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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 일본 군부대 설치해달라”… 친일파 청원서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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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 일본 군부대 설치해달라”… 친일파 청원서 발견됐다

익명 (미확인) | 수, 2018/02/21- 15:39

[단독] 1915년 데라우치 총독에 요청… “병력 청원 기록물 일반에 알려진 건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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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 사단설치 청원서 첫 장. ⓒ 신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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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 사단설치 청원서 두 번째 장. 일본인들의 연명 뒤로 오른쪽부터 정재학, 서병조, 이일우, 이병학의 이름이 보인다. ⓒ 신상미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에 일본군 사단을 설치해 줄 것을 요청하는 거물 친일파들의 연명 청원서가 발굴됐다.

그동안 일제강점기 말기에 친일파가 거액의 국방헌금을 내고 전투기 등을 헌납하거나, 징병·학병 지원을 독려하는 연설·기고문 등이 발굴된 사례가 다수 있었다. 하지만 자기 지역에 병력을 주둔시켜 줄 것을 청원하는 친일 기록물이 일반에 공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민철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 겸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객원교수는 “당시에 이런 청원이 많이 있었는데, 최근 연구를 통해 일반에 알려진 것은 처음”이라면서 “개인의 친일행위에 대한 연구는 많았지만, 구조적인 문제는 조사하지 못한 상황에서 1910년대의 청원서라는 데 의미가 크다”라고 역사적 가치를 평가했다.

해당 문건은 친일 문제에 관심 있는 한 인사가 제공한 것으로 대구·경북 지역의 친일파 4명이 데라우치 조선총독에게 보내는 사단 설치 청원서다. 한일강제병합 5년 후인 1915년 6월 11일에 작성됐다.

정재학, 서병조, 이일우, 이병학이 당시 대구에 진출한 일본인 지주·부호들과 나란히 연명하고 날인했다. 정재학, 서병조, 이병학은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친일파다. 이일우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알려진 민족시인 이상화의 큰아버지인데, 친일 행위에 대한 논란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이번 청원서가 그의 친일 행적에 또 하나의 근거로 작용될 것으로 보인다.

“병영설치 은택 입으면 부지기부, 편의도모”… 적극적 유치 의사

청원서에는 “대구는 남선(조선의 남쪽)의 중간에 위치한 중요한 도시이고, 지금 사령부와 연대본부가 설치돼 있습니다”라며 “대구의 물자 조달이 자유롭고 날씨도 비교적 좋은 데다 상수도도 완성돼 5만 명이 먹을 수 있는 물이 나오니, 대구에 병영을 설치함이 좋을 것입니다”라고 적혀 있다.

이어 “다행히 우리 대구가 병영 설치의 은택을 입게 되면 부지 전부를 기부해드리는 것은 물론 부민은 전적으로 모든 편의를 도모하겠습니다”라고 덧붙였다. 병영만 설치되면 토지와 모든 편의를 제공하겠다는 적극적인 유치 의사를 밝힌 것이다.

당시 대구에는 이미 임시 조선파견대사령부가 설치돼 제2연대 본부와 제3연대 2대대 병력이 주둔해 있었다. 경찰력과 헌병대도 있었다. 그런데도 이들 친일파는 일본인들과 결탁해 부대 증설을 요청하는 청원서를 데라우치 총독 앞으로 보냈다.

일제강점기에 ‘병영 유치 운동’은 대구뿐 아니라 전국에서 다양하게 확인된다. 충남 대전 사단설치 청원운동, 전북 전주 여단설치 청원서(국가기록원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기록물), 황해도 사리원 사단설치 청원운동(<동아일보> 기사 1933년 7월 28일자) 등이 현재까지 확인되고 있어 지역별로 ‘유치 경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단 설치 갈망” 이름 올린 친일파는 이일우, 정재학, 서병조, 이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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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에 여단 설치를 건의하는 청원서. 일본인의 이름 사이에 부회장 이일우의 이름이 적혀 있다. ⓒ 신상미

유력자들의 청원 덕분인지 다음해(1916년) 5월 대구 대봉동에 20사단 제80연대가 설치됐다. 해방 후 이 자리엔 미군부대 캠프 헨리가 들어왔다. 사단은 19, 20사단이 각각 함북 나남과 경성 용산에 설치됐다. 대전에도 청원 뒤인 1916년 4월, 80연대의 제3대대가 설치됐다. 대전에선 사단이 설치되지 않은 것에 항의하는 친일파 주도 시위까지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대구의 대표적인 토호였던 이일우는 ‘사단’ 설치가 어려우면 ‘여단’이라도 설치해달라는 청원서에 다시 서명했다(아래 문서 이미지 참고). 해당 청원서는 ‘대구 여단설치 기성회’가 작성·제출한 것으로, 한국인은 부회장 이일우가 유일하고 나머지는 전원 일본인이다.

이일우는 3.1 만세운동 후 친일파 박중양이 조직한 ‘대구자제단’에 발기인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자제단은 3.1운동에 참여한 인사들을 전향시키는 단체로, 전국 각지에서 조직됐다. 자제단은 전향에 실패하거나 수상한 거동이 발견되면 일제 관헌에 고발했다. 이일우는 67인의 발기인 명단에 이름을 올렸을 뿐 아니라 자제단 경비까지 댔다. 하지만 이일우기념사업회는 친일 행적 의혹이 일 때마다 ‘사실이 아니며 오해에 불과하다’는 반론을 펴왔다. 기념사업회는 ‘이일우 선생은 근대산업화에 기여한 인물’이라는 입장이다.

청원서에 함께 이름을 올린 정재학은 1913년 대구은행을 설립한 금융가로, 중추원 참의를 지냈다. 서병조는 국채보상운동을 했던 유학자 서상돈의 둘째 아들이었으나 1900년대 중반 이후부터 일제와 결탁해 일찌감치 친일로 돌아섰다. 1924년에 중추원 참의로 임명됐고, 1935년에 총독부가 편찬한 <조선 공로자 명감>에도 수록돼 있다. 해방 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에 체포됐다.

이병학은 동양척식주식회사 설립위원, 대구은행 이사, 중추원 참의 등을 지낸 기업인·금융가로, 일본 정부로부터 쇼와(히로히토 일왕의 연호) 대례 기념장을 받았다. 이들은 모두 대구자제단에 발기인으로 참여하고 경비를 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일우를 제외하면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이권 확대 위해 일본군 끌어들이는 행위… 민족관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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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남 이일우를 기리는 조형물. ⓒ 계대욱

김민철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객원교수는 친일파 연명 청원서를 ‘경제적 결탁’과 ‘생명·재산 보호’의 두 가지 측면으로 분석했다.

김민철 교수는 “친일 토호세력이 이권을 확대하기 위해 대구에 진출한 일본인들과 결탁하고 일본군을 끌어들이는 행위다. 민족이라는 관념이 그들에겐 없다”라면서 “친일파들이 거의 무상으로 토지를 불하받고 개발권을 취득하도록 조선총독부가 이권을 주는 예가 많았다. 일제권력과 결탁해 재산을 증식하려고 한 전형적인 친일행위이자 경제적 결탁”이라고 분석했다.

또 김 교수는 “1915년 즈음이면 의열 활동이 줄어드는 시기다. 다시 1920년대에 활발해진다. 의병 세력이 ‘삼남 대토벌 작전’으로 위축됐고, 국외로 빠져나갔다. 1913년까지 의병활동 기록이 보이기 때문에 그들 입장에서는 습격당할까봐 불안할 수 있다”라면서 “그걸 명분으로 사단급 규모의 증설을 요구하는 것은 잘 안 맞지만, 그만큼 불안해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친일파들의 기업활동을 연구해온 카터 에커트 하버드대 석좌교수도 친일파들이 일제강점기 내내 ‘경제적 이익’을 위해 기꺼이 일본인들과 협력했다고 지적했다. 한일 양국의 자본가가 민족보다 계급을 중요시 했고, 따라서 민족을 넘어 계급적 이익을 공유했다고 본 것이다.

에커트 교수는 <제국의 후예>(1991)에서 “계급적 이익에 기초를 둔 일본인과 한국인의 협력은 이중으로 유용했다”라면서 “토착인의 도움을 받아서 일본제국의 목표에 부합하는 경제를 건설할 수 있었다. 또 조선사회 내의 계급 분화와 계급 갈등을 조장해 가공할 민족운동(3.1운동)의 단결을 깨뜨릴 수 있었다”라고 밝혔다.

아래는 청원서 한글 해석 전문이다.


[사단 설치 청원서]

삼가 일서를 써서 대구부민을 대표해 각하께 청원드립니다.

오랫동안 의회의 중심 문제가 된 제국민 다수의 갈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조선 2개 사단 증설의 논의가 점차 이번 임시의회의 협찬을 거쳐서 장차 설치에 착수될 것이라는 기운을 맞아 우리나라를 위하여 경하를 드릴 일입니다.

유래 우리 대구 지역은 남선 중투의 요지로 현재 임시 조선파견대 사령부가 있고 연대본부도 있어 교통이 편리해 물자의 공급이 지극히 자유롭습니다.

기후가 비교적 순조롭고 그러므로 위생지역이라는 점에 더해 대정3년(1914년)부터 계획된 대구 수도(상수도)는 대정6년(1917년)에 완성이 되면 그 배수량은 가히 5만 명에게 공급할 수 있게 됩니다. 다행히 우리 대구가 병영 설치의 은택을 입게 되면 지정에 따라 부지 전부를 기부해 드리는 것은 물론 부민은 전적으로 모든 편의를 도모해 드리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부디 열성적인 부민의 간절함을 헤아려 병영설치 사항을 허용해 주실 것을 돈수재배 삼가 청원드립니다.

대정 4년(1915년) 6월 11일

[여단 설치 청원서]

구장(이장) 등 내선인 공직자 전부 망라하여 단 그외 같은 지역의 유력자, 자산가 대부분을 포용하는 것으로 해서 그에 중하는 이름은 왼쪽과 같습니다.

여단 설치 기성회 임원
회장 중강오랑평
부회장 계 만차랑, 이일우
간사 내지인 이등길태랑, 백판압길, 소야원태, 목촌죽태랑

<2018-02-21>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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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역적 여름특집3] 북 콘서트 ‘항일음악 330곡집’ 1부 – ①
출연 : MC 노기환, 박한용
이야기 손님 : 이명숙 민족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 작곡가 노관우

목, 2017/08/31-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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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홍 “판사가 역사에 무식..즉각 항소할 것”

 

정미홍 전 아나운서. 2017.3.8/뉴스1 © News1 문요한 기자

(서울=뉴스1) 이유지 기자 = 지난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공개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혈서(血書)가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해 연구소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정미홍 전 KBS 아나운서(58)가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단독 김종복 판사는 31일 한국 근현대사 비영리 연구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에 대한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정 전 아나운서에게 벌금 30만원을 선고했다.

김 판사는 “전직 아나운서로 대중의 영향력이 큰 사람이기에 명예훼손글을 무분별하게 실은 경우 통상에 비해 높은 처벌을 받아야 한다”면서 “다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인용한 링크글의 논지가 분명하지 않고 전파가능성도 낮은 점을 감안해 벌금 30만원에 처한다”고 판시했다.

그는 “트위터로 글을 단순히 리트윗한 것이라 해도 타인의 글이 명예훼손적인 것이라면 문제가 된다”며 “민족문제연구소는 역사문제를 연구하는 단체를 표방하는 바, 증거도 없이 ‘박정희 혈서설’을 주장했다고 적시하는 것은 명예훼손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또 “피고인 글은 민족문제연구소가 만주신문을 내세우기 전 과거 5년간 만주일보를 근거로 삼았지만 만주일보에 박 전 대통령의 혈서 기사가 있다는 것은 거짓이기에 박정희 혈서설은 조작됐다는 취지”라고 밝히고 “그러나 민족문제연구소가 지난 5년간 만주일보를 근거로 박정희 혈서설을 주장해왔다는 증거는 찾을 수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정 전 아나운서는 선고 중 판사를 향해 “민족문제연구소는 지속적으로 방송에 나와 만주일보에 (박정희 혈서설) 증거가 있다고 이야기해왔다”며 “위증죄로 증인을 고소한 건이 현재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어갔고 판사에게도 증거로 제출했다”고 항변하기도 했다.

그는 선고 후 기자와 만나 “민족문제연구소가 역사적 진실을 왜곡하는 것을 계속 지적하고 있기에 저에 대해 인신공격 하는 것”이라 지적하고, “판사가 링크글 내용이 불분명하다고 하는 것은 역사적 진실에 무식하기 때문으로, 역사 공부를 새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즉각 항소 의사를 밝혔다.

민족문제연구소는 1939년 3월 31자 만주신문을 근거로 박 전 대통령이 만주국 군관학교에 지원하면서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써 일사봉공의 굳건한 결심입니라’라는 혈서를 썼다고 2009년 밝혔다.

정 전 아나운서는 2013년 2월 ‘들통난 민족문제연구소의 박정희 혈서 기사 조작’이라는 글을 자신의 트위터에 인용해 민족문제연구소를 비방할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올린 혐의를 받고 있다. 해당 글은 ‘지난 5년간 연구소는 박 전 대통령 혈서 기사가 만주일보에 실렸다고 주장했으나 만주일보는 1908년 폐간된 신문’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2014년 7월 강용석 변호사와 정 전 아나운서를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소하고, 각각 3000만원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강 변호사가 500만원, 정 전 아나운서는 300만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고, 2심 재판부도 1심과 같은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지난 1월 원심을 확정했다.

 

<2017-08-31> 뉴스1

☞기사원문: ‘박정희 혈서 날조’ 주장 정미홍 1심서 벌금 30만원

※관련기사

☞ 연합뉴스 : 민족문제연구소 비방’ 정미홍 전 아나운서 1심 벌금 30만원

☞ SBS : 민족문제연구소 비방’ 정미홍 전 아나운서 1심 벌금 30만 원

☞ 머니투데이 :  ‘박정희 혈서 날조’ 주장 정미홍씨, 1심서 벌금 30만원

목, 2017/08/31-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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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다운로드]

문재인 정부는 촛불시민혁명 모독하는
박성진 장관 후보자 지명을 즉각 철회하라!

1. 촛불시민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대기업 위주의 경제구조 아래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벤처기업을 위해 야심차게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를 출범시켰다. 중소기업·소상공인의 경쟁력 강화와 자본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통해 국민경제의 활력 제고와 균형 있는 성장 촉진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운 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중기부 장관후보자로 친일·독재를 미화하는 뉴라이트 역사관을 지닌 인물을 지명함으로써, 정작 당사자인 중소상인들로부터 “이럴 거면 왜 중소벤처기업부를 신설하는지 조차 의심스럽다”는 항의와 함께 지명철회를 요구받고 있는 실정이다.

2. 박성진 후보자는 이승만 독재를 “당시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립을 위해 불가피했다”거나 새마을운동을 “국민의 정신개조 운동, 진정한 신분 계층 제도의 타파” 평가했고 “과도한 노동 운동, 책임을 망각한 과도한 민주주의, 노력 이상의 과도한 복지”등으로 인해 우리나라가 “성장의 동력을 서서히 잃어가면서 저성장기로 접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긴 역사의 앙금은 여전히 우리의 삶 전반에 자리 잡고 있다”면서 “친일 프레임, 편협한 민족주의, 과도한 민주주의, 갑을 논쟁” 등 “계층적 분열의식이 우리들 마음속에 드리워져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는 “자신의 생각과 활동이 문재인 정부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하였다. 그의 말대로라면 문재인 정부는 ‘촛불시민혁명’을 계승한 것이 아니라, ‘이승만-박정희’를 승계한 것이 된다.

3. 문재인 정부는 “촛불시민혁명의 에너지를 흡수하여 국가 발전의 원동력으로 승화”하겠다고 선언하였다. 그리고는 촛불집회가 한창인 때 대표적인 뉴라이트 학자를 초청해 ‘건국 세미나’를 벌인 인물을 중기부 장관후보로 지명하는 자기모순을 범하였다. 이에 대해 비난여론이 거세게 일자, 청와대 관계자는 “박성진은 생활 보수일 뿐이며…이런 문제로 낙마시키면 인재풀이 좁아질 수 있는 문제가 생긴다.”는 어처구니없는 해명을 하였다. 인사검증이 허술했다는 비난을 모면하기 위해 궤변을 늘어놓고 있는 것이다.

4. 청와대가 ‘이승만-박정희 신도’인 박성진 중기부 장관 지명을 강행하고자 한다면, “촛불시민혁명으로 탄생한 정부이자 새롭게 집권한 민주정부”라는 자신의 주장을 스스로 포기하기 바란다. 그것이 촛불민심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다. 청와대는 인사 검증 실패를 깨끗이 인정하고, 시대착오적인 망상에 사로잡혀 있는 박성진 후보자에 대한 지명을 즉각 철회하기 바란다.<끝>


2017년 9월 1일
친일・독재미화와 교과서 개악을 저지하는
역사정의실천연대

금, 2017/09/01-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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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10월2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69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 장면. 청와대사진기자단

‘경찰의 날’을 10월21일에서 11월5일로 변경하는 방안이 국회에서 추진될 예정이다. 이와 관련해 경찰 내부에서도 경찰의날을 변경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같은 내용이 담긴 경찰청법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라고 31일 밝혔다. 현재 경찰의날은 1945년 해방 후 당시 미군정이 미군정청에 경무국을 창설한 10월21일이다. 1957년 11월 내무부 훈령에 따라 이날을 경찰의날로 지정했고, 1973년 제정된 대통령령인 ‘각종 기념일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정부 주관 기념일로 확정됐다.

이재정 의원의 개정안은 1919년 11월5일에 제정·공포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관제’에 따라 설치된 경무국 창시일을 경찰의 날로 봐야 한다는 내용이 담길 예정이다. 이 의원은 “백범 김구 선생이 초대 경무국장을 역임해 경무국이 임시정부 청사를 경비하고 임시정부 주요 인물들을 경호하게 했다”라며 “일제의 정탐을 방지하고 밀정을 찾아내는 등 경찰 조직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이 의원은 개정안 발의 취지를 두고 “헌법에도 대한민국 정부가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적시돼 있다”라며 “11월5일로 변경해 경찰의 효시가 일제 강점기 이후 미군정기의 과도기적 조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임시정부의 경무국에 있음을 명확히 해 경찰의 역사적 정체성과 자긍심을 회복하고자 한다”고 주장했다.

11월5일을 경찰의 날로 지정하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된 것은 처음이 아니다. 2006년 12월 당시 열린우리당 강창일 의원도 같은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강 의원은 당시 “현재 경찰의 날인 10월21일은 한국 정부 수립 전인 1945년 미군정 시기에 경무국이 창설된 날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며 “이는 대한민국의 독립성을 경찰 스스로 부정하는 셈”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경찰의 날을 변경하는 것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다고 명시된 헌법정신과 식민잔재 청산 의미에 부합한다”고 했다.

2009년 5월 당시 민주당 김희철 의원도 같은 내용의 경찰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그러나 두 의원의 법안은 모두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경찰 내부에서도 경찰의 날을 11월5일로 변경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최근 경찰 내부망에 일선 경찰관이 이 같은 내용의 글을 올렸다. 해당 경찰관은 “해방 이후 ‘친일 경찰’ 재등용은 경찰의 가장 가슴 아픈 실책”이라며 “경찰의 첫 시작을 임시정부 경무국으로 삼고 독립과 친일파 처단 등의 역할을 한 선배 경찰들을 찾아 기리는 등 임시정부 경무국의 역사를 경찰사로 편입한다”고 썼다. 또 “그래야 ‘친일 경찰’이라는 오욕의 역사를 청산하고 인권 경찰이 되는 첫 시작이라고 생각한다”라며 “특히 임시정부 초대 경무국장이 백범 김구 선생이라는 사실을 모든 경찰이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제안은 경찰개혁위원회 내부에서도 언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다는 의미에서 당시 경무국 창설일을 ‘경찰의 날’로 보는 게 바람직하다”라며 “이 외에 ‘국군의 날’을 광복군 창설일로 바꾸는 문제 등 다른 여러 기념일 변경도 공론의 장에서 차분하게 논의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희완 기자 [email protected]

<2017-09-01> 경향신문

☞기사원문: [단독]“‘경찰의 날’ 10월21일에서 11월5일로 변경” 법안 추진···경찰 내부에서도 의견 나와

금, 2017/09/01-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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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직원이 ‘제국과 유신의 검찰’이라는 서적을 펴냈습니다.

견제받지 않는 무소불위 검찰권력은  일본 제국주의 법률조항  표절에 기반을 두고 있고, 전관예우는 일본 제국주의 황실 법령에 그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법치에 반하는 검사실에서의 조서작성 관행(검사대신  참여직원이 신문)은 식민지 조선의 일본인 검사가 조선인을 불령선인 취급하던 업무 방식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이 책에는 기득권에 안주하거나 이를 옹호하거나 본분을 다하지 못한 학자, 정치인, 법조인, 검사, 판사, 공무원, 교육자, 언론인 등 지식인, 공직자, 지도층 사람들이 매우 화가나거나 부끄러워할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그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그토록 저주하였던 이유를 알게 될 것입니다.

 

토, 2017/09/02-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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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식 근현대사기념관 관장

박근혜 퇴진과 적폐청산을 외친 촛불 혁명의 결과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 그러니 문재인 정부에는 적폐청산의 의무가 있다. 군도 예외는 아니다. 국방부가 뒤늦게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발포 책임자 조사에 나선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광주학살은 돌발사건이 아니었다. 군은 제주 4·3사건, 6·25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 사건 등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이는 다시 제암리 사건, 난징대학살 등 일본군이 저지른 수많은 학살 사건으로도 이어진다.

해방 이후 군을 주도한 것은 친일군인들이었다. 1948년부터 1960년까지 역대 육군참모총장은 모두 일본군과 만주군 출신이었다. 제주 4·3사건부터 광주민주화운동에 이르기까지 민간인 학살을 주도한 것은 친일군인과 그 후계자들이었다. 그러니 광주학살의 진상 규명은 더 근본적인 적폐청산과 이어져야 한다. 군 안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 일본군 잔재를 지워내고 그 자리에 독립군의 정신을 채워 넣어야 한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이 국군의 날을 광복군 창군일로 바꾸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난 8월28일 언급한 것이 반가울 수밖에 없다. 헌법 전문에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고 적혀 있다. 대한민국은 독립운동의 토대 위에 세워진 것이다.

독립운동의 정점은 무장투쟁이다. 임시정부는 출범 직후인 1920년에 이미 ‘독립전쟁 원년’을 선포했다. ‘국군’을 창설하겠다는 임시정부의 오랜 염원은 1940년 9월17일 만주와 연해주 등지에서 벌어진 독립군의 무장투쟁을 계승한 광복군의 창군으로 결실을 맺었다. 광복군은 연합군의 일원임을 자임했다. 중국과 군사협정을 맺고 있었고 영국군이나 미군과의 합동작전도 펼쳤다. 광복군이 있었기에 임시정부는 일제에 선전포고를 할 수 있었다. 연합국이 카이로선언을 통해 한국의 독립을 공인하게 된 배경에는 임시정부와 광복군의 대일항전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해방 이후 국군의 창군은 독립군과 광복군을 잇는 것이어야 했다. 그러나 친일군인들이 장악한 군은 독립운동을 자신의 뿌리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승만 정권은 이런 상황에서 1956년에 10월1일을 국군의 날로 지정했다. 육군 제3사단이 휴전선을 돌파해 북진한 1950년 10월1일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이는 북진통일을 외치던 이승만 정권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현행 헌법 전문에는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이 적혀 있다. 북진통일이 아니라 평화통일이 국시다. 이승만식 북진통일이 헌법정신에 위배된다면 당연히 북진을 기념하는 날로서 국군의 날도 헌법정신에 위배된다.

게다가 1950년 10월1일 당시 육군참모총장과 사단장은 친일군인이던 정일권과 이종찬이었다. 제3사단은 백색테러로 악명 높은 서북청년단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제3사단에는 서북청년단 출신이 많았는데 이들이 철모에 백골을 그려 넣었기 때문에 제3사단은 백골부대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10월1일을 국군의 날로 정한 것은 친일파와 정치깡패를 권력의 도구로 활용하던 이승만정권다운 일이었다.

독립운동 관련 단체와 역사학계에서는 오래전부터 독립군의 역사를 국군의 뿌리로 삼아야 하며 그 일환으로 국군의 날을 광복군 창군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법령으로 정해지는 기념일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국가가 기념하는 국경일이다. 국경일은 ‘국경일에 관한 법률’로 정해진다. 다른 하나는 정부 부처 차원에서 기념하는 ‘각종 기념일’이다. 각종 기념일은 대통령령인 ‘각종 기념일에 관한 규정’으로 정해진다. 국군의 날은 각종 기념일에 속한다. 그러니 대통령령만 고치면 국군의 날을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 국군의 날을 광복군 창군일로 바꾸는 쾌거가 문재인 정부에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2017-09-04> 한겨레

☞기사원문: [왜냐면] 9월17일 광복군 창건일을 국군의 날로 / 이준식

화, 2017/09/05-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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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7/09/07-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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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려는 현실로 되고 있다.
8월 전쟁위기설이 점차 현실화되는 과정이다.
북한의 최첨단 핵무기들이 하나 둘씩 확인되고 있는 상황에서 결국 6차 핵실험이 진행되었고, 이것은 지난 괌 타격 유보를 이제는 집행할 의도로 볼 수 있다.

특히 9월 9일은 북한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념일 중의 하나로,
광인 트럼프의 막말대잔치와 미국의 뒷구녕을 핥아대는 문재인 정부의 시대착오적 대북제재 망발에 대한 응징으로 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 주요 해외 언론의 동향은 괌 타격이 9월 9일에 진행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목, 2017/09/07-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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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 가족 철수!! 목동 원어민 강사들 대거 빠져나가고 있다.
몇 년 전에도 주한미군 가족철수 훈련을 진행한 일이 있었고, 올해에도 유사하게 진행된 북한 공격시 대피훈련이 4월, 6월 연일 계속되고, 이제는 민간인 영역에서 소리 소문 없이 진행되고 있다.

주목되는 것은 목동, 대치동 등에서 돼지엄마들의 입소문이 대박이다.
주한미군 가족뿐만 아니라 실제 원어민 강사들이 다 빠져나갔다는 것. 한번도 이런 일이 없었다는데, 난리도 아니라는 것. 실제 전쟁공포로 원어민 강사들의 요청으로 심리치료사 소개를 해준 일도 있다는 것.

[관련기사]
주한미군 가족, 北 공격 대비 대피 훈련
입력 2017.06.06 (21:07) | 수정 2017.06.06 (22:12) 뉴스 9

<앵커 멘트>
주한미군이, 유사시 미군 가족들을 한반도 밖으로 대피시키는 훈련을, 지난해 7년만에 재개한 데 이어, 올해도 또 실시했습니다. 배경이 무엇인지, 우한울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배낭을 짊어진 미국인들이, 공군 수송 헬기로 향합니다. 대부분 여성과 아이들입니다.
일행은 헬기에서 버스로 다시 수송기로 갈아탑니다. 배낭에는 비상식량이 담겼고, 이동 때마다 신원 확인을 거칩니다. 유사시 만7천명에 이르는 미군 가족 등을 한반도 밖으로 대피시키기 위한 훈련입니다.

주한미군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가족들을 주일 미군 기지로 대피시키는 훈련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훈련에 자원한 미군 가족 150명은 어제부터 서울에서 평택, 대구를 거쳐, 주일 미군기지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한국내 미군 가족 대피 훈련은 역대 최대 규모의 전략 무기 전개와 함께 이뤄졌습니다.

미군은 최근 동해 상에 항공모함 두 척을 전개한 데 이어, 오늘(6일)은 핵 잠수함 샤이엔 함을 부산항에 입항시켰습니다.

<녹취> 신종우(한국국방안보포럼 사무국장) : “미군의 화기에 의해서 미국인이 피해를 볼 수 있잖아요. 훈련을 통해서도 미국인을 소개시키고 한반도에 전력을 적극적으로 투입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됩니다.)”

최근 며칠간 북한 지역에서 이동식 미사일 발사대의 움직임이 관측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우리 군도 경계태세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KBS 뉴스 우한울입니다.



목, 2017/09/07-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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