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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청산위] 제주도 4·3 평화기행 후기 _ 성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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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청산위] 제주도 4·3 평화기행 후기 _ 성유리

익명 (미확인) | 화, 2018/02/27- 15:28

제주도, 그 곳에서 발견한 학살과 고통의 흔적

성유리(김인숙회원의 자녀)

입시가 끝난 후, 엄마의 권유에 따라 제주평화기행이라는 프로그램에 등록했다.

사회와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건조해지지 않도록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가게 된 제주 평화기행은 내 생각과 달리 엄마와 나와 둘이 함께하는 프로그램이 아니었고, 얼 결에 민변 과거사위 분들과 함께 이행하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내가 알고있던 4.3사건이란

내가 제주 4.3사건을 가장 최근에 들은 것은 지나가듯 얼핏 본 알쓸신잡의 한 장면에서였다.

4.3사건이라는 명칭과 순이삼촌이라는 소설의 제목을 들었다. 딱 그 정도의 익숙함이었고, 그 프로그램 또한 마저 보지 않은 탓에 4.3사건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

‘대규모 학살에 가까운 살인이 있었다, 그 규모는 몇십에서 몇백에 이른다’

이 정도의 설익은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 탓에 처음 버스에 오르고 배부 받은 안내 책자를 읽었을 때, 큰 충격에 빠졌다.

‘남북전쟁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사건’이라는 표현이 주는 가늠할 수 없는 규모에 당황했다. 그렇게 많은 사상자가 생긴 사건을 나는 왜 모르고 있을까? 내가 이 정도로 무지한 걸까?

그 정도의 규모의 사건이라면 대한민국에 이 사건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 없어야 하는 것 아닐까?

주위의 사람들 여럿에게 이 사건에 대하여 아는 바가 있는지 물었다. 다들 똑똑하고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며 공부하는 사람들이었다.

규모를 1만 명 이상으로 대답한 사람은 1명, 6만 명 이상으로 대답한 국사를 전공한 사람 1명을 제외하고는 나와 같이 이 사건의 규모에 대하여 현실의 반의반만큼도 알고 있지 못했다.

4.3사건은 4.3일 하루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 약 7여년에 걸쳐 1947. 3. 1~1954. 9. 21 대대적으로 일어난 민간인 학살사건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일부 희생자들끼리의 이념 대립 또한 있겠으나, 가장 많은 희생자는 아무것도 모르는 민간인이었고 이들이 민간이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아는 것이 큰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민간인 희생자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하고자 한다.

발단은 어린아이가 경찰이 타고 있던 말의 뒷발에 다친 일이다. 1947년 3월 1일, 행렬을 구경하던 어린아이가 말에 치여 부상을 입었다. 경찰은 어린아이가 다친 것을 몰랐고, 사람들은 다친 어린아이를 두고 떠나는 경찰의 뒤를 돌멩이를 던지며 쫓았다. 놀란 경찰은 긴급히 피신했고, 이를 본 경찰들은 총을 발포해 6명의 사상자를 냈다. 일제시대 때도 사람이 사망한 일이 없었다는 제주도에서 주민들은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렇게 폭력을 거부한 사람들이 생겨났고, 그 와중 2명의 경찰 사상자가 나왔다. 소통이 안 된 환경 속 오해는 그렇게 불어났고, 분단을 바라지 않은 사람들은 폭도로 규정되어 사살 대상자가 되었다. 국가는 1000명을 죽이면 한 명의 폭도를 잡을 수 있다고 하며 대량학살을 자행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에 4.3사건을 쳐보면 다음과 같이 나온다.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 3일에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한다.’

이 설명이 틀리다고 할 수 없으나 충분하지 못하다. ‘무력충돌과 진압 과정’이라는 표현이 적절치 않은 경우가 대다수였기 때문이다. 대량학살당한 주민들은 대부분 민간인이었으며, 무력을 앞세워 정부에 반대한 인사들로부터도 오히려 도망다녀야했던 사람들이었다. 무력봉기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희생당했다고 보기 보다는, 엄청난 규모의 학살을 통해 그 속에 숨어있을지 모를 반대자들을 없애겠다는 국가의 방침에 따른 참혹한 살인이었고 슬픔이었다.

끝내 돌아오지 못한 이름들, 알려지지 못한 사람들

평화공원에 갔다.

위패봉안소에 가서 신분이 확인된 피해자분들의 위패를 보았다. 처음엔 그것이 위패인 줄 몰랐다.

약 14,000개가량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대량 학살이 일어난 현장에서 신분을 알기란 요원한 일이다. 마을 단위로 사라진 곳도 있다 하였고,

일가족이 몰살된 경우 또한 흔하다 했다. 그 가운데에서 신원이 확인된 사상자만 14,000명이라는 이야기다.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사람은 그 몇 배가 될 터였다.

면접 스터디에서 특히 중점을 두고 연습했던 사안 중 하나가 ‘한’생명의 소중함과 무거움이었다.

다수를 살릴 수 있다 하여도 죄 없는 한 사람의 목숨을 다수의 목숨과 교량하여 희생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모두 공감했다. 희생될 한 명의 사람이 나라고 생각했을 때, 과연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한’명의 생명권이 얼마나 엄중한지에 대하여 이야기하던 나날들이 불과 며칠 전인데 14,000명이 이름 하나 남기고 사라진 장소에 있다는 생각에 어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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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념 후 들어온 위패봉안실의 안내문. 14,000명이 넘는 희생자의 수가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아직도 트라우마를 겪으며 가족의 이름을 이 곳에 올리지 못하는 분들도 있다. 마을 단위로 사라진 경우, 그 들의 희생을 알릴 수 있는 생존자가 단 한명도 없기에 그들이 있었는지조차 우리는 알 수 없다.>

묵념 후 들어온 위패봉안실의 안내문. 14,000명이 넘는 희생자의 수가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아직도 트라우마를 겪으며 가족의 이름을 이 곳에 올리지 못하는 분들도 있다. 마을 단위로 사라진 경우, 그 들의 희생을 알릴 수 있는 생존자가 단 한명도 없기에 그들이 있었는지조차 우리는 알 수 없다.

위패에 새겨진 이름 하나하나를 보면 더욱 이 사람들이 실존했던 사람들이라는 것이 실감이 난다.

비슷한 이름이 함께 같은 지역자란에 적혀져 있었다. 돌림 이름을 지었던 우리나라의 관습을 생각해보면 이 들이 형제 혹은 남매일 터였다. 감히 그분들의 성명을 빌려 설명을 돕자면

고창수, 고창동.. 김치우, 김치현. 같은 지역의 사람인 것을 감안하면, 가족 단위로 희생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너무 어려 이름을 남기지 못한 아이도 있었다. 김영중의 자. 이런 식으로 이름마저 아직 남기지 못한 어린아이들의 위패가 적지 않았다.

이 많은 사람들이 어떤 죄목으로 희생당한 걸까? 당시 제주의 인구가 30만 명이라 했다. 공식적으로 1만 명 이상, 비공식적으로는 3만에서 6만, 8만까지 희생당했다는 주장이 있다. 이 수가 과연 희생당한 사람의 수가 맞는가?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사라질 수 있었을까?

로스쿨에서의 공부를 돕기 위해 예비교육을 실시하는 학교들이 있는데, 내가 다니는 로스쿨에서 예비교육을 하는 첫 번째 시간에 헌법 수업을 들었다. 인권이란 무엇인가에 관하여 배웠다. 당시 나는 4.3사건에 대하여 이 사건에 대하여 어떻게 쓸 것인지 고민하고 있었다.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고, 며칠이나마 기행을 통해 설명을 듣고 현장을 보고 느낀 내가 잘못된 사실을 전달해서는 안 된다는 의무감이 있었다. 때문에 인권이란 무엇인가를 알려주시는 교수님의 말씀에 더욱더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인권은 대체 무엇일까. 인간으로서 가지는 권리, 그중에서도 가장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권리인 생존권이 이렇게 무참하게 짓밟힐 수 있는 것일까.

교수님은 인권이란 개인의 자유에 대한 국가적 간섭 배제 요청권이라고 하셨다. 국가의 간섭으로부터 자기를 지키는 대 국가적 방어권이라는 것이다. 개인의 자유를 침해했던 주범이 국가였던 시절이 있었기에 생긴 개념일 것이다. 학부 때에도 분명 배운 개념인데, 제주를 다녀온 후 인권이라는 개념이 훨씬 더 무겁게 다가왔다. 제주에 그저 여행의 목적을 가지고 놀러 갔다면 이 표현이 가지는 무게를 알 수 없었으리라. 국가의 폭력 앞에 개인은 이렇게 무력할 수 있다. 본질적인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지켜지지 않았을 때의 현실은 이렇게나 참혹하고 슬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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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곳에 몰려서 살해당하기를 기다리는 모습. 모든 것을 포기하고 고개 숙인 모습과 절망 섞인 표정이 시신 없는 행방 불명자들의 비석 가운데에 나타나있었다. 이 들의 심정을 상상하고 이 들이 느꼈을 두려움을 공감하는 경험을 언제 또 해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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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한 재판을 받지 못한 채 마구잡이로 형무소에 갇혔던 사람들. 수장되기도 했고 피살되어 대규모로 땅에 묻히기도 하였다.>

영문도 모른 채 수감되어 사랑하는 가족의 소식조차 듣지 못하고 끝내 사망한 사람들.

남아있는 편지에서 이들에게는 너무나 현실이었을 순간을 공유할 수 있었다. 이때에 든 생각 또한 처음 위패봉안소에 갔을 때와 같았다. 이렇게 참담한 사건을 내가 모르고 있었구나. 많은 사람 또한 모르겠구나. 외부 사람들 중에는 4.3사건을 4.3폭동이라는 명칭을 붙여 부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사망한 사람들 대부분은 밤이면 급진적인 사상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숨어야 했고, 낮이면 경찰들을 무서워하며 도망가야 했던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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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한 날을 보면 집단적 사살이 이루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의 이름을 보고 나이를 보는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나보다 10살 이상 어린 아이들, 나와 같은 나이의 친구들. 시대의 아픔에 희생되기엔 너무나 이른 나이다.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동굴로 피해 겨울 날씨에 동사하고 굶주려 아사했다. 또는 운동장으로 불려가 무차별적인 총살을 당했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를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생존해있는 피해자분들이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시기 때문이다. 국가를 믿을 수 없는 것이다. 이들이 당했던 것은 국가폭력이었기 때문이다. 혹여나 또 붙잡혀갈까, 혹은 불이익을 당할까. 두려워서 말하기 힘든 것이다.

혹자는 너무나 큰 갈등의 크기 때문에 생존자분들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진상 규명이 이루어지기 힘들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사건엔 명칭을 붙이기 힘들 정도로 큰 고통과 두려움이 얽혀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의 현장을 생생하게 들려주실 수 있는 분들이 아직 있을 때, 용기 내주시는 분들이 있을 때 진상 규명이 이루어져야 한다. 더 이상 폭동이라고 부르지 않도록, 희생자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아파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유가족을 위로할 수 있도록.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라는 프로가 있다. 여기에 독일 사람들이 한국에 여행 왔을 때, 그들이 서대문 형무소에 가는 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좋게 여겼다. 국가폭력의 가해자가 되었던 나라의 후손으로서 비슷한 아픔의 현장을 보고 과거를 되새기며 평화의 가치를 되새기려는 자세를 봤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우리나라의 아픔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알고 있을까? 역사의 아픔의 현장을 보면서 이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갖는 다크투어가 더욱더 성행해야 한다. 실제로 사건이 일어난 현장을 보고 설명을 듣는 것이 삶을 살아가는 데 큰 영향을 줄 것이다.

이제는 볼 수 없는 얼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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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하나 하나에 모두 눈길이 가지만, 어린 아이의 사진을 보았을 때의 참담한 심정을 잊을 수 없다. 저 아이가 무엇을 알고 무슨 잘못을 해서 희생당한 것일까.>

평화박물관에서 본 희생자들의 얼굴.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눈시울이 붉어진 것을 보았다. 살아생전의 모습을 보는 것이 왜 이렇게 힘들고 아플까. 이 들이 저항도 못한 채 목숨을 잃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더욱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해야 한다. 많이 아파하고 유가족들을 위로해야 한다. 유가족들에게 가장 위로가 되는 것은 관심과 공감이다. 평화박물관에서 설명을 해주시는 가이드분을 보며 느꼈다. 몇 번씩 반복해서 4.3사건에 대해 설명을 하실 텐데 이야기하실 때 눈시울이 붉어지시는 것을 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을 아는 것을 원하셨고, 희생자들을 기억해 줄 것을 원하셨다. 이 사건을 돌아보며 이를 평화의 도구로서 쓸 수 있도록 우리가 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자들의 명예를 지켜주어야 한다. 명칭마저 지어지지 않은 이 아픈 역사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가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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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아름다운 바다를 볼 때에도 절벽마다 요새가 지어져있는 볼 수 있었다. 군사적 요충지로서 섬 전체가 요새화되었기에 제주도민들의 저항을 더욱 경계한 것일까. 1000명 죽이면 한 명은 폭도일 것이니 모두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릴 수가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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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봉을 파는 강아지가 있는 아름다운 섬 제주도.

서울에 가자마자 순이삼촌 책을 샀다. 중단편 모음집 속 순이삼촌은 그리 분량이 길지 않다.

누구라도 부담 없이 금방 읽을 수 있다. 책을 읽으며, 혹은 읽고 제주 다크투어를 통하건 혹은 개인적으로 방문하건 학살이 일어났던 장소를 둘러보면 이분들이 얼마나 큰 공포를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생존자 할머님이 들려주신 총의 개머리판에 머리를 맞고 2년 만에 사망한 어린 동생의 이야기, 운동장에 수십수백 명이 모여 한꺼번에 총살 당한 이야기를 생생히 떠올릴 수 있다.

왜 제주도민들이 같은 날에 오열하며 합동 장례를 치르는지 알 수 있다.

이해관계를 떠나 한 명 한 명의 목숨을 기릴 수조차 없이 마을 단위로 사라져 존재조차 알 수 없는 주민들의 희생을 어떻게 글로 표현할 수 있을까.

왜 이 사건을 알리고자 다크투어를 기획한 사람들이 있는지, 왜 바쁜 시간을 쪼개어 진상조사를 해 나가는 사람들이 있는지 알 수 있다.

생존자 마을회장 할머님의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처음엔 상대가 미웠지만, 이제는 모두가 피해자라고 생각하신다고.

수많은 사망자와 행방 불명자, 유가족과 생존자들을 기억하고 위로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바라고

그분들이 말씀해주실 수 있을 때 진상조사가 활발히 일어나 조금이라도 더 정확한 역사를 기록할 수 있길 바란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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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경제위원회 소식

 

1. 민생위 공익기금(가칭) 모금

 민생경제위원회는 6월 29일부터 7월 30일까지, 민생경제위원회에서는 위원회 내 공익활동의 촉진을 도모하고, 지속가능한 공익활동에 필요한 최소한의 선순환구조를 만들고자 하는 취지에서「민변 민생경제위원회 공익기금(가칭)」을 모금하고 있습니다.

이번 기금 모금이 민생경제위원회에서 진행하고 있는 각종 공익활동 활성화의 밑거름이 되기를 바라면서, 모금에 참여해주신 모든 회원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2.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대한 국민연금 합병반대 의결권 행사 촉구 기자회견 참석

 민생경제위원회는 2015년 7월 7일 오전 11시 국민연금 강남본부 앞에서 열린 「국민연금의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부결 의결권 행사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하였습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민생위 김종보 회원은 양사의 합병은 회사의 핵심 사업영역에 대한 본질적 고민이나 새로운 사업기회를 위한 도전에 따른 것이 아니라 삼성그룹 총수일가 3세들의 지배권 승계와 강화를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부적절하며, ‘행동주의 펀드’로 알려진 엘리엇이 삼성의 합병을 반대하는 것과 관련, ‘국제 투기자본인 엘리엇이 토종 자본인 삼성을 공격하고 있다’는 일부의 해석은 문제의 본질을 흐린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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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전국 을살리기 국민운동본부 자문변호사단” 모집

금번 민생경제위원회에서는 <전국 을살리기 국민운동분부(이하 ‘을본부’)>와 함께 중소상공인, 자영업자 등 ‘을’을 대기업, 상가임대인, 가맹본부, 대리점 본사 등 ‘갑’의 횡포로부터 보호하고자 합니다. 이에 “을본부 자문변호사단”을 오늘부터 2주간(7. 10. ~ 7. 24.)모집하고 있습니다.

자문변호사단에 참여하시는 분들은 을본부로 접수되는 사건들에 관하여 자문을 하고, 필요한 경우 직접 사건을 수임하여 ‘을’의 권익을 보호하는 활동을 하게 됩니다. 특히나 신입 회원분들께는 관련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선배 변호사와 함께 활동하면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을본부 자문변호사단”에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문의사항은 사무처 송아람 상근변호사([email protected], 02-522-7284)로 연락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이상 민생경제위원회 소식이었습니다^^

금, 2015/07/10-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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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차 정기총회 감사 인사말

 

- 회장 한택근

존경하는 회원 여러분,

 

제28차 민변 정기총회가 2015.5.30.-31. 양일간에 걸쳐 경주에서 개최되었습니다. 이번 총회는 132명의 회원과 60여명의 가족들이 참석하여 역대 최다 참석자를 기록하며 성황리에 진행되었습니다. 우선 제28차 정기총회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될 수 있도록 관심과 성원을 보내 주신 모든 회원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총회 식전 행사에서는 모임이 ‘회원 1,000명 시대’를 열게 된 것을 자축하고, 모임의 진로를 모색하는 진지한 대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정기총회에서는 모임의 임원선출에 관한 회칙 규정을 정비하였고, 조직의 중·장기적 발전을 모색하기 위한 발전기금 사용 승인 안건을 통과시켰습니다. 저희 집행부는 안건을 통과시켜 주신 회원들의 뜻을 받들어 모임의 발전을 위해 배전을 노력을 다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나아가 이번 정기총회는 기본적 인권의 옹호와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하고자 하는 회원 분들의 뜨거운 열망과 헌신적 활동을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마지막에 참석한 모든 회원들이 일어나 ‘회원 천명 시대를 맞는 모임의 특별결의문’을 함께 소리 내어 읽었습니다. 민주사회를 향한 회원들의 결의를 서로가 확인할 수 있었던 감동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사랑하는 회원 여러분,

 

우리 모임은 중대한 도전의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안으로는 모임의 지속가능성과 발전을 담보할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야 하고, 밖으로는 시대를 역행하는 권력기관에 맞서 사회적 약자와 서민의 인권을 보호할 책무를 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 도전을 슬기롭게 풀어나갈 수 있는 희망을 정기총회에서 보여주신 회원 여러분의 열망과 결의에서 찾고자 합니다. 집행부와 사무처는 회원 여러분의 헌신과 지혜가 샘솟을 수 있도록 하는 마중물의 역할에 충실하겠습니다.

 

기본적 인권이 보장되고, 정의가 넘실대는 ‘민주사회’로의 여정은 한시도 늦출 수가 없습니다. 민변의 자랑스러운 선배님, 동료 및 후배 회원 모두 깊은 동지애로 함께 걸어갑시다. 그 길에 함께하는 모든 회원 여러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수, 2015/06/10-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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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투를 빈다!

 

- 문현웅(민변대전충청지부 사무처장)

 

# 그들이 세종시에 모였다. ‘쌀 관세화 선언 규탄, 전면 개방 저지 충남농민대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천안에서 양계장을 하시는 분, 논산에서 딸기농사를 지으시는 분, 보령에서 염소를 키우시는 분 등…

 

그리고 그들은 대전지방법원 317호 법정에 다시 모였다.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형사재판을 받기 위해서…집회 질서 유지 등에 관한 정당한 직무집행을 하고 있던 경찰관들을 폭행하였다는 범죄사실이 그들을 옭아매었다. 그들 중 상여로 경찰관을 밀쳤다는 혐의만으로도 징역 1년이 구형된 분도 계시다.

 

# 공부를 더 하고 싶어서 일본 삿뽀로로 유학을 갔다. 학교 앞 노점에서 다코야키를 팔던 조총련계 사람은 한국에서 건너와 고생을 하는 고국의 청년이 대견스러웠다. 그리고 그들은 형제 같이 막역한 사이가 되었다.

 

유학 중 친구가 일본 여행을 하고 싶다고 해서 큰형 같은 조총련계 사람과 같이 친구 여행의 편의를 도모해 주었다. 그리고 귀국 후에도 친구들과 함께 일본 여행을 가서 조총련계 사람의 신세를 지었다.

 

그리고 그는 현재 국가보안법위반(목적수행)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있다. 조총련계 사람이 내국인을 포섭하기 위하여 그에게 지령을 내렸고, 그는 친구들을 유인하여 일본으로 데려갔다는 것이다. 포섭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도대체 모르겠지만.

 

# 군복무 중 정신교육 시간에 입바른 소리를 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의 책을 반입하여 읽었다.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기무대 요원은 그의 페이스북을 뒤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의 타임라인에 김정일 찬양 동영상이 링크되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이에 더하여 입대 전 대학생 시절의 활동을 보니 6.15학생위원회가 주최하는 통일캠프에 두 번이나 참가했다. 옳거니 기무대는 그 친구를 6.15청학연대 구성원이라며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 구성 등의 혐의로 기소한다.

 

통일캠프에 참가한 사실이 있으면 6.15청학연대의 구성원이라는 논리를 과연 어디서 나온 것일까? 최소한 6.15청학연대에 가입하였다는 증거 또는 6.15청학연대가 주최하는 회의에 참석하여 의견을 개진하였다는 정도의 증거는 나와야 하지 않는가?

 

김정일 찬양 동영상을 페이스북에 링크할 무렵 그 친구는 북한의 삼대세습을 비판하고, 북한식 사회주의는 가짜 사회주의라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그런 페이스북 포스팅은 모두 눈감고 왜 김정일 찬양 동영상만을 문제 삼는 것인가?

 

# 현재 대한민국 그것도 대전지방법원은 형사법의 과잉 현상에 몸살을 앓고 있다.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진실을 보는 눈은 가리고 오로지 형사처벌을 위하여 맹목적으로 국민을 기소한다. 형사적 개입은 최소한이라는 원칙은 사문화 된지 오래다. 그리고 그 일선에 민변 변호사의 악전고투가 있다. 건투를 빈다!

화, 2015/07/28-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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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5/07/28-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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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위원회 신입회원 간담회 후기

- 구현주 회원

지난 7월 13일 월요일에 언론위원회 신입회원 간담회가 있었습니다. 신입회원 간담회는 6월 월례회에 이어 제가 두 번째로 참석한 언론위원회 행사였는데, 웃다가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시종일관 유쾌한 분위기였습니다. 간담회 후기를 쓰려고 한글 창을 띄워놓고, ‘그 날 무슨 일이 있었지…’ 하고 생각하니 웃던 기억밖에 나지를 않아 한동안 기억을 되새겨야 했습니다.

이 날 간담회는 정해진 프로그램 없이, 언론위원회의 앞으로의 활동에 대한 이야기,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이야기, 일상과 일에 대한 이야기들이 격의없이 오고갔습니다. ‘즐겁고 자유롭다’라는 생각이 들었던 밤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오고가는 가운데, 방송통신위원회의 자의적 사후심의에 대한 언론위 차원의 감시·비판 방안, 공영방송 경영진이 교체되는 시점인 올 해 언론위원회가 향후 공영방송 문제에 보다 적극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 방법, KBS 시청자위원 후보 추천등과 같은 당면한 언론위의 과제들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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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위 선배 변호사님들의 신입회원들에 대한 따뜻한 환영과 기대와 함께, 저 역시 언론위에서 앞으로 함께 보낼 시간들을 기대하게 되는 밤이었습니다.

 

화, 2015/07/28-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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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청산위원회 활동소식

 

이번에도 과거사위는 풍성한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과거사위는 한국전쟁 유해발굴 법안 제정을 위한 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는데요, 2015. 6. 18. 국회에서 열린 ‘한국전쟁 유해발굴 관련 법안’ 토론회에 이동준 위원이 발제자로, 배광열 위원이 토론자로 참석하여 좋은 의견을 듣고, 펴고 왔습니다.

 

저번 활동소개에서 2015. 3. 26. 대법원은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불법구금되었던 피해자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로 국민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질 뿐, 국민 개개인의 권리에 대한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지진 않는다는 아주 개념이탈의 판결을 선고했다는 점은 전해 드렸습니다. 과거사위 내의 긴급조치변호인단은 위와 같은 판결에도 기죽지 않고 2015. 6. 22. ‘대법원의 긴급조치 국가배상 판결 규탄 – 대법원, 민주주의의 무덤이 되다’는 토론회를 개최하여 대법원 판결을 맹비난하고 여론을 환기시켰습니다.

 

과거사위가 연대활동으로 하고 있는 형제복지원 사건과 관련해서는 2015. 7. 3. 형제복지원 특별법 제정을 위한 공청회가 열렸고 조영선, 권태윤 위원이 참석하였습니다.

 

국제연대위 아시아연대팀이 이번 여름에 6박 7일(2015. 7. 26. ~ 8. 1.)로 베트남 평화기행을 다녀온다는 소식은 민변에 이미 소문이 다 나있습니다. 이번 평화기행은 베트남 전쟁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동시에 전쟁의 진실을 마주하고, 한국의 법률가 단체로서 향후 어떠한 활동을 모색하고자 하는 첫 걸음입니다. 이에 과거사위원회도 공동으로 본 기행을 준비하였고, 많은 위원들이 함께 갈 예정입니다. 우리의 역사이기도 한 베트남 전쟁의 유적과 박물관들을 돌아보며 많은 것을 느끼고, 전쟁 피해자들과의 만남 등 많은 고민과 함께 돌아올 수 있을 것입니다.

화, 2015/07/28-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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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자인권위원회 소식

1. 형제복지원 입법공청회

- 소수자위원회는 2015. 6. 3.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내무부훈령에 의한 형제복지원 강제수용 등 피해사건의 진상 및 국가책임 규명 등에 관한 법률안(이하 형제복지원법)’에 대한 입법공청회를 개최하였습니다. 형제복지원 피해자 공식적 숫자만 513명인 인권유린 사건으로, 민변 과거사위 주로 참여하고 형제복지원 자료검토 후 의혹제기 증거 찾는 작업을 진행하였습니다. 정부측은 진상규모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특정사건에대한 특별법제정은 부정적인 의견을 보였습니다.

2. 장애인법 국제 심포지엄, “법을 통한 평등 실현”

- 소수자위원회는 2015. 6. 12. (금) 13:30 “장애인 평등실현과 국가의 역할 -정책과 입법을 중심으로, 소송을 통한 장애인 권리 구제” 국제 심포지엄에 참석하였습니다.

3. 법앞에 선 커플 : 동성 파트너쉽 권리 국제 심포지엄

소수자위원회는 2015. 6. 20. (토) 공동주최단체로 참석하였습니다. 구체적으로 대만의 경우, 입법투쟁이 대중운동으로 진화하였고, 아시아지역에서 유일하게 입법개정안 발의한 상태이며, 일본 시부야에서는 동성 파트너쉽을 등록할 수 있는 조례가 제정되었다는 사실과 이후 전망이 발표되었고, 성소수자 인권이슈가 앞으로 동아시아지역에서 가시적 진전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4. 동성결혼변호단

소수자위원회는 2015. 7. 6. 비공개 심문절차에 참여하여, 제도적 차별에 당사자들 고통 받는 상황, 배우자 보호자로써 권리나 의무를 갖지 못한것 잘 설명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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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연대 활동

가. 인권위 공동행동
- 소수자인권위는 5. 27. 국가인권위 위원장 인선절차 및 투명성 확보를 위한 시민사회단체 연석회의(약칭 인권위원장 대응 연석회의)의 일원으로 인권위원 인선관련 의견서를 인권위에 전달하였습니다. 7. 7.부터 1인시위를 시작하였고, 페이스북 캠페인도 진행 중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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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
- 2015. 5. 27. 남대문경찰서의 졸속적 집회신고 절차 공지에 대한 규탄과 안전한 퀴어문화축제를 위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에 참석하였습니다.
- 2015. 6. 2. 제16회 퀴어문화축제의 안전한 개최를 위한 인권‧시민사회‧정당 긴급 기자회견에 참석하였습니다. 

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 2015. 6. 23. 장애인의 열악한 시외 이동권 현실에 수수방관하며 행정절차 핑계만 대는 국토교통부를 규탄하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하였습니다.

6. 위원회 광고

* 2015. 8. 13. 19시 민변에서 소수자인권위 월례회 개최 합니다.
* 연희법률사무소의 이지연변호사님이 앞으로 위원회 소식을 보내드립니다.
관심이 있는 회원님은 소수자인권위(이수연 간사님)로 연락주세요! ^^

화, 2015/07/28-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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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걸음씩 소중하게

 

- 원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6기 조미연

 

1. 들어가며

2015년 7월 18일부터 19일까지 전주 모악산 건강힐링체험장에서 전주전북지부와 전북대·원광대 법학전문대학원생들의 인권감수성 향상을 위한 워크샵이 있었습니다. 저는 원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공익·인권법학회 동행 학회장으로 5명의 원우들과 함께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워크샵은 1박 2일 일정이고 첫 날 오후 2시부터 시작하는 것을 감안하였을 때 굉장히 빡빡한 일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사실은 작은 제의에서 출발하였으나 이 무더운 여름 보다 뜨거운 열정으로 추진되었고, 따스한 온기로 남게 된 이 날의 기억을 먼저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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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소중한 인연을 한자리에서

무엇보다 워크샵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역시 소중한 인연일 것입니다. 캠프 시작 무렵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4세션의 강연일정은 오히려 감초였습니다. 첫 강연은 캠프 참가예정자 29명 전원의 이름을 노래로 열창하며 ‘통일운동의 역사와 방향’을 주제로 한상렬 목사님께서 시작하셨습니다. 수많은 방북경험을 토대로 대한민국의 진정한 민주화와 통일의 상관관계, 통일시점에 대한 내면의 물음과 목표의 필요성 그리고 탈무드를 인용한 이야기 등 ‘명사의 말이 명언’이라는 말의 의미를 깨달게 해주신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그 중에서도 통일을 위한 ‘단결’의 첫걸음은 ‘결단’이라는 말씀이 유독 와 닿았습니다. 탈무드 속 정답과는 다르게 머리는 둘인데 몸은 하나인 것에 대하여 머리 하나는 아픈데 다른 하나가 아파하지 않는다 한들 한 몸은 역시 한 몸이지 않겠는가라는 한목사님의 답변도 많은 생각을 안겨주었습니다. 한 시간 동안 어느 한 말씀도 흘려들을 수 없는 민주화와 통일운동에 대한 배움의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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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어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김영기 활동가님께서는 주된 활동내용 및 목표를 소개하시면서 경험담을 통해 시민단체의 희노애락을 표현하셨습니다. 학교 안에서는 직접 보고·들을 기회가 없던 시민단체의 지역자치 운동 이야기로 말미암아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한 활동과 그 연계에 대하여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잠시 쉬는 시간을 보낸 후 이어진 세 번째 강연에서는 전북환경운동연합 이정현 활동가님께서 마이크를 잡으셨습니다. 20년 넘게 이어진 전북지역에서의 환경운동과 단체의 활동역사 및 현황, 2012년 5월 31일 멸종위기야생동식물 2급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는 맹꽁이 이야기 등을 현실감 넘치고 아주 즐겁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함께 워크샵에 참석했던 일부 원우들은 원광대 법학전문대학원 앞 인공호수에서 맹꽁이 소리를 들었다며 보호 종이라는데 왜 이렇게 흔하냐는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환경단체의 노력이 빛을 발한 것 같다고 화기애애했습니다.

마지막은 전북민주노총 이창석 사무처장님께서 멋지게 정점을 찍어주셨습니다. 민주노총에서 활동하는 분을 직접 뵙게 된 것만으로도 설레는 만남이었는데, 노동운동이란 노동자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 라는 물음에서부터 출발해야 하는 것이며, 민주노총 활동을 하면서 느꼈던 부조리한 상황과 법에 대한 이야기 등을 해주셨습니다. 유려하신 입담에 다들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집중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집회 및 시위 그리고 파업 등에 대하여 누군가는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부분을 지적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주장을 하려거든 남에게 피해주지 말고 합법적인 범위 안에서 하라고 조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개개인의 사람들의 가치관을 떠나 대다수는 정작 상대적 소수의 사람들이 왜 논리적으로 맞지 않고 불법행위가 될 수 있음을 알면서까지 행동해야 하는지 공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민주노총 활동을 하면서 전과를 갖게 되었고 지금도 집행유예 중이라는 이창석 사무처장님의 말씀은 두고두고 왠지 모를 씁쓸한 여운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3. 한걸음씩 소중하게

좋은 자리, 훌륭한 강연 그리고 소중한 만남까지…. 이 모든 것은 전주전북지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들의 모임으로부터 시작된 것이기에 관련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2014년 하반기 전북대·원광대 법학전문대학원 인권법학회 학생들과의 간담회를 기회로 2015년 3월 전주 모악산 등반, 5월 원광대 법학전문대학원생들과의 간담회 그리고 하계방학 중 이번 워크샵까지, 법학전문대학원생들과 꾸준히 교류를 이어왔고 매번 작은 건의사항 하나 그냥 넘기지 않고 반영해 주셨습니다. 인권법학회를 중심으로 학생들과 연락망을 구성하고, 특별회원 모집에도 힘쓰면서 보다 가까이에서 민변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게 해주신 점이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한 시민단체 등이 수십년간 활동해온 흔적을 보고·듣고·만나서 대화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열린 마음으로 함께해준 민변의 내일이 기대됩니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아도 어디선가 작은 불씨들이 피어나고 있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체감한 현실에서는 “변호사는 사회 정의를 수호하고 기본적 인권을 옹호함을 그 사명으로 한다.” 라는 변호사법 제1조 제1항 변호사의 사명이 그저 문언일 뿐이라는 안타까운 마음이 컸기에 이번 워크숍의 감동이 더 크게 다가온 것 같습니다. 쉽지 않지만 소통하고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분명 점점 더 나은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어쩔 수 없이 때로는 외롭고 힘이 들어도 결국은 ‘사람’ 덕분에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라 스스로 되새깁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이렇듯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들의 모임이 좋은 매개이자 주체로서 항상 함께할 것만 같습니다. 작은 발걸음이라도 한걸음씩 소중하게 나아가는 민변의 모습과 내후년에는 저도 일원으로 함께할 수 있기를 고대해 봅니다. 따뜻하고 설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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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5/07/28-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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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평화기행 기행문

- 박종훈 회원

 

  민변 국제연대위원회 아시아인권팀이 기획한 베트남 평화기행단은 15. 7. 26.부터 15. 8. 1.까지 베트남을 방문하여 일정을 소화하였습니다. 그에 대한 간단한 소감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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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짧은 변명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지금도 몇 번이나 글을 썼다가 지우다를 반복하고 있다. 이제야 고백하건데, 난 (다른 평화기행단 팀원들과는 달리) 가벼운 마음을 가지고 베트남으로 떠났고, 현장에서도 알 수 없는 찝찝함을 가슴 속에 담아두어야만 했으며, 아직도 베트남의 아픔을 충분히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에 솔직하게 이 글을 쓴다면 그것은 극히 개인적인 감상에 치우친 경험담일 뿐일 터이고, 반면에 (베트남의 아픔을 공감하는 듯하면서) 심각하게 글을 써야만 한다면 결국 이 글마저 찝찝하게 남을 것 같아서 고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은 (이동화 간사님을 비롯한 팀원들과의 계약에 의해) 쓰여 져야만 하고, 또 (이유진 간사님께) 제출되어야만 한다. 결국은 없는 글재주에 거짓말을 할 재능은 더욱 없어서 솔직하게 글을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 행여나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나 같은 (불량) 팀원을 제외한 다른 팀원들은 모두 진지한 마음으로 베트남을 다녀왔기에 부디 오해하지 말기를 부탁드린다.

2. 어제가 오늘이 되기까지

  영남에서 태어나 2000년대에 대학에 입학한 나로서는 광주의 아픔을 오롯이 알지 못한다. 어디 그 뿐인가, 만점 받을 수 있던 시험을 실수로 하나 틀렸다고 슬퍼하는 동기의 아픔도, 소주잔을 앞에 두고 문득 1년 전 헤어진 애인이 생각나서 아프다는 후배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그 아픔을 온전히 나의 것으로 하기가 힘들다.

  이야기를 들으면 슬펐다, 그리고 눈물이 났다. 오월 광주 이야기를 들을 때에도 그랬다. 그러나 그러한 이야기들이 내 가슴에 멍울로 남아 있지 못했다. 공감하는 척 했지만, 나에게는 오늘이 더 소중했다. 그런 나도 현장에 서서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만큼은 그들의 어제가 나의 오늘이라고 느낄 수 있었다.

  28만명과 117만명, 베트남 전쟁에서 전사한 남베트남 연합군과 북베트남 연합군의 수다. 무려 4배가 넘는 사망자가 발생하였음에도 역사는 북베트남이 승리한 전쟁, 그리고 미국이 패배한 전쟁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나에게는 베트남 또한 어제의 일이었다. 한국군이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일도, 한국군이 저질렀다는 민간인 학살도, 다 어제의 일이었다. 난 그 세대가 아니니까, 그냥 기억으로만 남겨두면 되는 일이었고, 오늘은 아니었던 셈이다. 그래서 베트남으로 떠나야만 했다.

  그렇게 도착한 베트남에서 전쟁박물관, 구찌 땅굴 등 전쟁을 기록한 곳뿐만 아니라 민간인 학살이 일어났던 지역들을 방문하게 되었다. 미군에 의한 학살이 있었던 미라이(손미) 마을을 시작으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있었던 빈호아, 퐁니·퐁넛, 하미, 투이보 마을을 방문하였고, 생존자들과의 간담회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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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이들의 사진을 보고,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대면해야만 했다. 그렇게 분위기는 숙연했다. 그러나 그것이 곧 베트남의 아픔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기에 간담회에서의 시간을 많이 기다렸다. 오늘, 이 곳에서 듣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이 있었다.

3. 오늘을 사는 사람들

  학살이 있었던 마을들을 방문하면서 위령제를 지내고, 아시아인권팀 팀장인 성상희 변호사님께서 축문을 낭독하는 동안 내가 느낀 것은 아이러니한 평화였다. 그곳의 오늘은 너무나도 고요해서, 마치 학살과 관련한 모든 일들이 거짓말인 듯 했다. 고즈넉한 평야 앞에서 헬리콥터가 착륙하는 장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이 설명될 수 있었다. 우리가 무슨 짓을 한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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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솔직히 말하고 싶다. 난 여전히 베트남의 어제를 온전히 느끼는 데는 실패했다. 현지의 생존자들은 모두 하나 같이 입을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똑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베트남인은 평화를 사랑한다. 미군과 한국군을 용서했다. 이제 우리는 경제 공동체로서 서로 발전해가야 한다.” 생존자들은 이미 오늘을 살고 있었다. 그들이 과거의 아픔에서 벗어나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그러나 내가 기대하고 생각했던 오늘은 그들이 생각하는 오늘과는 같지 않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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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아파서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라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감정을 잘 다스려 아픔을 승화시켰다는 미담을 듣고 싶었던 것은 더욱 아니었다. 그러나 미국에 대한 ‘자본’을 탐하여 베트남에 파병했던 우리와 ‘자본’을 탐하는 베트남이 손을 움켜잡고 있는 오늘은… 한국이 베트남에 대한 최대 투자국이라는 것은 무엇을 말해주는 것인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마음의 준비를 미처 하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 날의 참상을 묘사하며 울먹이는 생존자를 앞에 두고 대화하면서도, 더없이 평화로운 평야를 뒤에 끼고 있으면서도, 단지 그것뿐이었다. 내가 만난 베트남은 오늘의 베트남이었다.

4. 그리고 내일

  베트남 평화기행단의 최종 평가자리에서도 아쉬움을 뒤로 하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다.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한 것이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 베트남의 어제는 현재도 유효한가. 나는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그 외에도 베트남의 오늘, 그리고 내일에는 많은 과제가 남아있다. 지금도 베트남에서는 표현의 자유 등 기본권을 제한하고 있고, 고문을 비롯한 인권침해 문제가 발생하고 있으며 이를 문제 삼는 인권 변호사들은 국외로 망명을 당하고 있다.

  결국 베트남에도 오늘을 사는 이들이 있고, 이들은 우리의 손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기다림이 베트남을 다시 찾게 만들 것 같다. 그 때는 더 많은 사람들의 손을 잡고 이 곳을 방문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함께 해서 너무 좋았던 베트남 평화기행단의 팀원들에게 한 마디씩만 남기면서 기행문을 마친다.

  미친 존재감의 김남주 변호사님, 제 누이가 된 김자연 변호사님, 여행 내내 말 못할(그러나 모두가 알았던) 아픔으로 힘들어했던 김하나 변호사님, 박학다식하여 모르는 것이 없던 박진석 변호사님, 말 안 듣는 팀원들 통솔하느라 너무나도 수고하신 팀장 성상희 변호사님, 그리고 성상희 변호사님의 남자 배광열·임재성 변호사님, 본인은 좋다고 하지만 표정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었던 오지은 간사님, 모든 실무를 도맡아서 책임졌던 팀원들 모두가 감사해하고 있는 이동화 간사님(통역님), 선물 고르는데 놀라운 안목을 보여주신 마사지 이상희 변호사님, 김하나 변호사님에 의해서 만두가 되어버린 이종민 자원활동가님, 새로운 권력 이준형 변호사님, 물에 가장 먼저 뛰어든 물개 조영선 변호사님 모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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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5/08/11-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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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생명평화대행진 참가기

- 탁선호 회원

간사님의 강정생명평화대행진 참가 후기 요청에 응하고 나니 난감했다. 1박 2일 평화대행진에 참가한 후 2박3일 쉬어 가는 일정으로 제주행 비행기를 탄데다가 정보에 빠른 아내 덕분에 행진길이 상대적으로 쉬운 서진팀에 합류한 얼치기 참가자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참가 첫날인 금요일(7월 31일)에 서진팀은 동진팀과 속도를 맞추기 위해 열시가 다 되어서야 안덕체육관을 출발했고, 산방산을 바라보고 30분 남짓 걸어가니 화순해수욕장의 백사장이 눈앞에 펼쳐지기까지 했다. 만약(?)을 대비해 준비한 수영복을 갈아입고 차가운 바닷물에서 놀다 나오니 솜씨 좋은 어느 아저씨가 금방 채취해온 미역과 바다고동을 넣어 시원한 해물라면을 끓이고 있었다. 가장 힘들었다던 수요일과 목요일의 행진을 지나온 참가자들은 나무 밑에 앉아 끈적끈적한 더위 속에서 고단함을 달랬으나, 우리는 행진 30분 만에 해수욕을 하고, 싱싱한 미역과 고동을 넣은 해물라면을 먹고 제주감귤막걸리까지 한 사발 하면서 ‘참가자’로서 이래도 되는가 하는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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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선 뜨거운 햇볕이 아스팔트에 폭격하듯 쏟아졌다. 하지만 낮고 길게 솟아오른 노란 깃발은 푸른 제주의 땅과 회색 아스팔트 사이에서 빛나고 있었다. 모두 성큼성큼 함께 걸어갔다. 1시간만 걷고 캠프파이어 할 거라던성당 신부님의 꾐에 넘어가 오게 됐다며투덜대는 아이들의 검게 탄 얼굴에는 투정 섞인 즐거움이 빛나고 있었고, 엄마 아빠 따라 온 일곱 살 연준이는 돌담 아래 핀 작은 꽃을 신기해했고, 여든이 넘은 비전향 장기수는 오래된 무비카메라를 들고 꼿꼿하게 서서 사람들을 움직임을 담아냈다. 한 시간 걸으면 농민회 아무개가 준비했다는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었고, 또 한 시간 걸으면 어느 성당에서 만들어 왔다는 시원한 미숫가루를 마실 수 있었다. 즐거운 행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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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걷고 ‘함께’ 먹고, 또 ‘함께’ 해군기지 건설반대를 외쳤다. 3,000일을 바라보는 해군기지 건설반대 투쟁의 길에, 이미 3,000일의 투쟁을 넘긴 콜트콜텍 노동자들이 걷고 있었고, 국가폭력에 대한 진상규명을 외쳐왔던 용산참사 유가족들도 강정으로 향하고 있었다. 세월호 엄마아빠들은 이제부터 본격적인 싸움을 시작할 것이라는 굳센 결기를 보여주며 사람들을 숙연케 했다. 동진팀에서는 쌍용차 정리해고 노동자들과 기륭의 노동자들이 점점 강정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숨 쉴 틈 없이 몰아쳐대는 한국사회에서 하루하루 살아나가고 있는 수많은 ‘나’와 ‘우리’들이 ‘함께’ 걷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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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드디어 해군기지 건설현장 정문 앞에서 동진팀과 서진팀이 만났다. 수백 개의 손을 마주치고 고생했다는 말을 주고받으며 기쁨을 나누었다. 검게 탄 수백 명의 얼굴이 서로의 얼굴을 더욱 빛나게 해주고 있었다. 어린 여학생은 감격의 울음을 터뜨렸다. 문정현 신부님은 모두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 주었다. 해군기지가 건설되는 과정에서 민주주의는 파괴되고 마을은 조금씩 무너졌지만 강정 사람들은 더욱 강해진 듯했고, 그저 관광객에 불과할 수 있었던 나는 ‘평화’를 갈망하며 싸워가는 길에 함께 하며 강정과 제주의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상투적인 말이지만 ‘함께’하지 않았더라면 굳이 그 길을 걷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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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크리스마스 무렵 때도 제주에 왔었다. 어딜 가나 제주의 땅은 참 아름다웠고, 어딜 가나 관광객은 넘치고 있었다. 어느 식당 주인은 단골손님과 아파트 값이 오른 걸 이야기 했고, 어느 택시 기사는 제주에서 경관이 가장 좋은 곳에 중국자본이 들어와 리조트를 짓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돈과 사람이 몰리면서 점점 상업화되고 있는 제주에 나도 관광객으로 와서 무얼 망치고 가는 것은 아닌지 조금 걱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날 강정마을에 들러 주민들, 신부님·수녀님, 활동가들이 진행하는 미사를 우연히 보면서, 얼떨결에 손을 맞잡고 율동을 하면서,한라산이 보이는 곳에서 밥을 함께 먹으며 평화로운 위안을 받았고 그 기억이 강렬해 이번에도 강정생명평화대행진에 참가하겠다고 마음먹을 수 있었다. 올해도 나는 평화를 얻고 간다. 그리고 진정 제주가 평화의 섬이 되길 빈다. 꼭 그랬으면 좋겠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한다면 평화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화, 2015/08/11-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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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위원회 활동소식

 

사법위원회는 그동안 군소 위원회, 신입회원이 가입하기 어려운 위원회라는 인식이 많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매월 정기회도 항상 작은 회의실에서 했었죠^^::

그러던 사법위가 김선수 변호사님의 적극적인 신입회원 유치에 힘입어 드디어 대회의실에서 회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신입회원들의 또랑또랑한 눈빛에 선배변호사님들도 자극을 받으셨는지 7월 정기회는 그 어느 때보다 열기가 뜨거웠습니다. 다음 회의 발제를 자진해서 맡겠다는 모 변호사님을 막는 믿을 수 없는 풍경이 벌어지기도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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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위가 최근 주목하고 있었던 주제는 공소시효 폐지와 관련한 법안들과 대법관 인선 문제, 그리고 사시존치 여부입니다.

 

최근 강력범죄에 대한 대응책으로 공소시효를 폐지하자는 법안이 여럿 발의가 되었는데요. 사법위는 공소시효 폐지가 강력범죄를 예방하는 방안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공소시효의 적용을 배제하려면 공소시효 제도의 본질 및 근거에 비추어 합리적인 이유가 있어야 하고 법적 안정성을 고려하여 신중히 운용할 필요가 있으므로 국제법상 반인도범죄, 전쟁범죄, 그리고 처벌의 필요성이 있으나 현실적으로 처벌에 장애가 있는 경우 등으로 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의견을 국회에 전달하기로 하였는데 그 사이 살인죄 일반에 대하여 공소시효가 폐지되는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가 되었지요. 꼭 처벌해야 하는 강력범죄자를 시효의 도과로 처벌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은 동감하지만 자칫 이런 법안으로 인하여 초기 부실 수사가 합리화되지는 않을지, 강력범죄의 예방은 범죄자 처벌 이외에 아동, 여성과 같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 등 사회정책이 병행되어야 하는 점을 도외시하게 되지는 않을지 염려스럽습니다.

 

지난 박상옥 대법관 임명 때부터 사법위는 대법관 인선과 관련한 성명, 논평, 기자회견 등을 통하여 현행 대법관 인선 구조의 문제점을 여러 차례 지적하였습니다. 이번 민일영 대법관의 후임 대법관 인선에서는 대법원이 공개 추천을 받겠다고 하였고 대한변협에서 김선수 변호사님을 추천, 사회 각계에서 지지 의견을 보내와 한 때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갖기도 했었지요. 그러나 역시 대법원은 구태를 벗지 못하고 법관순혈주의를 고집하며 이기택 서부지법원장을 임명 제청하였습니다. 앞으로 박근혜 정권이 끝날 때까지 6명의 대법관의 임기가 종료됩니다. 대법관 인선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우리는 이명박, 박근혜 정권 들어 대법원 판결을 보며 알 수 있었습니다. 사법위는 앞으로도 민주주의와 인권, 정의를 수호할 수 있는 제대로 된 대법관이 임명될 수 있도록 관련 활동을 계속 해 나갈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법조계의 뜨거운 화두! 사시 존치와 관련하여 다음 정기회 (8월 21일, 19시)에서 찬반 양론의 발제를 들을 예정입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화, 2015/08/11-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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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위원회 활동소식

#. 감동의 문제작, “불안한 외출” 민변 상영회 

지난 7월 23일 저녁, 하주희 변호사님이 민변 대회의실에서 눈이 빨갛게 충혈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과연, 누가 그녀를 울린 것일까요?
바로 통일위 주관 영화 “불안한 외출” 민변 상영회에 등장하는 주인공 윤기진-황선부부와 그들의 두 딸 민이와 겨레 때문이었지요…
영화 ‘불안한 외출’은 1999년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의장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10여 년 간의 수배생활과 5년 동안의 감옥 생활을 해야 했던 한 청년과 그 가족들의 삶을 다룬 다큐영화인데요, 수배 중에 결혼 해 두 딸을 낳았지만 한 번도 딸들과 같이 살아보지 못했던 아빠가 처음으로 가족과 함께 살면서 겪게 되는 일상을 담고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그저 매일 매일 반복되는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이 이들 가족에게는 너무나 소중하고 꿈같은 일상으로 다가오는 모습이 보는 사람들의 가슴을 자꾸 묵직하게 만들었지요…
특히 출소 하루 전 감옥에서 쓴 편지를 이유로 검찰은 다시 그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하고, 출소와 함께 재판이 시작되고, 1년만에 다시 감옥에 갇히게 되는데요,,,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한 개인과 그 가족구성원들이 어떤 고통을 받고 있는지를 깊이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통일위원회 설창일, 이광철 변호사님은 영화 속 주인공들의 변호인으로 지금까지도 활약을 하고 계신데요, 그래서인지 영화 후 이어진 간담회와 뒤풀이에서도 영화의 진한 여운이 늦도록 이어졌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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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두산으로 찾아가자, 우리들의 백두산으로!”

8월 21일(금) 부터~8월 24일(월)까지 3박 4일동안 우리 민족의 성산 “백두산”으로 제3회 백두산 통일기행을 떠납니다.

통일위원회 백두산 통일기행은 1997년 1회 통일기행에 이어 지난 2013년 16만에 두 번 째 백두산 통일기행을 진행하였고, 올해로 3회 통일기행을 맞이하게 되었는데요, 아무쪼록 이번 백두산 통일기행이 막혀있는 남북관계에 작은 통일의 물꼬가 되길 바라봅니다.

백두산 통일기행 참가단은 통일위 꽃미남 7인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원조 꽃미남 천낙붕 변호사님과 그 계보를 잇는 설창일, 김용민, 양승봉, 이광철, 양창영 변호사님이 함께 하시고, 통일위원회 신입회원 서중희 변호사님은 통일위 점심모임에서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한다”는 말에 감명을 받아 이번 백두산 기행을 결심하게 되었답니다.

그 7인방이 들려주는 대망의 백두산 여행기는 다음 뉴스레터를 기대해 주시구요, 앞으로 통일위원회는 백두산 뿐만 아니라 분단의 역사를 가진 독일 등 세계 곳곳을 누비며 통일기행의 역사를 이어갈 야심찬 계획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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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출신의 동아일보 기자가 들려주는 통일이야기”

통일위원회에서는 광복 70돌을 맞이하여 이번 8월 월례회에 아주 특별한 분을 모시려고 합니다.
김일성 종합대학교를 졸업하고 2002년 대한민국에 입국하여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북한 관련 세계 최다 방문 사이트인 ‘서울에서 쓰는 평양이야기’를 운영하고 있는 주성하 기자가 바로 그 주인공인데요, 마침 지난 5월 민변 공부모임에서도 주성하 기자가 지은 『남쪽에서 보낸 편지』를 함께 읽으며 북한 주민의 눈으로 바라 본 남과 북의 실상을 통해 다양한 생각과 토론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특히 객관적인 북한전문가로 평가되는 주성하 기자의 강연은 최근의 북한상황에 대한 생생한 정보를 전하면서 향후 남북관계의 전망과 방향을 제시하는 시간이 되어줄 거라 기대되는데요, 민변 역사상 처음으로 동아일보 기자가 민변에서 강연하는 이색(?)적인 자리에 회원 여러분들의 많은 참여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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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출생
김일성 종합대학 졸업
2002년 남한 입국
2003년 동아일보 공채 입사
2015년 현재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북한전문기자)로 활동
저서 : 《서울에서 쓰는 평양 이야기》《주성하기자의 북한 바로보기》
《외국특파원들이 본 두 개의 코리아(번역) 《세계의 명문 직업학교를 가다》
《김정은의 북한 어디로 가나》

 

화, 2015/08/11-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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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통상위 워크샵 소식

 

국제통상위는 2015. 7. 17.∼18. 경기도 용인 파운타운에서 워크샵을 가졌습니다. 다들 업무로 바쁘신 가운데에도 준비를 많이 해 주셔서 1박 2일의 일정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워크샵 발제를 나누는 과정에 발제부분보다 참가자가 많은 초유의 사태가 벌어져 사다리타기를 통한 엄정한 분배로 발제를 맡지 못하신 분들을 위로할 수 밖에 없는 뒷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우선 워크샵의 꽃인 발제가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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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절차(ISDS) 제도론중에서 김종우 변호사님께서 ISDS 분쟁해결절차 일반론을, 임영환 변호사님께서 ICSID 중재절차에 관한 연구 부분을, 오현정 변호사님께서 ISDS와 최종성의 원칙 부분을, 차명심 변호사님께서 ISDS와 투명성 확보를 위한 국제적 논의 부분을 맡아서 발제를 해 주셨습니다.

 

다음으로 ISDS 비교 및 사례연구와 관련하여 박삼성 변호사님께서 우리나라가 체결한 국가별 투자협정에 포함된 ISDS 규정의 비교, 분석 부분을, 노주희 변호사님께서 미국투자자들이 세금 부과한 멕시코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ISDS 사례 분석 부분을, 박일지 변호사님께서 사법작용에 관한 ISDS 사례 분석 부분을 발제하여 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송기호 변호사님께서 TPP의 현황과 대응과제를 발표하시면서 워크샵 1부의 막을 내렸습니다.

 

노주희 변호사님의 국민MC급의 사회로 발제를 마치고 드디어 바비큐 시간이 되었습니다. 한우를 가져오신 임영환 변호사님께서 직접 요리까지 담당해주시는 멋진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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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샵 뒷풀이의 메인 음료는 역시 요즘 대세남인 백종원표 수박소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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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음식과 음료가 있는 베란다에서 신입 이연지 변호사님, 오현정 변호사님의 소개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뒷풀이가 시작되었고, 밤 깊은 시간까지 멋진 음악을 배경으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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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가볍게 아침을 먹고 산책을 하며, 다음 워크샵을 기약하면서 일정을 마무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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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5/08/11-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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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의 문법』, 『인권과 인권들』 독서 토론 후기

 

이하나(민변 13기 자원활동가)

 

7월 월례회는 『인권의 문법』과 『인권과 인권들』 두 책에 대한 독서 토론으로 진행되었다. 각자 발제를 분담해 책을 정리하고 논점을 뽑아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이었다. 두 책 모두 인권 관련 담론을 비교적 포괄적으로 다루는 이론서이고, 그 분량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월례회 때까지 다 읽어 오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참여자들 모두가 성실히 발제를 해왔기 때문에 전반적인 책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토론까지 이어갈 수 있었다.

조효제 선생님의 『인권의 문법』은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인권 이론 전반을 개괄하고, 인권에 대한 비판이론을 분야별로 충실히 소개한 뒤, 인권 민주주의의 모색을 결론으로 제시하는 종합적인 인권이론서였다. 저자의 논지는 후반부로 갈수록 뚜렷하게 드러나지만 그 전까지는 다양한 인권담론들을 일별하고 있어서, 처음 인권을 접하는 이들에게 친절한 길잡이가 되어 주기에 충분했다. 반면 정정훈 선생님이 쓴 『인권과 인권들』은 인권에 대한 저자의 입장을 보다 전면에 내세운 책이었다. 『인권의 문법』이 포괄적인 인권 개설서에 가깝다면, 『인권과 인권들』은 저자의 논지를 중심으로 인권에 관한 철학적 논점을 재구성한 정치철학 저술이었다. 나는 두 책 중 『인권과 인권들』을 맡았는데, 책에서 전개되는 논의가 다소 사변적이어서, 보다 생생한 토론을 이끌어내고자 최근에 있었던 이주노조 합법화 판결 사례와 책 내용을 비교하는 발제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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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의 문법』과 『인권과 인권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바는 바로 인권이 ‘정치적’이라는 점이었다. 이 주장은 인권이 흔히 정치와는 무관하게 보편적으로 합의 가능한 도덕적 권리처럼 여겨지는 통념에 정면으로 반한다. 인권운동을 하는 측에서도 인권보장에 소홀한 정부와 정치권을 비판하기 위해 ‘인권은 정치적 합의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인권에 정치적 계산을 대입하지 말라’는 수사를 구사하는 마당에, 위 저자들은 어떤 근거로 저런 도발적인 테제를 제시하는 것인가? 내가 맡은 책 『인권과 인권들』에서는 근대 인권이 등장한 역사적 배경과 그 이후 전개된 일련의 철학적 논쟁들로부터 인권의 근본적인 정치적 성격을 도출하고 있었다. 저자에 따르면 근대 인권은 애초에 그것이 본격적으로 현실화되기 시작한 프랑스 혁명기에 현실의 공동체를 변혁하고 재조직하는 ‘정치’의 원리로 제시되었으며, 그 후 이어진 일련의 인권 비판 및 대안 담론들은 모두 정치와 분리된 인권 개념의 위험성을 줄곧 지적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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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인권에 비판적인 이들은 주로 현실에서 인권이 결코 보편적이지 않다는 점에 주목한다. 실제로 인권은 특정 국민국가에 의해 ‘시민’으로 인정된 이들에게만 제한적으로 보장되어 왔기에, 시민에서 배제되거나(비시민) 열등한 시민으로 규정된(2등 시민) 이들은 권리의 사각지대로 내몰리는 결과가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그에 따라 인권 비판론자들은 ‘시민 아닌’ 인간에게 ‘인도적 차원’에서 최소한의 권리로 부여되는 탈정치적 인권 개념이 무용할 뿐만 아니라 현실의 억압을 은폐하는 기만적 역할까지 한다고 공격한다. 이에 맞서 인권을 옹호하는 입장은 바로 그 ‘시민 아닌’ 인간이 인권을 주장함으로써 기존 체제를 변혁하는 저항주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즉 인권은 기존 체제에서 배제된 이들로 하여금 그저 ‘살아있게만 하는’ 권리가 아니라, ‘모든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그 이상에 비추어 부당한 현실을 비판하고 변혁할 수 있게 하는 정치적 주체화의 언어라는 것이다. 정정훈은 바로 후자의 관점을 채택하여, 인권이 근본적으로 정치적 권리임을 역설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의 과제는 인권을 정치와 무관한 도덕적 규범으로 고착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존엄과 평등자유를 선언한 인권의 이상을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실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권력관계를 변화시키는 ‘인권의 정치’가 되어야 한다. 『인권의 문법』 또한 ‘인권 민주주의’를 제시하면서 비슷한 결론으로 책을 끝맺고 있다. 인권이 그 자체로 최고선을 보증할 수 없는 개념인 만큼, 치열한 토론과 정치적 과정을 거쳐 인권이 민주주의와 공동선에 기여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 점에서, 『인권의 문법』은 『인권과 인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결론에 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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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를 나눈 뒤 우리는 크게 두 가지 쟁점을 뽑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첫 번째 쟁점은 인권을 보장해야 할 필요성, 두 번째 쟁점은 신자유주의와 인권 간의 관계였다. 우선 인권이 왜 필요한가에 대해서는, ‘자신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받으려면 각자의 생명 및 존엄을 존중하기로 다른 이들과 약속해야 하므로.’라는 입장과, ‘우리는 홀로 살 수 없고, 언제나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므로’라는 두 가지 의견이 제시되었다. 전자에 대해서는 그 내용이 사회계약론과 유사하기 때문에, 사회계약론의 전제인 ‘자연상태’나 ‘전쟁상태’가 현실과 동떨어진 의제적 개념이라는 점이 문제로 지적되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실제로 무권리 상태에 처하는 경우, 예컨대 돈이 없어서 치료를 못 받아 죽는다거나, 난민 혹은 이주노동자들이 어떠한 제도적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 등을 쉽게 찾아볼 수 있으므로, 그러한 무권리 상태를 끔찍한 ‘전쟁상태’에 비유해 인권 보장의 필요성을 도출할 수 있지 않느냐는 반론이 제기되었다. 두 번째 쟁점인 신자유주의와 인권 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제법 팽팽한 의견 대립이 전개되었다. 특히 『인권과 인권들』의 저자가 지나치게 신자유주의를 인권의 ‘적’으로 악마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있었다. 이에 대해서는 신자유주의가 그 특성상 인권과 대립할 수밖에 없다는 반대 의견이 제시되었고, 신자유주의를 인권 친화적인 개념으로 재구성할 수 있지 않느냐는 재반론이 오고갔다. 그러나 토론 자리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정의가 합의되지 않아 제대로 된 논의가 진행되기는 힘들었다. 보다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토론이 이루어졌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았지만, 짧은 시간동안 상당한 양의 발제와 각자의 소견을 나눈 것만으로도 7월 월례회는 알찬 시간으로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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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독서 토론을 통해 기존에 내가 인권에 대해 갖고 있었던 파편적인 생각들을 정리해 볼 수 있었다. 나아가 여전히 인권이 정치적·사회적으로 유의미할 수 있음을 확인하는 유익한 시간이 되었다. 자칫 전문적인 법적 담론에 갇힐 수 있는 인권 개념을, 피억압자들의 생생한 저항의 언어이자 새로운 공동체를 건설하는 정치적 상상력으로 살려내는 일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달았다. 지금도 현장에서 분투하는 수많은 변호사들 및 인권운동가들의 활동이 바로 위 두 책이 힘주어 주장하는 ‘인권의 정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권의 이상을 제약하고 후퇴시키려는 잔혹한 현실에 맞서서, 보편적인 존엄과 평등자유를 요구하며 싸우는 모든 이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나 또한 그러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사회인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화, 2015/08/11-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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