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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광화문 해치의 제자리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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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광화문 해치의 제자리찾기

익명 (미확인) | 목, 2018/04/12-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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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일보 1923년 10월 4일자. 해태상(해치상)이 원래의 위치인 광화문 앞에서 경복궁 안쪽 구석에 옮겨져 거적때기에 둘러쌓인채 방치되고 있다는 기사다.

“오백년 옛 대궐 경복궁 앞에 말없이 쭈그리고 앉아있는 해태(해치)를 보았으리라… 무슨 죄 있어 다리를 동이고 허리를 매어… 궁궐 한편 모퉁이에 결박 당하고 거적 쓴 채로 참혹하게 드러누웠더라.” 광화문 월대 앞에서 경복궁을 지키고 서있던 해치가 궁궐 한편에 쳐박혀있는 몰골을 전한 동아일보 1923년 10월 4일 기사다.

조선부업품공진회 개막에 발맞춰 개통된 전차와 관람객의 동선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광화문 앞의 해치가 철거·이전된 것이다. 거적때기에 쌓여 궁궐 안쪽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초라한 몰골은 식민지 조선의 딱한 처지를 웅변해주었다.

궁궐의 입출구를 구분짓는 월대 앞에 놓인 해치는 일종의 하마비 역할도 했다. 지금부터 궁궐권역이니 말에서 내리라는 표시였다. “1870년(고종 7년)대궐 문에 해치를 세워 한계로 삼았고…조정 신하들은 그 안에서 말을 탈 수 없다”(<고종실록>)는 기사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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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와 문화재청이 발표한 광화문 앞 공간 복원 계획도. 월대와 해치를 복원한 역사광장과 시민들의 공간인 시민광장 등으로 구분되어 있다. 두 공간 사이에 ㄷ 형태의 도로가 예정돼있다.

1924년 10월 조선총독부 정동 분실에서 일어난 불의 원인이 ‘해치상을 치워버린 탓’이라는 등의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이것이 찜찜했던지 일제는 쳐박아두었던 해치상을 조선총독부(중앙청) 뜰 앞에 옮겨놓았다. 지금 광화문 담장 밑에 바짝 붙은 채로 서있는 옹색한 해치상은 1968년 12월 광화문 복원 때 재이전한 것이다. 물론 제자리가 아니다. 광화문 해치는 흔히 ‘불(火)의 산인 관악산의 화기를 막으려고 궁문 앞에 세워놓은 흰돌의 물짐승’으로 알려져 있다. 아마도 이규경(1788~?)이 “해치는 화수(火獸), 즉 불을 먹고 사는 짐승”(<오주연문장전산고>)이라 한데서 유래한 속설일 가능성이 크다.

해치는 또 예부터 시비곡직을 판단하는 신수(神獸)로 알려져 왔다. 후한의 왕충(27~97?)은 “해치는 옥사를 다스릴 때 죄가 있는 사람을 골라 들이받는 속성이 있다”(<논형>)고 기록했다.

역시 후한의 양부가 지은 <이물지>는 “외뿔 짐승인 해치는 싸움이 일어날 때 부정직한 자를 들이받고, 바르지 않는 자를 깨물었다”면서 “전국시대 초나라 법관들은 해치관을 법복으로 삼았다”고 했다. 이후 동양에서 법을 담당하는 관리들은 해치관(冠)이나 해치문양의 관복을 의무적으로 입었다.

요즘의 검찰·감사원에 해당되는 조선시대 사헌부 관리들은 마찬가지였다.

“1796년(정조 20년)사헌부 지평(정 5품)이 해치관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면직됐다”(<정조실록>)는 기록이 등장할 정도다.

해치를 궁궐 앞에 세워둔 까닭은 자명하다. 출퇴근하는 관리들은 해치의 꼬리를 쓰다듬으면서 마음 속 먼지를 털어내고 공명정대한 정사를 다짐하라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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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6~1907년 사이 촬영된 광화문 앞. 해치상과 월대가 보인다. |문화재청 제공

서울시와 문화재청이 10일 맺은 광화문 역사광장 조성 업무협약의 주요내용이 바로 ‘광화문 앞 월대와 해치상의 제자리 찾기’이다.

물론 이순우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의 언급처럼 역사광장(월대·해치)과 시민광장이 ㄷ자형 도로로 양분되는 등의 새로운 문제점도 제기되고 있다.

“광화문 앞 공간을 반드시 광장으로 꾸며야 할 필요가 있느냐”는 근본적인 질문까지 나온다. 깊이있는 토론과 의견 수렴이 뒷받침되지 않는 정책이라면 시대마다, 정권마다 제각각의 복원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모두 일리있는 지적이다.

다만 어떤 경우라도 월대와 해치는 제자리에서 제대로 복원되기를 바란다. 해치의 꼬리를 매만지면서 스스로 마음을 단속하고 시비곡직을 다짐하는 통과의례가 요즘처럼 절실한 때가 또 어디 있는가.<참고자료>

이순우, <광화문 육조 앞길-근대서울의 역사문화공간>, 하늘재, 2012
<테라우치, 조선의 꽃이 되다>, 하늘재, 2004
김언종, ‘해태고’, <한국한문학연구> 제42권 42호, 한국한문학회, 2008
이성준, ‘경복궁 근정전 월대 난간석주상 연구’, <미술사학연구> 272호, 한국미술사학회, 2011

<2018-04-12> 경향신문

☞기사원문: [여적]광화문 해치의 제자리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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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2

역전다방 최후의 결전 1편 -해방전야의 독립운동가들 : 여운형 편

화, 2018/07/17- 14:39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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制憲節(제헌절)

 

孩童嘲國法(해동조국법)

守此作愚人(수차작우인)

重罪逢輕罰(중죄봉경벌)

行刑遂不均(행형수불균)

 

제헌절에

 

저 어린아이도 나라의 법을 조롱

이를 지키면 어리석은 이가 되네

무거운 죄도 가벼운 벌을 만나니

刑의 집행이 마침내 고르지 않네.

 

<時調로 改譯>

 

아이도 國法 조롱 지키면 바보 된다네

매우 무거운 죄도 가벼운 벌을 만나니

마침내 그 刑의 집행 고르지 아니하네.

 

*孩童: 어린아이 *愚人:  어리석은  사람  *重罪: 무거운  죄. ≒중벽(重辟)  *輕罰:

가벼운 *行刑: 자유형(自由刑)의 집행 방법 사형수의 수용, 노역장 유치,

미결(未決)  수용(收容)  따위의  절차를 통틀어 이르는 말 *不均:  고르지 않음.

 

<2018.7.17, 이우식 지음>

화, 2018/07/17- 13:4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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某腐儒凌蔑訓民正音乃詰問

 

識字驕頑甚(식자교완심)

如無眼下人(여무안하인)

正音恒愛用(정음항애용)

但說漢文眞(단설한문진)

 

어떤 썩은 선비가 훈민정음을 능멸하기에 따져 묻다

 

글줄깨나 안다고 驕頑함 심하니

꼭 눈 아래 사람 없는 것 같구려

훈민정음 언제나 즐겨 쓰시면서

오직 漢文만 참되다고 말씀하네.

 

<時調로 改譯>

 

글 안다고 驕頑하니 眼下無人 같구려

우리글 훈민정음 언제나 즐겨 쓰면서

漢文만 오직 眞書라 그렇게 말씀하네.

 

*腐儒: 생각이 낡고 완고하여 쓸모없는 선비 *凌蔑: 업신여기어 깔봄. ≒능답

(陵踏). 능모(凌侮)  *詰問: 트집을  잡아서 따져  물음 *識字: 글이나 글자를 앎.

그런  지식  *驕頑: 교만하고  완고함  *愛用: 즐겨  씀 *眞書:  예전에,  우리글을

諺文이라고 낮춘 데에 상대하여 진짜  글이란 뜻으로 ‘漢文’을 높여 이르던 말.

 

<2018.7.18, 이우식 지음>

수, 2018/07/18- 07:36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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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株老松(일주노송)

 

我師非孔孟(아사비공맹)

不好佛耶蘇(불호불야소)

一樹窓前立(일수창전립)

恒從免大愚(항종면대우)

 

한 그루 늙은 솔

 

내 스승은 공자도 맹자도 아니며

부처, 예수도 좋아하지 않는다오

한 그루 늙은 솔, 窓 앞에 섰는데

늘 따르니 큰 어리석음 면하겠소.

 

<時調로 改譯>

 

내 스승 孔孟 아니며 부처, 예수도 싫소

한 그루 늙은 소나무 窓 앞에 서 있는데

사계절 언제나 따르니 大愚를 면하겠소.

 

*孔孟: 孔子와 孟子를 아울러 이르는 말 *不好: 좋아하지 아니함. 또는 미워함.
상황이나 형세 따위가 안 좋음 *耶蘇: ‘예수’의 音譯語 *大愚: 매우 어리석음.

 

<2018.7.18, 이우식 지음>

수, 2018/07/18- 07:37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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鄕里逢舊友

 

不變其情理(불변기정리)

離鄕四十年(이향사십년)

請君携濁酒(청군휴탁주)

同覓舊淸川(동멱구청천)

 

고향에서 옛 벗을 만나

 

그 인정과 도리 변하지 않았구려

고향을 떠난 지도 어느덧 四十年

벗님께 청하는 바 막걸리 들고서

옛적의 맑은 시내 함께 찾아가세.

 

<時調로 改譯>

 

그 情理 불변이구려 고향 떠나 四十年

벗님께 내 청하는 바 막걸리를 들고서

옛적의 맑은 시냇물 함께 찾아도 보세.

 

*鄕里: 고향(故鄕). 鄕村 *舊友: 옛 친구. 또는 사귄 지 오래된 친구. 구붕(舊朋)

*情理: 인정과 도리 *離鄕: 출향(出鄕). 고향을 떠남 *淸川: 맑은 물이 흐르는 강.

 

<2018.7.19, 이우식 지음>

목, 2018/07/1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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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訓民正音專用論者問

 

吾邦依漢字(오방의한자)

歷史五千年(역사오천년)

不學非輕事(불학비경사)

孩童渡險川(해동도험천)

 

한글 專用論者의 물음에 답함

 

우리나라 漢字에 기댔던 바

그 역사 무려 五千年이라오

不學함 가벼운 일 아니거니

어린애가 험한 내를 건너네.

 

<時調로 改譯>

 

漢字에 기댄 그 역사 五千年이 됐다오

그걸 아니 배움은 가벼운 일 아니거니

어쩌랴! 어린아이가 험한 내를 건너네.

 

*專用: 남과 공동으로 쓰지 아니하고 혼자서만 씀. 특정한 부류의 사람만이 씀.
특정한 목적으로 일정한 부문에만 限해 씀. 오직 한 가지만을 씀 *孩童: 어린애.

 

<2018.7.19, 이우식 지음>

목, 2018/07/19-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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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신고된 정관을 공개하지 말라고 했다는데 사실인가요?

정관을 비공개하는 단체가 있다는 말은 머리털 나고 처음입니다.

운영의 근본 규범인 정관을 비공개하는 단체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까요?

총회전에 연구소 소개 메뉴에 정관이 있었는데, 두 개의 정관 문제가 나오자 메류를 삭제했습니다.

정관 메뉴를 복원하고 정관을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목, 2018/07/19- 23:11
54
0

勸無職老友得多錢秘方

 

本是嫌勞動(본시혐노동)

如何作牧師(여하작목사)

多方能語戱(다방능어희)

衆庶見誣欺(중서견무기)

 

無職인 老友에게 많은 돈을 얻는 秘方을 권하다

 

본디 일하기를 싫어하니

목사님이 되면 어떻겠나

多方面에 말장난 능하니

뭇사람 속임을 당하리라.

 

<時調로 改譯>

 

본디 일을 싫어하니 목사님 어떻겠나

여러 방면에 대하여 말장난 능숙하니

마침내 많은 이들이 속임을 당하리라.

 

*秘方: 공개하지  않고  비밀리에 하는 방법. ≒비법(祕法).  자기만 알고 남에게

공개하지 않는  특효의  藥方文 *本是: 본디 *多方: 여러 방면. 여러 방향 *語戱:

말을 재미 삼아 하는 *衆庶: 뭇사람 *見: 여기에선 ‘당하다’의 *誣欺: 속임.

 

<2018.7.20, 이우식 지음>

금, 2018/07/20-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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忘暑(망서)

 

忽開三國志(홀개삼국지)

別界固如斯(별계고여사)

到處逢英傑(도처봉영걸)

憂邦擧酒巵(우방거주치)

 

더위 잊기

 

문득 삼국지를 펼치니

별계란 진정 이러하네

 도처에서 英傑을 만나

憂國하며 술잔을 든다.

 

<時調로 改譯>

 

삼국지를 펼치니 별계 진정 이러하네

사방의 가는 곳마다 영웅호걸을 만나

나라를 걱정하면서 함께 술잔을 든다.

 

*別界:   세계란  뜻으로,  특별한 세계를 이름 *如斯: 이러함  *到處: 이르

는 곳  *英傑: 영웅호걸. 또는  영특하고  용기와 기상이 뛰어남 *酒巵: 술잔.

 

<2018.7.21, 이우식 지음>

토, 2018/07/21-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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炎威携酒覓詩朋

 

炎威君莫嘆(염위군막탄)

忍苦易於冬(인고이어동)

樹下淸風至(수하청풍지)

投毫覓與儂(투호멱여농)

 

무더위에 술을 지니고서 詩의 벗님을 찾다

 

그대 무척 덥다고 한숨짓지 말게

괴로움 참아 내기 겨울보다 쉽네

나무 아래로 맑은 바람이 이르니

붓 내던지고 나와 함께 찾아가세.

 

<時調로 改譯>

 

한숨일랑 짓지 말게 겨울보다 참기 쉽네

푸르른 나무 아래로 맑은 바람이 이르니

그대는 붓 내던지고 나와 함께 찾아가세.

 

*炎威: 복중(伏中)의 아주 심한 더위. 또는 기세(氣勢) *携酒: 술을  몸에 지니

다님 *詩朋: 함께 詩를 짓는  벗. 시반(詩伴).  시우(詩友) *忍苦: 괴로움을 참음

*樹下: 나무의  아래나  *淸風: 부드럽고 맑은 바람 *儂: 나. 자기. 我의 속어.

 

<2018.7.22, 이우식 지음>

일, 2018/07/22-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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問金正恩(문김정은)

 

愛民君莫道(애민군막도)

豚笑犬嚬眉(돈소견빈미)

善政連三代(선정연삼대)

何如不救飢(하여불구기)

 

김정은에게 묻는다

 

그대는 인민 사랑 말씀하지 말게

돼지 비웃고 개는 눈살 찌푸리네

잘 다스리는 정치 三代 이었건만

어찌 굶주림 구제 아직 못하는고.

 

<時調로 改譯>

 

인민 사랑 말씀 말게 개돼지도 비웃네

잘 다스리는 정치 어언 三代 이었건만

그 어찌 굶주림 구제 아직도 못하는고.

 

*愛民:  백성을  사랑함  *莫道: ‘말하지  말라’의    *豚犬: 개돼지  *嚬眉: 눈살을

찌푸림 *善政: 백성을 바르고 어질게 잘 다스리는 정치. ≒양정(良政) *三代:

아버지,  아들, 손자(孫子)의    代. ≒삼세(三世)  *何如:  어떻게.  또는  어찌.

 

<2018.7.22, 이우식 지음>

일, 2018/07/22-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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曹溪寺前老僧斷食

 

誰言僧職好(수언승직호)

不若彼鷄冠(불약피계관)

滿寺權謀術(만사권모술)

金堂佛痛歎(금당불통탄)

 

조계사 앞의 老스님 단식

 

중 벼슬이 좋다고 누가 말하나

저 닭의 볏만도 못한 것이니라

권모와 술책 따위 가득한 절간

金堂의 佛 또한 통탄하고 있네.

 

<時調로 改譯>

 

僧官 좋다 뉘 말하나 鷄冠만도 못하니라

권모와 술책 따위가 한가득 들어찬 절간

金堂의 부처님 또한 몹시 탄식하고 있네.

 

*僧職: 승관(僧官). 법령, 수계(授戒), 관정(灌頂) 따위의 의식이나 사원(寺院)의

운영을 맡아보는 승려의 직무 *不若: 불여(不如). ‘~만 못함’. ‘~하는 편이 나음’

*鷄冠: 계두(鷄頭).  닭의 볏.  맨드라미  *權謀: 때와 형편에 따라서 꾀하는 계략

*金堂: 절의 본당. 본존상을 모신 법당이다 *痛歎: 몹시 탄식함. 또는 그런 탄식.

 

<2018.7.23, 이우식 지음>

월, 2018/07/23-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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題隣儒摺扇

 

道者淸溪詠(도자청계영)

雲峯一鶴飛(운봉일학비)

何人圖畵此(하인도화차)

隱密冷風威(은밀냉풍위)

 

이웃 선비의 접부채에 쓰다

 

道人은 맑은 시내에서 詩를 읊고

雲峯에서는 한 마리 두루미 나네

어떤 사람이 이 그림을 그렸는지

차가운 바람의 그 위세 은밀하오.

 

<時調로 改譯>

 

道를 닦는 사람은 淸溪에서 詩를 읊고

구름 봉우리에선 한 마리 두루미 나네

이 그림 뉘 그렸는지 冷風威 은밀하오.

 

*摺扇:  쥘부채.  접부채.  접이부채  *淸溪: 맑고  깨끗한 시내.  청간(淸澗)  *雲峯:  여름

날에 산봉우리처럼 피어오르는 구름. 구름을 이고 있는 산봉우리 *何人: 어떤

  *圖畵: 도안과  그림. 그림을 그리는 일. 또는 그려 놓은 그림 *隱密: 숨어 있

겉으로 드러나지 않음. 陰密 *冷風: 차가운 바람 *風威: 세게 부는 바람의 위력.

 

<2018.7.23, 이우식 지음>

월, 2018/07/23-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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問答與國立國語院擔當先生箕帚讀音

 

古音今可變(고음금가변)

帚字亦如斯(추자역여사)

但守焉能事(단수언능사)

村儒起大疑(촌유기대의)

 

국립 국어원의 담당 선생과 ‘箕帚’의 讀音에 대해 묻고 답하며

 

옛적 漢字音 지금 변하기도 하니

저 ‘帚’란 글자가 또한 이와 같소

오직 지키는 것만이 어찌 能事랴

시골 선비는 큰 의심을 일으키오.

 

<時調로 改譯>

 

古音은 可變이니 ‘帚’ 또한 이와 같소

오로지 고수함만이 그 어찌 能事이랴

시골에 사는 선비는 大疑를 일으키오.

 

*箕帚: 쓰레받기와  빗자루.  처첩(妻妾)이  되어  남편을  섬김.  소제(掃除)  *讀音:  한자

(漢字)의 音. 또는 글을 읽는 소리 *古音: 옛날에 쓰던 한자음(漢字音) *可變: 사물의

모양이나  성질이 바뀌거나 달라질 수 있음. 또는 사물의 모양이나 성질을 바꾸거

라지게 있음 *如斯: 이러함 *能事: 자기에게 알맞아 잘해 낼 수 있는 일.

하는 *村儒: 시골에서 사는 선비 *大疑: 크게 의심함. 또는 큰 의심이나 의혹.

 

<2018.7.23, 이우식 지음>

월, 2018/07/23-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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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독립운동이 지향한 기본 가치는 ‘자유, 평등, 진보'”
“남북한 역사인식에서 공통적인 부분 중심으로 공동사업 기대”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인식 바꾸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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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식 독립기념관장

(천안=연합뉴스) 김은주 논설위원 = “한국의 독립운동은 단순한 독립운동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뿌리이고, 우리가 지향해야 할 평화통일의 토대가 되는 운동이었습니다.”

이준식 독립기념관장은 “독립운동가들이 꿈꾸었던 ‘자유, 평등, 진보’가 오늘날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가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민주주의, 평화통일과 접목되는 독립기념관이 되면 좋겠다”라고 기대를 표했다.

내년 3.1운동 100주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설립 100주년을 앞두고 이 관장은 “남북한 교류를 통해 3.1운동을 중심으로 북한지역의 독립운동 관련 사료를 확보할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또한,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기록이 남지 않아 제대로 포상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3.1운동 100주년, 임시정부 설립 100주년을 맞아 독립기념관 차원에서 준비하고 있는 기념사업은.

▲ 아직 계획 단계이다. 일단 내년 4월 상하이에서 10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가 열린다.

독립기념관 내 독립군체험학교가 있는데 신흥무관학교 교사를 복원해 거기서 독립전쟁을 체험하는 교육프로그램이다. 여기에 임시정부가 운영했던 인성(仁成)학교를 복원해 인성학교 체험 프로그램을 병행하려 한다. 초등교육에 해당하는 인성학교에서는 민주주의 관점에서 학생들이 교육을 받았다. 1932년 임시정부가 상하이를 떠났고 인성학교도 더는 운영할 수 없었다.

임시정부는 교민 자녀들의 교육에 신경을 썼다. 한편으로는 민족교육, 한편으로는 민주시민교육이 이루어졌다. 중등과정의 삼일학교도 있었다. 임시정부가 직접 운영한 것은 아니지만, 임시정부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들이 교사로 있었다.

–임시정부의 이념적 지향은.

▲ 민주주의다. 임시정부가 출범하면서 민주공화제가 확립됐고, 그것이 한국 민주주의의 뿌리가 됐다.

1944년 마지막으로 개헌한 임시정부의 헌법인 대한민국 임시헌장 서문에는 대한민국의 정신을 ‘자유, 평등, 진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한국 독립운동이 지향한 기본 가치다. 독립운동가들이 꿈꾸었던 ‘자유, 평등, 진보’가 과연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가, 그들이 목숨을 바쳐가면서까지 이루려고 했던 세상, 더 많은 사람이 자유롭고, 더 많은 사람이 평등하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데 우리 후손들이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가 생각해야 한다.

–북한과 공동 발굴 사업을 기대하고 있다.

▲ 북한지역에 있는 독립운동 관련 사료를 확보하는 일이 중요하다. 북한에도 3.1운동 관련 사적지나 자료가 많다. 북한의 관련 재판기록을 조사하면 더 많은 독립유공자를 발굴할 수 있을 것이다.

남북 간에 독립운동에 대한 인식 차이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공통적인 요소도 많다. 이를 중심으로 공동으로 사업을 벌이면서 남북 간 역사, 특히 근대사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좁혀나가는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안중근 의사는 남북한이 모두 인정하고 존경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남북이 공동으로 유해발굴에 나설 필요가 있다. 또한, 남북이 협력해서 황해도 신천군 청계동 소재 안중근 의사의 생가를 복원할 수 있겠다.

안중근, 홍범도, 신채호 등 남북이 모두 인정하는 인물이나 사건을 중심으로 공동학술대회를 추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신채호 관련 원자료는 평양 인민대학습당이 많이 소장하고 있다. 10여년 전에 독립기념관에서 입수하려고 한 적이 있었으나 성사 직전에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무산됐다. 남한 자료만 갖고 단재 신채호 전집을 발간했다. 북한 자료까지 포함해서 다시 만들고 싶다.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 기록이 적기 때문이다. 여성독립운동에 대한 인식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 독립운동과 관련돼 활동했으나 이름을 남기지 못한 여성들을 따로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 대표적인 경우가 독립운동가의 부인들이다. 특히 해외에 망명한 독립운동가들의 경우 부인의 도움이 없었으면 독립운동을 할 수 없었다. 독립운동하는 남편의 뒷바라지 자체가 독립운동의 성격을 가진다.

임시정부 국무령을 지낸 이상룡 선생의 손부 허은의 구술 회고록 ‘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 바람 소리가’를 보면 밖에서 독립운동하다가 동료들과 집에 들어온 시할아버지의 식사를 차리는 모습이 나온다. 이들의 끼니를 해결하고 수발을 드는 것은 전적으로 부인, 딸, 며느리, 손주며느리들의 몫이었다.

국내에서 활동한 경우 가장 중요한 포상기준이 옥고이다. 여성들은 상대적으로 옥고가 적다. 여성이라고 봐준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경찰에 잡혀가도 기소가 안 되고 풀려나는 경우가 많았다. 기록에 남아있는 여성 한국광복군의 수는 10명 남짓인데 실제로는 더 많은 여성이 해외에서 무장투쟁에 뛰어들었다. 광복군이나 조선의용군의 남아있는 사진에는 군복 입은 여성들의 모습이 많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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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식 독립기념관장

–외국인들도 한국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 지금까지 60~70명 정도가 포상을 받았다. 대다수가 중국인들로, 모두 중국국민당 쪽 인물들이다. 한국 독립운동을 지원한 중국인 중에는 중국공산당 쪽 인물들도 있는데 공산당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포상하지 않았다. 저우언라이(周恩來)가 한국의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한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국공합작 당시 중국공산당 대표 자격으로 충칭에 와 있었던 저우언라이는 임시정부를 많이 도왔다. 광복군 총사령부 성립전례식에 중국공산당 대표 자격으로 참석하기도 했다.

일본인들 중에도 한국의 독립운동을 지원하고 직접 참여한 사람이 제법 있다. 노동자도 있고 교사도 있었다. 그러나 일본인에 대해서는 소극적으로 보는 경향 때문에 지금까지 딱 한 명만 서훈을 받았다. 인권 변호사 후세 다츠지(布施辰治)이다.

–중국에 있는 독립운동 사적지 관리는.

▲ 중국 내 독립운동 사적지는 대부분 독립기념관에서 관리한다. 직접 관리는 못 하고 현지 사람을 내세워 간접적으로 관리한다. 한중관계가 어려워지면 사적지 관리도 어렵다. 최근 들어 한국 독립운동 사적지를 중국 정부가 직접 조성하고 관리도 직접 하는 경우가 나오고 있다. 중국이 일방적으로 사적지를 복원하고 시설물을 설치하면 한국의 독립운동은 중국의 지원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는 식으로 자신들의 관점을 내세울 가능성이 있다. 중국과 한국의 독립운동은 쌍방향 관계였다. 중국이 지원했지만, 우리도 할 만큼 했다고 본다. 중국의 역사해석이라는 것이 항상 중국 중심이기 때문에 우려가 된다.

–독립기념관 운영 방향은.

▲ 한국 독립운동은 단순한 독립운동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뿌리이고 우리가 지향해야 할 평화통일의 토대가 되는 운동이었다. 독립운동과 민주주의, 독립운동과 평화통일로 접목되는 독립기념관을 만들고 싶다. 당장은 내년 100주년을 기리는 사업을 잘 꾸려나갔으면 한다. 특히 북한과의 교류협력 사업을 활성화했으면 좋겠다.

–독립기념관은 독립운동사 연구의 전문기관으로 위상을 강화해야 한다.

▲ 독립기념관 내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를 활성화하고 싶다. 그야말로 독립운동사 연구센터가 되면 좋겠다.

독립운동사 연구자의 세대 단절이 심각하다. 독립운동사 전공자들은 정년 퇴임을 했거나 이를 앞둔 교수들이 많다. 독립운동사를 공부하는 젊은 세대는 수도 적고 아직은 앞세대 만큼의 연구 업적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독립운동사 연구가 위축되고 있으니 독립운동사연구소가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지청천 한국광복군 총사령관이 외할아버지이다.

▲ 첫돌이 되기 전에 돌아가셔서 기억이 없는데 어른들 말씀이 늦게 보신 외손자여서 말년에 매우 예뻐하셨다고 한다. 외할아버지는 현역 일본 군 장교 신분으로 망명했기 때문에 잡히면 사형이었다. 가족들이 뒤늦게 수소문해서 만주로 갔다. 외할아버지는 공인으로 존경하지만, 사실은 외할머니가 더 존경스럽다. 농사와 삯바느질로 생계를 이어나갔다. 어머니는 1919년생으로 충칭에서 임시정부 활동을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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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안 독립기념관 겨레의 집

※ 이준식 독립기념관장은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특별연구원,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조교수)를 지냈다. 2006∼2010년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 상임위원, 2013∼2017년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으로 활동했다. 2016년 근현대사기념관 관장을 거쳐 2017년 12월 18일 제11대 독립기념관 관장에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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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8/07/23-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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