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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위] 오키나와 평화교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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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위] 오키나와 평화교류회

익명 (미확인) | 금, 2018/03/30- 17:10

2018. 3. 3. ~ 3. 7. 오키나와에서 민변 미군문제연구위원회와 오키나와 자유법조단의 11회 평화교류회가 진행되었습니다. 지난해 10월 태풍으로 한차례 연기된 뒤에 이루어진 만남이라 그 의미와 반가움이 더 컸습니다. 회원을 비롯하여 함께 해준 모든 분들에게 고마움의 인사를 전하며 다가올 만남을 또 기다립니다.

 


  

 

 

오키나와, 이름만으로도 설렌 그 곳 도착

 

오민애 변호사

 

 

오키나와. 인터넷 검색창에 이 네 글자를 입력하면 에메랄드빛 바다와 평화로운 섬의 풍경이 화면을 가득 채웁니다. 막연히 좋은 관광지로만 여겨졌던 오키나와는, 민변 미군문제연구위원회와 자유법조단 오키나와지부의 10년이 넘는 교류의 역사 속에서, 저에게 너무나 새로운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길고도 짧았던 시간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2016년 10월, 서울에서 광주에서, 그리고 사드 배치 문제로 매일매일 치열했던 성주에서 오키나와 변호사님들을 처음 만났습니다. 처음 참석한 교류회에서, 일본어라고는 안녕하세요, 잘먹겠습니다, 밖에 할 줄 몰랐던 제가 불편함 없이 함께 밥 먹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기하고 좋았습니다. 성주 주민분들과 함께 비를 맞으며, ‘사드 가고 평화오라’고 외쳤던 그 순간이 아직 생생한 채로, 2017년 가을, 오키나와로 갈 날을 하루하루 기다려왔습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오키나와 교류회가 예정된 날짜에 태풍이 오키나와를 지나간다는 예보가 있었고, 결국 2017년 교류회 일정은 연기되고 말았습니다. 오키나와에 갈 생각에 들떴던 마음이 가라앉는데는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아직은 추위가 가시지 않았던 2월말, 오키나와를 떠올릴 때면 아직 느껴보지 못한 오키나와의 공기도, 변호사님들의 얼굴도 참 따뜻하고 푸근했습니다.

 

2018년 3월 3일, 그렇게 고대하던 오키나와 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이틀 먼저 오키나와에 가셨던 박진석 변호사님의 전언으로는 계속 비가 내리고 궂은 날씨였어서, 걱정도 많이 됐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예정된 비행시간보다 40분정도 늦게 나하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비는 거의 그쳐가고 있었고, 감사하게도 오키나와 교류회 일정 동안 날씨도 교류회를 도와주었습니다.

 

삼삼오오, 오키나와 변호사님들의 차를 나눠 타고 숙소로 향했습니다. 어떻게 대화를 할까, 머릿속에 맴돌던 고민은 기우였습니다. 짧디 짧은 영어로, 손짓으로 반가움을, 안부를 전하는 모든 것이 가능했습니다.(아, 그리고 하나 더, ‘파파고’의 고마움을 절실하게 느꼈던 순간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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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숙소로 향해서 짐을 풀고, 근처 음식점에서 첫 ‘친목회’의 자리를 가졌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각자 자기소개를 하고, 또 함께 한 분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그 순간순간이 아직도 생생한데요. 정말 따뜻하게 저희를 진심으로 반겨주시고, 함께 할 시간을 기다려오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일 년에 한번씩, 3-4일씩 만나왔다면, 어쩌면 만날 때마다 서먹서먹할 수도 있을텐데, 일주일 전에 만났던 것처럼 서로 반가워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참 좋았습니다.

 

함께여서 좋았던 첫 날

 

오키나와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고 언급하셨던 이야기 중 하나가 ‘촛불집회’였습니다. 아베 총리의 부인까지 연루된 사학 비리 스캔들이 연일 드러나고 있음에도 이에 대한 목소리가 모이거나 정권의 문제점에 대한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와 함께, 어떻게 촛불집회가 있을 수 있었고 정권교체까지 나아갈 수 있었는지,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셨습니다. 2017년 한국에서 만들어진 역사가 자랑스럽고 소중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면서도, 다음날 세미나에서 제가 발제를 맡은 주제이기도 해서, 마음 한 켠 궁금해하시는 내용을 잘 전할 수 있을까, 준비를 잘 한 것일까, 걱정과 불안이 엄습해왔습니다. 그렇지만 그 마음을 꾹꾹 누를 수 있을만큼, 맛있는 음식과 술과 이야기들로 가득 채운 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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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나기사와 변호사님이 직접 그린 시샤. 시샤는 오키나와 나하시의 전설의 동물로, 나쁜 기운을 가져가고 좋은 기운을 가져다 준다는 수호신입니다. 지난해 예정되었던 교류회 일정에서 민변 변호사들에게 주기 위해 그리셨던 그림인데(2017. 10. 27.), 일정이 조정되면서 이번에 직접 전달해주셨습니다.

 

평화와 연대, 그 소중함에 대하여

 

이튿날, 숙소 근처의 변호사회관에서 세미나가 진행됐습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진행된 세미나에서는 한국과 일본에서의 평화 관련 이슈에 대한 발제와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고등학교에서의 수업 이후, 이렇게 오랜 시간 한 자리에 앉아서 발표를 듣고 메모하고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진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그 시간이 어색하거나 길게 느껴지지 않았던, 신기한 시간이었습니다.

 

오전에는 공통테마에 대한 발제와 토론, 그리고 오후에는 양국의 사례보고를 이어갔습니다. 공통테마는 ‘일본 헌법의 평화주의-군사대국으로의 책동’, 그리고 ‘촛불혁명과 우리의 주권’이었고, 토론이 열띠게 이어졌는데요. 먼저 하야시 치가코 변호사님의 발제에서 언급된 일본 자민당이 마련한 헌법개정안은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헌법을 전체주의 관점으로 재정비하고, 자위권의 발동을 가능하도록 명문 규정을 넣는가 하면, ‘긴급사태(내각총리대신은 외부로부터의 무력공격, 내란 등에 의한 사회질서의 혼란, 지진 등에 의한 대규모 자연재해 그 밖의 법률에서 정하는 긴급사태에 있어 특별한 필요가 있다고 인정될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각의에 상정하여 긴급사태의 선언을 발할 수 있다)’에 관한 조항을 신설하여, 국민에 대한 국가의 통제를 공고히 하는 방식의 헌법개정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문제제기와 비판이 계속되고 있기는 하지만, 이런 방향의 헌법개정안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이 충격이었고, 현재 일본의 집권 정당이 어떤 인식을 갖고 있는지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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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헌법에 대한 논의는 다양한 고민지점을 던져주었습니다. ‘군대’를 헌법에 명문으로 두는 것이 군대에 대한 통제근거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에 필요한 것인가, 아니면 두지 않고 다양한 방법으로 통제되도록 하는 것이 맞는가. 한국에서의 전시작전권 문제, 군대에 대한 민주적 통제에 관한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갈 것인가. 국민들이 일상을 평화롭게 살아갈 권리는 가장 기본적인 가치임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이를 가장 직접적으로 위협하면서도 아닌 것처럼 숨어있는 군사 문제에 대해, 언제나 국가기밀이다, 적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해야한다는 논리로 감추기 급급해하는 많은 이들이 떠올랐습니다. 군대, 전쟁 문제로 대표되는 국가의 국민에 대한 통제 시도를 어떻게 국민들이 저지할 수 있을 것인가. 질문과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우리는 어떤 고민을 하고 무엇을 해야할지, 또 그 과정에서 무엇을 어떻게 함께 할 수 있을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어서 한국에서의 ‘촛불혁명’에 관한 발제와 토론이 있었습니다. 2016년 가을부터 2017년 봄까지 계속되었던 촛불집회와, 그 과정에서 발현된 많은 변화들에 대한 평가는 각기 다르지만, 오키나와 분들은 ‘촛불혁명’이라 명명하고 그 시간을 궁금해했습니다. 함께 촛불집회의 모습이 담긴 짧은 영상을 보고, 어떻게 진행되어왔는지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이 순간 이렇게 함께 지난 1년을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습니다. 다만, 이것이 끝이 아니라 잘못된 사회를 바로잡기 위한 시작이었다는 점을 공감하고, 일본에서의 정권교체를 함께 그려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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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는 양국에서 어떤 사안들이 문제되었고 어떻게 대응하여왔는지 발제와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오키나와 변호사님들의 아시아 태평양 법률가 협회(COLAP)와 국제 민주 법률가 협회(IDAL) 활동에 대한 보고, 마샬제도 관련 보고와 한국의 문재인 정부 이후 남북 정세 관련 발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키나와가 제기한 암초 파쇄 행위의 금지청구 소송과 기지 내 인권침해에 대한 대응 활동, 2차 후텐마 기지 폭음 소송, 오키나와 전투‧남양전 소송에 대한 보고가 있었고, 한국의 사드 배치 관련 소송 보고가 진행되었습니다.

 

해외 미군기지는 현재 800여개 정도가 있고, 규모로 분류하면 크게 세 분류가 있는데, 그 중 한국과 오키나와는 미군의 가족들까지 함께 생활할 수 있는 형태의 대규모 기지가 주둔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기지로 인하여 평화롭게 살아갈 권리를 근본적으로 침해당하고 인근 주민들의 환경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등 수많은 문제를 겪게 된다는 공통점이 있어, 서로의 상황에 깊이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 한편 서글프기도 했습니다. 사사모토 준 변호사님은 일본과 한국의 국내에서의 운동, 나아가 미군의 군사력을 통제할 수 있는 세계적인 운동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셨는데, 그 연대의 힘을 잘 만들어가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이 교류회 현장 또한 연대의 기초가 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마샬제도’에 대한 발제였습니다. 오랜시간 미군 기지 문제에 관여하고 연구해 오신 하지메 이노우에 변호사님의 설명이, 이름도 낯설기만 했던 ‘마샬제도’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마샬제도는 오세아니아에 있는 섬국가로, 1차 세계대전 이전에 일본의 신탁통치를 받던 곳으로 지금도 일본어가 사용되는 곳입니다. 미국은 이곳을 2086년까지 빌리는 형태로 협정을 체결하였는데, 1년에 4번씩 이곳에서 미사일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주민들은 미사일 훈련 2주 전에 훈련이 있다는 사실을 통보 받는 것 외에는 달리 대응할 방법이 없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마샬제도 외부장관은 핵군축조약에도 불구하고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로 국제형사재판을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어떤 곳인지 전혀 알지 못했던 마샬제도에서는, 지금도 협정과 약속이라는 이름 아래 군사훈련이 수시로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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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심재환 변호사님이 문재인 정부 이후 남북 정세 전망에 대하여 발제를 해주셨습니다. 교류회가 진행되던 당시는 평창 동계올림픽을 마친 직후였고, 올림픽을 전후로 남북관계가 급속히 달라지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이해관계가 대립과 견제, 갈등이 아닌 ‘평화’를 중심 가치로 두고 남북 평화통일을 만들어가는 방향으로 가야할 것이고 그렇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는, 매일매일 달라지고 있는 남북관계를 어떻게 봐야할지, 많은 생각을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사드 배치 관련 법적 대응에 대하여 오현정 변호사님의 발제가 있었습니다. 정권이 교체되고 많은 적폐를 청산하고 변화하기 위한 일들이 추진되고 있지만, 사드 배치는 계속 추진되었고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이에 한국에서 사드 배치 발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헌법소원, 행정소송, 형사고발 등 관련하여 진행해온 법적 대응에 대한 보고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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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오키나와에서도 평화를 위협하는 행위와 이에 대한 싸움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백충 변호사님 발제에 의하면, 오키나와에서는 헤노코 기지 건설을 위한 암초파쇄행위에 대한 금지소송을, 오키나와 현이 제기하여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오키나와 현의 허가를 받아야 암초를 파쇄할 수 있기 때문에, 허가 없이 파쇄하면 안된다는 취지의 소송이었습니다. 이어 사이토 유스케 변호사님은 2016년 4월, 헤노코 신기지 건설에 항의하던 중 미군 헌병에 의해 체포‧구속된 메도루마의 국가배상청구 사건에 대하여 들려주셨습니다. 변호사를 불러달라는 요구도 무시하고 신체구속 상태로 두었고, 이에 대한 국가배상을 청구한 사건인데, 미군의 공무집행 중 불법행위는 일본국이 대신 책임진다는 규정에 따라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후텐마 기지와 가네다 기지의 폭음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이 진행 중이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우에하라 도모코 변호사님의 발제가 있었습니다. 기지 주변의 폭음으로 인한 손해배상소송은 여러 차례 진행되었고, 후텐마 기지에서는 2차, 가네다 기지에서는 3차로 소송이 진행 중이었는데, 폭음과 건강피해의 인과관계를 일부 인정하고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는 내용의 1심 판결이 선고되었다고 합니다. 비록 비행금지청구는 일본의 지배가 미치지 않는 미군의 행위의 금지를 요구할 수는 없다는 취지로 기각되었으나, 이에 대해서는 이후 고등재판소에서 다툴 예정이라고 합니다. 오키나와의 마지막 사례보고는 오키나와전, 남양전 소송으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 사건에 대한 마쓰모토 게이타 변호사님의 발제였습니다. 오키나와 전은 주민들이 사는 지역에서 전쟁이 벌어진 유일한 사례로, 1945년 4월 1일 오키나와 중부 해안에 미군이 상륙(미군55만명, 함정 1400척 이상)한 이후 격전이 벌어져 현 인구 4분의 1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메이지 헌법 하에서 발생한 행위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논리로 기각되었는데, 이는 메이지 헌법 하에서 공권력이 잘못된 행사를 하지 않는다, 책임을 져야 하는 대상은 천황이지 국민들이 아니라는 이유였습니다.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 그 과정에서 피해를 입은 국민들에게 금전적 배상으로나마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하지만, 여전히 만들고 싸워나가야할 문제들이 산적해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주희 변호사님의 미군기지 내 한국여성 성매매의 위법성을 인정한 서울고등법원 판결에 대해 소개를 해주셨습니다. 법원이 국가가 성매매를 정당화하고 조장했다는 사실을 명시적으로 인정하고, 소멸시효 완성 주장을 배척하면서 국가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였는데, 이는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하고 미군기지 주변에 관한 정책에 대한 판단까지 나아갔다는 점에서 중요하고 의미 있는 판결이라는 소개에, 참석자 모두 공감하면서 마지막 발표를 마쳤습니다.

 

함께 하고 있음을, ‘우리를 확인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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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는 너무도 당연하고 소중한 것이기에, 정작 그 중요함을 잊고 살게 되는 것은 아닌지, 수많은 사람들의 삶 하나하나가 만들어낸 소중한 가치를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어떻게 평화를 지켜내고 또 함께 만들어갈 것인지, ‘평화’라는 이름으로 함께 고민하고 실천할 수 있는 ‘우리’여서 자랑스럽고, 또 그 ‘우리’에 함께일 수 있어서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각자, 또 함께 해나갈 수 있을지, 서로 마음 한 켠에 고민을 접어두고 찐한 뒷풀이가 계속되었습니다.

 


 

오키나와를 통해, 일본과 한국, 그리고 평화를 마주하다 교류회 3일차

 

이 윤 주 변호사

 

두 개의 풍경, 아름다운 풍광과 내면의 죄책감이 교차하는 곳

 

오키나와, 교류회에 참여하기 이전 이곳은 저에게 제가 좋아하는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이 세계일주의 시작점으로 생각하는 아름다운 풍광을 가진 휴양지였습니다.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몸과 마음을 모두 편하게 하는 휴식을 할 수 있는 곳이라는 마음을 안고 오키나와로 향했던 것 같습니다. 도착해서 바라본 오키나와의 아름다운 풍광은 ‘그대로’였습니다. 탁 트인 넓은 바다, 청량한 바람, 미세먼지 가득한 서울에서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파란 하늘, 따뜻하게 내리쬐던 햇볕. 그런데 이곳에서 어느 순간부터 마음 속 깊이 느껴지던 고통과 더 이상 이 풍경을 마음 놓고 아름답다고만 말하지 못하겠던 저의 죄책감은 어디서 시작된 것이었을까요. 풍경의 아름다움에 찬탄하며 말을 내뱉던 저의 입은 이제 머뭇거리기 시작하였고, 마음에는 죄책감의 그늘이 무겁게 내려앉았습니다.

 

후텐마 비행장, 일상을 위협하는 군국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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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차 오키나와 교류회 평화기행의 첫 일정으로 ‘후텐마 비행장’으로 향했습니다. 후텐마 비행장은 전 세계적으로 유일한 해병대 전용 비행장이라고 합니다. 높은 곳에 올라 내려다 본 군용비행장과 일반사람들이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며 살아가는 마을 간의 거리는 말 그대로 ‘지척’이었습니다. 이 물리적 거리는 무시로 우리의 일상에 쏟아지는 군용비행기의 소음과 상공을 날아다니는 헬리콥터 등으로부터 부산물 등의 낙하로 누군가 다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상존하는, 군국주의로부터 위협받는 위태로운 일상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평화로운 일상을 누리고자 하는 사람의 기본적인 바람이 존중받지 못하는 공간이었습니다. 착잡한 마음으로 마을로 다시 내려오자 그곳에서는 공을 차며 놀고 있는 어린 아이들의 맑은 웃음소리가 가득 퍼졌습니다. 이율배반적이라고 느낄 만큼 상반된 두 풍경 사이에서 우리의 평화로운 삶을 관통하는 군국주의를 보았습니다.

 

동굴 진지 속, 깊은 어둠 속에서 참상과 마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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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교류회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경험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보면, 그건 아무래도 동굴진지를 체험했던 일일 것입니다. 그곳에서 물리적으로도, 심정적으로도 깊은 어둠을 만났습니다. 전쟁 시기, 이곳에 숨어들었던 사람들이 있던 공간, 동굴 곳곳에 보존되어 있던 그 시절의 잔해들을 보며 그 시간 이곳에서 자신을 지켜내야 했던 사람들의 절박함을 떠올렸습니다. 전쟁이라는 야만의 시간을 통과해야 했던 사람들이 자신을 숨기기 위해 선택했던 곳, 반세기라는 시간적 거리를 두고 있었지만 저는 이곳에서 버텨야 했던 사람들의 공포감이 어느 정도였을지 생각해보려고 애썼습니다. 작은 불빛조차 허용되지 않았던 곳에서 그 긴 시간 사람들은 어느 정도의 공포감으로 버텼던 것일까요? 발끝에 느껴지던 울퉁불퉁한 바닥과 손끝에 느껴지던 습기와 한치 앞도 보이지 않던 어둠을 여전히 저의 온 몸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평화기념공원 – “분단은 어디에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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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전투 평화기념공원을 방문하였습니다. 남쪽 바다 끝 절벽 가까이에 위치한 이 평화기념공원을 둘러싼 풍경은 굉장히 아름다웠고, 이 바다 끝 기자절벽에서 많은 사람들이 전쟁 끝에 자결을 선택했다는 이야기는 그만큼 비극적으로 다가왔습니다. “평화의 초석”이 길에 길게 세워진 공원을 걸으며 기록된 이들의 희생과 아직 기록되지 못한 자들의 희생을 생각했습니다. 총 24만명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고 하였습니다. 길게 서있는 초석들 중 발걸음을 유난히 붙잡았던 것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이 분리되어 각인된 초석이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한반도의 분단이 이들의 이름조차 강제로 나누어 기록해 놓은 모습을 보며, “분단은 어디에나 있다”는 어떤 변호사님의 말귀가 와서 박혔습니다.

 

히메유리 기록관 – “전쟁은 인간이 일으키는 최대의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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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메유리 여고생들의 기록을 시민들의 힘으로 남긴 기록관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기록관에서 본 그들의 앳된 얼굴에서 저의 평범했던 여고생 시절을 떠올리며 그들이 겪어야 했던 비극을 가늠해보려 노력했습니다. 히메유리 여고생들의 죽음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아름다운 영웅들로 포장해내는 일본 정권의 민낯을 통해 전쟁의 비극을 은폐하려는 야만적 시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누군가의 처절한 죽음에 대한 인간적 애도는 사라지고 영웅이라는 이름으로 상찬하기에 급급한 것은 지금을 사는 자들의 정치적 야욕을 위한 것이 아닐는지요. 비극적 죽음 앞에서도 반성과 성찰은 사라진 이 행태에 분노를 참을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누군가의 죽음에도, 그곳에서 간신히 살아남아 삶을 지탱하고 있는 생존자들에게도 결코 해서는 안 될, 무례와 야만 그 자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곳 관장님께서 우리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전해주셨던 “전쟁은 인간이 일으키는 최대의 잘못이다”라는 이 말씀을 가슴에 아로새기며 기록관을 나섰습니다.

 

이번 오키나와 교류회를 통해 “전쟁은 인간이 일으키는 최대의 잘못이다.”라는 이 한 문장을 손에 단단히 쥐고, 가슴에는 평화라는 구체적인 가치를 담고 저는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통해 일본 오키나와 자유법조단께서 보여주신 극진한 환대에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내년에 이곳 한국에서 서로 좋은 소식을 가득 안고 다시 만나기를 소망합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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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통일기행을 다녀와서

- 통일위원회 양승봉 변호사

 

천지는 푸르다.

천지는 맑고 넓다.

그리고 천지는 슬프다.

 

2015. 8. 21.일부터 24일까지 3박 4일 동안 민변 통일위가 주관한 통일기행 백두산 탐방을 천낙붕, 이광철, 서중희, 양창영, 설창일, 김용민, 그리고 저를 포함하여 7명의 단촐한 식구가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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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의 모토는 “가보자 북녘땅, 만나자 북녘동포”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행을 시작할 즈음은 남북이 극단적 대치를 한 후 협상을 막 시작한 때로 통일 기행 내내 우리는 인터넷을 확인하며 협상 결과를 주시할 수 밖에 없었던 아이러니한 상황이었습니다. 통일을 위해 한창 교류를 하고 미래의 청사진을 공유해도 시원찮을 판에 이런 극단적인 상황까지 남북 관계를 악화시켜 온 양쪽 수뇌부의 퇴행적인 행태가 참으로 아쉬웠습니다.

 

21일-송강하를 향하다.

 

말로만 듣던 백두산 천지를 간다는 설렘에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이른 아침 인천공항, 간단히 수속을 마치고 약 1시간 10여 분에 걸친 짧은 비행시간 후 심양에 도착하였습니다. 비자심사를 마친 후 가이드를 만나 심양공항을 배경으로 현수막을 내걸고 기념사진을 찍고 곧바로 백두산을 오르는 전초기지, 송강하라는 곳을 향하는 버스를 탔습니다.

 

우리를 안내한 가이드는 해박한 역사 지식을 자랑하는 59살의 조선생님이라는 조선족이었습니다. 조선생은 해박한 지식으로 여행내내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고 선생과 나눈 대화는 여행의 또 다른 맛은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선생의 할아버지는 경상북도 예천군 감천면 출신이라고 하였고 조선생은 딸 둘을 모두 훌륭하게 키워 큰딸은 중국에서 판사를 하고 있고 작은 딸은 한국의 대학에서 유학 중이었습니다.

 

가이드를 낀 여행이 그렇듯이 조선생도 버스에 타자마자 간단히 심양에 대하여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심양의 옛 이름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봉천으로 현재 1,200만명 정도가 살고 있는 중국 5-6위에 해당하는 매우 큰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도시가 평야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한동안 달려도 산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심양에서 송강하까지 약 6시간이 넘게 걸린다고 하여 본격적인 도로주행을 앞두고 우리는 중국의 구멍가게에서 중국이 자랑하는 맛난 칭따오 10병과 안주를 샀습니다. 그런데 그 비용이 무려 75위안!! 우리 돈으로 약 15,000원 정도에 불과해 돈 쓸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맥주를 마시며 우리는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때가 중국시간으로 오전 10시가 겨우 넘은 시간이었으니 우리는 취하면 애비도 몰라본다는 낮술을 점심 먹기 전부터 시작하는 소박한 호사?를 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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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에 차량이 거의 없었지만 의외로 속도를 크게 내지 않아 약간 더디게 나간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양쪽에 옥수수밭을 지나 달리고 또 달려도 계속 옥수수밭, 한국에서라면 당연히 지루하고 따분했을텐데 여행이 주는 설레임은 지루함을 못 느끼게 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많이 살아 어쩌면 우리 땅이 되었을 수도 있는 만주벌판을 거의 다섯 시간 가까이 달려 3시 40분 경 늦은 점심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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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후 조선생은 이제부터는 고속도로를 벗어나 국도로 달린다 하면서 약 60km가 남았는데 세 시간 정도 가야한다고 하였습니다. 기껏 60km를 세 시간에 간다는 말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막상 도로를 달려보니 곧바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달린 길은 편도 1차, 왕복 2차선으로 된 좁은 도로였는데 그 도로를 달리는 모든 차량은 흡사 곡예를 하듯이 달렸고 여러 번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였습니다. 도로 곳곳에 경운기가 다니고 소를 비롯한 가축을 싣고 가는 트럭들, 그리고 차선을 무시하고 달리는 차량으로 도로의 모든 차량은 가다서기를 반복하였습니다. 우리가 목격한 가장 압권인 장면은 터널 내부임에도 양쪽 차선을 꽉 채워 일방도로처럼 3대씩 줄지어 달리는 광경이었는데 간담이 서늘했습니다.

 

송강하는 백두산 등정을 하는 관광객이 머무는 곳으로 이름도 왠지 멋지게 느껴집니다. 송강하를 거의 도착할 즈음 조선생은 1년에 약 300여 명의 중국인들이 백두산에 송이나 산삼, 약초 등을 채취하러 들어가 실종이 되어 결국은 돌아오지 못한다는 믿기 힘든 말을 해주었습니다. 백두산을 부산모수(父山母水)라고 칭하여 아버지의 산이라고도 한다는 데 그 산에서 해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실종되어 종적을 알 수 없게 된다고 하니 섬뜩한 느낌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조선생이 말했던 것보다 약 1시간 일찍 우리는 숙소인 그린 호텔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이동하여 간단히 저녁 식사를 마쳤습니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연길에서부터 기차를 타고 오는 유가려 가족을 기다렸습니다. 아시는 분은 알겠지만 유가려는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사건의 피해자인 유우성의 여동생입니다. 여동생 유가려는 아버지와 고모, 그리고 2주 뒤 결혼을 할 남편과 함께 왔습니다. 유가려는 국정원 합동심문센터에서 2013년 4월 26일 석방된 후 오빠의 재판에서 어떤 과정을 통해 허위 진술을 하게 되었는지 조작 과정을 자세히 밝힌 후 2013년 7월 초 추방이 되었습니다. 반가왔지만 늦은 시간이라 간단히 맥주를 마시고 다음 날 점심때 만날 것을 약속하고 헤어졌습니다.

 

22일-천지를 보다

 

조선생은 백두산은 관광객이 너무 많아 늦게 출발하면 기다리다 지친다며 최소한 6시에는 일어나서 식사를 마쳐야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일찍 식사를 시작하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바지런한 한국관광객들이 한꺼번에 식당으로 밀려들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 일행이 제일 단촐해 우리는 제일 일찍 백두산을 향했습니다.

 

백두산으로 가는 길도 설레임을 주었습니다. 곳곳에 작약나무가 부러져 있었고 길 양쪽으로는 예쁜 꽃이 피어있었습니다. 조선생은 백두산을 우는 아기 얼굴이라고도 부른다면서(언제 어떻게 표정이 바뀔지 알 수가 없다는 의미로..) 은근히 천지를 구경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언질을 하였습니다. 길 옆 곳곳에 늪처럼 보이는 웅덩이, 그리고 무성한 숲은 남한 땅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었습니다. 우리가 지나는 그 곳이 바로 개마고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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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 분을 달려 백두산 입구 매표소에 도달하였는데 가지고 간 현수막을 펼치지 못하였습니다. 중국 공안은 백두산 인근에서는 한글로 된 현수막을 펼치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심지어 가이드가 드는 안내 깃발에 사용된 한글도 현출시키지 못하게 한답니다. 중국은 백두산에서 한글이 현출되는 것에 대해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강한 제재를 한다는 것입니다. 백두산을 포함한 인근의 땅에 대하여 자신감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하는 나만의 추측을 해보았습니다. 조상들이 제대로 대응을 못해 멋진 땅을 놓쳐 버렸다는 아쉬움이 다시 들었습니다.

 

매표소에서 표를 구입한 후 또 버스를 타고 백두산 천지를 향하는데 입장료와 버스표 가격이 무려 4만 원이 넘는 고가였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관광객들이 지불하는 돈이 모두 중국의 주머니로 향한다고 생각하니 참 아까왔습니다.

 

드디어 천지를 향해 버스를 타고 달립니다. 작약나무 숲을 지나고, 잡목을 스치고…나지막한 풀숲과 오밀조밀 이쁜 야생화를 굽이굽이 지나치면서 달렸습니다. 30분 정도 달린 후 우리는 드디어 천지를 향해 걷습니다. 일찍 서둘렀는데도 벌써 산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르고 있습니다. 1,441개의 계단을 설레는 마음을 안고 한 걸음씩 밟고 올라갑니다. 날씨가 흐렸고 곳곳에 안개가 있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천지를 보기는 글렀구나하고 내심 포기를 하였습니다. 다음에 보면 되지…근데 언제 또 올 수 있으려나….흠흠

 

마침내 계단을 다 올라 천지를 내려다 본 순간, 잊을 수 없는 멋진 광경이 눈앞에 드러났습니다. 아 천지… 멋진 장면에 입이 다물어지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절로 입이 벌어졌습니다. 순간 뭉클하고 감동의 물결이 가슴을 스칩니다. 우리 일행 모두에게 감동의 물결이 스치는 것이 저절로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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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에 안 가본 사람들이 여행자랑을 하면 말을 섞지 말자고 하였습니다.–천지도 안가봤으면서–좋은 책을 일독을 권하듯이 저는 천지에 다녀온 후 지인들에게 천지를 권합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에게도 권합니다. 앞으로 2-3년 내에 송강하에 직항이 생길 예정이라고 하니 훨씬 편하게 구경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천지에 뛰어 내려가 직접 물을 만지고 싶었지만 접근을 금지시킵니다. 직접 접할 수 없어 아쉬웠지만 멀리서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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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번을 가면 두 번을 본다고 해서 백두산이라고 한다던 농담부터 시작해서 3대의 덕이 모여야 천지를 볼 수 있다는 말까지…참 다양한 말들이 천지를 더 신비롭게 합니다. 우리는 구름이 걷히는 순간부터 해맑은 천지까지 멋진 모습을 모두 관찰하는 행운을 가졌습니다.

 

피곤한 일정이었지만 우리 일행 모두 천지를 보는 순간 참으로 들떠있었습니다.

 

중국에서는 백두산을 오르는 방향에 따라 서파, 북파, 남파…라고 일컫는데 우리는 서파로 올랐습니다. 서파에는 북한과 중국의 경계비가 서있고 비록 북녘 동포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천지에서 허용된 북녘 땅만 조금 밟아보았습니다.

 

천지가 주는 웅장한 경관은 참으로 감탄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천지는 통일을 원하는 우리 동포의 염원을 모두 담을 만큼 크고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그 멋진 천지를 우리 땅이 아닌 중국 땅을 통해 구경을 해야만 하고 여전히 우리는 티격태격하고 있는 것이 너무나 아쉬웠습니다.

시간이 없다는 조선생의 채근에 아쉬움을 가득 남기고 천지를 떠납니다. 또 언제 올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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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에서 내려와 용암이 쓸고 간 흔적인 금강대협곡을 구경하였습니다. 백두산 바닥은 용암이 굳은 곳에 나무가 자라 뿌리가 야무지게 뻗지 못해서 곳곳에 나무가 쓰러져 있는 것이 보입니다. 사람이 다니는 곳을 빼고는 주변이 울창해 호랑이라도 튀어 나올 듯 합니다.

 

금강대협곡까지 돌아본 후 아쉬움을 두고 하산을 합니다. 매표소를 거쳐 강원도 식당이라는 곳에서 한국식으로 된 식사를 합니다. 그 곳에서 어제 약속했던 대로 유가려를 다시 만나 점심을 함께 하고 헤어졌습니다.

 

이제 통화로 향합니다. 통화로 가는 길도 약 4시간 정도 걸린다고 하여 서둘렀습니다. 피곤하였지만 주변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였습니다.

 

백산이라는 곳을 지나기 전에 본 석탄촌은 곳곳에 석탄이 쌓여 있었는데 아침에 석탄을 캐서 바로 성냥불로 불을 붙일 수 있을 정도로 높은 품질을 자랑한다고 하였습니다.

 

중국은 자연자원은 재생이 안되니 후손에게 자연자원을 물려주자며 될 수 있으면 개발을 늦춘다고 합니다. 백산이라는 곳은 석탄으로 유명한 곳이었다는 데 지금은 북한에서 석탄과 철광을 수입을 하고 있고 북한의 무산 철광을 수입해 철판으로 가공하여 돈을 버는 것은 일본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도요타에서 50년간 50억 불을 제공하기로 하고 철판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통화는 제약과 포도주가 유명하다고 하는데 통화 중심부에는 비류수가 흐릅니다. 비류수는 부여와 고구려의 경계로 물고기와 자라가 다리를 놓아 주몽을 구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곳입니다.

 

우리가 백두산부터 오랜 시간을 달려왔던 그리고 내일 달려갈 모든 땅이 모두 고구려의 땅이었습니다.

 

통화에서는 저녁에 북한식당인 “묘향산”에서 식사를 하였는데 식당을 가기 전 일행은 발맛사지를 받고 백두산을 오르느라 고생했던 발에 호강을 시켜주었습니다.

 

북한 식당은 이번 여행 중에서 가장 입맛에 맞는 음식을 우리에게 제공하였습니다. 하지만 술값이 너무 비싸서 놀라기도 하였습니다. 맥주 1병에 1만 원, 소주 1병에 4만 원, 설창일 위원장님이 기분좋게 한 턱 쏘셔서 맛나게 먹었습니다. 생각보다 중국인 관광객도 제법 있었고 흥에 겨운 우리나라 관광객들이 북한 가수들의 노래에 어우러져 춤을 추는 모습도 정겨웠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호텔에 짐을 푼 후 아쉬운 마음에 비류수, 통화의 강가를 7인의 낭인처럼 어슬렁거렸습니다. 통화는 상당히 깨끗하였는데 비류수 주변도 산책로가 잘 다듬어져있어 운치있었습니다. 산책을 마치고도 아쉬움에 호텔 옆 가게에서 양꼬치를 시켜 기어코 맥주를 한 사발씩 먹고 들어갑니다. 식사를 마친지 얼마 되지 않아 많은 주문을 할 수 없었는데 우리 7명이 주문한 양꼬치보다 옆자리에 앉은 대륙의 남녀 2명이 주문한 음식이 훨씬 푸짐하고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서비스하는 남자가 우리를 쏘아보는 눈빛이 예사롭지는 않았다는…

 

23일과 24일

 

백두산을 본 뒤라 비교적 여유가 있었습니다. 다음 날 천낙붕 변호사님의 제안으로 일정에 없었던 양정우 기념관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양정우 기념관 가는 도중 10시도 채 안된 시간이었는데 엄청난 폭죽소리가 들렸습니다. 놀란 우리들을 향해 조선생은 결혼식 축포라고 하면서 적게는 몇 십만 원부터 많게는 몇 백만 원씩 비용을 들여 폭죽을 쏜다는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양정우는 동북일대에서 항일 무장 투쟁을 했던 사람으로 우리에게는 낯선 사람이었지만 중국에서는 기념관과 무덤을 둘 정도로 유명한 항일투쟁가였습니다. 그는 비교적 젊은 나이인 36세에 일본군과 대치하다 사살을 당하였는데 그와 함께 항일무장투쟁을 한 사람들 중 조선인이 많다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양정우 기념관을 잘 꾸며서 후손들이 기리고 있는 모습은 부러운 모습이었습니다. 양정우 기념관을 보면서 조국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에게 살아서 영화를 안겨주지 못한다면 죽어서라도 반드시 제대로 대접을 해줘야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양정우 기념관 관람을 끝내고 내일 비행기를 탈 심양을 향해 갑니다. 다시 4시간의 긴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맛난 맥주를 사서 낮술을 먹습니다. 비교적 한가한 일정이라 버스 안에서 변호사스럽게 자신이 겪었던 훌륭하신 판사님과 검사님에 대한 초보적인 뒷담화를 시작해서 어느 덧 우리 사회의 여러 현상과 제도에까지 소재를 넓혀가면서 맛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뿔사 재미난 이야기와 맥주로 배를 채우다 보니 저절로 생긴 뇨의는 우리를 매우 당황하게도 하였습니다. 참고로 버스기사님은 벌금의 두려움 때문에 우리의 요구를 묵살하고 결코 정차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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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양에 도착하여 서시라는 시장의 양념파는 곳을 짧고 산만하게 구경하고 조선생님이 극찬을 하는 로벤교자라는 만두집으로 향합니다. 만두집이 하나의 건물로 되어 있을 정도로 유명하지만 그 맛은 한국에서 먹는 만두와 별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호텔에 짐을 풀었지만 우리는 택시를 타고 시내로 향합니다. 피곤하지만 한국으로 돌아가면 각종 서면이 기다린다….

 

시내에서 한가롭게 배회를 합니다. 인도가 참 널찍하니 사람이 많아도 산책하기가 수월합니다. 음악소리가 어찌나 크던지…..군것질도 하면서 산책을 합니다. 호텔로 복귀 후 친철하고 영리해보이는 아가씨가 서빙을 하는 대로변 양꼬치집에서 소박하고 즐겁게 맥주를 마셨습니다.

여행의 마지막 날 우리는 북릉이라는 곳을 방문합니다. 북릉은 황태극의 무덤으로 황태극은 후금을 세운 누르하치의 아들로 청이라 국가이름을 바꾼 사람입니다. 그는 1592년에 태어나 1643년에 사망하였는데 공교롭게도 우리가 임진왜란을 겪었던 해에 태어나 자신은 우리에게 병자호란을 일으켰던 사람입니다. 그가 죽을 때 앉은 채로 사망하여 청에서 새긴 용은 앉아 있는 형상이라고 하는데 여하튼 우리와 좋은 인연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북릉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비교적 잘 가꾸어 놓았습니다.

 

북릉을 가면서 생각보다 교통이 덜 혼잡하여 이유를 물었더니 출근시차제라는 것을 적용하여 직장의 아침 출근 시간을 조금씩 조절한다고 하였습니다.

 

조선생은 중국의 모습을 수탉의 모습이라고 묘사를 하면서 동북삼성은 닭의 모가지에 해당하는 중요한 곳이라고 하였습니다. 조선생은 기마민족이 말을 타고 움직이는 습성이 있다보니 성격도 급하다고 하면서 우리 민족도 기마민족이어서 성격이 급하고 우리나라의 버선코가 위로 굽은 형태로 되어 있는 것이 기마족이 말을 달릴 때 유용하도록 신발을 만든 것에서 유래하였다고 설명하였습니다.

 

북릉을 구경하고 중국에서의 마지막 식사는 한식당에서 하였습니다. 패키지 여행의 마지막에 한식을 주는 것은 만족을 느끼고 돌아가라는 의미인 것 같았습니다. 점심을 먹고 새로 지은 박물관으로 이동을 하였지만 막상 휴관을 하여 구경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박물관에는 삼부인과 청동단검과 비파형동검 등 우리가 교과서에서 봤던 물건들이 있다고 하였는데 문을 열지 않았으니 다음을 기약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공항에 도착하여 조선생과 헤어졌고 우리는 다시 사랑하는 가족이 기다리는 곳으로….

 

돌아오는 길에 항공사에서 무작위로 업그레이드를 해주는 서비스에 우리 일행이 모두 비즈니스석을 배정받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비즈니스석을 배정받고도 이를 모른 채 언제 이런 자리에서 편하게 여행해보나..하는 생각으로 지나쳤는데. 그 자리에 앉아서 돌아올 줄이야…..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참 편합니다. 무지 편합니다. 잠이 안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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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마치며

우리가 3박 4일간 여행을 하면서 백두산 천지에 머문 시간은 매우 짧았고 중국 땅, 그것도 길에 뿌린 시간이 훨씬 길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여행에서 천지가 준 감동은 오래 남았습니다.

 

비록 중국 땅에서 본 천지지만 언젠가 우리 땅에서 오르리라.. 통일이 되는 날 천지에 한 번 더 오르리라…우리 일행은 천지에 많은 다짐을 남기고 왔고 천지에 그런 다짐을 둔 것만으로도 여행은 충분히 즐겁고 가치있었습니다. 더불어 좋은 사람들과 같은 하늘아래에서 3박 4일가 어울린 것 역시 소중한 추억이었습니다.

 

비록 북녘땅과 북한동포를 많이 접하진 못했지만 천지에 담은 희망으로 내일을 기약하면서 여행기를 마칩니다.

 

 

목, 2015/09/10-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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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 실무수습 후기

 

- 민변 2015년 여름 로스쿨 실무수습생 이승훈

 

지난 7월 6일 월요일 오후, 무더위 속에서 오랜만에 단정한 복장을 하고 처음으로 민변 사무실을 찾아가는 길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사무실 규모는 크지 않더라도 자랑스러운 민변의 이름이 크게 걸려있지 않을까 했는데, 지도상의 위치에 와서도 도무지 간판이 보이지 않아 적잖이 당황한 끝에 건물안내판을 찾아 겨우 지각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의문을 뻔히 예상하셨는지, 송상교 팀장님께서 인사말에 앞서 “저희는 일부러 간판을 안 달아놨어요. 요즘 워낙 시위하러 많이 찾아오셔서, 종북세력 해체하라고 막 그러니까… 하하.” 하고 농담인 듯도 하지만 생각할수록 진담일 것만 같은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민변이라는 이름이 갖는 의미를 새삼 되새기며, 2주간의 짧은 수습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가장 긴 시간을 보냈던 곳은 17명의 수습생이 1, 2명씩 나누어 배정된 각 사무소였습니다. 저는 수륜아시아 법률사무소에 배정되어 지도변호사이신 김종우 변호사님과 한 방을 쓰며 밀착 지도를 받았습니다. 또 송기호, 노주희, 최재홍, 조선영 변호사님께서도 각자의 다양한 경험에 기초한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고, 따로 기록을 주시거나 과제를 내주시기도 했습니다. 정리된 사실관계를 읽고 교과서의 쟁점을 논하면 되는 사례집에서의 문제만을 접해오다가 실제 사건에 기초한 과제를 수행하려니, 사실관계를 정리하고 당사자를 특정하는 단계에서부터 혼란 끝에 자신감을 잃기 일쑤였습니다. 그래도 매번 큰 줄기를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고, 변호사님들의 지적과 격려를 받으며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에 즐겁기만 한 하루하루였습니다.

 

한편 민변의 속살을 가장 가까이 볼 수 있었던 것은 위원회 참석을 통해서였습니다. 2주간 여러 위원회들에 자유롭게 참석해 보면서 각 위원회마다의 확연한 개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먼저 노동위 수요모임은 짧은 시간동안 점심식사와 함께 그야말로 치열하게 이루어졌습니다. 각종 성명서, 기자회견, 현장조사, 사건변론 등 한주간의 활동보고와 주요 노동사건 정리, 판례동향까지 두툼한 인쇄물에 담긴 내용을 빠르게 짚으며 논의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민생경제위원회 조세재정팀에서는 조세 현안에 대한 활발한 정책 논의가 이루어졌습니다. 이른바 명예세 도입에 관하여 치열하게 찬반토론하고, 우리나라 조세정책상의 과세사각지대에 대해서 논의하는 것을 들으며 마치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와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또 민생경제위원회 월례회에서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에 관하여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들을 많이 배울 수 있었고, 재벌그룹의 세습경영 문제에 대한 토론을 통해 보다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히 민생경제위원회에서는 전문화된 네 개의 팀이 은근한 경쟁을 통해 긍정적인 시너지효과를 내는듯하여 앞으로의 성과가 기대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수습 일정이 모두 끝난 금요일 저녁에는 사법위원회에 참석할 수 있었는데, 다른 위원회에 비해 많은 원로급 변호사님들과 그래서인지 더 젊게 보이는 청년 변호사님들이 잘 조화되어 각자의 역할을 맡고 계셨습니다. 특히 토론에 있어서는 경력과 나이를 접어두고 오직 지식과 논리를 무기로, 각을 세우되 모두가 경청하는 자세로 임하는 모습이 참 ‘민변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면법, 사형폐지법, 변호사시험 성적 공개, 일부 범죄 공소시효 적용 배제 등 하나같이 묵직한 주제들을 다루었지만 오히려 가장 센스와 유머 넘치는 발언들이 많았던 유쾌한 회의시간이었습니다.

 

또 권영국 변호사님 기소사건의 공판기일을 다함께 방청한 것도 의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검사측의 최종의견을 들으며 뭔지 모를 거부감이 느껴졌지만 법리적인 문제점을 콕 집어내지 못해 답답해하고 있다가, 변호사님들의 ppt를 적절히 활용한 날카로운 변론을 들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거리게 되었습니다. 특히 검사측의 부적절한 발언에 대한 강문대 변호사님의 호통과 같은 변론에 와서는 크게 박수를 치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아야 했습니다.

 

이 외에도 여러 차례의 특강이 있었고, 공통과제를 수행하고 송기호 변호사님의 초대로 평등사회 전환포럼의 창립총회에 참석하는 등 정말 알찬 일정을 소화했습니다. 그저 짧은 기간이 아쉬울 뿐, 단순한 사무실에서의 실무수습만이 아니라 많은 분들을 만나고 여러 가지를 경험하며 감사한 배움을 얻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단순히 생계를 위한 직업을 갖기보다 좀 더 의미있는,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로스쿨에 진학하였습니다. 학업부담과 과도한 경쟁, 로스쿨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과 전망들, 또 희망을 찾기 어려운 갑갑한 뉴스들에 조금씩 지쳐만 가던 2학년 여름에 이렇게 민변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습니다. 민변의 여러 변호사님들을 만나면서, 변호사라는 직업의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을 조화롭게 병행시킬 수 있다‘는 장점을 저도 충분히 살릴 수 있겠다는 확신을 얻게 되었습니다. 2년 후에 꼭 수습 동기들과 함께 정회원이 되어 다시 뵙겠습니다. 여러 간사님들, 변호사님들, 모두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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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5/07/28-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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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 인천지부를 소개합니다

민변 인천지부는 설립된지 얼마되지 않는 민변 지부들중 가장 젊은 지부입니다. 25명정도의 회원으로 구성되어 있고, 회원의 상당수가 인천에서, 일부가 경기 부천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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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 인천지부는 2016년까지 김영중 변호사가 지부장을, 배영철변호사가 사무국장을 맡아왔으며, 2017년 김상하가 변호사가 지부장을 맡고, 배영철 변호사와 이준형 변호사가 부지부장을 맡고 있으며, 윤대기 변호사가 사무처장을 맡고, 한필운 변호사와 이승경 변호사가 사무차장을 맡아, 체계적인 활동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민변 인천지부는 매월 첫 번째 수요일 저녁 정기 월례회의를 개최하고 있으며, 매월 4번째 수요일 점심에는 인천 및 부천에서 정기 소모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민변 인천지부의 회원들은 인천지방변호사회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하고 있으며, 인천지방변호사회의 집행부 및 각종 위원회에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더욱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활동을 만들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부지부지장 배영철 변호사는 인천지방변호사회 총무이사를 맡고 있으며, 민병철 변호사는 재무이사를 맡고 있고, 김재용 변호사는 인권이사를 맡고 있으며, 사무처장 윤대기 변호사는 인권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사무차장 한필운, 이승경 변호사는 인권위원회 간사를 맡아 활동하고 있습니다.

민변 인천지부는 인천과 부천 시민사회와도 적극적으로 연계하여 활동하고 있으며, 지역 현안이 생기는 경우 수시로 담당변호사를 정하여 적극적인 법률지원활동을 펼쳐오고 있으며, 네이버에 무료법률상담 카페를 개설하여 민변 인천지부 활동을 소개하고, 상시적으로 시민사회와 시민들을 상대로 법률지원활동을 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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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 인천지부의 사무처장 윤대기 변호사는 인천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장을 겸하고 있어, 지역에서 현안이 발생하는 경우, 민변 인천지부와 인천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회는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좀더 적극적인 법률지원을 하기 위해 노력중에 있으며, 공동으로 서해5도 중국어선 불법조업에 대한 법률지원을 해왔고, 2017년초에는 서해5도를 비롯한 인천바다에 대하여 영해지정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는 것과 관련하여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공동으로 매년 찾아가는 인천 도서지역 무료법률상담활동을 해왔는바, 덕적도, 자월도, 석모도 그리고 2017년 6월 17일에는 대이작도에 찾아가 무료법률상담활동을 펼치기도 하였습니다.

 

목, 2017/06/29-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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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지부] 지부 연합 산행을 계양산에서 주최하며

유난히 더웠던 2016년 여름이 지나고 어느덧 가을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지난여름 각 사무실과 법정 그리고 거리에서 더위만큼이나 치열하게 보내신 회원님들께 저희 인천지부 인사드립니다.

최근 인천지방법원에서 시리아난민들에 대한 난민신청불회부결청취소사건 등 난민 관련된 몇건의 전향적인 판결들이 인용된 것을 계기로 저희 인천 지부는 난민인권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 중입니다. 난민신청이 주로 대한민국의 관문인 인천국제공항과 인천국제여객터미널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그 부분에 주목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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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지난 8. 20. 그 준비의 일환으로 대한변협 인권위원회와 공동으로 변호사들에게 난민법률지원교육을 실시한 바 있습니다. 이는 향후 인천국제공항에 시리아난민 등 난민신청이 폭주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비차원에서 관련법률 지식을 쌓기 위한 목적으로 실시한 교육이었는데, 토요일 하루 종일 교육하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90여명(인천회원 60명)의 회원들이 동참하여 난민문제에 대한 변호사들의 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이주난민 관련하여 왕성하게 활동하시고 계신 우리 모임의 황필규 변호사도 강사로 오셔서 난민신청현황과 법적 문제 등을 중심으로 강의를 해 주셨는데, 향후 난민법률지원과정에서 변호사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될 만한 좋은 교육이었던 것 같습니다. 인천 지부는 이번 교육을 토대로 향후 인천공항 송환대기실에서 신청되는 난민신청에 대하여 조직적으로 접견을 가는 등 대응을 할 예정입니다.

한편, 저희 인천 지부는 다음 달 10. 22.(토) 인천 계양구에 있는 계양산에서 지부 연합 산행을 주최하기로 하였습니다. 지부 연합 산행은 원래 충청, 전라, 경상도 소재 지부들의 친목산행모임으로 출발하였다가 약 3년 전부터 본부와 인천지부가 참여하면서 민변을 대표하는 산행모임으로 자리 잡게 된 산행입니다. 힘든 민변 활동으로 인해 지친 심신을 함께 산에 오르며 치유하고 회원 간에 우의를 다지는 좋은 계기가 되고 있는 중입니다.

특히, 그 동안은 모두 지방에서 개최하였었는데, 이번에 인천지부에서 주최하면서 수도권에서는 처음으로 하는 산행으로서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인천에 등산하기에 마땅한 산이 별로 없기도 하지만, 이번에 특별히 계양산을 선택한 이유는, 저희 인천지부에서 그 동안 계양산 롯데 골프장 반대 소송을 했던 곳이기 때문입니다. 산행을 하면서 그 동안 골프장설치반대운동의 성과 등을 알려드릴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지방회원들이 오시는 데는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수도권에서는 처음으로 이루어지는 산행인 만큼 많이 오셔서 함께 가을을 즐기고, 우의를 다지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회원님들 모두 즐거운 한가위 보내시기 바라고, 다음달 10. 22.일 계양산 산행에서 뵙겠습니다.

화, 2016/09/13-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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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위] 경의선 공유지 현장 월례회 
– 시민이 꾸리는 서울의 26번째 자치구를 상상하다

기차가 다니던 자리에 시민들이 장터를 만들었습니다. 시민들은 이 장터에 언제나 사람이 북적북적한 장날이 계속되기를 바라면서, ‘늘장’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벼룩시장, 수공예 제품, 어린이를 위한 도서관과 사방치기를 할 수 있는 공터가 생겼습니다. 도시 재개발로 ‘주거난민’이 된 청년도 늘장이 있는 이곳으로 왔습니다. 시민들은 이제 그 장터를 어떻게 하면 시민 모두의 공간으로 남겨둘 수 있을지 고민하는 중입니다. 도심 개발의 흐름을 피하고 시민들이 스스로 운영하는 가치 있는 공유 공간으로 남기는 방법을 찾아내려고요. 서울 마포구 공덕역 인근의 ‘경의선 공유지’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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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 민생경제위원회는 지난 2월 21일 (수) 이곳에서 현장월례회를 진행했습니다. 경의선 공유지 시민행동 활동가들로부터 경의선 공유지에 개발사업이 추진된 경위와 앞으로 이 공간을 어떻게 시민의 공간으로 남길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듣고 법적 이슈에 대한 고민도 나눴습니다. 또 현재 경의선 공유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청년주거난민 ‘뜨거운 청춘’의 이희성 씨의 도시난민 경험을 나누고 도시 주거 난민의 문제를 고민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개발사업 주춤하는 사이 경의선 공유지에 들어온 식구들

원래 경의선 기차가 지나다녔던 이 곳은 철도 지하화 사업으로 ‘철도유휴부지’가 되었습니다. 철도시설공단은 2011년 (주) 이랜드 공덕과 30년간 임대계약을 맺고 이 자리에 생활주택을 건설하는 개발계획을 세웠습니다. 원래 2015년까지 생활주택을 건설한다는 계획은 축소·변경되어 지금은 사실상 관광호텔 계획이 되어버렸습니다.

2013년 마포구는 기차가 지나가지 않아 흉물로 전락할 위기에 놓인 경의선 공유지를 시민·지역단체가 꾸린 ‘늘장 협동조합’에 맡겼습니다. 경의선 숲길의 공원과 작은 플리마켓을 합쳐 ‘늘장’이 만들어졌습니다. 어린이들이 뛰어 놀고, 어른들은 수공예 제품을 구경하거나 맥주 한 잔을 나누는 공간이 되었죠. ‘2015년부터 이곳에서 진행될 도시개발 사업이 시작되기 전까지만’이라는 단서가 붙었지만, 경의선 공유지를 찾는 시민들의 발길이 늘어만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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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대로라면 2015년부터 생활주택 건설이 시작되어야 할 이곳엔 지금까지 어떤 개발이나 사업의 기미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 사이 경의선 공유지에는 식구가 늘었습니다. 2016년 마포구 ‘아현동 포차거리’ 강제 철거 이후 ‘아현 포차 이모님’들이 경의선 공유지에 임시 포장마차를 만들고 영업을 계속하는 중입니다.

민생경제위원회는 이날 ‘아현포차 이모님’이 운영하는 포차에서 밥을 먹었습니다. 포차 안에는 지금은 사라진 아현동 포차거리 시절의 마지막 모습과 철거 용역과 싸우던 모습이 사진으로 남아있습니다. 따뜻한 밥에 시원한 쇠고기뭇국, 소주 한 잔에 꼼장어까지. 이모님의 솜씨가 보통이 아닙니다. 김태근 변호사는 ‘속이 풀리는 것 같다’며 국물을 들이키고, 박정만 변호사도 “정말 오랜만에 집밥을 먹는다”고 밥을 두 공기나 비웠습니다.

청년 주거난민 희성씨, 주거권을 말하다

경의선 공유지에는 청년 도시 주거난민 이희성씨도 머물고 있습니다. 의류업계에서 일하는 꿈을 꾸며 서울로 올라온 이희성씨는 동대문과 가까운 성동구 행당동에 작은 방을 얻었습니다. 행당동에 재개발 사업이 시작되자 세입자들은 아무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고 쫓겨나야 했습니다. 재개발 조합은 임대인들에게 ‘주거이전비 1000만 원을 받으려면 세입자를 내보내야 한다’고 했고, 임차인들은 계약기간이 남아있음에도 속수무책 쫓겨나야 했습니다.

12월까지만 버티면 그래도 방을 구할 수는 있었을 텐데. 봄이 절정이던 2015년 4월 하순, 희성씨의 집은 강제철거됐습니다. 당장 갈 곳이 없어 구청 마당 원두막에서 노숙을 하는데, 봄인데도 새벽이 너무나 추웠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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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희성씨는 청년 주거문제의 중요성을 알리고 국가와 서울시에 대책을 요구하는 등 청년 주거난민을 대변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세입자를 무작정 내쫓는 도시 재개발에 반대하고 세입자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활동입니다. 하지만 제도와 행정의 눈으로 볼 때 희성씨는 ‘거주불명자’이고, 주민등록이 말소된 사람입니다.

경의선 공유지를 서울 시민의 26번째 자치구로

현재 경의선 공유지의 사업권을 가지고 있는 (주)이랜드공덕은 개발 사업을 진행할 기미가 없는 상태입니다. 경의선 공유지 시민행동은 ‘26번째자치구운동’과 힘을 합쳐 경의선 공유지를 자율적이고 이질적인 시민들의 공유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경제적 환경에 영향 받지 않고 시민이 직접 꾸려 나가는 공유지 ‘공덕 커먼즈’를 만들어 이곳에서 지식과 예술을 생산할 수 있게 하는 계획입니다.

가장 큰 전제는 기존 (주)이랜드공덕의 사업계획을 해소하고 서울시나 철도시설공단을 통해 이 공간을 시민들이 자율적으로 꾸려나가는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것입니다. 현재 경의선공유지 시민행동은 이와 같은 시민 공유지 계획을 서울시나 철도시설공단과 함께하는 협력사업으로 만들고자 제도와 절차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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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월례회를 추진하고 준비한 김태근 금융부동산팀장은 “공덕 커먼즈라는 새로운 시도가 성공했으면 좋겠고, 여기서 사실상 홀로 숙박 중인 ‘뜨거운 청년’ 이희성 씨가 자기 꿈을 찾아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소감을 전했습니다. 또 “도시난민이라는 화두를 (계속) 잡고 있는 그분들이 고맙기도 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월례회에 참석했던 김가희 변호사 역시 “기사와 댓글로 짐작할 수 없는 것들이 현장에 있었다”며 “그 현장에 선배 변호사님들이 먼저 도착해 계신 것을 보고 가슴이 뜨거워진 월례회”였다는 소감을 전했습니다. 민생위가 직접 현장을 찾아가는 ‘현장 월례회’는 올해 몇 차례 더 이어질 예정입니다. 또 다른 현장 소식은 다음 소식에 또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월, 2018/03/05-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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