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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 일본 군부대 설치해달라”… 친일파 청원서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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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 일본 군부대 설치해달라”… 친일파 청원서 발견됐다

익명 (미확인) | 수, 2018/02/21- 15:39

[단독] 1915년 데라우치 총독에 요청… “병력 청원 기록물 일반에 알려진 건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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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 사단설치 청원서 첫 장. ⓒ 신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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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 사단설치 청원서 두 번째 장. 일본인들의 연명 뒤로 오른쪽부터 정재학, 서병조, 이일우, 이병학의 이름이 보인다. ⓒ 신상미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에 일본군 사단을 설치해 줄 것을 요청하는 거물 친일파들의 연명 청원서가 발굴됐다.

그동안 일제강점기 말기에 친일파가 거액의 국방헌금을 내고 전투기 등을 헌납하거나, 징병·학병 지원을 독려하는 연설·기고문 등이 발굴된 사례가 다수 있었다. 하지만 자기 지역에 병력을 주둔시켜 줄 것을 청원하는 친일 기록물이 일반에 공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민철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 겸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객원교수는 “당시에 이런 청원이 많이 있었는데, 최근 연구를 통해 일반에 알려진 것은 처음”이라면서 “개인의 친일행위에 대한 연구는 많았지만, 구조적인 문제는 조사하지 못한 상황에서 1910년대의 청원서라는 데 의미가 크다”라고 역사적 가치를 평가했다.

해당 문건은 친일 문제에 관심 있는 한 인사가 제공한 것으로 대구·경북 지역의 친일파 4명이 데라우치 조선총독에게 보내는 사단 설치 청원서다. 한일강제병합 5년 후인 1915년 6월 11일에 작성됐다.

정재학, 서병조, 이일우, 이병학이 당시 대구에 진출한 일본인 지주·부호들과 나란히 연명하고 날인했다. 정재학, 서병조, 이병학은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친일파다. 이일우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알려진 민족시인 이상화의 큰아버지인데, 친일 행위에 대한 논란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이번 청원서가 그의 친일 행적에 또 하나의 근거로 작용될 것으로 보인다.

“병영설치 은택 입으면 부지기부, 편의도모”… 적극적 유치 의사

청원서에는 “대구는 남선(조선의 남쪽)의 중간에 위치한 중요한 도시이고, 지금 사령부와 연대본부가 설치돼 있습니다”라며 “대구의 물자 조달이 자유롭고 날씨도 비교적 좋은 데다 상수도도 완성돼 5만 명이 먹을 수 있는 물이 나오니, 대구에 병영을 설치함이 좋을 것입니다”라고 적혀 있다.

이어 “다행히 우리 대구가 병영 설치의 은택을 입게 되면 부지 전부를 기부해드리는 것은 물론 부민은 전적으로 모든 편의를 도모하겠습니다”라고 덧붙였다. 병영만 설치되면 토지와 모든 편의를 제공하겠다는 적극적인 유치 의사를 밝힌 것이다.

당시 대구에는 이미 임시 조선파견대사령부가 설치돼 제2연대 본부와 제3연대 2대대 병력이 주둔해 있었다. 경찰력과 헌병대도 있었다. 그런데도 이들 친일파는 일본인들과 결탁해 부대 증설을 요청하는 청원서를 데라우치 총독 앞으로 보냈다.

일제강점기에 ‘병영 유치 운동’은 대구뿐 아니라 전국에서 다양하게 확인된다. 충남 대전 사단설치 청원운동, 전북 전주 여단설치 청원서(국가기록원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기록물), 황해도 사리원 사단설치 청원운동(<동아일보> 기사 1933년 7월 28일자) 등이 현재까지 확인되고 있어 지역별로 ‘유치 경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단 설치 갈망” 이름 올린 친일파는 이일우, 정재학, 서병조, 이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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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에 여단 설치를 건의하는 청원서. 일본인의 이름 사이에 부회장 이일우의 이름이 적혀 있다. ⓒ 신상미

유력자들의 청원 덕분인지 다음해(1916년) 5월 대구 대봉동에 20사단 제80연대가 설치됐다. 해방 후 이 자리엔 미군부대 캠프 헨리가 들어왔다. 사단은 19, 20사단이 각각 함북 나남과 경성 용산에 설치됐다. 대전에도 청원 뒤인 1916년 4월, 80연대의 제3대대가 설치됐다. 대전에선 사단이 설치되지 않은 것에 항의하는 친일파 주도 시위까지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대구의 대표적인 토호였던 이일우는 ‘사단’ 설치가 어려우면 ‘여단’이라도 설치해달라는 청원서에 다시 서명했다(아래 문서 이미지 참고). 해당 청원서는 ‘대구 여단설치 기성회’가 작성·제출한 것으로, 한국인은 부회장 이일우가 유일하고 나머지는 전원 일본인이다.

이일우는 3.1 만세운동 후 친일파 박중양이 조직한 ‘대구자제단’에 발기인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자제단은 3.1운동에 참여한 인사들을 전향시키는 단체로, 전국 각지에서 조직됐다. 자제단은 전향에 실패하거나 수상한 거동이 발견되면 일제 관헌에 고발했다. 이일우는 67인의 발기인 명단에 이름을 올렸을 뿐 아니라 자제단 경비까지 댔다. 하지만 이일우기념사업회는 친일 행적 의혹이 일 때마다 ‘사실이 아니며 오해에 불과하다’는 반론을 펴왔다. 기념사업회는 ‘이일우 선생은 근대산업화에 기여한 인물’이라는 입장이다.

청원서에 함께 이름을 올린 정재학은 1913년 대구은행을 설립한 금융가로, 중추원 참의를 지냈다. 서병조는 국채보상운동을 했던 유학자 서상돈의 둘째 아들이었으나 1900년대 중반 이후부터 일제와 결탁해 일찌감치 친일로 돌아섰다. 1924년에 중추원 참의로 임명됐고, 1935년에 총독부가 편찬한 <조선 공로자 명감>에도 수록돼 있다. 해방 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에 체포됐다.

이병학은 동양척식주식회사 설립위원, 대구은행 이사, 중추원 참의 등을 지낸 기업인·금융가로, 일본 정부로부터 쇼와(히로히토 일왕의 연호) 대례 기념장을 받았다. 이들은 모두 대구자제단에 발기인으로 참여하고 경비를 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일우를 제외하면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이권 확대 위해 일본군 끌어들이는 행위… 민족관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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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남 이일우를 기리는 조형물. ⓒ 계대욱

김민철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객원교수는 친일파 연명 청원서를 ‘경제적 결탁’과 ‘생명·재산 보호’의 두 가지 측면으로 분석했다.

김민철 교수는 “친일 토호세력이 이권을 확대하기 위해 대구에 진출한 일본인들과 결탁하고 일본군을 끌어들이는 행위다. 민족이라는 관념이 그들에겐 없다”라면서 “친일파들이 거의 무상으로 토지를 불하받고 개발권을 취득하도록 조선총독부가 이권을 주는 예가 많았다. 일제권력과 결탁해 재산을 증식하려고 한 전형적인 친일행위이자 경제적 결탁”이라고 분석했다.

또 김 교수는 “1915년 즈음이면 의열 활동이 줄어드는 시기다. 다시 1920년대에 활발해진다. 의병 세력이 ‘삼남 대토벌 작전’으로 위축됐고, 국외로 빠져나갔다. 1913년까지 의병활동 기록이 보이기 때문에 그들 입장에서는 습격당할까봐 불안할 수 있다”라면서 “그걸 명분으로 사단급 규모의 증설을 요구하는 것은 잘 안 맞지만, 그만큼 불안해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친일파들의 기업활동을 연구해온 카터 에커트 하버드대 석좌교수도 친일파들이 일제강점기 내내 ‘경제적 이익’을 위해 기꺼이 일본인들과 협력했다고 지적했다. 한일 양국의 자본가가 민족보다 계급을 중요시 했고, 따라서 민족을 넘어 계급적 이익을 공유했다고 본 것이다.

에커트 교수는 <제국의 후예>(1991)에서 “계급적 이익에 기초를 둔 일본인과 한국인의 협력은 이중으로 유용했다”라면서 “토착인의 도움을 받아서 일본제국의 목표에 부합하는 경제를 건설할 수 있었다. 또 조선사회 내의 계급 분화와 계급 갈등을 조장해 가공할 민족운동(3.1운동)의 단결을 깨뜨릴 수 있었다”라고 밝혔다.

아래는 청원서 한글 해석 전문이다.


[사단 설치 청원서]

삼가 일서를 써서 대구부민을 대표해 각하께 청원드립니다.

오랫동안 의회의 중심 문제가 된 제국민 다수의 갈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조선 2개 사단 증설의 논의가 점차 이번 임시의회의 협찬을 거쳐서 장차 설치에 착수될 것이라는 기운을 맞아 우리나라를 위하여 경하를 드릴 일입니다.

유래 우리 대구 지역은 남선 중투의 요지로 현재 임시 조선파견대 사령부가 있고 연대본부도 있어 교통이 편리해 물자의 공급이 지극히 자유롭습니다.

기후가 비교적 순조롭고 그러므로 위생지역이라는 점에 더해 대정3년(1914년)부터 계획된 대구 수도(상수도)는 대정6년(1917년)에 완성이 되면 그 배수량은 가히 5만 명에게 공급할 수 있게 됩니다. 다행히 우리 대구가 병영 설치의 은택을 입게 되면 지정에 따라 부지 전부를 기부해 드리는 것은 물론 부민은 전적으로 모든 편의를 도모해 드리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부디 열성적인 부민의 간절함을 헤아려 병영설치 사항을 허용해 주실 것을 돈수재배 삼가 청원드립니다.

대정 4년(1915년) 6월 11일

[여단 설치 청원서]

구장(이장) 등 내선인 공직자 전부 망라하여 단 그외 같은 지역의 유력자, 자산가 대부분을 포용하는 것으로 해서 그에 중하는 이름은 왼쪽과 같습니다.

여단 설치 기성회 임원
회장 중강오랑평
부회장 계 만차랑, 이일우
간사 내지인 이등길태랑, 백판압길, 소야원태, 목촌죽태랑

<2018-02-21>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대구에 일본 군부대 설치해달라”… 친일파 청원서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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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멘트 】
일제시대에 만든 일본 신사는 국내에 딱 하나 남아 있습니다. 고흥 소록도에 남아있는 것이 그것인데요,
최근 철거와 보존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고 합니다. 99번째 3·1절을 맞아 함께 고민해 봤으면 합니다.

보도에 박승현 기잡니다.

【 기자 】
지난 1935년 건립된
고흥 소록도 내 일본 신사입니다.

당시 일제가 소록도 한센인들에게
신사 참배를 강요하기 위해 지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 세워진 전국 천개 신사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있습니다.

이 신사 존폐 여부를 놓고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존치하자는 쪽은 소록도 신사는 이미 원래 기능을 잃었고
일제 침략의 흔적인 만큼
교육자료로 보존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인터뷰 : 방학진 /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
– “소록도 신사가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역사를 극복함으로서 후세에 좋은 교육자료로 활용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

반면 철거해야 한다는 쪽은
신사는 단순 시설물이 아닌
일제의 정신적 의미가 담겨 있어
역사 청산과 함께 없애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인터뷰 : 노성태 / 향토 사학자
– “일본 군국주의 정신의 상징터 거든요. 따라서 저희들이 남겨놓고 교훈으로 삼아야 할 대상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보존이냐 철거냐 논란이 커지고 있는
소록도 신사.

이제는 공론의 장이 필요하다는 지적입니다.

kbc 박승현입니다.

<2018-03-01> KBC광주방송

☞기사원문: 국내 유일 ‘日 신사’ 존폐 논란

토, 2018/03/03- 03:15
47
0

미때미꼬?

민중이지팡이!

글카고

저울사들

칼사들…..동창핸….아나나?

갑장낼보재이,,,,,도미징친구차말로친구

渡美증칭구!

우짜건노 옷사이피고밥사미고잠재구고

 

…..&&&&그마드리  漢다카는데,

 

 

토, 2018/03/03- 21:59
91
0

총무국장 !

심재욱님!

호빵사부야!

삼월 열나흩날 이란다.

물요일?

사대강물은 우리핵고 댕길때처럼,

운재 돌아올란지,

꼴초야!

화면좀보자!

시계방울아!

상판대기 운재 배줄래…

경상고5기의 삼월십사일  사대강물요일이….

월, 2018/03/05- 19:45
164
0

역적 시즌2 #9-2 미당문학상 이야기 (맹문재 시인과 함께)

화, 2018/03/06-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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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MC노&방 팀장&조 작가의 역사를 전하는 수다방!

그 첫번째 에피소드 의열단 두번째 이야기!!

화, 2018/03/06-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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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담한 심정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미투운동이 확산되는 상황을 지켜보던 제 아내가 거의 정신분열 증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사실 제 아내는 몇 년전부터 오랜시간 정신과 상담을 받아오던 중이었습니다. 20대 청춘을 여 군으로 삶을 보내다가 전역한 아내입니다.

실제 아내가 보냈던 군 생활은 본인이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힘들었다고 전해들었습니다. 군대라는 곳이 계급사회고 그러다보니 상명하복은 기본인데 그렇게 강한 생활에서 많은 불만들이 있었고 과정에서 사람들과의 관계문제가 발생하여 심적인 상처가 깊다고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심리상태가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심각할 정도로 병적인 발작 증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도대체 왜그러는지 정말 남편에게도 말못할 일이 있는 건지…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아내 입에서 나오는 충격적인 이야기가…정말…원통하고 화가나서 미칠 지경입니다.

군 내부에서 계급사회의 권력구조를 이용한 일상적인 성희롱, 성추행과 성폭력 만연하다는 사실…그리고 제 아내 역시 그러한 상황에 피해자로 노출이 되어있었다는 사실…

20대 젊은 나이를 대한민국을 위해 기꺼이 한몸 바쳐보겠다는 아내의 애국심은 그렇게 군대 안에서의 만연한 성문제로 돌이킬 수 없는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동기들과 어려운 얘기를 나눠봐도 누구하나 도와주지 않는 상황들…오롯이 지켜만보는 수많은 방관자들 속에서 아내의 삶은 점점 망가지고 있었고…이런 일들이 결국 아내가 정신과 치료를 받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삶의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는 사실…

개인이 대응해서 해결하기에 너무 큰 군대라는 조직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길은 보이지 않고…답답한 마음에 이렇게 글을 남겨봅니다…
MeToo운동이 꼭 군 조직에서도 만들어지길 간절히 소망해봅니다…

군대 안에서의 미투운동을 응원하며…저희 가족들도 함께 할 수 있는 일에 동참하겠습니다…

<아시아경제>

[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 군(軍)의 성 관련 범죄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군대 안으로 확산될지 주목된다. 일각에서는 계급이 낮은 여군을 상대로 한 상급 지휘자의 성폭력 사건 상당수가 공개되지 않은 채 묻힐 것으로 보고 있다.

6일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의 김학용 자유한국당 의원이 국방부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3년 한 해 478건이던 군내 내 성범죄 발생 건수는 2014년 649건, 2015년 668건, 2016년에는 871건으로 급격히 증가했다. 지난해에도 6월 말 기준 442건으로 전년 수치를 웃돌았다. 군 별로는 육군이 전체 성범죄 발생 건수 3108건 가운데 77%인 2408건을 차지했고, 이어 해군 367건(12%), 공군 232건(7%), 국방부 직할부대 101건(3%)의 순이었다.

지난달 28일에는 군인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A 전 육군 사단장(소장)이 상고심에서 징역 6개월로 원심판결이 확정됐고, 영관급 장교인 B 중령은 부서 회식 자리에서 부하 여군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을 받아 보직해임됐다.

하지만 아직도 계급이 높은 가해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3년간 여군 상대 군대 내 성폭력 사건 대부분은 기소유예나 집행유예 등 미온적 처벌만 내려지거나 부적절한 법 조항이 적용됐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군대 내 성폭력에 의한 인권침해 직권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4년부터 지난해 6월 말까지 성범죄 가해 군인 189명 가운데 징역형은 9명뿐이었다. 집행유예 22명, 기소유예 16명, 벌금 12명, 혐의 없음 11명, 선고유예 9명, 무죄 3명 등이었고 나머지는 재판 중이거나 가해자 전역으로 일반 검찰에서 수사가 진행 중이다. 피해 여군의 58%는 부사관이었고 대령 이상 장성급은 한 명도 없었다.

김학용 의원은 “사회 전반적으로 미투 운동이 확산되고 있지만 계급사회인 군 내부에서는 여군이 현직 지휘관을 성범죄로 고발하기는 어려운 시스템”이라며 “피해자를 최대한 보호해주고 군내 성범죄에 대해서는 형벌을 강화하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양낙규 기자 [email protected]

화, 2018/03/06-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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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6-1

화, 2018/03/06-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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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정치인들(일부)

이사진을  봄시로

나의 칠팔년과

나의 중딩년…

ㄴㅏ의 초딩…칠공70

홍지팡이와박목탁에게!

가리느까?

가로노까?

퐁로사실을

동시다발적으로

ㅇㅣ바구하는 일부 자매들의

의도성 의문이 간다.

남한전국적으로  파문이 되는것과,    미혼여성미혼남성”””            홀로여성홀로남성”””

물론, 박목탁홍지팡!             …………………………….니도 그런생각이  들더나?

일부여성 즉+ 성폭력을  당했다고 하는  겨레여동생은

ㅇㅕ태마리엄따!

나의성고백은 초딩에게.”””

ㅊㅜㄹ산과  남성

출산과 여성

아이와남성

아이와 여성 …….                      $%# 세계여성의날도  이서야 된다면  세계남성의날도 이서야

성사회학  입장에서본  전반적  일부성남성의 위기와 일부 성여성의  인과관계를  우째볼건지,?

“”””분단재벌성장남성여성피해노동자본종속미국일본중국남한북한비정규정규””””””저출산과성문제?

…..거둘절미해서….   (참고사진은 경남민언련)

스타인들과 관계된,

오늘여성들의 일부들도  당시에  왜?   원치않는 성침핼 당했다고,  박목탁들과  홍지팡들에게  이바구  안핸는지…… 필잔또…. 어느곳에 이력서를  넣고,  봄비  오훈…..실장님국장님도    ….엄꼬!

목, 2018/03/08-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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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권자와독자관객은

봄비다.

성사회학의 남한조국은 또다른  시돌 해야지 않는지,

목, 2018/03/08- 08:03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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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역적의 새로운 파일럿방송 “역전다방; 의열단 3편”
목, 2018/03/08-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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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원위에서 발표한 내용을 보면 정말 해도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든다.
군 안에서 벌어지는 성폭력 문제에 대해서 솜방망이 처벌이 대부분이니 어떻게 문제 해결이 되겠나. 3년동안 군대안에서 벌어진 성폭력 문제의 가해자는 200명 정도이고 실제 처벌을 받은 사람은 10명이 안되는 상황이다.

대학시절 꽤 오래 만났던 여자친구가 초창기 ROTC 지원을 했다.
당시에 여성 ROTC 지원자에세 많은 혜택도 있었고, 여자친구가 평소에도 유난히 활동적이고 단체생활에서도 리더로 역할을 잘해내는 장점이 있어서 나 역시도 많은 응원을 했었다.

그렇게 군생활도 대학생활도 잘해내던 여자친구가 어느 날부터 부쩍 말수가 적어지고, 평소와는 다르게 밝은 기색은 온데간데없는 모습을 보였고, 결국 나에게 어렵게 털어 논 내용은 정말 당시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일이었다.

당시 여자친구의 상관이었던 작자는 회식자리나 식사자리에서 은근슬쩍 스킨쉽을 시도하기를 수차례 진행을 했었고, 나름 우회적으로 거절과 거부의 의사를 밝힌 여자친구의 의사표현을 묵살하며 더러운 짓을 계속하다가 심지어는 군생활을 오래 잘 해내기 위한 훈련이라는 말을 했다고 했다. 여자친구는 대학시절의 거의 대부분과 장교로 임관을 해서도 그렇고 대한민국 군인으로 자부심이 대단했는데, 이 일을 겪으면서 모든 것이 무너졌다.

그 과정에서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여자친구를 제대로 보살펴줬던 나 역시도 힘든 시간을 보냈었던 기억이 있다. 정말 지금도 미안한 마음뿐이다.

군대라는 조직이 가지는 특성은 성폭력문제가 기생하여 독버섯처럼 퍼지기에 가장 좋은 조건을 갖추었다. 지금 같은 솜방망이식 처벌은 우리나라 군대문화를 바꿔내기엔 너무 부족한게 현실이다.

하루빨리 군대에서 벌어지는 성폭력 문제에 대해서 피해자들이 원하는 수준과 방식으로 가해자들이 처벌받기를 기도해본다.

금, 2018/03/09-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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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가

진실은 무엇인가























목, 2018/03/15-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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