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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되어 여생 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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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되어 여생 누리다

익명 (미확인) | 수, 2018/02/07- 13:14

3·1운동 가담자 지원하며 독립운동 앞장선 오현주
독립 전망 불투명해지자 친일 전향 해방 후 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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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살 오현주, 1938년. 임경석 제공

오현주(吳玄洲)는 신여성이었다. 서구식 근대 교육을 받은 인텔리였다. 그가 태어난 1892년 무렵은 여자가 교육받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오현주가 교육받을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 오인묵이 기독교를 믿은 덕분이었다. 아버지는 호서·호남 지방의 기독교 선교 기지라는 평판이 있는 전북 군산 구암교회의 첫 조선인 장로였다.

오현주는 13살 때 처음 구암교회의 미국인 목사 부위렴(윌리엄 F. 불l)의 부인에게서 신식 교육을 받았다. 교회에 열성으로 다니는 조선인 신도들의 여느 딸들과 함께였다. 친언니 오현관(吳玄觀)도 같이 있었다. 소녀들은 주로 성경과 산수를 배웠다. 기독교 소양과 함께 가감승제의 기본 셈법을 익힌 것이다.

3·1운동이 뒤흔들어놓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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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동교회 임원들과 찍은 사진, 1942년. 앞줄 왼쪽 다섯 번째가 오현주다. 임경석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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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현주의 오빠, 오긍선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교장.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됐다. 임경석 제공

오현주 자매가 신교육을 한 계기 가운데는 오빠 덕도 있었을 것이다. 오빠 오긍선(吳兢善)은 오현주보다 14살이나 위였다. 미국인 선교사와의 인연으로 서울 배재학당을 마치고 미국 유학까지 다녀왔다. 유학 중에 켄터키주 루이빌 의과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선 사람이 의학박사 학위를 받기로는 서재필에 이어 두 번째였다. 오긍선은 1908년 귀국해 의료선교 활동을 했다. 그는 나중에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교감·교장직을 21년간이나 했다.

소녀 오현주의 학업은 그 뒤로도 계속됐다. 1906년 집안에 초빙된 한문 교사에게서 약 1년간 한문을 배웠다. 근대적 교육기관에 정식으로 발을 디딘 것은 17살 되던 1908년이었다. 서울 연지동에 있는 정신여학교 제2학년에 들어갔다. 장로교 선교사들이 경영하는 이 학교는 엄격한 기숙사 생활을 기반으로 중등 교육과정 수준의 학교였다. 오현주는 교육과정을 마치고 1910년 6월 졸업했다. 그때 학교 문을 나선 제4회 졸업생은 22명인데 그중에는 오현주 자매를 포함해 김마리아, 유각경, 유영준, 우봉운 등 뒷날 여성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들이 즐비했다.①

교육 기간이 1904년부터 1910년까지 약 6년이었다. 덕분에 오현주는 20살이 채 되기도 전에 교육자가 될 수 있었다. 졸업한 그해 가을부터 군산 멜본딘여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곳에서 4년, 경남 진주 광림여학교에서 1년6개월, 서울 경신소학교에서 1년간 교사로 있었다.②

오현주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각지에서 교사로 일하는 동안에도 교회 출입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의 삶과 기독교는 뗄 수 없이 연결돼 있었다. 결혼도 교회의 인연에 따랐다. YMCA 지도자이자 신간회 회장을 한 이상재가 중매를 섰다.

상대방은 2살 아래의 강낙원(姜樂遠)이었다. 두 사람은 1915년 11월 결혼식을 올렸다. 오현주가 24살 되던 해였다. 남편은 체육인이었다. 유도와 검도가 전공 분야였다. 결혼 이듬해에 유도 수련을 위해 일본 유도의 총본산인 고도칸에 유학하러 도쿄에 건너갈 정도로 몰입해 있었다. 강낙원은 이후 서울에 무도관(武道館)이라는 유도 수련장을 세웠다. 1930년에는 동아일보사 창간 10주년 기념 각 방면 공로자 표창식에서 ‘체육계 공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도 선정됐다.③

3·1운동이 오현주의 삶의 궤적을 뒤흔들어놓았다. 1919년 3월1일 시작된 만세시위운동이 전 조선을 풍미했다. 3월과 4월 두 달 동안은 혁명적 시기였다. 수백만 군중이 일본 식민통치에 맞서 집단행동을 했다. 희생자가 나왔다. 일본 군경의 가혹한 진압으로 죽거나 다치는 사람이 속출했다. 무차별 검거로 유치장과 감옥이 차고 넘쳤다.

대한민국애국부인회장 맡아

수감된 투사들을 도우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경제 사정이 곤란한 수감자는 사식도 차입받지 못하는 것을 본 여성들이 나섰다. 오현주 자매도 그랬다. 은밀히 돈을 모으고 수감자를 돕는 활동에 나섰다. 정신여학교 졸업생들이 활동의 구심체가 됐다. 4회 졸업생 오현주·오현관·이정숙이 참가했고, 6회 졸업생 장선희·이순길, 3~4회 후배인 이성완·김정숙 등이 가세했다. 전·현직 교사, 간호부 등 전문직 직업의 신여성들이었다. 활동 범위도 확대됐다. 격문과 지하신문를 은밀히 배포하고, 자금을 모아서 외국으로 망명한 혁명가들에게 전달했다. 관련자와 활동 범위가 늘자 책임과 역할 분담을 명확히 할 필요가 생겼다. 그리하여 ‘혈성단애국부인회’라는 여성 비밀결사가 탄생했다. 나이가 많은 오현관이 회장을 맡고 재무, 통신원, 지방 파견원 등의 직책을 두었다.

1919년 6월 조직이 확장됐다. 애국부인회라는 이름을 가진 두 비밀결사가 통합됐기 때문이다. 다른 단체는 ‘대조선독립애국부인회’라는, 중국 상하이 망명자들과 긴밀히 연계한 것이었다. 새 통합 단체에는 ‘대한민국애국부인회’라는 이름을 붙였다. 회장은 오현주, 언니 오현관은 고문 직책을 맡았다. 단체의 덩치가 커졌고, 지부 조직까지 결성됐다.

그해 6월은 3·1운동의 한 전환점이었다. 6월28일,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질서 재편을 논의하던 파리강화회의가 타결됐다. 독일과 연합국 사이에 평화협정을 맺은 것이다. 조선의 국제적 지위 변동에 대해서는 아무런 논의가 없었다. 누구 눈에도 조선의 독립 가능성이 옅어졌음이 명백해졌다. 그뿐인가. 4월 중순 이후 만세시위운동이 잦아들었다. 일본 군경의 가혹한 탄압에 눌린 탓이기도 했지만, 독립의 희망이 스러졌기 때문이다. 밤하늘의 혜성이 긴 꼬리를 남기듯이 간헐적 시위가 이어졌지만, 다시 혁명적 정세가 되돌아올 것 같지 않았다. 애국부인회 활동도 점차 위축됐다. 특히 오현주 회장의 활동력이 두드러지게 줄었다. 조직에 위기가 찾아왔다.

새 원동력이 나타났다. 오현주의 정신여학교 졸업 동기인 김마리아가 형무소에서 나온 것이다. 김마리아는 쉼없이 활동을 재개했다. 만세시위운동의 퇴조에 실망한 구성원들을 독려해 조직을 강화했다. 10월19일이었다. 16명의 여성이 은밀히 모여 애국부인회를 재결성했다. 김마리아를 회장으로 하는 새 집행부가 들어섰다. 전임 회장인 오현주는 망명자들과 대외 연락을 맡는 교제부장 직위에 이름을 남겨두었다.

남편 강낙원이 돌아왔다. 3·1운동이 일어나기 전에 국외로 나갔다가 9개월 만에 귀국한 것이다. 상하이, 만주, 연해주를 둘러보고서 되돌아왔다. 그가 무슨 목적으로 국외로 나갔다 왔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 독립운동에 참가하기 위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다른 동기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비밀 활동 정보 넘기는 조건

강낙원은 비관적인 미래를 토로했다. 독립이 될 가망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즉각 비밀결사에서 발을 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언젠가 경찰에게 발각되면 중형을 면치 못할 터였다. 비밀결사의 회장직을 수행하지 않았던가. 형을 면제받을 특별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남편은 한 남성을 집에 들여 며칠 묵게 했다. 유근수(劉根洙)였다. 그는 남편의 유도 사범이자 체육계 선배라고 했다. 또 진퇴양난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줄 권한을 가진 자라고 했다.

앞얘기는 사실이었다. 유근수는 1902년 육군무관학교를 졸업하고 육군 참위(소위)로 임관한 대한제국의 군인 출신이었다.④ 1907년 군대가 해산된 뒤 애국계몽운동에도 참여했다. 대한학회 회원록에 그의 이름이 실렸고, 학교 설립 의연금 모금에도 동참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체육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논설도 신문에 기고했다. 체육은 국가의 부강과 개인의 행복을 실현하는 근원이므로, 이를 급무로 생각하고 확장시키자는 주장이었다.⑤ 실제 1909~12년 서울 YMCA회관 내부에 유도·검도부를 운영했다. 유근수와 강낙원은 유도·검도계의 가까운 선후배였다. 강낙원은 유도와 검도를 그에게서 배웠을 것이다. 유근수가 경영하다 포기한 YMCA 유도·검도부도 인계해 1921~23년 경영했다.

뒷얘기는 사실이 아니었다. 유근수는 “이런 어려운 시대에 하나도 상치 않고 다 살릴 도리가 있으니 아무 염려 마시고 안심”하라고 큰소리를 쳤다. 하지만 그럴 권한이 그에게 있을 리 없었다. 오현주의 배신을 유도하려는 거짓말이었다. 그는 언제부터인지 개인의 영달을 꾀하는 길로 나아갔다. 일본 경찰 조직에 들어간 것이다. 1919년 현재 그는 대구경찰서 소속 형사였다.

오현주는 결국 남편과 형사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그는 자기 부부와 언니 오현관의 안전을 보장받는 조건으로 애국부인회의 비밀 문건을 양도하기로 합의했다. 다만 최고위급 수준의 보장이 필요했다. 유근수는 수완이 좋았다. 어떻게 공작했는지, 아카이케 아쓰시(당시 41) 경무국장 면담을 성사시켰다.

유근수는 자동차를 대기시켰다. 자동차는 서울 남산 밑 왜성대 깊은 곳에 있는 경무국장 관사로 미끌어져 들어갔다. 경무국장은 일본 도쿄제대 법대를 졸업하고 고등문관시험을 합격한 일본의 전형적인 고위 관료였다. 그는 세 사람을 불러들인 자리에서, 오현주에게 물었다. “당신이 이후부터 애국부인회의 정신을 버리고 방침을 달리하여 명칭도 개칭하여 사회에 다른 사업을 하겠는가?” 오현주는 그렇게 하겠노라고 답했다. 짧은 회견이었지만 동료들의 비밀 활동 정보를 넘기는 대가로 자신의 안전을 확실히 보장받을 수 있었다.⑥

일제 검거시 유일하게 석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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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기소 처분을 결정한 검찰관 이의식의 도장, 1949년. 임경석 제공

1919년 11월28일이었다. 애국부인회 구성원의 일제 검거가 개시됐다. 회장 김마리아를 필두로 전국에서 애국부인회 회원 70명이 체포됐다. 정신여학교 교사를 비롯해 관련 여성이 11명이었다. 16%를 차지했다. 피검된 사람의 53%는 세브란스병원이나 동대문부인병원 등의 관계자였다. 그들은 대개 간호부였다.⑦ 그뿐만이 아니었다. 애국부인회와 깊은 관련이 있던 비밀결사 청년외교단 구성원도 10여 명 체포됐다.

수사를 담당한 경찰관서는 유근수가 소속된 경상북도 경찰부였다. 체포된 사람들은 모두 대구경찰서로 압송됐다. 그들은 입에 담기 어려울 정도로 가혹한 고문을 받았다. 피의자들은 고문 후유증으로 중병에 시달렸다. 특히 김마리아 회장이 위중했다. 그는 코와 귀의 화농 증상이 심했고, 고문으로 머리를 심하게 맞아 제정신이 아니었다. 심지어 불에 달군 인두로 여성 생식기에 ‘화침질’을 놓는 야만적인 고문을 겪어야 했다.

가장 나이가 많은, 결사부장이자 부산지부장인 백신영은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심각한 위장 손상을 입었다. 아무것도 먹을 수 없어 뼈에 가죽만 남은 것처럼 삐쩍 말랐다. 거의 빈사 상태였다. 서울지부장 이정숙은 발에 동상을 입었다. 진물이 흐르고 통증이 심해 제대로 걸을 수 없었다.

애국부인회 사건의 피고인들은 조선총독부 재판정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김마리아 회장과 황애시덕 총무는 3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의경 서기, 이정숙 적십자부장, 장선희 재무부장, 김영순 서기는 징역 2년형, 유인경 대구지부장, 이혜경 원산지부장, 신의경 경기도지부장, 백신영 부산지부장은 각각 1년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오현주 부부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대구경찰서로 연행됐다. 하지만 큰 차이가 있었다. 오현주는 단 하룻밤을 유치장에서 보낸 뒤 석방됐다. 남편 강낙원도 조사를 받았지만, 일주일 뒤 풀려났다. 처벌받지 않고 풀려나기로는 언니 오현관도 마찬가지였다. 아카이케 경무국장의 약속은 차질 없이 이행됐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경찰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에 혹여 진술이 필요할지 몰랐다. 대구에 5개월간 체류해야만 했다. 하지만 숙식에 아무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대구경찰서 형사 유근수의 가옥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숙박비는 전혀 지급하지 않았다.

돈도 받았다. 3천원의 기밀비를 받았다는 소문이 쫘악 돌았다. 신문기자 월급이 40~50원, 일용노동자의 일당이 1원쯤 하던 시절이었다. 오늘날 돈으로 환산하면 3억원에 해당했다. 오현주 부부는 1922년 가을 이사를 갔다. 연지동 43번지 작은 가옥을 처분하고, 원서동 196번지 크고 넓은 집을 사서 옮겼다. 옛집의 판매대금은 1200원이었고, 새집의 구매대금은 4200원이었다. 새집이 만족스러웠는지 부부는 수십 년간 그 집에서 눌러살았다.

반민특위에 체포됐으나 불기소

오현주 부부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상으로 돌아갔다. 남편은 휘문고보와 연희전문학교에서 체육 교사로 있으면서 ‘중류’의 생활수준을 뒷받침했고, 아내는 아들딸 낳고서 집안을 잘 건사했다. 기독교 신앙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서울 안국동에 있는 안동교회에 적을 두고서 성실한 신앙생활을 계속했다. 그 교회 집사, 권사에 차례로 선임됐다. 중등부 여학생반을 지도하고, 교회 창립 50주년 기념위원회 재정부원으로서 소임을 다했다. 대리석 현판도 자비로 제작해 기증했다.⑧

해방 뒤에도 순탄했다. 남편은 한민당 창당 발기인에 참여한 것을 필두로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지지하는 정치 진영에 깊숙이 가담했다. 1948년에는 전국 규모의 극우 단일 청년단체인 대한청년단 핵심 인물로 떠올랐다.

그들에게도 딱 한 번 위기가 있었다. 해방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발족됐을 때다. 1949년 3월16일 오현주 부부는 “밀정 행위로 독립운동을 방해”한 혐의로 체포됐다. 그러나 길지 않았다. 오현주는 그해 5월4일 “남편의 요구에 따랐을 뿐이며, 고의가 아니”라는 이유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1개월20일간의 짧은 구금과 조사를 거친 뒤 석방됐다. 남편은 약간 더 고생했을 뿐이다. 강낙원은 반민족행위처벌법에 따라 기소됐지만, 머잖아 보석 조치로 석방됐다. 마침내 그해 8월11일 공소시효가 만료돼 모든 반민족행위자가 베개를 높이 베고 편히 잠들 수 있게 됐다. 오현주는 1989년 병사했다. 향년 98살의 천수를 누렸다.

임경석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


참고 문헌
① 여교졸업, <황성신문> 1910년 6월19일
②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조사관 申亨植, ‘피의자신문조서(오현주)’, 15∼17쪽, 1949년 3월28일,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③ <동아일보> 1930년 4월2일치
④ ‘劉根洙’, <大韓帝國官員履歷書> 25책, 641쪽, 1972년
⑤ 劉根洙, ‘論體育說’, <대한매일신보> 1909년 2월5일치
⑥ 특별검찰관 李義植, ‘피의자신문조서(오현주)’, 18∼23쪽, 1949년 4월14일
⑦ 박용옥, <김마리아, 나는 대한의 독립과 결혼하였다>, 홍성사, 203쪽, 2003년
⑧ <안동교회 90년사>, 안동교회 역사편찬위원회, 159쪽, 217쪽, 2001년

<2018-02-05> 한겨레21

☞기사원문: 친일파 되어 여생 누리다

※관련기사

☞한겨레21: 임경석의 역사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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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김정은 위원장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70년이 넘는 분단의 시간 동안 자본주의가 잠식한 신자유주의를 추구하는 이남에서 살아가는 대부분의 민중들에게는 반북, 반공 이데올로기 사상으로 이북과의 대결과 반목이 강요된 사회 구조를 가지고 있다.

 

친일 잔존 세력들이 친미주의자로 둔갑하여 정치, 군사, 경제, 정보기관, 문화예술, 학계 등 곳곳으로 침투되어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충성을 다하는 분단적폐 세력으로 또아리를 틀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이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자리잡고 있으면서 미국을 고무찬양, 숭배하고 분단을 유지시켜 미국의 배를 불리는 민족반역의 사회 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들 중 일부는 자신의 삶과 행동이 분단적폐의 효과를 내며, 미국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지 조차 인식 못하는 가련한 삶을 사는 존재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세상은 완전히 변했다.

 

전 세계가 전변하고 있고, 이남사회가 들썩이고 있다. 바로 이북에 대한 객관적이며 현실적인 평가와 판단이 하나 둘씩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습이니 인권이니 떠들어대던 분단적폐들의 목소리를 일소시키는 생생한 장면들이 최근 전 세계로, 이남으로 급속도로 퍼져나가고 있다.

 

4. 27 판문점 선언의 과정과 6.12 북미정상회담의 과정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면서 누구나 할 것 없이 왜곡과 편견이 없이 이북 사회를 아주 조금이나마 경험한 것의 결과다.

 

김정은 위원장의 진정성 넘치며 예의바른 배려에서 느껴지는 겸손한 언행, 연출과 조작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유머감각과 진중함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움, 언제나 이북의 인민들과 이남의 민중들 그리고 미국민들, 세계인류까지 생각하는 원대한 구상에 대한 과감한 결단력을 우리는 본 것이다.

 

10만명이 집단체조를 하면서 한치의 오차를 허용하지 않는 ‘아리랑’ 공연이 어떻게 가능한가? ICBM과 SLBM이 단 한번에 성공해내는 힘은 어디에 있는가?

 

사랑과 정이 넘치는 곳, 국가 최고지도자가 인민들을 위해 멸사복무하겠단 마음으로 헌신하는 곳, 불의와 부정의 그리고 민족배반 행위에 대해서는 한치의 오점도 용납하지 않는 민족 자부심과 양심이 바로선 곳, 자신의 이름은 드러내기보단 조국과 민족을 위해 밑거름이 되고자하는 곳이 바로 이북 사회의 진짜 모습이다.

 

이런 사회가 최고지도자로부터 전당 전인민이 하나의 마음으로 똘똘뭉쳐진 사회가 바로 이북인 것이다.

 

이북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해 지금껏 있어온 편견을 걷어치우자. 이것은 바로 분단적폐들이 우리의 눈과 귀를 가리고 우리들의 마음에 분단의 장막을 씌워둔 것이다.

 

세상이 주목하며 우러러보는 김정은 위원장의 진가를 몰라본다면 우리는 아마 친미를 일삼는 분단적폐세력들의 손아귀(그 배후에 있는 미국에게)에서 남은 생을 마감하는 비참한 운명을 맞이할 것이다.

 

중대한 변화로 가득한 한반도에서 모든 진보주의자들은 명심하자.

세상은 지금 김정은 위원장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으며, 그 힘의 원천은 핵무기보다 강력한 이북의 ‘혼연일체, 일심단결’에 있다는 것을 알자.

 

이북에서는 김정은 위원장을 중심으로 하는 일심단결의 힘으로 세계를 움직인다면, 이남에서는 민족대단결의 정신으로 무장하여 분단적폐를 청산하고 미국으로부터 자주로운 나라로 거듭나자.

 

이것이 평화이자 번영이며 통일이다!

 

 

토, 2018/07/14-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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悖鄕(패향)

 

小人懷大志(소인회대지)

癡者說儒經(치자설유경)

逆竪云忠孝(역수운충효)

狂夫促覺醒(광부촉각성)

 

風紀 문란한 고을

 

도량 좁은 사람이 大志를 품었고

어리석은 者가 儒家의 經 논하네

도리에 어긋난 놈 충효 운운하고

미친 사내 정신 차리길 재촉하네.

 

<時調로 改譯>

 

小人이 大志 품고 癡者가 儒經 논하네

도리에 어긋난 놈이 충과 효 운운하고

오호라! 미친 사내가 각성을 재촉하네.

 

*悖鄕: 못된  사람들이  살아 風紀가  고약한  시골.  인륜에  어그러지는  일이  많이

일어나는, 풍기가  문란한  고을 *大志: 마음에 품은 큰 뜻. ≒홍지(鴻志) *癡者:

치인(癡人).  치한(癡漢).  어리석고  못난 사람  *儒經: 유서(儒書). 유가서(儒家

書).  유가(儒家)에서  쓰는,  유학(儒學)에  관한  *逆竪: 도리에  어긋난  짓을

하는  고약한  사람  *狂夫: 미친 사내 *覺醒: 깨어 정신을 차림. 醒覺. 깨달아 앎.

 

<2018.7.14, 이우식 지음>

토, 2018/07/14-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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謹告韓國古典飜譯院

 

或此難於作(혹차난어작)

衆人語不輕(중인어불경)

村儒嘲誤譯(촌유조오역)

盡力免苛評(진력면가평)

 

한국고전번역원에 삼가 아룀

 

或 이것은 짓기보다도 더 어려워

많은 이들이 가볍지 않다 말하네

시골 사는 선비 誤譯을 조롱하니

힘을 다해 가혹한 비평 면하소서.

 

<時調로 改譯>

 

或 짓기보다 어려워 가볍지 아니하네

시골에 사는 선비가 誤譯을 조롱하니

모쪼록 힘을 다하여 혹평을 면하소서.

 

*衆人: 뭇사람 *不輕: 가볍지 않음 *村儒: 시골에 사는  선비  *誤譯: 잘못 번역함. 

또는 잘못된 번역 *盡力: 있는 힘을 다함. 또는 낼 수 있는 모든 힘. 갈력(竭力).

사력(肆力). 기력(盡其力) *苛評: 가혹(苛酷)하게 비평함. 또는 그러한 비평.

 

<2018.7.15, 이우식 지음>

일, 2018/07/15-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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政局(정국)

 

萬猫逢一虎(만묘봉일호)

魄散作悲鳴(백산작비명)

左右無人物(좌우무인물)

當然雜輩爭(당연잡배쟁)

 

정치계의 형편

 

수많은 괭이들, 한 마리 범 만나면

놀라 넋 잃고 비명을 막 지를 텐데

좌우를 돌아봐도 인물이란 없으니

잡된 무리끼리 다툼일랑 마땅하다.

 

<時調로 改譯>

 

수많은 고양이들이 한 마리 범을 만나면

놀라서 넋을 잃고는 비명을 지를 터인데

좌우로 인물 없으니 雜輩 다툼 마땅하다.

 

*魄散: 혼비백산(魂飛魄散).  혼백이  어지러이  흩어진다는 뜻으로, 몹시 놀라

넋을 잃음을 이르는 *悲鳴: 슬피 욺. 또는 그런 울음소리 *雜輩: 잡된 무리.

 

<2018.7.15, 이우식 지음>

일, 2018/07/15-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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賢問愚答(현문우답)

 

敎堂聽說敎(교당청설교)

牧者辱耶蘇(목자욕야소)

訪寺逢僧衆(방사봉승중)

方知佛大愚(방지불대우)

 

똑똑한 물음에 못난 대답

 

예배당에서 설교를 들어 보니

목사는 예수님을 욕되게 하며

절간을 찾아가 중들을 만나니

부처의 大愚 바야흐로 알겠다.

 

<時調로 改譯>

 

목사의 설교 들으니 예수를 욕보이며

절간을 찾아가서 스님들을 만나 보니

부처의 큰 어리석음 바야흐로 알겠다.

 

*賢問愚答: 현명한 물음에 대한 어리석은 대답 *敎堂: 종교 단체 信者들이 모여

예배나 布敎를 하는 집 *說敎: 종교의 교리를 설명함. 또는 그러한 설명 *耶蘇:

‘예수’의 음역어(音譯語) *僧衆: 여러 승려. 승려의 무리 *大愚: 매우 어리석음.

 

<2018.7.15, 이우식 지음>

일, 2018/07/15-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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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는 ‘식민지 역사박물관’ 전시자료 14

제국 홍보의 소품, 시정기념엽서 시리즈

박한용 교육홍보실장

조선총독부는 1910년 이래 매년 10월 1일이면 이른바 시정기념엽서(始政記念葉書, 1920년부터는 5주년 단위)를 발행했다. 조선총독부가 출범하여 식민지 조선에 대한 통치를 처음 펼친 날이 바로 10월 1일이었으므로 이를 기념하려는 목적이었다. 화려한 색채와 다양한 디자인이 어우러진 이 고급 엽서들은 조선의 문화 유산이나 자연풍광을 비롯해 조선 각 지방의 산업 발달 또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 등을 디자인 소재로 삼았다.
‘시정기념’이란 말에 걸맞게 이 엽서들은 식민지 지배의 정당화를 넘어 총독부의 선정(善政)에 의해 미개한 조선이 비약적으로 문명개화했다고 내외에 선전하는 홍보수단 노릇을 톡톡히 했다.
실제 매년 발행된 기념엽서는 대부분 조선 전 분야가 일제에 의해 비약적으로 발달한 것처럼 묘사 하거나, 낙후된 과거 모습과 일제에 의해 ‘근대화된’ 모습의 사진을 나란히 배열하여 한눈에 비교하기 쉽게 디자인되었다. 일제의 대한제국 병탄을 한국인들이 기뻐하고 환영한 것처럼 디자인한 후안무치한 엽서들도 있다. 의도적인 상징 조작과 합성을 통해 그들은 조선인의 실상과 관련이 없는 허구의 ‘낙토(樂土) 식민지’를 이미지로 창출한 것이다.
통신우편수단으로 각광을 받던 이 엽서를 상용하면서 조선인들은 알게 모르게 일제의 지배이데올로기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었다. 시정기념엽서는 통신수단이라는 본연의 기능보다는 제국의 홍보수단이자 민족적 자각과 저항을 잠재우려는 ‘움직이는 마취제’로서 기능했다고 할 수 있다.

053

1 조선총독부시정기념 : 삼한을 정벌했다고 주장하는 신공황후 그림

2 조선총독부시정기념 : 일장기를 든 소녀를 둘러싸고 일본인과 조선인 아이들이 손을 잡고 노는 장면. 뒤쪽에 일본과 한국의 상징인 벚나무와 오얏나무가 함께 그려져 있다.

 

054

3 시정1주년기념 : 배경에 인삼이 개화한 모양 도안. 백운동 식림 1년과 4년 비교 사진 배치

4 시정1주년기념 : 한강 철교, 죽도 등대, 광량만 염전, 인천 수도 수원지 사진 삽입

5 시정2주년기념 : 구식 서당과 신식 학교 비교 사진. 일본 다이쇼천황 상중이라는 이유로 검은색 바탕 사용

6 시정3주년기념 : 부산 제1잔교와 연락선, 부산우편국, 부산정거장 사진 삽입

7 시정4주년기념 : 일본인 농업이민 주택과 근대식 논농사 사진과 조선인의 재래식 관개 및 제초 방식 그림 대비

8 시정4주년기념 : 조선호텔과 진남포 축항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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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시정5주년기념 : 경성우편국 신축청사 전경

10 시정5주년기념 : 군산항에 쌓인 쌀가마니와 목포항의 면화 집
하 장면 사진과 관련 통계

11 시정6주년기념 : 전북 임익수리조합과 평북 태천관개 사업 관련 사진 배치, 여백에는 수차와 흰닭을 그림

12 시정6주년기념 : 동아연초공장과 조선피혁공장 사진, 배경에 담배꽃, 담뱃대 등을 그림

13 시정7주년기념 : 하세가와 총독의 초상을 도라지꽃으로 감싸고, 그 아래 용산총독관저는 국화, 월계수와 총독부 상징인 오동나무꽃으로 꾸밈

14 시정8주년기념 : 황해도 겸이포 미쓰비시제철소 전경과 용광로 등의 사진 삽입

056

15 시정8주년기념 : 대정수리조합 취수구과 수로 사진. 해당지역 지도를 바탕으로 구성

16 시정9주년기념 : 동해 횡단항로를 사용하는 선박 다테가미마루(立神丸), 청진항에서 일본으로 보내지는 콩과 성진항에서 일본으로 실려가는 소 사진 실림. 배경은 동해 횡단항로도

17 시정9주년기념 : 은사수산경성제사장(恩賜授産京城製絲場)과 총독부제생원 맹아교육 장면. 뽕잎, 누에, 국화와 오동나무꽃을 배경으로 그림

18 시정10주년기념 : 평북 신의주 조선제지회사와 평남 승호리 오노다세멘트제조주식회사 평양지사 공장 전경

19 시정10주년기념 : 한강 인도교를 배경으로 사이토 총독과 미즈노 정무총감의 초상 배치

20 시정15주년기념 : 이왕가 수견식(收繭式)과 누에고치 모양의 테두리 안에 경성제사장 사진 삽입

월, 2018/07/16-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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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有名牧師

 

莫語從神意(막어종신의)

衆知幾度違(중지기도위)

平生貪貨色(평생탐화색)

不愧仰天祈(불괴앙천기)

 

이름난 목사에게 띄우는 글

 

神의 뜻을 따른다고 말하지 말게

몇 번이나 어겼는지 뭇사람 아네

한평생 돈과 또 女色 탐했으면서

부끄러워 않고 하늘 우러러 비네.

 

<時調로 改譯>

 

神意일랑 말 말게 뭇사람이 어김 아네

돈과 또 女色 따위 한평생 탐했으면서

부끄럼 하나도 없이 하늘 우러러 비네.

 

*神意: 神의 뜻 *貨色: 재색(財色). 재물과 여색(女色) *仰天: 하늘을 우러러봄.

 

<2018.7.16, 이우식 지음>

월, 2018/07/16-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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笑自稱莊老道通者

 

問汝知莊老(문여지장로)

焉輕孔孟言(언경공맹언)

危人危己者(위인위기자)

閉口速歸源(폐구속귀원)

 

스스로 莊子와 老子에 도통했다고 일컫는 者를 비웃다

 

네게 묻노니 莊子와 老子 아는가

孔子와 孟子의 말씀 어찌 깔보나

타인과 자신을 위태롭게 하는 者

입 닫고 빨리 근원으로 돌아가라.

 

<時調로 改譯>

 

莊子와 老子 아는가 孔孟 말씀 왜 깔보나

타인과 또한 자신을 썩 위태롭게 하는 者

신속히 그 입 꽉 닫고 근원으로 돌아가라.

 

*莊老: 장자(莊子) 노자(老子) *孔孟: 공자(孔子)와 맹자(孟子) *閉口: 입을 다묾.

 

<2018.7.16, 이우식 지음>

월, 2018/07/16-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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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雲里(백운리)

 

暫且望雲變(잠차망운변)

能知所以名(능지소이명)

每峯奇別界(매봉기별계)

爲客築宮城(위객축궁성)

 

흰 구름 마을에서

 

잠시 구름의 변하는 모습 보자니

이름을 붙인 까닭일랑 알 만하다

솟은 봉우리마다 썩 기이한 別界

나그네 위하여 궁궐도 쌓고 있다.

 

<時調로 改譯>

 

구름의 변모 보자니 命名 까닭 알겠다

저기 솟아난 峯마다 매우 기이한 別界

지나는 나그네 위해 궁궐도 쌓고 있다.

 

*白雲: 색깔이 흰 구름  *暫且: 잠시(暫時)  *所以: 까닭  *築城: 城을  쌓음 *宮城:

궁궐(宮闕). 궁궐을  둘러 싼 성벽. 궁장(宮牆). 금성(禁城). 봉성(鳳城). 朱闕.

 

<2018.7.16, 이우식 지음>

월, 2018/07/16-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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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제11회 강만길연구지원금 수여식

제11회 강만길연구지원금 수여식이 5월 18일 금요일 오후 6시 숙명여대 100주년기념관 7층 한상은라운지에서 각계인사 8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열렸다. 강만길연구지원금은 신진 학자들의 도전적 탐구정신을 격려하고 한국 근현대사 연구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2007년 제정되었다. 수여식은 함세웅 이사장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서중석 성균관대 명예교수의 수령자 발표, 지원금 수여, 최덕수 고려대 교수, 김도형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의 축사, 수령자의 소감연설 순으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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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심사대상은 2016년 8월과 2017년 2월에 수여된 17편의 한국근현대사 관련 박사학위논문으로 2월 20일 예비심사를 거쳐 4월 9일 심사위원회에서 유바다 고려대학교 한국사학미래인재양성사업단 연구교수의 「19세기 후반 조선의 국제법적 지위에 관한 연구」가 최종 선정되었다. 심사위원장인 서중석 성균관대 명예교수를 비롯하여 지수걸 공주대 교수, 최기영 서강대 교수가 심사위원으로, 조재곤 동국대 교수, 장영숙 상명대 교수, 한모니까 카톨릭대 교수, 김태우 외국어대 교수가 예비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수령자인 유바다 박사의 「19세기 후반 조선의 국제법적 지위에 관한 연구」는 그간의 국제법적 연구와 만국공법의 이해를 넘어서는 수준의 연구로서 한국사와 국제법 연구자들에게 주목받는 주장을 펼쳤다. 또한 국내외 많은 자료를 수집하여 그동안 등한시해 온 당대 유럽의 상황을 보여주는 자료들까지 확보하여 분석했다는 점이 높이 평가되었다. 앞으로 개항 이후 조선의 국제법적인 지위에 관한 활발한 연구와 논쟁이 전개될 것으로 기대된다.

• 김혜영 연구원

월, 2018/07/02-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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最低賃金引上

 

如何零細業(여하영세업)

店主用人難(점주용인난)

氣盡呼妻子(기진호처자)

無能固未安(무능고미안)

 

최저 임금 인상에 대해

 

영세한 사업은 과연 어떻겠는가

가게 주인, 사람 쓰기 쉽지 않네

기진맥진하여 妻와 자식 부르니

무능함에 대하여 정말 미안하네.

 

<時調로 改譯>

 

영세업 어떠한가 사람 쓰기 어렵다네

기운이 떨어져서 妻와 자식을 부르니

家長의 무능에 대해 정말로 미안하네.

 

*零細: 작고 가늘어 변변하지 못함. 살림이 보잘것없고 몹시 가난함 *店主:

가게 주인 *用人: 사람을 씀. 또는 그 사람 *氣盡: 기운이 다해 힘이 없어짐.

 

<2018.7.16, 이우식 지음>

월, 2018/07/16-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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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道(천도)

 

凶徒爲大富(흉도위대부)

善類豈貧寒(선류기빈한)

或者云天道(혹자운천도)

牛嘲犬馬嘆(우조견마탄)

 

하늘의 道

 

흉악한 무리는 큰 富者가 되는데

착한 무리 왜 가난하고 쓸쓸한가

어떤 者가 하늘의 道를 운운하니

소는 비웃고 개와 말은 탄식한다.

 

<時調로 改譯>

 

凶徒는 大富 되는데 善類는 빈한하네

어떤 者 하늘의 道 어쩌구저쩌구하니

마침내 소는 비웃고 犬馬는 탄식한다.

 

*凶徒: 흉당(凶黨). 사납고 흉악한 무리 *大富: 큰 富者 *善類: 착한 무리 *貧寒:

살림이 가난해 집안이 쓸쓸함 *或者: 어떤 사람 *犬馬: 개와 말을 아울러 이름.

 

<2018.7.17, 이우식 지음>

화, 2018/07/17-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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崇錢庵住持逐客乃笑吟

 

執着奚如此(집착해여차)

無非暫借錢(무비잠차전)

紅樓恒不惜(홍루항불석)

向客放揮鞭(향객방휘편)

 

崇錢庵의 住持가 나그네를 내쫓기에 웃으며 읊다

 

집착하심이 어찌 이와도 같은고

잠시 동안 빌린 돈 아닌 게 없네

妓樓에서는 늘 아끼지 않으면서

나그네에겐 채찍을 막 휘두르네.

 

<時調로 改譯>

 

집착 어찌 이런고 빌린 돈 아닌 게 없네

아가씨 술집에서는 늘 아끼지 않으면서

가련한 나그네에겐 채찍을 막 휘두르네.

 

*逐客: 손님을  푸대접하여  쫓아냄  *如此: 이러함  *無非: 그러하지  않은  것이

없이 모두 *暫借: 잠시 동안 빌림 *借錢: 차금(借金). 돈을 꾸어 옴. 또는 그 돈

*紅樓: 기루(妓樓). 창루(娼樓). 娼妓를 두고 영업하는 집 *不惜: 아끼지 않음.

 

<2018.7.17, 이우식 지음>

화, 2018/07/17-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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好酒貪色友

 

糟糠情久久(조강정구구)

妓女愛由錢(기녀애유전)

盡信其言約(진신기언약)

嗚呼賣石田(오호매석전)

 

술 좋아하고 女色 탐내는 벗

 

조강지처 情이란 오래가는 것이나

妓女의 사랑은 돈에서 비롯되는데

그 말약속일랑 신뢰하기를 다하여

오호! 저 돌밭도 그만 팔아 버렸네.

 

<時調로 改譯>

 

조강지처와 달리 妓女 사랑 곧 돈인데

그 거짓된 언약 따위 신뢰하길 다하여

오호라! 돌밭마저도 그만 팔아 버렸네.

 

*好酒:  술을  좋아함  *貪色:  호색(好色).  女色을  몹시  좋아함  *糟糠:  지게미와

쌀겨라는  뜻으로,  가난한 사람이 먹는 변변치 못한 음식을 이르는 말. 조강

지처(糟糠之妻) *久久: 기간이 *言約: 말로 약속함. 그런 약속 *石田: 돌밭.

 

<2018.7.17, 이우식 지음>

화, 2018/07/17-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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