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랑 2018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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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칠도보통먹치리아이고
교수님
고대하로가야대는지
연대로 하로가야대는지
칠칠이머꼬
ㅂㅐ성들은간대엄꼬
ㅈㅣ새끼는 리ㅗㄹ스로이스고,
이하중생략

조선신궁전경도, 77.6 X 26.9

용두산신사는 조선에 세워진 최초의 신사로 병합 이전에 이미 ‘관폐대사’로 승격운동이 일어날 만큼 일본인들 사이에서 큰 의미를 지녔던 신사다. 1936년 8월 1일 ‘국폐사’로 격상되었다. ‘국폐사’란 조선총독부가 관리 비용 일체를 부담하는 신사를 말한다.
“1678년 3월 왜관을 부산항에 설치할 때, 대마도 영주가 용두산에 평방 4척(尺)의 석조 소사(小祠)를 세워 한일 상선(商船)의 안전을 기리기 위해 금도비라(金刀比羅) 대신을 봉사한 것이 시작이었다. 처음 금도비라 신사로 칭하다 1894년 거류지신사로 개칭했고, 1899년 그 규모를 확장해 사전의 면목을 일신하자 용두산신사로 개칭했다. 이 신사는 부산을 대표하고 경남을 압도하는 조선 최고의 신사이자 대륙진출의 수호신으로 그 신위를 온 나라에 혁혁히 떨치고 있다.”
<대륙신사대관>,1941
서울 남산공원, 부산 용두산공원, 대구 달성공원, 전주 다가공원, 진해 제황산공원. 이들은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공원으로 모두 일제의 침략신사가 자리했다. 신사神社란 일본 신도神道 신앙의 종교시설로, 왕실의 조상이나 민간 고유의 신앙 대상을 모신 건축물이다. 우리나라의 사당은 조상의 신주神主를 모신 집을 뜻하지만, 일본의 신사는 다양한 신을 경배의 대상으로 삼아 그 수가 무려 800만에 달한다. 일본을 ‘신의 나라’라고 표현하는 이유다.
1876년 부산 원산 인천 등이 개항된 후 조성된 일본인 거류지에는 서양식 공원이나 호텔, 교회 등과 같은 서구식 건물들이 들어섰다. 강제병합 이전 공원이나 묘지 등은 세금이 없는 땅이었기 때문에 곳곳에 일본인들을 위한 공원이 만들어졌고, 신사 설립도 적극 추진되었다. 1910년 일제가 조선을 강제병합하자 조선이 일본의 지배를 받게 된 것이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이며 ‘천황’의 은혜로 선전하기 위해 조선총독부는 ‘천황’을 대중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한 시설로 ‘신사’를 이용했다.

대구 달성공원 내 황조요배전

전주 다가공원 내 전주신사

진해 제황산공원 내 진해신사
일본에서 메이지 ‘천황’이 사망하고 다이쇼 ‘천황’ 즉위 대례를 맞아 신사 관계 법규를 정비한 뒤인 1915년 8월 조선에서도 조선총독부령 「신사사원규칙」이 제정되었다. 신사와 사원은 희망자 30명 이상의 연서를 통해 설립을 허가받는 것으로 정해졌지만 사실상 그 이전부터 존재하던 신사가 공인되었다. 또 1917년 3월에는 「신사에 관한 건」으로 작은 규모의 신사, 즉 신사神祠도 총독의 허가를 받도록 하고 그 관리를 규정하여 보호, 육성하였다.
산 입구부터 계단을 쌓아 신사로 올라가는 참배로를 만들고, 산 중턱에는 도리이鳥居를 세워 도시 어느 곳에서도 우러러 볼 수 있는 곳에 신사를 지었다. 신사가 조성된 공원 주변에는 관공서와 금융기관, 경찰서 등 일제 핵심 통치기구들이 밀집했다. 이렇게 신사는 도시 중심부에 ‘식민통치의 성지聖地’로 자리 잡았다.
일제 침략신사의 목적을 가장 충실하게 구현한 신사는 ‘조선신궁’이다. 1912년부터 추진해 1920년 기공식을 가진 후, 1925년에 완공했다. 조선신궁이 들어선 남산은 조선시대 도성 사산四山의 하나이자, 금산禁山으로 엄격히 관리되었으며 국사당國師堂이 자리잡고 있는 등 한양의 수호산으로 여겨졌던 곳이다. 일제는 조선신궁을 건립하기 위해 산 정상의 국사당을 이전하고 현재 남산식물원 일대의 서쪽 산허리를 완전히 깎아냈다. 조선 초기부터 신성시하여 오던 남산은 침략신사인 조선신궁이 자리 잡은 천황제 이데올로기의 성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 강동민 자료팀장

연구소가 사무국을 맡고 있는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의 유족들이 제소한 야스쿠니 합사 철회 2차 소송 13차 구두변론이 지난 11월 28일 오전 10시 30분 도쿄지방재판소에서 열렸다. 이날 재판에서 원고 이인복 씨는 법정 진술을 통해 일본의 침략전쟁에 강제로 동원되어 희생된 끝에 야스쿠니신사에 무단으로 합사된 아버지의 이름을 야스쿠니에서 뺄 것과 일본정부와 야스쿠니신사의 사죄를 요구하였다. 이인복 씨의 아버지 고 이민구 씨는 일본군으로 동원되어 1944년 4월 뉴기니에서 전사하였다. 이 소송은 자신의 가족이 야스쿠니신사에 무단으로 합사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 27명이 일본 정부와 야스쿠니 신사를 상대로 무단합사 철회와 사죄, 유골봉환을 요구하며 2013년 10월 일본 도쿄지방재판소에 제소한 것이다.
함께 방일한 이희자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공동대표는 같은 날 니시도쿄에서 열린 ‘함께 노래하는 모임’에서 ‘아버지의 기록을 찾아 야스쿠니와 맞서다’라는 주제로 강연했으며, 김영환 대외협력팀장은 가나가와 종합정책연구센터 주최로 열린 ‘세계와 지역을 잇는 가나가와포럼’에서 ‘촛불혁명과 동아시아 평화를 생각하다’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 김영환 대외협력팀장
2017년 12월 인천낚싯배 15희생제물, 대통령 중국방문수모, 충북제천 29희생제물에 대한 섭리적 해설과 호토용사상회일(虎兎龍蛇相會日)의 결실은 정신문명발동에 의한 지구촌 통일임을 무술년(戊戌年)을 맞이하여 밝히고자 합니다.
출처:모정주의사상원(母情主義思想院, http://www.mojung.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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