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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되어 여생 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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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되어 여생 누리다

익명 (미확인) | 수, 2018/02/07- 13:14

3·1운동 가담자 지원하며 독립운동 앞장선 오현주
독립 전망 불투명해지자 친일 전향 해방 후 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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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살 오현주, 1938년. 임경석 제공

오현주(吳玄洲)는 신여성이었다. 서구식 근대 교육을 받은 인텔리였다. 그가 태어난 1892년 무렵은 여자가 교육받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오현주가 교육받을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 오인묵이 기독교를 믿은 덕분이었다. 아버지는 호서·호남 지방의 기독교 선교 기지라는 평판이 있는 전북 군산 구암교회의 첫 조선인 장로였다.

오현주는 13살 때 처음 구암교회의 미국인 목사 부위렴(윌리엄 F. 불l)의 부인에게서 신식 교육을 받았다. 교회에 열성으로 다니는 조선인 신도들의 여느 딸들과 함께였다. 친언니 오현관(吳玄觀)도 같이 있었다. 소녀들은 주로 성경과 산수를 배웠다. 기독교 소양과 함께 가감승제의 기본 셈법을 익힌 것이다.

3·1운동이 뒤흔들어놓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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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동교회 임원들과 찍은 사진, 1942년. 앞줄 왼쪽 다섯 번째가 오현주다. 임경석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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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현주의 오빠, 오긍선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교장.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됐다. 임경석 제공

오현주 자매가 신교육을 한 계기 가운데는 오빠 덕도 있었을 것이다. 오빠 오긍선(吳兢善)은 오현주보다 14살이나 위였다. 미국인 선교사와의 인연으로 서울 배재학당을 마치고 미국 유학까지 다녀왔다. 유학 중에 켄터키주 루이빌 의과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선 사람이 의학박사 학위를 받기로는 서재필에 이어 두 번째였다. 오긍선은 1908년 귀국해 의료선교 활동을 했다. 그는 나중에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교감·교장직을 21년간이나 했다.

소녀 오현주의 학업은 그 뒤로도 계속됐다. 1906년 집안에 초빙된 한문 교사에게서 약 1년간 한문을 배웠다. 근대적 교육기관에 정식으로 발을 디딘 것은 17살 되던 1908년이었다. 서울 연지동에 있는 정신여학교 제2학년에 들어갔다. 장로교 선교사들이 경영하는 이 학교는 엄격한 기숙사 생활을 기반으로 중등 교육과정 수준의 학교였다. 오현주는 교육과정을 마치고 1910년 6월 졸업했다. 그때 학교 문을 나선 제4회 졸업생은 22명인데 그중에는 오현주 자매를 포함해 김마리아, 유각경, 유영준, 우봉운 등 뒷날 여성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들이 즐비했다.①

교육 기간이 1904년부터 1910년까지 약 6년이었다. 덕분에 오현주는 20살이 채 되기도 전에 교육자가 될 수 있었다. 졸업한 그해 가을부터 군산 멜본딘여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곳에서 4년, 경남 진주 광림여학교에서 1년6개월, 서울 경신소학교에서 1년간 교사로 있었다.②

오현주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각지에서 교사로 일하는 동안에도 교회 출입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의 삶과 기독교는 뗄 수 없이 연결돼 있었다. 결혼도 교회의 인연에 따랐다. YMCA 지도자이자 신간회 회장을 한 이상재가 중매를 섰다.

상대방은 2살 아래의 강낙원(姜樂遠)이었다. 두 사람은 1915년 11월 결혼식을 올렸다. 오현주가 24살 되던 해였다. 남편은 체육인이었다. 유도와 검도가 전공 분야였다. 결혼 이듬해에 유도 수련을 위해 일본 유도의 총본산인 고도칸에 유학하러 도쿄에 건너갈 정도로 몰입해 있었다. 강낙원은 이후 서울에 무도관(武道館)이라는 유도 수련장을 세웠다. 1930년에는 동아일보사 창간 10주년 기념 각 방면 공로자 표창식에서 ‘체육계 공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도 선정됐다.③

3·1운동이 오현주의 삶의 궤적을 뒤흔들어놓았다. 1919년 3월1일 시작된 만세시위운동이 전 조선을 풍미했다. 3월과 4월 두 달 동안은 혁명적 시기였다. 수백만 군중이 일본 식민통치에 맞서 집단행동을 했다. 희생자가 나왔다. 일본 군경의 가혹한 진압으로 죽거나 다치는 사람이 속출했다. 무차별 검거로 유치장과 감옥이 차고 넘쳤다.

대한민국애국부인회장 맡아

수감된 투사들을 도우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경제 사정이 곤란한 수감자는 사식도 차입받지 못하는 것을 본 여성들이 나섰다. 오현주 자매도 그랬다. 은밀히 돈을 모으고 수감자를 돕는 활동에 나섰다. 정신여학교 졸업생들이 활동의 구심체가 됐다. 4회 졸업생 오현주·오현관·이정숙이 참가했고, 6회 졸업생 장선희·이순길, 3~4회 후배인 이성완·김정숙 등이 가세했다. 전·현직 교사, 간호부 등 전문직 직업의 신여성들이었다. 활동 범위도 확대됐다. 격문과 지하신문를 은밀히 배포하고, 자금을 모아서 외국으로 망명한 혁명가들에게 전달했다. 관련자와 활동 범위가 늘자 책임과 역할 분담을 명확히 할 필요가 생겼다. 그리하여 ‘혈성단애국부인회’라는 여성 비밀결사가 탄생했다. 나이가 많은 오현관이 회장을 맡고 재무, 통신원, 지방 파견원 등의 직책을 두었다.

1919년 6월 조직이 확장됐다. 애국부인회라는 이름을 가진 두 비밀결사가 통합됐기 때문이다. 다른 단체는 ‘대조선독립애국부인회’라는, 중국 상하이 망명자들과 긴밀히 연계한 것이었다. 새 통합 단체에는 ‘대한민국애국부인회’라는 이름을 붙였다. 회장은 오현주, 언니 오현관은 고문 직책을 맡았다. 단체의 덩치가 커졌고, 지부 조직까지 결성됐다.

그해 6월은 3·1운동의 한 전환점이었다. 6월28일,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질서 재편을 논의하던 파리강화회의가 타결됐다. 독일과 연합국 사이에 평화협정을 맺은 것이다. 조선의 국제적 지위 변동에 대해서는 아무런 논의가 없었다. 누구 눈에도 조선의 독립 가능성이 옅어졌음이 명백해졌다. 그뿐인가. 4월 중순 이후 만세시위운동이 잦아들었다. 일본 군경의 가혹한 탄압에 눌린 탓이기도 했지만, 독립의 희망이 스러졌기 때문이다. 밤하늘의 혜성이 긴 꼬리를 남기듯이 간헐적 시위가 이어졌지만, 다시 혁명적 정세가 되돌아올 것 같지 않았다. 애국부인회 활동도 점차 위축됐다. 특히 오현주 회장의 활동력이 두드러지게 줄었다. 조직에 위기가 찾아왔다.

새 원동력이 나타났다. 오현주의 정신여학교 졸업 동기인 김마리아가 형무소에서 나온 것이다. 김마리아는 쉼없이 활동을 재개했다. 만세시위운동의 퇴조에 실망한 구성원들을 독려해 조직을 강화했다. 10월19일이었다. 16명의 여성이 은밀히 모여 애국부인회를 재결성했다. 김마리아를 회장으로 하는 새 집행부가 들어섰다. 전임 회장인 오현주는 망명자들과 대외 연락을 맡는 교제부장 직위에 이름을 남겨두었다.

남편 강낙원이 돌아왔다. 3·1운동이 일어나기 전에 국외로 나갔다가 9개월 만에 귀국한 것이다. 상하이, 만주, 연해주를 둘러보고서 되돌아왔다. 그가 무슨 목적으로 국외로 나갔다 왔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 독립운동에 참가하기 위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다른 동기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비밀 활동 정보 넘기는 조건

강낙원은 비관적인 미래를 토로했다. 독립이 될 가망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즉각 비밀결사에서 발을 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언젠가 경찰에게 발각되면 중형을 면치 못할 터였다. 비밀결사의 회장직을 수행하지 않았던가. 형을 면제받을 특별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남편은 한 남성을 집에 들여 며칠 묵게 했다. 유근수(劉根洙)였다. 그는 남편의 유도 사범이자 체육계 선배라고 했다. 또 진퇴양난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줄 권한을 가진 자라고 했다.

앞얘기는 사실이었다. 유근수는 1902년 육군무관학교를 졸업하고 육군 참위(소위)로 임관한 대한제국의 군인 출신이었다.④ 1907년 군대가 해산된 뒤 애국계몽운동에도 참여했다. 대한학회 회원록에 그의 이름이 실렸고, 학교 설립 의연금 모금에도 동참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체육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논설도 신문에 기고했다. 체육은 국가의 부강과 개인의 행복을 실현하는 근원이므로, 이를 급무로 생각하고 확장시키자는 주장이었다.⑤ 실제 1909~12년 서울 YMCA회관 내부에 유도·검도부를 운영했다. 유근수와 강낙원은 유도·검도계의 가까운 선후배였다. 강낙원은 유도와 검도를 그에게서 배웠을 것이다. 유근수가 경영하다 포기한 YMCA 유도·검도부도 인계해 1921~23년 경영했다.

뒷얘기는 사실이 아니었다. 유근수는 “이런 어려운 시대에 하나도 상치 않고 다 살릴 도리가 있으니 아무 염려 마시고 안심”하라고 큰소리를 쳤다. 하지만 그럴 권한이 그에게 있을 리 없었다. 오현주의 배신을 유도하려는 거짓말이었다. 그는 언제부터인지 개인의 영달을 꾀하는 길로 나아갔다. 일본 경찰 조직에 들어간 것이다. 1919년 현재 그는 대구경찰서 소속 형사였다.

오현주는 결국 남편과 형사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그는 자기 부부와 언니 오현관의 안전을 보장받는 조건으로 애국부인회의 비밀 문건을 양도하기로 합의했다. 다만 최고위급 수준의 보장이 필요했다. 유근수는 수완이 좋았다. 어떻게 공작했는지, 아카이케 아쓰시(당시 41) 경무국장 면담을 성사시켰다.

유근수는 자동차를 대기시켰다. 자동차는 서울 남산 밑 왜성대 깊은 곳에 있는 경무국장 관사로 미끌어져 들어갔다. 경무국장은 일본 도쿄제대 법대를 졸업하고 고등문관시험을 합격한 일본의 전형적인 고위 관료였다. 그는 세 사람을 불러들인 자리에서, 오현주에게 물었다. “당신이 이후부터 애국부인회의 정신을 버리고 방침을 달리하여 명칭도 개칭하여 사회에 다른 사업을 하겠는가?” 오현주는 그렇게 하겠노라고 답했다. 짧은 회견이었지만 동료들의 비밀 활동 정보를 넘기는 대가로 자신의 안전을 확실히 보장받을 수 있었다.⑥

일제 검거시 유일하게 석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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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기소 처분을 결정한 검찰관 이의식의 도장, 1949년. 임경석 제공

1919년 11월28일이었다. 애국부인회 구성원의 일제 검거가 개시됐다. 회장 김마리아를 필두로 전국에서 애국부인회 회원 70명이 체포됐다. 정신여학교 교사를 비롯해 관련 여성이 11명이었다. 16%를 차지했다. 피검된 사람의 53%는 세브란스병원이나 동대문부인병원 등의 관계자였다. 그들은 대개 간호부였다.⑦ 그뿐만이 아니었다. 애국부인회와 깊은 관련이 있던 비밀결사 청년외교단 구성원도 10여 명 체포됐다.

수사를 담당한 경찰관서는 유근수가 소속된 경상북도 경찰부였다. 체포된 사람들은 모두 대구경찰서로 압송됐다. 그들은 입에 담기 어려울 정도로 가혹한 고문을 받았다. 피의자들은 고문 후유증으로 중병에 시달렸다. 특히 김마리아 회장이 위중했다. 그는 코와 귀의 화농 증상이 심했고, 고문으로 머리를 심하게 맞아 제정신이 아니었다. 심지어 불에 달군 인두로 여성 생식기에 ‘화침질’을 놓는 야만적인 고문을 겪어야 했다.

가장 나이가 많은, 결사부장이자 부산지부장인 백신영은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심각한 위장 손상을 입었다. 아무것도 먹을 수 없어 뼈에 가죽만 남은 것처럼 삐쩍 말랐다. 거의 빈사 상태였다. 서울지부장 이정숙은 발에 동상을 입었다. 진물이 흐르고 통증이 심해 제대로 걸을 수 없었다.

애국부인회 사건의 피고인들은 조선총독부 재판정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김마리아 회장과 황애시덕 총무는 3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의경 서기, 이정숙 적십자부장, 장선희 재무부장, 김영순 서기는 징역 2년형, 유인경 대구지부장, 이혜경 원산지부장, 신의경 경기도지부장, 백신영 부산지부장은 각각 1년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오현주 부부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대구경찰서로 연행됐다. 하지만 큰 차이가 있었다. 오현주는 단 하룻밤을 유치장에서 보낸 뒤 석방됐다. 남편 강낙원도 조사를 받았지만, 일주일 뒤 풀려났다. 처벌받지 않고 풀려나기로는 언니 오현관도 마찬가지였다. 아카이케 경무국장의 약속은 차질 없이 이행됐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경찰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에 혹여 진술이 필요할지 몰랐다. 대구에 5개월간 체류해야만 했다. 하지만 숙식에 아무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대구경찰서 형사 유근수의 가옥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숙박비는 전혀 지급하지 않았다.

돈도 받았다. 3천원의 기밀비를 받았다는 소문이 쫘악 돌았다. 신문기자 월급이 40~50원, 일용노동자의 일당이 1원쯤 하던 시절이었다. 오늘날 돈으로 환산하면 3억원에 해당했다. 오현주 부부는 1922년 가을 이사를 갔다. 연지동 43번지 작은 가옥을 처분하고, 원서동 196번지 크고 넓은 집을 사서 옮겼다. 옛집의 판매대금은 1200원이었고, 새집의 구매대금은 4200원이었다. 새집이 만족스러웠는지 부부는 수십 년간 그 집에서 눌러살았다.

반민특위에 체포됐으나 불기소

오현주 부부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상으로 돌아갔다. 남편은 휘문고보와 연희전문학교에서 체육 교사로 있으면서 ‘중류’의 생활수준을 뒷받침했고, 아내는 아들딸 낳고서 집안을 잘 건사했다. 기독교 신앙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서울 안국동에 있는 안동교회에 적을 두고서 성실한 신앙생활을 계속했다. 그 교회 집사, 권사에 차례로 선임됐다. 중등부 여학생반을 지도하고, 교회 창립 50주년 기념위원회 재정부원으로서 소임을 다했다. 대리석 현판도 자비로 제작해 기증했다.⑧

해방 뒤에도 순탄했다. 남편은 한민당 창당 발기인에 참여한 것을 필두로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지지하는 정치 진영에 깊숙이 가담했다. 1948년에는 전국 규모의 극우 단일 청년단체인 대한청년단 핵심 인물로 떠올랐다.

그들에게도 딱 한 번 위기가 있었다. 해방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발족됐을 때다. 1949년 3월16일 오현주 부부는 “밀정 행위로 독립운동을 방해”한 혐의로 체포됐다. 그러나 길지 않았다. 오현주는 그해 5월4일 “남편의 요구에 따랐을 뿐이며, 고의가 아니”라는 이유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1개월20일간의 짧은 구금과 조사를 거친 뒤 석방됐다. 남편은 약간 더 고생했을 뿐이다. 강낙원은 반민족행위처벌법에 따라 기소됐지만, 머잖아 보석 조치로 석방됐다. 마침내 그해 8월11일 공소시효가 만료돼 모든 반민족행위자가 베개를 높이 베고 편히 잠들 수 있게 됐다. 오현주는 1989년 병사했다. 향년 98살의 천수를 누렸다.

임경석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


참고 문헌
① 여교졸업, <황성신문> 1910년 6월19일
②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조사관 申亨植, ‘피의자신문조서(오현주)’, 15∼17쪽, 1949년 3월28일,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③ <동아일보> 1930년 4월2일치
④ ‘劉根洙’, <大韓帝國官員履歷書> 25책, 641쪽, 1972년
⑤ 劉根洙, ‘論體育說’, <대한매일신보> 1909년 2월5일치
⑥ 특별검찰관 李義植, ‘피의자신문조서(오현주)’, 18∼23쪽, 1949년 4월14일
⑦ 박용옥, <김마리아, 나는 대한의 독립과 결혼하였다>, 홍성사, 203쪽, 2003년
⑧ <안동교회 90년사>, 안동교회 역사편찬위원회, 159쪽, 217쪽, 2001년

<2018-02-05> 한겨레21

☞기사원문: 친일파 되어 여생 누리다

※관련기사

☞한겨레21: 임경석의 역사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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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남양주양평가평시민실천위 초청강연에서 “이제 3.1혁명이라 불러야”

[구리=경기인터넷뉴스] 3.1혁명 및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 이준식 독립기념관장 초청 강연회가 24일 오후 3시 구리시청 대강당에서 열렸다. (사진)

‘3.1혁명 100년 구리남양주양평가평시민실천위원회’(위원장 김거성, 이하 시민실천위)가 주최하고 구리시의 후원으로 열린 이번 강연회에는 350여명(주최 측 추산)의 시민들과 안승남 구리시장, 박석윤 구리시의회 의장 및 시의원들 그리고 나태근 자유한국당 구리시당원협의회 위원장 등 내·외빈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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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인터넷뉴스

시민실천위 이주연(구민교회) 사회자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행사에서는 국민의례 후 김거성 위원장의 내빈소개와 동화라온앙상블의 ‘천개의 바람’연주에 이어 독립군가를 제창한 뒤 이준식 관장의 강연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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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연 중인 이준식 독립기념관장 © 경기인터넷뉴스

항일독립운동가이며 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 장군의 외손자로 친일반민족행위와 재산조사위원회 상임위원,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 성균관대 초빙교수 등을 역임하고 ‘일제강점기 사회와 문화’를 저술한 이준식 독립기념관장은 이날 강연에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역사는 독립운동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고 특히 3.1운동은 대한민국이 출범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기 때문에 3.1운동은 3.1혁명을 바꿔 불러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3.1혁명을 비롯한 조선의 독립운동은 세계평화를 지향한 운동이었다. 또한,이 세상의 모든 인간이 동포라는 사회동포주의에 입각한 운동이었으며 모든 인종과 민족의 평등을 지향한 운동이었다.”고 정의했다.

마지막으로 이준식 관장은 “독립운동과정에서 이름과 후손을 남기지 못한 무후 독립운동가들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라며 강연을 마쳤다.

그동안의 관 중심 행사에서 벗어나 ‘民-官 협력’으로 3.1절 100주년 첫 기념행사를 치른 시민실천위원회는 이날 행사를 시작으로 3월 1일부터 3월 3일까지 한용운, 오세창, 유관순, 안창호 등 독립운동가들의 숨결이 있는 망우공원역사기행, 김삼웅(前독립기념관관장)선생 초청 강연회를 구리시와 남양주시 후원으로 진행할 예정이며, 또한, 몽양 여운형 기념관/생가 및 식민지역사박물관기행, 지역 내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유적지를 답사 조사하고, 일상에서 친일청산 운동과 독립운동가들이 꿈꾸었던 완전한 자주독립국가로서의 평화통일운동 등 다양한 연대활동을 전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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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군가를 제창하는 시민들

<2019-02-24> 경기인터넷뉴스 

☞기사원문: 이준식 독립기념관장 “3.1혁명은 대한민국 출범의 결정적 계기”

일, 2019/02/24-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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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民一人當年平均所得三萬弗

 

數値衆民笑(수치중민소)

朝廷不答酬(조정부답수)

誰貧誰大富(수빈수대부)

或者唱狂謳(혹자창광구)

 

국민 한 사람當 연평균 소득 三萬 달러

 

셈한 값에 많은 백성이 비웃건만

朝廷은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네

누가 가난하며 또 누가 大富인가

어떤 者는 미친 노래를 부른다네.

 

<時調로 改譯>

 

많은 백성 비웃건만 朝廷은 대답 않네

누가 가난뱅이며 또 누가 큰 富者인가

오호라! 어떤 사람은 狂歌를 부른다네.

 

*數値: 계산하여 얻은 값 *衆民: 많은 백성 *答酬: 수답(酬答). 묻는 말에 대답함.

 

<2019.2.25, 이우식 지음>

월, 2019/02/25-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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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가풍·엔카풍도 수두룩…도교육청, 친일 교가 개선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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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 교육청 청사 전경 [전북교육청 제공]

(전주=연합뉴스) 임채두 기자 = 전북 지역 학교 25곳이 친일 작곡가나 작사가가 만든 교가를 사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북도 교육청은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도내 모든 초·중·고교 교가를 분석한 결과 25개 학교가 친일인물이 만든 교가를 사용하고 있었다”고 25일 밝혔다.

교가에 일제 잔재가 남은 것으로 파악된 학교는 초등학교 5곳, 중학교 20곳이다.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김성태와 이홍렬이 각각 8곳, 김동진이 6곳, 현제명이 2곳, 김기수가 1곳의 교가를 작사 혹은 작곡했다.

친일 작곡가 제자들이 만든 교가도 적지 않고, 1950년대 이전 개교한 학교 중에 일본 군가풍, 엔카 풍 교가도 상당하다는 게 도 교육청의 설명이다.

이들 교가에는 ‘조국에 바쳐’, ‘○○학도’, ‘이 목숨 다하도록’ 등 표현이 적힌 것으로 알려졌다.

전북교육청은 전북중등음악연구회를 중심으로 친일 교가 개선작업을 진행할 방침이다.

우선 25개교 중 희망학교를 대상으로 작곡이나 편곡 등을 지원한다.

전북교육청은 현재 교육 방향이나 시대정신에 동떨어진 가사는 학교 구성원들과 협의를 거쳐 개선해 나간다는 구상이다.

올바른 역사 인식을 위한 역사교육도 강화한다. 러시아 연해주 지역 독립운동 유적지를 탐방하는 ‘사제동행 국회 역사체험학교’와 ‘동학농민혁명 유적지 답사’, ‘역사 인문학 캠프’ 등 학생 참여 중심의 역사교육을 한다.

역사 교사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각종 연수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전북교육청 관계자는 “민주, 인권, 평화의 가치를 담은 역사교육으로 아이들을 건전한 역사관과 국가관을 갖춘 민주시민으로 육성하겠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2019-02-25> 연합뉴스

☞기사원문: 전북교육청 “25개 학교 교가 친일인물이 작사·작곡”(종합)

※관련기사

☞뉴스1: 전북교육청, ‘일제 잔재’ 교가 교체 운동 본격 추진 

☞노컷뉴스: 일제 대표하는 ‘군가’와 ‘엔카’, 교가 사용 학교 수두룩

☞서울신문: 전북 학교 25곳 교가 친일 작곡·작사가가 만들어

☞포커스데일리: 전북도교육청, 역사바로 세우기 앞장선다 … 3·1운동 100주년 맞아 

월, 2019/02/25-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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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옥희 교육감 기자회견 열어 친일잔재 청산, 친일인명사전 배부 등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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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뉴시스】박일호 기자 = 노옥희 울산시교육감이 25일 오전 울산시 중구 울산시교육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을 발표하고 있다. 2019.02.25. (사진=울산시교육청 제공) [email protected]

【울산=뉴시스】박일호 기자 =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울산시교육청이 교육현장에서 독립운동의 역사를 찾는 동시에 친일잔재 청산에 나선다.

노옥희 울산시교육감은 25일 시교육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울산교육 독립운동 100년의 빛’이라는 이름으로 추진하는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을 발표했다.

노 교육감은 이날 “시교육청은 대한민국 건립의 뿌리인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울산교육 독립운동 찾기에 나선다”며 “학교를 중심으로 펼쳐진 독립운동과 아직까지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교사, 학생 독립운동가를 발굴해 그 뜻을 바로 새기고 역사를 기록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는 미래세대인 우리 아이들이 열어갈 새로운 100년이 바르게 기록된 역사를 바탕으로 민주주의와 평화, 그리고 번영의 미래가 되길 희망하기 때문이라고 노 교육감은 설명했다.

시교육청은 구체적인 사업으로 ▲항일독립운동 관련 학교와 학교터에 QR코드가 포함된 표지판 설치 ▲항일독립운동 교육자·학생독립운동가 추모 ▲사업 추진연구회 연구결과 알리기 ▲교육 분야 친일잔재 청산 ▲관내 중·고등학교에 친일 인명사전 배부 ▲울산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 동참 등을 추진한다.

먼저 병영지역 3·1 만세운동이 시작됐던 병영초등학교(옛 일신학교)에서 100주년 기념사업 선포식을 통해 QR코드를 시연한다.

병영초 뿐만 아니라 시교육청과 울산초, 울산노동역사관, 보성학교터, 언양초 등에 표지판을 설치해 울산교육 독립운동 역사체험 지도를 만든다.

이를 통해 휴대전화로 손쉽게 연구자료와 영상, 사진 등 자료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또 100년 이상 역사를 가진 학교 중 항일독립운동과 관련된 관내 학교에서 차례대로 ‘3·1운동 100주년 기념 울산교육 독립운동 100년의 빛’ 현판 제막식을 연다.

항일독립운동 교육자·학생독립운동가 추모사업으로는 오는 5월 15일 스승의 날에 교육분야 독립운동가들을 ‘울산교육의 참스승’으로 선정해 기념식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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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뉴시스】배병수 기자 = 6일 울산시 중구 병영사거리 일원에서 울산광역시중구문화원(원장 박문태) 주관으로 열린 제99주년 울산 병영 3.1독립만세운동 재현행사에서 참가들이 대한 독립만세를 외치고 있다. 2018.04.06. [email protected].

보성학교 설립자인 성세빈 선생과 서진문, 이효정, 이무종, 박상진, 최현배 선생 등을 울산교육의 참스승으로 선정한다.

공훈록과 신문잡지 자료, 학적부, 졸업대장, 재판기록 등을 일괄 조사해 알려지지 않은 학생독립운동가를 발굴해 기록하고 추모할 예정이다.

아울러 지난해 9월 발족한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연구회의 연구결과를 심포지엄, 보고회, 전시회 등을 통해 시민들에게 알리고, 지역화교재에 울산의 독립운동을 담는다.

친일잔재 청산과 관련해서는 TF팀을 구성해 학계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전문가 자문을 거쳐 교육계에 남아있는 친일잔재 사례를 정리, 그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다.

또 친일잔재 청산을 국어와 역사, 음악 교과학습에 연계해 올바른 역사인식을 가질 수 있는 학습활동을 권장한다.

친일잔재 청산과 역사바로세우기는 학교 구성원 모두가 참여하는 토론과 합의 과정을 거친다.

아울러 일제의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에 협력한 자들의 행적을 기록한 인명사전을 관내 중·고등학교에 배부한다.

노 교육감은 “시교육청은 일회적 기념사업이 아니라 연간 지속사업으로 역사를 바로 세우는 길에 나서겠다”며 “대한민국의 튼튼한 기초를 세웠으나 잊혀진 독립운동 교육자를 찾아내고 올바른 역사교육을 통해 우리 아이들이 긍지와 자부심을 가진 민주주의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 선포식은 오는 27일 오전 10시 울산시 중구 병영초등학교에서 열린다.

[email protected]

<2019-02-25> 뉴시스 

☞기사원문: 울산교육청,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 발표…QR코드 표지판 설치 등

※관련기사

☞연합뉴스: QR코드로 알리는 학교 독립운동사..울산 3·1 운동 기념사업

☞노컷뉴스: ‘학교 친일잔재 청산’ 교육분야 항일독립운동 알린다

월, 2019/02/25-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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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듣기]

☞ (2.26) ‘내역사’ 시즌 3: 3.1혁명 100주년 특집 편성_만세열전1부

☞ (2.19)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4편 “심우섭” 한 시대 형제의 다른 삶, 기회주의자 지식인의 원형

☞ (2.12) ‘내역사’ 시즌 3: “일제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이후?_2편_한일청구권협정의 쟁점은?

☞ (2.05)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3편 “오현주” 독립운동가 김마리아를 밀고한 배신자, 반민특위 법정에 선다

☞ (1.29)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2편 “노덕술” 고문으로 유명한 악덕 친일경찰, 대한민국 훈장을 받다

☞ (1.22)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1편 “이종형” 의열단 행세하며 독립군 때려잡은 악명 높은 밀정

☞ (1.15) ‘내역사’ 시즌 3: “일제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이후 우리의 과제는?_1편

☞ (1.08) ‘내역사’ 시즌 3: 프롤로그 – 70년만에 부활하는 반민특위 친일파 그들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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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 3

“우리 역사의 뿌리가 친일독재 세력에 의해 흔들리고 훼손되었습니다.
우리가 지난 겨울 촛불을 들고 싸운 상대는 과연 누구였을까요.
역사적폐의 주범들의 실체와 이들이 저지른 역사범죄의 동기를 파헤쳐보고자 합니다.”

화, 2019/02/26-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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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민족문제연구소 공동발표
친일인명사전 등재된 인물 동상도 7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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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서울지부 관계자가 26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전교조 대회의실에서 ‘학교 내 친일잔재 청산을 위한 1차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의 초∙중∙고교 100곳 이상이 친일인사가 등재된 인물이 만든 교가를 사용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의 동상을 세운 학교도 7곳이나 됐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서울지부와 민족문제연구소는 26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전교조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3.1운동 100주년, 학교 내 친일잔재 청산을 위한 1차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이 조사는 서울지역 모든 초∙중∙고교를 대상으로 이뤄졌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이 교가를 작사 또는 작곡한 학교는 113개교에 달했다. 초등학교가 18개교, 중∙고등학교는 95개교였다. 설립유형으로 보면 사립이 73개교(64.6%)로 40개교인 공립(35.4%)보다 두 배 가까이 많았다. 여기엔 서울대사범대학 부설초, 영훈초, 창덕여중, 숙명여고, 휘문중∙고 등이 포함됐다. 성남중∙고교는 친일인사가 작사∙곡한 경우는 아니었지만 교가에 친일파였던 이 학교 설립자 원윤수와 김석원을 찬양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사의 동상 등 기념물이 있는 학교는 7곳으로 파악됐다. 중앙고와 고려대에는 두 학교의 설립자로 알려진 김성수의 동상이 있는데, 김성수는 조선방송협회 평의원 등 친일단체 간부를 역임한 인물이다. 이 때문에 고려대 학생들은 꾸준히 김성수 동상 철거를 요구해왔다. 휘문고에는 대표적 친일 자본가로 알려진 민영휘의 동상이, 상명대에는 친일단체 간부로 활동한 배상명의 동상과 그를 기리는 기념관이 있다.

전교조 관계자는 “서울시교육청과 서울시가 관련 시민사회단체와 공동 TF팀을 꾸려 교육계 친일잔재에 대한 전수조사와 청산작업을 벌여야 한다”고 말했다.

조아름 기자 [email protected]

<2019-02-26> 한국일보 

☞기사원문: “서울 초중고 100여곳 친일파가 만든 교가 사용” 

※관련기사 

☞연합뉴스: “서울 학교 곳곳에 친일잔재…일왕 찬양 의혹 교가도” 

☞뉴시스: “서울 초중고 113곳, 친일파 작사·작곡 교가 사용” 

☞KBS: “서울 초·중·고교 113곳 교가, 친일파가 작사·작곡”

☞노컷뉴스: 학교에 ‘친일파’ 동상·기념관·교가…서울에만 100곳 넘어 

☞뉴스1: “서울 초·중·고 100여곳 친일인사 작사·작곡 교가 써”

화, 2019/02/26-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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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전국 곳곳에 3·1운동과 항일투쟁을 기리는 기념비들이 세워져 있는데요.

이 기념비마저 일제식으로 세워진 곳이 많습니다.

친일 잔재가 아직도 우리 주변에 많다는 건데 서둘러 바로 잡아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보도에 유승용 기자입니다.

[리포트]

3·1만세운동을 기리기 위해 1970년대 세워진 기념비입니다.

당시 투쟁을 소개하고 이끌었던 인사들의 이름도 새겨 넣었습니다.

그런데 비석의 사각뿔 모양이 일본 황실의 무력을 상징하던 일제의 충혼비와 같습니다.

바로 옆에 세워진 독립운동 인사 숭모비도 마찬가집니다.

해방 직후인 1946년 세워진 기미독립선언 기념비도 같은 모양을 했습니다.

일제가 ‘황국신민’이 되기를 강요하며 전국 곳곳에 세웠던 비석 모양 그대로 독립운동으로 내용만 바꿔 다시 만든 겁니다.

이처럼 일제식으로 세워진 독립운동 기념비는 보훈처에 등록된 현충시설에만 10여 개,

미등록 시설의 기념비와 군대와 경찰 충혼비까지 포함하면 일제식 기념비는 전국 곳곳에 산재해 있습니다.

[김순흥/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장 : “기단은 넓고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고 위에는 뿔 모양이 이런게 일본의 충혼비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우리가 모르고 이런 걸 세웠단다 하는 안내판을 세울 필요는 있죠.”]

독립운동 기념비에까지 스며 있는 일제의 잔재.

선조들의 항일 운동 의미를 올바르게 전달하기 위해서라도 정확한 실태 조사를 통해 바로잡는 일이 시급합니다.

KBS 뉴스 유승용입니다. 

<2019-02-26> KBS 

☞기사원문: 독립운동 기념비마저 ‘일본식’…“서둘러 바로잡아야”

화, 2019/02/26-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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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연합뉴스) 노승혁 기자 = 경기도 고양시는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김동진 작곡가가 지은 ‘고양시의 노래’를 사용 중단한다고 26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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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시청
[연합뉴스 자료사진]

김동진은 194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일제 침략전쟁을 옹호하는 노래를 작곡하는 등 친일행위를 한 인물로, 친일인명사전에 공식 등재돼 있다.

그는 고양시의 노래 외에도 대한민국 군가 등 다수의 곡을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밖에 전국 초중고 교가, 시가 등 많은 관공서의 공식 노래에 김동진을 비롯한 친일 음악인의 손길이 미쳐 있다.

고양시는 ‘고양시의 노래’를 시가(市歌)로써 사용하는 것을 중단하고, 시민 공론화 작업을 거쳐 새로운 시가를 보급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시는 올해 3·1운동과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아 시민이 잘 알지 못하지만 도시 곳곳에 남아있는 ‘일제 잔재 찾기’에 나선다.

일본군 군사기지로 추정되는 고양 시내 육군 A 사단 탄약고, 조선인을 강제 동원해 건설한 덕은동 쌍굴터널 조사 등이다.

이재준 시장은 “역사의 청산은 정치적 논쟁이 아닌 성장의 토양을 다지는 작업”이라며 “점차 잊혀져 가는 일제의 흔적은 역사의 아픔으로 생생하게 보존하고, 항일운동의 정신은 3·1운동 100주년을 기점으로 남북이 하나 되는 평화의 정신으로 승화해 그 불씨를 되살리겠다”고 밝혔다.

[email protected]

<2019-02-26> 연합뉴스 

☞기사원문: 고양시, 친일파 김동진 작곡한 ‘고양시의 노래’ 사용중단

※관련기사 

☞뉴시스: 이재준 고양시장 “친일파가 작곡한 고양시歌 사용 중단”

화, 2019/02/26-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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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글론지… 근론지

한다꼬

밥무꼬  살마돼지  말라  비엠인지…W륜지 그래 산노?

친구야 오늘  니한테  마니 미안해가꼬,

여는 마산 회원구 봉암동 창힌핵죠 부그이다.

하모하모 바로 미테아이가

…..그래 링게루 좀주리자 !

니가아이고 내가

고래 통기 기다리꾸마?1

진천총국호양은  군고향 오마이중  둥기둥청….!

유관순들  안중근들  극장  하지말게

 

호영드리며,…..

 

화, 2019/02/26-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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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질도 좋아져서 낭비가 되는것 같아  e-mail을 이용 PDF파일로 받았으면 합니다.

수, 2019/02/27-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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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口增減(인구증감)

 

水來風去事(수래풍거사)

孰挽孰能防(숙만숙능방)

若此人增減(약차인증감)

官衙豈太忙(관아기태망)

 

인구의 늚과 줆

 

물이 흘러오고 바람이 떠나는 일

누가 말리며 누가 능히 막겠는가

사람의 늚과 줆이란 이와 같거늘

官衙에선 어찌 그리 몹시 바쁜가.

 

<時調로 改譯>

 

물이 오고 바람 떠남 누가 어찌하겠는가

사람의 늚과 줆이란 바로 이와도 같거늘

오호라! 官衙에서는 어찌 그리 太忙한가.

 

*增減: 많아지거나  적어짐. 늘리거나  줄임.  증손(增損)  *若此: 이러함 *官衙:

예전에, 벼슬아치들이  모여서 나랏일을 처리하던 곳. 공당(公堂). 공부(公府).

 

<2019.2.27, 이우식 지음>

수, 2019/02/27-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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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가 만드는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내역사) 시즌3

“3.1혁명 100주년 특집편성_만세열전 2부”

팟빵링크 http://www.podbbang.com/ch/14024

목, 2019/02/28-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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