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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친일 군인’ 박정희의 건물에 갇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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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친일 군인’ 박정희의 건물에 갇히다

익명 (미확인) | 화, 2018/02/27- 18:10

문화재청 ‘현충사 박정희 친필 현판 존치’ 판단 유감… 숙종 현판이 ‘복원 원칙’에 걸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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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충사 현판 박정희 대통령 친필 현판으로 1967년 걸렸다. ⓒ 구진영

문화재청(청장 김종진)은 지난 21일 문화재위원회 사적분과(위원장 이재범 전 경기대 교수)의 검토 결과에 따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아산 현충사 사당 현판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문화재청이 밝힌 존치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박정희 전 대통령 친필 현판은 숙종 사액 현판을 철거하고 교체 설치한 것이 아니라 성역화 사업 당시 신 사당을 건립할 때 제작·설치하게 된 것’이며 둘째, ‘충무공파 후손들 간에도 서로 의견이 엇갈리고 있으며’ 셋째, ‘1967년 현충사 성역화사업 당시 만들어진 신 사당에 1932년 국민성금으로 건립된 구 사당에 걸려있는 숙종 사액 현판을 떼어내 옮겨 설치하는 것은 그 시대의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는 건물과 현판의 일체성을 훼손’한다는 것이다.

‘원형 복원 원칙’ 무시한 문화재청의 판단

문화재청이 밝힌 박정희 현판 존치 첫째 이유를 반박하기 위해서 우선 ‘광화문 제 모습 찾기’ 사업을 살펴보자. 광화문은 임진왜란(1592년)으로 소실됐다가, 고종 4년(1867년)에 다시 지어졌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 청사가 신축되면서 1926년 해체돼 경복궁 동편인 지금의 국립민속박물관 정문으로 옮겨지면서 원형이 훼손·변형됐다. 그리고 1950년 한국전쟁으로 목조 부분이 불에 타 없어지고 석축만 남게 됐다.

그러다가 박정희의 특별지시로 1968년 12월 원래 자리로 옮겨 다시 지었다. 당시 박정희 정권과 언론들은 이를 두고 ‘복원’이라고 주장했지만 박정희가 새로 쓴 현판을 빼곤 목조였던 누각마저 모조리 콘크리트로 만들면서 당시 미술평론가는 물론 복원에 참여한 인사조차 ‘콘크리트 모조 건축’ ‘콘크리트 모뉴먼트’라고 말했다.

“광화문을 영원히 욕되게 하고 XX을 만들어 버린다”(<경향신문> 1968.3.20)라는 극단적인 평가에도 박정희는 광화문 완공 당시 자신의 친필 현판이 마음에 들지 않자 얼마 후 현판 글씨를 새로 써서 걸었다. 박정희가 문화재와 문화재 복원에 대해 어떻게 인식했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렇듯 박정희의 콘크리트 광화문은 2006년 12월 4일 ‘광화문 제 모습 찾기 선포식’과 더불어 철거될 때까지 38년을 이어오다 2010년 8월 15일 지금의 모습으로 ‘원형 복원’됐다(물론 지금도 광화문이 제대로 원형 복원됐는지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목소리가 여전히 존재한다). 원형 복원 원칙에 따라 ‘콘크리트 모조’ 광화문에 걸렸던 박정희 친필 현판은 19세기 말 중건 당시 훈련대장으로 서사관(書寫官)에 임명돼 광화문 편액을 쓴 임태영의 글씨로 교체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과정에서 문화재청은 <경복궁 영건일기>를 발견해 오랫동안 정학교가 광화문 편액을 썼다는 기존 통설을 수정하는 성과도 냈다. 이렇듯 ‘광화문 제 모습 찾기 사업’은 문화재청이 20년에 걸쳐 끈기 있게 완성한 경복궁 복원정비사업의 마지막 단계였으며 그중에서도 광화문 현판 복원은 화룡점정이라 할 수 있었다.

‘광화문 제 모습 찾기 사업’에서 원형 복원 원칙을 고수했던 문화재청이 왜 현충사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이는지 모르겠다. 1968년 박정희가 만든 광화문과 마찬가지로 현충사 신 사당 역시 박정희가 만든 콘크리트일망정 숙종 사액 현판이 있는 만큼 숙종 현판으로 교체해야 그나마 원형 복원 원칙에 가까운데 말이다. 2008년 소실돼 2013년 모습을 드러낸 숭례문 역시 원형 복원 원칙을 따랐음은 당연하다.

박정희가 새운 신 사당의 역사적 의미가 숙종보다 큰 걸까

문화재청은 박정희 현판 존치의 두 번째 이유로 ‘충무공파 후손들 간에도 서로 의견이 엇갈리고 있음’을 들고 있으나 그것이 왜 존치 이유가 될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되므로 굳이 반박하지 않겠다.

문화재청의 박정희 현판 존치 세 번째 이유는 ‘1967년 현충사 성역화사업 당시 만들어진 신 사당에 1932년 국민성금으로 건립된 구 사당에 걸려있는 숙종 사액 현판을 떼어내 옮겨 설치하는 것은 그 시대의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는 건물과 현판의 일체성을 훼손’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제강점기인 1932년 건립된 현충사 구 사당에 걸려 있는 조선시대 임금인 숙종 현판도 ‘건물과 현판의 일체성을 훼손’하고 있으므로 떼어내야 할까. 숙종 대인 1707년에 처음 세워진, 300년이 넘는 현충사 구 사당의 역사적 의미보다 1968년 박정희가 세운 불과 50년의 신 사당의 역사적 의미가 더욱 크다는 것에 동의하기 어렵다.

‘박정희의 역사를 남겨야 한다’는 의지가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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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충사 현판 1707년 숙종이 사액한 현판의 모습 ⓒ 구진영

300년 역사를 지닌 현충사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서는 숙종 사액 현판은 더욱 값지다. 서울 탑골공원 정문인 삼일문 현판은 서예가인 일중 김충현의 글씨가 걸려 있던 것을 1967년 12월 중수 준공식을 하면서 박정희의 친필 현판으로 교체됐다. 그러다 2003년 독립선언서 서체를 이용한 현재의 현판으로 교체됐다. 삼일문은 박정희가 1967년 중수한 그대로였지만 지금의 현판은 삼일운동의 발상지인 탑골공원의 정신을 담아 독립선언서 서체로 새로 만든 것이다. 삼일문의 경우에서 보듯 문화재청의 주장처럼 ‘건물과 현판의 일체성’은 영원불멸의 원칙은 아니다.

문화재청이 제시한 현충사 박정희 현판 존치의 세 가지 이유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현재의 현충사는 박정희가 심혈을 기울여 조성한 곳이니 그 어떤 것도 개입할 여지가 없이 온전히 박정희의 역사를 그곳에 남겨야 한다’는 의지가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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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산 현충사 지도. 2만여 조선 민중이 뜻을 모아 세운 구 현충사(빨간색 동그라미)는 배변감을 느껴 화장실에 갈 때만 볼 수 있는 처지다. 파란색 동그라미 안의 현충사는 박정희가 1967년 성역화작업 당시 세웠다. ⓒ 문화재청 현충사관리소

당대 최고의 명필로 인정받는 숙종이 일필휘지로 써내려간 힘찬 필치의 현충사 현판은 문화재청 관계자들의 눈에는 박정희가 조성해 놓은 현충사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숙종 현판이 걸려있는 구 사당은 박정희가 조성한 충무문-홍살문-충의문-현충사(신 사당)로 이어지는 중심축에서 벗어나 화장실 옆에 놓여 있는 처량한 신세다(이기환, ‘현충사, 꼭 박정희 현판이어야 하나’, 이기환의 역사흔적, 2018.2.8, leekihwan.khan.kr).

1932년 경매로 일본인에게 넘어갈 위기에 처한 이충무공 묘소의 위토(位土, 제사 등과 관련한 비용 충당을 위해 마련한 토지)를 성금을 모아 지켜내고 현충사(구 사당)를 중건했던 당시 2만여 명의 조선 민중들의 역사는 1968년 박정희의 현충사(신 사당)에 밀려 이제는 배변감을 느껴 화장실에 가야만 비로소 엿보게 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충무문, 충의문 현판 역시 박정희가 썼다. 박정희는 1967년 신축 당시에는 한자로 ‘顯忠祠’ 현판을 걸었다가 1973년 지금의 한글 ‘현충사’ 현판으로 다시 걸었다. 광화문 현판을 두 번이나 다시 써서 걸었던 것처럼 말이다).

현충사에 공 들인 박정희, 그의 속내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현충사 신구 사당을 모두 살펴본 사람이라면 현충사가 ‘이순신 사당이 아닌 박정희 사당’으로 느껴진다는 평가에 어느 정도 동의할 것이다. 실제로 박정희는 2만여 명이 운집한 1967년 4월 28일 현충사 성역화사업 준공식 기념사에서 “수구 파쟁 시기 모략 아집 단견 무정견 등 전근대적이고 비생산적인 요소들이 이 나라의 새 역사 창조의 국민대열을 가로막고 있다”라면서 준공식 기념사로는 다소 어색한 발언을 했다.

이날은 당시 야당이던 신민당 후보로 아산이 고향인 윤보선과 맞선 대통령 선거일을 불과 5일을 앞둔 날이었다. 박정희 공화당 후보는 현충사에서 야당을 공격하는 일종의 선거유세를 했던 것이다. 이미 여러 연구에서 1965년 한일협정 이후 현충사를 비롯해 박정희 정권이 진행한 이른 바 성역화사업은 정권 유지를 위한 정당화 작업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현충사 성역화사업은 박정희가 이순신의 반일 이미지를 통해 자신의 친일 이미지 희석화하고, 이순신의 구국영웅적인 이미지를 통해 군인출신 대통령의 통치를 합리화하며, 이순신과 자신을 동일시하여 권력을 정당화했다.” – 전재호, ‘반동적 근대주의자 박정희’, 2000, 책세상 / 이상록, ‘민족의 수호신’ 만들기와 박정희체제의 대중규율화, 2004, 휴머니스트

“현충사 성역화사업의 계기는 한일협정이 제공했지만, 그 방향은 결코 반일에 있지 않았다. 즉 현충사 성역화사업의 결과로 만들어진 현충사는 반북이데올로기의 선전장, 반정부세력의 성토장, 그리고 투철한 국가관 확립을 위한 국민정신교육 도장이었던 셈이다.” – 은정태, ‘박정희시대 성역화사업의 추이와 성격’, 2005, 역사문제연구

실제로 1974년 4월부터 현충사 경역 내에 1만 평이 넘는 충무교육원이 개원돼, 학생·교원·일반 사회인사 등을 대상으로 한 정신교육과 훈련활동 프로그램이 마련됐는데 이곳에서는 중고생, 교육공무원·교수·서장·새마을운동 지도자 등을 대상으로 국민교육헌장 이념, 새마을정신교육, 유신이념, 반공・안보 교육으로 가득 채웠다(은정태, 2005). 한마디로 박정희가 충무공 정신을 빙자해 현충사를 정권 홍보의 교육장으로 활용했다는 것이다.

전국 각지에 퍼져 있는 ‘박정희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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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3년 현충사의 모습 구 현충사에서 행사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이때는 박정희 성역화 작업 전으로 건물에 숙종 사액 현판이 걸려있는 게 보인다. ⓒ 국가기록원

<박정희 사상 서설>(정재경, 집문당, 1997)에 의하면 박정희가 직접 쓴 휘호는 1962년 1월 1일 ‘革命完遂'(혁명완수)를 시작으로 사망 당일인 1979년 10월 26일 ‘삽교천 유역 농업개발 기념탑’ 휘호까지 모두 647점에 이른다. “현충사 성역화사업이야말로 공장을 몇십 개 몇백 개 세우는 것보다 더 큰 민족적 의미를 갖는 것”이라고 역설하면서 성역화사업을 정권 유지의 수단으로 최대한 활용했던 박정희였던 만큼 그의 글씨들은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 중에서 가장 많은 곳에 현판과 금석문 등으로 남아있다.

현판으로는 <홍지문> <義節祠>(의절사) <忠烈祠>(충렬사) <육신사> <세종전> <훈민문> <文成祠>(문성사) <孤峯祠>(고봉사) 등이 있고, 이외에도 20여개가 더 남아 있다(장학진, ‘역대 대통령의 묵적 연구’, 원광대 동양학대학원 석사논문, 2016).

현판 외에도 건축물, 다리, 도로, 터널, 기념탑, 호수, 비문 등에 남겨진 박정희 글씨는 차고도 넘친다. 전 국토와 문화재를 자신의 화선지로 여겼던 박정희가 남겨놓은 흔적이 너무도 많기에 이들 모두를 없애자거나 교체하자는 주장은 하지 않겠다.

다만 수많은 문화재와 역사적 경관에 덧칠해져 있는 박정희와 박정희 시대의 정신이 원래 그 문화재와 역사적 경관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왜곡하거나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지향하는 보편적 가치와 충돌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예상컨대 이번 문화재청의 존치 결정으로 박정희 현판 교체 여론은 더욱 비등할 것이다. 문화재청은 이번 결정을 재고하고 박정희 현판을 현충사 내 충무공이순신기념관에 보관·전시하는 방안 등을 적극 검토하기를 바란다.

끝으로 박정희 현판을 대신해 숙종 사액 현판을 옮겨 설치하면 박정희 시대의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는 건물과 현판의 일체성을 훼손한다고 노심초사하는 문화재위원회 사적분과 위원들이 있는 한, 이순신 장군의 정신은 우리 시대와 교감하지 못하고 반세기가 넘도록 친일 군인이 만든 콘크리트 사당과 친일 화가가 그린 표준 영정에 갇혀 질식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방학진씨는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입니다. 이 기사는 뉴스퍼블리카에도 중복해서 게재됐습니다.

글: 방학진(vacationji) 편집: 김지현(diediedie)

<2018-02-27>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이순신, ‘친일 군인’ 박정희의 건물에 갇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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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김정은 위원장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70년이 넘는 분단의 시간 동안 자본주의가 잠식한 신자유주의를 추구하는 이남에서 살아가는 대부분의 민중들에게는 반북, 반공 이데올로기 사상으로 이북과의 대결과 반목이 강요된 사회 구조를 가지고 있다.

 

친일 잔존 세력들이 친미주의자로 둔갑하여 정치, 군사, 경제, 정보기관, 문화예술, 학계 등 곳곳으로 침투되어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충성을 다하는 분단적폐 세력으로 또아리를 틀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이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자리잡고 있으면서 미국을 고무찬양, 숭배하고 분단을 유지시켜 미국의 배를 불리는 민족반역의 사회 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들 중 일부는 자신의 삶과 행동이 분단적폐의 효과를 내며, 미국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지 조차 인식 못하는 가련한 삶을 사는 존재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세상은 완전히 변했다.

 

전 세계가 전변하고 있고, 이남사회가 들썩이고 있다. 바로 이북에 대한 객관적이며 현실적인 평가와 판단이 하나 둘씩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습이니 인권이니 떠들어대던 분단적폐들의 목소리를 일소시키는 생생한 장면들이 최근 전 세계로, 이남으로 급속도로 퍼져나가고 있다.

 

4. 27 판문점 선언의 과정과 6.12 북미정상회담의 과정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면서 누구나 할 것 없이 왜곡과 편견이 없이 이북 사회를 아주 조금이나마 경험한 것의 결과다.

 

김정은 위원장의 진정성 넘치며 예의바른 배려에서 느껴지는 겸손한 언행, 연출과 조작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유머감각과 진중함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움, 언제나 이북의 인민들과 이남의 민중들 그리고 미국민들, 세계인류까지 생각하는 원대한 구상에 대한 과감한 결단력을 우리는 본 것이다.

 

10만명이 집단체조를 하면서 한치의 오차를 허용하지 않는 ‘아리랑’ 공연이 어떻게 가능한가? ICBM과 SLBM이 단 한번에 성공해내는 힘은 어디에 있는가?

 

사랑과 정이 넘치는 곳, 국가 최고지도자가 인민들을 위해 멸사복무하겠단 마음으로 헌신하는 곳, 불의와 부정의 그리고 민족배반 행위에 대해서는 한치의 오점도 용납하지 않는 민족 자부심과 양심이 바로선 곳, 자신의 이름은 드러내기보단 조국과 민족을 위해 밑거름이 되고자하는 곳이 바로 이북 사회의 진짜 모습이다.

 

이런 사회가 최고지도자로부터 전당 전인민이 하나의 마음으로 똘똘뭉쳐진 사회가 바로 이북인 것이다.

 

이북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해 지금껏 있어온 편견을 걷어치우자. 이것은 바로 분단적폐들이 우리의 눈과 귀를 가리고 우리들의 마음에 분단의 장막을 씌워둔 것이다.

 

세상이 주목하며 우러러보는 김정은 위원장의 진가를 몰라본다면 우리는 아마 친미를 일삼는 분단적폐세력들의 손아귀(그 배후에 있는 미국에게)에서 남은 생을 마감하는 비참한 운명을 맞이할 것이다.

 

중대한 변화로 가득한 한반도에서 모든 진보주의자들은 명심하자.

세상은 지금 김정은 위원장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으며, 그 힘의 원천은 핵무기보다 강력한 이북의 ‘혼연일체, 일심단결’에 있다는 것을 알자.

 

이북에서는 김정은 위원장을 중심으로 하는 일심단결의 힘으로 세계를 움직인다면, 이남에서는 민족대단결의 정신으로 무장하여 분단적폐를 청산하고 미국으로부터 자주로운 나라로 거듭나자.

 

이것이 평화이자 번영이며 통일이다!

 

 

토, 2018/07/14-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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悖鄕(패향)

 

小人懷大志(소인회대지)

癡者說儒經(치자설유경)

逆竪云忠孝(역수운충효)

狂夫促覺醒(광부촉각성)

 

風紀 문란한 고을

 

도량 좁은 사람이 大志를 품었고

어리석은 者가 儒家의 經 논하네

도리에 어긋난 놈 충효 운운하고

미친 사내 정신 차리길 재촉하네.

 

<時調로 改譯>

 

小人이 大志 품고 癡者가 儒經 논하네

도리에 어긋난 놈이 충과 효 운운하고

오호라! 미친 사내가 각성을 재촉하네.

 

*悖鄕: 못된  사람들이  살아 風紀가  고약한  시골.  인륜에  어그러지는  일이  많이

일어나는, 풍기가  문란한  고을 *大志: 마음에 품은 큰 뜻. ≒홍지(鴻志) *癡者:

치인(癡人).  치한(癡漢).  어리석고  못난 사람  *儒經: 유서(儒書). 유가서(儒家

書).  유가(儒家)에서  쓰는,  유학(儒學)에  관한  *逆竪: 도리에  어긋난  짓을

하는  고약한  사람  *狂夫: 미친 사내 *覺醒: 깨어 정신을 차림. 醒覺. 깨달아 앎.

 

<2018.7.14, 이우식 지음>

토, 2018/07/14-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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謹告韓國古典飜譯院

 

或此難於作(혹차난어작)

衆人語不輕(중인어불경)

村儒嘲誤譯(촌유조오역)

盡力免苛評(진력면가평)

 

한국고전번역원에 삼가 아룀

 

或 이것은 짓기보다도 더 어려워

많은 이들이 가볍지 않다 말하네

시골 사는 선비 誤譯을 조롱하니

힘을 다해 가혹한 비평 면하소서.

 

<時調로 改譯>

 

或 짓기보다 어려워 가볍지 아니하네

시골에 사는 선비가 誤譯을 조롱하니

모쪼록 힘을 다하여 혹평을 면하소서.

 

*衆人: 뭇사람 *不輕: 가볍지 않음 *村儒: 시골에 사는  선비  *誤譯: 잘못 번역함. 

또는 잘못된 번역 *盡力: 있는 힘을 다함. 또는 낼 수 있는 모든 힘. 갈력(竭力).

사력(肆力). 기력(盡其力) *苛評: 가혹(苛酷)하게 비평함. 또는 그러한 비평.

 

<2018.7.15, 이우식 지음>

일, 2018/07/15-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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政局(정국)

 

萬猫逢一虎(만묘봉일호)

魄散作悲鳴(백산작비명)

左右無人物(좌우무인물)

當然雜輩爭(당연잡배쟁)

 

정치계의 형편

 

수많은 괭이들, 한 마리 범 만나면

놀라 넋 잃고 비명을 막 지를 텐데

좌우를 돌아봐도 인물이란 없으니

잡된 무리끼리 다툼일랑 마땅하다.

 

<時調로 改譯>

 

수많은 고양이들이 한 마리 범을 만나면

놀라서 넋을 잃고는 비명을 지를 터인데

좌우로 인물 없으니 雜輩 다툼 마땅하다.

 

*魄散: 혼비백산(魂飛魄散).  혼백이  어지러이  흩어진다는 뜻으로, 몹시 놀라

넋을 잃음을 이르는 *悲鳴: 슬피 욺. 또는 그런 울음소리 *雜輩: 잡된 무리.

 

<2018.7.15, 이우식 지음>

일, 2018/07/15-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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賢問愚答(현문우답)

 

敎堂聽說敎(교당청설교)

牧者辱耶蘇(목자욕야소)

訪寺逢僧衆(방사봉승중)

方知佛大愚(방지불대우)

 

똑똑한 물음에 못난 대답

 

예배당에서 설교를 들어 보니

목사는 예수님을 욕되게 하며

절간을 찾아가 중들을 만나니

부처의 大愚 바야흐로 알겠다.

 

<時調로 改譯>

 

목사의 설교 들으니 예수를 욕보이며

절간을 찾아가서 스님들을 만나 보니

부처의 큰 어리석음 바야흐로 알겠다.

 

*賢問愚答: 현명한 물음에 대한 어리석은 대답 *敎堂: 종교 단체 信者들이 모여

예배나 布敎를 하는 집 *說敎: 종교의 교리를 설명함. 또는 그러한 설명 *耶蘇:

‘예수’의 음역어(音譯語) *僧衆: 여러 승려. 승려의 무리 *大愚: 매우 어리석음.

 

<2018.7.15, 이우식 지음>

일, 2018/07/15-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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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는 ‘식민지 역사박물관’ 전시자료 14

제국 홍보의 소품, 시정기념엽서 시리즈

박한용 교육홍보실장

조선총독부는 1910년 이래 매년 10월 1일이면 이른바 시정기념엽서(始政記念葉書, 1920년부터는 5주년 단위)를 발행했다. 조선총독부가 출범하여 식민지 조선에 대한 통치를 처음 펼친 날이 바로 10월 1일이었으므로 이를 기념하려는 목적이었다. 화려한 색채와 다양한 디자인이 어우러진 이 고급 엽서들은 조선의 문화 유산이나 자연풍광을 비롯해 조선 각 지방의 산업 발달 또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 등을 디자인 소재로 삼았다.
‘시정기념’이란 말에 걸맞게 이 엽서들은 식민지 지배의 정당화를 넘어 총독부의 선정(善政)에 의해 미개한 조선이 비약적으로 문명개화했다고 내외에 선전하는 홍보수단 노릇을 톡톡히 했다.
실제 매년 발행된 기념엽서는 대부분 조선 전 분야가 일제에 의해 비약적으로 발달한 것처럼 묘사 하거나, 낙후된 과거 모습과 일제에 의해 ‘근대화된’ 모습의 사진을 나란히 배열하여 한눈에 비교하기 쉽게 디자인되었다. 일제의 대한제국 병탄을 한국인들이 기뻐하고 환영한 것처럼 디자인한 후안무치한 엽서들도 있다. 의도적인 상징 조작과 합성을 통해 그들은 조선인의 실상과 관련이 없는 허구의 ‘낙토(樂土) 식민지’를 이미지로 창출한 것이다.
통신우편수단으로 각광을 받던 이 엽서를 상용하면서 조선인들은 알게 모르게 일제의 지배이데올로기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었다. 시정기념엽서는 통신수단이라는 본연의 기능보다는 제국의 홍보수단이자 민족적 자각과 저항을 잠재우려는 ‘움직이는 마취제’로서 기능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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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총독부시정기념 : 삼한을 정벌했다고 주장하는 신공황후 그림

2 조선총독부시정기념 : 일장기를 든 소녀를 둘러싸고 일본인과 조선인 아이들이 손을 잡고 노는 장면. 뒤쪽에 일본과 한국의 상징인 벚나무와 오얏나무가 함께 그려져 있다.

 

054

3 시정1주년기념 : 배경에 인삼이 개화한 모양 도안. 백운동 식림 1년과 4년 비교 사진 배치

4 시정1주년기념 : 한강 철교, 죽도 등대, 광량만 염전, 인천 수도 수원지 사진 삽입

5 시정2주년기념 : 구식 서당과 신식 학교 비교 사진. 일본 다이쇼천황 상중이라는 이유로 검은색 바탕 사용

6 시정3주년기념 : 부산 제1잔교와 연락선, 부산우편국, 부산정거장 사진 삽입

7 시정4주년기념 : 일본인 농업이민 주택과 근대식 논농사 사진과 조선인의 재래식 관개 및 제초 방식 그림 대비

8 시정4주년기념 : 조선호텔과 진남포 축항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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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시정5주년기념 : 경성우편국 신축청사 전경

10 시정5주년기념 : 군산항에 쌓인 쌀가마니와 목포항의 면화 집
하 장면 사진과 관련 통계

11 시정6주년기념 : 전북 임익수리조합과 평북 태천관개 사업 관련 사진 배치, 여백에는 수차와 흰닭을 그림

12 시정6주년기념 : 동아연초공장과 조선피혁공장 사진, 배경에 담배꽃, 담뱃대 등을 그림

13 시정7주년기념 : 하세가와 총독의 초상을 도라지꽃으로 감싸고, 그 아래 용산총독관저는 국화, 월계수와 총독부 상징인 오동나무꽃으로 꾸밈

14 시정8주년기념 : 황해도 겸이포 미쓰비시제철소 전경과 용광로 등의 사진 삽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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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시정8주년기념 : 대정수리조합 취수구과 수로 사진. 해당지역 지도를 바탕으로 구성

16 시정9주년기념 : 동해 횡단항로를 사용하는 선박 다테가미마루(立神丸), 청진항에서 일본으로 보내지는 콩과 성진항에서 일본으로 실려가는 소 사진 실림. 배경은 동해 횡단항로도

17 시정9주년기념 : 은사수산경성제사장(恩賜授産京城製絲場)과 총독부제생원 맹아교육 장면. 뽕잎, 누에, 국화와 오동나무꽃을 배경으로 그림

18 시정10주년기념 : 평북 신의주 조선제지회사와 평남 승호리 오노다세멘트제조주식회사 평양지사 공장 전경

19 시정10주년기념 : 한강 인도교를 배경으로 사이토 총독과 미즈노 정무총감의 초상 배치

20 시정15주년기념 : 이왕가 수견식(收繭式)과 누에고치 모양의 테두리 안에 경성제사장 사진 삽입

월, 2018/07/16-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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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有名牧師

 

莫語從神意(막어종신의)

衆知幾度違(중지기도위)

平生貪貨色(평생탐화색)

不愧仰天祈(불괴앙천기)

 

이름난 목사에게 띄우는 글

 

神의 뜻을 따른다고 말하지 말게

몇 번이나 어겼는지 뭇사람 아네

한평생 돈과 또 女色 탐했으면서

부끄러워 않고 하늘 우러러 비네.

 

<時調로 改譯>

 

神意일랑 말 말게 뭇사람이 어김 아네

돈과 또 女色 따위 한평생 탐했으면서

부끄럼 하나도 없이 하늘 우러러 비네.

 

*神意: 神의 뜻 *貨色: 재색(財色). 재물과 여색(女色) *仰天: 하늘을 우러러봄.

 

<2018.7.16, 이우식 지음>

월, 2018/07/16-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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笑自稱莊老道通者

 

問汝知莊老(문여지장로)

焉輕孔孟言(언경공맹언)

危人危己者(위인위기자)

閉口速歸源(폐구속귀원)

 

스스로 莊子와 老子에 도통했다고 일컫는 者를 비웃다

 

네게 묻노니 莊子와 老子 아는가

孔子와 孟子의 말씀 어찌 깔보나

타인과 자신을 위태롭게 하는 者

입 닫고 빨리 근원으로 돌아가라.

 

<時調로 改譯>

 

莊子와 老子 아는가 孔孟 말씀 왜 깔보나

타인과 또한 자신을 썩 위태롭게 하는 者

신속히 그 입 꽉 닫고 근원으로 돌아가라.

 

*莊老: 장자(莊子) 노자(老子) *孔孟: 공자(孔子)와 맹자(孟子) *閉口: 입을 다묾.

 

<2018.7.16, 이우식 지음>

월, 2018/07/16-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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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雲里(백운리)

 

暫且望雲變(잠차망운변)

能知所以名(능지소이명)

每峯奇別界(매봉기별계)

爲客築宮城(위객축궁성)

 

흰 구름 마을에서

 

잠시 구름의 변하는 모습 보자니

이름을 붙인 까닭일랑 알 만하다

솟은 봉우리마다 썩 기이한 別界

나그네 위하여 궁궐도 쌓고 있다.

 

<時調로 改譯>

 

구름의 변모 보자니 命名 까닭 알겠다

저기 솟아난 峯마다 매우 기이한 別界

지나는 나그네 위해 궁궐도 쌓고 있다.

 

*白雲: 색깔이 흰 구름  *暫且: 잠시(暫時)  *所以: 까닭  *築城: 城을  쌓음 *宮城:

궁궐(宮闕). 궁궐을  둘러 싼 성벽. 궁장(宮牆). 금성(禁城). 봉성(鳳城). 朱闕.

 

<2018.7.16, 이우식 지음>

월, 2018/07/16-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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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제11회 강만길연구지원금 수여식

제11회 강만길연구지원금 수여식이 5월 18일 금요일 오후 6시 숙명여대 100주년기념관 7층 한상은라운지에서 각계인사 8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열렸다. 강만길연구지원금은 신진 학자들의 도전적 탐구정신을 격려하고 한국 근현대사 연구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2007년 제정되었다. 수여식은 함세웅 이사장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서중석 성균관대 명예교수의 수령자 발표, 지원금 수여, 최덕수 고려대 교수, 김도형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의 축사, 수령자의 소감연설 순으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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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심사대상은 2016년 8월과 2017년 2월에 수여된 17편의 한국근현대사 관련 박사학위논문으로 2월 20일 예비심사를 거쳐 4월 9일 심사위원회에서 유바다 고려대학교 한국사학미래인재양성사업단 연구교수의 「19세기 후반 조선의 국제법적 지위에 관한 연구」가 최종 선정되었다. 심사위원장인 서중석 성균관대 명예교수를 비롯하여 지수걸 공주대 교수, 최기영 서강대 교수가 심사위원으로, 조재곤 동국대 교수, 장영숙 상명대 교수, 한모니까 카톨릭대 교수, 김태우 외국어대 교수가 예비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수령자인 유바다 박사의 「19세기 후반 조선의 국제법적 지위에 관한 연구」는 그간의 국제법적 연구와 만국공법의 이해를 넘어서는 수준의 연구로서 한국사와 국제법 연구자들에게 주목받는 주장을 펼쳤다. 또한 국내외 많은 자료를 수집하여 그동안 등한시해 온 당대 유럽의 상황을 보여주는 자료들까지 확보하여 분석했다는 점이 높이 평가되었다. 앞으로 개항 이후 조선의 국제법적인 지위에 관한 활발한 연구와 논쟁이 전개될 것으로 기대된다.

• 김혜영 연구원

월, 2018/07/02-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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最低賃金引上

 

如何零細業(여하영세업)

店主用人難(점주용인난)

氣盡呼妻子(기진호처자)

無能固未安(무능고미안)

 

최저 임금 인상에 대해

 

영세한 사업은 과연 어떻겠는가

가게 주인, 사람 쓰기 쉽지 않네

기진맥진하여 妻와 자식 부르니

무능함에 대하여 정말 미안하네.

 

<時調로 改譯>

 

영세업 어떠한가 사람 쓰기 어렵다네

기운이 떨어져서 妻와 자식을 부르니

家長의 무능에 대해 정말로 미안하네.

 

*零細: 작고 가늘어 변변하지 못함. 살림이 보잘것없고 몹시 가난함 *店主:

가게 주인 *用人: 사람을 씀. 또는 그 사람 *氣盡: 기운이 다해 힘이 없어짐.

 

<2018.7.16, 이우식 지음>

월, 2018/07/16-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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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道(천도)

 

凶徒爲大富(흉도위대부)

善類豈貧寒(선류기빈한)

或者云天道(혹자운천도)

牛嘲犬馬嘆(우조견마탄)

 

하늘의 道

 

흉악한 무리는 큰 富者가 되는데

착한 무리 왜 가난하고 쓸쓸한가

어떤 者가 하늘의 道를 운운하니

소는 비웃고 개와 말은 탄식한다.

 

<時調로 改譯>

 

凶徒는 大富 되는데 善類는 빈한하네

어떤 者 하늘의 道 어쩌구저쩌구하니

마침내 소는 비웃고 犬馬는 탄식한다.

 

*凶徒: 흉당(凶黨). 사납고 흉악한 무리 *大富: 큰 富者 *善類: 착한 무리 *貧寒:

살림이 가난해 집안이 쓸쓸함 *或者: 어떤 사람 *犬馬: 개와 말을 아울러 이름.

 

<2018.7.17, 이우식 지음>

화, 2018/07/17-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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崇錢庵住持逐客乃笑吟

 

執着奚如此(집착해여차)

無非暫借錢(무비잠차전)

紅樓恒不惜(홍루항불석)

向客放揮鞭(향객방휘편)

 

崇錢庵의 住持가 나그네를 내쫓기에 웃으며 읊다

 

집착하심이 어찌 이와도 같은고

잠시 동안 빌린 돈 아닌 게 없네

妓樓에서는 늘 아끼지 않으면서

나그네에겐 채찍을 막 휘두르네.

 

<時調로 改譯>

 

집착 어찌 이런고 빌린 돈 아닌 게 없네

아가씨 술집에서는 늘 아끼지 않으면서

가련한 나그네에겐 채찍을 막 휘두르네.

 

*逐客: 손님을  푸대접하여  쫓아냄  *如此: 이러함  *無非: 그러하지  않은  것이

없이 모두 *暫借: 잠시 동안 빌림 *借錢: 차금(借金). 돈을 꾸어 옴. 또는 그 돈

*紅樓: 기루(妓樓). 창루(娼樓). 娼妓를 두고 영업하는 집 *不惜: 아끼지 않음.

 

<2018.7.17, 이우식 지음>

화, 2018/07/17-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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好酒貪色友

 

糟糠情久久(조강정구구)

妓女愛由錢(기녀애유전)

盡信其言約(진신기언약)

嗚呼賣石田(오호매석전)

 

술 좋아하고 女色 탐내는 벗

 

조강지처 情이란 오래가는 것이나

妓女의 사랑은 돈에서 비롯되는데

그 말약속일랑 신뢰하기를 다하여

오호! 저 돌밭도 그만 팔아 버렸네.

 

<時調로 改譯>

 

조강지처와 달리 妓女 사랑 곧 돈인데

그 거짓된 언약 따위 신뢰하길 다하여

오호라! 돌밭마저도 그만 팔아 버렸네.

 

*好酒:  술을  좋아함  *貪色:  호색(好色).  女色을  몹시  좋아함  *糟糠:  지게미와

쌀겨라는  뜻으로,  가난한 사람이 먹는 변변치 못한 음식을 이르는 말. 조강

지처(糟糠之妻) *久久: 기간이 *言約: 말로 약속함. 그런 약속 *石田: 돌밭.

 

<2018.7.17, 이우식 지음>

화, 2018/07/17-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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