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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무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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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우 운영위원장은 답하시오!
1.
10대 운영위원장으로 취임한 지난해 3월부터 올해에 이르기까지 운영위원장으로서 무슨 일을 했는지는 알수 없으나 적어도 연구소 홈페이지에서 보이는 이민우 운영위원장의 태도는 도저히 전체 회원의 대표의 태도라고 볼 수 없이 반 회원적이며, 무책임의 극치를 달리고 있다.
이민우 운영위원장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서 회원들이 궁금해 하며 질의하는 사안에 대해 단 한번도 답을 한 적이 없다. 오만하기 이를 데 없는 위원장이다.
이민우 위원장은 과연 “연구소의 주인이 회원”이라는 생각은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민족문제연구소 회원은 주인”이라고 생각한다면 도저히 운영위원장으로서 해서는 안 될 일들을 해왔기 때문이다.
우선 지난 3. 24 ‘유신’정관으로의 정관개정. 글쓴이가 왜 ‘유신’정관이라고 명명했는지는 이미 발표한 성명서 등에서 자세히 설명했기 때문에 생략하고, ‘유신’정관으로의 개악으로 말미암아 운영위원회의 역할과 위상은 추락했으며, 따라서 운영위원회가 대표하는 회원들의 권한(‘회원주권’) 또한 추락한 상태이다. 이것이 운영위원회에서 스스로 한 일이다.
이는 운영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치는 게 성가시고 마뜩치 않았던 집행부가 오랜 세월 갈망하던 상황이다.
이러한 나의 주장에 대해 집행부와 운영위원회에서는 공히 정관개정을 감수했다는 조모 교수의 말을 빌려, “법률상 요건에 맞게 한 것으로, 아무 문제없다”고 강변한다. 법률이 그러니 어쩌겠냐?는 이야기인 것 같은데, 설령 그것이 맞다 해도, 그러면 운영위원회의 역할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지금처럼 치욕스럽게 집행부 밑으로 들어가는 모양새를 취해야 했는지, 주인인 회원의 권한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깊이 심사숙고해 보고 대책을 마련했어야 했다.
그런데 무얼 했는가? “법이 그렇다니 그냥 순순히 집행부 요구대로 회원배가 운동이나 해서 돈이나 걷어주고, 집행부 밑에 ‘지원’ 기구로 들어가자” 한 건가? 지금 딱 그 짝이다.
이젠 “연구소의 주인은 회원이 아니다.” 이젠 “연구소의 주인은 이사회(집행부)이다.”
모든 것은 이제 주인인 회원(운영위원회)에게 묻지 않고도, 아니, 이미 회원은 주인이 아니니 물어볼 필요도 없이, 집행부 의도대로 이사회에서 뚝딱 결정하면 그만이다. 운영위원회가 아무런 실권이 없(어졌)으니 집행부 세상이 됐다.
이제 회원은 돈 내는 기계일 뿐이다. 돈은 내되, 아무런 권한이 없으니 주인일 수 없다. 그것이 이번 정관개정이 말해주고 있는 엄연한 현실이다. 그런 반 회원적, 반주인적 결정을 내리면서도 “법대로 했으니 문제없다”라고 하는 것이다. 이건 너무 뻔뻔하지 않은가?
그리고 오히려 그 잘못된 결정에 항의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을 반조직적이라고, 연구소 음해세력이라며 돌팔매에 험담/흑색선전 공격이다. 심지어 제명까지 했다. 적반하장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수준도 저급하기 짝이 없다. 언제 연구소의 수준이 이렇게 급전직하했단 말인가, 그래도 명색이 민족문제연구소 상근자와 지부장의 모임인 집행부와 운영위원회인데…
이 엄청난 일을 이민우의 10대 운영위원회가 이뤄냈다. “회원이 주인이다”라는, 연구소 창립 이래 면면히 흐르던 “회원 주권” 정신을 하루아침에 반납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10대 운영위원회고 이민우 운영위원장이다. 젊은 날 사무국장을 지낸 친정에 대한 보은인가?
내일 운영위원회 워크샵을 1박2일로 연다는데, 무얼 하려는지 모르겠지만 열심히 하기 바란다.
이민우 운영위원장 스스로가 집행부의 ‘보조’, ‘지원’ 기구로 만든 운영위원회가 어떻게 하면 집행부를 위해 더 잘 봉사할 수 있는지 여러 운영위원들과 함께 머리를 짜내보기 바란다. 집행부 사무국장 출신답게. ㅎ ㅎ
2. 그리고 개정된 정관에 보면 “운영위원장은 당연직 이사가 된다”는 규정이 엄연히 살아있음에도 이사회에도 못 들어간 이민우 운영위원장, 정말 위원장 자격이 있는가?
전국의 만3천명의 회원을 대표해서 겨우 이사회에서 한자리 차지하는 것 마저 놓치고 이사도 못된 이민우…전국의 회원 망신은 이민우가 다 시키고 있다. 창피하기 짝이 없다.
3. 또 한가지, 지난 5월 14일 연구소 홈페이지에 올린 “회원 ‘제명’ 이사회를 다녀와서 – 이민우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장의 답을 요구합니다 (1)”라는 글에서 요구한 아래 두가지 사항에 대해 아직도 답이 없어 이번에는 답을 듣고자 한다.
꼭 공개적으로, “여인철의 수준 이하의 낯부끄러운 행태”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들을 위해 답을 주기 바란다.
⟪1. “여인철씨가 보여준 수준 이하의 낯부끄러운 행태”가 무언지?
조직 체면, 여인철이 체면 봐주지 말고, 속 끓이지 말고 시원하게 있는 그대로 다 공개해주길 바랍니다.
2. “정관개정 작업이 여인철이 운영위원장 재임 당시 시작되었다”는 말, 이거 확실한 건가요? 이게 확실한 사실이면 여인철이란 사람은 파렴치한 틀림없습니다.
지난 정기총회 때 상정된 ‘유신 정관’으로의 개정안은 이민우 운영위원장 시절인 작년에 처음으로 발의되고 논의된 것입니다. 그런데도 마치 제가 운영위원장으로 있던 시절에 시작한 양 저렇게 거짓말을 하고 있군요.
어떤 것이 사실인지 밝히길 바랍니다. ⟫
2018. 6. 23
회원 여인철
(전 대전지부장, 9대 운영위원장)
이미 청와대 국민 청원에 올라와 있는 내용이므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합니다.
다만, 한 가지 짚고 넘어가보겠습니다.
대체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있어 이토 히로부미란 뭡니까?
찢어죽여도 시원치 않을 민족의 원수인데, 고작 아이돌 하나에 목숨걸고 옹호하는 30~40대 팬들 때문에 우리들의 10대 20대 청년 청소년들이 잘못된 역사관에 물들어가고 있는 게 말이나 됩니까?
이는 분명히 문제가 있습니다.
절대 좌시해서는 안될 일입니다.
아직 친일 청산도 채 끝나지 않았음에도, 한일 합작 프로그램이라는 명목하에 기본적인 국민적 반일감정을 고려하지 않은 제작진들도, 이를 싸고돌며 조선 강점의 중추인 이토 히로부미를 옹호하는 시타오 미우의 팬들도 절대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바로듣기]
☞ [팟캐스트 ‘역적’시즌2. 7회 2부 “친일군인 김창룡 묘 이장과 국립묘지법 개정 –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와 함께”]
☞ [팟캐스트 ‘역적’시즌2. 7회 1부 “개화와 보수의 빅매치 1탄 임오군란”]
☞ [팟캐스트 ‘역적’시즌2. 6회 2부 “과거 민간인학살 진상규명_최홍이 선생과 함께”]
☞ [팟캐스트 ‘역적’시즌2. 6회 1부 “불평등으로 시작된 강화도조약 2편”]
☞ [팟캐스트 ‘역적’시즌2. 5회 2부 “박순찬 시사만화가와 함께”]
☞ [팟캐스트 ‘역적’시즌2. 5회 1부 “역전다방_의열단 1편”]
☞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4회 2부 – 김활란동상 옆 친일 알림팻말_이화 친일청산프로젝트 기획단과 함께 ]
☞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4회 1부 “불평등으로 시작된 강화도 조약 1편”]
☞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3회 2부 “임청각 이야기”_이항증선생과 함께(석주 이상룡선생 증손자)]
☞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3회 1부 “내우외환 위기속 흥선대원군(2편)”]
☞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2회 2부 반민특위 김상덕위원장 아들 김정륙선생과 함께]
☞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2회 1부 “내우외환 위기속의 흥선대원군(1)”]
☞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1회 2부 “효창원 역사적폐청산 과제_차영조 선생님”]
☞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1회 1부 “백년의 역사여행을 시작하며”]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 2] 팟캐스트 ‘역적'(역사적폐 청산)
☞ 역적 시즌2 #7-1 개화와 보수의 빅매치 1탄 임오군란
※제작 등: PD 김세호, MC노, 김광진(前)국회의원,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 방학진 기획실장, 방은희 교육팀장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2 ‘역적’
“우리 역사의 뿌리가 친일독재 세력에 의해 흔들리고 훼손되었습니다.
우리가 지난 겨울 촛불을 들고 싸운 상대는 과연 누구였을까요.
역사적폐의 주범들의 실체와 이들이 저지른 역사범죄의 동기를 파헤쳐보고자 합니다.”

▲일본군 위안부 자료 보는 참석자들 (서울=연합뉴스) 박동주 기자 = 11일 오후 서울시청 신청사에서 열린 ‘서울시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관리사업 성과보고회’에서 참석자들이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email protected]
서울시, 서울대인권센터와 승선명부·신문 기사 등 비교·검토
대구 거주 ‘하토가와 후쿠준’, 故 이복순 할머니로 판명

▲ 트럭 섬의 한국인 [서울시 제공=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해군 함대 기지가 있던 남태평양 ‘트럭섬'(Chuuk Islands)으로 끌려간 조선인 위안부 26명의 명부와 사진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서울시는 서울대인권센터 정진성 교수 연구팀과 함께 미군 전투일지, 호위함 ‘이키노’호의 승선명부, 사진 자료, 1946년 3월 뉴욕타임스 기사 등의 자료를 비교·검토한 끝에 이들 위안부 26명의 존재를 밝혀냈다고 11일 밝혔다.
시는 “그동안 증언으로만 있었던 트럭섬의 조선인 위안부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것을 처음으로 공식 확인한 것”이라고 이번 연구의 의의를 설명했다.
트럭섬, 공식 명칭 ‘축(Chuuk) 제도’는 미크로네시아 연방을 구성하는 4개 주(州) 가운데 하나인 섬으로 태평양 남서쪽에 있다. 일본식 발음인 ‘토라크’를 접한 한국인들은 이곳을 ‘트럭섬’이라고 불러 왔다고 한다.
이번 연구는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의 자료를 발굴해 조사·분석해 이뤄졌다.
미군 전투일지에 따르면 당시 트럭섬에서 귀환한 1만4천298명 가운데 조선인은 3천483명이었다. 이 중 군인이 190명, 해군 노무자가 3천49명, 민간인이 244명으로 나타났다.

▲ 트럭섬 점령군 전투일지 [서울시 제공=연합뉴스]

▲ 트럭섬 점령군 전투일지 [서울시 제공=연합뉴스]
조선인들은 트럭섬 환초 ‘드블론’이라는 곳에서 1946년 1월 17일 호위함 ‘이키노’호를 타고 일본을 거쳐 고향 땅으로 돌아왔다. 이 배에는 조선인 위안부 26명과 아이 3명이 타고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1946년 3월 2일 자 ‘트럭의 일본인들은 포로가 아니다’라는 제하의 뉴욕타임스 기사는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있다.
기사는 “트럭섬 사령관인 해병 준장 로버트 블레이크에 의해 조선인과 27명의 조선인 위안부(Comfort Girls)들이 보내졌다”며 “블레이크 장군에 따르면 이 여성들은 남아서 미국인을 위해 일하기를 원했다. 그들은 다른 조선인들이 일본군에게 협조했다는 이유로 자신들을 바다에 빠뜨릴 것이라고 두려워했는데, 하지만 블레이크 장군은 그러한 일을 듣지 못했다”고 묘사했다.
연구팀은 이 기사가 위안부를 27명이라고 적은 것은 아이 3명 가운데 1명을 위안부로 분류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키노호 승선명부를 보면 승객 368명 가운데 조선인 249명, 여성과 아이 29명이 확인된다. 여성 26명과 아이 3명의 이름·직업·주소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여성은 ‘노동자’, 아이는 ‘무직’으로 돼 있다.
시는 “다른 문서와 비교를 통해 이 여성들이 일본군 위안부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 위안부 피해자 이복순 할머니 [서울시 제공=연합뉴스]

▲ ‘하토가와 후쿠준’이라는 이름이 적힌 이키노호 승선 명부 [서울시 제공=연합뉴스]

▲ [그래픽] ‘트럭섬’으로 끌려간 위안부 이복순 할머니 이동 경로
이 위안부 피해자 26명은 창씨개명된 일본식 이름으로 적혀 있어서 신원을 확인하는데 어려움이 따랐다.
연구팀은 이 가운데 ‘하토가와 후쿠준’이라는 인물이 정부에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돼 있는 고(故) 이복순 할머니라는 점을 판명해냈다.
이복순 할머니는 생전 구술자료를 남기지 않고, 1993년 12월 정부에 피해를 신고했을 때에도 간략한 피해 내용만 남겨 삶이 베일에 싸여 있었다.
연구팀이 생전 이복순 할머니와 가깝게 지낸 대구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이인순 관장에게 트럭섬 위안부 사진을 보여주자, 할머니를 단번에 알아봤다고 한다. 며칠 뒤 할머니의 아들도 이 사진이 자신의 어머니가 틀림없다고 확인했다.
한발 더 나아가 서울, 경북 안동, 대구의 공무원들이 자료를 뒤진 결과 하토가와 후쿠준이 할머니의 창씨명이 맞고, 주소지도 예전에 그가 살던 곳과 일치한다는 점을 밝혀냈다.
시는 “할머니의 남편 호적이 있는 경북 안동시 길안면사무소 계장은 한자를 하나하나 확인하며 온종일 제적등본을 뒤져 해당 자료를 찾아줬다”고 관계자의 노고를 전했다.

▲ 이복순 할머니 이동 경로 [서울시 제공=연합뉴스]
이 같은 자료를 종합해보면 이복순 할머니는 1943년 트럭섬에 끌려가 위안부가 됐다. 일본 패전 후 그를 포함한 위안부 피해자 26명은 1946년 1월 17일 호위함 이키노호를 타고 일본 가나가와 현 요코스카시 우라가 항으로 갔다.
이 할머니는 이후 도쿄로 갔다가 규슈 후쿠오카 현 하카타 항에서 부산행 배를 타고 고국으로 돌아왔다.
이번에 드러난 일본군 위안부 26명 가운데 이복순 할머니를 뺀 나머지 25명의 구체적인 신원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시 관계자는 “나머지 할머니들의 신원도 추후 연구를 통해 밝혀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는 이 같은 연구 결과를 이날 오후 1시 30분 서울시청 신청사 3층 소회의실에서 열리는 ‘서울시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관리사업 성과보고회’에서 발표한다.
또 지난해부터 2년간 발굴·축적한 일본군 위안부 사료를 바탕으로 내년 1월 ‘문서와 사진, 증언으로 보는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 1·2권을 출간한다. 내년 2월에는 ‘일본군 위안부 자료의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한국·중국·일본의 전문가와 단체를 초청해 성과를 공유할 계획이다.
<2017-12-11> 연합뉴스
☞기사원문: 남태평양 ‘트럭섬’으로 끌려간 조선인 위안부 26명 첫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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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소리: 남태평양 트럭섬으로 끌려간 조선인 ‘위안부’ 26명 첫 확인
☞한국NGO신문: 남태평양 트럭섬 조선인 ‘위안부’ 26명 명부, 사진 … 서울시 첫 확인
☞KBS: 남태평양 ‘트럭섬’ 조선인 위안부 첫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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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남태평양 ‘트럭섬’ 조선인 위안부 26명 첫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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