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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위] 오키나와 평화교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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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위] 오키나와 평화교류회

익명 (미확인) | 금, 2018/03/30- 17:10

2018. 3. 3. ~ 3. 7. 오키나와에서 민변 미군문제연구위원회와 오키나와 자유법조단의 11회 평화교류회가 진행되었습니다. 지난해 10월 태풍으로 한차례 연기된 뒤에 이루어진 만남이라 그 의미와 반가움이 더 컸습니다. 회원을 비롯하여 함께 해준 모든 분들에게 고마움의 인사를 전하며 다가올 만남을 또 기다립니다.

 


  

 

 

오키나와, 이름만으로도 설렌 그 곳 도착

 

오민애 변호사

 

 

오키나와. 인터넷 검색창에 이 네 글자를 입력하면 에메랄드빛 바다와 평화로운 섬의 풍경이 화면을 가득 채웁니다. 막연히 좋은 관광지로만 여겨졌던 오키나와는, 민변 미군문제연구위원회와 자유법조단 오키나와지부의 10년이 넘는 교류의 역사 속에서, 저에게 너무나 새로운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길고도 짧았던 시간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2016년 10월, 서울에서 광주에서, 그리고 사드 배치 문제로 매일매일 치열했던 성주에서 오키나와 변호사님들을 처음 만났습니다. 처음 참석한 교류회에서, 일본어라고는 안녕하세요, 잘먹겠습니다, 밖에 할 줄 몰랐던 제가 불편함 없이 함께 밥 먹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기하고 좋았습니다. 성주 주민분들과 함께 비를 맞으며, ‘사드 가고 평화오라’고 외쳤던 그 순간이 아직 생생한 채로, 2017년 가을, 오키나와로 갈 날을 하루하루 기다려왔습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오키나와 교류회가 예정된 날짜에 태풍이 오키나와를 지나간다는 예보가 있었고, 결국 2017년 교류회 일정은 연기되고 말았습니다. 오키나와에 갈 생각에 들떴던 마음이 가라앉는데는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아직은 추위가 가시지 않았던 2월말, 오키나와를 떠올릴 때면 아직 느껴보지 못한 오키나와의 공기도, 변호사님들의 얼굴도 참 따뜻하고 푸근했습니다.

 

2018년 3월 3일, 그렇게 고대하던 오키나와 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이틀 먼저 오키나와에 가셨던 박진석 변호사님의 전언으로는 계속 비가 내리고 궂은 날씨였어서, 걱정도 많이 됐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예정된 비행시간보다 40분정도 늦게 나하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비는 거의 그쳐가고 있었고, 감사하게도 오키나와 교류회 일정 동안 날씨도 교류회를 도와주었습니다.

 

삼삼오오, 오키나와 변호사님들의 차를 나눠 타고 숙소로 향했습니다. 어떻게 대화를 할까, 머릿속에 맴돌던 고민은 기우였습니다. 짧디 짧은 영어로, 손짓으로 반가움을, 안부를 전하는 모든 것이 가능했습니다.(아, 그리고 하나 더, ‘파파고’의 고마움을 절실하게 느꼈던 순간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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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숙소로 향해서 짐을 풀고, 근처 음식점에서 첫 ‘친목회’의 자리를 가졌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각자 자기소개를 하고, 또 함께 한 분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그 순간순간이 아직도 생생한데요. 정말 따뜻하게 저희를 진심으로 반겨주시고, 함께 할 시간을 기다려오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일 년에 한번씩, 3-4일씩 만나왔다면, 어쩌면 만날 때마다 서먹서먹할 수도 있을텐데, 일주일 전에 만났던 것처럼 서로 반가워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참 좋았습니다.

 

함께여서 좋았던 첫 날

 

오키나와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고 언급하셨던 이야기 중 하나가 ‘촛불집회’였습니다. 아베 총리의 부인까지 연루된 사학 비리 스캔들이 연일 드러나고 있음에도 이에 대한 목소리가 모이거나 정권의 문제점에 대한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와 함께, 어떻게 촛불집회가 있을 수 있었고 정권교체까지 나아갈 수 있었는지,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셨습니다. 2017년 한국에서 만들어진 역사가 자랑스럽고 소중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면서도, 다음날 세미나에서 제가 발제를 맡은 주제이기도 해서, 마음 한 켠 궁금해하시는 내용을 잘 전할 수 있을까, 준비를 잘 한 것일까, 걱정과 불안이 엄습해왔습니다. 그렇지만 그 마음을 꾹꾹 누를 수 있을만큼, 맛있는 음식과 술과 이야기들로 가득 채운 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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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나기사와 변호사님이 직접 그린 시샤. 시샤는 오키나와 나하시의 전설의 동물로, 나쁜 기운을 가져가고 좋은 기운을 가져다 준다는 수호신입니다. 지난해 예정되었던 교류회 일정에서 민변 변호사들에게 주기 위해 그리셨던 그림인데(2017. 10. 27.), 일정이 조정되면서 이번에 직접 전달해주셨습니다.

 

평화와 연대, 그 소중함에 대하여

 

이튿날, 숙소 근처의 변호사회관에서 세미나가 진행됐습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진행된 세미나에서는 한국과 일본에서의 평화 관련 이슈에 대한 발제와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고등학교에서의 수업 이후, 이렇게 오랜 시간 한 자리에 앉아서 발표를 듣고 메모하고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진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그 시간이 어색하거나 길게 느껴지지 않았던, 신기한 시간이었습니다.

 

오전에는 공통테마에 대한 발제와 토론, 그리고 오후에는 양국의 사례보고를 이어갔습니다. 공통테마는 ‘일본 헌법의 평화주의-군사대국으로의 책동’, 그리고 ‘촛불혁명과 우리의 주권’이었고, 토론이 열띠게 이어졌는데요. 먼저 하야시 치가코 변호사님의 발제에서 언급된 일본 자민당이 마련한 헌법개정안은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헌법을 전체주의 관점으로 재정비하고, 자위권의 발동을 가능하도록 명문 규정을 넣는가 하면, ‘긴급사태(내각총리대신은 외부로부터의 무력공격, 내란 등에 의한 사회질서의 혼란, 지진 등에 의한 대규모 자연재해 그 밖의 법률에서 정하는 긴급사태에 있어 특별한 필요가 있다고 인정될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각의에 상정하여 긴급사태의 선언을 발할 수 있다)’에 관한 조항을 신설하여, 국민에 대한 국가의 통제를 공고히 하는 방식의 헌법개정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문제제기와 비판이 계속되고 있기는 하지만, 이런 방향의 헌법개정안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이 충격이었고, 현재 일본의 집권 정당이 어떤 인식을 갖고 있는지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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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헌법에 대한 논의는 다양한 고민지점을 던져주었습니다. ‘군대’를 헌법에 명문으로 두는 것이 군대에 대한 통제근거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에 필요한 것인가, 아니면 두지 않고 다양한 방법으로 통제되도록 하는 것이 맞는가. 한국에서의 전시작전권 문제, 군대에 대한 민주적 통제에 관한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갈 것인가. 국민들이 일상을 평화롭게 살아갈 권리는 가장 기본적인 가치임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이를 가장 직접적으로 위협하면서도 아닌 것처럼 숨어있는 군사 문제에 대해, 언제나 국가기밀이다, 적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해야한다는 논리로 감추기 급급해하는 많은 이들이 떠올랐습니다. 군대, 전쟁 문제로 대표되는 국가의 국민에 대한 통제 시도를 어떻게 국민들이 저지할 수 있을 것인가. 질문과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우리는 어떤 고민을 하고 무엇을 해야할지, 또 그 과정에서 무엇을 어떻게 함께 할 수 있을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어서 한국에서의 ‘촛불혁명’에 관한 발제와 토론이 있었습니다. 2016년 가을부터 2017년 봄까지 계속되었던 촛불집회와, 그 과정에서 발현된 많은 변화들에 대한 평가는 각기 다르지만, 오키나와 분들은 ‘촛불혁명’이라 명명하고 그 시간을 궁금해했습니다. 함께 촛불집회의 모습이 담긴 짧은 영상을 보고, 어떻게 진행되어왔는지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이 순간 이렇게 함께 지난 1년을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습니다. 다만, 이것이 끝이 아니라 잘못된 사회를 바로잡기 위한 시작이었다는 점을 공감하고, 일본에서의 정권교체를 함께 그려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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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는 양국에서 어떤 사안들이 문제되었고 어떻게 대응하여왔는지 발제와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오키나와 변호사님들의 아시아 태평양 법률가 협회(COLAP)와 국제 민주 법률가 협회(IDAL) 활동에 대한 보고, 마샬제도 관련 보고와 한국의 문재인 정부 이후 남북 정세 관련 발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키나와가 제기한 암초 파쇄 행위의 금지청구 소송과 기지 내 인권침해에 대한 대응 활동, 2차 후텐마 기지 폭음 소송, 오키나와 전투‧남양전 소송에 대한 보고가 있었고, 한국의 사드 배치 관련 소송 보고가 진행되었습니다.

 

해외 미군기지는 현재 800여개 정도가 있고, 규모로 분류하면 크게 세 분류가 있는데, 그 중 한국과 오키나와는 미군의 가족들까지 함께 생활할 수 있는 형태의 대규모 기지가 주둔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기지로 인하여 평화롭게 살아갈 권리를 근본적으로 침해당하고 인근 주민들의 환경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등 수많은 문제를 겪게 된다는 공통점이 있어, 서로의 상황에 깊이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 한편 서글프기도 했습니다. 사사모토 준 변호사님은 일본과 한국의 국내에서의 운동, 나아가 미군의 군사력을 통제할 수 있는 세계적인 운동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셨는데, 그 연대의 힘을 잘 만들어가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이 교류회 현장 또한 연대의 기초가 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마샬제도’에 대한 발제였습니다. 오랜시간 미군 기지 문제에 관여하고 연구해 오신 하지메 이노우에 변호사님의 설명이, 이름도 낯설기만 했던 ‘마샬제도’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마샬제도는 오세아니아에 있는 섬국가로, 1차 세계대전 이전에 일본의 신탁통치를 받던 곳으로 지금도 일본어가 사용되는 곳입니다. 미국은 이곳을 2086년까지 빌리는 형태로 협정을 체결하였는데, 1년에 4번씩 이곳에서 미사일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주민들은 미사일 훈련 2주 전에 훈련이 있다는 사실을 통보 받는 것 외에는 달리 대응할 방법이 없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마샬제도 외부장관은 핵군축조약에도 불구하고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로 국제형사재판을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어떤 곳인지 전혀 알지 못했던 마샬제도에서는, 지금도 협정과 약속이라는 이름 아래 군사훈련이 수시로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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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심재환 변호사님이 문재인 정부 이후 남북 정세 전망에 대하여 발제를 해주셨습니다. 교류회가 진행되던 당시는 평창 동계올림픽을 마친 직후였고, 올림픽을 전후로 남북관계가 급속히 달라지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이해관계가 대립과 견제, 갈등이 아닌 ‘평화’를 중심 가치로 두고 남북 평화통일을 만들어가는 방향으로 가야할 것이고 그렇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는, 매일매일 달라지고 있는 남북관계를 어떻게 봐야할지, 많은 생각을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사드 배치 관련 법적 대응에 대하여 오현정 변호사님의 발제가 있었습니다. 정권이 교체되고 많은 적폐를 청산하고 변화하기 위한 일들이 추진되고 있지만, 사드 배치는 계속 추진되었고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이에 한국에서 사드 배치 발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헌법소원, 행정소송, 형사고발 등 관련하여 진행해온 법적 대응에 대한 보고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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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오키나와에서도 평화를 위협하는 행위와 이에 대한 싸움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백충 변호사님 발제에 의하면, 오키나와에서는 헤노코 기지 건설을 위한 암초파쇄행위에 대한 금지소송을, 오키나와 현이 제기하여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오키나와 현의 허가를 받아야 암초를 파쇄할 수 있기 때문에, 허가 없이 파쇄하면 안된다는 취지의 소송이었습니다. 이어 사이토 유스케 변호사님은 2016년 4월, 헤노코 신기지 건설에 항의하던 중 미군 헌병에 의해 체포‧구속된 메도루마의 국가배상청구 사건에 대하여 들려주셨습니다. 변호사를 불러달라는 요구도 무시하고 신체구속 상태로 두었고, 이에 대한 국가배상을 청구한 사건인데, 미군의 공무집행 중 불법행위는 일본국이 대신 책임진다는 규정에 따라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후텐마 기지와 가네다 기지의 폭음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이 진행 중이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우에하라 도모코 변호사님의 발제가 있었습니다. 기지 주변의 폭음으로 인한 손해배상소송은 여러 차례 진행되었고, 후텐마 기지에서는 2차, 가네다 기지에서는 3차로 소송이 진행 중이었는데, 폭음과 건강피해의 인과관계를 일부 인정하고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는 내용의 1심 판결이 선고되었다고 합니다. 비록 비행금지청구는 일본의 지배가 미치지 않는 미군의 행위의 금지를 요구할 수는 없다는 취지로 기각되었으나, 이에 대해서는 이후 고등재판소에서 다툴 예정이라고 합니다. 오키나와의 마지막 사례보고는 오키나와전, 남양전 소송으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 사건에 대한 마쓰모토 게이타 변호사님의 발제였습니다. 오키나와 전은 주민들이 사는 지역에서 전쟁이 벌어진 유일한 사례로, 1945년 4월 1일 오키나와 중부 해안에 미군이 상륙(미군55만명, 함정 1400척 이상)한 이후 격전이 벌어져 현 인구 4분의 1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메이지 헌법 하에서 발생한 행위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논리로 기각되었는데, 이는 메이지 헌법 하에서 공권력이 잘못된 행사를 하지 않는다, 책임을 져야 하는 대상은 천황이지 국민들이 아니라는 이유였습니다.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 그 과정에서 피해를 입은 국민들에게 금전적 배상으로나마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하지만, 여전히 만들고 싸워나가야할 문제들이 산적해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주희 변호사님의 미군기지 내 한국여성 성매매의 위법성을 인정한 서울고등법원 판결에 대해 소개를 해주셨습니다. 법원이 국가가 성매매를 정당화하고 조장했다는 사실을 명시적으로 인정하고, 소멸시효 완성 주장을 배척하면서 국가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였는데, 이는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하고 미군기지 주변에 관한 정책에 대한 판단까지 나아갔다는 점에서 중요하고 의미 있는 판결이라는 소개에, 참석자 모두 공감하면서 마지막 발표를 마쳤습니다.

 

함께 하고 있음을, ‘우리를 확인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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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는 너무도 당연하고 소중한 것이기에, 정작 그 중요함을 잊고 살게 되는 것은 아닌지, 수많은 사람들의 삶 하나하나가 만들어낸 소중한 가치를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어떻게 평화를 지켜내고 또 함께 만들어갈 것인지, ‘평화’라는 이름으로 함께 고민하고 실천할 수 있는 ‘우리’여서 자랑스럽고, 또 그 ‘우리’에 함께일 수 있어서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각자, 또 함께 해나갈 수 있을지, 서로 마음 한 켠에 고민을 접어두고 찐한 뒷풀이가 계속되었습니다.

 


 

오키나와를 통해, 일본과 한국, 그리고 평화를 마주하다 교류회 3일차

 

이 윤 주 변호사

 

두 개의 풍경, 아름다운 풍광과 내면의 죄책감이 교차하는 곳

 

오키나와, 교류회에 참여하기 이전 이곳은 저에게 제가 좋아하는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이 세계일주의 시작점으로 생각하는 아름다운 풍광을 가진 휴양지였습니다.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몸과 마음을 모두 편하게 하는 휴식을 할 수 있는 곳이라는 마음을 안고 오키나와로 향했던 것 같습니다. 도착해서 바라본 오키나와의 아름다운 풍광은 ‘그대로’였습니다. 탁 트인 넓은 바다, 청량한 바람, 미세먼지 가득한 서울에서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파란 하늘, 따뜻하게 내리쬐던 햇볕. 그런데 이곳에서 어느 순간부터 마음 속 깊이 느껴지던 고통과 더 이상 이 풍경을 마음 놓고 아름답다고만 말하지 못하겠던 저의 죄책감은 어디서 시작된 것이었을까요. 풍경의 아름다움에 찬탄하며 말을 내뱉던 저의 입은 이제 머뭇거리기 시작하였고, 마음에는 죄책감의 그늘이 무겁게 내려앉았습니다.

 

후텐마 비행장, 일상을 위협하는 군국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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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차 오키나와 교류회 평화기행의 첫 일정으로 ‘후텐마 비행장’으로 향했습니다. 후텐마 비행장은 전 세계적으로 유일한 해병대 전용 비행장이라고 합니다. 높은 곳에 올라 내려다 본 군용비행장과 일반사람들이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며 살아가는 마을 간의 거리는 말 그대로 ‘지척’이었습니다. 이 물리적 거리는 무시로 우리의 일상에 쏟아지는 군용비행기의 소음과 상공을 날아다니는 헬리콥터 등으로부터 부산물 등의 낙하로 누군가 다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상존하는, 군국주의로부터 위협받는 위태로운 일상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평화로운 일상을 누리고자 하는 사람의 기본적인 바람이 존중받지 못하는 공간이었습니다. 착잡한 마음으로 마을로 다시 내려오자 그곳에서는 공을 차며 놀고 있는 어린 아이들의 맑은 웃음소리가 가득 퍼졌습니다. 이율배반적이라고 느낄 만큼 상반된 두 풍경 사이에서 우리의 평화로운 삶을 관통하는 군국주의를 보았습니다.

 

동굴 진지 속, 깊은 어둠 속에서 참상과 마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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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교류회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경험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보면, 그건 아무래도 동굴진지를 체험했던 일일 것입니다. 그곳에서 물리적으로도, 심정적으로도 깊은 어둠을 만났습니다. 전쟁 시기, 이곳에 숨어들었던 사람들이 있던 공간, 동굴 곳곳에 보존되어 있던 그 시절의 잔해들을 보며 그 시간 이곳에서 자신을 지켜내야 했던 사람들의 절박함을 떠올렸습니다. 전쟁이라는 야만의 시간을 통과해야 했던 사람들이 자신을 숨기기 위해 선택했던 곳, 반세기라는 시간적 거리를 두고 있었지만 저는 이곳에서 버텨야 했던 사람들의 공포감이 어느 정도였을지 생각해보려고 애썼습니다. 작은 불빛조차 허용되지 않았던 곳에서 그 긴 시간 사람들은 어느 정도의 공포감으로 버텼던 것일까요? 발끝에 느껴지던 울퉁불퉁한 바닥과 손끝에 느껴지던 습기와 한치 앞도 보이지 않던 어둠을 여전히 저의 온 몸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평화기념공원 – “분단은 어디에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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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전투 평화기념공원을 방문하였습니다. 남쪽 바다 끝 절벽 가까이에 위치한 이 평화기념공원을 둘러싼 풍경은 굉장히 아름다웠고, 이 바다 끝 기자절벽에서 많은 사람들이 전쟁 끝에 자결을 선택했다는 이야기는 그만큼 비극적으로 다가왔습니다. “평화의 초석”이 길에 길게 세워진 공원을 걸으며 기록된 이들의 희생과 아직 기록되지 못한 자들의 희생을 생각했습니다. 총 24만명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고 하였습니다. 길게 서있는 초석들 중 발걸음을 유난히 붙잡았던 것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이 분리되어 각인된 초석이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한반도의 분단이 이들의 이름조차 강제로 나누어 기록해 놓은 모습을 보며, “분단은 어디에나 있다”는 어떤 변호사님의 말귀가 와서 박혔습니다.

 

히메유리 기록관 – “전쟁은 인간이 일으키는 최대의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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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메유리 여고생들의 기록을 시민들의 힘으로 남긴 기록관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기록관에서 본 그들의 앳된 얼굴에서 저의 평범했던 여고생 시절을 떠올리며 그들이 겪어야 했던 비극을 가늠해보려 노력했습니다. 히메유리 여고생들의 죽음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아름다운 영웅들로 포장해내는 일본 정권의 민낯을 통해 전쟁의 비극을 은폐하려는 야만적 시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누군가의 처절한 죽음에 대한 인간적 애도는 사라지고 영웅이라는 이름으로 상찬하기에 급급한 것은 지금을 사는 자들의 정치적 야욕을 위한 것이 아닐는지요. 비극적 죽음 앞에서도 반성과 성찰은 사라진 이 행태에 분노를 참을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누군가의 죽음에도, 그곳에서 간신히 살아남아 삶을 지탱하고 있는 생존자들에게도 결코 해서는 안 될, 무례와 야만 그 자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곳 관장님께서 우리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전해주셨던 “전쟁은 인간이 일으키는 최대의 잘못이다”라는 이 말씀을 가슴에 아로새기며 기록관을 나섰습니다.

 

이번 오키나와 교류회를 통해 “전쟁은 인간이 일으키는 최대의 잘못이다.”라는 이 한 문장을 손에 단단히 쥐고, 가슴에는 평화라는 구체적인 가치를 담고 저는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통해 일본 오키나와 자유법조단께서 보여주신 극진한 환대에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내년에 이곳 한국에서 서로 좋은 소식을 가득 안고 다시 만나기를 소망합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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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신입회원 환영회, 그 두 배의 기쁨에 대하여

조미연 변호사

 

2018년 상반기 민변 신입회원 환영회에 다녀왔습니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 참석입니다.

 

서둘러 길을 나섰는데도 생각보다 늦게 도착하게 되었고

지각의 아쉬움과 동시에 작년 이맘때 즐거움을 떠올리며 기대를 안고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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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키워드를 적어 넣은 종이를 보이며

그 중 한 가지를 통해 자기를 소개하는 시간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조심스레 입장하자마자 보이는 민변 사람들

한껏 들뜬 기분으로 꾸벅 무언의 인사부터 드립니다.

좀 더 둘러보니 종종 마주치는 익숙한 눈빛의 신입회원들이 보여 설렘을 갖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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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자리에 착석해서 종이컵에 와인이 채워지니

급한 걸음에 몽롱했던 정신이 깨어나는 느낌.

그제야 차분히 진행되고 있는 신입회원의 자기소개가 들리고 함께 자리한 분들의 모습이 선명해졌습니다.

그리고 마음 한구석에서 마치 친한 지기를 오랜만에 만난 기분이 피어올라 왔습니다.

 

그래도

자기소개 시간은 왜인지 항상 부담스럽게 다가오는 면이 있어

최대한 원래 쌓여있던 가마니였던 것처럼 조용히 넘어가고 싶다는 작은 바람이 있었는데

역시 뛰어난 사회자님 눈을 피해갈 수는 없었습니다.

 

세 가지 키워드는 아니더라도 부랴부랴

겨우 ‘민변과의 첫 인연’ 하나 적어놓은걸 들어 올리고는 무대포로 자기소개를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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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전문대학원 재학 중 인권법학회 활동을 하면서 전주전북지부와 활발한 교류를 했었고 인권법학회 연합(약칭 인:연) 겨울캠프 기획팀으로 민변을 방문했던 바도 있지만, 저는 민변과의 공식적인 첫 인연이라는 키워드에 작년 신입회원 간담회가 떠올랐습니다.

 

지난 간담회에서의 즐거움이 생생한데 어느새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부득이 1년 동안의 활동이 유예될 수밖에 없었던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입환영회에서 보자며 두 배로 기쁘다고 표현해주신 백주선변호사님의 답신, 노동위원회 모임에서 김선수변호사님께서 말씀하신 ‘머릿수 채우기’의 중요성과

제가 외쳤던 ‘지금 이 순간을 위하여!’라는 건배제의를 차례로 상기하며 말을 이어갔습니다.

민변과의 첫 인연을 생각하며 항상 그때의 열정으로 머릿수부터 채우면서 열심히 활동하겠다는 스스로의 당찬 포부를 밝히는 것으로 소개를 마무리 지었습니다.

자기소개인지 스스로에 대한 다짐소개인지 모를 정신 산만했던 저의 말이 끝나자 따뜻한 박수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감사합니다.

기존에 가입했던 회원팀, 노동위원회, 여성인권위원회을 비롯해

부족한 제게 관심이 있다면 함께하자고 제안해 주신 아동인권위원회, 민생경제위원회 등 그저 인권과 민주사회를 위한 행동하는 변호사모임에 함께할 수 있음에 소소한 인연의 즐거움을 누리며 존경하는 선배님들과 자리할 수 있어 행운입니다.

 

차근차근 머릿수를 채우는 일부터 같이하겠습니다.

서두르지도 그렇다고 늦장부리다 민변의 길에서 멀어지지도 않도록 하고 싶습니다.

내년에는 민변 세 번째 신입회원 환영회 자리를 맞이하여 세 배의 기쁨을 안고

이 자리에서 느꼈던 온기와 공감에서 오는 즐거움을

제가 다른 분들에게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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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8/05/03-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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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위원회] 서울대학교 시흥캠퍼스 사태 연대 활동 후기

 

임준형 변호사

이번에 저희 교육청소년위원회에서 전해드릴 소식은 서울대학교 시흥캠퍼스 사태 연대 활동에 대한 것입니다. 서울대학교는 최근 학생들의 동의 없이 독단적으로 시흥캠퍼스 설치를 추진하여 학생들과 갈등을 빚어 왔는데요, 저희 교육위원회에서는 서울대학교가 위와 같이 시흥캠퍼스 설치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에 대한 중대한 인권 침해 행위를 하였다고 판단하여 학생들에 대한 법률 조력 및 연대 활동을 수행하여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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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태의 개요를 설명 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서울대학교는 지난 2016년 8월 학생들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서울대학교 시흥캠퍼스 설치 계획을 발표하였고, 이에 학생들은 2016. 10. 10. 대학 본부에 시흥캠퍼스 추진 계획에 대한 학생 참여권 보장을 요구하며 학교 행정관을 점거하여 반대 시위를 시작하였습니다. 위와 같은 학생들의 행정관 점거 시위는 2017년 3월까지 이어졌는데요, 대학 본부는 외부 용역 직원 포함 수백 명의 직원을 동원하여 학생들을 폭행하고 물대포를 발사하는 등의 방법으로 학생들의 행정관 점거 시위를 폭력 진압하였고, 그 과정에서 다수의 학생들이 실신하여 응급실로 수송되는 등 학생들에 대한 상해의 결과가 발생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서울대학교는 적반하장격으로 점거시위에 참가한 학생들을 업무방해죄 등으로 고소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이에 저희 교육위원회에서는 학생들에게 도움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학생들에 대한 법률 조력 및 연대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 활동에는 위원장 김영준 변호사 님, 하주희 변호사 님, 그리고 저 임준형 변호사가 참여하였습니다. 저희는 고소당한 학생들의 피의자 조사에 참여하고, 학생들의 규탄 집회에 연대하여 참여하였으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서울대학교 측의 인권 침해를 조사하고 시정할 것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작성하여 제출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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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2016. 6. 26.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한 진정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진정취지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서울대학교 총장 및 교육부장관에 대하여, 시흥캠퍼스 설치 과정에서 서울대학교 측이 학생들에 대하여 자행한 인권 침해를 조사하고 시정하라는 권고 결정을 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진정이유는 첫째, 헌법이 보장하는 대학 자치는 그 실질적 실현을 위해 구성원의 참여가 필수적이나, 서울대학교 측은 학생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시흥캠퍼스 설치를 추진하여 서울대학교 학생들의 자치권 및 참여권을 침해하였고, 이는 헌법 제22조가 보장하는 학문의 자유 및 헌법 제31조가 보장하는 교육받을 권리를 침해한 것이라는 점, 둘째, 서울대학교 측은 학생들의 행정관 점거 시위를 폭력 진압하여서 다수의 학생들이 실신하여 응급실로 수송되는 등 학생들에 대한 상해의 결과가 발생하였고, 이는 헌법 제12조가 보장하는 신체의 자유 및 헌법 제21조가 보장하는 집회 및 시위의 자유 등을 침해한 것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저희의 연대활동의 효과가 있었는지 서울대학교는 지난 7월 11일 ‘서울대학교 시흥캠퍼스 관련 문제 해결과 신뢰회복을 위한 협의회'(이하 ‘서울대학교 시흥캠퍼스 협의회’)를 발족하겠다고 발표하였고, 또한 행정관 점거 시위에 참여하였던 학생들에 대한 형사 고소도 취하하겠다고 발표하였습니다. 이는 서울대학교 학생들이 지금까지 시흥캠퍼스 문제에 대한 학생 참여권 보장을 요구해 온 것에 대하여 대학 본부 측이 이를 학생들과 대화로 해결하겠다고 나선 것으로, 학생들의 노력과 투쟁이 드디어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서울대학교는 학생들에 대한 징계 절차는 계속 진행하겠다는 입장이었기에, 저희 교육위원회에서는 「서울대학교 시흥캠퍼스 협의회 발족을 환영하며, 서울대의 학생들에 대한 고소 취하, 징계 철회를 촉구한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하여 서울대학교가 학생들에 대한 징계 역시 철회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저희가 연대한 결과 서울대학교 측이 어느 정도 전향적으로 태도를 바꾸게 되었고 학생들에 대한 고소가 취하되는 등 실질적으로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매우 보람 있는 활동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열정을 가진 학생들을 만나고 그 학생들의 꿈을 도울 수 있었다는 점에서 특히 더 보람이 있던 활동이었다고 생각됩니다. 학생들은 가장 순수한 열정을 품고 행동하는 반짝이는 보석 같은 존재들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불완전하여 어른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존재들이기도 합니다. 저 자신이 방황하는 학생이었던 적이 있었기에 그런 학생들을 도와줄 수 있는 변호사가 되고 싶다는 것이 제 꿈이었고, 이번 활동을 통해 제 꿈을 이루는데 한 걸음 다가선 듯하여 무엇보다 가슴 벅찼던 경험이 되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헌법상 기본권으로서의 대학 자치에 있어 학생을 비롯한 대학 구성원들의 그 주체로서의 지위를 인정한 바 있으며(헌재 2006. 4. 27. 2005헌마1047등), 대법원 또한 헌법 제31조 및 사립학교법령에 의거하여 총학생회에게도 학교운영 참여권이 보장된다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대법원 2015. 7. 23. 선고 2012두19496 판결). 위와 같은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판시에 따를 때 학생들에게도 학교운영에 대한 참여권이 보장됨에도 불구하고 서울대학교는 독단적으로 시흥캠퍼스 설치를 추진하여 학생들의 권리를 침해하였으며, 학생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싸워왔습니다. 이 투쟁에서 학생들은 대학 본부 측이 동원한 용역들에게 폭행당하기도 하고, 때로는 다른 동료 학생들로부터 고립당하고 매도당하기도 하면서도 끝까지 자신들이 지켜야할 권리가 무엇인지 잊지 않았으며, 거의 1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꿋꿋이 싸워왔습니다. 학생들의 이와 같이 치열한 투쟁을 지켜보며, 저 또한 자신의 권리를 지킨다는 것의 의미에 대하여 다시금 진지하게 고민하여 보지 않을 수 없었음을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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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지난 7월 21일 서울대학교는 행정관 점거시위에 참여했던 학생들 중 12명에게 무기정학을 포함한 중징계를 내렸는데, 이 징계는 서울대학교 학칙상 규정된 징계절차상 학생의 출석 및 의견진술권 조차 부여하지 않고 내려진 것으로 절차상 중대한 하자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애초에 갈등을 초래한 서울대학교 측이 제반 사정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이 징계절차 조차 무시하며 지나치게 과중하게 의결한 이 징계는 부당한 것임이 명백하며, 현재 저희에게 이러한 징계를 철회시키는 것이 또다른 과제가 되었습니다. 나아가 서울대학교가 약속한 참여권 보장 또한 대학 본부 측이 언제 또 입장을 바꾸게 될는지도 모르는 일이기에, 반드시 학생들과 시민사회의 꾸준한 감시가 필요합니다. 학생들의 이 길고 긴 싸움이 꼭 승리로 끝날 수 있도록, 부디 끝까지 관심 가져주시고 응원하여 주실 것을 부탁 드립니다.

월, 2017/07/24-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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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봄을 알리는 입춘이 지난 2월의 어느 날, 민변 가족들에게 전북지부의 소식을 알리게 되어 매우 반갑고 또 영광입니다. 2016년은 민변전북지부의 많은 변화가 있던 한 해였습니다. 민변 전북지부 창립 최초로 회원수가 30명(특별회원 2명 포함 31명)이 넘는 양적인 발전이 있었으며, 8월에는 전북지부를 이끌어갈 새로운 임원단(지부장 : 김현승, 부지부장 : 김석곤, 사무국장 : 박재홍)이 선출되어 여러 운동들을 실행해보고자 하는 새로운 바람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1. 잊지 못할 추억을 선물해 준 인권감수성 향상 프로젝트 공감과 연대

지난 10월 29~30일 우리 민변회원들과 전북지역 로스쿨 인권법학생들이 “공감과 연대”를 주제로 함께 참여한 인권감수성 워크샵은 회원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공기 좋은 완주군 리조트에서 인권 감수성, 가정폭력, 언론과 민변, 그리고 지역 사회의 통일운동과 민변이라는 주제로 전문적이고 열성적인 강사님들로부터 좋은 강의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강의 후에 마련된 뒤풀이 시간은 민변이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한 진지한 토론과 함께 세대를 뛰어넘는 고민을 나누며 회원과 인권법학생들 간의 돈독한 우정을 다질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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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촛불집회를 통해 시민의 목소리를 듣다

어지러운 시국 속에서,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국민들과 함께 하고자 우리 전북민변회원들도 매주 토요일 5시 전주 한옥마을 앞 관통로 사거리에 모여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섰습니다. 때론 비가 왔고, 때론 눈이 왔지만 민변의 깃발은 언제나 힘차게 펄럭였습니다. 촛불집회를 통해 민변회원 뿐만이 아니라 각계각층의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이들의 외침에 우리 민변이 더욱 더 귀를 기울어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좋은 계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또, 집회 후 헤어지기 아쉬운 마음에 치맥을 하며 회원들끼리의 우정을 다졌던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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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년을 떠나보내며 2017년 새희망을 보다

유독 국민들을 실의에 빠지고 좌절하게 만드는 사건들이 많았던 2016년(병신년)을 떠나보내는 송년모임이 12월 14일에 있었습니다. 20명에 가까운 많은 회원들이 참석하였고, 김현승 지부장님의 2017년 민변전북지부의 계획 및 앞으로의 활동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올해 민변전북지부가 많은 양적·질적 성장한 만큼 내년에는 소송 구조와 공동변론활동에 더욱 많은 참여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지부장님의 말씀에 한편으론 어깨가 무거워지면서도 알 수 없는 기대감이 차오르기도 하였습니다. 미리 준비된 식사와 음주를 하며 회원들 간의 덕담을 주고받고 사무국에서 준비한 송년 선물까지 한가득 받아 몸도 마음도 따뜻한 송년회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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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2016년 민변전북지부는 지부 공동 변론활동으로 김승환 교육감 사건, 한상렬 목사 보안관찰법 위반 사건 등을 수행하였으며, 소송구조로는 남원평화의 집 고소대리 사건, 자림원 사건 등 다수의 사건을 맡아 수행하였고 고종윤, 박일지 회원을 주축으로 시민법률학교 강연과 같은 외부활동에도 충실히 하였습니다. 2017년에는 대한민국의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소외되고 상처받은 이들의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도록 더욱 더 노력할 것을 전국의 민변회원 분들게 약속드리며 이상으로 민변전북지부의 2016년 하반기 소식지를 마치려 합니다.

목, 2017/02/09-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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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평화기행 기행문

- 박종훈 회원

 

  민변 국제연대위원회 아시아인권팀이 기획한 베트남 평화기행단은 15. 7. 26.부터 15. 8. 1.까지 베트남을 방문하여 일정을 소화하였습니다. 그에 대한 간단한 소감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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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짧은 변명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지금도 몇 번이나 글을 썼다가 지우다를 반복하고 있다. 이제야 고백하건데, 난 (다른 평화기행단 팀원들과는 달리) 가벼운 마음을 가지고 베트남으로 떠났고, 현장에서도 알 수 없는 찝찝함을 가슴 속에 담아두어야만 했으며, 아직도 베트남의 아픔을 충분히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에 솔직하게 이 글을 쓴다면 그것은 극히 개인적인 감상에 치우친 경험담일 뿐일 터이고, 반면에 (베트남의 아픔을 공감하는 듯하면서) 심각하게 글을 써야만 한다면 결국 이 글마저 찝찝하게 남을 것 같아서 고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은 (이동화 간사님을 비롯한 팀원들과의 계약에 의해) 쓰여 져야만 하고, 또 (이유진 간사님께) 제출되어야만 한다. 결국은 없는 글재주에 거짓말을 할 재능은 더욱 없어서 솔직하게 글을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 행여나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나 같은 (불량) 팀원을 제외한 다른 팀원들은 모두 진지한 마음으로 베트남을 다녀왔기에 부디 오해하지 말기를 부탁드린다.

2. 어제가 오늘이 되기까지

  영남에서 태어나 2000년대에 대학에 입학한 나로서는 광주의 아픔을 오롯이 알지 못한다. 어디 그 뿐인가, 만점 받을 수 있던 시험을 실수로 하나 틀렸다고 슬퍼하는 동기의 아픔도, 소주잔을 앞에 두고 문득 1년 전 헤어진 애인이 생각나서 아프다는 후배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그 아픔을 온전히 나의 것으로 하기가 힘들다.

  이야기를 들으면 슬펐다, 그리고 눈물이 났다. 오월 광주 이야기를 들을 때에도 그랬다. 그러나 그러한 이야기들이 내 가슴에 멍울로 남아 있지 못했다. 공감하는 척 했지만, 나에게는 오늘이 더 소중했다. 그런 나도 현장에 서서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만큼은 그들의 어제가 나의 오늘이라고 느낄 수 있었다.

  28만명과 117만명, 베트남 전쟁에서 전사한 남베트남 연합군과 북베트남 연합군의 수다. 무려 4배가 넘는 사망자가 발생하였음에도 역사는 북베트남이 승리한 전쟁, 그리고 미국이 패배한 전쟁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나에게는 베트남 또한 어제의 일이었다. 한국군이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일도, 한국군이 저질렀다는 민간인 학살도, 다 어제의 일이었다. 난 그 세대가 아니니까, 그냥 기억으로만 남겨두면 되는 일이었고, 오늘은 아니었던 셈이다. 그래서 베트남으로 떠나야만 했다.

  그렇게 도착한 베트남에서 전쟁박물관, 구찌 땅굴 등 전쟁을 기록한 곳뿐만 아니라 민간인 학살이 일어났던 지역들을 방문하게 되었다. 미군에 의한 학살이 있었던 미라이(손미) 마을을 시작으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있었던 빈호아, 퐁니·퐁넛, 하미, 투이보 마을을 방문하였고, 생존자들과의 간담회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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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이들의 사진을 보고,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대면해야만 했다. 그렇게 분위기는 숙연했다. 그러나 그것이 곧 베트남의 아픔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기에 간담회에서의 시간을 많이 기다렸다. 오늘, 이 곳에서 듣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이 있었다.

3. 오늘을 사는 사람들

  학살이 있었던 마을들을 방문하면서 위령제를 지내고, 아시아인권팀 팀장인 성상희 변호사님께서 축문을 낭독하는 동안 내가 느낀 것은 아이러니한 평화였다. 그곳의 오늘은 너무나도 고요해서, 마치 학살과 관련한 모든 일들이 거짓말인 듯 했다. 고즈넉한 평야 앞에서 헬리콥터가 착륙하는 장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이 설명될 수 있었다. 우리가 무슨 짓을 한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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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솔직히 말하고 싶다. 난 여전히 베트남의 어제를 온전히 느끼는 데는 실패했다. 현지의 생존자들은 모두 하나 같이 입을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똑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베트남인은 평화를 사랑한다. 미군과 한국군을 용서했다. 이제 우리는 경제 공동체로서 서로 발전해가야 한다.” 생존자들은 이미 오늘을 살고 있었다. 그들이 과거의 아픔에서 벗어나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그러나 내가 기대하고 생각했던 오늘은 그들이 생각하는 오늘과는 같지 않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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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아파서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라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감정을 잘 다스려 아픔을 승화시켰다는 미담을 듣고 싶었던 것은 더욱 아니었다. 그러나 미국에 대한 ‘자본’을 탐하여 베트남에 파병했던 우리와 ‘자본’을 탐하는 베트남이 손을 움켜잡고 있는 오늘은… 한국이 베트남에 대한 최대 투자국이라는 것은 무엇을 말해주는 것인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마음의 준비를 미처 하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 날의 참상을 묘사하며 울먹이는 생존자를 앞에 두고 대화하면서도, 더없이 평화로운 평야를 뒤에 끼고 있으면서도, 단지 그것뿐이었다. 내가 만난 베트남은 오늘의 베트남이었다.

4. 그리고 내일

  베트남 평화기행단의 최종 평가자리에서도 아쉬움을 뒤로 하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다.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한 것이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 베트남의 어제는 현재도 유효한가. 나는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그 외에도 베트남의 오늘, 그리고 내일에는 많은 과제가 남아있다. 지금도 베트남에서는 표현의 자유 등 기본권을 제한하고 있고, 고문을 비롯한 인권침해 문제가 발생하고 있으며 이를 문제 삼는 인권 변호사들은 국외로 망명을 당하고 있다.

  결국 베트남에도 오늘을 사는 이들이 있고, 이들은 우리의 손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기다림이 베트남을 다시 찾게 만들 것 같다. 그 때는 더 많은 사람들의 손을 잡고 이 곳을 방문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함께 해서 너무 좋았던 베트남 평화기행단의 팀원들에게 한 마디씩만 남기면서 기행문을 마친다.

  미친 존재감의 김남주 변호사님, 제 누이가 된 김자연 변호사님, 여행 내내 말 못할(그러나 모두가 알았던) 아픔으로 힘들어했던 김하나 변호사님, 박학다식하여 모르는 것이 없던 박진석 변호사님, 말 안 듣는 팀원들 통솔하느라 너무나도 수고하신 팀장 성상희 변호사님, 그리고 성상희 변호사님의 남자 배광열·임재성 변호사님, 본인은 좋다고 하지만 표정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었던 오지은 간사님, 모든 실무를 도맡아서 책임졌던 팀원들 모두가 감사해하고 있는 이동화 간사님(통역님), 선물 고르는데 놀라운 안목을 보여주신 마사지 이상희 변호사님, 김하나 변호사님에 의해서 만두가 되어버린 이종민 자원활동가님, 새로운 권력 이준형 변호사님, 물에 가장 먼저 뛰어든 물개 조영선 변호사님 모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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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5/08/11-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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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인권위원회 소개 및 소식

김영주 변호사

 

숨을 쉬지 못할 만큼 더워도 너무 더운 여름이었습니다. 끝이 없을 듯한 폭염 속에서도 우리 아동인권위원회는 매일 일어나는 아동학대 사건들, 판례들 등 아동인권에 대한 제반 문제들을 논의하고 연구하였습니다.

2016. 7. 4.부터 민변에서는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일방적인 조기해산에 반대하고 진상규명과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활동기간 보장을 요구하며 “법대로 하자” 릴레이단식이 이어졌습니다. 우리 아동인권위원회의 김희진 변호사는 2016. 7. 10. 광화문에서 단식을 진행하였으며, 많은 위원들이 함께 하였습니다. 더욱이 김희진 변호사는 단식으로 힘든 상황에서도 108배까지 하는 등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반대하고 방해하는 어이없는 상황에 항의하고 유가족들의 마음을 위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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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위원들도 많이 함께 해주셨으나 지면관계상 김희진 변호사와 김혜림 변호사의 사진만 올린다. 기꺼이 단식을 함께 하고 108배까지 한 김희진 변호사와 이에 함께 한 위원들,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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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을 하면서도 108배를 한 김희진 변호사(그 오른쪽 옆은 서채완 변호사)가 그저 고마울 뿐이다. 이런 정성, 이런 마음, 이런 사랑.. 설마하며 윗분들에게 기대했던 내가 사회부적응자이지 싶다.

2016. 7. 19. 우리 위원회는 민변 회의실에서 제17차 월례회를 진행하였고, 이 날 보건사회연구원 류정희 박사님을 모시고 “아동보호체계의 현황과 제도개선 방향”에 대한 간담회를 하였습니다. 어디서도 듣기 힘든 현실이 그대로 반영된 소중한 강의였고, 우리 위원들은 아직도 갈 길이 너무도 멀다는 생각에 답답해하면서도 우리가 해내야만 한다는 결의를 굳게 다졌습니다.

또 우리 위원회는 2016. 7. 25. <사드집회에 참석한 학생들에 대한 무단결석처리는 학생들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부당한 조치이다>라는 성명을 내고, 헌법과 유엔아동권리협약이 인정하는 아동의 표현의 자유, 아동의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결국 2016. 8. 30. 경북 성주교육지원청에서는 무단결석처분을 철회하고 기타결석으로 처리하기로 최종 결정하였습니다. 모두가 사드도입의 찬반에 대해서만 주목할 때 우리 위원회는 그 집회에 참석한 아이들의 인권까지 세심한 감수성으로 챙겼고, 그로 인해 위처럼 의미있는 결정이 이루어지는 성과가 있었습니다.

우리 위원회는 2016. 8. 16. 이주민지원센터 평화&인권 카페 ‘친구’에서 제18차 월레회를 ‘무비데이’로 진행하였습니다. 이 날 우리 위원회는 다과를 함께 하면서 레몬나무를 지키기 위하여 이스라엘 정부와 법정투쟁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 “레몬트리”를 감상하였고, 이후 우리 위원회의 월례회 방향과 모니터링에 관한 개선책을 심도있게 논의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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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영화를 봤다고 기재하였는데, 왜 화면은 “안녕! 난 데드풀이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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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례회 방향과 효과적인 모니터링 방법을 논의하는 위원들, 앞으로 더 좋은 방향으로 월례회가 진행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높인다.

이외에도 우리 위원회 내부의 청소년팀과 아동팀이 각 소모임을 진행하였고, <추적60분> 아동학대 사건 및 출생신고반려 사건 등에 조력하여 사건을 해결하거나 학대양부모들이 구속되게 하는 성과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아동인권 분야는 해야 할 일은 많고 현실은 비루하기만 합니다. 아직 많은 연구와 활동이 필요하고, 그래서 우리 위원들 한명한명이 더욱 소중해집니다. 우리는 신입회원을 언제나 환영합니다.

관심있는 변호사님들의 많은 연락을 기다립니다. 저는 아동인권위원회의 친목, 개그,잡일을 담당하고 있는 총무변호사 김영주입니다(010-9881-5363).

월, 2016/09/12-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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