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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도 친일파와 묻히기 원치 않아”…효창공원 묘소이장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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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도 친일파와 묻히기 원치 않아”…효창공원 묘소이장 논란

익명 (미확인) | 토, 2018/03/03- 02:31

민주당 민주연구원 국립현충원 이장 추진
“친일인사와 함께 모실 수 없다” 반대 거세

▲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가 25일 오후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내 독립운동열사 7위선열의 사당인 의열사를 찾아 참배하고 있다. (문재인 캠프 제공)2017.3.25/뉴스1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일본 관동군 헌병으로 복무하며 독립투사 소탕에 앞장섰던 김창룡(1902~1956)은 대전 국립현충원에 묻혀 있다. 바로 맞은편 묘역에는 백범 김구 선생(1876~1949)의 모친 곽낙원 여사(1858~1939)와 장남 김인(1917~1945)이 잠들어 있다. 친일논란 대상인데다 백범 암살사건의 배후라는 의혹을 받는 인물과 독립투사의 유족이 마주보고 있는 셈이다.

더불어민주당이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김구 선생의 묘소를 국립현충원으로 이장한다는 구상을 밝히면서 비슷한 우려가 나온다. 민주당 민주연구원의 김민석 원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다는 의미에서 효창공원에 안장된 김구 선생과 윤봉길·이봉창·안중근 열사를 국립현충원으로 이장을 추진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도 2017년 8월15일 광복절에 효창공원을 직접 찾아 참배해 임정 법통을 강조한 바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에 따르면 현재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친일인사는 서울에 37명, 대전에 26명이다. 2009년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결과, 친일반민족 행위자로 규정된 인물 중에는 서울에 7명, 대전에 4명이 묻혔다. 이 때문에 친일인사의 이장을 위해 국립묘지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은 “여당이 임시정부 주석을 예우하기 위해 고민한다는 건 일리가 있다”면서도 “김창룡을 비롯해 친일인사들이 국립현충원에 남아있는데 그곳에 백범을 모시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반문했다.

박 실장은 “역사적폐 청산 차원에서도 친일독재를 반대한 민족인사를 반민족인사와 함께 모신다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이장 반대의사를 밝혔다.

김구 선생은 생전 자신이 세상을 떠나면 효창공원 독립운동 동지들 곁에 묻어달라는 유훈을 남겼다. 현재 효창공원에는 김구 선생 외에도 항일투쟁 중 순국한 윤봉길(1908~1932), 이봉창(1901~1932), 백정기(1896~1934) 3의사의 묘소와 유해를 찾지못한 안중근 의사(1879~1910)의 가묘도 설치됐다. 이동녕(1869~1940), 조성환(1875~1948), 차이석(1881~1945) 선생 등 임시정부 요인의 묘소도 있다. 이는 모두 김구 선생이 해방 후 직접 조성해 의미가 크다.

이장보다는 현재 효창공원을 성역화하는 게 독립운동가들을 기리는 합당한 예우라는 지적도 있다. 친일인사가 섞여있는 현충원보다 독립투사들만으로 조성된 효창공원이 역사적 성지로서 더욱 상징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승만, 박정희 정권 시절에는 출입이 제한되고 일부 부지가 훼손되는 등 굴곡진 현대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지금 효창공원은 국립묘지가 아닌 사적과 근린공원의 법적 지위로 용산구가 관리 중이다.

친일문제 전문가 정운현씨는 “효창공원은 역사성이 있고 백범기념관도 함께 운영 중이라는 가치도 있다. 백범도 땅속에서 이장을 원치않을 것”이라며 “효창공원을 국립묘지로 승격해 중앙정부 차원에서 예우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nevermind@

<2018-03-01> 뉴스1

☞기사원문: “백범도 친일파와 묻히기 원치 않아”…효창공원 묘소이장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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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는 ‘식민지역사박물관’ 35

 

“찌는 듯이 무더운 남방에서는 아귀 같은 미국과 영국을 쳐물리기 위한 싸움이 매일같이 계속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조선의 더위쯤은 문제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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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반회보 뒷면>

 

이번에 소개할 자료는 1943년 8월 1일, 국민 총력조선연맹에서 발간한 제32호 애국반 회보 다. 애국반 회보는 1941년 9월 인가를 받아 매 월 1일에 발행되던 간행물로 내용은 전시상황 에서 후방은 어떻게 생활할 것인가에 맞춰져 있다. 특히 32호는 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8월에 발행한 것으로 주요 기사의 내용도 여름 철 후방의 전시준비태세에 관한 것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더위에 지지 말고 몸 을 튼튼히 해서 근로보국에 힘씁시다’에서 한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더 덥게 느껴지니 더위를 잊기 위해 열심히 일해야 하며, 전투 중 인 병정들을 생각하면 덥다는 생각조차도 하 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래도 몸이 약하면 더 위에 지게 되니 몸을 튼튼하게 하기 위한 방법 으로 ‘신사나 절, 공원을 청소’, ‘개천이나 하수 도, 농촌이나 공장에 근로봉사’, ‘5리쯤 되는 데 는 걸어 다닐 것’ 등을 소개한다. ‘전시살림은 이러케!’에서는 전쟁은 제일선의 병사들만 싸우는 것이 아니라 가정, 일터, 거리 등 싸움터가 아닌 곳이 없으며 특히 부엌에서 밥 지어 먹는 것도 ‘전쟁의 일부분’이라는 생각으로 생 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싸움터에서 살아남기 위해 생활전선에서는 일찍 자고 일찍 일 어나고 지각과 결근하지 말라고 선동한다. 저금은 나라의 힘이며 시중에 돈이 돌지 않게 되면 물 건값도 올라가지 않고 살림살이도 안정되며 결국 이는 집안이 부자가 되는 것이고 곧 나라가 부 자가 된다는 이해할 수 없는 논리로 각 가정에 강제저축을 독려했다. 또한 옷감을 만들기 위해 쓰는 양잿물을 화약으로 만들면 대포알 630만 발, 총알 17억 7천 8백 만 알이나 되니 각 가정에서는 헌 옷을 고쳐 쓰고, 애국반원끼리 돌려가며 나눠 쓰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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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반회보 앞면>

특히 ‘언제나 전장에 나간 병사와 갓튼 생각으로’에서는 화려한 옷을 입지 말고 ‘미국과 영국식 옷차림을 좋아하는 자는 우리의 원수’라고 지칭하며 전시 물자절약을 ‘전쟁승리’와 ‘애국’으로 포장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들의 날은 왓다 징병준비는 다되엿슴니까’에서는 곧 실시될 징병제에 대해 ‘반도 2천5백만 동포의 감격’으로 칭하며 징병대상자는 호적을 정리하고 국어(일본어)를 배우며, 대상자가 아니더라도 만17세 이상의 남자는 지망하라고 독려하며 조선의 청년들을 일제 침략전쟁의 총알받이로 내몰았다.
마지막으로 “여러분 다 읽으섯거든 뒷면에 있는 그림을 하나식 따로 오려서 눈에 잘 띄이는 곳에 부쳐 두십시요”라는 문구를 따라 회보의 뒷면을 보면 전시생활에서 지켜야 할 일들을 만화와 함께 설명하고 있다. ‘으싸! 결전생활로’라는 구호 아래 일찍 일어나 출근하고 음식을 남기지 말며, 무지각 무결근하고, 옷을 기워 입으며, 출장 갈 때는 각반을 준비해 비상시를 대비하고, 옷소매 폭을 줄여 옷감 낭비를 줄이고, 출정 군인 집이나 그 유가족의 일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애국반’은 전쟁동원을 선전·선동하고 민간인을 일사불란하게 통제할 목적으로 각종 관변기구와 친일단체를 흡수해 조직된 국민총력조선연맹의 최말단 기구로 주민 통제와 조선총독부의 정책 홍보, 물자와 노동력동원 등에 활용되었다. ‘애국반 회보’는 바로 이러한 조선총독부의 시책을 말단 주민조직까지 전달·관철시키는 수단이었다.

∷ 강동민 자료팀장

월, 2017/09/25-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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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년 의의 및 기념사업 추진 방향 연구보고서

0417-3

화, 2018/04/17-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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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의 핵이 없었다면 과연 평창올림픽이 성공할 수 있었을까?

우리민족의 핵이다

남과 북의 함께하는 핵의 위력이 바로 평화의 평창이었던 것이다

 

 

목, 2018/03/15-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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