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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위] 오키나와 평화교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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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위] 오키나와 평화교류회

익명 (미확인) | 금, 2018/03/30- 17:10

2018. 3. 3. ~ 3. 7. 오키나와에서 민변 미군문제연구위원회와 오키나와 자유법조단의 11회 평화교류회가 진행되었습니다. 지난해 10월 태풍으로 한차례 연기된 뒤에 이루어진 만남이라 그 의미와 반가움이 더 컸습니다. 회원을 비롯하여 함께 해준 모든 분들에게 고마움의 인사를 전하며 다가올 만남을 또 기다립니다.

 


  

 

 

오키나와, 이름만으로도 설렌 그 곳 도착

 

오민애 변호사

 

 

오키나와. 인터넷 검색창에 이 네 글자를 입력하면 에메랄드빛 바다와 평화로운 섬의 풍경이 화면을 가득 채웁니다. 막연히 좋은 관광지로만 여겨졌던 오키나와는, 민변 미군문제연구위원회와 자유법조단 오키나와지부의 10년이 넘는 교류의 역사 속에서, 저에게 너무나 새로운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길고도 짧았던 시간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2016년 10월, 서울에서 광주에서, 그리고 사드 배치 문제로 매일매일 치열했던 성주에서 오키나와 변호사님들을 처음 만났습니다. 처음 참석한 교류회에서, 일본어라고는 안녕하세요, 잘먹겠습니다, 밖에 할 줄 몰랐던 제가 불편함 없이 함께 밥 먹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기하고 좋았습니다. 성주 주민분들과 함께 비를 맞으며, ‘사드 가고 평화오라’고 외쳤던 그 순간이 아직 생생한 채로, 2017년 가을, 오키나와로 갈 날을 하루하루 기다려왔습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오키나와 교류회가 예정된 날짜에 태풍이 오키나와를 지나간다는 예보가 있었고, 결국 2017년 교류회 일정은 연기되고 말았습니다. 오키나와에 갈 생각에 들떴던 마음이 가라앉는데는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아직은 추위가 가시지 않았던 2월말, 오키나와를 떠올릴 때면 아직 느껴보지 못한 오키나와의 공기도, 변호사님들의 얼굴도 참 따뜻하고 푸근했습니다.

 

2018년 3월 3일, 그렇게 고대하던 오키나와 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이틀 먼저 오키나와에 가셨던 박진석 변호사님의 전언으로는 계속 비가 내리고 궂은 날씨였어서, 걱정도 많이 됐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예정된 비행시간보다 40분정도 늦게 나하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비는 거의 그쳐가고 있었고, 감사하게도 오키나와 교류회 일정 동안 날씨도 교류회를 도와주었습니다.

 

삼삼오오, 오키나와 변호사님들의 차를 나눠 타고 숙소로 향했습니다. 어떻게 대화를 할까, 머릿속에 맴돌던 고민은 기우였습니다. 짧디 짧은 영어로, 손짓으로 반가움을, 안부를 전하는 모든 것이 가능했습니다.(아, 그리고 하나 더, ‘파파고’의 고마움을 절실하게 느꼈던 순간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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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숙소로 향해서 짐을 풀고, 근처 음식점에서 첫 ‘친목회’의 자리를 가졌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각자 자기소개를 하고, 또 함께 한 분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그 순간순간이 아직도 생생한데요. 정말 따뜻하게 저희를 진심으로 반겨주시고, 함께 할 시간을 기다려오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일 년에 한번씩, 3-4일씩 만나왔다면, 어쩌면 만날 때마다 서먹서먹할 수도 있을텐데, 일주일 전에 만났던 것처럼 서로 반가워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참 좋았습니다.

 

함께여서 좋았던 첫 날

 

오키나와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고 언급하셨던 이야기 중 하나가 ‘촛불집회’였습니다. 아베 총리의 부인까지 연루된 사학 비리 스캔들이 연일 드러나고 있음에도 이에 대한 목소리가 모이거나 정권의 문제점에 대한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와 함께, 어떻게 촛불집회가 있을 수 있었고 정권교체까지 나아갈 수 있었는지,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셨습니다. 2017년 한국에서 만들어진 역사가 자랑스럽고 소중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면서도, 다음날 세미나에서 제가 발제를 맡은 주제이기도 해서, 마음 한 켠 궁금해하시는 내용을 잘 전할 수 있을까, 준비를 잘 한 것일까, 걱정과 불안이 엄습해왔습니다. 그렇지만 그 마음을 꾹꾹 누를 수 있을만큼, 맛있는 음식과 술과 이야기들로 가득 채운 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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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나기사와 변호사님이 직접 그린 시샤. 시샤는 오키나와 나하시의 전설의 동물로, 나쁜 기운을 가져가고 좋은 기운을 가져다 준다는 수호신입니다. 지난해 예정되었던 교류회 일정에서 민변 변호사들에게 주기 위해 그리셨던 그림인데(2017. 10. 27.), 일정이 조정되면서 이번에 직접 전달해주셨습니다.

 

평화와 연대, 그 소중함에 대하여

 

이튿날, 숙소 근처의 변호사회관에서 세미나가 진행됐습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진행된 세미나에서는 한국과 일본에서의 평화 관련 이슈에 대한 발제와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고등학교에서의 수업 이후, 이렇게 오랜 시간 한 자리에 앉아서 발표를 듣고 메모하고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진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그 시간이 어색하거나 길게 느껴지지 않았던, 신기한 시간이었습니다.

 

오전에는 공통테마에 대한 발제와 토론, 그리고 오후에는 양국의 사례보고를 이어갔습니다. 공통테마는 ‘일본 헌법의 평화주의-군사대국으로의 책동’, 그리고 ‘촛불혁명과 우리의 주권’이었고, 토론이 열띠게 이어졌는데요. 먼저 하야시 치가코 변호사님의 발제에서 언급된 일본 자민당이 마련한 헌법개정안은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헌법을 전체주의 관점으로 재정비하고, 자위권의 발동을 가능하도록 명문 규정을 넣는가 하면, ‘긴급사태(내각총리대신은 외부로부터의 무력공격, 내란 등에 의한 사회질서의 혼란, 지진 등에 의한 대규모 자연재해 그 밖의 법률에서 정하는 긴급사태에 있어 특별한 필요가 있다고 인정될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각의에 상정하여 긴급사태의 선언을 발할 수 있다)’에 관한 조항을 신설하여, 국민에 대한 국가의 통제를 공고히 하는 방식의 헌법개정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문제제기와 비판이 계속되고 있기는 하지만, 이런 방향의 헌법개정안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이 충격이었고, 현재 일본의 집권 정당이 어떤 인식을 갖고 있는지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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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헌법에 대한 논의는 다양한 고민지점을 던져주었습니다. ‘군대’를 헌법에 명문으로 두는 것이 군대에 대한 통제근거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에 필요한 것인가, 아니면 두지 않고 다양한 방법으로 통제되도록 하는 것이 맞는가. 한국에서의 전시작전권 문제, 군대에 대한 민주적 통제에 관한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갈 것인가. 국민들이 일상을 평화롭게 살아갈 권리는 가장 기본적인 가치임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이를 가장 직접적으로 위협하면서도 아닌 것처럼 숨어있는 군사 문제에 대해, 언제나 국가기밀이다, 적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해야한다는 논리로 감추기 급급해하는 많은 이들이 떠올랐습니다. 군대, 전쟁 문제로 대표되는 국가의 국민에 대한 통제 시도를 어떻게 국민들이 저지할 수 있을 것인가. 질문과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우리는 어떤 고민을 하고 무엇을 해야할지, 또 그 과정에서 무엇을 어떻게 함께 할 수 있을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어서 한국에서의 ‘촛불혁명’에 관한 발제와 토론이 있었습니다. 2016년 가을부터 2017년 봄까지 계속되었던 촛불집회와, 그 과정에서 발현된 많은 변화들에 대한 평가는 각기 다르지만, 오키나와 분들은 ‘촛불혁명’이라 명명하고 그 시간을 궁금해했습니다. 함께 촛불집회의 모습이 담긴 짧은 영상을 보고, 어떻게 진행되어왔는지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이 순간 이렇게 함께 지난 1년을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습니다. 다만, 이것이 끝이 아니라 잘못된 사회를 바로잡기 위한 시작이었다는 점을 공감하고, 일본에서의 정권교체를 함께 그려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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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는 양국에서 어떤 사안들이 문제되었고 어떻게 대응하여왔는지 발제와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오키나와 변호사님들의 아시아 태평양 법률가 협회(COLAP)와 국제 민주 법률가 협회(IDAL) 활동에 대한 보고, 마샬제도 관련 보고와 한국의 문재인 정부 이후 남북 정세 관련 발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키나와가 제기한 암초 파쇄 행위의 금지청구 소송과 기지 내 인권침해에 대한 대응 활동, 2차 후텐마 기지 폭음 소송, 오키나와 전투‧남양전 소송에 대한 보고가 있었고, 한국의 사드 배치 관련 소송 보고가 진행되었습니다.

 

해외 미군기지는 현재 800여개 정도가 있고, 규모로 분류하면 크게 세 분류가 있는데, 그 중 한국과 오키나와는 미군의 가족들까지 함께 생활할 수 있는 형태의 대규모 기지가 주둔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기지로 인하여 평화롭게 살아갈 권리를 근본적으로 침해당하고 인근 주민들의 환경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등 수많은 문제를 겪게 된다는 공통점이 있어, 서로의 상황에 깊이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 한편 서글프기도 했습니다. 사사모토 준 변호사님은 일본과 한국의 국내에서의 운동, 나아가 미군의 군사력을 통제할 수 있는 세계적인 운동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셨는데, 그 연대의 힘을 잘 만들어가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이 교류회 현장 또한 연대의 기초가 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마샬제도’에 대한 발제였습니다. 오랜시간 미군 기지 문제에 관여하고 연구해 오신 하지메 이노우에 변호사님의 설명이, 이름도 낯설기만 했던 ‘마샬제도’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마샬제도는 오세아니아에 있는 섬국가로, 1차 세계대전 이전에 일본의 신탁통치를 받던 곳으로 지금도 일본어가 사용되는 곳입니다. 미국은 이곳을 2086년까지 빌리는 형태로 협정을 체결하였는데, 1년에 4번씩 이곳에서 미사일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주민들은 미사일 훈련 2주 전에 훈련이 있다는 사실을 통보 받는 것 외에는 달리 대응할 방법이 없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마샬제도 외부장관은 핵군축조약에도 불구하고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로 국제형사재판을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어떤 곳인지 전혀 알지 못했던 마샬제도에서는, 지금도 협정과 약속이라는 이름 아래 군사훈련이 수시로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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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심재환 변호사님이 문재인 정부 이후 남북 정세 전망에 대하여 발제를 해주셨습니다. 교류회가 진행되던 당시는 평창 동계올림픽을 마친 직후였고, 올림픽을 전후로 남북관계가 급속히 달라지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이해관계가 대립과 견제, 갈등이 아닌 ‘평화’를 중심 가치로 두고 남북 평화통일을 만들어가는 방향으로 가야할 것이고 그렇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는, 매일매일 달라지고 있는 남북관계를 어떻게 봐야할지, 많은 생각을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사드 배치 관련 법적 대응에 대하여 오현정 변호사님의 발제가 있었습니다. 정권이 교체되고 많은 적폐를 청산하고 변화하기 위한 일들이 추진되고 있지만, 사드 배치는 계속 추진되었고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이에 한국에서 사드 배치 발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헌법소원, 행정소송, 형사고발 등 관련하여 진행해온 법적 대응에 대한 보고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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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오키나와에서도 평화를 위협하는 행위와 이에 대한 싸움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백충 변호사님 발제에 의하면, 오키나와에서는 헤노코 기지 건설을 위한 암초파쇄행위에 대한 금지소송을, 오키나와 현이 제기하여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오키나와 현의 허가를 받아야 암초를 파쇄할 수 있기 때문에, 허가 없이 파쇄하면 안된다는 취지의 소송이었습니다. 이어 사이토 유스케 변호사님은 2016년 4월, 헤노코 신기지 건설에 항의하던 중 미군 헌병에 의해 체포‧구속된 메도루마의 국가배상청구 사건에 대하여 들려주셨습니다. 변호사를 불러달라는 요구도 무시하고 신체구속 상태로 두었고, 이에 대한 국가배상을 청구한 사건인데, 미군의 공무집행 중 불법행위는 일본국이 대신 책임진다는 규정에 따라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후텐마 기지와 가네다 기지의 폭음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이 진행 중이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우에하라 도모코 변호사님의 발제가 있었습니다. 기지 주변의 폭음으로 인한 손해배상소송은 여러 차례 진행되었고, 후텐마 기지에서는 2차, 가네다 기지에서는 3차로 소송이 진행 중이었는데, 폭음과 건강피해의 인과관계를 일부 인정하고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는 내용의 1심 판결이 선고되었다고 합니다. 비록 비행금지청구는 일본의 지배가 미치지 않는 미군의 행위의 금지를 요구할 수는 없다는 취지로 기각되었으나, 이에 대해서는 이후 고등재판소에서 다툴 예정이라고 합니다. 오키나와의 마지막 사례보고는 오키나와전, 남양전 소송으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 사건에 대한 마쓰모토 게이타 변호사님의 발제였습니다. 오키나와 전은 주민들이 사는 지역에서 전쟁이 벌어진 유일한 사례로, 1945년 4월 1일 오키나와 중부 해안에 미군이 상륙(미군55만명, 함정 1400척 이상)한 이후 격전이 벌어져 현 인구 4분의 1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메이지 헌법 하에서 발생한 행위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논리로 기각되었는데, 이는 메이지 헌법 하에서 공권력이 잘못된 행사를 하지 않는다, 책임을 져야 하는 대상은 천황이지 국민들이 아니라는 이유였습니다.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 그 과정에서 피해를 입은 국민들에게 금전적 배상으로나마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하지만, 여전히 만들고 싸워나가야할 문제들이 산적해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주희 변호사님의 미군기지 내 한국여성 성매매의 위법성을 인정한 서울고등법원 판결에 대해 소개를 해주셨습니다. 법원이 국가가 성매매를 정당화하고 조장했다는 사실을 명시적으로 인정하고, 소멸시효 완성 주장을 배척하면서 국가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였는데, 이는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하고 미군기지 주변에 관한 정책에 대한 판단까지 나아갔다는 점에서 중요하고 의미 있는 판결이라는 소개에, 참석자 모두 공감하면서 마지막 발표를 마쳤습니다.

 

함께 하고 있음을, ‘우리를 확인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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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는 너무도 당연하고 소중한 것이기에, 정작 그 중요함을 잊고 살게 되는 것은 아닌지, 수많은 사람들의 삶 하나하나가 만들어낸 소중한 가치를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어떻게 평화를 지켜내고 또 함께 만들어갈 것인지, ‘평화’라는 이름으로 함께 고민하고 실천할 수 있는 ‘우리’여서 자랑스럽고, 또 그 ‘우리’에 함께일 수 있어서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각자, 또 함께 해나갈 수 있을지, 서로 마음 한 켠에 고민을 접어두고 찐한 뒷풀이가 계속되었습니다.

 


 

오키나와를 통해, 일본과 한국, 그리고 평화를 마주하다 교류회 3일차

 

이 윤 주 변호사

 

두 개의 풍경, 아름다운 풍광과 내면의 죄책감이 교차하는 곳

 

오키나와, 교류회에 참여하기 이전 이곳은 저에게 제가 좋아하는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이 세계일주의 시작점으로 생각하는 아름다운 풍광을 가진 휴양지였습니다.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몸과 마음을 모두 편하게 하는 휴식을 할 수 있는 곳이라는 마음을 안고 오키나와로 향했던 것 같습니다. 도착해서 바라본 오키나와의 아름다운 풍광은 ‘그대로’였습니다. 탁 트인 넓은 바다, 청량한 바람, 미세먼지 가득한 서울에서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파란 하늘, 따뜻하게 내리쬐던 햇볕. 그런데 이곳에서 어느 순간부터 마음 속 깊이 느껴지던 고통과 더 이상 이 풍경을 마음 놓고 아름답다고만 말하지 못하겠던 저의 죄책감은 어디서 시작된 것이었을까요. 풍경의 아름다움에 찬탄하며 말을 내뱉던 저의 입은 이제 머뭇거리기 시작하였고, 마음에는 죄책감의 그늘이 무겁게 내려앉았습니다.

 

후텐마 비행장, 일상을 위협하는 군국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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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차 오키나와 교류회 평화기행의 첫 일정으로 ‘후텐마 비행장’으로 향했습니다. 후텐마 비행장은 전 세계적으로 유일한 해병대 전용 비행장이라고 합니다. 높은 곳에 올라 내려다 본 군용비행장과 일반사람들이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며 살아가는 마을 간의 거리는 말 그대로 ‘지척’이었습니다. 이 물리적 거리는 무시로 우리의 일상에 쏟아지는 군용비행기의 소음과 상공을 날아다니는 헬리콥터 등으로부터 부산물 등의 낙하로 누군가 다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상존하는, 군국주의로부터 위협받는 위태로운 일상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평화로운 일상을 누리고자 하는 사람의 기본적인 바람이 존중받지 못하는 공간이었습니다. 착잡한 마음으로 마을로 다시 내려오자 그곳에서는 공을 차며 놀고 있는 어린 아이들의 맑은 웃음소리가 가득 퍼졌습니다. 이율배반적이라고 느낄 만큼 상반된 두 풍경 사이에서 우리의 평화로운 삶을 관통하는 군국주의를 보았습니다.

 

동굴 진지 속, 깊은 어둠 속에서 참상과 마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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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교류회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경험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보면, 그건 아무래도 동굴진지를 체험했던 일일 것입니다. 그곳에서 물리적으로도, 심정적으로도 깊은 어둠을 만났습니다. 전쟁 시기, 이곳에 숨어들었던 사람들이 있던 공간, 동굴 곳곳에 보존되어 있던 그 시절의 잔해들을 보며 그 시간 이곳에서 자신을 지켜내야 했던 사람들의 절박함을 떠올렸습니다. 전쟁이라는 야만의 시간을 통과해야 했던 사람들이 자신을 숨기기 위해 선택했던 곳, 반세기라는 시간적 거리를 두고 있었지만 저는 이곳에서 버텨야 했던 사람들의 공포감이 어느 정도였을지 생각해보려고 애썼습니다. 작은 불빛조차 허용되지 않았던 곳에서 그 긴 시간 사람들은 어느 정도의 공포감으로 버텼던 것일까요? 발끝에 느껴지던 울퉁불퉁한 바닥과 손끝에 느껴지던 습기와 한치 앞도 보이지 않던 어둠을 여전히 저의 온 몸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평화기념공원 – “분단은 어디에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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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전투 평화기념공원을 방문하였습니다. 남쪽 바다 끝 절벽 가까이에 위치한 이 평화기념공원을 둘러싼 풍경은 굉장히 아름다웠고, 이 바다 끝 기자절벽에서 많은 사람들이 전쟁 끝에 자결을 선택했다는 이야기는 그만큼 비극적으로 다가왔습니다. “평화의 초석”이 길에 길게 세워진 공원을 걸으며 기록된 이들의 희생과 아직 기록되지 못한 자들의 희생을 생각했습니다. 총 24만명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고 하였습니다. 길게 서있는 초석들 중 발걸음을 유난히 붙잡았던 것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이 분리되어 각인된 초석이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한반도의 분단이 이들의 이름조차 강제로 나누어 기록해 놓은 모습을 보며, “분단은 어디에나 있다”는 어떤 변호사님의 말귀가 와서 박혔습니다.

 

히메유리 기록관 – “전쟁은 인간이 일으키는 최대의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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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메유리 여고생들의 기록을 시민들의 힘으로 남긴 기록관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기록관에서 본 그들의 앳된 얼굴에서 저의 평범했던 여고생 시절을 떠올리며 그들이 겪어야 했던 비극을 가늠해보려 노력했습니다. 히메유리 여고생들의 죽음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아름다운 영웅들로 포장해내는 일본 정권의 민낯을 통해 전쟁의 비극을 은폐하려는 야만적 시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누군가의 처절한 죽음에 대한 인간적 애도는 사라지고 영웅이라는 이름으로 상찬하기에 급급한 것은 지금을 사는 자들의 정치적 야욕을 위한 것이 아닐는지요. 비극적 죽음 앞에서도 반성과 성찰은 사라진 이 행태에 분노를 참을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누군가의 죽음에도, 그곳에서 간신히 살아남아 삶을 지탱하고 있는 생존자들에게도 결코 해서는 안 될, 무례와 야만 그 자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곳 관장님께서 우리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전해주셨던 “전쟁은 인간이 일으키는 최대의 잘못이다”라는 이 말씀을 가슴에 아로새기며 기록관을 나섰습니다.

 

이번 오키나와 교류회를 통해 “전쟁은 인간이 일으키는 최대의 잘못이다.”라는 이 한 문장을 손에 단단히 쥐고, 가슴에는 평화라는 구체적인 가치를 담고 저는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통해 일본 오키나와 자유법조단께서 보여주신 극진한 환대에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내년에 이곳 한국에서 서로 좋은 소식을 가득 안고 다시 만나기를 소망합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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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위원회 활동소식

 

1. ‘2016년 여성인권 이슈’ 주제로 워크숍 개최

 한국여성단체연합 박차옥경 사무처장님을 모시고 2016. 2. 18. 여성위 2월 월례회에서는 ‘2016년 여성인권 이슈’라는 주제로 워크숍을 가졌습니다. 여성운동계의 2015년 한해 활동을 짚어보고 2016년 여성인권 이슈와 향후 연대활동 등에 대하여 진지한 논의를 나누며, 여성인권위의 올해 활동 및 사업들을 점검해보는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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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016년 3. 8 여성대회 참가

 여성인권위는 2016년 3.8 세계여성의 날을 기념하여 개최된 제32회 한국여성대회에 참가하였습니다. 이번 대회는 우천으로 인하여, 2016. 3. 5. 오후 1시 서울시청 8층 다목적홀에서 “희망을 연결하라 / 모이자! 행동하자! 바꾸자!” 주제로 열렸습니다. 올해는 조숙현 위원장님과 위은진, 김진, 원민경, 김인숙, 김영주, 오현희, 이소아, 이선경, 이희영 위원, 오지은 간사 그리고 정병욱 변호사, 이현아 간사 등 총 13명이 참여하였고,‘3.8 무브먼트’를 시작으로 시상식, 3.8 여성선언 등으로 채워진 기념식에 참여하고 이어 종로를 거쳐 평화의 소녀상 앞까지 이어진 퍼레이드에도 함께하며 유쾌하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갑작스런 악천후 속에서도 여성대회 참가자들은 성평등 실현 촉구, 여성폭력 근절, 노동개악 반대, 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 무효 등을 요구하며 행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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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여성주의 상담’ 주제로 워크숍 개최

 여성인권위는 2016. 3. 17. 목요일 늦은 7시 민변 대회의실에서 정춘숙 전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를 모시고 ‘여성주의 상담’이라는 주제로 초청 워크숍을 가졌습니다. 변호사로서의 법률지원과 여성주의 상담의 결합은 성폭력, 가정폭력, 성차별 등 이른바 성범죄 피해여성들에 대한 법률지원을 함에 있어 그 필요성을 절감하는 중요한 문제인데요. 여성 상담 경험이 많으신 정춘숙 전 상임대표의 강연을 듣고 함께 법률상담과 여성주의 상담을 어떻게 결합할 수 있는지 깊이 고민하는 자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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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꽃놀이 가기 좋은, 날 좋은 4월의 여성위 신입회원 환영 M.T

 여성인권위의 4월 월례회는 매년 “신입회원 환영 엠티”로 진행됩니다. 오는 2016. 4. 22.(금) – 4. 23.(토) 1박 2일로 용인 근교 펜션에서 진행되며, 주변에 서광서, 관음사 등 볼거리도 풍성하다고 하니 가족들과의 참여도 적극 환영입니다. 물론 여성위원 뿐 아니라 여성인권위에 관심 있는 신입회원분들, 한동안 활동이 뜸하셨던 기존 회원분들 모두 참여 가능하니, 날 좋은 그 날 모두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참여를 알려주신 분들께는, 추후 다시 상세한 공지사항을 안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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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6/04/11-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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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연대위 엠티 후기

 

민변 15기 자원활동가 성미정

 

사실 엠티와는 거리가 멀어진 학년이 되었기에, 오랜만에 가는 엠티 길이 설렜습니다. 사실 예약 장소로 가는 길에 그 전까지 장소에 대해 걱정했던 것을 생각하면서 ‘괜찮은 곳이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부터 들었습니다. 서울 엠티 장소는 장소 예약부터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엠티 가는 길에 1기 자원활동가로 활동하셨던 남세영 변호사님도 함께 했는데, 공교롭게도 학교 선배님이셔서 놀랬습니다. 저는 로스쿨이 꿈을 펼칠 장소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로스쿨에 대해 말리시던 모습이 기억에 남습니다. 1기 인턴 생활은 어땠는지에 대해 물어보지 않은 것도 후회하고 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 번 만나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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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티에서는 국제연대위 회의 후에 함께 고기를 먹으며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미국 변호사이신 빈 대런님의 한국어 실력에 놀랐습니다. 한국어를 아주 잘 구사하시는 빈 데런님 덕분에 국제 연대위원회가 더 국제적인 위원회 같았습니다. 지난 임기에 국제연대위원장직을 맡으신 장영석 변호사님에 대한 감사를 드리는 자리도 가졌습니다. 이동화 간사님과 김기남 변호사님 덕분에 고기를 열심히, 많이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 후에 술을 과하게 마신 탓인지 정신이 혼미해졌던 것 같습니다. 이 때 술에 빨리 취하지 않았다면 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제게 국제연대위 엠티는 아쉬움이 남기도 했지만 신선하기도 했습니다. 우선 같이 있던 분들과 왜 더 적극적으로 대화를 하려 시도하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개인적으로 ‘내가 나서도 될까’하는 생각으로 소극적인 마음가짐으로 있었습니다. 제가 자주 볼 수 없는 변호사님들과 함께한 자리여서 긴장을 하며 얼어붙어 있었는데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부터는 더 적극적으로 대화를 시도해야 하겠습니다. 엠티에 오신 분들은 길게는 10년 정도 민변 국제 연대위에서 활동하고 계신 분들이셨습니다. 어쩌면 제 인생을 미리 걷고 계실지도 모를 분들로부터 다음에는 더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사실 다음날 아침 집으로 가는 길에 변호사님께 궁금했던 걸 질문했더니 얘기가 길어질 것 같다며 간략하게만 말씀해주셨는데, 다음부터는 더 적극적으로 대화를 시도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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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개인적으로 민변에서 활동하시는 변호사님들을 포함한 활동가분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까지도 생각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그렇게 느꼈던 것 같습니다. 민변 국제연대 위원회를 하면서 베트남 전쟁 피해자 보상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서 어떤 물질적인 보상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지만 열성적으로 참여하시는 모습을 보며 ‘멋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살아가다보면 남을 돕는다는 막연한 생각은 할 수야 있지만 그걸 실천에 옮기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몸소 느끼고 있는 터라, 남을 돕는 것을 실천하고 계시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했었던 것 같습니다.

수, 2016/05/04-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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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젊은 부산민변인들

 

무더위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몹시 찌는 듯 견디기 어려운 더위’라고 합니다. 언젠간 시원한 바람이 살랑거리며 마음속 깊이 들어와 가을을 알리겠지만 지금은 에어컨을 틀자는 큰 딸과 전기요금 폭탄이 두려운 제가 대립각을 세우다가 결국 안방에만, 그것도 잠시만 가동하는 것으로 합의할 정도로 이번 여름은 견디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무더위에도 부산민변 소속 회원들, 특히 젊은 회원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바 임무를 다하고 있는데, 오늘은 젊은 부산민변인들이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대변하고 있는 병역법위반 사건을 소개할까 합니다. 주심을 맡은 조애진 회원은 근로복지공단에서 근무하던 중 뜻한 바 있어 법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하여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후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나와 낮은 곳에서 열심히 봉사하고 있는 부산민변의 젊은 인재입니다.

지난 4. 19. 민주화혁명 기념일에 부산에 살고 있는 한 청년이 평화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 선언을 하였습니다. 청년 김진만은 세월호 사태를 비롯하여 밀양송전탑 건설 반대투쟁에서의 국가폭력, 지난해 11월 민중총궐기 집회에서의 백남기 농민에 대한 공권력의 폭주를 경험하며 국민을 지키지 않고 탄압하는 국가 권력에 더 이상 가담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고, 나아가 사람을 살상하는 무기의 사용방법 등 군대 내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교육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

그간 부산에서는 종교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 사건 이외에 이처럼 종교와 무관한 평화운동으로서의 병역거부 선언을 하는 경우가 좀처럼 없었기에, 청년 김진만 역시 지역의 시민사회가 자신의 뜻에 공감하고 함께 싸워주기를 간절히 원하였습니다. 그러나 병역거부 선언 기자회견 이후 점점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질 상황에 처하게 되었고, 이때 한 청년의 숭고한 선언이 온전히 개인의 문제로 묻히는 것을 바라지 않았던 조애진 회원이 뛰어들었습니다.

조애진 회원은 정상규 회원, 민변본부 국제연대위와 아시아 인권팀, 베트남전쟁연구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임재성 변호사, 그리고 ‘전쟁없는 세상’의 이용석 활동가와 함께 형사재판을 준비하면서 부산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회가 지급한 실비 100만 원도 ‘청년 김진만 평화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자 후원회’에 전액 후원할 정도로 열정적으로 임하고 있는데, 지난 6. 28. 첫 공판기일에는 청년 김진만의 대학 내 인문학회 활동과 10여 년간 참여해온 시민사회운동 등을 언급하며 청년 김진만이 정당한 사유 없이 병역을 기피하는 것이 아니라 평화주의적 신념에 따른 삶을 실천하는 방법 중 하나로 병역거부를 택하였다는 사실을 피력하였습니다.

그 뒤 병역거부권을 인정하지 않고 형사처벌로 일관하는 것은 헌법 제10조 등에 반한다는 점과 이미 오래전부터 문제 되어온 양심적 병역거부 사안에 대해 국가가 아무런 조치도 취하고 있지 않는 것은 명백한 의무 방기에 해당하는 점 등을 들어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하였고, 두 번째 공판기일 때는 증인신문과 피고인신문이 진행되었는데, 방청석은 청년 김진만의 후원회원들을 비롯하여 평소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시민들로 가득 차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날 청년 김진만의 대학 동아리 선배가 증인으로 나와 청년 김진만은 학회활동을 통해 장애인, 노동자, 농민과 연대하는 과정 속에서 사회적 약자를 잔혹하게 탄압하는 국가폭력을 본 후 평화적 신념을 형성하게 된 것 같다고 증언하였고, 이어진 청년 김진만에 대한 신문에서 검사가 “집시법위반 등의 범죄전력과 그간의 활동으로 보아 피고인이 주장하는 신념은 사회적 반감 정도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냐” “절대적 비폭력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질문하자, 청년 김진만은 신념은 어떠한 척도로 측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양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답변하는 등 심도 있는 공방이 오갔습니다.

청년 김진만의 두 번째 공판기일 후 변호인단과 후원회원들(맨 앞줄 오른쪽 끝에 앉아 있는 사람이 조애진 회원, 그 뒤에 서 있는 사람이 정상규 회원)

청년 김진만의 두 번째 공판기일 후 변호인단과 후원회원들(맨 앞줄 오른쪽 끝에 앉아 있는 사람이 조애진 회원, 그 뒤에 서 있는 사람이 정상규 회원)

최근 일부 하급심이 병역법위반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한 경우도 있었는데, 청년 김진만에게 법원은 어떤 판단을 내릴지 의문도 들고 걱정도 앞서는 것이 사실입니다. 고백하건대 한 청년의 신념을 위해 열정을 바치고 있는 젊은 부산민변인들을 보고 있자니 수년 전 병역법위반 사건을 전담하듯이 국선변호를 하면서 계속되는 법원의 미지근한 태도와 검찰의 당연시하는 모습에 그만 지쳐서 혼자서 힘만 빼고 있다는 자괴감으로 처음의 열정과 달리 그 후 건성으로 변론했던 저의 모습이 떠올라 얼굴이 붉어지곤 합니다.

민변 회칙 제3조(목적)는 “모임은 기본적 인권의 옹호와 민주주의의 발전에 기여함을 그 목적으로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지금 부산민변은 그 목적에 부응하기 위해 이 무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싸우고 있습니다. 지난 민변 총회때 선물로 받은 에코백에 쓰여진 민변의 초성을 단박에 맞춘 큰 딸에게 오늘도 민변의 아저씨, 아줌마들은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고 말해줄 수 있는 또 하나의 기회를 제공해준 젊은 부산민변인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오늘도 무척 덥습니다. 그래도 이 또한 지나가지 않겠습니까? 민변 회원여러분 강녕하십시오.

 

 

 

2016. 8. 25.

간사 윤 재 철 올림

 

목, 2016/08/2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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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위원회 활동소식

1. 뮤지컬 ‘화순’ 단체관람

 통일위에서는 지난 11월 4일, 미군문제연구위원회, 과거사청산위원회와 함께 뮤지컬 ‘화순’ 단체관람을 진행했습니다.

1. 11월 화순 관람1

 

뮤지컬 ‘화순’은 1946년 8월 15일, 화순탄광 광부들이 광주에서 열리는 해방1주년 기념대회에 참석했다가 미군정에 의해 토끼몰이식 진압을 당하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광부들이 죽었던 현대사의 비극적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요, 왜 이 뮤지컬이 왜 한국판 레미제라블이라 불리는지 실감할 수 있을 정도로 정말 완성도 높고 웅장한 작품이었습니다. 1월에 앵콜공연을 또 한다고 하니, 회원 여러분들도 꼭 ‘화순’을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1. 11월 화순관람2

1. 11월 화순관람3

 

 2. 2015 통일위원회 워크샵

 가을이 깊어가던 11월 6일~7일 통일위원회가 양평으로 워크샵을 다녀왔습니다. 통일위원회의 새내기 이재화, 서중희 변호사님을 중심으로 김용민, 설창일, 심재환, 양승봉, 이광철, 이석범, 천낙붕, 채희준 변호사님, 그리고 사무처 이유진 간사님도 동행을 했는데요,

토닥 토닥 내려앉는 가을비 소리를 들으며 통일위원회의 미래를 이야기 하던 그날 밤은 무척 은은한 밤이었다지요?^^

2. 11월 통일위 워크샵 (2) 2. 11월 통일위 워크샵 (3) 2. 11월 통일위 워크샵 (4) 2. 11월 통일위 워크샵 (5)

 

 3. 재미교포 최재영 목사님 초청강연

 지난 11월 13일 저녁, 통일위원회에서는 미군문제연구위원회와 함께 남북을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재미동포 최재영 목사님[NK(New Korea)2020 대표] 초청강연을 진행했습니다.

3. 11월 최재영 목사 (1)

3. 11월 최재영 목사 (2)

 

최재영 목사님은 현재 북한전문통신 ‘NK 투데이’에 생생한 방북기를 연재하고 있는데요, 특히 이번 강연에서는 2015년 북한의 종교와 북한의 법원 풍경, 북한 사람들의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요, 우리사회에서 북한이 점점 ‘악마’가 되어가고 있는 요즘이라 이번 강연이 더 의미깊게 다가왔답니다.

3. 11월 최재영 목사 (3)

 

 4. 안녕 2015!! 통일위원회-미군문제연구위원회 합동송년회

 12월 22일 절기상 동지(冬至)날, 세상에 둘도 없는 소중한 동지(同志), 통일위원회와 미군문제연구위원회 소속 위원들이 한 자리에 모여 합동 송년회를 진행했습니다.^^

4. 2015 미통위 송년회

 

통일위원회와 미군문제연구위원회는 매년 연말, 합동송년회를 통해 뜨거웠던 한 해를 돌아보고 다가올 한 해의 소망과 의지를 나눠왔는데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욕심,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자꾸 생기는 것은 바로 함께하는 ‘우리’가 있기 때문 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번 송년회에서는 아주 중요한 결정사항이 있었는데요, 바로 내년 여름휴정기인 7월말 8월초에 통일위원회와 미군문제연구위원회 공동으로 “독일통일기행”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1월에 바로 준비단을 구성하고 전체 참가단을 모집할 계획이니 회원 여러분들의 많은 호응과 참여를 요청드립니다.^

수, 2015/12/23-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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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인터뷰이 중에 가장 긴장한 모습의 박민제 변호사였습니다. 편하게 수다 떨 듯이 이야기하면 된다고 하는데도 간간이 떨리는 손과 목소리, 수줍어하며 빨개진 얼굴 때문에 나도 긴장하며 좀 더 진지하게 해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분이 국회와 청와대를 주름 잡고, 지금의 아내와 만난지 한 달 만에 프로포즈를 했다니 역시 사람 겉모습에 속아서는 안 되나봅니다^^

 

박민제

 

김지미 우리 인터뷰의 첫 공식질문이죠, 저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박민제 저는 다른 변호사님하고 다르게 평범한 사람인 것 같아요. 오히려 평범한 사람이 인터뷰를 하면 나중에 인터뷰를 하는 사람이 부담이 덜하실 것 같아서. 그래서 이번에 좀 컨셉을 바꾸시지 않으셨나(웃음). 저는 사법위원회 활동을 하고 있는 박민제 변호사입니다. 변호사가 되기 전에는 국민의 정부 때 국회에 입법비서관으로 있다가 참여정부 들어서면서 국회 쪽 업무를 해야 할 사람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그 티오로 해서 참여정부 행정관으로 들어가서 대통령 임기 끝까지 있다가 순장을 했습니다. 순장 아시나요? 대통령 임기가 끝남과 동시에 같이 묻혀버렸죠(웃음).

 

김지미 변호사님이 변시 3회시죠. 변호사로서는 2년차이지만 연식은 좀 되셔서(웃음) 변호사가 되기 전에 무슨 일을 하셨는지 상당히 궁금했는데 이거는 차차 물어보기로 하구요. 39살에 로스쿨에 들어가신 건데 뒤늦게 로스쿨을 들어가신 계기가 있을까요?

 

박민제 대통령 임기 끝나고 뭘 해야 하나 고민을 했습니다. 국회에서 다시 일해보자는 제안을 받아서 하룻밤을 꼬박 세면서 의원실로 다시 돌아갈까 고민을 좀 했었습니다. 그런데 가족들이 공부를 하는 것에 대해서 응원을 해 주셔서 로스쿨을 들어가게 됐습니다.

 

김지미 학부가 고대 법대이잖아요. 법대를 갔을 때는 고시에 대한 생각도 있었을 것 같은데 사회 첫발을 국회 입법비서관으로 내딛게 된 이유가 있나요?

 

박민제 고시에 대한 생각도 있었습니다.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죠. 근데 몇 번 시험을 봤는데 내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가 아는 분을 통해서 입법비서관 제의를 받았는데 입법이라는 게 정책을 제도화 하는 것이잖아요. 입법을 통해서 국민들한테 체감도 높은 정책이 구현될 수 있는 거니까. 사회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쪽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김지미 입법비서관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 건가요?

 

박민제 의원입법 관련해서 의원님 보좌하고 그러는 거죠. 제가 환경노동위원회와 국방위원회였었는데요, 거기에 환경노동위원회 관련 단체나 국방위원회 관련 단체 의견 수렴을 해서 입법이나 의정에 반영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을 했습니다.

 

김지미 입법비서관 시절에 변호사님이 관여했던 입법안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이 뭐가 있을까요?

 

박민제 고용보험법이나 모성보호법, 군인연금법 이런 것들이 있었습니다.

 

김지미 국회에는 몇 년 동안 계셨던 거에요?

 

박민제 2001년부터 2003까지 있다가 2004년에 청와대로 가게 되었습니다.

 

김지미 청와대에서는 어떤 일을 하셨죠?

 

박민제 청와대에 있을 때는 4개 부서에 있었습니다. 총무비서관실하고요, 시민사회비서관실, 정책조정비서관실, 그리고 정무비서관실에 있었습니다.

 

김지미 청와대의 인사시스템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는데 원래 이렇게 순환 보직을 맡게 되는 건가요?

 

박민제 전보제도가 1년 단위로 있었던 것 같아요. 국회에 대통령 비서실 대응하는 상임위가 운영위가 있어요. 처음엔 국회 운영위·예결위에 대해서 대응할 수 있는 인력이 필요해서 총무비서관에서 그 업무를 했습니다.

 

김지미 국회 경험이 있어서 총무비서관에서 시작을 하셨고 그럼 시민사회비서관실은 어떤가요?

 

박민제 시민사회비서관실에서는 시민단체 현안 이슈 같은 거 모니터링하고 점검하고요, 그 다음에 현안보고서도 쓰고, 그 다음에 자원봉사단체 지원하고 그랬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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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저희 회원들 중에 다양한 경험을 가지신 분들이 많은데 청와대에 있으셨던 분은 처음 인터뷰하는 거라 궁금한 게 많거든요. 참여정부 시절에 참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그 안에서 생활하시는 분은 어땠을까 싶기도 하구요. 청와대 행정관의 하루는 어땠나요?

 

박민제 보통 아침 8시쯤에 비서실장 주재 회의가 있어요. 그러면 그 전에 행정관들이 돌아가면서 회의에서 논의될 안건 같은 것을 미리 확인을 해요. 회의가 끝나면 지시가 내려집니다. 현안보고를 해라, 부처를 통해서 상세하게 알아봐라. 그런 현안들은 실시간으로 바로 보고가돼야 하구요, 대통령 공약 같은 장기과제는 시한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기간 내에 과제에 대한 보고를 완료해야 됐었고, 그 보고가 시한 내에 완료 안됐을 때는 국정상황실에서 빨리 그것을 마련하라고 하는 그런 것도 있었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 특별했던 것은 국가주요정책과 관련한 법안이나 예산이 좀 많이 소요되는 법안 이런 것들을 중점 관리 법안으로 선정을 먼저 했어요. 비서실하고 관련부처하고 같이 선정을 한 다음에 그 법안의 통과를 위해서 여러 부처와 같이 유기적으로 추진 체계를 구축하고 대통령님 주재 회의나 비서실장 주재 수석 비서관 회의 때 계속 보고를 했습니다. 아주 숨 가쁘게 진행이 됐었죠.

 

김지미 변호사님이 근무하실 때 주력했던 법안인데, 그게 결국은 법률이 돼서 지금 시행되고 있는 법안들이 있을까요?

 

박민제 로스쿨 법안(웃음).

 

김지미 직접 수혜를 받으셨군요.

 

박민제 그 로스쿨 법이 되게 어려웠어요. 박근혜 대통령이 그것을 사학법 하고 연결을 시켜서 끝까지 통과가 안 되다가 2007년도에 아마 통과가 됐을 거에요. 그런 법안도 있었고. 그리고 국가재정의 기반을 혁신하기 위한 국가재정법과 자원활동 인프라를 구축하고 지원하기 위한 자원봉사활동기본법 등이 있었어요.

 

김지미 아까 말씀하신 것 중에 입법이 정책을 제도화하는 것이라 중요하다는 부분이 굉장히 와 닿는데 최근 입법의 중요성에 대해서 공감을 하시는 분들이 많아져서 로펌들도 그 분야에 집중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공익입법운동을 시작하는 움직임이 있는 것 같아요. 저도 개인적으로 일반적으로 어떤 변화를 이끌어 내려면 결국은 제도로 구현이 되어야 하고 그 제도를 만들어내는 것은 법률이기 때문에 입법의 중요성에 대해서 많이 깨닫고 있거든요. 어떤 제도가 법률로 규정이 됨으로서 실생활에는 아주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이 있다. 그런 리딩케이스 같은 게 있을까요.

 

박민제 그것보다는 역사적 과제나 시대적 과제를 안고 살아야 될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짧지 않은 인생이니까 과제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역할을 찾는 것이 중요할 거라고 생각을 하는데, 제가 생각하기에는 기존에는 시민들이 권력의 객체에 머물렀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 시대에서는 주체적 참여가 필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시민들이 주체적 참여를 하기 위해서는 우선 입법과정에 참여가 필요하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러기위해서 입법과정에 제도적으로 시민참여를 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실질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이고, 그런 부분에서 앞으로 과제를 좀 찾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지미 입법 과정에서 시민들이 어떤 방식으로 참여를 할 수 있을까요?

 

박민제 시민들의 입법제안 같은 것들이 형식화 되지 말고, 공청회 제도나 이런 것들을 통해서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그런 기회가 부여되어야 되고 제도적으로 뒷받침 되어야 하겠죠. 또 지방자치가 실질적으로는 민주주의와 연결되잖아요. 민주주의가 지역의 삶의 제 영역으로 실현되는 것이 지방자치인데, 사실상 아직 자치입법 같은 경우에는 민주주의와 맥락이 닿아있음에도 불구하고 미비한 부분이 있어요. 그래서 자치입법 과정에서 특히 주민참여가 강화 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김지미 이와 관련해서 ‘지방의회 입법활동의 현황분석과 개선방안 연구’ 라는 논문도 쓰셨죠? 이쪽에 관심이 많으신가 봐요.

 

박민제 네. 청와대에 있을 때에 업무경험을 바탕으로 썼었던 논문입니다.

 

김지미 대통령 비서실장 모범 표창도 받으셨어요? 이건 혹시 청와대에서 근무하면 다 받는 건가요?(웃음)

 

박민제 그건 아닌데, 대부분이 받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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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그럼 청와대에서 2004년부터 2008년까지 5년을 있으셨죠? 이건 개인적인 질문인데요, 노무현 전 대통령을 근거리에서 접해보신 분으로서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내가 옆에서 보니까 이 부분이 너무 훌륭하더라. 혹시 이런 점들이 있을까요?

 

박민제 단적인 것은 대통령이 참모들보다 더 뛰어나셨습니다. 항상 의제를 먼저 제시하고 그리고 참모들이 보고를 했을 때 문제점들을 파악하셨던 것 같아요. 보완할 부분까지도 지적을 해주시고 그래서 항상 참모들을 끌고 가셨던 것 같아요.

 

김지미 모든 의제에 대한 현안들을 다 꿰뚫고 있어야만 가능한 거잖아요.

 

박민제 네. 기억력과 정보 습득력이 엄청나셨죠. 가장 뛰어나셨어요. 그래서 참모들이 깜짝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저번에 보고했던 것을 그 많은 보고서를 보시면서도 금방금방 기억을 해내셨으니까.

 

김지미 청와대 근무 마치고 나오면서 가장 아쉬웠던 게 있을까요? 이것만큼은 꼭 해놓고 나오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거나.

 

박민제 민생현장에서 직접 접하면서 의제를 발굴하는 활동을 좀 더 강화했으면 좋았을걸. 그냥 부처 보고로 해서 너무 거기에 급급하지 않았나. 시민들과 직접 대화를 하면서 그분들이 필요한 의제와 입법들을 찾았어야 하지 않았나. 이런 아쉬움이 있습니다.

 

김지미 그렇게 일을 그만 두고, 다시금 예전에 꾸었던 법조인의 꿈에 다시 도전을 하셨잖아요. 가족들의 지지도 있었다고 했지만, 일단 로스쿨에 가볼까? 라는 생각은 변호사님이 먼저 하셨을 것 같은데 다시금 내가 법조인을 해봐야겠다 라고 생각하게 된 결정적인 동기가 있을 것 같아요.

 

박민제 학부 때는 시험을 통한 탈출의 개념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참여정부 임기 끝나고 나서는 탈출의 개념이 아니라 뭔가 사회구조에 대해서 법조인으로서 책임 있는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아요. 사회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었는데 그 양극화를 조금 해소할 수 있는 역할을 법조인이면 좀 더 충실할 수 있지 않을까.

 

김지미 입법 분야의 일을 해 보니까 내가 법률가가 되면 좀 더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겠다. 이런 생각을 하셨던 건가요?

 

박민제 네. 그리고 또 로스쿨 제도 취지가 기존에 법조인들이 안가는 직역에 많이 진출하는 의미가 있었어요. 그게 뭐 국회도 있겠지만 자치단체도 있었거든요. 지방자치단체 법치행정을 위해서 법률가가 할 부분이 많이 있었어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 생각도 많이 했었죠.

 

김지미 그런데 지금은 개업변호사로 살고 계시잖아요. 애초에 생각했던 길하고 조금 다른 건 아닌가요?

 

박민제 그래서 고문변호사 활동도 하고 있고요, 교육청 일도 하고 있고 그렇습니다.

 

김지미 서울특별시 교육청 행정심판위원 이거 말씀이시죠?

 

박민제 네. 그거 어떻게 아셨어요?

 

김지미 서울특별시 공익변호사, 대법원, 서울 북부, 남부, 동부 지방법원 국선변호인도 있어요(웃음). 코리아 부동산 아카데미 강사로 활동하고.(웃음)

 

박민제 이거 어떻게 아셨어요? 정보력이 무섭네요(웃음). 부동산 아카데미는 고등학교 선배가 저 몰래 올렸습니다. 지금 내려달라고 하려고요.

 

김지미 사법위원회 활동이 결국은 변호사님 예전에 했던 활동의 연장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민변 가입은 변호사 되시고 바로 하신건가요? 애초에 사법위를 딱 찍고 들어왔을 것 같은데.

 

박민제 네. 너무 거창하긴 하지만 제가 해야 할 시대적 소명 내지는 역사적 과제로 잡고 있는 것이 3가지가 있어요. 첫째는 시민이 권력의 객체가 아니라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그런 제도적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고요, 둘째는 패자가 부활할 수 있는 이런 걸 좀 마련하는 거에요. 기존에 부족한 것이 있으면 사회에서 기다려주지 않고 내치잖아요. 그런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일어설 수 있게 기다려주고 지원해 줄 수 있는 이런 부분이 필요하고. 세 번째는 국가권력에 의한 범죄를 좀 방지하자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사법위원회는 세 번째 국가권력에 의한 범죄를 방지하자는 거하고 닿아있는데, 저희 대통령님도 사실상 권력에 의한 희생을 당하신 거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대통령이 이렇게 희생을 당할 정도면 다른 국민들은 더 불안해하고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걸 방지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을 마련하는데 일조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사법위원회에 들어왔습니다.

 

김지미 그러면 국가권력에 의한 범죄를 방지하는 데 변호사님이 구상하는 어떤 방안 같은 것이 있을까요?

 

박민제 가장 먼저 검찰 개혁하고 국정원 개혁이 있을 수 있는데요, 제가 먼저 주안점을 두고 있는 것은 검찰개혁입니다. 참여정부 때도 검찰개혁을 하려고 했었는데 사실상 했다는 게 내버려 두는 이런 것이었죠. 그러니까 좀 독립화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상 검찰권력이 정치권력하고 떼려야 뗄 수 없는 세력입니다. 자기들 승진이 청와대하고도 관련되니까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거였어요. 그냥 내버려 둔다고 해서 정치적 중립이 되는 게 아니었던 거죠. 그래서 검찰 권력을 견제하고 감시할 수 있는 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기구에는 검찰의 입김이 작용되지 않게 차단된 상태에서 우선 개혁기구를 마련한 다음에 그 기구를 발판으로 해서 검찰을 견제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참여정부 때도 공직자부패수사처 이런 법안도 내고 했지만 사실상 그 당시에도 검찰 흔들기가 많았어요. 또 국회에도 로비도 많이 하고 그랬었는데, 다음 정부에서는 검찰에 흔들리지 않는 이런 개혁기구를 마련해서 그 기구에서 검찰을 견제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어내고 법안을 마련해 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김지미 검찰개혁이라는 것은 사법개혁 분야에서 약간 해묵은 주제라고 생각될 정도로 검찰개혁 하자라는 이야기는 아주 오래 전부터 있어왔는데, 실질적으로 잘 안 되고 있잖아요. 검찰개혁에 대해서 공감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 되는 이유가 뭐라고 보세요?

 

박민제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선 청와대의 검사 파견을 못하게 해야 할 것 같아요. 그게 자기들 승진이 청와대에서 낙점하게 되는 부분이 있으니까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도 청와대 파견이 금지되어야 할 것 같고. 그 다음에 정치권력에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공안부나 이런 것들이 폐지해야 할 것 같아요. 그 다음에 2원화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아까 말씀드렸던 공직자부패수사처처럼 공직자 비리 같은 경우나 정치사건 같은 경우에는 검찰과 독립적인 기구에서 담당할 필요가 있을 것 같고. 그 다음에 자치경찰제가 사실상 약간 아쉬운 점이 있었는데 그게 수사권하고 기소권 분리 문제가 사실상 조직 간의 다툼으로 변질된 것 같아요.사실상 그 취지가 아닌데 그게 좀 국민들에게 잘 못 알려진 게 있는데 사실상 그런 수사권·기소권 분리부분도 검찰개혁의 한 일환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지미 이러한 검찰개혁 과제가 산재해 있는데 하나도 된 게 없는, 검찰개혁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요인이 뭔가요?

 

박민제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유지할 수 있도록 외부세력이 지속적으로 견제하고 감시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또 작은 부분이긴 한데 기소독점주의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재정신청제도 같은 것을 개선을 해서 그 부분에 대해서도 개선점을 찾아야 될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김지미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예전부터 가져왔던 문제의식들도 상당히 있고 나름대로의 어떤 대안도 생각하고 계신데, 우리끼리 얘기지만 지금 민변 사법위 활동은 좀 약하다 싶은 감이 있어요.

 

박민제 제가 반성해야죠. 부족한 것이 많아서. 그런데 앞으로는 그 논의가 활성화 될 것 같아요. 대한변협 차원에서도 사법제도개혁특위가 꾸려졌더라고요. 그 다음에 아마 대선국면이 가까워오면서 공약부분에서 제시할 부분이 있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사법 분야 공약이 거의 없었다고 알고 있거든요. 공약을 얼마나 이행했느냐 체크해야하는데 아예 공약이 없으니(웃음).

 

김지미 외부에서 볼 때는 사법개혁과 관련된 역할을 할 주체가 결국엔 민변 밖에 없지 않느냐 하는 기대가 있는 것 같은데 사법개혁과 관련해서 민변이 이런 활동을 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신 게 있나요?

 

박민제 저는 처음에 사법위 하면서 고정적으로 할 수 있는 역할이 주어진 것에 대해서 대단히 감사하고요. 그거라도 있으니까 한 달 동안이라도 뭔가 방향을 알고 준비할 수 있거든요. 제가 사법위에서 입법감시 업무를 하고 있는데요, 국회에 제출됐지만 잠자고 있는 사법개혁 법안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런 법안들을 좀 깨워서 국회 법사위와 본회의에 통과될 수 있도록 저희가 여론도 조성을 하고 국회에 요구도 하고 그런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김지미 좋은 제안 같은데요. 저희가 입법감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사실 적극 반대하는 법안들 위주로 의견 표명을 하는 선에서 그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꼭 통과가 되어야 하는 법안들에 대해서 보다 적극적인 활동을 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이시죠?

 

박민제 네. 제가 참여정부 때도 이렇게 했었거든요. 항상 중점관리법안에 대해서 어떻게 추진되고 있는지 체크를 했습니다. 단계별로 어느 단계에 있느냐를 체크를 한 다음에 장·차관님들이 그것에 대해서 국회에 찾아가서 국회의원 면담을 해서 관심을 가지고 통과시켜달라고 하실 수 있게 메모카드 같은 걸 만들었어요. 그 법안의 주요내용과 통과될 필요성 같은 것을 이렇게 조그만 메모카드로 만들어서 그걸 보시면서 국회의원한테 그 메시지를 전달하게 해드리고 그 다음에 장·차관님들이 어떤 활동을 하셨는지 매주 단위로 부처별로 보고하게 만들었거든요. 그렇게 하니까 그래도 임기 말에 열심히 하시더라고요(웃음). 저는 사법위 선배변호사님들이 토론할 수 있는 토론거리를 풍성하게 만들어 드리자는 생각이 컸는데 아직은 너무 부족해서 배우는 입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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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이제 변호사가 되신지 만 1년 정도 되었는데 어떠신가요? 변호사 되기 잘했다, 이런 생각 드시나요?

 

박민제 민변이 인권과 민주주의의 첨병이면서도 마지막 보루잖아요. 거기에서 제가 몸 담으면서도 초심을 잃지 않게 하는 그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제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니라 사회에 공헌하고 기여할 수 있는 이런 것들을 잊지 않게 해주고 거기에서 저 자신을 독려할 수 있게 해주는 점에 있어서 저한테 계속 채찍질이 되는 그런 것이 있는 것 같아요.

 

김지미 혹시 사법위 말고 관심 두고 있는 다른 위원회가 있나요?

 

박민제 지금 사법위도 벅차서(웃음). 사법위원회만 해도 할 것이 많아서.

 

김지미 사법위에 뼈를 묻겠다.

 

박민제 예에(웃음). 그렇습니다.

 

김지미 이제 개인사를 좀 물어볼게요. 변호사님이 워낙 말수가 없으시고 그래서 개인사에 대해선 아는 게 전혀 없어요. 우선 결혼은 하셨죠?

 

박민제 네. 했습니다. 2005년에 해서 10주년 됐습니다. 딸아이가 7살인데요, 로스쿨 입학시험 볼 때 태어났어요.

 

김지미 변호사님은 어떤 아빠신가요?

 

박민제 집사람이 엄하기 때문에 저까지 엄하게 하면 딸아이가 더 서럽게 울더라고요. 그래서 안 되겠구나. 나는 엄하게 하면 안 되겠다. 나라도 부드럽게 해야 되겠다. 딸이 짜증을 부릴 때 제가 집사람에게 전화해서 딸이 짜증을 부린다고 이야기했더니 고자질했다고 울더라고요(웃음).

 

김지미 척 봐도 엄하게 못하실 것 같아요. ‘아빠한테 그러면 안 돼’ 이렇게 혼내시는 게 아니라 사모님한테 ‘딸이 나한테 짜증 부려~’ 이렇게(웃음). 사모님은 어떻게 만나셨어요?

 

박민제 사모님이요? 아, 집사람이요?(웃음) 친척분이 장인·장모님 사는 아파트 라인에 같이 사셨어요. 그래서 소개를 시켜주셨어요. 재미없죠?

 

김지미 변호사님 굉장히 수줍음이 많고 그러시잖아요. 어떻게 결혼까지 이어지게 됐는지가 궁금하네요.

 

박민제 저는 만난 지 딱 4개월 만에 결혼했는데요. 그런데 잘한 결혼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복 받은 것 같아요.

 

김지미 첫눈에 보고 반하셨어요?

 

박민제 집사람은 계속 만날수록 좋았던 것 같아요. 더 이상 알아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을 해서 만난 지 한 달 정도 되었을 때 프로포즈를 했는데요. 걱정을 많이 했는데 집사람이 받아줘서.

 

김지미 의외로 추진력이 상당하시네요. 어떤 점이 그렇게 마음에 드셨나요?

 

박민제 평범한 답변인데요, 이해심도 많고 배려심도 있고 대화도 통하고 그래서. 제가 집사람 얘기를 잘 안하는데. 팔불출 같아서 보기가 안 좋더라고요.

 

김지미 사모님 이야기를 하면 자랑할 수밖에 없다는 말씀이군요(웃음). 이야기하기 힘들어 하시니 그럼 개인사는 이만 패스할게요. 오늘 자원활동가 두 분이 함께 했는데 혹시 물어보고 싶은 게 있으면 기회를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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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홍(자원활동가) 늦은 나이에 로스쿨을 준비하면서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박민제 뒤늦게 공부하니까 그건 있더라고요. 이런 공부를 하면 나중에 어떻게 도움이 될까 이런 게 느껴지니까 공부가 더 재미있고 흥미 있고 지겹지 않게 했었던 것 같아요. 의미부여가 되고 합격이후를 생각하면서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박재홍 변호사님 동안의 비결이 뭐에요?

 

박민제 거의 듣지 못하는 질문입니다(웃음). 나이에 비해서 더 많이 보는 분들이 더 많으신데 굳이 얘기하자면 생각이 없어서일까요. 실은 고등학교 때의 얼굴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겁니다.(웃음)

 

김지미 마지막 질문을 드릴게요. 지금 하고 있는 뉴스레터 인터뷰는 우리 회원 아니신 분들도 많이 보시더라구요. 그런 취지에서 우리 박재홍씨도 뒤늦게 공부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렇게 늦게 공부를 결심한 분들을 위해 격려의 말씀이라고 할까요, 한 말씀 부탁드려요.

 

박민제 로스쿨 제도 취지가 사회의 다양한 경험을 쌓은 사람을 받아들여서 다양한 법률분쟁에 대응하게 만드는 이런 부분도 있잖아요. 저는 좀 뒤늦게 공부를 하고 다시 또 사회에 진출을 하게 됐지만 오히려 기존에 로스쿨 입학 전에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또 새로운 분야를 개척할 수 있고 역할을 할 수 있어서 사회적으로 의미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또 변호사가 되기 전에 내가 만약에 변호사였으면 저런 일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생각했던 것들을 변호사가 돼서 실현할 수 있게 돼서 좋았습니다. 모든 만학도 여러분들 힘내시기 바랍니다.

 

 

목, 2015/09/10-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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