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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운동 이후 남성 독립 운동가는 1만4,600명…여성은 몇 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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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운동 이후 남성 독립 운동가는 1만4,600명…여성은 몇 분일까?

익명 (미확인) | 토, 2018/03/03- 02:37

[뉴스프리존=이규진기자] 3ㆍ1운동 99주년을 맞아 항일 독립운동과 관련 여성들의 역할에 대해 더욱 새롭게 주목된다. 실제 이날 문재인 대통령은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행한 기념사를 통해 여성 독립 운동가들을 정면으로 재조명 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윤봉길 이봉창 의사 등을 ‘건국의 아버지들’이라고 칭한 뒤 ‘건국의 어머니들’도 있다며 유관순 동풍신, 윤희순, 곽낙원, 남자현, 박차정, 정정화와 부산 일신여학교 여학생들을 열거했다.

여성 독립운동군들을 기리는 행사가 별도로 열리기도 했다.

(사)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는 1일 오후 탑골공원 정문에서 보훈처와 항일독립운동단체연합 후원으로 ‘오늘 그들 여기에’라는 타이틀로 3.1혁명 99주년 기념식과 사업회의 4주년 기념행사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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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일 오후 탑골공원 정문에서 보훈처와 항일독립운동단체연합 후원으로 ‘오늘 그들 여기에’라는 타이틀로 열린 3.1혁명 99주년 기념식과 사업회의 4주년 기념행사 ©추광규 기자

역사여 외쳐라! 항일여성 독립군들의 이름을…

항일여성독립운동사업회 김희선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2015년도에 당시 만세운동을 해냈던 학생들이 모여서 만세 퍼포먼스를 했다”면서 “오늘은 두 번째로 특별히 여성독립운동가들에게 후손들로써 드리는 차례를 지내기 위해 준비했다”고 말했다.

이어 “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가 5회차 4주년을 맞는 날”이라면서 “이 정부 들어서 사단법인이 됐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계속해서 “남성 독립 운동가는 1만 4천600명이 넘게 국가로부터 서훈을 받고 있다”면서 “그런데 여성은 몇 분일까요? 현재는 293분이다. 남자는 독립운동가라고 책에 나오는데 여성은 유관순 누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역사를 잘못 배우게 된 것 아닌가?”라면서 “우리는 바른 역사를 배워야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바른 역사를 배우기 위한 목적에 모자란 부분의 여성독립운동가를 찾아서 우리나라의 바른 역사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또한 “100년 전 일제 강점기에 목숨을 바쳐서 싸웠던 여성독립운동가들이 원했던 것은 무엇일까”라고 물은 뒤 “시대정신, 역사의 요구는 자주 독립이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이 같이 말한 뒤 “3.1 그 당시 7천992명이 돌아가셨다”면서 “왜놈들에 의해서, 2월부터 만세운동이 시작돼서 4월까지 돌아가신 분들이 8천명이라는 것이다. 자주독립을 원하는 사람이 돌아가셨는데 혁명이라고 말을 안 할 수 없다. 독립 운동가들이 가졌던 마음은 이 시대에 친일파를 어떻게 읽어낼 것인가 함께 생각해야 한다.”고 의미를 말했다.

정의구현사제단 함세웅 전 대표는 축사를 통해 “3.1혁명의 정신을 마음속에 간직한다“면서 ”얼음산이 바다위에 떴을 때 7분의 1정도만 우리 눈에 보이고 7분의 6은 바닷속에 있다. 여성독립운동가는 수면 속에 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신학교에서 신학을 배울 때 교수들이 이렇게 말을 했다”면서 “우리가 죽은 다음에 하늘나라에 간다면 극락세계에 간다면 이 세상에서 평가받았던 그 모든 분들보다 10배 20배 100배가 되는 훌륭한 숨은 분들이 계실 것이다. 이렇게 저희가 배웠는데 오늘 우리가 추모하는 여성독립운동가 우리들의 어머니 우리들의 누이 이분들이 바로 숨어계신 의인들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분들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함 전 대표는 “항일운동가 단체들이 연합을 해서 그동안에 애썼지만 놓쳤던 항일 운동가들의 삶과 역사를 조명해서 아름다운 민족사의 역사를 기술하고자 또 항일 저항의 역사를 또 독재 타파를 했던 역사의 장을 펼치자고 해서 많은 분들과 함께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4월혁명회 정동익 회장은 축사를 통해 “오늘 역사적인 항일 3.1일 혁명 99주년을 맞아서 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가 창립한지 4년 만에 국민들의 주목을 받는 비중 있는 단체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이어 “3.1 혁명은 다 아시다시피 외세에서 벗어나 자주 독립을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전 민족적인 투쟁이었다”면서 “지금 우리나라는 전쟁 위기에 처해 있다, 외세에 의한 전쟁위기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데 평화를 이루기 위한 정신적인 원천이 3.1일 혁명정신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정 회장은 계속해서 “지금 남북 단일팀이 참가한 평창올림픽 덕택에 잠시 동안 전쟁위기에서 벗어나 있지만 미국은 다음 달이면 대규모 한미연합 전쟁 훈련을 하겠다고 한다”면서 “그렇게 되면 모처럼 남북대화가 문은 닫히고 평화는 물건너가고 다시 우리는 다시금 전쟁위기에 쌓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우리가 전쟁을 막고 이 땅에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외세가 우리 운명을 결정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지금 이시기야 말로 우리가 전쟁 말고 평화를 외쳐야 할 때다. 목숨 바쳐 자주독립을 외쳤던 선열들의 정신으로 평화를 외치자. 그 길만이 우리가 살 수 있는 길이다. 우리 모두 함께 뜻을 모아 평화를 위해 떨쳐나서자”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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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추광규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은 “3.1혁명 99주년이자 내년 100주년을 앞두고 100년의 모습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또 우리민족 앞으로의 100년은 무엇일까를 탐구하는 자리”라면서 “3.1 혁명을 추념하면서 3.1 혁명을 완성하기 위해서 그 결심을 다지는 자리”라고 강조했다.

이어 “3.1 만세운동을 불렀던 우리 선조들이 지금 살아있는 우리들에게 뭐라고 말씀 하실 것인지 생각하자”면서 “첫째 민주주의다. 우리 선조들이 들고 흔들었던 태극기가 모독 되지 않기를 바란다. 태극기 정신을 바로 살려야 된다. 태극기를 흔들 때 흔들어야 한다. 우리민족의 독립을 위해서만이 태극기를 흔들고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두 번째는 3.1 혁명은 민주주의”라면서 “독재를 찬양하는 것은 결코 3.1 정신을 받은 게 아니다. 지금까지 3.1일 혁명 기념식을 할 때마다 불만이었다. 하지만 올해 대통령 기념사는 최고로 마음에 들었다. 아주 잘했다. 여성독립운동가를 아주 심도 있게 몇몇 분을 거론해 주셨다”고 말했다.

임헌영 소장은 “세 번째는 반외세”라면서 “일본의 아베가 마치 조선반도의 총독처럼 발언하고 있다. 미국 대통령은 북폭을 우리 허락도 안 맡고 하겠다고 한다. 반외세 민족자주독립 민주주의 복지국가 건설 이것이 내년 3.1혁명의 기본적인 나아갈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기념식은 1부 순서로 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 4주년 기념식과 항일여성독립운동가 초상화 봉헌, 전시. 2부 순서에는 화윤차례문화원 주관으로 박남식 박사외 문하생들이 항일여성독립운동가 추모헌공차례가 3부 시민과 함께하는 그날의 합창으로 대북 공연팀 ‘수’의 대북 공연과 합창단의 선창으로 독립군가 홀로아리랑 등을 참석자들과 함께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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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를 올리고 있다. ©추광규

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 김희선 회장과 일문일답이다.

-창립 4주년을 맞은 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에 대해 설명 부탁한다.
“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는 여성독립운동가들을 기리고 그분들의 정신을 받들어서 이 시대의 정신으로 이어가고자 하는 단체다. 항일여성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이 역사 속에서 되살아나서 그 뜻이 후손들에게도 널리 알려지기를 원한다”

-오늘 행사에 대한 의미를 말해 달라
“오늘 행사는 유무명의 여성독립운동가들을 후손으로서 기리기 위한 자리”라면서 “제례를 시작으로 해서 차례로 지내면서 그분들의 정신을 많은 대중들에게 시민들에게 그리고 참여하는 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도 알리기 위해 준비가 되었다. 대북을 치고 그 당시에 불렀던 원곡 애국가라든가 홀로아리랑 등을 부르는 것도 독립정신이 어떤 것이고 그 당시에 여성 독립 운동가들이 어떻게 투쟁했는가를 노래로서 그날의 함성을 합창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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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 독립운동가 초상화 ©추광규

-여성독립운동가들이 항일 운동사에 미쳤던 영향과 의미는 무엇인가?
“항일여성독립운동가들은 독자적인 독립투쟁운동을 한 것뿐만 아니라 군자금을 모아오고 정보를 캐오는 것 등을 하는데 있어서 여성들의 역할이 굉장히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아직은 가부장제 사회여서 여성들이 한 일은 뒷일로 뒷바라지 일 정도로 여기지 않았다. 남자현 선생님의 혈서나 윤희순 선생님의 의병대장 노래 등 여성독립운동가들이 남성들 못지않게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투쟁했던 이런 모든 것들은 우리가 그 시대정신을 오늘에 되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규진 기자 [email protected]

<2018-03-01> 뉴스프리존

☞기사원문: 항일운동 이후 남성 독립 운동가는 1만4,600명…여성은 몇 분일까?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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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역적’ 시즌2로 돌아왔습니다!!

시즌2부터는 민족문제연구소와 국민TV가 함께합니다.

국민TV 채널에서는 팟캐스트 역적을 영상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국민TV  : https://www.youtube.com/watch?v=-ehfv…

화, 2018/02/20-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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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일본 오키나와에서 조선인 묘표가 확인됐다는 소식 어제(15일) 전해드렸는데요.

오키나와 곳곳에 조선인이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들이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조선인의 유해가 발굴돼 국내로 돌아온 적은 한 번도 없었고, 유해 반환에 대한 논의도 답보 상탭니다.

윤봄이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오키나와 본섬의 최남단.

패전을 앞둔 일본군이 후퇴해 주둔했던 숲입니다.

미군의 집중 공격을 받은 곳인데, 조선인으로 구성된 특설수상근무대도 이 일대에 주둔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지 70년이 넘게 지났지만, 유해 발굴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이 이렇게 깊은 산 속까지 찾아와 발굴 작업에 힘쓰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가 손을 놓은 사이, 유해 발굴을 계속 하고 있는 건 자원봉사자 대여섯 명입니다.

[“(뭐가 나왔나요?) 손가락뼈. 아마도 이 부위인가? 손인지, 발인지 아직 확실하게는 잘 모르겠지만…”]

발굴된 유해는 오키나와 현에서 임시 보관하고 있는데, 대부분 DNA 확인도 못했습니다.

[구지켄 다카마츠/유해 발굴 자원봉사자 : “지금까지 발견된 유골 중에 조선인도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합니다.”]

발굴 현장 인근엔 유골 3만 5천구가 묻혔다는 자리가 남아있습니다.

전쟁 직후 농부들이 밭을 갈 때마다 유해가 쏟아져 나와, 이를 한 번에 묻고 탑을 세운 겁니다.

[오키모토 후키코/강제 동원 조선인 연구자 : “(조선인 부대가) 이곳에서 전멸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조선인들의 유골도 이 혼백의 탑 아래에 들어갔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미군이 일본군 포로 7천 명을 감시했다는 수용소 자리.

이 해안가엔 지금 마을이 들어섰고 포로수용소 터를 표시하는 비만 남아있습니다.

일본의 한 단체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확인한 매장자 명단.

조선인으로 보이는 이름도 여럿 확인됩니다.

하지만 이들이 어디에 어떻게 묻혔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산속부터 해안까지, 오키나와에서 숨지거나 행방불명된 조선인은 최소 7백여 명.

조선인 유해가 발굴돼 반환된 사례는 없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정부 차원의 논의는 지지부진합니다.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팀장 : “일본 정부와 유해 반환 교섭에서 어떤 내용을 요구했고, 이후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저희가 수차례 정보공개청구를 요청한 바가 있습니다. 그런데 외교적 사안이라 공개할 수 없다.”]

오키나와 외에도 소재가 파악된 한국인 유골은 2천 8백 위에 달하지만, 정부 차원의 유해 반환은 2010년을 마지막으로 중단된 상태입니다.

KBS 뉴스 윤봄이입니다.

<2018-08-16>  KBS

☞기사원문: 오키나와 섬 곳곳 거대한 무덤…조선인 유해 반환은 ‘0건’

금, 2018/08/17-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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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 ▶

오는 8월 29일은 한일합병조약문이 발표된 경술국치일입니다.

이날, 서울 용산에 식민지역사박물관이 개관합니다.

그동안 시민들의 성금으로 개관이 추진됐는데, 식민지 시대 민중들의 생활상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개관에 앞서서 이지수 기자가 미리 다녀왔습니다.

◀ 리포트 ▶

빛바랜 종이에 가족들을 향한 그리움이 한 자 한 자 적혀 있습니다.

“부모님께오서 양 내외가 걱정없이 사시고 아들도 잘 지내며…”

강제징용 피해자인 김외준 씨가 전쟁터에서 부인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입니다.

편지 옆에는 전쟁터에 끌려가 시베리아에 억류됐다가 돌아오지 못한 이규철 씨의 수기가 전시돼 있습니다.

“누구를 위해서 전쟁터로 가야만 하나. 일본을 위해서 죽고싶지 않다…”

벽면 한쪽에는 순사 임명장, 조선총독부 관료 임명장 등 친일파들의 행적도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모두 식민지 시기를 겪었던 민중과 후손들이 수십 년 동안 간직했다가 기증한 물건들입니다.

강제징용 피해자나 항일운동가들의 유족들이 활동하면서 모은 자료는 물론, 일본 시민들이 보내온 것도 적지 않습니다.

[이희자/태평양전쟁피해자 보상추진협의회 대표]
“내가 활동을 하면서 나도 나이가 먹어가잖아요. (기록들이) 재탄생을 하게 돼서 나는 정말 30년의 활동이 허무하지 않았고…”

전시된 물건만 4백여 점, 서고에 보관된 기록물까지 합하면 7만 점 가까이 됩니다.

[김승은/민족문제연구소 자료실장]
“식민지배의 실상과 그 속에 살았던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살았는가 거기에는 일상적인 민중의 삶도 있고요…”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지난 2007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추진하기 시작해 11년 만에 시민 5천여 명의 기증품과 기금 35억 원이 모여 만들어졌습니다.

박물관은 오는 29일부터 일반인들에게 공개될 예정입니다.

MBC뉴스 이지수입니다.

<2018-08-14> MBC

☞기사원문: ‘경술국치’ 기록한다..식민지 역사박물관 개관

※관련기사

☞ 경향신문: 일제강점기 역사박물관, 시민 모금으로 ‘첫 개관’

☞ KBS: “치욕도 역사” 시민이 세운 ‘식민지 박물관’ 첫 공개


식민지역사박물관 개관 이끈 이이화 건립위원장 인터뷰 이 위원장
“식민지 시대 아픈 역사 고스란히 알릴 것…청소년 위한 토론장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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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뉴스와 인터뷰 하는 이이화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위원장 [촬영 성서호]

 

(파주=연합뉴스) 성서호 기자 = “3·1 운동 때 발표한 독립선언서의 원본을 확보했습니다. 일본 강점기에 강제로 끌려간 이들의 편지나 일기도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볼 수 있어요.”

이이화(82)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위원장은 광복절을 맞아 경기도 파주 자택에서 진행한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박물관을 소개하며 설레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한국사 대중화에 앞장섰다는 평가를 받는 사학자인 이 위원장은 처음 건립위원장 자리를 맡아달라고 했을 때만 해도 고령을 이유로 자리를 고사했지만, 오는 29일 박물관의 정식 개관을 누구보다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공적 자금의 도움 없이 시민들의 모금과 자료 기증으로 마련된 박물관은 특히, 여러 박물관 중 가장 많은 기증품으로 채워질 예정이다.

이 위원장은 “돈을 주고 사 와도 자료를 못 구하는 마당에 국가 예산도 안 받고 어떻게 꾸릴지 걱정이 컸다”며 “그런데 예상치 못한 호응을 받았고, 여러 곳에서 자료를 희사해 주셨다”고 고마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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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종의 칙유 [민족문제연구소 제공=연합뉴스]

 

그는 “전시 자료 7만 점 정도를 모았는데 국내외 통틀어 7개 정도밖에 없다는 3·1 운동 독립선언서 원본도 있다”며 “강제 징용된 일본군에서 몸에 두르던 ‘무운장구'(武運長久)라고 적힌 띠는 물론,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글 등의 자료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이밖에 식민지역사박물관에는 “한국의 통치권을 예전부터 친하고 믿고 의지하고 우러르던 이웃 나라 대일본 황제 폐하께 양여한다”는 내용의 순종 칙유(勅諭·임금의 말씀을 적은 포고문)와 초대 조선 총독인 데라우치 마사타케의 포고문 등 국치의 아픔을 담은 사료가 전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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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합기념 조선사진첩 [민족문제연구소 제공=연합뉴스]

 

나라를 팔고 귀족이 된 조선 고위층들이 1910년 11월 부부동반으로 일본을 관광하던 당시의 흑백사진 등을 담은 ‘병합기념 조선사진첩’이나 식민지 시절 조선인들을 감시·탄압했던 경찰들의 자료도 볼 수 있다.

무엇보다 나라를 빼앗긴 시절 민초들의 이야기를 엿볼 수 있다. 1940년 육군지원병에 끌려갔다가 전쟁터에서 소식이 끊겼던 임용택 씨의 사진부터 1945년 징집된 뒤 관동군 자폭특수대에서 훈련받은 이규철 씨의 육필일기 등은 당시 민중의 고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런 자료들은 강제 동원됐던 피해자들의 유족이 직접 기증한 것이다.

이 위원장은 식민지역사박물관의 의의를 해방 후 70년 넘게 계속되고 있는 과거사 청산의 ‘디딤돌’이라고 설명했다.

이 위원장은 “이명박 정부 시절 만든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해방 이후 경제 발전상에만 집중했지, 독립운동의 역사를 소홀히 하고 있다”며 “이번에 개관할 박물관은 식민지 시절의 아픔을 똑바로 알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지향점은 과거를 반성하고, 진실을 밝히고 화해하는 것”이라며 “일본과 친일파들이 반성하도록 하고 이후 화해하자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초대 박물관장 제안을 손사래 치며 거부한 그는 앞으로 박물관이 ‘살아있는’ 곳이 되길 바랐다. 단순한 전시 공간이 아니라 강의도 듣고, 토론도 하는 학습장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위원장은 “해방이라고 식민지의 역사가 끝난 것이 아닌 만큼 자꾸 말로만 떠드는 것보다는 국민이, 특히 청소년들이 많이 알게 해야 한다”며 “기본 성격은 박물관이지만, 참신한 방법으로 식민지 역사를 알리기 위해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식민지역사박물관은 경술국치 108주년을 맞은 이달 29일 문을 연다. 2007년 준비위원회 발족 이후 약 11년 만으로, 공적 자금의 도움 없이 순수하게 일반시민 성금과 자료 기증으로 마련됐다.

[email protected]

<2018-08-14> 연합뉴스

☞기사원문: “시민의 힘으로 세운 식민지역사박물관…살아있는 역사 될 것”

수, 2018/08/15-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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過寒露寄友人

 

霜降丹楓落(상강단풍락)

還鄕與我吟(환향여아음)

爲君新釀酒(위군신양주)

共醉臥空林(공취와공림)

 

寒露를 지나 벗님에게 띄우는 글

 

서리 오고 우수수 단풍도 지면

고향에 돌아와 나와 詩를 읊세

그대 위해 새로 술도 빚었으니

함께 취해 空林에 누워도 보세.

 

<時調로 改譯>

 

霜降에 단풍도 지면 還鄕하여 詩를 읊세

그대 벗님을 위하여 새로 술도 빚었으니

둘이서 함께 취하여 空林에 누워도 보세.

 

*友人: 벗 *霜降: 이십사절기(二十四節氣)의 하나. 한로(寒露)와 입동(立冬) 사이

들며, 아침과 저녁의 기온이 내려가고, 서리가 내리기 시작할 무렵이다. 10월

23일경이다  *還鄕: 고향(故鄕)으로  돌아옴  *釀酒: 술을 빚어서 담금. 온양(醞釀)

*空林: 나뭇잎이 떨어져 공허한 숲. 또는 인가(人家)에서 멀리 떨어진 한적한 숲.

 

<2018.10.12, 이우식 지음>

토, 2018/10/13-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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