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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 간략후기’, 김재광 전 지부장의 반박문에 대한 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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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 간략후기’, 김재광 전 지부장의 반박문에 대한 반론

익명 (미확인) | 일, 2018/04/01- 23:13

총회 간략후기’, 김재광 전 지부장의 반박문에 대한 반론 

민족문제연구소 김재광 전 지부장님,, 

지난 328일에 모 카톡방과 이 자유게시판에 올린 김재광 지부장님의 글에 대해 바쁘고 할 일이 쌓여있는데 시간을 내서 반론을 쓰는게 참 아깝지만, 혹시라도 저런 글을 보시고 오해를 하는 분들이 계실 것 같아 할수 없이 주말에 쉬는 시간 쪼개서 반론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지난주 토요일(3. 24) 총회에 온 회원들은 이미 (정관개정에 대한) 박수통과 요청에도 기꺼이 환호하며 응할 만반의 준비가 되있던 사람들이지요. 그 사람들을 어떻게 돌려세우겠어요, 그 짧은 시간에 

더구나 제가 반대발언 시작하자마자 바로 앞에서 일어나 삿대질하고 고함지르던 운영위 모 부위원장과 회원들에조금 지나니 단상에서는 3분 안에 짧게 끝내라고 계속 큰소리로 방해(?)하시는 소장님 때문에 중간 중간 발언이 끊기고..나중엔 결국 간신히 1분만 더 발언하겠다고 하면서 마무리를 했으니 충분히 주장을 펼칠수 없었지요 

나중에 어떤 분은 그 광경을 보시고 서로 미리 각본이 있었던 것 아니냐라고 말씀하십디다. 

암튼 저는 처음부터 정관개정안이 거부되리라는 희망을 갖고 시작한게 아닙니다. 다만, 집행부의 배은망덕한 운영위원회 무력화와 집행부로의 권한집중의 의도를 가진 개정안이 잘못됐다는 걸 누군가는 지적을 해야한다는 생각으로 대전에서 힘들여 총회에 올라간 거지요. 문제제기의 성과는 있었다고 봅니다. 이제 다시 시작해야겠지요 

그런데 김지부장님 글을 쓴걸 보니 정관개정에 반대한 사람들은 훼방꾼이나 나쁜 사람’, 찬성하는 사람들은 정의파좋은 사람이라는 아주 단순한 인식의 틀을 갖고 있네요 

김지부장님의 글 전체가 악의를 담고 있으나, 한 단락만 인용해서 얘기해보면 

찬반 토론이 시작되어 찬성하는 회원과 반대하는 쪽에서 1명씩 발언을 하는 중에 ooo 전 지부장이 마이크를 잡고 오랜 시간 발언과 제안과 상관없는 얘기를 해서 여기저기서 고성이 오가고 회의가 난장판이 되어 마이크를 끄게하고 진행을 위해서 퇴장을 요청했는데 계속해서 악다구리를 부리고해서 퇴장을 요청하였지만 계속해서 회의를 방해했습니다.” 

김지부장님, OOO 전 지부장님이 오랜 시간 발언?” 하거나, “제안과 상관없는 얘기?”를 했다? 

OOO 지부장님을 옹호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본바와 너무 달라 회의 동영상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OOO 전 지부장님은 저는 정관의 문제점을 말씀 드리겠습니다…”하고 발언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약 10여초 정도 지나자 바로 소장님이 , 회원님, 정관개정에 대해서만 얘기해주세요…”라며 제지에 나섰습니다. 분명 개정 정관의 문제점에 대해 말하겠다고 시작한지 몇초만에 

그리고는 여기저기서 회원들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고함치기 시작했습니다. 그 뒤로 OOO 지부장님과 회원들과의 사이에 고성이 오가자 소장님이 진행요원을 부르시며 마이크 빼앗고 퇴장시키라고 지시했습니다 

김재광 지부장님, 그렇게 함부로 허위로 얘기하는거 아닙니다. 마이크를 잡은 OOO 전 지부장님은 정말 몇 마디도 못해보고 마이크를 빼앗겼어요. 왜곡하지 마시고, 확인해 보세요 

소장님은 찬성발언을 하는 사람에게는 전혀 제지를 안 하시거나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부탁하셨고, 반대발언자에게는 발언이 반대쪽이란 게 드러나는 순간부터 개입해서 방해를 시작하셨습니다. 김지부장님이 그렇게 객관적이고 정의롭다면 왜 반대발언을 막는 소장님이나 회원들의 악다구니에는 침묵하나요 

조세열 사무총장은 자기 주장을 담은 글을 아무 힘 안들이고 자료집에 넣어 전달한 반면, 나는 총회장 앞에서 내 주장을 담은 유인물을 돌리다 운영위원과 회원들에 의해 욕설을 들어가며 이리저리 끌리고 내 쫓기면서 시달림을 당했는데, 그렇게 비민주적이고 폭력적이고 부당한 건 왜 아무런 얘기 안하지요 

그리고 총회장 밖에서 시위를 하는 사람들의 현수막을 칼로 찢는 태극기부대 같은 행태에 대해서는 왜 말이 없지요 

앞으로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마치 객관적인 양, ‘정의파인 양 하지 말고 그냥 집행부 시각에서 얘기하겠다고 하세요. 그러고도 역사정의를 바로 세운다고요? 자신부터, 사소한 정의부터 바로 세우시길 

어느 시민단체에서 단체와 집행부의 일상활동을 운영위원회에서 심의 의결하는 단체는 보지를 못했고 있을 수도 없습니다. 사업을 하지 말라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운영위원회가 무소불의의 권력기간입니까? 참으로 개탄스럽습니다.” – 김재광 

참여OO 정관을 한번 보세요. 회원과 운영위원회를 얼마나 존중하며 큰 권한을 부여하고 있는지를 

운영위원회가 심의의결을 하면 사업을 못합니까? 그러면 지난 20년 동안, 그리고 김지부장님이 운영위원으로 있을 때도 심의의결 했었는데, 그때 연구소/집행부가 사업을 못했어요? 김지부장님 인식수준이 부끄럽고 걱정됩니다 

더 이상 왜곡된 사실로 민족문제연구소의 정의로움을 갈망하는 회원님들과 시민들을 혼란에 빠뜨리지 않게 하시길 부탁드립니다 

2018. 3. 31

민족문제연구소

전 운영위원장(9) 여인철

__________

첨부: 김재광 지부장의 반박문 

여인철 회원의 민문연 총회 후기에 대한 반박문 

여인철씨의 사실을 왜곡하고 민문연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후기에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에서 더 이상 침묵하면 않될 것 같아서 사실을 알려드립니다.  본인도 당일 총회에 참석한 회원으로서 저의 시선으로 보고 느낀점을 말씀드립니다.

1.정관수정안에는 회원과 운영위원의 권리를 박탈한 조항은 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아래 첨부한 사진 속 개정안을 참고하세요.

 단 논쟁이 된 조항은 20년전 초창기에 만들어진 조항인 정관제323기타 연구소의 일상업무를 심의.의결한다는 조항을 폐기하는 문제를 침소봉대하고, 본인이 민문연 운영위원장을 했던 분이 후임 운영위원장과 운영위원이 결정한 개정안을 비민주적이라고 폄하하고운영위원장과 정관개정소위원회 위원을 한 운영위원을 사퇴하라고 성명서를 발표해서 명예를 손상시키고, 민문연 소장과 회원이 비민주적이고 패거리 집단처럼 호도하는 것은 사실을 왜곡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당일 총회 시작 후 2시간 정도 흐른 뒤 정관개정안 의결 순서가 되어서 제안자인 xxx 운영위원장이 제안설명을 하고, 개정안을 반대하는 여인철씨가 반대입장을 발표했는데, 너무 장황하게 얘기를 해서 찬반토론을 위해서 3분안에 발언을 마쳐달라고 사회를 본 소장이 부탁을 드렸고 

찬반 토론이 시작되어 찬성하는 회원과 반대하는 쪽에서 1명씩 발언을 하는 중에 xxx 전 지부장이 마이크를 잡고 오랜 시간 발언과 제안과 상관없는 얘기를 해서 여기저기서 고성이 오가고 회의가 난장판이 되어 마이크를 끄게하고 진행을 위해서 퇴장을 요청했는데 계속해서 악다구리를 부리고해서 퇴장을 요청하였지만 계속해서 회의를 방해했습니다. 

하여 더 이상 회의 진행이 어렵다고 판단해서 소장이 충분한 의사를 알았으니 표결에 붙이겠다고 하여 개정안 삭제를 낸 여인철씨와 뜻을 같이하는 5명만이 반대하고 200여명이 넘는 회원이 찬성을 해서 민주적 절차에 의해서 통과된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만이 올고 다른 회원과 운영위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틀리다는 생각은 민주주의를 위해서 촛불을 들었고, 민문연 운영위원장을 엮임했던 회원으로서 올바른 행동이라고 판단되지 않습니다. 또한 민문연 내부의 문제를 사실을 왜곡해서 촛불을 들었던 이 카톡방에 퍼트리는 것은 올바른 행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총회에 참석한 수 많은 회원의 목소리는 안중에도없고 내가 주장한 것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비민주적이고 폭거가 되는 것입니까? 참으로 안타깝고 개탄스럽습니다. 

20년 가까이 여인철씨를 보아온 저로서는 요즘 행태에 대해서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전합니다. 부디 자중하시고 본인을 성찰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 ()경기북부지부장 김재광_

*************

어느 시민단체에서 단체와 집행부의 일상활동을 운영위원회에서 심의 의결하는 단체는 보지를 못했고 있을 수도 없습니다. 사업을 하지 말라는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운영위원회가 무소불의의 권력기간입니까? 참으로 개탄스럽습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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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스토킹은 적폐인가요 아닌가요

화, 2017/11/21-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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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고려박물관회원들, 독립기념관 등 3.1운동 유적지 답사

“내년 3·1만세운동 100돌을 앞두고 일본인에게 3·1만세운동 정신을 알리기 위한 전시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이번 한국 방문은 유관순 기념관과 생가, 독립기념관, 수원 제암리 교회 학살현장과 서대문형무소 등을 돌아보면서 내년 전시에 대한 구상과 해당 기관의 자료 협조를 구하기 위해 방한했습니다.”

하라다 교코(原田京子, 72) 이사장은 이번 방한 목적을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 6월 18일부터 어제(21일)까지 3박 4일간 서울을 방문한 도쿄 고려박물관 회원 14명은 무더운 날씨 속에 일제 침략기 일본인들이 저지른 만행 현장을 둘러보는 빠듯한 일정을 마치고 어제 오후 귀국길에 올랐다.

고려박물관 회원들은 민족문제연구소 방문을 시작으로 무더위 속에서도 일제침략 시 만행의 현장과 기억 공간을 둘러보며 “조상들이 저지른 침략”에 대해 무한한 참회의 뜻을 전했다. 이들의 통역 겸 안내를 위해 동행한 기자는, 가는 곳마다 메모 노트를 꺼내 꼼꼼하게 적어가면서 “참혹하고 잔인했던 역사의 현장”을 기억하려하는 고려박물관 회원들의 모습에 가슴이 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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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관순 생가 유관순 생가에서 열심히 메모를 하는 고려박물관 회원들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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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관순 기념관 유관순 기념관, 만세운동 당시를 재현한 방에서 설명을 듣는 고려박물관 회원들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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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기념관 독립기념관, 의병 전시실에서 설명을 듣는 고려박물관 회원들 ⓒ 이윤옥

“일본인들에게 3.1만세운동의 진정한 의미 알릴 것”

이번에 방한한 일본인들은 고려박물관 내 조선여성사연구소 회원들로, 이들은 특별히 내년에 3·1만세운동 100돌을 앞두고 ‘3·1운동 100돌 전시 준비위원회’를 꾸렸으며 전시기획을 위한 사전답사의 목적으로 방한한 것이다. 고려박물관 회원들은 지난 27년간 일본 도쿄 한복판에서 호주머니를 털어 건물을 빌리고 자원봉사로 고려박물관을 꾸려오면서 “조선침략의 역사”를 일본 사회에 고발하고 있는 양심있는 일본 시민들이다.

이들은 “침략의 역사는 없다”고 잡아떼고 있는 아베 정권에 맞서서 조선침략의 역사를 반성하는 각종 전시와 강연 등을 27년간 지속해왔다. 더 나아가 일본 제국주의의 잘못을 준엄하게 꾸짖고 과거 침략의 역사를 까마득히 잊고 사는 일본인들에게 “3·1만세 운동 정신”을 알리려는 기획 전시를 계획하고 있는 것이다.

제암리교회 학살 등 수원지역의 독립운동 관련 자료를 보러 방문한 수원박물관에서는 일본 동경 고려박물관이라는 환영 문자로 회원들을 환영하면서 친절한 안내와 향후 적극적인 자료협조를 하겠다는 응대가 돋보였다.

“일본인들은 한국의 3·1만세운동에 대해 잘 모릅니다. 그런 일본인들에게 내년 100돌을 맞아 3·1만세운동의 진정한 의미를 알릴 생각입니다. 또한 3·1만세운동 당시 제국주의 일본의 행태를 파악하고 어떻게 대응했는지에 대한 조사와 한국의 3·1만세운동 정신의 현대적 의미 등을 중심으로 전시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방한 목적대로 고려박물관 회원들은 3·1만세운동 유적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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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박물관 제암리교회 학살 등 수원지역의 독립운동 관련자료를 보러 방문한 수원박물관에서는 일본 동경 고려박물관이라는 환영 문자로 회원들을 환영하면서 친절한 안내와 향후 적극적인 자료협조를 하겠다는 응대가 돋보였다.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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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성행궁 화성행궁을 무자비하게 파괴한 일제의 만행에 대해 듣는 고려박물관 회원들, 바쁜 일정에도 한동민 수원화성박물관장이 직접 이곳까지 나와 당시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 이윤옥

이들은 유관순 생가와 기념관을 둘러보고 아우내 장터의 함성을 떠올리며 순대국밥을 함께 먹었으며, 수원 제암리교회 학살 현장을 둘러보던 날은 토속 음식인 청국장 등을 먹으며 당시 제국주의 일본의 악행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한편 이들은 3일째 마지막 일정인 제암리교회 답사를 마치고 상경하여 한국외대 세미나실에서 기자로부터 3·1만세운동과 여성독립운동가에 대한 강의를 늦은 시각까지 듣는 열의를 보였다.

이번 3·1만세운동 유적지를 돌아본 뒤 와타나베 야스코(渡辺泰子)씨는 “제암리교회 양민 학살 사건 현장을 둘러보며 특히 가슴이 아팠습니다. 내년 전시 때 한국의 유관기관의 자료를 협조 받아 제대로 된 3·1만세운동의 실상을 일본인들에게 알리겠습니다. 한국에서도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라고 했다.

화성행궁을 무자비하게 파괴한 일제의 만행을 듣는 고려박물관 회원들, 바쁜 일정에도 한동민 수원화성박물관장이 직접 이곳까지 나와 당시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또한 아오야기 준이치(青柳純一)씨는 “저는 독립기념관 뒤뜰에 전시 중인 해체된 조선총독부 건물 조각들을 보면서 일본 제국주의의 종말과 그들이 저지른 잔혹사에 참회의 마음을 느꼈습니다. 아직 아베 정권은 진정한 참회를 하고 있지 않지만 저 개인이라도 한국인에게 참회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라고 했다.

“조선총독부 건물 조각들 보면서 참회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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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암리교회 화성 제암리 교회 학살현장을 둘러 본 고려박물관 회원들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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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총독부 건물 독립기념관 야외공원에는 해체한 조선총독부 건물 잔재를 전시하고 있는데 이곳을 찾은 고려박물관 회원들은 철통같았던 조선통치를 기억하며 그 악행에 대한 사죄를 했다. ⓒ 이윤옥

이번 도쿄 고려박물관 회원들의 방한 일정에는 박미아 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박사의 숨은 노력이 컸으며 아울러 <신한국문화신문> 양인선 기자 등 여러명의 한국인들이 3박 4일 일정에 동행하여 한일 사이 우정을 쌓았다. 특히 수원박물관 이동근 학예연구사와 독립기념관 윤소영 선임연구위원, 수원화성박물관 한동민 관장 등의 친절한 응대와 향후 적극적인 협조 의사에 대해 고려박물관 하라다 교코(原田京子) 이사장은 회원들을 대표하여 깊은 감사의 말씀을 기자에게 전해달라고 했다.

내년 3·1만세운동 100돌 기념사업을 위해 나라 안팎에서 많은 단체 등이 준비를 하고 있지만 특히 일본의 순수한 시민단체인 고려박물관에서 그 어떤 지원도 없이 시민들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전시회를 기획하고 있는 일에 우리들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일본 고려박물관(高麗博物館)은 어떤 곳인가?

1. 고려박물관은 일본과 코리아(한국·조선)의 유구한 교류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전시하며, 서로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고 이해하며 우호를 돈독히 하는 것을 지향한다. / 2. 고려박물관은 히데요시의 두 번에 걸친 침략과 근대 식민지 시대의 과오를 반성하며 역사적 사실을 직시하여 일본과 코리아의 화해를 지향한다. / 3. 고려박물관은 재일 코리안의 생활과 권리 확립에 노력하며 재일 코리언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전하며 민족 차별 없는 공생사회의 실현을 지향한다.”는 목표로 설립한 고려박물관은 (이사장 하라다 교오코) 1990년 9월 ‘고려박물관을 만드는 모임(高麗博物館をつくる会)’을 만들어 활동해온 순수한 시민단체로 올해 28년을 맞이한다.

고려박물관은 전국의 회원들이 내는 회비와 자원봉사자들의 순수한 봉사로 운영하고 있다. 한국 관련 각종 기획전시, 상설전시, 강연, 한글강좌, 문화강좌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기자는 2014년(1월~3월)과 2016년(11월~2017년 2월), 2회에 걸쳐 항일여성독립운동가 시화전과 한국의 여성독립운동가를 알리는 강연 등을 했다.

*고려박물관은 도쿄 신오쿠보 한국수퍼 ‘광장’ 맞은편에 있으며 전화는 03-5272-3510이다. 이곳에는 한국어가 가능한 자원봉사자들이 있으며 일본인 회원들도 거의 한국어가 가능하다.


글: 이윤옥(koya26) 편집: 박혜경(jdishkys)

<2018-06-22>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3.1만세운동 100돌 전시’ 위해 한국 찾은 일본인들

토, 2018/06/23-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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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비망록 35

이순우 책임연구원

 

일제강점기에 벌어진 문화재수난사에 관한 얘기를 하노라면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으로 ‘법천사 지광국사현묘탑(法泉寺 智光國師玄妙塔, 국보 제101호)’이란 석조유물이 있다. 불교미술의 꽃이라는 일컫는 이 사리탑은 일본인 골동상에 의해 일찍이 1911년 여름 강원도 원주에 있는 절터를 벗어나 서울 명동과 일본 오사카 등지를 떠도는 통에 남다른 풍상을 겪었고, 1912년 12월경에 간신히 국내로 재반입된 이후 다시 총독부박물관의 야외전시유물로 전락한 이래 거의 한 세기가 넘도록 경복궁 안에 오갈 데 없이 갇혀 있어야 했던 비운의 문화재이다.
특히 한국전쟁 때는 포탄을 맞아 탑신이 크게 파손되는 악운이 겹치는 바람에 만신창이가 되었다가 콘크리트로 겨우 외형이 복구되었고, 2016년 4월에 와서야 전면적인 해체 수리 복원을 위해 대전에 있는 국립문화재연구소로 옮겨간 상태에 있다. 그런데 이 사리탑이 애당초 원래의 절터에서 무단 반출되어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게 된 내력이나마 자세히 알려지게 된 것은 흥미롭게도 후지무라 도쿠이치(藤村德一)라는 일본인이 『거류민지석물어(居留民之昔物語) 제1편』(1927)라는 책에 남겨놓은 「현묘탑강탈시말(玄妙塔强奪始末)」이라는 글 덕분이다.
그는 통감부 시절에 ‘퇴한명령(退韓命令)’을 받은 전력이 있고, 그 바람에 자기들 나름으로 반체제 인사로 간주되었던 모양이었다. 그래선지 그의 책에는 「관헌의 횡포와 관리의 비상식」이란 소제목이 말해주듯이 자기네 위정자(爲政者)들에 대한 반감이 노골적으로 반영된 내용이 곳곳에 수록되어 있다. 다음에 소개하는 「하세가와 원수(長谷川 元帥)와 아방궁(阿房宮)」이란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정리된 글로 파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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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세가와 총독과 용산총독관저의 전경이 배경도안으로 묘사된 조선총독부 발행 ‘시정7주년기념엽서’(1917)

 

세간에 용산의 ‘아방궁’이라고 불리는 것은 하세가와 요시미치(長谷川好道) 씨가 일찍이 러일전쟁 직후 한국주차군사령관으로 경성에 재임중에 러일전역비(러일전쟁비)의 잉여금 50만 엔을 들여 군사령관 관저로 하고자 건설했던 것임에도 불구하고, 당사자인 하세가와 씨는 물론이고 아직 그 누구도 이곳에 거처를 정한 바가 없는 불가사의한 건축물이다.(중략)
50만이라고 하는 국탕(國帑, 나랏돈)을 낭비하고 그 책임을 전가시키기 위해 궁여지책의 결과로 이를 이궁(離宮)으로 삼으려고 계획하기에 이른 것은, 국민이 단호하게 이를 힐책하지않을 수 없고, 20년 전의 50만 엔은 오늘날 2백만 엔에 필적할 거금으로 이를 낭비하고 그 후 처지가 곤란해져서 부적합한 곳에 이궁을 둬야 할 필요는 추호도 존재하지 않으므로, 내가 이 대건축물을 일컬어 늘 불충관(不忠館)이라고 하는 까닭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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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한병합기념사진첩』(1910)에 수록된 ‘데라우치통감 신임피로회장 약도’의 모습이다. 용산정거장 건너편으로 한국주차군사령부와 등진 자리에 포진한 통감관저의 위치 관계와 삼각도(三角道, 삼각지) 쪽에서 연결되는 행로가 잘 묘사되어 있다.

 

여기에서 아방궁이라고 일컫는 곳은 용산총독관저(龍山總督官邸)이다. 흔히 총독관저라고 하면 남산 왜성대 인근에 자리한 옛 통감관저를 지칭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곳과는 별개의 관저가 또 하나 존재했다는 얘기이다. 그 위치는 지금의 용산미군기지 안에 포함된 곳으로 서울 용산역과 국립중앙박물관의 중간쯤이었으며, 일제 때의 지번(地番)으로는 ‘한강통 11-43번지’에 해당하는 지점이었다.

 

일제강점기 총독관저의 소재지 변동에 관한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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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무라의 글에서 나타나듯이 용산총독관저는 원래 한국주차군사령관 관저의 용도로 세운 건축물(1907년 6월 기공, 1910년 4월 준공)이었다. 하지만 너무 웅장하고 화려하게 건립된 탓에 건물이 완공되기 이전에 이미 ‘통감관저’로 용도변경이 추진되기에 이르렀고, 그 결과 총독부가 별도의 건물을 지어 이것과 맞교환하는 형태로 인수인계가 이뤄졌다고 알려진다.
그런데 정작 이곳이 총독관저로 바뀐 이후에는 아무도 이곳을 집무공간으로 삼았던 사실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난다. 1932년 8월에 우가키(宇垣) 총독이 자기 가족과 함께 여가를 즐기기 위해 20여 일 남짓 이곳에 기거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한참의 세월이 흐르도록 그 누구도 이곳을 거처로 정한 일조차 없었다. 무엇보다도 유지관리비용이 지나치게 컸고, 서울 시내와 동떨어진 곳에 자리하다 보니 업무상 불편이 크다는 것이 그 이유로 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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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지리풍속대계 제16권』(1930)에 수록된 용산총독관저 일대의 전경사진. 왼쪽 위에 지붕이 드러난 건물은 조선군사령부(옛 한국주차군사령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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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책에 수록된 용산총독관저의 대문 쪽에서 담아낸 전경사진.

 

상황이 이러하니 이곳은 그저 역대 통감이나 총독이 주관하는 연회와 접대가 드문드문 벌어지는 공간으로 사용되는 것이 고작이었다. 예를 들어 1910년 7월에 데라우치 통감이 부임했을 당시 축하피로연이 벌어진 장소가 이곳이었으며, 경술국치 이후로는 천장절 축하연이나 만찬회 따위가 곧잘 이곳에서 개최되기도 했다. 그때마다 창덕궁 이왕으로 격하된 순종황제가 몸소 이곳까지 행차했다는 기록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이곳은 간혹 식민지 조선을 찾은 일본 황족이나 서양의 귀빈들을 위한 숙소로 사용되기도 했는데, 평상시에는 거의 비어있는 공간인 까닭에 그때마다 대대적인 건물수리와 조경공사가 벌어지곤 했다
용산총독관저가 이처럼 시설과 규모는 번듯하나 지나치게 화려하고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덩치가 큰 탓에 이러한 처치곤란의 신세를 타개하기 위해 나온 발상이 바로 이궁(離宮) 건설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경성일보와 매일신보의 감독을 지낸 도쿠토미 소호(德富蘇峰, 1863~1957)와 같은 이는 『양경거류지(兩京去留誌)』(1915)를 통해 이를 조선에 있어서 천황 이궁의 하나로 삼는 것이 최상책이라고 설파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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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보』 1938년 11월 13일자에 실린 미나미 총독 주최 제3회 고령자 초대회 관련보도.

 

『매일신보』 1935년 7월 11일자에 수록된 기사에 따르면, 왜성대 총독관저를 병합기념관으로 보존하는 대신에 용산총독관저를 증축 개조하여 새로운 관저로 사용하려는 계획이 수립된 적이 있었으나, 이 역시 그대로 실현되지는 않았다. 이 시기에 자못 흥미로운 것은 제7대 조선총독으로 부임한 미나미 지로(南次郞)가 1936년 이후 1941년 가을에 이르기까지 해마다 80세 이상의 장수노인(長壽老人)을 전국에서 초대하여 이곳 총독관저에서 성대한 경로잔치를 벌였다는 사실이었다.
겉으로는 국민정신 작흥과 경로사상 고취를 명분으로 내세운 이 행사의 속내가 무엇이었는지에 다음과 같은 미나미 총독의 인사말에서 잘 포착되고 있다. 『매일신보』 1938년 11월 13일자에 수록된 관련기사에는 그 내용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나는 미나미 총독이올시다. 오늘 고령자 제씨가 이 같이 다수히 참석하여 주신 것을 충심으로 기뻐합니다. 무릇 장로를 존경하는 것은 사람의 자연스런 지정이오 또 도덕의 근원인데 특히 동양에서는 경로의 좋은 습관이 깊이 사회에 침윤되어 왔고 조선도 고래로 이 미풍이 성황하였는데 이것을 민중 전반에 궁행실천시키고 싶어서 총독된 이후로 매년 고령자 위안회를 개최하고 지방에도 이를 장려하고 있는 터입니다.(중략)
지나사변(支那事變, 중일전쟁)은 천황폐하의 어능위(御稜威) 아래 용맹과감한 황군장병의 분투와 열렬한 총후국민의 협력에 의해서 여러분도 아다시피 지난번 항일의 제2수도인 한구(漢口)도 함락하고 적은 멀리 달아났습니다. 그러나 사변은 결코 이로써 끝나지 않고 금후 국민은 일층 공고한 각오와 노력이 필요한 터이니 여러분은 장로의 입장에서 젊은 사람들을 편달하여 주어야 합니다.

 

용산총독관저의 연혁을 따라가다 보면, 일제가 패망을 앞둔 시점에서 이곳은 다시 ‘조선총독부지도자연성소(朝鮮總督府指導者鍊成所)’의 용도로 사용된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고이소(小磯) 총독이 반도통치의 세 가지 큰 방침의 하나로 내세운 ‘수양연성의 철저적 실천’을 구현하기 위해 1943년 3월 1일부터 용산총독관저를 이용하여 개설한 기관이었다.
황도수련원(皇道修鍊院)의 성격을 띤 이곳에서는 육군중장 출신의 사이토 야헤이타(齋藤彌平太)가 소장을 맡았고, 총독 자신을 포함하여 총독부의 각 국장과 도지사 등을 대상으로 한 연성회가 진행되었다. 또한 총독부 고등관은 물론이고 판검사, 부윤, 군수 등을 집결시킨 수련회도 곧잘 이곳에서 실시된 바 있었다.
『매일신보』 1944년 7월 7일자에 수록된 기사에는 중추원 참의 30명이 참가한 합숙훈련 상황이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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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보』 1943년 8월 29일자에 실린 총독부지도자연성소 입소식 관련 보도내용.

 

중추원 참의 30명의 합숙연성이 6일 오후 1시부터 용산의 총독부지도자연성소에서 5일간 예정으로 시작되었다. 참의들은 지난 4일부터 총독부에서 열린 중추원 회의에 출석하여 결전하 반도 민중의 전의앙양(戰意昻揚)과 황국근로관 확립에 관한 열성스러운 의견을 개진하였고 또 고이소 총독의 훈시를 듣고 금후 민중의 지도자로서 봉공할 결의를 굳게 한 터인데 연 2일간 계속된 회의로 자못 피로한 터임에도 불구하고 연성에 참가한 것이다. 이날 오후 1시 연성소에 집합한 전원은 처음 신체검사를 받고 연성소 직원으로부터 주의사항 설명을 들은 다음 오후 6시부터는 신배(神拜)로부터 시작하여 열성스러운 연성을 시작하였다.

 

이곳 용산총독관저는 한국전쟁 시기에 반파(半破)된 모습이 드러난 적이 있다는 사실만 드러났을 뿐 아무도 이 건물의 최후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 용산 ‘아방궁’ 역시 일제침탈사에 있어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공간의 하나라는 점만큼은 오래도록 기억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금, 2018/04/20-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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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IDS홀딩스  1만 2천명의 피해자중 한사람입니다.

 

2016년 9월 2일

IDS 김성훈대표가 긴급구속 되고

그 이후 모집책으로부터 김성훈대표가 100%변제를 해줄것이라며 기다려달라고만 했습니다

본인도 큰돈을 투자했으며

IDS가 잘못되면 자신이 더 큰일난다며 지난 1년이상 민사 형사 소송을 지연시켜왔습니다.

 

물어볼때마다 희망고문 하듯

잘 될꺼라고만 했고

실질적인 변제안이 나올거라며

너무 확신에 차서 말을 했기에

전 믿을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후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이제와서는 제가 결정하고 투자한거니 변호사비용이며 법원 인지세와 송달료등을 요구했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는 저로써는

다 따를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후 도저히 답답해서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경찰서에 찾아가 사건의 실체를 알게 되었습니다.

 

김성훈을 비롯하여

모집책 또한 같은 사기공범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에

너무나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이제라도 이 일을 조금이라도 해결하고자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밤잠을 설쳐가며 너무나 고통스러운 마음을 다스려가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텼습니다.

 

정말 피같이 모은 돈인데

그냥 이대로 사기맞은것으로 끝난다면 미쳐버릴것 같고 절대 절대 포기할수가 없었습니다.

 

피해자들의 돈으로 법무법인 태평양을 선임하여 변호를 받고

구치소 동기인 한재혁과 공모하여 또다른 사기변제안을 만들고..

 

IDS홀딩스 대위변제자 한 씨는 김성훈 ‘구치소 동기’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6792

 

 

그 대위변제자는 피해자들의 피같은 돈으로

경찰 인사 청탁을 하고

 

IDS홀딩스 대위변제자, 경찰 인사 청탁 정황 드러나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9452

 

사건의 전말이 하나하나씩 들어날때마다 어이가없고

너무나 고통스럽습니다.

 

 

 

그런데…

파산이라는 또 다른 커다란 시련이 떡~!하니 나타나  피해자들의 앞을 가로막아

추운겨울 한파가 뼈속을 파고들고 흘린 눈물이 얼어붙는것같습니다.

 

 

정말 진심으로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인권 평화 미래를 생각하는 올바른 역사행동을 하는 곳이고

이런 훌륭한 곳의 고문변호사를 맡고 계시는 분이니

피해자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수, 2017/12/06-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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