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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수탈 보여줄 식민지역사박물관 5월 문 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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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수탈 보여줄 식민지역사박물관 5월 문 엽니다”

익명 (미확인) | 금, 2018/03/02- 18:57

[인터뷰] 식민지역사박물관 개관 앞둔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
유물 3만점 등 자료 수백만 건 
청파동 연구소 건물에 전시ㆍ보관
日시민단체 등 각계에서 후원
“식민통치의 실상을 알아야
독립운동의 가치도 드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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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이 5월 식민지역사박물관 상설 전시에서 선보일 3.1운동 검찰 조서를 들고 설명하고 있다. 박 실장은 “단순히 과거를 알기 위한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서로 이해하고 평화를 실현하는 터전으로 가꾸고 싶다”고 말했다. 배우한 기자

“99주년 3ㆍ1절에 새로 공개할 사료는 없습니다.”

27일 서울 용산구 청파동에서 만난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은 단호하게 말했다. 일제강점기 의병장들의 생활상을 기록한 ‘산남창의지’, 이광수 서정주 등 친일파 문인의 친일행각 사진 자료 등 3ㆍ1절이면 의례적으로 친일, 독립 관련 사료를 발표하던 때와는 사뭇 다른 행보다.

친일파 명단 발표나 학술서 발간 행사도 올해는 없다. 박 실장은 “대신 연구소 모든 사력을 식민지역사박물관 개관 준비에 쏟아 붓고 있다”고 덧붙였다.

일제 침략과 수탈의 기록을 소개하는 식민지역사박물관이 5월 문을 연다. 2009년 친일인명사전 편찬에 이은 민족문제연구소의 대형 프로젝트다. 일제 식민지 시대 관련 유물 3만여점, 친일인명사전 편찬과 일본군위안부 집단소송 등에서 모인 수백만 건의 자료가 전시, 보관된다. 박 실장은 “박물관 건립을 위해 지난해 12월 말 연구소를 용산으로 옮겼다. 세계의 홀로코스트 박물관, 인권 박물관 등과 교류하며 시민사회 교류의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연구소가 박물관을 구상한 건 2001년 무렵부터다. “친일인명사전 편찬 작업을 한참 할 때에요. 사전이 만들어진 이후에도 친일파 후손들이 증거 없다, 부정할 거 아니에요. 관련 자료를 수집해 전시할 박물관을 만들어야겠다는 구상이 나왔죠.” 사전 편찬이 마무리된 이듬해인 2010년 박물관 준비위원회가 구성됐고, 2011년 역사관 건립위원회가 발족됐지만 우여곡절을 겪으며 개관은 수차례 미뤄졌다. 다큐멘터리 ‘백년전쟁’(2012) 제작으로 시작된 뉴라이트 역사논쟁,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운동(2013)등이 대표적인 ‘우여곡절’의 사례. 2014년 세월호 침몰 참사 이후 모금 운동도 주춤해졌다. “처음에는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하는 방식과 민간 박물관 개관 두 가지 방식을 두고 고민했습니다. 한데 지자체와 협력하게 되면 아무래도 시민운동의 자율성이 제약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민간 박물관 개관으로 방향을 정했는데 부지 선정부터 쉽지 않았죠. 역사성, 접근성을 다 갖춘 장소는 시세가 비싸 엄두를 못 냈으니까요.”

“사대문 가까운 장소를 1년 반 가까이 조사한 결과” 지난해 상반기 지금의 자리로 부지를 정하며 ‘청량리 시대’에 종지부를 찍었다. 박물관 개관이 미뤄지며 얻게 된 소득도 있다. 2015년 일본 역사ㆍ시민단체 30여곳과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을 결성해 기금을 모았고, 일본 내 식민지 범죄 관련 자료도 다수 기증받았다. 이 단체들과 민족문제연구소 후원자를 포함 2만5,000여명이 십시일반으로 11억여 원을 기부했다. 박 실장은 “식민지 가해국, 피해국 시민이 함께 역사 문제를 고민하게 됐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새로 둥지를 튼 연구소는 연면적 475평, 지상 5층 건물로 1, 2층은 식민지역사박물관 상설ㆍ특별 전시장으로 사용하고 3층은 연구소 사무실, 4층은 수장고, 5층은 교육실로 활용한다. ‘조선총독부와 식민자들’ ‘식민지 일상’ ‘전쟁과 식민지’ ‘한일과거청산운동’ 등 주제로 구성되는 상설 전시에는 연구소가 입수한 사료 200여점을 전시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일제에 충성을 맹세하는 ‘혈서’를 써 군관학교에 입학했다는 만주신문 기사, 기미독립선언서 등 역사적 가치가 높은 자료를 우선 선보인다. 박 실장은 “5월 박물관 개관에 맞춰 미공개 자료 20~30점을 추가로 공개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올 하반기에는 반민특위 구성 70년을 기념한 특별전시도 열 계획이다.

“박물관 명칭을 애초 ‘시민박물관’에서 ‘식민지역사박물관’으로 바꿨습니다. 국내 박물관에서는 독립운동에 관한 사료만 전시돼있어요. 식민통치의 실상을 알 수 있는 식민지 민중생활사를 알아야 독립운동의 가치가 제대로 알려진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3월 중순부터 포털사이트 다음 스토리펀딩을 통해 식민지역사박물관 모금 캠페인을 진행할 예정이다. 김승은 책임연구원은 “8년간 박물관 모금운동에 참여한 2만5,000여명과 펀딩에 참여한 기부자 이름을 박물관 벽그림에 새겨 넣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윤주기자 [email protected]

<2018-03-02> 한국일보

☞기사원문: [인터뷰] 식민지역사박물관 개관 앞둔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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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 2 

기획 제작 등: PD 김세호, 임선화 기록정보팀장, 방은희 교육팀장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2
“우리 역사의 뿌리가 친일독재 세력에 의해 흔들리고 훼손되었습니다.
우리가 지난 겨울 촛불을 들고 싸운 상대는 과연 누구였을까요.
역사적폐의 주범들의 실체와 이들이 저지른 역사범죄의 동기를 파헤쳐보고자 합니다.”

화, 2018/04/03-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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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가(미리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가다)’

일제에 의해 나라를 빼앗긴 식민지시기, 민초들의 삶의 모습을 중심으로 일제 식민통치의 실상, 당시의 제도와 문화를 생동감있게 풀어내고 오늘 우리의 모습과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지 추적합니다.

‘내역사’ 시즌2 – 1회 미식가 “식목일의 기원”

출연 : 이순우, 김영환, 강동민

연출 : 임선화

월, 2018/04/09-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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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내역사)’가 봄개편을 했습니다.

‘내역사’ 시즌2 – 역전다방 “임시정부와 3.1혁명 1편 – 왜 3.1운동이 아니라 3.1혁명인가?”

월, 2018/04/09-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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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보추협’) 2018년도 정기총회가 4월 6일 민족문제연구소 5층 교육장에서 열렸다. 총회개회와 인사 (공동대표 이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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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회 개회와 인사말 (공동대표 이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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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계, 업무 감사보고 (감사 박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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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원사업보고 (공동대표 이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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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보추협’) 2018년도 정기총회가 4월 6일 민족문제연구소 5층 교육장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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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원소개 (운영위원장 최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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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원소개(부회장 김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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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원소개 (부회장 박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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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스쿠니 합사쳘폐소송 보고 (민족문제연구소 대회협력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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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스쿠니 합사철폐소송 보고 (원고 이병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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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임감사 임명 (감사 이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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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원 팔순 축하

월, 2018/04/09-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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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8/04/10-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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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 ‘내역사’ 시즌2 – 비하인드히스토리 “경희대학교의 뿌리 신흥무관학교?” – YouTube

근현대역사 100년 동안 켜켜이 쌓인 역사적폐의 현장을 찾아 그날의 사건을 재구성하고 적폐청산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냅니다.

목, 2018/04/12-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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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8/04/16-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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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8/04/16-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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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역사’ 시즌2: 역전다방 3회 임시정부와 3.1혁명 3편 – 임시정부는 어떤 나라를 세우려고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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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8/04/17-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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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일보 1923년 10월 4일자. 해태상(해치상)이 원래의 위치인 광화문 앞에서 경복궁 안쪽 구석에 옮겨져 거적때기에 둘러쌓인채 방치되고 있다는 기사다.

“오백년 옛 대궐 경복궁 앞에 말없이 쭈그리고 앉아있는 해태(해치)를 보았으리라… 무슨 죄 있어 다리를 동이고 허리를 매어… 궁궐 한편 모퉁이에 결박 당하고 거적 쓴 채로 참혹하게 드러누웠더라.” 광화문 월대 앞에서 경복궁을 지키고 서있던 해치가 궁궐 한편에 쳐박혀있는 몰골을 전한 동아일보 1923년 10월 4일 기사다.

조선부업품공진회 개막에 발맞춰 개통된 전차와 관람객의 동선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광화문 앞의 해치가 철거·이전된 것이다. 거적때기에 쌓여 궁궐 안쪽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초라한 몰골은 식민지 조선의 딱한 처지를 웅변해주었다.

궁궐의 입출구를 구분짓는 월대 앞에 놓인 해치는 일종의 하마비 역할도 했다. 지금부터 궁궐권역이니 말에서 내리라는 표시였다. “1870년(고종 7년)대궐 문에 해치를 세워 한계로 삼았고…조정 신하들은 그 안에서 말을 탈 수 없다”(<고종실록>)는 기사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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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와 문화재청이 발표한 광화문 앞 공간 복원 계획도. 월대와 해치를 복원한 역사광장과 시민들의 공간인 시민광장 등으로 구분되어 있다. 두 공간 사이에 ㄷ 형태의 도로가 예정돼있다.

1924년 10월 조선총독부 정동 분실에서 일어난 불의 원인이 ‘해치상을 치워버린 탓’이라는 등의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이것이 찜찜했던지 일제는 쳐박아두었던 해치상을 조선총독부(중앙청) 뜰 앞에 옮겨놓았다. 지금 광화문 담장 밑에 바짝 붙은 채로 서있는 옹색한 해치상은 1968년 12월 광화문 복원 때 재이전한 것이다. 물론 제자리가 아니다. 광화문 해치는 흔히 ‘불(火)의 산인 관악산의 화기를 막으려고 궁문 앞에 세워놓은 흰돌의 물짐승’으로 알려져 있다. 아마도 이규경(1788~?)이 “해치는 화수(火獸), 즉 불을 먹고 사는 짐승”(<오주연문장전산고>)이라 한데서 유래한 속설일 가능성이 크다.

해치는 또 예부터 시비곡직을 판단하는 신수(神獸)로 알려져 왔다. 후한의 왕충(27~97?)은 “해치는 옥사를 다스릴 때 죄가 있는 사람을 골라 들이받는 속성이 있다”(<논형>)고 기록했다.

역시 후한의 양부가 지은 <이물지>는 “외뿔 짐승인 해치는 싸움이 일어날 때 부정직한 자를 들이받고, 바르지 않는 자를 깨물었다”면서 “전국시대 초나라 법관들은 해치관을 법복으로 삼았다”고 했다. 이후 동양에서 법을 담당하는 관리들은 해치관(冠)이나 해치문양의 관복을 의무적으로 입었다.

요즘의 검찰·감사원에 해당되는 조선시대 사헌부 관리들은 마찬가지였다.

“1796년(정조 20년)사헌부 지평(정 5품)이 해치관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면직됐다”(<정조실록>)는 기록이 등장할 정도다.

해치를 궁궐 앞에 세워둔 까닭은 자명하다. 출퇴근하는 관리들은 해치의 꼬리를 쓰다듬으면서 마음 속 먼지를 털어내고 공명정대한 정사를 다짐하라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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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6~1907년 사이 촬영된 광화문 앞. 해치상과 월대가 보인다. |문화재청 제공

서울시와 문화재청이 10일 맺은 광화문 역사광장 조성 업무협약의 주요내용이 바로 ‘광화문 앞 월대와 해치상의 제자리 찾기’이다.

물론 이순우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의 언급처럼 역사광장(월대·해치)과 시민광장이 ㄷ자형 도로로 양분되는 등의 새로운 문제점도 제기되고 있다.

“광화문 앞 공간을 반드시 광장으로 꾸며야 할 필요가 있느냐”는 근본적인 질문까지 나온다. 깊이있는 토론과 의견 수렴이 뒷받침되지 않는 정책이라면 시대마다, 정권마다 제각각의 복원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모두 일리있는 지적이다.

다만 어떤 경우라도 월대와 해치는 제자리에서 제대로 복원되기를 바란다. 해치의 꼬리를 매만지면서 스스로 마음을 단속하고 시비곡직을 다짐하는 통과의례가 요즘처럼 절실한 때가 또 어디 있는가.<참고자료>

이순우, <광화문 육조 앞길-근대서울의 역사문화공간>, 하늘재, 2012
<테라우치, 조선의 꽃이 되다>, 하늘재, 2004
김언종, ‘해태고’, <한국한문학연구> 제42권 42호, 한국한문학회, 2008
이성준, ‘경복궁 근정전 월대 난간석주상 연구’, <미술사학연구> 272호, 한국미술사학회, 2011

<2018-04-12> 경향신문

☞기사원문: [여적]광화문 해치의 제자리찾기

목, 2018/04/12-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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