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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인터뷰] 민변은 나의 등불 : 김호철 변호사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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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인터뷰] 민변은 나의 등불 : 김호철 변호사를 만나다

익명 (미확인) | 금, 2018/03/30-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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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사랑방인가요?

전 우리 민변이 이런 사랑방처럼 편안한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2018년 3월 민변 사무실 내 휴게공간인 사랑방에서 김호철 변호사를 만났다. 그는 인터뷰가 진행된 사랑방처럼 민변이 ‘소통, 공감, 편안함과 행복’의 모습으로 후배들에게 다가갔으면 좋겠다는 소신을 밝혔다.

 

“2000년대 초반, 민변은 너무 엄숙주의에 빠져 있다고 선배들에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민변 회원이라 하면 만나서 반가워 농담도 하고, 변호사로서 영업을 하다가 도움이 되었던 것을 서로 공유도 할 수 있는 건데, 민변은 너무 근엄하고 진지한 얘기만 한다고 했다가 분위기가 썰렁해졌습니다.(웃음) 아, 괜히 이야기했나하는 생각이 들었죠. 조금 더 격이 없는 소통을 할 수 있고 유쾌발랄한 분위기를 더 가질 수 있도록 모임을 개선해야하지 않을까라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뭐, 요즘 후배들도 우리를 바라보면서 너무 어렵고 엄숙주의에 빠져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할 수도 있겠지만요. (웃음)”

 

김호철 변호사는 현재 민변의 부회장이며 최근 13대 민변 회장으로 당선되었다. 과거에서 현재까지 민변과 함께한 그의 변호사 활동들과 차기 회장 당선인으로서 가진 포부는 어떤 것일까.

 

 

이혜정 김호철 변호사님, 얼마 전에 차기 회장으로 당선되셨습니다. 정말 축하드립니다! 대부분의 민변 회원들이 뉴스레터를 통해 변호사님 인터뷰를 접할 텐데요, 특히 신입회원들의 경우 김호철 변호사님을 모르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김호철 1994년 변호사 개업 당시, 민변 회원이셨던 ‘고 최일숙’, ‘정영원’변호사와 함께 서울지방법원 동부지원(현 서울동부지방법원) 근처에 법률 사무소를 열었습니다. 당시 초년생에 불과했던 변호사 셋이서 그래도 변호사의 품위와 의무를 다하고자 공익적인 업무를 더불어 하자는 결정을 했고, 법무법인 ‘동부종합법률사무소’를 개설하여 2002년까지 활동했습니다. 당시 저희 세명이서 민변 국가보안법 사건의 동부관할 사건을 대부분 소화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 외에도 환경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환경위원장을 맡기도 했고 당시 출판홍보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면서 민변 집행위원으로도 활동했습니다.

 

이혜정 와~ 활동 많이 하셨는데요? (웃음)

 

김호철 (웃음) 네, 그리고 민변 선배님의 추천으로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상임위원으로 들어가 3년간 공무원 신분으로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3년간의 위원회 일을 마치고) 복귀 후에는 공백이 너무 커서 본업인 변호사 일에 전념하느라 2009년부터 2015년까지는 민변 활동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가 지금 회장님이신 정연순 변호사님의 제안으로 2015년도에 민변의 부회장직을 맡게 되었습니다.

 

 

변호사 개업과 함께 당연하듯 시작한 민변 활동, 회장후보에 출마할 의무감을 안기다.

 

이혜정 변호사가 되면 바로 민변에 가입해야겠다고 이전부터 생각을 하신건가요?

 

김호철 당연하죠. 변호사 생활은 민변활동과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요즘은 이재명 시장(현 성남시장)이 밝혀서 민변이 대중에게도 알려지긴 했지만, 사법연수원시절부터 우리사회 인권과 민주사회 발전을 위해 함께 고민을 나누던 멤버들이 있었습니다.

 

이혜정 회장 후보 출마를 결심하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을 텐데요.

 

김호철 제가 자격이 없다는 생각 때문에 쉽게 나서지 못했습니다. 민변이 오랜 기간 쌓아온 사회적인 신뢰에 걸맞은 신뢰 자산을 내가 구축하고 있는가에 대한 확신도 없었고… 민변 회원들을 대표해서 개별 회원들의 사정과 바람을 잘 파악하고 실현할 수 있을까… 여러모로 자신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보 등록을 한 것은 20여 년간 회원으로 있으면서 의무감이 들어서 입니다. 과거에 회원들의 활동들을 쫓아가면서 죄송함과 부채 의식을 지니고 있는 와중에 후보등록자가 없어서 고민하시는 선배님들과 회원 분들을 보며, 의무감이 발동했습니다.

 

이혜정 민변 회장에 나간다고 하니 가족이나 주변 분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김호철 그 점에 대해서 지금 있는 법무법인 한결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법무법인 내에 후배변호사들과의 협업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기도 하고요. 민변에서의 활동으로 인한 저의 공백을 기꺼이 감수해주는 법무법인과 후배변호사들에게 감사합니다.

가족은 뭐….(웃음) 변호사 생활 내내 가족에게 미안해하면서 눈치 보면서 살아와서.. (웃음) 이번에도 적절하게 ‘눈치껏’ 별 일 아닌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환경문제는 환경운동이 우선이고 소송은 다음이라는 원칙

 

이혜정 변호사님 프로필을 쭉 살펴보면 주로 환경전문 변호사로서 활동을 많이 하셨던데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김호철 사법연수원 시절에 환경권 학회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학회에서 공부를 하면서 우리나라의 공해 현실을 제대로 알기 위해 찾아간 곳이 지금의 환경운동연합에서 진행한 교육 프로그램입니다. 그때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의 공해 문제, 환경 문제의 현실을 현장에서 공부할 수 있었죠. 이런 것들이 이어져 자연스럽게 환경운동 volunteer라는 저만의 정체성을 갖게 됐습니다. 그런데 제가 잘 할 수 있는 것은 역시 소송이니까 환경소송을 담당하게 된 거구요.

환경소송을 할 때는 ‘환경문제는 운동이 우선이고 소송은 다음’이라는 저 나름의 원칙을 가지고 임해 왔습니다. 새만금 소송과 일조 침해소송, 핵폐기장 설치 관련 소송부터 최근의 월성 원전 수명연장 취소소송까지, 운동을 우선적으로 하고 법적 판단은 보충적이고 최종적으로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임했습니다. 덕분에 관련 쟁점들이 많이 정리되었고 사회적 공방 속에서 상대측의 문제들을 충분히 인식하며 일해 좋은 결과를 많이 얻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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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정 직접 진행하셨던 월성원전 소송부터 최근에 생긴 신고리공론화위원회까지, 그 어느 때보다도 ‘탈핵’이나 ‘탈원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탈핵’이나 ‘탈원전’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 우리나라를 위한 바람직한 방향은 무엇일까요.

 

김호철 인류가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 중 하나가 바로 기후변화인데, 이는 인류의 욕망 때문에 발생한 온실가스가 가져온 인공적 위험이고 자연의 정화능력이나 순환을 교란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위협이죠. 하지만 자연을 무작정 개발의 대상으로 보는 관점에서 벗어난다면 재생에너지처럼 생태계를 교란시키지 않으면서도 자연의 무한한 힘을 잘 선용할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핵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핵무기 개발이라는 반생명적인 활동의 부산물이 초래하는 인공적 위험은 가공할만한 수준입니다. 하지만 ‘탈핵’의 관점에서 생각해본다면 자연이 보유한 무한한 에너지를 얼마든지 인류에게 최대한 위험이 없는 방향으로 개발할 수 있습니다. 탈핵은 그동안 인류가 공감해온 방향이지, 시대에 역행하거나 일부 사람들의 편협한 이념적 잣대에서 비롯된 주장은 아닙니다. 재생에너지나 기존의 자연의 힘을 이용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연구와 투자를 해야 하고 법률가로서 이 과정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혜정 최근 신입회원들의 관심사를 보면 환경 분야에 관심 있는 회원들이 많더라고요. 관련해 환경전문 변호사로서 후배들에게 조언을 하신다면요?

 

김호철 우선은 인류가 직면한 문제들 중 가장 (먼저) 풀어야할 숙제가 기후변화와 탈핵입니다. 법률가로서 이 문제를 풀어나갈 방법을 찾고 관심을 지속적으로 갖는 게 중요할 것입니다. 환경보건위원회를 찾아가서 예비 법조인을 위한 민변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추천드려요.

원자력 발전에 있어 가장 큰 원칙은, 진흥과 규제가 분리되어서 규제가 독립적으로 행사되어야 한다는 것이에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 원칙이 잘 지켜지지 않다가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서야 미미하게 지켜지는 실정이에요. 그러다보니 규제기관이 규제권한을 행사하는 틀과 체계가 잡혀있지 않고 미흡한 부분이 많습니다. 법률가는 가동 중인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규제가 제대로 행사되었는지 법률적으로 살펴야 하고, 만약 그렇지 않을 경우 소송이나 정책 제안 혹은 정책 비판을 함으로써 시민들의 안전을 담보해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원자력 발전소 하나 닫는다고 해서 위험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위험관리가 되고 있는지 감독하는 것도 법률가가 마땅히 수행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해결해야 할 중요한 사안들은 많은데 관심이 좀 떨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또 환경보건 분야는 활동영역이 국제적으로도 무한히 확장될 수 있다는 점을 알려드리고 싶어요.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의 3년 중 얻은 문제의식

 

이혜정 변호사님께서는 환경문제 외에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활동도 하셨습니다. 최근에는 워낙 군대 관련 사건 사고들이 많이 발생하기도 하고 관련한 사법개혁 논의도 진행되고 있는데요. 변호사님께서 경험하셨던 바에 의하면 우리나라 군대 문제는 어떠한 방향으로 해결되어야 할지, 특히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김호철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활동 당시 여호와의 증인이 박정희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인해 폭행과 가혹한 고문을 당하다가 사망한 사건을 밝힌 적이 있습니다. 이 분 외에도 양심에 따라 집총거부를 주장하다가 돌아가신 분들이 많이 계시죠. 문제는, 4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사회는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상태라는 것입니다. 집총거부에 대한 양심의 순결함은 사회가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러한 양심을 지켜주기 위한 사회적 배려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인권의 문제입니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사회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사법적 판단, 제도적 보완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군의문사와 관련해서는, 폐쇄적이고 통제적인 군사 문제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어렵더라도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제도가 뒷받침 되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군복무라는 것이 국가의 안보를 위해서 시민이 일정기간 희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민으로서의 인권이 군사법을 통해 최대한 보장되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의 경우 민주화가 정착됨에 따라 군대 내 사망자 수가 점점 줄긴 했어요. 5공화국 시절 자살자를 비롯한 군대 내 사망자가 1,000명에 가까웠다면 노태우 시절 400~500명 정도로 떨어졌고, 김영삼 정부시절 300~200정도, 김대중 시절 100명대, 노무현 시절도 100명대 초반 유지를 하다가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를 설치하면서 현재는 100명 미만으로 떨어졌습니다. 예전보다 좋아진 거 아니냐, 할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 죽는다는 것이기 때문에 폐쇄적 군대 문화를 개선하기 위한 끊임없는 관심과 노력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직은 짓눌린차기 회장 당선인이 해야 할 일들과 회원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

 

이혜정 다시 민변으로 돌아와서요, 차기 회장으로 당선되신 만큼 앞으로 많은 회원들과 스킨십도 하셔야 할 텐데요. 김호철호 민변을 통해 그려나가고 싶은 민변은 어떤 모습인가요.

 

김호철 안 그래도 요즘 민변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하고 있는데, 책을 찾다보니 (가방에 있던 민변 발전 전략 보고서 꺼내들며) 2012년도 당시 김선수 회장님 때 발간된 민변 발전전략보고서가 있더라고요. 현 회장님 역시 이 전략발전보고서에 나와 있는 과제들을 충실히 이행해 오신 것 같아서 이제는 발전전략보고서를 넘어서는 새로운 비전, 발전 전략을 세워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새로운 사무처 구성을 선결 과제로 삼고 이후에 머리를 맞대 각 위원회의 활동 역량을 충분히 모아서 새로운 세대가 민변의 주역으로 활동할 수 있는 실천적인 발전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혜정 올해 민변은 30주년을 앞두고 있고, 변곡점에 있어요. 회원들이 늘어났지만 예전만큼의 희생과 헌신을 요구할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생계가 어려워서 시간을 내서 민변 활동하기가 어렵다는 회원들도 있고, 일부 회원들은 회비 내는 것도 부담스러워 탈회하기도 해요. 이런 회원들을 아우르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개성 많은 회원들을 이끌어가면서 우선적으로 하고 싶은 활동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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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철 본부와 지부 회원 간의 정서격차, 민변 활동 회원과 비활동 회원 사이의 이질감, 민변활동에 참여하는 양상의 차이, 이런 점들을 우선적으로 파악해야할 것 같습니다. 비활동 회원이 민변에 바라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먼저 경청해야 할 것 같아요. 그분들이 말을 하실 수 있도록 오프라인, 온라인의 소통의 공간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필요하면 찾아가고, 또 오시도록 하면서 거기서부터 답을 찾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또 다른 질의 소통공간을 찾아가야 할 것 같아요.

 

이혜정 그런 문제가 끊임없이 고민되어 와서 인트라넷, 페이스북 민변 그룹 등을 만들었지만 여전히 고민 지점이죠. 지금 이 자리에서 민변의 선배, 후배 변호사들에게 차기 회장으로서 당부하고 싶은 이야기를 먼저 말씀해주시는 것은 어떨까요.

 

김호철 부족한 사람이 회장으로 당선 되어서 거대한 민변을 끌고 가기엔 아직 짓눌려 있어요. 짓눌린 회장 당선인이 좀 기를 펼 수 있도록, 민변이 발전할 수 있는 방향으로 잘 이끌 수 있도록 좀 도와달라는 그 말씀을 우선 드리고 싶어요. 많이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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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정 마지막으로 변호사님께 있어 ‘민변이란’ 어떤 것인가요?

 

김호철 삶의 등불이죠 (웃음). 변호사 생활을 하다보면 다양한 사람들과의 네트워크를 형성합니다. 그러다보면 자칫 일탈하기 쉬울 수도 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변호사 개업 당시부터 지금까지 일탈하지 않고 나름 원칙을 갖고 (변호사 생활을)할 수 있었던 것은 민변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민변은 ‘내 삶의 등불이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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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위원회 활동 소식 

– 박현서 변호사

 

안녕하세요, 민변 회원 여러분. 뉴스레터를 통해서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지난 6월 이후 오랜만에 통일위원회 소식을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통일위 소식을 전하고 불과 5개월 사이에 6.12 북미정상회담, 평양 9월 남북정상회담 등이 진행되었고 한반도 평화의 길을 여는 중대한 전환점을 맞이한 듯합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여정이 숨 가쁘게 진행된 만큼, 저희 통일위원회도 이에 발맞추고자 열심히 관련 법제 연구도 하고, 토론회 등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1. 성명 및 논평 발표

지난 8. 23. 남쪽 열차를 신의주까지 운행하며 북쪽 철도 구간의 상태를 남북이 함께 점검하려던 계획이 유엔군사령부의 불허로 무산된 일이 있었습니다. 이에 ‘평화로 가는 길 가로막은 유엔사를 규탄한다’는 성명을 발표하였고, 2018. 9. 18. ~ 9. 20. 평양에서 진행된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맞아 9월 평양공동선언을 지지하고 환영하는 성명을 발표하였습니다.

 

2. 남북 법제 연구팀

지난 6월 이후 2번의 남북 법제 연구팀 모임을 가졌습니다. 6월까지 북한 민법 공부를 마무리 하고, 북남경제협력법·개성공업지구법 등 남북 교류 및 경제 협력과 관련한 법령들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3. 통일위·미군위 공동주최 특별 강연

통일위·미군위 공동 주최로 2번의 특별 강연을 가졌습니다. 2018. 7. 18. 조성렬 박사를 모시고 <종전과 한미관계>라는 주제로 강연을 들었고, 2018. 9. 7. 문정인 교수를 모시고 <한미상호방위조약과 주한미군>과 관련한 강연을 들었습니다. 통일위·미군위원 뿐 아니라, 많은 회원 분들이 참석해 주셔서 열정적으로 질의를 해주셨고, 깊이 있는 토론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4. 8.15 대회 참가

지난 8월에는 8.15.대회에 참여하였습니다. 당일 낮에는 ‘서울시민 통일박람회’에 참여하여 홍보 부스를 운영하였습니다. 부스에서 국가보안법 보고서를 판매하면서 많은 시민 분들을 만나 민변을 소개하였습니다. 이후에는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를 관람하였습니다. 정말 더운 날씨였는데, 남과 북의 노동자들이 함께 땀 흘리며 교류하는 모습이 더욱 감동적이었던 순간이었습니다. 저희 통일위원회는 8.15. 대회를 맞아 통일위원회 명의의 단일기를 제작하기도 하였는데요, 내년에는 더 많은 회원들과 함께 깃발을 들고 성큼 다가온 평화를 기쁘게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5. 프리드리히에버트재단과의 공동토론회 개최

지난 8월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 한국사무소에 방문하여 사문걸 소장과 면담하였습니다. 창덕궁이 보이는 멋진 회의실에서 남북관계 공동선언 등의 법적 구속력 등에 관한 토론회 개최 등 공동사업 구상 및 진행에 관한 회의를 하였는데요, 이후 두 차례 회의 끝에 오는 11월 21일에 토론회를 개최하는 것으로 확정했습니다. ‘한반도 평화와 동서독의 경험 : 동서독기본조약과 남북합의서의 비교분석’이라는 주제의 토론회를 우리 모임과 재단이 공동으로 주최할 예정입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석을 부탁드립니다.

6. 기타

저희 통일위원회는 종종 번개 모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 9월 18일에는 평양남북정상회담을 기념하여 번개모임으로 평양냉면을 먹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여담입니다만, 냉면집에 도착하니 다른 위원님들도 개인적으로 정상회담 기념 식사를 하고 계시더군요.

또 요즈음 통일위원회는 현장월례회를 준비하고 있는데요, 판문점과 DMZ 답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글과 언론매체를 통해서만 접하던 역사적인 장소에 참석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심장이 두근거리네요. 함께 모여야 할 일과 위원회가 해야 할 일이 부쩍 늘어난 요즈음, 대세 기류에 합류하고 싶다면 주저 말고 언제든 통일위원회에 가입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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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8/11/16-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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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정보위원회 소식

2018. 10. 21.

서채완 변호사

 

안녕하세요. 디지털정보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는 서채완 변호사입니다.
날이 갈수록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디지털정보위원회의 최근 소식을 회원 분들께 소개합니다!

 

1. <인공지능은 사회정의의 편이 될 수 있을까?> 디정위 초청강연! / 2018. 9. 4.

딥러닝, 인공지능, 4차 산업혁명. 기술혁신으로 인해 낯선 단어들이 튀어나오는 요즘, 디정위에서는 낯섬을 익숙함으로 바꾸어줄 전체회원 대상 초청 강연을 개최했습니다. <인공지능은 사회정의의 편이 될 수 있을가?>라는 주제로 이번 초청 강연에는 SNS 등을 통해 낯설 수 있는 딥러닝에 대한 재미있는 강의를 제공하고 있는 엄태웅 연구원을 모셨습니다.

▲ 어려운 주제를 물흐르듯이 설명해주신 엄태웅 연구원 감사합니다! ^^

 

많은 회원 분들과 함께한 강연회, 향후 기술의 발전 속에 쉽게 침해될 수 있는 다양한 인권 침해의 문제를 깊게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위와 유사한 강연을 기획할 예정이오니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강연을 마치고 엄태웅연구원과 함께 단체 샷! 즐거운 강연이었습니다.

 

2. 외면되고 있는 정보주체의 권리를 옹호하려 합니다!

‘규제혁신’이라는 이름 아래 개인정보보호가 점점 완화되는 추세에 있습니다. 디정위는 월례회를 통해 관련하여 발의되고 논의되는 개인정보보호 관련 입법을 감시하고, EU의 GDPR 및 일본의 익명가공정보 가이드라인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개인정보 보호 관련 공익인권소송도 기획·변론하고 있습니다. 카카오톡 대화내용 수집 등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사건, 통신자료 제공 헌법소원 등 다양한 사건을 변론하고 있고, 상담 등을 통해 다양한 기기를 활용한 위법한 개인정보수집에 대해 문제 제기할 수 있는 소송 등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또한 지금까지의 변론 노하우를 담은 디지털정보 증거능력 관련 사례집 발간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해당 사례집을 통해 디지털증거가 쟁점이 된 주요 판례의 사실관계를 소개하고, 변론 과정에서 있었던 일들, 실무상 문제가 되는 지점, 이론적으로 검토가 필요한 부분 등을 정리할 예정입니다!

민변 디정위는 3년차를 맞아 계속 성장하고 있습니다!
정보인권과 디지털증거에 관심이 있으신 분은 부담 없이 디정위를 찾아주세요!
(문의: 서채완 변호사, [email protected])

그럼 또 뵙도록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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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8/10/22-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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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지부 소식 ]

 

▶ 여성가족부 성폭력 피해자 무료법률구조사업 변론 활동

 

여성가족부에서는 전국 성폭력 피해자 지원 기관과 연계하여 법률적인 조력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성폭력 사건에 대하여 지역 별로 변호사를 지정하여 수사 및 재판, 기타 소송을 지원하는 구조사업을 수행하고 있는데, 우리 지부 회원인 신지현 변호사님이 2018. 4. 경부터 울산 지역 지원변호사로 지정이 되었습니다. 신지현 변호사님은 성폭력피해자 지원활동의 일환으로 ① ‘울산시설공단에서 발생한 직장 내 성희롱 사건’에 있어서 피해자를 대리하여 재정신청, 민사소송 등 사건을 진행하였고, ② ‘부산에서 발생한 직장 내 동료 간 몰래카메라 촬영 사건’과 관련하여 접근금지가처분, 민사소송, 형사재판에서 피해자 변호사로서의 활동 등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③ ‘울산시청 및 남구청에서 근무하는 공무원 간 직장 내 성추행 사건’ 및 ‘울주군 시설관리공단에서 발생한 직장 내 성희롱 사건’에 있어서 성희롱 조사위원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울주군 시설관리공단에서 발생한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의 경우 우리 지부 회원인 김민찬변호사도 함께 조사위원으로 참여 활동하고 있습니다.

 

 

▶ 경찰의 부당한 장비사용에 대한 울산지방경찰청 인권위원활동

사건 관련 기자회견 (울산매일, 우성만 기자)

 

최근 울산지역에서는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 울산지회의 파업이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112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이 택배연대 노동조합 조합원을 체포하면서 부당하게 테이저 건을 사용한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 지부 회원인 신지현 변호사님이 울산지방경찰청 인권위원으로 울산지방경찰청 인권위원회에 참여하여 체포 당시 영상 및 경찰의 장비 사용에 대한 내부 지침등을 근거로, 다른 인권위원들과 함께 경찰의 무리한 테이저건 사용에 대한 위법.부당함을 지적하고 향후 그와 같은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의 권고안을 이끌어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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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8/08/16-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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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새로 사법위원회 간사를 맡게 된 최용근 변호사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한참 흥겹게 생일잔치를 하던 2018. 5. 25. 저녁, 대법원에서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의 조사보고서가 발표되었습니다. 이후 숨가쁘게 흘러간 3주의 시간을 잠시 되뇌어 보겠습니다.

 

특별조사단의 조사 결과는 한 마디로 참혹했습니다.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특정 사건을 거래의 목적물로 삼은 정황이 드러났고, 법원행정처가 인사권을 남용한 다수의 사실도 확인되었습니다. 특히 특별조사단의 조사 대상 파일 410개의 목록 중에는, “민변대응전략” 등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 행사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파일들도 다수 발견되었습니다.

 

민변은 특별조사단 조사보고서 발표 이후 사법농단의 피해자 및 그 단체들과 긴밀히 연대하면서 공동고발장 작성 등에 힘을 보탰고, 나아가 “사법농단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T/F를 구성하여 대응에 나서기로 하였습니다. 김지미 사법위원장을 비롯하여, 많은 사법위원회 소속 변호사들이 위 T/F에 직•간접적으로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현 시기 사법농단 사태와 관련한 민변의 요구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조사 자료를 전면 공개하여 사법농단의 진상을 밝혀라. ② 대법관을 포함하여 사법농단에 책임 있는 모든 법관들을 현재의 직무에서 배제하라. ③ 대법원장은 재차 이 사태의 중대성을 스스로 인식하고, 사법농단 관련자들에 대하여 수사기관에 고발 또는 수사의뢰조치를 취함과 동시에, 향후 있을 수사기관의 수사에 전면적으로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혀라.”

 

이 세 가지 요구사항은, 사법농단 사태를 해결하고 사법부의 신뢰를 회복하는 최소한입니다. 나아가 이와 같은 사태의 본질적인 문제를 풀어 내기 위해서는, 그간 상대적으로 주목하지 못했던 법원개혁이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사법부가 원래의 제 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그래서 기본권 보장의 마지막 보루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함께 힘을 모아 주실 분들이 사법위원회에서 더 많이 활동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초여름을 지나 무더위에 진입하는 날씨입니다. 늘 건강 조심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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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뉴스룸 출연하여 사안을 설명하는 김지미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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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앞, 1인 시위 중인 김지미 위원장>

금, 2018/06/15-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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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회원인터뷰 – 천정배 변호사를 만나다

 

본 인터뷰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설립 30주년 사업의 후속 작업으로 진행하고 있는 ‘창립회원 아카이브’ 사업을 위해 진행된 인터뷰입니다. 인터뷰 당사자의 동의를 얻고 일부 내용을 발췌하여 작성합니다.

 

민변 21기 자원활동가분들(김유정, 서승연, 이단비)과 함께 국회의원회관 천정배 의원실로 방문했습니다. 변호사님(‘천’)께서 자원활동가분들 이름을 여쭈시면서 “말이 좋아 자원활동가지, 이거 열정페이..”라는 농담으로 분위기를 풀어주셨고, 이후 편하게 말씀을 이어가 주셨습니다.

 

 

심재섭 변호사 (민변 출판소통팀장, 이하 “심”): 민변 창립회원 선배님들께 민변 창립 당시의 이야기도 듣고, 후배들에게 해 주실 말씀도 듣고자 인터뷰를 요청 드렸습니다. 다른 여러 일정이 많으실 텐데 흔쾌히 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변호사가 되시기까지의 이야기를 먼저 여쭙습니다.

천정배 변호사 (이하 “천”) : 오래된 이야기네요. 연수원에 들어갈 때에는 판사를 할지, 검사를 할지 결정을 못했습니다. 연수원에서 실무 수습을 하는 도중에는 검사가 되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주위 동기들은 제가 판사를 할 것이라고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한국의 형사사법이 운영되는 실정을, 제가 보기에는, 검사가 중요하지 판사는 좀 소극적이지 않나 하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사법연수원 수료하고 78년 도에 수원에 있는 1전투비행단에서 공군법무관으로 근무를 하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생각이 좀 바뀐 것 같습니다. 군복무 기간 중에 여러 일이 있었지요. 79년 10월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이 있었고, 비상계엄이 선포되어 군검찰관 일을 했고, 이후 1212쿠테타, 80년 5.18. 전일 당시 김대중 선생의 구속 사건도 있었지요. 518도 있고요. 이런 일을 겪으면서 전두환 일당, 쿠테타 세력의 하수인으로서 검찰이 될 수는 없다고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계엄 하에서의 험한 일들은 육군에서 일어났지요. 계엄사령관도 육군참모총장이었고. 전 공군법무관이었기 때문에 좀 피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육군 중심의 계엄사령부에서 일손이 부족하다고 공군에서 법무관 한 명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을 한 일이 있었어요. 당시 육군에 있던 동기들이 하던 일들이란, 김대중 선생을 비롯한 분들을 군검찰관으로서 기소하는 일, 군판사로서 사형선고하는 일, 박정희 대통령 시해범인 김재규를 기소하는 일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거기 가게 되면, 제가 김대중 선생님을 기소, 재판하는 일을 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탈영을 했으면 했지, 어떻게 그런 일을 하겠어요. 김대중 선생을 단죄하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지요. 저는 혹시라도 제가 가게 될 가능성이 있어서 미리 동료, 상사들에게 이야기를 해뒀습니다. 난 절대 가지 않겠다고요. 그런데 공군에서는 왜 저를 그렇게 봤는지, 저를 보내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당시 제 계급이 중위라서 육군에서 대위급을 보내라고 요청이 와서, 안 갈 수 있었습니다.

심 : 그때 가셨으면 지금의 변호사님은 안 계셨을 수도 있었을까요.

천 : 에이, 아무리 보내도 제가 안 가지요. 탈영을 했으면 했지. 제가 뭐 똘똘하게 잘 한 일은 없지만 그렇게 흘러가는 대로 끌려가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심 : 변호사가 되는 것도 여러 길이 있지 않았겠습니까.

: 81년도 8월에 제대를 하고, 검사는 못하겠다 생각을 했으니 변호사를 어떻게 할까 고민을 했습니다. 서울에서 할지, 고향인 목포로 갈지, 광주로 갈지 여러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오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고심 끝에 들어가게 되었고 4년 정도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당시에도 송무는 거의 없었고 주로 외국 클라이언트와 일을 많이 했었습니다. 외국 변호사들과 팀이 되어서 일을 했지요. 그 안에서 영어도 그렇고 기존의 통상적인 변호사 업무와 다른 많은 것들을 배운 좋은 기회였습니다.

 

심 : 서울대 법학과, 사시합격, 대형로펌의 국제분쟁 변호사라는 이력과 ‘남대문합동법률사무소’의 개업은 쉽게 연결이 되지 않습니다.

천 : 비즈니스 로이어가 나쁘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그래도 마음 한 편으로는 그 길로 끝까지 갈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언젠가는 나가겠다고 생각했어요. 4년차 이후에 2년 정도 외국을 보내주는 시점이었는데, 거기를 다녀와서 그만 두는 것은 좀 미안하잖아요. 그래서 그 시점에 그냥 나왔습니다. 지금도 그것 때문에 우리 딸들에게 타박을 받습니다. 그때 다녀왔으면 영어를 좀 했을 텐데, 아빠가 안 가서 우리가 영어로 고생이라고.(웃음)

85년도에 나와서 조영래 선배, 윤종현 변호사, 박석운 현재 진보연대 대표와 모여서 사무실을 시작했습니다. 김앤장에 있을 때 조영래 선배와 가까워졌어요. 워낙에 유명한 분이라 대학 때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친해진 것은 그때였어요. 그분은 학교 다닐 때부터 운동권의 지도부였고, 연수원에 가서도 운동으로 문제가 되어서 도피생활을 길게 하셨지요. 1980년도에 비로소 다시 연수에 들어갔어요. 원래 2기로 입소한 것으로 아는데, 수료는 12기에 하셨어요. 연수원에 계실 때 김장에 일을 좀 도와주러 오셨는데, 그때 알게 되었지요. 82년에 윤종현 변호사, 박석운 대표와 같이 먼저 사무실을 차렸더라고요. ‘시민공익법률상담소’라고 이름을 붙이고, 주로 산재피해자, 노동약자 등을 도와주고 계셨습니다. 제가 김장에 있을 때, 조선배 먼저 나가서 하고 계시라, 저도 곧 나가겠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김장을 퇴사하고 합류하게 된 것이지요.

 

심 : 민변처럼 인권 신장에 헌신하는 변호사의 모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시게 된 계기가 있었는지요. 변호사님께서 민변 창립회원이 된 이야기를 여쭙습니다.

천 : 민변은 88년도에 만들어 졌지만, 그 전에도 이름이 어떻든 조준희, 황인철, 이돈명, 홍성우 이런 분들을 주축으로 인권변호사의 흐름은 있었지요. 조영래 변호사님 역시 같이 활발히 활동하셨어요.

그런데 사실 저 자신은 당시 사무실을 유지하는 일을 했어요. 소위 돈 되는 일을 하고 있었지요. 돈을 잘 벌지도 못했지만요. 당시 조영래 선배가 망원동 수재사건, 권인숙 양 성고문 피해사건 변론을 할 때, 저는 사무실 안에서 사건을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관여하진 못했습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로 본격적으로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86년도 건대 사건이 있었잖아요. 워낙 많은 사람이 구속되고, 일손이 부족하니까. 그때 우리 내부에서 일 시키는 것은 박석운 후배 몫이었는데, 천 선배 거기 좀 가봐, 하면 가는 거예요. 그래서 접견을 가게 되면서 소위 시국사건에 관여하게 되었습니다.

그 뒤 87년 대통령 선거일에 일어난 구로구 부정투표 사건을 본격적으로 맡았습니다. 구로항쟁이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그때 동대문 경찰서에 접견을 가서 만난 분이 김희선 선생하고, 김병곤 선생을 만났어요. 수갑을 차고 오더라고. 지금이라면 수갑을 풀라고 이의를 했겠지만, 그때는 신참이라 그런 말도 못한 기억이 나네요. 그 사건은 제가 끝까지 열심히 한 사건이에요. 그 사건을 계기로 훌륭한 분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 민변이 만들어졌지요. 당시 노장 인권변호사 그룹과, 연수원 기수로 13기 전후의 젊은 변호사들이 모여서 만든 거지요. 젊은 그룹으로는 이석태, 김형태, 조용환 이런 분들이었고, 좀 더 후배로 백승헌 같은 분이 있었지요. 전 위치가 좀 애매했던 것이, 나이로는 후배 그룹과 비슷한데, 연수원 기수는 좀 이르단 말이에요. 제 동기인 연수원 8기는 저와 서해교 변호사밖에 없었습니다. 좀 낀 세대였던 겁니다. 그 두 그룹이 주축으로 모였기 때문에 제가 뭘 할 여지가 없었어요. 저한테 물어보지도 않았을 걸요. 조영래 선배와 윤종현 변호사가 저도 집어넣어서 창립회원이 된 겁니다.(웃음)

정치인이 되다 보니까 민변 창립 주도라고 써주셨는데, 특별히 한 일이 별로 없네요.(웃음) 그러니까 저도 초기에는 좀 서먹서먹했어요. 후배 변호사들하고 잘 알지도 못했고요.

제가 민변 창립 즈음에 다시 김앤장에 들어간 것으로 기억해요. 개업할 때는 세금이다 뭐다 신경 쓸 것이 많았는데, 다시 큰 조직에 들어가니 편하더라고요. 상대적으로 독립성을 보장받고 다시 들어갔어요. 송무를 담당했습니다. 동시에 민변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89년도 방북사건들, 임수경 의원, 문익환 목사, 서경원 의원, 리영희 논설위원 등 사건이 폭주하게 되었고, 제가 임수경 의원 사건, 리영희 선생 사건을 전담하게 되었습니다. 김장에서 한 달에 200시간 일을 한다면, 10시간이나 김장 일을 하고, 나머지는 민변 사건을 했던 겁니다. 회사에 미안하기도 해서, 다시 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초기에 일을 하다보니, 민변이 좀 더 체계적으로 일을 해 나갔으면 좋겠는데 너무 산발적으로 체계가 없이 일을 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민변 일만 하는 상근 변호사를 뽑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완전히 상근 변호사를 하지는 못하고, 제 사무실을 민변이 있던 건물 바로 아래층에 내고 민변 일에 중점을 두어 했지요. 이후에 후임을 못 찾아서 민변 상근 간사는 제가 유일합니다.

이후에 당시 민변에서 제일 파이팅 넘쳤던 임종인, 이덕우 변호사와 함께 91년에 해마루 법률사무소를 만들었습니다. 초대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을 하셨던 김창국 변호사님이 우리 셋과, 해마루라는 이름을 두고 해가 지는 석양에서 검객 3명이 모인 것 같다고 칭찬을 해 주셨습니다. 이후 노무현 변호사도 모시고, 전해철 변호사님도 모시고 했지요.

 

심 : 민변 초기에 내가 이렇게 기여했다, 하는 점도 자랑을 좀 해 주셔요.

천 : 상근 간사로서 1년 정도 일을 하면서 제 업적이라면, 민변 회비를 5만원, 10만 원으로 올린 것입니다.(웃음)

또 기억을 더듬어보면, 국제 연대 활동을 하면서 일본에서 비슷하게 활동하는 변호사 집단과 교류 기회를 만들었고, 지금도 지속되는 것으로 알아요. 또 제가 상근 간사를 할 때 ICCPR(International Covenant on Civil and Political Right) 관련 일을 한 것이 있습니다. 80년대 말 전두환 때인가 노태우 때인가, 국제인권규약에 가입을 했어요. 그 사람들 참 재밌어요. 아직 미국도 가입을 안 한 것 같은데, 독재자들이 그런 것은 잘 가입하고 그랬습니다. 규약에 가입한 나라에 대해서 정기적으로 보고서를 요구하고, 정부가 보고서를 제출합니다. 그때 인권 NGO에서는 카운터 레포트를 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노태우 정권 때에 법무부 인권과에서 최초 레포트를 냈고, 민변이 이것을 입수해서 카운터 레포트를 냈지요. 그때 조용환 변호사가 열심히 했습니다. 이후 빈에서 열린 세계 인권회의에도 참석하는 등 국제 무대에 민변이 진출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해외에서 민변의 위상이 훨씬 높아졌겠지요? 세계에서 최고의 인권단체로 인식을 하지 않겠습니까.

 

심 : 96년도, 그러니까 변호사로서 15년 조금 넘게 일을 하시고 나서 정치에 입문하시게 됩니다. 정치권에 들어오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었을까요.

천 : 인생에 모든 순간이 선택이지요. 왜 고민이 없었겠어요. 처음 검사를 하지 않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의 실망도 있었고요. 지금이야 김장에 들어가는 것이 좋은 길이겠지만, 당시만 해도 임용을 포기하는 것이었기에 부모님 생각해서 못 가신 분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니까 그때는 바로 변호사가 되는 것만으로도 주류적인 법조 체계에 비추어 비주류, 반골 기질이 있었던 겁니다.

정치를 하게 된 것도 고민이 컸습니다. 95년에 김대중 총재가 정계에 복귀하면서 새정치국민회의라는 당을 만드셨고, 젊은 전문가 그룹을 영입하셨습니다. 당시 들어갔던 분들이 정동영, 신기남, 추미애, 유선호 이렇게 기억이 나네요. 변호사 일을 하면서 구체적으로 정치를 하겠다, 이런 계획이 있던 것은 아니었지요. 그렇지만 변호사로서 엄혹한 시기를 거쳐왔고, 군사독재를 실질적으로 청산했다고 보기 어려운 시점이었고, 김대중 총재를 잘 보필해서 한국 헌정사상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루는 것이 의미가 있겠다고 판단을 했고, 지금 생각해봐도 좋은 선택이었다고 봅니다.

그런데 당시 민변 선배들은 거의 반대하셨지요. 그 마키아밸리적인 세계에서 당신이 가서 굳이 상처입을 필요가 있느냐 하는 걱정이 많으셨습니다.

 

심 : 정치인으로서 지금까지 일하시면서 민변에서의 활동이나 동료들의 존재가 도움이 된 면이 있다면 어떤 부분일까요.

천 : 누가 뭐라 하더라도 제 정신적 고향은 민변이지요. 그 시절의 열정, 신념, 소명이 저를 지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워낙 정치를 한 세월이 있어서 지금은 이게 팔자이려니 하고 생각을 합니다.(웃음) 실제로 정치가 중요하지요. 사회를 인체에 비유한다면 정치가 뇌수에 해당하는 것 같습니다. 잘 해야 하고 중요한 일인 것이 맞습니다. 정치를 한다는 것은, 정말 말로하기 힘들 정도로 괴롭긴 합니다. 가족도 친구도 없고, 명절이라고 쉬는 것도 아닙니다. 저희 젊을 때만 해도 일을 위해서 다른 것들을 버릴 수 있다고 하는 시대적인 공감대가 있었으니, 일 중심이었습니다. 비유하자면, 세상에 태평양 같은 문제가 있는데, 내 바가지로 몇 바가지라도 변화시킨다, 하는 각오였던 것 같습니다. 민변에서 배운 거지요.

 

서승연 자원활동가 : 정치를 하시면서도 많은 도전을 해 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원동력이 있으시다면 무엇일까요.

천 : 제가 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기만적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말을 해 본다면, 제가 72년도에 대학을 들어갔고 그때가 유신이었지요. 저는 청소년기에도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이 컸고, 또 신안, 목포 출신이다 보니 우리 지역구 국회의원이 김대중 선생님이었고, 부모님도 박정희 독재에 대해 극도의 반감을 가지고 있었지요. 그런 환경에서 대학을 갔지만, 실제로는 사법시험 준비하면서 유신헌법이나 공부했습니다. 내적인 갈등이 컸습니다.

이후 민변 활동을 하면서 노동자 변론도 많이 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부채의식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노동자분들, 활동가분들이 극도의 탄압을 당할 때, 그 고난은 말할 수가 없지 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변호사로서 어찌 되었건 밥을 굶길 합니까, 상대적으로 수월했지요. 그런 점들이 부채의식으로 작용했고 심리적으로 압박이었습니다. 지금 내 처지, 내 조건에서 무엇이라도 역사 발전에 기여해야 되겠다, 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이후 민변에 있으면서 좋은 분들과 사귀고 함께 일할 수 있었고, 그게 지금까지도 도움이 됩니다. 친구를 잘 사귀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주변이 나와 생각이 다르다면 동화되든지 아니면 떨어져 나오든지 하는데 보통 동화되는 것 같더라고요. 기득권에 있으면서도 휩쓸리지 않고 훌륭하게 살아가는 분들을 보면 다 친구가 좋아서 그렇더라고요. (웃음) 저는 친구를 잘 사귀었던 것 같습니다.

 

김유정 자원활동가: 저도 변호사를 꿈꾸며 민변 자원활동가로 지원했습니다. 제게는 미래의 모습이고, 변호사에게는 한참 후배들이실 민변 변호사님들에게 해 주실 말씀이 있으시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천 : 제가 젊어서 직접 민변 일을 할 때는 불만이 많았습니다. 왜 이렇게 하냐, 제대로 열심해 해보자, 말들을 해 왔지요. 그런데 지금 민변 후배들을 보면, 다 열심히 하고 아주 훌륭하게 잘 하고 있습니다.

작년 30주년 행사에 갔는데, 예전에 알던 동료만 알고 후배들은 거의 모르지요. 그럼에도 한국 사회 지식인 집단 중에서 이렇게 훌륭한 집단이 없어요. 흠 잡을 것이 없습니다.

 

 

이후 방송 인터뷰 일정이 있어서 민변에 대한 무한 애정을 표시하는 것으로 인터뷰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민변에 대한 사랑이 지금도 여전하시다는 것을 느꼈고, 자신의 기여에 대해서는 겸손하게 말씀하시지만 민변 초기의 체계를 잡는 데에 누구보다 헌신하셨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1시간 남짓의 시간이 이렇게 아쉬울 수 없었습니다. 518 망언에 대한 대응, 선거제도 개혁 등 산적한 현안에서도 뚝심 있게 목소리를 내고 관철해 나가는 변호사님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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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9/04/05-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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