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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겨울올림픽으로 얻어낸 소득, 소중한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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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겨울올림픽으로 얻어낸 소득, 소중한 평화!

익명 (미확인) | 화, 2018/03/27- 17:09

김판수 회원

 

2018년 2월 9일, 드디어 기대보다 걱정이 많았던 평창겨울올림픽이 엄동설한을 녹이는 감동을 연출해냈다. 평창올림픽은 유치단계부터 우여곡절이 많았고, 국내적으로 수천 년 동안 온존한 산천을 허물어야 하는 환경훼손문제로 불화가 있었고 막대한 예산으로 준비된 시설들의 올림픽경기 후 유지와 활용방안이 논란거리가 된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지구상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분단국 한반도의 휴전선에 인류평화의 제전을 마련하여 갈등과 적대와 대결을 끝내고 평화를 함께 누려보자는 간절한 소망으로 성공적인 올림픽 개막을 이루어냈다.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로 조성된 국제사회의 제재와 긴장으로 남한 민중이 겪은 두려움과 불안은 올림픽경기가 제대로 치러질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북한의 올림픽 참가와 한반도기를 앞세운 단일팀 입장으로 그동안의 근심이 봄날 눈 녹듯이 풀어졌다. 참으로 감격스러운 역사의 한 장면이었다. 그동안 꽉 막혔던 남북 사이에 대화의 문이 열리고 땅길, 하늘길, 바닷길까지 열려 막힘없이 오가며 그렇게 학수고대하던 평화가 찾아와 이것이 현실인지 실감하기조차 어리둥절했다.
어느 때부터인가 유폐되고 장막 속에 묻혀 있던 통일 논의가 봇물처럼 터지고 기대 또한 만발하다. 그러나 통일로 가는 길은 기대만큼 난제가 너무 많은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첫 번째 장애는 남남 갈등이다. 이것은 불행 중 더 큰 불행이다. 지구촌 여러 나라를 초대한 잔치마당에 북한 참가를 반대하는 시위로 올림픽정신을 부정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기 이전에 남남 갈등을 풀지 않고 통일이 어렵다는 것을 단적으로 알려준 사건이다.
또 하나의 장애는 국제적 개입과 부당한 간섭이다. 미・소 야합으로 비롯된 조국 분단과 국제대리전쟁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 주변의 열강들은 여전히 우리의 통일 의지를 꺾고 분단이 지속되기를 바라고 있다. 국토 분단과 겨레의 분열은 73년간 갈등 분노 적대 대결의 악순환으로 생긴 내상으로 증오의 일상화를 초래했다.
통일은 남과 북이 서로 미워해야 할 적이 아니고 가엾은 피해자라는 자각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통일은 애초에 한말 한글 한역사 한겨레로 한반도에서 한나라로 살았던 때로 돌아가서 다투지 말고 평화롭게 살자는 간절한 소망이다. 통일은 평화로 가는 디딤돌이고, 남과 북이 평화로 가는 길이 함께 사는 길이며 오직 함께 사는 길만이 평화로 가는 길이다. 평화로 가기 위해서는 맨 먼저 마음부터 열고 남과 북이 한겨레 한동포임을 자각하고 미움을 걷어내야 한다.
다음으로 말문을 터서 서로 위로하고 이해하면서 희망을 살려내야 한다. 그리고 길을 열어 서로 오가며 정을 쌓고 도와주면서 자주 자립을 이뤄내야 한다. 이번 평창올림픽이 이 땅 이 겨레에게 평화와 통일의 희망을 자각케 하는 단처를 마련해 준 것은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소득이요 횡재라 아니 할 수 없다.
반목은 서로에게 손해를 주고 평화는 서로에게 이익을 준다. 국제사회의 야욕으로 갈라졌던 국토, 찢겨진 겨레의 상처를 아물게 하려면, 지금 이 땅에 사는 겨레가 있는 힘과 지혜를 모아서 외세 개입과 간섭을 물리치고 ‘생명과 평화 자주권’을 굳건하게 지켜내야 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이제 우리 겨레의 비극과 불행과 고통을 청산하는 길은 우리 스스로가 하나로 뭉쳐서 우리를 구원하는 길밖에 없다.
우리는 6・25 동족상잔의 쓰라린 전쟁을 치르고도 65년 동안이나 서로를 노려보며 불안하게 살아왔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전쟁은 파멸이다. 핵과 미사일을 소용없게 하는 길은 화해와 평화만이 유일한 길이다. 화해로 가기 위해 우리 겨레 한 사람 한 사람이 휴전선 철조망보다 강고한 마음속 장벽을 허물어 버리자.

2018. 2. 12

여럿이 함께 손잡고 ‘평화의길’ 김판수 두손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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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반민특위 위원장을 지낸 독립운동가 고 김상덕 선생(1892~1956)의 유일한 손자인 김진영 회원이 투병 끝에 8월 25일 세상을 떠났다. 사람에게 죽음이란 피할 수 없는 업보이지만 그래도 진영 군의 죽음은 그의 파란만장한 가족사와 더불어 더욱 주변을 안타깝게 한다.
김상덕 선생의 손자이자 김정육 선생(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부회장)의 외아들인 고인은 지난해 말기암 진단을 받고 투병해왔으나 만삭의 아내와 딸 김예일리 양(3)을 남기고 38세의 젊은 나이에 눈을 감았다. 9월 8일 태어난 아들 김선리 군은 유복자가 되고 말았다.
연구소는 “1949년 친일파에 의해 와해된 반민특위의 정신”을 잇는다는 설립 취지만큼이나 반민특위의 역사와 정신을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해 왔다. 1998년 반민특위 가상법정 개최, 1999년 반민특위터 표석 설치, 2001년 반민특위 다큐(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제작 협조, 2005년 정부와 국회에 반민특위 명예회복 진정서 제출, 반민특위 기념우표 제작 요청 등이 대표적 활동이다.
연구소의 이러한 활동이 때로는 미약하고 때로는 부족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늘 연구소 활동이 곧 제2의 반민특위 활동이라면서 용기와 격려를 아끼지 않은 분은 바로 김정육 선생이다. 연세도 있으시지만 같은 연배의 분들보다 목소리가 유독 작은 이유는 지독한 연좌제 탓임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자신이 자랑스런 독립투사요 반민특위 위원장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오히려 자식들에게 불이익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늘 노심초사하신 세월이었다.
그러던 김정육 선생에게 아들 진영 군은 자부심이요 희망이었고 또한 속 깊은 효자였다. 넉넉지 못한 집안형편 때문에 가족들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공군부사관으로 복무했고 특유의 성실함으로 남들이 부러워하는 공기업에 입사했다. 그러나 홀로계신 아버지를 가까이서 봉양하기 위해 공기업을 과감히 그만두고 아버지 집이 있는 의정부시청 공무원으로 뒤늦게 다시 취직한 그런 효자였다. 작년 초에는 의정부시청 안에서 보훈업무를 담당하게 되었다면서 밝은 표정으로 연구소를 방문해 3·1절 기념 전시회에 대해 논의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독립운동과 반민특위 명예회복을 위해 활동하려는 결의를 보여주던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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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첫딸 예일리를 낳고는 아버지께서 길한 꿈을 꾸신 다음 손녀의 이름을 지으셨다면서 이름에 대한 내력을 설명하고는 “이제 반민특위 4대가 연구소 회원이 되었다”면서 안부 인사를 전해오기도 했던 정 많은 청년이었다.
그런 그가 투병 중이라는 소식을 접하고는 올 여름 조심스럽게 안부 전화를 했다. 항암치료 때문에 걸려오는 전화를 받지 않아도 되련만 힘겨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으면서도 제대로 응대를 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잊지 않던 우직한 청년이었다.
세상을 떠나기 전 경기북부지부 몇몇 회원들과 건국대병원으로 문병을 갔지만 너무도 마르고 힘겨워하는 모습에 차마 병실에 들어가지는 못했다. 그리고 얼마 뒤 별세 소식을 접했다. 청년의 죽음을 애도하기에는 남아 있는 가족들의 삶도 녹록치 않다. 우선 김정육선생도 지난해 심장수술을 받은 환자의 몸이다. 진영 군 빈소에 배재정 국무총리 비서실장이 다녀가는 등 정부에서도 지원방안을 마련하고 있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아무쪼록 김정육 선생과 진영 군의 유족들의 건강을 기원하며 그 가족들이 견뎌야 했던 모진 세월을 이제는 우리 사회가 세심히 보살펴야겠다. 연구소 또한 반민특위의 명예회복을 위한 활동에 더욱 매진하려 한다. 끝으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신입회원 김진영입니다. 일천한 저를 민문연 가족분들께 소개해주신다니 그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하루빨리 사회의 주역이 되어 연구소 상근자 분들과 같이 큰 뜻을 펼치는 분들께 힘이 될 수 있는 존재가 되기를 매일매일 희망하고 있답니다. 멀지 않은 미래에 꼭! 그리될 것이니 기다려주십시오. 필승!
– 김진영 군이 2007년 2월 19일 연구소 회원으로 가입하며 남긴 글

∷ 방학진 기획실장

월, 2017/10/23-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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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조야!    샘 희비 이달에는  세종사임당들이   농사꾼집에   드가 !

박선생!

얼굴안본지도  가물가물타,…………….. 이슬까이실까!

차선생은  달달이  내리오는데,

니얼굴 운제  보건노?   빚쟁이  호영드림.

금, 2018/02/02- 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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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 ‘내역사’ 시즌2 – 비하인드히스토리 “경희대학교의 뿌리 신흥무관학교?” – YouTube

근현대역사 100년 동안 켜켜이 쌓인 역사적폐의 현장을 찾아 그날의 사건을 재구성하고 적폐청산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냅니다.

목, 2018/04/12-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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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화와 함께하는 스타트업 적폐청산
6화 
더 이상 망가질 수 없다”
<언론의 적폐청산과 개혁방향>

-진행:  김미화 
-출연:  최승호 PD,  원용진 서강대 교수,  김완 한겨레21 기자 

본 프로그램은
포럼 진실과 정의 ·민족문제연구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의 모임 ·한겨레21 ·한겨레TV와 함께 합니다.

-프로듀서 : 이경주, 종합편집: 문석진, 타이틀 : 이정온
-카메라 : 정동화 이규호 김도성 조성욱, 메이크업 : 강도겸
-기술 : 박성영, 연출 : 이규호,  제작: 한겨레TV

※관련기사
☞한겨레TV: 김미화와 함께하는 스타트업 적폐청산 5화[교육]
☞한겨레TV: 김미화와 함께하는 스타트업 적폐청산 4화[경제]
☞한겨레TV: 김미화와 함께하는 스타트업 적폐청산 3화[군]
☞한겨레TV: 김미화와 함께하는 스타트업 적폐청산 2화[경찰]
☞한겨레TV: 김미화와 함께하는 스타트업 적폐청산 1화[검찰과국정원]

화, 2017/11/07-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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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기에 누구나 욕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욕심이 도를 넘거나 지나치게 되면 독이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무시해서
지금의 고통과 치욕을 경험하고 있나 봅니다…..

저의 물욕에 눈이 멀어서 1년여의 시간이 지났지만 그 어느 누구에게도 동정과 연민을 받기보다는 오히려 질타와 멸시를 받으며
지난 세월을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습니다….

존경하는 함세웅 이사장님….
신부님의 명성과 함자를 감히 제 입에 담기도 송구 스럽습니다….저 또한 모태 신앙인 으로서 살면서 주님께 수 없이 죄를 사해 달라고
저의 욕심때문에 생긴 이 고난과 역경의 시간을 극복 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주시라고 매일매일 기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의 죄가 너무나 커서 인지 아직도 주님의 벌은 제 입장에선 정말 가혹 하기만 합니다….

지난 1년여 의 시간동안 IDS라는 단어는 제 머리 속에서 떠나질 않고 있고 피해자들의 소리는 점점 피 맺힌 절규로 바뀌고 있습니다
지은 죄를 용서받기에는 아직도 멀었지만 정신을 차려서 많은 수의 피해자분들과 함께하면서 피해보상을 찾기위해서
이리뛰고 저리뛰고 해서 조금은 희망을 찾아 가는 중 이였습니다

하지만 그 희망이 자기들만 살려고 하는 일부 피해자들로 인해서 무참히 짓 밟힐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물론 인간이기에 뭐라 할 수는 없습니다만 30여명이 1만2천명을 대변 할 순 없는게 아니겠습니까?
변호사님 또한 자본주의에서 수익 창출을 당연히 하셔야 하는것도 충분히 이해 합니다.
하지만 그 수익 창출로 인해서 수 많은 사람들을 천길만길 낭떠러지로 내 모는 형상이 된다면,그리고 신부님을 도와 주시는 분께서
그 일에 앞장 스셔서 이런일이 벌어 진다면 그 동안 쌓아 올리신 명성과 명예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저는 자라면서 저희 아버님께서 늘 “너 살자고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일은 쳐다도 보지말고 관여도 하지마라”라는 말씀을 듣고 자랐습니다
나름대로 50여년을 살면서 아버님 말씀을 잘 지켜 왔다고 자부하며 살고 있습니다…

살인범도 변호 받을 권리, 당연히 있습니다 그런 건 뭐라 하지 않습니다만 지금의 피해자들은 그 어떤 곳으로부터도 변호를 받지 못 하고 있습니다…. 비참한 마음을 가눌길이 없습니다…
그리고 파산신청자들의 법률비용을 가해자인 지점장들로 부터 도움을 받을려고 한다는 소문도 있습니다….이게 말이나 됩니까?

존경하는 신부님!
저희들의 눈 먼 욕심을 용서 받거나 위로 받을 수 없다는 건 모든 피해자들이 동감하고 있습니다….
이 일로 인해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신 서른일곱분의 영혼은 아직도 연옥에서 통한의 눈물을 쏟고 계실겁니다….

감히 신부님께 간절히 간청 드립니다….

정만순 변호사님의 파산변호를 말려 주십시요….건방지게 들리 실수 있으시겠지만 1만2천명의 생사가 달린 일입니다…
사람은 명예를 함부로 버리거나 먹칠을 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부디 저희들의 고백성사라 생각 하시고 정의를 바로 세울려고 하는 저희들의 뜻을 헤아려 주시길 진심으로,간곡히 부탁 드립니다…

날씨가 많이 추워졌습니다 신부님 건강 조심 하시고 늘 주님의 은총이 가득 하시길 진심으로 기도 드립니다..

2017년 12월 6일 최명민(프란치스코) 올림

수, 2017/12/06-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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