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기자간담회] 쌍용자동차 해고자와 가족 지원사업 착수 기자간담회 “해고, 국가폭력, 그리고 노동자의 몸 (2009~2018년)”
그날은 ‘민주주의가 퇴행한’ 사회적 이슈를 가지고 토론을 한 날이었다. 공교롭게도 최근 몇 년 사이에 그런 일들이 많다. MB정부의 민간인 사찰사건, 2012년 대선 때 국가공권력 개입 등 국가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굵직한 사건만이 아니라, 대학 내에서도 민주주의가 후퇴한다는 신호를 감지할만한 여러 일들이 비일비재다. 교수의 성추행, 선배의 폭력은 물론이고 재단의 부패, 총장 선출을 둘러싼 잡음, 학교의 각종 갑질(언론사 장악, 학생회 선거 개입, 동아리 자치활동 예산 삭감), 그리고 누군가에게 생사의 문제라 할 수 있는 학과 통‧폐합을 구성원과 일체의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일 등이 그러하다. 나아가 이런 대학의 문제점을 지적한 교수들에게 “그들이 제 목을 쳐 달라고 목을 길게 뺐는데 안 쳐주면 예의가 아니다. 가장 피가 많이 나고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내가 쳐줄 것”이라고 말하는 초현실주의 이사장까지 현실에 버젓이 존재한다. 나는 이런 일들을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한 ‘나쁜’ 경우로 규정하고 ‘우리가 왜 분노해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시간을 자주 갖는다.
하지만 ‘그날’, 학생들의 반응은 너무나도 차가웠고 이유는 명쾌했다. 한 학생의 단호한 발언에 등골이 오싹해진다. “말씀해 주시는 사례들이 민주주의 가치가 퇴행되었다는 것은 분명하고 이견도 없습니다. 그런데요, 알겠는데요, 별 느낌이 없어요.” 그리고 이는 한 학생만의 의견이 아니었다. 대부분이 공감을 표출한다. ‘느낌이 없다’를 학생들을 이렇게 표현한다. “민주주의가 훼손되는 어떤 사실이 머릿속에 인지되어도 ‘심장을 송곳으로 찌르는 그런 아픔’이 느껴지지 않아요.”
왜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은 힘들지 않았다. 대학생들은 여태껏 단 한번도 ‘그것이 다른 어떤 것에 비할 바 없이 중요한 것’이라고 들어본 적, 교육받은 적 없는데 민주주의가 훼손되는 것에 ‘무감’(無感)한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항변했다. 과거보다 경쟁은 빨라졌고 강해졌다. ‘더러운’ 사회를 떠날 수 없다면 ‘자본주의 사회는 어쩔 수 없다’는 세뇌가 한결 전략적이다.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는 ‘별다른 효용이 없는 것’으로 해석되어 “그래서 그게 돈이라도 돼?”라는 질문 앞에서 극도로 무기력해진다. 그래서 지금의 대학생들에게 민주주의는 ‘있으면 좋겠지만’, 없다고 무슨 청천벽력이 아니다.
문제는 사회가 이상한 분위기에 노출되어 이상하게 흘러가는 것을 (정녕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 별로 없지만) 비판해야 할 의무가 있는 대학이 오직 자본의 논리에 ‘진격 앞으로!’를 외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회수요 맞춤형 고등교육 인재양성 방안’이라면서 교육부가 2천억이 넘는 연구비를 책정하여 야심차게 준비하는 ‘프라임’사업을 보면 지금의 대학에서 ‘사회’가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다. 취업 안 되는 학과의 정원은 과감히 줄일수록 유리한 평가를 받는 이 사업의 이름, ‘프라임’(PRIME)의 뜻은 이렇다. Program for Industry needs Matched Education. 즉, 산업이 사회 자체가 되어버렸다. 사회 ‘안’의 시장이 아니라, ‘사회=시장’이다. 이를 천명하는 대학은 ‘선두’(prime)가 된다. 자본주의에 잘 적응하는 교육을 지향하는 공간에서 민주주의는 부차적으로 이해된다.
세월호가 침몰했을 때, 학생들과의 대화에서 내가 느낀 충격은 이런 분위기의 산물이었다. 나는 사회학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세월호의 침몰 원인을 우리 역사에서 찾는 작업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저 슬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왜 저런 일이 발생한지를 정확히 따져 묻고 그 사회적 기원을 이해하고 반성하는 것은 학문의 도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청해진 해운’을 붙들고 늘어지는 것은 언론에서 하면 되지만 왜 한국에서 기업이 지켜야 할 규정이 저리도 엉성한지, 그런데 그런 규정조차 ‘관례’라는 이름으로 지켜지지 않는 일이 왜 이리도 잦은지를 따지는 건 교육의 임무 아닌가. 이 과정은 필연적으로 ‘어두웠던’ 한국의 현대사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 정경유착, 재벌중심의 경제발전 등 경제민주화를 달성하지 못한 지난 역사의 물줄기를 끄집어와 이런 것을 비판하지 않은 우리 모두가 이 사건의 가해자이기도 함을 인식하는 것, 그런 강의를 했다. 하지만 반응은 “그 사건을 말하는데 재벌 이야기가 왜 나와요?”였다.
놀랍지 않다. 지금의 대학생들은 특정한 문제를 큰 그림에서 이해하는 훈련을 받아본 적이 없다. 효율성을 유일한 잣대로 삼은 대학에서 “문제의 원인을 사회구조에서 찾자!”와 같은 발상은 매우 덧없다. 그런 건 대학평가 지표에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 그렇기에 우리의 미래는 어둡다.
글 : 오찬호 | <진격의 대학교 : 기업의 노예가 된 한국대학의 자화상> 저자
P.S) 이 글의 일부는 필자의 다른 글 “한국의 대학에서 교양강의는 이미 다른 개념이 되었다”(『대학의 배신: 인문학은 N포세대를 구원할 수 있는가』(2016, Michael S. Ruth, 최다인 역, 지식프레임)의 해제)를 재구성했습니다.
대한민국 밖 세상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희망제작소 연구원들의 눈길을 끈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새로운 움직임을 ‘세계는 지금’에서 소개합니다.
세계는 지금(14)
세계 각국의 청년정책
청년이 힘들다고 난리다. 88만원 세대는 이미 지나간 이야기가 되어버렸지만, 청년들의 현실이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 것은 현재 진행형이다. 수저론이나 헬조선과 같이 청년들 스스로 만들어낸 자위거리들은 이미 그들끼리의 자조를 넘어서 사회적 문제로 자리 잡았다. 몇몇 지자체들은 청년배당정책을 수립해 중앙정부의 반대 속에서도 결국 실현했다. 또 다른 지자체들은 청년조례를 만들고 청년들을 위한 공간과 정책을 만드는데 여념 없다. 이러한 조례와 정책이 얼마나 실효성을 가질지는 지켜봐야 알겠지만, 이 땅의 청년들을 위해 노력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은 그리 나쁘지 않아 보인다.
청년들이 힘든 것은 비단 한국의 문제만은 아니다. 일본, 중국, 홍콩 등 아시아 국가의 청년들과 88만 원 세대와 유사하게 등장했던 1000유로 세대의 유럽 청년들도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 각국의 청년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많은 이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간략히 열거하자면 양질의 일자리 부족, 저임금·비정규직, 비싸지만 열악한 주거환경, 학비와 생활비 대출자금, ‘노오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하는 일부 기성세대) 그리하여 이 글에서는 해외의 청년정책을 살펴보고, 시사점을 찾아보고자 한다.
일본의 신졸일괄채용 시스템
일본 노동시장에는 ‘신졸일괄채용’이라는 시스템이 있다. 기업에서 대졸예정자의 졸업 앞선 해에 한 차례 일괄적으로 채용하는 방식이다. 최근 한·중·일 청년들의 현실을 비교한 기사에 의하면, 이 시스템으로 인해 일본 대학생들이 걱정하는 것은 취업 자체가 아니라 취업 이후의 삶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가혹한 노동을 강요하는 블랙기업이 아니라면 비정규직에 대한 거부감은 크지 않다고 한다. 계약직이라도 정규직과 연봉이나 인센티브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졸일괄채용’과 같은 안정적인 노동시장 연계 구조도 1990년대 이후 경기침체기를 거치면서 그 기능이 크게 약화되었다. 이에 일본 정부는 대학 졸업 후 직업세계로의 이행을 지원하기 위해 졸업한 지 3년 이내인 졸업자를 새로운 졸업생과 같이 대우하여 비록 졸업 후일지라도 ‘정규직으로 고용되는 것을 포기하지 않도록’ 정책을 강화하였고, 졸업 전 구직 하지 못한 졸업자들을 위한 ‘실업 졸업생 집중 지원 2015(intensive support for unemployed graduates 2015)’을 마련하고, 졸업 후에도 개별 지원을 계속하고 있다.
홍콩 노동부의 고용 프로젝트
2014년 11월 홍콩은 학생들의 도심점거시위로 뜨거웠다. 당시 홍콩 정부는 2015년 시정계획에 ‘청년사무위원회’ 신설과 같은 청년층 지원책을 반영할 것이라 알렸다. 2015년 홍콩 노동부는 청년들의 고용가능성을 높이고 고용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프로젝트를 시행하였다. 첫 번째 프로젝트는 서비스업과 문화산업의 결합이었다. 다음 프로젝트는 ‘Y worker’라는 이름의 YWCA의 직장임시훈련 프로그램 2015로, 직장 경험이 없거나 부족한 청년들에게 임시직을 통해 일자리 경험을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마지막 프로젝트는 학교와 결합하여 청년들에게 이러닝(e-Learning)을 통한 OJT(직업교육)기회를 제공하는 형태였다. 홍콩 노동부는 청년고용과 훈련 프로그램(Youth employment and training programme, YETP)을 시행 중이며, OJT를 제공할 수 있는 다양한 산업 영역의 기업들과 결합하여 채용의 날(Recruitment Day)을 운영하고 있다. 다만 2016년 4월 홍콩 거주 16~35세 청년 7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취업설문조사에 의하면, 절반 이상의 청년들이 미래 취업 전망을 낙관적으로 보지 않았고 특히 응답자 중 30%는 중국 본토에서의 취업을 고려하고 있었다. 또한 응답자의 40%가 높은 임대료로 창업이 힘들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하였다. 이에 본토로의 진학을 확대하고, 단순 체험이 아닌 일자리 지원 방안을 수립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유럽의 청년보장 제도
유럽의 대표적 청년고용정책으로는 청년보장(Youth Guarantee, YG)제도가 있다. 정규 교육과정을 마친 후 취업을 하지 못한 청년 혹은 실직한 청년들이 장기간 방치되거나 비경제활동인구가 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을 우선 목표로 한다. 25세 이하의 청년들에게 최대 4개월 이내에 일자리를 제공하고, 도제 교육 또는 실무 수습의 기회를 제공한다. YEI(Youth employment initiative, YG제도를 지원하는 주요 EU재정 자원의 하나로 2014~2020년까지 64억 유로의 예산이 배정되어 있음) 예산이 배정된 국가의 경우 청년들에게 재정이 지원되기도 한다. 청년보장 프로그램은 주로 고용교육·훈련, 학교 중퇴 예방과 치료교육, 고용중개, 직접고용 창출, 고용 인센티브, 스타트업 인센티브 등으로 구성된다.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한다.

▲ 출처 : www.youth-guarantee.eu
– 고용교육 및 훈련 : 청년들이 직무 숙련도를 높여 노동시장의 수요를 충족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벨기에 플랜더스 지방에서는 직장 내 훈련 프로그램(IBO)을 시행하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1~6개월 간 진행된다. 훈련생을 받은 고용주들은 훈련기간이 종료된 후 고용을 해야 하는데, 과거에는 영구 취업계약을 해야 했으나 현재는 최소 훈련 기간만큼의 고정계약도 가능하도록 수정되었다. IBO 기간이더라도 훈련생들은 여전히 구직자로 등록되어 있어 관련 혜택은 그대로 다 받을 수 있다.
– 학교 중퇴 예방과 치료교육 : 독일은 청년들이 중등학교 학위를 받을 수 있도록 돕고, 학위 과정 중 중도이탈 방지를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스페인도 학교를 떠난 청년들이 돌아올 수 있도록 지원하는 ‘second-chance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 고용 인센티브 : 보통 고용 후 임금에 대한 보조금 형태로 이뤄지거나, 사회보장 보너스 등을 통해 고용 시 발생하는 비용을 줄여주는 형태로 시행되고 있다. 덴마크는 사기업에서 실직 청년을 채용할 경우 최대 1년 간 임금 보조를 해주고 있으며, 스웨덴은 36세 미만의 청년을 고용할 경우 31.42%인 사회보장기여금 비율을 15.49%로 낮추는 정책을 한시적으로 시행한 바 있다.
세계의 청년정책은 대체로 학교에서 노동시장으로의 원활한 이행을 돕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주로 국가의 지원과 함께 노사 및 지역 간 협업을 통해 노동시장 진입 전의 청년들에게 일자리 경험을 제공해주는 프로그램들로 구성돼 있다. 이러한 특성은 교육개혁으로도 연계되어, 유럽의 경우 교육시스템의 현대화와 함께 개인의 자질을 발견하고 직업교육을 강화하는 방향의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일본 역시 잃어버린 10년을 거치면서 프리터free arbeiter) 족, 니트(NEET,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 청년들이 급증하는 등 진로선택의 개인주의 현상이 나타났고 이에 학교 및 지역사회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체험활동 중심의 진로교육정책이 중시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정규교육과정 내에서 진로체험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으나 학교나 지역사회 모두 준비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청년의 노동시장 진입이 쉽지 않고 저성장 기조가 지속되는 이 시대에, 학교와 우리 사회는 청소년들이 길 잃은 청년으로 자라지 않도록 자기 자신과 일에 대한 제대로 된 의식을 심어줘야 한다. 그리고 다음 단계로의 자연스러운 이행을 도와줄 필요가 있다. 희망제작소는 올해 청소년들을 위한 체험형 진로프로그램 ‘내-일상상프로젝트’를 진행한다. 8개월이란 시간동안 유의미한 메시지를 얻기는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내일을 살아갈 이 시대의 청년·청소년과 함께 일이 먹고 살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인생의 즐거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찾아보고자 한다.
글 : 조현진 | 시민사업팀 연구원 · [email protected]
* 이 글은 아래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
• http://interactive.hankookilbo.com/v/75b16ccc206e481eaf54ea0d406c520c/#article
• http://www.mhlw.go.jp/english/wp/wp-hw9/dl/05e.pdf
• www.hkeconomy.gov.hk/en/pdf/er_15q4_ch6.pdf
• http://www.yes.labour.gov.hk/ypyt/en/tm_yetprd_20160519.htm
• http://www.wsnews.co.kr/sub_read.html?uid=9442
• ‘일본의 청소년 진로교육정책 패러다임의 전환에 관한 고찰-진로직업체험활동을 중심으로’, 일본문화연구 46, 2013, pp.5-31
• ‘The youth guarantee programme in Europe: Features, implementation and challenges,’ Veronica Escudero and Elva Mourelo, ILO working paper No4, 2015
• ‘OECD의 유럽 청년보장(Youth Guarantee) 제도 사례 연구’, 김문희, The HRD Review, 2015
• ‘Youth employment measures-Best practices,’ Christa Schweng, Opinion of the European economic and social committee, 2014
• ‘일본의 청소년 진로교육정책 패러다임의 전환에 관한 고찰-진로직업체험활동을 중심으로’, 일본문화연구 46, 2013, pp.5-31
• ‘지역 진로직업체험 인프라 현황과 과제’, 장현진, 한국진로교육학회 추계학술대회, 2014

2016 추석 선물꾸러미
일반공급
주문 8/17(수) – 9/8(목) 공급 8/22(월) – 9/13(화)
선물택배
주문 8/18(목) – 9/6(화) 공급 8/23(화) – 9/9(금)
남북 관계, 모든 것을 뛰어넘어야 한다
조선노동당 제7차 대회의 단상과 우리의 대북 정책
김종욱 동국대학교 객원교수
지난 1966년 10월 개최된 북한의 '당대표자회'는 안보 위기, 경제 발전 지체, 당내 발전 전략을 둘러싼 논란 등을 타개하기 위한 고육지책(苦肉之策)의 자리였으며, 북한 발전 전략의 실패를 자인한 회의였다. 뒤이어 1967년 5월 개최된 전원회의는 탈북한 황장엽의 설명처럼 "특이한 형태의 극좌로 몰아가는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북한은 1966년 '당대표자회'와 1967년 5월 전원회의를 기점으로 '수령'의 '유일 체계'라는 강력한 독재 체제를 구축했다. 동시에 '경제 국방 병진 노선'의 강화와 '혁명적 대사변'의 준비를 강조하면서 전 사회의 군사화 경향이 구조화되었다. 이 '당대표자회'에서 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부위원장제는 폐지되고, 대신 총비서제와 비서국이 신설되었다.
변화 포기와 체제 고수 선언
공교롭게도 제7차 당대회에서 김정은은 당위원장에 취임했다. 구조적으로 북한은 1994년 김일성 사망 직전의 '당-국가 체제'로 전환한 것이며, 동시에 당 리더십은 1966년 이전으로 복귀한 셈이다. 1966년 이전까지 북한은 남한과의 체제 경쟁에서 우위에 있었고, 높은 경제 성장률을 기록하며 '사회주의 완전 승리'가 '코앞'에 다가온 것처럼 선전했다. 어쩌면 그 당시로 돌아가고 싶은 '발로(發露)'였을지도 모르겠다. 1966년 이전 북한은 한정된 영역이었지만 발전 전략을 둘러싸고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서로의 의견을 토론할 수 있는 사회였다. 그러나 지금의 북한은 하나의 목소리 이외의 소리는 잡음이며 침묵만이 용인되는 사회가 되었다.
제7차 당대회의 결정서를 보면, 새로운 내용은 찾아보기 어렵다. 김정은이 제시한 북한의 미래는 1967년 극단적 독재 체제로 전환한 이후 계속 반복되었던 '김정일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은 없고 '김정일식 담론'으로 가득하다. 지도자는 바뀌었지만 그 지도자의 언어는 죽은 전임자의 언어 그대로였다. 이번 제7차 당대회에서 세 가지의 항구적인 '전략적 노선'이 언급되었다. 그것은 △ '경제 건설과 핵무력 병진 노선', △ '자강력 제일주의', △ '선군 혁명 노선'이다.
1962년 12월에 결정되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경제 국방 병진 노선'은 김정일 시대의 핵 능력 증강의 '시간적 결과'에 따라 김정은의 강력한 리더십의 자원이 되었다. 1962년부터 본격적으로 주장되었던 '자립적 민족 경제' 노선은 북한 주민들을 일상적인 '자력갱생'과 '간고분투'의 삶으로 내몰았으며, 이름만 바꾼 '자강력 제일주의'는 그 유사 버전에 다름 아니다. 1964년 총참모장 최광에 의해 조선인민군은 '김일성 노선의 충실한 추진 세력인 동시에 그 중핵적인 존재'로 규정되었고, 김정일은 자신의 정치를 '선군 정치'로 선언했다. 김정은의 '선군 혁명 노선'은 오래된 레퍼토리의 반복일 뿐이다.
1960년대에 시작된 발전 전략이 커다란 변화 없이 계속 '유훈 정치'의 이름으로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일상을 살아가는 북한 주민들의 삶은 예나 지금이나 힘들고 가혹하다. "식량 문제를 반드시 풀고 인민들에 대한 식량 공급을 정상화"하겠다며 제시한 '경제 발전 5개년 전략'은 공염불로 끝날 것이 자명하다. 당을 통치의 중심으로 삼겠지만 '선군 정치'와 통제 구조는 계속 유지될 것이다. '조선인민내무군'과 '보위‧인민보안기관'들의 감시와 폭력은 강화될 것이다. '전당 김일성-김정일주의화'와 '청년 중시'의 '전략적 노선'은 전 사회적 차원의 사상적 통제와 청년들에 대한 강력한 '세뇌 정책'으로 나타날 것이다. 따라서 이번 제7차 당대회의 결정은 '변화 포기와 체제 고수' 선언이라 할 수 있다.
뛰어넘을 수 있는 '상상력'과 대화를 위한 '용기'
'선군(先軍) 노선'에서 '선당(先黨) 노선'으로의 변화는 어쩔 수 없는 북한의 상황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30대 초반 새로운 지도자의 개혁은 당대회를 주기적으로 개최하고 사회주의 일당에 의해 통치되는 정상적 구조로의 전환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출구가 안 보인다는 것이다. 핵능력 고도화는 권력을 유지하는 수단이지만 출구를 막고 있는 강고한 '잠금쇠'다. '핵 정치'를 통한 권력 구조의 유지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북한적 딜레마', 비핵화 전략을 선택하는 순간 권력 구조의 근본적 버팀목이 부러질 것이라는 '북한적 공포', 그러나 지속적인 핵실험 시위와 안보 위기 조성은 '무딘 칼'이 되어버리는 상황, 이것은 어쩌면 '한반도적 아이러니'라 하겠다. 핵실험을 해도 미사일을 쏴도 위협으로 느끼지 않는, 오히려 더욱 강화된 제재와 압박으로 이어지고, 긴장과 불안이 매번 반복되면서 고조되고 있다. 그러나 상상도 할 수 없는 전쟁의 공포는 그럴 리 없다는 '근거 없는 낙관'으로 묻혀버린다. 작은 실수와 변란으로 발생할 수 있는 '실수의 공포'는 발생하기 어려운 '확률의 늪'으로 빠져버린다. 이런 상황을 방치할 수 없다. 계기를 포착하고 지혜를 발휘해서 좀 더 안정적인 방향으로 선회해야 한다.
'평화 협정'이라는 아주 그럴싸한 이야기가 미국, 중국에서 돌고 있다. 제임스 클래퍼(James Clapper) 미국 국가정보국장(DNI)은 비공개 한국 방문 와중에 평화 협정 협상 문제를 언론에 흘렸다. 중국 외교부는 공식적으로 비핵화 협상과 평화 협정 논의를 투 트랙으로 병행하자고 제안했다. 북한은 우리 정부에 남북 군사 회담을 제안했다. 이제 대화의 국면으로 재진입해야 한다. 북한에게 비핵화 없이 평화 협정은 없다는 입장도, 비핵화의 구체적인 실행 방안 협의도 대화가 시작되어야 가능하다. 핵을 보유하고 평화 협정을 체결하겠다는 북한의 전략은 '몽상'임을 정확히 알려야 한다. 일각에서 북한은 변하지 않을 것이니 대화가 무의미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지 못한다는 것은 '지속적인 핵능력 증강' 대 '북한 붕괴 정책'의 강대 강 국면의 지속을 뜻한다. 이 방식은 누군가의 희생을 전제로 하는 것이며, '공포의 균형'이다.
이제 평화 협정을 매개로 한 '커다란 꾸러미'를 만들어서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평화는 한반도가 숨 쉴 수 있도록 하는 '산소 호흡기'다. 통일은 헌법적 가치이며 대통령의 임무다. 저성장 시대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경제적 출구는 힘겨운 국민에게 절실한 것이다. 이렇듯 평화와 경제, 통일은 서로 결합되어 있다. 대화를 통해 평화적 상황을 유지하면서, 남과 북이 공존 공영할 수 있는 '북방 경제'를 통해 시너지를 창출하고, 통일을 위한 서로의 이해와 관용의 길을 걸어야 한다. 제7차 당대회에서 북한이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것은 자체의 힘으로 변화의 출구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변화의 계기와 출구의 비전을 대화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 전환의 시기에 필요한 것은 현실을 뛰어넘는 상상력이다. 그것은 이념적 대립을 뛰어넘는 것, 분노와 증오를 뛰어넘는 것이다. 진정 가슴으로 저 고단한 국민들의 미래를 고민한다면, 이젠 뛰어넘을 때다. 진정 저 고통 받는 북녘의 주민들을 생각한다면, 이젠 무관심과 무시를 뛰어넘을 때다. 쉽지 않겠지만, '뛰어넘음'의 대북 정책이 필요하다. 계기를 활용할 수밖에 없다. 진심으로 모든 것을 걸고 뛰어넘을 수밖에 없다. 저 전혀 변할 것 같지 않은 북한의 제7차 당대회를 보면서 체념하고 그냥 지나쳐버릴 수 없다. 이젠 뛰어넘을 때다.
우리는 저 척박한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침묵해서는 안 된다. 동시에 이 긴장과 대결을 뛰어넘어 평화로 가기 위한 용기와 결단도 필요하다. 북한에게 할 말은 확실하게 하되, 할 일도 제대로 하자. 멈춰 선 개성 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한반도의 비핵화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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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참여연대나 참여사회연구소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불안했던 세기말, 1999년 개봉한 워쇼스키 자매 감독의 매트릭스는 종교적, 철학적, 과학적, 정치적, 사회적 영화장치들이 치밀하게 배치된 21세기 영화사의 걸작으로 불린다. 이 영화가 이런 장치들을 얼마나 세심하게 설정해두고 있는지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특히 매트릭스가 영화 속에서 이야기하는 메시지들은 인간의 삶에 관한 수많은 분야에 걸쳐 있는데 그중 상당수는 21세기 지구의 대다수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도시의 문제와도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그리고 이 문제의 키워드들은 오늘날 도시재생이 급격히 대두되게 된 배경과 유사한 맥락들을 갖고 있다.
소통의 단절
매트릭스의 주인공 네오는 사이버 공간에서 소외된 채 살아간다. 매트릭스 자체가 사이버 공간이기도 하지만 중의적으로 주인공은 해커가 되어 자신이 사는 세계의 본질을 알기 위해 수없이 많은 밤을 검색으로 지새운다. 그는 도시 안에서 만나는 직장 상사나 암거래 고객과는 표면적 관계만 맺고 있을 뿐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고 이야기할 커뮤니티가 없다. 도시는 기본적으로 계약으로 맺어진 공간이기에 그렇다. 간혹 인간적 관계를 맺었더라도 각자 사연에 의해, 상황에 의해, 업무로 인해 쉽게 엇갈리게 된다. 만일 네오가 세계의 본질을 같이 논의하고 탐구하는 공동체를 만났다면 영화는 다르게 진행되지 않았을까? 간단한 취미 수준의 동호회는 모르겠지만 세계의 정체를 밝히려는 모임은 권력에 의해 제거되어야 할 조직이기에 현실에서도 영화에서도 쉽게 가능한 일은 아니다.
인간이 점점 다양한 생각, 가치관, 기호를 갖게 되는 것은 정보와 사회의 발전에 따라 당연한 일이다. 이런 다양한 개체들은 도시의 삶 속에서 파편화되어 소외되고 다시 소통과 공동체를 필요로 하게 된다. 다만 현실에서는 소통을 추구하면서 겪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어떻게 일상에서 풀 수 있는가에 따라 그 소통에 다다르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할 것이다.
불평등의 누적
이 세상의 본질적 지배요소는 무엇일까? 흔히 이야기하는 것으로 자본, 국제권력, 종교, 문화 등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일차적 문제는 도시에 모여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부와 정보 그리고 기술과 교육의 기회가 점점 더 공평하게 주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세계적 추세라는 점이다. 이런 권력구조를 평범한 도시민들이 만회할 수 있는 힘은 연대와 단결이며, 정책적 요소로는 공유, 사회보장제도 등이 있다.
매트릭스에서 오라클은 그리스신화의 의미 그대로 예언자로 기능하는데, 사회에서 소외받고 불평등에 고통받는 슬럼가의 흑인들과 빈민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이 아이들은 현실에서는 슬럼가에 버려진 아이들이지만 영화에서는 가려진 진실을 알리는 선지자들로 키워진다. 그녀는 지속적으로 기계권력에 대항하는 저항군 세력에게 지혜와 용기를 주고, 민중들이 어려움을 돌파하도록 지원하는 하방연대의 중심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에도 오라클 같은 수많은 사회복지기관과 시민단체들이 존재한다. 또한 수많은 사람들이 개별적인 사회기여활동이나 네트워크화된 활동을 하고, 끊임없이 사회보장제도와 복지정책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마저도 도시를 움직이는 거대한 시스템의 구조에서 여러 한계에 직면하곤 한다.
참여기회의 제한
네오를 포함한 매트릭스의 모든 등장인물들은 사회참여를 통해 점차 세상의 본질을 깨닫고 자신의 능력을 확장시켜 나간다. 자신이 가진 문명의 편의를 버리고 나서야 하는 투쟁 앞에 망설이고, 전투에서 공포를 느끼던 주인공들은 권력의 본질, 억압의 구조, 참여의 의미, 동료로서 서로의 역할과 지원에 대해 깨닫고 신뢰관계를 맺으며 성장한다. 어쩌면 도시민들의 요구는 다양한 주제, 다양한 영역으로 표출되고 있지만 의미하는 것은 단 하나일지도 모른다. 바로 자아실현이 그것이다. 인간으로서의 자아실현은 사회적 활동과 참여 속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고 참여의 질이 올라갈수록 개인이 느끼는 삶의 완성도는 높아진다.
무엇을 즐기는 사람이 혼자 즐기는 단계에서 발전하고 싶어할 때,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다 보면 결국 더 많은 것을 알려주게 되면서 결국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활동을 하게 된다고 한다. 도시는 사람들의 이런 다양한 참여욕구를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 처음부터 참여의 욕구로 나타나지 않더라도 참여를 통해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
그러므로 도시재생은 모든 도시민의 삶을 지원해야 한다
도시에서 여러 문제들이 제기되고 있다. 그중 핵심적인 문제로 손꼽히는 것이 소외, 불평등, 자아실현 통로의 단절이다. 이를 해결하고자 마을공동체, 공유경제, 문화공동체 지원 등이 제안되고 있지만, 도시의 문제들이 일시적인 상황이 아니라 도시가 가진 본성에서 기인하고 있기 때문에 해결이 쉽지 않다. 그러나 도시의 문제들이 완전히 해결될 수는 없더라도 적어도 도시를 발전시키겠다고 시민들에게 권한을 위임받은 사람들은 도시민이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한 돌파구를 찾는 도시정책을 구상해야 한다. 도시민의 삶의 관점에서 바라본 도시재생으로 도시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도시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일 것이다. 행정은 도시민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도시재생을 통해 일상에서 도시민의 삶을 지원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생명력 있는 도시가 될 것이다.
글 : 이남표|지역정책팀 연구원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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