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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중] 페미니스트 정의 2항 삭제 서명운동에 동참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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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중] 페미니스트 정의 2항 삭제 서명운동에 동참해주세요!

익명 (미확인) | 금, 2018/02/23- 15:17

 

페미니스트서명운동

 

국립국어원, 그게 최선입니까?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페미니스트’ 정의 2항, 

“예전에, 여자에게 친절한 남자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삭제 및 수정에 동참해주세요!

 

 

페미니스트는 ‘여성에게 친절한 남성’ 일까요?

최초

1. 여권신장 또는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사람

2. 여성을 숭배하는 사람, 또는 여자에게 친절한 남자

 

2015년

1. 페미니즘을 따르거나 주장하는 사람 

2. 여자에게 친절한 남성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2017년

1. 페미니즘을 따르거나 주장하는 사람 

2. 예전에, 여자에게 친절한 남자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국립국어원의 ‘페미니스트’ 정의는 잘못된 성 인식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현 정의 2항, “여자에게 친절한 남자”는 페미니스트에 대한 오해를 일으키고, 성차별을 조장합니다. 국립국어원의 잘못된 성 인식에 우려를 표하며, ‘페미니스트’ 정의 2항을 삭제하고 정의를 추가할 것을 요구합니다. 페미니즘에 대한 바른 이해, 성차별 없는 사회를 향한 첫걸음을 위해 현 정의 2항 삭제를 촉구하는 서명에 참여해주세요! 서명은 국립국어원에 제출할 예정입니다. 

 

 

어떻게?  

  1. 온라인 서명에 참여해주세요! >>Bit.ly/이게최선
  2. SNS(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트위터 등)에 서명 링크와 함께 #국립국어원_그게_최선입니까? 를 올려주세요 
  3. 3월 4일(일) 12시, 서울 광화문광장 '청년참여연대' 부스에서 만나요! 

 

 

 

 

문의 : 청년참여연대 (02-723-4251)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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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참여연대와 함께 가요! 성평등을 향해 전진하라, 퇴행의 시대를 넘는 거센 연대의 파도 3.8 세계여성의날 기념 제 38회 한국여성대회 홍보 포스터

안녕하세요 청년참여연대입니다.

매년 3월 8일은 세계여성의 날입니다. 이번 3.8 세계여성의 날을 맞이하여 3/4 토요일 오후 12시부터 제 39차 한국여성대회가 서울광장에서 열립니다. 성평등한 세상을 원하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모여 즐기기도 하고, 퇴행의 시대를 막기 위한 행진도 진행합니다. 청년참여연대도 역시 참여할 예정입니다. ?

성평등한 세상을 위한 발걸음, 청참 여러분도 많관부!

 ?일시 : 2023년 3월 4일(토) 오후 12시~오후 5시

 ?장소 : 서울광장

 ?주최 :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 제38회 한국여성대회 조직위원회

 ?주관 : 한국여성단체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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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23/02/28-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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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캠페인어벤져스 꿈틀 홍보 배너. 온라인혐오와 기후위기 대응을 주제로 캠페이너를 모집, 2023년 4월 1일 토요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진행하며 서울시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진행한다.

안녕하세요? 청년참여연대입니다. 

설레는 계절, 봄이 오고 있습니다. 길었던 겨울을 보내고, 2023년을 새롭게 시작할 때가 왔네요.?

청년참여연대는 올해도 다양한 청년들과 함께 ‘젠더’와 ‘환경’을 주제로 캠페인을 진행합니다.

온라인혐오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캠페인을 새롭게 기획할 예정이랍니다.

청년참여연대와 함께 활동하고 싶은 당신을 위해 <꿈틀 : 2023 캠페인어벤져스> 워크숍을 준비했어요!

2022년 활동을 돌아보고 평가한 후, 2023년에 어떤 활동을 할지 브레인스토밍을 하는 자리입니다. 

  • 일시 : 4/1 (토) 오후 2시 – 4시
  • 대상 : 2030 청년 25명 내외
  • 장소 : 서울시 종로구 참여연대 지하 느티나무홀
  • 준비물 : 열린마음, 텀블러
  • 문의 : 02-723-4251 [email protected]

? ‘꿈틀’에는 어떤 사람들이 오나요? 

현재 14명의 캠페이너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안정적인 캠페인 활동을 위해 이런 청년들을 기다리고 있어요!

? 청년참여연대가 궁금한 청년

?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 청년

? 액션과 캠페인으로 세상을 바꾸고 싶은 청년

? 함께 이야기 나눌 동료를 찾는 청년 등

? ‘캠페인 활동’은 뭘 하나요?

젠더와 환경을 주제로 청년들의 문제의식을 녹여 목소리 낼 수 있는 액션을 기획, 시행해요. 

? 주제 : 젠더 – 온라인혐오, 환경 – 기후위기 대응 (열린 주제)

? 활동기간 : 2023년 4월 ~ 11월 (약 8개월) 

*꿈틀 워크숍은 캠페인 브레인스토밍을 하는 자리입니다. 1회성 프로그램이니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하시고, 이후에 캠페인 참여 여부를 결정해도 됩니다!

지난 꿈틀 행사 후기 살펴보기

캠페인어벤져스는 새롭고 다양한 청년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청년참여연대와 함께 즐거운 캠페인 활동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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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23/03/14-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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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 간담회 신청 포스트 배너. 제목은 '꽃이 저물어도 그대를 잊지 않겠습니다 -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 간담회' 라고 적혀있다. 내용은 1부 - 국가부재의 날. 남겨진 시민, 2부는 남겨진 시민과 연대하는 시민으로 테이블토크로 진행된다. 일정은 4월 4일 화요일 저녁, 7시부터 9시 30분 까지며 서울시 종로구 참여연대 에서 진행된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로 희생자 304명이 명을 달리했습니다.  

희생자가 발생하는 시간에, 국민 안전을 지키는 국가는 없었습니다. 

시인 정호승은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시를 통해 세월호 참사의 고통과 슬픔을 기억하고 연대하겠다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2022년 10월 19일,

우리는 ‘10.29 이태원참사’를 목도했습니다.  

그날도 시민안전을 위한 국가는 없었습니다. 시민안전에 대한 정부의 무관심과 무책임으로 159명의 시민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10.29 이태원참사는 너무나 많은 물음표를 남겼습니다. 

왜 서울시는 현장 질서유지를 위해 경찰 인력을 투입하지 않았는지

왜 6시 34분에 접수된 최초 신고 접수는 사건 종결되었는지

왜 정부는 유가족들을 서로 만나지 못하게 했는지

왜 서울시는 분향소 설치를 못하게 막는지

정부는 제대로 된 조치 없이 유가족과 시민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시간만 하염없이 흘러갑니다.

꽃이 저물어도, 우리는 잊지 않고자 합니다. 

기억의 힘으로 연대하고 안전사회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함께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마주하기 어렵고 피하고 싶은 순간 일 수 있습니다. 

혼자는 어렵지만 청년참여연대는 많은 청년들과 함께 그 시간을 마주하여 연대의 마음으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많은 참여와 관심 바랍니다. 

  • 일시 : 4/4(화) 저녁 7시 – 9시
  • 장소 : 서울시 종로구 참여연대 지하 느티나무홀
  • 대상 : 2030 청년
  • 내용 
  • 1부 – <국가 부재의 날, 남겨진 시민의 목소리> :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 간담회
  • 2부 – <남겨진 시민과 연대하는 시민> : 테이블 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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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23/03/17-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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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마라톤대회 홍보 배너. 중앙에는 청참도 간다 제 23회 여성마라톤 문구가 있다. 5월 6일 오전 8시 30분 상엄 월드컵공원 내 평화광장에서 모임.

안녕하세요? 청년참여연대입니다.

무려 3년 만에! 제23회 여성마라톤대회가 대면으로 열립니다.

마라톤대회에서는 가볍게 걷고 달리기를 한답니다. 

청년참여연대는 사회적 메시지 혹은 서로의 일상을 응원하는 메시지를 만들어 가슴에 걸고 달릴 예정이에요. 

완주하지 못해도 문제없어요! 함께 달리기에 의미를 둡니다. 

청년참여연대와 함께 여성마라톤대회에서 걷고 달리며 서로를 응원해요!

여성마라톤대회 안내

  • 일시 : 5/6 (토) 오전 8시 30분
  • 장소 : 오전 8시 30분 상암 월드컵공원 내 평화광장
  • 내용 :
  • 4월 중 주말 연습마라톤 소모임 1회 (일정은 신청자 대상 추후 공지)
  • 몸자보 걸고 5월 6일 여성마라톤 대회 참여  *여성마라톤대회는 홈페이지에서 개별 신청
  • 방법 :

       ①여성마라톤대회 신청 >>https://bit.ly/3n32uBV(10km, 5km, 3km 걷기)

        – 마라톤대회를 신청하지 않아도 연습모임 참여 가능

       ② 4월 주말 중 하루 다함께 마라톤을 연습 (선택 참여)

       ③ 몸자보 메시지 만들기 

        – 헌 현수막에 서로의 일상을 응원하는 문구 혹은 세상에 알리고 싶은 메시지를 적는다 (현수막은 청참 제공)

        ex) 기후위기, 지금 당장 해결하라 / 청년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달린다  등

       ④ 여성마라톤대회 참가

        – 5/6 토요일 오전 8시 30분 상암 월드컵공원 평화광장에서 집합

  • 문의 02-723-4251 청년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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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23/03/2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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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청년참여연대입니다.

지난 4월 1일 토요일, 청년참여연대는 꿈틀 : 2023캠페인어벤져스 워크숍을 진행했습니다. 캠페인을 시작하기 앞서 함께 활동할 캠페이너를 모집하고 주제를 스케치하는 시간을 가져봤답니다. 꽃피는 봄날, 청년참여연대의 캠페이너들이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알기 위해 참가자 후기를 준비했습니다. 류수정 활동가님이 작성해주셨습니다.


꽃피는 봄, 캠페인이 ‘꿈틀’

청년참여연대 운영위원 류수정

4월의 첫날, 청년참여연대 캠페인 어벤져스의 첫 걸음 ’꿈틀 : 2023 캠페인 어벤져스’가 진행되었습니다. (이번 꿈틀에는 청년 13명이 참여하였습니다!) 본격적 이야기에 앞서 함께 인권선언문을 낭독하고 자기소개하며 서로를 환대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20230401_청년참여연대_꿈틀워크숍

2023년도도 역시 작년과 같이 젠더와 환경 문제를 주제로 나뉘어 진행되었습니다. 먼저는 2022년 진행된 캠페인 활동의 진행 내용과 결과, 좋았던 점과 아쉬웠던 점까지 들어보았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올해 캠페인 진행을 위한 보완점과 개선점을 생각해 보고 나누었습니다. 전문성을 갖되 청년들에게 접근하기 쉬운 방법으로 캠페인을 진행하려는 부담이 있었지만, 청년들의 즐거운 ‘참여’와 ‘연대’에 초점을 맞춘 캠페인을 하자고 다짐하였습니다.

2부에서는 각 팀끼리 미리 준비된 질문에 대하여 대화하며 브레인스토밍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젠더팀은 한 팀으로 구성되어 진행되었는데요, 먼저 온라인 혐오를 마주한 경험과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하는 문제,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을 나누었습니다. 코로나19 이후로 온라인 의존도가 증가하며 혐오표현이 더 자주 노출되고 확산되는 것을 체감한 경험을 니눴습니다. 또, 무의식적인 sns 활동 습관과 알고리즘을 통한 혐오 콘텐츠의 무분별한 노출과 소비가 또다시 혐오 콘텐츠를 양산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통제되지 않는 각종 커뮤니티와 인터넷 카페, sns가 심각한 문제임을 이야기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혐오’-‘오락, 재미’로 소비하는 고리를 끊고 개인의 성찰로 인식의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환경팀은 두 팀으로 나뉘어 진행되었습니다. 기후위기를 실감하는 순간 공유와 개인의 실천, 정부&기업에 요구할 수 있는 부분을 제안해 보았습니다.

이번 봄 목련과 함께 핀 이른 벚꽃 개화시기와 작년 폭우, 전 세계 심각한 산불 피해 사건들을 마주할 때 기후위기를 실감했다는 경험을 나누었고, 또 사람들이 환경에 관심을 갖고 환경정당의 지지율이 오르는 것을 보며 기후위기가 모두가 공감하는 문제가 되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환경문제를 마주한 개인이 실천할 것들로는 본질적 소비를 줄이고 비건 실천하기와 인간의 무기력보다 영향력을 퍼뜨리고 연대하는 것에 집중하여 효능감을 얻어 개인의 실천을 지속 가능하게 하기, 언론사와 함께 정치인 환경교육 캠페인 진행하기 등을 이야기했습니다.

또한 정부와 기업에게 요구할 것들로는 환경세 강화하기, 정부는 기업을 감시하기, 기후정의와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정책 만들기, 에너지 사용 감축과 친환경 에너지 국유화와 같은 아이디어가 나왔습니다.

청년들이 경험과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공감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는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이후 다과를 먹으며 앞으로 캠페인이 어떻게 진행되었으면 좋겠는지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통해 다음 모임을 기대하였습니다.

앞으로의 2023 캠페인 어벤져스 활동들도 청년들의 즐거운 ‘참여’와 ‘연대’가 가득한 시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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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23/04/05-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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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청년참여연대입니다.

청년참여연대는 지난 4월 4일 화요일,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 간담회를 진행했습니다. 만개한 벚꽃이 흐드러지도록 비 오는 저녁, 약 15명의 청년들이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분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참여연대로 걸음 해주었습니다. 故유연주 님의 언니 유정 님, 故최보성 님의 누나 최연화 님이 간담회에서 10.29 이태원 참사 이야기를 나눠주셨는데요. 참사를 마주한 시민에게 등돌린 국가가 어떻게 2차 가해를 조장하는지, 왜 우리가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진실에 귀 기울여야 하는지 등. 무겁지만 중요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더 자세한 이야기와 소감을 나누기 위해 참가자 후기를 준비했습니다. 이번 후기는 신유진 님께서 작성해 주셨습니다.


도려진 세상을 다시 기워 붙이는 사람들 곁에서

청년참여연대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 간담회

신유진

아주 소중한 것을 잃은 사람들이 슬픔으로 해내는 일들에 대해 잘 듣고, 듣지 않았다면 결코 얻을 수 없었을 시선을 지니고 싶습니다. 존 키츠의 시 <정말로 너를 사랑하는가?> 중 몇 구절을 답장으로 드려요. ‘하지만 우리는 서로를 깨우쳐/그저 행복할 뿐 아니라/서로를 위한 힘이 될 거야/우리 사랑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하지 않으리’”

뒤늦게 참석을 신청했다. 현직 선생님과 만나 공감의 불가능성에 관해 이야기하고 나서 생긴 용기다. 비극을 계량하는 일은 사려 깊지 못한 태도이며, 누군가의 죽음을 공적으로 드러낼지 얼마나 슬퍼할지 재단할 수 없다. 같은 사건을 겪은 이들이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다고 단언할 수 없다. 하지만, 고난을 끌어와 눈에 보이게 만드는 시도를 계속해야만, 타인의 고통에 무감해지지 않을 것이다. 떠난 사람을 최대한 기억하고, 또 떠나보내는 사람의 일상을 면밀히 상상하고자 간담회에 함께했다.

1부엔 유가족 두 분의 이야기를 들었다. 한때 누군가의 누나이자, 동생이었을 사람들이었다. 어떠한 프레임 없이, 불순물이 섞이지 않는 목소리가 사정거리 안에 있는 건 처음이었다. 일상에서도 희미한 연결성을 회복하고 싶어서, 이만큼 닿아있지 않은 어느 순간에는 그 사람들의 몸의 일부인 것처럼 느끼고 싶었다. 세상이 나한테 성큼 물러나 차를 우려내고 음악을 골라 듣고 목욕하고 오늘 있었던 일을 곱씹는 일상이 절대 평범하지 않음을 내내 곱씹었다.

2023.04.04.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 간담회 1부 ‘국가부재의 날, 남겨진 시민’ <사진=참여연대>

걱정은 타인의 몫이지만, 고통은 오롯이 혼자만의 몫이다. 배가 침몰했다는 뉴스를 보고 나중에는 고개를 파묻고 엉엉 울었던 적이 있다. 이 울음이 살려달라는 사람의 고통에 하등 쓸모없다는 생각을 동시에 하면서 울음을 뱉었다. 나는 영원히 바깥에 있다. 쓰는 일은 고통의 바깥에서 고통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사람의 일이기에, 이런 말들이 떠나보내는 사람에게 와닿을지 걱정했다. 하지만, ”저희는 참사가 처음이지만, 국가는 참사가 처음이 아니잖아요.”라는 말을 새기며 시민의 등을 몇 번이나 돌린 국가를 향해 펜을 든다.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문은 산재해있다. 실효성 없는 대책만 내놓는다. 지난 159일간의 일이다. “10.29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을 제정해야 합니다. 조사에 협조를 구해야 재발을 방지할 수 있어요. 경찰 수사는 꼬리 자르기로 흐지부지 마무리되었고 너무 짧은 기간이었던 국정조사는 위증과 자료 제출 거부로 반쪽자리에 불과합니다. 변명한다는 건 반복하겠다는 말입니다. 수많은 참사에 노출된 상태라는 불안에 살지 않기 위해 계속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침묵이 위로보다 차라리 낫다.” 그간 유가족들이 2차 가해에 얼마나 노출되었을지 감히 짐작하지 못하겠다. “2017년부터 꾸준히 해온 이태원 축제인데, 책임 전가를 모두 희생자에게 넘기는 듯한 대응이 유가족으로서 화가 나는 지점입니다. 피해자와 유가족들이 인간답게 살아갈 권리를 보장받고 싶습니다. 지금도 영상을 찾아보는데, 그 장면을 되풀이하는 것보다 마지막 순간을 영영 알지 못하는 게 더 미쳐버리겠습니다.”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권리는 죽음 앞에서 우위를 견주어볼 수 없다. 이는 희생자, 생존자로 불리는 이들이 어떠한 대우를 받는지 되돌아봐야 한다는 반성과 이어진다.

2023.04.04.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 간담회 유가족에게 전하는 응원의 편지 <사진=참여연대>

2부에는 ”나는 10.29 이태원 참사를 어떻게 바라보나/참사 이후에 달라진 우리 사회의 변화/안전 사회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요구할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시민의 이야기를 들었다. 테이블에 모인 분들이 어떻게 그 시간을 통과했고 지금 어떤 시간을 마주하는지에 관한 이야기였다. 타인을 이해하는 아득하리만치 먼 통로이자 연결감의 희미한 단서였다. “체념, 불신, 죄책감”에 고개를 끄덕였고 청년으로서 나는 결국 설득하는 역할에 머무르며 직접 제도를 바꾸기 힘든 위치에서 안개 속을 걷는 느낌이라고 운을 뗐다. 우리가 어디서 세상에 던져진 건지 알 수 없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를 전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사실이다. 마침 10.29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국민동의 청원이 열흘 만에 5만 명을 넘겼다는 기사를 읽었다. 끈질기게 더 나은 세상으로 기투하는 삶이 많아지길 바란다.

2023.04.04.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 간담회 2부 테이블 토크 <사진=참여연대>

돌아오는 길에 봄비가 내렸다. 버스에서 다만 한 사람이 한 사람을 간신히 건너가는 중이라고 느꼈다. 저마다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 있겠는데, 내 경우엔 울고 메모하기다. 그러다 보면 세상을 이해했다는 착각에 빠지고 마는데, 착각은 수정하지 않고 둔다. 그 힘으로 누군가가 겪는 우기를 함께 지날 수 있게 된다. 운다는 게 꼭 무너지는 일이 아니라는 점을 다시금 상기하면서. 그러다 참가 신청서에 쓴 문장을 메모장에 다시 고쳐 적었다.

아주 소중한 것을 잃은 사람들이 슬픔으로 해내는 일들에 대해 계속 듣고, 앞으로도 함께하고 곁에 있지 않았다면 결코 얻을 수 없는 시선을 지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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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23/04/10-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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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스플레인(mansplain)이란 말을 들어보신적이 있으신가요? 최근에 등장한 용어로 남자(man)와 설명하다(explain)의 합성어입니다. 남성이 여성을 기본적으로 뭔가 모르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자신의 말을 일방적으로 쏟아 붓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에 맨스플레인을 주제로 한 대회(?)가 열렸는데요? 이름하여 ‘천하제일 맨스플레인 대회’입니다. 약 일주일간 접수된 글 중 1위를 차지한 사연은 다음과 같습니다.

(남자) 여자애들 00이 싫어하는 거, 예쁘고 인기 많아서잖아

(여자) 아니, 걔가 동기들 간에 이간질을 해서 평판이 좀 그래

(남자) 에이, 아니잖아. 인기 많으니까 질투하는 거잖아.
여자애들은 자기보다 예쁘고 인기 많으면 다 질투하잖아

(여자) 내가 여잔데, 여자라고 다 그러는 거 아니거든

(남자) 네가 그 심리를 어떻게 아냐. 여자들 심리는 다 그래

공감이 가는 면도 있고, 순위를 가리는 대회이다 보니 다소 과장된 면도 있어 보입니다. 특히 남자들 입장에선 뭐 그 정도 가지고 까칠하게 그러느냐고 할 수도 있을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가볍게 웃고 넘기기엔 여자들 입장에선 무척이나 자주 경험하는 짜증나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특히 맨스플레인을 하는 남성이 여성에 대해 갖는 기본적인 인식을 살펴보면 그냥 웃고 넘길 수만은 없습니다.

우선 이 말이 처음 나오게 된 배경부터 살펴보죠. 2008년 미국의 웹사이트 ‘톰 디스패치’엔 한 편의 기고문이 실립니다. 제목은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인데요. 여성인 필자가 파티에서 만난 한 남자에게 자신이 작가라고 밝히자, 남자는 최근 자신이 본 책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시종일관 여성 필자의 말을 끊으며 계속해서 늘어놓았다는 경험담입니다.

20151007_01

이 기고문은 그동안 남자들에게 가르침당하고, 무시당하고, 말을 가로채인 경험을 한 수 백 명의 여자들에게 공감을 얻으며 온라인상에서 빠르게 확산 됩니다. 이를 계기로 ‘맨스플레인’이란 말은 2010년 뉴욕타임즈 올해의 단어에 선정되고, 2014년엔 옥스퍼드 온라인 영어사전에 수록되기까지 합니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맨스플레인의 문제에 대해 살펴볼까요? 기고문의 필자인 리베카 솔닛은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여자라면 누구나 내 말을 이해할 것이다.
이런 현상 때문에 여자들은
어느 분야에서든 종종 괴로움을 겪는다.

따라서 여자들은 나서서 말하기를 주저하고,
용감하게 나서서 말하더라도 경청되지 않는다.

이에 여자들은
자기불신과 자기절제를 익히게 되는 데 비해
남자들은 근거 없는 과잉 확신을 키운다.

– 리베카 솔닛,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중 –

솔닛의 설명에서 눈치 챌 수 있듯이 맨스플레인은 일상적인 차원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1세대 페미니즘을 여성 참정권 추구로, 2세대 페미니즘을 제도적,문화적 평등 추구로 구분할 경우 후자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솔닛은 페미니즘이 이미 완료된 사업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라고 주장합니다.

여성들이 맨스플레인이라는 신조어와 페미니즘이라는 되찾은 용어로 조명하고자 하는 현실은 페미니즘이 이미 완료된 사업이라는 통념과는 달리 여성은 아직 평등한 세상에 살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페미니즘의 투쟁에서 핵심 과제는 우선 여성을 신뢰할 만하고 경청할 만한 존재로 만드는 것이다.

– 리베카 솔닛,『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중 –

솔닛의 말에서 특히 눈길이 가는 부분은 ‘신뢰할 만하고 경청할 만한 존재’라는 표현입니다. 맨스플레인, 즉 남자가 여자를 가르치려 드는 태도를 보이는 근본적인 이유가 여자를 ‘지적으로 부족하고 잘 모르는 존재’라고 규정하기 때문입니다. 성적인 특성을 지적인 특성으로 일반화시키는 문제가 있는 셈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맨스플레인과 관련된 논란이 있었습니다. UN여성 친선 대사로 임명된 영화배우 엠마 왓슨에게 한국의 한 칼럼니스트가 쓴 글 때문인데요. 칼럼의 주된 내용이 ‘페미니스트’인 엠마 왓슨에게 진정한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가르치는 형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수많은 논객들이 해당 칼럼에 대한 반박글을 내놓으며 뒤늦은(?) 맨스플레인 논란이 불붙게 됩니다. 반박글의 주된 내용은 크게 두가지입니다. 우선 칼럼에서 소개하는 페미니즘에 대한 설명에 오류가 많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페미니즘에 대해 잘 모르고 아는 체를 했다는 지적입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당신은 잘 모를 것이다’라고 전제한 후 페미니즘에 대해 ‘가르치려는 태도’를 보인 것에 대해 많은 이들이 분노를 한 것이죠.

그 중 논란이 됐던 표현 하나를 소개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말랄라의 페미니즘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살아온 경험의 소산입니다. 당신이 연설에서 술회한 당신 성장기의 ‘여성스럽지 않음’에 사람들이 별난 눈길을 보낸 것과는 경험의 질이 다릅니다.

(어려운 환경에서 살았던) 말랄라라는 페미니스트에 비해 (좋은 환경에서 곱게 잘 자란)엠마 왓슨은 ‘경험의 질’이란 면에서 ‘페미니스트’로서는 충분치 않다는 의미인데요, 거칠게 말하면 ‘고생도 별로 해 보지 못한 네가 진정한 페미니즘이 뭔지 잘 알겠어?’라는 뉘앙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필자는 바로 다음 문장에서 두 사람을 비교하려 드는 건 아니라고 말하지만, 글의 전체적인 구조가 일단 주장하고 바로 뒤에 ‘꼭 그런 건 아니다…’라는 식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진정성에 의심을 살만 합니다.

더구나 칼럼의 필자는 ‘남성’입니다. 정말 ‘경험의 질’이 진정한 페미니즘이 무엇인지를 가를 요체라면 평생 (우월적 지위를 누리는) 남자로만 살아 온 필자가 ‘여자’인 엠마 왓슨의 경험에 질을 논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 되고 맙니다.

어떻게 단 한 순간도 여자였던 경험이 없었던 그 사람은 평생을 여자로 살아온 엠마 왓슨에게 “경험의 질이 다릅니다”라고 평가하듯 말할 수 있었을까.
도대체 뭘 근거로 본인이 UN홍보대사인 엠마 왓슨보다 인권에 대해 더 잘 안다고 판단하는 걸까.

– 허핑턴포스트, <엠마왓슨 보기 부끄럽다> 중 –

차라리 애초에 ‘페미니즘이란 무엇인가?’를 가지고 최근의 페미니즘에서 주장하는 부분에 대해 자기 나름의 비판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랬다면 자연스러운 페미니즘 논쟁이 됐을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상대방은 잘 모를 것이다, 하지만 난 알고 있다, 내가 가르쳐 주마’라는 틀에 굳이 스스로를 밀어 넣음으로 인해서 주장하는 모든 바가 ‘맨스플레인’이란 함정에 갇혀 버리고 만 것이죠.

그런데 생각해 보면 ‘맨스플레인’이 꼭 여성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니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라고 시작하는 말은 여자들만이 아니라 남자들, 특히 어린 남자들의 경우 매우 자주 듣게 되니까요. 그런 말을 자꾸 듣다 보면 남자들 역시 주눅이 들어 말을 못하게 되죠.

한편 파티에서 레베카 솔닛에게 자신이 본 책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으며 솔닛의 말을 계속 잘라 먹던 한 남자는 솔닛의 친구가 내뱉은 한 마디에 얼굴이 잿빛으로 변했다고 합니다.

그게 바로 이 친구(솔닛) 책이라니까요.

수, 2015/10/07-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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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페미니스트인 것은 중요합니다.
딸들은 이제 모든 남성에게 성평등적 가치관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성차별에 맞서 싸우는 것은 당연히 남성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남편으로서, 파트너로서, 남자친구로서, 우리는 진정으로 평등한 관계를 위해 끊임없이 의식적인 노력을 해야 합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2016년 8월 글래머지에 기고한 “This is What a Feminist looks Like”에서
(한글 번역 Feminisits in Korea에서 발췌 인용)


유명인이 페미니스트인 것은 중요합니다.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여성의 권리를 위해
스스로 페미니스트임을 드러내는 것은
페미니즘에 대한 그릇된 공격과 비난을 걷어내고
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여성이 차별 받지 않는 세상을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영화, TV, 인터넷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는 유명한 얼굴들이
이제 흔하게 페미니스트임을 보여주는데에 주저함이 없습니다.
최근에는 문재인 후보와 배우 유아인씨도 페미니스트 선언을 했습니다.
이미 페미니스트인 심상정 후보도 있지요.
이처럼 한국에서도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은 페미니스트를 보기를 원합니다.


여성으로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위해, 서로를 위해,
정의를 위해, 모두를 위해 행동해야 합니다.

당신이 누구든, 어디 출신이든, 당신은 아름답습니다.

–미셸 오바마


저는 사회적으로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게 존중받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세상의 어떤 나라도 성 평등을 성취했다고 단언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에게 물어봅시다. 내가 아니면 대체 누가 하죠? 지금이 아니면 대체 언제 하죠?

–엠마 왓슨


너무나 많은 국가의 너무나 많은 여성들이 같은 언어를 말한다. 침묵의 언어다.

–힐러리 클린턴


화, 2017/03/07-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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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관점에서 본 ‘미투 운동’의 사회적 의미1

 

 

이나영 |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새로운 페미니즘은 사회적 평등을 위한 진지한 정치운동의 단순한 부활이 아니”라 “현존하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견고한 계급-카스트 제도를 뒤집어 업는 것”을 목적으로 한 “역사상 가장 중요한 혁명의 두 번째 물결”(슐라미스 파이어스톤, 1972, 『성의 변증법』(The Dialectic of Sex)

 

지금 현재 우리 사회는 ‘미투(#MeToo) 운동’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파도를 타고 있다. 서지현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가 1월 29일 JTBC 뉴스룸 시간에 나와 검찰 내 성폭력 피해를 밝힌 이후, 여성들의 피해 사실 폭로는 문화예술계, 학계, 종교계, 정치계 등 전 방위적으로 확대되는 중이다. 당시 인터뷰 자리에서 서 검사는 왜 이런 폭로를 하게 됐는지 이유를 밝히면서, 성폭력 관련 사실을 폭로한 피해자가 더 이상의 피해를 입지 않고 근무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무엇보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 주고 싶었다”고 했다. 우리 사회 권력 구조의 상층부에 놓여 있다고 여겨진 고위직 검사마저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성폭력 피해에 노출되고, 이에 문제제기하는데 8년이나 걸렸다는 사실은 한국사회 전반을 아래로부터 흔들었다. 그의 이야기처럼 “자신이 돌고 있는 것인지 세상이 돌고 있는 것인지” 몰라 “꾹꾹 삼키고 또 삼켜냈던” 경험들이 오랫동안 억눌렸던 여성들의 기억을 세상으로 끄집어내는데 기여하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음모론과 진영논리에 빠져 피해자의 의도를 의심하고 평소의 행실을 따져 물으며 피해자의 자격을 운운한다. 한편으로는 자신들이 그간 저지른 수많은 가해 행위들을 성찰하기는커녕 성폭력을 ‘성도착증’으로 병리화하거나 특정 개인을 악마화하며, ‘터치는 있었으되 성폭력은 없었다’며, 남의 집 불구경 하듯 희희낙락 정쟁에 활용하기 바쁘다. 심지어 문제를 제기하고 공론화하며 사안의 본질인 성별 권력관계와 성차별적 구조를 이야기하는 여성들을 ‘페미나치(페미니스트 나치의 줄임말)’로 몰아 낙인화하기도 한다. ‘여자들이 문제’니 분리하고 배제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다시 문제는 여성에게 전가되고 있다. 

 

아직도 진행 중인 이 운동을 정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지난 한 달 반 동안 필자가 가장 많이 받았던 몇 가지 질문을 중심으로, 운동의 ‘잠정적’ 의미를 살펴보려 한다. 단순히 ‘개별적 감정의 분출’ 정도로 ‘오해,’ 또는 축소하고 역사적 흐름을 역행하려는 시도가 우려스럽기 때문이다. 

 

 

‘성평등 결핍된’ 민주주의와 ‘미투 혁명’

“의원실마다 천차만별이지만 여성을 일종의 ‘소모품’이나 ‘꽃’ 정도로 치부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ㄱ씨는 “어떤 의원실에 예쁜 비서가 들어왔다고 하면 금세 소문이 나고 몇 달 있으면 ‘내가 OO랑 잤는데 말이야…’ 식의 ‘무용담(?)이 돈다”면서 “정작 그 여성 앞에서는 정중한 척, 예의바른 척 행동하면서 온갖 성희롱·성추문이 일어난다”고 했다. 현재 국회를 떠나 사기업에서 근무 중인 ㄴ씨는 “의원님이 수행비서도 아닌 여비서를 자꾸 업무에 대동하는 일이 있었다”면서 “몇 달 뒤 그 비서가 그만뒀는데 의원실 사람들은 대충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하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었다”고 말했다. 그는 “아마 그 의원님은 요즘 밤잠을 못 주무셨을 것”이라고 했다“(국회 대나무 숲, 경향신문, 2018년 3월 10일).2) 

 

우선, 현재의 ‘미투 운동’이 ‘남녀관계,’ 혹은 개인 간 발생하는 성희롱과 무관한 ‘권력형,’ 혹은 ‘갑질’ 성폭력의 문제일까? 그저 ‘나쁜 손버릇’, ‘자제하지 못한 성욕’, 개인의 ‘비도덕적 행위’, ‘성추문’, 혹은 특정 조직의 ‘특수문제’일까? 남성지배사회에서 성별 권력관계와 무관한 권력형 성폭력이란 개념은 애초에 성립 불가능하다. 성별(gender) 자체가 권력관계를 내장하고 있다. 단순히 동등하되 이분법적으로 나뉜 남성성과 여성성, ‘적절히’ 배분된 역할이 아니다.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성별은 이미 존재하는 권력관계의 효과이며 새로운 권력관계를 생성하는 원인이다. 남성(성)만 인간의 기준이 되는 사회에서, 여성(성)은 열등한 것, 부차적인 것, 성적인 것, 심지어 ‘낮은 사회적 지위’ 자체를 의미한다. 중학교 남학생이 여성 교사를, 남성 환자가 여성 의사를 성희롱할 수 있는 이유이다. 물론 그 남성과 여성은 성별 질서뿐 아니라, 계급, 인종, 성적 정체성, 장애여부 등 다양한 차이들로 구성되어 있다.3) 그러므로 성폭력은 기본적으로 성별권력 관계에서 파생하지만, 다른 차별구조와 교차해 더 심화되거나 약화되기도 한다. ‘성폭력은 구조적 성차별의 문제’라는 인식으로부터 출발해야 조직 및 집단 간 차이와 특수성이 더 선명하게 보이는 이유이다. 

 

둘째, 한국의 ‘미투 운동’이 헐리우드 발 #MeToo 운동의 후속, 아류, 혹은 변종일까? 그렇지 않다. 길게는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부터 진행된 동등권운동, 반식민지독립운동, 짧게는 1980년대 민주화운동 시기에 본격화된 진보여성운동 단체들의 형성과 반성폭력운동, 여성인권운동, 2000년을 전후로 진보운동권 내 성폭력 문제를 제기한 ‘100인 위원회’, 더 최근에는 ‘성폭력 피해 경험 말하기’, 2015년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진행된 ‘성폭력 필리버스터,’ ‘#OO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에 이르기까지, 한국여성운동의 오랜 역사를 먼저 봐야 한다. 어느 날 갑자기 돌출된 운동이 아니라, ‘관습’과 ‘문화’란 이름으로 정당화되어 왔던 차별구조에 지속적으로 의문을 던지며 저항하고, 시대를 거슬렀던 여성들의 역사 속에서 이번 ‘미투 운동’을 맥락화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여성시민들은 오랫동안 기득권, 반민주, 독재, 부패 세력, 식민지 ‘백성 마인드’를 갇힌 ‘보수 세력’에 저항해 왔으며, 계급부정의 이외에 다른 영역에 무감한 ‘진보 세력’들과도 쟁투해 왔다. 진영을 넘나들며 형성한 남성연대를 날카롭게 비판하면서 여성인권 향상을 위해 전진해 왔다. 서구의 여성운동에서 ‘물결’(WAVE)이라는 용어가 파장, 파동, 물결, 파도의 다중적 의미를 지니듯, 한국의 경우도 잠복과 돌출, 후퇴와 전진, 흩어짐과 뭉침, 진지전과 전면전 등을 통해 파장을 일으키고 커다란 파도를 만들며 세상을 변화시켜 왔던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여성들에 의해 주도 되었으되 세계를 흔든 ‘미투 운동’의 원조로 일본군 성노예제로 고통당하셨던 김학순 할머니의 커밍아웃을 기억해야 한다. 가해자의 지속적인 부인에 분통을 터뜨리며 세상에 나왔다고 했던 할머니의 증언은 반세기 가까이 봉인되었던 끔찍한 성노예제의 실상을 폭로하며 전 세계 시민들을 무지의 늪에서 일깨웠다. 덕분에 국내는 물론 다른 나라의 피해자들 또한 앞 다투어 세상에 나왔다. 가부장제와 식민주의 지배체제 하에서 여성들에게 가해진 중층적 부정의와 싸우며 피해자에서 생존자로, 다시 활동가로 변화하던 할머니들의 모습 덕분에 우리 시민의식은 또 얼마나 많이 성장했던가. 미국의 #MeToo 운동과 서지현 검사의 용감한 고백이 이번 ‘미투 운동’의 도화선 혹은 변곡점은 될 수는 있으되 원인이 아닌 이유이다. 

 

셋째, ‘진보진영’ 내에서 유독 사건화가 많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보수진영이 더 ‘도덕적’이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서구 여성운동 ‘제2의 물결’을 상기하면 답이 나옵니다. 1960년대 후반 미국의 진보적 학생운동과 시민운동 영역에 있던 여성들은 남성혁명가들이 지향하던 민주, 평등, 해방이라는 가치가 여성들에도 동일하게 적용해 달라고 호소하는 바로 그 순간 부인되는 상황에 직면했다. 일상 속에서 개인이 겪는 사적인 문제가 거대한 구조에 기인한다는 신좌파의 구호가 여성들에게만 유독 적용되지 않았던 것이다. 특히 여성들은 진보 남성들이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실천했던 ‘성혁명’이 여성에 대한 성적 착취를 해소하기는커녕, 더 취약한 상황으로 내모는 상황에 분노했다. 여성을 남성의 성적 욕망을 배출하는 ‘쓰레기통’, 혹은 언제든 받아주는 ‘용기’로 취급하면서, 공적 영역에서는 여전히 보조적인 존재로 비하하고 배제하는 남성들의 태도에 격분한 것이다. 여성들은 분연히 일어나 의식고양 모임을 구성하고 여성만의 조직을 만들며 ‘여성문제’라 치부되던 사안들을 본격적으로 분석하기 시작했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구호는 그래서 당시 페미니스트들의 핵심 구호가 되었다. 개별적 문제가 결코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선택한 결과 때문이 아니며, 여성들의 고통이 사소한 것이 아니라 구조적 차별의 결과이기 때문에 주요한 정치적 의제로 다뤄져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해방의 주체와 대상 모두에 여성이 빠져 있다는 인식, 민주주의, 평등, 인권이라는 가치에서 여성은 배제되어 있다는 인식이 여성들을 페미니스트로 각성시킨 것이다. 이들은 동등참여,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물론, 낙태죄 폐지와 재생산권, 성폭력, 가정폭력, 성매매, 데이트 성폭력, 음란물, 성상품화 등을 공론화하고 이론화하며 변혁의 영역을 확장시켰다. 단순히 기계적 ‘양성평등’이나 형식적 권리 보장을 위한 법제도 개선이 아니라 뿌리 깊은 성차별 문화를 해체하고자 전 방위적 혁명을 요구했던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진보 운동권 내 성차별과 성폭력 문화가 결국 서구 역사상, 아니 전 세계에 가장 커다란 영향을 미친 거대한 페미니스트 운동의 물결을 결과한 것이다. 보수 진영에서 성폭력과 성차별에 대한 고발이 잘 나오지 않는 이유는 그래서 자명하다. 그들은 진보적 가치 자체를 체화하고 실천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성차별에 무감함은 물론, 성평등 감수성를 장착한 여성들이 애초에 진입하기 어려운 토양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미투 운동’은 그래서 감히 ‘미투 혁명’이라 부를 수 있다. 주로 진보진영의 여성들, 페미니스트로 각성한 여성들이 주도하는 이 운동은 아마도 한 세기 이상 진행된 한국 ‘여성해방’ 운동의 역사에서 가장 커다란 해일이 될 것이다. 지난 대선 시기 페미니스트들의 주된 구호인 “성평등이 민주주의의 완성이다!”를 상기하면 2018년 ‘미투 운동’은 성평등이 결핍된 ‘민주주의’를 완성하고자 하기에 ‘제2의 민주화 운동’이며, 구체제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아래로부터 분연히 일어난 ‘시민 혁명’이다.

 

넷째, 여성들의 ‘폭로’는 왜 지속될까? 왜 개별적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끄집어내고 있을까? 물론 처벌은커녕 지속적으로 사실을 부인하고, “지금도 멀쩡하게 잘 살고 있는” 가해자, 심지어 피해자를 ‘꽃뱀’으로 몰며 사회적 타살을 감행한 남성들에 대해 쌓였던 개별적 분노가 폭발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피해자의 말에 귀기울기는커녕 가해자를 두둔하고 2차 가해를 일삼던 우리 모두에 대해, 구멍 난 법과 제도조차 작동하지 않았던 현실에 대해, 일제히 공분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믿을 구석이라곤 유사한 경험을 한 다른 여성들의 목소리와 지지밖에 없기에, 보이지 않는 피해자들을 지속적으로 호명하고 상호 말걸기를 시도하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면, 대부분의 여성들은 “너무 어려서”, “뭔지 몰라서”, “말해도 소용이 없어서”, “소문이 두려워” 잊고자 했던, 그 봉인된 기억과 마주하고 재해석하고, “치유된 줄[만] 알았던” 상처를 들여다보고, 쓰다듬고 치유하는 중이기도 하다. 서지현 검사의 말대로 “내 잘못이 아니었다”고 다독이면서, 미처 생각지 못한 다른 이들의 상처도 다시 돌아보고 있다. 일본군 성노예제의 생존자들처럼 말이다. “사랑합니다”, “응원합니다”, “지지합니다”, “힘내세요” 등 피해자들 옆에, 뒤에 함께 서서 그저 응원하고 손잡겠다는 메시지는, “나도 같은 여자다” 라는 선언과 연결되며, “가슴이 터질” 듯, 그래서 “한잠도 자지 못하고,” “눈물이 흐르는” 감정으로 공유된다. 

 

‘근근이’ 살아남은 자들 간 형성된 이 공감대는 희생되고 사라져 간 자들의 ‘이유’를 묻는 행위로 연결된다. 이 심문의 과정은 “너무 어려서” “그게 뭔지 몰라서” “내 잘못인 줄 알아서” “말해도 소용이 없어서” “소문이 두려워” 묻어 두었던 개인의 경험과 필연적으로 만난다. 잊고자 했던 그 “봉인된” 기억 속으로 자맥질하다 보면, “치유된 줄[만] 알았던” 상처 내면에 깊이 잠복해 있던 두려움에 대한 예기치 못한 돌출을 경험하게 된다. 끔찍한 피해를 당해도 그 피해 사실을 누가 알까 두렵고, 뒷담화의 먹잇감이 될까 두렵고, ‘잘못 찍혀 조직을 떠날까,’ 사회적 경력을 포기할까 두렵고, 세월이 지나 ‘그 세계를 떠난 후’에도 가해자를 다시 만날까 무섭고, (또) 찾아올지 몰라 두렵고, 보복할지 몰라 밤길을 되돌아보고, 발신인 없는 전화에 심장이 덜컹하고 머리카락이 쭈뼛 서던 수많은 날들을 떠올리면, 그 공포는 기실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다. 그리고 지금, 여기, 늦은 밤길을 지날 때, 낯선 남자와 엘리베이터를 탈 때, 새로 사귄 애인과 함께 있을 때, 술자리에서, 혹은 남성지배적 조직에서 ‘여전히’ 느끼는 일상의 불안 또한 과거의 그 감각과 ‘몸서리치게’ 얽혀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지금 올라오는 이 감정들은 기억의 퇴적층에 켜켜이 쌓여 있던 여성 공통의 억압된 경험들의 집단 아우성이다. 더 나아가, 그때 말하지 못한 나, 중단시키지 못한 나, 사과를 요구하지 못한 나, 다른 이들이 고통을 당할 때 선 듯 손 내밀지 못한 나, 외면한 나, 듣지 않은 나. 우리 모두는 사건을 묵인하고 방조하고 동조한 자이자, 가해자이며, 시스템에 순응한 자이자, 종내는 차별적 구조를 재생산한 책임을 진 자라는 죄책감마저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공식/비공식적으로 피해자를 응원하고 자신의 피해의 경험을 들여다보며 쓰다듬는데 그치지 않고, 각자의 반성문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조민기씨 등의 자살로 반동의 조짐마저 보이고 있지 않나? 지금 사태의 책임은 모두 남성들에게 있다. 한 도지사의 성폭력이 왜 전 국민을 충격에 빠트렸는지 잘 생각해 보자. 그가 평소 자유와 인권의 수호자 역할을 자처했을 뿐 아니라, 통상 가해자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일성인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는 인식을 아래로부터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그럴만한 ‘환자’ 혹은 ‘악마’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가부장적 남성중심 사회에서 남자로 키워진 모든 사람들이 가해행위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우리 모두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럴만한 남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불같이 일어나고 있는 ‘미투 운동’은 수직적 위계문화 속에서 타인을 통제하고 지배하고 제압하고 군림해야만 남자답다고 여기는 사고, 폭력적 남성성을 획득하고 실행하던 수많은 남성들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성폭력은 여성문제가 아니다. 성차별적 구조를 만들고 누리고 공기처럼 혜택을 마시고 재생산해 온 남성들의 문제이다. 시대가 바뀌었고 시민의식이 성장했음에도 여전히 가부장적 인식에 사로잡혀 여성을 동등한 시민, 동지, 동료로 보지 않았던, 그래서 같은 일을 하면서도 여전히 여성스러움과 성적 매력을 풍겨야 하고 남성들의 요구에 순종적으로 응해야 한다고 여기며, 배제하고 비하하고 희롱하고 무시하고 때리고 성폭력을 행사했던 남성들의 문제다. 

 

그러므로 폭력의 제3자이자 동조자, 묵인자, 방관자인 우리는, 이번 기회를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행했던 가해 경험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일생을 통해 축적된 가해자성을 성찰하는 일은 구조적 부정의의 (재)생산 회로를 끊기 위한 실질적 노력과 연결되어야 한다. 의료, 보건, 안전, 교육, 과학 체계 등 모든 지식에서 인간의 모델일 남성이었을 뿐 아니라 정치경제사회 전반이 남성에 의해 장악되어 왔고, 남성들의 이익에 영합해 왔으며, 이들의 특권을 유지하는 도구였음을 인지하고 계속 드러내야 한다. ‘여성문제’가 아니라 ‘남성문제’라는 새로운 명명작업을 통해 프레임을 전환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성폭력, 성희롱, 성매매, 음란물, 디지털 성폭력 등 전방위적으로 발생하는 여성에 대한 폭력, 그 가해자가 대부분 남성이라는 사실은 24시간 남성을 지배하는 의식과 무의식이 전면적으로 개조되지 않는 한 변화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지닌 이 인식론적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성별 간 극심한 인식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이번 ‘미투 운동’을 사회변화를 위한 계기로 승화시키기 위해, 스스로가 일상에서 자행한 일들을 차분히 성찰해야 한다. 법과 제도의 변화는 전제 조건일 뿐이다. 미세한 세포조직처럼 곳곳에 깊숙이 뿌리박혀 있는 성차별적 의식과 구조-우리 사회의 가장 오랜 적폐-를 개혁하는데 나부터 적극 동참해야 한다.

 

 

‘모두’를 위한 촛불혁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제 여성들은 그간 사소한 일이라고 무시하거나, 무지함으로 ‘면피’하려 하거나, 심지어 ‘물타기’ 등 진영논리로 끌고 가려했던 모든 이들의 갖은 시도를 돌파하면서 생존자에서 증언자로 나서고 있다. 피해자의 자격을 묻던 이들에게 가해자의 보편성을 이야기한다. 개인의 아픔을 헤집고 직시하며 생을 걸고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를 전면화함으로써 기존의 선/악, 진보/보수라는 이분법을 넘어, 민주주의에 무엇이 결핍되어 있는지 직시하자고 주문하고 있다. 여성은 아직도 인간이 아니며, 대한민국은 ‘아직도 모두를 위한 나라가 아니’라고 절규하고 있다. 촛불혁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성녀이거나 여왕이거나 유명한 남성의 적극적 내조자이거나 총애 받는 애첩이거나 기생이거나, 사회면을 장식할 만큼 유명한 범죄극의 주인공이 아니면 세상에 이름을 남기지 못했던 시절, 미친 여자, 괴물, 마녀, 더러운 **, ‘개혁망상증에 걸린 정신착란’, ‘신경증 환자’, ‘혁명 히스테리 환자’, ‘정신 나간 주정뱅이’ 등 각종 조롱과 모욕과 손가락질과 공격에도 ‘여성도 인간’이라고 외쳤던 몇몇 여성들의 이야기와 사후 반동의 역사를 잠깐 소개하는 것으로 끝을 맺고자 한다. 

 

올랭프 드 구즈 

남자여, 그대는 정의로울 능력이 있는가? 이 질문을 그대에게 던지는 건 여자다. 적어도 이 권리만큼은 여자에게서 빼앗지 말아 달라. 말해 보라. 내 성(性)을 억압할 권한을 누가 그대에게 주었는가? 그대의 힘인가? 그대의 재능인가? …

모든 여성은 자유롭고 평등한 권리를 갖고 태어난다. 

『여성의 권리 선언』 중 (1791)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나는 여성이 처한 비굴한 의존 상태를 위장하기 위해 남성이 선심 쓰듯 내뱉는 귀엽고 여성스러운 어구들과, 여성의 성적 특징으로 간주되어 온 나약하고 부드러운 정신, 예민한 감성, 유순한 행동거지 등을 거부하고, 아름다움보다 덕성이 낫다는 걸 밝히려 한다…여성이 인간 대접받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내 소원…

『여권의 옹호』 중 (1792)

 

나혜석

“조선의 남성들아, 그대들은 인형을 원하는가. 늙지도 않고 화내지도 않고 당신들이 원할 때만 안아주어도 항상 방긋방긋 웃기만 하는 인형 말이오. 나는 그대들의 노리개를 거부하오. 내 몸이 불꽃으로 타올라 한 줌 재가 될지언정 언젠가 먼 훗날 나의 피와 외침이 이 땅에 뿌려져 우리 후손 여성들은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살면서 내 이름을 기억할 것이라.” 

“이혼고백서” 중 (1934)

 

여자들의 가장 큰 영예는 조용히 겸손의 베일을 쓰고 은거지의 그늘에서 그들 성별의 덕성을 가꾸는 데 있다. 남자들에게 길을 가리키는 건 여자들이 할 일이 아니다(자코뱅 당원들의 반발, 브누아트 그루, 2014: 71).4)

 

저 남자 같은 여자, 여자 남자, 살림은 버려두고 정치를 하려 했고 범죄를 저지를 무분별한 올랭프 드 구즈를 떠올려 보시오. 자기 성별의 미덕을 망각한 것이 그녀를 처형대로 이끌었습니다(쇼메트 검사, 브누아트 그루, 2014: 87-88). 

 

‘남성’들의 시대는 종착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듯하다. 여자가 열등하고 무지하고 비이성적이며 ‘몸뚱이’에 불과한 도구적 존재로 비하하고 조롱하고 공격하고 권리를 박탈하고 억압하고 지배하던, 역사상 가장 오래되고 가장 대규모로 진행된 ‘대여성집단사기사건’은 끝장을 보고 있다. 여성들은 더 이상 속지 않을 것이며, 세상을 보다 정의롭게 바꾸기 위해 일어서고 연대할 것이다. 과거를 식민화하고 현재를 착취하며 미래마저 약탈하고 있는 오랜 남성 연대의 해체를 위해, 그래서 다음 세대의 ‘우리’들이 조금은 더 인간답게 살기 위해. 

 

이제 당신이 응답할 차례이다. 봉건적 사고로 케케묵은 남성성의 옷을 벗지 못해 우리 사회전반을 다시 퇴행시킬 장본인이 될 것인가, 보다 나은 민주주의 사회를 위한 디딤돌이 될 것인가. 

 


1) 이 글의 내용은 필자의 칼럼들과 최근 있었던 토론회에서 필자가 발표한 글의 일부와 겹침을 밝힌다. 참고: “#MeToo 운동 긴급 토론회”(한국여성단체연합, 2018년 2월 26일); “이제 남성이 변해야 한다”(정동칼럼, 경향신문, 2018년 2월 5일); “‘미투 운동,’ 거대한 사회변혁의 파도”(정동칼럼, 경향신문, 2018년 3월 5일); “미투는 제2의 민주화 운동”(시론, 중앙일보, 2018년 3월 10일); “미투운동의 사회적 의미와 과제”(미투운동의 사회적 의미와 과제, 국회 토론회, 2018년 3월 14일).

2) “‘의원님은 딸 앞에서도 바지내리시나요’, 정치권으로 간 미투.”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3101113001…

3) 가령, 수직적이고 폐쇄적이며 남성이 지배적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집단에서 비정규직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가 손쉽게 일어나고, 성폭력 문화가 더 심각할 수 있다. 백인 이성애 남성 중심의 조직일수록 성소수자 이주여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심하고, 이들에 대한 성폭력이 발생할 확률이 높습니다. 

4) 브누아트 그루 저, 2014. 『올랭프 드 구주가 있었다』. 서울: 마음산책. 
 
일, 2018/04/01-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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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삐딱하게 들고 옆으로 째려보는 눈빛이 강렬하다. 검은 똑단발에 짙은 눈썹, 검은 안경테는 상상 속의 B사감을 연상케 한다. 분명히 웃고 있지만 올라가지 않은 입꼬리에선 묘한 결연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모습이 담긴 사진을 두고 한 유명 변호사는 SNS에 이렇게 남겼다. ‘아주 더러운 사진’, ‘개시건방진’

단 5글자, ‘페미니스트’로 자신을 소개한 신지예 녹색당 서울시장 후보의 선거 벽보 이야기다. 1990년생, 여성, 소수 정당인 녹색당 소속.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시장 선거에 도전장을 낸 신 후보는 그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화제가 될 만하다. 그런데 신 후보가 다른 유력 정당의 후보들보다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순위를 압도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을 향한 혐오들

바로 이 다섯 글자, ‘페미니스트’ 때문이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신 후보의 벽보가 훼손됐다고 신고된 건이 무려 27건. 특정 후보의 선거 벽보를 훼손하는 것만으로도 실정법 위반이 되는 상황에서 특정 후보에 대한 이처럼 열성적인 혐오를 드러낸 것도 매우 이례적이다. 신 후보를 향해 “시건방지다”고 표현한 중년의 남성 변호사는 당당하게 “나도 찢어버리고 싶다”고 밝혔다가 논란이 되자 SNS의 글을 지웠다.

‘1990년 신지예’가 서울시장 선거에 출사표를 낸 데엔 올해 초 폭풍처럼 밀려온 ‘미투(Me too·나도 고발한다)’ 운동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한다. 신 후보는 출마선언문에서 학창시절 친구들과 모여 수다를 떨다가 누군가 “성폭력 당해 본 사람?”이라고 묻자 그 자리에 있던 다섯 명이 모두 손을 들었던 기억을 앞세웠다. 미투 운동이 확산되자 많은 남성들은 “세상에 변태가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고 혀를 찼다. 일부 ‘변태’들 만의 문제가 아니었다고, 일상의 구조 속에 켜켜이 쌓인 불편함을 봐달라고 외치자 그제야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그 마저도 언론에 드러난, 피해자들이 갖은 용기를 내며 폭로한 사례들을 통해서였을 거다. 신 후보는 미투에서 이어진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여성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던 일”이며 “내 엄마와 이모, 언니와 동생이 겪었고 겪고 있고, 겪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봤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고 강조했다.

 

성평등, 인권 분야 대표 공약…“여성에 대한 구조적 폭력 해결해야”

정치의 최전선에 뛰어든 28세 여성이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그의 공약들은 간단하지만 명확했다. 성평등, 인권, 미세먼지, 주거·기본소득, 동물·에너지. 5가지 큰 틀에서 그가 꿈꾸는 서울이 설명된다. 성평등 이행각서를 도입하고 불법촬영 피해자에 대한 지원 조례를 제정하는 것, 낙태죄 폐지에 찬성하고 임신중지 여성을 지원하는 것, 육아호봉제를 적용하는 것은 미투 운동을 넘어 최근 홍대 ‘몰카’ 사건, ‘낙태죄’ 폐지 집회, 여성들의 상의 탈의 시위, 혜화역 시위 등을 통해 힘이 더해진 젊은 여성들의 목소리를 압축한 듯하다. 신 후보는 출마선언을 통해 “당연한 듯 벌어지고 있는 임금차별, 유리천장, 낙태죄, 생리 혐오, 성폭력, 가부장제의 억압은 개인만의 것이 아니다. 사회적인 문제이자 정치적 문제다”라고 외쳤다. 이어 “여성이 겪는 구조적 폭력을 해결하지 않고서 한국 사회는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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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후보의 벽보의 시선을 사로잡는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의 문구에서 ‘ㅅ(시옷)’의 글씨체는 2년 전 강남역 여성 살해사건을 계기로 많은 여성들이 하얀 리본을 들고 거리를 나선 것을 상징한다고 한다. 신 후보가 “이 사건 이후 이어지는 여성 운동과 백래시(반발)의 두려움에도 일어서는 자매, 동료들을 보면서 페미니스트 정치인으로서 뿌리 깊은 여성 혐오와 성차별에 맞서 싸우기로 다짐했다”는 결심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얇은 테의 안경은 그동안 ‘예쁜 여성’에겐 금기시되다시피 했던 안경을 부각시켜 여성성을 벗어난 당당함을 강조하려 했다고 디자이너는 밝혔다. 한 방송사의 여성 아나운서가 동그란 안경을 쓰고 나왔을 때, 그것이 그동안 금기였는지조차 희미할 만큼 낯선 화제가 됐다. 누군가 나를 에워싸고 옭아매지도 않았지만 움추려든 어떤 자세가 너무나 익숙한. 누군가 “너는 여자니까 이래야 한다”, “너는 여자니까 이것 밖에 못 한다”고 말하고 나를 가둬둔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어쩐 일인지 내 안에는 수많은 잣대들이 스스로를 향하고 있던 것처럼 말이다.

 

신지예 후보가 꿈꾸는 유토피아… “여성이 이끄는 소수자들의 평등”

신 후보는 그런 유리창을 깨버리자고 소리친다. 여성의 안에 있던, 그리고 여성을 가두고 있던 울타리 곳곳의 유리창을 말이다. 여성이 앞장서서 장애인과 성소수자, 이민자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소수자들과 평등을 만들어 가자고 한다. 그게 바로 신 후보가 말하는 페미니즘이 꿈꾸는 ‘유토피아’인 것이다.

신 후보는 청년 문제에도 오랜 관심을 기울였다. 청년기업 오늘공작소 대표를 맡고 있는 신 후보는 2008년부터 2013년까지 사회적기업 ‘이야기꾼의 책 공연’에서 창업멤버로 일했다. 자신과 같은 생각을 나누는 청년들끼리 모여 함께 책을 읽고 공연도 하고, 특히 인문학과 기술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사회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하는 그룹이 오늘공작소라고 그는 소개한다.

청년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다음 세대로 그 문제가 이어지기 때문에 청년 문제는 단순히 그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노인과 지역 문제까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담겼다.

부자들의 재산세를 강화하는 대신 20~24세 청년들에게 기본 소득을 지급하고, 공공임대주택 등의 주거정책을 강화하는 방안을 비롯해 동성커플 등을 위한 동반자 조례 제정, 채식선택권 보장, 장애인 탈시설 지원센터 설치 및 운영 등의 공약이 그가 초점을 맞춘 청년과 지역사회를 아우르는 인권을 향한 고민에 맞닿아 있다. 녹색당 후보답게 시립 동물병원을 설치하거나 동물 긴급구조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는 것, 탈핵에너지 전환을 위한 지역 에너지 시스템 구축 방안도 공약에 포함됐다.

 

대체 누가, 어떤 이유로 “시건방지다”고 말할 수 있는가

‘시건방지다’는 표현은 보통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어디 감히?”라는 말이 이어질 법한 불쾌함을 표시할 만한 형용사다. 중년의 남성 변호사가 20대 여성 정치인에게 ‘시건방지다’고 비난할 수 있는 것은 단순히 나이 때문만은 아니리라. 젊은 여성이 구의원도 아닌 서울시장에 떡하니 출사표를 내서 건방지다 한 것이었을까. 선거에 나온 주제에 눈을 내리깔지도 않고 오히려 치켜세우며 입 꼬리를 올려서 였을까. 만약 신 후보의 구상이 터무니없게 여겨졌거나 그야말로 왠지 ‘시건방진’ 생각이라는 판단이 들었다면 사진을 찢어버리고 싶다는 등의 비난 대신 조목조목 공약을 비판했어야 더 품위가 있었을 것이다.

처벌받을 것을 알고도 벽보 속 신 후보의 눈을 후벼 판 이들의 대담함은 또 어디서 나왔나. 마치 남성을 혐오한다는 뜻으로 변질된 채 해석되고 있는 ‘페미니스트’라는 슬로건을 내건 후보라, 남성들을 혐오하는 대상에 대한 무조건적인 혐오에서였을까.

각종 성폭력 관련 이슈를 놓고 이상하리만치 성별 대결이 극심해지고 있는 와중에서도 연일 뉴스를 달군 이 20대 ‘시건방진’ 여성 후보를 향한 다양한 반응은 과연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신 후보의 득표율에도 빼곡히 다 담기지 못할 이 숙제들을 풀어가기엔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보인다.

화, 2018/06/12-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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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차별, 성상품화 광고 삼진아웃제
광고 심의에 성평등다양성감독관 배치
다양한 의류사이즈 표준·의무화
광고 심의 과정에 성별영향평가 포함
기업 내 복장·외모규정 금지
성별임금격차 해소 (남녀고용평등법 개정)
선출직/임명직공무원 다양성대표제
모든 가족을 인정하라! 생활동반자법
공공임대주택, 1인가구 전용면적 확대
사기업임원 다양성 쿼터제
국회의원 임금 감축, 의석수 확대
차별금지법
페미니즘 교육 교과과정에 포함
스탤싱 / 스토킹 처벌법
성폭력 성립 기준 '동의여부'로 변경
안전한 인공임신중단 권리 보장
산부인과를 여성의학과로
안전한 월경용품 무상제공
HPV 백신 무료화 및 남성 접종 의무화
반려동물, 가축에 기본 주거면적 보장
반려동물 입양 전 교육 이수 의무화
동물병원 진료비 표준화 및 공개 의무화
요식업계 채식메뉴 1가지 이상 제공 의무화
탈성매매여성 자활 지원
청량리역 주변 변종성매매업소 규제
성폭력 관련 사학법 개정
대학 내 여성주의학과 및 학제 개설
대학교의 기숙사 설립 보장
초-중-고 학급별 인원 축소
'자취방 골목' 치안 강화
반려동물 산책로/공원마련
단체급식 채식메뉴 의무화
주민참여 복지 시설인 의료생활협동조합 신설
공유부엌을 통해 취약계층에 양질 식사 제공

이 글은 AI 가 수집 요약한 글 입니다..
토, 2026/06/13- 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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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5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제 15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제 15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기지촌에 각인된 기억에 관한 여행 <거미의 땅>과 용산 다큐 <두 개의 문>이 상영됩니다! <거미의 땅>은 '새로운 물결' 섹션에서 상영되며 김동령, 박경태 감독님이 참석 하는 관객과의 대화(GV)가 진행됩니다. <두 개의 문>은 '특별상영: 테크놀로지, 젠더 -불가능한 현재 가능한 미래' 섹션에서 특별상영되며 상영 후 김일란, 홍지유 감독님이 참석하는 '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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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3/05/09-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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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중지성의 정원 2016년 1분학기를 시작합니다!세미나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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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2015/12/19-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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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왜뭐!기획단 양성과정_ 2강 <외모꾸미기? 존재, 삶, 정치의 문제로 바라보기>

4/28(목) 두번째 강연에도 어김없이 <외모?왜뭐!기획단> 분들이 찾아와주셨습니다. 이날의 간식거리는 토마토와 옥수수~ 그리고 김밥 :)

160428 외모왜뭐 2강160428 외모왜뭐 2강

이날 강연은 <외모꾸미기 미학과 페미니즘>의 저자, 건국대학교 몸문화연구소 연구원인 김주현 박사님과 함께 했습니다.

160428 외모왜뭐 2강

be beautiful!!

이러한 미적 압력(aesthetic pressure)은 도대체 어디로부터 가해지는 걸까요. “그것이 참 아름답다!” 혹은 “아름다워질 것”의 기준을 세우고 이를 강요하는 것도 일종의 권력은 아닐까요. 그래서 외모꾸미기를 단순히 개인의 취향, 선호로만 보기보단 삶, 존재, 정치의 문제로 바라보려 했습니다.

‘보여지는 대상’으로서 우리는 자신의 이미지를 인식하게 됩니다. 동시에 ‘우리가 어떻게 보이기를 원하는가’에 따라 자신의 이미지를 결정하기도 하고요. 아름다움, 미적 기준이 무엇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권력을 가진 이들에 의한 것이라면.. 그렇다고 해도 타인을 바라보는 자만이 주체이고 권력을 가진 것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을 끄는 것 역시 주체적 능력이고 권력이라는 것이죠. 이를 ‘도취적 나르시시즘’이란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흔히 규정된 ‘미’의 기준을 전복시켜버리는 ‘저항적 나르시시즘’, 또는 ‘반-미학적’ 모습으로 타인의 시선을 끄는 ‘그로테스크 미학’ 등 다양한 개념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과연 우리 자신의 외모꾸미기 미학으로서 무엇을 택할 지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고요.

외모왜뭐 참가자외모왜뭐 참가자201604-05 외모왜뭐기획단 참가자201604-05 외모왜뭐기획단 참가자

외모꾸미기의 미적 억압이 여성과 남성에게 다르게 작동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강연 후, 이야기 나눈 질문 중 하나인데요. 어떤 이야기가 오갔을까요?

“외모꾸미기의 미적 억압, 여성과 남성에게 매우 다르게 작동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남성에겐 건강하고 근육질 몸매를 이상적인 몸으로 인식하지만, 여성에겐 왜소하고 마른 몸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뚱뚱한 남자한텐 건강하다고 하고 여자들에겐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여성들에게 더 세밀하고 다양한 방식의 사회적 억압이 작동한다. 최근에 와서 남성들에게도 억압이 되고 있는듯 하지만, 남성에게는 고작 선택의 문제 정도 아닐까.”

“미적억압이 두 성별에게 작용하는 것은 맞으나 방식은 다르다. 여성의 미는 권력의 도구지만, 남성의 미는 옵션이다.”

“여자가 화장안하고 출근하거나 행사자리에 참석하면 예의없는 것으로 취급한다. 하지만 남자가 화장 안한 것은 예의와 상관 없다. 똑같은 행동을 해도 여자애가 왜그래~, 능력있는 여자여도 예쁜데 공부도 잘해~ 등 외모이야기가 항상 뒤따른다”

“남자들은 능력/성격/매력 등 다양한 기준으로 평가를 받지만 여자들은 외모만으로 평가받을 때가 압도적으로 많다. ‘여자는 예쁘면 된다’는 식의 상투어가 되어버린 듯한 말들이 이를 보여주는 것 같다. 그래서 ‘아름다움’의 기준이 점점 세분화되고 각박해서 여성들을 억압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외모꾸미기’와 관련된 생각, 편견들.. 이를 나의 경험으로만 갖고 있기보다 함께 이야기하고 나누면서 우리 자신의 삶, 우리 존재, 그리고 권력과 정치의 문제로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외모?왜뭐!기획단> 양성과정도 이제 5월 14일까지 한 주를 남겨두고 있네요. 프로젝트를 후원해주신 교보생명, 양성과정에 시간을 내어 함께 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목, 2016/05/05-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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