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두천에서 독립운동을 펼치다 옥중 고문으로 출소 직후 사망한 홍덕문 선생의 묘지가 포천 신북면 계류리에서 발견됐다. 홍덕문 선생은 구한말 애국지사로 본명은 병준, 본관은 남양이며, 홍복영의 아들로 1864년(고종1년) 10월 1일 동두천시 걸산동에서 태어났다. 선생은 1919년 음력 2월 25일 동두천 장날 정오에 1000여명의 군중을 인솔하고, 선두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지휘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갖은 고문과 악형을 당하였다. 그러나 감옥에서도 만세를 연창하며 백절불굴의 의지를 보였으나, 형기를 마치고 돌아온 후 결국 고문과 형독(形毒)으로 1923년 5월 17일 걸산동 자택에서 타계하였다. 이런 선생의 얼을 되살리기 위해 1975년 동두천 노인회가 독립유공자추모회를 결성해 시민의 성금을 모아 추모비를 세웠고, 1991년에는 동두천 애향동지회 주관으로 비각이 건립되었다. 현재 비각은 동두천 소요산 입구에 서있다.
동두천시는 홈페이지에 홍덕문 선생의 업적을 게재해 놓고 있으며, 추모비각은 1986년 4월 28일 동두천시문화재로 지정됐다. 동두천시가 1999년 펴낸 ‘동두천시 역사와 문화유적’을 보면 ‘1919년 3·1운동 때 홍덕문 선생 등이 1000여 군중을 인솔하여 동두천시장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는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도 홍덕문 선생의 묘지에 대한 사료가 없어 33년간 방치된 채 무연고 묘로 전락해 갔다. 본지 취재진은 지난 20일 김정자 시의원, 이명수 향토학자, 동두천문화원 이계홍 사무국장 등과 함께 포천 신북면에 위치한 홍덕문 선생의 묘지를 찾아 나섰다. 이계홍 사무국장에 따르면 홍덕문 선생의 묘지가 포함된 임야가 경매에 의해 소유자가 변경되었고 해당 소유자가 사업장을 확장하려한다는 소식을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고 한다. 일순간 홍덕문 선생의 묘지가 사라질 위기에 봉착했다는 판단이 들어 부랴부랴 묘지의 실체를 확인하기로 한 것.
물어물어 찾아간 홍덕문 선생의 묘지는 관리가 전혀 안된 듯 잡초와 수풀로 뒤덮여 있었다. 또렷한 비문이 없다면 도저히 누구의 묘지인지 조차 확인할 길이 없을 정도로 세월의 풍파를 홀로 맞이하고 있었다. 향토학자 이명수 씨는 “홍덕문 선생의 묘지를 속히 이장해야 하는데, 선생의 직계후손들이 거의남아 있지 않아 동두천시와 남양 홍씨 종문에서 이장을 서둘러야 한다”며 후손된 도리를 망각한 마음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김정자 시의원은 “이번에 묘지이장은 물론 홍덕문 선생에 대한 재조명을 통해 홍덕문 선생의 얼을 되살리고, 독립유공자로 추서하기 위해 동두천시와 남양 홍씨 종문, 애향단체들이 모두 힘을 합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덕문 선생은 국가보훈처로부터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해 동두천시와 사회단체들의 협력이 절실한 상황이다. 연천군에 거주하는 이희빈 씨는 홍덕문 선생과 대고모부(고모할아버지) 관계로, 홍덕문 선생의 독립유공자 추서를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매번 자료부족을 이유로 거절당했다. 이희빈 씨는 “보훈처가 요구하는 증거를 찾으려면 국가기관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며 국가보훈처가 요구하는 객관적 자료를 확보하는데 따르는 어려움을 호소해 왔다.
한편, 이장과 관련해 남양 홍씨 종문인 홍운섭 의원은 “근 시일 내에 종문회에 묘지 이전이 불가피한 상황에 대해 알리고 종문회 차원의 도움을 모색하겠다”고 밝혔으며, 비각 세우기를 주관했던 애향동지회 김승희 회장은 “애향동지회 측에서도 정확한 내용을 파악해 내부 중지를 모아 홍덕문 선생 유해를 동두천시로 이장하는데 지원을 하는 방향으로 결정하겠다”뜻을 피력해 동두천시로의 유해 이장이 본격화 될 전망이다.
동두천문화원에서는 지난 10일 10:30 구한말 애국지사인 홍덕문 묘(포천 신북면)를 화장하여 소요산입구 지사각에 안장하고 중요무형문화제104호 새남굿 주관으로 위령제를 지냈다.
홍덕문선생은 1864년 동두천 걸산동에서 출생, 구한말의 애국지사로 자는 덕문(德文), 본관은 남양(南陽)이며, 복영(福永)의 아들로 일제시대 독립만세운동을 지휘했다.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갖은 고문과 형독(刑毒)으로 걸산동 자택에서 타계한 애국지사 홍덕문선생의 빛난 얼을 되새겨 의열(義烈)의 감(感)을 후세에 지표로 삼기 위하여 시민의 성금으로 추모비를 동두천상봉암동 산32-1번지 세웠으며, 홍덕문 추모비는 1986.4. 28 동두천시 향토유적지 제3호로 지정되어 관리하고 있다.
이렇게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위령제를 지낸다 천도제를 지낸다 하면서 행사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국가보훈처에서는 이렇게 이 분의 독립운동사실을 불인정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소요산 관광 안내도에 홍덕문 선생 추모비 안내
동두천시 노인회에서 노인들께서 직접 목격하신 분들이 성금으로 세운 추모비 입니다! 십시일반으로 그렇게 억울한 일을 당하신 그 분의 넋을 기리고자 사비를 털어 세운 것입니다! 국가에서는 예산이 없다는 등 파기시켜 버렸는지 기록을 하지 않았는지 모르지만 어데다가 감추었는지 알 수도 없는 기록을 찾아오라고 합니다!
그런데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목격자의 진술을 무척 심도있게 다루면서 어떻게 그 때 목격하시고 그 고문을 당하시고 그렇게 결국 돌아가시게 된 그 분의 모습을 보신 분들이 그렇게 국가에 상정을 하였어도 아니라고 들어주지도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아니라고 우기는데 현충일을 맞이 한다고 행사를 기념한다고 공휴일로 지정하여 숭고한 애국애족을 기리자!
고, 하면서 이렇게 증거가 있는데도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광개토대왕의 비문도 거짓이란 말입니까? 그래서 동북공정을 하여도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있습니까? 그래서 고구려의 옛 땅도 우리나라의 땅이 아니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러한 생각으로는 도저히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도 막아낼 방법이 없을 것입니다!
동두천시 사적자료입니다! 이렇게 지방자치단체에서 사적자료로 보관하고 있는 역사가 허위란 말입니까? 만약에 허위라면 이렇게 기록하고 관리해서는 아니될 것이지요! 그것은 아이들에게 ” 거짓말 하라! ” 고, 가르치는 꼴이 될 것이니까요!
지금이라도 꼭 밝히십시오! 그 오욕의 역사를 말입니다!
그 일가붙이들은 멸문지화를 당하고 하다못해 다른 평범한 사람들은 자기 자신들에게 불똥이 튈까봐 전전긍긍하던 그 때에 그래도 이 민족의 등불이 되겟다고 그 일본의 만행을 보다못해그렇게 태극기를 흔들면서 대한독립만세를 부르짖다가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도 오직 국가와 민족을 생각했던 댓가가 이렇게 울부짖고 있는데도 아니라고 하니 참으로 어이가 없습니다!
동두천시에서는 향토문화유적 제 3 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는 유적이 국가보훈처에서는 인정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왜? 오가는 사람들에게 이 분께서 이렇게 독립운동을 하셨다고 기록하여 자랑하는 이 역사적인 사실들을 버젓이 내세워서 붙여놓고 여기를 보라는 듯이 경기도 동두천시민들은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아닌가 봅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습니다!
동두천시민들께서는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그 분의 독립운동 사실을 꼭 밝히셔야 합니다!
▲ 서울 종로구 옛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이 주최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 참석한 시민이 소녀상의 손을 잡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현재까지 발견된 ‘일본군 위안부’ 문제 관련 국내외 공문서와 언론 기사, 피해자들이 남긴 기록을 망라해 통합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하는 정부의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24일 학계에 따르면 여성가족부는 2012년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연구팀(책임자 정태헌 교수)에 ‘일본군 위안부 관련 기록 사료 DB화 사업’을 위탁했으며 현재 작업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연구팀은 각종 문서와 유물, 연구 성과, 보도된 기사 등 총 8만여 건을 조사·수집하고서 이들 자료에 유형·생산자·생산 시기·소재지·소장자 등 항목을 부여해 목록을 작성해왔다.
연구팀은 현재 자료 목록 중 중복된 것들을 추려 내고 오류를 수정하는 검수 작업을 진행 중이며, 2019년에는 완성된 DB가 공개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관련 기록물들을 통합해 DB화하고 대중에게 공개하는 작업은 이번이 처음이다.
여가부는 DB가 완성되면 이를 웹사이트에 공개해 정부 관계자뿐 아니라 학술·교육 등 목적으로 누구나 접근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일본군 위안부 자료 DB를 위한 과정 (서울=연합뉴스)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연구팀(책임자 정태헌 교수)이 ‘일본군 위안부 관련 기록 사료 데이터베이스(DB)화 사업’을 위해 분류한 자료들의 모습. 연구팀은 8만여 건의 자료를 조사·수집하고 목록을 작성해왔다고 밝혔다. 2017.12.24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제공=연합뉴스]
DB화가 완료되면 학술 역량 확대는 물론 교육이나 시민단체 활동 등에도 광범위하게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키워드로 검색이 가능한 DB의 특성상 필요한 자료를 찾기 쉬워지고, 정보의 종류나 출처도 빨리 파악할 수 있다.
통합 DB 구축 외에도 연구팀은 중요 공문서를 체계적으로 분류해 키워드를 추출했으며 일부 중요 문서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해석·번역 작업도 진행 중이다. 이 과정에서 자료의 순서나 오기, 누락 등 기존 공개된 자료의 한계를 보완하는 작업도 진행했다고 연구팀은 전했다.
이번 사업에 참여한 박한용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는 관련 자료를 보유한 국내외 단체와 연구자들을 꾸준히 만나 설득한 끝에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DB화라는 성과를 내는 과정에서 여러 관련 단체들과 연구자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며 “이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내년 3·1만세운동 100돌을 앞두고 일본인에게 3·1만세운동 정신을 알리기 위한 전시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이번 한국 방문은 유관순 기념관과 생가, 독립기념관, 수원 제암리 교회 학살현장과 서대문형무소 등을 돌아보면서 내년 전시에 대한 구상과 해당 기관의 자료 협조를 구하기 위해 방한했습니다.”
하라다 교코(原田京子, 72) 이사장은 이번 방한 목적을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 6월 18일부터 어제(21일)까지 3박 4일간 서울을 방문한 도쿄 고려박물관 회원 14명은 무더운 날씨 속에 일제 침략기 일본인들이 저지른 만행 현장을 둘러보는 빠듯한 일정을 마치고 어제 오후 귀국길에 올랐다.
고려박물관 회원들은 민족문제연구소 방문을 시작으로 무더위 속에서도 일제침략 시 만행의 현장과 기억 공간을 둘러보며 “조상들이 저지른 침략”에 대해 무한한 참회의 뜻을 전했다. 이들의 통역 겸 안내를 위해 동행한 기자는, 가는 곳마다 메모 노트를 꺼내 꼼꼼하게 적어가면서 “참혹하고 잔인했던 역사의 현장”을 기억하려하는 고려박물관 회원들의 모습에 가슴이 찡했다.
▲ 유관순 생가 유관순 생가에서 열심히 메모를 하는 고려박물관 회원들 ⓒ 이윤옥
▲ 유관순 기념관 유관순 기념관, 만세운동 당시를 재현한 방에서 설명을 듣는 고려박물관 회원들 ⓒ 이윤옥
▲ 독립기념관 독립기념관, 의병 전시실에서 설명을 듣는 고려박물관 회원들 ⓒ 이윤옥
“일본인들에게 3.1만세운동의 진정한 의미 알릴 것”
이번에 방한한 일본인들은 고려박물관 내 조선여성사연구소 회원들로, 이들은 특별히 내년에 3·1만세운동 100돌을 앞두고 ‘3·1운동 100돌 전시 준비위원회’를 꾸렸으며 전시기획을 위한 사전답사의 목적으로 방한한 것이다. 고려박물관 회원들은 지난 27년간 일본 도쿄 한복판에서 호주머니를 털어 건물을 빌리고 자원봉사로 고려박물관을 꾸려오면서 “조선침략의 역사”를 일본 사회에 고발하고 있는 양심있는 일본 시민들이다.
이들은 “침략의 역사는 없다”고 잡아떼고 있는 아베 정권에 맞서서 조선침략의 역사를 반성하는 각종 전시와 강연 등을 27년간 지속해왔다. 더 나아가 일본 제국주의의 잘못을 준엄하게 꾸짖고 과거 침략의 역사를 까마득히 잊고 사는 일본인들에게 “3·1만세 운동 정신”을 알리려는 기획 전시를 계획하고 있는 것이다.
제암리교회 학살 등 수원지역의 독립운동 관련 자료를 보러 방문한 수원박물관에서는 일본 동경 고려박물관이라는 환영 문자로 회원들을 환영하면서 친절한 안내와 향후 적극적인 자료협조를 하겠다는 응대가 돋보였다.
“일본인들은 한국의 3·1만세운동에 대해 잘 모릅니다. 그런 일본인들에게 내년 100돌을 맞아 3·1만세운동의 진정한 의미를 알릴 생각입니다. 또한 3·1만세운동 당시 제국주의 일본의 행태를 파악하고 어떻게 대응했는지에 대한 조사와 한국의 3·1만세운동 정신의 현대적 의미 등을 중심으로 전시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방한 목적대로 고려박물관 회원들은 3·1만세운동 유적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 수원박물관 제암리교회 학살 등 수원지역의 독립운동 관련자료를 보러 방문한 수원박물관에서는 일본 동경 고려박물관이라는 환영 문자로 회원들을 환영하면서 친절한 안내와 향후 적극적인 자료협조를 하겠다는 응대가 돋보였다. ⓒ 이윤옥
▲ 화성행궁 화성행궁을 무자비하게 파괴한 일제의 만행에 대해 듣는 고려박물관 회원들, 바쁜 일정에도 한동민 수원화성박물관장이 직접 이곳까지 나와 당시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 이윤옥
이들은 유관순 생가와 기념관을 둘러보고 아우내 장터의 함성을 떠올리며 순대국밥을 함께 먹었으며, 수원 제암리교회 학살 현장을 둘러보던 날은 토속 음식인 청국장 등을 먹으며 당시 제국주의 일본의 악행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한편 이들은 3일째 마지막 일정인 제암리교회 답사를 마치고 상경하여 한국외대 세미나실에서 기자로부터 3·1만세운동과 여성독립운동가에 대한 강의를 늦은 시각까지 듣는 열의를 보였다.
이번 3·1만세운동 유적지를 돌아본 뒤 와타나베 야스코(渡辺泰子)씨는 “제암리교회 양민 학살 사건 현장을 둘러보며 특히 가슴이 아팠습니다. 내년 전시 때 한국의 유관기관의 자료를 협조 받아 제대로 된 3·1만세운동의 실상을 일본인들에게 알리겠습니다. 한국에서도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라고 했다.
화성행궁을 무자비하게 파괴한 일제의 만행을 듣는 고려박물관 회원들, 바쁜 일정에도 한동민 수원화성박물관장이 직접 이곳까지 나와 당시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또한 아오야기 준이치(青柳純一)씨는 “저는 독립기념관 뒤뜰에 전시 중인 해체된 조선총독부 건물 조각들을 보면서 일본 제국주의의 종말과 그들이 저지른 잔혹사에 참회의 마음을 느꼈습니다. 아직 아베 정권은 진정한 참회를 하고 있지 않지만 저 개인이라도 한국인에게 참회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라고 했다.
“조선총독부 건물 조각들 보면서 참회의 마음”
▲ 제암리교회 화성 제암리 교회 학살현장을 둘러 본 고려박물관 회원들 ⓒ 이윤옥
▲ 조선총독부 건물 독립기념관 야외공원에는 해체한 조선총독부 건물 잔재를 전시하고 있는데 이곳을 찾은 고려박물관 회원들은 철통같았던 조선통치를 기억하며 그 악행에 대한 사죄를 했다. ⓒ 이윤옥
이번 도쿄 고려박물관 회원들의 방한 일정에는 박미아 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박사의 숨은 노력이 컸으며 아울러 <신한국문화신문> 양인선 기자 등 여러명의 한국인들이 3박 4일 일정에 동행하여 한일 사이 우정을 쌓았다. 특히 수원박물관 이동근 학예연구사와 독립기념관 윤소영 선임연구위원, 수원화성박물관 한동민 관장 등의 친절한 응대와 향후 적극적인 협조 의사에 대해 고려박물관 하라다 교코(原田京子) 이사장은 회원들을 대표하여 깊은 감사의 말씀을 기자에게 전해달라고 했다.
내년 3·1만세운동 100돌 기념사업을 위해 나라 안팎에서 많은 단체 등이 준비를 하고 있지만 특히 일본의 순수한 시민단체인 고려박물관에서 그 어떤 지원도 없이 시민들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전시회를 기획하고 있는 일에 우리들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일본 고려박물관(高麗博物館)은 어떤 곳인가?
1. 고려박물관은 일본과 코리아(한국·조선)의 유구한 교류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전시하며, 서로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고 이해하며 우호를 돈독히 하는 것을 지향한다. / 2. 고려박물관은 히데요시의 두 번에 걸친 침략과 근대 식민지 시대의 과오를 반성하며 역사적 사실을 직시하여 일본과 코리아의 화해를 지향한다. / 3. 고려박물관은 재일 코리안의 생활과 권리 확립에 노력하며 재일 코리언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전하며 민족 차별 없는 공생사회의 실현을 지향한다.”는 목표로 설립한 고려박물관은 (이사장 하라다 교오코) 1990년 9월 ‘고려박물관을 만드는 모임(高麗博物館をつくる会)’을 만들어 활동해온 순수한 시민단체로 올해 28년을 맞이한다.
고려박물관은 전국의 회원들이 내는 회비와 자원봉사자들의 순수한 봉사로 운영하고 있다. 한국 관련 각종 기획전시, 상설전시, 강연, 한글강좌, 문화강좌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기자는 2014년(1월~3월)과 2016년(11월~2017년 2월), 2회에 걸쳐 항일여성독립운동가 시화전과 한국의 여성독립운동가를 알리는 강연 등을 했다.
*고려박물관은 도쿄 신오쿠보 한국수퍼 ‘광장’ 맞은편에 있으며 전화는 03-5272-3510이다. 이곳에는 한국어가 가능한 자원봉사자들이 있으며 일본인 회원들도 거의 한국어가 가능하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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