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 개정 과정은 운영위원회의 입장을 판단하는 주요 요소였지만, 제가 궁금한 것은 정관 개정 과정이 아니라 현재 민족문제연구소 내부에서 진행되고 있는 갈등의 원인과 배경입니다.
저는 지금 혼란 그 자체입니다. 도대체 누구의 말이 맞는지, 언제부터 문제가 시작되었는지, 수년동안 운영위원회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쌍방이 극단의 표현까지 동원하며 다투고 있는 현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도대체 무엇이 진실입니까?
2. 무엇에 대한 실망인지요? 실망이란 무엇인가 바라던 일이나 뜻이 원하는바대로 이루어 지지 않았을 때 쓰는 표현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를 알아보는 제게 실망하신 것인가요? 저는 오로지 전.현직 운영위원이 극단적 표현을 써가며 다투는 문제의 원인과 배경이 궁금할 뿐입니다.
실망이란 표현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정관 개정 과정이 아니라 다른 궁금한 점이 많은 것으로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3. 지금 운영위원장님 개인의 생각은 궁금하지 않습니다. 제가 운영위원장님께 문의한 이유도 앞선 게시물에서 충분히 밝혔습니다.
운영위원장은 운영위원회를 대표합니다. 저는 운영위원회의 입장을 운영위원장님께 묻는게 상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위원장님이 아니라면 운영위원회의 입장을 누구한테 들어야 할까요?
4. 운영위원장님께 드리는 글은 게시판에 올렸고, 지난 게시물에서는 김재운 운영위원님께 전달해달라고 요청드렸습니다.
5. 사적 의견이지만 김재운 운영위원님께서 말씀해주신 정관 개정 과정은 많은 참조가 되었습니다. 아직도 제가 모르고 있는 일이 많습니다. 앞으로도 알고 계시는 일이 있다면 허심탄회하게 말씀해주시기 당부드립니다.
6. 현재 진행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분은 운영위원장님입니다. 운영위원장님의 적극적인 관심과 해결 노력을 촉구합니다.
3월 23일자 이른바 회원대회, 이메일, 민족사랑을 통해 진행하고 있는 <정관 개정의 경위와 방향>에 대한 의견수렴
거짓말로 진실을 호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대안으로 총회 의결권을 대의원으로 한정하는 대의원제를 고려해 볼 수도 있지만 대표성 있는 대의원을 선 출할 현실적 방안이 없는 데다 약 240명(통상 회원 50인당 1인)으로 구성된 대의원제를 운용할 때 여전히 연 3~4회의 총회(3월 결산, 4~6월 임원 선임, 11월 예산) 소집에 어려움이 있고 1만2천 여 회원에게 기부 금영수증을 발행해줄 수 없다는 제약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일본제철·후지코시·미쓰비시·코크스 4곳 피해자 “인간에 자유 있어도 한계 있어” 민변 “더 이상 늦출 수 없어 소송 제기”
▲ 【서울=뉴시스】옥성구 기자 = 일제강점기 시절 강제징용 피해자 김한수 할아버지(가운데)와 김용화 할아버지(오른쪽) 등은 일본 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기 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일제강제동원 사건 추가소송 제기’ 기자회견을 열었다. 2019.04.04.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옥성구 기자 = 일본강점기 시절 강제징용 피해자들과 유족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추가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을 제기하기 전 기자들 앞에 선 김한수(101) 할아버지는 “짐승과 같은 대우를 받았던 시절을 생각하면 너무 가슴이 아프다”고 토로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과 민족문제연구소는 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일제 강제동원 사건 추가소송 제기’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후 피해 당사자인 김 할아버지 등 생존 피해자 4명과 사망 피해자 6명의 유족 27명은 일본 기업 일본제철(신일철주금)·후지코시·미쓰비시중공업·코크스공업 4곳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 소장을 접수했다. 손해배상 금액은 개인당 1억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할아버지는 “일본에 강제로 끌려가서 사람이 아닌 짐승과 같은 대우를 받으며 살았던 그 시절을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가슴이 아프다”며 “당시 같은 식당에서 일본 사람은 하얀 쌀밥을 먹고, 한국 사람은 기름짜고 남은 것에 쌀을 넣어 먹는데 그것도 배불리 먹을 수 없었다. 그런 세월이 흘러갔다”고 말했다.
이어 “이것이 과연 참고 살아야 하는지, 아니면 사과를 받고 손을 싹싹 비는 모습을 봐야 하는지 대단히 어려운 문제다”면서 “그들이 생각할 때 한국 사람은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을 거다. 아무리 인간에 자유가 있다고 해도 자유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할아버지는 지난 1944년 8월께 목재를 실어 나른다는 설명을 듣고 회사 트럭을 타고 갔다가 집에 연락도 하지 못하고 청년 200여명과 함께 미쓰비시조선소에서 강제징용을 당했다. 김 할아버지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강압적인 규율을 받으며 생활했고, 작업 중에 사고를 당했지만 병가를 받지 못해 다음날에도 출근해 일했다.
이후 1945년 8월9일에 공장에서 작업 중에 나가사키 원폭투하로 피폭을 당했지만 목숨을 건지고, 같은해 10월20일께 동료들과 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서울=뉴시스】옥성구 기자 = 일본강점기 시절 강제징용 피해자 김한수 할아버지가 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일제강제동원 사건 추가소송 제기’ 관련 발언을 하고 있다. 김 할아버지 등은 이날 일본 기업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2019.04.04. [email protected]
이날 함께 소송을 제기한 김용화(90) 할아버지도 “힘 있는 자는 힘 없는 자를 보호해줘야 하는데 일본은 악용해서 노예화했다”며 “일본은 마땅히 보상해야 하고, 보상 이전에 사과해야 한다”고 말하며 울먹였다. 김용화 할아버지도 일본제철 야하타제철소에서 강제징용을 당했다.
민변 측은 “대법원 판결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의 정당성을 다시금 확인했다”면서 “일제강점기 시대 이 땅에서 자행됐던 강제동원은 인권의 관점에서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러나 강제동원에 책임 있는 어떤 주체도 사과나 배상에 나서지 않는 현실은 여전하고, 가해 기업들은 대법원 판결 후에도 손해배상채무의 임의 변제에 나서지 않고 있다”며 “피해자 다수는 피해 회복을 받지 못한 채 눈감고, 기록되지 못한 역사도 사라지고 있어 더 늦출 수 없다고 판단해 소 제기에 나서게 됐다”고 설명했다.
앞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해 10월30일 이춘식씨 등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신일철주금(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재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각 1억원의 위자료 청구권을 인정하며 강제징용은 반인도적 불법행위이므로 1965년 한·일 정부 간 청구권협정이 있었더라도 개인별 위자료를 요구할 수 있다고 봤다.
한편 서울고법 민사8부(부장판사 설범식)는 이날 고(故) 홍모씨 등 강제징용 피해자 14명과 그 가족들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 2차 변론을 열었다.
홍씨 등의 대리인은 “대법원 판결도 나오고 해서 가급적 포괄적 화해를 하려고 한다”며 조정 의사를 밝혔다. 이에 대해 미쓰비시 측 대리인은 “일본에서 부정적 답변이 왔다”고 조정을 원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전했다.
재판부는 “더 이상 사실관계나 법리 문제에 주장할 것이 없으면 사건을 종결하겠다”며 “미쓰비시 측이 조정 의사가 있으면 중간에 조정기일을 잡겠다”고 밝혔다. 이 사건의 선고는 오는 6월27일 진행될 예정이다.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