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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두 거인의 은밀한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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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두 거인의 은밀한 만남

익명 (미확인) | 월, 2018/05/14- 09:01

한반도 전체가 4.27 남북정상회담과 판문점선언에 흥분하고 있던 시점인 지난 4월27일과 28일 양일간 중국 삼국지 이야기의 한축이었던 오나라의 수도 우한에서 중국의 시진핑 주석과 인도의 모디 수상이 아름다운 호수인 동호의 산책길을 걸으며 때로는 쉼터에 앉아 중국 명차를 나누면서 격의없는 회담을 진행하였다. 이러한 모습은 마치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손을 잡고 도보다리에서 이야기를 나눈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어쩌면 인류 역사에 세기의 회담으로 기록될 만한 대사건이 될 수도 있는 만남에 대해 양국은 오히려 의도적으로 과도하게 보도되는 것을 자제하는 등 조용히 넘어가면서 더욱 궁금증을 일게 하는 측면이 있다. 예컨대 회담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이를 공식적인 정상회담이 아닌 비공식적인 사인(私人)간의 만남처럼 다루면서, 의제도 미리 조율하고 선정하지 않은 채 격의없는 대화의 형식을 취한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경향
사진 출처: 경향

여기서 당시 한국언론들이 보여준 호들갑과 보도의 태도에 대해 한마디 지적하고자 한다. 판문점 회담이 끝난 후 문재인 대통령은 곧바로 트럼프 미대통령과 아베 일본수상 등 세계 주요 지도자들과 전화통화를 하면서 회담의 결과를 설명한 반면에, 시진핑 주석은 상기의 우한 회담으로 전화연결이 되지 않았고 북경으로 복귀한 후 며칠이 지난 다음에야 비로소 통화가 가능하였다. 이를 두고 마치 ‘중국패싱’ 운운하면서 시주석이 서운한 심정에서 의도적으로 전화를 거절한 듯한 뉴앙스의 추측 기사가 여러 곳에 실렸다. 세계정세와 흐름에 어두운 국내 어리석은 언론들의 속좁은 식견이 벌인 해프닝으로 ‘우물안 개구리’라는 속담이 이를 두고 한 말인 듯 하다.

대국에 둘러싸인 반도에 위치한 국가의 입장에서 지정학과 지경학적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특히 근현대사의 전개과정에서 난삽하게 드러난 국제정세에 대한 무지함과 무책임 그리고 망각증을 되풀이 해서는 안된다. 역사에서 배움이 없으면 미래로 나갈 수 없다는 격언에도 불구하고, 현하 목격하듯이 한반도에서 냉전의 마지막 해체작업이라는 시대 흐름을 역류하는 자유한국당의 막가파식 무책임한 발언과 무뇌아적 황당무계한 처신에는 탄식이 저절로 터져 나온다.

나렌드라 모디 수상과 인도 경제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격동하는 한반도 정세의 주역으로 등장하였듯이, 국제정세 흐름의 새로운 줄기를 형성하고 있는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라는 대국의 수상이자 인도인민당의 지도적 인물 그리고 향후 경제전망에 대해서 잠깐 살펴보고자 한다.

모디는 1950년 생으로 ‘불가촉천민’ 바로 위에 위치한 빈민 중심의 수드라 계층 출신이다. 10대부터 열차와 거리에서 차를 파는 잡상인으로 사회생활을 출발하여, 30대 젊은 시절 인도국민당에 입당하면서 입지전적 성공과 출세를 거듭한 사람이다. 학력으로는 델리에 있는 통신대학을 간신히 수료하였고 후에 구자라트주의 수상으로 취임하면서 주립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수여받는다. 독실한 힌두교인으로 하루 4시간 정도의 짧은 수면을 취하면서도 매일 요가와 명상의 수련을 빼먹지 않는 지독한 일벌레로 알려져 있다. 구자라트주 수상 당시 발생한 힌두교도의 무슬림 집단학살을 방조했다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흔들림 없이 개혁과 경제정책을 추진하여 세계가 주목할 만큼 놀라는 발전의 성과를 이룬다. 인민당이 다수 여당이 된 유리한 정치환경에서 2014년 국민들에 의해 직접 선출되어 인도의 수상에 취임한 이래, 외국인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신용등급을 단계단계 올려가며 지난 수 년간 인도의 연 성장률을 한때 중국을 능가하는 7-8%대로 끌어올린다.

지난 세월 인도는 20여개 주의 세법과 거래관행이 모두 달라 경제와 산업을 인도라는 하나의 대륙으로 통합하기 어려웠으나, 모디는 엄청난 정치적 부담을 안고, 기득권층과 소상인 세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통합세법(Common Service Tax)의 도입을 강행하였고, 내로라 하는 전문가와 경제정책 관료들의 극심한 만류를 뿌리치며 2015년 가을 단하룻밤 사이에 화폐개혁을 신속히 단행하였다. 일정 금액 이상의 부동산 거래와 투자에는 반드시 자금출처의 소명을 의무화하는 등 부패와 기득권을 혁파하고 개혁하는 과정에서 작년부터 성장률의 일시적 저하라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의 인생 역정에서 보여준 예의 모습대로 인도의 강점인 IT기술을 기반으로 줄기찬 정부혁신, 환경친화적 농촌(Clean India), 제조업중심( Made in India), 전자상거래와 금융의 투명성, 소규모 중소기업 중심과 벤쳐산업 육성 등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현재 2,800불 수준의 인도 GDP가 조만간 5,000불을 달성하고 한 세대가 지나기 전에 중진국 대열에 합세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한 회담의 의미와 배경

비공식 만남이라는 핑계로 일체의 성명과 합의 내용의 공개가 없었지만 양국 지도자의 우한 회동에 대한 중국방송과 외국신문에 비친 여러 기사와 보도를 종합하면서 필자 나름대로 지난 4월 27-8 양일간 있었던 회담의 의미와 배경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여 본다.

첫째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1949년 이래 줄곧 발생한 중인(中印)국경분쟁의 봉합과 조정에 대한 첫걸음이라는 것에 큰 의미를 둘 수 있다.

아래의 그림자료에서 보듯이 중국과 인도의 인접지역은 히말라야 산맥 지류의 고산지역으로 네팔과 부탄의 두 나라가 자연스레 거인 국가들을 갈라놓고 있지만 동쪽으로는 시킴 지역과 부탄에 인접한 인도령 아르나찰프나데시주 주변을 둘러싼 변경, 그리고 서쪽으로는 중국과 파키스탄을 연결하는 악사이친 회랑지역이 항상 분쟁의 불씨로 남아 있으면서 실제로 지난 수 십년 간 몇 차례의 군사충돌이 있었으며 최근에는 2017년 6월 춤비 계곡의 동트람 지역에서 벌어진 전투로 인하여 수백 명씩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특히 중국 입장에서는 야심적으로 추진하는 일대일로(BRI, Belt & Road Initiative)의 주요 투자국가인 파키스탄과 연결하는 인도 경유의 수송통로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태에서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면서 양국간의 긴장과 대립이 매우 높아진 상태였다. 

 

국경분쟁

분쟁직후 모디가 백악관을 방문하여 트럼프를 끌어안은 당시, 이를 보도한 신문자료를 살펴 본다.  

2017.06.27일(현지시간)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미-인도 정상회담이 이뤄진 전날 중국과 인도 동북부에서 도로를 건설하던 중국군 부대와 인도군 부대 간 충돌이 빚어졌다. 이 사건을 다룬 27일자 중국 관영언론 환구시보에는 “인도는 중국 앞에서 거만을 떨 주제가 아니다. 국내총생산은 중국의 4분의 1이고 군비투자는 3분의 1이니 중국과의 국경 분쟁은 조심히 접근하는 게 최선” 이라는 사설이 실렸다. 관영언론으로는 지나친 표현이다. 마찰이 발생한 지역은 인도와 중국이 서로 영유권을 주장하는 국경분쟁지역 중 하나인 춤비(春丕)계곡으로 부탄과 인도 영토 시킴(Sikkim)을 연결하는 핵심 길목이다. 중국 견제를 위한 전략적 동반자로서 인도를 중시했던 오바마 대통령과 달리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한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ㆍ기후변화 등 의제에서 모디 정부와 입장 차이를 드러내 왔지만, 26일 회담에서 모디 총리는 “미국의 번영과 성공이 인도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선언해 사실상 ‘미국 우선주의’에 지지를 표명하는 것으로 트럼프를 구워 삶았다. (이상인용).

모디는 국경분쟁으로 갈등중인 중국을 견제하기 위하여 불만스러운 트럼프를 끌어안고 사진을 찍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일방적 미국우선주의를 비난하고 세계경제포럼에서 개방적 자유무역 원칙을 옹호한 시진핑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지지해 왔다. 결국 나날이 심해지는 미국 중심의 일방주의에 크게 실망한 인도는 미국 일변의 의존관계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중국과 러시아 등과 협력관계 구축이 간절했고 이를 위하여 수십 년간 지속된 중인(中印)국경분쟁부터 종식시킬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우한의 회동을 통하여 양국 지도자들은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일체의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하여 문제의 분쟁지역에서 정기적인 군사합동 훈련을 실시하고, 만약을 대비하여 항시적인 대화채널을 유지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번째는 미국과 일본이 수 년째 공을 들여온 중국봉쇄전략에 일방적 편입을 거부하고 다변다극한 국제정세의 흐름 속에 인도의 독자적인 입장을 굳건히 했다고 보여진다.

특히 일본은 지난 10여 년간 미일을 중심으로 한 태평양 동맹에 한국과 호주를 넘어서 인도를 편입시킴으로써 중국의 진출로가 인도양과 태평양으로 확장되는 것을 봉쇄하고 아시아 권역에서 일본의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인도와의 전략적 수준의 협력을 만들어 내기 위하여 엄청난 공을 들여왔다.  

2015-2-30에 보도된 불룸버그의 보도내용을 살펴보면, 모디 수상과 아베 수상 간 정상회담을 통하여 미국을 대신한 듯 핵실험 중단에 따른 민간 핵기술 협력, 150억 달러에 달하는 고속 철도 건설, 경제개발 촉진을 위한 124억 달러 자금지원 그리고 중국의 해양확장을 막기 위한 해군 훈련 등을 합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이후 인도는 인도양에서 미일과 함께 연례적인 대대적인 군사훈련을 실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미국에 대한 실망이 커지고, 더불어 일본이 약속한 경제지원과 고속철도의 공사 등이 여러 가지 이유로 지지부진하여 지면서, 인도는 미일의존관계를 벗어나 기존의 BRICS관계망에 더하여 상해협력기구SCO, 아세안 안보포럼 ARF, 유럽연합 등으로 다양하게 접촉을 넓혀가면서 다변적 균형을 추구해 가는 행보를 보여 왔다.

한마디로 시진핑과 우한에서 양인이 단독으로 사전의 아젠다 없이 만나 흉금을 열고 부담없이 대화를 나누었다는 사실의 메시지는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중국봉쇄 전략에 인도가 가담하지 않고 균형적이며 독자적인 행보를 유지하겠다는 것을 전세계에 천명한 셈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양인의 회동이 중요한 것은 인구가 각자 13-14억에 달하는 거대한 양국이 지난 2백여 년간의 서세동점 속에 수모와 비참함을 벗어나 매우 빠른 속도로 발전을 성취해 가고 이들 양국이 과거 인류역사에 차지했던 정치적 경제적 비중이 되살아 나면서 향후 국제사회와 미래의 향방에 거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점에 있다.

이러한 관점을 아래의 두 개의 도표가 정확히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gdp
도표1. 영국 연구기관에서 작성한 지난 2,000년간의 GDP 비중

도표2. 산업혁명 이후 2015년 까지 GDP 비중의 변화 by ECRI(Economic Cycle Research Ins.)

도표2. 산업혁명 이후 2015년 까지 GDP 비중의 변화 by ECRI(Economic Cycle Research Ins.)

도표1은 지난 2,000년간의 경제비중을 보여주는 곡선의 조합으로 영국에서 작성한 탓인지 인도의 비중이 우리가 추정하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크게 나타나고 있고, 압도적 제국이었던 당(唐)과 인류 최초로 상업의 시대를 연 송(宋)나라 그리고 청(淸) 3현제 시대의 풍요로 40% 수준 이상의 비중을 차지했을 것으로 추정하는 중국의 수치가 상대적으로 적게 표현된 것으로 보인다.

산업혁명이 있기 전까지 지난 18세기 동안 중국과 인도의 경제적 비중이 전세계의 50-60% 수준까지 육박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역으로 19세기 이후 2세기간 유럽과 미국 그리고 러시아를 포함하여 구미 지역이 번성을 구가하면서 약 50-60% 수준의 비중을 차지하다가 근래 들어서 급격히 축소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도표2를 참조하고 이를 PPP기준으로 재조정하여 판단하면, 2017년 기준으로 유럽과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공히 15-17% 정도, 중국은 20%, 인도가 5-6% 수준으로 추정된다. 일본과 한국 그리고 동남아를 포함하면 아시아의 비중은 이미 50%를 넘어섰다고 할 수 있다.

현재 미국은 여전한 기술력과 군사력 그리고 달러라는 국제통화의 발권력을 기반으로 제멋대로 국제적 질서와 교역의 기준을 임의로 무시하거나 변경하고, 급기야 지난 5월 초에는 주요 국가들과 13년간 합의 통해 이룬 ‘이란핵합의’를 2년만에 일방적으로 파기하면서 이란과 협력을 지속하는 국가와 기업을 대상으로 세컨더리 제재를 가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이에 대해 세계대전의 위험까지 내다보며 외국 주요 언론들은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고 보도하고 있다.

어떤 경우에도 중동 발 세계전쟁이 없길 바라지만, 단기적으로는 미국의 제재가 이란과 관련 국가들에게 일시적으로 심각한 충격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 바라보면 결국은 미국의 급격한 퇴조와 함께 미국의 강요에 굴복한 국가들 역시 선택에 따른 상당한 부담과 손실을 감당해야 할 뿐만 아니라 합의를 깬 대가로 국제사회에서 지위가 심각하게 위축당할 것이다.

특히 중국과 인도, 그리고 러시아가 정치경제적으로 강력하게 연대하여 대응할 경우에는 미국이 가하는 충격은 대해(大海)에 잠시 이는 일과성의 파랑에 불과하며, 오히려 이들 국가들이 지니고 있는 거대한 자원과 잠재력이 향후 사태의 진행을 좌우하게 될 것으로 전망한다. 

필자는 중국과 인도의 두 지도자들이 어떤 정도 깊이의 인식에서 어느 수준의 이야기와 합의를 도출했는지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위의 도표가 지난 2,000 년 간의 기록으로 보여주듯이, 역사적 도시 우한에서 우연을 가장해 이루어진 회담의 결과로 중국과 인도의 관계가 대결에서 협력을 한층 강화하는 방향으로 자리잡게 되면, 이는 한 세기 이상 인류의 미래를 좌우하는 역사적 사건이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역사의 간계를 지금처럼 깊이 느껴본 적이 없는 필자는 중국방송에 기고된 한 칼럼의 글을 소개하면서 이 글을 맺고자 한다.

“현대 중국과 인도 양국은 서구 국가들에 비해 매우 낙후되었다. 이런 양국이 협력을 통해 발전의 시대로 들어서면, 동양의 문명이 되살아 나게 될 것이고 아시아의 새로운 세기가 열리게 될 것이다. 세계는 지난 세기에 겪지 못한 변화의 시대를 지나고 있으며 동양 문명의 재출현(부활)은 이제 되돌릴 수 없는 추세이다.”

In modern times, both China and India lag behind Western countries. If China and India develop through cooperation, it will help to revive oriental civilization and create a new century in Asia. The world is undergoing a major change that has not existed in a century. The re-emergence of Eastern civilization is an irreversible trend.”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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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시장가치 평가액이 1천억 불이라는 우버는 2018년 현재 아직도 경상이익을 실현하고 있지 못하다. 신용과 투명성이 생명인 기존의 화폐시장에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가 등장하면서 신뢰는 사라지고 투기광풍이 휩쓸고 지나 갔다. e-Platfrom이 주는 공유재적 편익을 일방적으로 취해 FAANG로 상징되는 26명의 초거대부자들이 인류 절반인 36억 명의 몫보다 많은 재산을 모으고 있다. 분명히 잘못되었고, 이대로는 반드시 큰 재앙이 닥쳐온다.

다른백년은 기술혁신이 가져오는 긍정적 전망과 무서운 화근을 명명백백히 따지고 가릴 것을 제안한다. 미래의 ICT기술과 가상의 세계가 인류를 멸망으로 이끄는 악마의 손길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보다 희망찬 자유의 영역으로 안내하기 위해서는 이제 무엇인가 국제적인 합의와 규제가 필요한 시점이다. 수십만 명의 운전 기사들의 생계를 협박하는 카카오 택시앱은 정당한 것인가? 아래의 글은 수 주전에 파이낸스타임즈(FT)에 실린 칼럼을 번역한 것이다.


우리는 신용 순환의 후기에 있으며, 현재 너무 많은 돈을 실제적으로 너무 적은 가치에 쏟아 붓고 있다.

몇 주전에 있었던 세계 경제 포럼과 현실세계 사이에는 크나큰 간극이 있었다. 가장 주목받은 점은 많은 사람들이 기술적 낙관주의를 표명했단 점이다. 그러나 시장이 기술 분야에서 기대하고 있는 바는 확연히 다르다. 연발되고 있는 신규 상장은 특히나 더 불안해 보인다.

우버의 대표이사인 코스로샤히는 다보스 경제포럼의 유명인사였다. 그는 얼마 남지 않은 신규 상장 이야기를 띄우려 애쓰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에선 다급함의 조짐이 느껴졌다. 우버, 리프트와 더불어 슬랙과 에어비앤비 같은 대규모 비공개 기술기업들은 더 늦기 전에 주식을 공개상장 할 것으로 보인다. 변덕스러운 시장의 생리와 다가오는 경기 침체, 그리고 이 회사들이 민간자금에 의지하여 너무나 비대하게 성장한 까닭이다. 시장이 이들 회사의 거대한 가치액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들은 아직 반응이 좋을 때 빨리 현금을 확보하고 싶어한다. 현재의 상황은 21세기의 벽두를 장식했던 닷컴 버블과 비슷하기도, 다르기도 하다. 당시 필자는 런던의 벤처 자금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지금은 없어진, LVMH 그룹의 지원을 받아 난립한 온라인 소매 업체들은 – 이들은 현재는 연기처럼 사라진 유럽의 펫츠 닷컴 같은 기업들이었다 – 수백만 달러를 그럴듯한 광고에 쓰고 있었고, 사업가 지망생들은 쉽게 투자를 유치해 보려고 퍼스트 투즈데이 같은 스타트업 포럼의 친목 행사를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런 행사에 가면 으레 보이던, 옷깃에 모두가 달고 있던 투자자용 빨간 뱃지와 창업가용 초록색 뱃지를 기억하는가?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 때도 우리는 신용 순환의 후기에 들어서 있었다. 당시에도 너무 많은 돈이 너무 적은 양의 가치에 묶여 있었다. 그리고 그 때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투자자들은 뜨거운 신규 상장이 빈발하던 시장을 믿고, 이미 누가 봐도 과열된 상태였던 시장에 기름을 붓고 있었다. 우리는 그 시절이 어떻게 끝났는지 알고 있다, 그 끝에 서있던 북미와 유럽에 어떤 영향을 남겼는지도 함께.

필자는 그 당시의 기술 벤처 기업들이 만들어 낸 가치가 전무하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며, 지금도 마찬가지다. 닷컴 버블의 붕괴 당시 무너진 애완견 사료 소매업자 혹은 고급 티셔츠 공급자 하나 하나에 들어갔던 돈이 다른 곳에 쓰였다면, 예건데 오늘날 구글 같은 기업들이 자본화 하고 있는 브로드밴드 케이블 같은 인프라를 여러 곳에 준설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오늘날 시장은 공유경제와 지금껏 존재하지 않던 가상 편익의 서비스가 장악하고 있다.

두 시대 간의 진정한 차이는 자본시장 그 자체에 있다. 2000년 이후 벤처 자본은 무너졌다가, 다시 회복했다가, 또 다시 금융위기 이후에 무너졌다가, 2014년 이후 기록적인 수준으로 다시 회복했다. 새로 개업한 스타트업의 숫자는 급증했다. 그렇지만 신규 상장 건수는 떨어졌다. 이는 업계의 모순에 의한 것이다. 기술발전으로 인해 창업비용은 저렴해졌으나 성공적인 경영을 위한 비용은 비싸졌기 때문이다. 이는 시가총액이 10억 달러를 상회하는, 또 다른 “유니콘(설립 10년 이내, 가치가 10억불 이상인 벤쳐)” 스타트업을 창업해내기 위한 마치 군비경쟁에 의해 일어나는 모순이다.

캘리포니아 주립대의 학자들인 마틴 캐니와 존 지즈만은 “유니콘, 체셔 고양이, 그리고 기업 금융의 새로운 딜레마” 라는 제목으로 스타트업 펀딩 업계의 변화에 대한 연구논문을 집필하면서, “스타트업 기업들은 주체 못할 속도와 적자성장, 그리고 수익성에 대한 고민은 거의 없다시피 한 급속 확장을 통해 승자독식의 역학에 불을 지피려 한다”고 썼다.

지난 5년 정도의 기간 동안, 벤처 자본의 지원을 받은 유니콘들의 숫자는 막대하게 늘어나왔다. 우버, 리프트, 스포티파이, 그리고 드럽박스 같은 회사들은 막대한 손실을 보면서도 평가가치액은 계속해서 늘려나가고 있다. 실제로 이러한 특징들은 새로운 사업 역학의 일부이다. 낮은 진입장벽은 많은 경쟁자와 시장 점유율 확보를 위한 최대한의 지출로 이어진다. 이렇게 비생산적인 순환구조 안에서 떠오른 비공개 기업들은 자연히 비대하게 팽창하게 되고, 벤처 펀드 스스로도 그렇게 비대해지고 있다. 과거엔 10억달러 규모의 벤처 펀드라는 말 자체가 없었지만, 지금 그 정도의 규모를 가진 벤처펀드는 즐비하다.

작년 한 해, 세퀘이아는 80억 달러 규모의 종자돈 펀드를 모금했고, 소프트뱅크는 1조 달러라는 경이로운 규모의 펀드를 모금해냈다. 이렇듯 큰 규모는 결국 더 큰 규모를 낳고 만다. 갈수록 더 많은 우량 벤처 자본들이 스타트업 기업들의 가치를 부풀려 버리면, 나머지는 따를 수밖에 없다. 오르거나 퇴출당해야 하는 것이다. 이로써 공개 상장 시장의 새로운 거품이 끼었을 뿐만 아니라, 건실한 수익성을 확보하려는 수 많은 공개 기업들을 평가절하하는 결과가 돌아왔다. 전형적인 예가 택시 업계에 우버가 만들어 내는 교란, 혹은 숙박 업계에 에어비앤비가 끼치는 영향이다.

이러한 상황은 “유니콘” 회사들의 부풀려진 가치를 이용해 더 많은 돈을 끌어 모으고 더 많은 수수료를 챙길 수 있는 일부 벤처 자본들에게는 좋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이러한 행태가 전체적인 경제적 가치에 어떻게 기여하는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수익성 없는 기업들이 시장을 독점하기 위해 거대한 규모의 부채금융을 동원하는 일은 몇몇 기업가와 투자자들에게 이익을 돌려줄 수 있겠지만, 이는 자본과 노동시장을 왜곡시키는데다 반(反)경쟁적이기까지 하다.

투자자들이 성장을 가치의 척도로 삼는 한, 이러한 행태는 계속 될 것이다. 하지만 캘리포니아 주립대의 학자들이 이야기했듯, “유니콘은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동물이다.” 이번 해는 “유니콘”들이 처한 재정적인 현실과 그들이 현재 취하고 있는 자금 조달 모델의 안정성이 매우 중요한 시험대에 오르는 한 해가 될 것이다. 과대평가된 회사들이 내놓는 새 성과물들은 결국 체셔 고양이가 되어 버리고, 버블이 붕괴하기 전 시장에서 빠져 나온 몇몇 이들의 웃음만을 남긴 채 사라져 버릴 것이다.

 

파이낸스타임즈(FT) 칼럼

수, 2019/03/13-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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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노골적으로 정치적인 책이다. 샹탈 무페는 이 책을 ‘포퓰리즘 계기가 드러내는 현재 정세의 본질과 도전을 좌파가 시급하게 이해’하고, 지금이 좌파가 신자유주의 우파의 권력독점을 깨고 민주적 권력을 창출하는 최적의 기회임을 알리려 썼다고 밝힌다. 그렇다면 무페는 왜 이토록 시급한 주장을 좌파를 향해 펼칠까? 무페에게 신자유주의가 지배해 온 지난 40여 년간 (무페는 자신의 분석을 서유럽으로 제한한다) 서유럽에서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정치적 무능력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나아질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이 변함없이 무능력한 정당들은 권력 장악을 위해 신자유주의 아래 금융 자본주의의 강제적 명령을 수용하면서, 정치를 우파와 좌파 엘리트 집단 사이 ‘중도적 합의’로 축소해 버렸다.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와 1985년에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을 쓸 때만 하더라도 서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당에 대한 무페의 생각은 이 정도로 절망적이진 않았다. 그러나 소비에트 해체 이후 사회민주주의 정당 스스로 신자유주의에 갇혀 대중주권과 평등이라는 민주적 이상 추구를 포기하고, 대중들의 탈정치화를 촉진했을 때, 무페의 생각은 크게 달라졌다.

사진: 한겨레

<좌파 포퓰리즘을 위하여>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악화한 신자유주의 맥락에서 변질된 사회민주주의 정당을 넘어서는 민주주의의 급진화를 위한 좌파의 새로운 과제를 주장한다. 이 새로운 좌파의 과제는 무능력한 기존 좌파의 회생이 아니라, 신자유주의가 만들어 낸 통제불능의 사회경제적 양극화, 불평등 확산, 부채 증가, 나쁜 노동의 확산, 젠트리피케이션 심화 등 이미 자정능력을 상실하고 점점 심화하는 자본주의의 약탈 행위를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 과제는 또한 우파 포퓰리즘이 외국인 혐오, 인종주의, 사회적 약자 차별 등 반인권적이고 배타적인 가치를 내세워 헤게모니를 장악해 가는 것을 저지하고 민주적 가치를 복원하는 대안 헤게모니 세력을 세우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제는 전통적 좌파처럼 노동자 계급을 절대화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 이와 달리, ‘노동자 계급’ 정체성은 다양한 가치와 어떻게 접합되는가에 따라 민주적 가치와 부딪힐 수도, 가장 민주적이고 대중적인 주체가 될 수도 있다. 노동자 계급은 모든 세계시민의 수평적 관계를 나타내는 정체성이 되거나, ‘국민’과 결합하여 가장 폐쇄적인 정체성이 되는, 즉 좌·우파 포퓰리즘 어느 특성도 가질 수 있다. 따라서 새로운 좌파의 과제는 신자유주의라는 전 지구적 신조와 헤게모니가 유기적 위기에 처하고, 정치사회적으로 도전받는 ‘포퓰리즘 계기’에 좌파가 전통적 전략이 아닌 새로운 정치전략을 통해 시급히 개입해 들어가는 것이다.

새로운 정치전략은 곧 좌파 포퓰리즘 정치이다. 우선 무페는 포퓰리즘이란 ‘사회를 두 진영으로 분리하는 정치적 경계를 구성하고, ‘권력자들’에 맞선 ‘패배자들’의 동원을 위한 담론 전략’이라는 라클라우의 정의를 따른다. ‘국민’, ‘민족’, ‘인종’처럼 수평적으로 확장될 수 없는 폐쇄적이고 차별적인 정체성과 결합한 우파 포퓰리즘이 정치사회적 배제와 차별화를 통해 권력을 획득하는 시도라면, 좌파 포퓰리즘은 이에 맞서는 전략이다. 좌파 포퓰리즘은 한가지 정체성이나 가치를 중심으로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경계를 형성하지 않고, 평등주의적 대중주권을 내세운다. 이 정체성은 다른 정체성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서로 등가 관계를 형성하고 이 관계를 보다 다양한 정체성과 민주적 가치로 끊임없이 확산한다. 이를 통해 ‘대중’의 새로운 민주적 정체성이 구성된다. 따라서 좌파 포퓰리즘은 전체주의적 경향의 우파 포퓰리즘과 달리 하나의 정체성을 절대적 대표로 인정하지 않는 반본질주의 입장에서 민주주의의 급진적 확장을 추진한다. 이 새로운 정체성의 ‘이름’이 바로 새로운 헤게모니, 그리고 이 특수한 좌파 포퓰리즘의 이름이 된다. 이렇게 탄생한 새로운 ‘대중’은 소유적 개인주의 및 대의제의 자유주의와 끊임없이 경합하며 탈정치와 과두제의 포스트 민주주의에 저항할 수 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서유럽을 먼저 장악해가는 우파 포퓰리즘이 대중을 사로잡은 공감 방식이다. 이것은 좌파의 무능력이기도 하다. 그간 좌파는 우파 포퓰리즘 정당의 승리를 그 지지자들 탓으로 돌리면서, 우파가 지지자들의 마음을 얻은 방식에서 교훈을 얻기를 꺼려했다. 무페는 ‘자신들의 문제에 신경 써주는 유일한 자들이 우파 포퓰리즘 정당뿐이라고 느끼기 때문에 이 정당들에 마음이 끌리게 되는 사람들도 있다’고 본다. 물론, 혐오와 차별이 보편 가치가 될 수 없기에 우파 포퓰리즘 정당의 수사적 표현은 진리와 충돌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좌파가 평등주의적이고 민주적인 목표를 추구한다면 지금과는 다른 언어적 표현으로 대중과 정서적 공감을 해야 한다.

잘못하면 포퓰리즘의 이론적 논쟁은 걸리버 여행기의 달걀 논쟁이 될 수 있다. 지금은 훈고학적 논쟁보다 어떤 이름으로 드러나든 민주주의의 급진화를 통한 좌파 포퓰리즘 정치의 출발이 시급하다. 그렇지 않으면 배제와 차별의 우파 포퓰리즘의 승리가 분명해지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살아남은 모든 자의 몫이 되기 때문이다.

 

교수신문, 2019년 3월 12일에 게재된 글입니다(필자가 공동게재에 동의하여 실린 것임).

 

이승원

서울대·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

월, 2019/03/18-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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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주:

북은 올해 1월 1일 신년사에 이어 1월 23일에는 신년사 관철을 위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정당, 단체 연합회의’를 개최하였는데, 여기서 4개항의 <전체 조선민족에 보내는 호소문>을 채택했고, 그 중 4항이 “전민족적 합의에 기초한 평화적인 통일방안을 마련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진지한 노력을 기울여나가자!”였다.

그래서 이 글은 그 화답의 의미도 있지만, 그런 북의 호소가 아니더라도 한반도에서의 통일문제는 시급한 문제이다. 비정상성의 분단 70여년이라는 그 세월과, 또 그런 상황을 극복해야 될 (역사적) 소임이 촛불정부(촛불정부임을 자임하는 문재인 정부)에게는 분명히 있어서 그렇다. 그런데도 이 정부는 ‘평화’ 프레임에만 갇혀 통일의 ‘통’자도 꺼내지 못한다.

그런 만큼, 이 글은 문재인 정부가 다시 궤도지표를 재설정해내기 위한 그런 강제의 역할과 촛불민심의 통일열망을 재구축하기 위한 시론성격으로 구성되었음을 미리 밝혀두고자 한다. 그리고 그 결과에는 정부, 시민사회, 해외가 함께하는 통일방안 합의에 작은 촉매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통일은 운동권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던 담론이 지금은 진보든, 보수든 누구나 다 통일을 얘기하는 상황까지 왔다. 그만큼 진화해왔음을 상징하고, 국민적 동의도 확산해왔음이다. 그렇게 통일 단어 그 자체가 금기시되는 않는다.

그러나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지금의 문제는 보수는 통일문제를 정략적으로 이용하고, 진보는 통일담론을 보다 성숙하게 진전시키는 힘을 상실했고, 이후 통일의 주역이 되어야 할 청소년들은 자신들의 미래 삶과 직결된 통일문제에 대해 관심이 없다. 통일 문제는 이렇게 다른 양상으로 논쟁의 지점을 양산해내고 있다.

해서 보수에게 이런 질문을 해본다. “당신들은 왜 통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정말 궁금하다. 그들이 과연 진정으로 통일할 생각이 있는지? 통일을 다 외치고 있다고 하여 다 같은 통일의 모습은 아닐 것이며, 정략적이지 않다고 할 보장도 전혀 없다. 억울하다면 곰곰이 한번 생각해보시라. 통일을 하자면서 북과 적대관계를 청산할 생각은 전혀 없고, 더 나아가 북의 사회주의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통일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과연 그것이 통일할 의사가 있다고 봐야 하는가, 아니면 없다고 봐야 하는가? 그 질문에 당신들은 분명 대답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섣부른 낙인일지는 모르나, ‘사실상’통일을 원치 않는 그런 정치적DNA를 갖고 있으면서도 국민을 현혹하고, 집권을 위한 표가 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런 정략적 위장을 해야만 한다고. 그렇게 이해가 된다.

그러니 그 어찌 그들에게 통일을 기댄다는 것이 연목구어(緣木求魚)와도 같지 않겠는가. 적어도 그들의 정치적 생리와 체질을 바꾸지 않는 한 그렇다는 말이고, 그 상황에서는 그들의 통일문제는 언제나 정략적일 수밖에도 없을 것이다. 또한 그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통일의 ‘통’자 의미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분명한 이유도 있다. 지금까지 걸어온 그들의 길을 봐서도 그러하고[전국적 범위(한반도 전역)에서 자주권을 회복하는 과정이 통일이라 했을 때 사대에 찌 들릴 대로 찌 들리고, 반북·종북·반공소동을 밥 먹듯 일으키는 그런 세력이 과연 통일을 감당해낼 충분한 역량이 있다고 볼 수 없어서 그렇다.], 통일이라는 것이 근본적으로 민족적 관점에서 이행되는 통합과, 외세에 의해 분단된 상태를 정상적으로 되돌리는 과정을 반드시 수반. 즉, 민족적 단합과 단결을 실현하는 민족적 쾌거인데, 이를 보수수구세력들이 정말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믿겠는가?

단연코 역량은 모자라고, 문제를 풀어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정상적이다. 이는 백번 양보하여 보수수구세력이 통일운동 본령 상 전민족인 대단합과 단결의 일 주체인 것은 분명 맞지만, 그렇다하더라도 과거의 시각에서 헤어 나오려 하지 않는 한, 그들은 절대 통일운동에 있어 ‘진정성’있는 주체가 될 수는 없다. 그런 태생적 한계가 극복되지 않는 한.

바로 그 연장선상에서 그들에 의해 마련된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도 진정한 통일방안이라 할 수는 없다. 그렇게 ‘허위’방안으로만 존재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 통일부가 통일을 얘기하지 못한다?

불편하지만 UN 가입국 중 유일한 분단국으로는 남(대한민국)과 북(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있고, 또 남과 북에는 통일업무를 관장하는 정부부서를 두고 있기도 하다. 남은 통일부라고, 북은 통일전선부(약칭, 통전부)라 부른다.

그러다보니 우리가 망각하는 것이 하나 생겼다. 착시하는 것이 하나있다는 말인데 다름 아닌, 국가가 ‘통일’자가 들어가는 그런 부서를 두고 있으니, 그 어느 정부부처보다도 ‘통일’을 열심히 추진할 것이라고 보는 그런 시각이다.(북도 그런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대한민국의 통일부는 그렇다는 말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결론적으로 그런 기대와 실재는 같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그런 통일부가 전혀 그런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한다는 말인데, 일례로 촛불정부임을 자임하는 지금의 문재인 정부조차도 통일부는 ‘통일’을 얘기하지 못하고, ‘교류·협력’만 말하고 있으니 그렇지 못한 정권하에서는 두말하면 잔소리이지 않겠는가.

그 전제하에 좀 더 구체적으로 문재인 정부의 예를 들어보자.

그 첫째에 문재인 정부의 국정슬로건에 따른 제한성부분이다. 연동은 통일부의 역할을 제한하고 있다는 말이다. 국정과제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에 갇혀있으니, 통일부가 통일의 ‘통’자를 꺼내기가 여간 버급을 수밖에 없다. 결과도 통일부는 통일부 고유의 역할인 ‘평화적 통일을 진전’시키는, 즉 분단을 극복하기 위한 범국민적인 통일방안이나 활성화 대책 뭐 그런 것을 논의하고 이행시키기보다는 개성공단 재가동, 금강산 관광 재개와 같은 그런 교류·협력에만 시름하고 있는 것이다.(이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논의의 취지를 그렇게 왜곡시키지 않았으면 한다.)

사실 보기에 따라서는 이것도 이 정부-문재인 정부 하에서는 벅찰 수도 있다.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고, (이글을 쓰고 있는)현재까지도 미국은 대북정책 통제장치인 한미워킹그룹을 두고 간섭하고 있어서 그렇다. (‘통일’을 얘기하지 못하는) 그 두 번째 이유가 그렇게 발생한다.

분명한 예도 있다. 제아무리 많이 양보하더라도 통일의 문제가 분단 그 자체는 외세의 개입으로 인해 발생한 것은 맞지만, 이를 극복하는 과정은 철저하게 민족내부의 역량문제를 그 본질로 하여 풀어나가야 할 그런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도 미국이 하나하나 다 간섭한다? 뭔가 정상적이지 않다. 과연 주권국가가 맞나할 정도이다.

백태현 통일부 대변인의 3월 13일에 정례브리핑을 한번 들어보자. 그날 그는 “개성공단 기업인 방북, 한미워킹그룹 논의 후 결정”이란다. 그렇게 민족내부의 문제, 그것도 경협과 관련되어 방북하는 것조차도 워킹그룹의 승인이 이뤄져야 방북할 수 있다니 다른 것(사안)들은 더 말해서 뭐하겠는가? 이것이 주권국가 대한민국을 자임하는 현주소다.

참으로 딱하지 않다고 할 수 없고, 지금의 통일부가 이 정도이니 과거의 통일부는 말해봤자 뭐 하겠는가? 그렇게 물을 수밖에 없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대한민국의 통일부는 이렇듯 통일부라는 명칭을 달고는 있지만,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미국의 눈치는 물론이고, 국내 정부부처 중에서도 외교부와 국방부 사이에서 그 뒤치다꺼리나 하는 그런 청소역할과 독자적 존재감은 거의 제로에 가까운 식물부서에 다름 아니다.

그러다보니 과거에는 기껏 한다는 것이 종북논쟁이나 유발시키고, 통일을 하자면서도 사실상은 그 길을 가로막는 반북·반공이념의 전파에 혼신 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교류·협력을 얘기하면서도 흡수통합 그 실현을 위해 북을 고립·압살시키는데 앞장섰다. 이렇듯 부서의 정체성 훼손은 비일비재했다. 통일부의 존재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그렇게 통일부가 스스로 만들어왔던 것이다. (이 정부 하에서는 제발 좀 달라야 할 텐데…)

 

2.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비롯한 역대정부의 통일정책, 과연 그 진정성은 있었을까?

결론적으로 그 어떤 정부도 진정성이 없다고 봐야 한다. 이 또한 문재인 정부의 사례를 확인해보면 금방 그 진실이 드러난다. 그리 어렵지 않는 문제이고,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는 말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이미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을 했고, 올해는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이 예정되어 있다. 그리고 실제 답방이 이뤄지면 제4차 남북정상회담이 된다는 것은 이미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다. 사실이 그러하니까.

그런데 문제는 이 회담이 주권국가의 정상회담이라는 성격과, 민족관계로서의 최고위급회담(민족대회합)이라는 그런 측면에서의 성격이 병렬적으로 존재한다면 그런 회담을 북미회담의 종속회담 그런 회담으로 만들어서는 절대 안 되는 것이다.

독자적으로 남북이 풀어나가야 할 근본문제, 한반도 비핵화문제와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 논의뿐만 아니라 분단의 비정상성을 통일의 정상성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그런 논의도 함께 병행해야 되는 것이다.

누가 봐도 그것이 정상적이다. 하지만, 분명 쉽지만은 안을 것이라는 것이 그 우려이다. 이유는 문재인 정부가 미국과 보수수구세력의 눈치를 보면서 비핵화문제와 통일문제를 전면화하는 데는 매우 신중하고도 접근 그 자체를 꺼려하고 있어서 그렇다.

특히, 그 연상선상에서 통일문제는 ‘사실상의’ 통일정책이 전무해서도 그렇고, 굳이 있다면 평화정책만 있고, 백번양보 하더라도 남북교류협력정책만 있으니 그 어찌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현실적으로도 철도와 도로연결사업, 금강산 관광재개와 개성공단 재가동에만 관심이 가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 합리적 포장이 신한반도(경제)체제이다.

물론 고충이 있고, 또 그것을 모르는 바도 아니다. 한반도 평화정착을 확고히 구축해놓고, 통일의 문제를 그 다음 정권에서 시작하려는. 하지만, 그것과 통일담론 그 자체를 아예 봉쇄한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논외여서 구체적으로 언급은 하지 않겠지만, 여기에는 시민사회의 책임도 참으로 크다는 말만은 분명히 남겨놓고자 한다.)

이는 누가 보더라도 민주주의라는 것이 그런 담론의 공론화과정을 거쳐 성숙해나가고 시민의식으로 정립된다. 그러다보니 그 통과의례에는 시끄러운 것이 정상적이다. 해서 이를 두려워해서도 안 되고 두려할 필요도 없다. 그 과정을 통해 민주주의는 발전되고 성숙해나가니까 말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명명백백하게 정부는 정부대로, 대통령은 대통령대로 주어진 헌법적 책무방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헌법 제4조에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라고 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제4장 제1절 66조 ③항에는 대통령의 의무를 “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라고 명확히 하고 있다.

그런데도 미국의 ‘무조건적인’ 눈치 보기와, ‘과도한’ 남남갈등에 대한 우려, 보수수구세력의 공격 등에 대한 두려움 등이 맞물려 통일의 ‘통’자도 꺼내지 못한다? 말로는 정치를 국민중심(촛불민심)에 놓는다하였지만, 실상은 그러하지 못하고, 정략적이고 외세에 의해 가름하려하다보니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그런 현상이 되어버렸다. 아니, 어찌 보면 이 정부가 그것보다 더 무서워하는 것이 민주당정부에로의 정권재창출에 도움 되지 않는다는 그런 (정치적)셈법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즉, 민주당정권을 넘어서는 그런 촛불정부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결과가 그러하다는 말이다.

어쨌든, 그렇게 이 정부 하에서도 제대로 된 통일정책은 부활하지 못할 것 같다. 햇빛보기가 다 글렸고, 그 상황과 비례하는 만큼-민주정부 하에서도 그러니 보수정부 하에서도 더할 나위 없이 통일정책은 헌법에만 갇혀있는 그런 ‘사문화’과정과 똑같다. 백번 양보하여 통일의 ‘통’자를 설령 꺼냈다고 하더라도 이는 철저한 정파적 이해관계 반영뿐이다.

그리고 그 방향은 『역사의 파편들』(주한 미대사를 지낸 그레그 지음; 창비, 2015)이라는 책의 내용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지난 정부(보수, 민주정부 둘 다)는 공히 ‘보고 싶은 것만 보는’희망적 사고와 ‘우리가 보다 민주적이고, 잘 산다’는 체제 우월적 사고에 빠져 한쪽에서는(보수정권) 북한붕괴론에 빠지게 되고, 다른 한쪽에서는(민주당정권) 교류·협력을 전개해 나가면 북한이 ‘개혁·개방’으로 나올 것이라는 ‘집단사고(groupthink)의 오류’에 매몰된다.

특히, 앞서 강조하였듯이 임기 내내 북한붕괴론에 취해있는 정부 하에서 제대로 된 통일정책을 기대한다는 것은 마치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얻으려 한다’라는 뜻의 연목구어(緣木求魚와 전혀 다르지 않다.

멀리 갈 것도 없다. 가장 최근의 사례라 할 수 있는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 하에서의 사례는 보다 이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2010년(이명박 정권 때) 11월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비밀 외교 전문에 따르면 2009년 7월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에게 “북한은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한미 양국은 (북한 붕괴를) 기다리며 압박을 가해야 한다”고 기록되어있다. 2010년 2월에는 천영우 외교부 2차관이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 대사에게 “북한은 이미 경제적으로 붕괴하고 있고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하면 2,3년 내 정치적으로 붕괴할 것”이라고 주장한 걸로 나타나 있다.

또한 박근혜 정권 하에서의 사례도, 이 또한 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이명박 정권 때보다 못하지 않다. 아니, 거의 신앙적 수준이었다. 여러 증명자료들이 있겠으나 가장 단적인 예가 2013년 12월 21일 국가정보원 송년 모임에서 당시 남재준 국정원장이 “2015년에는 자유 대한민국 체제로 조국이 통일돼 있을 것”이라는 발언이 그것이다. 공교롭게도 2014년 벽두, 박근혜 대통령은 ‘통일대박론’을 터뜨렸고 곧 이어 통일준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과연 우연의 일치였을까?

 

3. 민족공동체 통일방안 및 문 대통령의 통일관에 대한 비판적 접근

아시다시피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적인) 통일방안은 민족공동체 통일방안(3단계 통일방안)이다. 이는 1994년 8.15기념사에서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89.9.11)을 계승 발전시켜 자주, 평화, 민주를 기본원칙으로 하는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 제시되면서 공식화되었다. 이후 역대정부가 이 통일방안을 계승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문재인 정부는 그 어떤 입장 표명도 없다.

해서 추측할 수 있는 것은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입장으로는 이 연장선상에 있다할 수 있을 것이고, 다만, 민주당정권을 계승해간다는 측면에서는 화해·번영의 한반도정책이 DJ정부의 3단계 통일방안(남북연합 → 연방제 → 완전통일)과 참여정부의 4단계 통일방안(평화구조 정착단계 → 교류협력 발전단계 → 국가연합 단계 → 통일단계) 그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좀 더 디테일하게 본다면 참여정부를 더 많이 계승하려 할 것이라는 짐작정도는 할 수 있겠다. 그러면서도 6.15남북 공동선언 2항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를 계승하려 한다는 점 정도일 것이다.

이렇게 대한민국의 보수· 민주정부가 포괄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통일방안의 기본골격은 전체적으로 통일을 점진적이고 단계적으로 이루어 나가야 한다는 그런 기조 하에 정립된 것이 분명하다. 평화구조 정착단계와 화해협력단계(혹은, 남북연합단계)를 거처 궁극적으로 1민족 1국가 1체제 1정부의 통일국가를 완성해 나간다는 그런 3단계(혹은, 4단계) 통일과정을 설정하고 있으니 이는 확실해졌다.

그리고 이를 큰 틀에서 보면(넓게 확대해서 보면) 화해협력단계(1단계)→ 남북연합단계(2단계)→1민족1국가 통일국가 완성단계(3단계), 그렇게 설정되어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먼저 화해협력단계는 남북 간의 적대와 불신을 줄이기 위해 상호협력의 장을 열어가는 단계이다. 분야별로 교류와 협력을 활성화 하면서 남북이 각기 현존하는 두체제와 두 정부를 그대로 유지한 채 분단 상태를 평화적으로 관리하는 단계이기도 하다.

2단계인 남북연합단계는 화해협력단계에서 구축된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남북 간의 교류와 협력이 더욱 활발해지고 제도화되는 단계를 일컫고, 이 단계에서 남북은 상호신뢰를 구축하면서 평화정착과 민족의 동질화를 촉진해 다가가게 설계되어 있다. 한마디로 이 단계에서는 남북이 서로 다른 체제와 정부 하에서 통일지향적인 협력관계를 통해 통합과정을 관리해 나가는 단계라 할 수 있다.

마지막 3단계인 1민족 1국가의 통일국가 완성단계는 남북연합단계에서 제정한 통일헌법에 따라 남북한 자유총선거를 실시해 통일국회를 구성하고 통일정부를 수립해 1민족 1국가 1체제 1정부의 통일국가를 완성하는 그런 단계이다.

문제는 과연 이것이 과연 가능한가? 이다.

가장 절대적으로는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흡수통합을 그 전제로 하니 절대 남과 북이 합의할 수 없는 그런 통일방안이어서 논의할 가치조차 없다손 치더라도, 백번 양보하고 선의로 해석하여 민주정부의 통일방안은 좀 긍정적으로 얘기할 수 있는 그런 건덕지라도 좀 있어야 하는데, 실상은 분단체제에서 통일체제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남과 북이 유엔에 각각 가입해있다는 것에 기초해 국가연합단계를 장기간 설정하는 것을 그 기본전제로 하고 있다 했을 때 이 또한 양국체제론의 변형 그 이상 이하도 아니게 되어 그 심각성이 크다는 것이다.

또한 6.15공동선언을 내오기는 했지만,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도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폐기하는데 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그 결과 현재 문재인 정부에 이르기까지 그 방안은 일명 ‘평화공존 논리’로 표장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러니 고민이 깊어 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쪽에서는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 존재하고 있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2000년 6.15 정상회담 때 남북은 ‘남측의 연합 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며 그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해 나기로 한 합의(일명, 연방연합제)가 있고, 거기다가 북은 그 합의에 대해 2014년 7월 7일 공화국 정부성명을 통해 남과 북은 “온 겨레가 지지하고 민족의 공동번영을 담보하는 합리적인 통일방안을 지향해나가야 한다”면서 “련방련합제방식의 통일방안을 구체화하고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야한다”고까지 했으니 이 어찌 고민이 없다 할 수 있겠는가?

거기다가 분단적폐 청산과 전 국민적인 통일방안 합의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촛불정부로서의 지금의 문재인 정부가 보여준 통일정책 형태에는 기간 문재인 정부의 행보와 태도로 봤을 때는 결코 쉽지 않는 딜레마가 놓여있어 더더욱 고민은 깊고 클 수밖에 없게 되었다. 오직, 평화담론정책에만 그 필이 꽂혀있어 ‘통일’의 ‘통’자도 이제까지 꺼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그 실증의 한 예다.

2019년 신년사에서도 ‘통일’의 ‘통’자 한자도 꺼내지 않았고, 여전히 ‘평화’에만 시선이 고정되어있음을 알 수 있다. “평화의 흐름이 되돌릴 수 없는 큰 물결이 될 수 있도록”했을 뿐이다. 1월 10일 진행된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경제이야기를 2/3정도 할애하다가 결국 ‘평화’얘기만 했다.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약속이 지켜지고 평화가 완전히 제도화될 때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겠습니다. 평화가 곧 경제입니다.”[이와 관련한 비판 글을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으면 본인의 <통일뉴스> 기고 글(2018-04-0), “2018 남북정상회담: 못다 쓴 ‘판문점선언’ 내용 채우기” 참조]

더 과거로는 문 대통령께서 2018년 1월 10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당장의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고 하였고, 그해 3월 21일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회의에서는 “남북이 함께 살든 따로 살든 서로 간섭하지 않고 서로 피해주지 않고 함께 번영하며 평화롭게 살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도 말했다. 전형적인 평화공존론 인식이다. (이를 백번 양보하여 해석하면 발언의 앞뒤 맥락상 문재인 대통령께서 통일을 반대한 건 분명 아니라 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당장의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라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통일을 해야 하지만 당장은 평화부터 실현하자”는 정도의 발언이 더 정상적이다고 했을 때 굳이 평화공존론, 양국체제론으로 비칠 수 있는 그런 발언을 선보일 필요가 있었냐는 그런 측면에서는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상황이 이러함으로 통일방안 논의를 대국민적으로, 또 제4차 정상회담 때 당국자 간 논의를 진행시켜낸다 하더라도 지난 2000년 6.15 공동선언에서 담아낸 ②항보다 좀 더 진일보된 합의문을 내와야 할 텐데, 과연 가능할까? 하는 그런 의문이 있다. 이른바 ‘연방연합(혹은, 연합연방)제로 합의하였다’로 명문화하고, 이를 대국민 설득해내어야 할 텐데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하는 그런 문제 말이다.

 

4. 나오며: 민족공동체 통일방안과 평화번영정책에 포박당해 있어서는 그 답이 없다

해서 촉구하고자 한다. 본인이 <다른 백년>, 2019-01-23일자 “2019년 北 신년사 제대로 읽기(2): 남북문제”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대한민국 정부나 정계가 통일을 먼 미래의 일로 치부하고 그저 지금은 평화유지냐 적대냐, (경제)제재냐 (경제)협력이냐 하는 그런 정도의 대립과 갈등만 생각하고 그렇게 날을 지새우면서 자신들의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염없이 ‘보내진’ 분단 70여년의 긴 시간과 세월은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즉, 이제는 통일해야 된다고 울부짖는다. 그런 측면에서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적인 통일방안인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든, 민주정부의 3단계(혹은, 4단계)통일방안이든 그 호소에 제대로 된 답변을 해낼 수는 없다.

뿐만 아니라, 통일정부수립과 주한미군과의 관계설정부분도 진지한 성찰이 꼭 필요하다. 즉, 두 관계가 양립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그런 문제가 발생 할 수 있다는 말인데, 이는 과거정부가 그러하였듯이 지금의 문재인 정부도 그렇게 마냥 무시하고 대충 얼무버린다면 진지한 통일논의와 통일정책을 펼쳐나가기가 참으로 난망하다 할 수 있다.

물론 쉬운 결론일 수는 없다. 왜냐하면 통일정부수립에 찬성하더라도 민주당은 민주당대로, 또 한미동맹 해체반대와 주한미군철수 반대를 주장하는 그런 보수적 시각을 쉽게 넘어설 수 있느냐?하는 그런 문제가 노정되어 있으니 그 어찌 어렵다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렇다하더라도 통일문제의 본령이 외세와의 관계설정을 어떻게 할 것이냐를 함의하고 있다고 한다면 이 문제에 대해 정면, 혹은 우회적인 돌파구만은 반드시 열어가야만 하는 것이다.

이유도 분명하다.

그 첫째, 분단이 외세(미국)의 개입에 의해 조성된 것이라면 그 장본인인 외세의 장벽이 철거되어야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정당하다. 둘째이유는 평화협정과 주한미군주둔이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협정은 주한미군 완전철수를 강제하게 되고, 그렇게만 된다면 주한미군 없는 통일은 상상의 영역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다만, 이 글에서는 주한미군의 성격변화를 통해 가칭)동북아평화유지군과 같은 형태로 주둔할 수 있지 않는가 하는 일각의 논의와 주장은 논외로 한다.)

이렇듯 조국통일의 본령은 외세에 의한 분단과 그 분단으로 인해 발생한 체제, 제도를 (창의적으로) 통합하는 그런 창의적인 문제이다.

이는 일제식민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 민족적 역량결집이 필요했듯이, 분단 역시 남북해외 전 민족적인 역랑이 총결집하여 민족적 단합과 단결을 내와야 하고, 그 힘으로 전국적인 범위에서 외세를 몰아내어 민족의 통일정부를 세워내어야 하는 그런 문제이기에, 1948년 남북연석회의 때와 같은 그런 상상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ver.2의 남북연석회의, 혹은 전민족적 정치대회합과 같은 그런 통전개념의 전선개념이 필요하고, 이는 문재인 정부의 과감한 통일추진정책과 시민사회의 48년 남북연석회의를 계승하겠다는 그런 운동적 의지에 의해서만 돌파 가능하다. 그 중심에 문재인 정부를 때로는 비판, 때로는 견인하는 그런 노숙한 지도력이 필요하다. 그런 한해가 꼭 되게 하자.

 

보론문재인 정부의 제대로 된 중재가가 되기 위해서는?

순항하던 북미관계가 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로 그 시계가 다시 ‘마주보고 달리는 열차’와 같은 그런 제로섬 게임이 되어가고 있다.

상황이 그렇게 심각한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그와 비례해 문재인정부의 역할은 극대화되길 원한다. 이른바 제대로 된 중재자(론)인데, 이에 대한 답이 의외로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평양에서 외신들과 한 기자회견(3월 15일)에서 나왔다. “남한 정부는 중재자(arbiter)가 아닌 플레이어(player)”라는 발언이 그것이다.

정리하면 그 첫째에, 어설픈 중재자 역할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른바 중재자적 관점에서 미국에도 양보를 요청하고, 북에게는 더 큰 양보를 요청해 그렇게 만들어지는 접점, 절충점에 대해 미리 경각심을 내보였다 할 수 있다.

그 둘째에, 그럼 어떻게? 민족공조의 관점에서 전개되는 그런 플레이어가 되란 말이다. 그리고 그 뜻은 금강산 관광재개나 개성공단 재가동을 미국이 그어놓은 선, 거기서 움츠려들지 말고 그 대북제재의 선을 넘어서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 요청은 사실 뭐 별로 새로운 것도 아니다. 뜻있는 법률전문가들, 정치인, 시민사회가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법률적으로나 상황적으로나 이 선은 대북제재 선과 관계가 없는 것이니, 문재인 정부가 촛불민심을 믿고 용기를 내어 그렇게 계속하여 (동맹국인) 미국의 눈치만 계속 볼 것이 아니라, 과감히 넘으라는 것이다. 민주당 정권만이 아니라면 못 넘을 이유가 하등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 셋째에, 정권의 속성상 한미동맹 그 자체를 완전히 무시하지는 못하더라도 한미동맹 관계의 정상화 관점에서 미국을 설득하라는 말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그렇게 자주 사용하는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민족 스스로 결정해야”와도 상통한다. 국익이 때로는 동맹의 이익과 상충할 때도 있고, 그럴 때는 제아무리 한미동맹이라 하더라도(엄청 불편하더라도) 국익관점에 서야 함을 안내해내어서 그렇다.

그 넷째에, 현상보다 본질에 입각해 중재해야 함을 의미한다. 즉, 한반도비핵화를 통한 평화체제 구축전략이 벽에 부딪쳤으면, 그 결과이자 본질인 평화를 통한 비핵화전략을 구사해야 한다는 말이다. 다시말해 비핵화 그 자체가 목적이기도 하지만, 과정이기도 하다면 비핵화는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수단이 되는 그런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해소와 불가침, 군축 등 적대관계 해소를 통해 평화를 불러오고, 또 교류협력을 통한 남북관계 진전이 신뢰를 쌓고, 그렇게 신뢰가 쌓이면 그 신뢰의 힘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추진해나갈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런 역발상, ‘평화가 비핵화를 추동한다.’ 필요할 때다. 그러면 미국을 역(逆)포위하는 그런 전략도 가능하다. 한반도평화에 동의하는 주변국, 즉 일본을 제외한 중국, 러시아와 평화협력을 강화해 미국을 설득해나가는 것 말이다.

 

통일뉴스, 2019년 3월 21일에 게재된 글입니다(필자와 협의하여 일부 수정 후 본지에 실린 것임).

화, 2019/04/02-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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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ICC 국제형사재판소는 유엔 결의와 국제사회의 요청에 따라 대규모 민족학살을 방지하고 전쟁 중에 빈번한 반인권적 비인간적 범죄행위를 추적 조사하고 처벌하고자 하는 목적에 따라 발족된 국제 기구이다. 십 수년 전부터 미국의 아프칸 침공과정에 발생한 수많은 전쟁범죄 행위 중에 몇 명의 피해자가 고발해오면서 ICC는 수 년간 이를 추적 조사하였고 명백한 증거와 문건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볼턴은 작년부터 ICC에게 조사행위를 중단하도록 온갖 협박과 경고를 보내 왔으며, 급기야 지난 주 조사단이 미국의 가해자를 면담하려 입국을 신청하는 과정에서 폼페이오는 이를 불허한다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중국과 북한 등을 민주주의 원칙과 인권의 이름으로 맹비난해온 미국 자신이 바로 반인권적 비인간적 전쟁범위를 옹호하면서 “미국과 동맹(이스라엘)의 주권과 자국민을 보호하겠다”는 명분으로 또 다른 국가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조폭스런 범죄국가 미국에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기대하는 일은 구걸행위와 다름이 없는 것 아닐까 ?


최악의 인권 유린자들이 자행하는 전체주의적 행태의 냄새가 풍긴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금요일의 언론 브리핑에서 새로운 비자 발급 제한에 대해 발표했다.(사진: U.S. State Department)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지난 금요일 트럼프 행정부에서 미국과 주요 동맹국 인사의 전범행위를 조사하거나 해당 혐의로 기소하고자 하는 국제형사재판소(ICC) 인사의 비자를 철회하거나 발행을 거부한다는 내용을 밝히자 인권 보호 운동가들은 분노를 표현했다.

이는 오늘날에도 우리의 의뢰인을 괴롭히고 있고 문서자료 또한 충분한 전범 행위의 재판에 대한 국제적 책임을 우회하려는 전대미문의 시도입니다.” – 자밀다크와르, 미국 시민자유연맹.

금요일 아침 폼페이오가 기자들에게 확인한 이러한 움직임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일어난 반인권적인 범죄들과 전쟁범죄 혐의를 밝히려는 국제형사재판소의 노력에 정면으로 대응하는 움직임이었다.

미국 시민자유연맹 인권 프로그램의 감독자인 자밀다크와르는 해당 결정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를 분명히 한 사람들 중 하나였다. 미국 시민자유연맹은 2003년부터 2008년 까지 아프가니스탄 현지에서 구금과 고문을 당했던 피해자들인 칼레드 엘 마스리, 슐레이만 살림, 그리고 모하메드 빈 사우드를 대변하고 있다.

다크와르는 “이는 오늘날에도 우리의 의뢰인을 괴롭히고 있고 문서자료 또한 충분한 전범 행위의 재판에 대한 국제적 책임을 우회하려는 전대미문의 시도입니다, 최악의 인권 유린자들이나 자행하는 전체주의적 행태의 냄새가 풍기며, 이는 또한 심각한 인권 유린을 심판할 정의를 원하는 사람들, 검사들, 그리고 판사들을 겁주고 보복하려는 뻔한 노력입니다.”라고 밝혔다.

휴먼라이프 워치의 국제 재판 담당자인 리차드 디커 또한 해당 결정을 “재판소를 괴롭히려는 터무니없는 행동이며 미국의 행위에 대한 정밀한 조사를 방해하려는 공작이다.” 라고 밝혔다. 또한 그는 국제형사재판소의 회원국들에게 “공개적으로 국제형사재판소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지지”를 호소했다.

국제 앰네스티 미국 지부장 다니엘 발슨은 그저 “인권 보호의 시계를 되돌리는 데에 혈안이 된 행정부가 국제형사재판소와 국제 기구에 가한 또 한 차례의 공격일 뿐이다”고 언급하였다. 그의 말에 의하면, 비자 제한은 “가장 심각한 수준의 인권 유린자들을 상대하기 위해 준비하는 강력한 도구” 이다.

하지만 국제 범죄자들을 겨누는 대신, 트럼프 행정부는 시선을 국제형사재판소로 돌렸다. 국제 형사재판소는 국제법에 의거하여 창설된 공정한 사법기구로서, 침략, 반인류적 범죄, 전쟁범죄, 학살 등을 증명하고 기소하여 국가적 책임을 확실히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국제형사재판소의 조사를 방해하는 것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한 정의만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국제법상 범죄의 희생자들과 생존자들을 위한 정의마저 해치는 것입니다.” – 다니엘 발슨, 국제 앰네스티 미국지부.

발슨은 이번 비자 규제가 “인권 침해를 가볍게 여기는 [트럼프 행정부의] 문화를 보여주며, 국제 형사재판소의 조사를 방해하는 것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한 정의만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국제법상 범죄의 희생자들과 생존자들을 위한 정의마저 해치는 것.” 이라고 밝혔다.

폼페이오의 발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국가 안보 보좌관이자 오랫동안 국제형사재판기구를 비판해 왔던 존 볼턴의 재판소 인사에 대한 제재 위협 이후에 나왔다. 볼턴은 지난 9월 이후 국제형사재판소가 미국 민간인 혹은 군인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저지른 범죄에 대해 계속 조사하는 형사재판기구 인사에 대한 제재를 언급한 바 있다.

국제형사재판소에 대한 볼턴의 맹비난에 이어서, 폼페이오는 지난 금요일 미국이 20년 이상, 공화당 정부와 민주당 정부를 막론하고, 국제형사재판소의 회원국이 되기를 거부해 왔음을 밝히며, 그 이유로 “광대하고 무책임한 기소 권한이 미국의 자주권을 위협한다”는 점을 들었다.

폼페이오는 또한 “재판소가 종국에는 정치적인 이유로 미국인을 고소하려고 할 수 있다”는 경고를 보내며,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과 동맹국의 군인과 민간인들이 우리 나라를 보호하기 위해 한 일에 대해 부당한 기소를 당할 공포 속에 살지 않도록 보호하기로 단단히 마음먹었다”고도 밝혔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이러한 비자 제한 조치는 국제형사재판소가 이스라엘을 포함한 우리 동맹국의 인원을 쫓지 못 하게 하는데 쓰일 수도 있으며, 해당 정책의 시행은 이미 시작되었다.” 고도 전했다.

 

Jessica Corbett

Common Dreams의 전속작가

화, 2019/03/19-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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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주한미군측이 성주 지역의 사드 배치에 대한 환경평가 요청자료를 제출하면서 최근 사드 문제가 잠시 언론에 언급되었다. 기실 하노이 회담이 성과있게 이루어졌다면 이후 중국측이 사드 철수를 공식적으로 재론할 수도 있었으나, 회담이 무산이 되면서 이슈가 일단 잠복한 상태이다. 아래의 글은 한국 국방연구원 김박사가 시드니 소재의East Asia Forum에 영문으로 기고한 내용을 다시 한글로 번역한 내용이다.

영원히 침몰하지 않는 항공모함이라 평가되는 내륙의 평택 군사기지와 한때 미군 최신형 구축함 운용의 모항으로 검토되었던 제주도 강정 해군기지와 더불어 중국전역을 탐색할 수 있는 성주의 사드 배치로 인하여, 한편에서는 찰떡 같은 미일동맹의 전방적 방어지역으로 다른 한편에서는 대국간 패권싸움 가운데 미국의 대중봉쇄 최전선으로, 한국이 중국측에게 잠재적인 군사 적성국으로 평가될 소지가 있다. 아래의 글에 유념하는 이유이다.


미국 사드(THAAD) 방어 시스템은 현재 남한과 중국 사이의 뜨거운 외교적 문제이다. 남한은 2016년 북한의 위협이 커져가는 가운데 사드를 배치하기로 결정했으나, 중국측은 해당 시스템의 레이더가 자국의 영토를 침투하며 지역의 안보 균형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이유를 들어 걱정하고 있다. 북미간의 두 번째 정상회담이 진행된 가운데, 해당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었다.

초기에 중국은 사드 배치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를 냈고 남한이 시스템을 철수시켜 주길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이후 16개월이 넘는 비난과 불화가 뒤따랐다.

해당 분쟁으로 인해 양국간의 관계는 악화되었고, 이로 인해156억 달러에 이르는 손실과 한국의 대중감정 악화라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설문조사 결과 2018년 한 해 동안 중국에 대한 호감은 24.1%에서 15%로 떨어졌다. 2년 전 대중 호감도는 33.5%에 달하던 바 있다.

결국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12월 베이징을 방문해 사건을 원만하게 수습하려 노력했다. 표면적으로 한중 관계는 어느 정도 회복되어 가는 듯했다.

양국은 2018년 전략적 동반자 관계 수립 10주년을 기념했다. 양측은 미래 지향적인 상호관계 구축을 위한 토론의 기회를 만들려 애썼고, 특히 정치 부문에서의 신뢰를 쌓고 한반도 이슈에 대한 전략적 소통과 실질적 협력을 확대하는 데에 중점을 두었다. 한국을 방문하는 중국인 관광객 숫자는 서서히 회복세를 보이고 있고, 한국의 대중 컨텐츠 수출 또한 제자리를 되찾았다. 사드 갈등으로 인해 중국에서 경영상 어려움을 겪었던 한국의 슈퍼마켓 브랜드인 롯데마트는 대부분의 점포 매각을 완료한 상태다.

하지만 갈등은 연기됐을 뿐, 해결된 것이 아니었다. 양 측 모두 문제를 지연시키고 미래의 어느 시점에 문제를 해결하길 선호하고 있다. 이 문제는 서울과 베이징 사이의 뜨거운 감자로 어느 때고 다시 떠오를 수 있으며, 특히나 비핵화 협상이 진행되면서부터는 그럴 가능성이 더 높다..

중국은 사드 배치가 자국의 전략 및 안보 이익에 반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단호한 입장이며, 해당 문제를 언젠가는 제대로 해결하길 바란다고 말 하고 있다. 이는 상황이 변한다면 사드 시스템을 철수시키라는 요구로 읽힐 수도 있다. 여러 번의 남북 정상회담과 2018년 6월에 있었던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 그리고 2차 북미 정상회담은 그러한 변화를 시작할 기회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일부는 사드 체계에 대한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어떤 상황이 되어서야 한국이 사드 체계를 철수시킬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상호적 이해가 없는 상태이다. 이 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남한은 자국의 KAMD 시스템이 가진 요격능력이 북한의 다양한 탄도 미사일을 방어하는 데에 다양한 제한 요소가 있다고 느끼고 있다.

사드 시스템은 한국군이 구축하고자 하는 수준 높은 다중 고도 방어 능력을 제공한다. 현재 저고도를 담당하는M-SAM, 패트리어트 요격 시스템과 더불어 KAMD의 세단계 방어시스템을 이루는 L-SAM (장거리 지대공 미사일)은 최근의 시험비행에서 발견된 기술적 문제 해결을 위해 배치가 지연되고 있는 상태이다.

미국으로선 한반도에 배치된 미군 병사들과 그 가족들을 보호하기 위해 사드가 필요한 입장이다. 2018년 6월 미 의회 상원에서 개최된 인준 청문회에서 주한 미 대사 해리 해리스는 “북한의 탄도미사일 위협이 없어진다면 한국에 사드를 배치할 필요가 없다” 고 이야기한 바 있다. 즉, 이 상황은 북한의 미사일 위협이 완전히 제거될 때까지 유지 될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결국 사드 배치에 대한 옹호는 비핵화 협상이 북한의 대륙간 탄도미사일 뿐만 아니라 중거리 탄도미사일의 폐기까지 다루지 않는다면 지금 이대로일 가능성이 높다.

당분간 사드 배치를 둘러싼 논쟁은 쉽게 가시지 않을 것 같아 보인다. 또한 한국은 동북아에서 힘을 키워가는 중국에 대항하기 위해 미국과의 군사적 협력을 강화 하라는 압력을 받게 될 것이며, 한국은 북한 억제 그 이상을 계획하는 미국의 동북아 전략과 한미동맹을 결부시키려 할 지도 모른다.

 

김지나(Jina Kim)

한국 국방연구원 연구원
연세대학교 국제대학원 객원교수

수, 2019/03/27-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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