헌상품”

출연 : 이순우, 김영환, 강동민

연출 : 임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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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사회참여 운동 1세대 원로이며 연구소 3대 이사장인 김병상(86·필립보) 신부의 삶과 신앙을 기록한 회고록 〈따뜻한 동행〉 헌정 미사와 출판기념회가 12월 15일 인천시 심곡동 국제성모병원 3층 마리아홀에서 열렸다. 이 책에는 선후배 동료 사제들이 김 신부를 소개한 글과 더불어 김 신부의 구술·인터뷰·일기를 비롯해 지인들의 증언까지 충실히 정리해 놓았다. 1974년 유신독재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지학순 주교가 구속된 사건을 계기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창립되자 초대 회장을 시작으로 김 신부는 천주교와 인천지역 민주화운동계의 상징이 됐다. 1977년에는 유신헌법 철폐 기도회 사건으로 옥고도 치렀고, 1976년~1980년 인천 동일방직 해고노동자 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2003년 8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로부터 몬시뇰에 임명되었으며, 은퇴 이후에는 2008년부터 2013년까지 연구소 이사장을 맡아 친일인명사전 발간을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 방학진 기획실장

목, 2019/01/24-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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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3-4

[바로듣기]

☞ (1.29)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2편 “노덕술” 고문으로 유명한 악덕 친일경찰, 대한민국 훈장을 받다

☞ (1.22)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1편 “이종형” 의열단 행세하며 독립군 때려잡은 악명 높은 밀정

☞ (1.15) ‘내역사’ 시즌 3: “일제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이후 우리의 과제는?_1편

☞ (1.08) ‘내역사’ 시즌 3: 프롤로그 – 70년만에 부활하는 반민특위 친일파 그들은 누구인가?


0523-1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 3

“우리 역사의 뿌리가 친일독재 세력에 의해 흔들리고 훼손되었습니다.
우리가 지난 겨울 촛불을 들고 싸운 상대는 과연 누구였을까요.
역사적폐의 주범들의 실체와 이들이 저지른 역사범죄의 동기를 파헤쳐보고자 합니다.”

수, 2019/01/30-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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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보 전단지 ⓒKNS뉴스통신>

1919년 3월 24일 부천에서는 독립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당시 부천군 소사리 등 인근 6개 마을 주민들이 산에 올라가 화톳불을 피워놓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일제와 친일 지주들의 수탈과 억압에 시달리던 농민 200여 명은 계남면사무소 유리창 등을 부수고 진입해 수탈 장부인 민적부(民籍簿)와 과세호수대장과 연초판매수납부 등 수십 권의 장부를 불태우고 집기를 부수었다.

제1회 부천 만세운동과 계남면사무소 습격 의거 100주년 재현행사가 ‘부천시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주최와 ‘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 ‘부천시민연합’ ‘부천민예총’ 공동 주관으로 24일 부천시 중앙공원과 부천시청 잔디광장에서 진행됐다.

수, 2019/03/27-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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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철학] 디지털 시네마와 시간-이미지 : 테크놀로지의 진보와 영화 이미지의 진화

강사 장미화
개강 2019년 4월 2일부터 매주 화요일 저녁 7:30 (8강, 160,000원)

강좌취지
이 강의는 필름 시대 예술 영화와 할리우드 상업 영화의 이분법적 경계를 넘어 ‘디지털 영화의 시간-이미지’이라는 생소한 컨셉을 이야기합니다. 이탈리아 네오 리얼리즘 영화 이후 들뢰즈의 운동-이미지 체제의 붕괴가 나타났습니다. 시간-이미지 체제의 출현은 주체와 세계, 안과 밖에 대한 우리들의 생각이 크게 달라졌음을 뜻합니다. 이미지는 더 이상 자극-반응으로 감각할 수 없는 감각-기관적 운동의 붕괴에 이르렀습니다. 시간-이미지는 시간의 직접적 현시로서 비사유와 대면하게 합니다. 사유 불가능한 사유를 이끌어 내는 ‘시간-이미지’는 디지털 시네마에서 테크놀로지의 지대한 영향으로 크게 달라졌습니다. 비디오 시대 전자 이미지의 특성이 오늘날 디지털 합성 이미지로 변화하면서 새로운 리얼리티가 열리게 됩니. 급격한 변화 속에서 나타난 양상에 대해 할리우드 스펙터클 영화들을 중심으로 이야기합니다. 컴퓨터 그래픽의 디지털 합성 기술이 특수효과 장면들(예를 들어 <매트릭스>의 불릿 타임, <트랜스포머>의 몰핑, <혹성 탈출>의 모션 캡처, 알폰소 쿠아론 영화의 합성 롱 테이크 등)에서 관객이 필름 속 장면들과는 다른 시간경험을 하게 함을 질 들뢰즈의 시간-이미지를 기준으로 함께 살펴 보고자 합니다.

1강 디지털 영화 속 시간-이미지는 진화된 시간-이미지인가? ― 4/2 화
2강 몽타주와 간격의 변화 ― 4/9 화
<무비 카메라를 든 남자>, <영화의 역사(들)>, <그래비티>
3강 버추얼 카메라, 합성 롱 테이크의 촉각성 ― 4/16 화
<거울>, <엔터 더 보이드>, <로마>
4강 촉각적 스크린 속 과거, 현재의 교차 ― 4/23 화
<이터널 선샤인>, <마이너리티 리포트>, <데자부>
5강 디지털 특수효과의 정신적 쇼크(noochoc) 효과 ― 4/30 화
<매트릭스>, <혹성탈출>, <그레이트 월>
6강 디지털 몰핑, 홀로그램과 바깥(Dehors)의 시간성 ― 5/7 화
<울프맨>, <트랜스포머4>, <터미네이터Ⅱ>
7강 디지털 스플릿 스크린(화면 분할)과 현재의 첨점들의 유사성 ― 5/14 화
<캐리>, <타임 코드>, <헐크>
8강 디지털 영화, VR, 게임: 상호작용적 내러티브 ― 5/21 화
<아바타>, <게이머>, <레디 플레이어 원>

참고문헌
질 들뢰즈, 『시네마Ⅱ: 시간-이미지』, 시각과 언어, 2005.
데이비드 노먼 로도윅, 『디지털 영화 미학』, 커뮤니케이션북스, 2012.

강사소개
파리 1대학 영화 시청각학,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영화이론 전공. 광고 마케팅 카피라이터로 일했다. 관심분야는 디지털 매체론, 영화사, 영화 비평이며 디지털 시대 할리우드 영화 속 이미지와 내러티브의 변화에 대해 연구 중이다.
저서: 『히치콕에게 묻고 싶은 것들』, 『디지털 영화와 시간-이미지』(출간 예정)
학위논문: 「영화의 최면과 시간성: 샹탈 아케르망의 <잔느 딜망>을 중심으로」, 「디지털 할리우드 스펙터클 영화의 시간성: 들뢰즈 이후 시간-이미지의 진화」
연구논문: 「디지털 극영화 화면분할의 내러티브와 스펙터클적 특성에 대하여」, 「The Style and meaning of the Long Take in Hitchcock’s Films」

[철학/예술사회학] 사회학자의 눈으로 본 미술

강사 신현진
개강 2019년 4월 1일부터 매주 월요일 저녁 7:30 (8강, 160,000원)

강좌취지
사회학자들이 바라보는 예술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사회학자들의 궁극적 질문은 인간과 이 세계와의 관계를 규정하는 것입니다. 사회학자의 시각은 주체와 시공간, 관념과 실재에 대한 입장을 변수로 달라집니다. 그런데 현대의 사회학자들은 세계가 무엇이다 라고 말하는 대신 세계가 어떻게 작동한다는 방식으로 인간과 세계와의 관계를 규정하고자 합니다. 따라서 강의가 다루는 현대 사회학자(랑시에르, 바디우, 랏자라또, 루만)들에게 예술은 특별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술은 세계가 언어로 작동하는 동안 언어의 행간을 감성으로 표현하고 어필하는 매체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본 강의는 각각의 사회학자가 바라보는 주체와 시공간, 관념과 실재에 대한 입장을 설명하고 이와 관련된 예술작품을 감상하면서 수강자와 수다를 떨게 됩니다.

1강-2강 랑시에르가 보는 현대미술 ― 4/1 월, 4/8 월
랑시에르가 생각하는 세계는 어떻게 구조 지어지는지 그리고 그 구조가 계속가능하게 하는 정치는 어떻게 가능한지. 그는 그것이 감성의 정치라고 합니다. 이를 기준자로 보았을 때 과연 예술은 온전한 과정을 거쳐 왔는지. 만약 온전하지 않다면 그가 꿈꾸는 세계는 어떤 정치가 작동하는지 그리고 현대미술은 이를 어떤 방식으로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이를 해결하기 위한 그의 해법은 무엇인지 알아봅니다. 그가 말하는 결정 불가능한 예술, 생각에 잠긴 이미지란 무엇인지 그것이 사회 참여적 예술, 비판적 예술과 결을 같이 하는 것인지…. 그가 제시한 작품과 미학의 사례를 중심으로 설명해보는 시간을 갖습니다.

3강-4강 바디우가 보는 현대 미술 ― 4/15 월, 4/22 월
포스트모던, 프로이드 이후의 사회에 진리가 있을까? 철학자의 임무는 진리를 찾아내는 사람일까? 신-플라톤 주의자라고 불리는 바디우의 세계관에는 진리가 있습니다. 그는 인간이라는 주체가 진리를 찾아가는 여정을 현대주체의 존재방식, 특히 예술가와 철학자의 존재 방식으로 봅니다. 그가 보는 현대미술은 정치, 사랑, 과학과 함께 진리를 만들어낼 잠재성을 가진다고 합니다. 예술이 진리는 만들어낼 잠재성은 미학도 아니고 반미학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의 비 미학은 또 무엇인지 이전의 예술 도식과의 차이는 무엇이고 그가 찾고자 하는 ‘잘못 말하’는 미술은 무엇일까요?

5강-6강 랏자라또가 보는 현대 미술 ― 4/29 월, 5/6 월
‘비물질 노동’이란 무엇일까요? 포디즘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그리고 이를 이어받은 인지자본주의라는 경제체제 안에서 우리의 삶은 24시간 사회적 노동에 포섭된 상황입니다. 예술가는 그럼 다른 상황인 것인지? 정신노동자이자, 미래의 문화를 제시하던 정신노동자였던 예술인 집단의 위상에는 많은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이는 자본주의의 횡포로만 해석되는 것은 아니라 주체적인 현대적 인간의 탄생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랏자라또는 이러한 상황을 인간의 비물질 노동이 세상을 구축해간다는 신유물론, 발생적 인식론의 형이상학과 궤를 같이 하는 랏자라또만의 특별한 세계관으로 발전시켰습니다.

7강-8강 니클라스 루만이 보는 현대미술 ― 5/13 월, 5/20 월
사회 이론에서 인간은 필요 없다? 인지 생물학, 사이버네틱스에 체계이론을 결합한 루만의 사회이론은 그가 현대적 주체를 다루는 방식으로 해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인본주의적 심지어 인류세로 구분되는 현대사회를 파악하는 그의 방식은 소통입니다. 인간이 아니라 소통만을 대상으로 세상을 파악한다는 것은 빅데이터와 어떻게 다를지, 인간의지는 여기에 어떻게 작용할지, 그러나 여론이나 선호도의 합이 인류가 의존하는 시스템을 그대로 대변하지는 않습니다. 예술의 소통을 바라보아도 예술이 작동해온 시스템이 구분됩니다. 이때 예술계와 예술 체계는 동일한 것일까요?

참고문헌
1강-2강 : 랑시에르의 『무지한 스승』, 『미학 안의 불편함』, 『해방된 관객』 등
3강-4강 : 바디우의 『비미학』, 제이슨 바커 『알랭 바디우 비판적 입문』
5강-6강 : 마우리치오 랏자라또 『비물질노동과 다중』, 『사건의 정치』, 『정치 실험』
7강-8강 : 프란시스코 바렐라&움베르토 마뚜라나 『앎의 나무』, 니클라스 루만의 『예술체계이론』, 게오르그 크네어·아민 낫세이의 『니클라스 루만으로의 초대』, 프란시스 할살 〈Irritating body〉

강사소개
예술학 박사. 이후 권위를 뺀 미술비평의 내용을 담은 소설을 쓰겠다는 밀리언셀러 소설가 지망생. 혹은 한량.

[페미니즘]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 에코페미니즘

강사 최형미
개강 2019년 4월 3일부터 매주 수요일 저녁 7:30 (8강, 160,000원)

강좌취지
페미니즘은 소수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저항과 반란의 학문이다. 2세대 페미니즘은 ‘catch up’을 주장하며 가부장제에 저항했다. 그러나 이것은 위계를 인정한 경쟁의 전략이었고, 결국 ‘빈곤의 여성화’, ‘이주의 여성화’, ‘비정규직의 여성화’가 가속되었다.
에코페미니즘은 발전, 위계, 경쟁 지향적 세계관과 사회구조를 비판하고 새판짜기를 시도한다. 그런 점에서 3세대 페미니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페미니즘이 비판한 모성과 돌봄을 다시 가져와 up-cycling 하고 있으며, ‘개인을 존중하는 공동체주의’를 고민하고, 차이와 다양성의 감수성이 연대의 자원이라 주장한다.
본 강의는 에코페미니즘/생태주의를 주장한 학자들의 이론과 개념들을 살펴보고, 페미니즘의 자원을 조금이나마 풍요롭게 하고자 개설하였다.

1강 페미니즘 에코페미니즘이 어떻게 다르냐고? ― 4/3 수
2강 반다나 시바 : 근대과학/근대철학비판에서 돌파구를 찾는 에코페미니즘 ― 4/10 수
3강 마리아 미즈 : 우리는 왜 자급을 이야기 하나? ― 4/17 수
4강 레이첼 카슨 : 경이감과 아름다움의 회복 ― 4/24 수
5강 페기 메킨토시 : 탈위계적 세상을 실천하다. ― 5/1 수
6강 프리초프 카프라 : 생명에 대한 새로운 이해 ― 5/8 수
7강 슈마허 : 생태발전론, 적정기술의 아름다움 ― 5/15 수
8강 메리 멜러 : 돌봄없는 경제학에 대한 돌봄 경제학의 도전 ― 5/22 수

참고문헌
장필화·노지은, 「‘발전’에 대한 새로운 상상 : ‘나눔 경제’와 여성주의 대안 모색’」, 여성철학회
문순홍, 『생태학의 담론』, 아르케
아이린 다이아몬드, 『다시 꾸며보는 세상』,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앙드레 고르, 『에콜로지카』, 갈라파고스
슈마허, 『작은 것이 아름답다』, 문예 출판사
미즈·시바, 『에코페미니즘』, 창작과 비평
마리아 미즈·베로니카 벤홀트-톰젠, 『자급의 삶은 가능한가?』, 동연
레이첼 카슨, 『침묵하는 봄』, 에코리브르
프리초프 카프라, 『히든커넥션』, 휘슬러
Peggy McIntosh “White Privilege: Unpacking the Invisible Knapsack”
Mellor, M. (2006) ‘Ecofeminist Political Economy’, International Journal of Green Economics 1(1-2): 139-150.

강사소개
여성학박사

다중지성의 정원 daziwon.com

서울시 마포구 동교로18길 9-13 [서교동 464-56]

T. 02-325-2102

메일링 신청 >> http://bit.ly/17Vi6Wi

태그 : 다중지성의 정원, 다지원, 강좌, 세미나, 철학, 예술, 영화, 시네마, 문학, 글쓰기, 에티카, 사회학, 미술, 젠더, 페미니즘, 신자유주의, 에코페미니즘, 인문교양, 서예, 고전, 네그리, 하트, Assembly, 니체, 들뢰즈, 미학, 맑스, 자본론, 미디어 이론, 삶과 예술, 벤야민, 생명과 혁명, 시몽동, 시 읽기, 역사비판, 여성항쟁, 이야기하기, 스토리텔링, 정동, affect, 정서, affection

월, 2019/03/25-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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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소개]

경향신문사는 해방 후 두 번째로 맞이하는 3·1절을 하루 앞둔 1947년 2월 28일자에 3·1운동 특집기사를 내보냈는데 그 중 하나가 김구 선생의 기미년 조선탈출과 관련한 비화다. 당시 43세의 김구 선생은 일본 경찰의 감시를 피하고 주변 지인들의 도움을 받으며 황해도 안악에서 신의주를 지나 중국 안동현에서 이륭양행의 상선에 승선, 우여곡절 끝에 상해로 탈출하였다. 김구 선생을 취재하여 탈출비화를 소개한 기자가 누군지 기사에 언급되지 않아 확인할 수 없다.- 편집부

경향신문 1947년 2월 28일자, <기미년 김구선생 조선탈출비화>

 

비록 어떠한 이유를 내세운다 할지라도 민족의 슬픔을 한 몸에 지니고, 일생동안 조선과 더불어 짓밟히며 지나온 이에 대한 간절한 경애의 정을 차마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기미년 3월 초승 조선 천지가 비통한 민족의 함성으로 뒤덮이었을 때 날카로운 왜정 관헌의 눈을 피하여 조국해방의 크나큰 뜻을 품고 표연히 고국을 떠나 중국으로 망명한 한 사람의 지사가 있었으니 그는 3·1운동 직후 상해에서 임시정부를 조직한 김구 선생이었다. 겨레들 사이에 혹시 선생의 이야기를 할 때 선생이 중국으로 망명한 후의 일은 누구나 흔히 알고 있으되 망명을 하던 때 조선 탈출의 기막힌 고초는 아는 사람이 별로 없으니 때마침 해방 이후 두 번째 맞이하는 3·1기념일을 당하여 선생에게서 직접 들은 바로써 아직 공표되지 않은 한 토막 비화를 감히 세상에 소개한다.

탈출 기회 규시(窺視)

기미년 2월 하순 아직도 남은 추위가 봄바람에 섞여 옷깃으로 스며드는 때에 황해도 신천군 동산리 들판에는 17년 언도를 받은 감옥으로부터 가출옥한 당년 43세의 김구 선생이 수많은 농군들과 섞여 괭이를 들고 논보를 닦으며 온종일 농군들의 일을 지휘하는데 원체 일에만 정성을 바치는 듯한 선생의 태도에 저윽히 안심을 한 모양으로 감시를 하던 경관은 저녁때가 되자 일즉이 읍내로 들어가버렸다.
선생은 감옥에서 나온 후에 자당(慈堂)과 부인과 영식(令息)까지 전부 네 식구가 해주로부터 안악읍으로 이사하여 1년 동안 휴양하다가 농촌운동을 표방하고 동산리에서 다시 농군들과 1년 동안을 지냈으나 사실은 어느 때나 우리를 벗어나려는 범처럼 민족해방의 웅지를 품고 멀리 해외로 탈출하기만을 은근히 꾀하고 있었던 것이다.

감시망을 뚫고

그러나 위험인물로 생각하여 한때도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삼간초옥(三間草屋)선생의 거처에는 날마다 한 사람의 무장경관이 출장하여 밤낮으로 엄중한 감시를 하고 있으며 아무리 기회를 노려도 좀처럼 좋은 기회가 오지를 않았던 것이다. 감시하던 경관이 읍으로 사라지자 처음으로 불의(不意)에 찾아온 이 기회를 타서 선생은 농군들에게 읍내에 잠깐 다녀올 터이니 그동안 일을 하여 놓으라 이르고 마치 참말로 잠깐 나들이라도 가듯이 두루마기에 중절모를 쓰고 발에는 짚신을 신은 채 가족의 목 빼인 전송도 받는 둥 마는 둥 총총히 집을 나섰으니 이 길이 바로 30년 동안 고국을 등진 장구한 나그네의 길이었다.

열차 내의 요행

논틀밭틀로 사람을 피하며 밤이 된 후에 사리원읍으로 들어간 선생은 그 고장에 사는 의사 김우범(金禹範) 씨의 호의를 입어 내실에서 조심조심 하룻밤을 지샌 후 밝는 날 새벽차로 신의주로 향하였다.
선생의 품에는 숨은 유지들의 온정으로 얽힌 노자 500원을 수건에 싸서 지니었을 뿐이다. 선생은 3등 차간 한 구석에 웅숭그리고 앉아 있는데 때마침 3월 초승이라 차가 서는 곳마다 천지를 뒤흔드는 만세소리와 사포끈(?)을 턱에 건 일인 관헌들이 눈이 벌개서 날뛰는 꼴이 차창 밖으로 내다보인다. 차에서 하룻밤을 무사히 지나고 이튿날 아침 신의주역에 내려 만세사건으로 승객들을 이잡듯이 수색하는 경관에게 수건에 싼 돈 500원을 내어놓고 “의주로 재목을 사러왔다”고 감쪽같이 속여 넘긴 후에 아슬아슬하게 경계망을 돌파하여 성내로 들어가니 의주에서는 이미 만세운동을 한바탕 치르고 난 끝이라 주막에서 밥을 사먹으며 듣노라니 간밤에 주모자 22명이 체포되었다는 것이었다.

목적지 상해로

요기를 한 후 선생은 곧 중국사람 인력거를 빌려 타고 안동현으로 건너가서 이곳에서는 당시에 이륭양행(怡隆洋行)을 경영하던 영국 아일랜드 사람 조지 루이스 쇼(George Lewis Shaw, 1880~1943)라는 이의 호의를 입어 그의 집에서 일주일을 묻다가 상해로 가는 그의 상선을 타고 일행 15명이 안동현
을 떠났다. 원래 조지라는 사람은 조선사람에 대하여 뜨거운 동정을 품고 있어서 하나씩 둘씩 왜국 관헌의 눈을 피해 압록강을 건너오는 조선의 지사들을 무조건 하고 집에 들여 보호하였던 것이다.

한국의 독립운동을 도와준 조지 루이스 쇼

 

그때 김구 선생과 함께 상선을 타고 상해로 간 사람들은 선생까지 전부 15명이었으나 지금은 선생의 기억에서 사라진 이가 태반으로 생각나는 사람만 적으면 다음과 같다. 선우혁(鮮于爀) 송병조(宋秉祚) 장덕로(張德櫓) 이원익(李元益) 김병조(金秉祚) 조상섭(趙尙燮)…이 15명 조선의 지사들이 이륭양행 창고로부터 비밀리에 상선에 오를 때 주인 조지 씨는 일일이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작별하고 선장에게는 “이 15명은 조선의 독립투사들이니 각별히 조심하라”고 재삼 부탁하였다.
상선을 타고 고향을 떠난 지 보름 만에 상해 프랑스 조계에 상륙하니 검붉은 황포강 너머로 멀리 고국의 하늘을 바라보며 김구 선생의 눈에는 한순간 감격의 눈물이 어리었다.
그 후로 조지 씨에게는 임시정부로터 감사하는 특별 훈장을 수여하였다.(1963년 한국정부는 그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편집자)

금, 2019/03/29-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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