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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알도 막아낸다는 일제의 비밀병기, 센닌바리(千人針) – 천 명의 남자들에게 글자를 받는 센닌리키(千人力)도 함께 성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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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알도 막아낸다는 일제의 비밀병기, 센닌바리(千人針) – 천 명의 남자들에게 글자를 받는 센닌리키(千人力)도 함께 성행

익명 (미확인) | 화, 2018/03/27- 16:53

식민지 비망록 34

이순우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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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15년판조선사정> (1939)에 수록된 센닌바리 자료사진

 

여기 일제강점기에 제작 배포된 한 장의 사진이 있다. <소화15년판조선사정(朝鮮事情)>(1939)에 수록된 이 사진은 그냥 보면 여느 조선인 아낙네들이 우물가에서 빨랫감을 건네며 정담을 나누는 일상풍경인 듯이 착각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사진 아래에는 ‘천인침(千人針, 센닌바리)’이라는 짤막한 구절이 친절하게도 표시되어 있다. 이것은 조선의 정겨운 시골풍경이기는커녕 일제에 의해 자행된 군국주의 동원체제의 시대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자료다.
<매일신보> 1944년 8월 12일자에 실린 「단성(丹誠)의천인침,여학생들이학병(學兵)에게」 제하의 기사를 보면 한여름에 여름방학은 고사하고 근로봉사에 더하여 이러한 센닌바리 제작에 여학생들이 광범위하게 동원된 상황이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

 

경성부내의 여학도들이 더운 여름 근로작업하는 중에 틈을 내어 정성껏 만든 학병 오빠에게 보낼 센닌바리가 총독부 학무국 안에 있는 조선장학회에 연달아 들어와서 관계자들을 감격시키고 있다. 실로 조국의 흥망이 달려 있는 이 싸움에 안연히 교실에 남아 있을 수 없다고 연필 대신 총을 잡고 지난 1월 감연히 입대한 반도인 학병들의 사기를 격려하고저 조선장학회에서는 그동안 총독부 조선연맹 등과 협력하여 이들에게 센닌바리를 만들어 보내려고 준비중이었는데 이 소식을 들은 부내 각 여학교에서는 자진하여 이 귀중한 일을 맡아 갔다.
각 여학교에서는 전력증강에 봉공하기 위하여 여름휴가도 없이 운모(雲母)의 가공이며 군의(軍衣) 재봉 등 근로봉사작업을 하는 터이었지만 학병을 위하여 이 일을 자원한 것이었다. 그 후 각 학교에서는 그 학교 학생들이 정성껏 한 바늘씩 뜬 다음 천 명이 다 못되는 남은 것은 거리로 가지고 나가서 땀을 흘려가면서 지나가는 부인들에게 청하여 한 바늘씩 얻어서 전부 완성시킨 것이다. 군국여성의 사무치는 열성과 의기로 뭉친 이 센닌바리에 관계자들은 감격하는 터인데 장학회에서는 이것을 조선신궁에 가지고 가서 참배하여 학병의 무운장구를 기원한 후 근근 조선 내 각 부대에 있는 학병들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이보다 약간 앞서 <매일신보> 1944년 7월2일자에 수록된 「이만큼 성장한 반도해병(半島海兵) 연마의 공(功) 일등병(一等兵)에」 제하의 기사에도 센닌바리에 관한 내용이 등장한다.

 

내 아들의 이날의 빛나는 모습을 보고저 식장에 임석한 해병의 어머니 경상남도 마산부 교방동 이와모토(岩本大山, 47) 여사는 말한다. 내 자식 석원(石原)이가 형설의 공이 이루어져 일등병에 진급한다는 말을 들으니 그 애가 출정할 때 주려고 한 바늘 한 바늘 꿰맨 센닌바리를 줄 때는 이때라고 생각되어 오늘 가지고 왔습니다. 그 애는 이미 폐하께 바친 병정입니다. 전쟁은 날로 치열해 가는 이때 석원이가 제일선에서 훌륭한 무훈을 세울 날도 머지않았거니 생각하면 감격으로 가슴이 메어집니다.

 

26<일로전쟁 시사화보> 제2권(1904년5월8일발행)에는일본오사카지역에서 크게 유행하던 백목면으로 하라마키(服卷)를 만드는 풍경삽화가 묘사되어 있다.

 

센닌바리라는 것은 1미터 남짓 되는 흰 천에다 붉은 실로 천 명의 여성들로부터 바늘 한 땀씩을 얻어 매듭지어 만들며, 이렇게 하면 적의 탄환에 맞지 않는다고 믿는 일종의 부적 역할을 했던 다소간 해괴한 물건을 가리킨다. ‘천’이라는 숫자는 “호랑이가 하룻밤에 천리를 오고 간다”는 속담에 따른 것이라 한다.
제작 주체는 출정군인을 둔 가족인 경우가 보통이지만, 군국주의가 가속화하면서 애국부인회(愛國婦人會)와 같은 관변단체가 개입하거나 여학생들이 대거 동원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였다. 초창기에는 범띠 여성 1천 명에게서 바늘땀을 받는 식으로 이뤄졌으나, 여러 차례의 침략전쟁을 거치고 특히 중일전쟁 때에 이르러 출정군인 수가 크게 늘어나면서 이런저런 형편을 가릴 처지가 되지 못하자 범띠의 여성에게는 나이 수만큼, 다른 일반여성에게는 한 땀씩 수를 놓게 하는 방식으로 제작하였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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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로전쟁시사화보>제6호(1904년5월25일발행)에수록된 삽화자료. 센닌바리 제작광경이 담긴 이 그림에는 ‘센닌리키(千人力)’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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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4월에 처음 등장한 ‘구멍 뚫린’ 오전짜리 동전(왼쪽)의 모습. 센닌바리의 제작에는 이런 유공동전은 총알구멍을 연상시킨다 하여 그 사용이 금기시되었다.

 

센닌바리의 제작에 관한 연원을 좇아가다보면, 러일전쟁 때 출정군인을 둔 가족이 무사귀환을 비는 뜻에서 백목면(白木綿)으로 만든 복권(腹卷, 하라마키) 또는 천인결(千人結, 센닌유이)을 만들어 보내는 것이 크게 유행하였다. 실제로 <일로전쟁사진화보>나 <일로전쟁시사화보>와 같은 당시의 전시화보잡지를 보면 길거리를 지나는 여인들에게서 바늘 한 땀을 얻어내는 장면이 묘사된 삽화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다.

원래 센닌바리를 만드는 일은 단순히 봉제선을 이어 만들기도 하지만 나중에는 무운장구(武運長久)나 사봉(仕奉), 필승(必勝)과 같은 구호문자나 호랑이 문양 또는 일장기의 모습을 함께 새겨 넣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밖에 센닌바리 안에 여자의 머리카락을 넣으면 총알이 피해간다는 속설이 있었는데, 이것을 모자에 꿰매거나 복대의 형태로 착용하는 과정에서 이를 신주처럼 몸에 계속 걸치고 있는 바람에 오히려 몸에 이가 번식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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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일보사와 매일신보사가 제작 배포한 엽서자료에는 일본인과 조선여인이 함께 어울려 센닌바리 바늘땀을 짓고 있는 광경이 담겨 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구멍이 없는’ 5전짜리 동전이나 10전짜리 동전을 함께 꿰매어 넣는 일도 성행했던 모양이다. 이 경우 총알구멍을 연상시키는 유공동전(有孔銅錢)은 당연히 사용치 않았다. 오전(五錢, 고센)은 사전(四錢, 시센)과 발음이 똑같은 사선(死線, 시센)을 지났다는 뜻으로 새겨지며, 또 십전(十錢, 쥬센)은 구전(九錢, 쿠센)과 발음이 같은 고전(苦戰, 쿠센)을 넘어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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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일보사와 매일신보사가 제작 배포한 엽서자료. 여기에는 길거리의 남자들에게서 글자를 받아 센닌리키를 제작하는 모습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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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보> 1943년 5월 27일자에 소개된 친일조각가 윤효중의 목조 ‘천인침’. 이 작품은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되어 특선작으로 선정되었다.

 

천인침과 거의 짝을 이루는 것으로 천인력(千人力, 센닌리키)라는 것도 있었다. 예를 들어 <동아일보> 1939년 2월9일자에 수록된 국방헌금 및 위문품등의 내역을 보면 중일전쟁개시 직후인 1937년 8월 이후 1938년 12월말까지 이 기간에 위문대(慰問袋)가 149,204개, 그리고 센닌바리 및 센닌리키가 모두 4,185점이 헌납된 것으로 기술되어 있다.
센닌리키라는 말은 초창기에 센닌바리와 동일한 뜻으로 사용되기도 했지만, 원래는 천 명의 남성으로부터 역(力)이라는 글자를 얻어 제작한 것을 착용하면 남자 천 명의 힘과 동일한 용맹함을 얻게 된다는 뜻에서 만들어진 물건을 가리킨다. 이를테면 일제가 벌인 침략전쟁이 격화되면 될수록 길거리 여기저기에는 여자들에게서 바늘땀을 얻고, 남자들에게서 한 글씨를 받아내는 장면이 일상풍경처럼 연출되곤 했던 것이다. 그나마 이것조차 나중에는 변질되어 ‘역(力)’이라는 스탬프를 만들어 급조하기도 했다는 얘기도 있는데, 모두가 다 군국주의 일본의 무모한 침략야욕이 낳은 서글픈 역사의 한 장면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난데없는 센닌바리의 제작 열풍에 부화뇌동한 이들도 적지 않았는데, 대표적으로 도쿄미술학교 조각과 출신의 윤효중(尹孝重, 1917~1967)이 여기에 속한다. 그가 1943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한 작품이 바로 바늘땀을 짓는 조선여인의 모습을 나무에 새긴 ‘천인침’이었으며, 그해 특선(特選)에 선정되는 한편 조선총독상을 받았다.
그리고 센닌바리와 관련하여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자료의 하나는 <매일신보> 1944년 1월20일자에 수록된 마츠무라 코이치(松村紘一)의 기고문 「학병 보내는 세기의 감격, 천인침」이다. 여기에 나오는 마츠무라는 친일 문인으로 변절한 주요한(朱耀翰, 1900~1979)의 창씨명이다.

 

삼팔조끼(명주조끼)에 풀솜을 두어 붉은 실로 한 바늘 두 바늘 천 사람의 어머니와 누이의 정성을 모두어 뜨는 ‘센닌바리’. 학병의 입영날짜를 앞두고 종로네거리 백화점 어구에 세패 네패로 벌어진 정성의 바느질. 어제날까지도 보기 어렵던 새로운 풍경을 나는 가던 발을 멈추고 묵묵히 본다.(중략)
그 정성은 곧 무운장구를 비는 정성인 동시에 임전무퇴의 용기를 비는 것이요 칠생보국(七生報國)의 충성을 비는 것일지며 옥쇄(玉碎)의 영광과 격멸의 기백과 필승의 신념을 바늘마다 아로새긴 정성일 것이다.
대동아전쟁 이후로 오늘날까지 흰옷 입은 이 땅의 백성도 황국의 충성스런 인민으로서 그의 지킬 본분을 지켜온다 하였지마는 오늘처럼 뜨거운 가슴을 정성 드린 ‘센닌바리’를 누비어 본 적이 없었으리라.(중략)
저기서는 더벅머리 여학생 한 떼가 바늘을 움직이고 있고 또 한편에서는 마스크 쓴 노인이 붉은 실을 꿰고 있다. 웃옷을 입은 상점의 점원들도 웃는 낯으로 한 바늘 꿰매고 있다. 이 아름다운 풍경 굳센 어머니 굳센 누이 굳센 병정 그리고 굳센 나라. ‘센닌바리’는 가장 부드럽고 따뜻한 사랑의 나타남인 동시에 이 땅의 가장 굳셈을 자랑하는 풍속임을 이제사 나는 깨달았노라.

 

자랑스런 풍속으로까지 미화한 센닌바리야말로 일제의 군국주의가 만들어낸 가장 교묘한 자
기위안의 최면술인 동시에 삶과 죽음의 책임마저 고약하게도 그저 개개인과 그 가족의 운수 탓
으로 돌려버리는 일종의 면죄부라고 해야 맞을 듯하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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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베 총리, 문재인 대통령에게 “어리석은 인간”, “하찮다”고 표현해
(선데이저널=채수영 기자)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일본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가리켜 “어리석은 인간(노로마,???)”, “하찮다(쯔마라나이, ?????)”이라는 표현을 썼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유럽(프랑스)의 유명풍자주간지 <샤를리 에브도>는 일본 소식통의 주장을 인용하여 아베 총리가 최근 진행된 ‘일본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극렬히 비난했다고 전했다.

‘일본회의’는 일본 우익 최대로비단체로 1997년 우파단체 ‘일본을 지키는 국민회의’와 ‘일본을 지키는 모임’이 통합, 결성한 조직이다.

현재 아베 총리를 비롯한 대다수 각료가 일본회의 멤버로 있으며 ‘기본운동방침’은 황실 존숭(천왕제 부활, 국민주권 부정), 헌법 개정, 국방의 충실(재무장), 애국 교육 추진, 전통적 가족 부활이다.

아베 총리는 이 회의에서 북한의 미사일이 일본 본토 상공을 가로지른 것을 두고 북핵문제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무능을 지적했다.

최근 8월 29일과 9월 15일 두 차례에 걸쳐 북한의 미사일이 일본 홋카이도 상공을 넘어가면서 일본은 경보시스템을 발동하고 홋카이도 지방 대피훈련을 벌린바 있다.

아베 총리는 북한의 미사일이 일본을 혼란에 빠트린 것에 대해 비난의 화살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돌렸다.

문재인 대통령을 ‘무능’하다고 표현하면서 한국이 현재 북한 핵, 미사일문제에 대한 뽀족한 수가 없는 현실에 대해 지적했다고 한다.

또한 아베 총리는 ‘일본회의’에서 한일위안부합의 역시 재논의할 뜻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면서 문재인 대통령은 ‘하찮다(쯔마라나이)’고 평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의 위안부합의 수정 요구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는 것을 강력히 피력한 것이다.

아베 총리는 지난 8월 17일에도 위안부 합의 변경과 관련해 “골대는 절대 움직이지 않는다”면서 “지금까지 합의한 것이 전부다”라고 위안부 합의 변경에 대해 선을 그은 바 있다.

아베 총리는 현재 일본대사관 뒤 소녀상을 옮길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한국정부는 이 요구를 받아들일 뜻이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한편 아베 총리는 2013년 11월 한국을 두고 “어리석은 국가”라는 망언을 쏟기도 했다.

따라서 이번에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하찮다”라고 표현한 것 역시 과거 입장이 그대로 이어진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2017-09-20)

 

 

 


일, 2017/10/0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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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자님께 요청 드릴 사항 2가지가 있어서 게시판에 글 남깁니다.

1. 박정희가 일제때 활동했던 사진과 기록(어느 문헌에 정확히 기록되어 있는지) 그리고 해방 후 빨치산

행적에 대한 사본을(원본 명시)  우편으로  보내주실 수 있는지요?

요청 드리는 이유는 제 70 노모가 박정희(박근혜) 숭배자(일명 박사모)라 언터넷에 떠도는 사진과 기록,

뉴스 매체가 조작이라면서 신뢰하질 않습니다.

그러면서 가짜 뉴스, 개소리의 진원지인 유튜브 관련 박사모 관련 사이트는 왜 이리 신뢰하는지 참…

박정희의 친일 행적이 담긴 사진과 기록 내용, 해방 후  빨치산 행적을 공식 문서로 해 확인시켜주고자 하기

위함입니다.

제 메일로 받는 방법도 확인해 볼 수 있으나 정확한 기록에 의한 것이 더 확실한 팩트로 전달할 수 있기에

부탁 드립니다.  보내주실 주소는 제 개인 정보란의 집 주소(인천)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복사 비용 및 우편요금이 발생한다면 납부하도록 하겠습니다. )

2. 핸드폰 기기 변경으로 친일인명사전을 재 다운로드 하려는데 방법을 알려주세요.

기존 핸드폰 기기(아이폰6s plus)에서 10,000으로 구매했는데 기기 변경(LG G6)하고 다시 받으려고 하니

다시 10,000을 납부해야 받을 수 있는 것이라서… ㅠㅠ

아니면, 다운로드 받은 사람의 기기 정보와 인적 정보를 데이터베이스로 연결하여 기기 변동이나 전화번호

변경시에도 다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수정 보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월, 2017/10/09-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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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1]
팟캐스트 ‘역적(역사적폐 청산)’- 에필로그

수, 2017/10/11-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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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3-1

금, 2017/10/13-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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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6-1

월, 2017/10/16-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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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수리온부터 사드까지 누구를 위한 안보인가 =군의 적폐청산과 개혁방향

진행: 김미화 
출연: 김종대 정의당 국회의원,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하어영 한겨레21 기자

본 프로그램은 포럼 진실과 정의 ·민족문제연구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의 모임 ·한겨레21 ·한겨레TV와 함께 합니다. 

프로듀서: 이경주ㅣ종합편집: 문석진ㅣ타이틀: 이정온ㅣ카메라: 정동화 이규호 김도성 조성욱ㅣ메이크업 : 강도겸ㅣ기술: 박성영 ㅣ연출: 이규호
제작: 한겨레TV

※ 한겨레TV <2017.10.17>

☞기사원문: 김미화와 함께하는 스타트업 적폐청산 3화 (안보)

※ 관련영상

☞한겨레TV: 김미화와 함께하는 스타트업 적폐청산 2화 (경찰)<2017.10.10>

☞한겨레TV: 김미화와 함께하는 스타트업 적폐청산 1화 (검찰과 국정원) <2017.9.26>

화, 2017/10/17-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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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p-content/uploads/2017/10/201710.pdf

목, 2017/10/19-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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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1

목, 2017/10/19-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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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시현 연구위원

지난 9월 21일 대법원은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 장관의 상고를 기각하였다. 이로써 올해 5월 12일에 나온 서울고등법원의 판결(민족사랑 5월호 참조)이 확정되어 전 조선일보사 사장 방응모를 둘러싼 친일논쟁은 사법적인 차원에서 일단락되었다.
방응모의 친일행적은 해방후 제정된 반민족행위처벌법(1948.9.22. 공포, 법률 제3호)에 따른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의해 다루지지 못하다가 50여 년이 흐른 뒤인 2004년 일제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이하 반민규명법)이 제정되고 이에 따른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이하 반민규명위)에 의해 2009년 6월 29일 방응모의 행위들이 친일반민족행위인 것으로 결정되었다. 구체적으로 반민규명위는 그동안 밝혀진 그의 행위들이 반민규명법 제2조의 13, 14, 17호에 해당된다고 했다.


13. 사회·문화 기관이나 단체를 통하여 일본제국주의의 내선융화 또는 황민화운동을 적극 주도함으로
써 일본제국주의의 식민통치 및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행위
14. 일본제국주의의 전쟁수행을 돕기 위하여 군수품 제조업체를 운영하거나 대통령이 정하는 규모 이
상의 금품을 헌납한 행위
17. 일본제국주의의 통치기구의 주요 외곽단체의 장 또는 간부로서 일본제국주의의 식민통치 및 침략전
쟁에 적극 협력한 행위


 

방응모는 2009년 11월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도 이름이 올랐다. 이 사전의 발간에 대해 조선일보가 11월 9일 오피니언에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갉아먹는” 것이라고 하는 가운데 2010년 1월 방응모의 양자인 방우영, 방우영이 죽자 그의 아들 방상훈이 원고로 또한 이들의 회사인 조선일보사가 원고 보조 참가인으로 위원회의 결정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냈다. 서울행정법원의 1심판결에 비춰보면 조선일보사의 일제시기 행위가 어느 국가기관에 의해서도 문제되지 않았는데도 조선일보사가 원고측에 선 이유를 약간 짐작할 수 있다. 판결에 따르면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2005.12.29. 제정)에 따라 친일반민족행위자를 선정할 때 반민규명위
의 결정을 그대로 가져올 수 있고 이에 따라 “재산권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구사주의 행적과 재산상속, 언론사라는 상속된 회사의 성격과 활동, 뉴라이트, 건국절, 국정교과서 파동, 이른바 ‘역사전쟁’, ‘역사적폐’ 등 많은 것들이 맞물려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한편 반민규명위는 2005년 5월 31일 발족하여 2009년 11월 30일 활동을 종료하였기 때문에 위원회의 결정과 관련된 헌법소원이나 행정소송의 수행 등은 행정자치부 산하의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이 맡게 되어 방응모결정 취소소송의 피고 역할을 하였다. 방응모의 상속자들과 조선일보사의 소송은 그 후 2010년 12년 22일 서울행정법원의 1심 판결, 2012년 1월 12일 서울고등법원의 항소심 판결, 2016년 11월 9일 대법원의 상고심 판결, 다시 2017년 5월 12일 서울고등법원의 항소심 판결과 이번의 대
법원 판결까지 6년여의 재판과정을 거쳐 5개의 판결문이 나오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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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관이 내무대신에게 전투기 제작 군수회사인 조선항공공업주식회사 주식인수에 관한 승인을 요청하면서 이 회사 유일의 조선인 감사인 방응모를 ‘경성유력자’로 표시하였다. 「조선항공공업주식회사 주식인수의 건을 승인함」(일본내무대신, 1944.10.6.) 출처: 아시아역사자료센터

 

반민규명법 제2조가 열거하는 친일행위결정과 관련하여 결국 13호에 관한 위원회의 결정만이 적법한 것으로 판결되었다. 17호 관련은 2012년의 단계에서 절차적인 이유로 위법하게 되었고, 14호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투어졌지만 역시 위법한 것으로 이번 판결로 확정되었다. 법원이 인정한 구체적인 방응모의 친일행위는 잡지 ????조광????의 발행, 여기에 논설 투고한 것, 임전대책협력회와 조선임전보국단의 간부로서의 활동에 국한되었다. 조선항공공업의 주주와 감사로 활동한 것(14호 해당)이나 국민총력조선연맹의 참사직과 선전부 위원이었던 사실(17호 해당)은 반민규명법의 문구에 들어맞지 않는다는 형식적 논리로 친일이 아니라고 한 셈이다. 결국 위원회와 달리 법원이 볼 때는 방응모의 과거 행적은 일부만이 친일에 해당하는 것으로 범위가 대폭 축소되게 되었다. 어렵게 친일반민족행위규명에 관한 입법이 이루어지고 국가기구인 반민규명위가 활동했지만 사법부에 의하여 그 의미와 효과는 반감된 것이다. 이번 대법원의 기각 판결에서는 ‘심리불속행’이라고 하여 상고심 자체를 열어주지 않았다. 아쉬움을 떠
나서 친일반민족행위 규명이라는 역사적 책무를 일부 대법관들과 판사들이 배반하고 방응모에게 부분적으로 면죄부를 발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점에서 분노의 마음까지 든다.
이제 이해승의 친일재산에 대한 사건을 제외하고 방응모 재판이 종료됨에 따라 반민규명위와 관련된 소송들도 끝나고 친일반민족행위 문제에 대한 성찰과 실천은 다시 시민사회로 넘겨지게 되었다. 친일문제에 대한 입법, 위원회의 활동, 사법 판결에 이르는 국가의 관여가 한 바퀴 돈 지금, 시민사회측에서 식민지배와 부역협력자들이 남긴 역사적 과제들을 다시금 점검해볼 때이다.

목, 2017/10/19-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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