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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권력, 평가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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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권력, 평가국가

익명 (미확인) | 수, 2018/05/23- 23:43

코이카(한국국제협력단) 등이 지원하는 동남아 국제개발 사업에 참여했던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옆의 외국 단체는 모두 사업을 어떻게 잘할 것인가 토론을 많이 하는데 한국 팀들은 각자 컴퓨터 앞에 앉아 보고서 쓰기에 바쁘다고 한다. 외국의 한국학 연구소에 관계하는 교수들은 한국 정부의 연구지원비를 받으려면 보고할 것이 너무 많아 짜증나서 다시는 지원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실제 정부가 발주하는 각종 공모 사업을 하다 보면 지나치게 까다로운 영수증 처리 작업에 질릴 정도다. 마치 “너희는 돈을 떼먹을 준비가 되어 있지”라는 의심을 받으면서 구차한 돈을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된다.

지난 몇달 동안 한국의 모든 대학의 대학평가 담당 교수들은 교육부에 제출할 서류 준비에 날밤을 지새웠다. 그런데 그들을 더 힘 빠지게 만든 것은 점수 0.1점을 올리기 위한 각종 그럴듯한 ‘말 만들기’ 작업이었다. 그 알량한 정부 지원금에 목을 맨 대학의 슬픈 풍경이다. 그렇게 해서 지원을 받게 된 대학과 탈락한 대학의 교육 성취가 실제 크게 다를까? 그래서 지원을 독식한 대학들이 정말 한국 대학교육을 선도하고 있을까?

‘진보’ 교육감이 들어서고 정권이 바뀌어도 교육당국에 제출할 각종 보고사항 처리나 지원비 따내는 일에 머리를 맞대느라 중고등학교 선생님들은 여전히 수업과 학생지도를 뒷전으로 돌려야 한다. 교사들 사이에서 교육문제를 토론하는 일은 오래전에 사라졌다고 한다. 그런데 교육부는 교사를 평가하고, 교사는 학교생활기록부를 채우기 위해 학생의 모든 활동을 평가한다. 지금 학생들은 평가받으러 학교에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두 번의 평가 결과에 따라 개인과 조직의 운명이 좌우되는 사회에서 평가자는 수치화된 점수나 등급 매기기 시험을 선호하게 된다. 그래서 애초에는 졸업장을 자격증으로 인정하자는 로스쿨 변호사 양성 제도도 결국 시험 제도로 퇴행했고, 시험을 거쳐 입사하지 않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도저히 못 받아들이겠다는 공기업 정규직 청년들의 분노가 거세다.

예산을 집행하는 관료들은 예산을 공정하고 투명하게 집행하려면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 변명할 것이다. 수량화된 점수로 등급을 매기지 않고서는 이해 당사자들이 그 결과에 승복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정, 절차가 해당 조직의 미래와 존립의 이상을 압도하면 자발성과 창의성의 싹은 아예 자랄 수도 없을 것이다. 지난 20여년 동안 한국은 관료적 형식주의와 신자유주의적 효율성의 논리가 완벽하게 결합하여 성과 평가의 큰 칼이 모든 학교, 정부, 공기업의 문화를 지배하는 ‘평가국가’가 되었다. 평가 절차가 빈번하고 평가 방식이 더 정교해질수록 평가자 즉 관료의 권력은 더 커지고, 평가받는 쪽은 더 무력화되며, 그들의 온 삶은 피폐해진다.

물론 평가권력의 창궐은 사회의 도덕적 진공 상태와 맞물려 있다. 한국에서 시험 성적, 정량평가 방식이 이렇게 위세를 떨치는 이유는 그것 외에는 믿을 만한 사회정치적 권위체나 이상이 없기 때문이다. 정치권, 사법부 등에 대한 신뢰 수준이 언제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거의 최하위에 머물러 있는 불신사회에서 평가권력의 힘은 더 커진다. 특히 시민사회의 자정능력이 약하고 전문가 집단의 직업윤리가 없다는 것이 큰 원인이다. 직업집단 자체의 이상과 성취의 기준이 없으니 평가권력이 개입해서 본말이 전도되는 현상이 생긴다.

평가 만능주의는 구시대의 자의적 권력행사보다 진일보한 것처럼 보이나, 그것은 ‘합리’의 이름으로 ‘비합리’를 은폐할 수 있다. ‘기회의 평등’ 없이 ‘과정의 공정’은 허구적인 것이다. ‘실적’을 말하기 전에 그 실적이 무엇에 쓰기 위한 것인지 먼저 물어야 한다. ‘단기적 실적’, ‘성과’, ‘경쟁력’을 내세우는 평가권력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바로 ‘평가권력’을 제대로 심판할 수 있는 정치적 지도력과 사회적 권위가 필요하고, 재벌과 경제관료들 간의 오랜 공생관계를 끊을 수 있는 사회정치적 대항력이 있어야 한다.

한국 사회의 비극은 정작 평가받아야 할 집단, 세력, 세대는 평가의 무풍지대에 있고, 평가와 무관하게 꿈과 실력을 키워야 할 사람들은 매일 지독한 평가의 칼날 위에 있다는 점이다.

학생과 청년들을 ‘평가권력’의 노예 상태에서 해방시키자.

원문보기: 한겨레 김동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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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해양 도산시 56조 손실 추계액 사실상 ‘셀프 추정’

해당 보고서와 관련하여 산업은행과 금융위의 인지 여부, 인지 시점, 활용 여부와 활용 정도 등에 관한 정밀조사 필요
3/23 발표예정 금융위의 대우조선해양 구조조정방안의 진실성 전면 재검토해야

 

오늘(3/21), 헤럴드경제는 “대우조선해양의 도산시 직접적 손해액이 약 56조원에 달한다는 손실추계액이 대우조선해양의 사실상 셀프 추정의 결과였다”고 단독보도했다(https://goo.gl/hVC3r9). 이 보도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은 이 회사의 대표이사인 정성립 사장이 이사장으로 활동하는 학교법인 세영학원 소속의 거제대학 산학협력단을 통해 이 대학의 이모 교수에게 의뢰하여 ‘대우조선 도산으로 인한 국가경제적 손실 규모’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것이다. 대우조선해양 도산시 국가경제에 미치는 손실이 거제대 산학협력단의 추산에 따르면 약 56조원에 달한다는 보도는 이미 존재했다(https://goo.gl/GZ33AE). 그러나 이 용역의 의뢰자가 채무자인 대우조선해양이고,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대표이사가 거제대가 속한 학교법인 세영학원의 이사장이라는 점은 이번에 처음 드러난 것이다. 56조원의 손실 주장이 객관성을 갖지 못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편 국민의당 김관영 의원은 오늘자 국민의당 원내 대책회의에서 “어제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국회에 (대우조선해양 파산 시 57조원 피해와) 관련한 내용을 보고하러 왔다”며 “사실상 정부가 정한 4조3000억원의 공적자금 투입을 받아들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https://goo.gl/mebGuD). 묘한 우연의 일치가 아닐 수 없다.

   

채무기업이 자신의 재무적 상황을 진단하고, 이를 근거로 채권자와 정부를 설득하기 위해 용역보고서를 준비할 수는 있다. 문제는 산업은행 등 채권단과 금융위원회(이하 ‘금융위’)의 태도다. 채권단과 금융위가 과연 이 보고서의 존재를 알고 있었는지, 알았다면 언제 알았는지, 또 이 보고서에 등장하는 손실 추계 액수가 산업은행이나 금융위의 자체적 손실액 추계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등은 대우조선해양에 막대한 공적 자금이 이미 투입된 상황이라는 점에서 국민적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소장 대행: 김성진 변호사)는 거제대학 산학협력단의 보고서와 관련하여 산업은행과 금융위의 인지 여부, 인지 시점, 활용 여부와 활용 정도 등에 관해 국회 정무위가 철저히 조사하여 만에 하나라도 금융위가 국민을 상대로 신뢰하기 어려운 숫자를 이용하여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자금 지원을 압박하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을 촉구한다.  

 

 

앞에서 인용한 이데일리의 2017.03.16.자 기사(https://goo.gl/GZ33AE)에 따르면 거제대 산학협력단의 보고서의 손실추계 기준시점은 2016년 9월말로 알려졌다. 따라서 이 보고서의 최종 완료 시점은 작년 하반기 정도로 추정된다. 문제는 이 보고서가 산업은행과 금융위에 전달되었는지, 또 전달되었다면 그 시점은 언제인지 하는 점이다. 이 사실이 중요한 이유는 금융위가 작년 12월에 대우조선해양의 증자와 관련하여 땜질식 처방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주지하듯이 금융위는 대우조선해양의 재무건전성 악화가 심해져서 상장 폐지 위험에 처하자, 지난 2016년 12월 29일 산업은행의 출자전환과 수출입은행의 영구채 매입 등 땜질식 처방을 통해 상황을 모면했기 때문이다(https://goo.gl/tJOQia). 

   

만일 이 보고서가 작년말 부근의 어느 시점에서 완성되었고, 그 내용이 객관적이고 정확한 것이라면 대우조선해양이 이 보고서를 상장폐지 방어와 자본확충 필요성을 입증하기 위해 사용하지 않았으리라고 상정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만일 채권단 또는 금융위가 작년 하반기 어느 시점에 이 보고서의 결론을 파악하고 있었다면, 왜 작년 말에는 56조원의 손실 추계를 손에 받아 들고도 출자전환과 영구채 발행으로 ‘땜질 처방’을 했으면서, 지금 새 정부가 출범하기 두 달도 안 된 시점에서는 거의 동액의 손실 추계가 ‘본격적 구조조정 자금의 신규 투입’을 정당화하는 논거가 되는지 도무지 납득할 수 없다. 이 보고서의 작성 경위와 보고 시점 및 활용 정도에 대한 국회 정무위의 면밀한 진상 조사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상황을 반대로 가정하여, 금융위가 작년말까지는 이런 내용을 전혀 알지 못했고 올해 들어 뒤늦게 손실액 추계에 나서서 비로소 국민경제상 손실액이 57조원에 달한다는 점을 새삼 깨달았다고 해도 문제는 계속 남아 있다. 왜냐하면 금융위는 정확한 비용-편익 분석도 없이 작년 말에 땜질식 처방을 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현재 금융위는 당장 대규모 신규 공적 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이유로 57조원의 손실 이외에 유동성 부족이 현재화되는 상황에서 구조조정 지연은 추가부실 확대, ‘4월 위기설’ 등 불안심리 확산 등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논리를 펼치는 듯하다. 그러나 그런 상황은 대통령 탄핵이 한창 진행 중이고 상장폐지 가능성이 거론되는 작년말에도 사실상 동일했다. 따라서 현재 금융위가 펼치는 논리대로라면 작년말의 시점에서 본격적인 비용-편익 분석을 하고 구조조정의 방향을 재평가했어야 한다.

 

 

이런 정황을 고려할 때, 우리는 금융위가 이 보고서의 결론을 활용하고 있건, 아니건 간에 그 어떤 논리도 작년말의 땜질 처방과 최근의 대규모 신규자금 투입 불가피론을 동시에 정당화할 수 없다는 데 주목한다. 그리고 이런 논리적 부정합성은 자연스럽게 금융위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규모로 신규 공적 자금을 투입하려고 하는 진정한 이유에 대한 의심을 가지게 한다. 주지하듯이 금융위는 지난 2015년의 서별관회의, 작년 여름의 자본확충펀드 등을 거치면서 일관되게 변칙적이고 음성적인 방식으로 대우조선해양에 자금을 지원하거나 그런 방향을 추구해 왔다. 그 이면에 대우조선해양의 주요주주로서 주식가치를 증발시켜 국유재산을 훼손한 금융위의 직접적 책임과, 대우조선해양의 최대 이해관계자라 할 수 있는 산업은행에 대한 감독기관으로서의 감독 부실 책임을 모면하려는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참여연대가 대우조선해양의 생사 문제를 차기 정부로 이관하는 것을 주장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대우조선해양의 생사 문제는 이제까지 있었던 각종 변칙적, 음성적 행위들의 실상과 의도가 낱낱이 드러나고, 대우조선해양의 재산상황과 사업전망 및 국민경제에 미치는 진정한 영향이 정확히 평가된 이후에 가장 신속하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처리되는 것이 마땅하다. 

 

 

이번 거제대 산학협력단 보고서의 작성 경위는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채권단과 금융위의 의사결정이 아직도 대단히 불투명한 상황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을 개연성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는 국회 정무위가 거제대학 산학협력단의 보고서와 관련하여 산업은행과 금융위의 인지 여부, 인지 시점, 활용 여부와 활용 정도 등에 관해 철저히 조사하여, 만에 하나라도 금융위가 국민을 상대로 신뢰하기 어려운 숫자를 이용하여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자금 지원을 압박하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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