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최초의 신소설 작가 이인직(3) – 계몽운동, 아시아연대론, 사회진화론

지역

최초의 신소설 작가 이인직(3) – 계몽운동, 아시아연대론, 사회진화론

익명 (미확인) | 화, 2018/03/27- 16:19

사회진화론과 조선 그리고 이인직

사회와 사회적 결과의 상(上)에 진화론을 응용하야 사회적 단체로서 공구(攻究)의 대상을 삼는 것이 중요한 바니 개(蓋) 차(此) 단체가 개인과 무이(無異)함도 유(有)하나 생존의 수단을 인(因)하야 상호 경쟁함은 개인보다 가장 제(諸) 단체에 재(在)함이라 (중략) 차(此)와 여(如)히 일체의 사회적 제도는 선악의 각 인종을 일 사회적 단체에 결합한 것인데 기 단체는 상적(相滴)한 경쟁자와 경쟁하는 일 단위라. 부(夫) 자연도태의 제법(諸法)은 차 사회적 단체 상(上)에 행(行)하며 차(此) 단체는 사회진화 과정에 중요한 단위라.(이인직, 「사회학 속(續)」, <소년한반도>,1907.1)

17

<소년한반도>창간호(1906.11.1)

 

이인직의 신소설은 보았어도 이른바 ‘진화론’에 대해 언급한 글은 대부분 처음 보았을 겁니다. 여기서 이인직이 언급한 진화론은 찰스 다윈(Charles Robert Darwin. 1809-82)의 생물학적 진화론이 아니라 사회진화론(Social Darwinism)입니다. 사회진화론은 흔히 쓰이는 약육강식, 우승열패, 적자생존이라는 말이 여기서 비롯됐다면 이해될 런지요.
19세기 서구에는 다양한 사상들이 난무했습니다. 그러나 종국에는 콩트(Auguste Comte. 1798-1857)의 사회학과 실증주의, 스펜서(Herbert Spencer. 1820-90)를 중심으로 한 사회진화론으로 귀결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특히 사회진화론은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까지 서구를 풍미했던 이론입니다. ‘Social Darwinism’ 즉 ‘사회다위니즘’이란 이름에서 다윈의 진화론을 사회적으로 적용한 이론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 명칭은 20세기 중반에 19세기의 사상적 흐름을 정리하면서 후세에 붙여진 이름이지 당시에 쓰이던 명칭은 아닙니다. 오히려 사회진화론에 대한 저서는 다윈의 <종의 기원에 대하여(On the Origin of Species>(1859)보다 먼저 출간되었습니다. 사회진화론의 시조인 스펜서는 사회진화론에 대한 최초의 저서 <진보의법칙과원인(Progress: Its Laws and Cause)>를1857년에발표했습니다.물론 사회진화론이 나중에 다윈의 진화론을 흡수한 것은 사실이며 심지어 다윈조차 사회진화론에 영향을 받기도 합니다.
사실 사회진화론은 스펜서 개인의 이론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당시 다윈의 이론을 흡수하여 사회의 발전을 사회유기체적 관점에서 해석하거나, 자유주의를 강조하여 인간의 경쟁을 장려하는 많은 사상가의 시도를 사회진화론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회진화론은 다윈의 진화론을 상당히 왜곡하고 있습니다. <종의기원에대하여>라는 다윈의 진화론 저서 제목에서도 진화(evolution)라는 말은 등장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이 책의 본문 속에서도 다윈은 진화(evolution)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습니다. ‘진화’라는 표현은 진화 이전 보다 ‘우월’해 졌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다윈의 진화론에서의 진화는 우월함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 의미는 생존경쟁(Struggle for Life)에 의한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일 뿐입니다. “더 강하거나 우월해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생존에 적합했기에 살아남은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다윈은 진화(evolution)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변화를 포함한 계승(descent with modification)’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더군다나 스펜서의 경우 생물학적 진화론의 관점은 다윈보다 라마르크(LAMARCK, Jean Baptiste Pierre Antoine de Monet, Chevalier de. 1744-1829)에 가깝습니다. 이른바 ‘용불용설(用不用說)’로 대표되는 그의 이론은 ‘획득형질의 유전’ 즉 후천적인 노력으로 획득한 형질이 유전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회진화론은 19세기 서구 사상계를 휩씁니다. 결국 다윈마저도 <종의 기원에 대하여> 제5판에서 ‘진화(evolution)’라는 말을 채택하기에 이릅니다. 애초에스펜서의 사회진화론은 철학과 자연과학의 통합된 이론을 만드는 것과 ‘자유주의’에 대한 옹호를 목적으로 했습니다만, 문제는 당시 제국주의는 이것을 약육강식의 제국주의적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이데올로기로 활용한다는 점이며, 사회진화론이 그에 부합했다는 점은 부인하기 힘듭니다.
한중일 3국의 사회진화론의 수용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는 중국의 량치차오(梁啓超, 1873~1929), 일본의 가토 히로유키(加藤弘之, 1836~1916)와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1835~1901)를 들 수가 있습니다. 그 중 가토 히로유키와 량치차오는 절대적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사회진화론은 1880년대부터 영향을 끼치고 있었습니다. 사회진화론을 아시아에서 가장 처음 받아들인 일본에서는 가토 히로유키가 다윈과 스펜서의 번역서 수준을 넘어서서 사회진화론에 대한 새로운 원리론을 형성해가고 있었습니다. ‘evolution’의 역어로 진보와 개화를 조합한 ‘진화’라는 신조어를 만든 것도 그였습니다. 개화파의 ‘개화자강론’은 국가주의와 제국주의론을 뒷받침하는 구실을 하던 일본 사회진화론의 수용 위에서 만들어졌습니다.
한국에서 사회진화론을 접하고 흡수했던 경우는 유길준처럼 서구 유학을 통해 직접 접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 중국과 일본을 통해 간접적으로 접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즉, 중국과 일본에 의해 재가공된 사회진화론이었습니다.
중국과 일본이 사회진화론을 해석하는 방식은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중국이 방어적인 태도를 취한다면 일본은 다소 공격적인 태도를 가집니다. 이는 사회진화론에 대한 번역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옌푸(嚴復, 1854~1921)와 가토의 번역을 비교하면 ‘evolution’을 각각 ‘천연(天演)’과 ‘진화(進化)’, ‘struggle for existence’을 ‘물경(物競)’과 ‘생존경쟁(生存競爭)’, ‘natural selection’을 ‘천택(天擇)’과 ‘도태(淘汰)’, ‘survival of the fittest’을 ‘택종유량(擇種留良)’과 ‘우승열패(優勝劣敗)’ ‘적자생존(適者生存)’이라 번역합니다. 이외에도 옌푸는 사회복지와 관련된 용어들은 ‘부강’과 관련되는 용어로 번역했습니다. ‘natural selection’(자연선택)을 예로 들면 옌푸는 원 단어의 뜻에 가까운 ‘천택’으로 번역한 반면 가토의 경우 불필요한 것, 부적당한 것이 ‘제거’되고 적합한 것만이 남긴다는 의미의 ‘도태’라는 단어를 선택합니다.
일본의 사회진화론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사회유기체설’입니다.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은 사회도 생물 유기체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유기체라고 보았습니다. 이 이론은 스펜서가 비록 ‘자유주의’를 옹호하기 위한 사회진화론을 논리를 전개했음에도 논리적 귀결은 전체주의로 흐를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갖고 있었습니다. 사회유기체설은 사회를 유기적 전체로 파악함으로써 개인을 사회에 종속되는 존재로 인식하는 논리입니다. 그래서 1880년대 일본정부는 ‘천부인권설’에 근거한 자유민권운동에 대항하기 위해 국가의 개인에 대한 우월성을 지향하던 국권신장파 가토를 앞세웠고 결국 관민협조론이 득세하게 됩니다.
일본의 사회진화론 외에도 중국의 사회진화론 또한 국내 지식인에게 흡수되는데 헉슬리(Thomas Henry Huxley. 1825-95)의 <진화와윤리>를번역한옌푸의<천연론(天演論)>(1898)등이 출판과 동시에 한국에 수입되기도 했지만 중국의 사회진화론이 지식인을 비롯한 대중들에게 본격적으로 소개된 것은 량치차오의 글을 통해서입니다. 1899년 <황성신문>과 <독립신문에량치차오의 논설 「애국론(愛國論)」을 시작으로 량치차오 붐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1903년 량치차오의 사회진화론이 담겨있는 <음빙실문집(飮冰室文集)>(1902)을비롯해1914년까지100여개의 글이 번역 소개됩니다. 량치차오의 사회진화론은 ‘약육강식’의 국제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강’과 ‘부국강병’으로 귀결되며 한국의 ‘계몽주의’와 ‘자강론’에도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그런데 량치차오 역시 일본에서 망명생활을 하면서 일본 사회진화론의 영향을 받게 되고 종국에 사회진화론과 관련된 용어도 가토가 번역한 용어로 모두 교체하게 됩니다.
다소 장황하게 ‘사회진화론’에 대해 정리한 것은 이인직을 비롯해 당시 지식인들이 혼란된 세계관 속에서 어떤 ‘선택’을 했는지에 대해 정리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서구의 근대 사상과 문물이 밀려들어오고 제국주의 열강의 위협이라는 혼란 속에서 구한말 지식인들이 판단과 선택을 하게 했던 사상적 배경을 짚고 넘어가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이것은 ‘이해’하기 위한 것이지 ‘용서’하기 위한 것은 아닙니다.
이 시기 한국의 지식인들은 사회진화론과 그에 근거한 근대지상주의, 동양평화론, 대동합방론등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었습니다. 대한제국 관비유학생으로 일본 도쿄정치학교에서 공부한 이인직은 일본의 사회진화론에 크게 영향을 받았습니다.

 

연이(然而) 기(其) 발전(發展)하야 일정(一定)의 직능(職能)을 수(遂)하는 소사회(小社會)와 차등(此等) 소사회(小社會)를 포함(包含)하는 대사회(大社會)의 간(間)에는 중요(重要)한 차별(差別)이 유(有)함으로써 (중략) 기(其) 사회(社會)의 골격(骨格)되고 구조(構造)된 자 (者)-니라. 생물학상(生物學上)의 어(語)를 적(籍)하야 말하진디 기(其) 기관(機關)이라 칭 (稱)할만한 자(者)라 (중략) 오인(吾人)은 사회(社會)의 일분자(一分子)이라.(이인직, 「사회」, <소년한반도> 1, 1906)

 

개(盖) 국가(國家)의 대직능(大職能)은 내부(內部)의 규리(睽離)와 외부(外部)의 공격(攻擊)에 대(對)하야 신민(臣民)을 보호(保護)하는 바라. 차(此)와 여(如)히 일체(一切)의 사회적(社會的) 제도(制度) 선악(善惡)의 각종인(各種人)을 일사회적(一社會的) 단체(單體)에 결합(結合)한 것인디 기(其) 단체(團體)는 상적(相適)한 경쟁자(競爭者)와 경쟁(競爭)하는 일단위(一單位)라. 부(夫) 자연도태(自然淘汰)의 제법(諸法)은 차(此) 사회적(社會的) 단체상(團 體上)에 행(行)하며 차(此) 단체(團體)는 사회진화과정(社會進化過程)에 중요(重要)한 단위 (單位)라.(이인직, 「사회학 속」, <소년한반도> 3, 1907)

 

위 글은 ‘사회유기체설’에 정확히 부합하는 내용입니다. 생존경쟁과 그 경쟁에서 도태되는 단위를 국가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이 국가가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도태되지 않으려면 국가 내의 각 성원들은 그들의 직능을 국가를 위하여 최대한 발휘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이는 이인직만이 아니라 당시에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 논리였습니다. 이러한 논리에서는 개인의 권리보다 국가의 이익 혹은 권리가 우선시됩니다. 어쩌면 이 논리는 지금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군사독재시절 국가를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논리가 그것입니다.

 

이인직과 친일

이인직이 사회진화론을 수용하여 본격적으로 계몽운동에 투신하는 시기는 1906년 귀국 후인 일제의 통감정치 때입니다. 이인직은 당연히 통감정치에 찬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토의 사회진화론에 따르면 국가 간에도 생존경쟁에 의해 적자생존의 논리가 적용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본 사회진화론의 논리 중 한국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다루이 도키치(樽井藤吉 1850-1922)의 <대동합방론(大東合邦論)>(1893)입니다.그 내용은“동양의쇠운을만회하고흥아(興亞)의 대업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동아(東亞)의 여러 나라가 대동아연맹을 결성해야 한다”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특히 한국과 일본은 대등한 입장에서 합방하여 ‘대동국(大東國)’이라는 나라를 세우고, 중국과는 동맹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 사상은 이후 일본 군국주의가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는 사상적 기초인 ‘대동아공영권’으로 이어집니다. 즉 ‘대동합방론’은 일본의 아시아 제국(諸國)에 대한 침략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습니다. 이인직은 귀국 전부터 이런 태도를 보였습니다.

 

슬프다. 나라의 세력과 백성의 힘이 쇠미해짐이 이와 같이 심하니 어찌 마음을 놓고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양(洋)을 따지지 말고 우방에게 호소하고 그 감응의 동정을 구하는 것이 실로 목하의 급무일 것이다. 지금 사처(四處)를 돌아봐도 이를 얻을 수 있는 곳은 동양의 문명국 일본밖에 없다 (중략) 원컨대 선진한 일본국 인인군자(仁人君子)는 그 동정을 찬성하여 문명의 모범을 가르쳐주시기를 (「韓國新聞創設趣旨書」, <都新聞>,1903.5.5)

 

방금 서세동점하여 아주일폭(亞洲一幅)은 거의 사분오열에 이르려고 한다. 단 일본은 홀연히 국초(國礎)를 굳게 하여 동양의 우이(牛耳)를 잡고 보차순치(輔車脣齒)의 의(宜)를 인방(隣邦)에게 두텁게 하여, 백년의 장책을 이에 확립하였다.(「夢中放語」, <都新聞>,1901.12.8)

 

이인직이 1906년 2월 친일단체 일진회의 기관지 <국민신보> 주필로간 것은어찌보면당연한 것입니다. 물론 4개월만인 같은 해 6월에 일진회에 대항하기 위해 천도교에서 창간한 민족지 <만세보(萬歲報)>의 주필로 자리를 옮겨 신소설 <혈의누>를 연재하기도 했지만 그가 어떤길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답은 이미 나와 있었습니다. 1907년 이완용 내각의 기관지 <대한신문>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그는 이완용의 비서역할을 겸하며 일관되게 친일의 길을 걷게 됩니다.
1909년 12월 4일 이완용 내각과 대립하던 일진회 이용구가 합방청원서를 제출하자 이완용 내각은 이인직 등을 동원하여 즉각 조직적 반대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이인직은 「국민대연설회」의 연사로 직접 나서기까지 했는데, 그 반대운동은 겉으로는 합방에 반대하는 것이었지만 실상은 일진회에 합방의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한 반대운동이었습니다. 12월 22일 이완용은 명동에서 이재명의 칼에 찔려 중태에 빠졌지만, 이틀 전인 12월 20일 이인직은 이완용의 밀명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의 각 신문, 재일유학생, 대한동지회 등과 교섭해 일진회 반대 여론을 조성하고 이듬해 3월에 귀국합니다.
결국 1910년 8월 4일 일본어를 못하는 이완용을 대신해 통감부 외사국장 고마츠(小松綠)와 합방에 관한 담판을 벌입니다. 이인직은 통감부와 대한제국 내각 간의 연결통로 역할을 했고, 두 사람의 담판은 양측의 재가를 얻어 한일합방조약의 초안이 됩니다.
이인직이 했던 역할에 비하면 합방 후 그 대가는 초라했습니다. 이완용을 비롯한 한일합방의 공로자들에게는 귀족 작위와 거액의 은사금이 내려졌으나 이인직에게는 이렇다 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가 서얼 출신인 것이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완용과 그의 절친 조중응이 각각 백작・자작과 은사금을 받고 죽을 때까지 호위호식을 누린 것과 비교하면 그가 그토록 봉건주의를 비판했던 결과가 무색해지는 순간입니다.

 

18

이인직 사망 기사. 매일신보 1916. 11. 28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문>의 객원을 거쳐 종래에는 친일유림단체경학원(經學院) 의사성(司成)에 올라 천황을 찬양하는 글을 쓰며 여생을 보냅니다. 1916년 11월 총독부의원에서 입원 치료중 사망하는데 장례식은 일본 천리교 의식에 따라 치러졌고 아현 화장장에서 한 줌의 재로 사라집니다. 그가 죽자 조선총독부에서 지급한 장례비는 450원이었습니다.

김덕영 선임연구원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진차나

행림

동상

병화나!

보고싶다.

호영

토, 2019/03/09- 01:11
53
0

우리가 히로시마에 핵폭탄 떨어뜨리고 ㅋ 일본 항복 받아냈냐 ㅋㅋ

꼬작 몇번 싸워 이겼고 일본 사람 몇명죽였다고 그게 독립 운동이라고? ㅋㅋㅋ 응 아니야..

3.1운동은 그냥 객기 부리다 일본군한태 뒤진 년놈들 행사일 뿐이다

일, 2019/03/10- 00:25
32
0

嘲金正恩(조김정은)

 

君何空手去(군하공수거)

前路益多難(전로익다난)

核化眞狂者(핵화진광자)

人民百尺竿(인민백척간)

 

김정은을 조롱함

 

그대는 어째서 빈손으로 갔는가

앞길에 더욱 어려움이 많으리라

核化하다니 참으로 미친 者일세

인민들은 높은 장대에 올랐도다.

 

<時調로 改譯>

 

왜 빈손으로 갔나, 앞길 더욱 多難하리

核으로 무장하다니 참으로 미친놈일세

수많은 인민들일랑 百尺竿頭 올랐도다.

 

*空手: 빈손 *前路: 앞길. 전정(前程) *多難: 힘들고 어려운 일이 많음 *狂者: 狂人.

 

<2019.3.10, 이우식 지음>

일, 2019/03/10- 09:50
39
0

責問全斗煥

 

未止光州血(미지광주혈)

如前發妄言(여전발망언)

何時其罪盡(하시기죄진)

大哭衆寃魂(대곡중원혼)

 

전두환에게 責問함

 

光州의 피 아직 멎지 않았는데

여전히 망령된 말 하고 있구나

어느 때에나 그 죄가 없어지랴

많은 寃魂들 큰 소리로 哭한다.

 

<時調로 改譯>

 

光州의 피 흐르는데 前과 같이 망령된 말

어느 때가 되어서야 그 죄가 없어질 건가

오호라! 많은 寃魂들이 큰 소리로 哭한다.

 

*責問: 꾸짖거나  나무라며 물음  *妄言:  이치나 사리에 맞지 아니하고 망령되게

말함. 또는 그 말. 망담(妄談). 망설(妄說) *何時: 언제 *大哭: 소리를 내어

곡(哭)함. 또는 소리로 슬프게 욺  *寃魂: 분하고 억울하게 죽은 사람의 넋.


<2019.3.11, 이우식 지음>

월, 2019/03/11- 09:25
7
0

讚胡志明先生

 

猫兒逢猛虎(묘아봉맹호)

大破可驚歎(대파가경탄)

不屈先生意(불굴선생의)

終成克萬難(종성극만난)

 

호찌민 선생을 기리며

 

어린 고양이가 사나운 범을 만나서

크게 부숴 버리니 경탄할 만합니다

굽히지 아니하신 호찌민 선생의 뜻

마침내 온갖 어려움 이겨 냈습니다.

 

<時調로 改譯>

 

猫兒가 猛虎 만나서 크게 부쉈습니다

굴복하지 아니하신 호찌민 선생의 뜻

마침내 온갖 어려움 극복해 냈습니다.

 

*胡志明: 베트남의 혁명가ㆍ정치가(1890~1969). 인도차이나 공산당을 창설하여

베트남의  독립  운동을  이끌었으며, 1945년  베트남 민주 공화국의 성립과 더불어

대통령에 취임, 北베트남에서 사회주의 건설의 기초를 마련했다 *猫兒: 고양이

어린 새끼 *猛虎: 사나운 범. 썩 사나운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름 *大破: 크게 부숨.

크게 부서짐 *驚歎: 몹시 놀라며 감탄함 *終成: 마침내 이뤄짐 *萬難: 온갖 어려움.

 

<2019.3.11, 이우식 지음>

월, 2019/03/11- 07:27
9
0

왜 악플 신고가 안됨? 왜 하루가 지나도 삭제가 안됨?

화, 2019/03/12- 02:24
22
0

0403-4

[바로듣기]

☞ (3.12)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5편 “김대우” – 황국신민서사를 제정 입안하여 황국신민화에 앞장선 인물

☞ (3.06) ‘내역사’ 시즌 3: 3.1혁명 100주년 특집 편성_좌담회 2부

☞ (3.05) ‘내역사’ 시즌 3: 3.1혁명 100주년 특집 편성_좌담회 1부

☞ (2.27) ‘내역사’ 시즌 3: 3.1혁명 100주년 특집 편성_만세열전2부

☞ (2.26) ‘내역사’ 시즌 3: 3.1혁명 100주년 특집 편성_만세열전1부

☞ (2.19)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4편 “심우섭” 한 시대 형제의 다른 삶, 기회주의자 지식인의 원형

☞ (2.12) ‘내역사’ 시즌 3: “일제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이후?_2편_한일청구권협정의 쟁점은?

☞ (2.05)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3편 “오현주” 독립운동가 김마리아를 밀고한 배신자, 반민특위 법정에 선다

☞ (1.29)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2편 “노덕술” 고문으로 유명한 악덕 친일경찰, 대한민국 훈장을 받다

☞ (1.22)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1편 “이종형” 의열단 행세하며 독립군 때려잡은 악명 높은 밀정

☞ (1.15) ‘내역사’ 시즌 3: “일제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이후 우리의 과제는?_1편

☞ (1.08) ‘내역사’ 시즌 3: 프롤로그 – 70년만에 부활하는 반민특위 친일파 그들은 누구인가?


0523-1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 3

“우리 역사의 뿌리가 친일독재 세력에 의해 흔들리고 훼손되었습니다.
우리가 지난 겨울 촛불을 들고 싸운 상대는 과연 누구였을까요.
역사적폐의 주범들의 실체와 이들이 저지른 역사범죄의 동기를 파헤쳐보고자 합니다.”

화, 2019/03/12- 16:13
13
0

안녕하신요?

나여사

건강하신가여

포풀러구케…..

 

 

 

 

 

 

 

 

 

 

 

 

 

 

 

 

 

 

 

 

 

 

 

미인도아닌 미남도아닌포풀러정칠 하려는 너와나<

수, 2019/03/13- 01:05
28
0

[부천지역 3.1운동 100주년 2] 홍난파, 현제명 등 친일파 작품 위주… 항의 받고 급히 변경

0313-4

▲ 친일음악회 논란에 휩싸인 부천시립예술단의 신춘음악회 포스터 ⓒ 부천시립예술단

오는 15일 부천시 주최로 열리는 부천시립예술단의 ‘신춘음악회’가 친일음악회 논란에 휩싸였다.

부천시립합창단과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연주로 부천시민회관 대공연장에서 공연하는 신춘음악회에선 ‘나물 캐는 처녀'(현제명 작사·작곡), ‘봄 처녀'(이은상 시, 홍난파 작곡), ‘봄이 오면'(김동환 시, 김동진 작곡), ‘가고파'(이은상 시, 김동진 작곡), ‘수선화'(김동명 시, 김동진 작곡), ‘산유화'(김소월 시, 김성태 작곡), ‘꽃구름 속에'(박두진 시, 이흥렬 작곡) 등의 한국 가곡을 부를 예정이었다.

신춘음악회를 주관한 부천시립예술단은 보도자료를 통해 “문화도시 부천이 동아시아 최초로 세계유네스코가 지정한 문학창의도시로 선정된 기념으로 ‘신춘음악회 : 한국 가곡, 봄을 노래하다’를 마련하였다”고 밝혔다. 부천시는 지난 2017년 11월 세계에서 21번째로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로 선정됐다.

부천시립예술단은 “이 음악회는 우리나라의 고풍스러운 정서가 가득한 시에 아름다운 음율(음률)을 담은 주옥같은 한국 가곡들”이라고 강조했다.

과연 선곡한 가곡들은 우리나라의 고풍스러운 정서가 가득한 시와 아름다운 음률을 담은 주옥같은 가곡들일까. 아니다. 이 가곡들은 현제명, 홍난파, 김동진, 김동환, 김성태, 이흥렬 등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대표적인 친일 예술인들이 작사·작곡했다.

홍난파와 현제명 등 친일음악인 위주로 선곡

0313-5

▲ 젊은 시절의 현제명. ⓒ 민족문제연구소

민족문제연구소와 민족 음악인들은 홍난파와 현제명을 대표적인 친일 음악인으로 꼽고 있다.

홍난파는 1937년 친일문예단체 조선문예회 위원으로 활동, 1938년 사상전향자 단체인 대동민우회에 가입하면서 “조선 민중의 행복은 내선(內鮮) 두 민족을 하나로 하는 대일본 신민이 되어 신동아건설에 매진함에 있다”는 ‘전향성명’을 발표했다. 1938년 일본의 제2국가로 불리는 ‘애국행진곡’ 지휘, 1941년 조선음악협회 평의원과 국민총력조선연맹 문화위원에 각각 선임돼 ‘정의의 개가’, ‘공군의 노래’, ‘희망의 아침’ 등을 작곡했다.

현제명은 조선총독부 지원으로 결성된 조선문예회, 대동민우회, 시국대응전선사상보국연맹, 조선음악협회, 경성후실내악단 등에 참여한 친일 음악인으로 친일 성악곡 ‘후지산을 바라보며’를 발표하고 친일 행사인 ‘국민음악의 밤’에서 독창하고 ‘국민총력조선연맹’ 전국 순회 가창지도대에 참가하는 등으로 일제에 부역했다. 현제명은 친일 음악인 중에서도 친일 행적이 뚜렷한 음악가다.

가곡 ‘가고파’ 작곡가인 김동진은 1930년~1940년대 일제의 괴뢰국인 만주국 건국과 일제 침략전쟁을 옹호한 ‘건국10주년찬가’와 ‘건국10주년 경축곡’과 관현악곡 ‘양산가’ 등을 작곡한 친일 음악인이다. 조선총독부 외곽단체인 조선문인협회 결성에 발기인으로 참여한 김동환은 서사시 ‘국경의 밤’을 쓴 시인이자 친일연설문 모음집 ‘애국대연설집’ 등을 편집하고 발간한 친일 문인이다.

작곡가 김성태는 친일음악단체 ‘경성후생악단'(이사장 현제명) 지휘자로 이 실내악단을 통해 국민음악정신대를 내세우면서 공장과 학교 등에 국민음악을 보급한 친일 음악인이고, 이흥렬은 경성후생악단과 함께 음악으로써 나라(일본)의 은혜에 보답하겠다는 ‘음악보국'(音樂報國) 운동을 주도한 친일 음악인이다.

‘친일 예술인들을 사후에까지 종횡무진하게 만들고 있다’

0313-6

▲ 민족문제연구소 천안아산지회는 지난 2015년 9월 20일 독립기념관 입구에 있는 홍난파 기념비 앞에 “홍난파 단죄문”을 세웠다. ⓒ 장명진 민족문제연구소 천안아산지회 운영위원

일제에 부역한 이들은 해방 이후에도 시류에 편승하면서 교수가 되고 음악단체 대표를 지내면서 예술 권력을 행사했다. 생전과 사후에 문화훈장과 예술원상 등을 수상하며 승승장구했다.

현제명은 1945년 한국민주당 발기인 겸 중앙위원회 문교부 위원, 1946년 서울대 예술대 음악학부 초대 음악부장, 1953년 한국음악가협회 초대 이사장, 1954년 예술원 종신회원, 1954년 제1회 예술원상을 수상했고, 1965년 사후에 문화훈장이 추서됐다. 홍난파는 일제 강점기인 1941년 8월 뇌결핵으로 사망했다. 사후인 1965년 10월 문화훈장을 추서하였다.

김동진은 1953년 서라벌예술대학 음악과 교수, 1974년 경희대 음대학장, 1974년 제15회 3.1 문화상 예술상 수상, 1982년 제27회 대한민국 예술원상 음악부문을 수상했다. 김성태는 서울대 음대교수, 서울대 음대 명예교수, 한국음악협회 고문 등을 역임하고 문화훈장 모란장과 국민훈장 동백장, 대한민국 예술원상, 3.1 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이흥렬은 1960년 서울시 문화위원, 1963년 숙명여대 음대학장, 1967년 예술원상을 수상했다.

3.1운동 100년 범국민대회 노래 작곡 및 음악감독을 맡았던 류형선(54) 전 국립국악원 예술감독은 부천시립예술단의 신춘음악회 친일 논란을 어이없어 했다. 그러면서 ‘음악인들의 역사에 대한 무지가 친일 예술인들을 사후에까지 종횡무진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류 감독은 12일 인터뷰에서 “음악의 공공적 가치 구현을 위해 기획과 프로그램 구성 등 주도적인 결정권을 쥔 분들이라면 친일 음악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면서 “(친일 예술인 작품 위주로 선곡한 부천시립예술단의 신춘음악회에 대해) 아무리 다시 생각해 봐도 (친일 음악인들을) 모르는 게 정말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류 감독은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부천시립예술단) 그분들이 정녕 모르고 이 음악회를 기획했다고 판단한다. 알고는 이럴 수 없는 일 아닌가?”라고 반문하면서 “그 무지가 친일 음악인들이 해방 이후 오늘까지 종횡무진 할 수 있었던 오욕의 거점이었다는 사실을 고통스럽게 성찰해야 한다”며 부천시립예술단 음악인들과 관련 공무원들의 반성을 촉구했다.

고양시·안산시·여주시는 친일 음악 청산, 부천시는 친일 음악 위주 신춘음악회

0313-7

▲ 지난해 제73주년 광복절 부천시 경축식에서 합창하고 있는 부천시립합창단. ⓒ 부천시립예술단

고양시는 지난달 26일 김동진이 작곡한 ‘고양시의 노래’ 사용 중단, 여주시는 지난달 28일 김동진이 작곡한 ‘여주의 노래’ 사용 중단, 안산시는 지난 7일 김동진이 작곡한 ‘안산시민의 노래’ 사용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부천시는 친일 예술인 위주의 신춘음악회를 열려고 했다. 만일 시민단체가 저지하지 않았다면 부천 시민들은 친일음악을 주옥같은 음악으로 착각할 뻔했다.

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는 지난 8일 신춘음악회 중단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부천시에 항의하면서 피켓 시위 등을 계획했다. 시민단체가 거세게 반발하자 부천시립예술단은 신춘음악회를 나흘 앞둔 12일 프로그램을 급히 변경했다. 문제의 친일 예술인 곡은 빼고 ‘청산에 살리라'(김연준 작시, 작곡) ‘님이 오시는지'(박문호 작시, 김규환 작곡) ‘내 마음의 강물'(이수인 작시, 작곡) 등의 가곡을 부르기로 했다.

민족문제연구소 박종선(42) 부천지부장은 12일 “부천시가 친일음악회나 다름없는 신춘음악회를 기획한 것은 친일청산에 대한 무관심과 친일예술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면서 “부천시는 앞으로 추진하게 될 각종 문화사업과 행사에서 친일․반민족 행위자들을 찬양하고 기리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재발 방지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힘주어 촉구했다.

<2019-03-13 >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친일음악회 될 뻔한 부천시음악회 

※관련기사 

☞부천타임즈: 민족문제연구소부천지부, 부천시 문화예술 곳곳에서 친일잔재 노출

수, 2019/03/13- 16:01
11
0

‘불후의 명곡’, 군국가요 작곡한 박시춘의 ‘비 내리는 고모령’ 내보내

0313-10

▲ 지난 9일 방송된 KBS 2TV <불후의 명곡> 특집 ‘대한민국 100년 겨레와 함께 노래하다’ 2부 화면 갈무리. 이날 하은이 <비 내리는 고모령>을 불러 우승을 차지했다. 해당 곡은 친일 행적이 확인된 대중음악 작곡가 박시춘이 작곡한 노래로, 3.1운동 및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을 기념하는 특집 프로그램의 성격상 KBS가 자료 검토 및 선곡에 신중을 기했어야 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KBS

3.1운동 100주년 특집으로 꾸며진 KBS 2TV 예능 프로그램 <불후의 명곡-전설을 노래하다>가 친일 행적이 있는 음악인의 노래를 선곡해 방송한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예상된다.

지난 9일 방송된 <불후의 명곡> 특집 ‘대한민국 100년 겨레와 함께 노래하다’ 2부에선 가수 하은이 ‘비 내리는 고모령’을 불렀다. 이날 하은은 425표를 얻어 1승을 거뒀다. 하은의 열창과 탈북 청년들이 고향을 등지게 된 사연이 어우러져 뜻깊은 무대가 됐다.

그러나 해당 곡은 친일 행적이 확인된 1급 친일 작곡가의 곡으로 알려져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특집으로 꾸며진 방송 취지와는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948년에 발표된 ‘비 내리는 고모령’은 작곡가 박시춘(1913~1996, 본명 박순동)이 만든 노래다. 박시춘은 평생 동안 3000여 곡을 작곡, 이 가운데 ‘애수의 소야곡’ ‘감격시대’ ‘신라의 달밤’ ‘가거라 38선’ ‘이별의 부산정거장’ ‘굳세어라 금순아’ 등이 잘 알려져 있다. 1931년 일본 오사카 중앙음악원 혹은 밀양보전을 졸업한 것으로 그간 알려졌으나 <친일인명사전>에 따르면 실제로는 밀양보통학교를 중퇴했다. 대중음악계에 평생 헌신한 공로로 1982년 보관문화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박시춘은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대중 음악가로서는 유일하게 ‘1등급’ 친일파에 등재된 인물이다.

일제강점기 말기 일제는 전쟁을 치르면서 한국인들을 징용·징병 등의 명목으로 전쟁터로 끌고 갔다. 중일전쟁이 발발한 다음 해인 1938년부터 지원병 제도를 실시, 육군지원병·해군지원병·학도지원병 등의 명목으로 전쟁에 동원했다. 1943년 공표되고 이듬해부터 실시된 ‘징병제’를 통해서도 한국인들을 강제로 입대시켰다. 이 과정에서 한국인들이 입대를 기피하거나 거부하지 않도록 ‘선전선동’의 필요성을 느낀 조선총독부는 예술인들을 동원해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천황제와 내선일체를 강요하는 영화와 가요를 다수 제작했다.

이러한 일제와 조선총독부의 군국주의 정책에 적극 호응한 이가 바로 박시춘이다. <친일반민족행위 결정이유서>는 박시춘의 친일 행위에 대해 “1942년부터 지원병을 선전하고 선동하는 내용의 ‘고성의 달’, 1943년 징병제 실시 기념영화 주제곡 ‘조선해협’, 해군특별지원병제도 축하 특별 기획음반 수록곡인 ‘혈서 지원’ 외 다수의 가요를 작곡 및 편곡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어 “1942년 죽음을 각오하고 승리를 다짐하는 군인의 모습을 묘사한 가요인 ‘아들의 혈서’, 1943년 침략전쟁을 지원하는 후방의 여인 및 부모의 모습을 그린 ‘결사대의 아내’, 부상을 입었음에도 일제에 대한 충성을 표현하는 내용의 ‘즐거운 상처’ 외 다수의 가요를 작곡 및 편곡했다. 1943년 산업전사위문격려위문예능대에 참여해 활동함”이라고 밝혔다.

위 <결정이유서>에 따르면, 그가 작곡한 군국가요는 이외에도 ‘낭자일기'(노래 남인수) ‘병원선'(노래 남인수) ‘아세아의 합창'(노래 김정구) ‘진두의 남편'(노래 박향림) ‘지원병의 집'(노래 장세정) 등 13곡이 현재까지 확인되고 있다. 이는 군국가요 작곡가로선 최다 기록이다.

지난 2016년엔 밀양 출신인 박시춘을 기리기 위해 밀양시가 ‘박시춘 음악제’를 개최하려 했으나 당시 친일파를 기리는 음악행사를 도비를 지원받아 여는 것은 옳지 않다는 여론이 빗발치면서 밀양시는 박시춘 음악제 개최를 백지화 했다. 박시춘 외에도 안익태·현제명·홍난파·남인수·김기수 등 다수의 음악인이 일제에 부역한 친일 행적이 확인된 바 있다.

이지훈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 국장 겸 친일잔재조사위원회 연구원은 11일 통화에서 “대한민국 100년 특집을 하면서 ‘비 내리는 고모령’이 나와서 내 귀를 의심했다”면서 “박시춘은 친일 전력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강제동원의 제일선에 서서 징병 유도 가요를 만든 대중음악계의 일급 친일파”라고 설명했다.

이지훈 국장은 “화려한 친일행적을 가진 이가 (친일의 대가로) 평생 호의호식한 데다 대중음악계 최고의 별로 아직까지 자리매김한 것은 씁쓸한 현실”이라며 “관계자들이 자료 검토도 하지 않은 채 우리나라 국영방송의 임정 수립 100년 특집에 나온 것도 우려스러운데, 우승을 했다고 해서 더 당황했다”고 개탄했다.

<2019-03-13>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3.1절 특집’에 1급 친일파 노래를? KBS의 황당한 결정.

수, 2019/03/13- 16:44
427
0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3 – 친일파 5편

“김대우 ; 황국신민서사를 제정 입안하여 황국신민화에 앞장선 인물”

팟빵링크 : http://www.podbbang.com/ch/14024

수, 2019/03/13- 13:44
9
0

君子國朝鮮

 

何如君子國(하여군자국)

孔孟滿朝廷(공맹만조정)

百姓恒歌舞(백성항가무)

吟哦四季寧(음아사계녕)

 

君子의 나라, 朝鮮

 

어찌 君子의 나라였었나

朝廷에 가득했었던 孔孟

백성들은 늘 歌舞하면서

四季安寧을 詩로 읊었네.

 

<時調로 改譯>

 

어찌 君子國이었나 朝廷 가득했던 孔孟

조선 백성들 언제나 노래하고 춤추면서

사계절 안녕에 대하여 詩를 읊조렸었네.

 

*君子國: 예전에, 중국에서 우리나라를 풍속이 아름답고 예절이 바른 나라라고

이르던  말 *孔孟: 공자와 맹자  *歌舞: 노래와    *吟哦: 음영(吟詠) *四季: 사계절.

 

<2019.3.14, 이우식 지음>

목, 2019/03/14- 07:28
31
0

일왕의 패전 방송을 들으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알려진 친일파 ‘김대우’

조선총독부 학무과장 당시 황국신민서사를 제정 입안한 뼛속까지 친일파

황국신민서사란?

1937년 일제가 조선인들에게 암송을 강요한 맹세문.

더 자세한 내용은 유툽과 팟빵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DBM7…

http://www.podbbang.com/ch/14024

목, 2019/03/14- 15:07
12
0

예전에 모 방송에서 사회  분야별로 친일파 후손에 대해

취재한 적이 있는데, 다른 건 기억 안나고 국립인 서울대학교  교수진에

친일파 후손들이 의외로 많다는 걸 보았습니다. (기억에 의존하는 거라 틀릴 수 있음)

그래서, 친일파 및 그 후손들을 잊지말자는 의미에서,

1)친일파 및 후손들이 살고 있는 장소에 대한 지도와

2)사회 분야별 친일 후손들이 얼마나 있는지에 대한 지도(?)를

연구/작성해 주실 것을 건의드립니다~~~

(혹시, 이와 유사한 자료가 이미 있다면 죄송합니다~)

목, 2019/03/14- 14:35
8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