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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청산위] 제주도 4.3 평화기행 후기_양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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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청산위] 제주도 4.3 평화기행 후기_양성우

익명 (미확인) | 화, 2018/02/27- 15:12

제주도 4·3 평화기행 후기

양성우회원

올해는 제주 4·3항쟁이 어느덧 70주년을 맞이하는 해입니다.

이에 「과거사청산위원회」는 제주 4·3항쟁의 참혹한 역사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그 의미를 재확인하는 한편, 4·3항쟁으로 희생된 제주도민들을 추념하기 위해 2박 3일의 일정(’18.1.9.~1.21.)으로 “제주도 4·3 평화기행”을 다녀왔습니다.

저는 과거사청산위원회의 신입회원으로 이번 평화기행에 참여하게 되었는데요, 짧은 일정에도 불구하고 4·3항쟁의 역사적 현장들을 돌아보며 ‘인권’과 ‘평화’의 가치, 그리고 그 실천에 대해 깊이 고민할 수 있는 기회가 된 동시에 시간을 뛰어 넘어 4·3항쟁으로 희생된 분들의 아픈 역사를 공유, 공감하는 과정에서 4·3의 정신을 기릴 수 있었습니다.

과거사1

 

‘꼭 들러봐야 할 4·3 평화공원’

“4·3평화공원”은 이번 평화기행에서 첫 번째로 방문한 곳입니다. 이 곳은 오랜 세월 해원(解冤)되지 못한 4·3 희생자의 넋을 위령하고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 희생자의 명예를 회복하는 등의 목적으로 2008년에 설립된 평화·인권 기념 공원으로, 작년에도 20만 명이 넘는 방문객들이 다녀갔을 정도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또, 4·3평화공원은 약 10만평의 규모를 가지고 있는데, 4·3희생자에 대한 참배를 진행하는 위령제단, 위패가 모셔져 있는 위패봉안실, 추념식이 진행되는 추모광장, 시신을 찾을 수 없는 희생자 표석이 있는 행방불명자비원 등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저희는 위령제단 앞에서 4·3 영령들에 대한 묵념과 추모를 하며 본격적인 평화기행 일정을 시작했는데요,

4·3 당시 희생된 희생자들의 억울한 넋을 위로하고 그 사실에 대한 기록의 의미를 담고 있는 위령탑과 위패봉안실, 그리고 각명비 등을 둘러보다 보면, 제주 4·3이 지속됐던 7년 7개월 간 국가 공권력에 의해 너무나도 많은 무고한 제주도민들이 무참히 학살되었다는 사실이 직접 피부로 와 닿습니다.

과거사2

(각명비, 4·3희생자 약 1만 5천 ~2만 여명의 성명, 성별, 당시 연령, 사망 일시와 장소 등을 기록한 군집비석)

1세, 4세 등 적지 않은 수의 어린아이들의 이름과 나이도 눈에 보입니다..

또, 시신을 찾지 못해 묘가 없는 행방불명인(여기서 행방불명인은 대부분 4·3사건 와중에 체포되어, 각 지역의 형무소에 수감된 후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을 말합니다)의 이름 석 자만을 빗돌에 새긴 행방불명인 표석은, 유해 없는 이름만이라도 비석에 새겨 부모와 자식을 추모하려는 그 유족과 후손들의 뼈아픈 심정을 고스란히 전해줍니다. 다들 안타까운 마음 탓인지 발걸음도 무거워졌습니다.

과거사3

행방불명인 표석 주변에 조성된 다박의 비문들은 능히 4·3 희생자들의 유가족과 그 후손들이 반세기를 훌쩍 넘는 긴긴 세월 동안, 상상하기 어려운 질곡의 삶을 살아왔음을 짐작케 합니다. 모두 부디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이제 나는 나즉히 노래합니다. 까마귀 소리 처량한 울음 따라 눈물 마저 말라버린 한 많은 세월 주정공장 수용소 긴 벼랑 붉은 동백꽃이 뚝뚝 떨어질 때 그 고운 사람들은 어디로 어디로 갔나요 <진혼 中>”

“서촌꽃밭에서 이제랑 편히 쉬십서”

과서사4

<4·3 평화기념관 안의 백비>

4·3 평화기념관 1층 전시관에 들어서면, 관처럼 생긴 눕혀진 ‘백비’라는 이름의 비석 하나를 볼 수 있습니다. 소개 글에는 “언젠가 이 비에 제주 4·3의 이름을 새기고 일으켜 세우리라”는 문구도 기재되어 있는데, 그 내용이 의미하는 대로 ‘봉기. 항쟁, 폭동, 사태, 사건’ 등으로 다양하게 불려온 ‘제주 4·3’이 하루빨리 올바른 역사의 이름을 얻고 세워지길 기원해봅니다.

‘아픈 역사의 현장, 북촌 마을’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4.3 당시 단일 사건으로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가져온‘북촌리 주민 대학살 사건’이 발생한 북촌 마을,

처음에는 이렇게 아름다운 마을에서 한 날 한 시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주민 300여명이 한꺼번에 희생되었을 그 날을 생각하니 도저히 머릿속에서 잘 그려지지 않았는데요,

과거사5

<북촌마을 노인 회장님의 증언>

너븐숭이 4·3기념관에서 만난 북촌마을 노인 회장님의 증언을 들으면서, 당시의 참혹상이 머릿속에 그려질 뿐만 아니라 그 날의 기억을 생생하게 안고 사시는 노인 회장님의 아픔도 함께 느껴지면서 제 마음도 먹먹해졌습니다.

한편 북촌리 집단학살은 소설가 현기영의 ‘순이삼촌’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는데, 너븐숭이 기념관 주변에는 순이삼촌 문학비가 함께 조성되어 있는데요. 몇몇 회원님들은 오랫동안 묻혀있던 사건의 진실을 문학을 통해 세상에 알렸다는 점에 주목해 얘기를 나눴는데,‘펜’이 갖는 힘과 의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았습니다.

‘제주의 이면, 섯알오름 학살터’ 와 ‘백조일손지묘’

이튿날에는 섯알오름 학살터, 백조일손지묘 등 여러 곳을 방문하는 일정이었습니다. 섣알오름 학살터(서부지역의 예비검속자들이 집단 학살된 장소입니다)를 따라 걷기 전까지만 해도, 제주 내 오름을 멋진 풍광을 가진 아름다운 장소로만 생각했는데, 4.3사건 학살의 상당수가 오름에서 이루어졌고, 희생자들 대부분은 당시 영문도 모른 채 트럭에 올라 오름으로 끌려와 학살되었다는 내용을 듣고는 오름이 새롭게 보였습니다.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과 눈에 보이지 않는 참혹한 아픔의 역사가 공존하는 오름, 문득 제주를 몰라도 너무 몰랐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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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조일손지묘, 참배사진>

섯알오름에서 학살된 132분들의 유해가 모셔져 있는 곳이 백조일손지묘입니다. ‘백조일손’은 ‘조상은 백 명이지만 하나의 자손이다’라는 뜻인데, 이 명칭에는 유족들의 아픔이 깃들어 있습니다. 처음 200여명의 모슬포 주민들이 총살당해 섯알오름에 묻혔는데, 그 유가족들은 당시의 상황 때문에 시신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6년이 지나서야 희생자들에 대한 유해 발굴이 이루어졌는데, 물과 함께 썩은 시신들이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이 뒤엉켜져 있었습니다. 이후, 뼈를 하나하나 수습해 맞춰 132구의 유골이 수습되었지만 누가 누군지 알 수가 이를 모아 이 곳에 묘역을 마련하여, 위와 같은 이름이 붙여진 것입니다.

한 가지만 부연하면, 이 묘비는 5.16. 쿠데타 세력에 의해 묘비가 파괴되었다가 문민정부에서 다시 세워졌는데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국가가 파괴했던 묘비를 다시 세우면서 맨 위에 태극기와 무궁화를 올렸다는 것입니다. 묘역을 안내해주신 김남훈 제주다크투어 운영위원의 설명에 따르면, 묘비의 태극기와 무궁화는 유족들의 뜻으로 묘비에 태극기와 무궁화가 있으면 다시 정권이 바뀌더라도 함부로 파괴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과 기대에서 조성된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설명에 아파도 너무 아픈 역사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제라도 유족들의 묘비가 잘 지켜지기를 기원했습니다.

 

‘맺으며, 4·3에 정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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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다 보니, 너무 사건 중심의 후기가 된 것 같아 민망한 마음이 드네요. 저희 제주 4·3 기행은 술자리도 게을리 하지 않았는데 말이죠. 저희는 오후 일정까지 마친 뒤에는 이틀 밤 모두 맛있는 음식과 술을 먹고, 마시며 제주의 밤을 보냈습니다.

과거8 과거9

특히 첫 날 저녁식사는 참석하신 모든 분들의 자기소개와 개인적인 소감 등을 듣는 시간으로 진행되었고, 회원 분들의 진솔하면서도 재치 넘치는 이야기들이 많이 오고 가면서 첫 날의 긴장감이 풀려지는 한편 즐거운 대화와 소통이 계속 이어져 나갔습니다.

저는 둘째 날 밤에는 조금 일찍 들어왔는데, 그날 새벽 수없이 잠을 깼습니다. 왜 잠을 깼는지 정확한 이유를 모르다가 몇 번의 잠을 더 깨고 나서야 그 이유를 짐작해봤는데, 이번 기행 중에 알게 된 제주의 참극, 국가가 자행한 폭력으로 인해 지난 70년의 세월 동안 4·3의 희생자들과 그 유가족들이 겪었던 아픔 일부분이 제게 전이되었거나 그로 인해 부지불식간에 생긴 일종의 부채감 때문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갔습니다.

서울로 오는 비행기에서 생각했습니다. 우리에게 남겨진 몫이 있고, 그 몫은 4·3의 묻혀진 진실을 찾고, 기억하며, 주어진 길을 두려움 없이 한 발 한 발 내딛는 일이 아닐까 하는… 끝으로 이번 평화기행의 구호이자 회식 때 가장 자주 외쳤던 건배사로 글을 마칩니다.

“역사에 정의를! 4.3에 정명을!”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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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 가동 전면중단에 따른 정보공개 청구 

국제통상위 송기호 변호사는 지난 11일 정부의 개성공단 가동 전면중단 조치에 따라 청와대와 통일부를 상대로 ‘정부의 개성공단 중단 조치가 대통령 긴급재정경제명령의 행사인지, 남북교류협력법을 적용한 통일부 장관의 협력사업 정지 조치인지’를 확인하는 정보공개청구를 제기하였다.

한국정부는 개성공단 중단 조치를 밝히며 ‘“이는 고도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 공익 목적으로 행해진 행정적 행위이며, 이번 조치는 우리 국민의 신변안전을 최우선으로, 도발의 악순환을 끊고 북한의 태도변화를 압박하기 위한 것이다” 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국제통상위는 “기업활동과 재산권을 직접 제약하는 개성공단 전면중단은 법적근거가 있어야 하고 법적 절차를 따라한다”라고 주장하며 정부에 법적 근거에 대한 정보공개청구를 제기한 것이다.

 

관련하여 송기호 위원장은 인터넷 언론인 프레시안에 ‘개성공단 불법중단과 재산 동결, 희망 없나‘라는 기고글 게재하며 ’개성공단 재산 정산 협상에서 대화의 끈을 유지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관련 글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33196

월, 2016/02/15-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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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위 월례회

2018. 10. 17. 수 19:00 민변 사무실

권호현 변호사

애매한 시간과 장소다. 한창 회사에서 닭가슴살과 양상추, 그리고 반으로 잘린 방울토마토를 퍽퍽하지 않게 적당한 비율로 섞어 씹으며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어야 할 시간이다.

선배들은 위로와 격려를 그치지 않았다.
“3년 뒤에 다시 오면 된다. 나도 고용변 해봐서 안다. 너 정도면 잘 하고 있는거다. 함께 일할 생각하지 말고 지금처럼 가끔씩 회의만이라도 나와라.” “아, 회의는 좀 더 자주와라”

그래도, 그게 참 쉽지 않다.
월례회는 특히 그렇다. 금융부동산, 공정경제, 조세재정 각 팀 단위로 활발히 돌아가는 민생경제위원회의 월례회는 주로 그 달의 각 팀 활동, 사무처의 활동을 보고, 공유하는 자리여서 더 그럴 것이다. 내가 팀에서 뭘 한 것도 없고, 팀 회의도 자주 못 가면서 월례회에 얼굴을 비출 염치가 없는 것이다.

그러던 중 받은 10월의 월례회 소식. 홍기빈, 그리고 기본소득.

2011년 즈음이었나, 당시 활동하던 학회에서 비그포르스 관련 책을 읽고 홍기빈쌤을 모신 적이 있다. 그 때는 훨씬 날렵하셨다. 참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설명에 거침이 없었고 애매한 답변을 하지 않았다. 이 분과 더 대화하려면 더 읽고 익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해주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막연하게만 알고 있던 기본소득의 기본 개념에서부터 한국에서 어떻게 시작되어야 하는지, 왜 시작되어야 하는지, 어떠한 결과를 낳을 것인지, 그의 설명은 거침없었다. 그의 짧고도 길었던 강연 끝에 남은 건, “자본의 본성에 관하여(소스타인 베블런)”, “21세기 기본소득(필리프 판 페레이스)”를 읽어야겠다는 생각, 그리고 법공부 5년차에 이미 나도 “기성세대”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것.

경제학자나 법률가나 결국 구체제를 유지하면서 약간의 개선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경제학이든 법학이든 학문이라기보다는 이데올로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 그랬던 내가 어느새 법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됐다. 치열한 해석을 내놓기 전에 입법론으로 도피하지 말라고 하지만, 때로는 뭘 해야할지, 왜 해야할지를 법률이라는 틀을 넘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다시금 알게 해준 강의였다. 김광규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가 떠올랐다.

다음 월례회는 11. 21. 19:00 다시 민변이다. 금융부동산팀의 이강훈 변호사님께서 “형사소송 노하우”를 전수해줄 예정이다. 입법론으로 빠르게 도피하려면 치열한 해석을 충분히 해야할테다. 다시 또 가보자.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 – 김광규

4·19가 나던 해 세밑
우리는 오후 다섯 시에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불도 없이 차가운 방에 앉아
하얀 입김 뿜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
결론 없는 모임을 끝낸 밤
혜화동 로터리에서 대포를 마시며
사랑과 아르바이트와 병역 문제 때문에
우리는 때 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노래를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노래를
저마다 목청껏 불렀다
돈을 받지 않고 부르는 노래는
겨울밤 하늘로 올라가 별똥별이 되어 떨어졌다
 
그로부터 18년 오랜 만에
우리는 모두 오랜만에 무엇인가 되어
혁명이 두려운 기성세대가 되어
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
회비를 만 원씩 걷고
처자식들의 안부를 나누고
월급이 얼마인가 서로 물었다
 
치솟는 물가를 걱정하며
즐겁게 세상을 개탄하고
익숙하게 목소리를 낮추어
떠도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었다
아무도 이젠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적잖은 술과 비싼 안주를 남긴 채
우리는 달라진 전화번호를 적고 헤어졌다
 
몇이서는 춤을 추러 갔고
몇이서는 허전하게 동숭동 길을 걸었다
돌돌 말은 달력을 소중하게 옆에 끼고
오랜 방황 끝에 되돌아 온 곳
우리의 옛사랑이 피 흘린 곳에
낯선 건물들 수상하게 들어섰고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아직도 남아 있는 몇 개의 마른 잎 흔들며
우리의 고개를 떨구게 했다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바람의 속삭임 귓전으로 흘리며
우리는 짐짓 중년기의 건강을 이야기했고
또 한 발짝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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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8/10/22-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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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 대구지부

영풍 석포제련소 폐쇄를 위한 법률대응단 활동

 

2018. 11. 11. 아침, 제3차 낙동강 현장기행 시민조사단과 함께 영풍 석포제련소로 출발했다. 경북 봉화군 석포면의 석포제련소. 영풍그룹 계열인 고려아연 온산제련소와 함께 국내 아연 생산의 쌍벽을 이루는 곳이다. 철제품 부식방지 도금용으로 주로 쓰이는 아연은 한국에서 자급 가능한 몇 안 되는 비철금속이라고 한다.
석포 가는 길은 멀고 험했다. 다가설수록 미세먼지를 머금은 안개가 짙어졌고 인적은 드물었다. 석포 초입의 휴게소에서 내려다 본 낙동강은 차고 맑아보였으나 아래쪽에는 무시무시한 게 살고 있을 것만 같았다. 길 따라 조금 더 내려가니 석포사람들이 불편한 표정으로 우리를 맞았다. 그들은, 아직 큰일 없었으니 앞으로도 쭉, 아니 자식들을 먹일 동안이라도 모른 체 해달라고 하는 듯 했다. 허나 그곳엔 진짜 무시무시한 게 살고 있었다. 무시무시한 것은 희뿌연 무언가를 쉼 없이 뱉어내고 있었다. 희뿌연 무언가를 온전히 받아낸 산은 시뻘건 맨살을 내놓고 있었다. 맨살을 드러낸 산을 감싼 낙동강은 휴게소에서 본 그 낙동강이 아니었다. 48년이나 아팠던 낙동강은 더운 숨을 내쉬면서 왜 이제야 왔냐고 우리를 나무라는 듯했다.

「김무락 변호사(대구지부 사무차장)의 석포제련소 환경오염 실태 조사 후기」

2018. 11. 11. 제3차 낙동강 기행 중 영풍 석포제련소 환경오염 실태 조사 모습

영풍 석포제련소는 1,300만 영남인의 상수원인 낙동강의 상류에 자리하고 있어 석포제련소가 야기하는 식수원 오염에 대한 불안감이 낙동강을 따라 영남지역 전체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에 민변 대구지부에서는 법률대응단을 구성하였습니다. (김무락, 박경찬, 백수범, 성상희, 이유정, 정재형, 최지연 변호사)

1970년 영풍이 봉화군 석포면에 제련소를 준공, 가동하여 온 이래 50년 가까이 누적되어 온 환경오염의 문제는 석포면이 위치한 지역의 특수성으로 말미암아 전국적으로 알려지지 못하고, 석포면 인근 주민과 소수의 사람들만이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는 문제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2014년 6월에 와서야 시민들이 석포제련소부지 내 토양이 중금속에 심각하게 오염되어 있다고 국민권익위에 신고를 하였고, 2015. 3. 토양정밀조사결과 석포제련소 부지 내 6만여 ㎡의 토양이 토양오염우려기준의 최대 414배 초과하는 중금속이 검출되면서 비로소 많은 사람들이 심각성을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봉화군이 1,2공장 부지의 오염토양을 정화할 것을 명령하였으나 주식회사 영풍(이하 ㈜ 영풍)은 토양정화명령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가 봉화군에 토양정화기간을 2년 연장해 줄 것을 신청하였고, 봉화군이 거부하자 2017. 5. ㈜영풍은 봉화군수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행정소송에서 1, 2심은 ㈜영풍이 승소하였고, 현재 대법원에 상고심이 진행중입니다.

2018년 2월 시민들이 ㈜영풍의 폐수 70만톤 무단방류 사실을 신고하였고, 관계기관의 합동점검 결과 7가지 불법행위가 적발되어 2018. 4. 5. 경상북도가 조업정지 20일 행정처분을 내렸습니다. ㈜영풍은 이에 불복하여 경상북도지사를 상대로 조업정지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행정심판을 제기하였다가 기각되었는데도 다시 대구지방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하여 현재 1심이 계속중이고, 2019. 4. 3. 법률대응단에서는 봉화주민 4명, 안동주민 2명으로 피고 보조참가인을 모집하여 보조참가신청서를 대구지방법원에 제출하였습니다. 피고 보조참가인 소송대리인에 대구지부 회원 19명이 연명에 동참하였습니다.

 

▷ 민변 대구지부 주최 토론회

2018. 11. 14. 민변 대구지부와 영풍 석포제련소 공동대책위원회는 ‘낙동강 최상류 영풍 석포제련소로 인한 식수원 오염 실태와 법률대응 방안’을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하였습니다. 토론회의 발제자로 나선 백수범 변호사는 영풍 석포제련소 환경오염 행위에 대한 법률대응 방안을 차분히 설명하였고, 토론자로 참여한 최지연 변호사는 백수범 변호사의 법률대응 방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지정토론을 마무리하였습니다. 토론회에는 정재형 변호사(토론사회), 김무락 변호사(전체 사회), 오랜 기간 영풍 석포제련소 문제를 다뤄 온 맹지연 환경운동연합 생태보전국장,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생태보존국장, 이상식 영풍제련소 공대위 공동대표, 신기선 영풍제련소 공대위 공동집행위원장이 참여하였습니다.

 

▷ 2018. 11. 30. KBS 추적60분

“낙동강 미스터리, 48년 영풍공화국의 진실”방영

2018. 12. 18.~19. 1박 2일간 봉화 승부리를 방문한 백수범, 김무락 변호사

 

 

2019. 3. 14. 영풍공대위와 법률대응단 합동회의 및 대구민변과의 간담회

 

▷ 법률대응 진행상황

토지정화명령 건은 법률검토를 거쳐 봉화군과 대법원에 법률의견서를 제출하기로 하며 현 상황에서 적절하고 필요한 조치가 무엇인지 추가 대응방법을 검토하기로 하였습니다. 3공장 불법건축물의 합법화 과정, 2, 3공장 폐수 무단방류와 관련하여서도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그에 따른 형사고발과 감사청구 등의 법률대응을 하기 위해 검토와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손해배상소송 관련하여서는 우선 소수의 원고라도 모집하여 시범소송으로서 영풍 석포제련소 오염물질 배출로 인한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법률대응기금 마련을 위한 모금운동을 시작, 1차 모금 마무리하였습니다. 개인과 단체 합하여 101명이 참여했고 모금액은 2천여만원입니다. 모집된 성금은 원고들이 소송비용에 대한 부담없이 소송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변호사보수를 포함한 각종 법률비용으로 사용하기로 하였습니다.

많은 분들의 노력이 쌓여 다행히도 최근 여러 방면의 환경이 진전되어 가고 있으니 이 불씨를 잘 살려가면 머지 않아 문제해결의 적기가 올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민변 대구지부는 그동안 애써오신 영풍제련소 공대위와 봉화대책위 및 활동가 분들과 협력하여 영풍 석포제련소 문제에 함께 대응해 나아기로 하였습니다. 대구지부의 활동에 전국 회원님들의 많은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리며 대구지부 근황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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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9/04/05-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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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 언론위원회가 최근 집중 논의 중인 이슈를 하나 전하고 회원님들의 도움을 요청 드립니다.

‘흉악범 얼굴 공개’ 문제입니다.

최근 잇따라 발생한 강력범죄 피의자들의 얼굴, 실명 등 신상 정보가 경찰에 의해 공개돼 언론에 자주 등장했는데요. 공개가 되는 경우와 되지 않는 경우(예를 들어 ‘수락산 등산객 살인’ 피의자는 전자, ‘사패산 등산객 살인’ 피의자는 후자였습니다.) 사이의 구분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지극히 자의적”이라는 비판은 물론 나아가 “시국 상황 등에 따라 국민들의 현안에 대한 관심을 돌리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됐습니다. 이에 경찰은 관련 지침을 개정해 신상 공개 결정을 기존처럼 경찰서가 아니라 지방경찰청이 맡는 등 운용을 개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피의자 신상 정보 공개가 헌법상 무죄 추정 원칙, 이중처벌 금지 원칙 등에 위배되므로 법률적 근거가 되고 있는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제8조의2 제1항,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23조 제1항 자체가 위헌이라는 지적이 유력합니다. 언론위원회는 위 법률 규정 등의 위헌 확인을 구하는 헌법소송과 같은 법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보고 연구에 착수했습니다. 위 대응을 위해서는 우선 신상 정보 공개로 인한 피해자(강력범죄 피의자)들 중 대응 의사를 지닌 당사자를 찾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될 것 같습니다.

위 이슈에 대해 관심과 의견 있으신 회원님들께서는 언론위원회 소속 여부를 떠나 언제든 언론위원회로 연락하고 논의에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특히 변호인을 맡는 등으로 신상 정보 공개 피해자들과 직·간접적 접촉 경험이 있으신 회원님들께서는 꼭 관련 정보를 알려 주셨으면 합니다.

월, 2016/06/27-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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